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FPRA 한국위원회 창립총회 및 국제 심포지엄
‘국제공원 및 레크리에이션 행정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Park and Recreation Administration) 한국위원회(IFPRA Korea)’의 창립총회 및 국제 심포지엄이 지난 2월 26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되었다. IFPRA는 “공원, 레크리에이션, 어메니티, 여가 대책과 관련되는 서비스의 진흥을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 촉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공원의 경영과 관리 분야에 대한 국제 조직으로서, 한국위원회는 지난 1월 27일 개인 85명, 지방자치단체 5곳, 기업 및 단체 18개, 언론사 5개가 참여한 가운데 발기인대회를 갖은바 있으며, 이번 창립총회를 계기로 공식 출범하게 되었다.이 자리에는 조세환 회장((사)한국조경학회), 김영수 공동대표(녹색건축청색도시시민디자인연대, 이하 녹청련), 최광빈 국장(서울시 푸른도시국), 홍기문 처장(LH공사 녹색경관처) 등 국내 인사를 비롯해 IFPRA의 Rob Small 회장, Alan Smith 사무국장, Yoritaka Tashiro 일본 커미셔너, Paul Wilson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 등 주요 인사가 직접 방한해 참석함으로써 IFPRA 한국위원회의 출범을 격려하고 축하해 주었다.전영창 IFPRA 한국 커미셔너의 사회로 진행된 창립총회에서 IFPRA 한국위원회 위원장에 조세환 회장((사)한국조경학회), 자문위원에 권영걸 회장((사)공공디자인학회), 김영수 공동대표(녹청련), 양병이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등 3명, 부위원장 9명, 운영위원 30명의 임원진이 구성됐으며, 또 커미셔너는 그동안 IFPRA 한국위원회가 창립되기까지 산파 역할을 한 전영창 사무국장(전국파크골프연합회), 간사는 창립총회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안승홍 교수(한경대), 감사는 이창환 교수(상지영서대)가 맡게 되었고, 회장단회의를 통해 감사 1인을 추가 선출하기로 했다.
오후에 시작된 IFPRA 한국위원회 창립 기념 국제 심포지엄은 “녹색경영과 한국 도시공원의 미래”를 주제로 기조연설과 주제발표, 토론의 순으로 진행되었다.먼저 IFPRA의 Rob Small 회장은 ‘21세기의 도시공원’이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에서 최근의 기후변화, 도시과밀, 다문화주의, 건강 및 웰빙, 생물종 다양성, 노년 및 유년인구 등 6개의 사회적 이슈를 화두로 던지며 “Global & Local Agenda 점검을 통해, 현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 경제 및 환경적 도전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공원서비스를 재정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하였다.주제발표 이후 토론회는 엄서호 교수(경기대)를 좌장으로 김덕삼 교수(경원대), 박정숙 교수(경희대), 배상우 교수(고려대), 윤진환 과장(국토해양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전영창 커미셔너(IFPRA Korea)가 참석한 가운데 ‘21세기 도시공원의 변화와 공공 서비스의 역할과 경영’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대부분 공원의 ‘이용프로그램의 다양성 확보’,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 ‘시민참여의 확대’ 등을 강조하였다.
이번 IFPRA 한국위원회의 창립은 그동안 공원의 조성에만 몰두해오던 우리나라가 이제 이용자 중심의 공원 경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더욱이 조경가는 물론 정책을 뒷받침할 행정가, 다양한 문화적 컨텐츠를 담아낼 문화·예술인 등 공원의 조성과 운영 및 관리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글로벌 네트워크와 교류를 통해 새로운 공원문화를 창출하게 될 전기를 마련했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 앞으로 IFPRA 한국위원회가 한국의 도시공원과 세계의 도시공원을 연결하는 네트위크를 이루면서 명실공히 공원의 질적 성장을 이끌어 내는 기구가 되길 기대해본다.
-
창조적인 공원과 정원만들기 국제 심포지엄
도시, 정원을 꿈꾸다지난 3월 11일 경기도, 시흥시, 경기농림진흥재단 주최, (재)희망제작소 주관, 산림청, (사)한국조경학회 후원으로 창조적인 공원과 정원만들기 국제 심포지엄‘도시, 정원을 꿈꾸다’가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국제 심포지엄은 도시 안의 정원을 꿈꾸는 일반 시민들과 함께 정원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진정으로 도시 내 정원의 주인이 누가 되어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 심포지엄은 경기도가 2010년 10월 2010경기정원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하여 정원박람회가 지역사회와 어떻게 연계되는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국외 사례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모색하는데 도움을 받고자 개최한 것이었다. 2010경기정원박람회의 개최를 앞두고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을 당부한 안양호 지사(경기도 행정1부) 의 개회사로 시작한 이날 행사에는 많은 환영사와 축사가 있었는데, 환영사를 위해 시흥시 김윤식 시장과 (재)희망제작소 유시주 소장이, 축사를 위해 조정식 국회의원과 (사)한국조경학회 조세환 회장이 각각 단상에 올랐다. 이날 조세환 회장은 축사를 통해 경기정원박람회가 도시 행사로 기록될 수 있는 전초작업이 될 것을 기대하고,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정원박람회의 성격과 방향, 디자인, 실천전략, 기술, 산업화, 마케팅 등 다양한 주제가 종합적 관점에서 폭넓게 논의되기를 당부하였다. 또 행사 이후 정원박람회 장소인 시흥시 옥구 공원을 도시전략적 관점에서 어떻게 시민과 함께 최고의 브랜드로 경영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도 잊지 말아야 함을 덧붙였다.
다음으로 2010경기정원박람회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업무제휴협약서 체결식이 진행되었다. 경기도, 경기농림진흥재단, 시흥시는 도시정원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도시의 브랜드 가치향상 및 정원문화 정착을 위하여 업무제휴를 맺고 서로가 힘써줄 것을 기대한다고 전하였다.
-
Sosu Seowon
소수서원Sosu Seowon which is located in 158, Naejuk-ri, Sunheung-myeon, Yeongju-city, Gyeonsangbuk-do is 7,504㎡area. After constructing in order to enshrine An-Hyang, it was given the name “aekwoondong Sosu Seowon”in the 5th year of King Myeongjong’ reign(1550). It is the first Seowon in Korea, and An-Chuk and Ju-SeBung is enshrined. The aesthetics of adap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with Myeongryundang, Ilsinjae, Jikbangjae, Yeongjunggak, Jirakjae, and Hakgujae. It was appointed as national historical relics no.55 in 21th of January, 1963.소수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8에 위치하며, 면적은 7,504㎡으로 중종 38년(1543) 회헌晦軒안향(安珦, 243~1306)을 배향하기 위해 서원을 완성한 후, 조선 명종 5년(1550)“백운동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이후, 안축安軸, 주세붕周世鵬등을 배향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서원으로, 명륜당, 일신재, 직방재, 영정각, 지락재, 학구재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다.
造營_조선조 중종 36년(1541)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이 곳 출신 학자인 안향1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를 설립하였다가, 중종 38년(1543)에 유생교육을 겸비한 서원2을 설립한 것이 서원의 시초이다. 이후 중종 39년(1544)에 안축, 안보 형제를 추가 배향하였으며, 명종 1년(1546)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안향의 후손 안현安玹(1501~1560)의 노력으로 서원의 경제적 기반이 확충되고 운영방책이 보완되어 확고한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그후 명종 3년(1548) 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서원을 공인화하기 위해 1549년 1월 경상도 관찰사 심통원沈通源(1499~?)에게 백운동서원에 조정의 사액을 바라는 글을 올리고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명종은 대제학 신광한申光漢(1484~1555)에게 서원의 이름을 짓게 하여“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紹而修之”는 뜻을 담은 소수紹修로 결정하고“백운동소수서원”이라고 명명했다. 즉‘소수’는 순흥에서 폐지된 학교를 다시 세워 단절된 도학을 잇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세조 2년(1456) 순흥으로 유배된 세종의 다섯째 아들 금성대군과 순흥 부사 이보흠의 단종복위 밀모사건으로 인해, 순흥부가 풍기군의한 면面으로 편입, 강등되고 순흥향교가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명종 5년(1550) 2월 21일“소수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는 왕명에 의해 성리학의 정통성을 서원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후 인조 11년(1633)에 주세붕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서원의 남설濫設과 부패로 고종 5년(1868)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현재 서원 내에는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제59호), 회헌영정(국보 제111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보물 제485호), 주세붕 영정(보물 제717호) 등의 중요한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으며, 경내 건물로는 문성공묘, 명륜당, 일신재, 직방재, 영정각, 전사청, 지락재, 학구재, 서장각, 경렴정 등이 있다.立地_소수서원은 풍기 순흥면 동북쪽 영구봉靈龜峰아래 부석사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 동, 남, 북쪽으로는 죽계수3가 위요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송림이 위치하고 있다. 서원건립 전에는 숙수사라는 절터로서 지금도 목탑지와 당간지주(보물 제59호)4, 석등 등이 남아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부석사, 병산서원, 화천서원, 하회마을 등이 있다.1. 안향은 백이정(白正, 247~1323)과 함께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받아들이고, 이를 표방하면서 고려문화를 혁신하고자 한 첫 세대이다. 그는 고려 충렬왕 때인 1249년 11월 원나라에서 주자서(朱子書)를 손수 베끼고, 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그려 가지고 왔으며, 주자를 흠모하여 주자의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하여 자신의 호를 회헌으로 하였다. 1297년 12월 후원에 정사를 짓고 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모셨으며, 1303년에는 김문정(金文鼎)을 중국 강남 지방에 보내어 공자와 칠십 제자의 화상,그리고 문묘에 사용할 제기, 악기 등을 구해오게 하였다. 1304년 국학의 대성전이 완성되자, 공자를 비롯한 선성(先聖)들의 화상을 모시고 문묘의 제도를 갖추게 하였다. 1304년 그는 섬학전(贍學錢)을 설치해 적극적으로 주자학을 수용하고, 국내 보급을 위해 노력한 성리학자이다. 충숙왕 6년(1319)에는 고려의 수도인 개경의 문묘 동무(東) 종사(從祀)되었다.2. 백운동서원은 중국의 주희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차용한 것으로, 주세붕은 그가 편찬한“죽계지(竹溪志)”서문에 사묘와 서원을 세우게 된 동기에 대하여, 교화는 시급한 것이고, 이는 존현(尊賢)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므로 안향을 모시는 사묘를 세웠고, 겸하여 유생들의 장수를 위하여 서원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3. 주세붕은“회헌선생실기(晦軒先生實記)”에서“왼쪽으로는 죽계수가 휘감아 흐르고 오른쪽에는 소백산이 높이 솟아 구름과 산과 언덕과 물줄기가 실로 여산(廬山)에 못지않다”, 구름이며, 산이며, 언덕이며, 강물 그리고 하얀 구름이 항상 골짜기에 가득하므로 이곳을‘백운동’이라 하였고, 감회에 젖어 배회하다가 사당건립의 뜻을 갖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4.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절에 행사가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간은 마주보는 면의 바깥면 중앙에 세로띠를 새기고, 꼭대기에서 1.17m 밑에서 부터 2.34m 까지 사이가 면이 쑥 들어가 있어서 마치 넓은 홈을 마련한 것처럼 보인다. 네모난 기둥 끝으로 올라가면 약간 가늘어지고, 맨 끝은 둥글게 경사지도록 하였다. 꼭대기 끝 안쪽 면에는 홈을 파서 당간을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현재는 지주 양쪽으로 길고 큰 돌 1장씩이 놓여있으며, 전체적으로 소박하며 돌을 다듬은 솜씨가 세련되어 보인다. 현 소수서원입구 소나무 숲에 위치하고 있다.
-
Namgye Seowon
남계서원 Namgye Seowon which is located in 586, Wonpyeong-lee, Sudong-myeon, Hamyang-gun, Gyeongsangnam-do is 4,810㎡ area. It was given the name “amgye”in the 19th year of King Myeongjong's reign(1566). It is the oldest seowon, the next to Sosuseowon, and it was reconstructed after burning down in the time of war, Jeongyujaeran. Gaeam Kang-Ik, Dongye Jeong-On, and Noigye Yu-HoIn are enshrined in the shrine. The aesthetics of adap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with Jundo-gate, Jeonsacheong, Myeongseongdang, Gyeonpangak, Yangjeongjae, Aeryeonheon, Boinjae, Yeongmaeheon, and Pungyeongru. It was appointed as national historical relics no. 499 in 26th of May, 2009.
남계서원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586번지에 위치하며, 면적은 4,810㎡로 조선조 성리학에 있어 오현의 한 사람인 일두一정여창鄭汝昌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건립을 결의한 후,조선 명종 19년(1566) “남계 溪”라는 이름으로 사액서원이 되었다.이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하여 개암介庵강익姜翼, 동계桐溪정온鄭蘊, 임계林溪유호인兪好仁 등을 배향하고 있는 국내에서 소수서원 다음으로 오래된 서원으로, 풍영루, 명성당, 양정재, 보인재, 경판각, 애련헌, 영매헌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로 지정되었다.
造營_남계서원은 일두一정여창(鄭汝昌, 1450-1504)1 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명종 14년(1559) 강당, 1561년 사당, 1564년 동재와 서재 그리고 연당을 완성하면서 그 후 1566년 서원 곁의 시내 이름을 따서“남계 溪”2라는 사액을 받았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뒤, 선조 38년(1605)에 나촌羅村으로 터를 옮겼다가, 선조 43년(1612) 옛터인 현재의 위치에 다시 옮겨 중건되었다.3 이후 숙종 1년((1675) 동계 정온,(1569~1641)이 서서西序에, 숙종 15년(1689) 강익이 동서東序에 추가 배향되었다. 그리고 별사別祠에는 임계 유호인(1445~1494)과 정홍서가 배향되었다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별사는 훼철되었다. 현재는 교육적 기능이 없어지고 제향기능만 남아있으며, 『어정오경백편』·『고려사』등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立地_남계서원은 연화산(443.2m)을 주산으로 백암산을 안산으로 득수 형국을 이루는 구릉에 위치하여‘신향인좌申向寅坐’‘, 전저후고前低後高’의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지형 및 수계적 측면에서는 서원 앞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계천이 흐르며, 안산인 백암산이 사원을 마주보고 있다. 한편 근경으로는 원평마을 일대가, 원경으로는 남계천 너머 개평마을 이차경된다.4 주변 환경으로는 함양 상림, 화림구곡 등이 있다.
空間構成_1)配置形式서원의 공간구성은 홍살문, 하마비, 풍영루 등의 진입공간, 애련헌, 영매헌, 연지 등의 유상공간, 명성당, 양정재, 보인재 등의 강학공간, 내삼문, 사당 등의 제향공간, 고직사 등의 지원공간을 가지는‘전학후묘前學後廟’ 의 배치구조를 보이고 있는 바,5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원 입구에는 하마비와 홍살문이 위치하고 있으며,6 이를 지나 정문이자 외문인 풍영루를 들어서면 전면에 앞뜰과 중정 마당 전면으로 두 개의 연지가 있으며 강당인 명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강당과 누문사이에는 동재인 양정재와 서재인 보인재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으며,7 보인재 남측에 묘정비각이 있다. 한편 강당 좌측, 고직사 입구 전면에는 제향전날 제관들이 제례물을 올려놓고 품평을 하는 세단으로 된 석조 생단牲壇이, 강당 우측에는 경판각이 있다. 한편 명성당 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내삼문이 있고, 삼문을 들어서면 담장을 둘러 별도의 영역을 마련한 사당이 있으며, 또한 사당 내 전사청이 북향해 위치하고 있다. 전면에는 제향시 사당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기 위해 대야를 올려놓는 시설인 관세대와 정료대가 있다.
1‘.우강(右江)함양’의 기틀을 이룬 정여창은 세종 32년(1450년)서원 북서쪽에 위치한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함양군수로 있던 김종직에게 글을 배운 후 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그의 학문은 성리학사에 있어 하나의 큰 자취를 남겨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5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었다.2.남계(溪)라는 명칭은 수동의 물 수(水)자와 연관되며, 넘칠‘濫’, 계곡‘溪’명칭은 풍수적으로 남계서원이“물 위에 떠있는 연꽃[蓮花浮水形]”을 이루는 장소에 위치하고 있음을 유추하게 한다.3.서원은 조선시대 사회윤리를 보급하고 향촌 질서를 재편성하며 지역공동체를 이끌어간 핵심공간이자 도학을 이상으로 삼던 사림세력들의 관념세계가 반영된 성리학적 이상세계이다. 이에 서원은 대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으로 산수가 뛰어나고 조용한 산기슭이나 계곡 또는 향촌에 입지하였으며, 성격에 따라 절터 또는 퇴락한 사찰을 이용하였다. 더러는 선현의 연고지에 건립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관학인 성균관이나 향교와 달리 행정적으로 조정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서원 제도에 함유된 유가적 운둔사상 등과도 연계되어 있다고 사료된다.4.남계서원은 주변 자연 경사지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는 서원 배치가 풍수사신사의 형세를 반영함은 물론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완경사지 자연지형을 활용한 공간 및 시설배치를 통하여 담 밖의 경관을 효과적으로 차경함에 있다. 즉, 담으로 둘러쳐진 서원영역은 심리적 경계일 뿐 서원 안팎의 자연은 연속성을 갖고 공유되며 통합적 시계구조를 가진다.5.서원은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의 중심축을 일치시키고, 건물들이 직각과 평행을 이루도록 정연하게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남계서원은 진입공간에서 풍영루까지의 축과 풍영루에서 명성당까지의 축 그리고 다시 강당에서 사당까지의 축이 동일 직선상에 형성되지 않고 각각 1°와 2°씩 우측으로 편향된 별도의 축선 상에 놓여있다. 또한 연지 또한 직교축선상에서 약간 벗어난 부축 상에 놓여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6.풍영루를 지나면 열린 공간이 전개되며 그 너머 동·서재 측면으로 마당이 돌출된 듯 지각된다. 이는 경사진 땅에 건물을 배치하고 적정 규모의 연지를 조성하여 시각적 균형감을 확보하였음을 의미한다.7.남계서원의 강학공간은 중심성이 상하, 좌우대칭 구도로 명확하게 분리되고 있다. 특히 강당건물은 짝수 4칸의 칸수구성이 적용되고 있는데 이는 예제적 원칙이 준용된 것으로 사료된다.
2)空間構成要素식물 _서원의 현존 수목은 서원 조영 당시와는 차이가 있으며, 또한 정확한 고증을 위한 자료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당시 동·서재 전정의 연지에는 홍백련을 심고 그 주변에 매화와 죽을 심었는데,8 현재는 은행나무 1주와 버드나무 1주가 있으며 주변에는 무궁화, 구상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고 지당내는 수련과 창포가 식재되어 있다. 또한 서원 입구와 사당 후면에는 송림이 울창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지금도 사당 후면에는 소나무 등의 일부 잔존하고 있으며, 사당 입구에는 배롱나무9가 대식되어 있다.
건조물 _1. 풍영루 _ 이층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서원 내의 경물과 동산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동시에 원경으로 멀리 전개되는 산하를 차경하기 위한 경관집점 역할을 하고 있다.2. 명성당 _ 정면 4칸으로, 중앙의 2칸 마루와 양쪽 협실 각 1칸으로 되어있으며, 왼쪽 협실은 거경재居敬齋, 오른쪽 협실은 집의재集義齋이다. 강익이 쓴『남계서원기』에 의하면“강당 이름“명성明誠”은“중용”의 밝으면 성실하다明則誠”는 뜻을 취했고“, 왼쪽 협실을“거경居敬”, 오른쪽 협실을“집의集義”라 한 것은“정자가훈程子家訓”의“경敬에 거해서 이를 궁구한다”는 내용과 맹자의“의義를 모아 산다集義以生”는 뜻에서 취했다고 한다.3. 사당 _ 정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전면에 툇 칸을 두었으며, 내부에는 정여창을 주벽으로 하여 좌우에 정온과 강익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4. 양정재, 보인재10 _ 각각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인데 각각 1칸은 온돌방이고 1칸은 누마루로, 서재의 경우 증자의‘이우보인以友輔仁’에서 학문수양의 인성론을, 동재의 경우 역경의‘몽이양정蒙以養正’에서 교육의 목적론을 성리학적 가르침 등과 연계하여 건물명에 표상화시켰다.5. 경판각 _ 강학공간에 부속되는 건물로 선현 등의 문집 등을 보관, 판각하여 서적을 펴내는 목판을 보관하는 곳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우진각 지붕이며, 경판을 보호하기 위해 지면의 바닥을 높여 마루를 설치하였고 벽체도 판벽을 하였다.
8.연지에 홍백련을 심었다는 문헌 기록을 통해 유추하여 보건대, 연못에 각각 홍련과 백련을 구분하여 재식한 것은‘홍동백서(紅東白西)’의 개념에 근거해 동쪽은 생명의 근원인 태양이 떠오르는 생명탄생과 관련 있는 홍련을, 서쪽은 음향오행의 상징색인 흰색의 백련을 재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9.배롱나무는 꽃이 오래간다 하여 목백일홍 또는 자미화라고도 불리는데 수피가 맨들거려 마치 살이 없는 백골과도 같아 보인다는 함의를 담는 식물로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였던 조선조 선비들이 선호하였던 성리학의 상징목이다.10.건물구조는 기본적인 온돌과 마루 2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한 칸을 누마루로 할애하고 있다. 동·서재의 마루인 헌(軒)은 순수한‘마루’형식에서 벗어나 지면과 이격된 루(樓)의 형태를 갖춤으로써‘당(堂)’인 마루형식과 차별화되고 있다. 이 중에 방은 땅 위에, 마루는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여서, 하나의 건물 안에 전혀 다른 내용의 장소가 공존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또한 명칭도 동재인 양정재의 누마루는 애련헌으로, 서재 보인재의 누마루는 영매헌으로 각각‘연꽃’과‘매화’완상을 통해 격물지치(格物至治)할 수 있는 장소성을 갖는다.
수공간 _연지의 경우 지내로 내려갈 수 있게 자연석의 6단(W 1.5m × L 1.5m) 계단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너비 6.35m, 길이 5.5m, 깊이 1.5m(저면 5.8m×5.3m) 규모로 수련과 창포 등이 재식되어 있지만 원래 연꽃을 심어 관상하던 공간이다. 유교에서는 연꽃을 청렴의 상징으로 보았으며, 연꽃의 텅 빈 뿌리와 줄기는 학문의 관통 즉, 학문의 기초에서부터 통달에 이르기까지 대성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그것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의 모습을 칭송하여“꽃 가운데 군자花之君子者也”라 하였다.
結_ 본 고는 조선중기 주자가례와 강독의식 같은 당대의‘예제적 틀’을 적용하여 초창기 서원 형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점유하고 있는 남계서원의 경관건축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조영실제, 입지·공간구성 중심으로 기술한 바,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첫째, 조영은 일두 정여창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명종 14년(1559) 강당, 사당, 동재와 서재 연지를 완성하면서“남계”라는 사액을 받았고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뒤, 선조 43년(1612) 옛터인 현재의 위치에 다시 옮겨 중건 이후 향사의 기능을 수행하였다.둘째, 입지는 연화산을 주산으로 백암산을 안산으로 득수 형국을 이루는 구릉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원 앞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계천이 흐르며, 안산인 백암산이 사원을 마주보고 있으며, 주변 환경으로는 함양 상림, 화림구곡 등이 있다.셋째, 공간구조은 사당, 강당인 명성당 그리고 양정재, 보인재, 풍영루, 묘정비각 등의 건물이 강당을 중앙으로 마루와 양쪽 협실로 배치되어 있는데, 왼쪽 협실은 거경재이고 오른쪽 협실은 집의재이다. 동재인 양정재와 서재인 보인재는 애련헌, 영매헌이 연결되고 중정 마당 전면으로 두 개의 연지가 있는데 전체적 배치형식은 완경사지에‘전학후묘’의 배치구조를 가진다.넷째, 구성요소는 식물과 건조물, 수공간, 점경물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식물의 경우 사당 일원에는 배롱나무, 소나무 군락을 형성하고 있으며, 연지에는 수련과 창포 등이 재식되어 있으며, 건조물의 경우 강학의 기능을 담당하는 명성당, 동·서재, 전사청, 서원의 서비스 기능을 담당하는 고직사 등이 있다. 수공간은 동, 서재 전면부의 연지 등이 있으며, 점경물로는 제향의식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정료대 등이 있다.이로 인해 16세기 중반 조영된 강학과 제향의 기능을 담당하던 공간으로서 남계서원은 조선시대의 여타의 서원과 비교하여 주자가례 등의‘예제적 틀’을 적용하여 초창기 서원 형식이 지니는 정형성을 잘 보여주면서 축선의 어긋남을 통해 구성의 변형을 꾀하고 있다. 또한 차경을 이용해 건물과 자연의 연계된 경관구조를 이루며, 구성미가 뛰어남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러한 경관건축은 해당지역의 지형조건 등의 자연적 요소와 당시의 성리학에 바탕을 둔 사상체계, 정치체계 등의 인문적 요소가 상호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사료된다.
-
hgf
fgd
-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공모 시상식 및 토론회
지난해 12월 22일 서울교육문화회관 2층에서는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공모 시상식 및 토론회’가 순천시(시장 노관규) 주최로 개최되었다. 행사는 윤상준 사무국장((재)환경조경발전재단)과 강재식 기획팀장(순천시청)의 사회로 공모 및 당선작 소개, 시상식, 토론회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공모전의 실무전반을 담당했던 조경진 전문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은 공모지침 및 심사과정에 대해 설명하며, “패널과 설계설명서만을 제출했던 기존 공모전과 달리, 7~8분 정도의 프리젠테이션 영상을 제출하도록 한 것이 금번 공모전의 특징”이라 부연하였다. 이어서 양병이 심사위원장(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은 “수상작 뿐만 아니라 다수의 출품작도 비교적 고른 수준의 설계안이라 평가한다. 심사위원회는 당선작의 설계의도와 취지가 마스터플랜 발전과정에서 존중되기를 바라고, 여러 수상작의 좋은 아이디어가 정원박람회의 컨텐츠 개발에 좋은 참고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웰컴 투 정원골”로 최우수작 수상자로 선정된 이민우 소장((주)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은 작품설명에 앞서 “국내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정원박람회에 설계자로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큰 틀에서 정원박람회는 정원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통해 정원문화를 선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순천의 갯골, 습지, 갈대 등 자연적 경관요소를 배경으로 한 것이 박람회장 조성의 주안점”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으로 5개의 “정원 매니페스토”를 제시하였다. 정원 매니페스토는 ‘생태계와 공존하는 정원’, ‘가장 순천다운 경관’, ‘정원 네트워크를 순천의 공공녹지와 연결’, ‘쉽게 즐길 수 있는 도시정원’, ‘다양한 실험을 통한 새로운 정원문화 창출’의 내용을 담고 있다.
행사의 마지막에는 이상석 교수(서울시립대)를 좌장으로 작품에 대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패널로는 온영태 교수(경희대), 최정권 교수(경원대), 정욱주 교수(서울대), 천의영 교수(경기대), 이재준 교수(협성대)가 참석하였으며, 토론 내용은 “지속가능한 디자인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지형과 물을 다루는 전문기술의 도입, 클라이언트(공공기관, 민간기관, 시민)의 명확하고 일관된 의지, 박람회 이후까지 생각한 공간이용 등에 관한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 등이 요지였다.
최정권 교수 _ 당선작들의 다수가 범람제방을 과감하게 허문 것과, 사행하역의 도입, 기수역에 대한 대체습지 조성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과연 실현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검토해야 하며, 물을 다루는데 있어서 보이는 수경관이 아닌 생태의 구조와 기저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정욱주 교수 _ 다수의 설계경험을 비춰볼 때 현상공모안이 좋은 디자인으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클라이언트의 뜻과 의지가 중요하며, 앞으로의 설계과정에서 설계가는 물론 관련 전문가 및 자문단, 발주처 등 관련된 모든 이들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천의영 교수 _ 지금도 아름다운 순천만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대상지에 폭력을 가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그런 만큼 정원박람회장이 순천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거점이 되어야하며 행사를 통해 도시가 재조직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도시의 모든 조직들이 작동될 수 있어야 하며 박람회장이 도시중심축과 연결되어야 할 것다.
이재준 교수 _ 대한민국 생태수도를 표방하고 있는 순천시는 정원박람회를 계기로 국제적인 환경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최근 저탄소 녹색성장이 강조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 실천방법이 미비하므로 박람회 기간에 식생, 정화 등 관련 녹색기술을 발굴하여 전시하고 더불어 탄소가 얼마나 저감되는지 정량화해서 보여준다면 세계의 이목이 순천으로 집중될 수 있으며, 국제적인 저탄소 녹색도시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
돈암서원
Donam Seowon
立地돈암서원은 고정산 자락의 완만한 구릉지에 전학후묘前學後廟이며, 향은 해좌사향亥坐巳向인 동남향이다. 주변 환경으로는 논산저수지 북쪽에 2개의 산과 연접해 있는데, 하나는 고정산이고 다른 하나는 대명산이다. 이중 동쪽의 고정산 줄기가 서북으로 4.5km를 흘러 넓은 사갑들로 뻗어있는데, 돈암서원은 고정산 줄기가 이어지는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전면으로 연산천이 흐르고 뒤로는 고정산 줄기가 배산을 형성하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으로 완만한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관촉사, 개태사, 계백장군묘 및 백제군사박물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空間構成돈암서원의 경우 고종 17년(1860)의 이건 이전6과 이후로 대별할 수 있는 바, 현재의 서원은 전학후묘이면서 동남향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펼쳐진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고, 경내에는 사당인 숭례사, 신문, 강당인 양성당, 동재인 거경재, 서재인 정의재, 응도당, 장판각, 정회당, 경회당, 전사청, 외삼문인 입덕문 등과 하마비, 홍살문 등이 있다. 현재의 돈암서원은 고종 17년(1880) 이후 여러 차례 증·개축을 통해 강당이 중심축에 있지 않고 남측으로 비켜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공간구성은 4개로 구성되어 있는바, 진입공간으로는 홍살문과 하마비를 지나 왼쪽으로 최근 조성된 주차장이 있고, 정면에 최근 신축된 산앙루가 위치하고 있다. 산앙루 앞에는 황강 김선생 정회당사적비명과 현성사림비가 있고, 외삼문 우측으로 양성당중수비가 자리하고 있다. 강학공간으로는 외삼문인 입덕문을 통해 진입하면 동·서재를 지나 양성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양성당의 뒤편으로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이 있고, 양성당의 남쪽 측면으로 정회당이 위치하고 있다. 양성당과 정회당의 뒤편으로는 석축 위로 화계가 조성되어 있다. 양성당의 정면 좌·우측으로 1997년에 개축된 거경재와 정의재가 위치하고 있으며 강당인 응도당은 중심축에서 남측으로 비켜나 수직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들 강학공간은 평지에 입지한 까닭에 여유 있는 배치를 보여주고 있으나 입덕문 보다 동·서재가 위치한 강학공간이 1단 높게 올라있다. 강학공간의 동·서재는 1단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응도당을 이건하기 전 강당으로 이용되던 양성당은 2단의 기단 위에 자리하여 그 위계를 강조하였다. 전사청은 관리공간으로 막돌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고 있으며, 양성당 뒤편으로 연결되는 협문을 통해 내삼문으로 진입 할 수 있는 동선을 확보하여 서원의 제향행사가 있을 시에 지원을 용이하게 하였다. 1997년에 동·서재와 함께 개축된 경회당은 응도당과 마주하고 있다. 제향공간은 꽃담으로 위요되었으며 내삼문은 3단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어 강학공간과 공간상 위계를 구분하고 있다. 사당인 숭례사는 4단의 기단 위에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전면 4곳에 계단이 설치되어있고 사괴석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空間構成要素식물 _돈암서원 일원의 식생은 외삼문 안쪽 양측으로 배롱나무가 재식되어있고, 양성당의 우측 장판각의 정면에는 수령이 300여 년으로 추정되는 향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내삼문 양측으로 주목이 식재되어 있고 내삼문 안으로는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좌우측 담장 밑으로 화단이 조성되어 있다. 우측 화단에는 소나무와 옥향 그리고 배롱나무가 2주 식재되어 있으며, 좌측 화단에는 옥향 3주와 배롱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내삼문에서부터 장판각 뒤쪽, 정회당 우측면에 이르기까지 담장을 따라서 화계가 조성되어 있고 화계에는 영산홍이 식재되어 있다. 거경재 뒤편의 전사청으로 진입하는 출입구 좌측 담장에는 능소화가 식재되어 있으며 우측 담장 아래에는 화단이 조성되어 있고 화단에는 머위가 식재되어 있다. 원 외부에는 사당의 서측 즉 사당의 후면으로 소나무가 군식되어 있으며, 사당의 북측으로 대나무림이 조성되어 있다. 건조물 _1. 숭례사崇禮祠_ 사당인 숭례사는 4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전면 1열은 툇간이고 후면 2열은 내부공간으로 내부에는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 네 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2. 응도당凝道堂_ 강당인 응도당은 1자반 높이의 초석 위에 정면 5칸, 측면3칸으로 내부는 모두 마루를 깔았으며 측면에는 풍판을 달고 풍판 아래에는 눈썹지붕을 달아내었으며 지붕은 전후면 모두 겹처마 맞배지붕이다.3. 양성당養性堂_ 양성당은 2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각 칸은 하나씩의 방을 꾸미고 가운데 3칸 전면에는 툇간을 만들어 마루를 깔았다. 1997년 거경재와 정의재가 개축되기 전에는 측면에 편액을 걸어 거경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4. 정회당靜會堂_ 장대석 외벌대로 기단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뒷열 가운데 2칸은 마루방을 두었고 툇칸은 마루를 깔아 건물의 3면이 마루로 되어있으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1956년 지금의 자리에 복원되었다.5. 장판각藏板閣_ 정면 3칸, 측면 2칸에 서고의 기능을 갖고 있으며, 내부는 모두 통풍이 잘되도록 마루를 설치하였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6. 전사청典祀廳_ 장대석 외벌대 기단 위에‘ㄱ’자 형의 평면으로 가운데 3칸은 대청을 두고 양측에 방을 두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전사청 주변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응도당 뒤편으로 협문을 두었다.7. 거경재居敬齋, 정의재精義齋_ 거경재와 정의재는 1997년에 경회당과 함께 개축되었으며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다.8. 경회당 _ 1997년에 동·서재와 함께 개축된 경회당은 자연석 석축 외벌대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현재 문화유산해설사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9. 입덕문入德門_ 자연석을 2단으로 계단처럼 쌓아올린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 형식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돈암서원’편액을 걸어놓았으며, 안쪽으로‘입덕문’편액을 걸었다.10. 내삼문內三門_ 사당과 강학공간과의 높이 차를 장대석 세벌대로 높이고 사당 안쪽에서는 외벌대 기단이 설치되어 있다. 어칸과 양 협칸을 별도로 세우고 문과 문 사이와 양쪽으로 꽃담을 세웠다.11. 홍살문紅箭門_ 홍살문은 신성한 곳을 알리는 문으로 참도가 시작되는 곳에 각각의 둥근 주초석柱礎石에 2개의 기둥을 세워 붉은 칠을 하고 상단부의 기둥과 기둥 사이를 인방을 연결하여 살을 박아놓았다. 홍살중앙에는 오방색의 삼태극의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수공간 _양성당기에 의하면 서원이 구지舊址에 위치하였을 당시에 도랑물이 돌 사이로 흘러드는데 이를 이끌어 위 아래로 못을 만들고 연꽃을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연지의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56년 정회당의 복원과정에서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회당의 전면에 위치하였던 연지는 4×7m의 크기였으나, 1997년 서원정비사업에서 매몰되어 없어져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점경물 _1. 돈암서원원정비遯岩書阮阮庭碑_ 연꽃무늬가 새겨진 방형의 받침위에 비석과 비 머리가 서있다. 1880년 이건 당시 함께 이전하였으며 현종10년(1669)에 세워졌다.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쓰고 전서체 제목은 김만기가 썼다. 비신은 높이 173.8cm, 폭 75cm, 두께 33.3cm이다.2. 돈암서원지비書院之碑(양성당중수비) _ 외삼문 밖에 위치하며 돈암서원이 이건하게 된 연유와 이건 당시의 기록, 당시의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송병선이 짓고 송도순이 글씨를 썼다. 비신은 높이129cm, 폭 49cm, 두께 18cm이다.3. 관세대 洗臺, 정료대庭燎臺_ 내삼문 안 묘당공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향의 동입서출하는 의식절차에 따라 우측에 관세대, 좌측에 정료대가 위치하고 있다.
結_ 본 고는 조선 중기 연산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던 기호학파 사림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연산 돈암서원의 입지와 공간구성에 관해 기술한 것으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첫째, 입지는 논산저수지의 북쪽 고정산 자락의 완만한 구릉지에 들을 가로질러 흐르는 연산천 너머로 계룡산 자락을 마주하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배산임수 형국으로 자리하고 있다.둘째, 공간구성은 진입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 관리공간으로 구분되며, 축과 기단의 높이, 동선 등으로 각 공간의 위계가 설정되며, 고종 17년(1880)에 구지에서 이건하는 과정에서 함께 이건하지 못하고1971년 이건된 강당인 응도당은 중심축에서 우측으로 벗어나 수직으로 배치되었다.셋째, 공간구성요소로서 식생은 향나무 노거수를 비롯하여 배롱나무, 소나무 등의 교목과 옥향, 주목, 영산홍, 능소화 등이, 건조물로는 사당인 숭례사와 제향공간을 감싸고 있는 내삼문과 그 주변의 양성당과 장판각, 정회당, 응도당, 동·서재 그리고 전사청과 경회당, 내·외삼문 등의 건축물과 돈암서원원정비, 돈암서원지비(양성당 중수비), 제향공간의 정료대, 관세대 등의 점경물 등이 있다. 이로 인해 19세기 후반 이건된 강학과 제향의 기능을 담당하던 공간으로서 돈암서원은 조선시대의 여타의 서원과 비교하여 서원형식이 지니는 정형성을 잘 보여주면서 축선의 어긋남을 통해 구성의 변형을 꾀하고 있다. 차경을 이용해 건물과 자연의 연계된 경관구조를 이루며, 구성미가 뛰어남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러한 경관건축은 해당지역의 지형조건 등의 자연적 요소와 당시의 성리학에 바탕을 둔 사상체계, 정치체계 등의 인문적 요소와 상호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사료된다.
-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전문가 심포지엄
용산공원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비롯, 각계의 다양한 의견 개진지난달 줌인 코너를 통해 소개되었던 용산공원 아이디어공모 시상식 및 토론회(이하 용산 아이디어공모)에 이어, 지난 12월 23일에는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전문가 심포지엄(이하 용산 심포지엄)이 관련 전문가를 비롯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코엑스 컨퍼런스룸 317호에서 개최되었다. (사)한국조경학회, (사)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연구원, (주)선진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가 공동 주최하고, 국토해양부가 후원한 이날의 용산 심포지엄은 용산 아이디어공모에서 도출된 다양한 제안들을 바탕으로 조경, 도시, 건축, 문화,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용산공원의 미래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되었다.이에 앞서 이날 심포지엄을 주관한 5개 단체 및 회사들은 조경학회를 주축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국토해양부에서 2009년 9월 공고한 “용산공원 종합정비계획”제안입찰에서 선정된 바 있어, 이날의 심포지엄은 제안입찰 선정 이후 첫 번째 의견 수렴의 장으로 마련된 것이다. 향후 조경학회 컨소시엄은 전문가 심포지엄, 설계전문가 워크숍, 시민공청회 등의 과정을 통해 용산공원과 그 일대의 미래상을 위한 쟁점 사항을 도출 및 검토하고, 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용산공원 일대의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조세환 회장((사)한국조경학회)의 환영사와 손태락 단장(국토해양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의 축사에 이어 진행된 주제발표는 이유직 교수(부산대 조경학과)의 사회로, “용산공원의 사회 문화적 의미”(전상인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용산공원 조성계획의 과정과 아이디어공모 결과”(배정한 교수·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용산공원의 현재와 미래”(박현찬 연구위원·서울시정개발연구원)순으로 발표되었다. 전상인 교수는 용산공원 조성은 도시공학적 혹은 건설산업적 시각에서 접근해서는 안되며, 무엇보다 인문사회학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추진해야 하며, 역사적 화해, 사회적 배려, 문화적 해독과 같은 사회의식과 시대정신이 밑받침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즉, 용산공원의 역사적 의미는 단죄의 방식이나 청산의 형태가 아닌, 미래지향적 사회통합과 국민화합을 지향하는 “역사적 화해”에서 찾아야 하고, 새로 조성되는 용산공원은 결코 부자들의 공원 혹은 상류층들의 마당으로 전락되어서는 안되고,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제공되는 “사회적 배려”가 실현되어야 하며, 용산공원의 조성과정은 산업화와 민주화 등 경제와 정치에 몰두했었던 대한민국에 일종의 문화적 해독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이어서 배정한 교수는 용산공원 조성의 주요 경과, 용산공원 계획의 비전과 전략, 용산공원 아이디어공모 결과 분석에 대해 발표했으며, 기존의 “용산기지 공원화 구상연구”에서 제안되었던 “미래지향적 공원, 도시와 대화하는 공원, 성장하는 공원, 한국적 공원”이란 용산공원의 비전과 단계별 공원화 계획에 대해 소개한 후, “끊임없이 진화하고 성장하는 공원, 자연성을 회복하고 생태적으로 건강한 공원,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도시공원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공원, 국민이 함께 참여하여 조성하는 열린 공원의 지향”을 비전으로 내세웠던 용산 아이디어공모 수상작의 주요 경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수상작들에서는 “단계별 전략의 사용, 주변 도시 구조 및 조직의 고려, 비확정적 프로그램, 생태의 고려, 부지의 역사적 조건 존중, 시민참여적 설계” 등의 특징이 엿보였으며, “부지 조건의 면밀한 분석과 해석, 단계별 계획과 과정적 설계, 탄력적 공원 프로그래밍, 주변 도시 구조 및 조직의 고려, 지혜로운 공원작동” 등이 핵심 경향으로 도출되었다고 밝혔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박현찬 연구위원은 용산공원 기본계획안, 용산공원 주변 관련계획, 용산공원 조성방향에 대해 발표하였는데, 조성 기본방향으로는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는 공원, 사람과 환경이 공존하는 공원, 주변 지역과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공원”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후, 기본원칙으로 “역사·정체성 보존 및 시설물 활용, 남산-한강을 연결하는 남북녹지축의 중심, 용산부도심 및 주변 개발계획과의 유기적 연계”를 꼽았으며, 주변 산재부지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도 하였다.주제발표 후 양병이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진행된 토론은 이태진 명예교수(서울대, 한국사), 유하룡 기자(조선일보), 온영태 교수(경희대 토목·건축공학부), 안동만 교수(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박은실 교수(추계예술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윤진환 과장(국토해양부 용산공원추진단 공원정책과)순으로 진행되었으며, 토론 말미에는 방청객의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의 역사정원 보전: 비덜프 그레인지 가든
HISTORIC GARDENSThe Conservation of Historic Gardens in U.K.(2)비덜프 그레인지 가든스태퍼드셔(Staffordshire)의 비덜프 그레인지 가든(Biddulph Grange Gardens)은 1840년대에 제임스 베이트만(James Bateman, 1811-1897)이 그의 부인 마리아와 해양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에드워드 윌리엄 쿡과 함께 만든 정원이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안 시대의 특징이 잘 표현된 정원으로 현재 국가 지정문화재 등급 I로 지정되어 있다. 비덜프 그레인지 가든은 이탈리안 가든, 침상원 형태의 다알리아 워크, 중국정원, 이집트, 라임 애비뉴, 웰링토니아 애비뉴, 웨스턴 테라스 등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정원의 다양함과 풍부함을 알 수 있는 일련의 정원들이 벽, 생울타리 혹은 둑으로 나뉘어지고 소로, 터널 그리고 계단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다알리아 워크는 다알리아 마니아였던 베이트만이 정원의 중심에 조성한 공간으로 주목 생울타리로 칸을 나누는 형태로 조성하여 다알리아의 강렬한 색을 더욱 돋보이도록 의도하였다. 이곳의 가장 흥미로운 풍경이자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중국정원은 마치 비밀의 화원 같이 조성되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라고 명명된 담과 둑이 둘러싸여 있는 중국정원은 빅토리아 시대판 중국정원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어두운 터널을 통하여 정원으로 들어간다. 버들무늬, 금박을 입힌 용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중국정자와 다리 그리고 지그재그 형태로 만들어진 펜스는 로버트 포튠이라는 식물 사냥꾼이 우리나라가 위치한 극동지방에서 영국에 들여간 황금낙엽송을 비롯한 여러 종의 식물과 모란, 홍단풍 등과 함께 중국정원의 풍광을 자아내도록 하였다.이곳은 1871년 로버트 히스에게 그 소유권이 넘어 갔지만 20세기 초반까지 그 원형이 잘 유지되어 오다가 1923년에 저택이 병원으로 바뀌면서 정원 유지관리의 이유 때문에 다알리아 워크를 비롯한 여러 화단이 없어졌으며 1960년대 들어서 급속히 그 모습을 잃어갔다. 1988년 내셔널 트러스트가 이곳을 소유했을 때에는 잡초 제거나 잔디 다듬기 등 매일 어느 정도 관리는 되고 있었으나 식물들이 너무 웃자라 있었고 정원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있었다.내셔널 트러스트 측은 정원과 이곳의 식물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비덜프 그레인지 가든은 상대적으로 매우 잘 기록된 정원이었다. 정원의 특징과 식물들이 묘사되어 있는 글들이 많았고 정원 곳곳이 찍힌 사진 또한 많았다. 이런 풍부한 기록으로 인하여 내셔널 트러스트는 이곳을 빅토리안 시대의 최고 상태로 복원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이러한 결정과 함께 바로 수행된 일은 고고학적 발굴이었다. 고고학적 조사는 정원 복원에 있어 기록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우선적으로 복원에 착수한 부분은 관리에 대한 부담의 이유로 사라진 저택과 인접해 있는 정형식 화단과 다알리아 워크였다. 이 부분은 정원의 전체 면적에 비하면 작은 부분이었지만 베이트만이 조성한 정원에서 매우 인상적이며 핵심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정원의 중심인 중국 정원 또한 정자와 다리를 비롯하여 일련의 훼손된 부분들이 복원되었다. 정원의 복원은 장기 계획이 수립되어 진행되었다. 원래의 식물상에 대한 조사가 시행되어, 새로이 식물들이 식재되거나 재식재를 위하여 다른 곳에서 길러졌다. 1990년에는 이집트가 복원되었고, 1996년에는 웰링토니아 애비뉴가, 1998년에는 탑 테라스가 복원되었다. 2020년까지 내셔널 트러스트는 베이트만이 세계 도처에서 수집하여 식재한 식물을 원형에 가깝도록 복원하기 위한 식재계획을 세워놓고 하나씩 실행하고 있다.
-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 시상식 및 토론회
국가공원, 용산공원의 첫 단추를 꿰다지난 10월 19일 심사 결과가 발표된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의 시상식 및 토론회가 2009년 11월 25일 국토해양부 주최로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이희정 교수(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시상식에서는 PA를 맡았던 안동만 교수(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의 경과보고 후 임승빈 심사위원장(서울대학교)의 심사평 발표와 공동 2등작과 3등작 수상자들이 각자의 작품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동만 교수는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의 진행과정 전반에 대해 소개한 후 “용산공원 부지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근·현대사를 겪으며 오랜기간 군사기지로 사용됨에 따라 기형적 도시 구조를 초래했던 곳으로 이제는 국민의 품으로 반환된다는 상징성을 고려하여 국가공원으로 재탄생될 예정”이며,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발전적으로 수용하고 용산공원의 창조적인 미래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구체적 공원 설계에 앞서 아이디어 공모”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이번 아이디어 공모전의 개최 배경과 의의를 소개했다. 심사총평을 통해 임승빈 교수는 “이번 공모전에 출품된 대다수의 작품들이 대상지의 조건을 존중하고 공원의 성격과 개발 방향을 유보하면서 장기적 해법을 모색하는 시각을 보여주었다고 판단”된다며 “아이디어 공모가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 여러 수상작의 관점과 태도가 용산공원과 관련된 다음 단계의 정책과 계획의 기본 철학으로 반영”되기를 기대한다는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수상작품 발표는 2등작 “Evolving History”(윤희연, 최혜영, 신용주, 기효순), “내재된 풍경”(최종훈, 양기욱, 권니아), “Infra-forest Park”(윤웅원, 김정주, 박주현, 류하나, 문지웅), 3등작 “자연, 꾸미지 않는 아름다움”(홍근표, 서태경, 강수연, 신유희, 김민선), “A Performative Park for a Landscape City”(유걸, 고주석, 고아네모네, 박인수), “DHZ”(유현준, 김연희, 노래원, 김인기) 순으로 진행되었고, 개별 작품 발표 후 수상자들이 단상에 모여 수상 소감 및 타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2부 시상식은 윤진환 과장(용산공원기획단 공원정책과)의 사회로 2등작 3작품, 3등작 3작품, 가작 4작품, 입선 20작품에 대한 시상이 진행되었으며, 권도엽 차관(국토해양부)의 격려사와 조세환 회장((사)한국조경학회)의 축사가 이어졌다.
기념 촬영 및 작품 관람 이후에 이어진 3부는 조경진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가 사회 및 좌장을 맡은 가운데 수상작 분석 및 용산공원에 대한 제언을 중심으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