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주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도시와 자연을 연결하는 공공조경의 확장 가능성이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공공기관조경협의회가 주최하고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주관한 ‘제18회 공공기관 조경기술세미나’가 27일 서울 전문건설회관에서 열렸다. 올해 세미나는 ‘보더리스 랜드스케이프(Borderless Landscape): 경계를 넘는 조경’을 주제로, 조경의 확장성과 융복합 가능성을 다양한 기술 분야와 기관의 실천 사례를 통해 조명했다.
공공기관조경협의회는 2006년부터 매년 기술 세미나를 열고 있으며, 기관 간 교류와 조경기술력 향상을 위한 협업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수자원공사(K-water), 한국도로공사, 인천도시공사(i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부산도시공사(BMC),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7개 공공기관이 참여해, 조경을 매개로 한 지속가능한 도시 구현 방안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본 세미나는 사전 도슨트 투어를 포함해 개·축사, 전문가 특강, 공공기관별 발표 순으로 진행됐다. 개회사는 배영민 인천국제공항공사 인프라본부장이 맡았다. 배 본부장은 “조경이 더 이상 단일 기술이 아닌, 도시환경·건축·토목·기후 등과 연계된 융합 분야로 진화하고 있다”며 “이번 세미나가 창의적 조경의 역할과 지평을 넓히는 실질적 논의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축사는 이유미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장과 전익요 공공기관조경협의회 회장이 이어갔다. 이 위원장은 “정원은 단순히 조성되는 공간을 넘어, 환경 문제와 사회적 이슈를 동시에 치유하고 해소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사례처럼 정원은 생태·사회적 회복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익요 회장은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 속에서 조경은 다양한 분야와의 협력을 통해 새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날 전문가 특강은 김봉찬 더가든 대표가 맡았다. 그는 ‘땅에서 시작한 이야기, 점·선·면으로 마주하는 자연’이라는 주제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 회복을 위한 조경 설계 철학과 현장 경험을 공유했다.
이어진 발표에서는 참여기관들이 조경을 매개로 실현하고 있는 혁신 사례들이 소개됐다. 박주환 LH 차장은 파주운정신도시에 조성 중인 ‘PAJU GARDEN’을 소개하며, “지역성과 사용자 참여를 결합한 첫 번째 정원 실험”이라고 밝혔다. 강여울 한국도로공사 차장은 “국민이 바라는 고속도로를, 국민이 바라는대로”라는 발표를 통해, 도로공간을 생태·문화적으로 탈바꿈시키는 전략을 공유했다. 배선영 K-water 과장은 ‘댐 홍수터 통합형 수변생태벨트’ 구축을 위한 민관 거버넌스 방안을 발표했다.
이미선 인천국제공항공사 과장은 ‘조경, 그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로 공항 내 조경의 다기능성과 생태문화적 역할을 강조했다. 최수종 BMC 차장은 ‘부산형 식재모델 가이드라인’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형 조경의 실천 방향을 제시했다. 박경탁 사이트닷 대표는 SH 사례를 바탕으로 ‘경계 없는 조경(Borderless Landscape)’을 제안했다.
한편 제19회 공공기관 조경기술세미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관할 예정이다.




◆ 한국토지주택공사, 공공정원의 진화…‘파주가든’으로 경험 중심 도시경관 실현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24년 조성 완료된 ‘파주가든’을 통해 공공정원의 지속가능성과 도시 정체성을 결합한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박주환 차장은 “공공정원은 더 이상 단발성 조형물이 아니라, 도시의 일상과 브랜드를 담아내는 경험의 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LH는 2018년 세종, 2020년 인천 검단에 이어 세 번째로 파주 운정3지구 수변공원 일대 약 9만5000㎡에 파주가든을 조성했다. 기존 작가정원 중심 조성방식의 한계를 인식한 LH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정원 본질의 재정의’에 주목했다. 파주가든은 정원과 공원을 통합한 입체적 설계로, 경관 감상뿐만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경험이 중심이 되는 정원 공간을 구현했다.
공간구성은 파주의 자연과 지역색을 반영한 ▲억새와 초화가 어우러진 입구마당, ▲파주 평야를 모티브로 한 잔디광장, ▲보타닉 파빌리온과 띠구름정원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도시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운정언덕’은 상징적 경관 포인트로 설계됐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작가정원 7개소와 더불어 주민 공모를 통한 참여형 정원이 함께 조성되었으며, 파주시 및 지역 사회와 협력해 지속 관리 체계를 마련했다. 개장식에는 약 5000명의 시민이 방문했으며, 도슨트 투어, 문화공연 등 시민참여 프로그램도 운영돼 큰 호응을 얻었다.
LH는 이번 사례를 통해 “디자인과 조성, 유지관리까지 전 과정을 통합적으로 고려한 공공정원의 모델”을 실현했다고 자평하며, 이를 시작으로 전국 단위의 공공정원 확대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 한국도로공사, 국민 참여로 완성하는 도로 경관… ‘고객디자인단’과 현장 실현 확대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경관을 단순한 교통 인프라가 아닌 시민 경험의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해, 국민 참여 기반 공공디자인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강여울 차장은 “‘국민이 바라는 고속도로를 국민이 바라는 대로’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디자인 실험이 진행 중”이라며 주요 사례를 소개했다.
도로공사는 ‘국민 아이디어 현장 실현’과 ‘고객디자인단 운영’이라는 두 가지 축을 통해 공공디자인을 제도화하고 있다. 2012년 시작된 ‘국민 아이디어 현장 실현’ 공모는 2024년까지 13회에 걸쳐 약 2700건의 제안을 접수, 이 중 231건을 시상하고 27건을 실제 현장에 구현했다. 대표적으로 ▲강릉휴게소의 컬러 주차구역 ▲안성휴게소의 음료수 수거통 ▲다기능 모듈형 졸음쉼터 설치 등이 이용 편의성과 안전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객디자인단’은 국민과 전문가가 협업해 공공디자인을 기획하는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현장 조사와 워크숍, 발표회를 통해 이용자 맞춤형 경관 개선안을 도출한다. 2018년 도입 이후 현재까지 8기, 총 164명이 참여했으며, 이 중 21건이 고속도로 공간에 반영됐다.
최근 사례로는 가천대학교 학생들과 공동 개발한 과천대역 환승시설 디자인 개선안이 있다. 어둡고 단조롭던 지하 통로에 한국도로공사 캐릭터와 만화풍 그래픽을 활용해 밝고 친근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방향 안내 시스템을 강화해 이용자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해당 시설은 2025년 연말 준공 예정이다.
또한 올해 8기 고객디자인단은 중부고속도로 이천사휴게소를 대상으로 ‘펀(fun)디자인’을 주제로 활동 중이다. 쌀알을 형상화한 지역 상징 조형물과 가시성이 높은 출입구 개선안을 도입해, 전통성과 현대성을 아우르는 휴게소 경관을 제안하고 있다.
강 차장은 “공공디자인은 단순한 미관 향상을 넘어 국민과 함께 만드는 경험의 과정”이라며, “앞으로도 도로공사는 이동의 시간과 공간 속에 감성과 지역성을 담아내는 참여형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한국수자원공사, 수면 위 생태 회복 실험…‘대청댐 수변생태벨트’로 통합형 거버넌스 구축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대청댐 신상지구 통합형 수변생태벨트 선도사업을 통해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을 바탕으로 수질 정화, 생물다양성 회복, 탄소중립을 동시에 추구하는 실험적 복원 모델을 소개했다.
대청댐 신상지구는 대전 인근에 위치한 댐 저류지로, 그간 불법 경작과 오염물 투기로 훼손돼 왔다. 수자원공사는 이 지역을 생태 정화림과 수변 습지로 복원해 장기적으로는 탄소흡수원과 생태관광 자원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기존의 그리드형 조경 식재에서 벗어나 자생 수종 중심의 랜덤 식재 기법을 도입하고, 수위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식생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
배선영 과장은 “이번 사업은 단순 식재가 아니라 수계, 습지, 토지 소유권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통합형 거버넌스 모델”이라며, “지자체, 환경부, 시공사, 주민 등과의 협력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식재 과정에서는 시공 현장의 작업 이해도, 식물 활착률, 침수·유실 등 난관도 있었다. 특히 수위 변화가 잦은 홈스터(저류지) 특성상, 식재 후 지속적인 관찰과 보완이 필요했다. 배 과장은 “줄을 맞추지 않는다는 설계 의도조차 현장에서는 낯선 시도였다”며, 실제 복원과 이상적 설계 간의 간극을 솔직하게 공유했다.
사업이 진행되며 생태적 변화도 감지됐다. 자갈밭과 모래톱으로 변한 저류지에는 흰목물떼새, 수달 등 멸종위기종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오염 농경지가 자연식생 복원지로 전환되며 생태 네트워크의 회복 가능성이 확인됐다.
수자원공사는 향후 해당 사업을 생태회복과 탄소흡수 인증, 지역 생태관광 자원화로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연말 준공 이후에는 지역주민과의 모니터링 및 유지관리 체계를 구축해, 시민 참여 기반의 생태계 서비스 모델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 인천국제공항공사, 공항 조경의 경계를 확장하다…정서·문화·생태 아우른 공간 실험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조경을 통해 감정, 문화, 생태가 공존하는 공항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선 과장은 “공항 조경은 단순한 녹지나 미화가 아닌, 이용자의 경험을 중심에 둔 다기능적 시스템”이라며 공항 공간에 적용된 융합적 조경 사례를 공유했다.
이 과장은 “공항이라는 특수한 기능 공간에서도 조경은 문화와 생태, 공공성과 장소성을 통합하는 매개체로 작동해야 한다”며, 조경이 단절이 아닌 연결의 언어로 기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공항이 그간 추진해온 프로젝트 중 세 가지 대표 사례가 이날 소개됐다.
첫째는 ‘화물터미널 IC 경관 조성’이다. 기존의 절개지 처리 방식에서 벗어나 석산을 부분 보존하고 바다 조망을 확보한 이 설계는 기능성과 경관성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로, 2018년 조경문화대상 생태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단순한 교통기능을 넘어 접근 경관의 정체성과 생태성을 강화한 조경적 접근으로 주목받았다.
둘째는 공항 실내공간에서 진행된 ‘국제 화예작품 특별전시’이다. 고급 화예예술을 실내조경과 접목한 이 프로젝트는 여객에게 감성적 휴식을 제공하며, 공항을 단순한 이동 경로에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확장하는 시도였다. 정서적 만족과 공공문화 조경의 가능성을 동시에 실현했다는 평가다.
셋째는 매년 말 운영되는 ‘연말 테마 조경 연출’이다. ‘Winter Forest for Real’(2023), ‘Sweet Voyage’(2024)와 같은 시즌별 테마 공간은 단순 장식이 아닌, 서사와 감성을 담은 체험형 설계로 조성된다. 여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공항의 브랜드 가치를 자연스럽게 고양하는 방식이다.
이 과장은 특히 “공공 조경은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인간의 정서와 기억을 설계에 담아야 한다”며, 감성 중심 설계의 핵심으로 ‘Thick Data’ 개념을 강조했다. 그는 환승 여객을 위해 조성된 면세구역 내 야외 ‘정자 공간’을 사례로 제시하며, “이용자가 한국의 전통 경관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조경이 단순한 조형을 넘어서, 이용자 중심 설계와 학제적 연계를 통해 공항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역할을 확장해 나갈 방침이다.

◆ 부산도시공사, 기후위기 대응 조경 모델 개발…데이터 기반 식재 가이드라인 제시
부산도시공사(BMC)가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정량적 효과 분석을 기반으로 한 ‘기후위기 적응형 식재 모델 가이드라인’을 개발하며, 도시 조경의 실질적 기능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최수종 차장은 “녹지가 도시환경에 긍정적이라는 인식은 보편화되어 있지만, 정량적 근거를 바탕으로 조경계획을 수립하는 시도는 미비했다”며, 이번 가이드라인 개발이 도시계획과 정책 설득력 제고를 위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업은 ▲기후위기 대응 국내외 사례 조사 ▲지역 맞춤형 식재 모델 개발 ▲시뮬레이션 기반 정량 분석 ▲실증 적용을 통한 모델 검증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기온 저감, 미세먼지 저감, 도시침수 대응, 탄소 흡수 등 네 가지 핵심 목표를 설정하고, 부산의 지형 및 환경 조건을 반영한 9가지 식재 유형을 제시했다. 예컨대 야간 냉각 유도를 위한 ‘자연 찬공기 강화형 녹지’, 도심 내 열섬 완화를 위한 ‘공원형 냉각 녹지’, 보행자 열쾌적성 개선을 위한 ‘가로수 식재 전략’ 등이 세부적으로 설계되었다.
또한 항만, 공업지대, 도로변 등 오염원 특성에 맞춘 미세먼지 저감 식재 모델은 다층식재와 풍향 분석을 기반으로 공기 흐름을 유도해 환기 효과를 높였다. 침수 대응 측면에서는 내염성 수종 적용, LID 기반 빗물저장형 녹지 도입 등을 통해 도시 물순환 기능을 강화했고, 탄소흡수 효과는 기온 저감형 모델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실증지인 ‘센텀2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에서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기온 저감 식재 모델은 10년 경과 시 평균 1.2℃의 온도 저감 효과를 보였고, 풍하측 미세먼지 농도도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침수 대응 모델은 우수 유출량을 줄이고 저장량을 증가시키며 물관리 측면에서도 기능성을 입증했다.
최 차장은 “이번 식재 모델은 조경 설계가 환경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계획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사례”라며, 향후 다양한 개발지에 본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고, 사후 모니터링을 통해 지속적인 성능 개선과 피드백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 서울주택도시공사, 협업과 융합을 통한 조경의 새로운 가치 창출 실험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Borderless Landscape’를 주제로 박경탁 사이트닷 대표의 발표를 통해 변화하는 도시 조경 설계의 융복합적 접근 방식을 제시했다.
박 대표는 “조경은 더 이상 공원이나 녹지 같은 독립된 대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도시계획, 건축, 토목, 수문학 등과 연결된 시스템적 요소로서 기능해야 하며, 기계와 수공, 과거와 현재의 기술이 결합해 환경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장”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 출품된 SH 기업정원 ‘미리내집 정원’을 사례로 들어, 조경이 정책, 설비, 장인, 지역 맥락 등 다양한 요소가 통합되는 실험적 공간임을 보여줬다. 이 정원은 실질적 주거공간 속에서 조경의 문화적, 사회적 기능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현장으로, 공공 조경의 확장된 정의를 제시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박 대표는 “민간 조경이 자본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트렌드 팔로우(Trend Follow)’의 성격을 갖는다면, 공공 조경은 사회적 가치를 중심에 둔 ‘진정한 리더(True Leader)’로 기능해야 한다”며, 공공영역의 역할 재정립을 제안했다.
SH는 앞으로도 다양한 민관 협업을 기반으로 조경이 도시 문제 해결의 실질적 도구이자, 문화와 환경을 매개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설계–운영–거버넌스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구조를 구축해, 도시 전반에 지속가능한 녹색 가치가 스며들 수 있도록 공공조경의 전략적 위상을 강화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