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주현 대표 ([email protected])
제17대 한국조경사회(한국조경협회의 예전 이름) 회장을 역임했던 2013~2014년 당시 조경계 사건과 시대상을 되새기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동시에 많은 후회와 회한을 남긴다.
한국조경사회 활동에는 직장생활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어서부터 참여하였기에 인연이 오래되었다. 조경 전문영역에 대한 자긍심이 충만했던 나의 과거 흔적들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지면 관계상 재임 2년간의 주요 사업리뷰와 소감 등을 위주로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협회 아카이브 노력, ‘백서’ 발간
당시의 협회 이력은 약 200쪽짜리 사업백서(2013. 4 ~ 2014. 12)로 남겨두었기에 2년간의 활동 사항들을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이슈를 상기할 수 있다. 이런 기록이 없으면 우리의 기억엔 한계가 있어서 긴가민가 하는 내용이 사실 많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재임 전후로 늘 협회 아카이브 구축에 노력해야 한다고 많이 강조했다.
임기 동안의 사업을 정리한 이 사업백서는 바로 직전 회장이셨던 이민우(16대 회장) 회장 때 처음 발간한 이래 2번째 기록지에 해당한다. 임기를 마친 후 이를 정리해서 인쇄본까지 남겨두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차기 회장의 임기 개시 이후에 작업을 해야 하므로 사무국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실제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야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임기가 끝나면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보니, 이는 후임 회장의 지원과 전임 회장의 관심이 잘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조경사회는 일을 많이 하는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앞선 이용훈 고문(13대 회장 역임) 때부터 대폭적으로 기구를 늘렸다. 제17대 임기 당시에는 수석 부회장(최신현 씨토포스 대표)과 지회 회장(본회에선 부회장)을 포함해서 10명의 부회장단과 22개의 분과위원회가 있었고, 전임 회장이었던 이민우 교수는 바로 고문단에 합류하지 않고 명예회장으로 예우했다.
그리고 전직 회장들과 학회 회장 역임자들 중에 조경기술사를 취득한 분들을 중심으로 고문단(총 20명)을 구성했다. 감사 2명(김은성, 최종필)과 연구소장(최일홍) 1명을 포함해 15명의 회장단이 구성되고 79명의 자문위원이 계셨으며 상임이사 165명, 이사 188명에 개인 정회원 2350명으로 총 2818명이 있었다. 거기에 기업 정회원이 217개 사였다. 당시 고문들에 대한 예우가 부족했음을 이번 지면을 빌어 깊이 반성한다.
그리고 특별위원회를 2차례 조직했다. 2013년도에 ‘2013 대한민국 조경박람회 조직위원회(위원장 황용득 대표, 당시 부회장)’와 2014년도에 ‘2014 대한민국 조경문화박람회 조직위원회(위원장 최신현 대표, 당시 수석부회장)’를 한시적으로 구성해 맹활약했다.
광화문에서 열린 ‘대한민국 조경문화박람회’ … “시민을 만나다”
비교적 오랜 연륜을 가진 협회이기 때문에 체육대회나 골프 모임, 등반대회, 심포지엄, 기술 세미나와 월례회의(회장단 회의 혹은 확대위원장 회의) 등 기존에 해오던 연간 일정 매뉴얼이 잘 갖춰져 있었다. 이러한 행사 외에도 특별히 색다른 사업과 기획을 많이 시도했다.
한국조경사회의 홍보 팸플릿을 국문과 영문 두 가지로 처음 제작 배포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재임 2년차인 2014년에는 조경계 대표적인 연례행사인 ‘대한민국 조경박람회’를 광화문 광장이란 상징성 있는 국가 광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행한 것이다. 이때 행사 명칭에 ‘문화’를 삽입해 ‘2014 대한민국 조경문화박람회’라는 타이틀로 시민들과 적극 소통하는 대규모 야외 행사로 진행했다. 이 행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많은 조경인들이 참여해 의미가 있었다. 이는 봄에 계획된 행사가 세월호 참사로 인해 본의 아니게 가을로 미뤄지면서 이뤄진 결과다. 처음에는 서울시청 광장(잔디마당)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광화문 광장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이는 서울시 푸른도시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때 수고해주신 서울시 관계자 여러분과 조경사회 회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하지만 워낙 많은 노력과 봉사가 필요한 일이어서 행사가 다음 해로 계속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행사가 연기된 서울시청 앞 광장에 당시의 애도 분위기에 동참하고자 세월호 희생자를 위로하는 “노란리본의 정원”을 조성한 것이다. 한 달가량 운영하면서 서울시와 애도하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정원 바람, 동력 못 살린 아쉬움
2013년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며 정원문화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2010년부터 열린 경기정원문화박람회는 수도권에서 정원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에 큰 역할을 해왔다. 임기 직후인 2015년엔 제1회 서울정원박람회가 상암동 월드컵 공원 내에서 개최됐다. 같은 해 ‘수목원, 정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전면 개정되면서 ‘정원’이 법제화된 원년이 됐다.
이에 따라 한국조경사회에서는 정원문화의 급속한 발전에 대한 대응으로 한국정원문화협회를 창립했다. 당시 필자가 협회장을 겸직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에 새로운 법인설립 등록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조경사회 업무도 과중하다 보니 이에 대한 동력이 떨어졌다.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그 당시 산림청의 정원 관련 업무 진행이 많이 추진되어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교통정리가 얼추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때 같은 취지로 병행 추진되던 한국정원디자인학회도 문화체육관광부에 법인 등록은 했지만, 문체부가 공공디자인 법제 마련과 업체 등록을 시작하면서 정원을 문화산업으로 정착시키려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금 정원 관련 업무는 산림청의 고유 업무 영역으로 정착되었다. 재임 중에는 산림청과의 많은 대화를 시도하고 실제 실행도 했었다. 물론 처음에는 정원 업무의 산림청 영역화 시도에 반대했으나 결국 상생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산림토목법인 사업 중 하나인 숲길조성(이 분야도 영역 다툼이 한동안 거셈) 분야는 조경기술자로만도 등록이 가능하도록 양보를 받았다. 정원산업에 전력투구한 산림청의 손을 들어준 모양새가 되었다. 공원조차도 국비 한 푼 조달을 못하는 국토교통부의 처세를 오랜 시간 지켜본 우리 입장에선 정원산업에 관심 있고 법제화에 매달리는 산림청이 ‘꿩 잡는 매’처럼 생각되었다. 조경관련 단체에서도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잘된 일인 것 같다. 산림청이 정원 관련 업무의 확장성에 매우 심기일전하여 국비 확보에 나름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정부 부처 소통 강화 “각자도생 아닌 상생적 협력 필요”
이런 맥락에서 이젠 도시숲도 소극적인 국토교통부와 적극적인 산림청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조경계의 실리가 어디에 있는지 봐야 할 것 같다. 물론 산림조합이나 산림토목법인들 중심으로 그들만의 기득권 챙기기 차원에서 지자체에 어이없는 공문을 발송하는 짓(?)을 저질러서 또 다시 우리의 공분을 사는 일이 생겼지만, 이것도 우리의 대관청 대화 노력 부족에서 오는 피해로 보여진다.
필자는 일찍이 산림청 관련 인사나 교수들과의 교분이 많았던 편이다. 국토의 ⅔ 가량이 산지인 우리 형편에서는 산림청과의 돈독한 관계가 필요하고, 또 우리의 영역을 확대시켜 나갈 상생할 수 있는 중앙부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산림청보다 그 출신 OB들이 큰 입김을 발휘하고 있는 산림조합이나 산림토목법인들에 대한 설득이 쉽지 않아서 여전히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수년간 산림청의 인사들과 교분해 본 결과, 그들의 조경업무에 대한 수용과 상생 의지는 여러 차례 느꼈지만 실제 산림조합 중심의 외곽단체들에 의해 기득권 세력이 현존하고 있고 완고한 편이라고 느꼈다. 실례로 ‘신림기술 진흥 및 관리에 관한 법률(2017년 공포, 2018년 시행)’을 통한 조경계의 산림청 진입을 시도한 협회 관련(재단 포함) 조경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기득권 세력이 만만치 않다. 우리에게 시혜를 베푸는 듯한 푸대접에 억울해했다.
환경부도 여러 차례 들러서 이야기해 보았다. 생태복원업 신설에 대한 조경계의 입장을 얘기할 때 보면, 환경부 국장과 과장, 사무관들은 오히려 조경계의 일거리를 만들어주려는 일환이라는 산림청과 똑같은 소리를 한다. 그러나 각론적으로 들어가 보면 법제의 내용에선 눈에 보이는 칸막이나 벽들이 실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경 관련 단체장들이 그들과 대화의 끈을 놓지 말고 지속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그들의 부당성을 얘기하고 우리의 정당성과 처지를 잘 설득하여야 한다고 본다.
국토부는 수십 년간 공원 관련 예산(국비)을 한 푼도 못 내려 보내는 토건 중심 부서다. 그래도 이젠 ‘조경진흥법’이란 법제를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조직의 확대와 예산의 확충을 기대하고 매진해야 한다. 그동안 녹색도시과에서 관장하던 ‘개발제한구역(G.B)관련법’과 ‘공원녹지관련법’ 두 가지의 허울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앙정부의 많은 고위 공무원들을 만난 경험상 그들에게 조경분야에 대한 적의(?)를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떻게든 우리의 입장을 들어주려 하고 상생의 분위기를 만들려고 대응해준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없기에 꾸준히 이런 노력을 중앙부처에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환경부도 생태 보전 영역에서의 일거리와 일자리를 생성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고, 문체부의 문화재청(문화재조경)과 농림축산식품부의 산림청(도시숲, 정원), 농진청(도시농업) 등과도 접촉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적어도 국토교통부, 환경부, 문화체육관광부(문화재청), 농림축산식품부(산림청, 농진청) 등의 중앙부처는 우리 조경계의 미래 관심 분야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필요한 법제를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이런 법제가 성안되면 그 부처에는 조직과 예산이 세워질 수 있다.
이제 조경은 국토부만 쳐다보는 건설업의 하나가 아니라 문화산업이자 서비스 산업으로서 접근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필요한 미래 산업으로서의 저변을 넓혀 나가야 한다. 부디 앞으로 조경계가 각자도생하지 말고 대관 업무를 보다 철저히 하는 단체의 역량을 키워서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길 바란다. 기후변화에 직면한 절박한 시대에 조경분야가 중차대한 기능과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호기가 될 수도 있겠다.
열심히 했지만 ‘회한’ 남는다
임기 중 사업으로는 조경실무자의 보수 교육을 대체하기 위한 실무 아카데미를 개최한 일이 생각난다. 한국건설기술교육원의 토건 중심의 보수교육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꾸고, 부실한 조경기술자 보수교육을 다잡는 계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는 조경 전문교육 과정을 내실화하는 데 소기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여전히 조경기술자들의 저조한 참여 속에서 폐강될까 두려운 마음으로 가슴 졸이며 보고 있다. 1년에 겨우 한 번 인천에서만 하던 조경전문 교육을 새로운 강좌로 개편하고 인천 3회, 서울(강남) 3회의 총 6회로 증편하였지만 인천 쪽 교육 참여가 너무 저조하여 그들을 설득하고 때론 윽박(?)지르기도 했다. 어차피 받아야 하는 조경기술자 보수교육이라면 조경전문교육과정에 꼭 참여하길 부탁드린다.
그 외에 조경분야에도 국가직무표준능력(NCS)의 기준을 수립하기 위해 두 차례(조경시공, 조경설계)의 용역을 수행했으며, 전임 회장 때부터 해왔던 라오스 어린이 놀이터 조성 기부사업을 마무리했던 것도 생각난다.
업계의 대표 단체인 한국조경사회의 회장과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2015~2016)을 모두 역임하며 4년간에 걸쳐 조경계에 봉사해 많이 보람되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했다.
‘도시공원 및 녹지에 관한 법률(국가도시공원 개념 도입)’ 개정을 위해서 또 ‘조경진흥법 제정안’ 통과를 위해서 여의도 국회를 누구보다 많이 찾아다녔다. 관련 국회의원, 상임위원장, 수석전문위원, 심지어 국회사무총장, 국회의장까지도 만나서 설득하고 설명하며 협조를 구했었다. 국토부의 관련 과장, 국장 및 실장(1급 관리관)을 만나 항의하고, 읍소도 많이 했었다고 자부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여전히 부족하고 좀 더 그 역할을 잘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크다. 단체장으로 처음 찾아갔던 농림부(세종시)와 농진청(전주시), 문화융성위원회의 위원 면담을 통해 지원을 약속받기도 했다. 하지만 환경부와 문체부 등도 좀 더 자주 찾아서 지속적으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대화했어야 하는데 말 그대로 변죽만 울리다가 그친 사례들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러한 노력의 성과를 얻어내지 못한 자괴감이 아직도 응어리져 있다.
“원래 다변가(Too Much Talker)인지라 글을 써도 끝도 밑도 없이 이어집니다. 한국조경협회 40년(2020년)을 기념하고, 조경 탄생 50년(2022년)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회고와 감회를 기록하게 해준 e-환경과조경과 한국조경협회 현 집행부에 감사드리며, 재임 시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시고 시간 내어 봉사, 헌신하신 집행부(회장단, 위원장님들)와 사무국장 이하 직원들, 자원봉사자 여러분 등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또 행사와 사업 시행에 협조하고 조언해주신 고문님들과 다른 관련 단체장님들,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각 회사 대표님들과 직원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기회가 된다면 업계에서 유일하게 단독 수행했던 재단 이사장의 재임 스토리도 들려드리는 날이 있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