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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료와 디테일] 콘크리트 벽돌, 그 변신은 무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늘 경계에 눈이 간다. 긴 담장이 공간을 구획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사용된 소재의 대부분이 벽돌이다. 붉은색 벽돌도 있고 회색 콘크리트 블록도 많이 보인다. 쉽게 쌓을 수 있고, 땅의 압력(사면 압력)을 크게 받지 않는 곳이라면옹벽을 치지 않고도 좋은 입면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널리 활용되었을 것이다. 몇 장씩 내어 쌓기도 하고 구멍을 만들어 내는 등, 벽돌만이 만들 수 있는 특유의 패턴으로 거리에 활력을 불어 넣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재료비를 많이 쓸 수 없는 외곽이나 사람의 시선이 덜 가는 외진 곳에 쓰이는 경우가 많다. 요지에 쉽게 쓰지 못하는 이유를 소재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서 찾기도 한다. 벽돌이란 소재의 가치를 아는 일반인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벽돌을 활용해 건축물 내부를 구획한 공간을 우연히 본 적 있는데, 소재의 원초적 질감에 생경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런 소재가 외부에만 나오면 이상하게 저급한 재료로 치부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 주위에 있는 군부대 담장이나 예비군 훈련장의 시가 전투장, 혹은 저렴하게 지은 경비실 등에서 돈들이지 않고 손쉽게 지어진 공간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재료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새롭게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된다. 몇 해 전 지방의 한 정원박람회장에 작은 공간을 만들 기회가 있었다. 실제보다는 관념적인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작업에 임했으나 결과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 [공간 공감] 창덕궁 후원
    창덕궁 후원. ‘공간 공감’ 코너에서 두 페이지로 다루기에는 그 무게감을 이기기 힘든 장소다. 국가대표 정원을 대상으로 허투루 설계 담론을 펼치다가는 뭇매를 맞을 것이 뻔하다. 게다가 한 차례, 그것도 제한된 시간의 가이드 투어를 통해 담론의 깊이를 추구한다는 것 역시 무리수다. 하지만 공간 자체가 위압적이거나 엄숙함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차분하고 정갈하다. 불과 몇 십 미터의 거리를 두고 복닥거리는 현대의 삶과 대비되는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처음이 정원을 만들고 가꿔 온 다양한 스토리를 상상하면서 다른 각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참이다. 메르스 여파로 비교적 한산한 토요일 아침, 해설사가 인솔하는 무리에서 가장 뒤쳐져 걸으며 ‘후원 달리 읽기’궁리를 시작했다. 후원은 왕의 정원이었다. 정원의 첫 시작은 지금부터 약 610년 전인 태종 때였다. 여러 왕을 거치면서 확장과 수정이 행해졌으며, 230여년이 지난 인조 때 옥류천 일대까지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시 140년의 세월이 흘러 영·정조 때 부용정 일대를 조성했고, 순조 때 연경당을 지으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후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무려 42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가꿔 온 장소다. 당시 왕이 거닐던 후원의 모습은 또 다시 180여년이 지난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 비평: 늙은 근대성과 도시 공공성의 스펙터클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해 공공 공간을 다루는 전략적 태도는 무엇인가? 서울시는 지난 6월 16일 제출된 82개 작품 중에서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 당선작으로 이_스케이프(대표 김택빈)와 장용순(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상구(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팀이 공동으로 제안한 ‘현대적 토속Modern Vernacular’을 최종 선정했다. 이번 공모전에서 요구한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 공간 설계는 세운상가의 민간 소유 영역을 제외하고 서울시가 소유권을 갖고 있는 공중 보행 가로인 데크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당선작을 중심으로 설계안을 들여다보자. 당선작, 2등작, 그리고 3등작은 일견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한 인식의 차이를 갖고 있다. 애매모호한 가치를 설정하거나 경직된 건축화의 태도로 일관한 안들과 달리 당선작은, 세운상가를 둘러싼 공간 담론, 세운상가에 대한 공적 개입의 타당성, 세운상가 내부목소리에 대한 이해, 그리고 도시와 삶의 흔적에 대한 존중이란 네 가지 측면에서 볼 때 확실한 비교우위를 갖는다. ‘Modern Vernacular’ 즉 ‘현대적 토속’이란 제명이 대변하듯이 당선작은 공공공간에 개입함으로써 세운상가를 넘어서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좀 더 큰 틀에서의 도시 역사, 공간 구조와 장소성을 보완하거나 복원하는 데 가치를 부여했다. 당선작의 보행 데크 활성화는 크게 보면 남북축의 기능에 의존한다. 세운상가의 동서축 연결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느슨하다. 개발 시대 세운상가라는 거대한 구조물로 인해 단절되었던 동서 양축과 기존 도시 조직의 연결에 대해 여백과 흐름의 가능성을 남겨 두는 것이 오히려 적극적인 해결이 될 수 있다고 본 점은 인위적 개입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있어서 좋다. 남북을 잇는 보행 데크를 복원하여 구체적인 프로그램 공간을 삽입하고 세운초록띠공원 자리는 종묘와 연결되는 경사진 광장으로 전환하는 제안이 남북축 보행 데크 활성화의 주된 내용이다. 이렇듯 남북과 동서축에 대해 서로 다른 언어로 접근한 것 역시 도시 구조의 역사와 장소성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 듯하다. 당선작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세운상가의 공공 공간에 대한 개입은 여전히 개념과 해석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는다. 왜냐하면 거기엔 세운상가 내부의 치열한 목소리가 들리기 않기 때문이다. 세운상가를 소유에 따라 서로 다른 두 개의 주체로 분리해서 접근하다 보니 복잡하게 얽힌 내부의 목소리를 공공이 소유한 공공 공간으로 이끌어낼 수 없었다. 이는 결국 세운상가 활성화를 ‘밖에서부터 안으로’, 즉 추진하기 쉬운 곳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서울시의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가 공공 공을 다루는 전략적 태도다. 본질이 문제의 핵심을 우회하고 있는데, 세운상가는 과연 활성화 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든다. 빅 플랜을 넘어서기 위한 공공 공간 개입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확보될 수 있을까? 세운상가를 개발 시대의 빅 플랜Big Plan의 상징이라고 보자. 시대가 바뀌고 도시적 상황이 변화했다. 가장 크게는 세운상가를 지탱해 온 도시 산업 생태계의 몰락을 들 수 있다. 이제 다른 가치로 세운상가의 시대성을 읽어 내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야 한다면, 가장 우선해야 할 태도와 접근이 과연 공공 공간인 데크의 활성화이어야만 했을까?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울시가 내세운 세운상가 보행 데크 복원이 도대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봐야만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거대 스케일의 보행 데크가 완성되면 종묘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보행 녹지축이 형성된다고 한다. 서울 시민들이 도심에서 남북으로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고도 한다. 더 큰 틀에서 보면 보행 데크를 통해 연결된 남산은 향후 용산과 한강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곧 종묘, 북악산, 삼각산을 통해 백두대간이 한강까지 이어지는 생태계의 중요한 연결 통로의 회복을 상징하는 역할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환상은 우리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리는가? 이영범은 1986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영국 AA 스쿨 대학원에서 도시 공간 이론으로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는 시민단체인 도시연대에서 커뮤니티디자인센터를 설립해 주민참여 디자인을 통한 마을만들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경기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저서로는 『도시의 죽음을 기억하라』, 『뉴욕 런던 서울의 도시재생 이야기』(공저),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다』(공저),『건축과 도시, 공공성으로 읽다』(공저), 『사회적 기업을 이용한 주거지 재생』(공저), 『새로운 도시재생의 구상』(공저), 『우리, 마을만들기』(공저), 『도시 마을만들기의 쟁점과 과제』(공저) 등이 있다.
  • [칼럼] 조경의 페다고지를 논할 때다 Column: Pedagogy of Landscape Architecture
    대학 신입생 시절, 영어 토론 서클의 첫 텍스트가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였다. 원서를 읽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내용에는 쉽게 공감이 갔다. 진정한 교육은 선생이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주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게 책의 메시지였다. 시간이 한참 흐른 요즘 나는 교수법이나 교육론으로 번역되는 페다고지에 다시 관심을 두고 있다. 올해로 조경학과에서 교수로 생활한 지 20년이 되는 나는 오는 가을 학기부터 1년간 연구년을 가질 참이다. 과연 내가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는 수업방식이 최선인가? 매너리즘에 빠져 유사한 수업내용과 과제를 반복하지는 않았는가? 내 수업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식 체계를 완성하는 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이와 같은 교육 현장의 실존적 고민을 연구년 동안 풀어야 할 숙제로 삼았다. 최근에는 우리 학과 교수들과 학생 교육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교과 과정의 개편과 신규과목 개설에 관한 논의는 늘 있어 왔지만, 이번 논의는 보다 절박한 상황이 계기가 되었다.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여러 교수가 지닌 역량을 어떻게 수렴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점점 감소하는 대학원 입시 지원율에 어떻게 대처 할 것인가 등이 핵심 주제다. 교과 과정의 구성과 수업 간의 교육 내용 조정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있지만, 교수 방법에 대한 문제까지도 함께 토론할 계획이다. 페다고지에 관한 논의는 교육 과정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 나는 두 학교에서 학과장을 맡아 교육 과정을 계획하는 일을 경험했다. 조경학과의 교육 과정이 이론theory, 테크닉technique, 실기praxis의 세가지 틀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론은 역사와 비평, 인접 분야에 대한 지식을 다룬다. 테크닉은 생태나 공학적 지식과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활용하는 능력을 기른다. 실기는 주로 스튜디오 과목으로 현장 중심의 프로젝트 수행 역량을 다룬다.학교마다 어떠한 인재를 길러낼 것인가라는 교육의 비전이 다르기 때문에 상이한 교육 과정을 구성하게 된다. 내가 조경 교육 과정을 다룰 때 고민했던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론, 테크닉, 실기 영역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가? 교수를 처음 시작하던 무렵 한 선배 교수가 던진 질문은 늘 나를 고민하게 해왔다. 조경의 현실 상황이 열악한데 지나치게 추상적인 담론에 몰두하는 것이 타당한가? 너무 많은 이론적 지식만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준비시키는 데 소홀하지 않는가를 늘 염두에 두곤 했다. 둘째는 조경 교육의 핵심 영역과 주변 영역을 어떻게 구성하고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다. 전통적으로 조경가에게 요구되어 온 지식이나 기술과,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새롭게 요청되고 있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전자는 생태적 지식과 땅을 다루는 기술이고, 후자는 지역 커뮤니티와 협력하고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한정된 시간의 교육 과정에서 역량을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는 늘 선택의 문제로 남는다. 셋째는 한국적 상황에 적합한 교육 과정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의 조경 교육은 해외 대학의 교육과정을 도입해 변용해 왔다. 그러나 사회적 배경이 다르고 졸업생이 취업하는 시장이 상이한 상황에서 유사한 교육 과정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에게 적합한 조경 교육의 내용과 형식을 찾아내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쉽게 찾기는 어렵다. 공론의 장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내용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테크닉이나 실기보다 이론이 과잉인 상황이다. 현장에서 요구되는 조경 고유의 지식 체계와 기술력이 빈곤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없다. 최근 조경계 전반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건설 경기의 위축 등 외부적 상황 때문이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에 질 높은 서비스로 대응하지 못한 내부적 상황에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빈곤한 실무분야의 근원을 따지다 보면 조경 교육의 부실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교육 현장의 교수들은 교육에 관해 얼마나 치열한 고민을 했는가?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 학계는 조경 교육에 관한 논의에 인색한 편이다. CELACouncil of Educators in Landscape Architecture를 비롯한 여러 외국 학회에서는 조경교육에 관한 다양한 발표와 토론이 전개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조경 교육 과정과 교육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한국조경학회지』(2015년 2월)에 실린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의 ‘조경 교육에 있어 학습자 중심 스튜디오 수업의 쟁점’이라는 깊이 있는 연구를 발견할 수 있어 반가웠다. 미래를 변화시키려면 교육에 주목해야 한다. 후속세대에게 좋은 조경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공감하는 일이다. 이제 조경 교육에 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자. 작은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서로 교육 현장의 고민을 나누자. 그리고 교육의 내용과 결과물을 공유하자. 좋은 시도와 성과는 많은데 서로 공유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조경 교육, 서서히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대학정원이 축소되고 취업난이 가중되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조경을 공부하는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조경진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서울시 공원녹지 총감독, 서울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마곡지구에 본격적인 식물원을 도입하면서공원과 결합하는 작업의 코디네이터인 마곡중앙공원 총괄계획가를맡고 있다.
  • [에디토리얼] 하지운이다 Editorial: Her Name Is Ha Ji Un
    12년 전의 봄, 한두 주짜리 단기 프로젝트를 열 개정도 진행하는 기초 디자인 스튜디오 첫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출석부의 이름을 정성껏 부르다 마지막 줄에서 눈이 멈췄다. 한 여학생 이름 옆 칸의 소속이 경제학과로 적혀 있었다. 네, 하고 대답하는 쪽을 보니 얌전한 인상의 여학생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손을 들고 있었다. 기본적인 드로잉 훈련도 되어 있지 않을 테고 또 과제물이 적어도 매주 이틀은 밤을 새워야 할 분량인데 괜찮겠냐고 물었다.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고 지치면 알아서 관두겠지, 흘려 생각하며 수강을 허락했다. 다음 주, 그는 출석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석이 아니라 외모가 몰라보게 달라진 것임을 곧 깨달았다. 조용하고 수줍은 여학생이 한 주 만에 레게 머리의 힙합 걸이 되어 있었다. 뭔가 이상했지만 그러려니 넘어갔다. 세 번째 주는 복고풍 세라복에 단발이었다. 한 주가 또 흐르자 노란색 긴 머리와 빨간 원피스의 조합이었고, 그 다음 주엔 검은 커트 머리에 타이트한 스커트의 오피스 걸 룩. 매주 화장 색조와 톤이 급변했고, 목과 귀와 팔과 발의장신구가 달랐음은 물론이다. 이 다채로운 변신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의 설계 작업에 주목하지 못했다. 학기가 삼분의 일이나 흐른 뒤에야 겨우 알아차렸다. 그의 머리, 의상, 화장, 장신구가 모두 주별 디자인 프로젝트의 일부라는 것을. 디자인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매체로, 또 때로는 설득하는 도구로 자신의 신체까지 사용한 셈이다. 설계 성과물의 일부인 그의 외양은 학기말까지 매주 달라졌다. 순전히 설계안의 개념 때문이었다. 인형을 동반하기도 했고, 장난감 권총 같은 소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최종 발표 때는 급기야 뽀글뽀글한 ‘아줌마 파마’를 하기에 이르렀다. 가을 학기에도 그 여학생이 조경학과에 나타났다. 조경을 복수 전공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연구실로 불러 물었다, 조경이 좋니? 네. 조경이 뭔 거 같아? 잘 모르겠어요. 의외로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그럼, 왜 조경이 좋은데? 그러자 매우 논쟁적이지만 아주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일상적인 공간에, 장소에, ‘나를 표현’할 수 있어서요.” 그 학기에도, 학회가 주최하는 여름 디자인 캠프에서도, 또 졸업 작품 때도 평범한 선생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작품’을 들고 왔다. ‘설계 잘 하는 학생’이라는 어떤 관례적 기준으로 보자면 그의 결과물은 모범답안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표준화된 스튜디오 시스템과 관성에 젖은 설계 교육에서는 생산되기 힘든 독특한 생각, 그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설득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의 이름은 하지운이다. 조경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학생에게 차마 말할 수가 없어 나는 “조경하기 참 아깝다”는 생각을 여러 번 속에 묻었다. 졸업 작품 리뷰에 초청한 한 조경가도 똑같은 말을 내 귀에 속삭였다. “쟤는 조경시키기 아까운 애다.” 물론 이 말은 우리 조경 현실이 그런 독창성과 상상력을 포용하고 배가시켜 줄 수 있을 만큼 풍요롭지 못하다는 아쉬움과, 꼭 탄탄한 실력을 갖춘 조경가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동시에 담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졸업 무렵 지운이는 광주아시아문화전당 프로젝트에서 인턴을 잠시 하게 되었다고 알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어느 조경설계사무소에 취직했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사오 년이 흘렀을까, 한 심포지엄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예전의 그 하지운이 아니었다. 악수 외 몇 마디 말도 나누지 못했지만, 조경에 찌들고 지친 지극히 평범한 조경설계사무소 대리급 직원으로 변한 그가 한눈에 보였다. 오랫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운이다! 얼마 전 한 페이스북 친구가 링크한 기사를 읽고 평소에는 거의 안 해본 ‘공유’라는 걸했다. 그리고 아쉬움과 반가움과 기쁨이 뒤섞인 마음으로 바로 이렇게 적었다. 하지운이다! 베를린의 샤우뷔네Schaubühne라는 극단이 공연하고 있는―240시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진행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드라마 ‘미트Meat’를 다루며 출연 배우를 인터뷰한 기사다. 드라마의 내용과 진행에 대한 긴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 한국에서 배우 지망생이었나요? 여배우 하지운의 답이 이어진다. “원래는 조경가였어요. 5년간 회사에 다니기도 했고요. 연기자는 어릴 때부터 꿈이었어요. 다만 집안이 보수적이었기에 이를 말하기가 쉽지는 않았었죠. … 베를린에서는 독립영화를 찍기도 했고, 본디지 페이리즈Bondage Fairies의 ‘헤드 온Head On’이라는 뮤직비디오 촬영에도 참여했지요.” 하지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또 다른 형식의 조경 설계를 실천하고 있다. 이번 호 ‘설계 교육’ 특집을 의식해서 쓴 에디토리얼의 초벌 메모 파일을 지웠다. 표준화된 설계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 설계 교육은 조경가로서의 기본기를 연습시키는 전문 교육일 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한 안목과 자기 주도적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교양 교육이기도 하다, 조경 교육 인증 제도가 필요하다는 류의 이야기를 적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지운을 다시 만나니 하지운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설계 교육의 형식과 내용이 아직 불안정한 게 한국 조경학의 현실이니 보편적인 틀을 고민하는 게 먼저겠지만, 평균의 그물을빠져나가는 잠재력과 가능성에도 시선을 줄 필요가 있다. 하지운을 다시 생각하니 이번 호 ‘그들이 설계하는 법’이 자꾸 겹쳐서 떠오른다. 머리카락만으로 공간 만들 생각을 한 조리나 소장 같은 조경가로 하지운을 자라게 할 방법은 없었을까.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나의 공원
    대단한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이번호 코다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한창 개봉 중인 영화 이야기는 아니니 괜한 걱정은 붙들어 매두시길. 1. 공원을 보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란 물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네 컷의 사진이다. 잡지에 사용한 적도 있고, 단행본에 참고 이미지로 쓰기도 했다. 사진의 주인공은 공원이다. 뭐 대단히 유명한 곳은 아니다. 분당 까치마을에 있는 ‘벌말공원’이란 자그마하고 평범한 공원이다. 실제로 공원으로 이용(?)해 본 기억도 거의 없다. 그저 무심히, 묵묵히 지나쳐 갔을 뿐이다. 거의 매일. 집에서 사무실로 출근하려면 그곳을 거쳐 가야 했으니까. 그런 곳을 카메라에 담은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집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유일한 녹색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일 년 동안 꾸준히 한 공간의 사계절을 기록해보리라 마음먹고 나서 떠오른 첫 번째 공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열두 달짜리 나만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아침, 점심, 저녁, 한밤중 시간대를 달리해 가며, 5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특히 빗발이 흩날리거나 소복이 눈이 쌓인 날이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당시는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되지 않은 때여서, 슬라이드 필름 값을 아끼겠다고 한 번에 열 컷 이상은 찍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같은 앵글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맨 처음에 촬영한 사진을 인화한 후 드럼 스캔을 받고 그걸 출력해서 카메라 가방에 넣어 놓고는 매번 들여다보며 셔터를 눌렀다. 바닥에 나만 아는 촬영 포인트도 표시해놓고, 줌렌즈의 줌 기능도 고정시켰다. 그렇게 해서 건진 ‘벌말공원의 사계’를 담은 네 컷의 사진을 재탕, 삼탕 우려먹었다. ‘이용’하지 않고 바라보거나 지나간 공원이지만, 여러 갈래의 출근길 동선 중에서 벌말공원을 경유하는 코스를 잡은 건 최단 거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공원이 있어서였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아주 가까이에 있는…. 2. 공원을 읽다. 네 컷의 사진에 이어 떠오른 건 두 권의 책이다. 조경비평 봄 멤버들과 함께 쓴 『공원을 읽다』(나무도시, 2010)와 환경과조경 편집부가 엮은 『한국의 공원 - PARK_SCAPE』(도서출판 조경, 2006). 『한국의 공원』에는 선유도공원부터 포항환호해맞이공원까지 총 서른 곳의 국내 공원을 수록했다. 특히 절반 이상의 공원은 사진을 새로 촬영했다. 그 덕에 집에서 가깝지도 않은 선유도공원, 올림픽공원, 하늘공원, 평화의공원을 그 해에만 서너 번 방문했고, 일산호수공원, 길동자연생태공원, 여의도공원, 파리공원, 서울숲,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분당중앙공원, 서대문독립공원, 용산가족공원, 울산대공원도 한 번 이상 찾았다. 순전히 촬영을 목적으로…. 그렇게 많은 공원을 자주 방문한 경우는 그 해가 유일했다. 당시 잡지원고에 종종 등장하던 파리공원도 솔직히 그 때 처음 가보았다. 다음 해에 국내조경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쓸 일이 생겼는데, 이때의 답사가 무척 유용했다. 공원 중에서는 선유도공원, 하늘공원, 올림픽공원, 일산호수공원, 평화의공원을 그 글에 소개했다. 특히 선유도공원, 하늘공원, 올림픽공원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서울숲은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서서울호수공원과 북서울꿈의숲은 완공전이었다. 개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는 공원 리스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공원』이 답사의 추억으로 남은 책이라면, 『공원을 읽다』는 그야말로 독서의 즐거움으로 기억되는 책이다. ‘근대, 극장, 정치, 정원, 놀이공원, 산, 물, 네트워크, 노인, 밤문화, 안전, 도시’ 등 12가지 키워드로 공원을 들여다 본 기획이었는 데, ‘노인, 밤문화, 안전’처럼 의외의(?) 키워드가 등장해 교정 보는 내내 흥미진진 했다. 특히 이경근의 ‘도시의 산, 한국의 공원’은 자신 있게 주변에 일독을 권했다. 『한국의 공원』이 주요 공원의 현장 답사를 이끌었다면, 『공원을 읽다』는 공원에 대한 다양한 담론 탐색을 이끈 셈이다. 3. 공원에 가다. 출근길에 지나쳐 간 공원을 빼고, 가장 많이 찾은 공원은 일산호수공원이다. 아마 방문 기록 2위는 마로니에공원이나 분당중앙공원이 아닐까 싶다. 마로니에공원은 목적지는 아니었다. 대학로 주변에서 데이트를 꽤 많이 한 덕분에 그 공원을 종으로 횡으로 참 많이도 지나다녔고, 그늘이 좋아 쉬어 간 적도 많다. 순전히 공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 빈도로만 따지면 일산호수공원, 분당중앙공원 순이다. 일산과 분당에서 몇 년씩 살았으니까. 근데 신도시 두 곳에서 산기간은 비슷한데, 공원을 방문한 횟수는 제법 차이가 난다. 여가 시간을 보내는 패턴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특히 아이한테 미안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주말 방콕을 즐기는 건 똑같다. 다만 분당에 살 때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거나 아주 어렸고, 공원도 차를 타고 15분 이상 이동해야 했다. 일산으로 이사한 후 아이는 신나게 뛰어 놀 나이가 되었고, 현관문을 열고 단지를 빠져 나와 6차선 도로만 건너면 바로 공원이었다. 일산을 떠나 파주로 이사한 후에도 파주에 있는 공원이 아니라, 일산호수공원을 찾았다. 아이가 혼자 힘으로 자전거를 타게 된 이후에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놀았고, 공원에서 진행되는 행사도 몇 차례 구경했다. 요즘처럼 무더운 한여름에는 해질 무렵 노래하는 분수대 주변에서 치맥을 즐기기도 했다. 일상과 공원이 가장 밀접했던 한 때였다.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뭣하지만, 10월호 특집으로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를 준비하고 있다. 그냥 이 질문 하나만 던지고, 7명의 에디터가 각자 떠오른 생각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써보기로 했다. 누구는 직관적으로 떠오른 공원을 소개하겠지만, 누군가는 이 질문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나의 공원은 어디에도 없다’며 왜 그러한지를 따질 것이다. 공원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나 장면을 소환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느슨하게 공원의 일상과 쓰임과 필요와 의미를 엉기성기 재구성해 볼까 한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이번 달 코다에 ‘나의 공원’ 이야기를 다해버렸으니, 다음 달 특집에는 뭘 써야 하지?
  • [편집자의 서재]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편집자의 서재에 쓸 책을 고민하다가 나의 서재를 확인했다. 독서 패턴을 알아보기 위함이랄까. 디자인과 관련해서는 형태와 도구에 대한 실험 또는 기술에 대한 관심에 따라 구매한 책들이 대부분이었고 2000년대 나온 책이 상당수였다. 고전으로 분류할 만한 건 찾기 어려웠다. 항상 새롭다는 것들 중에 이상하거나 특이한 것이 좋았고, 떠오르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업과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집중했다. 사들이는 책도 마찬가지였고, 대개 화려한 이미지가 가득했다. 두 달 전쯤 그달의 눈요기를 책임져줄 책을 찾고 있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나의 검색 습관에 따라 이런 저런 책을 추천했는데, 그날은 까만 바탕의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폰트로 제목만 달려 있는, 처음엔 ‘이게 뭔가 싶은’ 책을 추천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이미지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출판사 로고에 불과했지만, 『디자이너란 무엇인가』(노먼 포터, 최성민 역, 작업실유령, 2015)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랫입술을 깨물게 했다. ‘그러게. 내가 좋아한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그게 뭐지’싶은 거다. 충격이었다. 노먼 포터Norman Potter가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논하는 그 독특한 방식은 그동안의 환상을 처참히 무너뜨렸다. 힘든 일이라는 건 질릴 만큼 들어왔지만, 그럼에도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 자체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 10대 청소년이 아이돌에 갖는 환상처럼 말이다. 내지의 절반 이상을 실무에서의 디자인 노동 과정과 그 고뇌에 할애하고, 그 부분을 짙은 주황색 내지에 담아낸 책의 편집 방식부터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왔다.1 “디자인작업의 10%는 영감에 의존하고 나머지 90%는 고된 노동, 즉 일종의 예술적 업무행위로 이루어진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그렇다는 거지, 책의 형식과 메시지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넌 아무것도 모른다.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미친 짓임에도 이 책에 언급된 내용을 잘 해낼 수 있으면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 더 나은 디자인 교육(수습)의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한다. 찾아낸다 해도 넌 웬만하면 실패할 것이다.’ 자주 들어왔던 이야기 아닌가? 처음 이 책을 받아들면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한 책으로만 읽힐 수 있다.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때처럼 가끔은 논점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기도 하지만, 결국엔 끊임없이 디자인의 사유와 산물에 숨은 (노동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나아가 디자인을 공부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단순히 도면 위의 스케치 아티스트가 아닌 실천적 디자인을 갈구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직업적’ 소명을 열렬히 설명한다.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라고 말이다. 두 달간 거의 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이런 저런 생각을 끄적이고 밑줄을 그어대어 지저분해진 책을 다시 펼쳤다. 밑줄 친 부분은 “믿지 말아야 한다”, “~하기 어렵다”, “바람직하지 않다”, “착각이다”, “~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로 안된다”까지 상당수가 부정적인 서술어로 마무리 짓는 문장이다. 얼마 전 나를 가르쳤던 교수가 한 말이 오버랩 되었다. “어쩌면 학교에서는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 쉽게 갖게 되는 (변화를 이끌겠다는 식의) 영웅 심리를 버리지 못하거나 마음 한 구석에 숨겨 놓는 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쉽게 스스로를 포기할지 모른다.” 포터는 그런 영웅 심리를 끌어내리려고 한 것일까? 끊임없이 겸손의 태도를 갖길 바라며 학교에서 배운 건 디자인의 몇 가지 기본 사항을 확인한 데 지나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 1년 간, 타협과 양보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고백(?)’하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를 만날 수 있었다. 같은 시기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담당 에디터로 있으면서 이 연재를 ‘그들이 설계하는 법: 화려한 모습 편’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기획 의도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초년생 디자이너와 학생을 주요 독자층으로 한다’는 것이긴 하지만, 실패한 경우보다는 잘된 프로젝트나 남에게 보여주기에 좋은 경우를 보여주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던 건 아닌지. 또 주관적인 편집을 거친 이야기에 현실을 잘 모르는 목표 독자층은 글로는 표현될 수 없는 (90%의) 노동을 배제한 채, (10%의) 영감과 화려함만을 읽어내는 것은 아닌지. 지나친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질문’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60세를 훨씬 넘긴 어느 유명 디자인 스쿨의 교수를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두 시간의 인터뷰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이 책에 대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공식적인 자리였음에도 결국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서, 그 갈피를 잡는데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던진 “디자이너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나도 모른다. 그럼에도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라고 짧게 답할 뿐이었다. 그때서야 ‘요약: 학생은 디자이너이다’라는 8장의 제목을 시작으로 조각난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는 듯했다.2 “우리를 기다려 주는 역할 따위는 없다. …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되묻는 … 학생이 확신할 수 있는 바가 하나 있다면 … 창의적 도전이 어떤 속성을 띨지는 닥쳐 보아야 알지, 예견할 수는 없다 … 단지 ‘근본 원리’를 바탕으로 적절한 결정을 내리려는 태도, 직업윤리에 관해 진솔하고 현실적인 태도를 스스로에게 촉구할 뿐이다.” 포터가 책의 첫 문장으로 “당신은 제도판 위의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 조직하는 사람이다”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말을 인용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본문에서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던 저 일련의 조각들을 어떤 순서로 읽느냐에 따라 실망과 좌절을 느끼기도 했으며, 희망과 도전의 실버라이닝silver lining(밝은 희망)을 찾아낼 수도 있었다. 포터와 그 ‘60대 교수’가 쉬운 답을 기대하지 말 것을 주지시키면서도 한 가지에는 분명한 답을 제시했다. ‘정신과 태도가 기술과 도구를 앞선다.’ 즉 유행을 타지 않고 행동의 중심이 되는 소명 의식과 직업적 윤리의식을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읽어낸 걸까. 몇 날 며칠 이어진 야근에 지친 어느 인턴 사원은 실무를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이가 고작 디자인 고전 하나 읽고 내뱉는 ‘끄적임’에 불과한 외침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띠워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당신의 서재 또한 10%의 화려한 기술로만 가득 차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아무튼 저자가 강조한대로, 이 책에 담긴 그 어떤 권고나 처방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현대 운동의 정신과 손을 맞잡고 싶다 해도, 그 정신이 그냥 찾아와 주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 밖에 나가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 [시네마 스케이프] 암살 근대의 풍경
    “경성,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잘 됐네요.” 올 여름 대중적 성공을 거둔 영화 ‘암살’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은 경성 암살 작전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에서 경성은 커피라는 것을 마실 수 있는 곳, 즉 근대화된 도시를 의미한다. 그녀는 아기 때 유모의 품에 안긴 채 만주에 온 후 간도 학살을 목격하고 독립군의 명사수가 되었다. 그녀가 처음 접하게 될 경성의 낯선 근대 풍경은 영화에서 어떤모습일까. 1930년대의 경성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정치, 경제, 종교, 군사, 교육의 중추 기능을 집중시킨 도시다. 1940년 조선총독부의 외주로 만든 영화 ‘경성’은 경성의 하루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당시의 실제 풍경을 볼 수 있다. 새벽에 기차가 경성역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에는 활기찬 일상과 화려한 본정의 밤거리가 담겨 있지만, 지배자의 시선으로 대상화한 경성 풍경이 주를 이룬다. 최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몇 편 발표되었지만 당시의 풍경을 엿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영화 ‘암살’은 1910년대의 손탁 호텔부터 영화 속 주요 배경인 1933년의 경성역, 미쓰코시 백화점과 선은전 광장, 명치정과 아네모네 카페, 서소문거리와 주유소를 비교적 세심하게 재현하고 있다. 남산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추격신사이로는 만리재와 경성역의 원경까지 볼 수 있다. 선전용 영화가 아니면 엽서나 사진 같이 박제된 이미지로만 접했던 근대 태동기의 풍경이 담겨 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고대의 유산, 물
    #57 로마 시민을 위한 물 - 기원전 4세기, 아콰에둑투스 에어컨은 물론 없고 선풍기도 잘 모르는 베를린에서 35도를 오가는 폭염이 2주일 이상 계속되고 있다. 더위에 멍해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로지 하나, ‘물’이다. 조경사에서 물이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서구의 정원은 물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식물이 가장 중요했겠지만 물 없이 자랄 수 있는 식물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물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지금껏 보아 온 드넓은 풍경 호수의 잔잔함이 아니라솟구치고 쏟아져 내리며 물보라를 뿌리는 시원함에 대한 이야기가 좋을 것이다. 오백 개 넘는 분수가 마구 솟구치는 빌라 데스테Villa d’Este가 떠오른다. 그러나 정원에 물을 정성스럽게 담아낸 것은 이미 고대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잠시 고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다. 아득한 옛날, 정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은 하필 건조하고 더운 지역이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물론이고 그리스와 로마 역시 더운 곳이다. 특히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자연적인 오아시스에 만족하지 않고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산의 원천에서 물을 끌어다 마른 땅을 적셔 평야를 만들었고, 도시가 형성된 후부터는 고도의 관수 시스템을 완성했다.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파라다이스 정원이 가능했던 것도 이런 관수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구 정원의 기원이 메소포타미아에 있고 메소포타미아 정원의 구조를 결정한 것이 관수 시스템이었으므로 서구 정원의 기하학이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해석도 있다.1 그도 그럴 것이 모든 면적을 고루 적시려면 수로를 격자형으로 정연히 배치하는 것이 가장 합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원에 가장 먼저 수로가 등장했다. 더불어 수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샘 혹은 분수가 있었고 수로의 물이 모이는 연못이 있었다. 그리고 연못의 물은 다시 지하나 지상의 수로로 빠져나가 정원 밖의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천 시스템으로 돌려보냈다. 이런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려면 정원 밖에도 수로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베를린처럼 땅만 조금 파면 물이 나오는 곳이라면 정원에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퍼 올렸을 것이다. 한국처럼 산이 많은 곳이라면 뒷산 골짜기에 졸졸 흐르는 계류를 끌어다 썼을 것이다. 그러나 사막에 도시를 세웠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참 많은 수고를 하여 물을 끌어다 대었으므로 그 덕에 엔지니어링이 남다르게 발달할 수 있었다. 기왕 수고하는 김에 돌을 반듯하게 깎아 수로를 만들어 보기 좋게 했으며 물이 흘러나오는 샘도 동물 모양이나 꽃 모양으로 아름답게 장식했다. 수압을 이용해 물을 역류시키는 기술도 터득했던 사람들이었기에 분수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상하수도 시스템이 농경 문화와 함께 발달했고 도시를 존재하게 했다. 흥미로운 것은 고대의 물 공급 시스템이 현재의 상하수도 시스템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 기술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리스로 전해지고 그리스에서 다시 로마로 전해지면서 극치를 이루었다. 아콰에둑투스aquaeductus2라고 불리는 로마의 물 공급 시스템은 가히 기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며 로마 엔지니어링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지금도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지를 다니다 보면 계곡에 교량처럼 생긴 석조 구조물이 더러 남아있는데, 많은 이들이 이 교량을 아콰에둑투스라고 이해하고 있다(가르교 사진 참조). 그러나 아콰에둑투스는 본래 샘, 수로, 저수지 등을 포함한 물 공급 시스템 전체를 말한다. 펌프가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해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했다. 속도를 조절해야했으므로 근소한 경사(0.035~0.37%)를 주면서 수로를 연결했는데, 물을 보호하고 증발을 막기 위해 전 연장의 85%는 지하에 터널을 만들어 흐르게 했다. 다만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 곳에는 교량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으면 펌프를 써서 끌어올렸겠지만 당시의 역류 기술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치형으로 운치 있게 만든 것은 미학적 이유보다는 구조적 이유 때문이었다. 2층이나 3층으로 지은 것 역시 골짜기의 깊이, 즉 교량의 높이에 따라 기둥의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였다.3 그 결과로 숨을 죽이게 하는 건축 미학이 탄생했다. 수로의 폭은 대개 1m 남짓, 깊이는 평균 1.5m 정도였으니 상당한 양의 물이 흘렀다. 산 위의 샘물을 우선 저수지에 모았다가 이를 수로로 흘려보냈으며 물이 도시에 도착하면 다시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하 탱크에 모았다. 말이 지하 탱크이지 그 규모나 축조 양식은 대형 성당을 방불케 했다. 그래서 이를 카스텔 룸, 즉 ‘성’이라고 불렀다. 이 카스텔 룸에서 다시 세 개의 용수로가 각각 갈라져 나갔다. 하나는 도시 곳곳에 설치된 공용 수도에 공급되었고, 그 다음 테르메라고 불리는 공중목욕탕에 공급되었으며, 마지막으로 각 주택에 보내졌다. 이런 시스템이 처음 만들어진 때는 기원전 312년, 아직 공화정이던 시절이었다. 이후 인구가 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물의 수요도 증가했으므로여러 개의 아콰에둑투스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약 700년이 지난 서기 400년경에는 로마 시에만 11개의 시스템에 총 연장 504km의 수로가 연결되었다. 공중목욕탕이 11개소, 사설 스파가 856개소, 그리고 도시 전역에 1,352개의 공공 분수가 있었다. 지금도 이탈리아에 가면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분수는 본래 장식용이 아니라 공공 수도 시설이었다. 여기서 종일 물이 졸졸 흘러 누구나 마시고 쓸 수 있었다. 주택 대부분에 별도의 수도가 연결되어 있었으나 서민 연립 주택의 경우 1층에만 수도가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여기서 물을 길어다 썼다. 이렇게 하여 고대 로마인들은 매일 목욕을 하며 물을 펑펑 썼고 물 소비량으로 문화적 수준을 가늠했다. 당시 1인당 하루 물 소비량이 현재 유럽인들 소비량의 두 배 이상이었다.4 여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게르만족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게르만족에 속하는 고트족이었다. 서기 537년 로마를 포위하고 공략했던 고트족은 도시로 들어가는 모든 수로를 메우거나 파괴해 버렸다. 이후 로마 제국이 무너지면서 그들의 화려한 물 문화 역시 말라버렸다. 로마의 모든 문화와 문명은 멀리 비잔틴 제국으로 이사 갔고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는 서서히 퇴색해 갔다. 이후 바티칸에 교황청이 세워지면서 교황들이 아콰에둑투스를 일부 복원하긴 했지만 그때의 영광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물론 아콰에둑투스는 로마 시에만 설치된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 곳곳은 물론 점령지에도 수로를 놓고 스파를 만들어 로마 제국의 위상을 높였다. 지금도 동으로는 터키, 서로는 영국, 북으로는 독일까지 아콰에둑투스와 로마의 분수, 테르메의 흔적이 수없이 남아 있다. 조경이나 건축을 하는 사람치고 아콰에둑투스의 높은 교량을 보고 가슴 뛰지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파리 시트로앵 공원의 디자이너들 역시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아콰에둑투스에서 영감을 받아 수로 시스템을 만들고 공원의 동쪽 경계로 삼았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취약한 도시, 회복탄력적인 도시
    취약한 도시 화재, 화산 활동, 산사태, 질병, 오염, 지진, 쓰나미, 홍수, 태풍, 폭염. 현대 사회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대표적인 열 가지 환경 재해다. 최근 발생한 국내의 메르스 사태부터 2012년 가을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Sandy로 인한 미국동부의 초토화,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 사회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도호쿠東北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붕괴에 이르기까지 각종 재해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그림1). 특히 제한된 공간 안에 많은 사람과 자산이 밀집해 있는 도시에서는 한 번 재해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증폭되기 쉽고 이에 따른 트라우마도 깊다. 더욱이 개발이 완료된 도시를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덜 취약한 지역으로 도시의 일부를 옮기기 위해서는 보상과 이주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 도시의 취약성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그림2). 여기서 ‘취약성vulnerability’이란 특정 재해 위협에 대해 한 사회가 대처하거나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위험성의 정도를 말한다. 이렇게 보면 취약성은 재해 자체의 규모나 지속 시간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충격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지역 사회의 민감도, 피해 후 정상 상태로 회복하는 속도와 역량, 과거의피해 경험을 기억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학습 능력, 그리고 재해와 관련된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관용과 사회적 시선까지도 총체적인 취약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잠재적 위험, 확률, 리스크 2013년 3월, 포항시 용흥동 주택가에서 작은 산불이 일어났다. 한 초등학교 뒷산에서 점화된 불씨는 강한 바람을 타고 주변 산림에 옮겨 붙었고 이후 많은 수의 학교와 주택이 밀집한 지역까지 4km 이상 이동하며 대형 산불로 번졌다. 진화를 위해 소방 인력 약 2,500명이 동원되었으나 그 피해는 엄청났다. 주택 50동 이상이 폐허로 변했고 주민1,500여 명이 대피해야 했다.1 용흥동 산불의 발생 과정을 재구성해봄으로써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재해의 여러 개념을 정리해 보자. 우선 도심지에서 산불은 왜 발생하는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누군가의 고의적인 또는 부주의한 발화다. 물론 자연 현상에 의해 불씨가 생길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용흥동에서는 한 중학생의 불장난이 대형 화재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발화가 도시 공간 어디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주 불을 사용하는 외부 공간, 이를테면 주택지 인근에서 논밭두렁을 태우는 곳,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소각하는 장소, 빈번한 흡연이 이루어지는 공터가 잠재적으로 도심 산불의 원인을 제공한다. 이러한 행태와 장소 특성을 포괄하여 잠재적 위험hazard이라 부른다. 하지만 잠재적 위험이 늘 대규모 피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연 상태의 산림과 달리 도심지에서는 발화 지점에 낙엽이나 건조한 잡초가 집중적으로 축적되어 있거나 그 주변에 목조 주택과 슬레이트 구조물처럼 불에 타기 쉬운 시설이 분포할 때, 그리고 건조한 날 발생한 불이 큰 산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요소가 모여 발생 확률probability을 결정한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적 위험이 높은 발생 확률을 만나 대형 인명·재산 피해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즉 원인이 결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방아쇠가 필요하다. 용흥동에서는 산불이 확산되는 경로를 따라 가연성 물질이 연속적으로 있었다. 그리고 다수의 주택과 학교 시설이 경로를 따라 위치해 있었고, 특히 1980년대 이후 야산을 따라 무허가 주택이 집중적으로 지어지면서 사회적 약자와 노인 계층이 거주하기 시작했다.3 산불발생지 주변에는 불법 노상 주차가 협소한 골목을 막고 있어 소방차의 신속한 접근과 진화 작업이 어려웠다. 이렇게 당겨진 방아쇠가 일으킨 결과인 대형 산불과 관련 피해를 리스크risk라고 부른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김세훈[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도시설계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