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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man Residence
Surface design은 정원을 예술적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따라서, 정원공간을 예술적으로 보다 돋보이게 하기 위해, 철로를 이용하여 움직일 수 있는 구조물로 스파 커버를 설치하였으며, 전체적으로는 조용하면서도 많은 관리가 필요치 않은 정원을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프로젝트는 ASLA 2007 Professional Awards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5년 여름, Surfacedesign은 클라이언트인 Mark Erman 씨가 샌프란시스코의 노 밸리(The Noe Valley, San Francisco)에 장만한 그의 집의 정원을 새롭게 조성해달라는 요청으로부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이 정원은 25피트 너비, 50피트 길이의 공간이었다. 14피트에 이르는 펜스가 서쪽방향으로 지어졌으며, 집은 4층으로 뒤뜰이 잘 보이는 구조로 배치되어 있었으며, 정원은 실제 보다 더 작고 아담하게 보일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다. 스파가 놓여진 곳부터 집까지 설계자들은 3가지 중요한 요소들로 정원을 구분하였다. 석재 테라스(Stone Patio)를 스파 뒷편에 있는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까지 연결하여 실내외 인테리어의 구분을 시각적으로 좀 더 확대하였으며, 그 이동공간의 가운데에는 규칙적으로 배열한 넓은 석판을 두었다. 20피트 높이의 작은 대나무숲을 조성하고, 부분적으로 잔디류(Mondo Grass)를 심어 봄의 새로운 생명력과 겨울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같은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도록 했다. Location _ San Francisco, CaliforniaClient _ Mark Erman Landscape design _ Surfacedesign inc.Landscape Contractor _ 5 Elements DesignPhotography _ Jeremy Harris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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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빙겐 정원박람회
8월호의 독일 리트베르그 정원박람회와 9월호의 쇼몽 가든 페스티벌에 이어, 이번호에는 독일 빙겐 정원박람회를 소개한다.빙겐 역시 리트베르그와 마찬가지로 독일 정원박람회의 원칙에 충실해, 지역의 활성화를 꾀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 차원에서 정원박람회가 기획되었다. 독일 라인강 중류에 위치하고 있는 빙겐이 정원박람회 부지로 주목한 땅은, 과거 라인강을 오가는 선박들이 항구로 이용했으나 지금은 쓸모를 다해 새로운 손길이 필요했던 곳이다(예전에는 강의 수심이 깊지 않아 빙겐까지만 선박의 운행이 가능해 이곳 항구가 물류 수송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강폭도 넓어지고 수심도 충분하게 정비를 해서 물류 항구로서의 기능이 사라져 버렸다). 철도와도 연계된 부지에는 대형 창고들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뿐, 이 땅이 가진 경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는 전무했다. 바로 강 건너에 라인강의 진주로 불리는 뤼데스하임의 유명한 경사지 포도밭과 1871년에 이루어진 독일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니더발트 고원의 게르마니아 여신 기념비, 철새 골목길 등이 있고, 인근에는 노래로도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이 있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음에도, 빙겐은 뤼데스하임과 주변의 활기를 강 너머로 옮겨오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빙겐이 위치해 있는 라인강 중류는 로맨틱 라인으로 불리기도 할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고, 유람선도 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어, 여러 가지 면에서 관광 잠재력이 큰 곳이다. 하여 빙겐은 정원박람회를 통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인접한 관광자원을 활용해 관광거점도시로서의 변모를 꾀하는 한편, 지역주민들에게 강변을 되돌려주는 작업을 시도했다. “강변도시는 강변에서 시작한다”는 선언적 문구를 내세우며, “자연과의 공생, 문화경관의 창조”를 기치로, 강변 일대의 재정비를 실시해 도시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고자 한 것이다. 강변을 따라 정원박람회장이 구상되어, 대상지는 자연스럽게 선형의 구조를 띄게 되었다. 2.7km의 박람회장 부지(면적 24ha)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강변과 맞닿은 곳은 강 건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산책로가 꾸며졌고, 박람회 기간 동안에는 이색적인 볼거리들도 선보였다. 박람회 조성 전의 사진을 찍었던 위치에 과거의 사진과 현재의 달라진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세워둔 프레임이나, 강 건너 경사지 포도밭 풍경을 이용한 그래픽 작업 등이 바로 그것인데, 이것들은 모두 강변에 대한 주목에서 시작된 것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강 너머로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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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通度寺)
통도사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번지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 선덕여왕 15년에 자장대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고려말, 18~19세기 수차의 중수 및 정비로 인해, 공간적, 지형적, 기능적으로 독특한 가람배치를 완성하면서, 경내에서의 일주문, 천왕문, 영산전, 불이문, 대웅전, 금강계단, 명부전, 구룡지 등이 복거의 조건을 환경미학적으로 연계시키면서, 현재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하고 있는 불보사찰로서의 격을 갖추고 있다.造營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대사(慈藏大師)에 의해서 창건된 사찰로 크게 3단계의 조영변화를 가지는 바, 창건기(646)에는 자장대사의 수도처에서 성聖의 공간영역으로 구체화하는, 즉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사리탑인 금강계단을 신앙의 중심으로 둔 시기로, 선덕여왕과 함께 사지(寺地)로서 선정하여 금강계단과 대웅전, 대광명전, 영산전이 조영되었다. 이후 1305년 불이문, 천왕문, 일주문이 조영되면서, 현재와 같은 진입체계를 갖추게 되고, 1317년 대광명전 앞에 황화각이, 1340년에 감로당이, 1341년에는 원통방이 조영되었다. 한편 1369년 대웅전 앞에 명부전을 필두로 대광명전 앞에 용화전, 영산전의 좌우로 극락보전과 약사전을 건립함에 따라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하는 상로전,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하는 중로전, 영산전을 중심으로 하는 하로전으로 나누어져 각각의 영역이 독립성을 갖게 된다. 이후 1761년 산령각, 1870년 삼성각 등의 민간신앙 전각이 경내에 들어오면서 불교가 민간신앙을 포용하는 태도를 보이며, 한편 1725년 관음전의 조영된 후, 대광명전 일대의 공간구성이 대웅전으로 향하는 공간의 진행축이자 시선의 축과 직교하는 공간축을 완성하여 중로전의 위계가 확립됨과 아울러 상로전의 금강계단과 중로전 사이는 개산조당, 해장보각의 건립으로 유기적 상관관계를 갖게 되었다.立地 통도사는 백두대간의 큰 마디를 이루는 태백산에서 분지한 낙동정맥(洛東正脈)이 이어지는 가지산, 신불산을 거친 해발 1,050m의 영축산(靈鷲山)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풍수적으로는 영취산 정두는 관모(官帽)를 올려놓은 금체토두(金體土頭) 모습을 띄고 있으며, 여기에서 이어지는 정맥은 원효산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변환경으로는 취운암, 보타암, 자장암 등이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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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틱해에서 쓴 편지
K형! 발틱해에서 이 글을 씁니다.발틱해는 아시다시피 북위 54도~66도, 경도 5도~30도상 유럽 북쪽에 위치합니다. 서쪽으로는 북해와 노르웨이해와 맞닿고,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남쪽으로는 덴마크, 독일, 북쪽으로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를 끼고 위치해 있습니다. 그동안 세계의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지만, 이번 여행만큼 특별했던 여행도 흔치 않았던것 같습니다. 21세기 세상사에 때묻지 않은 곳, 도시의 문명이 주요도시에 존재하긴 하지만 그래도 서방세계나 미국, 일본지역 등에서 볼 수 없는 자연과 인심이 묻어나는 곳, 그런 대상지들을 수많은 격랑을 겪어왔던 중년시대를 넘어, 동반자와 함께 떠나니 더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난 1998년 부도를 맞고 갠지스강에서 형에게 편지를 쓸때만 해도, 2003년 대수술로 사경을 헤맨 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쓸때만 해도, 피로와 고뇌가 축척된 상태에서 썼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50대 후반기를 훌쩍 넘어 다시금 형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저 아름다운 자연에 심취되어 세상을 폭넓게 관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번 여정은 7월 16일~27일까지로, 첫날은 모스크바에서 원인도 모르는 비행기 결항으로 싸늘한 로비 바닥에서 고생하면서 보냈고, 다음날부터는 다행히 순조롭게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릴레함메르, 그리고 피오르드가 시작되는 중심도시 베르겐과 수백㎞에 이르는 피오르드 협곡에서 구심점을 이루는 소도시인 보스, 구드방겐, 나르달, 플롬, 미르달, 야일로, 헬싱보르에 이르는 멋진 주로 자연탐방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은 다소 모험심으로 흥분되면서도 위험요소가 따를 수 있는 실자라인(silza line)을 따라 움직였던 코펜하겐과 스톡홀름, 그리고 핀란드 투르크와 헬싱키의 여정이 이어졌으며 귀국길에 문화와 예술의 아름다운 도시 페테르부르크에서의 일정이 있어서 여행을 더욱 의미있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 중 보았던 도시경관들은 가는 곳마다 이색적이었고, 농촌이나 산촌의 자연경관들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익사이팅(exciting)한 것들이었으며, 문화적 측면에서는 현대의 조경을 보는 눈을 자연으로 돌려서 사물을 원초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당연성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K형!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해서는 “노르웨이가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 있듯이 내가 세계지도상 최북단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노르웨이라는 나라는 인구 490만명에 면적이 한반도의 2배나 되고 해안선은 피오르드를 포함하면 2만㎞가 넘고, 북쪽 끝 ‘노르카프곶’에서 남쪽 끝 ‘크리스티안산’까지는 직선거리로 1,750㎞에 이르는 긴 나라입니다. 해안선은 내륙으로 최대 200㎞나 들어가고, 해발 1,000m의 높은 절벽이 수면에서 곧게 솟아있는 피오르드 지형주위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최고의 관광명소였습니다. 오슬로는 외해에서 100㎞쯤 떨어진 피오르드 깊숙한 곳에 있는데 한 나라의 수도치고는 깨끗하며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녹음이 풍부하고 조용한 도시여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투명한 공기, 하얗게 빛나는 도시의 햇볕속에서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눈으로 보는 듯했습니다.
오슬로에서는 중앙역을 뒤로하고 곧게 뻗어있는 칼 요한거리가 제일의 번화가이면서 시내관광의 중심인데 그 끝나는 지점에 공원으로 둘러싸인 왕궁 ‘데트 콩젤리제 슬로트(Det Kongelige Slott)’가 보입니다. 노벨평화상이 매년 주어지는 시청사 건물과 그 안의 유럽에서 제일 크다는 거대한 유화(24×12.6m)가 눈길을 끕니다. 1층과 2층에도 다양한 벽화가 있고, 2층에는 노르웨이가 낳은 위대한 화가 뭉크의 “인생”이란 그림이 실려 있어 매년 12월10일 수여하는 노벨평화상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또한 오슬로에서는 정면입구부터 보리수가로수길, 인공호수에 걸쳐있는 다리와 동상, 인간의 일생을 묘사해 놓은 분수, 남녀노소를 막론한 121명의 인간 군상들 조각, 17m, 260톤 규모의 화강암과 해시계 등 860m의 거리에 193개 조각품이 늘어서 있는 비겔란 공원이 깊은 인상을 줍니다. 이곳에 있는 조각품을 감상하며 산책하다 보면, 인생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들 작품을 조각한 구스타프 비겔란(Gustav Vigeland)은 “해석은 관람자의 몫”이라고 하면서, 작품 설명을 일절거부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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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놀이터가 필요하다 7
이주민들의 문화 번역 놀이터일상의 무늬 : 제3의 공간 쓸모없어지던 지하철역의 공중전화가 다시 이용자를 찾았다. 선 채로 전화기에 매달려 낯선 언어로 대화를 하는 이들.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작은 폭으로 높다가 낮아지는, 낮다가 높아지는 목소리 톤에서 그들이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 하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몸은 이 나라에 있지만. 그들은 이미 다른 나라에 있고 또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이들의 말소리는 지하철역을 잠시 동안이나마 다른 곳으로 만든다. 이곳과 저곳을 이어주는 제3의 공간.이들은 : 디아스포라를 형성하려 한다.위의 일시적으로 제3의 공간이 되는 곳과는 달리, 일상화된 곳이 있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안산에 내리면 길을 건너자마자 이국적 경관을 만날 수 있다. 한자로 써 있는 간판, 태국어로 손님을 호객하는 이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야채를 파는 식품점. 그리고 거리를 채우는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 내음. 대한민국이 아닌듯한 이곳은 안산 원곡동의 ‘국경 없는 마을’이다. 원곡동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반월 시화공단이나 주변 지역에 취업한 이주 노동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3만 5천 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필리핀, 몽골 등 국적도 다양해서, 주민들에 따르면 58개국에서 온 이주민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모국과의 연결망을 놓지 않은 채 정착지에서 자신들의 마을을 만들어나가는 곳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라는 원래 종교적 정치적 이유 때문에 모국에서 추방되어 다른 곳에서 주변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이주민들을 지칭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이유로 모국을 떠나 다양한 국가에서 살고 있는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이러한 디아스포라 덕에 국경을 넘지 않고도 이국적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주민들은 모국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한국 사회에 이식하면서 한국 사회의 문화적 풍토를 다양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디아스포라가 낭만적일 수만은 없다. 이주민들의 삶은 불안전하다.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이년이 지나 불법체류자가 되는 이들도 많고 무엇보다 이들의 주거 환경은 열악하다. 산업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던 시대의 ‘쪽방’을 이곳에서는 다시 볼 수 있다. 3층의 다가구 주택의 모든 방들은 하나하나 쪼개져 서로 다른 입구를 갖고 있다. 가구별로 지정된 화장실은 이 작은 집에 얼마나 많은 가구가 들어있는지 보여준다. 또 이곳은 슬럼화 되고 있다.
세계화 시대, 이제 우리는 많은 곳에서 일시적 혹은 생활화된 ‘제3의 공간’을 만나게 될 것이고 두려움도 빈번해질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이 낯선 이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진지한 ‘관계'를 맺을 것인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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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 홍제천 복원사업 통수식
서대문구 홍제천 복원사업 통수식Water poured into Hongje Stream서울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는 그동안 연중 말라있는 건천으로서 하천의 모습을 잃고 도심 속에서 버림받고 있던 홍제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고 지난 6월 26일 백련교 인근 둔치에서 통수기념식을 가졌다. 지난 2002년부터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왔던 홍제천 복원사업이 하천생태계 복원 및 도시환경개선의 목표와 주민들의 여망을 담아 지난 2006년 3월 첫 삽을 뜨게 되었고, 2년여 만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 홍제천 복원사업에는 기존 하천복원사업과 차별화된 다양한 조성기법이 도입되었는데, 한강내 하상여과시설 설치공법을 채택하여 깨끗한 하천수 공급은 물론, 별도 면적의 정수시설등 부대시설이 필요없게 만듦으로써 다른 하천의 물공급 방안의 모델을 제시했고, 하상 바닥 방수처리 공법을 배제하여 인근 지하공간에 부족한 물을 수시로 공급하도록 했다. 또한, 저수로 전체 폭을 물이 흐르는 단면으로 활용하고, 콘크리트 낙차공 제거 및 어류 이동 여울을 설치하였으며, 둔치의 기존사면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살리는 식생 방법을 사용하여 경사면 철거시 막대한 예산 낭비를 절감하고 홍수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안정된 버팀목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뿐만아니라 내부간선 고가도로가 통과하는 그늘 지역에는 일조량에 맞는 물억새, 노랑꽃창포, 노루오줌, 쑥부쟁이, 구절초 등 음지식물군을 선정하여 식재함으로서 환경적 단점을 보완했다. 그 외에도 최신식 노래하는 분수대와 하천 위 야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이용한 물레방아를 설치하였고, 안산자락에서 떨어지는 인공폭포는 홍제천을 찾는 주민들에게 한층 더 즐거움과 볼거리를 제공하게 되어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향후 야간의 아름다운 수변경관 연출을 위해, 조명은 내부순환도로 교각을 이용할 계획이다. 글 _ 백수현 기자|사진 _ 서대문구|디자인 _ 허옥경(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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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마름에 관한 연구 심포지엄
매화마름에 관한 연구 심포지엄A symposim for research of Ranunculus Kazusensis지난 2008년 7월 2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은덕문화원에서는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대표 양병이)가 주최하는 ‘멸종위기식물 매화마름에 관한 연구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시민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매화마을 군락지와 관련하여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식물인 ‘매화마름Ranunculus kazusensis Makino’에 대한 대책과 연구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이날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양병이 대표(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환영사에서 매화마름은 인간에 의해서 경작이 이뤄지는 논에서 서식하는 멸종위기식물로써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대표적 식물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매화마름이 멸종위기에 이르게 된 원인과 대책을 생각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최중기 위원장(강화매화마름위원회, 인하대 해양학과 교수)과 안덕수 강화군수가 참석하여 매화마름의 보존 필요성을 역설하며, 앞으로의 활동 뱡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이어 진행된 심포지엄은 총 3부로 나누어 전문가들의 발표와 참석자들의 질문이 교대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2부 순서에는 현진오 박사(동북아식물연구소 소장)가 좌장을 맡아 ‘멸종위기식물 매화마름의 생태적인 특성 연구발표’를 주제로, 2부에서는 ‘매화마름 관리복원과 생물 종 다양성’을 주제로 한 시간을 가졌다. 김석원 박사(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물자원센터)는 ‘조직배양을 통한 매화마름의 대량증식 및 초저온 장기보존’ 의 발표를 통해 유전자원의 반영구 보존과 보존 공간 및 노동력의 최소화, 배양과정의 유전적 불안정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초저온보존Cryopreservation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이를 위해서는 부분적으로 세포내 수분 함량을 낮추는 과정, 즉 탈수과정이 반드시 필요함을 밝혔다. 3부에는 매화마름 전문가들이 패널로 참석하여 매화마름의 보존에 대한 심도있는 토의와 자유질문 시간이 이어졌다. 글 _ 백수현 기자|사진 _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디자인 _ 허옥경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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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세계조경가연합회 총회
IFLA World Congress 2008, Apeldoorn, the Netherlands제 45회 세계조경가연합회 총회 소식이번 대회 주제Theme는 “물과 함께 변화를Transforming with Water”이었고, 네덜란드 조경가협회(NVTL; The Dutch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 주관으로 2008년 6월 27일부터 7월 3일까지 암스텔담 동쪽 기차로 약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아담한 역사도시 아펠돈Apeldoorn 시 소재 오르페우스 국제회의장Orpheus Congress Center에서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정원과 조경 트라이에날레(Triennial Apeldoorn: 100 days of International Garden Design and Landscape Architecture)” 기간에 맞춰 열렸다.
이번 대회 세계학생작품 공모전에서는 한국에서 2개 작품이 출품되었는데 아쉽게도 한국 학생들은 수상하지 못했다. 금년에도 세계 각국 학생들의 많은 관심 속에 326개의 작품이 응모되었는데, 그 중 179개의 작품이 중국 작품이었다. 5개국 조경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꾸려졌으며, 작년에 이어 우리나라 대표 조경설계사의 하나인 그룹한이 1등상을 후원하였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학생작품 심사를 미리한 후 수상 학생들을 시상식에 초청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으나 다만 어떤 상을 수상하는지는 미리 알리지 않았다. 최종심사결과 1등상(IFLA - Group Han Prize; 상금 3,500달러)은 스위스 학생, 2등상(IFLA 창립멤버 중 한 사람 “즈비 밀러”를 기념하는 상; 상금 2,500달러)은 네덜란드 학생, 3등상(상금 1,000달러)은 중국 학생이 수상하였다. 금년에는 학생 샤렛이 열리지는 않았으나 대신 워크샵 프로그램에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여 서너 시간 내에 간단한 작품 구상을 만드는 연습이 진행되기도 했다.
IFLA 총회 개막 전 3일 동안에는 회장단 회의Exco Meeting, 대표자 회의IFLA World Council Meeting, 지역대표 회의Region Council Meetings가 열려서 내년 브라질에서 열릴 제46차 세계대회 내용, 신규사업, 예산 등을 논의하였다. 특히 신입회원국으로 이란(아시아태평양지역) 영입건이 대표자 회의에서 가결되었는데, 이란 내 일부 조경설계가들이 현재 조경엔지니어 그룹이 주도하는 IFLA 회원 가입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일부 반대 의견이 있어 힘들게 통과되었다. 따라서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원으로 14개국(한국, 중국, 일본, 싱가폴, 대만,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이란)의 대표 조경기구가 참여하게 되었다. 글 _ 안동만 ·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IFLA 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 부회장|에디터 _ 백정희|디자인 _ 허옥경(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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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놀이터가 필요하다 5
우리는 누구나 놀이터가 필요하다 5A plug ‘ON’ playground for mother아기 엄마들의 플러그 ‘ON’ 놀이터일상의 무늬 : 시간을 기다리거나 쓰거나장면 하나동호터널을 빠져나와 올려다 본 약수터널 위의 숲. 그 숲 뒤에 숨은 주차장은 차가 빠져나간 낮에는 광장이 된다. 정신없는 출근시간과 등교시간이 지나고 난 후, 주 이용자인 아기엄마들이 한 명, 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늘을 찾아 수다를 떨고 아이들과 놀면서, 아이들의 하교와 남편의 퇴근을 기다린다. 중간 중간 가사일로 자리를 비우기도 하지만 많은 시간 그곳에 있다. 그런데 특정한 목적 없이 그곳에 있는 그녀들은 나른해 보이거나 권태로워 보인다. 장면 둘 춘천시 후평동 호반어린이공원에서 바자회가 있던 날, 공원에서 만난 아기엄마들은 바빴다. 우리밀로 만든 라면과 무공해 토마토를 팔았고, 아이들 얼굴에 그림도 그려주었고, 아이들을 모아놓고 동화책도 읽어주었다. 이들은 올해 봄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이날의 행사도 이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날이었을지언정, 지갑을 열어줄 어른들이 많이 찾지 않아 금전적으로 짭짤한 날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초 열었던 일일 호프집에서 천만원을 모았다니 프로젝트 진행에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하여튼 대단한 추진력과 실행력이 아닐 수 없다.
금호동의 아기엄마들은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고, 춘천시 후평동 아기엄마들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이들은 : 잠재된 기량과 에너지의 소유자들먼저 시간을 쓰고 있던 춘천시 후평동 아기엄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그녀들은 현재 모두 “아기엄마”라는 타이틀을 지니지만 ‘과거’와 ‘능력’은 제각각이다. 선생님이셨던 분도 있고 그림을 그리셨던 분도 있다. 또 누구는 기획력이 좋아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누구는 또 말을 잘해 지역방송과의 인터뷰를 전담한다. 또 누구는 타고난 친화력으로 구성원을 보듬어 조직을 이끈다. ‘어린이 도서관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도 의의가 있지만 그녀들의 잠재된 기량과 에너지를 끌어내는 촉매제라는데도 큰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금호동 아기엄마들은 기량과 에너지가 없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능력을 발휘할, 에너지에 불을 댕길 무언가, 어떤 꺼리가 없을 뿐이다. 누가 ‘과연 그럴까?’라고 묻는다면, 아주 당당하게 “예!”라고 대답할 순 없지만, “가능하다”라는 대답은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위의 장면 뒤에 있다.
저 위의 공간 한쪽에, 자투리 공간을 공원화하는 한평공원을 조성하면서 우리는 그녀들에게 ‘우리는 매일 이곳에 나올 수 없으니, 대신 한평공원 조성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녀들은 ‘우리가 무슨’이라면서 주춤했고, 부탁하는 우리도 반신반의 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우리의 부탁을 거뜬히 들어주었다. 주민들이 원하는 바는 뭔지, 어떤 시설을 원하는지, 한평공원 조성에 반대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전해주었다. 이같은 은근한 그녀들의 활약은 계속 이어졌다. 한평공원이 조성되고 몇 달 뒤 다시 그곳을 찾았더니 그녀들은 우리에게 자랑을 했다. “여기 공터 예쁘게 꾸며놓았는데, 저기 벽이 더럽잖아. 그래서 내가 벽에다 저렇게 화분 사다 놓았어.” 때늦은 후회, ‘아뿔싸, 이분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한평공원 조성을 이끌 수 있도록 할 걸’
금호동에서의 시행착오를 없애기 위해 우리는 호반놀이터 리노베이션 작업에 도서관 만들기 모임의 엄마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로 했다. 물론 그녀들도 우리의 권유에 동의했고 같이 하고 있다. 어린이 놀이터에서 바자회가 있던 날, 한쪽에서는 어린이들이 상상하는 어린이공원 그림 그리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앞으로도 그녀들의 활약은 쭉 계속 될 것이며 가을 놀이터 완공과 함께 ‘후평동 호반어린이공원 사랑 주민모임(가칭)’도 만들어질 것이다. 글 _ 김연금·커뮤니티 디자인센터, 유다희·공공미술프리즘 | 에디터 _ 손석범 | 디자인 _ 허옥경(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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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그 의미를 찾아서
여행...그 의미를 찾아서To find out the meaning of a journey
여기 호기심 많고 열정이 넘치는 23살의 한 의대생이 있다. 그는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4개월간 전 남미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결심한다. 낡고 오래된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모터싸이클에 몸을 싣고, 안데스산맥을 가로질러 칠레 해안을 따라 사막을 건넌 후 아마존으로 뛰어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채.당찬 각오로 시작된 이들의 여행은,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만만치 않은 현실에 부딪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유일한 이동 수단인 모터싸이클 마저 망가지면서 여행은 점점 고난 속으로 빠져든다. 이제 그들은 모터싸이클 대신 걸어서 여행을 계속한다. 여행을 하며 여러 곳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던 현실과는 다른 세상의 불합리함에 점차 분노하기 시작한다. 점점 퇴색 되어가는 페루의 잉카유적, 정치적 이념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몰리는 추끼까마따 광산, 라틴 아메리카 최대의 나환자촌 산빠블로에 이르기까지...이제 곧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 하지만 그들은 이 8개월간의 여행을 거치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자라남을 느낀다. 길 위에서 새로운 세상의 목마름을 깨닫게 되는 23살의 청년! 그가 바로, 훗날 역사상 가장 현명하고 인간적인 지도자로 추앙 받은 세기의 우상, 쿠바 혁명의 영웅이라 불리우는 ‘체 게바라Ernesto Guevara de la Serna’이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cle diaries』라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보고 한동안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생각해보면 소름끼치도록 신기하고 오묘한 일 아닌가. 그저 생활의 무료함을 떨쳐내려고 떠난 여행이 한 사람을 바꾸면서, 그 사람이 세계를 움직이는 지도자가 될 줄이야...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가?우리는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날까? 여행을 다녀 온 후에 얻는 것은 무엇일까? 여행을 다녀 온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의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여행을 통해 심신을 재충전해서 활력을 얻고 또 다시 자기 생활로 돌아가는 사람, 여행의 기억을 잊지 못해서 다시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사람, 그리고 여행을 가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 보통의 사람들은 첫 번째의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좋은 추억으로 둔 채, 삶을 살아가다가 문득 어떤 계기로 한 번씩 꺼내어 보는 그런 경우이다. 내 경우에는 마지막 경우의 여행이 되었지만, 그러한 경우는 흔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사람들은 현실에서의 어려움이나 답답함을 호소할 때 그 해결책으로 여행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늘 같은 모습인 것만 같은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정체된 일상들이 지겨워 질 때면 우리들은 어딘가로의 여행을 작정하고 또 실행하곤 한다. 나이 혹은 어떤 형태, 어떤 이유에서건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현실에서의 도피’ 혹은 ‘자기 위치에서의 벗어남’ 곧, 일탈을 꿈꿀 때 여행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일탈에 대한 열망은 어쩌면 현재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재를 좀 더 풍성하게 하고 새롭게 돌아보기 위한 잠시간의 휴식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것을 생각해본다면 현재의 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것이 여행에 우선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이 나의 무언가를 해결해 줄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여행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굳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 뜻을 훼손하기가 쉽다. 나의 경우만 보아도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면 내가 무엇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해외여행을 떠나든, 가까운 유원지를 가든 여행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행이란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그것을 깨닫고 느끼는 과정도 여행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돌아옴의 당연한 결과를 아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필수 조건이다. 글 _ 백수현 기자|디자인 _ 허옥경(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