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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조경인 첫 해외봉사활동 성공적 성과(2)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의 ‘희망놀이터’ 현장을 찾았을 때, 놀이터는 태극모양의 형태를 갖추고 있을 뿐, 메콩강변의 바람이 몰아치는 텅 빈 공간이었다. 이 빈 터에 어린이 놀이시설물을 설치했던 과정은 지난 11월호에 자세히 전달했기 때문에, 이번 12월호에서는 현장체험을 통한 개인적인 견해와 앞으로 우리가 나눔과 기부를 통해 수행할 수 있는 과제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내용을 기초로 하여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라오스 희망놀이터 기부사업의 성과보람으로 다가온 일: 희망놀이터 기부사업라오스는 미지의 국가였다. 어린이 놀이터 기부사업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 막연하게 그려지는 제3세계, 빈곤국이었고, 그 곳에서 행할 우리들의 일과 그 결과를 구체적으로 그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일이 아닌, 어린이들을 위한 일이기에 변금옥 여성분과위원장이 추진한 놀이터조성 기부사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올해 초부터 모 신문사에서 ‘희망나누기 대행진’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었다. 그 기사를 대하면서 흔히 알고 있는 물질적인 기부만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일 또는 재능 등에 대하여 숙고를 하곤 했었다. 우리 주변의 환경, 물리환경(physical environment)의 조성과 개선을 위한 일이 조경분야의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지닌 능력으로 또 다른 형태의 기부사업에 동참하는 것은 삶에 보람을 안겨 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올해 참여했었던 일이 도시연대에서 이끄는 ‘한평공원 만들기 사업’이다. 크게 기여를 하지는 못했으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뜻을 같이 할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기에 희망놀이터 기부사업에도 긍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조경사회 여성분과위원회에서 주관하는 ‘희망놀이터 기부사업’은 놀이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어린이들의 놀이환경과 접하는 것은 내게 고향어귀에 들어서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순수함과 열정으로 학업에 임했던 대학원시절을 떠올리며 환경의 나눔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 당시 졸업논문 주제를 정하는 데는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그들의 해맑음이 더욱 환하게 비쳐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밝고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이 건전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함께 했었다. 놀이환경은 단순한 놀이시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키워낼 수 있는 공간이고 내가 그러한 공간을 만드는데 작은 모퉁이돌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자부심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순수하고 진솔한 자세로 학문의 세계에 접했던 시간을 떠올리면서 어린이놀이공간을 조성하는 현장에 함께 하는 일은 보람된 일이 되리라 생각했다. 더욱이 놀이환경이 열악한 제 3세계에서 우리 전공분야와 접목된 일을 하는 것, 조경인의 힘이 모아져 지속적으로 기부사업이 이어지기를 희망하는 글을 써서 다른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으면 했다. 기부사업에 대한 나의 이러한 기대와 바람은 라오스의 희망놀이터 조성 현장을 지켜보면서 증폭되었다. 현장학습의 결과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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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두 고택
일두 고택은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262-1에 위치하며, 조선 성종 때의 대학자인 정여창(鄭汝昌) 사후(死後)인 1570년대에 후손들이 중건한 것으로, 약 10,000㎡ 의 집터에 솟을대문, 문간채, 사랑채, 안사랑채, 바깥곳간채, 사당, 석가산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지정 당시에는 가옥 소유자의 이름을 따라 함양 정병호 가옥(咸陽 鄭炳鎬 家屋)이라 하였으나, 이 가옥이 일두 정여창의 생거지에 중건한 것임을 반영하여, 2007년 1월 그의 호를 따라 “함양 일두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하였다. 1984년 1월 10일 중요민속자료 제186호로 지정되었다.
Ildu old houseIldu old house which is located in 262-1, Gaepyeong-ri, Jigokmyeon, Hamyang-gun, Gyeongsangnam-do is 10,000㎡ area. It was a house of Jeong Yeo-Chang, a great scholar, in the King Seongjong’s reign and the present house was reconstructed by his descendants in 1570. Its first name was Jeong Byeong-Ho’s house according to the owner’s name but the name was changed in January, 2007 according to Jeong Yeo-Chang’s pen name because the site was his live branch. The aesthetics of adap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with Anchae, Sarangche, Gamyo and the artificial hill. It was appointed as Important Folk Material no.186 in 10th, January,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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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조경인 첫 해외봉사활동 성공적 성과(1)
라오스 ‘희망놀이터’기부사업여성조경인들의 구심점 ‘LAWN’(사)한국조경사회에는 여성조경인들의 모임인 여성분과위원회가 있으며, 이 분과위원회에서는 변금옥 위원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성분과위원회는 오래전부터 의미 있는 사업의 진행을 논의해 오던 중, LAWN(Landscape Architects Women’s Network : 점차 증가하고 있는 여성조경가들의 사회활동을 위해 네트워크를 형성, 서로간 힘이 되는 정보의 공유를 위해 결성된 소모임)을 중심으로 획기적인 사업을 기획, 추진하게 되었다. 즉, '우리들이 지닌 능력으로 보다 보람있는 일을 실행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높인다.’는 취지와 함께 라오스에 어린이놀이터를 조성, 기부하는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채선엽 한국조경사회 부회장과 변금옥 여성분과위원장 등이 참여했던 지난 7월 5일 LAWN의 모임에서 이 사업의 시행여부를 결정하였고, 놀이시설물 업체의 기증과 여성분과의 모금,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재원마련 등에 대한 논의와 함께 자발적인 기금 출현이 이루어졌다. 놀이터의 이름은 ‘희망놀이터’로 명명했다.
두 여성조경가의 의기투합‘메콩강변 종합개발사업’의 조경설계를 담당했던 (주)이산의 변금옥 전무와 박기숙 이사는 공원 내에 어린이 놀이시설물이 유명무실하게 되자 무척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한 달 이상 현지에서 진행된 현장조사와 자료수집 과정 중에 알게 된 라오스의 현실 때문이었다. 라오스의 공식명칭은 라오 인민민주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다. 국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은 사회주의 체제의 나라로서 인구는 약 670만 정도이며,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는 약 53만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이곳 현지인들의 평균수명이 약 56세 정도라고 하니 삶의 질에 있어서 우리와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영아사망률 또한 높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 놀이 환경도 매우 열악하다. 라오스 내에서 비교적 시설이 좋다고 하는 국제학교에도 그네와 시소 등 단순 놀이시설 몇 개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변금옥, 박기숙 두 여성조경가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창의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놀이환경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이러한 노력이 반영되지 못하고 유명무실하게 되자 아쉬움이 컸다. 라오스의 어린이 놀이 환경 개선에 일조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사라지자 어린이를 보듬는 마음으로 색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우리가 만들 수는 없을까?”현재 놀이터 기부사업의 부단장을 맡고 있는 (주)이산의 변금옥 전무는 다년간 여성분과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여성회원들이 함께 힘을 모아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추진할 방안을 찾고 있었다. 기부사업은 기부금을 모은 후에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으나, 우연한 기회가 또 다른 좋은 계기를 부여할 수도 있다. 메콩강변의 ‘희망놀이터 기부사업’은 후자로 여겨진다. 사라질 위기에 있는 놀이터 되살리기 작업을 위해 추진력 있는 두 여성조경가는 ‘희망놀이터 기부사업’을 신속하고도 과감하게 기획하여, 여성분과위원회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 오늘의 성과를 이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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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주민 참여로 완성한 도시 내 공공정원, 새로운 도시 정원 문화를 꿈꾸다
점점 척박해져가는 도시 환경 속에서 녹지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이때, 오랜 인류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 자연을 보다 가까이 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 함축된 정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비록 작긴 하지만 아파트 베란다 한켠에 꾸며 놓은 소박한 정원이 바로 그러한 예. 이렇듯 메마른 도시의 일상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정원이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된 곳이 있다. 바로 지난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경기도 시흥시 옥구공원에서 개최된 “2010 경기정원문화박람회” 현장이다.경기도와 시흥시가 주최하고 경기농림진흥재단이 주관한 이번 박람회는 ‘도시, 정원을 꿈꾸다’란 주제로 다양한 정원들이 선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경기정원문화박람회는 도시 정원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국내 최초의 시민참여형 공원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 일례로 행사 이후 모든 시설물이 철거되는 여타 박람회와 달리 행사를 위해 가꾼 정원과 시설물을 그대로 존치시켜 공원의 인프라로 활용하고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점이 그러하다.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정원박람회가 아닌 ‘정원문화박람회’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도 일회성 정원 축제가 아닌 새로운 도시정원 문화를 제시하고 확산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도시 정원문화’를 표방한 경기정원문화박람회의 특징은 ‘주민참여로 완성된공공정원’, ‘기업의 나눔문화 실천의 장’, ‘지역 축제를 통한 공원 리모델링’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 중 첫 번째 주민참여는 이번 박람회의 핵심가치. 공원 안에 시민들이 직접 정원을 디자인하고 디딤돌을 놓으며 꽃과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가꿈으로써 낙후된 공원이 더 이상 주인 없이 방치된 공간이 아닌 도시의 공공 정원으로, 또한 시민 모두가 애착을 갖는 공공 공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둘째는 주민참여 방안의 하나로 기업들의 자발적인 나눔문화의 실천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기부문화가 크게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이나 지역 업체들이 공원에 정원을 조성하여 기부한 점은 앞으로 공공 정원의 조성 활성화에 있어서 모범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이번 박람회를 통해 도시의 중요한 그린 인프라인 공원이 리모델링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브랜드 가치 상승 및 재생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점이다. 이번 박람회 개최지인 시흥시 옥구공원은 1999년 공공근로로 완성된 뜻깊은 공간이지만 완공 이후 여러 해가 지나면서 시설이 낙후되어 시민들이 애착을 갖고 이용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점이 있었다. 또한 그동안 시화호와 시화산업단지로 인해 열악한 환경의 대명사로 꼽히던 시흥시는 시 전체 면적의 70% 이상이 개발제한구역(Green Belt)으로 묶여 있어 상대적 개발 지연이라는 불편을 겪어 왔으나 이번 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친환경 생태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높은 지가와 대상지의 부족으로 도심 내 신규 공원 조성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원 조성을 통한 옥구공원의 리모델링 사례는 다른 지자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새롭게 단장된 공원 내에는 국내 최초의 정원박람회인 만큼 국내 최고의 조경 전문가들이 참여한 ‘모델정원’, 조경 관련학과 대학생 및 교수들의 자유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인‘실험정원’, 시민들이 직접 자신이 가꾸고픈 정원을 선보인‘시민정원’, 정원문화 확산에 기여하고자 기업들이 나눔문화를 실천한 ‘참여정원’ 등 다양한 유형을 총망라한 정원들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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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
Geoncheonggung건청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경복궁 내 위치하며, 면적은 3,300㎡로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이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궁집으로, 구한말 신문화를 적용한 장소이자, 명성황후 시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의 무대였으며, 한국근대사를 이해하는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현재 경내와 그 주변에는 장안당, 추수부용루, 곤녕합, 옥호루, 사시향루, 집옥재, 향원정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造營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내 위치한 건청궁은 구한말 신문화를 적용한 장소이자, 명성황후 시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의 무대였으며, 한국근대사를 이해하는 역사적 상징성이 매우 크다. 실제 고종 10년(1873) 경복궁 중건을 마무리하면서 국가 재정이 아닌 내탕금(왕의 사비)을 들여 궁궐 안의 가장 깊숙한 곳에 또 하나의 “궁”을 짓기 시작하였다. 고종은 1884년부터 이곳에서 기거하면서 정무를 처리하였다. 또한 고종이 인근에 서재 용도로 지은 집옥재(集玉齎)는 전통 한옥이 아닌 중국식 벽돌로 지어졌으며, 집옥재 옆에는 전통 시계인 자격루 대신 서양식 시계탑이 세워졌다. 또한 건청궁 내 장안당 뒤쪽의 관문각은 외국 외교관들을 접대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는데, 완전한 서양식 건물로 지어져 양관(洋官)이라고도 불렀다. 이후 1887년에는 건청궁 내 조선 최초로 전등이 설치되었는데, 이는 중국이나 일본의 궁정 설비보다 2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이처럼 건청궁은 신문물을 수용하여 근대화를 도모한 산실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의 근대화 의지가 외세에 의하여 꺾인 곳이기도 하다. 특히 고종은 아관파천 후 건청궁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주인을 잃은 건청궁은 1909년 완전히 멸실되었다. 이후 1939년에는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다. 광복 후 건청궁 자리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세워졌고, 동쪽에 명성황후가 난을 당한 곳이라는 뜻의 ‘명성황후조난지지(明成皇后遭難之地)’라는 표석과 함께 당시의 참상을 그린 기록화가 전시되어 있다가 경복궁 장기복원사업에 따라 2007년 10월 20일 복원이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Geoncheonggung which is located in the back yard of Gyeongbok Palace is 3,300㎡. It is King Gojong’, the 26th ruler of Joseon dynasty, private palace that he expressed the will of political independence from his father, Heungseon Daewongun. It was broken by Japan in 1896 after that, it was reconstructed in 2007 as the present. The aesthetic of adap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with Jangandang, Chusubuyongru, Gonnyeonghap, Okhoru, Sasihyangru, Jibokjae and Hyangwon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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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Unhyeongung운현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 114-10에 위치하며, 면적은 9,413㎡으로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이자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한국근대사의 유적 중에서 대원군의 정치활동 근거지로서 유서가 깊은 궁집宮家이다. 현재 경내에는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수직사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77년 11월 22일 사적 257호로 지정되었다.
造營_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1은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이자2 흥선대원군의 사저로3, 한국근대사의 유적 중에서 대원군의 정치활동의 근거지로서 유서 깊은 곳으로 역사적 상징성이 크다.4 운현궁 일원의 최초 조영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종이 즉위한 해인 1863년 12월 9일 운현궁으로 승격되었으며, 1864년 1월 7일 조대비의 하교 하에 1만 7,830냥의 지원금으로 대대적인 신축과 보수가 이루어 졌다. 실제 1864년 3월 13일 노락당이, 1864년 3월 23일 노안당이 상량되었으며, 사당이 있는 동북측 영역은 1864년 6월 이전에 완성되었고, 경근문敬覲門, 공근문恭覲門도 이 시기에 조영되었다. 또한 이 기간에 고종이 어렸을 때 오르던 소나무에 정이품의 벼슬이 내려졌다. 또한 1866년 3월 21일에는 고종과 명성왕후의 가례를 운현궁에서 치루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 기간 이전에 가례와 관련된 건물과 정원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혼례가 끝나고 고종과 명성왕후가 자주 들러 노락당에 거처함에 따라 별도의 안채가 필요하게 되어 1869년 이로당이 상량되었고, 북측 영역에 북정을 없애고 영로당, 관사 등이 조성되었다. 또한 1886년 손자 이준용이 문과에 급제하면서 현재의 양관자리에 송정사랑을 건립하였다. 양관의 경우 조영시기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이준용이 귀국하여 가세를 회복하였다
각주1. 흥선군의 사저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63년 12월 9일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부인 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진 때부터였다. 고종이 12살까지 살았던 운현궁은 철종 때 옛 관상감 터였던 운현궁에 왕기가 있다는 내용의 민요가 항간에 유행하였으며, 고종이 등극한 후 대원군이 운현궁 터를 다시 확장하였다. 운현(雲峴)이란 당시 서운관(書雲觀)이 있는 그 앞의 고개 이름이었으며,서운관은 세조 때 관상감(觀象監)으로 개칭되었으나 별호로 그대로 통용되었다.2. 고종의 잠저는 당시 대왕대비 교지를 받들어 영의정 김좌근, 도승지 민치상, 기사관 박해철·김병익 등 일행이 명복(明福-고종의 이름)에게 익종의 대통을 계승토록 하기 위하여 고종을 맞이하러 최상급의 가마행렬을 갖추어 관현(觀峴)의 흥선군 사저에 갔을 때 흥선군의 위엄 있는 자세와 그의 둘째 아들인 명복의 천진스러웠던 모습에 대한 사실적 묘사에서 운현궁이 고종의 잠저였음을알 수 있다.3. 흥선대원군은 순조 20년(1820년)에 출생하여 고종 17년(1880년)에 왕실 가례소로서 건립한, 이른바 안동별궁(安東別宮)이 들어선 터에 있었던 궁집에서 성장하다가 정확한 일시는 알 수 없지만 정선방(貞善坊) 운현(雲峴)으로 이사하였다. 대원군 후손이 보존하던 현종이 내린 교지에는 1845년에 헌종이 현종(顯宗)릉을 지키는 수릉관인 흥선군 이하응(李昰應)에게 특별히 밭 50결(16만 3천7백 50평)과 노비 여섯 사람을 상으로 내렸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4. 현재까지 운현궁에 관한 연구는 건축학분야가 주를 이루고 있는바, 구체적으로 서울특별시(1993), 신영훈(1998), 주남철(2001), 황진하(2001), 문화재청(2002), 배한선(2003), 박광제(2003), 강옥희(2007), 서울역사박물관(2008) 등이 있다. 단행본으로는 서울특별시(1993)가 운현궁에 대한 고문헌의 정리와 실측조사를 실시하였고, 류시원(1996)은 운현궁의 인물, 유물, 건물, 외부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자료를 제시하였고, 신영훈(1998), 주남철(2001)은 건축물에 대한 건축학적 해석을 제시하였으며, 문화재청(2002)은 서울특별시(1993)보다 더 많은 자료로 고문헌의 정리와 양관 실측조사를 실시하였고, 박광제(2003)는 운현궁의 입지와 공간구성을 분석하였고,서울역사박물관(2008)은 운현궁에 관한 인물, 건축물, 생활용품, 점경물 등을 정리 및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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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
Yeongyeongdang造營_ 연경당은 순조 28년(1828) 왕세자인 익종1의 청으로 사대부의 생활을 경험하고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창덕궁의 후원인 금원禁苑내에 건립된 것으로, 연경당의 조영연대를 기록한 문헌으로는 한경지략漢京識略, 궁궐지宮闕志그리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를 들 수 있는데, 한경지략에서는“연경당을 창건한 자조子朝27년은 순조 27년인 정해년丁亥年이며, 창건자는 섭정하는 왕세자인 소조小朝(후일 익종으로 추존) 였으며, 대조大朝인 순조가당호를 연경演慶이라 이름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궁궐지와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연경당이 진장각珍藏閣옛터에 후일 익종으로 추존된 왕세자가 세자시절인 순조 28년에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건축의도에 있어 당시 규범적인 궁집宮家모습을 궁궐 안에 재현함으로써 궁궐 밖 민간생활을 알고자 한 것으로 판단되는 바, 이는 연경당이 당시의 궁집과 사대부의 모습과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2, 서울의 팔대가의 하나였던 경운동의 부마도위駙馬都尉, 박영효의 초기 제택第宅3 이었던 이진승가李珍承家나, 관훈동의 민덕기가閔德基家(竹洞宮), 경운동의 민병도가閔炳道家등과 전체적인 구성이 유사하며, 특히 민병도가와는 안채와 사랑채가 하나의 채로 연속되어 건립된 점이 같다.
1. 익종은 순조 9년에 태어나 순조 27년 왕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다가 순조 30년(1830)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아들이 헌종으로 즉위하자 왕으로 추종되어 익종으로 종묘에 봉향되었다.2. 연경당은 안채, 사랑채, 안행랑채, 바깥 행랑채, 서재인 선향재, 반빗간, 농수정이라는 이름의 정자 등 여러 채(건물), 그리고 그것들과 각각 짝을 이루는 마당으로 구성되었으나, 궁궐 내에 위치한 이유로 인해 일반 사대부집과 달리 사당이 없으며, 안채의 부엌이 없는 대신 음식을 준비하고 빨래와 바느질 등 집안 안살림을 하는 반빗간이 별채로 있다.3. 민가 중 공경대부의 집과 대군이나, 공주의 집인 궁집을 민가와 구별하여 제택(第宅)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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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조경사회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전통 새기는 뜻 깊은 행사, 미래비전 선포로 역동적 의미담아1980년 6월 21일 한국일보사 13층에서 (사)한국조경사회(회장 김경윤, 이하 조경사회)의 전신인‘한국조경사협회’의 창립식이 개최되었다. 조경기술사(기사)를 포함한 65명의 전문인력이 참여해, 조경업계의 권익증진과 분야발전을 향해 깃발을 들었던 때다.토목과 건축 등 인접분야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꿋꿋이 일구어 온 조경산업의 역사가 바로 한국조경사회의 지나온 30년과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 조경산업의 태동부터 미래 청사진까지 그려보는 자리인 까닭에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 거는 조경분야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지난 6월 16일(수)부터 6월 20일(일)까지 삼성동 COEX에서 개최되었던 한국조경사회의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5일간의 기록을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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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서원
Jaun Seowon자운서원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 5-1에 위치하며, 면적은 5,590㎡으로 광해군 7년(1615) 건립된 이후, 문성사文成祠를 중심으로 선성先聖과 선현에 대한 봉사의 기능을 수행함과 더불어 강인당講仁堂을 중심으로 인재의 양성과 교화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던 곳으로, 문성사, 강인당, 동재, 서재, 묘정비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73년 7월 10일 경기도 기념물 제45호로 지정되었다.
造營_ 자운서원은 광해군 7년(1615) 율곡 이이李珥(1536~1584)1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 하기 위해 김장생 등이 중심이 되어 파주 호명산虎鳴山아래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후 자운산 아래로 터를 옮겨 효종 1년(1650)에“자운紫雲”이라는 사액을 받았고, 숙종 30년(1713) 사계沙溪김장생金長生(1548~1631)과 현석玄石박세채朴世采(1631~1695)를 추가배향한 후, 선현배향 및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2.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율곡을 모신 서원으로 황해도 백천白川의 문회서원文會書院이 지정됨으로써, 자운서원은 훼철되었고 그 위폐를 매안埋安하고, 서원 터에 단을 만들어 향사를 지내왔다. 이후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0년 사당이 있는 제향공간이 중건되었다. 이후 1972년 이이와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을 기리기 위해 성역화 하였으며, 2000년 3월부터 2001년 4월까지 강인당, 동재, 서재 외삼문 일곽의 강학공간이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래 매년 음력 8월 중정일中丁日에 제사를 드렸으나, 1996년부터는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율곡문화제 때 제향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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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관주의, 새로운 경관 패러다임
최근 “경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향상됨에 따라 전문가 집단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경관”은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런 흐름 속에 조경, 건축, 도시, 공공디자인 등의 분야에서도 경관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날로 깊어지고 있는 추세다. 최근의 경관에 대한 조명은 과거 심미적 측면에 집중했던 양상과 달리 삶의 장소라는 측면에서 보다 통합적이고 확장된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이런 시류에 따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는 지난 5월 20일 “신경관주의 국제심포지엄”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조경, 도시, 건축, 경관, 공공디자인 등 다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새로운 경관 패러다임에 대하여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으로서, 이를 통해 분야 간 이질적이었던 “경관”의 개념이나 정의를 통일하는데 한층 다가섰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김대수 교수(혜천대)의 사회로 시작된 심포지엄은 “신경관주의의 대두”에 관한 기조연설, “신경관주의의 환경설계분야별 전개양상”에 관한 주제발표, 융합환경설계에 관한 종합토론 순으로 진행되었다.
한국·미국·중국·일본의 “신경관주의의 대두”경관을 키워드로 한 각 나라의 신경관주의의 행태를 발표한 1세션에서는 나라별 특색을 드러냈다.Niall Kirkwood 교수(미국 하버드 GSD)는 신경관주의는 생태, 어바니즘, 공공위생, 전통문화 등의 모든 것들과 관계지어야 한다고 말하며, 신경관주의가 생태적 잠재력을 얼마나 더 가치 있게 만들 수 있고 또 도시를 얼마나 더 경쟁력 있게 만들 수 있는지 사례를 들며 설명했다. 또한 거대한 신도시들이 현재 가진 장점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도시의 환경과 문화를 점차 발전시킬 수 있는 “신경관주의”의 정신을 도시 발전의 토대로 삼을 것을 강조했다. 이어 임승빈 교수(서울대)는 2000년대 이후 경관에 대한 사회적 의식의 증대와 2007년 경관법 제정 그리고 환경에 대한 관심에 따라 경관 관련 사업이 증가하는 추세이며, 이제 경관은 인간의 환경을 구성하는 그린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미적 측면과 생태적측면을 포괄하는 “신경관주의”는 21세기에 다가오는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경관주의의 환경설계분야별 전개양상류중석 교수(중앙대)는 한국의 도시가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질서 없는 도시경관을 형성해온데 이어 신도시 건설과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해 도시경관이 변화해왔다고 설명했다. 이후 건설기술의 발전에 따라 초고층 건축물이 도시에 들어섰고 이제 공공디자인이 도입되며 건축물 파사드, 거리 등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도시가로경관이 달라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앞으로 각 도시들은 다양한 도시의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또 유비쿼터스 등의 첨단기술을 활용한 도시들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도시경관을 위해 인접 학문간 어떻게 협조할 것이며, 첨단 기술이 도시에 가져올 가능성과 문제점을 되짚어볼 시기라고도 덧붙여 설명했다.배정한 교수(서울대)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과 동시대 한국 조경의 신경관주의”의 발표를 통해 현 경관법이나 경관계획의 내용은 주로 시각적 효과에만 치중한 면이 적지 않다고 말하며, 현재 진정한 “경관”을 통합할 수 있는 관점이 보완되어야만 장식적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신경관주의”의 조경은 화장술을 극복할 것, 환경·사회·공공성을 지향할 것, 경관의 프로세스는 도시의 작동과 미학적 국면을 함께 아우를 것, 다분야의 통섭을 이끌 것 등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