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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바닥 포장 설계, 패턴을 위한 패턴?
한동안 수원에 있는 공기업의 일을 하면서 그 사옥에 자주 드나들었다. 개발 사업을 하는 회사였는데, 어느날 그 사옥의 현관에서 전시 중이던 공동 주택 공모전 출품작을 보게 되었다. 600세대 규모의 주택 단지였는 데 전시된 출품작은 서로 다른 개념을 이용해 각각의공간을 표현하고 있었다. 작품들을 보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네 개의 출품작이 모두 같은 형식으로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길의 모양과 색상을 표현하고 있었다. 길이 흘러가는 방식이며 선형을 표현하는 패턴과 색상이 너무 똑같아서 신기한 마음으로 한참을 구경했다.
몇 달 뒤 우리에게도 그런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찾아왔다. 프로젝트를 맡은 기쁨은 잠시였다. 공동 주택 설계 경험이 없어 프로젝트가 익숙하지 않은 데 다가 특정한 형식의 그림을 요구하는 건축팀과의 마찰 때문에 쉽지 않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왜 이렇게 패턴을 요구하고 심지어 강요까지 하는지. 패턴이 공간 개념을 나타내는 방식 중 하나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이유는 작업을 진행하며 인터넷을 통해 공모전 자료를 찾아본 후에야 알수 있었다. 찾아본 공모전 자료의 열에 아홉은 서로 닮은 평면 그래픽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보는 이를 강렬하게 빨아들이는 그래픽이 있는가 하면, 유유히 흘러가는 형상도 있었다. 하지만 그 표현과 형식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마 공모전의 특성상 혼자 튀면 수상 후보에서 제외될 위험이 있어서 과한 표현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다른 작품을 따라 하고 싶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 같았다.
길을 잘 보이게 해서 공간을 잘 설명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공간의 볼륨을 조작하는 눈속임의 장치로 여겨질 뿐이다. 과연 주거 단지에서 길의 포장 패턴이 중요한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2차원 공간을 조작하고 그 위에 세워질 부피에 대해 고민하고 계획해야 하는 조경의 속성상 바닥 처리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일이다. 바닥 포장은 녹지와 녹지 사이에 만들어져 사람들이 이동하거나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의 기반이다. 또한 차량과 건물 사이에 만들어져 완충 작용을 하며 도시의 생활을 담기도 한다.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양이 필요하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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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공감] 제주 주택
이번 ‘공간 공감’ 답사는 제주의 어느 식당에서 일정을 짠 특별한 케이스다. 새벽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한 직후 아침상을 마주한 채 각자 답사하고 싶은 곳을 추천하며 한 곳씩 답사 루트를 짜나갔다. 그렇게 해서 1박 2일 동안 둘러볼 대상지로 정한 곳은 총 8곳(‘공간 공감’에서 모두 다룰 예정은 아니다. 아마 한 곳 정도만 더 소개될 것이다), 그 중 주택이 3곳이었다. 덕분에 평소 프로젝트를 같이하며 알고 지내던 한 건축가의 제주 주택을 찾게 되었다.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도저히 찾아가기 힘든 곳이기에 그 주택 답사는 더욱 특별했다.
진입 도로에서 약 10m 이상의 고저차가 있는 산자락의 귤 밭에 지어진 ‘리틀 화이트’라는 이름의 주택은, 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나름 공동 주택 단지다. 10여 년 전 건축가의 부친이 제주에 정착하기 위해 구입했던 땅에 아들이 건축을 완성했다. 포르투갈의어느 해변에서 마주한 하얀 박스 형태의 주택으로 이루어진 마을과 제주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귤 창고를 설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경사진 땅의 구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집의 일부를 띄워서 설계했고, 그 덕에 기존의 귤 밭을 자연스럽게 정원으로 삼고 있다. 다섯 가구의 집을 모두 둘러보는 과정은 마치 산자락을 걸어 올라가는 느낌을 준다. 공간을 채우기보다는 덜어내는 작업이 읽히는 곳이다. 제주에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과연 여러 가지 요소가 갖춰진 넓은 집과 풍성한 조경수로 장식된 정원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 까’라는 물음이 이 주택을 보며 다시 한 번 떠올랐다. _ 이홍선
제주의 지형은 사뭇 한국의 다른 곳과 구별된다. 토양은 검고 돌은 거칠다. 그래서 유독 유채나 감귤이 선명해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제주에서 만난 ‘리틀 화이트’ 주택은 지금까지도 잔상이 제법 오롯이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제주 지형의 원래 모습에다가 밝고 모던한 주택의 매스를 대비시켜 도드라지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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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리, 역사와 소통의 통로
Column: Bridges as Passage of History and Communication
예로부터 입춘이나 대보름 전야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꼭 해야 연중 액을 면 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이 있었다. 상여 머리에서 부르는 향도가香徒歌에 ‘입춘날 절기 좋은 철에 /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하였는가 /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하였는가 /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活人功德하였는가 / 부처님께 공양드려 염불공덕念佛功德하였는가’ 하는 대목이 있지 않나.
두말할 필요 없이 다리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를 가든 그곳의 디자인이 세련된 다리에 먼저 눈길을 주게 된다. 아름답고 역사가 깃든 외국 의 다리들을 볼 때마다 부럽지 않을 수 없다. 파리의 센 강에는 30여 개의 다리가 있어 다리 위만 걸어도 파리의 근현대사가 발끝에 전해진다. 다리란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기능을 달리하는 복합적인 공간인 셈이다. 1801년에 만든 퐁데자르 다리는 ‘예술의 다리’로 불리며 명성이 높다. 카뮈, 사르트르, 랭보 등 작가들이 즐겨 찾아 작품을 구상했던 보행자 전용 다리로, 날마다 거리의 화가와 음악가들이 몰려들고 해질 무렵이면 청춘들이 몰려와 밀어를 속삭인다. 붉은색 교량으로 유명한 미국의 금문교는 주위의 경치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고 짙은 안개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로 꼽히는 금문교양단의 공원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호주의 시드니 하면 하버 브리지가 바로 떠오르듯이 경관이 수려한 도시에는 아름다운 교량이 반드시 있다.
우리의 다리들은 격조 있는 전통이 이어지지 않고 단절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특히 산업화 시대에 급조된 다리들을 보면 아쉽고 민망하다. 단적인 예로 진도대교의 경우 명량대첩이라는 어마어마한 역사가 있는데도 거북선이나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가 거의 묻어 있지 않다. 영화 ‘명량’이 화제로 떠올라 더더욱 아쉽기만 하다. 우리에게는 왜 역사와 시와 낭만이 있는, 미학적으로 뛰어난 다리가 드문 것일까. 물론 우리나라의 모든 다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만든 여러 다리는 기능적으로도 뛰어나고 어떤 철학을 느끼게 한다. 지금은 장충단공원으로 옮겨놓은 수표교의 경우에는 단순히 건너가는 기능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돌난간이 멋들어질뿐만 아니라 교각에는 수량을 재는 눈금까지 새겨져 있는 돌다리다. 자연과 어우러져 무지개다리라고 불리는 승주 선암사 홍교虹橋나 벌교 홍교, 불국사의 백운교와 청운교도 규모는 작지만 외국의 명품 다리와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상생하는 동양 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 가운데 공공 공간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다. 현재 수원화성 내에 존재하는 화홍문 등 수문은 전란에 대비한 방어 시설인 동시에 하천의 범람을 막아 수위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울리며 군사적, 토목 기술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교량 구조물이다. 낙안읍성의 평석교와 광통교는 무병장수의 꿈을 염원하며 대보름에 남녀가 만나는 곳이었고, 남원 광한루의 오작교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러브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웅장한 현대식 다리에 비하면 이런 옛 다리들은 초라하고 볼품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옛 사람들의 지혜와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결코 소홀히 대할 수 없다. 우리네 옛 다리에는 역사적인 삶의 흔적과 정신적인 얼이 담겨 있다. 과학성까지 스민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교량은 당대의 첨단 기술과 조형 감각이 집약된 도시의 아이콘이며, 나아가 기념비적 가치도 지닌다. 그러나 단순히 기능적이고 조형적인 목표만이 전부가 아니다. 시공을 뛰어 넘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역사의 통로, 단절된 세대와 지역을 잇는 새로운 소통의 통로가 되어 답답하게 막혀 있는 세상을 시원스럽게 뚫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작지만 새로운 시도에서 희망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김제의 새창이다리(구만경대교)에서는 매년 시낭송회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무주의 반딧불축제와 영월의 아리랑제 때는 섶다리가 놓인다. 부산의 영도대교, 진천의 농교, 경북의 무섬다리, 삽교의 삽다리, 봉평효석문화마을의 징검다리 등에서도 크고 작은 이벤트가 열리면서 추억을 덤으로 얹어주고 있다.
전주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전주천 다리 밑을 수놓은 700여 장의 타일 그림을 따라 어린이들이 걸어간다. 벽에 걸린 작품 구석구석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춘다. 손끝으로 살짝 어루만지고는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나 신윤복의 미인도를 관람하는 듯한 이런 광경은 요즘 전주천의 어은교 등 여러 다리 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얘들아 하늘밥먹자(얘하밥)’에서는 전주천 밑에 타일 벽화를 그렸던 6~7세 아이들이 세상을 바꾸었다. 어르신들의 쉼터로만 사용되던 침침한 다리 밑에 아이들의 밝고 환한 웃음소리가 더해져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되살아난 전주천에 동심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종근은 전주시 ‘문화의집’ 관장, 한국문화의집협회 부이사장 등을 거쳐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 부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프레스센터,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의 기획 출판대상에 6회 선정됐다. 1994년 ‘문예연구’ 신인상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고, 2010년 제1회 대한민국 신화창조 스토리 공모대전(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우수상을 받으면서 다큐멘터리 작가로 데뷔했으며, 2011년 KBS-1 TV를 통해 ‘꽃담의 유혹’ 2부작이 추석 특집물로 방영되기도 했다. 『우리 동네 꽃담』, 『한국의 옛집과 꽃담』, 『이 땅의다리 산책』 등의 저서를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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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걸어서 한강을 건너기
Editorial: Crossing the Han River on Foot
‘응답하라’의 시대 쌍팔년보다 한 해 전 1월, 대입시험에서 해방된 나는 해보지 않은 것들, 못해본 것들을 매일 하나씩 하며 시린 겨울을 통과하고 있었다. 급기야 걸어서 한강을 건너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없었다. 아무 목적 없이 북단의 성수동에서 남단의 청담동까지 영동대교를 걸었다. 주현미의 노래가사처럼 밤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희뿌연 밤안개가자욱했고, 버스로 건널 때와는 다르게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출렁거렸다. 그날의 기억은 다 사라졌지만 강한 진동감만큼은 아직도 온몸에 생생히 남아 있다. 한강에는 무려 스물세 개의 다리가 있지만 다리 위를 걸어 한강을 세로지른 건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번 2월호의 다리 특집을 교정보다가 불현듯 영동대교를 다시 건너고 싶다는충동이 일었다.
잠자고 있던 영동대교의 기억이 다시 살아난 건 걸어서 건넌 유일한 한강 다리가 영동대교인 탓도 있겠지만 그 시절 듣기 싫어도 끊임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트로트 ‘비 내리는 영동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무렵엔 한강 다리가 등장하는 대중가요가 제법 있었다.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 /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라는 가사 때문에 금지곡이 되었던 혜은이의 ‘제3한강교’나 ‘너를 보면 나는 잠이 와 / 잠이 오면 나는 잠을 자’라는 몽환적 가사로 유명했던 박영민의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를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에 한강 다리를 주제로 한 가요가 많았던 건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던 당시 자본과 사람과 유흥 문화가 강남으로 몰려들던 현상의 상징이라는 평도 있다. 한동안 뜸했던 한강 다리 노래가 최근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택시 드라이버 /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 양화대교, 양화대교 … 어디시냐고 어디냐고 / 여쭤보면 아버지는 항상 / 양화대교, 양화대교 / 이제 나는 서있네 그 다리 위에….”
여러 음원 차트에서 1위 자리를 내려놓지 않던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대표적이다. 베테랑 래퍼인 딥플로우는 ‘양화’라는 제목을 단 3집 앨범 전곡에 양화대교 양쪽의 이야기를 담았고, 인디밴드 제8극장의 2집 제목도 ‘양화대교’다. 작년 「동아일보」의한 기획 기사에 따르면 양화대교가 제목이나 가사에 등장하는 대중가요가 14곡이나 된다. 양화대교는 홍대와 그 주변을 중심으로 한 동시대 청년 문화의 공간적 투영이라는 게 대중음악 평론가들의 해석이다. 그럼 이번에는 영동대교 말고 양화대교를 건너볼까? 그러나 오늘은 영하 18도, 체감 온도는 영하 30도. 외국 다리만 보고 감탄하지 말고 우리나라 다리도 사랑해주어야 한다는 애국심만으로 2km의 양화대교를 건널 수는 없다. 그 중간에 매력적인 겨울의 선유도가 있다 하더라도, 건너가면 제 아무리 핫한 홍대 문화가 있다 하더라도, 극지를 탐험하는 심정으로 한강을 건널 이유가 없다.
반년 넘게 뜸들여가며 신중하게 기획하는 특집이 있는가 하면 이번 호의 ‘다리, 연결 그 이상’처럼 우연하게 착안해 속전속결로 진행하는 특집도 있다. 몇 달 전에 이미 수록하기로 결정한 보행교 작품이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다리 프로젝트의 검토의뢰가 들어왔고 때마침 섭외에 성공한 해외 작품도 다리였다. 본래 캐나다 조경가 클로드 코르미에 Claude Cormier의 근작들로 특집을 엮으려던 구상이 난관에 부딪힌 참에 아예 다리 작업 몇 개를 더 섭외해서 다리 특집을 꾸리기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이번 특집에 싣는 다섯 개 프로젝트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듯, 요즘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는 다리가 도시 생활과 문화의 핫 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다. 멀리 떨어진 두 공간을 연결하는 기능, 한 시대의 최첨단 토목 기술을 대표하는 구조물, 거대한 규모와 완벽한 구조를 갖춘 빼어난 건축미와 같은 다리의 전통적 가치 때문이 아니다. 도시를 섬세하게 수술하고 치료하여 다시 살리는 과정의 촉매제로서 다리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다리는 도시, 건축, 조경을 가로지르는 융합적 프로젝트의 매개체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보행자와 자전거의 천국 코펜하겐에 새로 들어선 시르켈브로엔Cirkelbroen은 규모는 작지만 문화적 파급력은 강력한 ‘강소형’ 랜드마크로 뜨고 있다. 이 다리는 자전거와 보행자 모두 운하를 쉽고 안전하게 건널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운하를 지나가는 배도 무리 없이 통과할 수 있게 해주는 다목적 다리다. 다리를 들어 올리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원형판이 엇갈려 회전하며 다리가 열리는 혁신적인 해법을 취하고 있다. 연결하고 통과하는 다리를 넘어 ‘멈춤’의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시르켈브로엔에 잠시 머물며 코펜하겐의 명소를 배경으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로테르담의 뤼흐트신헬Luchtsingel 보행교는 방치된 건물, 폐허가 된 블록, 사각지대가 된 오픈스페이스 등 도심의 18개 공간을 다리 하나로 다시 엮어낸 수작이다. 수십 년 동안 단절된 로테르담중심부의 세 구역을 세심하게 연결하여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이 다리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건설 비용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다리라는 이름표를 달아줄 만하다.
구조공학자 이종세(한양대학교 교수)의 말처럼, “다리는 기능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다리가 놓이는 순간 다리는 더 이상 단순한 기능적인 구조물이 아니게 된다. … 모든 다리는 세상에 대한 시선을 구현하고 변화시키며 말을 걸어온다. 다리는 도시와 사람과 자연이 만드는 생태계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명화 속에 담긴 그 도시의다리』, 씨아이알, 2015). 이런 점에서 보면 한강의 다리들은 참 재미가 없다. 강 양쪽을 물리적으로 잇는 기능뿐이다. 사람과 물류를 바쁘게 실어 날라야 하는 자동차를 위한 기계적 장치일 뿐이다. 한강의 다리들은 확장과 속도와 효율만을 신봉하던 개발 시대 서울의 단면이다. 아마 서울 시민 중 센 강의 퐁네프 다리나 템즈 강의 밀레니엄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며 기념사진을 찍어 본 사람은 많아도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며 서울의 풍경을 감상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걸어서 건널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건너는 과정은 모험이고, 건너기 전과 후도 막막하다. 30년 전의 나처럼 목적 없이 영동대교를 건넌다면 그건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이거나 탐험일뿐이다.
좋은 도시의 필요충분 조건은 안전하고 쾌적하고 즐거운 ‘걷기’다. 누구나 말하듯 산과 강은 서울의 소중한 자산이자 고유한 정체성이다. 모험이 아닌 일상으로 한강 다리를 쉽게 걸어 건널 수 있을 때, 건너야 할 자연스러운 이유가 있을 때, 서울도 살기좋은 도시의 랭킹에 이름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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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뉴스의 시대
The Age of News
이번 ‘코다’ 제목은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따왔다. 책의 부제목은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 “온갖 이례적인 사건들을 이처럼 단호히 추적함에도 불구하고 뉴스가 교묘히 눈길을 회피하는 딱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뉴스 자신, 그리고 뉴스가 우리 삶에서 점하고 있는 지배적인 위치다.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언론을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다. 그 밖의 놀랍고 주목할 만하거나 부패하고 충격적인 일들은 무엇이든 드러내려고 안달하면서 말이다.”1 뭐, 이런 대목이 흥미롭긴 하지만, 이 책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환경과조경’사는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바뀌면서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다. 개인회사에서 주식회사로 전환되었고, 파주출판도시를 떠나 지금은 방배동에 자리하고 있다. 회사명과 영문 제호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Environment & Landscape Architecture of Korea(약칭 ela)’를 사용했는데, 지금은 ‘Landscape Architecture Korea(약칭 laK)’로 표기하고 있다(『환경과조경』 리뉴얼에 대해서는 소개한 바 있기에, 여기서는 부연을 생략한다). 『조경생태시공』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계간에서 월간으로 발간 주기가 당겨졌고, 무엇보다 잡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제호가 달라졌다. 이제는 월간 『에코스케이프』라는 타이틀로 독자를 만나고 있다. 또, 콘텐츠도 디자인도 지속적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단행본 출판과 관련해서는 새로운 식구가 늘어났다. 1987년도에 설립한 ‘도서출판 조경’ 이외에 ‘도서출판 한숲’이란 브랜드가 2013년 하반기에 탄생한 것이다. 이후 『신의 정원 조선왕릉』, 『영국 정원에서 길을 찾다』,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 『꽃보다 아름다운 잎』,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 등의 단행본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유청오 작가가 전속 사진가로 합류한 것도 작지만 큰 변화다. 이외에도 내용과 형식면에서, 또 제작 시스템과 관련해서 달라진 부분들이 적지 않다(달라졌다는 의미이지, 좋아졌다는 자찬은 아니다. 오해 없으시길).
그중에서 특히 라펜트와의 분리를 빼놓을 수 없다. 아직도 ‘환경과조경’과 ‘라펜트’를 같은 회사로 알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이제는 회사도 대표자도 구성원도 사무실도 다르다. 같은 사무실을 쓰던 시절에도 잡지 제작 인력과 라펜트 담당 인력이 구분되어 있었기에, 분리 과정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환경과조경’과 ‘라펜트’가 한솥밥을 먹던 시기에 유지되던 콘텐츠 분리 원칙으로 인해 『환경과조경』과 『에코스케이프』의 뉴스 매체로서의 역할이 현저히 줄었다. 당시의 콘텐츠 배분 원칙 중 하나는 뉴스를 라펜트에 집중적으로 싣기로 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환경과조경』은 작품 위주의 설계 콘텐츠와 조경 담론을, 『조경생태시공』은 환경복원, 조경 시공, 조경 자재 등의 콘텐츠를 맡는 식으로 내용 분담이 이루어졌다. 라펜트는 일간 단위의 온라인 매체였기에 뉴스를 전담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현재 두 종의 정기간행물과 두 개의 출판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환경과조경’사의 지향점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는 환경과조경!” 그런데 2014년 이전에는 “한국 조경 정보의 구심점”이란 모토를 가장 크고 굵게 강조했었다. 그렇다면 지향점도 달라진 것일까? 공식 블로그(http://la-korea.co.kr)에는 이런 문구가 한 줄 덧붙여져 있다. “어제와 오늘의 한국 조경을 기록하고, 내일의 새로운 조경 문화를 설계합니다.” 얼마나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 조경의 기록 = 조경 정보의 구심점’, ‘내일의 조경 문화 설계 = 조경 문화 발전소’로 읽히길 내심 기대하며 쓴 모토다. 또 그런 역할을 하리라 다짐도 하면서(물론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냐 보다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지만 말이다).
실제로, 중요 완공 작품을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해 소개하고, 설계공모 수상작을 가급적 상세히 수록하고, 동시대 설계가들의 단상과 담론을 공유하고, 조경과 도시를 바탕으로 한 이슈와 키워드를 특집으로 다루고,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에코스케이프』를 통해 환경 복원, 조경 시공과 관련된 중요 프로젝트와 이슈를 조명하고, 전문가의 노하우와 정보를 연재로 소개하고, 새로운 조경 공법과 자재를 수록하고, 정원 관련 콘텐츠를 다루고, 관련 도서도 꾸준히 발간하고 있으니 적지 않은 정보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전과 비교할 때, 확실히 뉴스는 부족하다.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참 멀리도 돌아왔다. “작년 하반기부터 『에코스케이프』의 뉴스 지면 강화를 꾀하고 있으니, 따뜻하고 따끔한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데 말이다. 물론, 누군가의 진단처럼 지금이 ‘뉴스의 시대’인지 ‘뉴스 포화의 시대’인지 ‘정보 과잉의 시대’인지에 대한 점검도 분명 필요할 것이다. 단순히 정보가 많다고, 뉴스가 많다고 시간과 시선을 내어줄 독자들은 더 이상 없을 테니까. 나 역시 그러하니까.
알랭 드 보통이 지은 책의 부제목처럼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뉴스에 대해 매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더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새롭기만 하다고 해서 뉴스인 시대는 이미 저물었으니까. 더 이상 뉴스만 정보인 시대도 아니니까. “무엇이든 드러내려고 안달하”2기보다는 보다 정제된 콘텐츠를 아름답고 적절하게 제공해야 하는 시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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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세계의 끝 여자친구
Editor's Library: World’s End Girlfriend
잡지에 실릴 작품 이미지를 고르는 작업은 언제나 두통을 몰고 온다. 이제 제법 익숙해 질 때도 되었건만, 이미지의 우선 순위와 레이아웃을 구상하는 작업은 여전히 어렵다. 한 번집중력을 잃고 무언가에 홀리기 시작하면 결정 장애의 블랙홀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이런 점 때문에, 그 사진은 그런 점 때문에 좋아 보였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모든 사진이 부적합해 보인다. 1차적으로는 프로젝트의 주변 맥락과 설계 의도, 디자인 해법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몇 가지 핑계를 댈 만한 변명거리도 있다.
보통, 사진의 화질이나 구도가 좋지 않은 경우, 컷 수가 너무 적은 경우, 사진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엔 머릿속에서 레이아웃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작업한 캇베이크 해안 프로젝트는 평소와는 다른 이유로 메인 컷을 고르는 데 애를 먹었다. 캇베이크 해안 프로젝트는 네덜란드 남서부, 북해 연안에 위치한 인구 4만 1,000명의 소도시, 캇베이크의 사구 경관을 복원했다. 캇베이크는 1848년 해수욕장을 개장한 오랜 휴양 도시이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건축물도, 화려하고 이국적인 식생도, 특별한 레포츠 시설도 없는 조용한 마을이다. 마을 분위기에 어울리게 프로젝트도 차분하고 소박했다. 제방을 덮은 사구 언덕이 프로젝트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미지라고 생각해서 메인 컷으로 넣어보았는데 다른 프로젝트와 비교하니 뭔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심심해 보였다. ‘메인 컷은 시선을 사로잡는 ‘쌈박한’ 이미지가 들어가야 한다’는 고정관념 아닌 고정관념이 있던 터라 고민이 많이 됐다. 몇 번의 회의와 이미지 교체를 거친 끝에 최종적으로 선정한 메인 컷에는 억세고 질겨 보이는 사구 식생이 뒤덮은 언덕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쓸쓸해 보이기도, 다정해 보이기도 하는 두 사람의 모습과 네덜란드 북해 연안의 허허로운 풍경에서 연상되는 소설이 있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남자의 경우엔 호불호가 갈렸지만, 대학 시절, 국문학과 여학생치고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애는 없었다. 2013년도쯤인가 한 출판사의 기획으로 김연수의 낭독회가 학교 소극장에서 열렸는데 신청한 사람의 90% 이상이 여자였을 정도다.
‘아직까지 김연수 소설을 안 읽었냐’는 주위 친구들의 성화를 못 이겨 읽는 체 했지만, 나는 사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와 같은 제목의 소설은 너무 단 디저트처럼 왠지 껄끄럽고 낯간지러웠다. 그러다 21살 여름, 나 역시 결국 김연수의 광팬이 되었다. ‘세계의 끝’은 아니지만 친구의 집에 놀러간다는 핑계를 대고 좋아하는 선배를 보러 태풍을 뚫고 한반도 남쪽 끝까지 내려갔던 여름방학의 일이었다. 그렇게 단단히 제대로 눈에 콩깍지가 씌자 그렇게도 질색을 하던 연애소설과 유행가가 전에 없이 애틋하게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만의 속앓이로 끝난 내 짝사랑의 말로처럼, 사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로맨틱하거나 달콤한 소설은 아니었다. 심지어 소설에서 등장한 ‘세계의 끝’은 내가 기대했던 ‘아득한 저 너머’는커녕, 메타세쿼이아 한 그루가 서있는 동네 호수 건너편이다. 소설의 플롯은 강렬하기보다는 잔잔하다. 요약하면, 도서관 게시판에 붙어 있는 시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우연히 읽고 ‘함께 시를 읽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 ‘나’가 모임에서 만난 ‘희선 씨’를 통해 시를 쓴 시인의 이루어질 수 없던 사랑이야기를 듣고 시인의 전 여자친구에게 시인이 부치지 못한 편지를 전달하게 된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렇지만 이 소소하고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의 끝’을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다. 아주 사소한 계기, 평범한 일상의 단초가 그 이면의 배경·맥락과 만나 거대하고 깊은 삶의 서사로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게시판에 시를 소개하곤 했던 한 사서의 부지런함이 단초가 되어 시 모임이 만들어지게 되고, 모임의 회원이 소개한 시를 읽은 ‘나’가 호기심에 책 한 권을 찾아보게 되며, 덕분에 시인의 과거와 사랑 이야기를 알게 된 ‘나’를 통해 시인의 편지가 옛 여자친구에게 전해지는 일련의 과정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섬세하게 진행된다. 작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우연과 우연이 만나 필연처럼 전개되는 순간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불가사의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삶의 원초적인 비밀을 한 꺼풀 벗겨보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에서 ‘나’는 이렇게 회상한다. “비록 형편없는 기억력 탓에 중간중간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빠진 것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인생은 서로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1
그러니까, 뭔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심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캇베이크 해안의 사구 언덕 사진에도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가, 최초의 톱니바퀴가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쓸쓸해 보이기도, 다정해 보이기도 하는 두 사람은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넘어 ‘세계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연인인지도 모른다. 마을과 바다 사이의 거리가 더 늘어난 덕분에 어쩌면 그들은 전보다 더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른다. 모래에 뿌리를 박고 자라난 억세고 질긴 풀 숲 사이에 누군가 부치지 못한 편지를 묻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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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베니스 길목에서 만나는 ‘세상의 골목들’
The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la Biennale di Venezia
두 손을 마주 잡은 듯한 형상의 베니스는 120여 개의 섬, 400여 개의 다리가 엮인 미로와 같은 수상 도시다. 지중해의 절경, 유서 깊은 건축물, 낭만적인 운하의 정취를 북돋는 곤돌라 등 베니스의 매력은 전 세계 여행자들을 불러들이지만, 미술전과 건축전이 격년으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수많은 예술인들 역시 베니스로 불러들인다. 바로 얼마 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2015년 5월 9일 ~ 11월 22일)는 아프리카계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총감독을 맡아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 Futures’를 주제로 전 세계 미술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치학을 전공한 엔위저의 사회ㆍ정치적 관심에 응답하듯 53개국 136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에는 동시대의 분쟁과 사회적 현상을 직시한 작업이 주를 이뤘으며, 국가관 전시 또한 각각의 사회ㆍ정치적 이슈로부터 미래의 전망을 모색했다. 베니스 섬의 가장 끝 부분에 위치한 지아르디니Giardini와 아르세날레Arsenale 두 장소에서는 총감독이 기획한 본 전시와 각 나라별로 기획한 국가관 전시를 개최한다. 현재 89개의 국가관이 있는데, 이곳에 국가관을 두지 못한 30여 개 나라는 베니스 곳곳에 흩어져 건축 공간을 활용한 전시를 선보인다. 전시 기간 동안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은 큰 화두가 되고, 각 국가관의 전시도 자본력에 힘입어 여러 매체가 경쟁적으로 다루곤 한다. 사실 짧은 일정으로 베니스를 방문한 미술인들은 이 두 장소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벅차다. 시종일관 스펙터클한 수백여 개의 작품을 하루이틀 만에 모두 보려 한다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넘쳐나는 정보에 머리가 멍해지곤 한다. 마치 국제적 이슈가 가득한 신문을 연이어 읽는 듯하다. 행사가 모두 끝난 시점, 2017년의 비엔날레 감독이 발표되고 올해의 건축 비엔날레가 곧 드러날이 시점에 필자는 골목길에서 묵묵히 울려 퍼지던 작은 국가관들과 전시들을 이번 지면을 빌려 소개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이 연재가 동시대 예술과 도시성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비엔날레 전시를 통해 베니스 도시 깊숙이, 건축물의 외부와 내부를 여행하듯, 세계 곳곳에서 온 목소리를 들어보자.
건축과 현대 미술 사이의 황홀한 대화 : 창조의 소리전, 션 스컬리전, 단색화전
베니스에 있으면 어느 건물 하나 역사적이지 않은 게 없다. 수백 년, 어떤 건축물은 천년 이상 되기도 했으니 도시 전체가 박물관과 같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런 진귀한 건축물이 가득하지만 사실 관광객에게 개방된 유적지와 박물관, 전시실, 공공건물을 제외하고는 개별 건축 공간을 경험하기란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전 세계에서 온 여행 인파까지 북적거리니 공간의 사색에 고요히 잠기기란 더욱이 어렵다. 건축 공간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그리고 사색의 골목길을 즐기고 싶다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동안 진행되는 병행 전시와 도시 속 국가관 전시들을 최대한 활용하라 조언하고 싶다.
숨겨진 현대 미술 전시를 발견하는 묘미와 더불어 평상시에는 개방되지 않는 사적인 공간을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골목 곳곳을 누비며 비밀스런 저택의 풍경을 탐닉하는 즐거움을 덤으로 안게 된다.
처음 소개할 전시는 1603년에 지어진 팔라초 피사니Palazzo Pisani에서 열린 뮤지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화가 비지 베일리Beezy Bailey의 전시 ‘창조의 소리The Sound of Creation’다. 이 건축물은 현재 베네데토 마르첼로Benedetto Marcello 음악 학교로, 내부공간에 들어서면 클래식 선율이 울려 퍼지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곳 내부의 주 계단을 활용해, 베일리의 그림을 보며 이노의 음악을 헤드셋으로 청취할 수 있도록 했다. 청각과 시각이 결합된 특별한 협업 전시다. 그림은 음악의 이미지를 풍부히 연상시키고, 음악은 미술의 시각 작용을 더 깊숙이 자극한다.
“우리는 음악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눈으로만 이미지를 보지 않는다.” 기획의 변처럼 공간에 울리는 소리가 잠재된 기억들을 현재로 생생히 불러들인다. 두 작가의 시각적 소리, 청각적 그림은 건축물에서 울려 퍼지는 선율과 만나 더욱 풍성해진다. 뿐만 아니라 건물의 한 홀에는 작년 국가관 황금상을 받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앙골라관의 ‘여행길에서On Ways of Travelling’가 동시대 앙골라 작가들의 사회적 의식을 소개했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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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유스
젊음의 조건
공모 제출을 며칠 앞두고 설계실엔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돈다. 초콜릿으로 당을 보충하고 커피를 거푸 마셔보지만 체력은 급속히 떨어진다. 대세에 큰 지장이 없는데도 수치지도와 항공지도 중 어떤 것을 베이스로 할지 토론을 거듭하고, 같은 다이어그램을 수십 번도 더 바꿔본다. 미세한 선 두께 하나, 눈에 띄지도 않을 토씨 하나 바꾸고 박수를 치는 지경에 이르면 누군가의 입에서 변태(?)라는 표현이 저절로 나온다. ‘예전엔 말이야. 이 그림자를 다 연필 가루로 갈아서 만들었어. 글자 스티커를 일일이 손으로 따 붙이고 동선은 띠 테이프로 표현했지.’ 마우스로 설계를 배운 세대들에게는 한국전쟁 때 이야기로나 들릴 법한 무용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선배들에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내가 왕년에’로 시작하는 모험담이었는데, 이제 내가 후배들에게 읊고 있다. 나이 들었다는 증거다. 나이 들면 지혜가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다. 경험의 사례가 많아지는 것 외에 나이 들어서 나아지는 건 별로 없다. 무엇이 사람을 늙게 하는가.
무엇이 젊은 걸까. 시간 외에 다른 변수는 정말 없는 걸까.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는 노래 가사처럼 젊음은 그 당시엔 알지 못한다. 그저 서툴고 불안하기만 했다. 영화 ‘유스Youth’는 늙음을 보여 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젊음을 이야기한다. 유스의 주인공은 두 노인이다. 은퇴한 지휘자 프레드는 비서 역할을 하는 딸과 함께 스위스 호텔에 투숙 중이다. 건강 검진을 겸하며 휴양 중인 프레드는 영국 여왕의 특별 행사에서 그의 대표곡인 ‘심플 송’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거절한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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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이집트 유전자 찾기
History of Landscape Architecture with 100 Scenes: Finding the Egyptian Gene
#75
나일 강에서 빌라 데스테까지
1549년 이탈리아의 티볼리.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그의 전설적인 이상향, 빌라 아드리아나1를 지었던 곳. 그 빌라의 폐허를 뒤지고 다니는 인물이 있었다. 피로 리고리오Pirro Ligorio(1514~1583)라는 이름의 화가이자 건축가, 고미술 전문가였다. 당시 그는 유적지의 돌무더기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고고학자로서 새로운 경력을 쌓는 중이었다. 데스테Ippolito II. d’ste(1509~1572) 추기경이 그에게 명을 내린 것이다. 데스테 추기경은 티볼리의 총독이 되어 새로 부임해 왔다. 기왕티볼리에 부임한 이상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진정한 후계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살 곳을 찾아보니 성벽에 높이 자리 잡은 성 프란시스코 수도원의 위치가 좋아 보였다. 언덕 위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는 형상이었다. 주변 경관이 수려했고 동쪽으로 아이에네 강이 감싸 돌고 있었다. 추기경은 이 수도원을 자신의 거처로 정하고 주변의 농가를 모두 사들였다. 이들을 철거한 뒤 거대한 정원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리고리오에게 설계의 총책임을 맡기고 빌라 아드리아나 유적지를 샅샅이 탐사하라고 지시했다. 리고리오에게는 고대의 건축과 예술을 연구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였으므로 발굴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물론 발견된 조각상들을 퍼가는 것도 임무 중의 하나였으나 건축물의 잔재, 조형물, 시설 등을 꼼꼼히 그려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에 영감을 얻어 ‘빌라 데스테Villa d’ste’를 설계했다. 이탈리아 정원 중 최고의 걸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리고리오의 눈앞에 드러난 유적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 지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영원한 발굴 현장이므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일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드리아나 빌라 유적지 항공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중요한 ‘물의 축’들을 리고리오도 본 것은 틀림없다. 지하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었던 수로도 탐험했을 것이다. 빌라 데스테는 두말할 것 없이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명소로 꼽을 수 있는 곳이다. 정원의 기본 틀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지만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분수가 장관을 이루며 웅장한 콘서트를 연주하는 물의 오케스트라 정원이다. 특히 백 개의 분수가 나란히 정렬된 길은 너무나 유명하다. 전체 공간 구조를 보면 사면, 즉 테라스 정원과 평지 정원으로산뜻하게 이분 된다. 언덕 위의 건물 정면에서 종축을 따라 다섯 단의 테라스를 내려가면 평지에 도달하는데 여기서 바로 횡축과 만나게 된다. 이 횡축은 긴 연못 세 개가 연속된 ‘물의 축’이다. 동쪽으로는 거대한 물 오르간과 넵튠 분수가, 서쪽으로는 엑세드라Exedra라고 하는 장식벽이 축을 마감한다.2 아콰에둑투스와 지하 수로망을 만들고 아이에 네 강의 물을 끌어와 초당 1,200리터의 물 공급이 가능했다고 한다.3 횡축 아래쪽의 평지 정원은 본래 설계되었던 것과 지금 모습이 전혀 다르다. 당시엔 좌우로 복잡한 미로가 조성되어 있었고 중앙에서 트렐리스 두 개가 교차했다. 현재 방문객들은 건물 뒤로 입장하여 정원으로 ‘내려’가게 되어있으나 본래는 정원 쪽에서, 즉 종축이 끝나는 곳에서 입장하여 건물을 향해 ‘올라’가도록 유도되었다.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 우선 정원 게이트를 통해 입장하면 바로 터널과 같은 트렐리스로 들어간다. 컴컴한 터널 속을 걷는 동안 갑자기 우레 같은 대포 소리, 총소리가 들려와 간이 서늘해진다. 그러다 잠잠해지면서 아름다운 새들의 합창이 들리는가 하면 다음 순간엔 파이프 오르간이 장중하게 울리고 어디선가 높은 트럼펫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물을 이용하여 각종 음향 효과를 냈던 것인데 터널의 어둠 속을 걷던 방문객들은 소리의 원천을 모르니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다 터널 중간 지점에서 길이 좌우로 갈린다. 갈림길을 따라 좌우로 가면 깊은 미로로 연결되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러나 좌우의 유혹을 물리치고 직진하면 터널 끝에 빛이 보이며 밝은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이때 아마 모두 ‘아!’ 하고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어둠과 위협 속에서 헤매다 마침내 낙원에 도착한 것이다(에티엔 뒤페라크의 빌라 데스테 조감도 참조).
빌라 데스테는 일종의 ‘도상圖像 정원’이다. 상징과 부호가 가득 담겨 있는 그림처럼 뜻을 해독해야 하는 정원이다. 분수, 조형물, 시설물 등이 바로 상징과 부호 역할을 한다. 해석하기에 따라 우주의 심각한 비밀이 숨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표면적으로 보면 숨은그림찾기나 퀴즈 같은 일종의 지식 게임이다. 세 가지 주제가 도입되었다. 첫째는 ‘자연과 예술의 관계’, 둘째는 ‘지역의 아름다움’이며, 셋째는 ‘헤라클레스와 헤스페리데스 정원’이다.4 자연과 예술의 관계는 우선 정원 그 자체에서 읽어낼 수 있지만 백 개의 분수에도 가득 숨어있다. 이 분수는 두 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단의 분수는 모두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나 상단의 형상들은 제각각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형상들이다. 당시의 방문객들은 이들의 정체를 알아보고 그에 얽힌 사연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체면이 섰을 것이다. 다음주제, 즉 지역의 아름다움은 티볼리 분수라거나 로마 분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차례다. 데스테 가문 역시 조상이 헤라클레스라고 우겼던 사람들이었다. 정원 도처에 황금 사과 모티브가 숨겨져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위에서 설명한 정원 체험 콘셉트다. 헤라클레스처럼 어두운 지하 세계를 통과한 뒤 마침내 도달한 낙원. 이것이 헤스페리데스 정원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런 의미에서 트렐리스와 미로가 없어진 것과 동선이 달라진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숨은그림찾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년 전부터 이집트 학자들 사이에 ‘빌라 데스테에서 이집트 유전자 찾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 게임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다시 빌라 아드리아나로 되돌아가야 한다. 빌라 아드리아나가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빌라 데스테가 여기서 영감을 얻었으니 이집트의 유전자도 함께 묻어갔을 것이라는 짐작은 그리 황당한 것이 아니다. 빌라 아드리아나의 카노푸스Canopus라는 파노라마 연회장을 기억할 것이다. 카노푸스는 나일 강 하구에 있는 운하 도시다. 여기서 일단 이집트와 만나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하드리아누스는 로마 황제이 면서 이집트 도시를 자기 정원에 형상화했던 것일까. 그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로마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왕조를 무너뜨린 뒤 이집트는 로마 황제의 직속 통치령이 되었다. 로마 황제들은 자동으로 파라오가 되었고 이집트는 그들의 ‘사유지’나 다름없었다. 또한 이집트 정복과 함께 로마에 이집트 바람이 크게 불었다. 한시적인 돌풍이 아니라 근 오백 년간 지속된 기후 변화 현상이었다. 무엇보다도 평민들이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을 ‘종합 신’으로 받아들여 이시스 컬트가 크게 융성했다.5하드리아누스는 오랫동안 이집트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들처럼 아끼던 안티노오스Antinous라는 미소년이 동행했는데 카노푸스 근처의 나일 강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이를 슬퍼한 황제는 안티노오스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설립하고 그가 오시리스 신이 되었다고 선언했다.6 집으로 돌아와 티볼리의 빌라에 이제는 신이 된 안티노오스의 신전을 세우고 카노푸스 연회장을 지었다. 빌라에 연회장이 여러 개 있었으나 이 카노푸스는 아마도 안티노오스를 조용히 애도 하는 사적 연회에 이용되었을 것이다. 빌라 데스테에서 카노푸스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횡으로 연계되는 물의 축에서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여기에 리고리오는 강한 종축을 교차시켰을 뿐이다. 이런 종축은 하드리아누스 시대에는 없던 것이다. 르네상스 전성기에 시작되었으며 후에 바로크에서 완성된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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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제학] 조경가의 경제학적 스타일 1
Economics of Landscape Architecture: Economic Style of Landscape Architects 1
조경가의 스타일
당신은 조경가다. 사람들이 휴식하고 사색하고 땅과 교감할 수 있는 정원을 디자인하는 것이 당신의 일이다. 어제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나 끝낸 터라 오늘은 좀 한가하다. 의자를 젖히고 뒤로 기대본다. 작업실 책장 높은 곳에 언제부터 인지 모르게 꽂혀 있는 낡은 그림책에 눈이 간다. 느긋함을 좀 더 즐기기 위해 먼지를 털어내며 펼쳐본다. 책에는 유명한 정원들이 소개되어 있다. 정원마다 특색이 있어서 굳이 단락을 나누지 않아도 시대나 작가가 다름을 짐작할 수 있다. 학창 시절 그 이름들을 외우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문득 진지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사람들은 나의 작품을 어떻게 알아볼까? 작가로서 나의 스타일은 무엇인가’예술에서 ‘양식style’은 크고 진지한 이야깃거리다. 양식은 작가 개인, 시대나 민족, 범주로서의 장르 등 다양한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미학적 개념이다. 특히 시대나 민족에 따라 다른 문화와 예술 형식의 관계를 다루는 ‘역사적 양식’은 예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조경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조경사는 대체로 양식사로서의 정원사다. 그래서 조경학을 전공한 사람은 양식이라고 하면 절대 왕정 시대 프랑스의 기하학적 정원이나 18세기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 같은 전형을 먼저 떠올린다.
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스타일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그것이 패션이든 영화든 (심지어 예술이 아닌) 사람의 성격이든 일관되게 관찰되는 형식이 있어서 한 종류로 묶을 수만 있으면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묶든 뭐라고 부르든 그건 내 맘이다. ‘그 남자는 잘 해줘도 고마운 줄 모르는 왕자 스타일이야. 내가 전에 사귄 오빠도 같은 스타일이었잖아. 늦기 전에 어서 헤어져.’ 전혀 어색하지 않은 훌륭한 문장이다.
당신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스타일을 생각한다. 미학 이론처럼 심각하지 않더라도 일상용어보다는 좀 더 무게 있는 방식으로. 우선 작품에서 자주 발견되는 형태에 주목해 본다. 시각적 특징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차별화된 체험을 주는 핵심적인 요소니까. ‘그런데 눈에 보이는 형태로 스타일을 정의하다니,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이번에는 부지를 해석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에 주목해 본다. 세계적인 조경가들이 난해한 이미지와 다이어그램으로 자신의 작업방식을 표현한 것을 떠올리면서. ‘하지만 어지간히 유명하지 않고서야 누가 나의 디자인 과정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그 외에 생태적 건강성에 대한 태도, 정원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철학 등 여러 측면을 배회한 끝에 당신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조경가의 스타일을 정의하기 위한 접근 방법은 매우 다양하며, 당신이 그 중 어느 하나에 주목한다고
해도 나머지의 의미가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을. 형태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생태주의자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참신한 방법론이 적용된 작품이 과연 정원이라불릴 수 있는지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의도에 자상하게 주목하는 전기傳記적 비평은 문학에서도 주류의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오늘날 비평은 창작으로부터 자유롭다. 하물며 정원이라는 실물을 생산하는 조경에서야.조경가의 스타일이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해서 조경이 특이한 예술인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사정은 문학이나 음악이나 미술에서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다만 조경은 토지라는 자원을 사용하고 사람이 생활하는 장소를 만든다는 점에서 환경이나 사회적 측면을 깊게 고려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니 경제적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문학이나 음악이나 미술과 차이를 갖는 조경이라는 예술의 특징이다. 이 글에서는 시장균형을 다루는 경제 모형을 통해 조경가의 경제학적 스타일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경가가 추구하는바’와 그것이 초래하는 ‘시장균형의 변화’가 중요한 관심사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접근 방법은 전혀 미학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살펴볼 경제학적 메커니즘으로부터 조경가가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