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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뻘 비치를 사뿐하게 누볐다 Column: Running a Practice Is Just Like Walking on the Mud Beach
    시대가 변했고 가치도 변했다 내가 조경학과에 다니던 시절은 피터 워커와 그의 후학 조지 하그리브스로 대표되는 ‘개인’의 선구적 프랙티스에 매료되었던 시절이다. 그리고 소위 ‘조금 한다’는 학부생들은 설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내 사무실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부터 이렇게 자라고 있었다. 설계사무소를 연다는 것을 ‘창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색한 이유는, 이 일을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며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워커나 하그리브스가 비즈니스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그 후 알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한국에서 적용하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은 많지 않았다. 시장의 크기, 수주 구조, 계약과 지불 등 모든 면에서 한국과 미국은 달랐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취직할 곳이 없어 경계 없는 국경을 넘어 쏟아져 들어오는 인턴들로 넘쳐나는 네덜란드도 아니었다. 2006년에 서울에서 사무실을 열기는 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일을 수주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고, 사실 지금도 잘 모른다. 우연한 계기로 일이 생겼고,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클라이언트를 소개 받았다. 이런 불확실성을 관통하여 지금까지 10년을 버티어 냈으니, 한편 스스로 자랑스럽기도 하다. 오피스박김의 지난 10년을 뒤돌아보면, 당시에는 힘겨운 시도 혹은 실패로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적 역량이 축적되었고 우리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안내하였다. 그간 남겨 놓은 텍스트를 묶어 단행본으로 출판하자는 의견에 공감하게 되어 올 가을에 그 축적물이 책으로 나올 예정이고, 오피스박김 후학들을 중심으로 랜드스케이프의 미래Landscape for Tomorrow를 조망할 작은 컨퍼런스를 준비 중이다. 앞으로 10년의 미래 역시 불분명하겠지만, 계속 도전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누구도 요구하지 않은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있는데, 나부터가 일을 제대로 해서 제대로 지어야 우리의 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고, 이러한 것들이 쌓이다 보면 우리의 후학들이 지금의 오피스박김 보다 조금이라도 더 수월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다. ‘돈 주고 조경 설계 처음 맡겨 본다’는 분들이 여전히 있고, 이런 클라이언트의 ‘계몽’ 역시 우리의 일이다. 사실 사명감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생존을 위한 반사 작용이기도 하다. 스스로 우리의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과연 누가 의미를 부여해 줄 것인가? 어느 주말, 우리 집 강아지 마리와 함께 양화한강공원에서 왕복 4km를 뛰었다. 뛰면서 돌아본 주변에는, 나만큼이나 고된 한 주를 보냈을 것으로 짐작되는 어느 가장이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잔디 사면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고, 휠체어를 탄 어느 중년은 한강물이 찰랑대는 강가까지 내려가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다리는 당시 공원 설계와 시공을 회상하며, 갈대지형과 사석호안그리고 뻘 비치를 사뿐하게 누볐다. ‘세상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하는 생각은 또 그 후 한동안 진격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한국에서의 경험이 아직 일천하여 의견 개진이 매우 조심스러우나, ‘창업’에 관한 기획 의도를 존중하며 소견을 밝히자면, 한국에서 설계사무소를 여는 것을 굳이 장려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말리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들은 있다. 먼저, 너무 빨리 열려고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설계를 하다가 자기 사무실을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그때 열면 된다. 르네상스 이후 별로 변한 것이 없는 설계라는 직능은 가장 고전적인 업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개업 초기의 열정도 좋지만 대형 회사에 소모되지 않고 직원들 월급 안 밀리려면 현실을 이겨 낼 수 있는 명확한 대차 대조표가 있어야 한다. 원한다면 때는 언젠가 올 수 있다. 그러나 오지 않더라도, 사무소에서 일하되 소장처럼 일하면 된다. 그렇게 주인처럼 설계하다 보면 자연히 어떤 위치에 있던 소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훈수에도 심장박동이 느려지지 않는다면, ‘주변부’를 주목하기 바란다. 설계라는 중심 영역 대신 이와 관련된 새로운 외연을 탐험하는 것도 개척자의 특권이다. 우리가 여전히 조경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도입 4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 개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공자 역시 “부귀가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잡고 말을 모는 사람 노릇이라도 하겠지만 만약 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라고 하니, 나의 발걸음이 양화의 뻘 비치를 사뿐하게 누빌 수 있나 보다. 김정윤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GSD 졸 업 후 네덜란드 West 8 등에서 실무를 쌓았다. 치치 지진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당선을 계기로 박윤진과 함께 오피스박김을 설립했다(2004). 네덜란드 조경건축사이며 바허닝엔 대학교에 출강했다. 차세대디자인리더(산업자원부 2007), 광교공원 디자인커미셔너(2008), 서울형공공건축가(2011)로 선정되었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놀튼 건축대학원이 선도적 조경가에게 수여해온 글림처특훈교수(2011)로 임명되어 강의했다. ‘양화한강공원’, ‘광교신도시 공원시스템’, ‘SBS 프리즘 타워’, ‘현대캐피탈 배구단 캠프’, ‘CJ 광교통합연구소’ 등 공공과 민간 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 [에디토리얼] 그들의 참신함을 응원한다 Editorial: For Their New Start
    강의실이나 작업실이 아닌 내 연구실에서 학생 설계안 크리틱하는 일, 대학원생 논문 지도하는 일, 가끔 찾아오는 졸업한 제자와 대화하는 일을 나는 ‘외래 본다’라고 총칭한다. 물론 그들을 환자 취급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유 있게 호흡하며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종합병원 의사처럼 분초를 다투며 대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모든게 새로 시작되는 계절인 탓일까. 이번 봄에는 정말 많은 외래를 봤다. 학업 상담, 진로 상담, 인생 상담이 줄을 이었다. 그중 몇 가지 이야기를 간추려 옮긴다. #1. 고3 티가 여전한 한 신입생. 놀랍게도 중학생 때부터 조경가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한다. 어느 ‘미드’의 배경으로 나온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매료됐고, 몇 번의 클릭으로 그곳의 설계자가 캐서린 구스타프슨임을 알아냈다고 한다. 마사 슈왈츠에게도 강한 팬심을 느끼고 있다 한다. 놀란 내 표정에 고무되어 어떻게 하면 그들 같은 스타 조경가가 될 수 있는지 돌직구 질문을 날린다. 말문이 막힌다. 글쎄, 많이 보고 읽고 그리며 안목을 기르라는, 하나마나한 답을 우물거린다. #2. 3학년 미학 시간에 눈에 띈 한 낯선 남학생. 언제 제대했는지 묻자 이번에 복학한 건 맞는데 군대를 다녀온 게 아니라 2년간 휴학하며 창업 동아리활동에 전력을 쏟아 부었다 답한다. 내성적인 인상이지만 말문이 트이자 미래의 사업 계획이 줄줄 쏟아진다. ‘생태적 디자인으로 지구와 인류를 구하는’ 기업을 고등학교 때부터 구상해 왔다고 한다. 포어스ForEarth.ForUs라는 사명도 미리 지어놓았다고. 뭐라 내가 말을 보탤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관심과 응원의 미소면 충분. 생태학과 상상력을 함께 다룬 책 몇 권을 소개. #3. 수시 입시 면접 때부터 대학원생급 전공 지식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한 4학년 여학생. 학년이 올라가며 설계 스튜디오는 물론 이론 과목에서도 빼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고 공모전 수상도 다수. 졸업 후의 계획을 묻자 명문 디자인 스쿨로 유학 가서 도시설계를 전공해 사회적 기여를 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엉성하고 허약한 조경판이 못마땅하거나 불안한가 보다. 상담의 제1원칙은 잘 들어주는 것임을 알지만, 아까운 인재 하나 놓칠 판이니 적당히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안하려고 할 때 하면 100미터 달리기 혼자 하는 것처럼 쉽지 않을까. 늘 고상한 척 하는 교수가 평소와 달리 현실적으로 접근하자 다시 생각해 보겠다 한다. 갑자기 책임감 비슷한 게 생긴다. #4. 비교적 늦은 나이에 유학해 조경학 석사를 마치고 유명 설계사무소에서 2년여 일하다 돌아온 삼십대 중반의 제자. CG 숙련공 역할만 반복하다 보니 세계 최고의 오피스라는 간판에서도, 뉴요커 생활의 그럴싸한 허세에서도 만족감을 얻지 못했다한다. 비슷한 처지로 십 년씩 버텨온 선배들 그림자를 밟느니 열악하더라도 한국 조경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게 낫겠다 싶어 미련 없이 짐을 쌌다고 한다. 돌아오니 광야에 던져진 것처럼 막막하다는 그에게는 오백 몇 잔이 답이다. 책임질 수 없어 주저했지만 취기를 빌어 독립을 권했다. 자, 건배사, 내가 ‘독’하면 넌 ‘립’하는 거다. #5. 대학원 졸업 후 신생 설계사무소에 들어가 근십 년을 묵묵히 버텨 온 제자. 세상 잘 읽는 영민한 친구들이 줄줄이 설계 일을 접는 중에도 말없이 설계실을 지키며 집중해 온 그, 제자지만 존경한다. 그런 그가 요즘 조금 흔들리나 보다. 보수나 근무환경 탓이 아니라 한다. 십 년 하면 뭔가 통찰력 있는 디자인 감각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란다. 앞으로 십 년 더 한다고, 그러다 오십대가 된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음을 절감한다고 고백한다. 언젠가 자신의 사무실을 열어 따뜻한 공간, 좋은 환경설계하는 걸 꿈꾸지만 그럴 수 있을지 의심된다며의기소침. 괜찮아, 조금 더 가면 길이 나올 거야. 내말이 형식적으로 들렸을 테지만, 분명히 진심이다. 테이블에 빈 맥주잔이 가득 찬다. 얼핏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키워드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과 소통하고 또 ‘잘 하는 일’과의 교점을 찾는다면 그들은 앞에 마주친 두꺼운 벽을 유연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생각이 선생들처럼, 선배들처럼 진부하지 않고, 참신하기 때문이다. 막 자신의 작업 공간을 꾸려 독립한 삼십대 조경가 아홉 명의 이야기를 다룬 이번 달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을 기획하며 여러 젊은 조경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맥주 살이 더 늘었음은 물론이다. 경험해 보지 못해서인지 나는 ‘창업’이라는 두 글자에 심한 중압감을 느낀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렇지 않았다. 설계 배우고 설계해오면서 늘 가졌던 꿈이 이제 현실로 다가왔을 뿐이라고 한다. 누구는 우연한 기회에 갑자기, 누군가는 몇 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시작한 차이가 있을 뿐. 그들에게서 발견한 또 하나의 공통점은 태도와 작업 방식의 참신함이다. 그 참신의 바탕에는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잘 하는 일의 행복한 동거가 있었다. 그들과 만나고 돌아와 참신斬新의 뜻을 사전에서 확인해 봤다. 새롭고 산뜻하다. 그런데 ‘참斬’자의 유래가 예사롭지 않다. 고대 중국에서 죄인을 죽이던 극형 틀인 수레와 도끼로 이루어진 글자다. 참신이란 과거를 도끼로 치는, 완벽한 단절을 뜻하는 말이다. 참신함을 유지하는 일은 더 어렵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참신은 진부가 된다. 진부陳腐. 사상, 표현, 행동 따위가 낡아서 새롭지 못함. 썩은 고기腐를 남들 보라고 전시陳한다는 뜻이다. 어렵게 구한 고기를 자랑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꺼내 보여주다 보면 고기는 썩고 악취가 난다. 고기주인은 썩은 고기에 익숙해져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도 모른다. 교훈과 계몽으로 흘러버린 글, 한 번 더 막 나가며 맺는다. 한국 조경 40년,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다. 미숙하다. 새로운 시작, 당신들의 영토가 무한히 펼쳐져 있다. 진부함을 경계하고 참신함을 이어가길 당부한다.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한참을 망설였다. 분홍빛이 살짝 도는 여린 꽃잎이 마치 겹겹이 두른 여인의 농염한 치맛자락처럼 화려한 작약과, 한 달쯤 물을 안 주어도 끄떡없이 늘 푸르름을 선사할 스투키 사이에서 한동안 움직이기 힘들었다. 결국 스투키 화분을 옆구리에 끼고서 아쉬운 발걸음을 L의 사무실로 향했다. 실용주의자인 L은 “꽃은 금방 시들 잖아”하며 스투키를 반겨주었다. L은 공동으로 쓰던 사무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개인 사무실을 열게 되었다. 한동안 집 서재를 사무실로 꾸밀 것인지 고민하다가 얼마 전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계획된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닥치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며 고객 유치를 위한 궁리로 부산한 눈치였다. 특히 새로 마련한 공간이 비좁다며 엄살을 떨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가구 배치계획을 들려주곤 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자기 자리를 찾아간 화분을 보니 지난달 창업 특집(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을 위해 찾았던 강연주 소장과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사실 번듯한 사무실 공간을 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직원을 뽑은 것은 회사를 만들고 1년쯤 지났을 때다. 당시 자리를 빌려 쓰던 사무실에서 나오게 되면서 신혼집 거실에 책상을 놓고 직원들 한두 명을 불렀다.” 강 소장의 마지막 말은 나를 순식간에 30년 전으로 데려갔다. 지금은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이사 후 갓 생긴 내 방이 다시 없어지고 동생과 한 방을 쓰게 된 것이 불만스러웠던 것 같다.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어느 날 얼굴이 하얀 아저씨가 “오늘부터 매일 올 거야”라고 말하던 장면이다. 그리고 집에서 넘쳐나는 청사진 뒷면에 그림을 그리던 기억, 버스 타는 법을 교육시킨다며 청사진 굽는 가게에 혼자 보냈던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지 못해 울면서 돌아왔던 장면들이 끊어진 필름을 이어붙인 듯 재생되었다. 아버지가 창업했을 때가 당신 나이 40일 때였다. 당시 어렸던 나는 집에서 설계사무소를 시작했던 아버지가 이상하게 느껴졌고 그런 인상은 그대로 내 안에 봉인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번듯한 사무실을 열었고 그 후로 오랫동안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러한 부침 가운데서도 ‘설계’를 고집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그것을 대물림하려는 바람은 끝까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사업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차분한 목소리로 창업 당시를 설명하는 강 소장을 바라보며 기억의 빗장이 풀리고 지금 내 나이가 30년 전의 아버지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업 전선에 뛰어든 이래로 나에게 창업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제 주변의 가까운 선후배들이 사무실을 열거나 창업 계획을 세우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소심한 월급쟁이인 나는 지인들이 새로 오픈하는 사무실을 보면, ‘저 임대료를 감당하려면 일을 얼마나 해야 할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혹은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 당당하게 뛰어드는 (혹은 떠밀려가든) 그들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다. 심리 상담을 업으로 하는 L은 이런 나의 넋두리를 듣더니 엷은 미소를 지었다. “용기의 임계점은 변화의 시작이야. 용기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변하기 싫다는 거고. 대신 남이 변하길 바라지.” “망설인다는 것은 회피인 거로군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또 피하다보면 고여서 썩게 마련이지.” “흔히 ‘창업한다’를 ‘독립한다’고 표현하잖아요.” “그래, 독립은 새로운 시작이지.” “지난 달 칼럼에서 김정윤 소장이 ‘사무소에서 일하되 소장처럼 일하면 된다. 그렇게 주인처럼 설계하다 보면 자연히 어떤 위치에 있던 소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한 말도 창업만큼 주도적인 삶을 말하는 듯해서 인상적이었어요.” “그 집단에서 자아가 독립했다는 의미지.” “이제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요(웃음)” “음. 용기를 낼 때 말이야. 접어야 할 것과 접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아는 게 아닐까?” “어렵네. 그런데 용기인줄 알았는데 객기일 수도 있잖아요.” “용기는 미래를 예측하는 거고, 객기는 예측을 하지 않는 거지. 용기가 낙천이라면 객기는 낙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전체로 볼 때와 하나의 점으로 볼 때의 차이가 있어. 전체로 받아들이면 용기가 없어지지만 멀리서 점으로 보면 용기가 생겨. 지금의 실수도 멀리 보면 과정이거든. 점들이 모여 삶이 되는 거니까, 멀리서 보면 용기를 못 낼 이유가 없어. 근데 말이야, 저 화분은 창가에 놓는 게 더 어울리지 않아” 그날 우리는 옥상 달빛 아래서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수다를 떨었다. L은 주변 아파트 단지의 불빛을 가리키며, 주민들을 모두 고객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들려주었다. 30년 전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미래를 낙관했을까, 혹은 변화가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두렵지만 용기를 냈던 걸까? 이번 달 칼럼이나 오피니언 란에 도착한 독자편지를 보면 지난 창업 특집이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창업을 앞둔 이들 뿐만 아니라 학생과 직장인들, 그리고 오래 전 창업했던 선배들까지.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변화를 도모해야 할 순간이 언제인지 고민하고 시작을 망설인다.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나를 포함해 용기 있는 독립을 꿈꾸는 많은 이들을 응원한다.
  • [편집자의 서재]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Editor’s Library: Hallo?-er det noen her?
    때 이른 더위가 서울을 덮쳤다. 지난주에는 32도를 웃도는 날씨에 올해 첫 폭염 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굳이 최고 기온을 확인하지 않아도, 출퇴근길에 만나는 사람들의 가벼워진 옷차림과 태양의 열기에 익어 말랑말랑해진 아스팔트 도로가 여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낮도 길어졌다. 퇴근 후, 집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해 역사를 빠져나갈 때면 어두웠던 하늘이 전보다 밝아졌다.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오기 전의 초여름 밤은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점점 마음이 급해진다. 낮이 길어져 밤이 짧아진 데다가 열대야가 찾아오면 사라져 버릴 이맘때의 여름밤이 문득 아까워지는 것이다. 요즘엔 땀이 나도 집으로향하는 계단을 뛰어서 오를 때가 많다.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한여름 밤—일 년 중 가장 낮이 긴 하지의 전날밤—에 신비로운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고 셰익스피어는 이에 착안해 『한여름 밤의 꿈』1을 썼다. “깊은 밤 아름다운 그 시간은 이렇게 찾아와 마음을 물들이고 영원한 여름밤의 꿈을 기억하고 있어요. 다시 아침이 와도 잊히지 않도록”2이라고 여름밤을 몽환적으로 묘사한 김현식의 노래가 수차례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여름밤에 진행되는 각종 행사의 홍보 문구에 ‘환상’이라는 단어가 곧 잘 쓰이는 걸 보면, 꽤 많은 사람이 여름밤에 신비로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의 주인공인 요아킴도 여름밤의 기이함에 대해 알고 있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 요아킴의 동생을 임신한 어머니가 출산이 임박해 아버지와 함께 집을 비운 사이 믿을 수 없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곧 태어날 동생에 대해 생각하며 밤하늘을 바라보던 요아킴은 어둠을 쏜살같이 가로지르는 별똥별하나를 발견한다. 뒤이어 정원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정원의 사과나무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외계인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삽화에 표현된 외계인 ‘미카’의 외양은 영화 ‘이티E.T.’의 외계인과는 조금 다르다. 머리카락이 없고 머리가 몸보다 상대적으로 크지만, 팔다리의 길이나 눈, 코, 입의 형태와 위치 등이 사람과 상당히 비슷하다. 무엇보다 미카에게는 손가락 끝을 통해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없다. 대신 미카는 유창하게 지구의 말(정확히는 노르웨이어)을 구사할 줄 안다. 미카는 자신을 보고 혼란에 빠진 요아킴에게 태연하게 묻는다. “너는 누구니?”3 책의 저자인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는 철학 입문 소설로 불리는 『소피의 세계』의 작가다. 『소피의 세계』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냈던 그의 능력은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그는 주인공 요아킴과 외계인 미카의 대화를 통해 우주의 탄생과 인간의 역사, 삶의 가치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심오한 물음의 답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 초반의 미카와 요아킴의 대화는 독자에게 열린 마음으로 책을 읽어줄 것을 은근히 요구한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미카는 요아킴에게 왜 물구나무를 서있냐고 묻는다. 요아킴은 황당해하며 미카를 땅 위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미카는 자신이 거꾸로 요아킴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어 미카는 달에 갈 때 위쪽으로 여행하는지, 아래쪽으로 여행하는지 묻고 요아킴은 자신 있게 위쪽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넌 달에 내릴때 달 표면으로 날아와 앉잖아”, “그리고 네가 그 곳에 가 있을 때는 이 지구를 올려다보잖니”, “그럼 이 별과 달의 중간 어딘가에는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되는 데가 있겠네”4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미카의 질문에 요아킴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게 맞다고 답한다. 단순히 보자면 ‘중력’이라는 과학적 개념을 깨닫게 하는 대화지만, 이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과 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사실도 함께 다루고 있다. 이 둘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져 ‘진화론’에 다다른다. “그렇지만 우린 다른 별에서 왔는데 이처럼 닮았다는 게 이상하지 않니”5라는 대목에서 미카의 생김새가 사람과 비슷하게 설정된 이유를 깨닫게 된다. 둘은 눈과 코, 입, 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더 나아가 온 우주의 생명체는 하나의 지점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비록 산 꼭대기로 오르는 길은 많을지 모르지만 산은 하나야. 우리가 많이 닮은 이유는 우리 각자가 산을 오르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야. 우린 그 곳에서, 그 산 꼭대기에서 함께 커다란 기념비를 세울지도 몰라”6 요아킴의 부모님이 요아킴의 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미카는 한여름 밤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자는 동안에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단다”7는 요아킴의 말처럼 그날 밤의 일이 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책을 통해 요아킴과 미카를 만났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벌써 6월이다. 1년의 반이 흘렀고 자연스레 지난 반년을 뒤돌아보게 된다. 알찬 시간을 보낸 이에게는 즐거운 일일지 모르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삶을 평범하다고 느끼며 자신이 아무 쓸모 없는 존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에게 힘이 될 만한 미카의 말을 전한다. “그냥 돌멩이라고? 이 세상에 있는 건 아무것도 평범하지 않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모두 그 커다란 수수께끼의 일부분이니까. 너와 나도 마찬가지야. 우린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수수께끼야.
  •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시대에 반응하는 몸 Wandering Eyes, Curator's View: Bodily Reactions to an Era
    붕괴로부터 저항의 몸으로 몸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세기말적 불안과전환 속에서 몸은 여러 화두로 전개되었다. 당시 미술계에서는 몸과 욕망, 몸의 풍경,몸의 정치학, 몸의 변형과 확장 등을 소재로 한 전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2010년이 넘어가며 몸은 예술의 주된 화두에서 사라져 가는 듯 했다. 사회적 침체,경제난, 재난, 파국 등 연일 반복되는 충격의 상황에서 몸이 더 이상 도발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반응하는 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계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최근 몸의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몸짓은 미미하나 거센 진동으로 감지된다. 수동적 몸의 저항: 히지카타 다쓰미-방언 얼마 전 광주에 다녀왔다.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에서 ‘히지카타 다쓰미-방언’(5월 6일~8일) 프로그램을 보았다. ‘히지카타 다쓰미-방언’은 1960년대 일본의 전후 사회적 암흑기에 탄생한 ‘부토舞踏’를 오늘날의 관점으로 조명한다. 당시 일본의 암울한 정치ㆍ사회적 상황에 가역적으로 반응한 히지카타 다쓰미HijikataTatsumi(1928~1986)는 쇠약한 모습으로 무대 위에 쓰러져 다시 서지 못하는 수동적인 몸을 격하게 보여주었다. 마치 나병 환자와 같이 허물어지는 그의 몸은 주저앉은 채로그 움직임을 이어나간다.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지고 있는 인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인간,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지고 있는 인간… 이런 완전한 수동성에는, 그럼에도불구하고, 인간적 자연의 바이탈리티가 역설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분명하다.” _ 히지카타 다쓰미, 형무소로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 [시네마 스케이프] 헤일, 시저! Cinema Scape: Hail, Caesar!
    나는 비디오 가게에서 어떤 영화인지 모르고 첫 번째 칸부터 차례로 비디오를 빌려보던 시절부터 코엔 형제 감독의 팬이었다. 그들의 초기 영화인 ‘아리조나 유괴 사건’(1987)은 여러 번 봐도 재미있다. 코엔 형제 특유의 코미디 코드가 나와 맞았는지 사소한 장면에도 배를 잡고 웃었다. 최근 그들의 영화는 무거워졌고 잔혹해지기도 했지만 이번 ‘헤일, 시저!’(2016)는 코미디에 가깝다. 다시 그들의 초창기 영화에 반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해서 반갑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는 가볍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에 종사하는 이들의 민낯과 이들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대형 영화 제작사 매니저의 27시간을 통해 대중문화인 영화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대 배경은 할리우드 시스템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접어드는 시점인 1950년대 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사람이든 사회든 사유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지만 그럴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 되면 기존 노선에 반기를 드는 집단이 생기고, 새로운 비전을 가진 혁신이 밀려온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움을 받아들일 것인가. 고된 현재를 유지할 것인가. 세계 대중문화를 이끄는 대형 영화 제작사의 총괄 매니저가 하는 일은 허접하기 짝이 없다. 그의 일과는 새벽부터 멍청한 배우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일로 시작된다. 진행 중인 촬영과 편집을 점검하는 기본 업무 외에도 수중 발레극 주인공의 임신 문제 같은 배우의 사생활도 해결해야 한다. 뉴욕의 사장은 서부 영화 전문 배우를 드라마 주인공으로 낙점하는데 감독은 그의 ‘발 연기’에 결국 폭발하고 영화사 대표 에디 매닉스(조슈브롤린 분)에게 불평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대형 시대극 ‘헤일, 시저!’의 주인공이 가장 중요한 라스트신을 앞두고 납치당한다. 이런 문제들에 봉착한 그의 주변에는 쌍둥이 기자가 기삿거리를 캐내기 위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코엔 형제다운 유머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헤일, 시저!’의 종교적인 부분에 대한 사전 검토를 위해 자문 회의를 개최하지만 계파를 대표하는 종교인들은 엉뚱하게도 신의 본질에 대한 논쟁만 한다거나, 납치당한 주연 배우가 약 기운에서 깨어날 때 문 밖에 들리던 무시무시한 기계 소음이 알고 보니 청소기 소리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몸값인 10만 달러를 마련했지만 가방이 작아서 잘 잠기지 않아 애를 쓰는 모습도 웃음을 자아낸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중세, 정원의 암흑 시대였나? History of Landscape Architecture with 100 Scenes: Was the Medieval Age the Dark Age of Gardens?
    #84 중세와 이상도시 - 성 갈렌 수도원의 설계도 “너희 동양인들이 최고의 문명 수준을 누리고 있을 때 우리는 아직 원숭이처럼 나무에서 살고 있었어.” 독일 친구들로부터 여러 번 들었던 말이다. 물론 심하게 과장된 자기 폄하적 발언이지만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칸디나비아 등 현재 유럽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국가들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는 유럽 대륙을 빙 둘러 감싸며 전개되었다. 주변에서 고대문명이 나타났다 스러지는 동안 유럽 대륙은 문화의 블랙홀이었다. 아시리아의 공중 정원, 페르시아의 파라다이스를 거쳐 주옥같은 이슬람 정원이 만들어지고 있을 때, 유럽 대륙의 정원은 아직 태동도 하지 않았다. 정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정원은 먹고살기 위한 필수 품목이었으므로 사방에 존재했다. 다만 현대인이 기대하는 정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정원, 즉 아름다운 휴식 공간, 도시 속의 자연, 혹은 장식 정원 등에 부합하는 개념이 없었을 뿐이다. 중세에는 정원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쓰였고 때로는 몹시 모호했다. 현실적인 개념과 상징적인 개념이 나란히 공존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와일드한 자연을 일궈서 얻어낸 결과물을 모두 정원이라고 했다. 우리의 밭에 해당한다. 채소밭, 약초밭, 사과밭 등이 그들의 정원이었다. 중세는 기독교가 삶의 구석구석까지 지배했던 시대다. 죽은 뒤 돌아가게 될 천국의 정원과 이 세상의 정원을엄격히 구분했다. 이슬람 정원처럼 하늘나라의 것을 미리 앞당겨 이 세상에 재현해 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중세 유럽인들에게는 성당이 바로 하늘을 대신하는 곳이었다. 성당에 들어서면 우선 전실을 통과해야 하는데 바로 이곳을 파라다이스라고 불렀다. 중세 기독교의 파라다이스는 의외로 정원이 아니었다. 5세기 말엽, 게르만족이 로마를 무너뜨리고 중부 유럽의 주도권을 차지했던 시점. 거기서부터 고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대를 중세라 한다. 고대의 게르만족은 짐승 털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농경 생활을 했으며 나무를 신으로 모셨고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뛰어난 전사였다. 이 전사들이 로마를 멸망시킨 뒤 나라를 세우고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이제 막 자리 잡아가는 국가적 체계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종교가 필요했다.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가 합당해 보였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로마 제국의 멸망, 유럽 패권의 북상, 그리고 전쟁. 이렇게 부산했던 중세 초기는 예쁜 정원을 만들기에 적합한 토양이 아니었다. 게르만족의 프랑크 왕국이 로마 문화를 계승했다고는 하나, 아직 문화 생활을 할 수준은 아니었다. 중세의 사회는 기사, 수도사, 농부의 세 계층으로 이루어졌다. 기사는 국가의 안보를 담당하는 전사들이었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왕이었다. 농부는 양식을 생산하여 모든 사람을 먹여 살렸다. 수도사에게는 가장 복합적인 역할이 주어졌다. 이들의 본업은 영혼을 구제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지만, 그 외에 학문과 기술의 연구, 교육, 질병의 치료도 이들의 몫이었다. 왕과 기사들이 대개 문맹이었으므로 왕실에 출장을 나가 사무와 재무를 돌보는 것도 수도사들의 과제에 속했다. 그러므로 수도원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했다. “왕과 그의 무리는 수 세기 동안 전쟁에 길든 전사였다. 게다가 왕들은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이 역시 중세만의 특징이었는데 새로획득한 영토의 통치권을 확립하고 백성들에게 ‘내가 여기 있다’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으며 또한 변방이 늘 시끄러웠기 때문에 왕은 말과 수레에 부하와 식솔을 태우고 이 지방에서 저 도시로 떠도는 생활을 했다. 왕실만 떠돌았던 것이 아니다. 황제가 큰 원을 그리며 떠돌았다면 영주들은 각자 자기 영토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리고 그 사이를 수많은 상인이 떠돌았고, 수도사들과 순례자들이 떠돌았으며, 기술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돌았고, 도적들이 떠돌았고 기사들이 전쟁과 모험을 찾아 떠돌았다. 심지어는 농부들도 떠돌았다. 바이킹에 쫓겨 남쪽으로 가고, 북에서 오는 낯선 사람들을 피해 서쪽으로 가고, 새로운 농지를 찾아 동쪽으로 갔다. 10세기까지 중세는 이렇게 번잡한 시대였다. 이렇게 부산하던 시대에 유일하게 부동의 정점을 이루었던 곳이 수도원이었다. 당연히 수도원에서 정원이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1 수도원에는 두 가지 유형의 정원이 있었다. 하나는 실용 정원으로 의약을 생산하는 약초원이 핵심을 이루었고 식량을 자급자족했으므로 방대한 농경지와 저수지 및 과수원을 소유했다. 이들은 속세에 속하는 곳이었다. 한편 수도원에는 세속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별개의 공간이 있었다. 대개 성당 동쪽에 수도사들의 거처가 붙어있었는데 그곳의 중정은 사제들만의 공간이고 신성한 곳이었다. 이를 ‘클로이스터cloister’라고 했다. 기독교의 성당과 수도원 건축은 새로 고안된 것이 아니라 고대 다신교 시절의 신전 건축에서 출발했다. 본래 존재했던 비너스 신전이나 이시스 신전에서 주인을 몰아낸 뒤 그 안에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당으로 썼던 것이다. 기독교가 동쪽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전파되었으니 전달 루트를 따라 소아시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신전들이 먼저 성당으로 탈바꿈했고 그 곳에 최초의 수도원들이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건축 양식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여 오리엔트와 지중해 지역의 특징적 건축, 즉 주랑으로 둘러싸인 ‘ㅁ’자 형태의 건축이 수도원 건축 양식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팔라이스트라2나 로마의 페리스틸리움3을 기억할 것이다. 원칙은 그와 같지만 용도가 달라지니 이름도 새로워져서 클로이스터라고 불렀다. 클로이스터는 본래 사제들의 통행 공간이었으므로 기능에 맞게 잔디를 깔거나 석재로 포장했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보나 정원이 될 운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중앙에 분수나 우물을 두고 자연스럽게 사분 정원이 자리 잡아갔다. 지금은 클로이스터를 정원과 연결 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세에는 아무도 이곳을 정원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만큼 중세의 정원 개념이 지금과 달랐다는 뜻이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리질리언스 읽기] 21세기 패러다임의 변화, 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Reading the Resilience: Beyond the Sustainability
    지속가능성의 두 얼굴 1990년대 이후 국제 사회가 주장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성장’은 매우 모순적인 용어다. 지나친 경제 개발과 무분별한 환경 파괴로 촉발된 이 용어에는 사회·경제·환경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선량한 인간’과 자원을 착취하는 ‘교활한 인간’의 모습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활한 인간’은 친환경 기술이라는 명목으로 고효율의 녹색 기술을 개발하여 자연 자원을 착취했으며, 착취한 자원의 이용을 통해 인간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자원에 대한 비용을 자연에게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으며, 이는 자연 자원 고갈을 비롯한 기후 변화, 자연 재해 등을 초래했다. 즉, 우리 사회는 현재 닥친 위기의 핵심을 보지 않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여 안일하게 대처했다. 그 결과, 오늘날 인간 사회는 오히려 ‘지속불가능한 성장’에 갇혀 경제 침체, 생태계 붕괴 등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현대 과학 패러다임으로의 혁명을 일으켰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기존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그는 ‘빛=파동’이라는 물리학계의 정설을 뒤엎고 ‘빛=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했으며,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때까지 풀리지 않았던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인류에게 닥친 새로운 위기도 ‘지속가능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현재 직면한 위기의 핵심은 ‘지속가능성’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보다 복잡해진 사회 시스템이 ‘최적화’, ‘효율성’과 같은 일부 가치에 치중되면서 예측하지 못한 변화와 교란들이 인류를 위협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원한다면, ‘효율적인 최적화된 시스템’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교란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무대 뒤에 있는 ‘선량한 인간’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해서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기발하고 새로운 사고’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기존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지구 환경을 하나의 평형 상태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평형 상태란 물질 혹은 에너지의 유입과 유출의 양이 같아서 마치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안정된 상태를 말한다. ‘지속가능성’ 패러다임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지구의 ‘안정된 상태에 최적화된 시스템’1을 구축했다. 그러나 지구 환경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여름철 강우 패턴을 살펴보자.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1시간 동안 50mm 이상 폭우는 5.1회에 그쳤으나 2000년대 들어서서 12.3회로 급증했다. 급증한 국지적 폭우는 수질 오염, 토양 침식, 도심 홍수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이러한 위협은 근래에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나 강남역 침수 등으로 가시화되었다. 이와 동시에 최근 2015년에는 극심한 가뭄도 찾아왔다. 중부 지역의 누적 강수량이 평년 대비57%에 그쳤고, 바닥을 드러낸 소양강댐은 방류량을 80% 이상 줄여 생활용수 제한 급수를 단행하게 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다. 과거의 강우 패턴에 최적화된 우리나라의 수자원 확보는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큰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겨울철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겨울 제주도에서의 예상치 못한 이틀간의 폭설은 9만 명의 여행객의 발을 묶었고, 59억 원의 피해와 86억 원의 복구 비용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했다. 변화하고 있는 환경에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점차 마비되고 붕괴되고 있다. 연재 순서 1. 21세기 패러다임의 변화,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2. 리질리언스 개념의 등장과 확장 3. 새로운 사고의 틀, 리질리언스 사고 4.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전략, 적응과 전환 5.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1: 도시 리질리언스 6.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2: 해안 리질리언스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 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 [조경의 경제학] 공원의 적정량을 비용편익분석으로 도출할 수 있을까 Economics of Landscape Architecture: Can We Estimate the Proper Amount of Parks by Cost-Benefit Analysis?
    비용편익분석, 벗어나기 힘든 굴레 비용편익분석cost benefit analysis은 실용적인 수단이다. 이름 그대로 해석하자면 어떤 사업 또는 투자에 소요되는 비용과 기대되는 편익을 비교하는 (그래서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타당성 검토feasibility study는 정부의 공공사업이나 민간의 수익사업뿐만 아니라 개인이 대학에 진학할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비용편익분석이라는 단어를 주로 정부가 공공재를 공급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사용한다. 정부가 공원의 조성여부를 비용과 편익을 비교하여 결정하는 것은 비용편익분석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호에서 설명했듯이 공원과 같은 공공재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기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적정량이 얼마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용편익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정부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편익이 비용을 초과하는 공원만 빠짐없이 조성하면 사회적으로 적정한 공급량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비용과 편익이 제대로 추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공원뿐만 아니라 어떤 공공재에 대해서도 우리는 비용과 편익을 정확하게 계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 철도, 발전소 등 공공사업에 비용편익분석은 널리 활용되고 있다. 때로는 고속도로가 산을 뚫고 교각을 놓아가며 울창한 수림을 관통해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고압의 송전탑이 신성한 능선들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비용과 편익을 추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비용편익분석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이를 대신할 합리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할 능력은 없지만 대체할 수단 또한 없는 것. 이것이 비용편익분석에 대해 우리가 가진 딜레마다. 공원에 드는 비용 비용을 추정하는 것이 어려운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비용편익분석에 필요한 것은 회계적 비용accounting cost이 아닌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자원을 사용하는 데 드는 기회비용을 ‘그 자원을 다른 용도로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 중 가장 큰 값’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공원에 심는 나무의 기회비용은 그것을 얼마에 샀는가(회계적 비용)가 아니라, 그것으로 집을 짓든 젓가락을 만들든 공원에 심기 위해 포기한 다른 모든 용도의 가치 중 가장 큰 값이다. 그런데 이 값을 어떻게 일일이 계산하여 비교한단 말인가? 다행히 경제학자는 시장이 완전하다면 시장가격market value에 이 값이 잘 반영된다는 논리로 수고를 피해간다. 공원에 드는 비용은 공원에 투입되는 자원들의 시장가격을 합하여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가격은 내가 시장에서 나무를 사는데 지불한 액수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나는 상황에 따라 나무를 싸게 살 수도 있고, 비싸게 살 수도 있다. 때로는 원래 가진 나무가 있어서 추가적인 현금 지출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일지라도, 내가 나무를 공원에 심는다면 나는 합리적인 당사자들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주고받았을 시장가격을 지불한 것이다. 바로 이 값들을 합해야 공원에 드는 비용이 계산된다. 한편 공원에 드는 비용이 오늘 전부 지출되지 않고 미래에 조금씩 지출되는 것도 비용의 추정을 어렵게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슈가 숨어 있다. 첫째, 비용이 미래에 지출되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예측’해야 한다. 경제학자가 아닌 점쟁이에게도 미래의 예측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비용의 추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틀린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둘째, 총지출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점의 미래 지출을 오늘의 값으로 환산해야 한다. 오늘의 백만 원과 10년 뒤의 백만 원은 그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산의 비율이다. 이 비율을 정하는 과정에는 분석가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결국 누가 추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값을 놓고 우리는 공원의 조성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셈이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 [재료와 디테일] 톤
    다르게 할 것을 요구 받는다. 아주 노골적으로. 새롭지 않으면 늘 뒤쳐진 낡은 것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한다. 심지어 능력 부족이라는 오명과 함께 지켜온 자리마저 위협받는다. 경쟁 시대의 현실이다. 종교는 없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경의 한 구절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이런 내게 혹은 나와 닮은 이들에게 새로움을 강요하는 현재의 분위기는참 견디기 힘들다. 조경은 살아있어 항상 변하는 재료를 사용하는 아주 독특한 분야다. 입이 아프게 말하고 귀가 따갑게 듣던 이야기다. 이렇게 늘 새롭게 변화하는 재료를 사용해 계획하고 만드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새로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혹시 말(보고서)로는 시간이 지나며 더 아름답게 변하는 경관 중심의 공간을 계획했다고 하지만, 변화는커녕 낡아빠진 형형색색의 시설물로 가득한 공간을 보여주었기에 사람들이 우리의 거짓말을 알아채 버린 것일까. 이 연재를 하며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과연 소재를 많이 아는 것과 그 구법에 능통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게 굳이 필요한 것인가? 뻔하지만 답도 없는 생각으로 머리만 바쁘다.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좋은 공간적 ‘톤tone’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사전에서 찾아보면, 톤은 본래 음악 용어로 일정한 결합 관계를 가진 몇 개의 음이 융합되어 만드는 음조를 말한다. 회화에서는 개개의 색채가 명암, 농담의 차이에 따라 형성되는 조화를 말한다. 색의 명암, 강약, 농담 등이 나타내는 미묘한 차이와 그 혼합으로만들어내는 조화로운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