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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장소,..조경(9)
소통의 참여자: 주인 노릇을 하는 이가 주인“간혹 ‘주민 참여 프로그램 운영’을 주민 참여로 오해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어떤 프로젝트의 경우 발주처는 ‘주민 20명 이상이 모이는 참여 프로그램 2회, 주민 설명회 2회’ 같이 사람 수와 횟수를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해관계자들 간의 공동의 이해 도달’은 너무 추상적이고 설계자들의 성실성을 확신할 수 없어서 그렇겠지만, 이런 경우 자칫 프로그램을 위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 대상지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서, 주민들을 고려해서 그리고 무엇에 대한 상호 이해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참여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이용해야 한다.” 저번 호에서는 소통의 기법으로서 ‘주민 참여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호에서는 ‘소통의 과정’에 누가 참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내용은 좀 늦은 감이 있다. 소통의 전략과 기법 이전에 논했어야 했다. 글 쓰는 이의 불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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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라펜트(lafent.com)주최: 제1회“조경의 길을 묻다”간담회
세대 간 소통의 장으로 발전시켜 나갈 터예비 조경인, 조경계 리더와의 만남한국에 조경학과가 개설된 지 내년으로 40년이 된다. 한국 조경은 미래지향적 가치와 비전을 선도하며 이론과 실무 양쪽에서 비약적인 성과를 거두어 왔다. 그러나 현재 전국 45개대학·대학원에서 배출되는 1,000여 명 이상의 예비 조경인들은 이러한 질적·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되풀이하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취업, 진학, 나아가 조경 분야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다. 이런 예비 조경인들에게도 행운과 같이 조경계 리더와의 만남이 주어졌다. 지난 8월 26일(금)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는 라펜트, 조경문화·녹색문화 주최로 제1회“조경의 길을 묻다”간담회가 열려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라펜트는 이번 간담회를 통해 예비 조경인들이 현재 각계각층에서 조경계를 이끌고 있는 리더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담백하고 실질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고 이들의 소통을 통해 향후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나아가 일회성 만남이 아닌 지속적인 소통의 장으로 발전시켜 조경분야 소통의 중심축 역할을 할 것을 밝혔다.이날 간담회에는 조세환 원장(한양대 도시대학원)의 사회로 김학범 교수(한경대), 박명권 대표((주)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오희영 상무(현대산업개발(주)), 최광빈 국장(서울시 푸른도시국), 한승호 회장(한설그린(주))이 조경계 리더로 참여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각 리더들은 학계, 업계(설계, 시공), 공기업을 대표하여 학교 교육과 사회 실무와의 관계, 문화재 조경분야로의 진출, 현시점에서 조경분야의 비전, 조경인의 건설사에서의 비중, 조경공무원 시험, 조경직 공무원의 위상과 매력, 우리 사회에서의 조경가의 위상 등을 허심탄회하게 전하였다.그리고 향후 조경에 대한 세분화된 주제를 가지고 세대간의 소통을 이어나갈 것을 약속했다. 제1회‘조경의 길을 묻다’간담회 동영상은 오는 10월 4일 라펜트 홈페이지 내에 공개되며 아카데미 및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홍보되어 많은 예비 조경인들의 관심을 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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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석 교수 AURI 특별 강연
한국 도시 설계엔 비평 문화가 없다네덜란드 와게닝겐Wageningen 대학의 고주석 교수(Oikos Design 대표)는‘Nature of Architectural Approach and Environmental Challenges of Korea: A call for ciritical self-reflection’을 주제로 지난 8월 11일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이하 AURI)에서 특별 강연을 갖고 한국의 비평 문화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고주석 교수는“도시 설계 및 도시 계획을 하는 사람들은 비평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비평이 없는 분야는 성장할 수 없다. 서로 간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있으나 학문의 발전에 있어서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의 도시 설계가들이 보다 더 비평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특히 스스로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것을 독려했다. “자기만의 틀에 갇혀서 반성과 자기 비판을 하지 않는다면, 검증되지 않는 모호한 이론들이 난무하게 된다. 이점을 연구원으로서 항상 주지해야 한다.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오휘영 교수(한양대 명예교수)와도 한국 조경 비평 활성화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고 밝혔다.고주석 교수는“세련된 건축 잡지에 실린 섹시한 건축물을 보고 사람들은‘좋다’라고 말하지만, 그 건축물들이 어떻게 좋은지 설명할 수 있는가?”라고 객석에 되물었다. 무조건 유명한 건축가나 전문가가 참여한 작품은 훌륭하다는 인식이 비판적이지 못한 사고로 이어지고 이 때문에 분야의 발전 기회까지 놓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비판적인 사고의 결핍 이외에도 도시 계획이나 건축에 관한 문제점을 바라보는 시각이 좁다는 부분도 지적했다. 단순히 분야 내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단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정치, 사회, 인문학적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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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Gyeongbokgung palace造營_경복궁은 태조 2년(1393) 2월 권중화 등이‘신도종묘사직궁전조시형세지도新都宗廟社稷宮殿朝市形勢地圖’를 왕에게 바치면서 시작되어 이후 새 도읍 한성을 건설하고 궁궐을 짓는 일을 담당하기 위하여 태조 3년 9월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중심으로 심덕부·김주 등이 여러 산사山寺승려들의 공역 및 경기·충청 지역 백성들의 부역에 힘입어 완성되었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경복궁은 완성된 궁궐이 아니었으며, 태종 4년(1404) 환도 준비의 일환으로 이궁離宮인 창덕궁이 창건되면서 경복궁을 대체하게 되었다. 그러나 태종 6년 이후 경복궁의 수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태종 11년에는 명당수를 금천으로 끌어들이고, 12년에는 중국 사신 영접을 위해 경회루를 세웠으며, 누각 둘레에 넓은 못을 파서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하였다. 태종이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기지 않은데 반하여, 세종은 3년이 되던 해부터 자주 경복궁에 이어하고, 기존 전각을 수리하는가 하면, 8년에는 집현전 문신들에게 궁궐 내의 문과 다리 이름을 명명하게 하였다. 이때 정해진 문의 이름은 홍례문弘禮門·광화문光化門· 일화문(日華門: 근정전 東廊夾門)·월화문(月華門: 근정전 西廊夾門)·건춘문(建春文: 궁성 東門)·영추문(迎秋門: 궁성西門)·영제교永濟橋등이 있다. 전각과 행랑으로만 이루어졌던 창건 초기의 경복궁은 이때에 이르러 궁성의 궐문闕門을 갖춘 명실상부한 궁궐宮闕이 되었다. 이렇게 외곽을 마련한 세종 9년(1427) 경복궁은 정전 체재를 완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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챈티클리어: 고품격 아이디어가 넘치는 유희의 정원
챈티클리어(Chanticleer)는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서쪽으로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웨인(Wayne)이라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과거 펜실베이니아 철도의 본선과 인접한 마을들 중의 하나로, 필라델피아의 부호들이 도시를 벗어나 휴양을 하기 위해 목장과 숲을 소유하고 큰 별장들을 지었던 곳이다. 아직도 그 시절의 영화(榮華)가 남아 있는 듯 그림 같은 정원이 딸린 대저택들이 이어지는 한적한 도로를 따라 챈티클리어에 도착하면, 맨 먼저 나즈막하게 설치된 작은 간판과 높다란 철제문, 그리고 그 위로 세워진 수탉 모양의 조형물을 보게 된다. 언뜻 보기에 부근에 있는 다른 대저택들과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이곳은 사실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정원 중의 하나이다. 챈티클리어는 일반인에게 개방된 대중 정원이지만, 마치 구석구석 주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은 개인 정원처럼 색다른 느낌의 특별함으로 가득차 있다.
챈티클리어는 1913년 아돌프 로젠가르텐(Adolph G. Rosengarten) 부부의 별장 사유지로 처음 조성이 되었다. 로젠가르텐 가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제약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집안이었다. 아돌프와 그의 부인 크리스틴은 주변 부지와 집을 매입하고 새로 건축하여 아들인 아돌프 주니어 부부와 딸 에밀리 부부를 위한 결혼선물로 주었다. 로젠가르텐 가의 낭만이 가득했던 이 사유지가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은, 이곳에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아돌프 로젠가르텐 주니어가 죽고 난 다음이었다. 그는 챈티클리어가 대중을 위한 정원이 되어 즐거움과 교육의 장이 되길 원했고, 이를 위해 상당한 자산을 남겨 주었다.
아돌프 로젠가르텐 주니어(Adolph G. Rosengarten, Jr.)의 뜻에 따라 챈티클리어 재단이 설립되었고, 7명의 임원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꾸려진 후, 챈티클리어는 1993년 정식으로 세상에 문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 출신의 가드너 크리스 우즈(Chris Woods)가 챈티클리어의 첫 디렉터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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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장소, 조경(8)
“우리가 보통 그리는 공정표와는 달리 관계(사람과 사람, 사람과 장소 등)는 순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순환적이고 상호 작용적이다. 그래서 관계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어떻게 과정을 이끌 것인지에 대한 디자인이, 액션 플랜이 필요하다.” 저번 호에서는 소통의 전략에 대해 소개하면서, 특히 ‘관계를 과정’으로 볼 것을 강조했다.
이번 호에서는 소통의 전략에 뒤이어 소통의 기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도구로서 안양 비산동에서의 한평공원 만들기 프로젝트 과정을 다루었다.
안양시 비산동 한평공원 대상지에서의 주민 참여 프로그램: ‘1안이 좋아요? 2안이 좋아요?’
2011년 9월 3일 토요일 오후. 안양시 비산동 한 아파트 단지의 상가 입구에 책상과 패널을 폈다. 그리고 지나는 이들을 붙잡아 의견을 물었다. ‘1안이 좋아요? 2안이 좋아요?’ 물론 설계안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함께. 하지만 몇 분한테는 그들 스스로 두 개 설계안의 차이점을 알아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혹시 설명에 설명하는 이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1안이 좋으세요? 2안이 좋으세요?” 이렇게 상가 앞에서 지나는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는 동안 몇 명은 패널을 들고 상가를 돌았다. 보통 1인 상가라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인들을 위한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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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베시 방재 공원 견학기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규모 7의 지진이 일본 고베시에 일어났다. 지진은 고베의 도심부를 강타했다. 일본이 내진 설계를 의무화한 건축기준법을 1982년에 개정하였으므로 그 이전에 건설된 병원, 철도 역사, 주택 등은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노후화한 목조 주택지에서 발생한 화재 등으로 고베시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총 사망자 6,434명 부상자 4만 3,792명. 당시로서는 관동대지진 이후 도시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었으며 피해 규모 역시 가장 컸다. 이후 고베시는 도시구획정리사업과 도시재건사업을 하면서 공원의 방재 기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이런 방재 기능이 반영된 공원들을 실제로 보기 위해 일본 고베시의 방재 공원을 답사하였다. 이번 답사는 부산발전연구원에서 지원하는 학연 과제인 ‘부산시 도시공원의 방재력 평가와 방재 공원의 계획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본 연구에 참가하고 있는 도창희 소장(영남지역발전연구원), 윤성융 소장(서호이엔지)이 답사에 함께 하였고, 일본에서 같이 공부했던 대학원 동기생이자 고베시 공원과장인 지인의 친절한 안내로 2박 3일간 이루어졌다. 이번 고베지역 방재 공원 답사를 통해 방재 공원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실무자의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비록 나라는 틀리지만 실제 실무에서 공원을 계획, 설계를 하는 설계자의 시선이 함께 어울려져 다양한 토론과 더불어 한국의 공원에 적용 방안에 대해서 포괄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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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반론
「건축가들에 ‘한국 대표 건축’ 물어보니」에 대한 반론얼마 전 조선일보에 실린 「건축가들에 ‘한국 대표 건축’ 물어보니」라는 기사를 보고, 직접 설계를 참여했던 조경인의 한 사람으로서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계‘천’, 선유도‘공원’, 광화문‘광장’ 등의 오픈스페이스가 어떻게 하나의 ‘건축물’로 평가받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공공 공간 조성에 있어서 건축 분야가 참여할 수는 있지만, 건축가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이는 사실도 아니지만) 공간 자체의 의미를 폄훼해서는 안 되며, 그동안 도시 경관에 있어서 서울을 정체성을 잃은 도시로 만든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로서는 좀 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건축가가 하지 않은 외부 공간의 디자인을 건축가가 한 것처럼 이야기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공공 공간의 디자인을 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건축가가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디자인이 건축은 아니지 않은가. 도시 공공 공간의 설계에 건축가가 꼭 참여해야 하고 그래야만 좋은 작품이 된다는 것은 지나친 건축만능 내지는 건축제일주의적 사고이며, 특정 부문의 전문가만이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성과들은 조경은 물론 건축, 도시 설계, 단지 및 도시 계획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힘을 합쳐, 이른바 융합을 통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기사에서는 왜곡 사항 또한 확인할 수 있는데, ‘베스트’로 손꼽힌 선유도‘공원’에 대한 보도 중 「조성룡 씨가 설계하고 정영선 씨가 조경을 맡았다」는 문구가 바로 그렇다. 실제로 선유도공원은 조경설계서안(대표 정영선)이 총괄 및 마스터플랜을 진행하였으며, 조성룡 씨가 설계한 것은 선유도공원이 아니라 공원에 배치된 일부 ‘건축물(전시관, 까페 등)’이었다. ASLA 미국조경가협회 및 IFLA 국제조경가협회에서 수상한 바 있는 선유도공원의 설계자에 대한 잘못된 정보는 최근 중국이 아리랑, 판소리 등을 자국의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어이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워스트’라 한 광화문‘광장’ 및 청계‘천’의 비평 논거인 “한국을 상징하는 공공 건축물인데 건축가도 없이 단기간에 불도저로 밀어붙이듯 만들었다”는 주장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시민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후 1단계 아이디어 현상, 2단계 설계시공일괄입찰(턴키)로 추진되었던 프로젝트로서 시민위원회 운영 및 각종자문회의 등의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이 있었으며, 다수의 건축설계사무소 및 건축가들의 참여가 있었다. 각 전문가마다 디자인은 다를 수 있겠지만, 함께 공유하였던 기본 방향은 국가상징축의 ‘원형 복원과 재현’이었다. 광화문 광장 설계는 6가지 시선에서 출발하였다. 국가의 상징축인 북악산-정궁-황토현-연주대 축의 회복, 월대, 해태상의 복원, 육조거리 축, 황토현 재현, 과거 물길 드러내기(Mordenize) 등을 통해 형성된 광장의 물리적 환경은 우리 정체성 회복의 시작이다. 기억 속 육조거리 흔적의 되살림, 식민 시대에 왜곡되어 틀어지고 가려졌던 북악산, 경복궁 축의 회복이 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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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Village, 고한 사북에 돋는 희망
고한 사북을 가다가끔 있는 일이 아니라 항상 상존하고 있는 일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일상화된 광촌에는 마치 하루살이라도 하듯, 날마다 갱도를 들어가기 전 무사를 기원하는 광부들과 무탈하게 귀가하길 바라는 아내와 자식들의 간절함이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과거 탄광 마을이었던 고한 사북은 한국의 근현대사가 압축되어 역사적 자산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지금은 카지노와 리조트 관광 산업이 지역을 대변하고 있지만, 탄광 마을이라는 강렬한 역사적 기억이 혼재되면서 조금 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전당포, 카지노 개장을 기다리며 지친 몸을 달래는 타지인들의 모텔들, 강남 못지않은 물가의 식당들을 보면,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넘어 지역의 정체성을 개선해 줄 뭔가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쉽게 체감하게 된다.
고한 사북을 예술 마을로고한 사북은 폐광 이후 주민들의 노력으로 강원랜드 카지노를 유치하면서 지역의 살 길은 마련했지만, 도시의 난개발과 지역 공동체의 해체 등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트 인 빌리지(Art in Village)는 이러한 고한과 사북 지역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문화 예술을 통한 지역 재생 프로젝트’로서, 주민 생활 공간에 밀착된 예술 작업으로 지역 재생 및 삶의 질을 제고하고자 시작되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며 ‘지역 재생의 가능성을 주민들과 함께 찾아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기존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 보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해 진화시키고자 하며, 지역의 자연적, 문화적 자산에 예술의 향기를 더하여 “예술 마을”이라는 제 3의 이미지를 중장기적으로 조성함으로써 지역의 자생적 재생을 촉발하고자 한다.2009년 사업 기획 및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시범 사업을 진행한 이래, 지난 해에는 미술 작품 중심으로 첫 사업이 이루어졌으나, 작품 설치 이후 ‘과연 주민들의 일상에 무엇을 남겼는가’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는 주민들의 일상과 어우러지는 ‘공간’과 ‘장소성’에 바탕을 둔 작업이 진행되었다.
2011 Art in Village올해 Art in Village 프로젝트는 사북의 동원탄좌와 고한의 야생화 테마파크 등지에서 진행되었다.1963년 설립되었던 동원탄좌는 한때 국내 최대의 민영탄전으로서 고한 사북 지역 경제의 중심이었다. 1990년대부터 석탄 산업의 몰락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걷다가 2004년 문을 닫게 되었으며, 지금은 사북석탄유물보존위원회가 설립되어 매년 석탄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건물은 과거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현재 2층에서는 당시 광부들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 건물 앞 마당에 ‘사북 장화물놀이 광장’, ‘개비언’, ‘카페’ 등의 작품이 설치되었다.
고한은 만향재, 함백산 등 백두대간의 주요한 지리적 지형적 생태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지역으로 폐광 이후의 산업적 기반으로서 ‘야생화 테마파크’ 를 조성하고 있다. 과거의 마을은 ‘소멸해가는 것’, ‘무생물과 무채색(석탄)’ 등의 요소가 정체성을 형성했다면, 앞으로의 고한은 ‘태어나는 것’, ‘자라는 것’ 등의 생명과 성장의 이미지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갈 것이다. 이번에 고한의 야생화 테마파크에는 ‘야생화 도감 테라스’, ‘아트 벤치’, ‘마켓 트리’ 등의 작품이 설치되었다.
․주최 _ 하이원리조트․주관 _ 한국 메세나 협의회․총괄 기획 _ 유석연(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건축가)․프로젝트 매니저 _ 장동선 공공문화예술 A21 PUBLIC CULTURE & ART 사무국자료제공_ 김아연 교수|사진_ 박상백, 김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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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경기전
Jeonju Gyeonggijeon경기전은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102번지에 위치하며, 태종 10년(1410)에 왕실의 관향인 완산부에서 태조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옛 향교 자리에 창건한 제사 유적으로, 영조 47년(1771)에 창건한 조경묘와 연계하여 왕조의 정통성 부여와 왕권 강화를 위한 사회적 구심적 역할을 하였다. 현재 49,590㎡(15,027여 평)일원에 정전, 내신문, 외신문, 전주서고, 예종대왕 태실 및 비, 조경묘 등에서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91년 1월 9일 사적 제33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