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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Unhyeongung운현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 114-10에 위치하며, 면적은 9,413㎡으로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이자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한국근대사의 유적 중에서 대원군의 정치활동 근거지로서 유서가 깊은 궁집宮家이다. 현재 경내에는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수직사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77년 11월 22일 사적 257호로 지정되었다.
造營_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1은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이자2 흥선대원군의 사저로3, 한국근대사의 유적 중에서 대원군의 정치활동의 근거지로서 유서 깊은 곳으로 역사적 상징성이 크다.4 운현궁 일원의 최초 조영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종이 즉위한 해인 1863년 12월 9일 운현궁으로 승격되었으며, 1864년 1월 7일 조대비의 하교 하에 1만 7,830냥의 지원금으로 대대적인 신축과 보수가 이루어 졌다. 실제 1864년 3월 13일 노락당이, 1864년 3월 23일 노안당이 상량되었으며, 사당이 있는 동북측 영역은 1864년 6월 이전에 완성되었고, 경근문敬覲門, 공근문恭覲門도 이 시기에 조영되었다. 또한 이 기간에 고종이 어렸을 때 오르던 소나무에 정이품의 벼슬이 내려졌다. 또한 1866년 3월 21일에는 고종과 명성왕후의 가례를 운현궁에서 치루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 기간 이전에 가례와 관련된 건물과 정원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혼례가 끝나고 고종과 명성왕후가 자주 들러 노락당에 거처함에 따라 별도의 안채가 필요하게 되어 1869년 이로당이 상량되었고, 북측 영역에 북정을 없애고 영로당, 관사 등이 조성되었다. 또한 1886년 손자 이준용이 문과에 급제하면서 현재의 양관자리에 송정사랑을 건립하였다. 양관의 경우 조영시기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이준용이 귀국하여 가세를 회복하였다
각주1. 흥선군의 사저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63년 12월 9일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부인 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진 때부터였다. 고종이 12살까지 살았던 운현궁은 철종 때 옛 관상감 터였던 운현궁에 왕기가 있다는 내용의 민요가 항간에 유행하였으며, 고종이 등극한 후 대원군이 운현궁 터를 다시 확장하였다. 운현(雲峴)이란 당시 서운관(書雲觀)이 있는 그 앞의 고개 이름이었으며,서운관은 세조 때 관상감(觀象監)으로 개칭되었으나 별호로 그대로 통용되었다.2. 고종의 잠저는 당시 대왕대비 교지를 받들어 영의정 김좌근, 도승지 민치상, 기사관 박해철·김병익 등 일행이 명복(明福-고종의 이름)에게 익종의 대통을 계승토록 하기 위하여 고종을 맞이하러 최상급의 가마행렬을 갖추어 관현(觀峴)의 흥선군 사저에 갔을 때 흥선군의 위엄 있는 자세와 그의 둘째 아들인 명복의 천진스러웠던 모습에 대한 사실적 묘사에서 운현궁이 고종의 잠저였음을알 수 있다.3. 흥선대원군은 순조 20년(1820년)에 출생하여 고종 17년(1880년)에 왕실 가례소로서 건립한, 이른바 안동별궁(安東別宮)이 들어선 터에 있었던 궁집에서 성장하다가 정확한 일시는 알 수 없지만 정선방(貞善坊) 운현(雲峴)으로 이사하였다. 대원군 후손이 보존하던 현종이 내린 교지에는 1845년에 헌종이 현종(顯宗)릉을 지키는 수릉관인 흥선군 이하응(李昰應)에게 특별히 밭 50결(16만 3천7백 50평)과 노비 여섯 사람을 상으로 내렸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4. 현재까지 운현궁에 관한 연구는 건축학분야가 주를 이루고 있는바, 구체적으로 서울특별시(1993), 신영훈(1998), 주남철(2001), 황진하(2001), 문화재청(2002), 배한선(2003), 박광제(2003), 강옥희(2007), 서울역사박물관(2008) 등이 있다. 단행본으로는 서울특별시(1993)가 운현궁에 대한 고문헌의 정리와 실측조사를 실시하였고, 류시원(1996)은 운현궁의 인물, 유물, 건물, 외부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자료를 제시하였고, 신영훈(1998), 주남철(2001)은 건축물에 대한 건축학적 해석을 제시하였으며, 문화재청(2002)은 서울특별시(1993)보다 더 많은 자료로 고문헌의 정리와 양관 실측조사를 실시하였고, 박광제(2003)는 운현궁의 입지와 공간구성을 분석하였고,서울역사박물관(2008)은 운현궁에 관한 인물, 건축물, 생활용품, 점경물 등을 정리 및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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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
Yeongyeongdang造營_ 연경당은 순조 28년(1828) 왕세자인 익종1의 청으로 사대부의 생활을 경험하고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창덕궁의 후원인 금원禁苑내에 건립된 것으로, 연경당의 조영연대를 기록한 문헌으로는 한경지략漢京識略, 궁궐지宮闕志그리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를 들 수 있는데, 한경지략에서는“연경당을 창건한 자조子朝27년은 순조 27년인 정해년丁亥年이며, 창건자는 섭정하는 왕세자인 소조小朝(후일 익종으로 추존) 였으며, 대조大朝인 순조가당호를 연경演慶이라 이름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궁궐지와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연경당이 진장각珍藏閣옛터에 후일 익종으로 추존된 왕세자가 세자시절인 순조 28년에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건축의도에 있어 당시 규범적인 궁집宮家모습을 궁궐 안에 재현함으로써 궁궐 밖 민간생활을 알고자 한 것으로 판단되는 바, 이는 연경당이 당시의 궁집과 사대부의 모습과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2, 서울의 팔대가의 하나였던 경운동의 부마도위駙馬都尉, 박영효의 초기 제택第宅3 이었던 이진승가李珍承家나, 관훈동의 민덕기가閔德基家(竹洞宮), 경운동의 민병도가閔炳道家등과 전체적인 구성이 유사하며, 특히 민병도가와는 안채와 사랑채가 하나의 채로 연속되어 건립된 점이 같다.
1. 익종은 순조 9년에 태어나 순조 27년 왕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다가 순조 30년(1830)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아들이 헌종으로 즉위하자 왕으로 추종되어 익종으로 종묘에 봉향되었다.2. 연경당은 안채, 사랑채, 안행랑채, 바깥 행랑채, 서재인 선향재, 반빗간, 농수정이라는 이름의 정자 등 여러 채(건물), 그리고 그것들과 각각 짝을 이루는 마당으로 구성되었으나, 궁궐 내에 위치한 이유로 인해 일반 사대부집과 달리 사당이 없으며, 안채의 부엌이 없는 대신 음식을 준비하고 빨래와 바느질 등 집안 안살림을 하는 반빗간이 별채로 있다.3. 민가 중 공경대부의 집과 대군이나, 공주의 집인 궁집을 민가와 구별하여 제택(第宅)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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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조경사회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전통 새기는 뜻 깊은 행사, 미래비전 선포로 역동적 의미담아1980년 6월 21일 한국일보사 13층에서 (사)한국조경사회(회장 김경윤, 이하 조경사회)의 전신인‘한국조경사협회’의 창립식이 개최되었다. 조경기술사(기사)를 포함한 65명의 전문인력이 참여해, 조경업계의 권익증진과 분야발전을 향해 깃발을 들었던 때다.토목과 건축 등 인접분야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꿋꿋이 일구어 온 조경산업의 역사가 바로 한국조경사회의 지나온 30년과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 조경산업의 태동부터 미래 청사진까지 그려보는 자리인 까닭에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 거는 조경분야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지난 6월 16일(수)부터 6월 20일(일)까지 삼성동 COEX에서 개최되었던 한국조경사회의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5일간의 기록을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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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서원
Jaun Seowon자운서원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 5-1에 위치하며, 면적은 5,590㎡으로 광해군 7년(1615) 건립된 이후, 문성사文成祠를 중심으로 선성先聖과 선현에 대한 봉사의 기능을 수행함과 더불어 강인당講仁堂을 중심으로 인재의 양성과 교화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던 곳으로, 문성사, 강인당, 동재, 서재, 묘정비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73년 7월 10일 경기도 기념물 제45호로 지정되었다.
造營_ 자운서원은 광해군 7년(1615) 율곡 이이李珥(1536~1584)1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 하기 위해 김장생 등이 중심이 되어 파주 호명산虎鳴山아래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후 자운산 아래로 터를 옮겨 효종 1년(1650)에“자운紫雲”이라는 사액을 받았고, 숙종 30년(1713) 사계沙溪김장생金長生(1548~1631)과 현석玄石박세채朴世采(1631~1695)를 추가배향한 후, 선현배향 및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2.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율곡을 모신 서원으로 황해도 백천白川의 문회서원文會書院이 지정됨으로써, 자운서원은 훼철되었고 그 위폐를 매안埋安하고, 서원 터에 단을 만들어 향사를 지내왔다. 이후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0년 사당이 있는 제향공간이 중건되었다. 이후 1972년 이이와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을 기리기 위해 성역화 하였으며, 2000년 3월부터 2001년 4월까지 강인당, 동재, 서재 외삼문 일곽의 강학공간이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래 매년 음력 8월 중정일中丁日에 제사를 드렸으나, 1996년부터는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율곡문화제 때 제향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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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관주의, 새로운 경관 패러다임
최근 “경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향상됨에 따라 전문가 집단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경관”은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런 흐름 속에 조경, 건축, 도시, 공공디자인 등의 분야에서도 경관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날로 깊어지고 있는 추세다. 최근의 경관에 대한 조명은 과거 심미적 측면에 집중했던 양상과 달리 삶의 장소라는 측면에서 보다 통합적이고 확장된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이런 시류에 따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는 지난 5월 20일 “신경관주의 국제심포지엄”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조경, 도시, 건축, 경관, 공공디자인 등 다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새로운 경관 패러다임에 대하여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으로서, 이를 통해 분야 간 이질적이었던 “경관”의 개념이나 정의를 통일하는데 한층 다가섰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김대수 교수(혜천대)의 사회로 시작된 심포지엄은 “신경관주의의 대두”에 관한 기조연설, “신경관주의의 환경설계분야별 전개양상”에 관한 주제발표, 융합환경설계에 관한 종합토론 순으로 진행되었다.
한국·미국·중국·일본의 “신경관주의의 대두”경관을 키워드로 한 각 나라의 신경관주의의 행태를 발표한 1세션에서는 나라별 특색을 드러냈다.Niall Kirkwood 교수(미국 하버드 GSD)는 신경관주의는 생태, 어바니즘, 공공위생, 전통문화 등의 모든 것들과 관계지어야 한다고 말하며, 신경관주의가 생태적 잠재력을 얼마나 더 가치 있게 만들 수 있고 또 도시를 얼마나 더 경쟁력 있게 만들 수 있는지 사례를 들며 설명했다. 또한 거대한 신도시들이 현재 가진 장점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도시의 환경과 문화를 점차 발전시킬 수 있는 “신경관주의”의 정신을 도시 발전의 토대로 삼을 것을 강조했다. 이어 임승빈 교수(서울대)는 2000년대 이후 경관에 대한 사회적 의식의 증대와 2007년 경관법 제정 그리고 환경에 대한 관심에 따라 경관 관련 사업이 증가하는 추세이며, 이제 경관은 인간의 환경을 구성하는 그린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미적 측면과 생태적측면을 포괄하는 “신경관주의”는 21세기에 다가오는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경관주의의 환경설계분야별 전개양상류중석 교수(중앙대)는 한국의 도시가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질서 없는 도시경관을 형성해온데 이어 신도시 건설과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해 도시경관이 변화해왔다고 설명했다. 이후 건설기술의 발전에 따라 초고층 건축물이 도시에 들어섰고 이제 공공디자인이 도입되며 건축물 파사드, 거리 등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도시가로경관이 달라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앞으로 각 도시들은 다양한 도시의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또 유비쿼터스 등의 첨단기술을 활용한 도시들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도시경관을 위해 인접 학문간 어떻게 협조할 것이며, 첨단 기술이 도시에 가져올 가능성과 문제점을 되짚어볼 시기라고도 덧붙여 설명했다.배정한 교수(서울대)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과 동시대 한국 조경의 신경관주의”의 발표를 통해 현 경관법이나 경관계획의 내용은 주로 시각적 효과에만 치중한 면이 적지 않다고 말하며, 현재 진정한 “경관”을 통합할 수 있는 관점이 보완되어야만 장식적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신경관주의”의 조경은 화장술을 극복할 것, 환경·사회·공공성을 지향할 것, 경관의 프로세스는 도시의 작동과 미학적 국면을 함께 아우를 것, 다분야의 통섭을 이끌 것 등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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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암서원
Piram Seowon造營_ 필암서원은 조선시대 김인후1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선조 23년(1590), 변성운 등이 그가 살고 공부하며 제자를 가르쳤던 장성읍 기산리에 사우祠宇를 짓고 그의 위패를 모셨다. 이것이 1597년 정유왜란 때 소실되자 인조 2년(1624) 그가 태어난 황룡면 증산동에 다시 사우를 지었다. 이후 현종 3년(1662)에는 유생들의 요청에 따라‘필암’2 이라 는 액호를 하사받고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현종 13년(1672) 서원의 입지조건이 수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고 하여 다시 지금의 추산秋山으로 옮겨 지어졌고, 1786년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고암 양자징鼓巖梁子徵(1523〜594)도 함께 모셔졌다. 그 후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패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았으며, 현재는 보물 제587호로 지정된 고문서3와 인종이 하서 선생에게 하사했다는 묵죽도, 하서유묵 등 60여 건의 자료가 남아있다. 매년 4월에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춘향제春享祭가, 9월에는 추향제秋享祭가 열린다.
立地_서원은 축령산을 조산으로 증산을 배경으로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원 내 우동사, 내삼문, 청절당, 확연루가 서원 앞 들판으로 이어져 자연과 합일하고 있으며, 한편 앞쪽으로는 장수호에서 연계된 아곡천이 흐르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경관구조를 가진다. 주변 환경으로는 백양사, 홍길동 생가, 흥법사지 석탑, 가산서원, 두동사, 표의사, 진원현 이척산성, 삼성산성 등이 있다.1. 김인후(1510〜560)는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담재(澹齋)이며 장성 출생으로 1531년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그 후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으로 퇴계 이황과 교우가 매우 두터웠다. 1540년 권지승문원(權知承文院) 부정자(副正字)를 시작으로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부수찬(副修撰)·현감 등을 지냈으나,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장성으로 낙향하여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그는 문집인《하서집(河西集)》과《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등을 남겼다. 정조 20년(1796)에 문묘(文廟)에 배향되었으며 필암서원 외에도 옥과 영귀서원(玉果詠歸書院), 노봉서원(露峰書院)에 배향되었다.참고로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된 우리나라 18현을 열거하면 신라의 설총(薛聰)과 최치원(崔致遠), 고려의 회헌 안향(晦軒 安珦. 후에‘裕’로 개명),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조선조의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 일두 정여창(一鄭 汝昌),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퇴계 이황(退溪 李滉), 율곡 이이(栗谷 李珥),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우계 성혼(牛溪 成渾),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신독재 김집(愼獨 齋金集), 중봉 조헌(重峯 趙憲),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俊吉), 현석 박세채(玄石 朴世采)이다.2. 연재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이 고종 9년(1872)에 쓴 필암서원 묘정비문에 의하면, 필암서원이 창건된 기산 동구(洞口)의 바위가 깎인 듯이 서 있는 것이 마치 붓처럼 예리한 형상을 했으므로 붓바위, 즉 필암으로 사액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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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2010대한민국 조경인 체육대회
스무살 맞은 우정과 화합의 큰잔치(사)한국조경사회가 주관하는 제20회 대한민국 조경인 체육대회가 5월 14일 한강시민공원 광나루 제3축구장에서 개최되었다. ‘함께하는 조경, 하나 되는 조경인’이라는 타이틀 아래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57개사 700여 명의 조경인이 한 자리에 모여 우정과 화합을 다지는 한마당 잔치로 펼쳐졌다.유난히도 맑은 5월, 조경인들이 회사별로 돗자리를 깔고 오손도손 다과를 나누며 담소하는 모습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오랜만에 찾게 된 여유로움이었다. 어떤 이는 추억 속 운동회와 봄소풍 같은 학창시절의 향수에 빠져들기도 할 것이며, 어떤 이는 오랜만에 반가운 이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동창회 같은 특별한 느낌을 받기도 할 것이다. 올해로 20회를 맞이한 조경인 체육대회는 이런 설레임 가득한 모습으로 시작되었으며, 도전팀, 사랑팀, 우정팀, 희망팀 총 4개 팀으로 나누어 다채로운 경기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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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조경학과 도시조경포럼 100회 맞아
전국 조경학과에서 유일, 단일 프로그램으로 100회라는 진기록 세워조경담론의 열린 공간이 되고자 부산대학교 조경학과가 지난 2003년부터 매학기 마다 개최해온 도시조경포럼이 지난 4월 29일로 100회를 맞았다. 대학이 아닌 학과 단위 조직에서 단일 프로그램을 100회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개최해온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남다른 의미가 있으며, 더욱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조경을 매개로 지역의 학교는 물론 관계, 업계 모두의 정보교류와 소통의 구심점이 되어왔다는데 그 역할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100회 기념식을 겸해 부산대학교 장전캠퍼스 10·16기념관에서 오후 7시부터 시작된 이날 행사에는 이유직 교수의 사회로 부산대 조경학과 학생과 대학원생, 교수를 비롯해 동아대와 영남대 등 인근 영남권 대학의 학생들과 지역의 공무원, 업계 종사자 등 약 200여 명이 참석하여 도시조경포럼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알 수 있었다.시작에 앞서 부산대 조겸례 부총장은 축사를 통해“도시공간에서 조경의 중요성이 점차 더해가고 있는 요즘, 전국 40여 개 조경학과 중에서 단일프로그램으로 이렇게 오랜 전통을 세워온 것은 부산대 조경학과가 거의 유일하며, 무려 8년에 걸쳐 100회를 맞이한 것은 포럼에대한 애정과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라고 치하하고, “앞으로 도시조경포럼이 학문적·인간적 교류의 지속적인 장이 되길 기대한다”라고 전해 앞으로 대학 차원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일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어서 100회를 기념해 학과장인 최송현 교수를 비롯해 조경학과 전체 교수와 학생대표, 포럼 공동주최측인 부산대 지역개발연구소의 소장이 단상에 올라 함께 기념떡을 컷팅하였다.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열정이 세운 기록지난 2003년부터 시작된 도시조경포럼은 모든 지식정보와 자본, 인재 등이 수도권으로만 집중되는 것에 대한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들의 안타까움에서 출발하였다. 지방의 학생들에게도 지식정보에 대한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조경을 중심으로 도시와 건축, 자연과 환경, 문화와 예술 등 다양한 주제의 강연과 토론이 펼쳐지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초창기에는 일반 외부인사 특강 형식으로 진행되어오다 좀 더 발전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2004년부터는 이유직 교수가 코디네이터를 맡아 포스터 및 안내문을 제작하여 전국의 조경학과 및 업계에 발송하는 등 본격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다. 한 학기에 6명 정도의 특별 강연으로 진행되는데 보통 대학교수와 조경 분야 및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각각 2명씩 초청되어 강연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부산대 조경학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열린 특강으로 진행되어 그동안 최신 정보에 목말라 있던 지역의 학생은 물론 공무원, 실무 종사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초기에는 소식을 듣고 알음알음 찾아오던 공무원들 사이에서 점차 도시조경포럼이 공무원연수로 인정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자 많은 인원이 참석하게 되었으며, 회를 거듭할수록 토목과 건축분야에서도 찾아올 만큼 포럼의 인지도가 높아졌다.최근에는 포럼 자체에 대한 고정팬까지 생겨나 관심이 가는 주제의 강연에는 꼭 참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실제로 울산에서부터 달려오던 회사원들 중에는 강연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대학원 진학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100회의 기록은 이런 가르침에 대한 열정과 배움 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임승빈 교수, 21세기 한국 조경의 비전 제시100회 기념 특별강연의 강사로 초빙된 임승빈 교수(서울대 조경·지역스시템공학부)는 “조경이 만드는 도시”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21세기 한국 조경의 과제를 무상(無常: 현상), 무이(無二: 이념), 무애(無碍: 실천)의 관점에서 친환경적 도시, 친인간적 도시, 친경관적 도시가 가져야할 지향점에 대해 설명하였다. 특히 21세기에는 ‘도시 내의 공원’이 아닌 ‘공원 내의 도시’로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공원이 도시의 일부가 아닌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조경의 영역을 미리 정해놓고 이를 수동적으로 지키려고만 하지 않고 지구 및 인간환경 전반을 보고 능동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환경 및 사회적 변화에 대비한 전략을 세워야 하며(無常), 인간환경과 사회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융합적 사고를 지니고(無二), 장애가 없는 자유자재한 인간환경과 사회를 만드는 것(無碍)이 21세기 한국조경의 과제이자 패러다임이라고 제시해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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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 건축도시 통합디자인정책 포럼
디자인의 통섭적인 접근과 정책마련에 힘써야지난 4월 23일 대한건축학회, 한국공간디자인단체총연합회, 대한건축사협회, 대한국토도시 계획학회, 한국건축가협회,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한국도시설계학회, 한국조경학회, 조선일보, 서울산업대학교가 주최하고 대한건축학회가 주관하는 ‘국격 건축도시 통합디자인정책포럼’이 서울산업대학교 서울테크노파크에서 열렸다. 박병규 서울산업대학교 주택대학원 원장의 개회사로 시작된 이번 포럼은 각각 ‘국격과 디자인’, ‘건축도시 통합디자인정책’으로 주제를 나누어1, 2부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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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 기본구상 국제세미나
첫 국립도시공원이 될 용산공원에 대한 다양한 비전 제시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 기본구상 국제세미나(이하 용산공원 세미나)가 지난 5월 12일 코엑스홀 E5호에서 국토해양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의 주최로 개최되었다. 이 자리는 지난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개최한 ‘아이디어 공모전’의 내용을 토대로 작년 11월부터 6개월여에 걸쳐 조경·도시·교통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마련한 용산공원의 기본구상과 조성방향을 소개하고 국내외 저명한 공원전문가 및 국민들로부터 다양한 의견 및 요구를 청취하여 개선사항을 발굴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날 세미나는 ‘용산공원’ 자체의 조성 방향(켄 스미스, 김아연 교수)과 ‘용산공원 주변지역’에 대한 연계방안(조나단 바넷, 최창규 교수) 등 두 가지 중점사항을 중심으로 주제발표가 진행되었다.
먼저“대형공원 계획: 오렌지카운티 그레이트 파크로부터 배울점”을 주제로 발표한 켄 스미스(Ken Smith 소장, 켄 스미스 조경사무소)은 용산공원의 계획을 위해 고려할 주요사항으로 ‘생태적 인프라로서의 공원’, ‘역사와 장소성을 가진 공원’, ‘휴식처로서의 공원’, ‘다양한활동과 문화프로그램을 수용하는 공원’, ‘생산하는공원’ 등 5가지를 제시하였다. 이 중에서도 생산성을 가진 공원으로 조성되어야만 스스로 자생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이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오렌지카운티 그레이트 파크의 사례를 통해 지역민의 공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원조성과정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소통하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 조경학과)는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토대로“최초의 국립도시공원, 용산공원의 비전Vision for the first national urban park”이라는 제목 하에 용산공원의 기본구상안에 대해 들려주었다. 우선 공원의 골격을 세우는 전략으로 국가의 상징성과 지역적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한국적 경관요소인 숲, 들, 호수, 하천, 습지의 경관을 재현하고, 남산-용산-한강을 잇는 생태/경관축을 형성하는 안을 제시했다. 더불어 공원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개발요소와의 효율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원이 도시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진단하고, 소통의 회복과 녹색교통을 실현하는 것이 공원의 기본골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공원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용산공원은 단일한 성격으로 규정할 수 없는 대단위 면적임을 감안해 장기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공원 속에 다양한 공원이 공존하는 ‘United Park’를 제안하고, 미래의 유연한 대처가 공원의 기본 골격 자체를 흔들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다양한 방식의 국민 참여를 통해 조성·운영·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공원조성의 촉매방안의 하나로 용산공원에서의 국제행사 개최를 제안하기도 했다.
세 번째 발표자로 나선 조나단 바넷(Jonathan Barnett 교수, 펜실베이니아대)는 “용산공원이 가져올 도시디자인의 가능성”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용산공원의 古지도와 현재 위성지도를 비교 분석해 과거의 경관을 재현할 수 있으며, 이와 함께 자연환경을 일부 복원할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워싱톤 D.C에 있는 Rock Creek Park를 예로 들며, 도시 내에도 접근이 용이한 자연공간을 재현할 수 있음을 설명하며, 용산 또한 일부구간에는 남산을 비롯한 자연과 유사한 환경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복원에 힘써야 할 것을 당부했다. 또한 도시와 공원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현재 가로막혀 있는 남-북, 동-서간의 연결 동선이 필수적이며, 다만 센트럴 파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공원에서 차량이 보이지 않고, 차량에서 공원 내 사람들이 보이지 않도록 디자인 되어야 하며, 한강과의 연결에 있어서도 단순한 보행자용 다리보다는 뉴욕의 하이라인처럼 즐거움을 주는 공간 마련이 반드시 제안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용산주변지역을 위한 도시디자인 컨셉”에 대해 발표한 최창규 교수(한양대)는 용산공원의 인접지역 관리를 위해 경계부, 인근지역, 주변부 등의 차별화된 관리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강과의 연결을 위한 오버브릿지와 지하도로 등과 수계를 연결하는 수로 조성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경계부의 접근로 계획을 마련할 것과 서울시 교통체계를 고려한 도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공원내부 교통시스템으로는 자전거 등의 녹색 교통 위주로 계획될 예정이며, 자가용의 활용은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