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조경 박광윤 기자] 한국경관학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념 좌담회를 열고 지난 20년간 축적한 연구·정책·실천 성과를 돌아보며 향후 10년 과제를 논의했다.
한국경관학회는 3일 중앙대학교 310관 대신홀에서 20주년 기념 좌담회를 개최했다. 좌담회는 배웅규 한국경관학회 회장(중앙대학교 도시시스템공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연구, 정책·교육, 사회기여 등 3개 파트로 나뉘어 학회의 성과를 짚었다.
▲연구 파트에는 김경인 한국경관학회 부회장(브이아이랜드 대표), 주신하 한국경관학회 고문(서울여자대학교 교수), 홍경구 한국경관학회 편집위원장(단국대학교 교수), 이상민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참여했으며 ▲정책·교육 파트에는 정두용 인하대학교 교수, 이현성 SD자인그룹 대표(홍익대학교 교수), 신지훈 단국대학교 교수가 참여했다. ▲사회기여 파트에는 나권희 엠플래닝건축사사무소 대표, 신은주 두다 대표, 정해준 계명대학교 교수, 이범현 성결대학교 교수가 참여했다.
연구 좌담회, 경관 연구의 축적과 확장을 짚다
김경인 “경관은 우리 삶과 밀접… 대중의 언어로도 기록해야”
김경인 부회장은 경관 분야의 책과 기록을 중심으로 지난 20년을 돌아봤다. 그는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무엇을 남겼는가의 측면에서 지난 시간을 바라봤다며 “무엇을 기록했고, 어떤 것들이 책으로 남았고, 또 어떤 언어로 우리가 사회와 같이 호흡해 왔는지를 돌아봤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초창기 국내 경관 분야의 출판 기반이 매우 약했다고 짚었다. 그는 “당시 ‘경관분석론’이라는 과목은 있었는데 책이 없었다”며 “우리나라는 임승빈 교수님이 쓰신 1991년의 「경관분석론」이 가장 먼저 나온 책이었고, 그 외에는 거의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론서와 제도서는 꾸준히 축적돼 왔지만, 이제는 일반 독자도 읽을 수 있는 언어로 경관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계속 딱딱한 책들만 내다 보니까 ‘경관이 뭐야?’라는 질문이 생긴다. 사실 경관은 우리 삶과 일상과 아주 밀접하다”면서 “집을 살 때도 같은 아파트라도 경관을 보고 선택하고, 커피를 마실 때도 경관이 좋은 곳을 찾게 된다. 여행을 가거나 길을 선택할 때도 경관이 좋은 도로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왜 옆집이 더 비쌀까」라는 제목의 새 책 발간 계획을 소개하며 “경관을 좀 더 일반화해서, 경관의 경제적 가치를 가장 알기 쉽게 써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주신하 “20주년 백서는 학회의 시간을 다음 세대에 건네는 기록”
주신하 고문은 이번 20주년 백서를 단순한 회고집이 아니라 학회의 흐름을 기록한 자료로 설명했다. 그는 “백서는 원래 기록”이라며 “너무 딱딱하게 읽히지 않을까 싶어서 중간중간에 기고를 많이 넣었다”고 말했다. 고문 회고와 학회 소개, 10주년 이후 주요 활동을 비롯해 국토경관헌장, 학술지 등재, 경관자원조사, 국토대전, 경관아카데미, 아시아도시경관상 등을 함께 담아 학회의 흐름이 한눈에 보이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주 고문은 특히 학회지의 등재지 진입 과정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았다. 그는 “학회지를 처음 내면 등재 후보지도 아니기 때문에 실적을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며, 등재 후보지 신청을 준비하던 중 연구재단 정책이 바뀌면서 신규 학술지 인정 절차가 중단돼 신청 자체가 늦어졌다고 회고했다. 이후 제도가 다시 정비된 뒤 신지훈 교수가 편집위원장 시절 자료와 체계를 갖춰 놓았고, 변재상 교수가 뒤이어 등재 후보지 신청과 선정을 이끌면서 결국 재심사를 거쳐 등재지에 오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홍경구 “AI 시대엔 경관이 더 중요해질 것”
홍경구 편집위원장은 학회지와 학술대회의 변화를 수치로 설명하며 연구의 확장과 방법론의 변화를 짚었다. 그는 “10년 동안 164편의 논문이 게재됐다”며 “2025년쯤 되면 회당 12편씩, 연간 24편까지 가는 수준으로 3배 정도 증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한 15편이 들어오면 3편 정도는 게재 불가가 나올 정도로 게재 기준이 상당히 엄격하다”고 덧붙였다.
홍 위원장은 “초기에는 경관 조례, 경관계획 지침, 경관심의 제도 정도였다면, 이제는 문화경관, 관광, 지역 정체성, 기후변화, 스마트도시 등으로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에는 GIS, 다변량 통계, 구조방정식 같은 기법이 기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연구 방법론도 고도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실무 변화와 관련해서는 “경관심의가 거의 디자인심의로 바뀌어 가고 있다”며 “건축심의보다 경관심의에서 ‘콘셉트가 뭐냐’는 질문을 더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AI 시대가 되면 경관 분야의 위상이 더 높아질 것”이라며 AI 기반 디자인과 경관계획이 전체를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민 “경관학회 20년, 경관정책 10년의 시간”
이상민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관학회 20년의 역사와 달리, 국가 경관정책의 실질적인 시간은 10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관학회는 20년이 됐지만 경관정책은 어찌 보면 10년 정도”라며 “경관법이 2007년에 제정됐지만, 사실 국가가 하는 역할에 대한 항목이 없었고, 2014년에 전면 개정되면서 국토경관이라는 단어가 법 제6조에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2015년 수립된 1차 경관정책기본계획을 국가 경관정책의 실질적인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토대는 정책기본계획에 있었다”며 국토경관헌장 제정, 경관행정 우수사례 시상제도, 경관행정 교육제도 도입 등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 이어 “경관협정 시범사업 등 1차 경관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경관학회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관처럼 가치를 다루는 의제가 문제 해결 중심의 정책 체계 안에서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지역소멸과 인구감소 지역은 경관자원이 풍부해도 관리 여력이 부족하고, 서울 같은 대도시는 고밀 개발을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런 조건 속에서도 새로운 의제와 방향을 찾는다면, “다음 10년을 경관학회와 함께 열심히 달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교육 좌담회, 행정·공공디자인·현장에서 경관의 틀을 세우다
정두용 “행정을 뒤따르기보다 함께 설계할 방법을 고민해야”
정두용 교수는 인천시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지방 행정에서 경관이 제도화돼 온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1999년, 2000년 당시에는 ‘경관’이라는 단어 자체도 굉장히 생소했다”며, 행정 현장에서 경관을 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제도를 만들어 놓는 것이라고 판단해 조례 제정부터 추진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경관법은 2007년에 만들어졌지만, 인천시 경관조례는 2003년에 만들었다”며, 그 조례에 경관계획과 경관위원회, 경관조직, 경관사업 등의 내용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또 도시계획과 도시경관, 건축과 조경이 모두 맞물려 있는 만큼 지자체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며, 그 과정에서 경관학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제 20년이 됐으니 성년”이라며 “행정을 뒤따라가기보다 행정을 잘 아우르고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앞으로의 10년을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현성 “경관과 공공디자인은 분리가 아니라 협업의 영역”
이현성 대표는 공공디자인과 경관의 관계를 설명하며 두 영역이 분리보다 접점과 협업 속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관학회와의 인연이 에치고츠마리 답사에서 본격화됐다고 소개한 뒤, “경관이나 건축, 조경, 디자인은 사실 경계가 애매하다”며 인접 영역 전문가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개 행사와 답사가 더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디자인 역시 경관과 비슷한 시기에 형성·제도화됐다고 설명했다. 공공디자인은 2005년 국회 공공디자인문화포럼을 계기로 출발했고, 2016년 공공디자인진흥법 제정으로 제도적 기반을 갖췄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공공디자인진흥법은 공공의 디자인을 공공의 안전, 편의, 품격, 배려 쪽으로 활용하라는 법”이라며 현재 전국 140~150개 지자체가 관련 계획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경관과 공공이 통합 계획으로 수립되는 게 맞다고 본다”며 “경관 전문가와 공공디자인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면, 지금 우리나라 245개 지자체의 거의 80%가 겪고 있는 혼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훈 “경관 문제 풀기위해 서로 다른 분야가 같은 목표를 고민한 자리”
신지훈 교수는 경관이 국내에 자리 잡는 과정이 처음부터 이론이 아니라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관이 여러 가지 관점이 있지만 우리 사회에 들어올 때는 ‘문제’라는 인식에서 시작됐다”며 “그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고민을 하다 보니 여러 분야에서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생겼고, 그게 공통적인 가치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런 흐름 속에서 경관대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관대전이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경관을 두고 함께 고민하고 비슷한 목표를 향해 가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또 초창기부터 심사에 참여해 현장을 다니면서 “정책과 연구로만 보던 경관이 실제로 만들어진 모습은 어떨까 하는 점이 굉장히 궁금했다”며 “현장을 다니면서 아주 큰 걸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분야마다 관점과 문제를 푸는 방식은 달라도, 결국 지향해야 할 가치는 같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10년 전의 경관 모습, 20년 전의 경관 모습과 지금의 경관 모습을 비교해 보라”며, 경관대전과 국토대전을 거치는 동안 경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분명히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사회기여 좌담회, 경관의 내일을 그리다
나권희 “경관 개념과 심의 기준을 더 명확히 해야”
나권희 대표는 도시경관 실무를 해오며 경관을 어반디자인의 관점에서 폭넓게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과 도시의 콘텍스트를 읽어가는 과정 자체를 경관으로 보고 있다며, 서울시 같은 대규모 도시의 경관계획은 도시관리계획과 여러 정책을 함께 포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경관과 공공디자인, 건축의 관점이 현장에서 뒤섞이면서 혼선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 대표는 “문제는 경관이라는 개념과 공공디자인의 개념이 굉장히 차이가 크다는 것”이라며 “디자인 관점, 경관의 관점, 건축의 관점이 사실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좀 게을러서 경관심의를 건축심의처럼 해오다 보니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경관의 개념과 심의 기준을 더 분명히 하고 경관법의 기본 원칙을 실무에 맞게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신은주 “경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주민이 함께 바꾸는 것도 문화경관”
신은주 대표는 국토대전 심사 경험을 계기로 경관에 대한 시각이 더 확장됐다고 말했다. 그는 심사를 다니며 “경관이 과연 무엇일까”, “어떤 게 아름다운 경관일까”를 많이 고민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국토경관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경관이 단순히 시각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는 경관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그 과정 속에서 사람과 사람의 행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경관이 설계와 계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여러 사례로 설명했다. 그는 휠체어 이용자의 이동 불편을 다룬 프로젝트를 비롯해 직접 기획과 실행까지 연결한 지역 사업, 곡성 뚝방마켓과 고흥 프로젝트 등을 소개하며 경관을 주민의 삶과 문화, 이용 방식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문화경관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다”며 주민과 함께 만든 어린이 놀이터와 지역 자원화 사례를 언급한 뒤 “주민이 같이 인지하면서 바뀌는 경관 또한 문화경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관학회가 자신의 시각과 회사의 관점을 성장시켜 준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정해준 “아시아도시경관상, 시상 넘어 국제교류 플랫폼으로”
정해준 교수는 아시아도시경관상이 단순한 시상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국제 교류의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아시아도시경관상은 2010년부터 시작돼 왔고, 우신구 부산대학교 교수님께서 정말 많은 수고를 해 주셨다”며 그동안 건축공간연구원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도시경관상이 큰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2025년부터 한국경관학회가 공동 주관사로 역할을 하게 된 점을 중요한 변화로 꼽았다.
정 교수는 지난해 홍콩 시상식에 참석한 경험도 소개했다. 그는 “단순히 한중일만이 아니라 중동을 포함한 여러 아시아 국가들이 출품하고 관여하고 있었다”며, 이를 통해 “지금은 시상식 정도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는 학술적, 정책적 교류의 플랫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우수 작품을 적극 발굴하고 추천하는 한편, 학회원들도 심사와 운영, 홍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이범현 “경관학회 다음 10년은 융합, 국가정책, 교육에 달려”
이범현 교수는 학회의 미래 방향과 관련해 융합, 국가정책, 교육 등 세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학술적인 융합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큰 화두일 것 같다”며 “AI도 AI지만, 스마트한 방법론이라든지 기술적인 부분을 어떻게 담아나갈 거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학회 내부의 융합뿐 아니라 학술 분야 간 융합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며, 융합이 앞으로의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또 농촌과 도시를 포함한 국토 전반의 경관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경관이라는 것은 농촌과 도시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국토 공간에 대한 경관사업을 하는 부분들”이라며, 앞으로 10년, 20년을 내다볼 때 국가정책 차원에서 경관학회가 어떤 역할을 할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토대전 등을 언급하며 “경관기본계획을 의무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종 지자체들이 경관기본계획과 경관 관련 사업들을 많이 할 수 있게 하는 법적인 기반을 만드는 것”도 과제로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교육과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1991년도에 임승빈 교수님이 만들었던 교재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좌담회는 한국경관학회가 지난 20년 동안 축적한 연구와 정책, 행정과 실무, 국제교류와 지역 실천을 한 자리에서 점검한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경관을 더 넓은 사회적 언어로 번역하고, 제도와 현장, 도시와 농촌, 디자인과 정책을 잇는 방향으로 학회의 다음 10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