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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서 그리는 약속의 공원] 문경원 인터뷰
Interview with Moon Kyung Won
회칠이 벗겨지고 뼈대만 남은 폐허의 잔해 사이로 원시적인 자연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미디어 아티스트 문경원(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교수)이 그리는 미래의 공원은 생경하면서도 문득 익숙했고, 음울하다가도 생명력이 넘쳤다. ‘템플 앤 템포Temple & Tempo’, ‘사물화 된 풍경’, ‘도시 풍경’ 시리즈, ‘공동의 진술’ 등 도시, 공간, 풍경, 인간의 소통, 미술의 미래 등의 주제를 탐구해온 문경원이 이번에는 우리 시대의 공원의 의미와 미래 공원의 역할에 대해 묻는다.
2015년 11월, 일본 야마구치 정보예술센터(YCAM)에서 열린 문경원의 개인전 ‘프라미스 파크Promise Park’가 지난 2월 막을 내렸다. 문경원은 국내외에서 뜨거운 이슈를 몰고 다니는 주목받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지난해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한국관에서 전준호 작가와 함께 영상 설치 작품 ‘축지법과 비행술’을 선보였으며, 2012년에는 공동 작업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로 독일의 국제현대미술전 ‘제13회 카셀도쿠멘타Kassel Documenta’에 초청되어 한국 미술을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력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3년간의 준비 끝에 YCAM에서 선보인 개인전 ‘프라미스 파크’였다. ‘프라미스 파크’는 재난으로 인해 붕괴된 사회 시스템을 재건하고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미래의 공원을 상상하며 영상, 설치, 사운드, 조명 등의 매체를 복합적으로 활용한 미디어 아트로 풀어낸 전시다. 1회성의 축제로 끝나는 일반적인 기획전과 달리 문경원은 3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초기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며 공원에 대한 예술가적 시각을 넓혀왔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10년 동안 진행될 ‘프라미스 파크’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미술가 문경원이 상상하는 미래 도시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미래 도시에서 공원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공원에 대한 예술가적 상상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공원의 의미와 미래를 위한 조경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_ 편집자 주
Q. 해외와 국내를 오가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지난 3년간 일본의 야마구치 정보예술센터(YCAM)에서 개인전 ‘프라미스 파크’ 전을 준비했다. 얼마 전 전시가 막을 내렸는데 YCAM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작업한 소감을 듣고 싶다.
A. 이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소재로 YCAM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시작하게 되어 굉장히 재밌었다. YCAM미술관은 특별한 기관이다. 처음부터 미래 지향적인 예술에 대한 비전을 갖고 개관했고, 뉴미디어나 테크놀로 지 작업을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보통 일반적인 미술관들은 컬렉션을 중요시하는데 YCAM은 프로덕션에 예산을 전부 투자한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구입하기보다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프로덕션에 투자하고 미술관 내부에 랩lab을 운영하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작가들을 장기간에 걸쳐 지원한다. 일례로 지난 2013년 YCAM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10주년 전시에 참여했을 당시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반 이상이 YCAM에서 10년동안 프로젝트를 함께 한 사람들이었다. YCAM의 랩에는 목공, 프로그램, 조명, 사운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는데 장기간에 걸쳐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기술적인 면이나 작업의 깊이가 발전하게 된다. 또한 랩의 작가들끼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런 시스템이나 분위기가 참 좋았다.
Q. 영상, 사운드, 텍스트, 컴퓨터 그래픽 등 다양한 매체와 테크놀로지를 이용하고 있다. 작업 영역이 매우 넓은 것 같은데 여러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당신의 포괄적인 뉴미디어 아트 작업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A. 미술 분야에서는 새로운 매체가 나오면 그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물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뉴미디어 아트는 물성에 구애 받지 않으니 미술사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뤄졌다. 비물질이 어떠한 방식과 형태로 예술적 가치를 획득하느냐에 대한 논쟁도 치열했다.
처음에 미디어 아트가 도입된 때는 그렇게 형식이나 패러다임 위주로 회자되다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현대 미술의 툴 중 하나로 녹아든 것 같다. YCAM도 처음 3년 동안은 미디어 아트의 기술력이나 프로그래밍 등 새로운 작업에 초점을 맞췄는데 최근에는 결국 그러한 기술을 다루는 인간적인 해석과 시각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10주년 전시 이후에 YCAM 큐레이터와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시각과 감각을 얼마만큼 변화, 확장시키고 또 그것이 다시 예술 작품 안으로 들어올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앞으로도 미디어 아트의 도구적인 특성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미디어 아트를 도구로 하여 어떤 내용을 담느냐’다.
‘공간’에 대한 관심
Q. ‘템플 앤 템포’, ‘사물화된 풍경’, ‘도시 풍경’ 시리즈 등에서는 현재, 혹은 과거의 공간과 공간 속의 인간을 ‘관찰’하고 ‘관조’했다면, 전준호 작가와 공동으로 작업한 ‘뉴스 프롬노웨어’와 같은 최근작에서는 건축가, 작가, 과학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미래의 도시 풍경을 ‘제시’하고 ‘그려’내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프라미스 파크’ 전도 새로운 미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공간’이라는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바뀐 것 같다. 처음 미술을 접했을 때는 주로 ‘그려보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내가 그리는 풍경에 어떤 내용을 담을 까 항상 고민했다. 단순히 어떤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 대상이 기억하는 풍경을 그려보고 싶었다. 나와 대상이 맺는 관계나 역사 같은 것을 내가 어떻게 시각화하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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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직관과 드로잉
The Way They Design: Intuition and Drawing
설계하는 마음가짐
만물 개비어아의(萬物 皆備於我矣) 반신이성 낙막대언(反身而誠 樂莫大焉).만물의 이치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으니, 나를 돌아보고 지금 하는 일에 성의를 다한다면 그 즐거움이더없이 클 것이다.’ 설계라는 행위는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수준 높게 엮는 혼의 작업이며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다. 사물에 생명과 혼을 담는 행위이며 자신의 몸을 깎아 분신을 그 사물에 집어넣어 형(形)을 만드는 일이다. 조경에서 형을 만드는 일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므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생명이라는 에너지는 자신의 신체나 마음에서 다른 형태의 물건으로 옮겨진다. 그것에서 만든 사람의 분신이 태어난다. 설계 행위의 에너지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들은 이를 통해 깊은 감동을 받는다. 마음으로 성의를 다하는 일이 설계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실천하고 있다.
돈오점수
돈오점수(頓悟漸修. ‘갑작스럽게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점차적으로 수행해가다’)라는 뜻의 불교 용어다. 처음 설계를 접했을 때는 몇 년 고생하여 설계를 배우면 설계의 고수가 될 것이라는 선배들의 감언이설(?)을 믿고 열심히 배웠다. 설계 작업을 하다 보면 설계의 개념을한 실에 꿰찰 수 있는 듯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이전까지 해왔던 설계가 초등학생 수준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설계 작업이 잘 될 때가 있는 반면, 형편없을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설계 작업을 계속 하다 보면 비로소 내 몸이 깨달음을 익히고 그 깨달음이 체계화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설계사무실 운영을 시작할 때, 십 년만 고생하면 사무실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말을 믿고 참으며 열심히 일했다. 설계와 인연을 맺고 산 지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많은 사람이 고령화 사회에서 앞으로 30년은 더 일해야 하니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긋하게 즐기며 살라고 조언한다. 80세까지 설계 작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다기보다는 체력이 따라줄지 의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기쁘다. 아직 더 잘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설계사무소를 17년 간 운영하면서 개인과 조직의 변화를 지켜봤다. ‘아, 이제 이만큼 했으면 되었나 보다’하고 수련을 멈추었던—교만했던, 어설펐던, 무지했던—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개인과 조직은 항상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퇴보하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설계하는 과정과 방법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름대로 체계가 세워졌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직관 능력이 점점 사라졌다. 항상 새로운 변화—CAD 설계, 친환경적 설계, 생태적 설계, 참여적 설계, 감성적 설계 등 수많은 패러다임—가 일어났고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다. 이런 변화에 잘 대응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변화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를 계속해야 한다. 자기가 얻은 깨달음을 실천하고 부족한 부분은 다듬어야 한다. 실수를 했을 때는 무엇이 부족한지 연구하고 보완하는 점수가 이어져야 한다.
항상 집중하며 스님처럼 늘 정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판에서는 졸면 죽음을 맛보게 된다. 설계 작업의 긴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외부 요인에 의해 혼란을 겪을 것이고 돈오하고 점수해야 한다. 설계 행위는 끊임없는 돈오와 점수의 반복적 과정이라고 믿는다.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는 것이 설계다.
본질을 발견하는 힘, 직관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한 패션 브랜드의 유명한 광고 카피로 설계를 시작할 때마다 항상 되새겨 보는 문구다. 점점 짧은 주기로 변하는 삶의 방식과 다양한 가치의 충돌 속에서 돈오점수하며 삶의 본질과 조경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항상 노력한다. 설계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번 설계의 핵심은 무엇이며 지금 이 곳에서 조경의 본질은 무엇인가? 직관의 힘을 키우는 과정이다.
LH의 파주운정 택지개발지구 도시기반시설 조경설계안 설계공모 작업을 하는 내내 이 사이트에서 공원 녹지가 갖는 의미와 조경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고 답을 구하려 노력했다. 그물망처럼 얽힌 공원 녹지의 형상속에서 도시의 피난처가 아닌 도시의 실체(identity)로서공원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를 실현 가능하게 하는 양한 수변의 길(7 Esplanades)과 국내 최초로 파크스테이션(park station)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운정역과 연결되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중심 동선과 호수로 인해 단절된 남북을 연결하는 브리지는 도시의 실체로서 작동하는 공원의 핵심 전략이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고 반드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을 제시하는 일은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본질은 단순하지만 발견하는 것은 어렵다.
누군가가 설계가에게 제공한 진술—과업 지시서, 작업 의뢰—이나 현장 경험에 의해 정의된 설계 문제는 항상 복잡하고 다양한 제한 조건으로 만들어진다. 경험이 있는 설계가라면 그런 제한 조건이 전부 구속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비전문가의 추측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방해하는 허구적 제한 조건일 수 있다. 하지만 제한 조건이 때로는 실질적인 공헌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역설적이지만 모든 선택의 자유를 부정하는 엄격한 제한 조건이 설계 과정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또한 복잡한 설계 문제에서 버릴 것이 무엇인지 판단한 후 과감하게 버려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복잡한 설계 문제에 직면한 설계가는 대개 자유로운 선택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파생적 결과나 유행만 추구하는 경향을 피해 신선한 시각과 간결한 설계를 찾고자 애쓴다. 이를 통해 신선하고 단순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그게 바로 복잡한 문제를 간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직관이라는 설계의 힘이다.
어느 책에서 ‘참된 지혜는 모든 것을 다 해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탐구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었다. 본질을 파악하는 직관의 힘은 깊이 들여다 본 순간들이 모여 생겨난다고 믿는다.
드로잉 작업
피카소는 『카예 다르Cahiers d’Art』라는 잡지에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보다 그 과정들 사이의 변형 상태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그렇게함으로써 정신이 어떤 경로를 거쳐 구체적인 아이디어로 향하는지 또 그 길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작업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그림은 항상 그리기 전에 생각이 떠오르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려지는 동안 사고의 유동성에 따라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설계 과정에서 드로잉을 통한 설계 사고(design thinking)가 전개되는 흐름은 재미있다. 설계 사고 과정에 대한 연구와 설계 방법론은 오래전부터 관심사이자 연구 대상이었다. 인간의 인지적 활동을 설명해내는 학문 분야인 인지심리학의 언어 프로토콜 분석법(verbal protocol analysis)을 통해서 설계 사고 과정을 이해하려는 연구도 했다. 창조적이고 복잡한 설계 과정을 좀 더 쉽게 설명하고 이해해 보려던 시도였다.
많은 설계가가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설계를 시작하겠지만, 나는 드로잉을 통해 설계를 점화시킨다. 설계 대상지에 대해 조사하고 고민했던 많은 문제가 현황도 위에서 검정색 모나미 사인펜을 사용한 드로잉을 통해 서술된다. 소설가 김훈은 연필과 지우개가 없으면 글을 못 쓰고, 시인 고은은 볼펜을 가지면 마음이 서술의 춤을 춘다고 했다. 나는 현황도와 그 위에 밀착시킨 옐로우 트레이싱 페이퍼와 마주할 때마다 최고의 긴장감을 느낀다. 투명한 종이 너머로 보이는 현황의 속삭임에 검정색 사인펜은 종이 위로 조심스럽게, 때론 거칠게 다가가며 무한한 상상력을 내뿜는다.
최초의 아이디어 스케치 대부분은 최종 디자인에 비해 현격히 작은 스케일에서 출발한다. 작은 스케일의 스케치는 전체적인 관계를 파악하기에 유리하다. 또한 비례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케치의 크기가 A3를 넘지 않아야 한다. 초기 스케치를 최종 결과물에 적합한 사이즈로 전환시킬 때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하지만, 축소된 스케치를 확대하여 다시 재구성하는 수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내용을 신속하고 간결하게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드로잉은 설계가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다.
최초의 드로잉은 다이어그램 형태라기보다는 설계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적인 선을 찾아가는 첫 번째 여정이다. 이 선은 대상지의 지형에 순응하기도 하고 건물을 탐색하기도 한다. 때로는 대상지의 경계를 따라 자리 잡는다. 직관적으로 그린 하나의 선에서 드로잉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몇 개의 선의 흔적은 공간을 분할하는 동시에 전체적인 설계의 방향을 정한다. 머릿속에서 많은 설계의 문제가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설계를 하는 중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드로잉이 진행되면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다른 아이디어를 밀쳐내고 첨가되고 변형된다. 이 과정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드로잉이 진행되면 그것을 인지하게 된다. “아! 완전히 잘못되어 가는데….” 이 순간에는 다시 처음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정열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결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귀찮고 힘들어서 고치지 않은 채 계속 드로잉을 하고 타임라인을 생각해 적당히 타협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창조성을 추구하는 설계 사고 과정에서 아이디어의 모태인 초기의 스케치나 과정상의 드로잉을 보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옐로우나 화이트 트레이싱 페이퍼는 참 좋은 도구다. 지우개로 선을 지우기보다는 트레이싱 페이퍼를 이용해 새로 그리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드로잉 과정에서 쌓이는 종이를 보관하는 것은 항상 골치 아프다. 최종 드로잉은 보관하는 편이지만, 과정상의 드로잉은 보관하기 힘들다. 그래서 요즘은 작업 중간에 이미지를 스캔해 파일로 보관하거나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드로잉 과정을 담고자 노력한다. 드로잉을 통한 시각적 이미지 탐구 과정에서는 프로이트가 말한 이탈의 기간(remission)이 발생한다. 한마디로 디자인이 막히는 순간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설계와는 다소 무관한 활동—신나는 음악을 듣거나 만화를 보거나 가볍게 회사 앞 골목길을 산보하거나 팀원과 대화를 나누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가벼운 낮술을 한잔하는 등—에 몰입하거나 다양한 사고를 펼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질서한 해답이나 불필요한 낙서—많은 생각을 봉투의 뒷면, 메뉴판의 여백 또는 광고의 빈 공간에 크로키로 표현—를 스케치한다. 이 순간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문제와 연관된 다른 작품을 보는 것이 반응을 촉진해 줄 수는 있지만, 현실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줄 수는 없다. 베끼기라는 도덕적인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설계와는 관계없는 자극을 통해 상상력을 점화시키고 모방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면서 감각을 돋울 수 있는 모든 시각적인 자원을 동원한다. 가만히 앉아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창조의 과정을 재구성하는 데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 작업 과정에서 발생된 아이디어를 재배열하거나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변형 작업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새로운 경험
『아방가르드』 매거진의 창간호 서문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세상의 병폐는 구습이나 옛 미신을 따르는 것 그리고 예전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잡지는 이 같은 것을 타개하고 미래를 향해 당당히 바쳐질 것이다.” 나는 예전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독창적인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독창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한 작업은 공간에 대한 나의 직관과 공간의 본질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독창적인 공간은 수많은 열정적인 드로잉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결국 ‘새롭다’, ‘신선하다’라는스스로에 대한 만족으로 나타난다. 설계의 결과물이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이라 믿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데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생각의 결과물을 따라서 사는 오류를 범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견해 속에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파묻히지 않도록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직관과 열정을 따라갈 수 있는 용기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정말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2005
오랜 시간 동안 설계를 밥 먹듯이 해왔으니 이제 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늘 새로움에 대한 갈증 때문에 설계가 쉽지 않다. 독창적인 설계를 위해서는 설계에 투입되는 시간이 당연히 길어지고, 이는 곧 설계사무소의 경영을 어렵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투입된 시간만큼의 적정한 설계비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독창적인 설계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만큼 조성되어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내 설계공모의 경우, 독창적인 설계안임에도 익숙하지 않은 형태가 주는 선입견과 조경 설계에 대한 그릇된 편견—녹색에 대한 환상— 때문에 ‘과도한 설계’, ‘너무 혁신적인 안’, ‘딱딱한 안’ 등과 같은 이유로 심사와 평가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설계가의 숙명은 제한된 시간 안에 보편적 가치와 투쟁해 새로운 경험이 가능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와 프로그램에 대한 수많은 도전과 실험을 이끌 수 있는 열정과 용기가 필요하다.
2008년 SH공사가 시행했던 마곡지구 조경설계공모에서 시도했던 마곡수로 설계는 도전적인 실험이었다. 땅의 융기와 침강을 통해 틈이 만들어지면, 그 틈 사이로 물이 담기고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틈은 대지의 지문과 연결되는 통로이다. 또한 생물에게는 삶의 터전,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놀이터가 된다. 틈은 경계이자 비움의 공간이며 누군가에게는 창작과 소통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틈 사이에서 잠시 긴장을 풀고 숨을 돌릴 수 있고 천천히 발길을 옮기면 보일 듯 말 듯 새로운 경험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공간을 상상했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우리의 작업은 다소 무모한 도전(?)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경험을 위한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2007년 파주운정 택지개발지구 조경설계공모에서 제시했던 ‘공릉폭포’는 폭포를 올려다보는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고 폭포 위에서 폭포를 내려다보는 독창적인 형태다. 하지만 VE 단계에서 과다한 공사비를 이유로 수차례의 설계 변경이 변경 비용 한 푼 없이 진행됐고 지금의 평이한 공릉폭포가 만들어졌다. 적절한 설계 비용이 보상되지 않는 현실의 여건을 감안하면 새로운 경험을 위해 설계가가 제시한 설계안을 구현하는 데 감내해야 하는 경제적 고통이 너무 크다. 그래서 많은 설계가가 너무나 쉽게 시설물 업체의 기성 제품을 쓰는 유혹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다.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독창적인 설계의 타임라인도 문제지만 더 이상 설계가들이 독창적인 설계를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는 갈수록 설계 기술력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유혹의 결과로 탄생한 기성 제품의 범람과 비정상적인 가격(일반인의 입장에서)은 시장 질서를 유린한다. 이는 조경 시공 회사의 어려움과도 직결된다.
한국의 조경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설계가 먼저 정상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새로운 경험이 가능한 독창적 설계에 대한 보상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100억 원 규모의 조경 공사에서 설계비를 1%만 더 책정하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제는 소탐대실하는 우매한 행동을 멈출 때가 됐다. 새로운 경험이 가능한 조경 설계의 질적 향상을 위해 먼저 전제되어야 할 문제다.
우연한 발견
설계의 과정에서 우연한 발견을 통해 좋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휴지통에 버린 드로잉 스케치에서 관찰되는 우연한 이미지, 창문에 비친 그림자, 기존 드로잉의 시각적 요소와의 병립에 의해 보이는 우연한 선들, 디지털 이미지 조작 등에 의한 우발적인 효과는 조경가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필요한 자극을 준다.
‘우연에 의한 창조성’ 또는 ‘가치 있는 것의 우연한 발견’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 부른다. 코카콜라의 병을 디자인한 팀은 카카오 열매를 디자인의 원형으로 삼았다. 열매의 길쭉한 형상과 열매 외곽에 세로로 움푹 파인 모양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디자인 팀에게 어떻게 카카오 열매를 찾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더니 도서관의 사전에서 ‘코카’의 의미를 찾으려다가 우연히 ‘코카’라는 단어 근처에 기재된 카카오에 눈길이 멈추어 그 형상이 지닌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연히 발견한 카카오 열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코카콜라 병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우연한 발견의 미세한 신호는 오랜 시간 우연한 발견에 관심을 가지고 잘 훈련된 전문가만이 식별할 수 있다. 개념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우연한 발견에는 두 가지 차원이 존재한다. 하나는 ‘시각과 사건의 우연한 발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경가가 의도적으로 준비한 ‘조작된 우연’이다.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김아연 교수팀과 함께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장 설계공모를 준비할 당시, 설계안의 핵심인 물억새와 정원이 펼쳐진 풍경의 부분 투시도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물억새와 정원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실개천은 우리 설계안의 핵심이었다. 여러 명의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가 작업을 되풀이했지만 마음에 드는 표현이 나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전문가가 정성을 들여 물억새를 디테일하게 표현했지만, 우리가 상상했던 풍경이 아니었다. 설명을 반복해도 좀처럼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고 시간은 자꾸 흘렀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각각 작업하고 있는 여러 이미지를 하나로 중첩해 보면 어떨까? 좀 더 깊이가 생기지 않을까? 자연이 원래 그런 느낌이잖아!’ 작업을 중단시키고 여러 개의 이미지를 하나로 병합해 각기 다른 채도와 색감을 부여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색다른 느낌의 몽환적인 물억새 풍경이 만들어졌다. 우연히 만들어진 풍경에 전문가와 우리 팀원 모두가 흡족해 했다. ‘조작된 우연’의 시도와 발견 없이 일반적으로 잔디밭과 억새의 풍경을 표현했다면 우리의 설계안을 잘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세헌은 한국 조경 설계 실무 분야의 큰 축을 이루는 경원조경 리더그룹의 일원이다. 주거 단지 설계 분야에서 조경의 역할을 넓혀 왔으며신도시 공원 녹지 설계 분야에서 인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왔다.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와 경기정원문화박람회를 통해 정원 문화 확산에큰 기여를 했다. 현재 가천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가원조경설계사무소를 17년째 이끌고 있다. 2013년에는 조경설계사무소 소장의 모임인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초대 회장을 맡아 조경설계업의 사회적 역할과 권익 증진을 위해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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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R의 전쟁
Material and Detail: War of R
시방서에서는 교목의 규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고H(m)×흉고 직경B(cm)’으로 표시하며 필요에 따라 수관 폭, 수관의 길이, 지하고, 뿌리분의 크기, 근원 직경 등을 지정할 수 있다. 흉고 직경 대신 근원 직경으로 규격을 표시해야 하는 수목은 수종의 특성에 따라 ‘흉고 직경-근원 직경’ 관계식을 구하여 산출한다. 단, 흉고 직경과 근원 직경 사이에 특별한 관련성이 없어 관계식을 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R=1.2B’라는 식을 이용해 흉고 직경을 환산·적용할 수 있다. 줄기가 흉고부아래에서 갈라지거나 흉고부의 크기를 측정할 수 없는 수목은 ‘수고H(m)×근원 직경R(cm)’ 또는 ‘수고H(m)×수관 폭W(m)×근원 직경R(cm)’으로 표시한다. 고로 R은 나무의 크기를 말한다.
나라장터G2B(Governmentto Business)에서 크기에 따른 나무의 가격을 검색해 보니 이팝나무의 경우 높이(이하 H)가 3.5m, 근원 직경(이하 R)이 10cm일 때 22만 원 정도다. 같은 높이에 R이 12cm인 경우에는 43만 원이다. 매화나무도 H가 3.5m, R이 10cm일 때는 19만 원인데, 높이가 같고 R이 12cm일 때에는 34만 원이다. 겨우 2cm 차이가 날 뿐인데 왜 금액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일까. 나도 모른다. 나무의 크기 때문에 굴취에 들어가는 품이라든가 운반등의 부대 비용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실거래 가격을 반영한 것도 아닐 것이다. 나무 가격이 R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실무를 시작한 이래 늘 궁금했던 것 중 하나다. 이런 차이가 실무를 하는 나에게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공사를 위한 도면을 만든 후 예산을 작성하려면 각 공사 목적물에 맞는 일위대가를 작성해야 한다. 식재 공사의 일위대가는 시설물이나 포장 등 다른 공종에 비해 작성이 수월하다. 수량 산출을 하지 않아도 되니 변경도 쉽게 할 수 있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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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부르델 정원
Space of Sympathy: Bourdelle Garden
조각이 빠진 조각 정원은 단팥 빠진 찐빵일까? 부르델정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교과서에서나 보던 조각을 눈앞에서 확인하며 느꼈던 두근거림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부르델의 조각이 자취를 감춘 뒤 그 공간에서 맛본일차적인 감정은 공허함이다. 있어야 할 것이 있지 않은 허전함. 그래도 희원을 방문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까닭은 그 자체로도 은근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인접한 희원과 대비되는 이국적인 풍모가 눈에 띈다. 샌드스톤이 일차적인 원인 제공자이지만 낙우송과 선향으로 연출된 보스케와 수벽도 분위기를 이끈다. 이국적이지만 이질적이지 않다. 또한 조각 작품의 배치를 위해 서로 간섭되지 않도록 공간이 나눠진 점도 이곳을 거니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몇 년 전에 ‘사이intermission’를 주제로 한 쇼가든을 구상한 적이 있다. 결국 실현되지 못했지만, 지금도 부르델이 빠진 이그릇에 신선한 재료를 담아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단팥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찐빵은 그 자체로 잔잔한 맛이 있다. 이 잔잔한 그릇 위로 매해 새로운 공간의 맛이 선보이는 기획을 기대해본다. _ 정욱주
경주의 황룡사지나 일본 나라현의 헤이조궁 유적지를 거닐다보면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에 빠지게 된다. 황량한 벌판에 남겨진 조형적인 쓸쓸함에 는 오래 전 사라진 실체에 대한 연민 같은 안타까움이 늘 존재한다. 공간적인 규모나 시간적인 스케일에서 이들과 비교하기가 적절해 보이지는 않지만, 부르델 조각없는 부르델 정원의 느낌도 본질적인 면에서 이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완만한 경사지에 터를 잡은 정원은 조각 작품을 효율적으로 전시하기 위한 전형적인 서구형의 대칭 구조를 가진다. 주변의 지형 환경이 이보다 더 크고 드라마틱한 공간을 만들어 내기에는 적절치 않았으리라. 이미 오래전에 방문했던 터라 당시의 조각 작품들을 희미하게만 기억하고 있어서일까.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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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이라인 파크를 방문하려는 당신에게
Column: A Special Route to the High Line Park
만약 특별한 경로로 뉴욕 맨해튼의 서쪽 끝, 하이라인High Line 파크를 방문하고 싶다면, 뉴욕 동쪽 퀸즈의 끝 플러싱에서 7번 전철을 타라고 권하고 싶다. 이 길을 택한다면 고가철도 위로 퀸즈를 관통하며 한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그리스, 중남미 등 적어도 10개 이상의 이민자 밀집 지역의 전경을 차창 너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플러싱 역의 불결함과 이민자 구역의 퀴퀴함이 고단한 일상에 대한 당신의 공감 능력을 자극해도 좋고, 도시 빈곤과 이주민에 대한 당신의 편견을 정당화해도 괘념치 않겠다. 종점인 허드슨 야드 역에 도착하면 이 역의 쾌적함에 당신은 덩달아 즐거워할지도 모른다. 이런모든 감정이 당신에게 엉겨 붙기 시작한다면, 이제 하이라인 파크에 들어설 채비는 끝났다. 하이라인 파크가 초행길이더라도 명색이 공공 공원public park이라는 이곳의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해가 지면 문을 닫는다. 해가 긴 여름이라도 10시면 문을 닫는다. 허드슨 야드에서 가까운 34번가로 통하는 통로는 공사 중이라 막혀 있다.
공원 접근성이 가장 좋은 지역은 뉴욕에서 가장 힙한 주상복합 지역인 미트패킹 구역과 첼시다. 설계자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딜러는 이 공원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의 공간이기를 바랐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흔한 노상 카페나 매대도 하이라인에는 없다. 도시의 별천지다.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2016년 3월까지는, 하이라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며, 과거의 흔적이 현재와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지 사색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1.45마일의 하이라인은 거대 도시 뉴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향유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와 관광객만을 위한 공간으로 남을 듯하다. 하이라인은 산뜻한 지속가능성의 표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커져가는 불평등의 속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2009년 9월 개장한 하이라인의 짧지만 불편한 역사를 살펴보면 자명해진다. 루디 줄리아니가 시장으로 재임한 1994년에서 2001년 사이, 맨해튼에서는 수많은 시 소유 건물이 철거되거나 개발업자들에게 헐값에 팔렸다. 뉴욕 전체를 휩쓴 콘도미니엄 붐은 줄리아니의 민영화 정책의 결과이기도 했다. 브로드웨이 주변에 섹스숍과 스트립 조인트가 사라지고 디즈니 스토어와 멀티플렉스가 들어선 것도 이즈음이었다. 임기 후반인 1999년, 줄리아니는 미트패킹 구역에서 첼시에 이르는 하이라인을 철도 회사로부터 단돈 1달러에 사들여 철거하려 했다. 주변 건물주들도 철거 계획에 찬성했다. 그해 8월, 첼시 커뮤니티 모임에서도 철거안은 무난히 통과될 수 있을 듯 보였다. 오직 두 명만이 반대했다.
작가 지망생 조슈아 데이비드와 비영리단체 컨설턴트 로버트 해먼드, 두 사람은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출범시키기로 의기투합, 뉴욕시에 소송까지 하면서 철거 계획을 저지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하이라인 공원화 프로젝트가 제 궤도에 오른 것은 후임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 때였다. 2002년에 취임해 2012년에 퇴임한 블룸버그는 블룸버그통신의 창업주인 억만장자다. 그는 공공 정책 입안이나 실행의 적잖은 부분이 비효율적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공공 서비스에 고객 서비스적 요소를 가미하는 정책을 좋아했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와 기업 서비스는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재화의 공정한 분배와 공공의 안녕이 목적이지만, 후자는 이윤 추구나 고객 만족 따위가 목적이다. 블룸버그의 이러한 신념이 낳은 결과물 중 하나가 자
립 공원self-sustaining park 개념이다. 민관이 기금을 조성해 공원을 건설하고 그 후 관리 비용은 민간이 부담한다는 것이다. 사실 공원 주변의 건물주와 사업체가 공원의 관리 예산을 부담하는 것은 뉴욕에서는 꽤 오래된 거버넌스 모델이다. 1980년에 구성된 센트럴 파크 컨서번시는 현재 공원 관리에 필요한 연간 6천5백만 달러의 75%를 부담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 개념을 건설 단계로 확대했다. 하이라인뿐만 아니라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 거버너스 아일랜드가 자립 공원으로 지어졌다. 하이라인의 경우 예산의 2억3천8백만 달러 중 ‘하이라인의 친구들’이 모은 기금은 18%에 불과한 4천4백만 달러수준이다. 그나마 기금을 낼 수도 없고 공원 관리를 위한 비영리 단체를 구성할 능력도 없는 중산층 이하의 이웃들은 도시 녹지에서 소외당할 수밖에 없다. 1930년대 이후 최대의 공원 확장을 블룸버그는 자신의 최고 업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뉴딜정책 때의 공원 조성은 불평등의 해소였지만, 블룸버그의 공원 건설 모델은 불평등의 심화였다.
‘하이라인의 친구들’은 연간 관리 예산 1천2백만 달러의 95%를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하이라인은 상당한 기간 자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번성할 듯하다. 1구역 개장 1년 만에 주변 부동산 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 휘트니 뮤지엄도 근처로 이사 오고, 북쪽 허드슨 야드에는 고급 식당가와 쇼핑가가 조성될 계획이다. 사실상 공공 자금으로 조성된 시소유의 공원이지만 관리 단계에서 공공의 예산을 받지 않으니 개장 시간부터 주변 개발까지 시정부가 공공재의 관점에서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
하이라인 파크는 녹지라는 공공재가 사유화된 하나의 상징이다. 공공재가 사유화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이렇게 답한다. “부자들은 공원이나 교육, 의료나 개인의 안녕을 정부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모든 것을 그들 스스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부자들은 보통 사람들과 더욱 동떨어지게 될 것이고, 보통 사람들에 대해 갖고 있는 알량한 공감 능력도 잃어버린다. 또한 부자들은 그들의 부의 일부를 앗아다가 공공의 선에 투자할 강력한 정부가 들어설까봐 염려한다.”
이런 탓에, 하이라인을 방문하고자 하는 당신에게 플러싱에서 7번 전철 타기를 권하고 싶다. 고가철도를, 즉 하이라인 위를 달리는 동안 당신은 차창 밖 풍경에서 넉넉지 못한 이민자 지역에서 끝없이 명멸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원이 특권인가 권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공공재로 향유되어야 하는지 사적 공간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문과 번민을 품게 된다면, 7번 전철로 시작한 당신의 하이라인 파크 방문은 매우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설갑수는 뉴욕에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언론인이다. The National Underwriter, BusinessInsider.com, Labor Notes, Progressive Magazine 등에 근무하거나 글을 실어 왔고, 국내의 오마이뉴스와 시사저널에도 기고한 경험이 있다. 1999년, 광주항쟁 백서인 『죽음을 너머 시대의 어둠을 너머』를 영문 번역한 『K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를 UCLA Monograph Series를 통해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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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조경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인가?
Editorial: Is ‘Jogyeong’ Landscape Architecture?
창문을 통과한 햇살이 이마에 떨어진다. 봄이다. 새봄이 거짓말처럼 다시 찾아왔다. 이 지면 메울 일만 없다면 내 마음도 봄일 텐데. 대강 생각만 하면 알파고가 알아서 글 써줄 그날이 어서 오길 염원하는 오후,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유학 준비 중인 제자 S다. 수다거리가 떨어질 즈음, 그의 시선이 핑크색 표지의 신간에 멈췄다.
“요즘도 책 많이 사시나 봐요”
“여전히 책값과 술값은 안 아끼는데, 알다시피 사기만 하고 거의 읽지는 않아.”
“찰스 왈드하임이 쓴 새 책이네요.”
“2월 말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야, 『Landscapeas Urbanism』. 왈드하임이 자신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관련 글과 논문들을 다시 구성해 엮은 책이야.”
“이제 한 20년 됐죠? 아직도 실체를 잘 모르겠지만, 참 희망을 많이 걸었던 개념이에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그래도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우리 시대의 조경 담론인 건 분명한데, 그 이론적 체계와 실천적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도 물음표가 공존하지.”
“이제 한때의 유행이라고 평가하고 폐기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글쎄, 난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이면의 역사적, 이론적, 문화적 조건을 광범위하게 탐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동시대 도시의 쟁점을 조경의 시선으로 탐색하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이번 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번역하시게요”
“출판사 편집장님 설득할 겸 우선 서문과 서론 번역을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난관이야.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용어 자체의 번역이 제일 문제야.”
“선생님은 계속 그렇게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해 오셨잖아요.”
“내 책임이 커. 2000년쯤인가 『환경과조경』 지면에 처음 소개하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적확한 번역어를 짜냈어야 하는데, 무책임하게 발음 그대로 표기해버렸어. 그대로 통용되면서 가뜩이나 모호한 개념이 더 혼란스러워졌어.”
“잘 알려진 언어학 이론을 살짝 대입해 보면, 활자화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기표signifiant를 보고 어떤 기의signifié를 일치시킬 수 있는 독자가 몇 명이나 있을지 의문이긴 해요.”
“게다가 한글로 된 책 곳곳을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말로 반복해서 도배하면 아무리 유려하게 번역을 해도 읽는 게 거의 불가능해져. ‘보그병신체’가 따로 없는 우스꽝스러운 글.”
“저는 조경과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 함께 나오는 부분에서 특히 황당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요. 조경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번역한 말인데,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어색함을 넘어서 이상해요.”
“아주 중요한 포인트야. 사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의 핵심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아키텍처 자리를 어바니즘으로 대치한 데 있어. 가치, 지향점, 태도, 방법 모두를 아키텍처에서 어바니즘으로 돌리고자 한 거지. 마치 랜드스케이프 가드닝landscape gardening 이라는 전통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19세기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가 탄생한 것처럼.”
“그런데 랜드스케이프 가드닝은 풍경(화)식 정원술(이나 조원),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는 조경,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그냥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으로 쓰니, 그 관계와 함수를 읽어낼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너무나 아쉬운 일이지만 ‘조경’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 학부생 때였던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공이 조경이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잘 이해하질 못해. 기표와 기의가 불일치하는 거지. 아, 나무랑 꽃 심고 정원 만드는 거, 그럼, 나무 잘 알고 좋아하시겠네요, 정도로 반응해. 그러면 말문이 막혀서, 아뇨, 공원을 설계하고 단지도 계획하고… 정도로 얼버무리게 돼.”
“저는 조경이라고 말한 다음에 꼭 ‘영어로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에요’, 이렇게 덧붙여요. 그러면 사람들이 뭔가 알아듣는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방법이 있구나. 그런데 조경에 해당하는 영어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조경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가 아니고,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조경으로 번역한 거지. 이 번역어 ‘조경’이 문제의 핵심이야. 1970년대 초반 우리의 제도권 조경(학) 창립자들은 미국식 개념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수입해 고심 끝에 조경이라는 말로 옮겼어. 그런데 이 전문 분야의 역할과 가치는 새로웠던 데 반해, 분야 명칭으로 선택된 조경은 이미 다른 뜻으로 통용되던 말이었어. 1920년 일간지부터 원문을 제공해주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검색해 보면 1962년부터 조경이라는 단어가 기사에 등장하기 시작해. 1960년대에 쓰인 조경이라는 말의 뜻은 대략…”
“말할 필요도 없겠죠. 나무랑 꽃 심고 돌 놓는 것, 관상수 재배, 가드닝…”
“그래,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언어 속에서 조경은 바로 그 조경이야. 조경을 하나의 학제discipline이자 전문 직능profession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의 번역어로 삼기에는 조경이라는 말의 뜻이 너무 굳어져 있었어. 1970년대 이후의 새로운 한국 조경은 늘 목 놓아 소리치며 조경은 그게 아니라고, 다른 거라고 강변하고 주장해왔지만, 조경은 결국 조경이야. 조경은 조경이라는 말에 갇힌 셈이야.”
“흔히 사회적 인식의 문제라고 진단하죠.”
“그럴까? 그렇다면 사회적 인식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스타 조경가가 탄생하면? 법 만들고 제도 고치고 공무원 직제 만들면? 물론 당면 과제인 건분명한데, 다 해결하고 나도 조경은 결국 조경이야. 2013년에 제정한 ‘한국조경헌장’에서 조경을 정의한 부분 좀 검색해 주겠니.”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다.”
“한국 조경이 마흔 살을 넘어서며 세상에 던진 다짐이야. 가치와 목표, 대상과 수단, 그리고 의의를 담은, 손색없는 정의야. 그런데 역으로 이 정의를 보고 조경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이름을 고쳐야 하는 거 아닐까? 늦었지만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다른 말로 번역해내면 실타래처럼 뒤엉킨 문제들이 조금씩 풀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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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창업, 그러니까 그럼에도
New Start
2010년 10월 1일의 일이다. 전날의 숙취가 남아있었지만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기계적으로 씻고 주섬주섬 옷을 걸쳐 입고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는 하루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주 잠깐 망설인 순간은 자동차 문을 열고 핸들을 잡았을 때다. ‘아, 오늘부터는 파주가 아니라 일산으로 출근해야지!’ 경로를 머릿속에 한 번 그려보고는 액셀을 ‘힘껏’ 밟았다. 내 사무실로 출근하는 첫 날이니까. 그렇게 환경과조경이 아니라 나무도시 편집장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구청에 가서 서류 접수를 하고 받아든 나무도시의 사업자등록증에는 아내의 이름 석 자가 박혀 있었다.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편집장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요즘 같은 종이책 멸종위기 상황에서는 원대한) 꿈을 지키기 위해 발행인 직함을 아내에게 양보(?)한터였다. 딸아이의 주민번호를 외울 때처럼 사업자등록번호를 되뇌었다. ‘일사일영삼… 일사일영삼… 일사일영삼…’, 업태는 제조업, 종목은 출판. 조경설계사무소는 업태가 서비스업이지만, 잡지나 출판은 제조업이다. 그 차이는 쉽게 말하자면, 조경설계사무소는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 인건비만 해결하면 되지만, 출판사는 임대료와 인건비는 물론이고 제작비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책이라는 물리적인 제품을 제조하려면 저자 인세, 인쇄비, 용지비, 출력비, 제본비 등을 지불해야 하니까. 편집장 명함을 (생전 처음) 내 돈 주고 팔 때만 해도 참 신이 났었는데, 첫 책의 제작비 지급 시점이 다가오니 제조업의 숙명이 실감났다.
언제였더라?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화장을 글로 배웠어요’ 따위의 유머가 유행한적이 있다. 나는 출판사 창업을 책으로 배웠다. 『편집자란 무엇인가 - 책 만드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1 『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 - 23인의 출판편집자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편집자의 세계』,2 『편집에 정답은 없다 - 출판 편집자를 위한 철학 에세이』,3 『유혹하는 에디터 - 고경태 기자의 색깔 있는 편집 노하우』,4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5 『편집자 분투기』,6 『그대로 두기 - 영국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 여성 편집자의 자서전』,7 『소설거절술 - 편집자가 소설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8
(이 책은 도대체 왜 샀는지 모르겠지만, 은근히 읽는 재미가 있다)을 비롯해서 ‘편집자’를 키워드로 한 책들이 지금도 내 책장 한 칸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대부분 창업을 목전에 둔 시기에 사들인 책들이다. 그런데 그게 결정적 패착이었다. 무엇보다 키워드 선택이 옳지 않았다. ‘출판 마케팅’을 키워드로 한 책을 주야장천 읽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제대로 잘 만들면 잘 팔린다’는 명제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아름다운 문구가 아니었다. 편집자가 출판사를 차리면 10명 중 7~8명은 망하고, 영업자가 출판사를 창업하면 10명 중 7~8명은 성공한다는 속설이 유독 내게는 해당하지 않을 거란 기대 역시 허황된 것이었다. 잘 만드는 것보다 잘파는 것이 중요했다. 잘 팔아야 다음 책도 만들 수 있으니까. 물론 내가 책을 잘 못 만든 탓은 아닐까 하는 반성은 새 책이 나온 후 3개월 뒤에는 어김없이 했다. 다음 책은 꼭 잘 만들어보리라는 다짐과 함께.
이번 호 특집을 준비하며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연 9인에게 부가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창업에 필요한 준비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거기에 이런 예를 덧붙였다. ‘예: 꿈, 첫 번째 일거리, 10년의 사업계획서, 재무 지식, 동업자, 플로터, 책상 등등.’ 창업 자금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준비물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가지고…. 그러면서 잠시 시계를 거꾸로 되돌렸다. 한창 창업 준비를 하던 2009년의 어느 날로 말이다. 나는 무엇을 준비했더라? 아마 이런 것들이었을 거다. “적극적 지지까지는 아니지만 대놓고 말리지는 않았던 아내의 불안한 동의, 그 불안을 해소하고자 준비한 20종의 출판 아이템과 10명의 필자 리스트,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서가 한 칸을 내가 편집한 책으로 채우고 말겠다는 (불가능하지만 이루고 싶은) 꿈, 누가 봐도 근사해 보이는 원목 테이블, 사무실 2면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책꽂이….” 아 그렇지, 제작비 부담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도 빼놓을 수 없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내가 창업을 고민하며 샀던 책들은 대부분 2009년에 출간되었다(각주 1번부터 5번까지). 전후 10년 동안의 데이터를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편집자’를 키워드로 한 양질의 책이 그렇게 1년 동안 쏟아진 해가 없었다. 어떤 모종의 세력이 나의 출판사 창업을 부추기기 위해 작정한 것이 아닌가 싶은, 허황된 음모론을 지금까지 내가 주장하는 이유다. 그게 아니라면 결국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정성껏 욕심껏 오래 하고 싶다’는 욕망이었을 것이다. 창업을 꿈꿨던 까닭은.
누군가 ‘그래서 창업을 권하는 것이냐’라고 정색하며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배움을 주었던 어떤 책에는 이런 대목이 쓰여 있었다. “과연 출판 창업에 모범 답안이 있을까. 대개 있다고들 한다. 창업 자금 3억 원, 첫 책을 출간하기전에 완성 원고를 세 가지 정도 준비하고 첫 책 출간 이후 1년 안에 열 종(혹은 3년 안에 서른 종) 이상 낼 자신이 있다면 창업해도 된다. … 창업 자금이 많을수록, 완성된 원고를 많이 확보할수록 성공 확률은 높아진다.”9 단, “완성된 원고” 앞에 생략된 단서가 있다. ‘일정한 독자층이 있는 완성도 높은’ 원고여야 한다. 그것이 가장 기본이니까. 그런데 불행히도 이 모범 답안은 7년 전 상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출판동네는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기록적으로 경신’하고 있으니 현재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출판사 창업을 꿈꾸며 관련 도서를 사들이고 창업 강좌를 듣고 선배를 만나 꼬치꼬치 캐묻고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답변이 잿빛 일색이더라도 말이다. 나만은 다를 거란 확신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하고 싶은 일이니까(실제로는 할 줄 아는 일이 그것뿐이어서 창업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할 줄 아는 일’은 ‘하고 싶은 일’로 포장된다. 물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 경우도 많다).
조경설계사무소를 새로 연 9인의 좌충우돌 창업기를 읽고 있노라니 자연스럽게 6년 전의 고민과 떨림과 설렘이 오버랩됐다. 별 재미도 없는 해묵은 기억을 끄집어낸 이유다. 참, 각주 9번의 글을 쓴 김홍민 대표는 저런 모범 답안을 일러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창업 자금 9,000만 원, 준비된 원고 한 종”10만 달랑 들고 북스피어란 출판사를 차린 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신나게 흥이 넘치게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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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달려라, 아비
Editor’s Library: Run, Daddy, Run
불효의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고향에 내려가는 횟수는 줄어든 지 오래고, 최근엔 전화도 통 드리질 못했다. 특히 2주 전에 집에 내려가겠다는 계획을 취소해 버린 것이 영 찜찜하다. 분명 엄마는 전날부터 (엄마 눈에만 핼쑥한) 딸을 살찌우려고 상다리가 휘도록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을 텐데. 어버이날까지 이어지는 5월 초의 황금연휴 기간에도 고향에 다녀오지 못할 것 같다. 할 수 없이 꼼수를 부렸다. ‘5월에는 ‘편집자의 서재’ 꼭지를 빌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지, 특히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눈물 없인 읽을 수 없는 ‘부모님 전상서’를 올려 점수 좀 따야겠다.’ 그런 이유로 선택한 소설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하지만 애초에 효도를 글로 하고자 한 심보 때문이었을까? 아무래도 글이 영 써지질 않아 원래 쓰려고 했던 책을 막판에 바꾸어 버렸다.
우선 구구절절 눈물 없인 읽을 수 없는 글을 쓸 자신도 없거니와, 우리 엄마는 『엄마를 부탁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불멸의 첫 문장―“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에 도저히 이입할 수 없게 하는, 오히려 시골이라면 몰라도 도시에서는 절대로 잃어버릴 리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말에 따르면 엄마는 ‘시골 흙바닥보다 도시 아스팔트길을 걸을 때 신이 나는 사람’이고, 삼촌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가장 무서운 큰누나’이며, 아빠의 푸념에 따르면 ‘절대 지고는 못 참는 여편네’다. 그러니 제아무리 신경숙 작가가 2인칭 시점을 써서 독자를 소설 속으로 밀어 넣고, 그녀 특유의 섬세한 표현으로 눈물샘에 십자 포화를 퍼부어도 나는 여간해서는 소설에 쉽게 감정 이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 3년 전(2005년) 출간된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에서 엄마의 모습을 찾았다. 소설을 발표했을 당시 스물다섯이던 김애란 작가는 젊은 작가답게 기발한 상상력과 경쾌한 문체로 이 시대의 새로운 ‘어머니’를 창조했다. 주인공 ‘나’는 반지하방에 사는 미혼모 택시 운전기사의 딸. 분홍색 야광 반바지를 입고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달리는 아버지에 대한 상상을 끊임없이 전개하면서 자신의 탄생과 아버지의 가출, 외할아버지와의 일화 등의 신변잡기를 풀어놓는다. 하지만 자신과 어머니를 버려두고 무책임하게 떠난 아버지에 대해 원망이나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는, 오히려 어딘가 어리숙하고 철없는 아버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상상했던 십수년 내내, 쉬지 않고 달리는 동안 늘 눈이 아프고 부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밤 아버지의 얼굴에 썬글라스를 씌워드리기로 결심했다. 나는 먼저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기대감에 부푼, 그러나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작게 웃고 있다. 아버지가 가만히 눈을 감는다. 마치 입맞춤을 기다리는 소년 같다.”1
이전의 한국 문학에서 결핍과 상처로 그려지곤 하는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주인공이 보여주는 긍정의 태도에서 단순한 경쾌함과 발랄함을 넘어서 깊은 성숙미가 느껴진다. 주인공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세계관은 주인공의 어머니 조자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소설은 아버지에 대한 상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전부 주인공이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기에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조자옥의 삶에 주목하게 된다. 조자옥은 만삭인 자신을 두고 애인이 도망갔을 때에도 홀몸으로 아이를 낳고 스스로 탯줄을 자른 강인한 ‘어머니’이고, 고집 세고 욕도 잘하는 ‘택시기사’이며, 동시에 ‘여성’적인 매력2도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고,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3 주인공이 어머니가 자신에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대목은 미혼모 택시기사 조자옥의 삶을 위대하고 존엄하게 그려낸다.
『달려라, 아비』의 가장 큰 미덕은 심각하게 내용이 전개되는 상황에서도 유쾌한 농담을 건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농담과 유머는 가벼움이나 경박함이 아니라 자기긍정에서 비롯된다. 이혼한 아내의 새 남편을 피해 잔디 깎기 기계를 타고 최고 시속으로 도망가는 아버지, 자신을 버리고 간 옛 애인의 부고 소식에 상심하며 잘 썩고 있을지 궁금해 하는 어머니 등 소설 전반에 따뜻한 유머 코드가 넘친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은 누구 딸이냐고 묻는 외할아버지의 능청스런 질문에 ‘나’가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며 “조자옥이! 조자옥이 딸이오”라고 온힘을 다해 소리치는 부분이다. 내게 누구 딸이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쩌렁쩌렁 엄마 딸이라고 외칠 텐데. 아쉽게도 나는 엄마와 너무 똑 닮아서 누구 딸인지 이미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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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사회적 실천으로서 모바일 건축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주거 공간은 역사 속에서 ‘건축가 없는 건축’으로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움직이는 집은 역사적으로 유목민의 천막 구조로부터 비롯한다. 몽고 유목민의 텐트형 공간, 미국 인디언의 티피 천막, 집시의 왜건 마차 등이 그 예다. 이동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20세기 운송 수단의 발전과 여행의 확산에 따라 여행용 카라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오늘날 움직이는 집의 형태는 바퀴 달린 공간, 임시적 구조, 조립식 건축, 텐트 구조 등 이동과 변형이 자유롭고 어느 환경에나 유연하게 적용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삶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이동형 공간은 196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건축적 실험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모바일 건축mobile architecture’의 등장은 획일적인 주거 공간과 권위주의적이고 형식적인 건축 양식에 반발하는 비판적 의식을 배경으로 한다. 이번 지면에서는 ‘모바일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실천에 주목해 동시대 건축가와 예술가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1960~70년대 건축 분야에서 실험적으로 등장한 모바일 건축은 재료, 기능, 테크놀로지, 공상 등 다양한 측면의 실험을 거쳐 왔다. 오늘날에는 건축뿐만 아니라 미술, 연극, 퍼포먼스 등 시각 문화 전반에서 상호 융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동시대 예술에서 임시적 공간은 건축, 디자인 등 타 분야와의 교류 속에서 전시와 비엔날레, 게릴라성 프로젝트 등 확장된 형태로 펼쳐진다. 그 대표적인 예로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파빌리온 프로젝트, 파리 퐁피두센터의 이동형 천막으로 구성된 모바일 미술관, 잘츠부르크의 템포러리아트 파빌리온 외 세계적인 아트 페어와 미술관의 팝업 공간이 있다. 모바일 건축은 동시대 문화에서 트렌디한 공간으로 주목 받고 있으나 사실 오랜 시간 삶 속에서 구축, 변형, 확장되고 있는 자생적 공간이다. 노숙자들의 박스와 텐트, 파리근교 비동빌Bidonvilles의 대규모 카라반 집시촌, 소비에트 시기에 제작된 폴란드의 키오스크Kiosk, 유대교의 임시적 공간인 수카Sukkah, 암스테르담 운하의 보트하우스, 오사카의 집단 판자촌인 부라쿠민Burakumin과 서울 도곡동의 구룡마을, 한국의 불법 노점상과 가판대 구조물 외에도 다양한 임시적 공간을 찾아볼 수 있다. 일상 속 모바일 건축의 다수는 정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삶을 지키기 위한 임시적구조로 드러난다.
숲 속의 건축가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가면 시 외곽에 뱅센 숲Bois de Vincennes이 나온다. 주말이면 시민들이 피크닉이나 나들이로 찾는 장소다. 그런데 평소에는 인적이 거의 드문 이곳에 비밀스럽게 모여든 사람들이 있다. 바로 파리의 노숙자들이다. 도시를 부랑하던 노숙자들이 숲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노숙자들은 머물 곳을 찾아 도시의 거리로,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와 급기야 숲으로 오게 되었다. 도시의 혼란과 불안에서 벗어나 숲 속에 은밀히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거주지는 우선 쉽게 이동 가능한 텐트를 기본 골격으로 한다. 주로 상용화된 텐트를 각자의 필요에 맞게 변형해 사용하고 있는데, 천막형, 이글루형 등 제각각 창의적인 구조가 인상적이다. 숲에서 거주하는 노숙자들의 텐트는 비좁은 도시 공간과는 달리 여유 있는 숲의 조건을 활용해 복합적 기능을 가진 독특한 공간을 창출한다. 음식을 구해 숲으로 귀가하는 노숙자들은 도시 시스템에 기생하지 않아도 되는 나름의 자립적인 공간과 삶을 모색한다. 이들의 변형된 텐트 공간은 거주하고자 하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주거 형식이다. 노숙자들의 텐트와 같이 임시적 형태의 공간에는 정주할 수 없는 삶을 꾸려나가고자 하는 인간의 강한 의지가 담긴다. 난민, 소수자, 거리의 부랑자, 노숙자 등 정치·사회적인 이유로 추방된 사람들에게 임시 공간은 물리적인 정주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소외된 삶의 존속 여부와 직결된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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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조이
커리어우먼을 꿈꾸는 그대에게
영화 ‘조이’를 보고나서 힘겨운 상황에 처한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성공하는 데에 방점을 둔 이야기가 아니라서 안심했다. ‘성공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고비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꿈 많은 소녀가 어떻게 한 가정의 고단한 주부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조이는 무책임하고 게으른 남편과 이혼한 후 두 아이를 맡아 키운다. 전 남편은 조이네 집 지하실에 얹혀산다. 조이의 부모도 이혼했는데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온종일 텔레비전만 본다. 아버지는 애인과 헤어지고 무작정 조이네 집에 들어와 전 남편과 지하실에서 매일 다투며 지낸다. 이 집에서 제일 멀쩡한 사람은 조이를 믿고 항상 응원해주는 할머니와 5살짜리 딸이다. 다니던 회사에서 감봉당한 날,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물 새는 배관을 고치려고 마룻바닥을 뜯다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은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워킹맘의 고단함을 전한다. 왜 쓸데없이 꿈 따위를 강요했냐고 할머니에게 불평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아팠다.
조이는 우연히 깨진 와인 잔을 치우다가 손대지 않고 물기를 제거할 수 있는 걸레를 발명한다. 제품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홈쇼핑으로 ‘대박’이 나기까지, 특허를 안정적으로 쓰기까지 파산의 위기로 매번 벼랑에 내몰린다. 하지만 제품에 투자한 아버지의 새 애인이 하필 부자였고, 무작정 찾아간 대형 홈쇼핑 회사의 최고 결정권자는 대뜸 그녀를 밀어주기로 한다. 특허 분쟁으로 사업을 이어나가기 어려워지자 머리를 손수 자르고 혈혈단신 찾아가 담판을 짓는다.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지만 다소 비현실적인 면이 있고 매력적인 조연 배우들을 병풍 역할로만 그린 점은 아쉽다. 그러나 성공 신화의 핵심이 달콤한 결과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지난한 과정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기에 볼 만한 영화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