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윤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박광윤 기자] 지난 2004년에 시작된 통합놀이터 만들기 운동의 성과와 현재, 그리고 과제를 고민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통합놀이터만들기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지난 4일 국회의원관 제2세미나실에서 “통합놀이터 조성 현황의 진단과 제도적 개선방안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홍익표 국회의원, 김예지 국회의원, 이민옥 서울시의원이 참석해 통합놀이터의 사회적 확산 방안을 함께 고민했다.
홍익표 의원은 인사말에서 “통합놀이터는 논의된 기간에 비해서 진척이 매우 더디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아이들은 표가 없다. 특히 장애인 아이들은 표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차별 의식은 그 사람들과 함께 경험하는 공간이나 시간이 부족할수록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다. 그런 측면에서 통합놀이터는 어린 시절 초보적으로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주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예지 의원은 “오늘 제도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데 이론적으로 뒷받침이 될 만한 내용을 잘 듣고 가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자체에서도 이런 영향이 커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영범 건축공간연구원장은 “모든 아이들이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아동들의 놀이권을 좀 더 신장해 보자는 차원에서 지난 2004년도에 시작한 통합놀이터 운동이 20년이 다 돼 간다. 대공원에 국내 처음으로 통합놀이터가 적용된 이후 여러 지자체로 많이 보급됐지만, 여전히 통합놀이터는 하나의 브랜드화된 느낌이 강하다. 풀어야 될 숙제들이 많다. 앞으로도 열정을 잃지 않고 해달라”고 당부했다.
인사말에 이어 발제 및 토론이 진행됐다. 발제는 ▲맹기돈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사무처장이 “통합놀이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재현”을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대표가 “체크리스를 통한 통합놀이터의 진단”을 ▲김남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국장이 “통합놀이터 제도 개선과 확산 방안”을 주제로 진행했다.
맹기돈 사무처장은 그간 통합놀이터 만들기 운동의 진행 과정과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통합놀이터라고 이름 붙여진 전국 29개 놀이터에 대한 현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장조사는 ▲입지적 특성 ▲공간 구성 ▲놀이 구성 등 3가지 기준으로 진행됐는데, 입지적으로 보면 주거지역에 12개소, 테마공원에 7개소, 교육시설에 7개소, 복지시설에 3개소가 설치됐다. 공간적으로는 대부분 주출입구, 놀이공간, 휴게공간 등으로 구성되고, 주출입구에 턱이 사라지거나 다양한 난이도의 놀이기구가 적용되고,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놀이시설이나 편의시설이 많이 설치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확인했지만, 놀이시설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경사율이나 비상벨의 설치 위치 등이 현실적이지 않은 문제점도 지적됐다.
통합놀이터 운동은 2015년에 서울어린이대공원 내에 첫 통합놀이터인 꿈틀꿈틀 놀이터를 조성하면서 여러 지자체로 확산됐으며, 조성 매뉴얼 및 디자인가이드라인 등이 수립되는 등 성과가 이어졌다.
하지만 맹기돈 사무처장은 ‘통합’에 대한 개념이 합의되지 않은 것은 통합놀이터 확산에 하나의 장벽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무장애와 통합이라는 말이 혼용되면서 “우리 지역은 장애인 아동이 많지 않은데 굳이 통합놀이터를 만들어야 될까요? 통합놀이터를 실제로 만들면 장애 아동들이 몇 명이나 오나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며, 아직까지 통합놀이터를 일종의 장애인 시설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통합보다는 무장애에 국한된 인식”, “통합놀이터 조성 기준의 부재”, “획일적이고 단편적인 놀이시설”, “아이들의 놀이프로그램은 부재하고 조성 자체가 목적인 놀이터”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통합놀이터에 대한 비전을 합의하고 ▲입지 조건을 반영한 조성계획을 수립하고 ▲통합놀이터 조성기준을 마련하고 ▲다양한 통합놀이기구를 개발해 보급하고 ▲통합놀이 프로그램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금 대표는 무장애 놀이터가 아닌, 장애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놀면서 즐길 수 있는 통합놀이터를 위한 “통합놀이터 체크 리스트”를 개발해 발표했다. 또한 전국 29개 통합놀이터를 대상으로 체크리스트를 적용한 결과도 발표했다.
그는 “놀이터가 물리적 환경이다보니 체크리스트가 물리적 환경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는 한계는 있지만, 최대한 통합놀이터 조성을 위한 문턱을 낮추고, 평준화보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연성 확보에 노력했다”며 “지자체에서 실질적인 실현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단은 크게 ▲갈 수 있는가(Can I get there?) ▲놀 수 있는가(Can I play?) ▲머물 수 있는가(Can I stay?) 등 3가지 기준에서 진행됐다. 통합놀이터가 단순히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놀이과 만남, 휴식이 이뤄지는 공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체크리스트를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갈 수 있는가”에서는 정보제공, 주차장, 외부접근로, 출입구, 안내판 등이 진단 대상이다. 실제 분석 결과에서는 정보 제공이나 주차장 외부접근로는 대부분 기준을 충족을 하고 있지만, 출입구나 안내판에 있어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 수 있는가”에서는 도달, 이용, 난이도, 함께놀기 등이 진단 기준으로 제시됐다. 특히 도달은 수평 이동과 수직 이동으로 구분돼 평가했는데, 수평 이동의 경우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29개소 중 18개소였으며, 수직 이동이 필요한 곳은 16개소로서 수직 이동을 위해 경사로를 도입했지만 경사로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은 단 1개소뿐 있었다. 경사로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가 좀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또한 미끄럼틀의 착지 부분이 낮아서 휠체어 타는 아동들이 옮겨타기가 힘든 문제 등도 발견됐는데, 이는 이용 편의성을 높여주는 외국계 제품들은 많은데, 아직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머물 수 있는가”는 휴게시설, 음수대, 화장실, 비상벨을 대상을 체크리스트가 작성됐다. 포장면이나 음수대가 디테일하게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연금 대표는 “종합적으로 2015년에 만들어진 어린이 대공원의 통합놀이터 모방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유는 공신력 있는 가이드라인이 부재했고, 놀이시설물들이 관행적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장애 아동의 이용 및 접근성 등이 잘 고려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김남진 사무국장은 “여론보다는 제도”라면서 그간 통합놀이터만들기네트워크의 입법 활동 노력과 제도적 기반 마련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남진 국장은 “그간 통합놀이터는 여론이나 분위기에 따라 공약처럼 발표가 됐다가 조용해지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런 상황들이 계속되면서 분위기나 여론에 따라서 추진되는 게 아니라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전히 국가와 지자체에 통합놀이터 설치 의무를 부여하는 법 조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네크워크에서는 국가와 지자체에서 장애 어린이가 이용할 수 있는 놀이 환경을 마련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에 따른 어린이 놀이시설 기준을 마련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 장관의 의무가 명문화되는 것에 대해 주부부처가 강한 거부감을 보여 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현재는 폐기가 된 상황이다.
김남진 국장은 “같은 내용으로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부담”이 있지만, 앞으로 지방조례 제정, 통합놀이터 설치 및 운영가이드 제정,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 기준 구체화, 통합놀이시설물 개발 지원, 공공 주도 통합놀이터 모델 개발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제에 이어 이영범 원장을 좌장으로 ▲백선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UD복지연구실 이사 ▲허현수 서울시 푸른도시여가국 공원여가정책과 공원관리팀장 ▲조미정 LH 도시경관단 도시조경계획 부장 ▲정재욱 스페이스톡 대표가 참여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백선영 활동가는 실제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로서 놀이터와 관련한 두 가지 경험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하나는 놀이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아다녔던 경험, 다른 하나는 늘상 아이를 따라 다녀야 했던 경험이다. “발달장애 아동은 놀이규범에 익숙하지 않고 타인을 때리거나 소리를 질러서 데리고 나와야 하는 경험들을 많이 겪는다. 아이의 심리 상태나 의도에 대해서 또래의 친구들에게 침착하게 설명해 줄 사람은 없을까. 항상 이렇게 부모가 쫓아다녀야만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늘 했었다”며 “분리되지 않고 배제되지 않을 권리는 어떤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일까하는 고민을 함께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는 통합놀이터를 디자인하는데 필요한 7가지 유니버설디자인 원칙을 제안했다. 어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평한 이용’, 광범위한 선호와 능력을 수용하는 ‘이용의 유연성’,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용’, ‘알기 쉬운 정보 제공’, 의도되지 않은 동작으로 인한 반대 결과를 최소화 하기 위한 ‘오류의 대응’, ‘최소의 신체 활동으로 이용’, ‘접근 가능한 공간 확보’ 등이다.
허현수 서울시 팀장은 “현재 서울시 공원은 BF인증이 의무화 돼 있지 않다.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BF 인증 제품을 위해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 기본계획에 통합놀이터의 기준을 좀 더 세밀하게 검토해 도입하도록 하겠다”며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면 여러 지자체가 동참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고 기대했다.
조미정 LH 부장은 ‘인천가정2 공공주택지구의 통합놀이터 및 공원 BF 설계 가이드라인’을 사례로 소개했다. “기존 제도들은 설치 기준이 상당히 상이한 부분들이 있다. 여유로운 설계 기준으로 설치했다가는 까다로운 설계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LH만의 BF 가이드라인은 좀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해 진행했다”며 “앞으로 각 현장마다 인증 심사를 진행을 하면서 좀 더 업그레이드를 해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정재욱 스페이스톡 대표는 “놀이터는 일단 안전기준법 적용을 받는 대상이기 때문에 안전 인증을 통과해야 되는데, 안전 기준에는 통합 놀이터에 부적합한 기준들이 상당히 많다. 인증을 통과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기업이 투자를 해서 개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적극적인 개발이 어려운 실정에 대해 토로했다. 또한 프로젝트를 의뢰하면서 통합놀이터 전문가가 맞는지 증명해달라고 요청도 가끔 있는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인증이 부재한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