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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간 공감] 홍익대학교 중앙광장
    2006년 홍대 인근에 사무실을 연 후 점심시간이면 가끔 직원들과 함께 건축학과 졸업전시회나 강연을 보러 다니며 홍대 캠퍼스 진입 공간인 중앙광장을 만나게 되었다. 이곳은 폭이 30m쯤 되고 길이가 300m 정도인 좁고 긴 형태이지만 홍대 내에서는 가장 넓은 오픈스페이스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고목 플라타너스와 양버들 그리고 느티나무 몇 주가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른 대학교 캠퍼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2007년부터 이 공간의 리노베이션이 시작됐고 1년 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중앙광장이 다시 태어났다. 변신과정 내내 이 광장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완공 후의 모습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원래 있던 나무 사이에 1~3m 키의 갖가지 나무를 두서없이 식재하여 마치 서울 근교의 그렇고 그런 수목 농장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인 공간의 스케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한창 조경 설계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던 시절, 나는 왜 멀쩡한 광장을 이렇게 만들어버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공간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계기가 몇 년 후 찾아왔다. 2010년부터 홍대 건축학과 4학년의 조경 과목을 맡게 되면서부터 나는 광장을 매주 자연스럽게 지나다니며 변신을 거듭하는 이 광장의 매력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로 심은 수목들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광장은 계속 변해갔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디자인 노트] 국가라는 그릇 김영민 1등작 ‘세종상징광장’ 디자인 노트
    언제부턴가 나는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표면적인 요구사항들이 언제나 내가 진정 해주기를 바라는 일들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더 난감한 사실은 그들도 대부분 정확히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요청된 다른 이의 욕망은 역설적으로 내가 그 욕망을 다시 정의해야만 충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차피 모든 욕망은 결국 타인의 욕망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렇듯 모호한 요구 사항들을 쏟아내지만 정작 본질은 어디론가 미끄러져서 혀끝에서만 맴도는 지침서를 두어 번 읽어보았다. 이 공모전이 요구하는 바는 세 가지라고 결론 내렸다. 광장, 상징, 현실. 그리고 실상 별다른 연관성도, 인과 관계도 없는 이 세 가지를 애초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엮을 것. 첫째,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 광장은 우리에게 낯설기 때문에 어려운 공간이다. 우리는 광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서구의 전통에서 광장은 도시의 정체성, 또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권력의 가장 설득력 있는 자기표현의 공간이었다.1 반면 수도 외에는 어떠한 도시적 정체성도 용납하지 않았던 우리의 중앙집권적 유교 문화에서는 광장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아니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공간이었다.2 그래서 우리의 도시에서 광장은 어색한 공간이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친숙한 다른 종류의 공간으로 대체되기를 요구받는 공간이다. 다른 한편으로 광장은 비어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어려운 공간이다. 우리는 디자인이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채우는 행위라고 교육받고 그러한 실천을 해왔다. 공간을 채우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에게 채우지 않아야 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모순이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팀이 모여 미팅을 했을 때 판이하게 다른 디자인과 생각들이 나왔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있었다. 채워진 생각과 안.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 데 모두가 속이 꽉 찬 입방체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광장의 본질은 비움이며, 채움의 논리가 비움을 압도하는 순간 더 이상 광장은 광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자명한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도 자명하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USC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 [디자인 노트] 협업을 다시 생각하다 프로젝트 팀 Terminal 7의 작업 과정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디자인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공모전 및 실무에서의 협업은 심사 기준의 충족이나 보고서 제출을 위한 형식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형식적인 협업이 아닌, 영역의 구분 없이 수평적 관계에서 세종대로 역사문화 공간 설계공모에 참여했던 플랫폼 형식의 프로젝트 팀 Terminal 7의 협업 과정을 소개한다. 이 협업에서 우리는 익숙한 사고와 디자인 방식을 확장시킬 수 있었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5명의 구성원과 5명의 리더 공모전 규모와 결과물(도판 A0 2장, 설계설명서 A3 15매 이내, 법규 검토 및 추정 공사비 내역 포함)의 양으로 미루어, 다섯 명이라는 인원은 일반 설계사무소의 인력과 비교해 다소부족하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특히 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기존의 설계사무소가 가지고 있는 축적된 노하우와 안정적 팀 구성은 매우 효율적이다. 우리 팀은 플랫폼 형식의 프로젝트 팀으로 5명의 전문가(뉴욕을 기반으로 한 건축가 2명, 조경가 2명, 도시설계가 1명)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원 간에 이력과 실무 경험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경력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수평적으로 협업을 진행했다. 수평적 관계 속에서 모든 구성원은 비판적이기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공모에 임했다. 이러한 접근 태도 덕택에 5명의 구성원은 자료 취합, 현황 분석, 브레인스토밍, 디자인, 프로덕션, 내러티브 구성 등 성격이 확연히 다른 디자인의 과정에서 각각 리더가 될 수 있었다. 프로젝트 초기, 대상지의 규모는 작아도 도시 맥락적으로 서울의 거대한 지하 공간의 시점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이 하나의 유형typology이 되어 추후 서울의 도시개발 사업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도시설계가의 거시적 안목을 바탕으로 아이디어가 전개되었고, 그 위에 조경가와 건축가의 생각이 더해졌다. 또한 디자인 과정에서 조경가는 협의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대략적인 형태의 디자인 대안들을 제안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건축가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디자인 형태를 조언하였다. 이후 구체적인 지하 공간의 건축 형태와 프로그램은 건축가들이 주도했고, 지하 공간의 정원과 벽면은 조경가와 도시설계가에 의해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또한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반적인 그래픽 스타일과 결과물은 경험 많은 사람을 주축으로 각자 자신 있는 영역의 드로잉을 맡았다. 전반적인 과정에서, 마치 기러기의 비행과 같이 선두의 자리를 바꿔가며 모든 참여자가 유기적으로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기존 설계사무소의 시스템이 아닌 수평적 관계의 상호보완적인 팀원 구성이 이번 협업의 바탕이 되었다. 각자의 영역이 아닌 통합된 장소의 디자인 이번 공모전은 국내외 건축사 자격을 요구하는 공모전이고, 일반적인 건물의 매스, 입면, 프로그램 등이 아닌, 역사문화 공간(지하 공간 포함)에 대한 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디자인보다는 그 복합적인 주변 맥락(성공회성당, 덕수궁, 세종대로, 서울시청, 세실극장 등)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담긴 공간을 제안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각자의 영역을 구분하여 디자인하기보다 하나의 장소로 대상지를 인식함으로써 초기 아이디어 협의에서부터 구체적인 디자인까지 건축가나 조경가가 아닌 통합적 디자이너로서 설계에 임했다.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아이디어에 대한 비판적 자세와 구체적인 평가를 배제하면서 다양한 관점의 아이디어를 열거하였다. 서울의 수평적 경관, 현대 도시의 수직적 경관urban depth, 유형으로서 대상지의 가능성, 역사적 층위로서 지하 공간에 대한 재해석 등을 바탕으로 우리는 서울의 다층적 경관을 더 구체적으로 해석하였고, 두 가지의 디자인 원칙을 결정하였다. 첫째, 대상지의 상부는 비우고 간결한 형태의 표면을 만든다. 둘째, 서울의 수직ㆍ수평적 층위를 공간에 담는다. 이 두 가지 원칙으로부터 두 개의 다른 지붕 형태를 도출하였다. 장단점이 명확히 다른 이 두 개의 지붕 형태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조경가와 도시계획가는 연속적인 표면의 연결과 더불어 변화감 있는 지붕 쪽을 선호하였고, 건축가는 띄운 지붕의 형태를 선호했다. 이 과정에서 상부 공간과 지하 공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띄운 지붕을 선택했다. 이는 팀 구성원 모두 띄워진 표면 틈 사이로 보이는 경관 및 자연환경의 유입이 지하 공간의 다양한 경험을 유도한다는 생각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후 작업에는 공간별로 전문성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경가와 건축가가 각 영역의 디자인 주체가 되었다.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유펜 디자인 스쿨을 졸업하고, 현재 뉴욕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의 프로젝트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Dubai Waterfront 설계에 참여하고 있으며, Milwaukee Lakefront Gateway Plaza Competition과 China DachongVillage 설계를 이끌었다. CA조경의 창립 멤버로 7년간 여러 공모전에서 당선을 이끌었으며, 올해 초 열렸던 서울역고가 국제지명 현상설계에 CA조경과 함께 참여했다. 최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IDEAS(www.groupideas.org)라는 디자인 및 리서치 그룹을 만들어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전진현은 현재 뉴욕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New YorkCiti Bank Plaza 설계에 참여하고 있으며, China International Garden EXPO 설계를 이끌었다. 하버드 GSD 졸업에 앞서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을 전공했으며, 신화컨설팅에서 디자이너로서 실무를 쌓았다. 그는 휴먼 스케일의 디자인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용자가 삼차원 공간을 지각하게하는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타이페이의 도시재생 남루한 풍경으로부터 부활되는 도시 문화
    20세기 초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두 나라, 대만과 한국, 그리고 두 나라의 수도 타이페이와 서울은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근대화를 맞이했다. 일제의 통치 하에서 서구의 건축 양식을 받아들인 두 도시의 근대 풍경은 흡사한 부분이 많다. 오늘날 서울과 타이페이의도시 풍경은 얼핏 보기엔 비슷해 보이나, 건물의 입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두 도시에 담긴 시간의 격차가크게 다가올 것이다. 스펙터클한 고층 건물이 화려하게 거리를 장악한 서울에 비해, 타이페이에서는 근대기에 지어진 건물뿐만 아니라 낡은 건물을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대해 변명하자면 우리에게는 한국전쟁이라는 폐허의 시간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도시 개발에 대한 욕망으로 노후한 건물들을 쉼 없이 철거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근대란 도시속의 삭제된 페이지마냥 드문 흔적으로 자리한다. 반면 타이페이에는 남루한 옛 건물들이 길거리 곳곳에 남아 두 도시 사이의 차이를 더욱 극명히 드러낸다. 우리에게 철거 대상인 건물들이 타이페이에서는 골조가 낡은 채로,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로, 빈 채로, 때로는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가설 지지대만으로 유지된다. 방치게는 한국전쟁이라는 폐허의 시간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도시 개발에 대한 욕망으로 노후한 건물들을 쉼 없이 철거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근대란 도시속의 삭제된 페이지마냥 드문 흔적으로 자리한다. 반면 타이페이에는 남루한 옛 건물들이 길거리 곳곳에 남아 두 도시 사이의 차이를 더욱 극명히 드러낸다. 우리에게 철거 대상인 건물들이 타이페이에서는 골조가 낡은 채로,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로, 빈 채로, 때로는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가설 지지대만으로 유지된다. 방치된 옛 건물들은 현대와 근대 사이의 풍경을 오버랩하며 타이페이만의 독특한 도시 풍경을 구성한다. 그 배경에는 타이페이를 도시문화적으로 재생시키고자 하는 정부 기관, 재단, 대안 공간, 소규모 예술가 그룹, 액티비스트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있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 [시네마 스케이프] 하트 오브 더 씨 생의 좌표
    구글 지도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종이 지도는 여행의 필수품이었다. 종이 지도와 나침반을 단숨에 대체한 구글 지도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준다는 점이다. 아무리 낯선 장소에 던져지더라도 나의 좌표만 알면 불안하지 않다.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해양 모험담을 그린 영화 ‘하트 오브 더 씨’는 좌표를 잃고 망망대해에 표류하면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고래의 공격에 노출된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표류나 고립을 다룬 영화는 많다. 이부류의 영화는 대개 거대한 자연에 비해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하잘것없는지 깨닫게 해 준다. 그러나 이번 영화의 특별한 점은 자연을 초월한 존재인 고래에 있다. 영화는 인간이 고래를 만나기 전, 그리고 거대한 흰 고래에게 완벽하게 TKO패 당한 이후의 두 상황으로 나뉜다. 이 영화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바탕이 된 실화를 그리고 있다. 생활고를 겪는 소설가 허먼 멜빌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한 남자를 찾아오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1800년대 초에 고래잡이는 기름을 얻기 위한 중요한 산업이었다. 야심 차게 항해를 시작한 포경선 에식스 호는 거대한 고래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94일간의 표류 끝에 소수만 살아남는다. 생존자 중 한 명이었던 남자는 멜빌의 간청에 못 이겨 지옥 같았던 체험담을 들려준다. 4D로 보았으면 멀미가 날 뻔 했다. 2D로도 심하게 흔들리는 배에 탄 것 같은 다이나믹함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거대한 돛을 올리는 장면, 바람에 맞서 바닷물이 얼굴로 튀고 고래의 몸짓에 배가 산산조각이 나는 스펙터클은 그 자체로 공감각적인 쾌감을 준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헤라클레스의 모험
    #69 헤라클레스, 올림피아에 가다 헤라클레스는 고대 그리스가 낳은 영웅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긴 신화를 가졌다. 알고 보면 인류 문화 최초의 연작물 주인공이기도 하다. 구조적으로 볼 때 그의 신화는 현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혹은 본 시리즈(본 아이덴티티 등) 등과 많이 닮았다. 하나의 영웅을 두고 이야기를 자꾸 만들어 낸 것이다. 기원전 800년경 처음 언급되기 시작해 이후 수백 년 동안 수없이 작가가 교체되었고 주인공 헤라클레스의 캐릭터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는 ‘살아있는 병기, 문제 해결사’라는 특수 임무를 띠고 세상에 나타난 모든 영웅의 선조이기도 하다. 타이탄들과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제우스가 특별히 계획하여 낳은 아들이었는데, ‘인간의 아들’만이 타이탄을 죽일 수 있다는 예언이 있었기에 정실 부인을 놔두고 어느 인간 여성의 몸을 빌려 탄생시켰다. 그 때문에 제우스의 아내 헤라 여신이 헤라클레스를 몹시 미워하여 평생 괴롭혔다. 툭하면 정신착란증을 내려 보내 발작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그는 초인간적인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통과 고뇌에 시달리던 불완전한 영웅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것 같다. 그런점에서는 오히려 제이슨 본과 유사하다. 슈퍼맨, 배트맨뿐만 아니라 이제는 제임스 본드까지 만화적 완벽성을 버리고 점차 개인사를 지닌 인간적 캐릭터로 변하고 있는 추세다. 말하자면 헤라클레스의 모습과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 이다. 생각할수록 그리스 신화는 21세기에도 따라잡기 어려운 모던함과 심오함을 지니고 있다. 타이탄과의 전쟁을 위해 특별 제조된 비밀 병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타이탄 전쟁에 대해서는 신화 속에서 잠깐만 언급된다. 임무를 마친 뒤 신화 속을 걸어 나와 유유히 사라져버려야 마땅했겠으나 사람들이 그를 보내주지 않았다. 그의 진짜 커리어는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현대의 연작물은 우선 상업적 이익 때문에 만들어질 것이다. 고대에 헤라클레스 시리즈가 계속 만들어졌던 이유는 일차적으로 건국 신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도시 국가들 사이에서 헤라클레스를 건국 시조로 삼는 것이 유행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모험을 겪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사이 아들도 무수히 낳아야 했다. 흑해 연안에서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 이르기까지 헤라클레스의 아들 누구누구가 세웠다고 주장하는 나라들이 속속 나타났으며 그 덕에 헤라클레스의 신화는 눈덩이처럼 부풀어갔다. 그의 신화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도 초월하여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쳐 프랑스혁명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컴퓨터의 시대가 오면서 게임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렇듯 세상에서 가장 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서 헤라클레스는 수 없는 일화를 만들기 위해 지구를 몇 바퀴 돌고 지하 세계는 물론 파라다이스까지 다녀왔다. 그러니 정원에 연루된 것도 하등 이상할 것 없다.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헤라클레스는 어린 시절, 신분과 임무에 걸맞은 특수 교육을 받았다. 당시의 교육이라면 우선 신체 훈련을 뜻한다. 레슬링, 복싱, 수영, 활쏘기를 배웠고 나중에는 마차 경주도 배웠다는데1 이쯤에서 이야기에 혼선이 온다. 그가 마차 경주를 고안해냈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받은 교육 과목은 최초의 올림픽경기 종목과도 일치한다. 아닌 게 아니라 헤라클레스는 올림픽 경기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언제 틈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매일 새벽 경기장에 나가 연습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연습하기 전에 우선 바닥을 뒤덮은 아칸투스를 벌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2 헤라클레스가 운동 연습을 하던 장소를 당시에는 ‘김나지온’3이라고 불렀다. 김나지온은 “고대 그리스 건축 문화사 중에서 가장 포착이 어려운”4 곳이다. 일종의 종합 시설로서 종교·스포츠·교육·문화 시설이 융합된 장소였다. 말하자면 정치를 제외한 모든 사회 생활이 이루어지던 장소였다. 그 시작은 ‘성림sacred groves’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대개 도시 바로 외곽에 있는 숲 속, 샘물이 흘러나오는 장소에 성소를 마련했다. 지역에 따라 커다랗고 신비스러운 플라타너스나 올리브나무 군락을 성림으로 삼기도 했다. 숲 속이나 큰 나무에 신들이 내려온다고 여겼으므로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정기적으로 제를 올렸는데 이런 점은 어느 문명권에서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리스인의 경우 신에 대한 정기적인 기도와 제사 외에도 영웅 숭배가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다. 대개는 각 도시 국가를 최초에 세운 전설적인 영웅들을 위해 성림을 따로 마련하고 제사를 지냈다. 이 때 제물을 바치고 조용히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제사와 함께 운동 경기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신체적·정신적 훈련, 의식과 제례, 영웅 숭배가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되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것이 나중에 올림픽 경기로 발전하게 된다. 처음에는 제단 옆에 자리를 마련하고 씨름이나 복싱 경기를 했겠지만 차츰 제대로 된 경기장이 들어섰다. 가장 먼저 들어선 것이 레슬링장이었다. 정방형의 모래밭을 가운데 두고 사방을 주랑으로 둘렀으며 주랑 바깥에 탈의실, 욕실, 휴게실, 대기실 등의 방을 배치했다. 이런 시설을 ‘팔라이스트라palaestra’라고 불렀다. 그 다음에 세워진 것이 기다란 달리기 코스였다. 우천 시 혹은 겨울에도 연습을 할 수 있게 여기에 지붕을 덮어실내 체육관을 만들고 이를 ‘키스토스xystos’ 라고 했다. 지붕을 덮지 않은 경기장은 ‘스타디온’이라고 했으며 이것이 모든 운동 경기장의 기원이 된다. 팔라이스트라와 키스토스 혹은 스타디온 사이의 공간에 산책과 휴식을 할 수 있는 정원이 조성되었고 이들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전체를 담으로 둘렀는데 이 복합 시설이 바로 김나지온이었다. 김나지온은 또한 선수들을 전문적으로 훈련시키고 청소년을 교육하는 학교의 기능도 겸했다.5 올림픽 경기가 활성화되 면서 시설이 점점 확대되어 관람석, 야영장, 숙박 시설은 물론 야외극장도 들어서는 등 거대한 콤플렉스로 성장했는 데, 특이한 것은 본래 있던 성림 주변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올림피아 유적지의 배치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신전과 김나지온이 한 장소에 조성되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이런 구조는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김나지온에서 교육을 받았던 헤라클레스가 나중에 영웅이 되어 모험을 다니다가 우연히 올림피아에 들르게 된다. 마침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뙤약볕에서 전차 경주하는 모습을 보고 북쪽에 있다는 파라다이스에 후딱 가서 올리브 나뭇가지들을 가져와 경기장 주변에 심었다는 것이다. 영웅이 심은 것이니 아마도 바로 숲이 되었나 보다. 그 잎을 따서 화관을 만들어 승자에게 씌워주었다.6 이것이 김나지온 주변에 나무를 열 지어 심어 그늘을 만들고 산책로를 조성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므로 그에 잇대어 수림을 조성하거나 아니면 주변에 남아있던 숲을 공원처럼 개조하여 산책과 휴식의 장소로도 제공했다. 이렇게 김나지온은 운동과 교육의 장소였을 뿐 아니라 성림, 가로수 산책길, 공원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 조경 시설로도 성장해 갔다. 대개 정원의 역사는 지배자들의 거대한 궁전이나 영지에서 시작되지만, 왕의 궁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었던 고대 그리스는 시민들의 복합 문화 공간 김나지온이라는 독특한 장소를 탄생시켰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조경의 경제학] 정원이라는 상품, 그 생산과 소비 의 메커니즘 [조경의 경제학] 정원이라는 상품, 그 생산과 소비 의 메커니즘
    연재를 시작하며 욕망은 무한한데 그것을 충족시킬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 상태. 경제학자가 주목하는 우리 삶의 현실이다. 자원의 희소성은 필연적으로 선택의 문제를 야기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무엇을 만들고, 그것을 누가 사용할 것인가? 경제학자는 이를 ‘자원의 배분allocation’과 ‘소득의 분배distribution’라는 말로 표현한다. 효율성과 형평성을 고려하여 이러한 경제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경제학자의 중요한 임무다. 흔히 경제학을 ‘돈’, 특히 ‘돈 버는 방법’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는 경제학을 너무 편협하게 바라보는 시각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경제학은 정치학이나 윤리학과 유사한 문제의식과 해결 과제를 가진 사회과학의 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1723~1790)가 그 유명한 『국부론』(1776)을 저술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가 윤리학 서적인 『도덕감정론』(1759)의 저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의 본성,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대중 또는 다중의 의사결정 등의 철학적인 문제로부터 경제학자 역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라는 단어는 다른 숭고한 가치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름다움, 생태, 환경 등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근대 이후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도시경관을 무미건조하게 만든 행태가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들 가치를 중시하는 조경가가 ‘경제’라는 단어에 대해 일종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연재에서는 돈의 논리 혹은 자본의 논리로서의 경제 개념이 아니라 경제학이 가진 본래의 문제의식으로 조경을 다루고자 한다. 조경은 문화 현상이자 산업 분야이자 학문 분과이므로 그 전체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일은 매우 광범위한 작업이다. 이 연재에서는 그렇게 깊고 넓은 분석을 진행하기보다는 경제학에서 흔히 이용되는 방법, 즉 경제 모형을 통해 조경이 다루는 대표적인 대상인 정원, 공원, 경관을 그저 한번 읽어보는 정도로 다룰 것이다1. 경제 모형은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복잡다기한 현상을 고도로 추상화 또는 단순화해서 다룬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특정 현상을 이루는 섬세한 부분을 무시하는 단점이 있지만, 반대로 전체적인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는 유용할 때가 많다. 눈을 가늘게 떴을 때 앞에 선 사람의 이목구비는 흐릿해지지만 전체적인 실루엣은 더 잘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러한 눈으로 조경을 바라보는 작업은 오늘의 조경이 어떤 모습인지 파악하는 데 한 갈래의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창한 서론에 비해 연재의 내용은 매우 가벼울 것이다. 이는 보다 큰 목적 혹은 독자에 대한 배려 때문이 아니라, 조경과 경제학의 관계에 대한 필자의 공부와 고민이 얕기 때문임을 밝힌다. 보이지 않는 손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욕망을 좇아 경제 활동을 하다보면 세상은 저절로 적절하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 말대로라면 우리는 적절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굳이 남을 배려할 필요가 없다.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과 빵집 주인의 욕망 추구 행위가 나의 식탁을 균형 있게 채워주는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은혜를 베풀어 그(녀)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이와 같은 시장 기구의 신통한 작동을 보다 강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다. “사실 그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며, 자신이 공공의 이익을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 그는 …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 [그들이 설계하는 법] 문제 제기
    나의 ‘설계하는 법’은 없다고 우선 고백한다. 과학자나 엔지니어 개인에게 딱히 규정할 수 있는 ‘연구하는 법’, ‘기술 개발하는 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있어 방법은 내용과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들은 가설을 실험하고 증명하기 위해 방법을 매번 조금씩 조정한다. 이는 설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매 프로젝트마다 특수한 이슈가 있고 이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설계 방법은 시시각각 변모하고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특정한 설계 방법보다는 문제의식과 목적에 대한 고민이 설계의 방법을 정하게 한다. 과학 실험과 같이 매번 이전의 설계 방법을 실험, 도전, 진화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설명이 더 길어지기 전에 우선 설계의 의미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제한된 의미의 설계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정의된다. 첫 번째로는 문제 해결로서의 설계가 있다. 이는 실무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예산, 일정, 사이트 여건, 법규 등 여러규제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행위로서의 설계다. 이때 설계란 기술적 전문성, 효율성, 경쟁력을 제공하는 서비스 개념의 설계다. 두 번째로는 작품으로서의 설계가 있다. 이 경우 설계는 작가, 즉 조경가나 건축가의 누적된 ‘철학’과 ‘노하우’의 창의적 발현 과정으로 이해된다. 주요 인물과 이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주류 역사서들, 그리고 대중 매체를 통해 유포되는 유명 설계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설계를 예술가의 창조적 행위로 규정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개념의 설계는 너무나도 제한된 의미의 설계이며 설계의 확장적 가능성을 구속한다. 설계란 공간을 매개로 하는 창의적 사고이자 생산 과정이다. 과학, 기술, 예술,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지식 분야와 체계를 넘나들며 통괄적이면서도 세부적인 관점을 고려할 수 있는 창의적·공간적 가능성을 실험, 제안, 생산하는 방법인 것이다. 도시, 건축, 조경, 환경 분야에 있어 설계는 건물, 공원, 시설물 등 오브젝트 디자인의 개념에서 벗어나 시스템 디자인 차원에서 이해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도시와 환경은 랜드마크로서의 건물, 공원, 시설물의 축적이 아닌, 복잡다단한 경제, 정치, 사회, 문화, 환경 시스템의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체로서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전반적인 시스템의 디자인을 구상하고 다룰 수 있는 행위로 설계를 정의해야 할 것이다. 설계가가 관여하는 부분이 프로젝트의 일부라 하더라도 설계란 구상과 기획에서부터 디자인, 생산, 관리, 유지, 폐기, 재활용에까지 이르는 사이클의 순환적 시스템을 고려해야 한다. 설계 과정에서는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보다는 많은 분야에 대한 얕은 지식이 필요하며, 이러한 총괄적 시각은 창의적 사고와 실험적·협동적 연구·작업을 가능하게 한다. 설계는 기존의 문제 해결이나 작품을 위한 디자인 작업이라는 제한된 정의에서 벗어나 연구, 개발, 사업, 홍보, 관리, 정책 등 공간에 대한 시스템적 차원의 사고 과정이 필요한 다방면의 분야로 확산될 수 있는 개념이다. 최근에 학생들이 설계를 기피하는 현상은 설계에 대한 제도권의 좁은 해석에 따라 형성된 설계 실무 직종이 극도로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문제 해결로서의 설계, 작품으로서의 설계라는 정의를 넘어서는 일이 시급하다. 따라서 나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까탈스러운 나만의 ‘설계하는 법’을 설명하기보다는,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 나의 문제의식과 작업 방향을 이끌어갈 테제(These)와 레퍼런스를 나열하기로 한다. 이 테제들은 나의 작업 방법을 크고 작게 변화시키고 형성시켜 왔으며 이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설계에 대한 개인적 단상을 공유함으로써 설계를 통한 문제의식, 문제 제기, 관점의 형성과 논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한다.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단상을 구분해서 세 편의 글로 연재한다. 첫 번째는 문제 제기, 두 번째는 과정, 세 번째는 생산이다. 이 카테고리에 딱히 위계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장-앙텔므 브리야-사바랭(Jean-Anthelme Brillat-Savarin)의 『미각의 생리학The Physiology of Taste』을 참고로 한다.1 1825년 이 책으로 미식이라는 것을 처음 개념화시킨 그는 미식에 대한 다양한 단상을 열거한다. ‘감각에 대하여,’ ‘목마름에 대하여,’ ‘식탁에서의 즐거움,’ ‘튀김의 이론’ 등 미각의 정략적 이론화보다는 파편적 주제를 나열함으로써 개념들의 상호보완적 이해를 시도한다. 논의 주제의 논리적 정의나 체계화를 지향하는 수직적 지식 구조보다는 다각적 해석 가능성을 수반하는 수평적 지식 구조를 통해 창의적 연관성을 도모할 수 있다. 이 글 또한 수평적 구조 안에 나의 단상을 열거하는 방식을 취하고자 한다. 각 테제의 개별적 유효성과 적합성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바보야, 문제는 시스템이야! 빌바오 구겐하임(Bilbao Guggenheim)을 얘기할 때 우리는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화려한 건물을 연상한다. ‘빌바오 효과’라는 표현이 생길 정도로 1997년 개관 이후 이 건물은 건축을 통해 도시재생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히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 후 프랭크 게리는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로 부상하였으며, 세계의 여러 후기 산업 도시들 또한 자기만의 빌바오 구겐하임을 추구하게 되었다. 미국 위스콘신의 밀워키 미술관(Milwaukee Art Museum), 몽골의 오르도스 미술관(Ordos Art Museum), 그리고 서울의 DDP 등이 단적인 사례다. 앞으로 10여 년간 20~25개의 총 250조 달러에 달하는 새로운 문화·예술 시설이 전 세계에 세워질 계획이다. 하지만 빌바오의 성공은 양면적이다. 단순한 랜드마크로 설명될 수 없다. 1986년 스페인이 EU 멤버가 되면서 바스크(Basque) 정부는 25%의 실업율과 낙후된 공업 시설과 공해로 찌들어 있던 빌바오를 문화·관광 도시로 변모시키기 위한 계획을 추진한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공항, 지하철역, 다리 등 도시 인프라 디자인을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유치했다. 정부의 전격적인 자금 지원으로 구겐하임 미술관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또한 게리 건축의 복잡한 형태 제작과 가공은 당시 항공업계에서 사용되던 CATIA(Computer Aided Three dimensional Interactive Application)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가능했다. 구겐하임의 유명한 티타늄 외장재는 입찰 당시 티타늄의 가장 큰 생산국이었던 러시아가 대규모 물량을 시장에 우연히 내놓아 가격대가 잠시 낮아져 대량 구매가 가능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하지만 빌바오의 화려한 변신 이면에는 디즈니랜드와 같이 위생화되고 철저히 통제되는 도시 문제가 존재한다. 관광객 유치에만 중점을 둔 엘리트적 상의하달식 문화·예술 정책과 개발 계획으로 인해 빌바오는 고급 주거지와 기술 센터로 점유되었다. 바스크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도시민에 대한 지원과 다양성이 사라진 획일적 도시가 되어버렸다.2 빌바오 효과는 건축물 하나, 건축가 한 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공의 뒷면에는 실패의 모습도 존재한다. 우리는 더 이상 랜드마크 설계가 아닌 시스템 설계를 생각해야 한다. 개별적 랜드마크가 조형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프로그램, 인프라, 사회·경제적 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체계가 존재한다.” 메리 더글라스Mary Douglas의 『순수와 위험Purity and Danger』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오염과 위생의 개념 및 체계를 풀어내면서 도시와 환경에 대한 고정 관념에 문제를 제기한다. 더글라스는 “절대적 오물이란 것은 없다. 오물은 보는 이의 눈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오물을 배제하는 것은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환경을 조직하는 적극적인 노력”3이라고 말한다. 잡초로 정의되는 식물은 이를 정의하는 사람, 장소,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이는 좋고 나쁜 식물 재료의 정의가 의도나 견해에 따라 사회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영국 예술가 무스(Moose)의 “깨끗한 그래피티(clean graffiti)”다.4 공해와 먼지로 뒤덮인 가로변 콘크리트 벽을 청소하며 그래피티 작업을 함으로써 도시적으로 나쁘다고 생각되는 그래피티의 개념을 뒤집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도시 위생화의 도구로 활용되어 온 건축, 조경, 도시 설계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우리는 항상 위생의 정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덕학천도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의 서문에서 “사유의 친숙성을 깡그리 뒤흔드는 웃음”을 야기시켰다고 평한 보르헤스(Borges)의 글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El idioma analitico de John Wilkins)”5에 따르면, “『덕학천도(德學天都, Celestial Emporium of Benevolent Knowledge)』라 불리는 중국의 어떤 백과사전에서는 동물이 a)황제에게 속하는 것, b)향기로운 것, c)길들여진 것, d)식용 젖먹이 돼지, e)인어, f)신화에 나오는 것, g)풀려나 싸대는 개, h)지금의 분류에 포함된 것, i)미친 듯이 나부대는 것, j)수없이 많은 것, k)아주 가느다란 낙타털 붓으로 그린 것, l)기타, m)방금 항아리를 깨뜨린 것, n)멀리 파리처럼 보이는 것으로 분류된다.”6 사유를 초월하는 이 분류 방법은 단순히 불가능한 혹은 이상한 나라 동물들의 나열이 아니라 백과사전과 나열이라는 문화적·사회적 코드 속에 형성된 관념을 타파하는 메타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설계의 덕학천도는 무엇일 수 있을까 항상 고민이다. 기질 모든 개체에는 형태, 재료, 공간적 특성으로 인해 내재된 기질(disposition)이 존재한다. 따라서 설계는 공간의 능동적 형태(active form)의 생산과 제작을 통해 기질을 조정하고 제안하는 행위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켈러 이스터링(Keller Easterling)은 경사면 위에 놓여 있는 공과 같이 각기 특정한 상황 속에서 특정한 성향을 암묵적 으로 지니게 되는 공간적 행위성을 주장한다.7 모든 공간적 개체와 현상이 기질을 지니고 있다면 설계는 이를 발견하여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자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능동적 행위력과 연관될 수 있는 기질의 이해와 조작은 설계가의 필수적인 테크닉, 도구가 되어야 한다. 트릭스터 설계는 트릭스터(trickster)여야 한다. 트릭스터를 직역하면 사기꾼이나 협잡꾼이 되어버리지만, 여러 지역의 민속 신앙에 있어서 트릭스터는 다변적이고 모호한 개체이며 인간을 위해 신으로부터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문화 영웅과 합치되어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설계는 트릭스터와 같아야 한다. 한 가지 명분만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여러 얼굴을 보여야 하며 숨은 전략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기술자, 제작자, 후원자, 시민, 세무사, 연구자, 과학자, 예술가, 마케터, 홍보대사, 발표자, 리더, 컨설턴트, 사용자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각양각색의 역할을 담당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적 디자인 학부시절, 나는 몇몇 동료 학생들과 함께 한국적 디자인에 대한 고민에 깊이 빠져들었던 적이 있다. 한국적미, 조형성, 공간감을 습득하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오는 장소들을 열심히 찾아 다녔고, 야네기 무네요시와 고유섭을 읽고 ‘비애의 미’나 ‘무기교의 기교’의 현대적 해석 가능성을 토론했다. 하지만 역시 믿음이 부족했던지 한국적 디자인의 실체는 결국 나에게 드러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한국적 디자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정치, 사회, 문화적 역사 고찰을 통해 규정되는 지역적 특수성이 존재한다. 한국적 디자인이란 정부 차원의 국가주의적 이미지 브랜딩에 불과한 것이다. 일본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디자인은 1960~70년대 정부 주도의 의도적 브랜딩과 마케팅을 통해 지역적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XXX적 디자인이란 만들어지는 것이지 내재된 기질이 아니다. 조류 5남매 10여 년 전의 일이다. 친구와 저녁을 먹던 중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만화 영화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면서 ‘독수리 5형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기억을 되짚어가던 우리는 마침내 독수리 5형제라는 제목의 거대한 거짓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5형제가 아니라 혈연이 없는 소년 4명과 소녀 1명으로 이루어진 5남매라는 사실. 그리고 독수리는 리더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콘돌, 백조, 제비, 부엉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따라서 독수리 5형제가 아닌 ‘조류 5남매’라고 명명하는 게 더 적합하며, 근 20년 동안 이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는데 우리는 매우 분노했다. 이후 항상 주어진 개념에 대한 문제 제기부터 시작한다. 시작부터 주관 기관의 목적과 의도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주어진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근원적인 접근을 적극적으로 타진한다. 사후 합리화 나의 첫 건축 스튜디오 튜터는 프레스턴 스캇 코흔(Preston Scott Cohen)이었다. 형태주의자(formalist)인 그는 건축적 형태의 생성 과정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스튜디오 프로젝트는 사이트와 프로그램에서 시작하기보다는 자기 합리화가 가능한 형태 논리와 이의 공간적 적용 가능성에 대한 실험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학기 후반기에서야 형태 논리를 적용할 특정 사이트와 프로그램이 주어졌다. 이러한 귀납적 설계 방법은 창의적 실험과 사고를 가능하게 했고 나는 설계라는 형식의 자율적 구조와 해석 가능성을 터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이 다가오면서 형태와 프로그램의 합리화가 연역적이지 않은 데에 다시 고민하기 시작한 나에게 스캇 코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설계 과정은 원래 지저분한 거야. 하지만 사후 합리화를 통해 정당성을 주면 돼.” 그때 나는 설계를 억압하는 논리의 규제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배웠다. 호쿠사이 파도 포린 오피스 아키텍츠(Foreign Office Architects)의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Alejandro Zaera-Polo)는 ‘호쿠사이 파도(The Hokusai Wave)’8라는 글에서 건축가의 전략적 설득력과 도상학(iconography)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요코하마 터미널 설계공모에서 우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95년, 프로젝트의 첫 주민 설명회에서 그는 디자인의 동선, 형태 논리, 시공 기술 등을 열심히 준비한 도판을 통해 상세히 설명했으나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무표정이었다. 참여 주민의 동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설계공모 과정에서 참고했던 요코하마 지역의 유명한 목판 화가인 호쿠사이의 유명한 ‘가나가와오키나미우라(神奈川沖浪裏)’의 파도를 언급하자 주민의 표정이 180도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도판의 상징적 도상학과 이의 재현(representation)이 프로젝트의 형태 논리와 작업 논리를 정당화시키는 강력한 전략이 된 셈이다. 디자인의 기호학적 해석은 설계가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권력과 통제를 협상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직설적 해석을 파생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호학은 사인 대신 형태와 재료를 통해 매개되어야 하고 이는 물질적 조직과 함께 도상학적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양면성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방향(one-liner)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표면적 획일성을 통해 이면의 다각성을 설득시킬 수 있는 전략적 설득력을 항상 목적으로 해야 한다 서예례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의 도시설계와 조경 담당 교수이며, 어반 터레인즈 랩(Urban Terrains Lab)의 디렉터다. 코넬대학교, 바나드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뉴욕 시립대학교,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도시설계와 건축을 가르쳤다. 미국 공인 건축사이자 친환경건축 인증제 공인 전문가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웨이스/만프레디(Weiss /Manfredi: Architecture/Landscape/Urbanism)에서 프로젝트 건축가로 일하며 시애틀 올림픽 조각공원, 뉴욕 바나드 디에나 센터 등의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2009년부터는 오피스 오브 어반 터레인즈(Office of Urban Terrains)의 디렉터로 다양한 건축, 조경, 도시설계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서 건축학 전공으로석사 학위를 받았다. 각주 1. Jean-Anthelme Brillat-Savarin, The Physiology of Taste: Or Meditations on Transcendental Gastronomy , 1825. 2. Chris Michael, “The Bilbao Effect: is ‘starchitecture’ all it’s cracked up to be? A history of cities in 50 buildings, day 27”, The Guardian , April 30, 2015. 3. 메리 더글라스, 유제분 역, 『순수와 위험: 오염과 금기 개념의 분석』, 현대미학사, 1997, p.23. 4. Matt Chapman, “Reverse Graffiti: Street Artists Tag Walls by Scrubbing Them Clean”, Inhabitat , August 1, 2014. 5. Jorge Luis Borges, Ruth L. C. Simms, trans., Other Inquisitions: 1937-1952 , University of Texas Press, 1993, pp.101~105. 6. 미셀 푸코, 이규현 역, 『말과 사물』, 민음사, 2012, p.7. 7. Keller Easterling, Extrastatecraft: The Power of Infrastructural Space, New York: Verso, 2014, p.72. 8. Alejandro Zaera-Polo, The Hokusai Wave, Perspecta , Vol.37, 2005, pp.78~85.
    • 서예례[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오피스 오브 어반 터레인즈 디렉터
  • [비평] 계획가가 외면한 것 What Were Ignored by Designers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은 땅은 서울 테헤란로의 끝자락인 삼성역 주변일 것이다. 국제 수준의 복합단지인 무역센터(한국종합무역센터)는 쇼핑몰 리노베이션과 호텔 및 오피스 증축을 거듭하고 있고, 지하철 2호선과 9호선이 연결된 영동대로에는 KTX, GTX 등 광역 교통까지 추가될 예정이다. 게다가 한전 부지(구 한국전력본사)는 현대차와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의 매입 경쟁 끝에 과거 본 적이 없는 매매가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세는 탄천 건너 잠실까지 뻗어가고 있다. 서울시가 무역센터, 한전 부지, 잠실종합운동장 및 주변 지역을 국제 업무와 MICE 산업1의 중심으로 키우는 국제교류복합지구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5년 5월 무역센터와 한전 부지만 포함하던 지구단위계획구역을 잠실종합운동장까지 확장함으로써 그 의지를 보다 구체화하였다. 국제교류복합지구는 지가 총액으로 따지면 아마도 우리나라 최대의 지구단위계획구역일 것이다. 무역센터와 한전 부지는 과거 봉은사에 속한 땅이었다. 포화 상태인 서울 도심의 문제를 강남 개발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 정부의 정책에 조계종이 화답함으로써 1970년대 초 이들 땅은 절 문을 나서게 되었다. 영동대로를 사이에 둔 두 땅은 이후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대로의 서편은 1979년 한국종합전시관으로 모습을 갖춘 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컨벤션센터가 된다. ASEM 정상회의, G20 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등 그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국제회의들은 모두 여기서 개최되었다. 대로의 동편은 1986년 한국전력공사가 자리를 잡은 이후 2014년 나주로 이전할 때까지 우리나라 전력 공급의 중심지가 된다. 지금은 발전 기능이 여러 자회사로 분산되었지만 과거에는 전력의 생산에서 판매까지 모든 기능이 한국전력공사에 집중되어 있었다. 두 땅은 그러나 다시 비슷한 길을 가게 될 것 같다. 한전 부지를 매입한 현대차가 이곳을 단순한 통합 사옥이 아닌 회의장, 전시장, 공연장, 호텔 및 쇼핑몰로 구성된 복합 단지로 개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독일 자동차 회사들의 본사와 같이 테마 단지로 조성하는 것은 서울시의 국제교류복합지구 계획에도 잘 부합한다. 비록 운영 주체가 단일하고 자동차라는 주제를 가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시설의 구색만 보면 대로 건너 무역센터와 매우 흡사하다. 한편 탄천 건너 잠실종합운동장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원래 강이고 섬이던 잠실은 1970년대 초 한강공유수면매립사업에 의해 육지가 된다. 같이 매립된 반포나 압구정과 같이 잠실의 땅도 대부분 택지로 매각되어 정부의 빈약한 재정을 도왔는데,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자리만은 운동장으로 남았다. 이에 대해서는 1960년대 말 국제 수준의 체육 시설이 없어 아시안게임을 반납한 아픈 기억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이 반납한 1970년 아시안게임은 방콕에서 열렸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잠실종합운동장은 국제적인 체육 시설이 된다. 사실 두 행사는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했지만 우리 스스로 달라진 국가 위상을 만끽한 잔치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탄천 건너 두땅이 경제 성장을 견인한 곳이라면, 잠실종합운동장은 그 성과를 자랑한 곳이다. 하지만 잠실종합운동장도 앞으로 무역센터나 한전 부지와 비슷한 길을 가게 될 것 같다. 서울시의 국제교류복합지구 계획은 이곳에도 MICE 기능을 추가하고 있기때문이다. 구체적인 시설은 회의장, 전시장, 공연장, 호텔 및 쇼핑몰이 될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이 생긴다. 서울에 국제 업무와 MICE 기능이 필요하다고 해서 비슷한 시설을 세 땅에서 세 번 반복해야만 하는지? 그래야 한다면 각 땅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 그리고 도시 전략 측면에서 이 땅이 담당해야 하는 다른기능은 없는지? 이 외에도 서울시를 괴롭혔을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가 기획되었을 것이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 [칼럼] 녹색 강박증 Column: Obsession with the Green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베스트셀러 『피로사회』에서 성과주의에 매몰된 현대 사회를 비판하면서,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대표적인 질병으로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등을 꼽았다. 이러한 질병들은 과거 시대의 질병처럼 박테리아적이거나 바이러스적이지 않고 신경증적인 질병이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과잉 생산, 과잉 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이 긍정성의 폭력을 낳았고, 이러한 유형의 폭력은 적대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용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에서 내밀하게 확산되기 때문에 바이러스성 폭력처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고 한다. 짧은 에세이의 내용이 다소 무거워서 그 뜻을 잘 헤아렸는지 자신이 없지만, 무엇인가를 잘 해보려는 요즘 긍정적인 행동들이 오히려 과장되고 과잉의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그것이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을 간간히 목격하면서, ‘피로사회’라는 개념으로 성과 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견해에 공감하게 된다. “강박장애는 불안장애의 하나로서, 반복적이고 원하지 않는 강박적 사고와 강박적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 질환이다. 잦은 손 씻기, 숫자 세기, 확인하기, 청소하기 등과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강박적 사고를 막거나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려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일시적인 편안함을 제공할 뿐 결과적으로 불안을증가시킨다.” 강박증이라는 병리적인 현상이 과거 농경 사회에서부터 존재했던 질병인지 혹은 근대 산업 사회를 거치면서 새롭게 등장한 것인지 잘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강박증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이 증세를 앓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과잉 행동을 일삼는 경우다. 어쩌면 한병철의 지적대로 강박증도 현대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 시절이 생각난다. 이명박시장의 ‘청계천’이 대중의 히트를 친직후라서 그런지 모든 행정에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강박처럼 들어갔다. 조직이 만들어졌고, 대단한 ‘용역’이 발주되었다. 디자인을 문화적으로 차근차근 성숙시키기 이전에 홍보를 위한 전략으로 삼았다. 디자인이라는 말이 빠지면 마치 갑자기 구닥다리 꼰대가 되는 것 마냥 모든 종류의 미디어는 디자인이라는 화두를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한강의 세빛둥둥섬과 동대문의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그러한 ‘디자인 행정’의 대표적인 결과물들이다. 당시 모 교수는 ‘디자인’이라는 말 자체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현상을 ‘디자인 피로증’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그것이 과잉이 되면 사회구성원들은 피곤해지는 것이다. 하물며 진정성 없이 성과 위주로 추진되는 사업에어떤 행복과 가치가 담겨질 수 있을까. 요즘 서울시를 비롯하여 수도권, 지방의 많은 지자체에서 ‘조경’ 혹은 ‘정원’이라는 화두가 대세다. 수 많은 조경 관련 공모전이 성행하고, 박람회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불과 몇 년 만에 분위기가 반전된 듯하다. 설계사무소나 일선 현장의 작업 여건과 경영 환경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는데, 외형적인 분위기만 봐서는 이미 조경 선진국의 대열에 오른 느낌이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어느 조경전문가는 설익은 ‘조경대세론’을 펼치기까지 한다. 모든 도시 행정을 조경(혹은 정원)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도시 안에서 조경 공간을 극대화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식이다. 조경가 출신의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는 기대 섞인 주장도 덧붙인다. 그래야 ‘업계’와 ‘분야’가 살아나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행복지수도 수직상승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십년 넘게 조경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런 식의 강박이 정당한 것일까. 며칠 전 서울 외곽의 도시공원으로 산행을 가게 되었다.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인지라 최근에 계단을 보수하고 안전 펜스까지 정비한 모양이다. 그런데 등산로를 따라 나무 그늘에 야생초화를 잔뜩 심어놓았다. 공원의 양지바른 산책로도 아니고 숲이 우거진 등산로에까지 가로수를 심고 야생화를 줄지어 심어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냥 놔두어야 더 좋은 자연을 왜 자꾸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덧칠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조경 사업은 성과주의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를 저렴한 예산으로 치장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다. 녹색의 치장과 품격 있는 조경 행위는 당연히 구분되어야 할 것인데, 표피적인 것들만 난무한다. 자칫 ‘조경 피로증’이라는 말도 생겨날지 걱정이다. 조경은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행위다. 과잉 진료와 과잉 처방은 환자에게 독이 된다. 진료와 처방 이전에 정말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연대감과 존중감이라고 한다. 녹색에 대한 강박은 자연에 대한 존중이라는 조경의 본질을 간과하고 현상에만 집착하는, 그래서 과잉 처방전만남발하고 있는 의료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모든 것을 자기가 속한 전문 분야의 틀을 통해서만 해석하려는 강박증은 현대 사회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분야는 늘 대결하고 있으며, 이 살벌한 경쟁 구도를 곧바로 자신들의 이익과 연결시킨다. 여유와 관용, 깊이 있는 성찰과 소통은 사라지고 가장 익숙한 세계 속으로 스스로를 유배시킨다. 그리고 그 깊은 유배지에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군림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조경이 최고의 선이고, 어떤 것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다 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화려한 녹색에 가려진 삶의 이면을 살펴야 한다. 비록 한그루의 나무를 포기하더라도 우리 주변에 더 이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멋진 공원 몇 개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힘없는 서민들의 소중한 주거 공간을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멋진 조경가이기 이전에 누군가와 마음을 나눠야 하는 평범한 시민이고 이웃이기 때문이다.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1965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의 설계 실무를 거쳐,2007년에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