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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암동 백석동천(Baekseokdongcheon)
백석동천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 115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면적은 50,861㎡로, 백악산북악산의 옛 이름 뒷자락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백사골에 조성된 별서를 포함한 정원유적이다. 현재 건물지 및 연지, 각자바위 등은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2005년 3월 25일 사적 제46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월 8일 명승 제36호로 변경되었다.Baekseokdongcheon which is located in 115, Buamdong, Jongno-gu, Seoul is 50,861㎡ area. The aesthetics of adapta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with Anchae, Sarangchae and Pond, Intaglio rock. It was appointed as a Scene Site No.36 in 8th, January,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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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듀크 가든(The Sarah P. Duke Gardens)
남부의 아이비리그라고 불리기도 하는 듀크대학교는 연구 중심 사립대학교로서 원래는 1838년 트리니티(Trinity)라는 마을에 감리교도와 퀘이커교도들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1892년 현 위치인 더럼으로 옮기게 되었고, 제임스 B. 듀크(James B. Duke)가 듀크 기금을 설립한 1924년 무렵부터 그의 부친인 워싱턴 듀크(Washington Duke)를 기려 듀크대학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미국의 주요 대학교와 식물원이 설립된 배경에는 대부분 그 지역을 기반으로 경제적으로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의 기부가 있었다는 것은 이제는 색다른 일이 아니다. 당시 듀크 역시 담배와 목화의 집산지였던 이 지역에 담배 공장을 세워 더럼시를 미국의 대표적인 담배 생산 도시로 만들었으며, 전력 사업으로도 큰 성공을 이룬 가문이었다.
사라 듀크 가든의 발자취1920년대 초에 듀크대학교의 계획가들은 현재 사라 듀크 가든이 위치한 지역을 호수로 만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이 모두 소진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1934년에 이르러 가든의 조성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에는 헤인즈 박사(Dr. Frederick Moir Hanes)의 공이 컸다. 듀크 의학대학의 교수였던 그는 벤저민 듀크(Benjamin Duke)의 미망인 사라 듀크(Sarah P. Duke)를 설득하여 2만 달러의 기부금으로 이곳 캠퍼스 골짜기에 정원을 만들 것을 제의했다. 그 후 1935년까지 100개의 화단에 40,000여 구의 붓꽃과 25,000여 구의 수선화, 10,000여 구의 각종 구근들이 식재되었는데, 불행히도 심각한 폭우로 인해 모두 쓸려가 버리고 말았다. 정원은 완전히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사라 듀크는 1936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후 헤인즈 박사는 사라의 딸인 메리 듀크 비들(Mary Duke Biddle)에게 제의하여 보다 높은 지대에 새로운 가든을 조성하여 그녀의 어머니를 기념하도록 하였는데, 여기에 조경설계가 엘렌 비들 쉽먼(Ellen Biddle Shipman)이 참여하여 현재 테라스(Terrace)로 알려진 이탈리아 양식의 정원을 만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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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뉴욕 국제도시공원 컨퍼런스
나는 Park Enthusiast, 공원열렬애호가국제도시공원 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뉴욕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내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던 질문이 있었다. 왜 도시공원컨퍼런스를...? 새롭게 떠오르는 21세기 도시공원의 비전, 특히 공원조성과 운영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것은 허울 좋은 목표일 것이다. 그보다 5년 전 시민단체의 일원으로 센트럴파크 컨서번시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했던 때와는 다른 소속과 업무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다가올 뉴욕이 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공원에 관련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싶은 것이 더 적절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건설경기가 내리막길이니 조경시장이 위축되어 간다고 다들 걱정이다. 후학을 가르치는 대학에서도, 대형프로젝트를 기대하는 설계사나 시공사도, 우리 같은 시설물업체도 오늘보다 내일이 더 불안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경제위기는 우리나라만이 겪는 상황은 아닐 터이니 뉴욕이란 도시에서 미국 내 전역,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공원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21세기 도시공원이란 아젠다를 가지고 신나게 토론한다니 그 축제가 당연히 보고 싶은 것이 가장 솔직한 이유일 거다. 왜? 나는 공원을 사랑하는 Park Enthusiast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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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궁집
Namyangju Gungjip
궁집은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426-1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면적은 25,357㎡로, 18세기 중반 영조의 숙의 문씨 소생 화길옹주가 부마 구민화에게 시집을 가자, 국가에서 목수와 목재를 보내어 지어준 집이다. 이곳은 조선후기 궁집의 대표적인 곳으로 현재 안채, 사랑채, 문간채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84년 1월 14일 중요민속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되었다.
Gungjip which is located in 426-1, Pyeongnae-dong, Namyangju-si, Gyeonggi-do is 25,357m2 area. It is the representative Gungjip that was constructed of wood in 18C that was given by the King Yeongjo when his daughter, the princess Hwagilongju(1754~1772), married Gu Minhaw. The aesthetics of adapta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with Anchae, Sarangchae and Munganchae. It was appointed as a Important Traditional Cultural Assets No.130 in 14th, January,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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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에스떼
Villa d’Este
위치 _ Tivoli, Lazio, Italy의뢰인 _ Ippolito d’EsteⅡ조경가 _ Pirro Ligorio면적 _ 약 4ha조성 시기 _ 1550년농경 생활에서 정원 가꾸기로 강의 범람은 세계 4대 고대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을 만큼 농사에 커다란 축복을 가져다주었다. 이 기름진 땅을 전에 소유했던 면적만큼 동일하게 나누기 위해 농업에서도 기하학을 필요로 했고, 그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이들이 새로이 그어 낸 토지 분할은 자연에선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인간의 지적 형태이며, 고대 로마인들은 ‘첸투리아티오(Centuriatio)’라는 바둑판 모양의 규칙적인 농지를 약 700x700m로 나누며 그들이 지나간 흔적을 남겼다. 원래 있었던 참나무 숲은 그 자취를 감추었고 드넓은 농경지만 보이게 된 이탈리아 북부 파다나(Padana) 평원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경작지는 경사진 땅을 만나면 건축적인 성격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밭갈이 때 찾은 돌들을 담처럼 쌓아가며 경사를 하나하나 잠재워 나간다.
농사의 주인공인 농작물과 경작방법은 원래 농부들만의 전유물이었는데 간신히 그 흉내를 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조경가’이고,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정원’이다. R. Assunto는 그의 저서 『Ontologia e teleologia del giardino(정원의 존재론과 목적론)』에서 ‘정원은 자연이 인간에게 정신을 불어넣으면서 농업의 여러 기술, 건축, 열정이 넘치는 조각 등을 이용하여 자연환경 속에 집결한 삶과 명상의 장소’라고 정의하고 있다.미美에 대한 견해는 분분하지만, 정원은 처음부터 아름답기 위해 태어났다. 이 아름다움은 어쩌면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물이 부족하고 더위를 피할 나무도 없는 척박한 곳에서는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모진 환경 속의 낙원,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문명에서의 정원은 그 누구에게보다도 커다란 축복이자 특권이었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기하학의 아름다움이나 풍족함은 신의 축복이었으며 이것은 곧 낙원을 상징하는 정원을 의미하였다. 이들의 정원에는 레몬, 포도, 장미 외 여러 종류의 꽃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위를 식혀주는 분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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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대학교 앰블러 수목원
Ambler Arboretum of Temple University
펜실베이니아 여성원예학교에서 시작된 조경·원예 교육의 메카 템플대학교 앰블러 수목원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템플대학교 본교에서 40분가량 떨어진 앰블러에 위치하고 있다. 원예와 조경디자인에서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템플대학교 앰블러 캠퍼스는 1910년 펜실베이니아 여성원예학교(Pennsylvania School of Horticulture for Women)로 처음 설립되었고, 1958년 템플대학교의 일부가 되었다. 그 후 1988년에는 조경설계 및 원예학부가 마련되었으며, 2000년에 공식적으로 수목원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템플대학교 앰블러 수목원은 75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면적에 자연 지역과 조경디자인 지역이 함께 공존하고 있으며, 공공 정원으로서 대학교와 지역 공동체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자 살아있는 교육을 위한 옥외실험실로서 기능하고 있다. 앰블러 수목원의 미션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정원의 건강한 이익들, 원예, 농업, 그리고 디자인에 있어 여성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캠퍼스 자체가 곧 수목원인 이곳에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들은 다른 여느 식물원 못지않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며, 캠퍼스 부지의 짜임새 있는 공간 분할을 통해 다양한 분위기의 정원들을 색다른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원예와 조경디자인에 있어서 여성의 역사제인 보웬 헤인즈(Jane Bowne haines)와 브린 마(Bryn Mawr)에 의해 설립된 펜실베이니아 여성원예학교의 첫 번째 학생들이 이곳 앰블러 지역에 모인 것은 1911년 2월이었다. 이는 원예와 농업에 있어서 새로운 경력을 갖추고 직업에 대한 기회를 넓히길 원했던 젊은 여성들에 대한 교육을 목표로 한 선구적인 아이디어였다. 특히 이 학교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기보다 직업을 갖고 활동적으로 일하기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크게 부각되었다.
우리의 비전은 신실한 여성들이 살며 꿈꿀 수 있는 곳, 다시 말해 여성들이 가사를 하도록 기대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든 시간을 유능한 스승들 밑에서 배우는 데 바쳐 유능한 직업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_ 제인 보웬 헤인즈(Jane Bowne Haines), 1910
제인은 학생들이 단지 교실에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식을 학교 정원과 농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학생들은 캠퍼스에 살며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에는 꽃과 과일, 관상용 식물, 관엽, 채소류의 생산과 이용에 대한 수업뿐 아니라 양봉, 통조림 제조, 목공, 농장 경영, 토양학, 가축사육, 그리고 1차 세계대전 후에는 경영학과 조경설계까지 포함되었다. 작은 규모와 제한된 기금으로 인해 이 여성학교를 졸업한 여성들은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그 영향력과 파급력은 실로 대단했다. 1914년에는 가든 클럽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미여성농장가든협회(Woman’s National Farm & Garden Association)를 설립하기에 이르렀고, 1920년대에는 교수와 학생들이 『파머스 다이제스트(Farmer’s Digest)』라는 월간 저널을 창간하기도 하였다. 펜실베이니아 여성원예학교는 전 미 지역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1929년에는 도쿄의 외곽지역에 이 여성학교를 모델로 한 케이시엔(Keisien) 학교가 설립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여성들의 활동적인 역사와 영향력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템플대학교 앰블러 캠퍼스에는 오늘날 조경설계 및 원예학부를 비롯한 다양한 학위과정이 개설되어 있으며 3,500여 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앰블러 캠퍼스 내에는 영국풍의 숙근초원이 있는가 하면, 자생식물을 이용한 정원, 허브원, 지피식물원, 우드랜드, 습지원 등이 있다. 또한 침엽수원을 비롯한 캠퍼스 곳곳의 다양한 수목류는 흔치 않은 컬렉션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래된 나지막한 건물들 역시 너무나 자연스럽게 캠퍼스의 조경과 잘 어우러지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에 걸맞은 고즈넉함이 있고, 이름 높은 조경디자이너들이 정원의 설계에 참여하였으며, 거기에 조경설계 및 원예학부 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지속가능하고 현대적인 정원디자인으로 수목원의 전시에 큰 몫을 하고 있다. 특히 조경설계의 생태학적인 접근은 지속가능한 공동체센터(Center for Sustainable Communities)를 중심으로 꾸준히 관심이 늘어가고 있는데, 앰블러 수목원의 정원들은 현대적인 생태학 원리에 근거한 전통적인 조경설계 디자인의 예시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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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3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 생태저류지
사업위치 _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동 787번지 일원면적 _ 32,579㎡(연계공원 포함)공사기간 _ 2009년 4월~2011년 12월발주처 _ SH공사복원시공 _ (주)LS(LEED Society)생태환경 + 현대건설(주)종합코디네이팅 _ 변찬우 교수(상명대 융합생태환경센터장)
지난 2011년 12월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동 일원에 조성된 신정생태환경저류지는 기존 홍수조절 및 저류기능에만 치중한 택지 내 저류지와 달리 생태환경적 측면에서 다양한 분야의 융복합적 접근을 통한 단지 내 발생유량산정 및 수리·수문적 검토를 바탕으로 하여 저류지의 저류 및 홍수방재기능은 물론 생태적 수질정화, 생태복원, 친수경관적 기능까지 제공할 수 있게 된 국내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본 생태환경저류지는 상명대 대학원 변찬우 교수(상명대학교 융합생태환경센터장)가 분산형 저류지의 입지선정에서부터, 계획, 설계, 복원시공, 생태환경복원 시스템개발, 모니터링에 이르기까지 생태환경공학적 접근을 통해 종합코디네이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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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30주년 기념 가족음악회
서른, <환경과조경> 지난날을 돌아보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환경과조경> 30주년 기념 가족음악회’가 개최되었던 지난 6월 30일에는 아침부터 많은 비가 쏟아졌다. 비가 와서 주말 나들이길이 다소 거추장스러울 수 있지만, 메말라가던 조경수들이 목을 축일 것을 생각하니 한시름 덜었다며 기쁨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었는데, 오랜 가뭄 끝에 함께한 비 소식에 행사의 분위기가 한결 유쾌해졌다.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다목적홀에서 진행된 ‘<환경과조경> 30주년 기념 가족음악회’는 당초 ‘가족’ 중심의 소규모 행사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지금의 <환경과조경>이 있기까지 힘써온 조경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전·현직 직원 및 그 가족뿐만 아니라 올해의조경인 모임, 자문위원, 편집위원, 라펜트 운영위원, 협력업체 관계자들을 초대하여 <환경과조경>의 지나온 30년을 자축하고 다가올 앞날을 기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기획부터 홍보, 인쇄, 기념 웹페이지 제작, 기념영상, 행사진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직원들만의 힘으로 준비함으로써 행사에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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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타워 가든
Bok Tower Gardens플로리다의 자연을 노래하는 에드워드 복의 꿈의 정원
복 타워 가든(Bok Tower Gardens)은 세계평화주의자이자 출판편집인,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에드워드 복에 의해 설립된 정원이다. 네덜란드 출신 이민 가정에서 자란 그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이룬 뒤,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준 미국에 대한 일종의 보답으로 이 정원을 만들었다. 1929년 복 타워 가든은 준공 후 제30대 미국 대통령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의해 헌납되어 미국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되었다.
에드워드 복과 옴스테드 정원에드워드 복의 이야기는 가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나 최고의 성공을 이룬 대표적인 사례이다. 1863년 네덜란드 덴 헬더(Den Helder)에서 태어난 그는 6살 때 가족과 함께 뉴욕 브룩클린으로 이주했고,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할 만큼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신문팔이와 청소부로 열심히 일한 끝에 1884년 브룩클린 매거진(The Brooklyn Magazine)의 편집인이 되었다. 1889년 필라델피아로 이사한 후 레이디스 홈 저널(Ladies Home Journal)로 직장을 옮겼는데, 그 이후로 30년간 레이디스 홈 저널의 편집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매일 매일의 사회적 이슈를 다루었던 이 잡지는 그가 몸을 담았던 당시 백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첫 번째 잡지가 되기도 했다. 1896년 복은 사이러스 커티스(Cyrus Curtis)의 딸인 메리 커티스(Mary Curtis)와 결혼했다. 사이러스 커티스는 필라델피아에 수많은 종류의 신문과 잡지들을 발행하여 이른바 언론 왕국을 세운 인물이었다.편집인으로 크게 성공한 에드워드 복은 미국의 많은 유명 인사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쌓게 되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에드워드 복의 이민기(The Americanization of Edward Bok), 1920』로 192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23년 복은 미국 평화상(American PeaceAward)을 창안했고, 그의 부인인 메리 루이스 복은 1924년 필라델피아에 커티스 음악원(Curtis Institute of Music)을 설립했다. 은퇴 후 에드워드 복은 플로리다에 복 타워 가든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원의 설계는 당대 최고의 조경가 중 한 사람이었던 프레드릭 옴스테드 주니어(Frederick Law Olmsted Jr.)가 맡았는데, 그의 아버지 프레드릭 옴스테드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사회비평가, 그리고 조경가로 뉴욕의 센트럴 파크 등 주요 도시 공원을 설계하였고 미국 조경설계의 아버지로 불렸던 인물이었다. 옴스테드 주니어 역시 아버지와 함께 조경과 관련된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나중에는 옴스테드 브라더스 조경회사를 운영하며 미국의 수많은 주요 도시공원과 대학교 캠퍼스 등의 조경설계를 진행한 조경계의 거장이었다. 1923년부터 옴스테드 주니어는 에드워드 복이 매입한 플로리다의 모래 언덕을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자 자연보호구역으로 만들기 위한 일에 착수하였다. 그후로 5년 동안 옴스테드 주니어와 그의 팀은 지역 자생식물을 외래식물과 함께 조화롭게 사용하 여 세상에 길이 남을 정원을 만들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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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싱가포르의 문화 용광로: 게이랑 지역
Singapore’ Geylang Red Light District“중국 여자들이 비싼 가방이나 옷을 사기 위해 이곳에 와서 일하진 않아요…” 태국계 싱가포르 감독인 에카차이 우에크롱탐(Ekachai Uekrongtham)의 2007년작 영화 ‘쾌락 공장(Pleasure Factory)’에 나오는 대사의 한 대목이다. 논픽션 다큐멘터리식으로 찍은 이 영화는 싱가포르의 유명한 홍등가이자 상업 관광지인 게이랑(Geylang) 거리에서 실제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섭외한 몇몇 일반인을 캐스팅해 찍은 영화로서 홍등가 이면에 있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내면을 섬세히 표현해 칸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싱가포르 게이랑 지역은 매춘이 합법화된 싱가포르에 있는 유일한 홍등가이자 상업지역이다. 지난 100여 년 이상의 싱가포르 지역문화 및 다민족의 역사와 말레이를 비롯해 중국계 건축양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대표적 상업 관광지이며, 다양한 민족이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거나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홍등가 외에도 중국, 인도, 태국, 말레이 등 각 나라 고유의 음식 맛으로 정평이 난 식당들이 곳곳에 즐비해 있어 많은 싱가포르 거주민 및 해외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이 글에서는 홍등가가 있는 상업지역이지만 싱가포르의 지난 역사, 다양한 다민족 문화와 독특한 건축양식 그리고 다양한 계층의 다민족이 모여 사는 이곳에 대한 소개와, 중요 도시 건축 요소인 샵하우스 및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홍등가의 개발보전 측면에서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게이랑 위치 및 도심 풍경홍등가가 위치한 게이랑은 창이공항과 다운타운을 연결하는 게이랑 도로(Geylang Road)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홍등가 및 상권 거리는 대략 3㎞ 정도이고 이 축을 중심으로 게이랑 도심 블록들이 남북으로 나뉜다. 말레이어로 로롱(Lorong)이라 불리는 작은 일반통행 도로들이 게이랑 도로를 향해 직각으로 연결되어 각 구획을 만든다. 게이랑 도로의 북쪽은 도로이름이 3, 5, 9 등의 홀수로 되어있으며 남쪽은 짝수로 되어있어 구역을 쉽게 나눌 수 있다. 북쪽의 홀수로 표시된 로롱(Lorong 3, 9, 11 등) 거리들은 과일상점, 종교시설, 상업시설 및 몇몇 싼 호텔들과 공용 임대주택 그리고 일부 새롭게 분양된 콘도 아파트들로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은 상업 및 식당가와 저가 호텔들 그리고 싱가포르 정부에 등록된 윤락가가 들어서 있다. 각각 일방통행으로 되어있는 거리들은 저녁이 되면 도심에서 퇴근해 쏟아져 나오는 차량과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려 몰려나오는 다국적 노동자들, 유명 식당들에 저녁이나 모임을 위해 나오는 주민들, 성매매를 위해 거리로 나온 여자들 그리고 이를 찾아 나선 사람들, 싱가포르에 놀러온 관광객들이 함께 섞여 도로를 매우며 요란한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게이랑 거리는 싱가포르의 깨끗하고 잘 정돈된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독특한 캐릭터와 문화적 에너지를 쏟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