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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설계공모의 맥도날드화 배정한 Editorial: The McDonadization of Design Competition
    10월호 마감이 한창이던 9월 중하순, 유럽조경학교협의회ECLAS가 주최한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목적지는 머릿속 지도에 위치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 에스토니아의 타르투였지만, 내심 이 미지의 중세도시보다 더 궁금했던 곳은 경유지로 삼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도시다.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야망에 불탄 표트르 대제의 계획 도시, 발트 해를 향한 연안의 늪지대와 네바 강 하구의 100개 섬을 365개의 다리로 이어 건설한 북쪽의 베니스다. 러시아의 심장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작곡가 차이콥스키, 극작가 안톤 체호프, 시인 푸슈킨,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레닌그라드가 아닌가. 굴절 많은 이 역사 도시의 2015년 풍경과 만나기 위해 목적지가 아니었음에도 닷새라는 넉넉한 일정을 잡았다. 낭만과 환상에 부푼 초행길 이방인의 기대와 달리, 표트르의 도시는 피로감과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우중충한 잿빛 하늘 탓일까, 여느 유럽과는 다른 대규모 계획 도시의 웅장한 스케일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주의 도시 경관의 생경한 질서 탓일까. 일행은 여러 가지 진단을 내려 보았지만, 이틀째 여정이 끝나갈 무렵 시각적 당혹감의 가장 큰 원인은 아마 거리를 뒤덮고 있는 러시아어 알파벳에 있을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영어 알파벳을 마차에 싣고 가다가 떨어뜨려 뒤죽박죽이 된 문자라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키릴 문자(러시아어 알파벳)는 형태뿐 아니라 발음에서도 상식을 초월했다. 낯선 글자의 정체를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대조하며 시내를 답사하던 중 우리는 뜻밖의 계기를 통해 긴장감을 풀게 되었다. MaKДoHaлдc라는 해독하기 힘든 간판을 단 매장, 그러나 누가 봐도 맥도날드였다. 늘어나는 뱃살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맥도날드이지만,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 M자의 익숙한 간판만 보고서도 무장 해제됐다. 눈앞의 경관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양식이 섞인 건물들의 1층에 서울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CTAPБAKC KOФE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커피, 평소처럼 그란데 사이즈의 핫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해서 들이켰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명소라는 다른 어떤 카페보다 만족스러웠다. 도시를 뒤덮고 있던 먹구름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독자 여러분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을 것 같다. 낯선 외국 도시에서 낯익은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마주하면 심지어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느낀다. 고민과 두려움이 한 번에 해결된다. 뉴욕의 빅맥은 서울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빅맥과 똑같다. 맛도 의외일리 없고 가격도 당황스러울 가능성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낀다. 맥도날드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대도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확실성을 보장해 주는 예측 가능한 장소인 셈이다. 우리는 맛도 뻔하고 건강에는 오히려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선택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굳게 믿으며 맥도날드를 주저함 없이 선택한다.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시유시, 2003)의 저자인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는 현대 사회가 종교처럼 신봉하는 합리성의 이면을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프랜차이즈체인망에서 발견한다. 리처가 통찰하는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 사회와 그 밖의 세계의 더욱 더 많은 부문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맥도날드 모델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건 합리성이라는 신화의 네 가지 매혹적 특성 때문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효율성, 계산 가능성, 예측 가능성, 통제라는 특성이 신뢰를 준다는 것이다.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업뿐만 아니라 교육, 노동, 의료, 여행, 여가, 다이어트, 정치, 가정, 그리고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효율과 표준을 앞세운 합리성의 신화는 획일과 몰개성을 낳는다. 도시도, 경관도 마찬가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만의 개성과 매력에 불안해하고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의 표준화된 예측 가능성에 안도한 앞의 사례는 합리성의 추구가 비합리성을 연출하는 모순을 예증해 준다. 도시의 다양성, 지역성, 장소성은 발붙일 곳이 없다. 11월호에는 서로 다른 성격의 주목할 만한 공모전세 편을 싣는다. 이번 기획과 편집 과정에서 금년에 실었던 다른 설계공모들을 새삼 들춰보았다. 지난 호까지 잡지에 다룬 열개의 국내 공모, 두 개의 국외 공모를 다시 넘기다보니 엉뚱하게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맥도날드가 떠올랐다. 아마다수의 독자들은 (서울역 고가처럼 정치적·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경우는 예외였겠지만) 설계공모를 다룬 페이지를 빠른 속도로 넘겨버렸을 것 같다. 낯익고 익숙한 이미지, 텍스트, 다이어그램으로 표준화된 작품들에서 적절하게 구운 패티, 얇은 토마토 한 장, 슬라이스 치즈, 약간의 오이 피클로 구성된 맥도날드 햄버거의 예측 가능한 맛을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제출작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최자의 의도를 대변하는 설계 지침서는 언제나 예외 없이 공모의 목적을 “ㅇㅇ를 ㅇㅇ할 수 있는 ‘독창적’인아이디어와 디자인을 구한다”고 밝히지만, 말 그대로 독창적인 작업은 당선되기 쉽지 않다. 최근의 설계공모 대부분은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안을 뽑는 합리성의 경쟁 과정이기 때문이다. 표준화와 효율성의 상징 맥도날드를 선택하곤 하는 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 없다. 맥도날드화에 비판적 거리를 두며 이번 호의 세 공모전을 꼼꼼히 살펴보시면 어떨까 한다. 기회와 쟁점이 교차하는 땅 잠실종합운동장에 던진 비전과 상상력에서, 근대 서울의 시간과 사건들이 묻힌 옛국세청 자리 작은 공간에 펼친 조경가와 건축가의 협력에서, 막막한 빈 땅에 무언가를 상징해야만 한 세종시의 백지 광장 프로젝트에서 ‘탈맥도날드화’의 일면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올해의 광장
    지난 9월, 그러니까 거리를 점령한 야외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내기 안성맞춤인 계절이었다. 그날도 회사 근처 단골 곱창집 간이 테이블에서 여름 내내 지겹게 쐰에어컨 바람 대신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만끽하던 중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광주에 함께 가자는 한 건축 잡지 편집장의 전화였다. 저녁 공기(?)에 취해있던 나는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본래 취재 예정일보다 빨리 광주행 새벽 기차에 몸을 실었다. 10년 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 국제공모가 치러졌을 때가 가물가물했다. 10년은 긴 세월이다(요즘 나의 기억력은 믿을 수가 없다). ‘빛의 숲’이라는 작품의 제목 정도가 기억 저 아래 남아 있었고, 대부분의 공간을 지하로 넣는 바람에 높고 멋들어진 건물을 원했던 광주 시민들과 갈등을 빚었다는 소식을 풍편에 들었던 듯 했다. 그만큼 광주가 나의(우리의) 관심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탓도 있다. 과연 당선안대로 만들어졌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처음 계획안이 좋았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도면이라도 파악하고 답사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쏟아지는 졸음에 눈꺼풀은 이미 감기고 있었다. 광주역에서 잡아 탄 택시에서 내리니 길 건너편으로 몇 블록을 차지한 ACC가 눈앞에 펼쳐졌다. 만약 지하철을 타고 건물 내부의 아시아문화정보원 지붕에서 ACC를 처음 보았다면, 아니면 충장로 쪽에서 5.18민주광장을 바라보면서 들어 갔다면 동선이나 첫인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어린이문화원 쪽을 둘러싸고 있는 가림막이었다. 9월 개관인 줄 알았는데, 공식 개관은 11월이었고 일부 공사가 남았던 것이다. 사진작가까지 동행했는데 촬영은 할 수 있을까 더럭 겁이 났다. 메인 출입구 앞 광장은 보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아시아문화광장으로 향하는 계단에 내려섰다. 들어가는 길에 광장 중앙의 1980년대 스타일의 파란색 분수대를 흘깃 보면서 아마 이곳은 대상지가 아닌가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 깨달았다. 이곳이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이며, 건축가와 조경가 모두 이 공간의 목격자들을 세심하게 선별해 남겼다는 것 등. 90년대 학번인 나에게 1980년 광주는 가슴을 채우는 기억은 아니어서 무심결에 넘겼노라고 잠시 변명해보지만 무언가 부채감이 남는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1980년 광장의 모습은 분수대를 중심으로 2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여는 장면이었다. 그 사진을 보니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이 떠올랐다. 지난 11월 13일 충격적인 파리 테러 이후 뉴스에서는 연일 테러의 참상과 추모 물결, 그리고 그 가운데 빛나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다. 그 배경은 모두 ‘공화국 광장’, 그러니까 내가 지난 여름 답사했고 『환경과조경』 10월호에 소개되었던 그 광장 말이다. 머플러로 눈을 가린 한 청년이 “나는 무슬림이지만 테러리스트는 아니”라고 시민들과 프리 허그를 하며 연대와 포용의 메시지를 전한 눈물의 현장도 레퓌블리크 광장이었다. 이런 광장의 모습이 프랑스인들의 충격과 긴장, 그리고 이슬람 세계와의 구조적 문제를 모두 덮을 수는 없겠지만 광장을 가득메운 시민들의 모습에 가슴이 뛰기도 하고 콧등이 시큰거리기도 한다. 평화로운 오후 스케이트 보더들이 활보하는 광장과 추모와 집회의 현장 모두 레퓌블리크 광장의 일면이리라. 5월의 광장에서 레퓌블리크 광장을 떠올린 것은 그런 광장의 역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남대학교의 천득염 교수는 이제 광주 사람들은 ACC를 굳이 5월과 연결시키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과거의 유산만큼 미래도 중요할 테니. 5.18민주광장이 누군가에게는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킨다면, 누군가에게는 새로 만들어진 아시아문화광장과 함께 일상과 축제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조동범 교수가 특집 원고에서 “2015년 가을은 이제 막 시민 광장의 역사가 열리는 시점”이라고 썼듯이 상처를 간직한 광장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시아문화광장은 ACC의 모든 시설로 연결되는 중심의 빈 공간이다. 5.18민주광장에서 시작해서 아시아문화광장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건물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걷다보니 예술극장이었다. 마침 개관 페스티벌 기간이었는데 공연을 준비 중인극장 앞에서는 그루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막 저물기 시작한 해는 흰색 노출콘크리트 벽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 이미 난 무장 해제되었다. 극장 앞 계단에 걸터앉아 고개를 돌리니, 그 풍경 또한 마음을 흔드는 것이었다. 마치 7가지 다른 사랑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처럼, 눈앞에서 수많은 프레임이 교차하면서 각기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조금씩 틀어서 앉혀진 건물 사이사이에는 정원이 그리고 저 멀리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들과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설계자는 이곳에서 5.18민주광장에서 아시아문화광장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의 클라이맥스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오래 전에 읽었던 건축가 피터 줌토르의 글이 생각난다. 그는 좋은 건축적 체험은 ‘분위기atmospheres’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예를 들어 휴일 오전 11시의 햇빛, 그 빛을 받은 건물의 그림자 색깔, 따뜻한 공기,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이 모든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평소보다 좀 더 천천히 걷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 공간의 분위기와 나의 감각이 화학작용을 하며 지극히 주관적인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분위기 없이, 즉 그 장소를 떠나면 동일한 느낌은 다시 받을 수 없다. 피터 줌토르는 이를 ‘실제의 마법Magic of the Real’이라고 부른다. 12월이다. 한해를 돌아보고 그 공을 평가하는 각종 시상식이 열리는 시기다. 그래서 나도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올해의 광장’을 뽑아보았다. 두둥! 영예의 수상자는 바로 ‘아시아문화광장’이다. 천득염 교수의 특집 원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ACC 앞에는 난제들이 많다. 그럼에도 아시아문화광장이 새로운 역사를 쓰기를 기대한다. 아마 그 역사는 시민 개개인의 마법 같은 기억으로 채워지리라. 아시아문화광장의 미래를 응원한다.
  • [편집자의 서재] 빌딩블로그
    언제나처럼 역시 표지가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성격이 좀 달랐다. 전반적인 디자인은 이미 오케이가 난 상태였다. 원서의 표지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기에, 작업하는 데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최종 오케이를 눈앞에 둔 표지 시안은 두 가지 버전이었다. 모든 점이 동일했지만, 오직 한 가지가 달랐다. 바로 앞표지 상단에 깨알 같은 크기로 실려 있었던 “경고문: 이 책에는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다”라는 문구였다. 담당 편집자였던 나는 ‘삘딩’이라는 비표준어를 과감히(?) 앞표지에 내세움으로써,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빌딩(건물)’과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빌딩build+ing’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물론 띠지를 했더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띠지 문구로 활용했을 테지만, 이 책의 경우 처음부터 띠지는 계획에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고문‘의 앞표지 삽입을 전격 취소하는 대신, 친절한 ‘역자의 글’을 앞쪽에 배치하고,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 ‘빌딩build+ing’ 이야기!”라는 문구를 보도 자료와 출판사 서평에서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럼, 도대체 ‘삘딩’과 ‘빌딩’의 차이점이 무엇이었을까 번역자가 ‘역자 서문’을 통해 잘 소개해주고 있듯이, 『빌딩블로그』에서 ‘빌딩’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로 그 ‘빌딩’이다. “건축architecture에는 건물building 이상의 것이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빌딩’은 건축보다 하위 개념인 즉물적인 구조체일 뿐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삘딩’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경고문이 허언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건축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인공 환경에 둘러싸여 살아가기 때문”1이라고 답한다. 바로 ‘빌딩’의 두 번째 의미이자 진정한 의미인 ‘build+ing’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만들고 환경을 변화시킨다. 똑같은 단위 평면을 가지고도 각각의 집들이 사는 사람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느낌으로 바뀌는 우리의 아파트 문화만 봐도 우리는 언제나 ‘빌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빌딩’이란 삶의 방식이자 결과다. 또한 사람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것이 빌딩의 범주에 포함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의미하는 빌딩의 진정한 의미다. 이 ‘빌딩’이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과 관련된 수많은 이슈들과 접점을 갖게 되면서, 『빌딩블로그』의 관심사는 단순한 건물(삘딩)에 그치지 않고 지구 깊숙한 지질 단층, 도시의 지상과 지하 세계, 바다, 하천과 각종 인공 수 체계, 폐허, 미생물, 소리, 대기 등 지구의 곳곳을 입체적 스케일로 해부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 ‘빌딩 < 건축 < 빌딩’이라는 새로운 부등식이 성립한다. 이 부등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인류의 ‘빌딩’ 과정의 매체이자 결과물들이 어떻게, 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떤 파급 효과가 있는지를 흥미롭게 파헤쳐나간다. 추천사를 써준 저스틴 맥거크가 지적했듯이 “생전 가본 적 없는 여러 방들을 탐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주면서 말이다, 은밀하게 때로는 기발하게. 편집자의 작업은 대개 보도 자료용 ‘출판사 서평’ 쓰기로 마무리된다. 몇 달 동안 붙들고 있던 책이니, 그 핵심 내용을 간추리는 출판사 서평쯤이야 뚝딱 만들어질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인쇄소에 최종 편집본을 송고할 때쯤이면 진이 빠질 대로 빠져서 원고를 거들떠보기 싫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책의 구절구절이 모두 마음에 들어서 어느 부분을 덜어내고 어떤 대목을 강조해야 할지 애매할 때다. 또 출판사 서평 작성이 책 편집못지않게 부담스러워서 진도를 빨리 빼지 못할 때도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출판사 서평을 별도의 편집 없이 그대로 올려주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책을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만큼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온라인 서점의 출판사 서평을 보고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앞에 소개한 내용은 2013년 봄에 『빌딩블로그』의 출판사 서평을 작성하며 끼적였던 글이다. 출판사 서평에 그대로 살린 부분도 있고, 날린 대목도 있다. 도서출판 한숲에서 곧 출간(2016년 1월 1일 출간 예정)될 김영민 교수의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의 보도 자료를 준비하다가, 문득 이 책의 출판사 서평이 떠올랐다. 뭐라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한 내용에 맞춰, 나름 색다른 시도를 했던 기억이 나서다. 『빌딩블로그』 출간 즈음에는 번역자들을 꼬셔 책에 실리지 않은 ‘역자 소회’라는 것도 쓰게 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또 표지 날개에 수록된 역자 소개글에도 잔뜩 힘을 줬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고등학교 때도 사지 않았던 독서대를, 이 책을 번역하며 두 개나 샀다. 하나는 사무실에, 하나는 집에 두고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제프 마노와 그 독서대 위에서 만났다. 그러다 간혹 악몽을 꾸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고원에서 기나긴 도피 생활에 지친 오사마 빈 라덴을 상대로, 모래 바람을 이용해 폭풍 전쟁을 벌이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제프 마노를 너무 오랫동안 만난 탓이다.” 당시에는 책 내용과 묘하게 어울려 보여 신통했는데, 독자분들이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이제 잡지 마감도 끝나가니 본격적으로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의 보도 자료를 써야 한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이 정도면 괜찮을까? “왜 스튜디오 101이 아니고, 스튜디오 201인가?”
  • [시네마 스케이프] 더 랍스터 기묘하거나 현실적이거나
    “더 랍스터 한 장 주세요.” “네? 더 셰프 아닌가요” “아뇨, 랍스터요, 랍스터!” “다시 확인해주세요.” 셰프와 랍스터, 연관 단어이긴 하다. 어제 퇴근길, 며칠째 유난히 지치고 힘든 이유를 가을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언가 다른 처방이 필요할 것 같아 극장으로 향했다. ‘보고 싶은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내 뜻대로 안 되는구나’하고 좌절하는 순간 주변의 다른 극장과 헷갈린 것을 깨달았다. 나라 구하는 심정으로 서둘러 달려가 보니 관객석에는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이 너덧 명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고백건대 ‘더 랍스터’를 선택한 건 순전히 포스터 때문이다. 어떤 영화인지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접한 포스터는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다웠다. 황량한 갈대밭 사이로 다급하게 어디론가 달려가는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두손으로 꼭 붙잡고 있다. ‘사랑에 관한 가장 기묘한 상상’이라니, 대체 어떤 영화일까. 극장에서 그다지 오래 상영할 것 같지 않고 이 원고가 실린 후에도 일부러 영화를 찾아보는 이가 열 명이 채 안 될 것을 확신하므로 그 내용을 낱낱이 소개할까 한다. 혹시 나처럼 포스터에 순간적으로 영혼을 뺏겨 영화를 보게 될지 모를 아홉 명은 여기서 멈추시기 바란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신화 속으로
    #66 고고학자들에게 갈채를 1980년대, 독일고고학연구소에서 ‘그리스 폴리스의 주거 문화’라는 주제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베를린 자유대학 고고학과 연구원들이 주동이 되어 진행한 국제 프로젝트였다. 그중 베를린에 살았던 팀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별도로 모여 그리스 고전 읽기 모임을 했다. 어느 날 팀을 이끌던 교수가 퓌클러 정원문화재단1의 초청을 받아 고대 그리스의 ‘정원’에 대해 특강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강연을 들으러 팀원 모두 몰려갔는데 거기서 뜻 밖에도 ‘고대 폴리스의 주택에는 꽃밭이 없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뭣이라고”, “그럴 리가”, “그리스에 가보라고.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고대 문헌에 정원이 얼마나 많이 언급되는데” 등의 반응을 보이며 흥분한 팀원들은 토론 끝에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화제의 특강 후 지도 교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므로 자초지종을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했다. 수소문해보니 마침 “부조에 나타난 고대 그리스의 풍경”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여류 고고학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연구재단의 도움을 받아 연구비를 확보하고 그 여류 고고학자를 프로젝트 팀원으로 초대하는 데 성공했다.2 현재 영국 셰필드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는 모린 캐롤Maureen Carroll 교수다. 이때부터 모린 캐롤은 고전 읽기 팀에 합류하여 옛 기록을 분석하는 한편 발굴 현장을 탐색하고 발굴 보고서를 샅샅이 조사하여 정원의 증거들을 수색해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폴리스 주택에 꽃을 심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3 아무리 열심히 찾아도 없는 것이 발견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고전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케포스Κήος’, 즉 정원이라는 개념은 무엇을 뜻한단 말인가. 고대에 꽃을 가꾼 정원이 정말로 없었단 말인가.4 이런 질문이 팀원들을 괴롭혔다.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바로 ‘정원’에 대한 개념이다. 1980년대 중반, 베를린에서 살았던 고고학자들에게 정원이란 ‘꽃이 가득 심겨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즉 꽃이 가득한 정원은 ‘20세기적현상’이라는 것5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원하던 답은 찾지 못했으나 그 대신 다른 수확은 많았다. 우선 케포스라는 말이 언급된 모든 고대 문서를 샅샅이 찾아내어 목록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다. 그리고 케포스를 아무리 털어 봐도 꽃밭 대신 과일과 채소만 나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케포스가 정원이라고 번역되기는 하지만20세기에 생각하는 정원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부엌과 주방의 차이와도 같다. 부엌에는 부뚜막이 있지만, 주방에는 싱크대가 있다. 케포스에서 꽃밭을 찾는 것은 마치 조선 시대 부엌에 가서 싱크대를 찾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왜 폴리스 주택에 꽃이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아마도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우선 폴리스라는 고대 그리스 특유의 도시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꽃에 대한 고대인의 관점도 규명해야 한다. 다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폴리스의 주택들은 너무 협소하여 정원을 만들 자리가 없었다. 꽃은 일상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며 신성한 것이라 신들에게 바치기 위해서 존재했다. 개인이 보고 즐거워할 대상이 아니었다. 폴리스는 대략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라고 널리 이해되고 있으나 정확히 말하자면 성채를 두르고 사람들이 모여살았던 공동 생활 구간을 말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확립되기 이전에도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했으므로 성안에서 살아야 참정권 행사가 기술적으로 가능했다. 전쟁이 잦았으므로 안전을 위해서도 성안에 모여 사는 것이 유리했다.6 도시라고 해도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던 아테네의 인구가 한창 때에 약 4만 정도였으니 이 역시 지금과 달랐다. 특이했던 점은 도시가 팽창하면 도시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분가’시켜 아주 먼 곳에 가서 신도시를 개척하게 했다는 점이다. 오십 명의 미혼 남성으로 구성된 신도시 개발팀을 내보냈다. 무력으로 정복한 것이 아니라 현지 여인들과 혼인하여 문화적 융합을 꾀했다.7 사실 인구가 너무 많으면 공동의 의사결정도 불가능하지만 ‘어떻게다 먹여 살릴 것인가’하는 문제가 더욱 시급했다. 기원전 8~6세기에 신도시 건설이 가장 활발했으며 6세기 말 소위 고전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미 서쪽으로 스페인 해안, 남으로 북아프리카, 동으로 지금의 터키, 사이프러스는 물론 흑해 연안까지 그리스인들의 폴리스가 분포되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 규모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거의 집착했던 것 같다. 폴리스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열 명으로는 도시를 형성할 수 없지만, 인구가 십만 명이 넘으면 이미 도시라 할 수 없다.”8 플라톤은 5,040명을 적정 인구수로 보았다.9 이런 폴리스들은 격자형 계획도시였다. 똑같은 면적의 블록으로 도시를 나누었으며 이를 다시 균일한 크기의 필지로 나누었다. 한 필지의 규모는 도시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평균적으로 250m2였다.10 세대 당 두 개의 필지를 배당받았는데,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도심에 주택지 하나, 외곽에 같은 평수의 텃밭을 하나씩 나눠받았다. 외곽의 텃밭이 바로 케포스, 즉 그들이 정원이라고 일컬었던 것이었다. 도시 내에는 지금의 연립주택과 다름없는 집이 밀집하여 지어졌고 디자인도 두세 개의 모델로 국한되어 있었다. 주택 구조를 보면 정원이 비집고 들어갈틈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당이 있었으나 협소했고 이곳에 우물과 제단이 있었으며 바닥은 흙다짐되었거나 돌, 모자이크 등으로 포장되었다. 폴리스의 모습만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참으로 기계적이고 합리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공동체적 삶을 위해 개인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굳이 주택가에서 꽃을 찾으려는 20세기적 발상 자체가 그들에게는 그릇될 것이다. 신화와 문학이 그들의 ‘꽃’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그리스로 가서 아무나 붙잡고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평등도 좋고 민주주의도 좋지만 집 좀 크게 짓고 정원도 좀 꾸미지 그랬소” 그러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데” 그리고 길을 가리킬 것이다. “저리로 한번 가보시게.” 그 길은 아마도 신화 속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 - 적응성을 향하여 Cities of Visionaries, Cities of Reality: Multifaceted City - Toward an Adaptability
    연재를 마무리하며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포괄적인 질문과 함께 시작한 본 연재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 1년은 도시설계와 관련된 여러 주제를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듯 소개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앞선 설렘과는 다른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과연 좋은 도시란 무엇이란 말인가? 도시 공간에 대한 요구가 문화마다 다르고 지역적 특수성의 차이도 큰데, 좋은 도시의 공통분모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 했던가. 진작 처리했어야 할 과제를 마지막까지 미루고 있다가 최종 연재에 이르러서야 황망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게으름을 피우고야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 초조해 하지 말고 도시의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자. 도시의 가장 흥미로운 특질 중 하나는 도시는 항상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구와 환경 변화라는 ‘자극’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제한된 도시 면적안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끊임없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 도시를 구성하는 물리적 환경―거시적인 지역 환경과 녹지 분포, 도시 블록과 가로 패턴, 건축물의 유형과 필지의 종류, 도로와 오픈스페이스, 옥상정원과 공용 주차장 등―은 각종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며 변화하는데, 그러한 과정 자체가 공간에 차곡차곡 기록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불완전한 변화의 파편과 흔적으로 공간에 남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 공간은 다시 사람들의 삶과 행태, 미시적인 도시 환경과 거시적인 도시 문화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그림1).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비교적 일관된 특성을 공유하는 연속적인 지역이나 장소가 도시 안에 형성된다. 하버드 대학교의 피터 로우Peter Rowe 교수는 이를 “영역territory”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19세기 후반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걸쳐 보스턴 도심부 남측에 금융 관련 초고층 업무 시설이 집중적으로 조성되면서 형성된 ‘파이낸셜 지구’나, 1950년대 독일의 기술 원조를 받아서 각종 전자제품과 이후 군수 물자를 생산하던 국영 산업단지이자 최근 중국 최대 예술가들의 놀이터로 탈바꿈한 베이징의 ‘다산쯔 798지구’가 이러한 영역에 해당한다(그림2). 공통의 성격을 갖는 영역뿐만 아니라 차이와 특이성이 두드러지는 크고 작은 도시 공간을 통해서도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하나의 단일 도심을 기반으로 성장하던 도시 영역이 급격한 인구 증가 때문에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확산되고 단핵 중심의 도시가 다핵 도시로 변형되는 경우가 그 예다. 여기에 다시 새로운 교통 시스템이 도시내 주요 거점을 연결하면서 개발 잠재력이 높은 지역에서는 필지 합병을 통한 대규모 재개발이 진행되는 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도시 쇠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함께 특정 건축 유형에 대한 자발적 고급화와 타율적 잉여가 반복되면서 넓게 확산된 도시 조직은 미시적인 분화를 겪는다. 이러한 공간의 분화와 차이성의 발현은 공통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의 각종 영역을 부분적으로 해체하거나 때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지역성을 짧은 시간에 붕괴시킬 때도 있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김세훈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도시설계전공 교수
  • [그들이 설계하는] 경계자는 조바심을 관리한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경계자로 지칭하는 것은 위험하다. 단지 자신을 묘사하거나 기술하는 단어가 아니라 가치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 자기 색깔이 뚜렷하지 않은 자’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있는가 하면, 함민복의 시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처럼 긍정적 뉘앙스도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경계자라 말할 때는 부정적·긍정적 뉘앙스를 모두 감내해야 한다. “나는 어디에도 끼지 않을 거야, 내 길을 갈 거야”같은 치기, 혹은 “나는 당신들과 달라” 같은 자기 허영.그럼에도 나는 이 마지막 글에서 스스로를 경계자라 칭하려 한다. 현재의 나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지향점이라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첫 번째 글의 ‘어.설.자.’는 고백이었고, 두 번째 글의 ‘경관편집자’는 경관을 다루는 나의 관점과 방식에 대한 소개였고, 이번 마지막 글의 ‘경계자’는 나의 바람이다. 경계에 서 있는 점들이 시스템이 만든 영역을 가로질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새로운 지평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 책상 vs 현장 20~30대에 직장 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물론 정확한 시간에 퇴근한 적은 없지만) 직장 생활은 고작 3년이었다. 석사 졸업하고 2년, 영국에서의 박사 후 연구원(post-doc) 후 1년. 나머지는 거의 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녔다. 20대는 학부와 석사 과정, 30대는 박사 과정과 영국에 가기 위한 준비, 그리고 영국에서의 1년간의 연구 과정.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30대 막바지에 설계사무소를 열었다. 고작 3년이 설계라는 작업을 집중해서 고민하고 배우던 실무기간이었다. 20대부터 현장에 뛰어들어 일을 배웠던 동년배들에 비해 훈련의 시간이 부족했던 셈이다. 대신 동기, 선·후배들에게 틈틈이 배웠고, 특히 한 후배는 몸으로 익힌 실무를 ‘속성’으로 내게 전해 주었다. 이렇게 내 이력을 나열한 이유는 책상과 현장에서 서성이는 나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2002년 그 ‘유명한’ 한평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도시연대의 구성원들과 주민 참여, 참여 디자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더불어 관련된 여러 이론을 공부했고 외국 사례도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박사 학위 논문이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도 한평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조바심이 났다. 책을 보고 있으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걱정스러웠고, 현장에 있으면 책 속의 내용이 궁금했다. 그 이후의 몇 년 동안은 박사 논문을 쓰면서 가졌던 질문에 답하고 되새김하는 시간이었다. 막연하게 알던 것들을 보다 선명하게 알아가기, 어떤 책에서 보거나논문에 인용했던 것들을 현장에서 확인하기, 이래야한다고 주장했던 것들을 현장에서 실천해보기. 되새김의 기간이 길었던 만큼 박사 논문의 자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바심의 기간도 길었다. 그런데 주어진 현장에 집중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내 실천의 방향과 내용이 논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몇 년 더 현장에 파묻혀 있다 보면…. 아니 지금도 그런 조짐이 나타나는데, 조바심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어떤 언어와 논리로 내가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정리할 수 있을까’로. 전문가 vs 활동가 내 관계의 지형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페이스북 친구이지 않을까 싶은데, 1/4이 ‘조경’이라는 키워드로 만난 사람들이고 3/4이 ‘시민단체’라는 키워드로 만난 이들이다. 페이스북에 적극적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민단체라는 키워드로 만난 이들이다. 그들이 최근에 올리는 글은 주로 도시재생, 공유공간, 마을만들기, 사회적 경제 등에 대한 것이다. 이 글들을 읽으며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 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고 사고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시민단체라는 키워드가 만들어준 네트워크 속의 전문가들이다. 조경이라는 키워드 속에 있는 사람들 중 지속적으로 만나는 이들은 ‘조경작업소 울’의 구성원 정도다. 시민단체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가치’가 활동의 중심이 된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사회나 단체에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적자가 나더라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사람들이 세상을,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정치적 판단을 떠나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보니 활동가들의 일하는 방식도 행정이나 기업, 학교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올해 도시연대의 일원으로 한 대학교의 연구실과 도시연대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 초기, 학교 연구실과 시민단체 간의 차이로 인해 통역자 역할을 해야 했다. 연구자들의 언어와 일의 방식을 활동가들에게 전달하고 활동가들이 추구하는 내용과 언어를 연구자들에게 전달했다.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라 여겨진 탓인지, 조경작업소 울의 클라이언트는 주로 시민단체다. 올해만 해도 세이브더칠드런,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이하 무장애연대), 생명의숲이 주요클라이언트였다. 시민단체의 활동가들과 일하다보니 그들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 일반적 전문가들이 하는 역할의 경계를 벗어날 때가 있다. 이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올해 몇 번인가 “너는 전문가니? 활동가니”라는 질문을 간접적으로 받았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통역자의 역할을 할 때 그랬고, 연재의 첫 번째 글에서 소개한 어린이공원 작업에 대한 어떤 이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 김연금
  •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인터뷰 연재를 마무리하며 Beyond the Limits of Landscape Architecture, and into the Heart of Landscape Architecture: Epilogue of Interview Series
    2013년 ‘조경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주목할 만한 조경가’라는 부제를 달고 시작한 ‘조경의 경계를 넘어’ 인터뷰 지면은 2014년부터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란 제목으로 지난달까지 총 35명의 조경 관련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며 3년을 달려왔다. 뉴욕의 대표적조경가인 시그니 닐슨과의 인터뷰로 시작해 지난 호에 소개된 캐나다 몬트리올의 무나 안드라오스와의 인터뷰까지, 다양한 인물과 대화를 이어온 소감을 여기에 정리한다. 『환경과조경』의 해외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한 2013년 1월은 개인적으로 디자인에 대해, 조경 설계라는 직업적 자긍심에 대해 상당한 회의를 느끼던 무렵이었다. ‘진짜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마음에 “쩡”하는 소리를 울리는 작업이란 어떤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온 지 몇 해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렇다할만한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진정한 공부를 하고 싶었고 배움에 목이 말랐다. 바쁜 설계사무소 일을 소화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는 빡빡한 생활에서 주어진 시간을 쪼개 배움에 대한 욕구를 채우곤 했지만 실망스럽게도 충족보다는 대개 한숨이 앞섰다. 어디선가 이미 봤던, 독창성을 찾기 어려운 설계안들이 미디어와 공모전을 도배했고 패션은 단추 구멍의 위치만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어디에 갖다 놔도 상관없는 ‘맥락 결여’의 장식적 작품들이 마치 문화의 최전선에 나선 듯 우쭐댔고 허공에 메아리치듯 공허한 미사여구의 독백이 이론이라는 투구를 쓰고 그렇지 않아도 지친 안구에 피로감만을 더했다. 진정한 새로움을 향한 여행길에서 보이는 풍경이란 봐도 안 봐도 그만인 딱그 정도였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월간·주간·일간지들을 멀리하게 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그래서 나의 관심은 동시대 설계자들의 작업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과거로 회귀하고 있었다. 인터넷이 모두의 두뇌에 평준화를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조경이라는 동네는 기웃거릴만한 꺼리가 도무지 없는, 참으로 재미없고 지루한 단체 관광 상품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우울함을 달래려면 대신 곰팡내 나는 뉴욕공립도서관의 서가를 뒤져야 했다. 1960~1970년대 미국의 사회적 혼란기, 20세기 초반의 시티 뷰티풀, 그리고 19세기의 옴스테드와 17세기의 르 노트르로 빠져 들어갔다. 한 세기 전 조경이라는 분야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시기, 그 부근에 자리 잡은 귀퉁이 골방에 머물며 나는 스스로 외부와 담을 쌓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족하고 있었다. 박명권(현 『환경과조경』 발행인)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가 이 코너의 공동 작업을 제안했을 때 무언가 자그마한 창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현 시대 조경에 대한 나의 우울증이 진정한 고수들에 대한 무식과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어렴풋이나마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미디어 정보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들에 대한 이해 작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다는 데 신이 났고 아랫배 한 구석에서 의욕이 솟았다. 그해 겨울 휴가를 떠난 자메이카의 해변에서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 귓전을 때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윙윙대는모기에 뜯겨가며 첫 번째 원고를 썼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간단히 두 가지였다. 첫째, 우선 금붕어 같이 눈은 커지고 머리는 작아진 상태를 극복하고 싶었다. 작금의 우리 일에 지성이란 것이 존재 한다면, 아직 지적인 디자인이라는 전통이 남아있다면, 그것을 옴스테드 시대와 같이 환하게 드러내 복원하고 싶었다. 기본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다. 고상한 언어의 도움 없이도 즉각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디자인,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디자인, 쉽고도 좋은 디자인을 현학의 덫에서 구출하고 싶었다.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 기반을 두고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해 왔다.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고, 주요 작품이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 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이며, 저서로 『시티오브뉴욕』(공저)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서 조경 설계를 연구하며 학생들이만드는 것의 기쁨을 알아가도록 돕고 있다.
  • [재료와 디테일] 거푸집,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요
    콘크리트로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선 거푸집이라는 형틀이 필요하다. 원하는 모양으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콘크리트만 채워 넣으면 어떤 형상도 만들어낼 수 있는 요술램프 같은 장치다. 웬만한 공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랄까. 아니, 없어서는 안 될 주인 같은 손님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구조재로 사용될 뼈대를 만들 때, 혹은 마감재로 쓰일 매끈한 물건을 만들때 이 요술램프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게다가 그 효용에 비해 얼마나 저렴한가. 몇 개의 나무 각재와 판재만 있으면 뚝딱뚝딱 만들어 조립하고 공장에서 미리 배합해서 만들어 놓은 콘크리트를 채우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 쓰임에 따라서 사용 횟수를 정해 놓기도 하고 비용도 다르게 책정되어 있으며 원하는 품질의 수준에 따라 금액이 천차만별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지만 말이다. 20여 년 전 실무를 시작할 무렵 일본에 놀러 갈 기회가 생겼다. 그때 도쿄의 가사이 임해공원葛西臨海公園에서 만난 일본의 한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노출콘크리트의 미학적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거푸집을 떼어낸 후 드러난 콘크리트 면 자체를 마감으로 쓴다는 아주 초보적인 지식만 있었는데, 건물을 손으로 만져본 후 온몸에 전해지는 감각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리석보다 더 부드러웠다. 차라리 따뜻했다. 거푸집과 콘크리트의 관계에 대한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기에 놀란 채로 그 곁에서 한참을 보냈다. 후에, 그런 마감을 내기 위해서 어떤 일본 건축가는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날이면 모든 사무실 식구들과 함께막대기를 들고 콘크리트를 비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고 놀라기도 했다. 레미콘에서 콘크리트가 쏟아지는 순간 마치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에 긴장했던 경험이 겹쳐졌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 [공간 공감] 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그 물음을 안고 떠난 스물두 번의 답사
    2014년 1월, ‘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 ‘공간 공감’이 연재 2주년을 맞아 좌담회를 가졌다. 한 달에 한 번씩 대상지를 답사한 후 함께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결과를 수록해 왔기에 ‘공간 공감’ 멤버들에게 좌담회는 무척이나 익숙하다. 하지만 이번 좌담회에서는 특정 대상지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답사를 바탕으로 ‘좋은 공간감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첫 회의 프롤로그 이후 ‘이태원(상업시설 건축물), 무교공원, 성곡미술관, 대학로, 서울시립대학교 캠퍼스, 연남교 교차로, 메리츠타워, 책테마파크, 백남준아트센터, 지앤아트스페이스, 웅진싱크빅 옥상정원, 파주 환경과조경 사옥(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서초동 삼성출판사 공개공지, 합천영상테마파크, 서울대학교 미술관, 양재동 꽃시장, 석파정, 알토사옥 옥상정원, 창덕궁 후원, 박수근미술관, 명동성당, 홍익대학교 중앙광장’까지 총 스물두 곳을 찾았다. 알토사옥은 허승효 회장(알토)의 안내로, 창덕궁 후원은 건축사진작가인 김용관 대표(다큐멘텀)와, 박수근미술관은 정재헌 교수(경희대학교 건축학과)와 함께 둘러보았다. 담당 에디터도 연남교 교차로, 웅진싱크빅, 삼성출판사 등의 답사에 동행했다. 경남 합천부터 강원도 양구까지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차를 몰았던 동력 중의 하나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물론, 함께 답사한 이들이 같은 공간을 얼마나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도 궁금했다. 답사 수첩에 대상지가 하나씩 차곡차곡 쌓이고 공간감과 디테일에 대한 갑론을박이 풍성해지는 동안, ‘공간 공감’ 멤버들은 첫 원고에서 밝혔던 “우리 도시에서 당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외부 공간은 어디인가? 그리고 그곳을 왜 좋아하는가”란 질문의 답을 얼마나 찾았을까? 스물두번의 답사 이야기를 반추하며, ‘좋은 공간감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벌인 스물세 번째 좌담회를 이지면에 옮긴다. _ 편집자 주 “공간의 질이 아니라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느냐가 중요” 정욱주 어느덧 연재를 시작한 지 2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답사한 22곳의 대상지를 하나씩 떠올려보니 특징이나 성격이 꽤 다양하다. 처음에 의도했던 “우리 도시에서 좋은 공간을 발굴하고 이를 설명하는 어휘를 개발하고 축적”하기 위한 목적에서 살짝 비껴간 곳도 있고,“우리의 정주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양질의 공공 공간”을 탐색하겠다는 뜻에 정확히 부합하는 곳도 있다. 그 달의 답사 대상지를 선정하는 과정 자체가 큰 공부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공간감이나 디테일이 뛰어나서 대상지로 선정된 곳도 있고,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는 공간을 꼼꼼히 살펴봄으로써, 역으로 좋은 공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승진 대상지 발굴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 곧 우리 도시 환경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처음 의도와 결이 다른 공간을 둘러본 것이 단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좋든 아쉽든 다양한 공간을 소개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내년 답사에서도 이기조를 유지할 것인지는 논의가 좀 필요하다. 정욱주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도 있었지만 ‘연남교 교차로’처럼 자연적으로 발생된 공간을 답사하기도 했다. 건강한 비평 기능을 살리고 실제로 설계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디자인된 공간 위주로 답사를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연남교 교차로는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김아연 결국은 좋은 공간감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누군가에 의해 디자인된 곳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곳이더라도 좋은 공간감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다면, 기꺼이 가보아야하지 않을까. 박승진 그렇다. 공간의 질이 중요하다기보다 이야깃거리를 얼마나 품고 있느냐, 공간에 대한 다양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답사한 곳 중에서는” 이홍선 그동안 답사한 곳 중에서는 메리츠타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반전이 있었다. 뭐랄까, 공간 구성 자체가 극적이었다. 그런 점을 보면, 단순히 디자인이 아름답거나 뛰어나다고 해서 공간감이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메리츠타워는 대상지가 안고 있는 레벨 차이라는 한계도 상당히 잘 활용했다. 나무는 그리 수형이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화분의 크기나 배열 방식, 리듬감 등이 나무랄 데 없었다. 최근에 찾은 홍익대학교 중앙광장은 공간이 커가는 과정을 꽤 오랫동안 지켜보았기 때문인지, 지금의 모습이 감탄스럽다. ‘공간 공감’ 답사 이후에도 몇 차례 더 가보았는 데, 찬찬히 둘러보니 그 매스감이 더 놀라웠다. 처음에는 학교 캠퍼스의 광장을 왜 수목 농장처럼 만들어 놓았는지 의아했는데, 한 해 한 해 지나 식물이 커나가면서 전혀 다른 공간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나무를 아예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놔둔 것이 주효했다. 나무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처지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근사한 도시 숲이 탄생했다. 어느정도 설계자가 이렇게 의도한 공간이 아닌가 싶다. 박승진 때론 너무 깔끔하고 계획적으로 관리하는 것보다 스스로 자랄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다. 의도대로 가꾸기 위해 치밀하게 관리하다 보면 더 엇나가거나 불필요하게 웃자랄 수 있다. 풀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김용택 나 역시 그런 전략을 의도적으로 취하는 편이다. 스스로는 그것이 나의 관리 매뉴얼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대로 두는 것 말이다. 홍대 중앙광장의 경우, 숲을 만들겠다는 것은 디자인을 했겠지만 관리하는 방식은 풀어두는 전략을 취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홍대라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점이 더욱 돋보였다. 그 외에 답사하면서 좋았던 곳으로는 박수근 미술관을 꼽고 싶다. 조형적인 디자인이 뛰어나거나 조형물이 돋보이는 곳보다는 분위기가 잘 갖추어진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재료가 시간을 머금고 있다거나 물성이 잘 드러나는 디테일에도 애착이 간다. 박수근미술관이 바로 그런 공간이었다. 재료와 공간이 잘 어우러져, 그 공간의 인상을 좌우하는 곳. 좋은 공간감이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홍선 박수근미술관과 명동성당은 아쉬움과 만족스러움이 비슷한 측면에서 동일했다. 전면부를 좀 더 여유있게 비워두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박승진 명동성당의 경우는 조경 설계 이전에 이루어진 기본 방향 설정에서, 전면 공간에서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도가 개입되어 지금과 같은 공간 연출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성당 뒤편 공간은 그 의도에서 자유로웠기에 지금처럼 아늑하고 만족스러운 공간이 유지될 수 있었고. 김용택 ‘공간 공감’ 멤버들은 과도하게 디자인된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분당의 책테마파크 같은 경우, 디자인 자체만 보면 상당히 공들여 설계된 곳이지만 공간의 맥락에서 바라보면 디자인이 조금 과해 보인다. 그 때문에 답사 당시에 아쉬운 점에 대한 토로가 많았다. 김아연 개인적으로는 지앤아트스페이스와 양재동 꽃시장의 생명력이 돋보였다. 디자인 차원을 떠나서, 판매행위를 위해 제품을 외부에 내놓은 공간들인데 그곳만의 확실한 생명력이 있었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남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