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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 - 적응성을 향하여 Cities of Visionaries, Cities of Reality: Multifaceted City - Toward an Adaptability
    연재를 마무리하며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포괄적인 질문과 함께 시작한 본 연재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 1년은 도시설계와 관련된 여러 주제를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듯 소개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앞선 설렘과는 다른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과연 좋은 도시란 무엇이란 말인가? 도시 공간에 대한 요구가 문화마다 다르고 지역적 특수성의 차이도 큰데, 좋은 도시의 공통분모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 했던가. 진작 처리했어야 할 과제를 마지막까지 미루고 있다가 최종 연재에 이르러서야 황망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게으름을 피우고야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 초조해 하지 말고 도시의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자. 도시의 가장 흥미로운 특질 중 하나는 도시는 항상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구와 환경 변화라는 ‘자극’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제한된 도시 면적안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끊임없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 도시를 구성하는 물리적 환경―거시적인 지역 환경과 녹지 분포, 도시 블록과 가로 패턴, 건축물의 유형과 필지의 종류, 도로와 오픈스페이스, 옥상정원과 공용 주차장 등―은 각종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며 변화하는데, 그러한 과정 자체가 공간에 차곡차곡 기록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불완전한 변화의 파편과 흔적으로 공간에 남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 공간은 다시 사람들의 삶과 행태, 미시적인 도시 환경과 거시적인 도시 문화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그림1).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비교적 일관된 특성을 공유하는 연속적인 지역이나 장소가 도시 안에 형성된다. 하버드 대학교의 피터 로우Peter Rowe 교수는 이를 “영역territory”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19세기 후반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걸쳐 보스턴 도심부 남측에 금융 관련 초고층 업무 시설이 집중적으로 조성되면서 형성된 ‘파이낸셜 지구’나, 1950년대 독일의 기술 원조를 받아서 각종 전자제품과 이후 군수 물자를 생산하던 국영 산업단지이자 최근 중국 최대 예술가들의 놀이터로 탈바꿈한 베이징의 ‘다산쯔 798지구’가 이러한 영역에 해당한다(그림2). 공통의 성격을 갖는 영역뿐만 아니라 차이와 특이성이 두드러지는 크고 작은 도시 공간을 통해서도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하나의 단일 도심을 기반으로 성장하던 도시 영역이 급격한 인구 증가 때문에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확산되고 단핵 중심의 도시가 다핵 도시로 변형되는 경우가 그 예다. 여기에 다시 새로운 교통 시스템이 도시내 주요 거점을 연결하면서 개발 잠재력이 높은 지역에서는 필지 합병을 통한 대규모 재개발이 진행되는 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도시 쇠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함께 특정 건축 유형에 대한 자발적 고급화와 타율적 잉여가 반복되면서 넓게 확산된 도시 조직은 미시적인 분화를 겪는다. 이러한 공간의 분화와 차이성의 발현은 공통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의 각종 영역을 부분적으로 해체하거나 때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지역성을 짧은 시간에 붕괴시킬 때도 있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김세훈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도시설계전공 교수
  • [그들이 설계하는] 경계자는 조바심을 관리한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경계자로 지칭하는 것은 위험하다. 단지 자신을 묘사하거나 기술하는 단어가 아니라 가치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 자기 색깔이 뚜렷하지 않은 자’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있는가 하면, 함민복의 시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처럼 긍정적 뉘앙스도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경계자라 말할 때는 부정적·긍정적 뉘앙스를 모두 감내해야 한다. “나는 어디에도 끼지 않을 거야, 내 길을 갈 거야”같은 치기, 혹은 “나는 당신들과 달라” 같은 자기 허영.그럼에도 나는 이 마지막 글에서 스스로를 경계자라 칭하려 한다. 현재의 나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지향점이라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첫 번째 글의 ‘어.설.자.’는 고백이었고, 두 번째 글의 ‘경관편집자’는 경관을 다루는 나의 관점과 방식에 대한 소개였고, 이번 마지막 글의 ‘경계자’는 나의 바람이다. 경계에 서 있는 점들이 시스템이 만든 영역을 가로질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새로운 지평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 책상 vs 현장 20~30대에 직장 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물론 정확한 시간에 퇴근한 적은 없지만) 직장 생활은 고작 3년이었다. 석사 졸업하고 2년, 영국에서의 박사 후 연구원(post-doc) 후 1년. 나머지는 거의 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녔다. 20대는 학부와 석사 과정, 30대는 박사 과정과 영국에 가기 위한 준비, 그리고 영국에서의 1년간의 연구 과정.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30대 막바지에 설계사무소를 열었다. 고작 3년이 설계라는 작업을 집중해서 고민하고 배우던 실무기간이었다. 20대부터 현장에 뛰어들어 일을 배웠던 동년배들에 비해 훈련의 시간이 부족했던 셈이다. 대신 동기, 선·후배들에게 틈틈이 배웠고, 특히 한 후배는 몸으로 익힌 실무를 ‘속성’으로 내게 전해 주었다. 이렇게 내 이력을 나열한 이유는 책상과 현장에서 서성이는 나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2002년 그 ‘유명한’ 한평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도시연대의 구성원들과 주민 참여, 참여 디자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더불어 관련된 여러 이론을 공부했고 외국 사례도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박사 학위 논문이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도 한평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조바심이 났다. 책을 보고 있으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걱정스러웠고, 현장에 있으면 책 속의 내용이 궁금했다. 그 이후의 몇 년 동안은 박사 논문을 쓰면서 가졌던 질문에 답하고 되새김하는 시간이었다. 막연하게 알던 것들을 보다 선명하게 알아가기, 어떤 책에서 보거나논문에 인용했던 것들을 현장에서 확인하기, 이래야한다고 주장했던 것들을 현장에서 실천해보기. 되새김의 기간이 길었던 만큼 박사 논문의 자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바심의 기간도 길었다. 그런데 주어진 현장에 집중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내 실천의 방향과 내용이 논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몇 년 더 현장에 파묻혀 있다 보면…. 아니 지금도 그런 조짐이 나타나는데, 조바심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어떤 언어와 논리로 내가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정리할 수 있을까’로. 전문가 vs 활동가 내 관계의 지형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페이스북 친구이지 않을까 싶은데, 1/4이 ‘조경’이라는 키워드로 만난 사람들이고 3/4이 ‘시민단체’라는 키워드로 만난 이들이다. 페이스북에 적극적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민단체라는 키워드로 만난 이들이다. 그들이 최근에 올리는 글은 주로 도시재생, 공유공간, 마을만들기, 사회적 경제 등에 대한 것이다. 이 글들을 읽으며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 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고 사고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시민단체라는 키워드가 만들어준 네트워크 속의 전문가들이다. 조경이라는 키워드 속에 있는 사람들 중 지속적으로 만나는 이들은 ‘조경작업소 울’의 구성원 정도다. 시민단체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가치’가 활동의 중심이 된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사회나 단체에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적자가 나더라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사람들이 세상을,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정치적 판단을 떠나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보니 활동가들의 일하는 방식도 행정이나 기업, 학교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올해 도시연대의 일원으로 한 대학교의 연구실과 도시연대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 초기, 학교 연구실과 시민단체 간의 차이로 인해 통역자 역할을 해야 했다. 연구자들의 언어와 일의 방식을 활동가들에게 전달하고 활동가들이 추구하는 내용과 언어를 연구자들에게 전달했다.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라 여겨진 탓인지, 조경작업소 울의 클라이언트는 주로 시민단체다. 올해만 해도 세이브더칠드런,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이하 무장애연대), 생명의숲이 주요클라이언트였다. 시민단체의 활동가들과 일하다보니 그들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 일반적 전문가들이 하는 역할의 경계를 벗어날 때가 있다. 이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올해 몇 번인가 “너는 전문가니? 활동가니”라는 질문을 간접적으로 받았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통역자의 역할을 할 때 그랬고, 연재의 첫 번째 글에서 소개한 어린이공원 작업에 대한 어떤 이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 김연금
  •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인터뷰 연재를 마무리하며 Beyond the Limits of Landscape Architecture, and into the Heart of Landscape Architecture: Epilogue of Interview Series
    2013년 ‘조경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주목할 만한 조경가’라는 부제를 달고 시작한 ‘조경의 경계를 넘어’ 인터뷰 지면은 2014년부터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란 제목으로 지난달까지 총 35명의 조경 관련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며 3년을 달려왔다. 뉴욕의 대표적조경가인 시그니 닐슨과의 인터뷰로 시작해 지난 호에 소개된 캐나다 몬트리올의 무나 안드라오스와의 인터뷰까지, 다양한 인물과 대화를 이어온 소감을 여기에 정리한다. 『환경과조경』의 해외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한 2013년 1월은 개인적으로 디자인에 대해, 조경 설계라는 직업적 자긍심에 대해 상당한 회의를 느끼던 무렵이었다. ‘진짜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마음에 “쩡”하는 소리를 울리는 작업이란 어떤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온 지 몇 해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렇다할만한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진정한 공부를 하고 싶었고 배움에 목이 말랐다. 바쁜 설계사무소 일을 소화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는 빡빡한 생활에서 주어진 시간을 쪼개 배움에 대한 욕구를 채우곤 했지만 실망스럽게도 충족보다는 대개 한숨이 앞섰다. 어디선가 이미 봤던, 독창성을 찾기 어려운 설계안들이 미디어와 공모전을 도배했고 패션은 단추 구멍의 위치만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어디에 갖다 놔도 상관없는 ‘맥락 결여’의 장식적 작품들이 마치 문화의 최전선에 나선 듯 우쭐댔고 허공에 메아리치듯 공허한 미사여구의 독백이 이론이라는 투구를 쓰고 그렇지 않아도 지친 안구에 피로감만을 더했다. 진정한 새로움을 향한 여행길에서 보이는 풍경이란 봐도 안 봐도 그만인 딱그 정도였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월간·주간·일간지들을 멀리하게 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그래서 나의 관심은 동시대 설계자들의 작업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과거로 회귀하고 있었다. 인터넷이 모두의 두뇌에 평준화를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조경이라는 동네는 기웃거릴만한 꺼리가 도무지 없는, 참으로 재미없고 지루한 단체 관광 상품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우울함을 달래려면 대신 곰팡내 나는 뉴욕공립도서관의 서가를 뒤져야 했다. 1960~1970년대 미국의 사회적 혼란기, 20세기 초반의 시티 뷰티풀, 그리고 19세기의 옴스테드와 17세기의 르 노트르로 빠져 들어갔다. 한 세기 전 조경이라는 분야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시기, 그 부근에 자리 잡은 귀퉁이 골방에 머물며 나는 스스로 외부와 담을 쌓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족하고 있었다. 박명권(현 『환경과조경』 발행인)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가 이 코너의 공동 작업을 제안했을 때 무언가 자그마한 창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현 시대 조경에 대한 나의 우울증이 진정한 고수들에 대한 무식과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어렴풋이나마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미디어 정보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들에 대한 이해 작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다는 데 신이 났고 아랫배 한 구석에서 의욕이 솟았다. 그해 겨울 휴가를 떠난 자메이카의 해변에서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 귓전을 때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윙윙대는모기에 뜯겨가며 첫 번째 원고를 썼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간단히 두 가지였다. 첫째, 우선 금붕어 같이 눈은 커지고 머리는 작아진 상태를 극복하고 싶었다. 작금의 우리 일에 지성이란 것이 존재 한다면, 아직 지적인 디자인이라는 전통이 남아있다면, 그것을 옴스테드 시대와 같이 환하게 드러내 복원하고 싶었다. 기본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다. 고상한 언어의 도움 없이도 즉각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디자인,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디자인, 쉽고도 좋은 디자인을 현학의 덫에서 구출하고 싶었다.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 기반을 두고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해 왔다.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고, 주요 작품이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 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이며, 저서로 『시티오브뉴욕』(공저)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서 조경 설계를 연구하며 학생들이만드는 것의 기쁨을 알아가도록 돕고 있다.
  • [재료와 디테일] 거푸집,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요
    콘크리트로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선 거푸집이라는 형틀이 필요하다. 원하는 모양으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콘크리트만 채워 넣으면 어떤 형상도 만들어낼 수 있는 요술램프 같은 장치다. 웬만한 공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랄까. 아니, 없어서는 안 될 주인 같은 손님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구조재로 사용될 뼈대를 만들 때, 혹은 마감재로 쓰일 매끈한 물건을 만들때 이 요술램프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게다가 그 효용에 비해 얼마나 저렴한가. 몇 개의 나무 각재와 판재만 있으면 뚝딱뚝딱 만들어 조립하고 공장에서 미리 배합해서 만들어 놓은 콘크리트를 채우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 쓰임에 따라서 사용 횟수를 정해 놓기도 하고 비용도 다르게 책정되어 있으며 원하는 품질의 수준에 따라 금액이 천차만별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지만 말이다. 20여 년 전 실무를 시작할 무렵 일본에 놀러 갈 기회가 생겼다. 그때 도쿄의 가사이 임해공원葛西臨海公園에서 만난 일본의 한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노출콘크리트의 미학적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거푸집을 떼어낸 후 드러난 콘크리트 면 자체를 마감으로 쓴다는 아주 초보적인 지식만 있었는데, 건물을 손으로 만져본 후 온몸에 전해지는 감각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리석보다 더 부드러웠다. 차라리 따뜻했다. 거푸집과 콘크리트의 관계에 대한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기에 놀란 채로 그 곁에서 한참을 보냈다. 후에, 그런 마감을 내기 위해서 어떤 일본 건축가는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날이면 모든 사무실 식구들과 함께막대기를 들고 콘크리트를 비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고 놀라기도 했다. 레미콘에서 콘크리트가 쏟아지는 순간 마치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에 긴장했던 경험이 겹쳐졌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 [공간 공감] 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그 물음을 안고 떠난 스물두 번의 답사
    2014년 1월, ‘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 ‘공간 공감’이 연재 2주년을 맞아 좌담회를 가졌다. 한 달에 한 번씩 대상지를 답사한 후 함께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결과를 수록해 왔기에 ‘공간 공감’ 멤버들에게 좌담회는 무척이나 익숙하다. 하지만 이번 좌담회에서는 특정 대상지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답사를 바탕으로 ‘좋은 공간감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첫 회의 프롤로그 이후 ‘이태원(상업시설 건축물), 무교공원, 성곡미술관, 대학로, 서울시립대학교 캠퍼스, 연남교 교차로, 메리츠타워, 책테마파크, 백남준아트센터, 지앤아트스페이스, 웅진싱크빅 옥상정원, 파주 환경과조경 사옥(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서초동 삼성출판사 공개공지, 합천영상테마파크, 서울대학교 미술관, 양재동 꽃시장, 석파정, 알토사옥 옥상정원, 창덕궁 후원, 박수근미술관, 명동성당, 홍익대학교 중앙광장’까지 총 스물두 곳을 찾았다. 알토사옥은 허승효 회장(알토)의 안내로, 창덕궁 후원은 건축사진작가인 김용관 대표(다큐멘텀)와, 박수근미술관은 정재헌 교수(경희대학교 건축학과)와 함께 둘러보았다. 담당 에디터도 연남교 교차로, 웅진싱크빅, 삼성출판사 등의 답사에 동행했다. 경남 합천부터 강원도 양구까지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차를 몰았던 동력 중의 하나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물론, 함께 답사한 이들이 같은 공간을 얼마나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도 궁금했다. 답사 수첩에 대상지가 하나씩 차곡차곡 쌓이고 공간감과 디테일에 대한 갑론을박이 풍성해지는 동안, ‘공간 공감’ 멤버들은 첫 원고에서 밝혔던 “우리 도시에서 당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외부 공간은 어디인가? 그리고 그곳을 왜 좋아하는가”란 질문의 답을 얼마나 찾았을까? 스물두번의 답사 이야기를 반추하며, ‘좋은 공간감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벌인 스물세 번째 좌담회를 이지면에 옮긴다. _ 편집자 주 “공간의 질이 아니라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느냐가 중요” 정욱주 어느덧 연재를 시작한 지 2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답사한 22곳의 대상지를 하나씩 떠올려보니 특징이나 성격이 꽤 다양하다. 처음에 의도했던 “우리 도시에서 좋은 공간을 발굴하고 이를 설명하는 어휘를 개발하고 축적”하기 위한 목적에서 살짝 비껴간 곳도 있고,“우리의 정주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양질의 공공 공간”을 탐색하겠다는 뜻에 정확히 부합하는 곳도 있다. 그 달의 답사 대상지를 선정하는 과정 자체가 큰 공부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공간감이나 디테일이 뛰어나서 대상지로 선정된 곳도 있고,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는 공간을 꼼꼼히 살펴봄으로써, 역으로 좋은 공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승진 대상지 발굴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 곧 우리 도시 환경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처음 의도와 결이 다른 공간을 둘러본 것이 단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좋든 아쉽든 다양한 공간을 소개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내년 답사에서도 이기조를 유지할 것인지는 논의가 좀 필요하다. 정욱주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도 있었지만 ‘연남교 교차로’처럼 자연적으로 발생된 공간을 답사하기도 했다. 건강한 비평 기능을 살리고 실제로 설계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디자인된 공간 위주로 답사를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연남교 교차로는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김아연 결국은 좋은 공간감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누군가에 의해 디자인된 곳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곳이더라도 좋은 공간감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다면, 기꺼이 가보아야하지 않을까. 박승진 그렇다. 공간의 질이 중요하다기보다 이야깃거리를 얼마나 품고 있느냐, 공간에 대한 다양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답사한 곳 중에서는” 이홍선 그동안 답사한 곳 중에서는 메리츠타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반전이 있었다. 뭐랄까, 공간 구성 자체가 극적이었다. 그런 점을 보면, 단순히 디자인이 아름답거나 뛰어나다고 해서 공간감이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메리츠타워는 대상지가 안고 있는 레벨 차이라는 한계도 상당히 잘 활용했다. 나무는 그리 수형이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화분의 크기나 배열 방식, 리듬감 등이 나무랄 데 없었다. 최근에 찾은 홍익대학교 중앙광장은 공간이 커가는 과정을 꽤 오랫동안 지켜보았기 때문인지, 지금의 모습이 감탄스럽다. ‘공간 공감’ 답사 이후에도 몇 차례 더 가보았는 데, 찬찬히 둘러보니 그 매스감이 더 놀라웠다. 처음에는 학교 캠퍼스의 광장을 왜 수목 농장처럼 만들어 놓았는지 의아했는데, 한 해 한 해 지나 식물이 커나가면서 전혀 다른 공간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나무를 아예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놔둔 것이 주효했다. 나무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처지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근사한 도시 숲이 탄생했다. 어느정도 설계자가 이렇게 의도한 공간이 아닌가 싶다. 박승진 때론 너무 깔끔하고 계획적으로 관리하는 것보다 스스로 자랄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다. 의도대로 가꾸기 위해 치밀하게 관리하다 보면 더 엇나가거나 불필요하게 웃자랄 수 있다. 풀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김용택 나 역시 그런 전략을 의도적으로 취하는 편이다. 스스로는 그것이 나의 관리 매뉴얼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대로 두는 것 말이다. 홍대 중앙광장의 경우, 숲을 만들겠다는 것은 디자인을 했겠지만 관리하는 방식은 풀어두는 전략을 취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홍대라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점이 더욱 돋보였다. 그 외에 답사하면서 좋았던 곳으로는 박수근 미술관을 꼽고 싶다. 조형적인 디자인이 뛰어나거나 조형물이 돋보이는 곳보다는 분위기가 잘 갖추어진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재료가 시간을 머금고 있다거나 물성이 잘 드러나는 디테일에도 애착이 간다. 박수근미술관이 바로 그런 공간이었다. 재료와 공간이 잘 어우러져, 그 공간의 인상을 좌우하는 곳. 좋은 공간감이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홍선 박수근미술관과 명동성당은 아쉬움과 만족스러움이 비슷한 측면에서 동일했다. 전면부를 좀 더 여유있게 비워두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박승진 명동성당의 경우는 조경 설계 이전에 이루어진 기본 방향 설정에서, 전면 공간에서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도가 개입되어 지금과 같은 공간 연출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성당 뒤편 공간은 그 의도에서 자유로웠기에 지금처럼 아늑하고 만족스러운 공간이 유지될 수 있었고. 김용택 ‘공간 공감’ 멤버들은 과도하게 디자인된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분당의 책테마파크 같은 경우, 디자인 자체만 보면 상당히 공들여 설계된 곳이지만 공간의 맥락에서 바라보면 디자인이 조금 과해 보인다. 그 때문에 답사 당시에 아쉬운 점에 대한 토로가 많았다. 김아연 개인적으로는 지앤아트스페이스와 양재동 꽃시장의 생명력이 돋보였다. 디자인 차원을 떠나서, 판매행위를 위해 제품을 외부에 내놓은 공간들인데 그곳만의 확실한 생명력이 있었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남기준
  • [칼럼] 가치의 혁신 Column: Value Innovation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과 회원국, 그리고 전 세계인들의 미래에 대한 값지고 귀중한 통찰!”이라고 극찬한 베스트셀러 『유엔미래보고서 2045』에 따르면, 조경사는 의사, 약사와 함께 로봇으로 인해 멀지 않은 미래에 소멸될 직업이다. 무인 자동차의 등장으로 운전기사와 집배원이 사라지고, 드론의 활약으로 택배기사와 음식 배달원도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또 3D 프린터의 등장은 목수와 건축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언론 기자와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교사 등의 직업도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평균 수명 130세 시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줄고 인간은 종교로부터 멀어진다. 얼굴도 인간과 똑같고 지능도 인간보다 뛰어난 로봇과 휴머노이드가 등장해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대신 인간은 일자리의 거의 대부분을 빼앗긴다. 기후 변화는 인류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화석 연료를 대신할 새로운 에너지를 찾는 개인과 기업이 미래의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예측하고 있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한 조경 분야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유망 직업으로 살아남기 위해 조경인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가치의 혁신’이 필요하다. 지난 건설 호황기 시절의 아날로그적인 조경의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환경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점점 높아질 것이고 건축, 임업, 원예 등과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므로 소위 ‘노가다’ 시공이나 ‘도면 공장’ 같은 설계 방식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제조업과 같은 전통 산업도 지식 기반을 고도화하지 않을 경우 날로 치열해져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코닥이 한순간에 사라졌고, 애플의 아이폰으로 최강 노키아가 무너졌다. 반대로 일본의 유니클로가 방한복은 두꺼워야 한다는 상식을 파괴하고 얇고 다양한 색상의 ‘후리스fleece’를 개발해 최고의 패션 기업이 된 것은 가치 혁신의 성공 사례다. 매킨토시 같은 고가 사양의 컴퓨터에만 집중하던 애플이 스티브 잡스의 복귀 이후 과거의 아집을 버리고 고객층을 폭 넓게 끌어들일 수 있는 아이팟 같은 대중적 상품을 만들고 기술 집착증에서 벗어나 CDO(최고디자인책임자)라는 직책까지 두며 개방적 협력을 통해 성공한 사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조경 분야도 노동 집약적 성격이 강했던 과거의 산업적 구태를 벗고 글로벌 경쟁자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차별적인 디자인, 기술력, 경영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가치의 혁신’을 위해서는 조경을 넘어 다른 분야와 협력하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대 사회는 엘빈 토플러가 주창한 제3의 물결(과학 기술 및 정보화 시대)을 넘어 제4의 물결, 즉 융합의 시대를 향하고 있다. 지금의 세계는 모든 사람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각국의 경제 체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글로벌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에서 알 수 있듯이, 지구촌 한편에서 일렁이는작은 물결이 반대편에서는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모든 전문 분야는 새로운 영역에서 보다 혁신적인 방식으로 경쟁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ASLA(미국조경가협회)는 “조경은 협업이 강조되는 분야”라고 전망한다. 조경은 건축, 도시설계, 엔지니어링은 물론 시각 디자인이나 의상 디자인과도 협력하고 있고 그 중심에 프라임 컨설턴트prime consultant로서 조경가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조경가 제임스 코너James Corner를 중심으로 건축가와 엔지니어가 공동으로 작업했던 뉴욕의 하이라인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다. 타 분야와의 컨버전스를 통해 영역을 확장하고 상호 협력하고 상생하는 전략적 제휴가 필요한 시점이다. 올 한 해 동안 우리 조경계는 건축과 임업 등 다른 분야의 도전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서울역고가를 공원화하는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나 철거된 옛 국세청 별관 지상·지하 공간을 공공 공간으로 전환하는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 등은 조경가가 앞장서야 할 프로젝트였음에도 건축가들만의 화려한 잔치로 끝났다. 조경계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산림청의 약속을 믿고 ‘수목원ㆍ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에 동의했던 조경계는 건설기술자 조경 직무에 산림과 원예 관련 자격이 포함된 ‘건설기술자 등급 인정 및 교육·훈련 등에 관한 기준’이 이미 지난 6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는 황당한 소식 앞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지키기에만 매달리는 수성 전략을 버리고 오히려 다른 분야와 협력하여 상생을 모색하는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다. 산림청이나 환경부와의 오래된 갈등을 풀고 산림청 일이든 환경부 일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다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 조경계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은 내부 구성원의 협력과 단합에 있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한 결속력과 통합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긴급한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환경조경발전재단의 공동이사장제 논란으로부터 비롯된 관련 학회와 단체의 갈등은 조경계에 불어 닥치고 있는 연이은 업역 침해에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 것도 벅찬 상황이다 보니 미래에 대한 준비는 기대하기조차 힘들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조경의 미래를 위해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필요하다면 조경 분야를 대표하는 통합된 조직을 새로 만들거나 정비할 필요도 있다. 이제라도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한국 조경의 미래를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세우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조경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정원을 산림청이 가져갔다고, 조경 설계공모를 건축에 빼앗겼다고 더 이상 원망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ASLA는 조경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조경가는 지역 사회와 소통하여 건강한 도시를 만들 수 있으며, 각종 질병과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 지속 가능하고 보다 경제적인 도시를 만들 수 있다. 보다 건강하고 경제적이며 경쟁력 있는 도시 조성의 중심에 조경가가 있다는 점이야 말로 조경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 [에디토리얼] 마감 Editorial: Deadline
    마감을 며칠 앞둔 편집실, 출품 전야의 설계실 못지않은 전쟁터 풍경이다. 지면 배열의 수정, 서너 차례 반복되는 원고 교정과 교열, 편집 디자인 수정과 보완이 복합적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내부 원고도 뒤늦게 생산된다. 이어지는 야근과 철야는 문제도 아니다. 가장 심각한 위기는 최종 데드라인까지 외부 필자의 원고가 도착하지 않을 때다.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한계선에 임박해 필자들의 원고를 챙기다 보면 편집자들의 “혼이 비정상”이 되곤한다. 고백하자면 아마추어 편집주간도 혼돈의 마감 풍경에 한몫 톡톡히 한다. 매달 거의 제일 마지막으로 디자이너에게 넘어가는 원고가 A4 두 장이 채못 되는 이 에디토리얼 원고다. 편집된 잡지 전반을 다 검토하고 뭔가 아우르며(?) 쓰겠다는 심산이지만, 잡지 첫 쪽에 등장하는 데 대한 부담감, 글감의 고갈에 따른 막막함, 고질적인 게으름, 이 셋이 절묘한 비율로 혼합된 결과라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할 것 같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호이니 이번 달만큼은 제 시간에 끝내는 모범을 보이겠다고 작심했다. 그러나 순백색 모니터를 마주하니 갑자기 연말의 멜랑콜리가 몰려오고 창밖에는 열흘째 가을비가 내리고 서울광장의 물대포에, 파리와 레바논의 테러에, 케냐의 학살까지, 핑계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무래도 이번 달도 문을 닫는 원고가될 것 같다. 필자 입장에서도 마감 시한의 압박감은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고통 그 이상이다. 영어로는 데드라인, 참 무시무시한 단어다. 글쓰기의 스타일이 모두 다르듯 “마감에 임하는 필자들의 태도”도 천차만별이다. 자칭 “야매 출판인” 김홍민이 출판계의 속사정을 다룬 책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어크로스, 2015)를 보면, 여러 필자들의 다양한 마감 타입이 소개되어 있다. 첫째 유형은 ‘모범생형’.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필자, 모든 편집자의 로망이다. 심지어 마감일 하루나 이틀 전에 원고를 보내와 감동을 선사해 준다. 『환경과조경』의 연재 필자 중에도이런 분들이 몇 명 있다. 심지어 일주일 전에 주는 분도 있다. 둘째는 마감을 지키지않았지만 도리어화를 내며 담당 편집자를 당황하게 하는 ‘적반하장형’. 유명 필자와 초보 편집자 사이에서 이런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물론 『환경과조경』 필자 중엔 이런 분이 없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는 ‘잠수형’ 필자가 등장하는 경우는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천리안형’이다. 편집자는 원고를 청탁할 때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마감일을 당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안전핀도 잡지사의 생리를 잘 아는 베테랑 필자들에게는 소용없다. 그들은 언제가 진짜 마감일인지 뻔히 알고 있다. 『환경과조경』에도 이런 유형의 노련한 필자들이 여럿 계시다. 그들과의 줄다리기는 즐거운 게임이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읍소형’이 있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가 마감이 한참지나 독촉 문자, 메일, 전화를 하면 그제야 아직 못쓴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타입이다. 그들에게는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환경과조경』 편집자들을 붙잡고 또 어떤 마감 스타일이 있는지 취재해 보니, ‘연쇄살인형’도 있다고 한다. 며칠 사이에 연달아 가족이 아프고 친구가 사고를 당하고 스승이 돌아가시는 유형. 거의다 썼다, 이제 곧 끝난다고 계속 연락이 오지만 결국엔 맨 꼴찌로 마감하는 ‘철가방형’도 있다. 언제 쓴다고 했냐고 되묻는 ‘기억상실형’, 몸이 너무 안좋다고 하소연하는 ‘동정유발형’, 이제 절필한다는 ‘은퇴형’도 있다. 밤을 새워 다 썼는데 컴퓨터 바이러스에 날아갔다는 ‘목수 연장 탓하기형’도 드물지 않다. 17년 경력의 베테랑 남기준 편집장에 따르면, 마감에 얽힌 인생 최고의 추억은 인쇄소로 넘기기 직전 절체절명의 심야에 캔맥주 식스팩을 들고 편집실에 쳐들어와 편집자와 함께 밤을 새우며 원고를 쓴 어느 필자라고 한다. 듣다보니, 아뿔싸,몇 년 전 나의 행각이다. 도대체 무슨 형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마감에 속이 타고 피가 마르는 강도는 편집자보다 필자의 경우가 더 셀 것이다. 2015년 과월호 열한 권을 다시 펼쳐보니 여러 필자들의 분투가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그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연재 필자들의 노력과 인내에 깊이 감사드린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것이 일상을 감옥에 가두는 일임을, 불안과 초조의 늪으로 자신을 내모는 일임을.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잡지 리뉴얼 이후 2년간 연속된 최이규 교수의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가 막을 내린다. 사실 이 연재 인터뷰는 2013년에도 조금 다른 이름의 꼭지로 실렸으니 그는 3년간 무려 35명의 해외 디자이너와 매달 이야기를 나눈 강행군을 펼쳐온 것이다. 편집부의 도움 없이 뉴욕에서 홀로 기획과 섭외부터 인터뷰와 기사 작성까지 모두 담당했다. 김세훈 교수의 연재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도 이번 달에 최종회가 실린다. 다른 어느 원고보다도 두터운 독자층을 가졌던 연재물의 마지막 회를 읽으니 인기 드라마의 종영일처럼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는 마지막 원고와 함께 “지난 1년, 글을 쓰는 고통(?)과 함께 했지만, 차분히 우리 도시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두 분의 수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두 연재물 모두 단행본으로 새롭게 편집되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김연금 소장의 연재 ‘그들이 설계하는 법’도 이번 달로 맺는다. 세달 간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좁은 지면 탓에 일일이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지난 1년간 옥고를 보내주신 모든 필자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 몇 년간 한창 유행했던 긍정심리학 류의 책들을 보면, 감사할 일을 떠올리고 늘 감사할 때 우리는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환경과조경』을 사랑해주시는 여러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며 한해를 행복하게 마감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순백색 모니터를 응시하다 보니 그만 마감 에피소드로 흐르고 말았다. 문득 우리 인생에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아주 큰 마감이 있음을 깨닫는다. 삶의 마감일을 미리 알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없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살까, 매일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한층 열심히 살까. 아마 우리는 그 마감의 시한을 알더라도 “마감에 임하는 필자들의 태도” 못지않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지 않을까? 이렇게 2015년을 마감한다. 아니 통과한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응답하라 2027 Please Respond, 2027
    지루하더라도 기록을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네 번째 특집이니 말이다. 게다가 특정 공원에 대해 27년 동안 관심을 기울이며 지속적으로 다룬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제목만 보고 ‘응답하라 1988’을 연상하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다행인지(?) 우연인지 아예 무관하지는 않다. 바로 그 1988년부터 시작된 히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이번 호 특집으로 다룬 ‘용산공원’ 이야기다. 『환경과조경』이 격월간으로 발행되던 시절, 1988년 11·12월호에 ‘긴급 좌담’이란 타이틀의 꼭지가 게재되었다. ‘용산 미8군터의 활용 방안을 진단한다 - 시민의 휴식·문화 공간으로 개발 조성해야’란 제목이었고, 강병기, 윤승중, 이종석, 황기원 등 네 분의 패널이 참여했다. 『환경과조경』에서 처음으로 용산공원 부지를 다룬 꼭지였다. 이듬해인 1989년 7·8월호에는 ‘용산 미8군 부지 시민공원으로 조성하자’란 특집까지 기획되었다. 필자로는 노춘희, 동정근, 황기원 등 세 분이 참여했다. 용산미군기지의 반환 움직임이 거론되던 시기였고, 미8군 기지에 전 국민을 위한 공원을 만들자는 입장과 서민을 위한 주택단지를 만들자는 주장, 그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며 상업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때였다.1 이후 10여년 이상 잠잠했던 용산공원이 다시 수면 위로 부각된 것은 2003년의 일이다. 그해 5월 한·미 정상간 용산기지 이전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용산공원 부지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각종 언론 매체에는 4월 전후로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지만, 『환경과조경』이 특집으로 다룬 것은 2003년 10월이다. 나름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깊이 있게 다뤄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해서 수록된 특집은 ‘용산 미군기지 이전후 활용 방안’으로, ‘한국 속의 서울, 서울 속의 용산, 용산 속의 기지, 기지 속의 공원’(황기원), ‘국가 중심 생태·문화단지로 조성해야’(임승빈), ‘용산미군기지 활용 방안 및 교통 처리 방향’(원제무), ‘용산미군기지를 생명의 숲으로’(홍성태), ‘자연형 생태 공원을 우리의 후손들에게’(김홍규), ‘용산미군기지를 풍류특구 테마파크로’(오웅성), ‘용산미군기지 공원화 논의의 어제와 오늘’(남기준) 등총 일곱 꼭지였다. 2003년 당시 곧 반환될 것 같았던 용산미군기지에는 현재까지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이후 한 단계씩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2004년 2월에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원화 기획 자문위원회’가 출범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용산기지 이전 협정이 국회 비준을 받았다. 이듬해인 2005년 10월에는 ‘용산민족·역사공원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했고, 12월에는 국제 심포지엄도 개최되었다. 한국조경학회 등이 참여한 ‘용산기지 공원화 구상’이 발표된 때도 2005년이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으로 ‘용산민족·역사공원 건립추진단’이 설치된 것은 2006년 4월의 일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이 거행된 것은 2006년 8월이다. 이때만 해도 용산미군기지가 2008년 말에 반환될 줄로만 알았다. 이후 국가공원의 지위를 부여 받게 된 용산공원의 조성을 위해 2007년 7월에 드디어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결정적인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용산공원을 다룬 『환경과조경』의 네 번째 꼭지이자 세 번째 특집(용산을 이야기하다)은 바로 이 시기에 준비되었다. 2007년 1월호와 2월에 걸쳐 두 달 연속 기획된, 그야말로 특별한 ‘특집’이었고 별도의 토론회도 마련했다. ‘용산기지 공원화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란 주제로 2007년 1월 11일, 한국과학기술회관 대강당에서(희망제작소 부설 세계공원연구소와 공동 개최) 임승빈 교수(당시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배정한 교수(당시 단국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성종상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이수학 소장(아뜰리에 나무), 이일훈 소장(후리건축),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조명래 교수(단국대학교 도시지역 계획학전공), 최원만 대표(신화컨설팅)가 패널로 참여했다.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이 열린 2006년 이후로 ‘용산공원’에 대한, 그야말로 다종다양한 제안과 주장이 넘실대던 시기였다.2 이후로도 용산공원은 더디지만 꾸준한 단계를 밟아나갔다. 2008년 3월에는 국토해양부 산하 용산공원 조성 추진기획단이 설치되었고, 2009년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가 진행되었다.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이 고시된 것은 2011년이고, 그를 바탕으로 한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가 드디어 2012년에 개최되었다. 익히 잘 알려진 바와 같이 ‘West 8 + 이로재 + 동일기술공사’의 설계안이 당선된 바로 그 공모전 이다. 『환경과조경』은 당선작 소개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고, 개인적으로는 ‘조경비평 봄’ 회원들과 함께 『용산공원 -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출품작 비평』이라는 별도의 단행본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 ‘조경비평 봄’은 단행본 출간 이후 2013년 5월에 ‘공개 세미나 - 다시, 용산공원을 말하다’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2016년 1월호는 『환경과조경』이 ‘용산공원’을 다루는 네 번째 특집이다. 또 ‘용산공원인가’라며 식상해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다행스럽게 차이가 있다. 기존의 세 번의 특집이 모두 용산미군기지 반환(혹은 공원화)이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었던 시점에서 다뤄졌던 것임에 비해, 이번 특집은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이 침잠해있는 시기임에도 『환경과조경』이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기 위해 기획했기 때문이다. 용산공원은 더디지만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환경과조경』이 용산미군기지를 처음으로 다뤘던 1988년으로부터 27년이 흘렀다. 싱거운 우연의 숫자에 불과하지만, 정부에서는 2027년에 용산공원의 공식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연과 우연이 포개져 ‘응답하라 2027’이라는 제목을 선택한 까닭이다. 2027년에 만나게 될 용산공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니, 그보다는 2027년에는 과연 용산공원을 만날 수 있을까? 물음과 의문이 포개진다. ‘응답하라, 2027년의 용산공원이여!’
  • [편집자의 서재] 악스트 Editor’s Library: Axt
    잡지 업계 종사자들에게 12월은 잔인한 달이다. 보통 새해 첫 달 1년 정기구독을 신청하는 독자들의 정기구독 기간이 12월에 만료되기 때문이다. 우수수 떨어져 나간 정기구독 만료자의 숫자가 새해를 넘기는 동안 차츰 회복되긴 하지만 단숨에 훅 떨어지는 12월의 구독자 그래프에 에디터의 가슴도 철렁 내려앉기 마련이다.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가 이때만큼은 반가움을 넘어서 절실하다.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가 뜸하면 구독 문의도 없는가 싶어 초조해지기까지 한다. 12월의 구독자 그래프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은 잡지 시장의 불황과 출판 업계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지난 몇 달간 주연 배우의 패션과 대사가 연일 화제에 오르며 싱글 여성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던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는 또 다른 의미로 내 마음에 불을 질렀다. 폐간 위기의 잡지사에서 고군분투하는 인턴 김혜진(황정음 분)의 성장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절체절명의 잡지사가 정체를 숨겨왔던 얼굴없는 소설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극적으로 생존하게 된 해피엔딩은 영 뜬금없어 드라마의 애청자로서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식의 해결 방법이 잡지사를 위기에서 구해낼 유일한 동아줄이란 말인가? 1년 반 동안 『환경과 조경』 편집팀을 가까이에서 관찰한 바로는 안타깝게도 우리 편집팀에 정체를 숨긴 유명인은 없는 듯하다. 최근 온라인 상에서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현실판이라며 패션지 『보그걸』의 기약 없는 휴간 소식이 이슈가 되었다. 10대와 20대 초반 소녀들을 타깃으로 한 『보그걸』은 한창 꾸미기와 멋 내기에 관심이 많았던 10대 시절, 내가 교과서보다도 열심히 정독하고 스크랩북을 만들었던 잡지였다. 이제 오늘날의 소녀들은 잡지의 화보를 오려 벽에 붙여놓기보다는 인기 블로거들이 운영하는 패션 블로그를 즐겨찾기 하거나 인스타그램에서 스타의 데일리룩에 하트를 누른다. 2015년에 기약 없는 휴간 혹은 폐간에 들어간 잡지는 『보그걸』뿐만이 아니다. 1983년 11월 창간 이후 32년간 꾸준히 발행되어 온 국내 최초 IT 전문 매거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한국의 애니메이션·게임 마니아들에게 격려와 지지를 받으며 1999년 7월 창간된 『뉴타입』 한국판 등도 매체 환경 변화와 수익 구조의 악화로 인해 휴간 혹은 폐간의 수순을 밟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잡지들도 줄줄이 폐간 소식을 전하는 와중에 지난해 문학계에서는 유난히 새롭게 창간한 잡지가 많았다. ‘문학이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는 도끼axt’를 표방하며 지난 7월에 출간한 격월간 문예지 『악스트』, ‘미스터리mystery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hysteria’이라는 뜻을 가진 구어를 제호로 사용한 미스터리 전문 격월간 잡지 『미스테리아』, 김현, 강성은, 박시하 등 젊은 시인들이 주축이 되어 크라우드 펀딩으로 창간한 『더 멀리』 등의 신생 문예지들은 ‘신선하긴 한데, 그렇게 해서 되겠어’라는 의심의 시선을 응원과 격려, 그리고 안도의 시선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악스트』는 창간호부터 애정을 갖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고 있는 잡지다. 책을 만들면서도 서점에서 계산하는 순간만 되면 책값이 아까운 옹색한 에디터의 눈을 확 사로잡는 파격적인 가격(2,900원) 때문만은 아니다. 한두 권만 꽂아도 서재의 빈 공간을 꽉 채우는 부담스러운 두께의 기존 문예지와는 달리 들고 다니면서 읽기 편한 슬림한 두께와 사이즈, 가독성보다는 미적인 요소를 중시한 편집 디자인, 젊지만 재능 있는 필진, ‘비평’이라는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쉬운 언어로 작가 및 독자와의 소통을 강조한 ‘서평’ 위주의 구성 등 기존 문예지와는 다른 신선한 시도에 잡지를 만드는 에디터로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악스트』의 창간호는 초판 5,000부가 일주일 만에매진돼 5,000부를 더 찍었고 2호(9·10월호) 역시 7,000부가 팔렸다고 한다. 비단 에디터뿐만 아니라 이전에 기존 문예지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 새로운 문예지에 응원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악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와 애정은 단순히 새로움 때문일까? 사실 『악스트』는 겉으로 보이는 색다른 디자인과 편집 구성과는 달리 내용 자체는 순수하게 ‘문학’에 집중한다. 이번 『악스트』 3호(2015년 11·12월호)의 커버 스토리로 소설가 공지영이 실린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벌써부터 이슈 몰이를 한번 해보려는 건가’란 생각에 실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편견과는 달리 공지영과의 인터뷰는 그녀의 인생과 소설에 대해 다루면서도 선정적이기보다는 담백했고 문학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는 편집위원을 대표해 쓴 『악스트』 3호 ‘outro’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중적 취합에 부합하려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노선을 선택한 다른 잡지들에 비하면, 사실 『악스트』는 문학이라는 순수를 온전히 입고 있다. 『악스트』는 분명 즐거움의 잡지지만, 그 즐거움은 문학의 즐거움이지 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악스트』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 생각이 많은 것일까? 문학을 향해서 정면으로 가다니. 많은 이들이 의심하고 죄악시하며 이제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가운데 거의 폐기처분될 운명인, 현대의 대표적 소수 의견, 문.학.” 『악스트』 3호 ‘outro’를 읽으며 미국의 실험적인 문학 계간지 『맥스위니스』의 설립자 데이브 에거스가 쓴 『왜 책을 만드는가』 서문을 생각했다. “우리는 말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세계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말을 매만지는 그 끝없는 과정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함께 모였고, 또 여전히 함께 한다. 또한 그 말이 살아남고 존속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책 만들기의 끝없는 과정에 지금 몸담고 있다.” 마감 기간, 산더미처럼 쌓인 교정지와 밀려 있는 원고 앞에서 멘탈이 흔들릴 때마다, ‘종이책은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을 경신하고 있다’는 표현을 볼 때마다 펼쳐보곤 했던 책이다. 위기의 잡지를 구하는 건 유명인과의 단독 인터뷰도, 세련되고 멋진 디자인도, 파격적인 특집도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문학계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으로 또다시 크게 불거진 문학 권력화와 출판 상업주의 문제로 내홍을 겪었다. ‘터질 게 터졌다’는 싸늘한 시선과 한국 문학계를 향한 조롱 속에서 창간한 『악스트』는 문예지로서 문학의 순수한 영역을 실험하고 탐구하고 있다. 잡지 고유의 순수한 정체성을 향해 정면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독자와 공유하며 즐기는 것. 그것이 잡지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동아줄이라는 것을 『악스트』가 계속 보여주길 기대한다.
  • [재료와 디테일] 자연석 쌓기 유감
    안정적인 외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수평이 맞는 평평한 상태의 공간이다. 물론 약간의 경사가 있는 환경이 더 흥미로울 때도 있지만. 경사가 있는 외부 공간을 수평으로 만들어 사용 가능한 땅을 더 확보하는 방법은 옹벽을 세워서 그 앞의 공간을 늘리는 것이다. 이때 옹벽이라는 구조물이 쓰인다.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일정 깊이로 땅을 파고 콘크리트 등의 견고한 구조물을 땅 속에 단단히 고정시킨 후, 그 위에 벽을 세워서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 주는 방법이다. 옹벽은 공정이 복잡하므로 공사에 사용할 수 있는 땅이 충분할 때 가능하기 때문에 장소가 협소하거나 토압으로 인한 구조적인 위험이 있는 공간에서는 사용하기가 번거롭다. 그래서 조경 분야에서 소규모 경사를 처리할 때는 자체의 중량만으로 토양의 압력을 받아내는 자연석 쌓기를 많이 사용한다. 시내 어디에서든 경사가 조금이라도 있는 곳이면 이 기법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돌과 돌 사이에 석간수라고 불리는 나무를 식재하기 때문에 회색의 콘크리트 옹벽보다 사랑받는 듯하다. 왜 그런 것일까 생각해보면 아마 자연스럽다는 게 그 이유일 것이다. 인공의 대명사인 콘크리트와 대척점에 서 있는 자연의 상징인 돌이라는 소재에 초록의 나무까지 곁들일 수 있으니 그 자연스러움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자연 소재의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자연 소재의 나열이 자연스러움에 대한 미학적인 정당성을 줄 수 있을까.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