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주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젊은 조경가들이 각자가 가진 ‘정원’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담론을 형성하는 자리를 가졌다.
조경이상은 지난 25일 서울 논현역 근처에 위치한 얼라이브어스 사무실에서 오픈 강연회를 개최했다.
조경이상은 30, 40대 조경가를 중심으로 조경의 현실을 새로운 시선으로 진단하고 조경의 잠재적 역량을 실현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함께 모색하기 위한 모임이다.
다양한 비전, 지식, 희망을 공유하는 열린 형태의 플랫폼이며, 구성원의 배타적인 이해관계가 아닌 조경을 통해 추구할 수 있는 조경 이상의 가치를 추구한다.
백종현 자연감각 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정원가특집’으로 정원 실무자들이 각자가 가진 정원이야기를 풀어내는 자리로 마련됐는데, 100명 이상의 조경인이 참석해 발 디딜 틈 없이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참석자 구성은 조경이상과 비슷한 30~40대 연령대의 실무자와 학생들이 비슷한 비중을 차지했다.
발표는 ▲오현주·이범수 안마당더랩 소장의 ‘어쩌다 정원’ ▲김태경 얼라이브어스 소장의 ‘정원가의 설계’ ▲최재혁 오픈니스 소장의 ‘작업의 민낯’으로 구성됐으며, 발표 이후에는 황윤혜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교수의 특강,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황윤혜 교수는 “조경 전공자의 관점에서 식물과 흙이란 내용 자체가 조경가가 할 수 있는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은 할 수 없다는 점을 공유하고 싶다”며 발표자와 청중이 함께 고민해볼 ▲Nested scales ▲Wild, stray, care ▲Origins and Functions ▲Time, change, and process ▲Transdisciplinary approaches란 5가지 문제에 대한 질문을 통해 정원과 생태계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강연을 대신했다.
먼저 공간적, 생태적, 사회적 스케일이 조경, 정원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를 확장했을 때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다음으로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들이 건드리지 않은 천혜의 자원, 사람들이 많이 관리하는 공원과 같은 곳, 그 사이에 존재하는 잡초, 야생생물과의 관계를 조경, 정원을 만드는 입장에서 확장할 수 있는지,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조경과 정원의 범위에 들어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물었다.
기원과 기능에 대한 물음도 던졌다. 황 교수는 “아무리 좋은 토착종이라도 살 수 없는 환경이라면 거기에 놔야 하는지, 침입종이라도 홍수를 막는 데 역할을 하거나 기능적으로 좋을 경우 그것들을 정말 빼버려야 하는지 논쟁이 있다”며 “정원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얼 만큼 관대해야 하는지, 심미적·기능적 관점에서 식물을 선택할 때 어떤 종류의 기능성을 생각해야 하는가”라고 물음을 제기했다.
또한 “조경의 시간은 시공 후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 이후 변화가 사람에게 더 중요한 부분이다”며 “사람이 생각하는 시간과 자연이 생각하는 시간은 다르다”는 점에서도 같이 고민해보길 청했다.
아울러 황 교수는 “조경가라는 특성상 개체를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개체를 연결하는 중심에 있다. 궁극적으로 경관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그룹이 조경가다. 디자이너와 학자, 생태 다른 종류의 타임라인을 갖고 있다. 계약을 하고 디자인할 때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참여하다가 시공이 되고 완성이 되면 에너지가 꺾인다. 이 갭을 많이 줄일 수 있는 분야가 조경이다”며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동의를 하는지, 필요하다 생각하는지, 아닌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왜인지 어떤 역할이 필요한지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정원 의뢰, 속에 숨은 복잡한 ‘요구’ 파악해야”
이범수 소장은 “의도하지 않게 어쩌다 정원을 하게 됐다. 설계사무소를 다니다 불경기에 회사를 나올 처지가 됐는데, 현장으로 갈 기회가 생겨 설계가 실제로 구현되는 걸 눈으로 경험하며 3년을 보냈다. 언젠가부터 단순 업무가 반복되면서 큰 프로젝트의 부품이 되어 일하는 데 질려 퇴사하고, 정원회사에서 일을 배우다 창업했다”고 소개했다.
이범수 소장과 오현주 소장이 함께 소장으로 있는 안마당더랩은 조경지식을 기반으로 외부공간을 기획, 설계, 시공하는 디자인 작업실이다. 다양한 설계적 접근방법을 통해 외부공간의 문제점을 해결함으로써 작동하지 않던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중시한다. 나아가 예술성과 대중성 그 중간 지점에서 새로운 환경을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소장은 “창업 후 막막했다. 정원 일을 의뢰하는 사람이 요구하는 것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아무렇게나 잘라달라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전문가를 믿고 ‘아무렇게’나 해달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안엔 복잡한 많은 요구가 숨어 있다”며 “요즘 정원 요구는 공간 연출을 해주되 식물이 좀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이를 캐치해 녹색이 있지만 톤을 다운시키고 조명과 융화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다른 회사와 차별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이 소장은 “안마당더랩은 디자인사무소보다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브랜드는 아이덴티티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같다. 아뜰리에는 소장이 그 회사의 색깔이다. 소장이 힘을 빼도 회사의 캐릭터가 남아있게 브랜드화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방향이다. 예술성보다는 대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직원들에게도 정원박람회 출품 등 자아실현의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 어쩌다 정원을 하게 됐듯, 또 어쩌다 뭘 할지 모르겠다. 정원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 그걸로 재밌는 걸 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정원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공간의 구조를 짜는 일”
김태경 소장이 속한 얼라이브어스는 현대 도시를 만들어가는 건축, 조경, 도시재생, 문화 기획에 기반을 디자이너 그룹이다. 평등한 커뮤니케이션과 유연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이상적인 학제 간 디자인을 추구한다. 구성원 각자가 지향하는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공통 브랜드로 구축됐다.
얼라이브어스 홈페이지에는 6명의 소장이 건축가, 조경가 등으로 본인을 소개하고 있는데, 조경을 전공한 김 소장은 조경가와 가드너 사이에서 고민하다 의도적으로 가드너란 타이틀로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이에 김 소장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고민했던 것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정원가의 설계’란 주제를 풀어냈다.
김 소장은 “정원을 만들 때 공간의 구조를 어떻게 짜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그에 따라 식재기법 등이 전부 바뀐다”고 강조했으며 “처음부터 식재 종을 정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건물을 지을 때 내구성이 좋아서 재료를 선택한다고 하는 것은 디자이너로서는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식물을 심는 곳의 기후상 그 나무가 좋아서 선택했다는 건, 디자인적인 접근방식은 아니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소장은 “공간감이나 오감을 통해 공간적 전이 메시지를 전달한다. 상업시설에서는 도착했을 때 첫 인상이 중요하다”며 본인이 정원 작업을 할 때 도착과 경험의 순서를 구분한 ▲Backyard ▲Front Garden + Backyard ▲Front Garden의 세 타입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김 소장에 따르면 ▲‘Backyard’ 타입은 앞의 정원이 최소화되어 들어가서 건물이 나오고 뒤에 정원이 크게 나오는 경우로, 주로 주택에 적용하고 ▲‘Front Garden + Backyard’ 타입은 앞의 경험이 어느 정도 확보가 되고 건물로 들어가기 전에 건물 안의 콘텐츠나 이미지를 조경을 통해 한 번 표현하거나 밖과 건물의 관계가 너무 맞지 않아서 전이를 시켜주는 경우로, 주로 상업시설에 적용 ▲‘Front Garden’ 타입은 건물이 거의 마지막쯤에 나오게 하는 경우로, 골프클럽이나 도심 속 기업 사옥에 주로 적용된다.
“조경설계, ‘직관과 즉흥’의 가치 간과하지 말아야”
최재혁 소장은 스튜디오 오픈니스를 운영하며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김대희, 백종현 소장과 함께 ‘자연감각’이란 그룹으로 활동하며, 자연을 매개로 하는 다양한 공간 기획 및 설계, 시공 운영관리, 제품 및 서비스 기획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중이다.
최 소장은 “많은 조경 작업에서 계획가적 측면보다는 예술가로서의 측면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술가가 계획가와 다른 점은 직관과 즉흥에 있다”며 감각에 의존한 설계, 직관에 따른 설계, 즉흥적인 설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 소장은 “학교 설계교육과 설계사무소의 실무교육에서 간과되고 있는 점 중 한 가지는 설계과정상의 직관과 즉흥의 가치다”며 “설계가가 디자이너 혹은 계획가가 아닌, 작가 혹은 예술가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깊게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눈에 보이는 작은 공간을 짓는 일을 하는 경우, 대상지에 대한 단계적 분석, 전략적 설계방식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곤 한다. 이 같은 성격의 공간에서, 설계가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과 기술보다는 경험을 기반으로 한 직관적인 판단, 예술적 영감이다”며 “”상상력, 직관 공간의 즉흥적인 변주를 이끌어내는 순발력과 창의력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 소장은 “정원 일을 하면서 꿈결 같다는 걸 많이 느낀다. 식물은 꿈결같이 아름다운 장면을 순간순간 만들어준다. 얼마나 많은 직업이 그럴 수 있을까?”며 “조경은 나쁜 직업이 아니다. 식물은 작고 연약하고 아름다운 동시에 강하다. 내가 하는 일이 특별한 자연을 만드는 일이고, 누군가한테는 아름다운 일상을 주는 일이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