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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 곤충의 숲
군마 현립 '군마 곤충의 숲'은 일년 내내 곤충을 관찰할 수 있고 실제로 곤충을 만져보고 학습할 수 있는 곤충 체험공원으로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1995년 가을에 계획이 되어 1997년 4월 현장 사무실 오픈 후 준공 때까지 군마현은 10여년 동안 관련 학자뿐만 아니라 거주자의 제안과 의견을 수렴하고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공간을 조성했으며, 최종 컨셉은 “Emotion shall bring up the human”라고 정했다. 프로그램 즐기기군마 곤충의 숲에서는 다양한 곤충 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군마 곤충의 숲을 더 즐기기 위해 일반 관람도 즐겁지만 군마 곤충의 숲에서 준비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해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즐기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미리 예약을 할 수도 있고, 그 날 참가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으며, 시간별, 계절별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필자가 방문했던 4월에는 한참 봄을 위한 나비의 생태에 대한 체험과 이미지가 전체 컨셉이었는데, 지금은 “가을야산(野山)곤충전”이 한창이라고 한다.
SATOYAMA군마 곤충의 숲에는 ‘SATOYAMA(里山)’를 복원한 45ha에 이르는 필드가 있다. 'SATOYAMA'란, 말 그대로 야산이란 뜻으로 SATOYAMA는 곤충을 시작으로 한 어떤 생물들에게 있어서도 살기 쉬운 장소로 계획되었다. SATOYAMA는 숯이나 낙엽 퇴비를 모으기 위해 정기적으로 벌채를 하는 등 인간의 손에 의해 관리되는 졸참나무나 상수리나무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수목이 있는 잡목림존, 말 등의 사료 채집으로 정기적으로 베어지고 있는 넓은 초지와 시냇물로부터 수로를 연결해 논에 물을 끌어들이거나 관개용으로 사용되는 연못 있는 뽕밭존과 후지산 소(沼)존이 있다. 그리고 출입금지 지역인 수전(水田)존으로 구성되어 있다. 뽕밭존은 생활이 가능한 야산을 재현한 곳으로 생활에 꼭 필요한 모옥(茅屋), 즉 초가집을 재현하고 이를 군마현의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전형적인 민가(농가)의 모습을 위해 정원석, 정원수, 울타리까지 연출하였으며, 체험뿐만 아니라 주위에는 직접 농사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컴포스트나 연못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곤충 관찰관자연을 연출한 이곳에는 대형의 현대 건물이 눈에 띄는데 이는 ‘군마 곤충의 숲’의 유명한 상징인 돔형의 건축물, '곤충 관찰관'이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그의 특징답게 표면이 매끄럽고 윤이 나는 노출콘크리트 기법을 사용하였으며, 유리돔의 반은 온실을 덮고 있고 반은 지붕으로만 활용되어 야외 계단을 덮고 있는 형태이다. 각 건물의 이름 표현도 노출콘크리트의 구성을 살려 스틸로 깔끔하게 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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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공원(一坪空園) 찾기 시작, 술래잡기 시작
도시의 전유와 일곱가지 놀이터
도시의 한 볼라드에 앉아 세상 구경을 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길가에 앉아 수다를 떠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시장 한편에서 바둑을 두고 계시는 아저씨들을 보면서 “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도, 아저씨에게도 놀이터가 있어야 한다니까” 연재를 시작하게 된 동기다. 물론 그들은 나름대로 도시의 자투리 공간을 잘 찾아서 놀고 있었다. ‘세르토(de, Certeau)’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획된 ‘개념도시’에서 우리의 이웃들은 자신들만의 놀이를 풀어내고 있었다. 세르토는 마음대로 걷기를 통한 도시의 전유를 개념도시에 저항하는 것으로 보았다면, 우리의 이웃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주어진 규칙과 법칙에서 벗어나 자신의 방식대로 도시를 다시 쓰고 있었다.
연재를 진행하면서 놀이란 그들만의 자생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라는 것을, 놀이터란 자신들만의 문화를 펼칠 수 있는 문화의 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들의 놀이터를 제안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그들에게 말을 걸기도 했고, 관련 문헌을 뒤적이기도 했고, 해당 전문가를 찾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았다. 많은 생각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생각을 이루는 것 또한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일곱 달 동안 일곱 가지의 놀이터를 제안했다.
함께 놀이터 만들기 ‘한평공원(一坪 空園)찾기 시작, 술래잡기 시작’
그런데 우리의 의도가 가장 크게 어긋난 것은 우리의 그들에 대한 이해와 문화 읽기가 날카롭지 못하다거나 우리의 상상력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는 데 있기 보다는, 우리 또한 다른 방식으로 개념도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마지막회는 이 아이러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의 이웃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상상하도록, 그들 자신의 공간 전유 방식을 보다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제까지 빈 공간에 무언가를 채우는 놀이터를 제안했다면 이번에는 비울 것을 제안한다.
누구나 마음대로, 상상대로 즐길 수 있는 공간, 우리 이웃들의 자유로운 이용이 누적되어 그들만의 놀이터가 되는 빈틈이 우리 도시에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 곳에 가장 가까운 곳이 공원일텐데, ‘공원(公園)’이라는 타이틀조차도 없는 그런 공원(空園)이 더 좋을 듯 싶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도시를 개념화하고 치장하는 것에서 한발 물러나 한 평이라도 비워둘 것인지를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우리는 이 도시에서 술래잡기를 시작하면 된다. 왜 술래잡기냐고? 술래잡기를 시작하는 순간, 우리가 현재 있는 이 방은, 사무실은, 강의실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온통 ‘숨을 수 있는 공간’과 ‘들키는 공간’으로만 보인다. 즉 ‘숨기’라는 규칙 속에서 이 공간은 재구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숨을 곳을 찾는 것처럼, 각자 자신에게 적당한 ‘놀 곳’을 찾자. ‘놀이’라는 안경으로 이 도시의 숨겨진 한 평을 찾아서 놀자. 할아버지는 세상과 교감할 수 있는 곳을, 청소년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을, 이주민들은 두고 온 고향에 대한 향수를 해소할 수 있는 곳을, 놀면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그러나 자신의 어느 곳에 잠재되어 있는 어떤 에너지를 발산해보자.
(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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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원 기행
(사)한국전통조경학회(회장 신상섭)는 2008년 8월 5일부터 9일까지 중국 서남부지방의 정원을 학술 답사하였다. 이번 답사의 참가인원은 64명으로 올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중국 복건성의 집합주택인 토루(土樓)와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199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무이산(武夷山)이 이번 답사의 포인트이다. 이전에도 몇 번 중국을 여행한 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주로 중국의 정원유적을 찾아다녔는데 이번 여행은 세계문화유산이 두 곳이 포함되어 있어 좋은 기회가 되었다.
첫째 날(8월 5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9시 30분 비행기에 몸을 싣고 2시간을 이동하여 도착한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중국의 상해(上海)이다. 상해 공항에 도착해 만난 가이드는 키는 작지만 당차보이는 여자분이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인원이 많은 관계로 두 대의 버스로 움직였으며 가이드도 2명이 함께 하였다. 상해에서 간단히 한식 점심식사를 한 후에 버스를 타고 3시간동안 이동하였다. 중국이 워낙 땅이 넓어 계속 상해인 줄 알았으나, 차는 이미 태호석의 고향인 무석(無錫)으로 들어와 있었다.
억누름과 펼침의 공간
첫 번째 답사지는 무석시의 서쪽에 있으며, 강남의 유명한 정원의 하나인 여원이었다. 여원은 정원의 면적이 약 2/5가 물로 이루어져 수경(水景)이 유명하며, 무석에서 태호석이 생산되어서 그런지 태호석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공간구성을 연출하고 있었다. 여원을 통해서 처음으로 중국의 강남정원을 접할 수 있었다. 태호석으로 이루어진 하얀 공간, 곳곳에 비밀통로와 수경관이 북방의 거대한 정원과는 달리 풍부한 볼거리로 가득찬 것이 강남정원의 특색인 것 같았다. 특히 태호석으로 만들어진 비밀통로가 시야를 누르고 펼쳐지는 중국전통기법으로 만들어져 재미와 신기함이 더해지는 곳이었고 여원 안을 돌아다니며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중국 정원이 너무 넓고 시간이 많지 않아 깊은 감상은 어려웠으나 말로만 듣던 강남정원을 보는 시간이 즐거웠으며, 무더위에 타는 피부와 흐르는 땀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겨울같은 봄의 정원
여원을 감상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30분을 이동하여 매원에 도착하였다. 시간이 많지 않아 일부만 돌아봤는데 전통정원과 현대정원이 공존해 있는 곳이었으며, 우리가 갔을 때는 8월이라 매화꽃을 감상하기는 어려웠지만, 기회가 되어 매화꽃이 피는 봄에 온다면 넓게 펼져진 정원에 심겨진 매화나무 4천여주와 화분에 심겨진 2천여주의 매화나무가 장관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매원 안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니 멀리 여원과 태호도 보이고 저녁때라 석양을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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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네일 이미지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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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몬테레이시 제3제철박물관(Museo del Acero Horno3 Monterrey)
1986년 멕시코의 몬테레이시는 공장을 포함한 1.5ha의 상공업지역을 새로이 개척하기 위해 본 프로젝트를 계획하였고, Surfacedesign은 기능을 상실한 용광로 공장과 그 주변 지역을 강철생산과 관련된 역사기념박물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Harari Arquitectura y Paisaje와 협력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건축은 Grimshaw Architect에서 담당하여 21세기형의 모던한 스타일의 구조로 완성하였다. 주변 구조물들의 자재들은 현지에서 많이 활용하였다고 한다. 비를 저장할 수 있는 우수관리시설이 적용된 옥상녹화시설을 포함해 현대적인 정원설계에 신선한 시도를 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부지 전체에는 과거 활발했던 공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강철의 역사와 느낌을 볼 수 있도록 철로 제작된 갖가지 구조물들을 설치해 두었다. 또한 부지의 경계를 구분짓기 위해 작은 수로를 만들어 물이 흐르도록 하였는데, 건기에는 물을 저장하여 사용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철광석으로 제작된 프레임의 블록형태 구조물들을 연속적으로 배열하였고,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은 철판으로 특수제작하여 설치하였다. Project Title _ Museo del Acero Horno3Client _ The City of Monterrey, MexicoLandscape Architects _ Surfacedesign Inc.+ Harari arquitectos Architect _ GrimshawAssociate architect(s) _ Oficina de Arquitectura, S.A. de 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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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man Residence
Surface design은 정원을 예술적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따라서, 정원공간을 예술적으로 보다 돋보이게 하기 위해, 철로를 이용하여 움직일 수 있는 구조물로 스파 커버를 설치하였으며, 전체적으로는 조용하면서도 많은 관리가 필요치 않은 정원을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프로젝트는 ASLA 2007 Professional Awards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5년 여름, Surfacedesign은 클라이언트인 Mark Erman 씨가 샌프란시스코의 노 밸리(The Noe Valley, San Francisco)에 장만한 그의 집의 정원을 새롭게 조성해달라는 요청으로부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이 정원은 25피트 너비, 50피트 길이의 공간이었다. 14피트에 이르는 펜스가 서쪽방향으로 지어졌으며, 집은 4층으로 뒤뜰이 잘 보이는 구조로 배치되어 있었으며, 정원은 실제 보다 더 작고 아담하게 보일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다. 스파가 놓여진 곳부터 집까지 설계자들은 3가지 중요한 요소들로 정원을 구분하였다. 석재 테라스(Stone Patio)를 스파 뒷편에 있는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까지 연결하여 실내외 인테리어의 구분을 시각적으로 좀 더 확대하였으며, 그 이동공간의 가운데에는 규칙적으로 배열한 넓은 석판을 두었다. 20피트 높이의 작은 대나무숲을 조성하고, 부분적으로 잔디류(Mondo Grass)를 심어 봄의 새로운 생명력과 겨울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같은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도록 했다. Location _ San Francisco, CaliforniaClient _ Mark Erman Landscape design _ Surfacedesign inc.Landscape Contractor _ 5 Elements DesignPhotography _ Jeremy Harris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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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빙겐 정원박람회
8월호의 독일 리트베르그 정원박람회와 9월호의 쇼몽 가든 페스티벌에 이어, 이번호에는 독일 빙겐 정원박람회를 소개한다.빙겐 역시 리트베르그와 마찬가지로 독일 정원박람회의 원칙에 충실해, 지역의 활성화를 꾀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 차원에서 정원박람회가 기획되었다. 독일 라인강 중류에 위치하고 있는 빙겐이 정원박람회 부지로 주목한 땅은, 과거 라인강을 오가는 선박들이 항구로 이용했으나 지금은 쓸모를 다해 새로운 손길이 필요했던 곳이다(예전에는 강의 수심이 깊지 않아 빙겐까지만 선박의 운행이 가능해 이곳 항구가 물류 수송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강폭도 넓어지고 수심도 충분하게 정비를 해서 물류 항구로서의 기능이 사라져 버렸다). 철도와도 연계된 부지에는 대형 창고들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뿐, 이 땅이 가진 경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는 전무했다. 바로 강 건너에 라인강의 진주로 불리는 뤼데스하임의 유명한 경사지 포도밭과 1871년에 이루어진 독일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니더발트 고원의 게르마니아 여신 기념비, 철새 골목길 등이 있고, 인근에는 노래로도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이 있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음에도, 빙겐은 뤼데스하임과 주변의 활기를 강 너머로 옮겨오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빙겐이 위치해 있는 라인강 중류는 로맨틱 라인으로 불리기도 할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고, 유람선도 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어, 여러 가지 면에서 관광 잠재력이 큰 곳이다. 하여 빙겐은 정원박람회를 통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인접한 관광자원을 활용해 관광거점도시로서의 변모를 꾀하는 한편, 지역주민들에게 강변을 되돌려주는 작업을 시도했다. “강변도시는 강변에서 시작한다”는 선언적 문구를 내세우며, “자연과의 공생, 문화경관의 창조”를 기치로, 강변 일대의 재정비를 실시해 도시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고자 한 것이다. 강변을 따라 정원박람회장이 구상되어, 대상지는 자연스럽게 선형의 구조를 띄게 되었다. 2.7km의 박람회장 부지(면적 24ha)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강변과 맞닿은 곳은 강 건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산책로가 꾸며졌고, 박람회 기간 동안에는 이색적인 볼거리들도 선보였다. 박람회 조성 전의 사진을 찍었던 위치에 과거의 사진과 현재의 달라진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세워둔 프레임이나, 강 건너 경사지 포도밭 풍경을 이용한 그래픽 작업 등이 바로 그것인데, 이것들은 모두 강변에 대한 주목에서 시작된 것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강 너머로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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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通度寺)
통도사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번지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 선덕여왕 15년에 자장대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고려말, 18~19세기 수차의 중수 및 정비로 인해, 공간적, 지형적, 기능적으로 독특한 가람배치를 완성하면서, 경내에서의 일주문, 천왕문, 영산전, 불이문, 대웅전, 금강계단, 명부전, 구룡지 등이 복거의 조건을 환경미학적으로 연계시키면서, 현재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하고 있는 불보사찰로서의 격을 갖추고 있다.造營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대사(慈藏大師)에 의해서 창건된 사찰로 크게 3단계의 조영변화를 가지는 바, 창건기(646)에는 자장대사의 수도처에서 성聖의 공간영역으로 구체화하는, 즉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사리탑인 금강계단을 신앙의 중심으로 둔 시기로, 선덕여왕과 함께 사지(寺地)로서 선정하여 금강계단과 대웅전, 대광명전, 영산전이 조영되었다. 이후 1305년 불이문, 천왕문, 일주문이 조영되면서, 현재와 같은 진입체계를 갖추게 되고, 1317년 대광명전 앞에 황화각이, 1340년에 감로당이, 1341년에는 원통방이 조영되었다. 한편 1369년 대웅전 앞에 명부전을 필두로 대광명전 앞에 용화전, 영산전의 좌우로 극락보전과 약사전을 건립함에 따라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하는 상로전,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하는 중로전, 영산전을 중심으로 하는 하로전으로 나누어져 각각의 영역이 독립성을 갖게 된다. 이후 1761년 산령각, 1870년 삼성각 등의 민간신앙 전각이 경내에 들어오면서 불교가 민간신앙을 포용하는 태도를 보이며, 한편 1725년 관음전의 조영된 후, 대광명전 일대의 공간구성이 대웅전으로 향하는 공간의 진행축이자 시선의 축과 직교하는 공간축을 완성하여 중로전의 위계가 확립됨과 아울러 상로전의 금강계단과 중로전 사이는 개산조당, 해장보각의 건립으로 유기적 상관관계를 갖게 되었다.立地 통도사는 백두대간의 큰 마디를 이루는 태백산에서 분지한 낙동정맥(洛東正脈)이 이어지는 가지산, 신불산을 거친 해발 1,050m의 영축산(靈鷲山)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풍수적으로는 영취산 정두는 관모(官帽)를 올려놓은 금체토두(金體土頭) 모습을 띄고 있으며, 여기에서 이어지는 정맥은 원효산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변환경으로는 취운암, 보타암, 자장암 등이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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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틱해에서 쓴 편지
K형! 발틱해에서 이 글을 씁니다.발틱해는 아시다시피 북위 54도~66도, 경도 5도~30도상 유럽 북쪽에 위치합니다. 서쪽으로는 북해와 노르웨이해와 맞닿고,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남쪽으로는 덴마크, 독일, 북쪽으로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를 끼고 위치해 있습니다. 그동안 세계의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지만, 이번 여행만큼 특별했던 여행도 흔치 않았던것 같습니다. 21세기 세상사에 때묻지 않은 곳, 도시의 문명이 주요도시에 존재하긴 하지만 그래도 서방세계나 미국, 일본지역 등에서 볼 수 없는 자연과 인심이 묻어나는 곳, 그런 대상지들을 수많은 격랑을 겪어왔던 중년시대를 넘어, 동반자와 함께 떠나니 더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난 1998년 부도를 맞고 갠지스강에서 형에게 편지를 쓸때만 해도, 2003년 대수술로 사경을 헤맨 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쓸때만 해도, 피로와 고뇌가 축척된 상태에서 썼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50대 후반기를 훌쩍 넘어 다시금 형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저 아름다운 자연에 심취되어 세상을 폭넓게 관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번 여정은 7월 16일~27일까지로, 첫날은 모스크바에서 원인도 모르는 비행기 결항으로 싸늘한 로비 바닥에서 고생하면서 보냈고, 다음날부터는 다행히 순조롭게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릴레함메르, 그리고 피오르드가 시작되는 중심도시 베르겐과 수백㎞에 이르는 피오르드 협곡에서 구심점을 이루는 소도시인 보스, 구드방겐, 나르달, 플롬, 미르달, 야일로, 헬싱보르에 이르는 멋진 주로 자연탐방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은 다소 모험심으로 흥분되면서도 위험요소가 따를 수 있는 실자라인(silza line)을 따라 움직였던 코펜하겐과 스톡홀름, 그리고 핀란드 투르크와 헬싱키의 여정이 이어졌으며 귀국길에 문화와 예술의 아름다운 도시 페테르부르크에서의 일정이 있어서 여행을 더욱 의미있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 중 보았던 도시경관들은 가는 곳마다 이색적이었고, 농촌이나 산촌의 자연경관들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익사이팅(exciting)한 것들이었으며, 문화적 측면에서는 현대의 조경을 보는 눈을 자연으로 돌려서 사물을 원초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당연성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K형!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해서는 “노르웨이가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 있듯이 내가 세계지도상 최북단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노르웨이라는 나라는 인구 490만명에 면적이 한반도의 2배나 되고 해안선은 피오르드를 포함하면 2만㎞가 넘고, 북쪽 끝 ‘노르카프곶’에서 남쪽 끝 ‘크리스티안산’까지는 직선거리로 1,750㎞에 이르는 긴 나라입니다. 해안선은 내륙으로 최대 200㎞나 들어가고, 해발 1,000m의 높은 절벽이 수면에서 곧게 솟아있는 피오르드 지형주위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최고의 관광명소였습니다. 오슬로는 외해에서 100㎞쯤 떨어진 피오르드 깊숙한 곳에 있는데 한 나라의 수도치고는 깨끗하며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녹음이 풍부하고 조용한 도시여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투명한 공기, 하얗게 빛나는 도시의 햇볕속에서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눈으로 보는 듯했습니다.
오슬로에서는 중앙역을 뒤로하고 곧게 뻗어있는 칼 요한거리가 제일의 번화가이면서 시내관광의 중심인데 그 끝나는 지점에 공원으로 둘러싸인 왕궁 ‘데트 콩젤리제 슬로트(Det Kongelige Slott)’가 보입니다. 노벨평화상이 매년 주어지는 시청사 건물과 그 안의 유럽에서 제일 크다는 거대한 유화(24×12.6m)가 눈길을 끕니다. 1층과 2층에도 다양한 벽화가 있고, 2층에는 노르웨이가 낳은 위대한 화가 뭉크의 “인생”이란 그림이 실려 있어 매년 12월10일 수여하는 노벨평화상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또한 오슬로에서는 정면입구부터 보리수가로수길, 인공호수에 걸쳐있는 다리와 동상, 인간의 일생을 묘사해 놓은 분수, 남녀노소를 막론한 121명의 인간 군상들 조각, 17m, 260톤 규모의 화강암과 해시계 등 860m의 거리에 193개 조각품이 늘어서 있는 비겔란 공원이 깊은 인상을 줍니다. 이곳에 있는 조각품을 감상하며 산책하다 보면, 인생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들 작품을 조각한 구스타프 비겔란(Gustav Vigeland)은 “해석은 관람자의 몫”이라고 하면서, 작품 설명을 일절거부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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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놀이터가 필요하다 7
이주민들의 문화 번역 놀이터일상의 무늬 : 제3의 공간 쓸모없어지던 지하철역의 공중전화가 다시 이용자를 찾았다. 선 채로 전화기에 매달려 낯선 언어로 대화를 하는 이들.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작은 폭으로 높다가 낮아지는, 낮다가 높아지는 목소리 톤에서 그들이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 하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몸은 이 나라에 있지만. 그들은 이미 다른 나라에 있고 또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이들의 말소리는 지하철역을 잠시 동안이나마 다른 곳으로 만든다. 이곳과 저곳을 이어주는 제3의 공간.이들은 : 디아스포라를 형성하려 한다.위의 일시적으로 제3의 공간이 되는 곳과는 달리, 일상화된 곳이 있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안산에 내리면 길을 건너자마자 이국적 경관을 만날 수 있다. 한자로 써 있는 간판, 태국어로 손님을 호객하는 이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야채를 파는 식품점. 그리고 거리를 채우는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 내음. 대한민국이 아닌듯한 이곳은 안산 원곡동의 ‘국경 없는 마을’이다. 원곡동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반월 시화공단이나 주변 지역에 취업한 이주 노동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3만 5천 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필리핀, 몽골 등 국적도 다양해서, 주민들에 따르면 58개국에서 온 이주민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모국과의 연결망을 놓지 않은 채 정착지에서 자신들의 마을을 만들어나가는 곳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라는 원래 종교적 정치적 이유 때문에 모국에서 추방되어 다른 곳에서 주변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이주민들을 지칭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이유로 모국을 떠나 다양한 국가에서 살고 있는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이러한 디아스포라 덕에 국경을 넘지 않고도 이국적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주민들은 모국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한국 사회에 이식하면서 한국 사회의 문화적 풍토를 다양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디아스포라가 낭만적일 수만은 없다. 이주민들의 삶은 불안전하다.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이년이 지나 불법체류자가 되는 이들도 많고 무엇보다 이들의 주거 환경은 열악하다. 산업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던 시대의 ‘쪽방’을 이곳에서는 다시 볼 수 있다. 3층의 다가구 주택의 모든 방들은 하나하나 쪼개져 서로 다른 입구를 갖고 있다. 가구별로 지정된 화장실은 이 작은 집에 얼마나 많은 가구가 들어있는지 보여준다. 또 이곳은 슬럼화 되고 있다.
세계화 시대, 이제 우리는 많은 곳에서 일시적 혹은 생활화된 ‘제3의 공간’을 만나게 될 것이고 두려움도 빈번해질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이 낯선 이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진지한 ‘관계'를 맺을 것인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