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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복수의 얼굴을 지닌 홍콩, 표면 너머의 도시 Wandering Eyes, Curator's View: Hong Kong, the Multifaceted City
    지난 2월호에 소개한 아시아의 신흥 도시 선전에 비해 홍콩은 거의 100년을 앞서 나간 대선배 격 메가 시티다. 일찍이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아시아에서 나름 ‘오래된 현대 도시’가 되었으나, 여전히 홍콩은 첨단 도시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중이다. 국제 금융 경제 도시, 개성 있는 마천루, 화려한 야경과 몰려드는 쇼핑족, 코즈모폴리턴 시티, 동서양이 혼재된 도시 풍경, 왕가위 영화와 홍콩 느와르 전성시대, 딤섬과 다국적 식당, 영어와 광둥어의 교차, 아시아의 대표 아트 마켓인 아트 바젤 홍콩, 세계적인 미술 경매 회사, 중국으로의 반환 이후 사회·정치적 변화 등 홍콩하면 연상되는 이미지와 키워드는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홍콩이라는 이름 하나에 붙은 ‘복수의 얼굴’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번 지면에서는 홍콩을 향한 수많은 클리셰를 벗어나 도시의 리얼리티에 침투하는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표면 너머의 도시성에 접근하고자 한다. 홍콩이라는 스펙터클, 거대 자본의 최첨단 문화 도시: 아트 바젤 홍콩 최근 홍콩은 금융, 경제, 관광 도시라는 기존의 타이틀에 더해 문화 도시라는 명성도 쌓았다. 그 대표적인 행사로는 매해 3월에 열리는 아트 페어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을 들 수 있다.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이 ‘홍콩 아트 페어’를 2012년 인수하면서 급부상한 ‘아트 바젤 홍콩’은 동서양 40여 나라의 250여 갤러리의 참여를 끌어내는 등 전 세계 미술인과 컬렉터를 홍콩으로 불러 모아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에 섰다. 페어 기간 동안 문화 예술 기관과 홍콩 미술계가 대거 협력한 부대 프로그램만도 200여 개가 진행되고 있어, 상업적 가치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퀄리티를 갖춘 홍콩 최고의 문화 예술 행사다. 이러한 가운데 2014년부터 시도된 초대형 ‘오디오-비주얼 프로젝트’는 국제 도시 홍콩의 스펙터클을 화려하게 뽐낸 획기적인 사례로 평가 받는다. 마천루의 도시 야경을 활용한 이 프로젝트에서, 2014년 독일 작가 카스텐니콜라이Carsten Nicolai는 490m의 국제상업센터ICC에 특정 주파수의 조명을 비춰 도시 경관 전체를 미디어 아트로 만들었다. 현대 미술은 막강한 자본의 힘을 빌려 도시 이미지를 첨단 예술 문화 도시로 업그레이드시킨다. 이러한 문화 도시 이미지는 전 세계의 수많은 도시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으며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델이다. 하지만 최고의 자본, 기술, 미술의 만남으로부터 실현된 ‘찬란한 밤’을 조망하는 사람들은 결국 현대 미술의 향유층, 즉 호화로운 파티에 초대된 전 세계의 VIP뿐이다. 건물 표면을 스크린 마냥 자유롭게 유동하는 인공의 불빛은 마천루로 상징화된 금융 도시 이미지를 세련된 첨단 현대 미술로 재포장한다. 끝없이 하늘로 솟는 마천루로 시선이 향할수록, 우리는 이 도시의 리얼리티로부터 미끄러진다. 도시 경관이 스크린이 된 홍콩, 그 뒤로는 건물의 밀집도 이상으로 겹겹이 쌓여온 시공간의 레이어가 가려진다. 마천루를 타고 미끄러지는 매혹적인 표면을 꿰뚫고 그 안에 숨겨진 도시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홍콩처럼 스펙터클의 범주가 다양할 경우에는 더욱 쉽지 않다. 경험의 횟수만으로 홍콩의 실체는 경험되지 않는다. 발걸음이 잦아질수록 도시의 표면에 작동하는 ‘복수의 얼굴’만을 경험한다. 홍콩의 스펙터클에 매료된 관광객이나 이방인이라면 스펙터클의 표면을 파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복수의 얼굴이 대변하는 혼재의 도시, 혼잡의 도시 홍콩을 어떻게 들여다 볼 것인가? 도시의 표면 아래 작동하는 다층의 이야기는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홍콩의 도시성을 파고드는 예술가의 작업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 [시네마 스케이프] 동주 심상의 풍경
    몸살로 몸과 마음이 무겁기만 한 토요일이었다. 한 주를 간신히 버텨낸 몸, 주말이 되자 작정한 듯 식은땀이 나며 제대로 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따라 병든다. 작은 일에 서운해지고 화나고 상처받는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늘까지 무겁게 내려앉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청운동 ‘윤동주 문학관’을 찾았다. 가압장을 개조해 만든 작은 전시관에는 시인의 고향 집 나무 우물을 가운데 두고 백석의 시를 정성껏 옮겨 적은 원고지와 잉크로 눌러쓴 그의 시들이 유리 상자 안에 놓여 있었다. 영화 ‘동주’의 영향인지 이른 시간임에도 방문객이 적잖았다. 물탱크 천장을 열어서 만든 중정 ‘열린 우물’에 서서 물탱크를 그대로 보존한 전시관 ‘닫힌 우물’에서 상영 중인 영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느새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이 담겼던 누런 흔적이 남아 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중정에서 올려다보니 잔뜩 찌푸린 네모난 하늘이 보였다.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빨강, 파랑, 원색의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들이 줄지어 걸어 나왔다. 비슷한 크기의 배낭에는 하나같이 등산 스틱이 꽂혀있었다. 시인은 상상이나 했겠는가. 타국의 교도소에서 숨지고 수십 년 후, 그가 잠시 머물렀던 경성의 어디쯤에서 등산복을 입은 해맑은 사내들과 호기심 어린 연인들과 몸살에 식은땀을 흘리는 조경하는 여자가 그를 만나러 온 풍경을. 그가 내려다봤을 시내 전경까지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어마어마한 소나기가 내렸다. 영화 ‘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의 삶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된 조명이 없었다는 점에 의문을 품은 이준익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시대정신이 투영된 아름다운 시를 남긴 시인, 주목할 만한 독립운동 기록은 없으며 29세 나이에 타국의 교도소에서 독립되기 몇 개월 전에 숨지다.’ 이 드라마틱한 윤동주의 삶을 그리는 전기영화라면 자칫 감상에 빠지거나 평이해질 수 있다. 감독은 두 가지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인간 윤동주가 체험한 혼란의 시대와 그의 주옥같은 시를 ‘현재’라는 시공간에 입체적으로 소환해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더 높이, 더 크게, 더 멀리 – 대왕들의 정원 History of Landscape Architecture with 100 Scenes: Great Kings’ Gardens
    #78 공중 정원의 진실 게임 ‘바빌론의 공중 정원’은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원 10’에 필히 포함될 것이다. 그 불가사의한 이름이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지 않는가. 아닌 게 아니라 공중 정원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한다.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Ⅱ세(B.C. 604~562)가 고향의 푸른 언덕을 그리워하는 애첩을 위해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3년 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스테파니 델리Stephanie Dalley 박사가 『바빌론 공중 정원의 미스터리The Mystery of the Hanging Garden of Babylon: An Elusive World Wonder Traced』라는 책을 발표하여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 바빌론에 없었다”고 주장해 2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바빌론 설이 흔들리고 있다. 델리 박사는 공중 정원은 존재했으나 바빌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보다 북쪽에 있었던 ‘니네베’라는 도시에 있었다는 것. 니네베는 아시리아 제국의 여러 수도 중 하나로 산헤립 왕(B.C. 705~680)1이 건설한 도시였다. 그러므로 정원을 지은 왕 역시 네부카드네자르가 아닌 산헤립 왕이어야 맞다. 공중 정원이 바빌론에 있었든, 니네베에 있었든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두 도시 모두 지금의 이라크에 있다. 그래서 지금은 마치 한 나라의 두 도시처럼 보이지만, 고대에는 서로 다른 국가에 속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적대적인 관계였다. 한번 상상해 보자. 예를 들어 외국의 책자에 ‘한국에 가면 국내성이 볼 만한데 문무왕이 서라벌에 지었다고 한다’라고 쓰여 있다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니네베와 바빌론의 관계가 마치 이와 같았다. 북쪽에 자리 잡았던 아시리아는 제국주의 노선을 따른 호전적인 국가로서 기원전 9~8세기에 바빌론을 위시한 주변 도시 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오랫동안 복속시켰다. 그러다 기원전 612년, 신흥 국가 페르시아와 손을 잡은 바빌론에 의해 멸망한다. 그 과정에서 정복자들은 수도 니네베를 파괴했는데 수백 년 동안 아시리아에 당한 데 대한 보복으로 아주 완전하고 철저하게 파괴해버렸다. 아시리아가 세상에서 사라진 뒤 바빌론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전성기에 등극한 네부카드네자르 Ⅱ세는 대규모 토목 공사와 건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특히 성곽이 유명하여 7대 불가사의에 속하게 되며 성경에 바벨탑으로 묘사된 신전2도 짓고 현재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보관된 이슈타르 문을 조성하는 등 걸작을 많이 남겼다. 이로 인해 아마도 공중 정원 역시 그가 만든 것이라는 소문이 돌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니네베의 산헤립 왕이 공중 정원을 조성했다는 설이 솔깃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건축과 토목 사업으로 말하자면 아시리아 왕들이 바빌론의 왕들보다 훨씬 선배였다. 정복 전쟁과 함께 건축, 토목 사업을 벌이는 것은 당대 왕들의 과제로 여겨졌다. 멸망하기 이전, 아시리아의 왕들은 연례행사로 여름마다 주변 국가를 정복하러 나섰으며 왕이 바뀔 때마다 도시를 하나씩 건설했다. 왕 한 명에 도시 하나, 이런 식이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수도가여러 개였다. 특히 전성기의 사르곤 Ⅱ세와 그의 아들 산헤립 왕은 개인적으로 건축, 기술, 조경에 각별한 관심과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가 모두 매우 높고 튼튼한 성곽을 쌓고 그 안에 거대한 궁전을 지었으며 정복지에서 수집한 나무를 모두 심어 거의 식물원 수준의 정원을 조성했다. 또한 건축과 정원 조성에 대해 매우 소상한 기록을 남겼고 부조로 새겨 궁전 벽을 장식했다. 서양 조경사 책, 메소포타미아 편에서 소개되기 마련인 정원 그림들은 모두 아시리아 것들이다. 특히 기둥으로 받친 교량형 테라스를 높다랗게 쌓고 그 위에 정원을 조성하는 것은 아시리아의 전통이었다. 그러므로 ‘공중 정원’은 베르사유 정원처럼 고유 명사가 아니라 아시리아에서 테라스 정원을 이를 때 쓰는 보통 명사였던 것으로 짐작된다.3 공중정원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쓴 사람이 바로 산헤립의 아버지 사르곤 Ⅱ세였다. 고대 아시리아어로는 키리마후kirimahu라고 했는데 이를 직역하면 하이 가든high garden이라고 한다.4 지금 뉴욕의 하이라인이나 고층 건물 옥상 정원에 부합되는 개념이었던 것 같다. 이것을 ‘매달려 있는 정원hanging garden’이라고 번역하게 된 경위는 확실치 않다. 한국식 번역인 공중 정원이 오히려 더 정확한 표현이라 하겠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조경의 경제학] 조경가의 경제학적 스타일 2 Economics of Landscape Architecture: Economic Style of Landscape Architects 2
    조경가가 추구하는 바와 시장균형의 변화 지난 호에서는 조경가의 예술적 스타일을 논할 수 있듯이 경제학적 스타일 또한 논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그 접근방법으로 부동산시장의 일반균형에 관한 경제 모형, 즉 DW모형을 살펴보았다. DW모형은 부동산시장을 크게 임대시장, 매매시장, 건설시장, 관리시장 등 네 부분으로 나눈다. 각 부분시장은 내부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한편 외부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데, 부분시장 간 파급 효과는 임대시장 → 매매시장 → 건설시장 → 관리시장 → 임대시장의 순환 흐름을 가진다. 앞선 부분시장의 균형이 다음 부분시장에 영향을 미쳐 그 균형을 바꾸어 놓고, 같은 현상이 그 다음 부분시장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모든 부분시장이 더 이상 변화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이를 ‘일반균형’이라고 한다. <그림 1>은 부동산시장이 일반균형을 이룬 모습을 보여준다. 시장에 별다른 충격이 없다면 이 상태는 영원히 지속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시장에 어떤 충격이 왔는지에 따라 네 부분시장 중 하나 이상의 그래프가 바뀐다. 그러면 위에서 살펴본 쳇바퀴를 다시 반복하여 새로운 일반균형을 찾게 된다. 시장에 충격을 주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는 금리나 물가와 같은 거시경제 변수도 있지만, 시장 참여자의 행태도 포함될 수 있다. 정원시장에서는 ‘조경가가 추구하는 바’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지난 호에서는 ‘정원이 있는 집’을 대상으로 조경가가 ‘고객’, ‘미래’, ‘대중화’, ‘지속가능성’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경제학적 스타일의 예로 들었다. 이제 그 각각에 대해 못다 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 보자. 임대시장에 충격을 주는 고객 지향적 스타일 조경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조경가의 고객은 자신이 이용할 정원이 필요해서, 또는 자신의 고객이 이용할 정원이 필요해서 조경가를 찾는다. 둘 중 어느 경우든 정원의 최종 소비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발주처가 아닌 이용자가 조경가의 궁극적인 고객임을 알 수 있다. 정원의 이용자는 임대시장의 수요자다. 정원이 있는 집을 고객 지향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은 작가로서 만족스러운 정원을 디자인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 고객 지향적 디자인은 마케팅에 충실한 디자인을 말한다. 전통적인 마케팅 이론은 시장 분석, 그중에서도 소비자의 니즈needs를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다양한 소비자를 몇 개의 집단으로 나누고market segmentation, 그 중에서 주된 공략의 대상을 선정하고target market, 동일한 대상을 표적 시장으로 하는 경쟁자와의 비교를 통해 차별화 전략을 도출하고market positioning, 마케팅의 핵심 요소인 4P, 즉 제품product, 가격price, 유통place, 판매 촉진promotion의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마케팅의 전형적인 절차다. 여기서 조경가의 창의성은 제품, 즉 정원이 있는 집의 생산에 있어서 소비자의 니즈를 안성맞춤으로 만족시키거나, 더 나아가 소비자를 놀라움과 감동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1 아파트가 식상한 도시인에게 그들이 막연하게 꿈꾸는 정원이 있는 집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법을 제시한 다면, 더 나아가 아파트에 충분히 만족하는 도시인조차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매력적인 정원이 있는 집을 제시한다면 시장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고객 지향적인 조경가의 스타일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면, 그 결과는 우선 임대시장의 충격으로 나타난다.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요곡선이 위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는 수요자가 이전에 비해 같은 수량이라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고, 같은 가격이라면 더 많은 수량을 소비할 의사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단기적으로 정원이 있는 집의 수량은 늘어날 수 없으므로 임대시장의 변화는 임대료의 상승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충격은 다른 부분시장에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즉 매매가의 상승, 건설량의 증가, 재고량의 증가를 초래하는 것이다. 네 부분시장을 한 바퀴 돌아 증가한 재고량은 <그림 2>에서와 같이 임대시장의 단기공급곡선을 우측으로 이동시킨다. 이는 다시 임대료를 하락시키고, 쳇바퀴는 더 이상 재고량의 변화가 필요 없을 때까지 지속된다. <그림 2>는 이러한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수요곡선이 이동하기 전(실선 사각형)과 후(점선 사각형)의 균형 상태만을 보여준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 [폐허에서 그리는 약속의 공원] 문경원 인터뷰 Interview with Moon Kyung Won
    회칠이 벗겨지고 뼈대만 남은 폐허의 잔해 사이로 원시적인 자연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미디어 아티스트 문경원(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교수)이 그리는 미래의 공원은 생경하면서도 문득 익숙했고, 음울하다가도 생명력이 넘쳤다. ‘템플 앤 템포Temple & Tempo’, ‘사물화 된 풍경’, ‘도시 풍경’ 시리즈, ‘공동의 진술’ 등 도시, 공간, 풍경, 인간의 소통, 미술의 미래 등의 주제를 탐구해온 문경원이 이번에는 우리 시대의 공원의 의미와 미래 공원의 역할에 대해 묻는다. 2015년 11월, 일본 야마구치 정보예술센터(YCAM)에서 열린 문경원의 개인전 ‘프라미스 파크Promise Park’가 지난 2월 막을 내렸다. 문경원은 국내외에서 뜨거운 이슈를 몰고 다니는 주목받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지난해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한국관에서 전준호 작가와 함께 영상 설치 작품 ‘축지법과 비행술’을 선보였으며, 2012년에는 공동 작업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로 독일의 국제현대미술전 ‘제13회 카셀도쿠멘타Kassel Documenta’에 초청되어 한국 미술을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력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3년간의 준비 끝에 YCAM에서 선보인 개인전 ‘프라미스 파크’였다. ‘프라미스 파크’는 재난으로 인해 붕괴된 사회 시스템을 재건하고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미래의 공원을 상상하며 영상, 설치, 사운드, 조명 등의 매체를 복합적으로 활용한 미디어 아트로 풀어낸 전시다. 1회성의 축제로 끝나는 일반적인 기획전과 달리 문경원은 3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초기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며 공원에 대한 예술가적 시각을 넓혀왔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10년 동안 진행될 ‘프라미스 파크’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미술가 문경원이 상상하는 미래 도시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미래 도시에서 공원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공원에 대한 예술가적 상상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공원의 의미와 미래를 위한 조경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_ 편집자 주 Q. 해외와 국내를 오가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지난 3년간 일본의 야마구치 정보예술센터(YCAM)에서 개인전 ‘프라미스 파크’ 전을 준비했다. 얼마 전 전시가 막을 내렸는데 YCAM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작업한 소감을 듣고 싶다. A. 이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소재로 YCAM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시작하게 되어 굉장히 재밌었다. YCAM미술관은 특별한 기관이다. 처음부터 미래 지향적인 예술에 대한 비전을 갖고 개관했고, 뉴미디어나 테크놀로 지 작업을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보통 일반적인 미술관들은 컬렉션을 중요시하는데 YCAM은 프로덕션에 예산을 전부 투자한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구입하기보다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프로덕션에 투자하고 미술관 내부에 랩lab을 운영하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작가들을 장기간에 걸쳐 지원한다. 일례로 지난 2013년 YCAM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10주년 전시에 참여했을 당시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반 이상이 YCAM에서 10년동안 프로젝트를 함께 한 사람들이었다. YCAM의 랩에는 목공, 프로그램, 조명, 사운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는데 장기간에 걸쳐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기술적인 면이나 작업의 깊이가 발전하게 된다. 또한 랩의 작가들끼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런 시스템이나 분위기가 참 좋았다. Q. 영상, 사운드, 텍스트, 컴퓨터 그래픽 등 다양한 매체와 테크놀로지를 이용하고 있다. 작업 영역이 매우 넓은 것 같은데 여러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당신의 포괄적인 뉴미디어 아트 작업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A. 미술 분야에서는 새로운 매체가 나오면 그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물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뉴미디어 아트는 물성에 구애 받지 않으니 미술사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뤄졌다. 비물질이 어떠한 방식과 형태로 예술적 가치를 획득하느냐에 대한 논쟁도 치열했다. 처음에 미디어 아트가 도입된 때는 그렇게 형식이나 패러다임 위주로 회자되다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현대 미술의 툴 중 하나로 녹아든 것 같다. YCAM도 처음 3년 동안은 미디어 아트의 기술력이나 프로그래밍 등 새로운 작업에 초점을 맞췄는데 최근에는 결국 그러한 기술을 다루는 인간적인 해석과 시각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10주년 전시 이후에 YCAM 큐레이터와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시각과 감각을 얼마만큼 변화, 확장시키고 또 그것이 다시 예술 작품 안으로 들어올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앞으로도 미디어 아트의 도구적인 특성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미디어 아트를 도구로 하여 어떤 내용을 담느냐’다. ‘공간’에 대한 관심 Q. ‘템플 앤 템포’, ‘사물화된 풍경’, ‘도시 풍경’ 시리즈 등에서는 현재, 혹은 과거의 공간과 공간 속의 인간을 ‘관찰’하고 ‘관조’했다면, 전준호 작가와 공동으로 작업한 ‘뉴스 프롬노웨어’와 같은 최근작에서는 건축가, 작가, 과학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미래의 도시 풍경을 ‘제시’하고 ‘그려’내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프라미스 파크’ 전도 새로운 미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공간’이라는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바뀐 것 같다. 처음 미술을 접했을 때는 주로 ‘그려보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내가 그리는 풍경에 어떤 내용을 담을 까 항상 고민했다. 단순히 어떤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 대상이 기억하는 풍경을 그려보고 싶었다. 나와 대상이 맺는 관계나 역사 같은 것을 내가 어떻게 시각화하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 조한결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직관과 드로잉 The Way They Design: Intuition and Drawing
    설계하는 마음가짐 만물 개비어아의(萬物 皆備於我矣) 반신이성 낙막대언(反身而誠 樂莫大焉).만물의 이치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으니, 나를 돌아보고 지금 하는 일에 성의를 다한다면 그 즐거움이더없이 클 것이다.’ 설계라는 행위는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수준 높게 엮는 혼의 작업이며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다. 사물에 생명과 혼을 담는 행위이며 자신의 몸을 깎아 분신을 그 사물에 집어넣어 형(形)을 만드는 일이다. 조경에서 형을 만드는 일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므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생명이라는 에너지는 자신의 신체나 마음에서 다른 형태의 물건으로 옮겨진다. 그것에서 만든 사람의 분신이 태어난다. 설계 행위의 에너지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들은 이를 통해 깊은 감동을 받는다. 마음으로 성의를 다하는 일이 설계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실천하고 있다. 돈오점수 돈오점수(頓悟漸修. ‘갑작스럽게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점차적으로 수행해가다’)라는 뜻의 불교 용어다. 처음 설계를 접했을 때는 몇 년 고생하여 설계를 배우면 설계의 고수가 될 것이라는 선배들의 감언이설(?)을 믿고 열심히 배웠다. 설계 작업을 하다 보면 설계의 개념을한 실에 꿰찰 수 있는 듯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이전까지 해왔던 설계가 초등학생 수준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설계 작업이 잘 될 때가 있는 반면, 형편없을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설계 작업을 계속 하다 보면 비로소 내 몸이 깨달음을 익히고 그 깨달음이 체계화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설계사무실 운영을 시작할 때, 십 년만 고생하면 사무실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말을 믿고 참으며 열심히 일했다. 설계와 인연을 맺고 산 지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많은 사람이 고령화 사회에서 앞으로 30년은 더 일해야 하니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긋하게 즐기며 살라고 조언한다. 80세까지 설계 작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다기보다는 체력이 따라줄지 의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기쁘다. 아직 더 잘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설계사무소를 17년 간 운영하면서 개인과 조직의 변화를 지켜봤다. ‘아, 이제 이만큼 했으면 되었나 보다’하고 수련을 멈추었던—교만했던, 어설펐던, 무지했던—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개인과 조직은 항상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퇴보하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설계하는 과정과 방법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름대로 체계가 세워졌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직관 능력이 점점 사라졌다. 항상 새로운 변화—CAD 설계, 친환경적 설계, 생태적 설계, 참여적 설계, 감성적 설계 등 수많은 패러다임—가 일어났고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다. 이런 변화에 잘 대응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변화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를 계속해야 한다. 자기가 얻은 깨달음을 실천하고 부족한 부분은 다듬어야 한다. 실수를 했을 때는 무엇이 부족한지 연구하고 보완하는 점수가 이어져야 한다. 항상 집중하며 스님처럼 늘 정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판에서는 졸면 죽음을 맛보게 된다. 설계 작업의 긴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외부 요인에 의해 혼란을 겪을 것이고 돈오하고 점수해야 한다. 설계 행위는 끊임없는 돈오와 점수의 반복적 과정이라고 믿는다.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는 것이 설계다. 본질을 발견하는 힘, 직관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한 패션 브랜드의 유명한 광고 카피로 설계를 시작할 때마다 항상 되새겨 보는 문구다. 점점 짧은 주기로 변하는 삶의 방식과 다양한 가치의 충돌 속에서 돈오점수하며 삶의 본질과 조경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항상 노력한다. 설계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번 설계의 핵심은 무엇이며 지금 이 곳에서 조경의 본질은 무엇인가? 직관의 힘을 키우는 과정이다. LH의 파주운정 택지개발지구 도시기반시설 조경설계안 설계공모 작업을 하는 내내 이 사이트에서 공원 녹지가 갖는 의미와 조경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고 답을 구하려 노력했다. 그물망처럼 얽힌 공원 녹지의 형상속에서 도시의 피난처가 아닌 도시의 실체(identity)로서공원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를 실현 가능하게 하는 양한 수변의 길(7 Esplanades)과 국내 최초로 파크스테이션(park station)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운정역과 연결되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중심 동선과 호수로 인해 단절된 남북을 연결하는 브리지는 도시의 실체로서 작동하는 공원의 핵심 전략이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고 반드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을 제시하는 일은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본질은 단순하지만 발견하는 것은 어렵다. 누군가가 설계가에게 제공한 진술—과업 지시서, 작업 의뢰—이나 현장 경험에 의해 정의된 설계 문제는 항상 복잡하고 다양한 제한 조건으로 만들어진다. 경험이 있는 설계가라면 그런 제한 조건이 전부 구속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비전문가의 추측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방해하는 허구적 제한 조건일 수 있다. 하지만 제한 조건이 때로는 실질적인 공헌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역설적이지만 모든 선택의 자유를 부정하는 엄격한 제한 조건이 설계 과정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또한 복잡한 설계 문제에서 버릴 것이 무엇인지 판단한 후 과감하게 버려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복잡한 설계 문제에 직면한 설계가는 대개 자유로운 선택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파생적 결과나 유행만 추구하는 경향을 피해 신선한 시각과 간결한 설계를 찾고자 애쓴다. 이를 통해 신선하고 단순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그게 바로 복잡한 문제를 간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직관이라는 설계의 힘이다. 어느 책에서 ‘참된 지혜는 모든 것을 다 해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탐구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었다. 본질을 파악하는 직관의 힘은 깊이 들여다 본 순간들이 모여 생겨난다고 믿는다. 드로잉 작업 피카소는 『카예 다르Cahiers d’Art』라는 잡지에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보다 그 과정들 사이의 변형 상태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그렇게함으로써 정신이 어떤 경로를 거쳐 구체적인 아이디어로 향하는지 또 그 길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작업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그림은 항상 그리기 전에 생각이 떠오르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려지는 동안 사고의 유동성에 따라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설계 과정에서 드로잉을 통한 설계 사고(design thinking)가 전개되는 흐름은 재미있다. 설계 사고 과정에 대한 연구와 설계 방법론은 오래전부터 관심사이자 연구 대상이었다. 인간의 인지적 활동을 설명해내는 학문 분야인 인지심리학의 언어 프로토콜 분석법(verbal protocol analysis)을 통해서 설계 사고 과정을 이해하려는 연구도 했다. 창조적이고 복잡한 설계 과정을 좀 더 쉽게 설명하고 이해해 보려던 시도였다. 많은 설계가가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설계를 시작하겠지만, 나는 드로잉을 통해 설계를 점화시킨다. 설계 대상지에 대해 조사하고 고민했던 많은 문제가 현황도 위에서 검정색 모나미 사인펜을 사용한 드로잉을 통해 서술된다. 소설가 김훈은 연필과 지우개가 없으면 글을 못 쓰고, 시인 고은은 볼펜을 가지면 마음이 서술의 춤을 춘다고 했다. 나는 현황도와 그 위에 밀착시킨 옐로우 트레이싱 페이퍼와 마주할 때마다 최고의 긴장감을 느낀다. 투명한 종이 너머로 보이는 현황의 속삭임에 검정색 사인펜은 종이 위로 조심스럽게, 때론 거칠게 다가가며 무한한 상상력을 내뿜는다. 최초의 아이디어 스케치 대부분은 최종 디자인에 비해 현격히 작은 스케일에서 출발한다. 작은 스케일의 스케치는 전체적인 관계를 파악하기에 유리하다. 또한 비례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케치의 크기가 A3를 넘지 않아야 한다. 초기 스케치를 최종 결과물에 적합한 사이즈로 전환시킬 때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하지만, 축소된 스케치를 확대하여 다시 재구성하는 수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내용을 신속하고 간결하게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드로잉은 설계가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다. 최초의 드로잉은 다이어그램 형태라기보다는 설계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적인 선을 찾아가는 첫 번째 여정이다. 이 선은 대상지의 지형에 순응하기도 하고 건물을 탐색하기도 한다. 때로는 대상지의 경계를 따라 자리 잡는다. 직관적으로 그린 하나의 선에서 드로잉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몇 개의 선의 흔적은 공간을 분할하는 동시에 전체적인 설계의 방향을 정한다. 머릿속에서 많은 설계의 문제가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설계를 하는 중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드로잉이 진행되면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다른 아이디어를 밀쳐내고 첨가되고 변형된다. 이 과정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드로잉이 진행되면 그것을 인지하게 된다. “아! 완전히 잘못되어 가는데….” 이 순간에는 다시 처음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정열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결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귀찮고 힘들어서 고치지 않은 채 계속 드로잉을 하고 타임라인을 생각해 적당히 타협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창조성을 추구하는 설계 사고 과정에서 아이디어의 모태인 초기의 스케치나 과정상의 드로잉을 보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옐로우나 화이트 트레이싱 페이퍼는 참 좋은 도구다. 지우개로 선을 지우기보다는 트레이싱 페이퍼를 이용해 새로 그리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드로잉 과정에서 쌓이는 종이를 보관하는 것은 항상 골치 아프다. 최종 드로잉은 보관하는 편이지만, 과정상의 드로잉은 보관하기 힘들다. 그래서 요즘은 작업 중간에 이미지를 스캔해 파일로 보관하거나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드로잉 과정을 담고자 노력한다. 드로잉을 통한 시각적 이미지 탐구 과정에서는 프로이트가 말한 이탈의 기간(remission)이 발생한다. 한마디로 디자인이 막히는 순간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설계와는 다소 무관한 활동—신나는 음악을 듣거나 만화를 보거나 가볍게 회사 앞 골목길을 산보하거나 팀원과 대화를 나누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가벼운 낮술을 한잔하는 등—에 몰입하거나 다양한 사고를 펼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질서한 해답이나 불필요한 낙서—많은 생각을 봉투의 뒷면, 메뉴판의 여백 또는 광고의 빈 공간에 크로키로 표현—를 스케치한다. 이 순간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문제와 연관된 다른 작품을 보는 것이 반응을 촉진해 줄 수는 있지만, 현실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줄 수는 없다. 베끼기라는 도덕적인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설계와는 관계없는 자극을 통해 상상력을 점화시키고 모방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면서 감각을 돋울 수 있는 모든 시각적인 자원을 동원한다. 가만히 앉아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창조의 과정을 재구성하는 데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 작업 과정에서 발생된 아이디어를 재배열하거나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변형 작업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새로운 경험 『아방가르드』 매거진의 창간호 서문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세상의 병폐는 구습이나 옛 미신을 따르는 것 그리고 예전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잡지는 이 같은 것을 타개하고 미래를 향해 당당히 바쳐질 것이다.” 나는 예전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독창적인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독창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한 작업은 공간에 대한 나의 직관과 공간의 본질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독창적인 공간은 수많은 열정적인 드로잉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결국 ‘새롭다’, ‘신선하다’라는스스로에 대한 만족으로 나타난다. 설계의 결과물이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이라 믿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데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생각의 결과물을 따라서 사는 오류를 범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견해 속에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파묻히지 않도록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직관과 열정을 따라갈 수 있는 용기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정말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2005 오랜 시간 동안 설계를 밥 먹듯이 해왔으니 이제 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늘 새로움에 대한 갈증 때문에 설계가 쉽지 않다. 독창적인 설계를 위해서는 설계에 투입되는 시간이 당연히 길어지고, 이는 곧 설계사무소의 경영을 어렵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투입된 시간만큼의 적정한 설계비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독창적인 설계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만큼 조성되어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내 설계공모의 경우, 독창적인 설계안임에도 익숙하지 않은 형태가 주는 선입견과 조경 설계에 대한 그릇된 편견—녹색에 대한 환상— 때문에 ‘과도한 설계’, ‘너무 혁신적인 안’, ‘딱딱한 안’ 등과 같은 이유로 심사와 평가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설계가의 숙명은 제한된 시간 안에 보편적 가치와 투쟁해 새로운 경험이 가능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와 프로그램에 대한 수많은 도전과 실험을 이끌 수 있는 열정과 용기가 필요하다. 2008년 SH공사가 시행했던 마곡지구 조경설계공모에서 시도했던 마곡수로 설계는 도전적인 실험이었다. 땅의 융기와 침강을 통해 틈이 만들어지면, 그 틈 사이로 물이 담기고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틈은 대지의 지문과 연결되는 통로이다. 또한 생물에게는 삶의 터전,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놀이터가 된다. 틈은 경계이자 비움의 공간이며 누군가에게는 창작과 소통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틈 사이에서 잠시 긴장을 풀고 숨을 돌릴 수 있고 천천히 발길을 옮기면 보일 듯 말 듯 새로운 경험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공간을 상상했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우리의 작업은 다소 무모한 도전(?)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경험을 위한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2007년 파주운정 택지개발지구 조경설계공모에서 제시했던 ‘공릉폭포’는 폭포를 올려다보는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고 폭포 위에서 폭포를 내려다보는 독창적인 형태다. 하지만 VE 단계에서 과다한 공사비를 이유로 수차례의 설계 변경이 변경 비용 한 푼 없이 진행됐고 지금의 평이한 공릉폭포가 만들어졌다. 적절한 설계 비용이 보상되지 않는 현실의 여건을 감안하면 새로운 경험을 위해 설계가가 제시한 설계안을 구현하는 데 감내해야 하는 경제적 고통이 너무 크다. 그래서 많은 설계가가 너무나 쉽게 시설물 업체의 기성 제품을 쓰는 유혹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다.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독창적인 설계의 타임라인도 문제지만 더 이상 설계가들이 독창적인 설계를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는 갈수록 설계 기술력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유혹의 결과로 탄생한 기성 제품의 범람과 비정상적인 가격(일반인의 입장에서)은 시장 질서를 유린한다. 이는 조경 시공 회사의 어려움과도 직결된다. 한국의 조경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설계가 먼저 정상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새로운 경험이 가능한 독창적 설계에 대한 보상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100억 원 규모의 조경 공사에서 설계비를 1%만 더 책정하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제는 소탐대실하는 우매한 행동을 멈출 때가 됐다. 새로운 경험이 가능한 조경 설계의 질적 향상을 위해 먼저 전제되어야 할 문제다. 우연한 발견 설계의 과정에서 우연한 발견을 통해 좋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휴지통에 버린 드로잉 스케치에서 관찰되는 우연한 이미지, 창문에 비친 그림자, 기존 드로잉의 시각적 요소와의 병립에 의해 보이는 우연한 선들, 디지털 이미지 조작 등에 의한 우발적인 효과는 조경가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필요한 자극을 준다. ‘우연에 의한 창조성’ 또는 ‘가치 있는 것의 우연한 발견’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 부른다. 코카콜라의 병을 디자인한 팀은 카카오 열매를 디자인의 원형으로 삼았다. 열매의 길쭉한 형상과 열매 외곽에 세로로 움푹 파인 모양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디자인 팀에게 어떻게 카카오 열매를 찾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더니 도서관의 사전에서 ‘코카’의 의미를 찾으려다가 우연히 ‘코카’라는 단어 근처에 기재된 카카오에 눈길이 멈추어 그 형상이 지닌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연히 발견한 카카오 열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코카콜라 병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우연한 발견의 미세한 신호는 오랜 시간 우연한 발견에 관심을 가지고 잘 훈련된 전문가만이 식별할 수 있다. 개념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우연한 발견에는 두 가지 차원이 존재한다. 하나는 ‘시각과 사건의 우연한 발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경가가 의도적으로 준비한 ‘조작된 우연’이다.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김아연 교수팀과 함께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장 설계공모를 준비할 당시, 설계안의 핵심인 물억새와 정원이 펼쳐진 풍경의 부분 투시도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물억새와 정원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실개천은 우리 설계안의 핵심이었다. 여러 명의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가 작업을 되풀이했지만 마음에 드는 표현이 나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전문가가 정성을 들여 물억새를 디테일하게 표현했지만, 우리가 상상했던 풍경이 아니었다. 설명을 반복해도 좀처럼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고 시간은 자꾸 흘렀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각각 작업하고 있는 여러 이미지를 하나로 중첩해 보면 어떨까? 좀 더 깊이가 생기지 않을까? 자연이 원래 그런 느낌이잖아!’ 작업을 중단시키고 여러 개의 이미지를 하나로 병합해 각기 다른 채도와 색감을 부여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색다른 느낌의 몽환적인 물억새 풍경이 만들어졌다. 우연히 만들어진 풍경에 전문가와 우리 팀원 모두가 흡족해 했다. ‘조작된 우연’의 시도와 발견 없이 일반적으로 잔디밭과 억새의 풍경을 표현했다면 우리의 설계안을 잘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세헌은 한국 조경 설계 실무 분야의 큰 축을 이루는 경원조경 리더그룹의 일원이다. 주거 단지 설계 분야에서 조경의 역할을 넓혀 왔으며신도시 공원 녹지 설계 분야에서 인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왔다.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와 경기정원문화박람회를 통해 정원 문화 확산에큰 기여를 했다. 현재 가천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가원조경설계사무소를 17년째 이끌고 있다. 2013년에는 조경설계사무소 소장의 모임인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초대 회장을 맡아 조경설계업의 사회적 역할과 권익 증진을 위해 힘썼다.
    • 안세헌[email protected] / 가원조경설계사무소 대표, 가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재료와 디테일] R의 전쟁 Material and Detail: War of R
    시방서에서는 교목의 규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고H(m)×흉고 직경B(cm)’으로 표시하며 필요에 따라 수관 폭, 수관의 길이, 지하고, 뿌리분의 크기, 근원 직경 등을 지정할 수 있다. 흉고 직경 대신 근원 직경으로 규격을 표시해야 하는 수목은 수종의 특성에 따라 ‘흉고 직경-근원 직경’ 관계식을 구하여 산출한다. 단, 흉고 직경과 근원 직경 사이에 특별한 관련성이 없어 관계식을 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R=1.2B’라는 식을 이용해 흉고 직경을 환산·적용할 수 있다. 줄기가 흉고부아래에서 갈라지거나 흉고부의 크기를 측정할 수 없는 수목은 ‘수고H(m)×근원 직경R(cm)’ 또는 ‘수고H(m)×수관 폭W(m)×근원 직경R(cm)’으로 표시한다. 고로 R은 나무의 크기를 말한다. 나라장터G2B(Governmentto Business)에서 크기에 따른 나무의 가격을 검색해 보니 이팝나무의 경우 높이(이하 H)가 3.5m, 근원 직경(이하 R)이 10cm일 때 22만 원 정도다. 같은 높이에 R이 12cm인 경우에는 43만 원이다. 매화나무도 H가 3.5m, R이 10cm일 때는 19만 원인데, 높이가 같고 R이 12cm일 때에는 34만 원이다. 겨우 2cm 차이가 날 뿐인데 왜 금액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일까. 나도 모른다. 나무의 크기 때문에 굴취에 들어가는 품이라든가 운반등의 부대 비용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실거래 가격을 반영한 것도 아닐 것이다. 나무 가격이 R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실무를 시작한 이래 늘 궁금했던 것 중 하나다. 이런 차이가 실무를 하는 나에게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공사를 위한 도면을 만든 후 예산을 작성하려면 각 공사 목적물에 맞는 일위대가를 작성해야 한다. 식재 공사의 일위대가는 시설물이나 포장 등 다른 공종에 비해 작성이 수월하다. 수량 산출을 하지 않아도 되니 변경도 쉽게 할 수 있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 [공간 공감] 부르델 정원 Space of Sympathy: Bourdelle Garden
    조각이 빠진 조각 정원은 단팥 빠진 찐빵일까? 부르델정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교과서에서나 보던 조각을 눈앞에서 확인하며 느꼈던 두근거림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부르델의 조각이 자취를 감춘 뒤 그 공간에서 맛본일차적인 감정은 공허함이다. 있어야 할 것이 있지 않은 허전함. 그래도 희원을 방문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까닭은 그 자체로도 은근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인접한 희원과 대비되는 이국적인 풍모가 눈에 띈다. 샌드스톤이 일차적인 원인 제공자이지만 낙우송과 선향으로 연출된 보스케와 수벽도 분위기를 이끈다. 이국적이지만 이질적이지 않다. 또한 조각 작품의 배치를 위해 서로 간섭되지 않도록 공간이 나눠진 점도 이곳을 거니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몇 년 전에 ‘사이intermission’를 주제로 한 쇼가든을 구상한 적이 있다. 결국 실현되지 못했지만, 지금도 부르델이 빠진 이그릇에 신선한 재료를 담아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단팥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찐빵은 그 자체로 잔잔한 맛이 있다. 이 잔잔한 그릇 위로 매해 새로운 공간의 맛이 선보이는 기획을 기대해본다. _ 정욱주 경주의 황룡사지나 일본 나라현의 헤이조궁 유적지를 거닐다보면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에 빠지게 된다. 황량한 벌판에 남겨진 조형적인 쓸쓸함에 는 오래 전 사라진 실체에 대한 연민 같은 안타까움이 늘 존재한다. 공간적인 규모나 시간적인 스케일에서 이들과 비교하기가 적절해 보이지는 않지만, 부르델 조각없는 부르델 정원의 느낌도 본질적인 면에서 이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완만한 경사지에 터를 잡은 정원은 조각 작품을 효율적으로 전시하기 위한 전형적인 서구형의 대칭 구조를 가진다. 주변의 지형 환경이 이보다 더 크고 드라마틱한 공간을 만들어 내기에는 적절치 않았으리라. 이미 오래전에 방문했던 터라 당시의 조각 작품들을 희미하게만 기억하고 있어서일까.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칼럼] 하이라인 파크를 방문하려는 당신에게 Column: A Special Route to the High Line Park
    만약 특별한 경로로 뉴욕 맨해튼의 서쪽 끝, 하이라인High Line 파크를 방문하고 싶다면, 뉴욕 동쪽 퀸즈의 끝 플러싱에서 7번 전철을 타라고 권하고 싶다. 이 길을 택한다면 고가철도 위로 퀸즈를 관통하며 한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그리스, 중남미 등 적어도 10개 이상의 이민자 밀집 지역의 전경을 차창 너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플러싱 역의 불결함과 이민자 구역의 퀴퀴함이 고단한 일상에 대한 당신의 공감 능력을 자극해도 좋고, 도시 빈곤과 이주민에 대한 당신의 편견을 정당화해도 괘념치 않겠다. 종점인 허드슨 야드 역에 도착하면 이 역의 쾌적함에 당신은 덩달아 즐거워할지도 모른다. 이런모든 감정이 당신에게 엉겨 붙기 시작한다면, 이제 하이라인 파크에 들어설 채비는 끝났다. 하이라인 파크가 초행길이더라도 명색이 공공 공원public park이라는 이곳의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해가 지면 문을 닫는다. 해가 긴 여름이라도 10시면 문을 닫는다. 허드슨 야드에서 가까운 34번가로 통하는 통로는 공사 중이라 막혀 있다. 공원 접근성이 가장 좋은 지역은 뉴욕에서 가장 힙한 주상복합 지역인 미트패킹 구역과 첼시다. 설계자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딜러는 이 공원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의 공간이기를 바랐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흔한 노상 카페나 매대도 하이라인에는 없다. 도시의 별천지다.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2016년 3월까지는, 하이라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며, 과거의 흔적이 현재와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지 사색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1.45마일의 하이라인은 거대 도시 뉴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향유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와 관광객만을 위한 공간으로 남을 듯하다. 하이라인은 산뜻한 지속가능성의 표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커져가는 불평등의 속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2009년 9월 개장한 하이라인의 짧지만 불편한 역사를 살펴보면 자명해진다. 루디 줄리아니가 시장으로 재임한 1994년에서 2001년 사이, 맨해튼에서는 수많은 시 소유 건물이 철거되거나 개발업자들에게 헐값에 팔렸다. 뉴욕 전체를 휩쓴 콘도미니엄 붐은 줄리아니의 민영화 정책의 결과이기도 했다. 브로드웨이 주변에 섹스숍과 스트립 조인트가 사라지고 디즈니 스토어와 멀티플렉스가 들어선 것도 이즈음이었다. 임기 후반인 1999년, 줄리아니는 미트패킹 구역에서 첼시에 이르는 하이라인을 철도 회사로부터 단돈 1달러에 사들여 철거하려 했다. 주변 건물주들도 철거 계획에 찬성했다. 그해 8월, 첼시 커뮤니티 모임에서도 철거안은 무난히 통과될 수 있을 듯 보였다. 오직 두 명만이 반대했다. 작가 지망생 조슈아 데이비드와 비영리단체 컨설턴트 로버트 해먼드, 두 사람은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출범시키기로 의기투합, 뉴욕시에 소송까지 하면서 철거 계획을 저지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하이라인 공원화 프로젝트가 제 궤도에 오른 것은 후임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 때였다. 2002년에 취임해 2012년에 퇴임한 블룸버그는 블룸버그통신의 창업주인 억만장자다. 그는 공공 정책 입안이나 실행의 적잖은 부분이 비효율적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공공 서비스에 고객 서비스적 요소를 가미하는 정책을 좋아했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와 기업 서비스는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재화의 공정한 분배와 공공의 안녕이 목적이지만, 후자는 이윤 추구나 고객 만족 따위가 목적이다. 블룸버그의 이러한 신념이 낳은 결과물 중 하나가 자 립 공원self-sustaining park 개념이다. 민관이 기금을 조성해 공원을 건설하고 그 후 관리 비용은 민간이 부담한다는 것이다. 사실 공원 주변의 건물주와 사업체가 공원의 관리 예산을 부담하는 것은 뉴욕에서는 꽤 오래된 거버넌스 모델이다. 1980년에 구성된 센트럴 파크 컨서번시는 현재 공원 관리에 필요한 연간 6천5백만 달러의 75%를 부담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 개념을 건설 단계로 확대했다. 하이라인뿐만 아니라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 거버너스 아일랜드가 자립 공원으로 지어졌다. 하이라인의 경우 예산의 2억3천8백만 달러 중 ‘하이라인의 친구들’이 모은 기금은 18%에 불과한 4천4백만 달러수준이다. 그나마 기금을 낼 수도 없고 공원 관리를 위한 비영리 단체를 구성할 능력도 없는 중산층 이하의 이웃들은 도시 녹지에서 소외당할 수밖에 없다. 1930년대 이후 최대의 공원 확장을 블룸버그는 자신의 최고 업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뉴딜정책 때의 공원 조성은 불평등의 해소였지만, 블룸버그의 공원 건설 모델은 불평등의 심화였다. ‘하이라인의 친구들’은 연간 관리 예산 1천2백만 달러의 95%를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하이라인은 상당한 기간 자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번성할 듯하다. 1구역 개장 1년 만에 주변 부동산 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 휘트니 뮤지엄도 근처로 이사 오고, 북쪽 허드슨 야드에는 고급 식당가와 쇼핑가가 조성될 계획이다. 사실상 공공 자금으로 조성된 시소유의 공원이지만 관리 단계에서 공공의 예산을 받지 않으니 개장 시간부터 주변 개발까지 시정부가 공공재의 관점에서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 하이라인 파크는 녹지라는 공공재가 사유화된 하나의 상징이다. 공공재가 사유화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이렇게 답한다. “부자들은 공원이나 교육, 의료나 개인의 안녕을 정부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모든 것을 그들 스스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부자들은 보통 사람들과 더욱 동떨어지게 될 것이고, 보통 사람들에 대해 갖고 있는 알량한 공감 능력도 잃어버린다. 또한 부자들은 그들의 부의 일부를 앗아다가 공공의 선에 투자할 강력한 정부가 들어설까봐 염려한다.” 이런 탓에, 하이라인을 방문하고자 하는 당신에게 플러싱에서 7번 전철 타기를 권하고 싶다. 고가철도를, 즉 하이라인 위를 달리는 동안 당신은 차창 밖 풍경에서 넉넉지 못한 이민자 지역에서 끝없이 명멸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원이 특권인가 권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공공재로 향유되어야 하는지 사적 공간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문과 번민을 품게 된다면, 7번 전철로 시작한 당신의 하이라인 파크 방문은 매우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설갑수는 뉴욕에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언론인이다. The National Underwriter, BusinessInsider.com, Labor Notes, Progressive Magazine 등에 근무하거나 글을 실어 왔고, 국내의 오마이뉴스와 시사저널에도 기고한 경험이 있다. 1999년, 광주항쟁 백서인 『죽음을 너머 시대의 어둠을 너머』를 영문 번역한 『K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를 UCLA Monograph Series를 통해 출간했다.
  • [에디토리얼] 조경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인가? Editorial: Is ‘Jogyeong’ Landscape Architecture?
    창문을 통과한 햇살이 이마에 떨어진다. 봄이다. 새봄이 거짓말처럼 다시 찾아왔다. 이 지면 메울 일만 없다면 내 마음도 봄일 텐데. 대강 생각만 하면 알파고가 알아서 글 써줄 그날이 어서 오길 염원하는 오후,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유학 준비 중인 제자 S다. 수다거리가 떨어질 즈음, 그의 시선이 핑크색 표지의 신간에 멈췄다. “요즘도 책 많이 사시나 봐요” “여전히 책값과 술값은 안 아끼는데, 알다시피 사기만 하고 거의 읽지는 않아.” “찰스 왈드하임이 쓴 새 책이네요.” “2월 말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야, 『Landscapeas Urbanism』. 왈드하임이 자신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관련 글과 논문들을 다시 구성해 엮은 책이야.” “이제 한 20년 됐죠? 아직도 실체를 잘 모르겠지만, 참 희망을 많이 걸었던 개념이에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그래도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우리 시대의 조경 담론인 건 분명한데, 그 이론적 체계와 실천적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도 물음표가 공존하지.” “이제 한때의 유행이라고 평가하고 폐기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글쎄, 난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이면의 역사적, 이론적, 문화적 조건을 광범위하게 탐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동시대 도시의 쟁점을 조경의 시선으로 탐색하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이번 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번역하시게요” “출판사 편집장님 설득할 겸 우선 서문과 서론 번역을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난관이야.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용어 자체의 번역이 제일 문제야.” “선생님은 계속 그렇게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해 오셨잖아요.” “내 책임이 커. 2000년쯤인가 『환경과조경』 지면에 처음 소개하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적확한 번역어를 짜냈어야 하는데, 무책임하게 발음 그대로 표기해버렸어. 그대로 통용되면서 가뜩이나 모호한 개념이 더 혼란스러워졌어.” “잘 알려진 언어학 이론을 살짝 대입해 보면, 활자화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기표signifiant를 보고 어떤 기의signifié를 일치시킬 수 있는 독자가 몇 명이나 있을지 의문이긴 해요.” “게다가 한글로 된 책 곳곳을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말로 반복해서 도배하면 아무리 유려하게 번역을 해도 읽는 게 거의 불가능해져. ‘보그병신체’가 따로 없는 우스꽝스러운 글.” “저는 조경과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 함께 나오는 부분에서 특히 황당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요. 조경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번역한 말인데,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어색함을 넘어서 이상해요.” “아주 중요한 포인트야. 사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의 핵심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아키텍처 자리를 어바니즘으로 대치한 데 있어. 가치, 지향점, 태도, 방법 모두를 아키텍처에서 어바니즘으로 돌리고자 한 거지. 마치 랜드스케이프 가드닝landscape gardening 이라는 전통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19세기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가 탄생한 것처럼.” “그런데 랜드스케이프 가드닝은 풍경(화)식 정원술(이나 조원),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는 조경,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그냥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으로 쓰니, 그 관계와 함수를 읽어낼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너무나 아쉬운 일이지만 ‘조경’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 학부생 때였던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공이 조경이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잘 이해하질 못해. 기표와 기의가 불일치하는 거지. 아, 나무랑 꽃 심고 정원 만드는 거, 그럼, 나무 잘 알고 좋아하시겠네요, 정도로 반응해. 그러면 말문이 막혀서, 아뇨, 공원을 설계하고 단지도 계획하고… 정도로 얼버무리게 돼.” “저는 조경이라고 말한 다음에 꼭 ‘영어로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에요’, 이렇게 덧붙여요. 그러면 사람들이 뭔가 알아듣는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방법이 있구나. 그런데 조경에 해당하는 영어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조경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가 아니고,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조경으로 번역한 거지. 이 번역어 ‘조경’이 문제의 핵심이야. 1970년대 초반 우리의 제도권 조경(학) 창립자들은 미국식 개념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수입해 고심 끝에 조경이라는 말로 옮겼어. 그런데 이 전문 분야의 역할과 가치는 새로웠던 데 반해, 분야 명칭으로 선택된 조경은 이미 다른 뜻으로 통용되던 말이었어. 1920년 일간지부터 원문을 제공해주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검색해 보면 1962년부터 조경이라는 단어가 기사에 등장하기 시작해. 1960년대에 쓰인 조경이라는 말의 뜻은 대략…” “말할 필요도 없겠죠. 나무랑 꽃 심고 돌 놓는 것, 관상수 재배, 가드닝…” “그래,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언어 속에서 조경은 바로 그 조경이야. 조경을 하나의 학제discipline이자 전문 직능profession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의 번역어로 삼기에는 조경이라는 말의 뜻이 너무 굳어져 있었어. 1970년대 이후의 새로운 한국 조경은 늘 목 놓아 소리치며 조경은 그게 아니라고, 다른 거라고 강변하고 주장해왔지만, 조경은 결국 조경이야. 조경은 조경이라는 말에 갇힌 셈이야.” “흔히 사회적 인식의 문제라고 진단하죠.” “그럴까? 그렇다면 사회적 인식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스타 조경가가 탄생하면? 법 만들고 제도 고치고 공무원 직제 만들면? 물론 당면 과제인 건분명한데, 다 해결하고 나도 조경은 결국 조경이야. 2013년에 제정한 ‘한국조경헌장’에서 조경을 정의한 부분 좀 검색해 주겠니.”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다.” “한국 조경이 마흔 살을 넘어서며 세상에 던진 다짐이야. 가치와 목표, 대상과 수단, 그리고 의의를 담은, 손색없는 정의야. 그런데 역으로 이 정의를 보고 조경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이름을 고쳐야 하는 거 아닐까? 늦었지만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다른 말로 번역해내면 실타래처럼 뒤엉킨 문제들이 조금씩 풀리지 않을까?”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