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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나무 오디세이아 ⑥] 봄_우리 곁에 있는 나무 이야기
  • 입력 2023-04-24 16:45
  • 수정 2023-04-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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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보다 꽃

버드나무같이 바람이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풍매화(風媒花)는 이른 봄부터 서둘러 꽃이 피었다가 진다. 진한 꽃향기도 없고 눈길을 끄는 화려한 색깔도 없는 꽃은 씨앗을 남기기 위한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한다. 그러나 4월부터는 나무들의 화려한 꽃 잔치가 시작된다. 살구꽃, 벚꽃, 복숭아꽃, 배꽃 등이 앞다투며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나뭇잎과 꽃이 같이 핀다. 나뭇잎이 나오기 전에는 노란색 꽃이 많이 보이는 것과 달리, 흰색이나 분홍색 꽃이 초록색 잎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꽃사과나무는 과일보다는 화려한 꽃을 보려고 심는 나무이다. 봄기운이 무르익는 4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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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해당(분홍)과 꽃사과나무 ⓒ홍태식

 

꽃사과나무란 사과나무속 식물 중에서 열매보다는 관상용 꽃을 위해 심는 종을 전부 포함한다. 구체적으로는 야생 사과나무와 식용 사과나무를 제외한 관상용 사과나무를 전부 꽃사과라고 분류한다. 야생 사과나무에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인 야광나무나 아그배나무, 능금나무가 해당된다. 대부분이 지름 4~5cm 이하 열매를 맺어 아기사과나무라고도 부른다. 가을에 익으면 대부분 빨간색을 띠고 신맛이 강해 먹기 어렵다. 원예종 꽃사과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데, 중국원산 꽃사과(Malus prunifolia)나 분홍색 꽃이 풍성하게 피는 꽃사과(Malus_floribunda)를 많이 심는다. 다양하게 개량되면서 꽃이 크고 작은 것, 열매도 작거나 큰 것, 꽃 색도 흰색이나 분홍, 빨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정원에서 독립수로 심는 편이지만 넓은 녹지에 군식하는 것도 보기에 좋다.

 

꽃사과나무와 비슷하게 보이는 나무로는 서부해당, 아그배나무, 야광나무가 있는데 일반인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열매는 꽃사과나무가 가장 큰 편이고 유일하게 열매 배꼽에 꽃받침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꽃사과는 수분수 용도로 쓰이기도 하는데 사과 과수원에서 꽃가루만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 네 종류 나무들은 낙엽이 지는 늦겨울에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아 멀리서 보면 빨간 단풍이 든 것처럼 보인다.

 

작은 차이와 다른 이름

서부해당(西府海棠) 학명은 ‘Malus halliana’인데 종소명을 따라 ‘할리아나 꽃사과’ 또는 ‘수사해당’ 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수사(垂絲)란 꽃자루가 ‘아래로 늘어진 실’ 같다는 의미이며, 해당(海棠)은 장미과 식물을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닷가 꽃인 해당화가 아닌 것이다. 서부해당과 관련하여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고사가 전해진다. 현종이 혼자 화창한 봄날을 즐기다가 양귀비를 불렀다. 양귀비는 지난밤 연회 때 마신 술이 깨지 않아 백옥같이 흰 얼굴에 홍조가 곱게 핀 모습으로 불려 나가게 되었다. “그대는 아직도 취해 있느냐?”라는 물음에 양귀비는 “해당화의 잠이 아직 깨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했다. 홍조로 물든 뺨을 서부해당 꽃에 비유한 양귀비의 고사처럼 서부해당은 봄 햇살 아래 화사한 분홍색 꽃이 특징이다. 5cm 정도의 긴 꽃자루 끝에 화사한 꽃이 실처럼 아래로 드리워져 핀다. 열매는 꽃사과보다 작은 편이고 배꼽이 살짝 들어가 있다. 서부해당은 가지가 제멋대로 뻗기 때문에 좋은 수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당한 전정이 필요하다.

 

아그배나무(Malus sieboldii)는 일본 원예종으로 유럽으로 전해져서 큰 인기를 받고 있다. 꽃은 연분홍색으로 피었다가 흰색으로 변한다. 열매는 주로 노란색이 달린다. 네 종류 가운데 꽃이 제일 아름다운 편이다. 꽃사과나 야광나무는 아그배나무와 수많은 교잡종이 생겨나 특별히 구분할 필요 없이 꽃사과로 전부 분류해도 된다는 의견도 있다. 정원식물로 개량한 키가 작은 꽃아그배나무도 있는데, 추위에 강한 편이라 전국에서 심을 수 있고 거름기가 많고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아그배나무 특징은 나무 전부를 뒤덮을 정도로 흰색 꽃이 가득 피며, 가지 끝에 새로 난 잎에서 3~5개 결각을 볼 수 있다. 열매는 돌배나무를 닮고 크기가 작아 아기배나무라고 하다가 아그배나무로 부른다고 한다. 겨울철 새들이 열매를 즐겨 먹는다.

 

야광나무(Malus baccata)는 5월경 나무 몸통 전체를 흰색 꽃으로 뒤덮는다. 어두운 밤에도 빛이 환하게 난다고 하여 야광나무라는 부른다고 한다. 보름달 빛이라도 받게 되면 엄청나게 주변을 환하게 밝게 하여 한 번 본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야광나무’는 활짝 핀 흰 꽃이 밤에 환하게 야광(夜光)처럼 비치는 데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열매가 아주 작게 달리는 나무라는 뜻의 ‘아가위나무’의 평안북도 방언 ‘야광나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남부지방에서는 보기 어렵고 중북부지방인 강원도 산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그배나무와 비교해서 새로 나는 잎 가장자리가 갈라지지 않는다. 열매는 아그배나무와 비슷한데 조금 작은 편이다.

 

과수원-배복숭아사과horz.jpg

왼쪽부터 배, 복숭아, 사과

 

기왕이면 다홍치마

우리 조상들은 꽃만 화려한 나무를 좋아하지 않았다. 과일을 수확하여 먹거나 약으로 쓸 수 있는 것들을 좋아했다. 매실이나 살구는 집 부근에 심어 꽃을 보며 봄이 왔음을 느끼고 그 열매로 가정상비약으로 요긴하게 썼다. 과일 수요가 늘어난 20세기 초반부터 배, 복숭아 그리고 사과나무는 과수원에서 대량생산하게 되었다. 짧은 개화 기간 동안에 꽃구경을 즐기고 난 후에는 상품성 있는 과일을 얻기 위하여 꽃따기, 1차 적과 그리고 2차 적과까지 바쁘게 일해야 한다. 과수원을 하는 농민에게 꽃 피는 4월은 1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일들이 이어지는 시기이다. 과수원에 핀 꽃은 도시민에게는 불꽃놀이처럼 화려한 볼거리지만, 과수농가는 온 가족이 달려들어 일하기 전 날인 것이다.

 

올해처럼 이상기후로 과수 개화 시기가 빨라지면 나무의 면역력이 약해져서 병충해 피해가 많이 발생한다. 나비나 벌의 활동이 원활하지 않아 꽃가루받이가 미흡하여 결국에는 과일 생산량이 낮아지게 된다. 이처럼 지구 생태계 질서가 자주 깨지면 모든 생명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리 조상은 오래전부터 능금을 재배해서 먹다가 20세기 초반 서양에서 들여온 사과를 더 많이 생산하게 되었다. 사과는 다양한 품종이 내는 새콤달콤한 맛으로 능금을 밀어내고 과일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이제는 능금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근대화로 인한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선호하는 과일이나 식물 생태계도 바뀌게 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따른 소비자 위주의 시장이 열리게 됨에 따라 조경수 시장도 변화하게 된다. 화려하고 오래가는 꽃이 피는 나무를 심어달라고 한다. 은은한 향기보다는 당장 눈을 즐겁게 해주는 꽃나무 수요가 많아지면서 생산농가도 그 요구에 따르게 된다. 조경수는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단기간에 공급할 수 없기 때문에 수요를 제때 맞추기 어려워 가격의 폭등이나 폭락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농업기술개발을 담당하는 농촌진흥청은 꽃과 열매를 감상할 수 있는 관상용 꽃사과 품종의 확대 보급에 나섰다. 농진청은 10여 년 동안 연구개발을 하여 꽃사과 신품종 3개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하나벨’은 달콤하고 상쾌한 향기를 풍기고 풍성한 흰 꽃을 피우는데, 꽃향기는 화장품 향료로 쓰일 만큼 향이 뛰어나다. 분홍색 겹꽃이 아름다운 ‘로즈벨’과 황금빛 작은 열매를 감상할 수 있는 ‘골든벨’이 있다. 현재 농촌진흥청은 농산물 위주로 연구개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조경수나 정원식물 연구개발에도 앞장서서 우리 자생식물을 현장에서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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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하니벨, 메이폴

 

소중한 우리 풍경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인 ‘빨간 머리 앤’에서 작가는 사과꽃이 흩날린다는 표현을 썼다. 정확하게는 꽃사과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유럽이나 북미에는 오래전부터 벚나무보다는 꽃사과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거리에 벚꽃잎이 바람에 눈발처럼 날리듯이, 소설의 배경인 캐나다 동부 해안 지역에서는 꽃사과나무가 많아 봄이면 꽃잎이 흩날리는 거리 풍경이 일상적이었다고 한다. 우리 땅에서 꽃사과나무는 흔히 볼 수 없었는데, 20년 전부터 해외 출장 가서 구경한 꽃사과에 감탄한 높은 분들이 우리나라에도 식재하도록 하여 오늘날 많이 보급되었다. 조경수의 세계화 시대가 열리게 되어 우리나라 경관의 특색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꽃사과는 햇볕을 좋아하며 습기가 많은 토양에서도 잘 견디나 공해와 염분에는 약하다. 비옥한 점질토에서 잘 자란다. 봄철에 나뭇가지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많은 꽃이 잎과 함께 핀다. 모양을 잡아주기 위한 전정은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좋다. 다만 꽃이 지고 난 뒤 수형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키가 3m 이하 규격은 모아 심기 하는 것이 좋다. 붉은별무늬병(적성병) 때문에 향나무 옆에 심으면 안된다.

 

홍태식 한국정원협회 부회장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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