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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조회, 경인아라뱃길 가다
    본지가 매년 조경 분야의 발전에 공로한 조경인들에게 수여하고 있는 ‘올해의 조경인’상의 수상자 모임인 ‘올조회’에서는 지난 9월 26일(월) 경인아라뱃길 현장을 방문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 2009년 경인아라뱃길 사업의 친수경관 조성과 관련해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김포시에 속하는 사업 지역 내 인천터미널, 김포터미널, 두물머리생태공원, 주운수로, 파크웨이를 대상으로 설계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그 결과 조경설계 서안㈜ R&D의 ‘청옥빛 소풍 Azure Journey’이라는 작품이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경인아라뱃길은 현재 서해갑문이 있는 인천터미널과 한강갑문이 있는 김포터미널, 주운수로를 포함해 수향 8경, 파크웨이, 자전거도로, 포켓 공간, 선착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공정률이 90%로 오는 11월에 준공될 예정이다. 사진_최자호 부장
  • 조경의 길을 묻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지난 10월 4일 화요일, 조경전문포털사이트 라펜트(www.Lafent.com)에는 ‘2011년 제1회 조경의 길을 묻다 간담회(이하 조경의 길)’가 동영상으로 공개되었다. 라펜트는 사이트 동시 접속자가 늘어날 것을 대비하여 사전에 서버 교체와 점검을 완료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4일 하루 동안 사이트의 로딩 속도가 평소보다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되었다. 예상을 상회하는 사람들이 라펜트 ‘조경의 길’에 접속을 했던 것이다. ‘취업’과 ‘진로’ 문제가 조경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절실한 당면 관심사인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최근 조경 분야가 주목하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소통’이다. 특히 외부 공간 전반을 조성하는 분야의 특성상 분야 간 소통에 근거한 융합과 통섭이 많은 이들로부터 회자되면서 중심 이슈가 되었다. 이는 분야와 업역을 넘어선 외부 공간 전반을 조성하는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이 조경가에게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분야와 업역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 소통은 과연 어떠한가? 특히 대학 고학년에서 조경 실무를 준비하는 예비 조경인과 조경 전문가와의 핫라인을 만드는 시도는 필요하고 또한 가치 있는 과제가 아닌가? 이러한 문제 의식이 이번 간담회의 시작이었다.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부속 모리스 수목원Morris Arboretum
    세계적인 수목 컬렉션과 역사적인 정원의 만남식물원을 찾아가는 길은 마치 새로운 영화를 보거나 책을 펼쳐 드는 일처럼 색다른 설레임을 준다. 같은 나무와 꽃을 가지고도 그것을 어떤 공간에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정원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오브제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가장 역사적인 도시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의 북쪽 체스트넛 힐(Chestnut Hill)에 위치한 모리스 수목원은 120년이 넘는 역사가 살아 숨쉬는 장편 드라마와도 같은 공간이다. 마치 드넓은 초원에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듯 각각의 독특한 주제와 디자인으로 짜여진 정원을 감상하는 일은, 사실 단순한 꽃놀이나 마음의 휴식을 주는 시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후세대를 위한 모리스 남매의 선물모리스 수목원은 처음 콤프턴(Compton)이라는 이름으로, 1887년 존 모리스(John Morris, 1847 ~ 1915)와 리디아 모리스(Lydia Morris, 1849 ~ 1932) 두 남매의 여름 휴양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모리스 남매의 부친 아이작 모리스(Isaac Pascall Morris)는 철강 제조 회사 아이피 모리스(I.P. Morris) 사의 설립자로, 이 회사는 남북전쟁 후 전기 보급과 자동차 발명 등 급부상하기 시작한 산업화에 힘입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존 모리스는 하버드대학교 엔지니어링학과를 졸업한 후 부친과 함께 회사를 경영해 나갔고, 은퇴 후에는 여동생인 리디아와 함께 수목원 조성에 전념했다. 모리스 남매는 1881년부터 1906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아시아, 유럽 등 전 세계를 함께 여행하며 정원 조성에 대한 아이디어, 예술 작품, 조각품, 식물들을 수집하여 하나하나 수목원을 일궈 나갔다. 특히 1889년에 시작한 세계 여행은 11개월에 이르는 대장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존 모리스는 하버드대학교 부속 아놀드 수목원의 첫 디렉터였던 찰스 사전트(Charles S. Sargent)와, 식물학자이자 식물 탐험가였던 데이비드 페어차일드(David Fairchild), 명망 높은 식물 수집가 E.H. 윌슨(Ernest. Henry Wilson) 등 당대 내로라하는 식물 전문가들과 교류를 통해 전 세계로부터 갖가지 진기한 식물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많은 정원사와 원예가를 고용하여 체계적이면서도 독특한 스타일의 정원을 조성하고 관리해 나갔다. 모리스 남매는 또한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되는 도시화에 따른 난개발을 우려하여 자연환경과 토지의 보전 관리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는 후에 콤프턴이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부속 모리스 수목원으로 변모하는 데 중요한 주춧돌이 되었다. 남매는 또한 교육의 힘을 믿었고, 언젠가 그들이 일군 땅이 대중을 위한 정원이 되어 원예와 식물학을 위한 교육 기관의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결국 1932년 리디아 모리스의 죽음 이후 콤프턴은 정식으로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부속 모리스 수목원이 되었다.
  • 창덕궁
    Changdeok Palace 造營_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로 하고 경복궁을 창건하였으나, 정종 때 다시 개성으로 환도하였고 태종 때에야 수도를 옮길 준비를 하면서 경복궁 동쪽 향교동 일대에 궁궐을 조성하게 된다. 태종 5년(1405) 2월 한양에 한 달 간 머물면서 친히 공사의 진행을 둘러보고, 1년에 걸친 공사 끝에 창덕궁昌德宮이라 명명하였다. 이어 1411년 진선문進善門과 석교石橋를 건립하고, 다음해 돈화문敦化門을 준공하는 등 왕궁의 보완 공사를 진행하고, 1418년 7월 박자청朴子靑에게 명하여 인정전仁政殿을 개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태종은 인정전의 개축 공사가 끝나기 직전 승하하고, 뒤를 이은 세종이 즉위한 1419년 9월 준공하게 되었다. 그 후 인정전은 1453년 단종의 즉위와 동시에 두 번째 개축을 하게 되고, 모든 공사는 세조 6년(1460년)에 이르러 마무리되었다.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이 불타버리게 되어, 광해군 원년(1609) 재건 공사가 시작되어, 1614년 원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623년 광해군에 반대한 세력에 의해 창덕궁의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1636년 인조는 후원1인 옥류천 주위에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을 지었으며, 1644년에는 존덕정을, 1645년에는 취향정을 건립하였다. 또한 1692년에는 애련지와 애련정이 조성되고, 인조 25년(1647) 창덕궁의 전반적인 복구가 다시 이루어지게 된다. 이후 1704년 대보단이 조성되었으며, 1776년 영조는 규장각을 짓고, 정조는 부용정을 개축하였다. 1828년 순조는 사대부의 생활을 즐기기 위해 민가 양식의 연경당을 건립하였다. 이후 1908년 일본에 의해 궁궐 일부에 개축이 행해지고, 인정전에는 서양풍 가구와 실내 장식이 도입되게 되었다. 1917년 대조전을 비롯한 내전 일곽이 소실되었는데이때 정궁인 경복궁의 침전 공간에 있던 교태전·강녕전, 동서행각, 연길당·함원전 등의 건물을 헐어 사용하였다. 그 후 1990년대에 들어와 3단계에 걸친복원 공사가 이루어져 1995년 인정전 주변의 내행각 11동이 복원되었고, 1999년 외행각 주변 15동이 복원되었으며, 2002년 규장각 권역에 대한 복원공사가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소통+장소,..조경(9)
    소통의 참여자: 주인 노릇을 하는 이가 주인“간혹 ‘주민 참여 프로그램 운영’을 주민 참여로 오해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어떤 프로젝트의 경우 발주처는 ‘주민 20명 이상이 모이는 참여 프로그램 2회, 주민 설명회 2회’ 같이 사람 수와 횟수를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해관계자들 간의 공동의 이해 도달’은 너무 추상적이고 설계자들의 성실성을 확신할 수 없어서 그렇겠지만, 이런 경우 자칫 프로그램을 위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 대상지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서, 주민들을 고려해서 그리고 무엇에 대한 상호 이해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참여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이용해야 한다.” 저번 호에서는 소통의 기법으로서 ‘주민 참여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호에서는 ‘소통의 과정’에 누가 참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내용은 좀 늦은 감이 있다. 소통의 전략과 기법 이전에 논했어야 했다. 글 쓰는 이의 불찰이다.
  • 2011년 라펜트(lafent.com)주최: 제1회“조경의 길을 묻다”간담회
    세대 간 소통의 장으로 발전시켜 나갈 터예비 조경인, 조경계 리더와의 만남한국에 조경학과가 개설된 지 내년으로 40년이 된다. 한국 조경은 미래지향적 가치와 비전을 선도하며 이론과 실무 양쪽에서 비약적인 성과를 거두어 왔다. 그러나 현재 전국 45개대학·대학원에서 배출되는 1,000여 명 이상의 예비 조경인들은 이러한 질적·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되풀이하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취업, 진학, 나아가 조경 분야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다. 이런 예비 조경인들에게도 행운과 같이 조경계 리더와의 만남이 주어졌다. 지난 8월 26일(금)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는 라펜트, 조경문화·녹색문화 주최로 제1회“조경의 길을 묻다”간담회가 열려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라펜트는 이번 간담회를 통해 예비 조경인들이 현재 각계각층에서 조경계를 이끌고 있는 리더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담백하고 실질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고 이들의 소통을 통해 향후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나아가 일회성 만남이 아닌 지속적인 소통의 장으로 발전시켜 조경분야 소통의 중심축 역할을 할 것을 밝혔다.이날 간담회에는 조세환 원장(한양대 도시대학원)의 사회로 김학범 교수(한경대), 박명권 대표((주)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오희영 상무(현대산업개발(주)), 최광빈 국장(서울시 푸른도시국), 한승호 회장(한설그린(주))이 조경계 리더로 참여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각 리더들은 학계, 업계(설계, 시공), 공기업을 대표하여 학교 교육과 사회 실무와의 관계, 문화재 조경분야로의 진출, 현시점에서 조경분야의 비전, 조경인의 건설사에서의 비중, 조경공무원 시험, 조경직 공무원의 위상과 매력, 우리 사회에서의 조경가의 위상 등을 허심탄회하게 전하였다.그리고 향후 조경에 대한 세분화된 주제를 가지고 세대간의 소통을 이어나갈 것을 약속했다. 제1회‘조경의 길을 묻다’간담회 동영상은 오는 10월 4일 라펜트 홈페이지 내에 공개되며 아카데미 및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홍보되어 많은 예비 조경인들의 관심을 끌 예정이다.
  • 고주석 교수 AURI 특별 강연
    한국 도시 설계엔 비평 문화가 없다네덜란드 와게닝겐Wageningen 대학의 고주석 교수(Oikos Design 대표)는‘Nature of Architectural Approach and Environmental Challenges of Korea: A call for ciritical self-reflection’을 주제로 지난 8월 11일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이하 AURI)에서 특별 강연을 갖고 한국의 비평 문화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고주석 교수는“도시 설계 및 도시 계획을 하는 사람들은 비평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비평이 없는 분야는 성장할 수 없다. 서로 간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있으나 학문의 발전에 있어서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의 도시 설계가들이 보다 더 비평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특히 스스로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것을 독려했다. “자기만의 틀에 갇혀서 반성과 자기 비판을 하지 않는다면, 검증되지 않는 모호한 이론들이 난무하게 된다. 이점을 연구원으로서 항상 주지해야 한다.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오휘영 교수(한양대 명예교수)와도 한국 조경 비평 활성화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고 밝혔다.고주석 교수는“세련된 건축 잡지에 실린 섹시한 건축물을 보고 사람들은‘좋다’라고 말하지만, 그 건축물들이 어떻게 좋은지 설명할 수 있는가?”라고 객석에 되물었다. 무조건 유명한 건축가나 전문가가 참여한 작품은 훌륭하다는 인식이 비판적이지 못한 사고로 이어지고 이 때문에 분야의 발전 기회까지 놓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비판적인 사고의 결핍 이외에도 도시 계획이나 건축에 관한 문제점을 바라보는 시각이 좁다는 부분도 지적했다. 단순히 분야 내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단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정치, 사회, 인문학적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 경복궁
    Gyeongbokgung palace造營_경복궁은 태조 2년(1393) 2월 권중화 등이‘신도종묘사직궁전조시형세지도新都宗廟社稷宮殿朝市形勢地圖’를 왕에게 바치면서 시작되어 이후 새 도읍 한성을 건설하고 궁궐을 짓는 일을 담당하기 위하여 태조 3년 9월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중심으로 심덕부·김주 등이 여러 산사山寺승려들의 공역 및 경기·충청 지역 백성들의 부역에 힘입어 완성되었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경복궁은 완성된 궁궐이 아니었으며, 태종 4년(1404) 환도 준비의 일환으로 이궁離宮인 창덕궁이 창건되면서 경복궁을 대체하게 되었다. 그러나 태종 6년 이후 경복궁의 수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태종 11년에는 명당수를 금천으로 끌어들이고, 12년에는 중국 사신 영접을 위해 경회루를 세웠으며, 누각 둘레에 넓은 못을 파서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하였다. 태종이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기지 않은데 반하여, 세종은 3년이 되던 해부터 자주 경복궁에 이어하고, 기존 전각을 수리하는가 하면, 8년에는 집현전 문신들에게 궁궐 내의 문과 다리 이름을 명명하게 하였다. 이때 정해진 문의 이름은 홍례문弘禮門·광화문光化門· 일화문(日華門: 근정전 東廊夾門)·월화문(月華門: 근정전 西廊夾門)·건춘문(建春文: 궁성 東門)·영추문(迎秋門: 궁성西門)·영제교永濟橋등이 있다. 전각과 행랑으로만 이루어졌던 창건 초기의 경복궁은 이때에 이르러 궁성의 궐문闕門을 갖춘 명실상부한 궁궐宮闕이 되었다. 이렇게 외곽을 마련한 세종 9년(1427) 경복궁은 정전 체재를 완비하였다.
  • 챈티클리어: 고품격 아이디어가 넘치는 유희의 정원
    챈티클리어(Chanticleer)는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서쪽으로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웨인(Wayne)이라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과거 펜실베이니아 철도의 본선과 인접한 마을들 중의 하나로, 필라델피아의 부호들이 도시를 벗어나 휴양을 하기 위해 목장과 숲을 소유하고 큰 별장들을 지었던 곳이다. 아직도 그 시절의 영화(榮華)가 남아 있는 듯 그림 같은 정원이 딸린 대저택들이 이어지는 한적한 도로를 따라 챈티클리어에 도착하면, 맨 먼저 나즈막하게 설치된 작은 간판과 높다란 철제문, 그리고 그 위로 세워진 수탉 모양의 조형물을 보게 된다. 언뜻 보기에 부근에 있는 다른 대저택들과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이곳은 사실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정원 중의 하나이다. 챈티클리어는 일반인에게 개방된 대중 정원이지만, 마치 구석구석 주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은 개인 정원처럼 색다른 느낌의 특별함으로 가득차 있다. 챈티클리어는 1913년 아돌프 로젠가르텐(Adolph G. Rosengarten) 부부의 별장 사유지로 처음 조성이 되었다. 로젠가르텐 가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제약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집안이었다. 아돌프와 그의 부인 크리스틴은 주변 부지와 집을 매입하고 새로 건축하여 아들인 아돌프 주니어 부부와 딸 에밀리 부부를 위한 결혼선물로 주었다. 로젠가르텐 가의 낭만이 가득했던 이 사유지가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은, 이곳에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아돌프 로젠가르텐 주니어가 죽고 난 다음이었다. 그는 챈티클리어가 대중을 위한 정원이 되어 즐거움과 교육의 장이 되길 원했고, 이를 위해 상당한 자산을 남겨 주었다. 아돌프 로젠가르텐 주니어(Adolph G. Rosengarten, Jr.)의 뜻에 따라 챈티클리어 재단이 설립되었고, 7명의 임원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꾸려진 후, 챈티클리어는 1993년 정식으로 세상에 문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 출신의 가드너 크리스 우즈(Chris Woods)가 챈티클리어의 첫 디렉터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 소통+장소, 조경(8)
    “우리가 보통 그리는 공정표와는 달리 관계(사람과 사람, 사람과 장소 등)는 순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순환적이고 상호 작용적이다. 그래서 관계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어떻게 과정을 이끌 것인지에 대한 디자인이, 액션 플랜이 필요하다.” 저번 호에서는 소통의 전략에 대해 소개하면서, 특히 ‘관계를 과정’으로 볼 것을 강조했다. 이번 호에서는 소통의 전략에 뒤이어 소통의 기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도구로서 안양 비산동에서의 한평공원 만들기 프로젝트 과정을 다루었다. 안양시 비산동 한평공원 대상지에서의 주민 참여 프로그램: ‘1안이 좋아요? 2안이 좋아요?’ 2011년 9월 3일 토요일 오후. 안양시 비산동 한 아파트 단지의 상가 입구에 책상과 패널을 폈다. 그리고 지나는 이들을 붙잡아 의견을 물었다. ‘1안이 좋아요? 2안이 좋아요?’ 물론 설계안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함께. 하지만 몇 분한테는 그들 스스로 두 개 설계안의 차이점을 알아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혹시 설명에 설명하는 이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1안이 좋으세요? 2안이 좋으세요?” 이렇게 상가 앞에서 지나는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는 동안 몇 명은 패널을 들고 상가를 돌았다. 보통 1인 상가라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인들을 위한 배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