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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성장하는 도시, 쇠퇴하는 도시
    성장기와 쇠퇴기 도시의 얼굴 표정 ‘라이 투 미Lie to me’. 미국 폭스FOX 사에서 방영한 이 드라마에는 ‘기만 전문가deception expert’라는 낯선 직업을 가진 칼 라이트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라이트만은 다른 사람의 순간적인 얼굴 표정과 몸짓을 관찰해 그가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아니면 무언가를 감추려하는지 가려내는 데 전문가다. 표정과 몸짓을 통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의 얼굴 근육이 다양한 자극과 감정에 특정한 패턴을 보이며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드마라 속 라이트만에 따르면 이러한 반응은 문화와 인종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기억하는가?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이 공개되었을 때 축 처진 입꼬리와 바닥을 쓸어내리는 눈빛을 보였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그런데 사람의 얼굴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다양한 자극과 개발 환경 변화에 따른 미시적인 표정 변화가 나타난다. 특히 성장-정체-쇠퇴의 주기를 반복하는 여러 도시에서는 각 단계별로 특징적인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볼 때 도심지는 팽창expansion, 축소shrinking, 혹은 고밀화intensification 세 가지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의 표정 변화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면 성장기, 혹은 쇠퇴기의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그림1). 이를테면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의 스나이더Annemarie Schneider 교수는 위성 영상 기법을 이용해 전 세계 25개의 도시에서 1990~2000년 사이에 나타난 팽창의 모습을 분석했다.1 이에 따르면 도시 확장의 패턴이나 밀도 변화에 따라 성장하는 도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고 있으며, 이를 더 세분화하여 ‘거대 확산의 도시expansive-growth city’, ‘광란의 개발 도시frantic-growth city’, ‘빠른 성장형 도시high-growth city’, ‘느린 성장형 도시low-growth city’로 분류한 바 있다(그림2).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누군가가 앞으로 한국 도시의 표정 변화를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방 이후 큰 도시와 작은 도시, 개항 도시와 내륙 도시, 중화학 산업 도시와 전통 산업의 도시는 각각 어떤 종류의 표정을 보였는지. 중국의 도심지 팽창, 정말 빠른가 도시의 성장과 관련하여 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에서 지난 30여 년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기간에 중국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규모의 초대형 도시 개발을 단행해 왔다. 2015년 현재 중국에는 657개의 도시가 있으며 이는 1950년대 초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한 숫자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0~2015년 사이에 중국 전역에 새로 만들어진 도심지 면적은 약 76만km2에 이른다.2 이는 남북한 영토를 모두 더한 크기의 세배에 육박하는 면적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피터 로우Peter Rowe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크기의 도심지를 만들기 위해 중국은 전 세계 건설 물량의 약 43%를 소모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약 4배, 독일의 약 10배에 해당한다.3 하늘에서 보면 중국 도시 성장의 상당 부분이 동부 연안에 위치한 세 개의 거대 도시 지역―베이징·텐진 지역, 양쯔 강 델타지역, 주강 델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 지역에 있는 도시들은 지난 몇십 년간 스나이더 교수가 묘사한 것처럼 소위 “광란의 개발” 과정을 겪었다. 이를테면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에 상하이를 방문했던 사람은 도시 전체가 공사판을 방불케 했음을 잊기 어렵다. 1993년 첫 번째 노선에 대한 공사가 시작된 후 상하이는 단 17년 만에 16개 노선과 282개의 지하철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지하철 네트워크를 자랑하게 되었다.4 1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런던 지하철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굴욕적이고 헛기침을 일으킬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그림3, 4).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김세훈[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도시설계전공 교수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어.설.자.’는 의심한다
    조경작업소 울, 조경사업소 울, 조경작업 소울, 조경작업소 을 가끔 우리 회사 이름 ‘조경작업소 울’(이하 울)을 다르게표기하는 경우를 발견한다. ‘조경사무소 울, 조경공작소 울, 조경설계 울, 조경회사 울’ 등등 아주 다양하다. 가장 기분 좋은 오기는 ‘조경작업 소울’이었고, 가장 신선한(?) 오기는 ‘조경작업소 을’이었다. 표기 오류의 가장 큰 원인은 ‘작업소’라는 단어일 것 같다. 회사 이름에 ‘작업소’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는 설계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연구 프로젝트나 컨설팅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단일 프로젝트에 있어서도 설계에만 강조점이 있지 않아서였다. 이전까지 시민단체와 함께 발전시켜 온 주민들과의 의사소통 과정과 방식을 설계 과정에 포함시키고 싶었고 조성 이후의 운영까지를 전체 프로젝트의 범위에 넣고 싶었다. 누군가는 그 전체 과정이 설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인간의 조건』을 읽고는 회사 이름에 대한 설명을 몇 줄 더 달 수 있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살면서 하는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하였다. ‘노동’은 생존과 욕망 충족을 위한 육체의 동작이고, ‘작업’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일의 재미와 일정한 명예를 바라며 수행하는 제작활동이며, ‘행위’는 개인의 욕망과 필요를 넘어 공동체 속에서 어떤 대의를 위해 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 모든 활동은 생물학적 필요에 종속된 노동이 되었다. 시를 쓰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예술 작품을 만드는 행위도 작업이 아니라 노동이 되었다. 행위도 자유와 개성이 거세되면서 노동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우리 회사 이름의 ‘작업’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활동이 노동 이상의 것이 되길 바라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오글거리려나 가끔은 농담으로 회사 이름을 ‘작업소’라고 해서인지 온갖 작업을 다 한다고 칭얼거릴 때도 있다. 워크숍 준비를 위해 가내 수공업 같은 작업도 하고,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벽에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기도 한다. 요즘 지방 도시의 한 마을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면서는 ‘찾아가는 파라솔’이라는 이름으로 동네 공원이나 길에파라솔을 펴놓고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묻고 있다. 가끔은 공사 현장에서 호미를 들고 초화를 심기도 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회사 이름을 설명한 이유는, 울에서의 설계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다. 울에서의 설계는 도면에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클라이언트와 설계의 범위와 방향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설계를 한다. 설계가 끝난 이후에도 공사를 관리 감독하거나 주민들의 이용 실태 관찰과 프로그램 운영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재를 읽어주기 바란다. ‘어.설.자.’의 의심 이번호에 소개하는 작업은 이제 막 끝낸, 어린이공원 프로젝트다. 지나고 보니 이 프로젝트 진행의 콘셉트는 ‘의심하기’였다.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클라이언트는 세이브더칠드런이라는 국제구호개발 NGO로, 이들에게 물리적 환경 개선은 생소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울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당연히 여기던 것들도 질문을 받으니 생소하게 느껴졌고, 관성적으로 해오던 일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난 놀이운동가들의 놀이와 놀이터에 대한 견해도 우리를 더욱더 의심에 빠져들도록 했다. 보다 근본적인 의심의 이유는 내가 ‘어쩌다 설계를 하게 된 자’, 즉 ‘어.설.자.’여서다. 어.설.자.가 되다보니, 설계 프로젝트를 할 때는 유난히 의심을 많이 한다. 한번도 좋은 설계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해본 적이 없다. 좋은 설계는커녕 설계는 내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노란 트레이싱 페이퍼를 펴놓고 설계안을 잡고 있거나, 울의 구성원들과 구조물에 대해 논하고 있는 내가 문득 문득 낯설다. 조경이 품은 키워드들과 설계와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 조경 설계 언저리를 떠나지 않다보니 이리되었다. 첫 번째 의심, ‘아이들 입장에서의 설계?’ 클라이언트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요구한 사항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설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설계했던 어린이공원에는 아이들의 입장이 어떻게 반영되었던가?’ 의심이 시작되었고 의심은 질문을 낳았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설계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쉬운 방식은 아이들에게 직접 묻는 것이다. ‘네 입장은 뭐니?’ 물론 아이들을 상대로 이렇게 질문할 수는 없으니 질문의 방식을 응용해야 한다. 울에서 해오던 질문의 방식은 설계안이나 시설물을 제안하고 아이들에게 선호를 묻거나, 원하는 놀이터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보통 그네나 회전무대 같이 자극적 놀이시설물을 선택했고, 놀이동산에서나 볼 수 있는 시설물로 그림을 채웠다. 또 세이브더칠드런은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해서 그 결과를 설계에 담아 달라고 했다. 이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몇 번 관찰하고는 ‘아이들은 이렇게 노니 우리는 이렇게 디자인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의미한 내용을, 일반화 할 수 있는 내용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울은 어린이 참여와 관련된 문헌을 찾아보고 토론을 하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질문, 그림 그리기, 놀이 관찰에 대해 나름의 답을 도출했다. 먼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질문에 대한 것. 많은 문헌이 어린이들은 자신이 노는 것과 말하는 것이 다르므로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문헌에서 드는 예는 우리의 경험과 비슷했는데, 어떤 장소에 데리고 가서 실컷 놀게 한 후 무엇이 제일 재미있었냐고 물어보면, 흙을 가지고 신나게 놀았음에도 불구 하고 시각적으로 눈에 들어왔던 시설물을 말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아이들의 그림에 대한 것. 아이들의 그림에 대한 우리의 의심은 정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신 아이들의 그림을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도구로, 아이들이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발견 하는 도구로 삼기로 했다. 세 번째, 아이들 놀이 관찰에 대한 것. 자료를 찾으니 의외로 놀이 관찰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국에 도 왔던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Günter Beltzig)도, 어린이와 어린이 놀이에 대해 연구하는 영국의 팀 길(Tim Gill)도 놀이터를 설계하는 사람은 놀이 관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관찰에서 얻은 통찰은 주관적이고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일 수 있어 이 또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관찰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특정한 ‘사실’의 발견에 있기보다는, 아이들의 생활에 젖어드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울은 스스로 내린 답을 실천으로 옮겼다. 아이들과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림에 그치지 않고 왜 그렸는지 물어보았다. 또 50여 명의 어린이들을 서울숲의 여러 놀이터에서 놀게 하고는 어떻게 노는지도 관찰했다. 여러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대상지 옆 어린이집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었다. “마음대로 놀아요!”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은 작은 원을 그리며 뛰기 시작했다. 둥그런 원을 그리며 빙글 빙글. 무작정 10분을 뛰고 나서 주변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저 구석에 있는 운동기구에, 나무에, 바닥에. 그러다 또 뛰고. 그렇게 20여 분을 뛰고 나서 주변 사물을 이용한 놀이를 시작하거나, “같이 놀자!”하면서 친구를 불렀다. 이 프로그램 이후 내 눈에는 온통 아이들의 뛰는 모습만 보였다. 우리 동네 어린이집에 있는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은 뛰었고, 지하철과 음식점에서 만난 아이들도 뛰었다. 아이들은 뛰는 존재였다. ‘저들의 뛰고자 하는 욕망을 받아주자’가 어린이놀이터 설계의 원칙이 되었다.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하면서 다음의 내용을 발견했고 가능한 한 공간에 담으려고 했다. -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잘 놀지 않는다. 가능한 한 시각적으로 소외된 공간이 없도록 해야 한다. - 지장물이 있는 주변에서 논다. 모래 놀이를 하더라도 모래밭 중심보다는 경계 혹은 기둥 옆에서 논다. - 아이들은 우리의 도시 공간을 ‘놀이’로 재구성한다. 특히 성격이 모호한 공간, 모퉁이 공간, 모서리 공간을 선호한다. 넓은 길을 놔두고 가로의 경계석 위를 위태롭게 걷고, 건물 아래의 자투리 공간은 그들의 훌륭한 아지트가 된다. - 아이들은 스스로 미션과 규칙을 만들며 논다. 대상지에서 만난 한 꼬마는 공원 내 느티나무의 수피를 모두 떼어 내는 걸 그 날의 미션으로 정하고는 돌 조각을 집어 들고 열심히 나무의 수피를 긁어냈다. 또 서울숲에서 만난 꼬마들은 쉬지 않고 바닥의 모래를 퍼서 조합놀이대 위로 올렸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두 번째 의심, 그네는 있어야 하는가?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고무 포장을 깔 것인가? 그네를 둘 것인가? 조합놀이대를 놓을 것인가?’처럼 놀이터에서 흔히 보는 요소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되었다. 놀이운동가들은 놀이 공간 포장재로 다양한 놀이를 유발하는 흙바닥과 모래를 추천하고, 고무 포장은 환경 상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관찰한 결과 모래는 뛰놀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이에 포장으로서의 모래와 모래 놀이 공간을 구분하자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다음 그네. 가장 요구도가 높은 시설이지만,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주변의 모든 어린이공원에는 그네가 있으니까 과감히 뺐다. 그네를 여러 개 놓아달라는 어린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조합놀이대에 대한 답은 쉽지 않았다. 서울시의 창의놀이터를 자문하면서 만난 놀이운동가들의 조합놀이대에 대한 반감이 자기 검열 기제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오르고 싶은 욕망, 하강하고 싶은 욕망을 좁은 공간에서 받아주기 위해서는 조합놀이대가 필요했다. 대신 아이들이 요구한 시시하지 않은 높은 미끄럼, 어른들이 놀이터 만들기 워크숍에서 제시한 숨을 수 있는 공간, 아이들의 뛰기를 방해하지 않기 등등을 고려해서 조합놀이대를 구상했다. 국내외에서 개발된 조합놀이대를 분석한 후, 우리 대상지에 맞는 조합놀이대를 구성해보는 작업을 거듭했다. 안전 규칙이나 기업마다 소유하고 있는 모듈의 문제로 최종 디자인은 시설물 회사에서 했지만 그 과정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 의심, 삼각뿔은 정말 불편한가? 한 계절 몰두한 작업. 한다고 했지만 모든 사람이 100% 만족하지 못한다. 어린이들은 나와 허브 향을 맡고 식물에 물을 주면서 신나게 놀아놓고는, “오늘은 안녕!”하며 돌아서는 내 등에 “그런데 이 놀이터에는 왜 그네가 없어요?”라고 불만을 표한다. 그리고 하루의 대부분을 공원 내 퍼걸러에서 보내시는 할머니들은 모든 바닥에 고무 포장을 깔지 않았다고, 허리 돌리기를 놓지 않았다고 얼굴을 볼 때마다 한 말씀하신다. 그리고 어린이공원 옆 어린이집 원장님은 3살 미만 아이들을 위한 흔들말이 없는 게 불만이시다. 그리고 우리의 삼각뿔. 바닥에 변화를 주기 위해 놀이 공간 가장자리에 놓았던 삼각뿔. 이 삼각뿔을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좋은 놀잇감이지만, 높이가 그리 높지 않고 포장색이 주변 바닥 포장과 유사하다 보니 걸려 넘어지는 분들이 개장 초기에 많았다. 이후 삼각뿔 주변으로 색을 칠하고 뾰족한 가장자리를 둥글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만이 있으시다. 울 구성원들은 주민들의 불만을 표하는 방식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만, 오기도 생겼다. “아이들은 좋아하잖아.” 진실을 알기 위해 현장에서 한 나절 동안 잠복 근무를 했다. 주민들이 어린이공원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삼각뿔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 듣고 관찰했다. 결론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없앨 수는 없어,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현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사죄했다. “저희 생각이 짧았어요. 구분이 잘 되도록 좀 더 색을 진하게 칠하겠습니다. 앞으로 익숙해지시지 않을까요?” 문제의 근본이 해결된 것은 아니고, 우리의 부족함을 아프게 깨달았지만 의심은 해소되었다. 어.설.자의 일, 그냥 하기 사소하게 시작된 질문이 아주 근본적인 것으로 내려앉을 때가 있다. 직장 생활이 재미없어서 시작한 질문이, ‘나란 인간이란?’이라는 질문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작업을 하면서 생기는 의심도 그렇다. 깊어지고 깊어지면 결국은 시스템에 대한 의심, 굳어진 인식 구조와 실천 방식에 대한 의심으로 귀납된다. 그리고 그래야만한다. 이 의심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이기도하다. 데카르트 같은 근대주의자들이 인간을 의심하는 주체로 세웠다면, 후기 근대주의자들은 인간이 만든 시스템을 의심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초기에는 어린이공원을 짓는 게 목적이었다. 1968년 10월 2일 조선일보 기사에는, “오는 1969년부터 3개년 동안 시내 3백2개 동마다 1개소씩 3백 평 내지 1천 평 규모의 어린이공원을 만들겠다”는 김현옥 시장의 포부가 실려 있다. 그런데 기자는 시장의 포부 아래에 그게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그 기자의 의구심과는 달리 현재 양적으로는 많은 놀이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 모든 놀이터가 너무 뻔하지 않냐고 이야기 한다. 개성 없이 비슷비슷한 놀이터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시스템적 이유가 있다. 제도 및 정책의 문제, 조경 산업의 문제, 전문가들의 문제 등등. 그래서 ‘우리의 놀이터는 아이들의 입장을 반영한 것인가?’에 대한 의심은 제도 및 정책, 조경 산업, 전문가들의 설계 방식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린이들을 위한 시스템인가?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인가? 그러고 보면 전복적인 설계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시스템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요가를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되어간다. 모든 관절이 다른 이들보다 29° 덜 펴지고, 19° 덜 구부려진다고 농담할 정도로, 요가를 시작하면서 얼마나 근육이 굳어져 있는지 발견했다. 얼마나 해야 ‘아등바등 몸짓’을 넘어 ‘요가 동작’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우리 선생님은 몸이 굳어져 온 세월만큼 걸린다고 아주 냉정하게 답하셨다. 요가라는 다른 맥락에 나를 놓지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 실감나게 굳어진 나의 몸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고 체계도, 실천의 방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맥락 자체를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이, 놀이운동가들이 던진 질문은 요가 동작과도 같았다. 의심을 풀기 위해 책을 보기도 하고 자문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궁극의 해답은 현장에 있다고 믿는다. 추상적으로 촘촘하게 얽혀진 시스템에서 나와, 그리고 선 지식은 가능한 한 괄호 속에 집어넣고 현장에서 날 것의 대답을 찾기. 그러면서 굳어진 근육이 유연해질 것이라 믿는다. 시민운동가가 아닌 설계자로서의 ‘주민참여’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려 한다. 모든 의심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몰두하다 보면 의심, 질문 자체가 익숙해지고 시시해진다. 우리가 어릴 적 품었던 많은 질문들이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별거 아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이란 책에서 “지금 뭔가를 쓰고 있다면 그는 소설가”라고 한다. 어쩌다 설계를 하고 있지만, 의심하며 매일 매일 한다. 별다른 결심 없이 시작한 것처럼, 별다른 결심 없이. 김연금은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으며, 커뮤니티 디자인 센터의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커뮤니티 디자인, 마을만들기를 일과 활동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을 발전시킨 『소통으로 장소 만들기』(한국학술정보, 2009), 일상의 경관에서 이루어지는 거시적 구조와 미시적 요소와의 상호 관계를 관찰하고 기록한 『우연한 풍경은 없다』(나무도시, 2011) 등의 저서가 있다.
  •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자클린 오스티 아틀리에 자클린 오스티 앤 어소시즈 대표
    자클린 오스티는 프랑스 국립 건축 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rchitecture at the Beaux Arts in Paris와 베르사유의 국립 조경 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부터 사무소를 개소해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블루아Blois의 국립 조경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클린 오스티의 초기 작업들은 매우 프랑스적이며 건축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3차원적 공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는 오히려 거대한 부지에서부터 작은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대상지와 씨줄과 날줄처럼 긴밀하게 엮어진 듯 한 맥락을 고려한 설계와 섬세한 접근을 강조한다. 그녀는 장소와 디자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주된 관심사라고 밝혔다.프랑스의 대표적 조경가로서 입지를 구축하게 해 준 아미앵의 생 피에르 공원Parc St. Pierre 등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이번 인터뷰는 주로 최근 작 파리 동물원 작업을 되돌아보았다(본지 4월호에 소개). 파리 근교 뱅센 숲에 위치해 뱅센 동물원이라 불리던 이곳은 원래 1934년도에 지어진 오래된 시설이었다. 1931년에 열린 국제 식민지 박람회Exposition coloniale internationale는 당시 프랑스가 제국주의적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국민에게 식민지 문물의 경이로움을 알림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고자 열었던 대규모의 전시 행사였다. 뱅센 숲에 수십 개 나라의 건축과 기묘한 문물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모아놓았으며 전시가 열린 6개월간 약 90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을 것이라고 추산된다. 동물원은 그때 전시된 식민지의 이국적인 동물들을 영구적으로 수용하고 전시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덕분에 동물원에서는 아직도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각각의 생물권biozone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식민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아프리카의 수단, 남미 프렌치 기아나,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 파타고니아 등이다. 또한 마치 엑스포 행사장과 같이 동물들의 공간은 무대plateaux와 분장실loges로 불렸다. 연극 무대의 개념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콘크리트를 이용한 인조 바위들 또한 이러한 연출적인 면을 더욱 강화해주는 요소다. 자클린 오스티의 리노베이션은 동물원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현재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즉, 오늘날의 동물원이란 신기하고 진기한 생물들을 보여주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80년 전 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이국적 동물들은 이제 인터넷을 통해 생생히 목격할 수 있는 현지 생태계의 잔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동물원은 아이들의 놀이동산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 낯선 문화에 대한 지적 자극이자 군사·경제적 우월감의 원천이 되었던 식민지 시대의 동물원은 소풍 가고, 놀이 기구 타러 가는 단순 위락 시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시대에 동물원은 여전히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파리 동물원이 찾는 새로운 의미는 생물다양성과 서식지에 관한 것이다.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 기반을 두고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해 왔다.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고, 주요 작품이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 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이며, 저서로 『시티오브뉴욕』(공저)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서 조경 설계를 연구하며 학생들이만드는 것의 기쁨을 알아가도록 돕고 있다.
  • [재료와 디테일] 중력과 싸우는 흙 쌓기
    이십여 년 전 설계사무실 초년병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배들이 다 그려놓은 하얀 트레이싱 페이퍼 뒷면에 먹을 넣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캐드에서 폴리라인polyline으로 봉합하고 솔리드solid를 채워 녹지 공간과 시설지의 공간을 구분하는 작업이 손쉬운 일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연필심을 곱게 갈아 모은 뒤 휴지에 묻히고 곱게 발라줘야 하는 극도로 정교하고 시간을 요하는, 초짜들의 시간 죽이기용으론 최고의 작업이었다. 게다가 조금만 삑사리가 나거나 균일한 농도를 맞추지 못해 얼룩이라도 생기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선배들의 가르침이 무지막지했다. 그렇게 도면에 먹을 먹이는 작업을 하면서 유심히 살펴 본 평면도의 녹지 공간에는 어김없이 지렁이처럼 생긴 점선들이 있었고 그 앞으로 경관석이라는 이름의 돌덩어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점선들은 흙을 쌓는 모양과 높이를 알려주는 마운딩mounding이라는 이름의 설계 기법이었다. 웬만한 당시 도면들에는 어김없이 이런 계획이 들어 있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장소를 답사 해보면 그 형태와 기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별생각없이 받아들이고 몸으로 익히게 되었다. 최근 경기도 인근에 작은 모델 정원을 만들면서 그때 일을 다시 떠올렸다. 터파기를 하며 나온 흙과 나무를 심을 웅덩이를 파내며 만들어진 엄청난 양의 흙이 봉긋하게 쌓여 있었는데, 그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했거니와 예전 마운딩 설계안이 머릿속에 겹쳐졌기 때문이다. 저 많은 흙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는 한숨과 함께 말이다. 흙이라는 재료가 너무 흔해서 쉽게 생각되지만 그 처리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단위 비중이 돌과 비슷한 몹시 무거운 재료이며, 쉽게 흘러내려서 쌓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면적도 많이 차지한다. 물론 쌓으면 많은 장점이 있다. 이미 단단하게 다짐된 공사장의 지반 위에 성토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흙의 구조가 떼알구조가 되므로 식물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경사면은 단조로운 경관에 입체적이고 풍성한 모습을 연출할 것이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 [공간 공감] 명동성당
    한동안의 어색함. 성당을 올라가는 계단 아래 모인 일행 모두는 대체로 그런 느낌이었다. 삼 년 만이라고도 했고 오 년, 아니면 그보다 더 되었다고도 했다. 너무 오랜만에 오다보니 이 우뚝 높은 종현鐘峴에 세워진 성당을 무심코 지나쳐 버렸다고. 명동은 이제 우리 세대의 기억에서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것인지, 상점거리에 넘쳐나는 외국인 관광객들 틈에서 우리말조차 낯설게 들린다. 시가지의 중심을 차지하고서 어느 방향, 어느 지점에서나 랜드마크가 되어주는 유럽의 성당과는 달리 명동성당은 이제 코앞에 다가서서야 비로소그 수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변을 둘러싼 높은 빌딩들, 그 커다란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광고물들 사이로 백 년이 훌쩍 지난 고딕 성당의 첨탑이 간신히 눈에 들어온다. 1898년, 이 아름다운 연와조 고딕 양식의 성당은 비로소 우리의 역사 속으로 편입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1882년 한미수호조약의 결과로 어느 정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어, 당시 교구장이던 주교 블랑M. J. G. Blanc이 성당 부지로 여기 종현 일대를 매수하여 성당건립을 추진했다고 한다. 1892년 5월에 정초식을 하고, 앞서 약현성당(지금의 중림동성당)을 설계한 바 있는 프랑스 신부 코스트E. J. G. Coste가 설계와 공사 감독을 맡았다. 그런데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이러한 서양 건축에 대한 기술자가 없었기에 벽돌공, 미장공, 목수 등을 모두 중국에서 데려와 일을 시켰는데 재정난과 청일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그 후 종현 일대에는 가톨릭 관련 시설들이 순차적으로 들어서게 되어 현재는 사제관, 교구청, 계성여고, 수녀원, 가톨릭회관(구 명동성모병원) 등이 본당 주변을 둘러싸는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칼럼] 공원에서 표정 짓기 Column: Make Expressions on the Park
    “공원엔 잘 가지 않고 산에 다닌다”고 답하고 나서 몇 초 후에 자주 다니는 도봉산이 국립‘공원’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또 다시 몇 초 후 집 근처에 벤치와 간단한 운동기구, 분수, 연못 등이 있는 곳이 ‘초안산근린공원’이라는 사실도 떠올랐다. 거의 매일 걷기 위해 가는 중랑천변 산책로도 어쩌면 공원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공원에 자주다녔고 공원 가까이에 살고 있는데 왜 공원에 다니지 않는다고 했는지 스스로 물었다. 나름의 답은 공원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는 것. 우선 공원이라고 하면 큰 규모의 인공 조림이 떠올랐고, 여의도공원이나 선유도공원 또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 같은 곳이 생각났다. 하지만 여의도공원은 가본 지 20년이 넘었고(그러니까 그땐 여의도광장이던 시절), 선유도공원은 5년이 넘었고, 뉴욕엔 가보지도 못했다. 공원에 대한 선입견은 하나 더 있다. 공원에 있는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인다는 것. 70대 할아버지가 농구복에 헤어밴드까지 하고 신중하게 드리블을 하다가 슛은 지나가는 사람이 제일 많을 때를 골라쏜다. 통 넓은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30대 여성이 철봉에 매달려 발을 버둥거린다. 길게 매달리지 못하고 이내 떨어지지만 한번 키득거리면 그만이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노부부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강아지가 예쁘다고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표정이다. 돗자리를 깔고 싸온 음식을 먹는 커플은 그 시간, 그 장소에 같이 있는 것에 만족하는 표정이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치들은 관심과 무관심의 적절한 조화를 찾고 있다. 무관심한 표정은 매사에 무기력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을 쳐다보면 오지랖이나 주책으로 보이기 십상인 것을 알고 있다. 분수대에서 놀든 공을 차든 모두 편안하고 여유 있어 보인다. 집 근처 초안산근린공원의 풍경이다. 여유로운 모습은 공원에 있는 사람들이 남들 보라고 일부러 짓는 표정이나, 단순한 선입견이 아닌 공원이 주는 표정이다. 공원이 있기에 생기는 여유다. 나무, 꽃, 잔디, 분수, 벤치, 간단한 운동기구가 주는 표정이다. 이런 것들이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젊음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되고, 몸을 움직여 보고 싶은 마음이 되고, 남들에게 관심을 주고 싶은 마음이 되는가 보다. 공원은 이런 이유로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규모에 상관없이…. 집 근처 공원에 갈 땐 어떤 옷을 입을지, 뭘 신을지 고민하게 된다. 모두가 여유로워 보이는 공원에 맞는 차림을 하고 싶어서 신경을 쓴다. 운동복 광고지에 나오는 여자처럼은 입지 않되 어쩐지 활동적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여자처럼 입으려 노력하고, 공원에 나가면 이번엔 표정이 신경 쓰인다(사람이 많은 곳에서 지나치게 자신을 의식하는 것은 직업병이다). 공원과 날씨에 어울리는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지만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은은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천성이 아니라, 괜히 혼자 퉁명스러운 표정이 된다. 도대체가 공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공이나 훌라후프라도 들고 나왔어야 한다고 후회할 때도 있다. 그래서 산에 간다. 산에 갈 땐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표정이 없다. 뭘 입을지 뭘 신을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냥 가장 편안한 옷과 신발, 물 한 통이면 그만이다. 도봉산에 가는 날은 주로 평일 낮이라 산을 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계속 올라가거나 계속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어딘가 앉아서 누군가를 쳐다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저 발 디딜 곳을 쳐다보거나 멀리 있는 봉우리를 간간히 보며 걷는다. 그럴 때 마음이 편안하다. 몸이 가벼울 땐 도봉산정상인 자운봉까지 가지만 주로 우이암이라는 봉우리까지 쉬지 않고 걷는다. 우이암에는 나만의 자리가 있다. ‘숨자’라고 이름도 붙여 두었다(‘숨은 자리’라는 뜻이다). 숨자는 무심코 지나치면 보이지도 않는, 한 사람의 엉덩이만큼의 빈 공간이다. 다리는 펼 수 없고 아래는 낭떠러지다. 다리를 접어 턱밑으로 바짝 당겨 앉아서 의정부, 상계동, 노원 등의 동네를 내려다본다. 가져간 물을 마시고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으면 참 좋다. 바람이 시원하고 눈앞이 시원하다. 숨자에는 바람이 잘 지나가서 땀도, 근육의 피로도 금세 날아가 버린다. 혼자 산에 오르게 하는 어떤 집착도 잠시나마 날아가고 몸과 마음이 뽀송해 진다. 그럴 때, 숨자에서 혼자서 바람을 맞고 있을 때, 내 표정이 어떤지 모른다. 미간은 펴지고 눈은 평소보다 가늘어지고 볼이나 턱은 밑으로 쳐지고 입은 살짝 벌어져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바람이 당겨줘서 눈 코 입이 평평하게 펴져 있지는 않을까? 숨은 자리에 자주 가고 싶은 걸 보면 본적 없는 그 표정을 제일 편안하게 느끼는 듯하다. 공원엔 가고 싶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숨을 수 있는 빈 공간이 많은 공원이 있는 건 어떨까? 산에 가보면 자신만의 자리에서 얼굴을 수건으로 덮고 누워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공원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고민하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닌 듯하다. 공원이 공공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빈 공간이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에게 평일의 국립‘공원’을 추천한다. 평일에 못가는 사람들은 주말 오후 3시 넘어서 가면 한적한 곳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서 남들도, 자신도 모르는 표정 하나를 발견해 보는 것도 공원이 주는 즐거움일 듯하다. 윤진성은 스무 살부터 연기를 하고 있다. 마흔을 넘기고는 여기저기서 연기 워크숍 강사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일 년의 반 정도 일을하고, 일이 없을 땐 도봉산 국립공원, 수락산(거의 국립공원 수준이다), 관악산, 제주도의 한라산 국립공원 언저리를 오르거나 걸으며지낸다.
  • [에디토리얼] 당신에게 공원은 무엇입니까? Editorial: What is the Park for You?
    이번 호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는 겨울과 봄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던 어느 오후에 구상되기 시작했다. 벌써 두 계절 전이니 꽤 철저하고 제법 정교한 기획일 거라 오해하시면 안 된다. 답답한 공기와 마감의 긴장으로 충만한 편집실에서 날이면 날마다 배달 음식 시켜먹으며 궁상떨지 말고 우리도 우리가 매달 다루는 근사한 공원 같은 곳에 가서 따스한 햇살 높은 하늘 벗 삼아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자는, 낭만을 빙자한 푸념이 그 발단이었다. 그나마 ‘단톡’으로 나눈, 회의를 빙자한 ‘집단 잡담’의 부산물이다. 요즘은 어느 직장에서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엄숙하게 앉아서 하는 회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카카오톡을 비롯한 여러 모바일 메신저가 회의용으로도 널리 쓰인다. 심지어 학과 교수 회의도 카톡으로 한다. 장학금 배분, 졸업생 사정, 논문 심사 같은 묵직하고 예민한 안건을 메신저로 다루는 시대! 『환경과조경』도 예외는 아니다. 에디터 모두가 둘러 앉아 진지한 표정 지으며 하는 토론의 횟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뭔가 찜찜한데, 몇 번 하다 보면 대면보다 부드럽고 대화보다 빠른 장점에 이내 길들여진다. 손쉽게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이모티콘의 힘을 빌려 표정도 관리할 수 있다. 마샬 버먼의 책 제목을 패러디하자면, “모든 견고한 것들은 카톡 속으로 사라진다All That Is Solid Melts into Kakaotalk.” 논리를 압도하는 재기와 발랄, 숙고를 뛰어넘는 순발력의 진격. 일순간에 휘발되곤 하는 이 과정에서 때로는 ‘득템’을 했다며 서로 흥분하고, 기막힌 아이디어를 건졌다며 기뻐한다. 이런 풍경에 심각한 의문의 부호를 단다면 시대착오거나 촌스러움일까. 진단은 사회학자나 심리학자의 몫으로 돌린다. 정작 우리 편집부에게 중요한 건 이번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가 매우 느슨한 카톡 회의의 생산품이라는 점이다. 치밀한 취재와 치열한 토론을 괄호 안에 잠시 숨긴 기획. 괜찮다! 괜찮을까 괜찮겠지…. 전문 분야로서의 조경은 기능, 미학, 생태, 구조, 운영 같은 무거운 숙제들을 공원의 켤레로 삼아왔지만, 원래 공원은 여유와 여백의 대명사 아닌가. 그래, 공원은 자유로운 곳, 아니 적어도 자유로워야 하는 곳이니까 느슨해도 괜찮을 거야. 다음 문단에서 지난 몇 달 간의 자유로운 ‘집단 잡담’을 대략 간추려 본다. ‘서울에 사는 일곱 사람, 그들의 공원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책 『더 파크』가 나왔다. 케이티 머론이 엮은 『도시의 공원』의 가벼운 한국판 변형? 여행, 도시, 건축을 휩쓸고 간 대중적 유행이 이제 공원으로 옮겨가는 조짐일까. … 라이프스타일 전반이 집에서 길로 향하고 있다. 물론 공원도 넓은 의미의 길이다. 삶이 집을 벗어난다는 건 개발 시대를 지탱시켜 준 가족과 스위트 홈 개념의 변화와 해체를 뜻한다. … 집 안에서 집 밖으로 일상이 옮겨가고 있다. 모든 종류의 만남을 집 밖에서 하며 산다. 여가 시간의 반 이상을 집이 아닌 곳에서 보낸다. 가족 모임도 식당에서, 공부도 카페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대표적인 집 밖 공간인 공원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무엇을 하며 사는가. 공원에서의 삶을 소프트하게, 그러나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특집, 괜찮다. 그래, 의미 있다. …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의 1인 가구 비율은 이미 전체 가구의 26퍼센트다. 지금 20대인 사람이 40대가 되는 2035년이 되면 35퍼센트에 달할 전망이다. 1인 가구가 핵가족조차 제치고 가장 많은 가족의 형태가 된다. 이건 문제가 아닌 현상이다. 이런 인구학적 변화에 따라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도시의 형태와 구조도 바뀌지 않을 수 없다. 공유를 키워드로 하는 주거 형식과 주택 형태의 실험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공원도 변할 것이다. 변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집, 공원.’ … 박해천, 전상인, 고미숙, 이런 필자들이 좋지 않을까.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사회학자노명우도 빼놓을 수 없다. 보스턴에서 열린 전시회 ‘에머랄드 네트워크: 도시 공원의 유산 되살리기’나 일본에서 진행된 설계공모전 ‘공원이 있는/없는 미래 2105’도 엮어 보자. 그렇다, 멋진 기획이 아닐 수 없다. … 아예 단행본으로 돌려서 대박을 꿈꾸는 게 더 낫겠다. 1만 부 돌파하면 동남아, 5만 부는 유럽, 10만 부면 미국 횡단! … 진정하고, 우선은 특집으로 간다. 과연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공원은 무엇인가. 나의 공원, 일상의 공원, 인생의 공원을 묻는다. 제목은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로 간다. … 필자 후보로 올렸던 인문학자나 사회학자 말고 우리가 직접 쓰자. 조경물 오래 먹은 우리만의 시각은 진부하지 않을까. 편집부가 총출동해 여름 한 계절을 온통 투자했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던 작년 9월호의 ‘활자 산책’ 특집처럼 되지 않을까. 그래도 간다. 우리 전원이 조경 잡지 에디터가 아닌 동시대 도시를 사는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한 개인의 시선을 가지고. … ‘괜찮다! 괜찮을까? 괜찮겠지’를 다시 몇 달 간 반복하면서 엄청난 양의 말풍선으로 모니터 한 구석이 도배됐다. … 드디어 마감이 코앞이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건 의문문 단 하나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그들의 응답을 듣지 못한 채 몇 시간 후면 발트 해연안의 에스토니아로 떠난다. 유럽조경학교협의회ECLAS 컨퍼런스에서 돌아올 때는 그들의 공원 이야기가 이미 인쇄소를 거쳐 10월호에 담겨 있을 것이다. 대부분 한 개인의 경험과 사정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지만, SNS를 점령하고 있는 노출증적 자기 취향 고백과는 다를 것이다. 동시대 도시를 사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이슈가 적지 않게 녹아 있을 것이다. 즐겁게 읽어주시고 독자 여러분도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에 응답해 보시길 기대한다. 본문 속 필자의 글처럼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밖에 떠오르는 게 없으시다면, 이렇게 물음을 바꿔보셔도 좋을 것 같다. 당신에게 공원은 무엇입니까.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엄살
    “엄살이 심해도 너무 심해.” 내가 아플 때마다 이마를 짚어주던 그녀의 진단이다. 좀 억울한 점도 있지만, 수긍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는 계속 아프다고 징징거릴 뿐이다. 그러니 “심하게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을 피우는 것”이라는 그녀의 진단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단, 투덜거리며 입술을 쭉 내민 채말이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두 달이 멀다 하고 병원을 들락거렸다. 먼저, 허리에 이상 신호가 왔다. 정확히는 오른쪽 허벅지 부근이었다. 잠을 잘못 자서 그러려니 했는데,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도 통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심해졌다. 걷는 게 불편할 정도가 되니 병원을 안 갈 재간이 없었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도 ‘그 가기 싫어하던 병원에 왔구나’라는 생각 따위를 할 여유가 없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그저 내 순서가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앉거나 서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아프니, 다른 생각은 모두 사치였다. 의사는 허리 디스크가 의심된다며 물리치료와 바른 자세, 스트레칭 등의 처방을 해주었다. 허리에 문제가 생기면 허벅지나 종아리 부근이 아프다는 점을 일러주었고, 상태가 더 나빠지면 수술을 할 수도 있다며 겁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리치료를 받고 사무실로 돌아와 가장 먼저 푹신한 의자를 딱딱한 의자로 바꿨다. 1시간에 한 번 정도 잠깐이나마 일어서서 일을 보았고, 의자에 앉아 있을 때도 나름 자세에 신경을 썼다. 돌아가는 코스이지만 조금 더 걷는 쪽으로 출근길 노선도 바꿨다. 그렇게 허리는 안정을 찾아갔다. 두 번째 병원 방문은 예기치 않은 사고(?) 때문이었다. 여름 휴가를 맞아 물놀이를 할 때였는데, 젖은 슬리퍼를 신은 채 계단을 내려가다가 스텝이 꼬이면서 미끄러졌다. 넘어지는 그 찰나의 짧은 순간에 ‘아, 워터 슈즈를 신고 올 걸’이라는 후회를 했다. 이미 같은 장소에서 반나절 동안 한두 번 미끄러질 뻔한 경험을 했던 터였다. 슬리퍼를 벗고 일어나서 몸 상태를 확인하니,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오른손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에 약간 피가 나고 부은 정도였다. 별로 다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자, 걱정이 썰물처럼 멀어져갔지만 부끄러움이 집채만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쪽팔림은 순간일 뿐이니까.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짐짓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파라솔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리곤 밴드를 붙이고 더 놀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휴가가 끝나고도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약국에서 산 연고의 효능을 믿었고, 시간의 치유력을 신봉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 붓기가 전혀 빠지지 않고 더 심해졌다. 게다가 손가락 마디 근처가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나흘 째 되는 날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인대 손상과 골절이라는 진단을 내린 후, 절대로 손가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반 깁스를 해주고는 붕대로 칭칭 동여맸다. 태어나 처음 해 본 깁스였다. 그 이물감과 불편함이란 상상 이상이었다. 두 달이 흐른 지금 네 번째 손가락은 완치되었는데, 다섯 번째 손가락은 여전히 붓기와 통증이 남아 있다. 깁스를 한 상태에서는 키보드 타이핑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 사무실에 있는 동안 깁스를 풀고 지낸 탓이다. 세 번째 병원 방문은 고열을 동반한 몸살, 네 번째는 심한 치통 때문이었다. 작년에도 몸살을 앓은 적은 있지만 고열이 난 적은 거의 없었다. 또, 가장 가기 싫어하는 병원이 치과이지만 치통이 심해지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치아의 신경을 강제로 긁어버리는 고문이 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떠올랐다. 통증이 더 심해지자, 머리보다 빠르게 손가락이 움직여서 어느새 나는 치과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 의사와 간호사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치과에는 앞으로 몇 번 더 가야 하지만 치통은 사라졌다. 열도 내렸고 몸살도 나았고 허리도 괜찮아졌다. 네 군데 병원을 찾은 덕분에, 지금은 다섯 번째 손가락에 만 통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올해는 잔소리를 안 해도 알아서 병원을 찾자, 그녀가 한 마디 한다. “진짜 아프긴 아픈가 보네.” 물론 한 소리 덧붙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건강할 때 운동을 하고, 좀 이상하다 싶으면 미리 미리 병원에도 가야지.” 결국, 엄살과 진짜 몸살의 차이는 아픈 ‘정도’에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안부 인사로 이야기의 물꼬를 트게 된다. 그 날의 날씨가 가장 만만한 소재이기 마련이다. ‘요즘 갑자기 쌀쌀해졌죠? 작년부터는 가을이 사라진 것 같아요.’ 같은 업종이라면, 업계의 동향을 포괄적으로 언급하면서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이쪽 경기는 왜 갈수록 어려워지죠’ 질문을 던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여전히 많이 바쁘시죠’ 내가 잡지사에 다니고 단행본도 만드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은 첫인사로 이런 말들을 건네곤 한다. ‘요즘 잡지사(혹은 출판사)는 사정이 좀 어때요? 아무래도 예전 같지는 않죠. 종이책 보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어서 걱정이 많겠어요.’ 이런 염려를 접할 때마다, 나는 ‘종이책 시장은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을 경신하고 있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엄살을 떨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엄살이었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엄살의 수준을 넘어섰다. 슬슬 정말로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종이책의 쇠락에 대한 체감의 ‘정도’가 그만큼 달라진 것이다.” 이런 내용의 글을 써내려가다가, 우선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모든 종이 잡지가 동일하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달 한 달 정해진 지면을 채우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종이 잡지의 역할과 지향점에 대한 고민이 느슨해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정에 호소하는 읍소보다는 냉철한 ‘진단’이 먼저 이루어져야 효과적인 ‘처방’도 가능할 터. 독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얼마나 시의 적절하게 제공하고 있는지, 독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고 싶도록 매력적인 잡지를 만들고 있는지를 먼저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등등의 고민이 이어졌다. 엄살로 치부하면 많이 억울하겠지만, 고열을 동반한 몸살과 극심한 치통이 마감 기간에 나란히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달 ‘코다’가 이렇게 뒤죽박죽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병원 방문기 내지는 질병 치유기로 점철된 까닭은…. 어디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여튼 엄살이 심해도 너무 심해.”
  • [편집자의 서재] 맛 Editor’s Library: Une Gourmandise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가볍게 붙였다 떼고 혀를 천장에 갖다대며 “맛”이라고 발음하는 짧은 순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는가. 쓴맛, 단맛, 신맛, 짠맛 등 네 가지 기본 맛에서부터 19금의 불온한 이미지까지. 고백하건대 이 책을 사게 된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이 책이 어떤 상을 받았는 지, 작가가 누구인지, 언제 나온 소설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표지의 덜 떨어져 보이는 인상의 젖소 쿠키가 잠깐 구입을 망설이게 했지만 결국 단순하면서도 함축적인 제목에 끌려 책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146쪽 밖에 되지 않는 소설쯤이야 ‘호로록’ 읽어버려야지’하는 생각으로 야심차게 책의 첫 장을 폈지만 몇 장 넘기지 않아방구석 양지바른 한 편에 고이 모셔두게 되었다. 뮈리엘 바르베리의 『맛』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음식 평론가가 인생의 마지막 48시간 동안 그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음식 중 최고의 맛을 찾는 미식 여정을 묘사한 소설이다. 책의 주인공이 음식 평론가이다 보니 원초적이고 간결한 제목과 달리 소설의 문장은 너무 길고 화려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도 많이 등장해서 읽다보면 ‘내가 지금 같은 구간을 계속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몽롱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콩을 뿌려 장식한 수척한 마들렌 몇 개를 접시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만족하고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르케의 디저트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다. 페이스트리는 하나의 구실, 즉 설탕과 꿀이 들어간 살살 녹고 크림이 발린 시편時篇을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거기에는 케이크, 설탕에 절인 과일, 글라사주,1 크레프, 초콜릿, 사바용,2 붉은 열매, 아이스크림, 소르베에 대한 광기 속에서 뜨거움과 차가움의 점진적인 변화가 연주되고 있었고 내 숙련된 혀는 강박적인 만족으로 지친 채 엄청난 희열의 무도를, 격렬한 지그를 추고 있었다. 번역이 썩 매끄럽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아이스크림에 대한 위의 묘사는 화려한 수식어를 너무 진지하게 구사하는 바람에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 나는 성급하게 책을 집어 들기 전에 책의 프랑스어원제목 ‘Une Gourmandise’는 직역하면 ‘맛’보다는 ‘진미’라는 뜻에 가까운, 상당히 고급스럽고 까다로운 단어라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다. 음식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취향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상하게 고집이 세서 조금 부끄럽지만 편식이 심한 편이다. 책이나 글을 읽을 땐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를 사랑한다. 특히 화려한 수식어나 관념어가 많고 길게 늘어지는 문장은 싹둑 잘라 깔끔하게 다듬어주고 싶다. 확고했던 나의 취향이 조금 바뀌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편집 일을 하고부터다.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가차 없이 재단하고 마름질해 ‘읽기 편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어쩐지 글을 고쳐놓고 읽어보면 입에 잘 붙지 않았고 개성 없는 문장이 되어 버렸다. 담당한 연재 원고를 매달 꼼꼼히 읽다보니 꼭지마다 필자의 특색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읽기 불편하고 어딘가 투박하더라도 글쓴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글이 내가 고친 무미건조한 글보다 친근하게 읽혔다. 익숙한 ‘맛’에 길들여져서 시간을 들여 읽으면 발견할 수 있는 매력을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맛』을 다시 읽었다. 처음 책을 읽을 땐 그토록 정신 사납게 느껴지던 문장이 이번에는 감칠맛 나게 느껴졌다. 질색을 했던 모호한 관념어와 화려한 수식어도 어느 정도 참을만 했다(솔직히 아직 극복하지는 못했다). 기억을 더듬으며 그동안 경험했던 황홀한 맛을 묘사할 때면 죽어가는 시한부임에도 과도(?)하게 흥분하는 주인공의 어투마저 왠지 모르게 유쾌하게 느껴졌다. 생야채를 마요네즈에 찍어먹는 행위의 관능성을 묘사하는 부분은 어찌나 아찔하던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소설 속에서 식탁 위의 군주로 군림하던 음식 평론가의 미식 여정은 슈퍼마켓의 싸구려 슈케트4를 맛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어릴 적엔 몰랐던 양파의 달짝지근함, 가지의 고소함, 고추의 풋풋함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처럼 확고하고 뚜렷했던 취향도 삶의 경험이 쌓이고 보는 시각이 넓어짐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 마련이다. 사실 편식은 편견과 무지로 비롯되는 것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번 호에는 조경, 도시, 건축계에서 이슈가 되었던 3개의 공모전이 연달아 실린다. 공모전이 많이 실린 잡지는 독자들에겐 다양한 유형의 설계 해법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편집자에겐 설계자의 의도와 전략을 이해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설계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려워서, 이미지가 별로라서 등 수많은 핑계를 대며 설계안과의 정면 승부를 피한적이 없었을까? 뒤돌아보니 성미가 급한 나는 맛을 보기도 전에 삼키려고 한 적이 너무 많다.
  • [시네마 스케이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반복과 차이
    어느 봄날, 첫 아이 낳은 후 정신없이 살던 두 아줌마가 어렵사리 저녁 나들이를 하게 됐다. 홍상수라는 신인 감독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짧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근처 맥줏집으로 향했다. 종로 연타운은 대학 시절과 변함없이 성업 중이었다. 마침 그날은 성년의 날이어서 그곳은 젊음의 열기로 가득했다. 대학 시절의 추억과 오랜만의 밤 문화에 살짝 들뜬 우리는 맥주를 빨리 많이 마셨다. 그것도 모자라 검정 봉지에 캔 맥주를 넣어 극장에 들어갔다. 시네코아라는 극장은 그런 짓이 살짝 용인되는(물론 근거 없는 주장이다), 소위 ‘아트 무비’로 분류되는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맥주를 몰래 마시기 위해 객석 가운데 있는 기둥 근처에 자리 잡았다. 관객은 몇 명 되지 않았고 영화는 소문대로 충분히 낯설었다. 맥주 탓에 둘 다 화장실을 들락거려서 가뜩이나 낯선 영화의 집중도는 현격히 떨어졌다. 영화가 끝날 때쯤 또 화장실에 다녀온 나는 갑작스러운 살인 사건 장면을 보고 누가 왜 죽인 거냐고 친구에게 물었다.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는데.” 그 후 내게 홍상수의 영화는 얼마 동안 ‘잘 모르겠는’ 영화였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국내외 비평가들은 엄청난 찬사를 보냈으며 논문 주제로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영화는 점점 단순해지는데 평론은 더 어려워지고 심오해졌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첫날 달려가서 봤다. 기존 상업 영화들이 식상해서였는지 ‘아트 무비보기’라는 허세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찌질한 남자가 등장했고, 그들은 항상 술을 마시며 남자는 여자와 자거나 혹은 자고 싶어 했다. 더는 극장에서 맥주를 마시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소주가 마시고 싶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