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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의 서재] 세계의 끝 여자친구 Editor's Library: World’s End Girlfriend
    잡지에 실릴 작품 이미지를 고르는 작업은 언제나 두통을 몰고 온다. 이제 제법 익숙해 질 때도 되었건만, 이미지의 우선 순위와 레이아웃을 구상하는 작업은 여전히 어렵다. 한 번집중력을 잃고 무언가에 홀리기 시작하면 결정 장애의 블랙홀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이런 점 때문에, 그 사진은 그런 점 때문에 좋아 보였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모든 사진이 부적합해 보인다. 1차적으로는 프로젝트의 주변 맥락과 설계 의도, 디자인 해법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몇 가지 핑계를 댈 만한 변명거리도 있다. 보통, 사진의 화질이나 구도가 좋지 않은 경우, 컷 수가 너무 적은 경우, 사진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엔 머릿속에서 레이아웃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작업한 캇베이크 해안 프로젝트는 평소와는 다른 이유로 메인 컷을 고르는 데 애를 먹었다. 캇베이크 해안 프로젝트는 네덜란드 남서부, 북해 연안에 위치한 인구 4만 1,000명의 소도시, 캇베이크의 사구 경관을 복원했다. 캇베이크는 1848년 해수욕장을 개장한 오랜 휴양 도시이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건축물도, 화려하고 이국적인 식생도, 특별한 레포츠 시설도 없는 조용한 마을이다. 마을 분위기에 어울리게 프로젝트도 차분하고 소박했다. 제방을 덮은 사구 언덕이 프로젝트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미지라고 생각해서 메인 컷으로 넣어보았는데 다른 프로젝트와 비교하니 뭔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심심해 보였다. ‘메인 컷은 시선을 사로잡는 ‘쌈박한’ 이미지가 들어가야 한다’는 고정관념 아닌 고정관념이 있던 터라 고민이 많이 됐다. 몇 번의 회의와 이미지 교체를 거친 끝에 최종적으로 선정한 메인 컷에는 억세고 질겨 보이는 사구 식생이 뒤덮은 언덕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쓸쓸해 보이기도, 다정해 보이기도 하는 두 사람의 모습과 네덜란드 북해 연안의 허허로운 풍경에서 연상되는 소설이 있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남자의 경우엔 호불호가 갈렸지만, 대학 시절, 국문학과 여학생치고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애는 없었다. 2013년도쯤인가 한 출판사의 기획으로 김연수의 낭독회가 학교 소극장에서 열렸는데 신청한 사람의 90% 이상이 여자였을 정도다. ‘아직까지 김연수 소설을 안 읽었냐’는 주위 친구들의 성화를 못 이겨 읽는 체 했지만, 나는 사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와 같은 제목의 소설은 너무 단 디저트처럼 왠지 껄끄럽고 낯간지러웠다. 그러다 21살 여름, 나 역시 결국 김연수의 광팬이 되었다. ‘세계의 끝’은 아니지만 친구의 집에 놀러간다는 핑계를 대고 좋아하는 선배를 보러 태풍을 뚫고 한반도 남쪽 끝까지 내려갔던 여름방학의 일이었다. 그렇게 단단히 제대로 눈에 콩깍지가 씌자 그렇게도 질색을 하던 연애소설과 유행가가 전에 없이 애틋하게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만의 속앓이로 끝난 내 짝사랑의 말로처럼, 사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로맨틱하거나 달콤한 소설은 아니었다. 심지어 소설에서 등장한 ‘세계의 끝’은 내가 기대했던 ‘아득한 저 너머’는커녕, 메타세쿼이아 한 그루가 서있는 동네 호수 건너편이다. 소설의 플롯은 강렬하기보다는 잔잔하다. 요약하면, 도서관 게시판에 붙어 있는 시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우연히 읽고 ‘함께 시를 읽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 ‘나’가 모임에서 만난 ‘희선 씨’를 통해 시를 쓴 시인의 이루어질 수 없던 사랑이야기를 듣고 시인의 전 여자친구에게 시인이 부치지 못한 편지를 전달하게 된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렇지만 이 소소하고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의 끝’을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다. 아주 사소한 계기, 평범한 일상의 단초가 그 이면의 배경·맥락과 만나 거대하고 깊은 삶의 서사로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게시판에 시를 소개하곤 했던 한 사서의 부지런함이 단초가 되어 시 모임이 만들어지게 되고, 모임의 회원이 소개한 시를 읽은 ‘나’가 호기심에 책 한 권을 찾아보게 되며, 덕분에 시인의 과거와 사랑 이야기를 알게 된 ‘나’를 통해 시인의 편지가 옛 여자친구에게 전해지는 일련의 과정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섬세하게 진행된다. 작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우연과 우연이 만나 필연처럼 전개되는 순간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불가사의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삶의 원초적인 비밀을 한 꺼풀 벗겨보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에서 ‘나’는 이렇게 회상한다. “비록 형편없는 기억력 탓에 중간중간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빠진 것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인생은 서로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1 그러니까, 뭔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심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캇베이크 해안의 사구 언덕 사진에도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가, 최초의 톱니바퀴가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쓸쓸해 보이기도, 다정해 보이기도 하는 두 사람은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넘어 ‘세계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연인인지도 모른다. 마을과 바다 사이의 거리가 더 늘어난 덕분에 어쩌면 그들은 전보다 더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른다. 모래에 뿌리를 박고 자라난 억세고 질긴 풀 숲 사이에 누군가 부치지 못한 편지를 묻었을지도 모른다.
  •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베니스 길목에서 만나는 ‘세상의 골목들’ The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la Biennale di Venezia
    두 손을 마주 잡은 듯한 형상의 베니스는 120여 개의 섬, 400여 개의 다리가 엮인 미로와 같은 수상 도시다. 지중해의 절경, 유서 깊은 건축물, 낭만적인 운하의 정취를 북돋는 곤돌라 등 베니스의 매력은 전 세계 여행자들을 불러들이지만, 미술전과 건축전이 격년으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수많은 예술인들 역시 베니스로 불러들인다. 바로 얼마 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2015년 5월 9일 ~ 11월 22일)는 아프리카계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총감독을 맡아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 Futures’를 주제로 전 세계 미술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치학을 전공한 엔위저의 사회ㆍ정치적 관심에 응답하듯 53개국 136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에는 동시대의 분쟁과 사회적 현상을 직시한 작업이 주를 이뤘으며, 국가관 전시 또한 각각의 사회ㆍ정치적 이슈로부터 미래의 전망을 모색했다. 베니스 섬의 가장 끝 부분에 위치한 지아르디니Giardini와 아르세날레Arsenale 두 장소에서는 총감독이 기획한 본 전시와 각 나라별로 기획한 국가관 전시를 개최한다. 현재 89개의 국가관이 있는데, 이곳에 국가관을 두지 못한 30여 개 나라는 베니스 곳곳에 흩어져 건축 공간을 활용한 전시를 선보인다. 전시 기간 동안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은 큰 화두가 되고, 각 국가관의 전시도 자본력에 힘입어 여러 매체가 경쟁적으로 다루곤 한다. 사실 짧은 일정으로 베니스를 방문한 미술인들은 이 두 장소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벅차다. 시종일관 스펙터클한 수백여 개의 작품을 하루이틀 만에 모두 보려 한다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넘쳐나는 정보에 머리가 멍해지곤 한다. 마치 국제적 이슈가 가득한 신문을 연이어 읽는 듯하다. 행사가 모두 끝난 시점, 2017년의 비엔날레 감독이 발표되고 올해의 건축 비엔날레가 곧 드러날이 시점에 필자는 골목길에서 묵묵히 울려 퍼지던 작은 국가관들과 전시들을 이번 지면을 빌려 소개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이 연재가 동시대 예술과 도시성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비엔날레 전시를 통해 베니스 도시 깊숙이, 건축물의 외부와 내부를 여행하듯, 세계 곳곳에서 온 목소리를 들어보자. 건축과 현대 미술 사이의 황홀한 대화 : 창조의 소리전, 션 스컬리전, 단색화전 베니스에 있으면 어느 건물 하나 역사적이지 않은 게 없다. 수백 년, 어떤 건축물은 천년 이상 되기도 했으니 도시 전체가 박물관과 같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런 진귀한 건축물이 가득하지만 사실 관광객에게 개방된 유적지와 박물관, 전시실, 공공건물을 제외하고는 개별 건축 공간을 경험하기란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전 세계에서 온 여행 인파까지 북적거리니 공간의 사색에 고요히 잠기기란 더욱이 어렵다. 건축 공간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그리고 사색의 골목길을 즐기고 싶다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동안 진행되는 병행 전시와 도시 속 국가관 전시들을 최대한 활용하라 조언하고 싶다. 숨겨진 현대 미술 전시를 발견하는 묘미와 더불어 평상시에는 개방되지 않는 사적인 공간을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골목 곳곳을 누비며 비밀스런 저택의 풍경을 탐닉하는 즐거움을 덤으로 안게 된다. 처음 소개할 전시는 1603년에 지어진 팔라초 피사니Palazzo Pisani에서 열린 뮤지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화가 비지 베일리Beezy Bailey의 전시 ‘창조의 소리The Sound of Creation’다. 이 건축물은 현재 베네데토 마르첼로Benedetto Marcello 음악 학교로, 내부공간에 들어서면 클래식 선율이 울려 퍼지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곳 내부의 주 계단을 활용해, 베일리의 그림을 보며 이노의 음악을 헤드셋으로 청취할 수 있도록 했다. 청각과 시각이 결합된 특별한 협업 전시다. 그림은 음악의 이미지를 풍부히 연상시키고, 음악은 미술의 시각 작용을 더 깊숙이 자극한다. “우리는 음악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눈으로만 이미지를 보지 않는다.” 기획의 변처럼 공간에 울리는 소리가 잠재된 기억들을 현재로 생생히 불러들인다. 두 작가의 시각적 소리, 청각적 그림은 건축물에서 울려 퍼지는 선율과 만나 더욱 풍성해진다. 뿐만 아니라 건물의 한 홀에는 작년 국가관 황금상을 받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앙골라관의 ‘여행길에서On Ways of Travelling’가 동시대 앙골라 작가들의 사회적 의식을 소개했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 [시네마 스케이프] 유스 젊음의 조건
    공모 제출을 며칠 앞두고 설계실엔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돈다. 초콜릿으로 당을 보충하고 커피를 거푸 마셔보지만 체력은 급속히 떨어진다. 대세에 큰 지장이 없는데도 수치지도와 항공지도 중 어떤 것을 베이스로 할지 토론을 거듭하고, 같은 다이어그램을 수십 번도 더 바꿔본다. 미세한 선 두께 하나, 눈에 띄지도 않을 토씨 하나 바꾸고 박수를 치는 지경에 이르면 누군가의 입에서 변태(?)라는 표현이 저절로 나온다. ‘예전엔 말이야. 이 그림자를 다 연필 가루로 갈아서 만들었어. 글자 스티커를 일일이 손으로 따 붙이고 동선은 띠 테이프로 표현했지.’ 마우스로 설계를 배운 세대들에게는 한국전쟁 때 이야기로나 들릴 법한 무용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선배들에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내가 왕년에’로 시작하는 모험담이었는데, 이제 내가 후배들에게 읊고 있다. 나이 들었다는 증거다. 나이 들면 지혜가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다. 경험의 사례가 많아지는 것 외에 나이 들어서 나아지는 건 별로 없다. 무엇이 사람을 늙게 하는가. 무엇이 젊은 걸까. 시간 외에 다른 변수는 정말 없는 걸까.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는 노래 가사처럼 젊음은 그 당시엔 알지 못한다. 그저 서툴고 불안하기만 했다. 영화 ‘유스Youth’는 늙음을 보여 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젊음을 이야기한다. 유스의 주인공은 두 노인이다. 은퇴한 지휘자 프레드는 비서 역할을 하는 딸과 함께 스위스 호텔에 투숙 중이다. 건강 검진을 겸하며 휴양 중인 프레드는 영국 여왕의 특별 행사에서 그의 대표곡인 ‘심플 송’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거절한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이집트 유전자 찾기 History of Landscape Architecture with 100 Scenes: Finding the Egyptian Gene
    #75 나일 강에서 빌라 데스테까지 1549년 이탈리아의 티볼리.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그의 전설적인 이상향, 빌라 아드리아나1를 지었던 곳. 그 빌라의 폐허를 뒤지고 다니는 인물이 있었다. 피로 리고리오Pirro Ligorio(1514~1583)라는 이름의 화가이자 건축가, 고미술 전문가였다. 당시 그는 유적지의 돌무더기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고고학자로서 새로운 경력을 쌓는 중이었다. 데스테Ippolito II. d’ste(1509~1572) 추기경이 그에게 명을 내린 것이다. 데스테 추기경은 티볼리의 총독이 되어 새로 부임해 왔다. 기왕티볼리에 부임한 이상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진정한 후계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살 곳을 찾아보니 성벽에 높이 자리 잡은 성 프란시스코 수도원의 위치가 좋아 보였다. 언덕 위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는 형상이었다. 주변 경관이 수려했고 동쪽으로 아이에네 강이 감싸 돌고 있었다. 추기경은 이 수도원을 자신의 거처로 정하고 주변의 농가를 모두 사들였다. 이들을 철거한 뒤 거대한 정원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리고리오에게 설계의 총책임을 맡기고 빌라 아드리아나 유적지를 샅샅이 탐사하라고 지시했다. 리고리오에게는 고대의 건축과 예술을 연구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였으므로 발굴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물론 발견된 조각상들을 퍼가는 것도 임무 중의 하나였으나 건축물의 잔재, 조형물, 시설 등을 꼼꼼히 그려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에 영감을 얻어 ‘빌라 데스테Villa d’ste’를 설계했다. 이탈리아 정원 중 최고의 걸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리고리오의 눈앞에 드러난 유적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 지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영원한 발굴 현장이므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일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드리아나 빌라 유적지 항공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중요한 ‘물의 축’들을 리고리오도 본 것은 틀림없다. 지하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었던 수로도 탐험했을 것이다. 빌라 데스테는 두말할 것 없이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명소로 꼽을 수 있는 곳이다. 정원의 기본 틀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지만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분수가 장관을 이루며 웅장한 콘서트를 연주하는 물의 오케스트라 정원이다. 특히 백 개의 분수가 나란히 정렬된 길은 너무나 유명하다. 전체 공간 구조를 보면 사면, 즉 테라스 정원과 평지 정원으로산뜻하게 이분 된다. 언덕 위의 건물 정면에서 종축을 따라 다섯 단의 테라스를 내려가면 평지에 도달하는데 여기서 바로 횡축과 만나게 된다. 이 횡축은 긴 연못 세 개가 연속된 ‘물의 축’이다. 동쪽으로는 거대한 물 오르간과 넵튠 분수가, 서쪽으로는 엑세드라Exedra라고 하는 장식벽이 축을 마감한다.2 아콰에둑투스와 지하 수로망을 만들고 아이에 네 강의 물을 끌어와 초당 1,200리터의 물 공급이 가능했다고 한다.3 횡축 아래쪽의 평지 정원은 본래 설계되었던 것과 지금 모습이 전혀 다르다. 당시엔 좌우로 복잡한 미로가 조성되어 있었고 중앙에서 트렐리스 두 개가 교차했다. 현재 방문객들은 건물 뒤로 입장하여 정원으로 ‘내려’가게 되어있으나 본래는 정원 쪽에서, 즉 종축이 끝나는 곳에서 입장하여 건물을 향해 ‘올라’가도록 유도되었다.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 우선 정원 게이트를 통해 입장하면 바로 터널과 같은 트렐리스로 들어간다. 컴컴한 터널 속을 걷는 동안 갑자기 우레 같은 대포 소리, 총소리가 들려와 간이 서늘해진다. 그러다 잠잠해지면서 아름다운 새들의 합창이 들리는가 하면 다음 순간엔 파이프 오르간이 장중하게 울리고 어디선가 높은 트럼펫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물을 이용하여 각종 음향 효과를 냈던 것인데 터널의 어둠 속을 걷던 방문객들은 소리의 원천을 모르니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다 터널 중간 지점에서 길이 좌우로 갈린다. 갈림길을 따라 좌우로 가면 깊은 미로로 연결되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러나 좌우의 유혹을 물리치고 직진하면 터널 끝에 빛이 보이며 밝은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이때 아마 모두 ‘아!’ 하고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어둠과 위협 속에서 헤매다 마침내 낙원에 도착한 것이다(에티엔 뒤페라크의 빌라 데스테 조감도 참조). 빌라 데스테는 일종의 ‘도상圖像 정원’이다. 상징과 부호가 가득 담겨 있는 그림처럼 뜻을 해독해야 하는 정원이다. 분수, 조형물, 시설물 등이 바로 상징과 부호 역할을 한다. 해석하기에 따라 우주의 심각한 비밀이 숨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표면적으로 보면 숨은그림찾기나 퀴즈 같은 일종의 지식 게임이다. 세 가지 주제가 도입되었다. 첫째는 ‘자연과 예술의 관계’, 둘째는 ‘지역의 아름다움’이며, 셋째는 ‘헤라클레스와 헤스페리데스 정원’이다.4 자연과 예술의 관계는 우선 정원 그 자체에서 읽어낼 수 있지만 백 개의 분수에도 가득 숨어있다. 이 분수는 두 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단의 분수는 모두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나 상단의 형상들은 제각각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형상들이다. 당시의 방문객들은 이들의 정체를 알아보고 그에 얽힌 사연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체면이 섰을 것이다. 다음주제, 즉 지역의 아름다움은 티볼리 분수라거나 로마 분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차례다. 데스테 가문 역시 조상이 헤라클레스라고 우겼던 사람들이었다. 정원 도처에 황금 사과 모티브가 숨겨져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위에서 설명한 정원 체험 콘셉트다. 헤라클레스처럼 어두운 지하 세계를 통과한 뒤 마침내 도달한 낙원. 이것이 헤스페리데스 정원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런 의미에서 트렐리스와 미로가 없어진 것과 동선이 달라진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숨은그림찾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년 전부터 이집트 학자들 사이에 ‘빌라 데스테에서 이집트 유전자 찾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 게임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다시 빌라 아드리아나로 되돌아가야 한다. 빌라 아드리아나가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빌라 데스테가 여기서 영감을 얻었으니 이집트의 유전자도 함께 묻어갔을 것이라는 짐작은 그리 황당한 것이 아니다. 빌라 아드리아나의 카노푸스Canopus라는 파노라마 연회장을 기억할 것이다. 카노푸스는 나일 강 하구에 있는 운하 도시다. 여기서 일단 이집트와 만나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하드리아누스는 로마 황제이 면서 이집트 도시를 자기 정원에 형상화했던 것일까. 그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로마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왕조를 무너뜨린 뒤 이집트는 로마 황제의 직속 통치령이 되었다. 로마 황제들은 자동으로 파라오가 되었고 이집트는 그들의 ‘사유지’나 다름없었다. 또한 이집트 정복과 함께 로마에 이집트 바람이 크게 불었다. 한시적인 돌풍이 아니라 근 오백 년간 지속된 기후 변화 현상이었다. 무엇보다도 평민들이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을 ‘종합 신’으로 받아들여 이시스 컬트가 크게 융성했다.5하드리아누스는 오랫동안 이집트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들처럼 아끼던 안티노오스Antinous라는 미소년이 동행했는데 카노푸스 근처의 나일 강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이를 슬퍼한 황제는 안티노오스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설립하고 그가 오시리스 신이 되었다고 선언했다.6 집으로 돌아와 티볼리의 빌라에 이제는 신이 된 안티노오스의 신전을 세우고 카노푸스 연회장을 지었다. 빌라에 연회장이 여러 개 있었으나 이 카노푸스는 아마도 안티노오스를 조용히 애도 하는 사적 연회에 이용되었을 것이다. 빌라 데스테에서 카노푸스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횡으로 연계되는 물의 축에서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여기에 리고리오는 강한 종축을 교차시켰을 뿐이다. 이런 종축은 하드리아누스 시대에는 없던 것이다. 르네상스 전성기에 시작되었으며 후에 바로크에서 완성된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조경의 경제학] 조경가의 경제학적 스타일 1 Economics of Landscape Architecture: Economic Style of Landscape Architects 1
    조경가의 스타일 당신은 조경가다. 사람들이 휴식하고 사색하고 땅과 교감할 수 있는 정원을 디자인하는 것이 당신의 일이다. 어제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나 끝낸 터라 오늘은 좀 한가하다. 의자를 젖히고 뒤로 기대본다. 작업실 책장 높은 곳에 언제부터 인지 모르게 꽂혀 있는 낡은 그림책에 눈이 간다. 느긋함을 좀 더 즐기기 위해 먼지를 털어내며 펼쳐본다. 책에는 유명한 정원들이 소개되어 있다. 정원마다 특색이 있어서 굳이 단락을 나누지 않아도 시대나 작가가 다름을 짐작할 수 있다. 학창 시절 그 이름들을 외우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문득 진지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사람들은 나의 작품을 어떻게 알아볼까? 작가로서 나의 스타일은 무엇인가’예술에서 ‘양식style’은 크고 진지한 이야깃거리다. 양식은 작가 개인, 시대나 민족, 범주로서의 장르 등 다양한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미학적 개념이다. 특히 시대나 민족에 따라 다른 문화와 예술 형식의 관계를 다루는 ‘역사적 양식’은 예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조경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조경사는 대체로 양식사로서의 정원사다. 그래서 조경학을 전공한 사람은 양식이라고 하면 절대 왕정 시대 프랑스의 기하학적 정원이나 18세기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 같은 전형을 먼저 떠올린다. 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스타일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그것이 패션이든 영화든 (심지어 예술이 아닌) 사람의 성격이든 일관되게 관찰되는 형식이 있어서 한 종류로 묶을 수만 있으면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묶든 뭐라고 부르든 그건 내 맘이다. ‘그 남자는 잘 해줘도 고마운 줄 모르는 왕자 스타일이야. 내가 전에 사귄 오빠도 같은 스타일이었잖아. 늦기 전에 어서 헤어져.’ 전혀 어색하지 않은 훌륭한 문장이다. 당신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스타일을 생각한다. 미학 이론처럼 심각하지 않더라도 일상용어보다는 좀 더 무게 있는 방식으로. 우선 작품에서 자주 발견되는 형태에 주목해 본다. 시각적 특징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차별화된 체험을 주는 핵심적인 요소니까. ‘그런데 눈에 보이는 형태로 스타일을 정의하다니,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이번에는 부지를 해석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에 주목해 본다. 세계적인 조경가들이 난해한 이미지와 다이어그램으로 자신의 작업방식을 표현한 것을 떠올리면서. ‘하지만 어지간히 유명하지 않고서야 누가 나의 디자인 과정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그 외에 생태적 건강성에 대한 태도, 정원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철학 등 여러 측면을 배회한 끝에 당신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조경가의 스타일을 정의하기 위한 접근 방법은 매우 다양하며, 당신이 그 중 어느 하나에 주목한다고 해도 나머지의 의미가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을. 형태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생태주의자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참신한 방법론이 적용된 작품이 과연 정원이라불릴 수 있는지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의도에 자상하게 주목하는 전기傳記적 비평은 문학에서도 주류의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오늘날 비평은 창작으로부터 자유롭다. 하물며 정원이라는 실물을 생산하는 조경에서야.조경가의 스타일이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해서 조경이 특이한 예술인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사정은 문학이나 음악이나 미술에서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다만 조경은 토지라는 자원을 사용하고 사람이 생활하는 장소를 만든다는 점에서 환경이나 사회적 측면을 깊게 고려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니 경제적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문학이나 음악이나 미술과 차이를 갖는 조경이라는 예술의 특징이다. 이 글에서는 시장균형을 다루는 경제 모형을 통해 조경가의 경제학적 스타일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경가가 추구하는바’와 그것이 초래하는 ‘시장균형의 변화’가 중요한 관심사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접근 방법은 전혀 미학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살펴볼 경제학적 메커니즘으로부터 조경가가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생산 The Way They Design: Production
    지난 두 번의 연재를 통해 설계에 대한 나의 테제 몇가지를 공유했다. ‘문제제기’와 ‘과정’에 이어 마지막으로 ‘생산’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단상을 풀어놓는다. 생산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설계의 가장 즉각적인 행위다. 다양한 도구와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고방식이자 작업으로, 머리와 손 그리고 도구의 친밀한 연장 관계 속에서 구현된다.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사적이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능동적인 공간 생산 방법이다. 이를 개인의 기술, 감각, 경륜의 결과로 설명하면 설계를 너무 사적인 행위로 한정하게 된다. 설계는 공간의 사용을 통해 지식 담론을 탐색, 항해, 생산하는 행위다. 비평가나 학자가 글쓰기를 통해 담론을 생산하듯 설계가는 공간 재현을 매체로 담론을 구축한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다이어그램, 도면, 스케치, 이미지, 그래픽, 모형, 등 각양각색의 재현 매체와 이 매체와 관련된 담론은능동적 공간 생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조금은 더 즉각적인 생산의 단상을 짚어본다. 보르헤스의 지도 첫 설계 수업에서 교내 건물 실측과 도면 그리기 과제가 주어졌다. 처음 접하는 스튜디오 문화였고, 2주 안에 캠퍼스 내에 위치한 르 코르뷔지에의 카펜터 센터Carpenter Center를 실측하고 도면화 해야 하는 과제였다. 어마어마한 작업량에 매달리면서 왜 현존하는 건물을 그대로 베끼는 작업을 해야 하는지 의아해 했다. 졸업하고 난 후 한참 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과학의 정밀성에 대하여On Exactitude in Science”1라는 짧은 단편을 읽고서야 이 과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축소·재현된 지도에 만족하지 못한 제국의 뛰어난지도 제작자들은 전국을 일대일로 상세히 복제한 지도를 제작한다. 하지만 지도 제작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후세는 이 지도가 쓸모없다고 생각했고 결국 이 지도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이 이야기는 현실의 일대일 복제의 부질없음을 말한다. 축소를통한 선택적 편집과 재현은 현실의 복제보다 더 강력한 매개체이며 지도와 같은 레프리젠테이션 또한 동의된 코드와 언어적 구조 속에서 재현의 메커니즘을 구축한다. 따라서 보르헤스의 지도는 설계에 있어 세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공간은 항상 레프리젠테이션, 즉 재현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둘째, 공간의 재현은 스케일을 매개로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셋째, 재현은 능동적 편집의 문제라는 점이다. 현실화되기 전까지 상상과 이미지로 존재하는 공간은 도면이나 모델 등으로 축소되어 소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케일은 선택적 편집의 능동적 도구가 된다. 현실과 재현 사이의 차이는 문제가 아닌 기회다. 설계는 실제와 레프리젠테이션 사이에 존재하는 스케일의 갈등을 선택적 축약, 의도적 지난 두 번의 연재를 통해 설계에 대한 나의 테제 몇 가지를 공유했다. ‘문제제기’와 ‘과정’에 이어 마지막으로 ‘생산’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단상을 풀어놓는다. 생산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설계의 가장 즉각적인 행위다. 다양한 도구와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고방식이자 작업으로, 머리와 손 그리고 도구의 친밀한 연장 관계 속에서 구현된다.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사적이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능동적인 공간 생산 방법이다. 이를 개인의 기술, 감각, 경륜의 결과로 설명하면 설계를 너무 사적인 행위로 한정하게 된다. 설계는 공간의 사용을 통해 지식 담론을 탐색, 항해, 생산하는 행위다. 비평가나 학자가 글쓰기를 통해 담론을 생산하듯 설계가는 공간 재현을 매체로 담론을 구축한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다이어그램, 도면, 스케치, 이미지, 그래픽, 모형, 등 각양각색의 재현 매체와 이 매체와 관련된 담론은 능동적 공간 생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조금은 더 즉각적인 생산의 단상을 짚어본다. 보르헤스의 지도 첫 설계 수업에서 교내 건물 실측과 도면 그리기 과제가 주어졌다. 처음 접하는 스튜디오 문화였고, 2주 안에 캠퍼스 내에 위치한 르 코르뷔지에의 카펜터 센터Carpenter Center를 실측하고 도면화 해야 하는 과제였다. 어마어마한 작업량에 매달리면서 왜 현존하는 건물을 그대로 베끼는 작업을 해야 하는지 의아해 했다. 졸업하고 난 후 한참 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과학의 정밀성에 대하여On Exactitude in Science”1라는 짧은 단편을 읽고서야 이 과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축소·재현된 지도에 만족하지 못한 제국의 뛰어난 지도 제작자들은 전국을 일대일로 상세히 복제한 지도를 제작한다. 하지만 지도 제작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후세는 이 지도가 쓸모없다고 생각했고 결국이 지도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이 이야기는 현실의 일대일 복제의 부질없음을 말한다. 축소를 통한 선택적 편집과 재현은 현실의 복제보다 더 강력한 매개체이며 지도와 같은 레프리젠테이션 또한 동의된 코드와 언어적 구조 속에서 재현의 메커니즘을 구축한다. 따라서 보르헤스의 지도는 설계에 있어 세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공간은 항상 레프리젠테이션, 즉 재현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둘째, 공간의 재현은 스케일을 매개로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셋째, 재현은 능동적 편집의 문제라는 점이다. 현실화되기 전까지 상상과 이미지로 존재하는 공간은 도면이나 모델 등으로 축소되어 소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케일은 선택적편집의 능동적 도구가 된다. 현실과 재현 사이의 차이는 문제가 아닌 기회다. 설계는 실제와 레프리젠테이션 사이에 존재하는 스케일의 갈등을 선택적 축약, 의도적 편집 등의 협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수용, 변형시킬 수 있는 능동적 생산 행위다. 컴퓨터 3D 모델링 프로그램과 캐드의 등장으로 디지털상에서 실제 스케일 작업이 가능해지면서 레프리젠테이션이 시뮬레이션으로 대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3D 모델링에도 목적에 따른 선택적 편집이 요구된다. 궁극적으로 3D 모델은 대부분 2D 도면으로 축소, 전환되어야하기 때문이다. 3D 모델링으로 정교한 모델을 만들었지만 이를 제대로 렌더링, 편집, 출력을 하지 못해 작업이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는 시뮬레이션이 목적이 아니라 레프리젠테이션이 목적임을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 보르헤스의 경고를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머니샷 시애틀 올림픽 조각공원 설계공모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디자인 방향과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미팅이 있었다. 패널의 마지막 이미지인 조감도가 나오자 파트너는 “머니샷money shot을 위해 멋있어 보이도록 세로포맷으로 디자인을 조정합시다”라고 말했다. 사용 공간에 대한 고려 대신 레프리젠테이션의 효과를 중심으로 디자인을 생각하는 데 충격을 받은 내가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웃으며 모든 잡지 표지는 세로 포맷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기억은 나를 항상 불편하게 한다. 설계를 하면서 우리는 항상 프로젝트가 구상하는 공간의 미적, 경험적, 사용 공간에 대한 고민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설계는 다양한 차원에서 존재해야 하는 행위다. 실제로 지어져 사용자가 경험하는 물리적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구상하는 공간의 재현만으로 존재하기도 하고 그 재현 매개체 자체가 설계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공간의 생산Production of Space』에서 공간을 공간적 실천spatial practice, 공간의 재현representations of space, 그리고 재현의 공간 representational spaces으로 구분하여 정의한다.2 공간이란 실제와 재현 사이의 다양한 개념으로 존재하며 설계는 그 다양한 가능성을 활용한다. 재현을 통한 공간의 파생과 배포는 공간적 실천과 함께 설계의 중요한 생산 과정이다. 파트너와의 미팅 당시에는 마케팅 효과를 위해 디자인 콘셉트를 희생하는 게 저속하다고 생각했지만, 되돌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다. 물론 사용자를 위한 완성된 공간 생산에 전념하는 것이 설계가의 윤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행위력을 지닌 설계의 확장적 역량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재현과 재현한 공간의 다양한 능력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설계는 순수하고도 교활한 행위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설계안은 결국 설계공모에 당선되었고 문제의 머니샷은 실제 공원이 현실화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많은 국제적 잡지와 여러 책의 표지를 장식했다. 어반 스레드(Urban Thread),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2015) 세운상가에 대한 많은 재개발 의욕이 있었다. 1979년부터 네 차례 재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되었지만 상점 소유자와의 자금 문제로 실시되지 못했다. 그 후 이명박의 청계천 사업이 한참 진행 중이던 2004년, 세운상가 국제 지명 설계공모가 실시되면서 세운상가를 대신할 녹지축 공원과 이를 둘러싼 고층 첨단 산업 단지 개발이 시작될 듯 했다. 하지만 2005년 초, 청계천 관련 비리 의혹으로 세운상가 사업이 중지되었고 결국 오세훈 시장에게로 넘겨졌다. 그 후 종묘 앞 건물 높이 규제 완화로 인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보류와 상점 소유자와 임대 상인과의 마찰이 있었다. 2009년 초, 세운상가 1구역의 현대상가가 헐리면서 드디어 전 구역의 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듯 했지만, 국제 금융 대란의 타격으로 사업이 폐지됐다. 2015년 박원순 시장 아래, 다시 재개된 세운상가 설계공모는 이전과는 다르게 기존 건물을 보존하면서 공중 도보 데크 설치와 순차적인 공공 공간의 개조, 보완, 리프로그래밍을 통한 재정비를 제안한다. 하지만 여전히 기존 임대인과 상인 사이의 이해 관계와 보상 문제 그리고 주변 지역의 고층, 고밀도 재개발과 기존 도시 조직 재개편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세운상가는 매 정권마다 도시 성장 기계로의 변신을 명목으로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따라서 이번 설계공모를 빌미로 낙후되고 기술은 뒤떨어졌지만, 그동안 존속되어 온 독특한 상권의 자의적인 업데이트와 새로운 기술력을 가진 중소 상점의 입주를 도와줄 수 있는 소프트 인프라구축의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했다.
    • 서예례[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오피스 오브 어반 터레인즈 디렉터
  • [공간공감] 제주 도립미술관 Space of Sympathy: Jeju Museum of Art
    제주도의 아름답고 멋진 풍광에 비해 관광객을 맞이하는 수많은 시설의 수준은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 특히 곳곳에 난립해 있는 사설 뮤지엄과 테마 공간들은 더더욱 열악하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립미술관의 등장은 신선한 뉴스였다. 넓은 대지에, 전면의 수 공간이 가지는 정갈함도 여타의 관광지와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건축적인 수 공간이 가지는 힘은 대지의 성격을 강하게 규정한다. 그래서일까? 건축물과 한몸을 이룬 이 공간이 대지 전체를 엮어내기보다는 앞뒤로 분절시킨다는 느낌이 강하다. 미술관에서의 옥외공간은 자연스럽게 전시 공간의 일부분일 뿐 아니라 전시물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그 관계가 참 애매하다. 어떤 내러티브를 가진 듯도 하지만, 마치엄마의 밥 먹으라는 성화에 못 이겨 잘 그리던 미술 숙제를 도중에 놓아버린 느낌이랄까? 가능성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건축과 대지, 작품과 경관이 어쩌면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생각에…. 지금이라도 약간의 보완 작업을 가미하면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곳이다. _ 박승진 항공 사진으로 제주도립미술관을 확인해 보고 나서야 현장에서 본 식재와 포장이 조금이나마 이해되었다. 2D 화면에 펼쳐진 미술관의 레이아웃은 ‘큰 축과 선으로 감아주고’, ‘다양한 조형들이 과감하게 오버랩되면서 분절된 새로운 형태들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구사된 익숙한 플랜이었다. 그러나 겨울이었다고는 해도,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설계자의 의도와는 꽤 차이가 있어 보였다. 이 거리감은 시공 과정에서 세밀함을 챙기지 못한 탓일까? 기본 설계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약한 탓일까?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칼럼] 젠트리피케이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시 험하다 Column: Gentrification, Capitalism and Democracy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뜨겁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현상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18세기에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1800년대에 고작 5퍼센트에 불과했던 도시화율은 2000년대에 50퍼센트를 넘어섰다. 그에 따라 21세기는 인류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는 본격적인 ‘도시세대Urban Age’에 접어들었고, 인류의 미래가 도시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문화적 차원의 난제가 속속 등장함에 따라 도시세대는 새로운 도전과 마주했다. 젠트리피케이션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Ruth Glass는 1951년에 런던대학UCL에 도시연구센터를 설립해 도시사회학적 관점에서 도시를 연구했다. 사회학자, 지리학자, 역사학자, 도시계획가와 협력해 급격하게 변하는 런던의 상황을 관찰했고, 이를 정리해 1964년에 『런던:변화의 양상London: Aspects of Change』을 출간했다. 특히 그녀는 인구 변화의 특성에 주목했고, 중산층과 부유층이 저소득층 거주 지역 일대를 점유해 고급화하면서 기존 거주자들이 쫓겨나고 지역의 성격도 완전히 변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진단했다. 글라스의 선구적 연구를 확대 해석하면, 넓은 의미에서 거대 자본이 소자본을 밀어내고 그 결과로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은 로마 시대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즉 젠트리피케이션은 역사적, 지역적,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매우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압축 성장을 거치는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규정할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났고, 뉴타운과 재개발이 대세였던 시기에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에 의해 경제적,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함으로써 극단적인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이 뿌리내렸다. 그렇다면 새로운 현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젠트리피케이션이 급부상했을까?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서촌, 홍대, 삼청동과 같이 쇠퇴했던 지역이 문화예술인, 주민 그리고 공동체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외부 자본이 유입되었고, 정작 변화를 만든 주역들은 급상승한 땅값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지역을 떠나게 되었다. 또한 균형 발전을 위해 공공 차원에서 추진된 활성화 사업의 혜택이 정작 지역을 지켜온 주민과 상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즉 쇠퇴한 지역이 개선되었지만 변화를 주도한 사람들이 마땅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했고, 이것이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한 단면임을 비로소 감지한 것이다. 곳곳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상황을 목격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인식이 활화산처럼 타올랐고, 일련의 대책도 등장하고 있다. 초기의 시행착오를 감안하더라도 젠트리피케이션의 본질과 다양성을 간파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접근한다는 점에서 다음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첫째, 젠트리피케이션을 ‘보편적 기준’으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나? 도시의 발전 방식, 피해 대상(주거세입자 혹은 상가 세입자), 주민 구성 비율, 원주민이나 세입자를 위한 제도, 부동산 관리 제도, 대자본의 유입 방식, 지역 문화예술과 관광 활성화 방식 등 젠트리피케이션은 철저하게 지역의 여건 및 제도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한다. 다시 말해 젠트리피케이션은 발생에서 진행 과정에 이르기까지 국지적 상황과 긴밀하게 연관되므로 이에 대한 진단과 해법 또한 해당 지역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마련되어야 한다. 보편적 기준에 편승한 두루뭉술한 진단과 그에 따른 처방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따름이다. 둘째,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의 대상으로 간주할 수 있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자연발생적이다.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일정 수준의 공적개입이 필요한 이유는 경제적, 사회적 불균형을 낳는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젠트리피케이션을 마치‘악惡’으로 규정하고 방지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역으로 도시의 건강한 성장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거나 저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냐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이 쇠퇴 지역의 환경 개선, 투자 활성화, 계층간 혼합 등 분명한 순기능도 내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무조건적인 방지가 아닌적절한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하고, 지역의 성장 동력으로 포용하는 세밀하고 높은 차원의 도시계획적 접근이 필요하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현재까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는 완벽한 대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제안이 설득력을 지닌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영향에 노출된 일단의 주민, 상인, 예술인을 보호하는 다각도의 안전장치를 갖추자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미진행 중이므로 현재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제도적 장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분명한 선제 조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핵심은 ‘공존의 가치’를 굳건히 뿌리내리는 것이다. 도시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의 진화 과정에서 등장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구조적 허점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관심의 크기에 비해 명쾌한 해법이 등장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처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따라서 구조적 허점을 메우는 것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 성숙한 자본주의와 천민자본주의 그리고 성숙한 민주주의와 저급한 민주주의의 차이는 공존의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역량에 달렸다. 부자와 일반인이 서로를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최선 혹은 차선을 도출하는 방식을 훈련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지라도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불편한 규제이자 갈등을 키우는 불씨일 수밖에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불완전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이에 맞서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더욱 퇴보할 수 있고, 반대로 성숙할 수도 있다. 김정후는 런던대학(UCL) 지리학과 펠로 겸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런던과 서울에서 제이에이치케이 도시건축정책연구소를 운영하며 도시, 건축, 디자인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와 연구를 진행 중이고, 여러 지방자치단체에 자문하고 있다.
    • 김정후[email protected] / 런던대학(UCL) 지리학과 펠로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특임교수
  • [에디토리얼] 뜨는 동네 클리셰 Editorial: Cliché of Hot Places
    몇 해 전 낙성대의 좁은 골목 한구석에 애처롭게 문을 연 한 와인바에 동료 교수들이나 지인들을 몰고 가면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꼭 가로수길에 온 것 같은데? 서울대 근처에도 이런 데가 있었어” 물론 없었다. 그런데 ‘그런 데’가 하나둘씩 생겨나더니 무미건조하다 못해 황망하기까지 하던 동네가 거듭나고 있다. 서울의 또 다른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다. 서울대입구역부터 낙성대 사이의 좁은 골목이 ‘샤로수길’로 불리더니 급기야 구청이 나서서 안내판까지 설치했다. 안내판에는 “서울대 정문의 ‘샤’와 ‘가로수길’을 패러디”한 것이며 “개성 있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거리”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어 있다. 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했다는 건지쉽게 알 수 없지만, 자생적 도시재생과 활성화에 성공한 사례라는 평가도 나돈다. ‘개성 있는 가게들’은 주로 1980년대에 얼렁뚱땅 형성된 무질서한 주택가의 건물 1층에 들어선다. 볼품없는 파사드를 통유리로 시원하게 바꾸거나 거친 질감의 목재를 덧대거나 노출콘크리트를 흉내 낸패널을 덧붙인다. 일부러 깨트려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한 벽돌도 단골 재료다. 일본 선술집의 격자형문짝을 달거나 휘장을 늘어놓기도 한다. 뭔가 있어보이는, 아티스트의 숨결이 느껴지는 간판이나 ‘응답하라 1988’풍의 ‘레트로 룩’ 간판이 달린다. 국민음료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과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카페, 국민 외식 파스타를 종류별로 즐길 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그 수를 세기 힘들다. 음식점과 술집과 카페가 결합되었다는 비스트로, 수제 맥주집, 수제 햄버거집, 크로스오버 막걸리 카페가 아줌마 홈웨어를 파는 오래된 옷가게, 낡은 세탁소, 허름한 철물점과 동거한다. 미국식 브런치와 프랑스식 홍합 요리를 파는 식당이 있고, 태국 수도의 이름을 내건 야시장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과실주와 칠레의 국민 술을 파는 남미 음식점도 들어섰다. 모두 맛집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명소라고 한다. 다른 ‘길’들에 비해선 아직 미미하지만 아티스트나 건축가, 문화 기획자 같은 이른바 ‘창조계급’의 작업실도 꽤 있다는 소문이다. 여성 의류 편집숍들도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샤로수길의 중간쯤에서는 핫한 여성의 취향을 저격하는 ‘브라질리언 왁싱’ 숍까지 만날 수 있다. 현란한 맛집 블로그들을 잠깐 검색해 보면, 사장들은 대부분 명문 대학을 나온 이삼십대다. 아티스트 출신도 있다. 안정적인 직업에 염증을 느끼고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라는 창업의 변 일색이다. 유학을 통해, 하다못해 워킹홀리데이나 해외 신혼여행을 통해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는 점도 공통분모다. 단언할 순 없지만 모종의 기획 세력이 활동한다는 풍문도 있다. 그러나 ‘개성있는 가게들’의 입지 여건, 건물, 업종, 업주 모두가그렇게 개성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전형이나 획일 같은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힙한 문화를 즐기는 개성 있는 사람인 양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셀카와 음식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자랑스럽게 포스팅하는 이곳의 소비자들은 과연 개성 있는 사람들일지 궁금하다.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앞, 합정동, 연남동, 북촌, 서촌, 이태원 경리단길과 우사단길, 해방촌, 성수동처럼 이미 뜬 ‘길’들에는 비할 바못되겠지만, 샤로수길도 곧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권리금이 두 배로 오르고 임대료도 매년 20퍼센트씩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호의 특집은 전문적인 학술 용어를 넘어 일상적인 부동산 용어로까지 쓰이고 있지만 적합한 번역어를 찾지 못할 정도로 애매하고 복잡한, 문제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다각적 양상을 짚어주신 이선영, 황두진, 신현준, 진나래, 김경민, 이한아 선생의 다양한 시선은 한국적 특수성을 띈 채 진행되고 있는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상과 도시재생의 이면을 목격하게 해 준다. ‘어느 동네가 뜨면 얼마 후 임대료가 상승하여 결국 동네를 띄운 임차인이 쫓겨나는’ 과정에서 ‘뜨는 동네’의 물리적 디자이너인 도시·건축·조경 전문가들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반성적으로 검토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그동안 별다른 여과 없이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에 수용된 문화·예술 콘텐츠의 미학적 성향을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뜨는 동네의 대부분은 서울에서는 상대적으로 오래된 (골목)길이다. 건물들도 비교적 오래되었거나 오래되어 보인다. 감각 있는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 인테리어와 가구도 오래된 것의 매혹을 더한다. 동네건 건물이건 가구건 원래 그곳에 있던 오래된 것을 남기고 다시 살린 경우도 있지만 새로 만들거나 가져온 ‘억지 빈티지’나 ‘가짜 레트로retrospective 룩’도 적지 않다. 급속한 개발 시대를 통과하며 사라져간 옛 것에 대한 존중과 회복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 전반의 복고 열풍이 도시 공간을 통해 미학화되어 소비되고 있다는 해석도 공존한다. 복고 문화의 기저에는 경기 불황, 힘든 현실, 오래된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맞물려 있다는 진단을 흔히 접할 수 있다. 물론 ‘뜨는 동네’에 우리가 응답하고 있는 이유는 복고가 유행할 때마다 지적되는 ‘퇴행적 추억 팔이’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러나 뜨는 동네의 복고 미학을 관통하는 노스탤지어는, 많은 심리학자들이 지적하듯, 현재로부터 과거로의 정신적 도피라는 의혹이 짙다. 새봄을 앞두고 있어선지 여기저기서 불러낸다. 약속 장소는 죄다 ‘길’들이다. 몇 년 전엔 그 ‘길’들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면 뭔가 문화적인 창조계급이 된듯한 우월감이 들고 내가 미학적 인간Homo aestheticus일 수도 있겠다는 우쭐한 마음도 생겼다. 그런데 이젠 좀 지겹다. 일제강점기의 집장사 한옥내부를 낡은 벽돌로 포장한 공간에 앉아 억지 빈티지 테이블에 올라온 핫한 셰프의 한국식 파스타를 먹으며 와인을 홀짝이면 영문 편지의 ‘당신의 진실한 벗으로부터sincerely yours’처럼 틀에 박힌 느낌이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 정교하게 기획된 미학적 매뉴얼에 따라 지갑이 열리는 기분이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는 자세 The Age of AI
    몇 년 전 ‘디지털 미디어 시대, 전문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주제로 해외 저명잡지의 편집장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조경 문화 발전소가 될 것을 다짐하며 새로운 30년의 시작을 힘차게 준비하던 때였다. 당연히 (순진하게도 동종 업계에 몇 십 년 몸담고 있는 그였기에) 어려운 시기이지만 놀라운 혜안으로 희망 섞인 방향을 제시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문지를 매개로 활발했던 담론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종이 잡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낯선 언어의 원고로 돌아왔다. 물론 담론이 사라진 것이 디지털 미디어 탓은 아니다. “다들 살기에 급급해 보인다”는 그의 관찰은 충격적이었다. 소위 디자인 선진국의 상황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데 놀랐던 것일까. 세기의 대결이라고 불리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보면서 왜 이 일이 떠올랐을까. 자신만만했던 이세돌이 1국에서 패배하면서 모두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정신노동이나 창의적 사고의 분야 역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으며 종국에는 나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분야라고 생각했던 ‘설계’도 인공지능의 영역이 될까? “엄청나게 많은 양의 요구 조건을 넣으면, 거기에 딱 맞는 설계안을 5분 안에 뽑아낼 듯.” 누군가의 답이다. 설계를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인공지능의 설계가 인간의 설계를 대체하지 못하란 법도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원리에 대해 무지한지라 알파고도 이번 달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안세헌 교수가 말했듯이 끊임없이 돈오頓悟하고 점수漸修하면서 인간의 직관과 우연의 산물인 창의적 설계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런데 안세헌 교수는 기술의 진보와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돌이켜 생각해보면 설계하는 과정과 방법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름대로 체계가 세워졌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직관 능력이 점점 사라졌다. 항상 새로운 변화―CAD 설계, 친환경적 설계, 생태적 설계, 참여적 설계, 감성적 설계 등 수많은 패러다임―가 일어났고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다.” 사실 크든 작든 기술의 진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시나브로. “우리 때는 기자가 도면 배달도 했어. 트레이싱 페이퍼에 그려진 도면을 설계사무실에서 받아와서 몇 퍼센트 축소할지 계산하는 게 기자들 일이었지. 출력소에서 축소 복사를 해 도면이 들어갈 자리를 남겨둔 필름지에 앉히는 거야. 이때 도면을 깨끗하게 쓰고 설계사무소에 다시 돌려주는 것이 관건이었어. 요즘은 이메일로 주고받으니 얼마나 편한 세상이야!” 햇병아리 기자 시절 선배들에게 재미있게 (백 번쯤!) 들었던 1990년대 중반까지의 잡지사 풍경이다. 요즘 같으면 클라우드와 메신저로 불과 몇 십 초 만에 자료를 받은 후 일러스트레이터와 인디자인 프로그램에서 디자이너의 마우스 클릭 몇 번에 끝날 일이다(기술은 발전하는데 야근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 현실은 미스터리다). 나 역시 잡지를 인쇄하는 데 필름을 쓰지 않게 되는,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목도했다. 10여 년 전까지 출력소의 라이팅 박스에 필름을 올려두고 교정 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간단한 수정은 고칠 부분의 필름을 칼로 오려내고 다시 그 모양대로 조각 필름을 붙이는 일명 ‘따붙이기’를 했다. 그러면 전지 사이즈의 필름을 새로 뽑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 ‘따붙이기’를 정교하게 못하면 인쇄된 잡지에 칼자국이 남기도 했다. 이런 번거롭고 추가 비용이 드는 작업을 피하기 위해 소위 ‘대세에 지장이 없는’ 실수쯤은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지금은 필름을 쓰지 않고 디지털 파일에서 바로 인쇄판을 뽑는 과정으로 넘어가게 되니 마지막 순간까지 눈치 보지 않고 교정을 볼 수 있다. 기술의 진보가 잡지 제작에 들어가는 물리적인 수고를 많이 줄여 주었다면, 기자들의 핵심 업무라고 할 수 있는 기획 및 취재와 기사 작성에는 변화가 없을까? 기획과 취재는 인터넷 검색부터 시작된다. 구글 번역기는 낯선 언어로 된 정보도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구글과 네이버는 핵심 취재원이 된 지 오래다. 동시에 종이 매체는 디지털 미디어와 경쟁하고 있다. 전문지는 실시간으로 정보가 업데이트되는 디자인 포털 사이트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미 종이 매체는 최신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상실해가고 있다. 따라서 기획과 편집은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정보 이상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다. 요즘 쏟아지는 기사 가운데 상당수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향후 없어지게 될 직업군이 무엇인가에 대한 예측이다. 그리고 향후 20~30년 내에 없어질 직업 순위에 기자도 포함되어 있다. 최근 로봇 저널리즘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 시작되었는데, 알고리즘으로 기사를 생산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로봇 기사에 대한 신뢰도 가 인간이 쓴 기사에 대한 신뢰도 못지않다고 한다. 앞으로는 미모의 안드로이드 기자가 나를 대신해 조경가 인터뷰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단한 지능의 로봇이 없어도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각 기관에서 배포하는 보도 자료를 가감 없이 지면에 옮겨 놓는다면 굳이 인간 기자의 손을 거칠 필요도 없다. 혹은 건강한 비판을 거부하고 유리한 기사만을 원하는 일부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기자란 직업이 필요할까?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에 대한 가치 판단을 빅데이터에 의한 통계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지난 2014년 1월, 『환경과조경』은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면서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세계적 동시대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 이 세 가지 비전을 지향한다고 천명했다. 인공지능에 내 업무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비전이 나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음을 절감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