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렬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전략계획과 주무관 ([email protected])
용산기지 공원화를 바라보는 시선
1980년대는 우리 사회의 격동기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6.10 민주항쟁으로 군사정권의 퇴진, 우리나라 최초 종합 국제 스포츠 대회인 ‘86 아시안게임’과 세계 냉전시대 종식의 시작이라고 평가되는 ‘제24회 서울 88올림픽’의 개최가 시대를 대변해 주는 큰 사건이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물결은 도시계획과 사업, 정책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후 대통령 직선제에 나섰던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용산기지 반환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대통령 당선 후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공원화 사업 추진을 명령하게 되면서 ‘용산기지 공원화’ 사업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용산 미군기지 이전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보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2003년 용산기지 이전협정 체결, 2006년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 2007년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제정 후 용산공원 조성사업의 주체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이하 추진단)이 설치되었다. 국토부 추진단은 2011년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 수립, 2012년 용산공원 국제현상공모 당선작 선정 후 2차례 용산공원 정비구역 변경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용산공원 조성에 대한 논의는 용산기지의 역사적 특수성과 상징성, 국토의 효율적 이용, 지정학적 가치 등으로 인해 기지 이전부지의 주거단지 개발, 민족역사공원, 생태공원 등 매우 다양한 형태의 의견과 논의들이 이어져 왔다. 때문에 지난 30년간 시기별 용산공원 조성 논의와 주요 성격을 되짚어 봄으로써 공원화 방향을 이해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나아가 미래의 좌표를 구상하고 설정함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용산기지 공원화 - 1990년대 진행 과정
1990년대 초반 서울시의 ‘민족공원론’은 부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하여 민족공원 또는 역사공원 조성을 담은 주장이었다. 1990년 한·미 미군기지 이전 방침이 발표되자 1991년 2월, 서울시는 ‘용산 군이적지 활용방안과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주요 내용은 민족공원에 대한 개념구상과 최초의 공원 개념이 제시되었다. 서울시의 계획은 다이어그램 수준의 공간의 개념적인 대안이었지만 용산공원에 관한 공식적 구상으로는 최초였다.
그 후 서울시의 용산민족공원화 계획 발표를 계기로 다양한 논의들이 각계에서 전개되었다. 1990년 한‧미 이전기본합의서 및 양해각서가 체결되었으나, 용산기지 이전 비용을 한국 측이 전액 부담해야 하는 조건은 추후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공원 조성비용을 두고 줄다리기의 원인이 되었다. 기지 이전 비용이 17억 달러(약 1조8000억 원)에서 95억 달러(약 7조2000억 원)로 급증하자, 세부 이행에 대한 합의가 지연되었다. 1993년 6월, 한국 정부는 사업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미국 측에게 용산기지 이전 사업을 보류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후 용산기지 이전 협상은 전면 중단되었다.
용산기지 공원화 - 2000년대 진행 과정
2000년대는 생태공원 개념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용산기지의 생태공원론의 주요 골자는 친환경적인 생태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주장이다. 용산기지를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 생태녹지축의 연결고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사회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2006년 8월, 참여정부는 공식적으로 용산기지의 국가공원 조성을 선포하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반환받는 용산기지를 국가 주도의 민족역사공원으로 조성할 것이며, 용산공원은 국가적 의미와 상징성이 매우 크기에 중앙정부가 나서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으며, 서울시와는 갈등 없이 사업을 진행해 나가겠다고 선언하였다. 중앙정부가 국가 주도의 민족역사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방침을 굳히자 서울시는 용산기지에 서울시청 신청사 건립 계획을 취소하고 용산공원을 서울의 남북녹지축을 연결하는 거점으로 하는 생태공원화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2007년 7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용산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법적 기준과 틀이 형성되고, 2008년 1월부터 국토부(당시 국토해양부)에 ‘추진단’이 설치되면서 국가공원 조성의 주체가 명확해졌다.
용산기지 공원화 - 2010년대 진행 과정
2011년, 국토해양부는 사회적 논의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용산공원의 기본구상과 추진전략을 담은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을 고시하였다. 이는 2012년부터 착수되었던 기본설계와 조성계획의 기본적 틀로 작용하였다. 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의 설계 지침은 종합기본계획 주요 내용을 따랐다. 2014년 12월 국토교통부 단일 생태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고시 내용에 따르면, 당초 획일적으로 구획된 6개 단위공원(생태공원, 문화유산공원, 관문공원, 세계문화공원, 놀이공원, 생산공원)을 서울의 생태축과 조화를 이루도록 단일공원으로 통합·조정한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2015년 6월, 국토부는 용산공원 콘텐츠 발굴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대국민 온·오프라인 수요조사 실시와 정부 및 지자체 등 주요 기관으로부터 18개 콘텐츠 수요를 파악하였다. 2016년 4월, 국토교통부는 '용산공원 개발 시설과 프로그램 선정(안)'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동년 8월에 서울시는 ‘용산공원 조성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과 정책제안’ 기자설명회를 가졌다. 서울시의 기자설명회에서 제시된 실천방안 중 용산 캠프킴 부지에서 서울시와 주한미군이 공동으로 기획된 ‘용산공원 시민소통공간 - 용산공원 갤러리’의 운영은 훗날 용산기지 버스투어를 비롯하여 용산공원 조성 경계 구역 확장과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이하 용추위) 구성과 위상, 용산공원 부분개방 등 용산공원 조성 추진 방향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용산기지 공원화 - 2020년대 진행 과정
정부는 2019년 9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을 개정하여 국토부로 ‘용추위’를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격상하였다. 새롭게 구성된 위원회는 정부위원 9명과 역사·문화, 생태·환경, 소통, 도시계획 등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위원 21명으로 구성되었다. 2019년 12월, 제1차 용추위는 향후 용산공원 경계 확장, 국민참여형 용산공원 조성을 단계적으로 수립·시행계획, 용산공원 조성부지 부분개방, 용산미군기지 내 시설물 조사 추진에 대한 사항을 논의하였다.
그 후 2020년 7월, 당시 정세군 국무총리는 옛 용산 미군장교숙소 5단지를 리모델링하여 대국민 공개하는 행사에 참석하였고, 행사 후 제2차 위원회를 주관했다. 제2차 위원회는 미군기지와 접하고 있는 군인아파트, 전쟁기념관, 용산가족공원, 국립중앙박물관 부지를 용산공원 조성 구역으로 편입하기에 의결하였다. 2020년 12월, 제3차 위원회는 용산공원 국민참여단 7대 제안문 채택하였다.
맺음말
2017년 미8군사령부, 2018년 주한미군사령부가 차례로 평택미군기지인 험프리스로 이전을 완료하면서 이와 연관되는 용산미군기지 내 수백여 동에 이르는 시설들도 함께 사용을 중단하고 폐쇄된 상황이다. 며칠 전, 정부는 내년에 한미연합사령부도 평택기지로 이전을 완료한다고 발표했다. 용산기지 이전 사업의 종결 시점이 점점 명확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용산기지 이전 완료에 기지 반환에 따르는 각종 이슈들이 모두 정리되고 공원 조성사업이 착수되기까지 수년이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과정 또한 국민들에게, 서울시민들에게 충분히 설명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용산공원’이라는 타이틀만 걸어 놓고 희망고문을 이어가선 안 된다.
내년 상반기, 용산공원 기본설계가 확정된다 하더라도 산적한 숙제는 여전히 많은 상황이다. 국회에서는 ‘용산기지 부지를 활용한 주택 공급’을 다룬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개정’, 현장에서는 환경 정화라는 긴 시간이 소요, 그리고 미대사관 숙소 단지의 명확한 이전 시점 등 한·미 간 협상 의제들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은 당장 공원 조성은 어려운 상황임을 예측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중앙정부와 서울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당장 지금부터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지 살피고, 긴밀한 협조 관계를 이뤄가며 국민들에게 지지와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성과라 하더라도 ‘용산기지 공원화 사업’에 대한 밑바탕의 작업은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 그중 하나가 용산기지 내 시설물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관련된 기록물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는 국방, 도시, 건축, 조경, 문화재, 환경 등 다양한 전문가 그룹의 참여와 지속적인 예산 확보 등 사업 관리에 대한 행정적 뒷받침 필요하다.
용산기지 내 시설물을 조사한다는 것은 용산공원 기본설계의 밑바탕을 제공하는 것이다. 당연히 조사의 결과를 공원설계 담당자가 이해하고, 현장에서 확인하고 기본설계 과정에 반영할 수 있는 숨통을 틔워져야 한다. 국토부는 용산기지 시설물 조사와 용산공원 기본설계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진행과정과 향후 조사와 설계의 정합성 검토에 대해서 꼭 한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1년 전, 주한미군으로부터 용산기지 사우스포스트에 위치한 스포츠 필드와 소프트볼장을 반환받았다. 얼마 전인 12월 8일 자 국토부 보도자료에 의하면, 2020년에 반환받은 지역을 내년 3월경에 국민에게 개방이 진행될 예정이다. 서빙고역 앞에 위치한 옛 미군기지 장교숙소 5단지가 용산공원 부분개방단지로 최근 명소로 국민들의 발걸음이 점점 용산기지 내로 확산되고 있는 점은 매우 반갑다. 마음에 한편에 맴돌고 있는 메시지가 있어 한해 동한 ‘용산공원 시나브로’와 함께해 주신 분들과 나누고 싶다.
끝으로, 용산기지 공원화 사업은 단순한 녹지공간 조성 사업이 아니다. 여의도 크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면적에 지난 약 100년간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압축적으로 응집된 공간을 ‘공공의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이는 특별법이라는 제도에 의한 국토부 주관 사업이긴 하지만. 내용적 면에 있어서 국토부의 과제도 아니요, 서울시의 과제도 아니다. 국민의 공간, 국민에 의한 공간, 국민을 위한 공간으로서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공원으로 탄생시켜야 다음 세대와 나눌 수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 남수 있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정무직 공무원들의 판단과 셈법에 의해서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눈이 항상 이 사업에 주목이 될 수 있어야 하기에 필자는 항상 현장에서 이렇게 외친다.
“용산기지 공원화, 함께 이야기할 때입니다!”
참조1. 서울시 용산공원 시민소통공간 온라인 채널
참조2. 그간 용산공원 기본설계 변경 진행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