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주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지리학자와 조경학자가 모여 경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는 담론의 장이 펼쳐졌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 아우리)는 26일 서울 히브루스 코워킹센터에서 ‘경관을 보고 읽는 다양한 시선’이란 주제로 ‘제2차 AURI 경관포럼’을 진행했다.
아우리는 올해 국토경관 관리체계 구축 및 지원을 위해 경관센터를 설치하고, 경관관리를 위한 제도 운영 지원, 경관행정 및 관련 주체 역량 강화, 기반 구축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우리 경관센터는 국토경관 정책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점에 맞춰 그간의 국토경관 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고,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올해 총 네 차례 경관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경관을 보고 읽는 다양한 시선’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은 그 두 번째 시도로, 이제까지 경관 관리를 위해 정책을 수립하거나 법제도적 틀을 마련하고 추진하는 데 집중했다면, 2차 경관포럼에서는 경관의 개념이나 가치 등에 대해 좀 더 확장된 시각에서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진종헌 공주대학교 지리학과 교수가 ‘문화지리학의 경관이론과 사례’, 강영조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교수가 ‘몸으로 보는 경관’을 주제로 발표하고, 이상민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연구위원의 사회로 발표자와 배정한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가 열띤 토론을 펼쳤다.
박소현 건축도시공간연구소장은 인사말을 통해 “경관은 우리 생활 터전을 보다 가치 있게 하는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다. 아우리 내 경관센터 설치를 계기로 국민들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는 경관 정책연구를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갈 것이다”며 “이를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학계, 업계, 정부, 지자체 그리고 국민들의 소통과 협력의 창구가 되겠다”고 말했다.
문화지리학의 경관이론
진종헌 교수는 “문화지리학은 자연경관 위에 펼쳐지는 물질적인 문화에 대한 연구로, 경관의 형태를 강조하는 접근이었다면, 신문화지리학은 경관을 물질적 실체이면서 이미지 혹은 텍스트로 보고 해석적, 상징적 측면을 강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진 교수에 따르면 서구에서 토지가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로 전환되고, 화폐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면서 공간을 정확하게 측량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에 공간에 대한 실제적 지배를 위한 측량이나 지도 제작이 이뤄졌는데, 한편에서는 풍경화나 정원디자인을 통해 공간에 대한 시각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신문화지리학의 경관론은 30년 이후 문화지리학의 새로운 흐름, 비재현적 이론과 연구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 수행 및 실천과 관련해 시각의 특권적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재현적 지리학은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는 것에 반대하며, 경관을 일종의 결과물(고정된 재현)이 아니라 인간행동의 과정 속에 있는 실천으로 간주했다. 시각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다양한 감격을 재발견했다. 응시보다는 직접적인 경험, 체현적 지식, 지리학의 시각주의에 대한 비평, 덜 공공적이고 덜 실천지향적인 기억연구 등이 그것이다.
진 교수는 “신문화지리학은 문화적, 상징적 의미를 찾는 게 강해져 물질적인 경관 연구에 소홀했다. 많은 경험, 감각 중 시각을 절대화한다. 살아 움직이는 인간에 대한 부분은 사라지고, 고정된 관점에서 재현하고 재현된 결과물을 분석해왔다”며 “21세기에 다시금 경관의 물질적 회복이 이뤄졌다. 행동하는 사람, 주체에 초점을 두자는 관점으로 바뀌게 된다”고 말했다.
몸으로 보는 경관
강영조 교수는 “우리 눈앞에 있는 사물은 단순히 형태를 띠고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물체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성능으로 보인다.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이 단순히 얇고 긴 금속체로 보이기보다는 섬뜩하게 보이는 이유도 우리의 시각세계가 이미 의미세계라는 것을 웅변한다”며 “환경은 눈앞에 있는 물리적인 실체이긴 하지만 주체가 생활하기 위해 사용하는 또는 사용하려는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강 교수는 “살아 있는 우리들의 신체는 결코 피부 안쪽에 결박되어 있지 않다. 도구는 손의 부속품 혹은 사용자 자신의 일부로 역할을 하고, 몸은 피부를 넘어 공간으로 확장한다. 야생동물은 인간 혹은 그들의 적이 가까이 다가와도 어떤 일정한 거리까지는 도망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신체 개념이 확장된 ‘영역성’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체는 그것을 쥐거나 밀거나 또는 그 위를 걸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음식물은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물은 건드리면 기분 좋을 듯이 보인다. 그늘은 그 속에 들어가면 시원할 듯이 보인다. 기계, 장치, 구조물은 그것의 기능이나 능력에 관련된 의미를 지닌다. 건축물은 그 속에 들어가서 몸을 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쾌적한 도로는 의도하는 운전행동을 쉽게 할 수 있게 보이는 길, 쾌적한 물가는 물과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또는 있게끔 보이는 시설이나 공간이 있는 물가다”며 “이처럼 몸에 좋은 경관은 하고 싶은 행동을 할 수 있는 또는 할 수 있게끔 보이는 시설이나 공간”이라고 주장했다.
이원론적 시각에 대한 비판과 반론
토론에서 배정한 교수는 “신문화지리학에서 말하는 경관이 그 이전의 경관론에 비해서 이원론적인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훨씬 더 다양하게 볼 수 있고, 자연·문화 나누지 않고 읽고 쓰고 다층적으로 해석하려고 한 것 같다. 그 이후에 이러한 시도를 또 이원론으로 보고 그걸 넘어설 수 있는 걸 제시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며 진종헌 교수의 발표 내용을 먼저 요약했다.
이어 “경관의 퍼포먼스, 성능, 과정, 작동에 비중을 두고, 폼보다 프로세스, 경관이 어떻게 보이는가 보다 무엇을 하는가를 강조하는 설계 흐름이나 이론이 있다”며 “신문화지리학과 그 이후 비재현적 경관론의 관계가 현대 조경설계 흐름과 유사하다”며 “비재현적 경관론의 실천적인 분야로서 조경설계,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에서 프랙티스나 퍼포먼스를 강조하다 보면 경관이 가진 기본적인 성질을 배척하게 된다. 이것 또한 이원론이 아닌가 싶다. 신문화지리학을 비판한 비재현적 경관론이 이원론을 또 겪고 있는 게 아닌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진종헌 교수는 “비재현적 지리학에서는 산이 그대로 남으면 자연경관, 개발하면 문화경관으로 인식한다. 신문화지리학은 원래 있는 자연경관에 문화적인 의미를 덮어버리는 지질학적 층위로서, 신문화지리학도 자연경관을 텅 빈 곳으로 생각하고 모든 자연경관은 문화적인 의미가 배어 있고 그렇게 해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경 실무와 연관해서는 “시각이 절대적이고 지배적인 신문화지리학 경관론은 제한적인 부분이 있다. 경관을 만들어가는 데서는 다른 식으로 접근해도 될 것 같다. 다양한 경험이나 감각들이 만드는 과정에 투입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비재현적 방법이 조경의 경관을 실제로 만들어나가는 관점에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주상절리대 재설계 감독을 맡고 있는 김아연 교수는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을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 교수는 “회복해야 하는 지질학적 경관이 무엇이냐에 대해 고민이 많다. 제주 자연유산들이 인간화 돼 있다. 관광객들이 제주도에 오면 이국적이면 좋겠다는 욕구 때문에 제주도 전역에 야자수를 심으면서 주상절리대에도 심고, 포토스팟이 필요하다 해서 소라껍데기와 돌고래 조형물을 놓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훼손되지 않은 어떤 것이 따로 있어서 관계성 자체를 생각해보게 하는 긴장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겠다. 인지적으로 생각하는 이원론은 아닐지언정 실천 속에서 사람들의 손닿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을, 사람의 힘을 통해 복구하는 이원론의 실천이 필요하면 좋겠다. 방문자센터 등 인위적인 것을 분리시켜서 지질학적 경관에 몰입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진종헌 교수는 “과거 사업은 모든 측면에서 하향식으로 해서 제주 관광사업, 산림녹화사업, 한라산국립공원 지정 등 제주가 중앙으로부터 식민화되는 과정에서 관광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제주도민의 감각이나 느낌과 무관한 육지 사람들의 이국적인 시각에서 배치가 된 것이다. 이원성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은 육지에서 제주를 바라보는 과학시선주의 연장선이 아닐까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김아연 교수는 “주상절리대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의지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주지 않는다면, 이론적인 틀 안에서 해석하고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만으로 경관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실천상에서 무기력함이 느껴진다. 외지인이기 때문에 더 잘 보일 수 있고, 외지인의 시선이 바뀌어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서 경관 관련 실천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드러냈다.
진종헌 교수는 “자연유산을 관리하고 보존하고 지키는 데 있어서 일종의 커뮤니티의 관점이 필요할 것 같다. 자연유산을 국가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의 주민에 의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지역주민의 문화 속에서 관리하고 자연유산을 지키고 가치를 확산시키고 자생적인 제도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도시경관의 획일화, 소비되는 경관
배정한 교수는 “경관은 겉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사회적 구성, 여러 가지가 쌓여 있고 그런 게 분명한 사실이다. 도시경관은 더욱 더 많은 것들이 쌓여 있다. 한국의 도시경관을 대표하는 것은 획일성이다. 경리단길과 같은 핫플레이스가 나름대로 개성을 앞세운다는 듯이 보이며, 자본과 결합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옮기게 하는 것이 최근의 도시경관의 특징 중 하나다. 사실 그것 또한 획일적”이라며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이에 대해 진종헌 교수는 “경리단길, 황리단길 같은 사례는 트렌디한 서울의 특정한 장소에서 발전하고 복제되어 나가는 현상 같다. 여전히 사회적인 권력이 서울에 집중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본에 의해 식민화되는 것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드는 등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아연 교수는 “비슷한 경관을 소비하는 데는 SNS의 역할이 크다”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인증샷을 찍고 공유하는 문화가 보편화 돼 있다. 꽃향기도 맡고 해야 하는데 현장에 가더라도 한 장의 사진으로 남는 시각적인 소비만 남는 게 아닐까 싶다. 외부공간으로부터 더욱 분리되면서, 시각에만 의지하고 몸으로 경관을 체험하지 않는 풍토를 강화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영조 교수가 “지금처럼 풍경에 관심이 있는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스마트폰에 있는데, 풍경을 경험한다는 건 나와 풍경과 거리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매체가 사진이다. 풍경화라고 하는 장르가 19세기 갑자기 없어진다. 사진 때문”이라 말하면서 토론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화두로 옮겨갔다.
진종헌 교수는 “원근법에 근거해서 보는 건 공간 포획,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하나의 방식이라 본다. 재현적 지리학에서 원근법적으로 고정된 경관을 보는 걸 지양하기 위한 시도 중 하나가 움직이면서 보는 것이다. 원근법화해서 보는 것이 깔끔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근대적이라거나 합리적이라거나 과학적이라거나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영조 교수는 “연속된 게 하나의 풍경으로서 자리 잡는다. 겸재 정선 그림은 도저히 볼 수 없는 장면 3개가 한 곳에 들어가 있다. 머릿속에 있는 경험을 쏟아 넣는 것이다. 일생생활 속 풍경은 일점투시도가 아니라 내가 본 찰나의 그림이 머릿속에서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다. 겸재 정선은 현재도 통하는 우리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김아연 교수는 “경관은 하나의 화폭 내지는 구성물과의 관계, 지금 보이는 눈앞의 것을 만들어내는 시간적 관계를 분절해서 보지 않고 총체적인 경험으로 느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며 “경관을 만드는 방식 자체가 총체적 이미지를 분절되게 한다. 평면도에 입각한 다양한 드로잉과 관계에 의해 단계적으로 만들어진다. 이 모든 프로세스를 통해 분리돼서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을 때 내밀한 관계성이 사라진다”며 경관을 디자인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