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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치의 혁신
Column: Value Innovation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과 회원국, 그리고 전 세계인들의 미래에 대한 값지고 귀중한 통찰!”이라고 극찬한 베스트셀러 『유엔미래보고서 2045』에 따르면, 조경사는 의사, 약사와 함께 로봇으로 인해 멀지 않은 미래에 소멸될 직업이다. 무인 자동차의 등장으로 운전기사와 집배원이 사라지고, 드론의 활약으로 택배기사와 음식 배달원도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또 3D 프린터의 등장은 목수와 건축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언론 기자와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교사 등의 직업도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평균 수명 130세 시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줄고 인간은 종교로부터 멀어진다. 얼굴도 인간과 똑같고 지능도 인간보다 뛰어난 로봇과 휴머노이드가 등장해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대신 인간은 일자리의 거의 대부분을 빼앗긴다. 기후 변화는 인류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화석 연료를 대신할 새로운 에너지를 찾는 개인과 기업이 미래의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예측하고 있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한 조경 분야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유망 직업으로 살아남기 위해 조경인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가치의 혁신’이 필요하다. 지난 건설 호황기 시절의 아날로그적인 조경의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환경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점점 높아질 것이고 건축, 임업, 원예 등과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므로 소위 ‘노가다’ 시공이나 ‘도면 공장’ 같은 설계 방식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제조업과 같은 전통 산업도 지식 기반을 고도화하지 않을 경우 날로 치열해져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코닥이 한순간에 사라졌고, 애플의 아이폰으로 최강 노키아가 무너졌다. 반대로 일본의 유니클로가 방한복은 두꺼워야 한다는 상식을 파괴하고 얇고 다양한 색상의 ‘후리스fleece’를 개발해 최고의 패션 기업이 된 것은 가치 혁신의 성공 사례다. 매킨토시 같은 고가 사양의 컴퓨터에만 집중하던 애플이 스티브 잡스의 복귀 이후 과거의 아집을 버리고 고객층을 폭 넓게 끌어들일 수 있는 아이팟 같은 대중적 상품을 만들고 기술 집착증에서 벗어나 CDO(최고디자인책임자)라는 직책까지 두며 개방적 협력을 통해 성공한 사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조경 분야도 노동 집약적 성격이 강했던 과거의 산업적 구태를 벗고 글로벌 경쟁자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차별적인 디자인, 기술력, 경영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가치의 혁신’을 위해서는 조경을 넘어 다른 분야와 협력하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대 사회는 엘빈 토플러가 주창한 제3의 물결(과학 기술 및 정보화 시대)을 넘어 제4의 물결, 즉 융합의 시대를 향하고 있다. 지금의 세계는 모든 사람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각국의 경제 체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글로벌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에서 알 수 있듯이, 지구촌 한편에서 일렁이는작은 물결이 반대편에서는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모든 전문 분야는 새로운 영역에서 보다 혁신적인 방식으로 경쟁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ASLA(미국조경가협회)는 “조경은 협업이 강조되는 분야”라고 전망한다. 조경은 건축, 도시설계, 엔지니어링은 물론 시각 디자인이나 의상 디자인과도 협력하고 있고 그 중심에 프라임 컨설턴트prime consultant로서 조경가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조경가 제임스 코너James Corner를 중심으로 건축가와 엔지니어가 공동으로 작업했던 뉴욕의 하이라인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다. 타 분야와의 컨버전스를 통해 영역을 확장하고 상호 협력하고 상생하는 전략적 제휴가 필요한 시점이다.
올 한 해 동안 우리 조경계는 건축과 임업 등 다른 분야의 도전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서울역고가를 공원화하는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나 철거된 옛 국세청 별관 지상·지하 공간을 공공 공간으로 전환하는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 등은 조경가가 앞장서야 할 프로젝트였음에도 건축가들만의 화려한 잔치로 끝났다. 조경계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산림청의 약속을 믿고 ‘수목원ㆍ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에 동의했던 조경계는 건설기술자 조경 직무에 산림과 원예 관련 자격이 포함된 ‘건설기술자 등급 인정 및 교육·훈련 등에 관한 기준’이 이미 지난 6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는 황당한 소식 앞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지키기에만 매달리는 수성 전략을 버리고 오히려 다른 분야와 협력하여 상생을 모색하는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다. 산림청이나 환경부와의 오래된 갈등을 풀고 산림청 일이든 환경부 일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다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 조경계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은 내부 구성원의 협력과 단합에 있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한 결속력과 통합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긴급한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환경조경발전재단의 공동이사장제 논란으로부터 비롯된 관련 학회와 단체의 갈등은 조경계에 불어 닥치고 있는 연이은 업역 침해에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 것도 벅찬 상황이다 보니 미래에 대한 준비는 기대하기조차 힘들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조경의 미래를 위해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필요하다면 조경 분야를 대표하는 통합된 조직을 새로 만들거나 정비할 필요도 있다. 이제라도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한국 조경의 미래를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세우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조경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정원을 산림청이 가져갔다고, 조경 설계공모를 건축에 빼앗겼다고 더 이상 원망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ASLA는 조경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조경가는 지역 사회와 소통하여 건강한 도시를 만들 수 있으며, 각종 질병과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 지속 가능하고 보다 경제적인 도시를 만들 수 있다. 보다 건강하고 경제적이며 경쟁력 있는 도시 조성의 중심에 조경가가 있다는 점이야 말로 조경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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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마감
Editorial: Deadline
마감을 며칠 앞둔 편집실, 출품 전야의 설계실 못지않은 전쟁터 풍경이다. 지면 배열의 수정, 서너 차례 반복되는 원고 교정과 교열, 편집 디자인 수정과 보완이 복합적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내부 원고도 뒤늦게 생산된다. 이어지는 야근과 철야는 문제도 아니다. 가장 심각한 위기는 최종 데드라인까지 외부 필자의 원고가 도착하지 않을 때다.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한계선에 임박해 필자들의 원고를 챙기다 보면 편집자들의 “혼이 비정상”이 되곤한다.
고백하자면 아마추어 편집주간도 혼돈의 마감 풍경에 한몫 톡톡히 한다. 매달 거의 제일 마지막으로 디자이너에게 넘어가는 원고가 A4 두 장이 채못 되는 이 에디토리얼 원고다. 편집된 잡지 전반을 다 검토하고 뭔가 아우르며(?) 쓰겠다는 심산이지만, 잡지 첫 쪽에 등장하는 데 대한 부담감, 글감의 고갈에 따른 막막함, 고질적인 게으름, 이 셋이 절묘한 비율로 혼합된 결과라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할 것 같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호이니 이번 달만큼은 제 시간에 끝내는 모범을 보이겠다고 작심했다. 그러나 순백색 모니터를 마주하니 갑자기 연말의 멜랑콜리가 몰려오고 창밖에는 열흘째 가을비가 내리고 서울광장의 물대포에, 파리와 레바논의 테러에, 케냐의 학살까지, 핑계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무래도 이번 달도 문을 닫는 원고가될 것 같다.
필자 입장에서도 마감 시한의 압박감은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고통 그 이상이다. 영어로는 데드라인, 참 무시무시한 단어다. 글쓰기의 스타일이 모두 다르듯 “마감에 임하는 필자들의 태도”도 천차만별이다. 자칭 “야매 출판인” 김홍민이 출판계의 속사정을 다룬 책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어크로스, 2015)를 보면, 여러 필자들의 다양한 마감 타입이 소개되어 있다. 첫째 유형은 ‘모범생형’.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필자, 모든 편집자의 로망이다. 심지어 마감일 하루나 이틀 전에 원고를 보내와 감동을 선사해 준다. 『환경과조경』의 연재 필자 중에도이런 분들이 몇 명 있다. 심지어 일주일 전에 주는 분도 있다. 둘째는 마감을 지키지않았지만 도리어화를 내며 담당 편집자를 당황하게 하는 ‘적반하장형’. 유명 필자와 초보 편집자 사이에서 이런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물론 『환경과조경』 필자 중엔 이런 분이 없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는 ‘잠수형’ 필자가 등장하는 경우는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천리안형’이다. 편집자는 원고를 청탁할 때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마감일을 당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안전핀도 잡지사의 생리를 잘 아는 베테랑 필자들에게는 소용없다. 그들은 언제가 진짜 마감일인지 뻔히 알고 있다. 『환경과조경』에도 이런 유형의 노련한 필자들이 여럿 계시다. 그들과의 줄다리기는 즐거운 게임이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읍소형’이 있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가 마감이 한참지나 독촉 문자, 메일, 전화를 하면 그제야 아직 못쓴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타입이다. 그들에게는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환경과조경』 편집자들을 붙잡고 또 어떤 마감 스타일이 있는지 취재해 보니, ‘연쇄살인형’도 있다고 한다. 며칠 사이에 연달아 가족이 아프고 친구가 사고를 당하고 스승이 돌아가시는 유형. 거의다 썼다, 이제 곧 끝난다고 계속 연락이 오지만 결국엔 맨 꼴찌로 마감하는 ‘철가방형’도 있다. 언제 쓴다고 했냐고 되묻는 ‘기억상실형’, 몸이 너무 안좋다고 하소연하는 ‘동정유발형’, 이제 절필한다는 ‘은퇴형’도 있다. 밤을 새워 다 썼는데 컴퓨터 바이러스에 날아갔다는 ‘목수 연장 탓하기형’도 드물지 않다. 17년 경력의 베테랑 남기준 편집장에 따르면, 마감에 얽힌 인생 최고의 추억은 인쇄소로 넘기기 직전 절체절명의 심야에 캔맥주 식스팩을 들고 편집실에 쳐들어와 편집자와 함께 밤을 새우며 원고를 쓴 어느 필자라고 한다. 듣다보니, 아뿔싸,몇 년 전 나의 행각이다. 도대체 무슨 형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마감에 속이 타고 피가 마르는 강도는 편집자보다 필자의 경우가 더 셀 것이다. 2015년 과월호 열한 권을 다시 펼쳐보니 여러 필자들의 분투가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그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연재 필자들의 노력과 인내에 깊이 감사드린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것이 일상을 감옥에 가두는 일임을, 불안과 초조의 늪으로 자신을 내모는 일임을.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잡지 리뉴얼 이후 2년간 연속된 최이규 교수의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가 막을 내린다. 사실 이 연재 인터뷰는 2013년에도 조금 다른 이름의 꼭지로 실렸으니 그는 3년간 무려 35명의 해외 디자이너와 매달 이야기를 나눈 강행군을 펼쳐온 것이다. 편집부의 도움 없이 뉴욕에서 홀로 기획과 섭외부터 인터뷰와 기사 작성까지 모두 담당했다. 김세훈 교수의 연재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도 이번 달에 최종회가 실린다. 다른 어느 원고보다도 두터운 독자층을 가졌던 연재물의 마지막 회를 읽으니 인기 드라마의 종영일처럼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는 마지막 원고와 함께 “지난 1년, 글을 쓰는 고통(?)과 함께 했지만, 차분히 우리 도시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두 분의 수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두 연재물 모두 단행본으로 새롭게 편집되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김연금 소장의 연재 ‘그들이 설계하는 법’도 이번 달로 맺는다. 세달 간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좁은 지면 탓에 일일이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지난 1년간 옥고를 보내주신 모든 필자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 몇 년간 한창 유행했던 긍정심리학 류의 책들을 보면, 감사할 일을 떠올리고 늘 감사할 때 우리는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환경과조경』을 사랑해주시는 여러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며 한해를 행복하게 마감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순백색 모니터를 응시하다 보니 그만 마감 에피소드로 흐르고 말았다. 문득 우리 인생에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아주 큰 마감이 있음을 깨닫는다. 삶의 마감일을 미리 알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없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살까, 매일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한층 열심히 살까. 아마 우리는 그 마감의 시한을 알더라도 “마감에 임하는 필자들의 태도” 못지않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지 않을까? 이렇게 2015년을 마감한다. 아니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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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응답하라 2027
Please Respond, 2027
지루하더라도 기록을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네 번째 특집이니 말이다. 게다가 특정 공원에 대해 27년 동안 관심을 기울이며 지속적으로 다룬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제목만 보고 ‘응답하라 1988’을 연상하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다행인지(?) 우연인지 아예 무관하지는 않다. 바로 그 1988년부터 시작된 히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이번 호 특집으로 다룬 ‘용산공원’ 이야기다. 『환경과조경』이 격월간으로 발행되던 시절, 1988년 11·12월호에 ‘긴급 좌담’이란 타이틀의 꼭지가 게재되었다. ‘용산 미8군터의 활용 방안을 진단한다 - 시민의 휴식·문화 공간으로 개발 조성해야’란 제목이었고, 강병기, 윤승중, 이종석, 황기원 등 네 분의 패널이 참여했다. 『환경과조경』에서 처음으로 용산공원 부지를 다룬 꼭지였다. 이듬해인 1989년 7·8월호에는 ‘용산 미8군 부지 시민공원으로 조성하자’란 특집까지 기획되었다. 필자로는 노춘희, 동정근, 황기원 등 세 분이 참여했다. 용산미군기지의 반환 움직임이 거론되던 시기였고, 미8군 기지에 전 국민을 위한 공원을 만들자는 입장과 서민을 위한 주택단지를 만들자는 주장, 그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며 상업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때였다.1
이후 10여년 이상 잠잠했던 용산공원이 다시 수면 위로 부각된 것은 2003년의 일이다. 그해 5월 한·미 정상간 용산기지 이전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용산공원 부지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각종 언론 매체에는 4월 전후로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지만, 『환경과조경』이 특집으로 다룬 것은 2003년 10월이다. 나름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깊이 있게 다뤄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해서 수록된 특집은 ‘용산 미군기지 이전후 활용 방안’으로, ‘한국 속의 서울, 서울 속의 용산, 용산 속의 기지, 기지 속의 공원’(황기원), ‘국가 중심 생태·문화단지로 조성해야’(임승빈), ‘용산미군기지 활용 방안 및 교통 처리 방향’(원제무), ‘용산미군기지를 생명의 숲으로’(홍성태), ‘자연형 생태 공원을 우리의 후손들에게’(김홍규), ‘용산미군기지를 풍류특구 테마파크로’(오웅성), ‘용산미군기지 공원화 논의의 어제와 오늘’(남기준) 등총 일곱 꼭지였다.
2003년 당시 곧 반환될 것 같았던 용산미군기지에는 현재까지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이후 한 단계씩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2004년 2월에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원화 기획 자문위원회’가 출범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용산기지 이전 협정이 국회 비준을 받았다. 이듬해인 2005년 10월에는 ‘용산민족·역사공원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했고, 12월에는 국제 심포지엄도 개최되었다. 한국조경학회 등이 참여한 ‘용산기지 공원화 구상’이 발표된 때도 2005년이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으로 ‘용산민족·역사공원 건립추진단’이 설치된 것은 2006년 4월의 일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이 거행된 것은 2006년 8월이다. 이때만 해도 용산미군기지가 2008년 말에 반환될 줄로만 알았다. 이후 국가공원의 지위를 부여 받게 된 용산공원의 조성을 위해 2007년 7월에 드디어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결정적인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용산공원을 다룬 『환경과조경』의 네 번째 꼭지이자 세 번째 특집(용산을 이야기하다)은 바로 이 시기에 준비되었다. 2007년 1월호와 2월에 걸쳐 두 달 연속 기획된, 그야말로 특별한 ‘특집’이었고 별도의 토론회도 마련했다. ‘용산기지 공원화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란 주제로 2007년 1월 11일, 한국과학기술회관 대강당에서(희망제작소 부설 세계공원연구소와 공동 개최) 임승빈 교수(당시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배정한 교수(당시 단국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성종상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이수학 소장(아뜰리에 나무), 이일훈 소장(후리건축),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조명래 교수(단국대학교 도시지역 계획학전공), 최원만 대표(신화컨설팅)가 패널로 참여했다.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이 열린 2006년 이후로 ‘용산공원’에 대한, 그야말로 다종다양한 제안과 주장이 넘실대던 시기였다.2
이후로도 용산공원은 더디지만 꾸준한 단계를 밟아나갔다. 2008년 3월에는 국토해양부 산하 용산공원 조성 추진기획단이 설치되었고, 2009년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가 진행되었다.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이 고시된 것은 2011년이고, 그를 바탕으로 한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가 드디어 2012년에 개최되었다. 익히 잘 알려진 바와 같이 ‘West 8 + 이로재 + 동일기술공사’의 설계안이 당선된 바로 그 공모전 이다. 『환경과조경』은 당선작 소개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고, 개인적으로는 ‘조경비평 봄’ 회원들과 함께 『용산공원 -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출품작 비평』이라는 별도의 단행본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 ‘조경비평 봄’은 단행본 출간 이후 2013년 5월에 ‘공개 세미나 - 다시, 용산공원을 말하다’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2016년 1월호는 『환경과조경』이 ‘용산공원’을 다루는 네 번째 특집이다. 또 ‘용산공원인가’라며 식상해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다행스럽게 차이가 있다. 기존의 세 번의 특집이 모두 용산미군기지 반환(혹은 공원화)이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었던 시점에서 다뤄졌던 것임에 비해, 이번 특집은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이 침잠해있는 시기임에도 『환경과조경』이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기 위해 기획했기 때문이다.
용산공원은 더디지만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환경과조경』이 용산미군기지를 처음으로 다뤘던 1988년으로부터 27년이 흘렀다. 싱거운 우연의 숫자에 불과하지만, 정부에서는 2027년에 용산공원의 공식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연과 우연이 포개져 ‘응답하라 2027’이라는 제목을 선택한 까닭이다. 2027년에 만나게 될 용산공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니, 그보다는 2027년에는 과연 용산공원을 만날 수 있을까? 물음과 의문이 포개진다. ‘응답하라, 2027년의 용산공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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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악스트
Editor’s Library: Axt
잡지 업계 종사자들에게 12월은 잔인한 달이다. 보통 새해 첫 달 1년 정기구독을 신청하는 독자들의 정기구독 기간이 12월에 만료되기 때문이다. 우수수 떨어져 나간 정기구독 만료자의 숫자가 새해를 넘기는 동안 차츰 회복되긴 하지만 단숨에 훅 떨어지는 12월의 구독자 그래프에 에디터의 가슴도 철렁 내려앉기 마련이다.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가 이때만큼은 반가움을 넘어서 절실하다.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가 뜸하면 구독 문의도 없는가 싶어 초조해지기까지 한다. 12월의 구독자 그래프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은 잡지 시장의 불황과 출판 업계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지난 몇 달간 주연 배우의 패션과 대사가 연일 화제에 오르며 싱글 여성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던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는 또 다른 의미로 내 마음에 불을 질렀다. 폐간 위기의 잡지사에서 고군분투하는 인턴 김혜진(황정음 분)의 성장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절체절명의 잡지사가 정체를 숨겨왔던 얼굴없는 소설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극적으로 생존하게 된 해피엔딩은 영 뜬금없어 드라마의 애청자로서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식의 해결 방법이 잡지사를 위기에서 구해낼 유일한 동아줄이란 말인가? 1년 반 동안 『환경과 조경』 편집팀을 가까이에서 관찰한 바로는 안타깝게도 우리 편집팀에 정체를 숨긴 유명인은 없는 듯하다.
최근 온라인 상에서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현실판이라며 패션지 『보그걸』의 기약 없는 휴간 소식이 이슈가 되었다. 10대와 20대 초반 소녀들을 타깃으로 한 『보그걸』은 한창 꾸미기와 멋 내기에 관심이 많았던 10대 시절, 내가 교과서보다도 열심히 정독하고 스크랩북을 만들었던 잡지였다. 이제 오늘날의 소녀들은 잡지의 화보를 오려 벽에 붙여놓기보다는 인기 블로거들이 운영하는 패션 블로그를 즐겨찾기 하거나 인스타그램에서 스타의 데일리룩에 하트를 누른다.
2015년에 기약 없는 휴간 혹은 폐간에 들어간 잡지는 『보그걸』뿐만이 아니다. 1983년 11월 창간 이후 32년간 꾸준히 발행되어 온 국내 최초 IT 전문 매거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한국의 애니메이션·게임 마니아들에게 격려와 지지를 받으며 1999년 7월 창간된 『뉴타입』 한국판 등도 매체 환경 변화와 수익 구조의 악화로 인해 휴간 혹은 폐간의 수순을 밟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잡지들도 줄줄이 폐간 소식을 전하는 와중에 지난해 문학계에서는 유난히 새롭게 창간한 잡지가 많았다. ‘문학이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는 도끼axt’를 표방하며 지난 7월에 출간한 격월간 문예지 『악스트』, ‘미스터리mystery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hysteria’이라는 뜻을 가진 구어를 제호로 사용한 미스터리 전문 격월간 잡지 『미스테리아』, 김현, 강성은, 박시하 등 젊은 시인들이 주축이 되어 크라우드 펀딩으로 창간한 『더 멀리』 등의 신생 문예지들은 ‘신선하긴 한데, 그렇게 해서 되겠어’라는 의심의 시선을 응원과 격려, 그리고 안도의 시선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악스트』는 창간호부터 애정을 갖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고 있는 잡지다. 책을 만들면서도 서점에서 계산하는 순간만 되면 책값이 아까운 옹색한 에디터의 눈을 확 사로잡는 파격적인 가격(2,900원) 때문만은 아니다.
한두 권만 꽂아도 서재의 빈 공간을 꽉 채우는 부담스러운 두께의 기존 문예지와는 달리 들고 다니면서 읽기 편한 슬림한 두께와 사이즈, 가독성보다는 미적인 요소를 중시한 편집 디자인, 젊지만 재능 있는 필진, ‘비평’이라는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쉬운 언어로 작가 및 독자와의 소통을 강조한 ‘서평’ 위주의 구성 등 기존 문예지와는 다른 신선한 시도에 잡지를 만드는 에디터로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악스트』의 창간호는 초판 5,000부가 일주일 만에매진돼 5,000부를 더 찍었고 2호(9·10월호) 역시 7,000부가 팔렸다고 한다. 비단 에디터뿐만 아니라 이전에 기존 문예지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 새로운 문예지에 응원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악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와 애정은 단순히 새로움 때문일까? 사실 『악스트』는 겉으로 보이는 색다른 디자인과 편집 구성과는 달리 내용 자체는 순수하게 ‘문학’에 집중한다. 이번 『악스트』 3호(2015년 11·12월호)의 커버 스토리로 소설가 공지영이 실린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벌써부터 이슈 몰이를 한번 해보려는 건가’란 생각에 실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편견과는 달리 공지영과의 인터뷰는 그녀의 인생과 소설에 대해 다루면서도 선정적이기보다는 담백했고 문학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는 편집위원을 대표해 쓴 『악스트』 3호 ‘outro’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중적 취합에 부합하려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노선을 선택한 다른 잡지들에 비하면, 사실 『악스트』는 문학이라는 순수를 온전히 입고 있다. 『악스트』는 분명 즐거움의 잡지지만, 그 즐거움은 문학의 즐거움이지 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악스트』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 생각이 많은 것일까? 문학을 향해서 정면으로 가다니. 많은 이들이 의심하고 죄악시하며 이제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가운데 거의 폐기처분될 운명인, 현대의 대표적 소수 의견, 문.학.”
『악스트』 3호 ‘outro’를 읽으며 미국의 실험적인 문학 계간지 『맥스위니스』의 설립자 데이브 에거스가 쓴 『왜 책을 만드는가』 서문을 생각했다. “우리는 말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세계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말을 매만지는 그 끝없는 과정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함께 모였고, 또 여전히 함께 한다. 또한 그 말이 살아남고 존속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책 만들기의 끝없는 과정에 지금 몸담고 있다.” 마감 기간, 산더미처럼 쌓인 교정지와 밀려 있는 원고 앞에서 멘탈이 흔들릴 때마다, ‘종이책은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을 경신하고 있다’는 표현을 볼 때마다 펼쳐보곤 했던 책이다. 위기의 잡지를 구하는 건 유명인과의 단독 인터뷰도, 세련되고 멋진 디자인도, 파격적인 특집도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문학계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으로 또다시 크게 불거진 문학 권력화와 출판 상업주의 문제로 내홍을 겪었다. ‘터질 게 터졌다’는 싸늘한 시선과 한국 문학계를 향한 조롱 속에서 창간한 『악스트』는 문예지로서 문학의 순수한 영역을 실험하고 탐구하고 있다. 잡지 고유의 순수한 정체성을 향해 정면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독자와 공유하며 즐기는 것. 그것이 잡지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동아줄이라는 것을 『악스트』가 계속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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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자연석 쌓기 유감
안정적인 외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수평이 맞는 평평한 상태의 공간이다. 물론 약간의 경사가 있는 환경이 더 흥미로울 때도 있지만. 경사가 있는 외부 공간을 수평으로 만들어 사용 가능한 땅을 더 확보하는 방법은 옹벽을 세워서 그 앞의 공간을 늘리는 것이다. 이때 옹벽이라는 구조물이 쓰인다.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일정 깊이로 땅을 파고 콘크리트 등의 견고한 구조물을 땅 속에 단단히 고정시킨 후, 그 위에 벽을 세워서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 주는 방법이다. 옹벽은 공정이 복잡하므로 공사에 사용할 수 있는 땅이 충분할 때 가능하기 때문에 장소가 협소하거나 토압으로 인한 구조적인 위험이 있는 공간에서는 사용하기가 번거롭다. 그래서 조경 분야에서 소규모 경사를 처리할 때는 자체의 중량만으로 토양의 압력을 받아내는 자연석 쌓기를 많이 사용한다. 시내 어디에서든 경사가 조금이라도 있는 곳이면 이 기법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돌과 돌 사이에 석간수라고 불리는 나무를 식재하기 때문에 회색의 콘크리트 옹벽보다 사랑받는 듯하다. 왜 그런 것일까 생각해보면 아마 자연스럽다는 게 그 이유일 것이다. 인공의 대명사인 콘크리트와 대척점에 서 있는 자연의 상징인 돌이라는 소재에 초록의 나무까지 곁들일 수 있으니 그 자연스러움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자연 소재의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자연 소재의 나열이 자연스러움에 대한 미학적인 정당성을 줄 수 있을까.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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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알뜨르비행장
알뜨르비행장 부지를 보기 전까진 제주에서 평평한 들판을 보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들판을 보며 내 고향 김제평야를 떠올렸고, 전쟁과 죽음보단 평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릴 적 평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문이다. 그 단순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군더더기 없는 형태와 최소한의 기능을 담은 수문은 과하지 않고 비례도 완벽했으며 들판 한가운데 서있는 조형물로도 손색이 없었다. 알뜨르 격납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행기를 감추기 위해 게 껍질처럼 최소한의 체적을 가진(물론 은신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콘크리트 구조물이 조형물 못지않았다. 때론 토목 구조물이 절대적인 단순함으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들판에 점점이 박혀있던 수문 구조물이 격납고의 유니크한 형태와 아스라이 오버랩된다. _ 김용택
김용택 소장이 쓴 글이다. 아마 10월호나 11월호에 알뜨르비행장이 다뤄졌다면 ‘공간 공감’ 멤버들의 휴대전화 속에만 영원히 잠겨 있었을 멘트다. ‘공간 공감’ 필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답사를 하고 한자리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 후, 하루나 이틀 동안 공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후 단체 카톡방에 단상을 올렸다. 다섯 모두가 비슷한 시선과 문제의식을 내보여, 각각의 단상에 변별점이 없었던(달리 표현하면 읽는 재미가 덜했던) 경우도 있었지만, 휴대전화의 저장 장치 속에만 묻어두기에는 아까운 경우가 많았다. 실험적으로, 이번 호는 그 단상만으로 한 호를 꾸렸다. 담당 에디터의 요청 탓이다. 답사의 목적지가 아니었던 알뜨르비행장을 다룬 것도 그의 제안이다. 지난 호에 실린 ‘환경조경대전’ 수상작 중에서 무려(?) 2작품이나 알뜨르비행장을 다루었다며 이번호 대상지로 강권했다. 다섯 명의 카톡 단상을 싣다보니, 부득이 일부만을 발췌했음을 밝혀둔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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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같은 꿈, 다른 하늘
Column: The Same Dream Under Another Sky
험난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지난 해 막바지는 조경기술자의 자격에 관한 국토부의 법률개정으로 시끄러웠다. 그 와중에 밴드와 카톡 회의의 홍수 속에서 우연히 마주한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재욱 사무국장의 말이 명쾌했다. 그이의 말중 “과거 건설 호경기 시절 건축과 토목의 그늘 아래에서 조경은 노력을 안 해도 혜택을 많이 입었습니다. 건설 불황기인 지금, 건축, 토목 기술자도 일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작년 건축, 토목 특급기술자 조항을 넣은 것이지 담당자의 단순 실수나 오해가 있어서가 아닙니다”라는 구절이 정말 마음에 확와 닿았다. 산림은 물론이고 땅을 다루는 모든 건설 분야에서 일은 없고 사람은 많은 것이다. 정말이지 옛날 누구 말과는 정반대로 땅은 좁고 할 일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지금은 건설 불황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건설 불황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그리 정확한 말은 아니다. 불황기라는 말은 곧 또는 나중에 좋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담은 말이다. 선진 국가의 경우, 건설 분야가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5%정도다. 우리의 경우에는 최악의 기간이었던 2012년과 2013년에 3%대였다. 그때는 불황기가 맞았다. 그전까지는 건설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20% 이상을 상회하며 우리나라의 전체 경제를 견인했다. 거짓말 같던 호황기를 불과 십 년도 못 누리고 불황을 제대로 맞은 것이다. 재작년 그리고 작년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건설 경기가 다소 호전되어 건설 분야의 비중이 선진국의 경우처럼 4~5%대로 올라왔다고 한다. 최악의 불황기가 지나고 살짝 경기가 좋아지는 상황에 있다는 얘기인데, 문제는 더 좋아지지 않고 이대로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강하다는 것이다. 주택 경기가 다시 살아나고 그래서 한 번 더 건설 경기를 정상으로 끌고 갈 기회가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설사 그런 호황이 다시 온다 하더라도 그건 일시적일 것이 틀림없거나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건설 경기는 일시적으로 회복될지도 모르지만 곧 다시 선진국형 고착화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일이 줄었다는 문제 외에도 또 다른 문제는 현재 너무 많은 사람들이 조경을 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졸업생이 너무 많은 것이다. 우리의 일 양이 더 늘지 않고 지금 수준에서 고착화될 것이라고 본다면 냉정하게 얘기해서 서너 개 대학의 졸업생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는데, 우리는 무려 50개에 육박하는 대학에서 조경 전공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졸업생을 줄이거나 현재 실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른 분야로 전향하는 것이 어렵다면, 그래서 현재의 실무 인력을 최대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게 어렵다면, 남아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모든 인력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의 장점은 실무 인력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훈련이 잘 되어 있고 혹독한 경쟁 속에서 성장해 왔다는 점이다. 우리의 조경 인력이 해외로 나갈 수만 있다면. 내 경험으로 볼 때 그들은 어느 환경에서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반년 동안 외국 도시의 조경 일을 수주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반년이 지나서야 겨우 계약 시점까지 와 있고 곧 최종 계약 과정을 진행할 요량이다. 설계 견적을 무려 11번이나 보내야 했고 설계비에 대한 밀고 당김의 실랑이도 적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난 아직도 최종 합의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번 경험으로 톡톡히 알게 된 것은 일개 조경설계사가 외국의 발주처와 설계 용역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경우 따져보아야 할 계약서만 하더라도 무려 50개가 넘는 조항이 담긴 30쪽짜리의 영문 문서인데다가, 모든 조항 하나하나의 내용이 정말 꼼꼼히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사항들이었다. 종합엔지니어링회사나 대형 건축설계사무소 같은 곳은 해외 업무 전담팀이 조직되어 있고 그러한 전담 팀이 계약 서류나 세금 관계 그리고 법규 사항을 조율할 수 있다. 하지만 크지 않은 조경설계사무소가 그정도 인력을 갖추기는 불가능하다. 모든 설계사무실이 영어를 편하게 말하고 쓰고 서류를 작성하고 법규를 검토할 수 있는 인력을 보유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외국 일을 수주하는 건 만만치가 않다.
그렇지만 우리의 미래는 오직 밖에 있고 그 외에는 대안이 없다. 밖으로 나갈 우리의 실력은 충분하니밖으로 나갈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조경사회나 한국조경학회 또는 관련 단체가 외국 일을 수주하고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조직이나 모듈을 마련할 필요가 절실하다. 전시성 이벤트나 불필요한 행사는 과감히 줄이고 좀 더 필요한 곳에 에너지와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되는 행사라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행사는 줄이되 그 행사에 들어갈 돈과 시간을 한 곳에 모아주어야 한다. 이를테면 외국 설계 수주 지원팀―영어도 도와주고, 세무 사항과 법규를 검토해 주고,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프로젝트 전액 보험(project liability insurance)도 보증해 줄 수 있는 팀― 같은 것이 절실하다. 필요하다면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모든 설계사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을 수도 있다. 대신 그 돈을 실질적 해외진출에 도움이 되는 곳에만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행사를 너무 많이 한다. 대부분 소모적이고 전시적이다. 의도는 안 그렇겠지만 결과가 그렇다. 에너지와 자원은 행사에 소모해버리고 정작 일을 수주해서 미래를 도모하려는 노력은 미미하다. 건축, 토목 그리고 산림과의 싸움에서 실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날의 영화를 무조건 되돌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철 안든 아이처럼 행동할 때가 아니다. 냉정하게 우리 것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되 대신우리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개척해야한다.
어느 회사가 외국으로 나간다고 동시에 모두 나가려고 노력하지는 말자. 대신 처음 나가는 회사에 힘을 모아줄 필요는 있다. 그 회사가 잘하면 일은 또 생길 것이고 새로 생기는 일들을 다음 회사가 맡으면 된다. 처음 회사가 다 맡을 거라고? 아니다.
분명히 장담하건대 다른 회사도 일을 맡게 된다. 한번 뚫린 곳은 어떻게든 알려지고 나누어지게 된다. 처음이 어려운 것이다. 처음 간 사람은 선두주자라서 아무래도 더 많은 일을 하겠지만 다음 사람들은 선두주자가 개척해 놓은 인프라를 따라 걸으며 더 좋은 기회를 맞을 수 있다.
제발이지 우리의 같은 꿈이 다른 하늘에서도 값지게 펼쳐질 수 있으면 좋겠다.
진양교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조경학과 및 도시지역계획학과에서 공부했으며, 강원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1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2년부터 CA조경기술사사무소를 열고 실무의 최전방을 절절하게 체험하고 있다. 2010년 봄부터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의 전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주요 설계 작품으로 하늘공원, 한강 반포공원 등이 있으며, 저서로 『기억과 상징으로의 여행』, 『건축의 바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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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는 환경과조경
Editorial: laK , Cultural Generator of Landscape Architecture
다시, 새로운 한 해의 문을 연다. 새해 첫 표지의 시안 다섯 개를 놓고 벌인 편집부와 디자인부의 토론은 아주 간단히 끝났다. 강렬한 빨간색 솔리드 바탕에 힘찬 검은색 활자를 간결하게 새긴 디자인을 거의 만장일치로 선정했는데, 정작 모두의 눈길을 멈추게 한 건 상징적인 숫자 333이었다. 2016년 1월호가 333호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환경과조경』은 한국 현대 조경의 살아있는 역사다. 1982년 7월, 계간 『조경』으로 창간되었고, 1987년 1월(통권 15호)부터는 격월간으로 간행되었다. 1992년 1월을 기점으로 『환경과조경』이라는 제호를 쓰며 월간으로 탈바꿈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333권을 내는 동안 한 차례의 결호도 내지 않은 『환경과 조경』은 한국 조경의 성장사를 기록해 왔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 조경의 쟁점을 조명하고 그 경계를 확장해 왔다.
2013년 10월(통권 306호),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옷을 갈아입은 『환경과조경』은 리뉴얼 프로젝트를 거쳐 2014년 1월(통권 309호), ‘landscape architecture korea’라는 영문 제호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새로운 『환경과조경』은 조경언론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과 건강한 독립성을 바탕으로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며 지난 2년간 매진해 왔다. 진노란색 솔리드 표지의 309호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리뉴얼 호의 첫 쪽에 밝힌 세 가지 비전, 즉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세계적 동시대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라는 비전을 스물 네 권의 내용과 형식을 통해 얼마나 충실히 실천했는지 자성하며, 그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와 따끔한 충고에 깊이 감사드린다.2016년에는 세 가지 비전을 한층 더 정제된 콘텐츠로, 한결 더 섬세한 디자인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매달 첫날을 기다리게 하는 잡지, 받자마자 소중한 두 시간을 빼앗는 잡지, 한 달에 세 번은 다시 펼쳐보는 잡지, 과월호도 다시 뒤적이게 하는 잡지’가 되기 위해, 늘, 새로운 출발점에 설 것을 약속드린다.
333호의 특집 기획으로 용산공원 프로젝트의 현재 상황을 짚어본다. 30년에 가까운 기지 이전 논의와 공원화 과정의 정점이었던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2012년) 이후, 오히려 용산공원 조성 사업에는 브레이크가 걸렸다. 관심도 사라지고 쟁점도 실종되었다. 정부는 진행 과정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국회는 기본설계비로 책정된 예산을 몇 년째 삭감해왔다. 조경·건축·도시설계 등 전문가 사회도 침묵했다. 시민이 참여할 여지가 없었음은 물론이고 참여할 시민의 존재 자체도 없었다. 그 사이 ‘전작권전환계획’이 변경되어 2020년대 중반까지 한미연합사가 기지 내에 잔류하게 되었고, 미군의 이전 일정도 계속 연기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놓고 볼 때 사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본설계안대로 공원이 실현될 수 있을지, 계속 축소되고 있는 공원 계획 면적이 더 잠식되지는 않을지 우려가 적지 않다. 이번 특집은 지난 해 11월 말에 용산공원 시민포럼 준비위원회가 개최한 한 심포지엄을 계기로 기획되었다.
이 심포지엄은 국가 주도의 프로세스 속에서 수면아래로 가라앉아버린 용산공원에 대한 민간과 시민의 관심을 다시 촉구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장기적인 용산공원 조성 프로젝트에서 지금 우선 중요한 것은 다시 이 땅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환기시키고 여러 쟁점에 대해 토론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특집의 내용과 그 행간이 읽혀지기를 바란다. 용산공원에 얽혀있는 이슈가 원체 다양하고 복잡하다보니 모든 측면을 다 짚어 내지는 못했지만 이번 특집이 다각적인 후속 논의를 낳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색적인 공모 방식으로 주목을 끌었던 노들섬 공모의 2단계―운영계획과 시설구상― 결과를 싣는다. 일반적인 설계공모와는 다르게 기획과 운영에 대한 제안을 먼저 공모에 부친 이번 공모의 당선자는 추후 노들섬을 운영하게 된다. 서울 한가운데에 고립된 섬 노들섬이 3단계―공간과 시설조성―까지 이어질 후속 공모를 통해 시민의 참여와 경험이 축적된 ‘꿈의 섬’을 꿈꿀 수 있을지 계속 주시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호에 담은 West 8의 근작에도 시선을 집중할 만하다. 19세기 후반 네덜란드 새 수면선waterline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비 베흐텐 요새를 창조적으로 복원한 이 프로젝트는 폐허, 문화유산, 박물관, 대지미술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쟁점들을 조경 설계를 통해 하나의 언어로 엮어내고 있다.
새해를 여는 333호, 새로운 연재 세 편의 막이 열린다. 민성훈(수원대학교 도시부동산개발학과 교수)은 문화 현상이자 산업 분야이자 학문 분과인 조경을 경제학의 눈으로 읽어낼 1년 예정의 연재 ‘조경의 경제학’을 시작한다. ‘신지도제작자’와 ‘모바일홈 프로젝트’를 비롯한 다수의 전시 기획으로 주목받은 심소미(독립 큐레이터)의 연재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는 타이페이의 도시재생과 문화적 풍경을 첫 소재로 다루며 우리의 시선을 초대한다. 장기 연재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두 필자의 결심에 감사드리며, 독자 여러분의 많은 피드백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아홉 번째 주자는 시애틀올림픽 조각 공원의 설계 실무자로 잘 알려진 서예례(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오피스 오브 어반 터레인즈 디렉터)다. 독자 여러분의 큰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표지 시안의 숫자 333이 남긴 흥분감(?)을 애써 누르며 새해를, 새롭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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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판타스틱 빌리지, 해방촌?
Is Haebangchon a Fantastic Village?
“우리 토요일에 파티 해.” “무슨 파티” “『남산골 해방촌』 발간 파티!” 파티에 초대한 B는 잡지의 발행인이다. 해방촌에서 9년간 살고 있는 (겨우 9년밖에 안돼서 동네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는) B는 4년 전부터 일 년에 두세 호씩 ‘남산골 해방촌’이란 이름의 동네 잡지를 만들고 있다. 아홉 번째 잡지를 내면서 이번에는 행사를 좀 크게 벌려보겠다며 거창한 초대장을 보냈다. 전부터 B가 해방촌에서 주민들과 이런저런 모임을 갖는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심드렁했던 난 이번에는 3월호 필자인 S가 온다는 소식에 금쪽같은 토요일 저녁 맥주 한 패키지를 사들고 해방촌으로 향했다.
남산과 용산미군기지 사이에 자리한 산동네(?) 해방촌은 녹사평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천생 길치인 나는 그날도 휴대폰의 지도 앱을 보면서 쩔쩔매고 있었는데, 친절하게 모임 장소까지 안내해준 한 주민 덕택에 헛걸음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색다른 친절을 한 번 경험했다고 해방촌을 정이 넘치는 ‘도시 마을’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진 않았지만, 꿀렁꿀렁 언덕을 오르는 마을버스 안에서 역시 좀 남다른 동네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토속적인 이름과 달리 해방촌이 주변의 이태원, 경리단길, 한남동 등에 이어 핫하고 힙한 플레이스로 떠오른 지도 몇 년이 지났다. 미군과 외국인들이 많이 오가고, “스타벅스 하나 들어설 번듯한 땅이 없는” 이 지역의 낮은 임대료는 젊고 자유로운 디자이너나 아티스트들을 불러들였다. 개발이 비껴간 오래된 동네의 오밀조밀한 분위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조용히 스며들며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제는 들썩거리는 임대료에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협을 피해갈 수 있을지 우려도 피어나는 동네다.
모임 장소는 해방촌 오거리에 있는 한 정보디자인협동조합의 카페 공간이었다. 모인 사람들을 살펴보니, 해방촌에 거처를 두고 있거나 작업실을 꾸리고 있는 아티스트나 디자이너, 일러스트나 카툰을 그리는 이들, 연주자 등이다. 그리고 해방촌을 설계 스튜디오의 사이트로 삼았던 건축학과 학생들 여럿과 교수들도 몇몇 참석했다.
발간 파티의 첫 번째 순서는 『남산골 해방촌』 9호 글쓴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B는 ‘해룡빌딩’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해룡빌딩이 어디더라’ 알고 보니 B의 기사는 나 같은 외지인은 몰라도 해방촌 주민들은 모두 아는 ‘뚜레쥬르(가 1층에 입점한) 빌딩’ 탐사기였다. 해방촌에서 가장 높은 3층짜리 근생인 해룡빌딩은 1969년에 지어진 건물로 겉에서는 눈치 채기 어렵지만 안에 들어서면 부동산개발회사와 예술가 작업실이, 디자이너 사무실과 교회가, 그리고 야밤에 음악을 틀어가며 파티를 벌여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옥상 공간이 동거하는 야릇하고 오묘한 공간이란다. “우중충한 2층의 복도 양옆으로 한쪽에는 뭔가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물건들과 에너지로 가득 찬 작업실이, 한쪽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바둑을 두시는 기원이 나란히 배치”된, 마치 오래된 동네를 무대로 토박이 어르신들과 문화와 예술을 업으로 삼는 젊은 이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살고 있는 해방촌의 풍경을 축소판처럼 보여주는 건물이다.
옆자리에 서 있는 잘생기고 스타일 좋은 청년에게 동네 주민이냐며 말을 붙여 보았다. 해방촌에서 세탁소 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단다. 건축을 전공했다는 그는 한 눈에 보기에도 고전적인 세탁소 사장님은 아니었다. “여기 해방촌에는 단기로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서 이들이 세탁을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그가 운영하는 ‘론드리 프로젝트Laundry Project’는 독특한 공간 구성과 세련된 인테리어로 혹은 마치 “뉴욕에 갔을 때 봤던 공간”으로 이미 블로거나 인스타그래머들에게 유명한 카페였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없어지는 게 세탁소잖아요. 꼭 이런 형태가 아니더라도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싶었어요.” 지역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그의 비즈니스 모델이 대기업과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 등이 주도하는 변화의 파고를 넘을 수 있을까? 해룡빌딩도 그의 카페도 계속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만큼 걱정이 앞선다.
해방촌과 이런저런 연을 맺고 있는 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동네 잡지를 훑어 보니 역시 해방촌의 예술가들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기사가 빠지지 않았고, 해방촌 도시재생사업 회의 참관기, 건축학과 학생들의 (과제)작품 등도 실려 있었다. 그 밖에는 해방촌에서 추운 겨울을 나는 법이나 병원과 운동에 관한 생활 정보, 감나무가 있는 집 취재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이 50쪽 남짓한 이번 호를 채우고 있었다. 잡지 제작비 모금을 위한 작은 바자회와 우크렐레의 반주에 맞춘 노래 등 마지막 축하 공연까지 파티의 분위기는 내내 따뜻했고 마치 동아리 모임을 연상케 했다. B는 “비슷한 사람들이 친구가 되니 동네에 좀 더 애착을 가지게 돼.” 또 그러다보니 잡지뿐만 아니라 작은 이벤트도 하게 된다며 그간의 해방촌살이를 들려줬다. “결국은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거나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기 마련이네요. 해방촌에 오랫동안 살았던 원주민들과는 섞이기 어려울 것 같아요.” “원주민이라서가 아니라, 세대와 가치관이 달라서 같이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을 굳이 하나로 묶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어떤 글에서 읽었는데, 합일의 공동체가 아닌 차이의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인상적이었어. 다종다양한 그룹들이 그 차이를 인정하고 느슨하게 연대하는 것” B와의 대화에서, 이번 달 서예례 교수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생동적이고 아름다운 도시란 다양한 취향이 상충적으로 공존하는 도시다”라는 대목이 떠오른다.
TV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중 얼마 전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은 그 어느 때보다 가족과 동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옛 추억을 더듬게 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2016년을 사는 나에게 봉황당 골목과 평상이 상징하는 가족 같은 이웃과 오순도순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삶은 이제는 실현불가능한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지금 우리가 찾는 마을은 분명 그때와는 다른 형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혹시 해방촌이 그런 대안적 공동체의 단서를 보여주지 않을까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날 기다리던 S는 배를 한 상자 들고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경제학을 전공한 후 대중문화와 산업을 연구했던 그가 요즘 발표하는 논문의 주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음악에 대한 저서를 내던 그가 갑자기 왜 지역에 대한 연구로 돌아섰을까 궁금했다. “사실 나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홍대의 음악 산업과 문화에 관심이 있었는데, 홍대가 핫한 동네로 부상하면서 아티스트들이 밀려나는 것을 보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미리 홍보하자면 문화예술과 부동산이 결합하고 충돌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그의 관찰과 통찰은 3월호 특집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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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메밀꽃 필 무렵
Editor’s Library: When Buckwheat Flowers Blossom
벌써 2016년의 첫 달이 끝나가고 있다. 새해가 오면 으레 지난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일 년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약속을 잡고 해야 할 일과 사고 싶은 것 등의 목록을 적었다. 새해 준비의 마지막은 책상에 앉아 지난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펼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2015년 버킷 리스트’라는 거창한 제목 아래로 여러 항목이 줄줄이 달려 있다. 실천에 성공한 항목 옆에는 별이 그려져 있고, 그렇지 못한 항목 옆은 텅 비어 있다. 별의 개수를 세며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다가 문득 한 항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봉평 메밀꽃 축제 다녀오기. 몇 년째 버킷 리스트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별이 그려져 있지 않은 항목 중 하나다.
아직 메밀꽃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메밀꽃에 대한 환상이 있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글로 배웠어요’라는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 다양한 시리즈 중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와 ‘화장을 글로 배웠어요’가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시리즈의 핵심은 무언가를 ‘글’로 배운다는 것에 있다. 글로 배운 화장법은 갓 스무 살이 된 대학생을 아줌마로 만들고, 글로 배운 연애는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엉망으로 망쳐놓았다. 글로 배웠기에 생기는 환상과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실의 갭이 웃음을 유발했다. 많은 사람이 공감했고 이는 실제 연애를 못하는 사람을 돕는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연애를 글로 배운 한 남자의 서툰 연애보고서』1라는 책의 발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메밀꽃에 대한 환상도 이처럼 만들어졌다. 나는 메밀꽃을 책으로 배웠다.
사실 『메밀꽃 필 무렵』은 1990년대 컴퓨터를 좀 배웠다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접해볼 수밖에 없는 글이다. 한컴타자연습(1997년도 버전)이라는 타자 검정 프로그램에 사용됐던 소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방과 후 컴퓨터 수업을 들었고,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 항상 타자 연습을 했다. 『메밀꽃 필 무렵』은 따옴표가 많아서 타자를 치기 까다로운 글이었고, 제한된 시간 내에만 타자를 쳐야 하는 프로그램의 특성 때문에 항상 소설의 초반부만 읽게 되었다. 장터를 들볶는 열기와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볕이 소설의 전부인 줄 알고 지내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책을 제대로 읽었다. 그때 이 책이 여름 낮의 시골 풍경으로 가득 찬 소설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 소설은 매력적인 인물, 흥미진진한 이야기, 섬세한 심리 묘사 대신 낭만적인 시골의 풍경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작가 이효석이 평창에서 보고 자란 시골 장터, 논 사이로 가느다랗게 뻗은 길, 그 위를 나귀와 함께 걸어가는 노인 등 생생한 시골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소설이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면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밤중의 산길이 뿜는 묘한 매력은 장돌뱅이허생원이 동이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풀어놓게 만든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2 시적으로 표현된 밤하늘을 밝히는 달과 푸른 달빛에 젖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풍경은 소설의 어설픈 부분을 모두 메꾸어 버린다.
본래 물레방앗간은 전근대 한국 사회에서 농촌의 에로티시즘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묘사는 허생원과 어떤 여인이 물레방앗간에서 나눈 하룻밤의 사랑을 순수하고 애절한 장면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 관계로 인해 태어난 동이가 아버지와 같은 장돌뱅이라는 직업을 택해 살아가고 그 아버지와 우연히 시골 장터에서 만나게 된다는 서사 구조의 부족함도, 왼손잡이는 유전적 형질이 아니기에 허생원과 동이의 부자 관계를 암시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도 잊게 만든다. 만약 인물의 설정이 독특하거나 이야기의 인과 관계가 명확했다면 이효석의 탐미적인 풍경 묘사가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생원과 동이의 대화로 더듬어지는 희미한 과거의 이야기가 산길을 더욱 몽환적으로 만든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3이라고 한 허생원의 말처럼 말이다.
푸른 달빛과 청량하게 울리는 나귀의 방울 소리가 내게 메밀꽃은 서늘한 공기 속에서 빛나는 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만지면 바삭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손에 남은 꽃의 잔해를 핥으면 짠맛이 날 것 같다. 서늘한 가을이라기에는 이른 9월에 열리는 봉평 축제에 다녀오면, 메밀꽃에 대해 품고 있던 환상의 일부가 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평 메밀꽃 축제 다녀오기’를 ‘2016 버킷 리스트’에도 적었다. 그 옆에 별 표시가 새겨질지 그 여부는 내가 환상이 아닌 현실과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