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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길과 정(情)
    10년 전 쯤 지인의 소개로 부산을 처음 여행했다. 부산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해운대였다. 하지만 해운대 근처는 가지도 못했고, 지인은 시장골목과 용두산을 소개했다. 8월 초 (사)한국전통조경학회의 편집위원회를 부산에서 개최한다고 하길래 내심 휴가라 생각했다. 편집위원장은 부산 동아대학교의 강영조 교수님이다.편집회의를 마친 후, 강 교수님은 일상의 부산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내심 바다를 보고 싶었으나, 부산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해운대쪽을 바라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향한 곳은 국제시장, 부평시장, 깡통시장, 자갈치시장이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여러 장소를 접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매력적이고,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풍경 안에서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부산의 시장은 골목길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인간적 척도에서 경관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그 골목길은 서민들의 삶이 있고 정이 있는 곳이다. 같은 상품을 판매하지만 소통과 배려가 있는 곳이다.대학원 시절, 경관론 수업시간에 했던 첫 번째 과제는 서울 피맛골의 경관맵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골목길 마니아가 되었다. 골목길만 나타나면 발길을 옮긴다. 피맛골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왠지 사람을 끄는 따뜻한 정(情)이 느껴진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이 말을 타고 종로를 지나갈 때 서민들이 행차를 피해 들어가 음식을 먹던 골목이다. 이후 이곳은 서울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묻어나는 장소가 됐다. 골목길 모퉁이 허름한 술집에 들어가 보면 ‘OO과 OO가 사귄 지 100일’, ‘젊음이여 영원하라’ 등 벽마다 빽빽하게 적힌 낙서를 만나게 된다. 정다운 사연을 담은 수많은 낙서가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낙서는 골목길 곳곳을 메우고 있다. 아쉽게도 재개발로 이전에 북적거리던 술집은 거의 사라졌지만 몇 집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피맛골에 들어서면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인상적이다. 처음 가본 사람은 미로와 같은 골목길에서 방향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서울의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과거로의 여행이라 할까. 피맛골은 서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비계획적 장소다. 계획된 장소는 도로의 선이 기하학적인 반면 비계획적인 장소는 그 선이 부정형적이다. 마치 물고기가 자유롭게 유영하듯, 흘러갈 때는 흘러가고 모일 때는 모이는 자연스러운 장소가 연출된다. 이곳의 친근한 골목길, 투박한 막걸릿잔, 술집의 낮은 천장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피맛골에 비하면 인접한 인사동거리는 상당히 세련된 곳이다.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를 한글로 써 붙인 커피 가게의 ‘애교’도 인사동거리에선 어색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골동품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인사동거리는 2000년 역사문화탐방로 조성공사로 거듭났다. 골동품 가게와 갤러리, 찻집, 뒷골목 전통 음식점과 현대적 술집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사동 남단 들머리에 가면 일월오악도상이 세워진 광장이 있다. 가끔 자선단체들이 공연을 하는 이곳에서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이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 옆에 인사동문화마당이 있다. 직선으로 뻗은 인사동거리에 여울과 소물고기가 모여 있는 웅덩이의 역할을 하며, 작은 규모지만 대나무 숲이 조성돼 있어 운치가 있다. 인사동의 묘미를 만끽하려면 과감히 골목길로 발길을 옮기는 것도 좋다. 예기치 않은 공간에서 고즈넉한 카페와 갤러리들이 얼굴을 내밀고 사랑의 밀어(蜜語)를 속삭인다.
  • 죽음이 공존하는 삶의 정원
    “강은 변함없이 묵묵히 흐르고 있다. 강은, 이윽고 재가 되어 자신 속에 흩뿌려질 시신에도, 머리를 그러안고 꼼짝도 않는 유족 남자들한테도 무관심했다. 이곳에서는 죽음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이 똑똑히 느껴졌다.”요즈음에 읽은 소설의 어느 한 구절을 옮겨보았습니다. 갠지스 강(Ganges R.)과 그 강변풍경을 묘사한 구절입니다. 힌두교도들에게 갠지스 강은 성스러운 어머니의 강입니다. 강은 죽어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어머니의 너른 품이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을 화장하여 그 재를 강에 뿌리는 장례풍습이 갠지스 강가에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또 강은 산 자들과 함께 있습니다. 아이들은 헤엄을 치고 여인들은 강변에서 빨래를 합니다. 순례자들은 강물에 몸을 담그고 기도를 합니다. 아이들의 외침과 빨래하는 여인들의 고단함이 죽은 이를 잊지 못하는 슬픔과 뒤섞여 강물을 따라 흐르고 있을 테지요. 위에서 인용한 문장처럼, 갠지스 강에는 죽음이 산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있습니다.얼마 전에 갠지스에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다시는 갠지스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주검이 산 사람들의 일상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수습되는 갠지스 풍경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 때문에 귀국해서도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곳에 가기 전에 그는 갠지스의 장례풍습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는 예상하지 못했던 수치스러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죽음을 대면한 듯했습니다. 죽음은 그에게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병원과 장례식장과 화장시설을 찬양했습니다. 도시인들의 주검을 깔끔하게 처리해주는 시설들 말입니다. 그는 깔끔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강가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죽음을 떠올렸습니다. 너 또한 반드시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갠지스 강이 묵묵히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한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죽음을 어떻게 대우해야 마땅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유족들의 비탄 곁에서 자신이 한 주검을 향해 품게 된 수치스러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 홍성 사운고택
    홍성 사운고택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산성리 309번지 일원에 위치한 13,860㎡의 민가주택으로, 17세기 후반 조태벽(趙泰碧, 1645~1719)이 조영한 이래 조중세, 조응식 등에 의해 중건 및 정원 조영이 이루어졌다. 가옥의 전체 구성은 중부지방 가옥의 평면구성에 남도풍이 가미된 것으로 안채, 사랑채, 대문채, 안사랑채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198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Hongseong Saun old house which is located in 309, Sanseong-ri, Janggok-myeon, Hongseong-gun, Chungcheongnam-do has an area of 13,860m². There has been reconstruction and gardening by Cho, Jung Se, Cho, Eung Sik and etc since the construction in the latter half of the 17th century by Cho, TaeByeok(1645~1719). It has the ground plan type of the central part of Korea adding the type of the southern part. The aesthetic of adap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on Anchae, Sarangchae, Daemunchae and Ansarangchae. It was appointed as Important Folk Material no.198 in 24th of December, 1984.
  • 별들의 향연
    Feast of Star 지루한 장마 끝에 해가 떴다. 비바람 속에 나무들도 제 옷을 입는다. 소나무 줄기는 빨간 빛을 발하고, 백합도 핀다. 하늘은 떠오르는 태양과 구름이 함께 신비스러운 장관을 펼친다. 오늘 밤은 별이 뜨기를 기대해 본다. 별은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밤하늘에 수놓은 향연을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밤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는 별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토해 놓는다. 바다에서 길 잃은 사람들에게 반짝이는 별은 등대가 된다.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의 향연을 보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장소에 대한 생각이 든다. 이들은 철학, 미술, 지리학, 건축, 조경 등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주제이다. 투안, 슐츠, 하이데거 등을 논하기 전에 필자는 시를 떠올린다. 지구로 보내온 별빛. 그 별은 이미 사라졌다. 그 빛을 바라보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뱃속의 아이. 더욱 시간이 흐른 뒤에 그 별빛을 바라보았던 바닷가를 기억하면 우리는 몇 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일까. 별과 나는 하나가 되어 그 차원의 세계를 다시 만난다. 자연은 어머니의 품이다.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존재의 고향이다. (중략) 1년 전쯤 전주 근교에 있는 시골로 이사를 갔다. 필자가 살고 있는 동네는 나무를 키워 생계를 유지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초록바다이다. 이동통신도 되지 않는 우리 집터 덕에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오로지 만남뿐이다. 사람들은 ‘갑갑하지 않냐’고 말을 하지만 어느덧 난 이곳 생활에 적응을 했다. 이곳 생활에서 즐거운 것은 사계절 먹을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겨울이 지나가고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는 것은 매실이다. 매실이 지고 나면 살구가 있고, 그 다음은 자두가 있다. 자두를 지나가면 복숭아가 있고, 그 다음 차례는 사과와 배 그리고 감이 있다. 그렇게 자연의 맛을 느끼면 어느 덧 한해가 간다. 이사를 오고 나서 나의 생활 태도는 바뀌었다. 차를 타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차를 구입했지만 1년에 만 킬로미터도 타지 못했다. 그것도 잦은 지방출장으로 인한 것이다. 전주를 갈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보는 경관이 즐겁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 시내를 나갔다. 간만에 나가는 외출이라 예전의 길을 걷고 싶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가슴이 애절한 것도 있고 막힌다는 느낌이 들었다. 큰길가를 나가면 우뚝 서 있는 건물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 눈은 초록빛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회색빛 도시 등 온갖 미사여구를 쓰며 초록이 아름답다고 했던 나의 작품들이 쓰레기처럼 여겨졌다. 그 때는 회색빛 도시를 알지 못했다. 숨통이 막힐 것 같은 시내를 벗어나니 내 영혼이 맑아지는, 아니 안도의 숨이 뿜어져 나왔다.
  • 메세나폴리스의 밤
    The Night of Mecenatpolis 2006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중네트워크센터(현 다중지성의 정원)는 합정역 2번 출구에서 1분 거리에 있는 작은 건물의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여 질 들뢰즈(Gilles Deleuze),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철학책들을 읽거나 안토니오 네그리(An tonio Negri)의 정치학을 공부하거나 칼 맑스(Karl Marx)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던 때였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합정역 모퉁이에 자리 잡은 마포 순대집에서 떡볶이나 만두, 순대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고 더운 날에는 다중네트워크센터 바로 앞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늦게까지 뒷이야기를 이어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물주가 갑자기 방을 비워달라고 했다. 아직 계약 기간도 남아 있던 때였다. 이 지역이 재개발지구에 포함되어 머지않아 철거가 된다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근처에 있는 현재의 ‘다중지성의 정원’ 자리로 이사를 했다. 우리가 떠나가고 수년 동안 합정동 개발예정지구는 사람이 살지 않는 썰렁한 유령지구로 남아 있었고 쓰레기만 높이 쌓여가고 있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면 우리가 모여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던 호프집이 부동산으로 바뀐 것이었다. 그로부터도 몇 년 뒤인 2012년에야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하늘을 찌를 듯이 수직으로 높이 솟은 주상복합아파트 세 동이었다. 그것은 주변의 낮은 빌라촌 건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로변에 들어선 꽤 높은 오피스텔 건물들까지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메세나폴리스라 불린 이 빌딩들이 들어선 이후 부근 서교동으로부터 한강으로 열리던 시선은 시커멓게 가로막혔고 한강 남쪽에서 북쪽으로 들어올 때에 상상력을 자극하던 북한산의 모습도 묻혀버렸다. 이로써 산과 강에 대한 조망은 입주자들의 독점적 전유물로 되어 갔다. 메세나폴리스는 2012년 한 해 동안 종양세포처럼 이웃세포들의 가치를 침식하며 더 분명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자신의 우월성과 승리를 증명해 갔다. 그 내부는 이탈리아산 천연무늬목 가구, 스페인산 거실바닥 대리석, 프랑스산 조명, 일본산 벽지, 독일산 원목마루 등의 소재들로 장식되어 있다고 했다. 남다름을 보여주긴 위한 것이리라. 차별주의는 내부 장식 소재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77가구의 임대아파트 주민이 사용하는 별도 출입구를 설치하고 커뮤니티 이용을 제한하려한 시도에서 그 차별주의는 인종주의적인 것으로까지 발전했다. 무술유단자인 경호원들을 배치하여 24시간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통제하는 것은 이 차별주의를 보안하는 장치일 것이다.
  • 제주 목관아
    Jeju Mokgwana 제주 목관아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3번지에 위치하며, 면적 19,533㎡의 조선시대 지방 통치기관이다. 세종 16년(1434) 화재로 인해 건물이 불탄 것을, 안무사 최해산(1380~1443)에 의해 종루, 홍화각 등 건축군 조영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내내 신축·개보수하였다. 관아의 전체구성은 홍화각, 우련당, 귤림당, 관덕정 등을 주축으로 평평한 대지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93년 3월 31일 사적 제380호로 지정되었다. Jeju Mokgwana(Old Government Office of Jeju) which is located in 43-3, Samdo2-dong, Jeju-si, Jeju-do is 19,533㎡ area. It was burned in the King Sejong’ 16th period(1434) and then was reconstructed the buildings and the gardens by Choi, Hae San(1380~1443). The aesthetics of adapta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on the flat ground with Honghwagak, Uryeondang, Gyullimdang and Gwandeokjeong. It was appointed as Historical Site no.380 in 31st, March, 1993.
  • 오감의 정원
    Five Senses Garden 빗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비 소식을 들은 날이면 설렘으로 그녀를 기다린다. 한번에 달려오면 좋으려만 한밤중이 돼서야 찾아온다. 감나무 잎 새에 떨어지는 소리, 파초에 떨어지는 소리, 처마 위에서 마당으로 떨어지는 소리, 장독대에 떨어지는 소리,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소리, 자갈 위에 떨어지는 소리,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바람에 날리는 소리 등. 오감만족 감성디자인의 소재로 비처럼 좋은 소재는 없다. 비가 지닌 자체의 속성도 있지만 세상의 재료와 만나 오케스트라를 연출한다. 지난 6월 성균관대 경관연구실과 하거원을 답사했다. 정기호 교수님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제는 문헌 속에 나타난 정원유적의 추적이었다. 우리 문화는 아직 복원에 있어서는 매우 소홀한 것 같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확한 단서도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추하고 또 그것을 너무 빨리 가시화해 버린다. 그 날 답사를 한 학생들은 어떤 것이 원형이었는지, 현재 상태가 어떤 층으로 나눠져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복원된 활수담도 예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였다. 답사 온 학생들은 문헌에서 나타난 하거원에서 동쪽 외원의 유구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앞에서 묘사된 활수담, 수미폭포는 선비들의 이상향인 선경의 세계다. 하지만 실제는 활수담은 약 1.5㎡ 정도의 규모, 수미폭포의 높이도 약 1.2m 정도이다. 삼근정사 동쪽에 흐르는 조그만 개울물을 막아 만든 것이다. 마치 창덕궁 소요암에 새겨진 어제시(飛流三百尺 遙落九天來 看是白虹起 飜成萬壑雷)처럼. 더욱 유구조차 발굴되지 않은 상태이니, 초보 답사객들은 동쪽 외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원림은 과장이 심했다. 담양 명옥헌 그 이름의 유래는 정자 곁을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옥과 같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학원시절 그 실체를 찾으려 명옥헌에 자주 들르곤 했다. 정자 곁을 흐르는 계곡도 찾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정자에 홀로 앉아 배롱나무를 보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상지(上池)와 하지(下池) 사이, 돌틈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가 불과 5~10cm정도의 단차로 떨어지고 있었고 돌 틈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맑았던 것이다. 선비들의 정원 경영은 과장이 심할 수 있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에서 느낄 수 없는 조그만 자연도 우주로 받아들이는 그 마음이 정원이 아니었을까. 한 눈에 매료시키는 외국의 정원은 많다. 그 웅장함에 놀라기도 한다. 조선조 선비들의 정원은 자연의 소소한 세계에서 ‘물고기의 움직임’, ‘구슬같은 거품’, ‘떨어지는 복숭아 꽃잎’과 같은 시어, 생명력 있는 의성어를 통한 청각적, 시각적 효과(획연, 영연, 형연), 고사를 통한 심리적 연상효과 등을 이용해 한 폭의 동양화와 같은 선경 세계의 표현한 문학정원이 아닐까.
  • 시간과 장소는 어떻게 만나는가: 일, 거리(감), 사물
    How the Time Meets with Place?: Work, Distance, Object 공간(space)과 달리 장소(place)는 인간의 개입이 표나게 드러난다. 공간은 기능적으로 특화된 곳이므로, 그 ‘전문성’을 위해 ‘인간성’을 배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서둘러 이 취지를 압축하면, 장소는 공간의 기능성이 영도(零度)에 이르도록 ‘닦는’ 어떤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브레트(L. Brett)는 이 개입의 정서적 차원을 ‘애정’이라고 부른 바 있다. 애정을 쾌락의 대상으로 소비, 소모하는 경험에 익숙한 이들은, 공간에 대한 정서적 개입으로서의 장소화를 이해하기 어렵겠다. 자본제적 삶의 현실 속에서 잦보는 애정이란 기껏 소모(consumption)이거나 남용(overdose), 혹은 방치(dilapidation)로 빠지곤 하기 때문이다. 렐프(E. Relph)가 정의한 이른바 ‘무장소성(placelessness)’도 ‘평균적이며 공통적인 성격’이 도드라지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간(間)이 개입한 시간(間)이 공간(間)에 남긴 무늬와 같은 것을 아직은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간이 기능에 준한다면, 장소는 사람의 일에 따르는데, 물론 이 기준과 구분은 완벽하게 명확하지 않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자판기’라는 식의 ‘어둡고 비스듬히 어긋난’ 이치가 생길 수도 있듯이, 말이다(실제로, 나는 전주에 살면서 천변의 어떤 ‘곳’에 있는 커피 자판기를 자못 ‘사랑’하였다!). 우선 시간과 장소는 ‘인간의 일’에서 겹친다. 토착성(Bodenständigkeit)과 고향상실(Heimatlosigkeit)을 날카롭게 대조하는 하이데거는, ‘창조적 풍광; 우리는 왜 시골에 사는가?’라는 짧은 글에서, 슈바르츠발트(Schwartzwald)와 그곳의 주민들의 경우 각자의 고유한 ‘일’이 친밀하게 귀속해 있다는 점에서 그 토착성의 유래를 추적한다. 대지가 토지로 바뀌는 과정에서처럼, 토착성은 단지 시간만의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노동을 통해 인간이 개입한 역사의 암우(暗祐)가 필요한 것이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면서 가다』의 저자인 리 호이나키의 논점이 바로 이것이다. “장소에 친밀하게 거주하려면 필수적인 일의 반복적 수행이 필요하다.”
  • 영동 규당고택
    Gyudanggotaek 영동 규당고택은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 417번지에 위치하며, 면적은 2,458㎡의 민가주택으로 조선 고종 13년1885 송복헌1857~1948에 의해 건축 및 정원조영이 이루어졌다. 가옥의 전체구성은 안채·별채·광채를 주축으로 하며, 평탄한 대지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40호로 지정되었다. The Gyudanggotaek is the Korean traditional upper classes house in 417, Gyesan-ri, Yeongdong-eup, Yeongdong-gun, Chungcheongbuk-do. It had been built in Kojong’s period(1885) in Joseon dynasty. It is in important position to analogize technique of the arrangement of the house and rational arrangement of the house reflected factors of the Pungsu(divination by configuration of the ground). The area of the house is 2,458㎡ and it is basically made up of Gwangchae(storage), Byeolchae(the men’s part of a house), Anchae(the main building of a house). It is connecting with condition of the selecting of the building area by environment and aesthetic.
  • 전설의 산
    Mountain of legend (중략)…한 사람을 만나니 산관야복山冠野服으로 길이 읍하며 나한테 이르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휘어져 골짜기에 들어가면 도원이외다.”하므로 나는 박팽년과 함께 말을 채찍질하여 찾아가니, 산벼랑이 울뚝불뚝하고 나무숲이 빽빽하며, 시냇길은 돌고 돌아서 거의 백굽이로 휘어져 사람을 홀리게 한다. 그 골짜기를 돌아가니 마을이 넓고 틔어서 2, 3리쯤 될 듯하여, 사방의 벽이 바람벽처럼 치솟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데, 멀고 가까운 도화 숲이 어리비치어 붉은 놀이 떠오르고, 또 대나무 숲과 초가집이 있는데, 싸리문은 반쯤 닫히고 흙담은 이미 무너졌으며, 닭과 개와 소와 말은 없고, 앞 시내에 오직 조각배가 있어 물결을 따라 오락가락하니, 정경이 소슬하여 신선의 마을과 같았다.…(중략) 백굽이로 흐르는 시냇길을 따라 들어가는 마을입구, 마을 앞에 넓고 트인 논과 밭, 그리고 앞 시냇물, 그리고 마을 뒤에 멀고 가까운 도화 숲은 안평대군의 발문에서 표현된 도원의 모습이다. 에덴에서 표현된 이상향이 과수로 이루어진 숲과 물 그리고 근심 없는 삶이라면 무릉도원은 도화 숲과 시냇물 그리고 신선의 마을로서 표현된다. 도원에 들어가는 방법은 백굽이로 휘어져 흐르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물이 굽이굽이 흐른다는 것은 좌우의 산이 서로 교차되고 있다는 것이다. 풍수지리에서는 이러한 형국을 장풍국 명당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을 뒤에 있는 도화 숲은 주산(主山), 마을 앞에 넓게 트인 곳은 명당(明堂), 앞 시내는 명당수(明堂水)라고 풍수지리에서는 말한다. 장풍국의 명당이란 주변 산세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외부로부터 보호된다. 이러한 지형은 외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없기에 전쟁을 피해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된다. 흔히 말하는 십승지가 바로 이와 같은 터이다. 우리민족에게 있어 산은 신앙의 대상이자 삶의 터전이다. 마을을 지켜주는 어머니와 같은 보호막이며, 우리와 같이 호흡하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백두산에서 발원한 산은 우리 마을의 이름 없는 뒷동산에 이르러 삶의 쉼터를 형성한다. 여기에는 전설이 있고 민중들의 희노애락이 묻어 있다. 꿈틀거리는 산은 마을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민중의 삶에 믿음과 희망을 준다. 어머니 山! 호랑이 山! 연꽃과 같은 山! 부자를 만들어 주는 山! 재상을 만들어 주는 山! 바로 우리의 산은 민중들의 염원이며 삶의 터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