- 이형주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1·2회를 통합해서 치른 2020년 조경기사 필기시험에서 다섯 문제를 ‘전항정답’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러한 주장을 제기한 A씨는 “이번 시험에서 8번, 28번, 32번, 69번, 92번, 107번, 118번 문제에 오류가 있고, 이 중 69번은 ‘전항정답’ 처리됐고, 92번의 경우 ④에서 ③으로 변경됐다. 8번이 ‘전항정답’, 28번의 답이 두 개, 32번, 107번, 118번이 ‘전항정답’으로 처리됐다면 합격자수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전항정답’이 5개가 됐으면 합격생이 1000명도 넘었을 것이다. 이러면 정말 시험이 아니다. 앞으로 또 잘못된 답이 기출문제로 기록될 것이기에, 절대로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된다”며 기록으로 남기고자 자료를 만들어 제보했다고 밝혔다.
A씨는 “이번에 합격자 수가 많았던 것은 문제가 쉬웠던 이유도 있지만 1개의 ‘전항정답’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과거의 예로 볼 때 한 문제만 전항정답 처리가 돼도 합격자 수가 많이 늘어난다. 한 시험에서 오류가 있는 문제가 7개나 나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경기사 시험을 치른 한 학생은 8번 문제에 대해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문제 제기를 하고 답변 내용을 네이버 카페에 공유했다.
“『서양조경사』에 적혀있는 페리스타일 가든이라는 용어는 잘못 적으신 용어라네요. 문화재청에 문의해보고 이의제기가 맞다고 하면 정답을 바꿀 의향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문화재청에서 인정이 안 된다고 했다네요. … 전문가분들이 하신 말씀으론 원서에 로마시대에 '페리스타일 가든'이라 쓰인 원서는 없고 번역하신분이 임의로 쓰신 것 같고, 그 외에는 표현상 기둥을 그렇게 쓴 것이라네요. 그리고 로마시대 주택정원은 아트리움이 가장 특징이라 그 외엔 인정을 못해준다고 합니다.”
8번 문제 질문은 “고대 각 국가의 정원 특징으로 볼 수 없는 것은?”이었고, 보기는 ① 이집트-신원(Shrine garden) ② 바빌로니아-공중(Hanging)공원 ③ 그리스-아카데미(academy) ④ 로마-페리스타일(peristyle) 가든이 나왔다. 답은 ④번이었다.
A씨는 “사전의 페리스타일을 보면 열주랑(列柱廊), 열주가 있는 장소를 말한다. 표현상 기둥을 그렇게 쓴 것이라니? 정말 화가 난다”며 “페리스타일 가든은 페리스틸리움의 정원 형식을 말하는 것으로 페리스틸리움은 로마 주택조경의 매우 큰 특징이다. 페리스틸리움의 정원형식을 ‘주랑정원’, ‘주랑식 정원’이라고 한다. ‘주랑(式)’이라는 말이 곧 ‘페리스타일’이라는 말이다. 페리스타일 가든이 잘못된 용어라면 ‘주랑식 정원’도 잘못된 용어가 된다”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페리스틸리움(peristylium)은 로마주택의 중정 중 열주랑으로 구획된 중정의 이름이고, 페리스틸리움처럼 열주랑으로 구획된 정원을 페리스타일 가든(peristyle garden)이라고 부른다.
구글에 ‘peristyle garden’이라고 검색하면 많은 자료가 나온다. 해외 도서에도 많이 나오고 그 책을 우리나라 온라인 서점에서도 판매하고 있었다. ④번이 틀렸다면 앞으로 그러한 용어를 쓰지도 못하고, ‘주랑식 정원’이라는 말도 못쓰게 된다는 것이 A 씨의 설명이다.
‘페리스타일 가든’은 조경학과 교수들이 쓴 『서양조경사』 책에도 고대 로마 시대 주요 특징으로 소개된다.
한국조경학회 4대 회장 고 윤국병 고려대학교 교수가 쓴 『서양조경사』(일조각, 초판 1978. 3. 30.) 39페이지에는 “아트리움과 접속해서 그리이스 스타일의 가운데 뜰인 페리스틸리움 peristylium 이 마련되어 있다… 그곳은 화훼류와 조각품, 분천, 제단 따위로 정형적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고 쓰여 있다.
40페이지에는 “페리스틸리움의 식재는 주로 오점을 단위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고대로마의 주택정원의 좋은 예가 되고 있다… 파상형의 윤곽을 가진 화단에는 헤데라 Hedera 와 관목, 화훼류가 식재되었고 화단의 윤곽은 회양목으로 그어진다”는 설명이 나온다.
한국조경학회에서 낸 『서양조경사』(문운당, 초판 2005. 8. 20.) 60페이지에는 윤국병 교수가 쓴 책에도 있는 베티가(Vetti 家) 사진이 흑백으로 실려있으며, 이 사진은 외국의 서적에도 ‘peristyle garden, House of Vetti’ 등으로 실려 있다. 이 책 62페이지에는 “로마의 주택은 ‘페리스타일 정원’의 도입과 함께 변화가 생겼다… 사각형의 정원… 페리스타일의 등장은 정원이 주택 내부로 도입됨을 의미”라고 나와 있다. 또한 63페이지에는 “페리스타일… 매우 보편적인 양식이 되었다”고 나온다.
A씨는 책의 내용이 맞는 것이고 책이 잘못됐다는 공단의 답변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류가 있는 또 다른 문제로는 28번이 거론됐다. “다음 중 놀이시설 계획과 관련된 용어 설명이 부적합한 것은?”이란 질문을 던지고 네 개의 선택지가 주어졌는데, 공단에서는 ②는 부적합하고 ①은 적합하다고 결론 내렸다.
“① 개구부란 시설물의 일부분이 구조체의 모서리나 면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말한다. ② 안전거리란 놀이시설 이용에 필요한 시설 주위의 보호자 관찰거리를 말한다. ③ 최고 접근높이란 정상적 또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어린이가 오를 수 있는 놀이시설의 가장 높은 높이를 말한다. ④ 놀이공간이란 어린이들의 신체단련 및 정신수양을 목적으로 설치하는 어린이놀이터, 유아높이터 등의 공간을 말한다.”
선택지의 내용은 ‘조경설계기준’ 중 용어의 정의에 나오는 내용으로 ‘개구부: 시설물 일부분이 구조체의 모서리나 면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입구 또는 출구를 말한다’, ‘안전거리: 놀이시설 이용에 필요한 시설 주위의 이격거리를 말한다’로 돼 있다.
이에 대해 A 씨는 “②는 ‘보호자’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항이니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①은 용어의 정의 내용 중 ‘입구 또는 출구’ 빼고는 맞았으니 ②보다는 덜 틀린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어 “개구부가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어떻게 공간이 개구부가 될 수 있으며, ‘공간’과 ‘공간의 입구 또는 출구’가 동일할 수 있는가? 두 개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의 ‘방’과 ‘방문’을 구별 못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그 어떤 말로도 ‘공간’과 ‘공간의 입구 또는 출구’를 같다고 할 수는 없다”며 “이 문제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답이 이상해 카페를 찾아보니 학생들의 이의제기가 있었는데도 답을 정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32번 문제는 답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음 설명에 적합한 계약은?”이란 질문을 던지고 보기로 “특별시장 등은 도시녹화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도시지역의 일정 지역의 토지 소유자와 "수림대 등의 보호 조치"를 하는 것을 조건으로 묘목의 제공 등 그 조치에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를 주고 있다. 그리고 ① 녹지계약, ② 공지계약, ③ 생태공간계약, ④ 원상회복계약이란 네 개 선택지가 주어졌는데, 답은 ①이었다.
문제의 보기 내용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의 ‘녹화계약’에 해당되는 내용이며, 해당 법률에는 ‘녹지계약’이란 자체가 없고, ‘녹지활용계약’은 있으나 보기의 내용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A씨는 이 문제는 법률적 문제이므로 용어나 문구에서 비슷한 개념을 부여할 수 없으며, 법률적 용어가 맞지 않으면 틀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①, ②, ③, ④ 모두 맞는 것이 없으므로 ‘전항정답’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만큼은 절대로 네 개의 보기 중 가까운 말을 정답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107번 문제는 2018년 12월까지는 유효한 문제지만 2019년 이후 현재 시점에서는 올바른 문제가 아니니 잘못된 문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경관리에 활용되는 사다리의 넘어짐(전도) 방지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을 물었는데, 선택지 네 개의 내용이 모두 ‘사다리 안전보건지침 [KOSHA Guide C-58-2012]’에 해당되는 내용이며, 현재 이 지침은 폐기됐으므로 아무 쓸모도 없고 답의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위의 지침이 폐기되고 ‘2019년 3월 19일 개정된 이동식사다리 안전지침’이 나왔으나 문제의 내용은 전혀 없으며,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를 보면 “사다리 안전보건지침 [KOSHA Guide C-58-2012]는 2018년 12월 폐기토록 하였습니다. 업무에 더 이상 사용치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 나와 있을 정도다.
118번 문제는 지문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지문을 보면 “비탈면의 풍화 및 침식 등의 방지를 주목적으로 하며, 1:1 이상의 완구배로서 접착력이 없는 토양, 식생이 곤란한 풍화토, 점토 등의 경우에 실시하는 비탈면의 보호공은?”이란 질문을 하고 ‘② 돌붙임 및 블록붙임공’을 맞는 답이라고 정했다. 그러나 국가건설기준센터 도로토공의 내용을 보면 ‘돌붙임공과 블럭붙임공은 1:1 이하의 완경사 비탈면에 사용하며, 비탈면의 풍화 및 침식 등을 방지하여야 하는 곳에 적용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A씨에 따르면 지문 중 ‘1:1 이상’이 아닌 ‘1:1 이하’가 돼야 정확한 문제다. 같은 기준의 내용 중 ‘돌쌓기공이나 블럭쌓기공은 1:1 이상의 급경사…’라는 내용도 나오므로 ‘1:1 이하’는 완경사, ‘1:1 이상’은 급경사로 정의된 것과 같으며 ‘1:1 이상의 완구배(완경사)’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문제 또한 ‘전항정답’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조경 자격을 담당하고 있는 연구원은 입장문을 통해 “질의에서처럼 합리적이지 못한 시험문제, 난이도에 문제가 있는 문제, 지엽적인 문제 등 시험 후 다양한 의견들이 있으며, 문제은행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문제들의 선정과 조합이 자동 선정돼 완전한 문제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객관식 택일형 시험과 절대평가(60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조경 분야는 여러 면에서 국가기술자격 시험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종목”이라고 호소했다.
조경 분야 자격시험 운영이 어려운 이유로 ▲건축, 도시계획, 토목, 임업, 농업, 디자인, 안전 등 출제분야의 범위가 너무 다양하고 방대하다 ▲정립되지 않은 출제근거(전공도서, 기타 교육자료 등)의 불확실한 자료들이 너무 관행처럼 오랜 시간 사용되어 왔다 ▲생물을 다룬다는 변수가 내재돼 항상 저자들의 생각에 따라 특징을 달리 표현하고 있어, 출제하고 검토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조경 분야 학계, 업계 전문가들이 국가기술자격사업에 참여하기를 귀찮아한다”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연구원은 “기존의 전문가들은 전공이 뚜렷해 출제의 전문성이 담보됐으며, 후진 양성에 대한 목표와 노력에 열정이 있었다. 요즘 활동하는 전문가들은 출제를 기피하는 성향이 강하다. 특히 조경시공학과 관리학은 전문가 활용이 불가능할 정도다”며 “기존 학계의 관행으로 내 수업 챙기기보다는 어느 것이 현재 조경업계의 상황에 적합한 인력양성을 위한 바탕이 되어 질 것인지를 일회성 고민이 아닌 방향에서 심도 있게 검토돼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아울러 “코로나 19로 인해 전체적인 자격시험과 취업 준비 등에 혼선이 많겠지만 그래도 기사3회, 기사4회 등 공단에서도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는 말을 덧붙였다.
시험 절차에 이의가 있는 경우 개별적으로 행정소송 등 개인구제절차를 통해 추가 행정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