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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헤라클레스의 모험
    #69 헤라클레스, 올림피아에 가다 헤라클레스는 고대 그리스가 낳은 영웅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긴 신화를 가졌다. 알고 보면 인류 문화 최초의 연작물 주인공이기도 하다. 구조적으로 볼 때 그의 신화는 현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혹은 본 시리즈(본 아이덴티티 등) 등과 많이 닮았다. 하나의 영웅을 두고 이야기를 자꾸 만들어 낸 것이다. 기원전 800년경 처음 언급되기 시작해 이후 수백 년 동안 수없이 작가가 교체되었고 주인공 헤라클레스의 캐릭터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는 ‘살아있는 병기, 문제 해결사’라는 특수 임무를 띠고 세상에 나타난 모든 영웅의 선조이기도 하다. 타이탄들과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제우스가 특별히 계획하여 낳은 아들이었는데, ‘인간의 아들’만이 타이탄을 죽일 수 있다는 예언이 있었기에 정실 부인을 놔두고 어느 인간 여성의 몸을 빌려 탄생시켰다. 그 때문에 제우스의 아내 헤라 여신이 헤라클레스를 몹시 미워하여 평생 괴롭혔다. 툭하면 정신착란증을 내려 보내 발작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그는 초인간적인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통과 고뇌에 시달리던 불완전한 영웅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것 같다. 그런점에서는 오히려 제이슨 본과 유사하다. 슈퍼맨, 배트맨뿐만 아니라 이제는 제임스 본드까지 만화적 완벽성을 버리고 점차 개인사를 지닌 인간적 캐릭터로 변하고 있는 추세다. 말하자면 헤라클레스의 모습과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 이다. 생각할수록 그리스 신화는 21세기에도 따라잡기 어려운 모던함과 심오함을 지니고 있다. 타이탄과의 전쟁을 위해 특별 제조된 비밀 병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타이탄 전쟁에 대해서는 신화 속에서 잠깐만 언급된다. 임무를 마친 뒤 신화 속을 걸어 나와 유유히 사라져버려야 마땅했겠으나 사람들이 그를 보내주지 않았다. 그의 진짜 커리어는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현대의 연작물은 우선 상업적 이익 때문에 만들어질 것이다. 고대에 헤라클레스 시리즈가 계속 만들어졌던 이유는 일차적으로 건국 신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도시 국가들 사이에서 헤라클레스를 건국 시조로 삼는 것이 유행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모험을 겪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사이 아들도 무수히 낳아야 했다. 흑해 연안에서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 이르기까지 헤라클레스의 아들 누구누구가 세웠다고 주장하는 나라들이 속속 나타났으며 그 덕에 헤라클레스의 신화는 눈덩이처럼 부풀어갔다. 그의 신화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도 초월하여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쳐 프랑스혁명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컴퓨터의 시대가 오면서 게임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렇듯 세상에서 가장 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서 헤라클레스는 수 없는 일화를 만들기 위해 지구를 몇 바퀴 돌고 지하 세계는 물론 파라다이스까지 다녀왔다. 그러니 정원에 연루된 것도 하등 이상할 것 없다.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헤라클레스는 어린 시절, 신분과 임무에 걸맞은 특수 교육을 받았다. 당시의 교육이라면 우선 신체 훈련을 뜻한다. 레슬링, 복싱, 수영, 활쏘기를 배웠고 나중에는 마차 경주도 배웠다는데1 이쯤에서 이야기에 혼선이 온다. 그가 마차 경주를 고안해냈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받은 교육 과목은 최초의 올림픽경기 종목과도 일치한다. 아닌 게 아니라 헤라클레스는 올림픽 경기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언제 틈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매일 새벽 경기장에 나가 연습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연습하기 전에 우선 바닥을 뒤덮은 아칸투스를 벌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2 헤라클레스가 운동 연습을 하던 장소를 당시에는 ‘김나지온’3이라고 불렀다. 김나지온은 “고대 그리스 건축 문화사 중에서 가장 포착이 어려운”4 곳이다. 일종의 종합 시설로서 종교·스포츠·교육·문화 시설이 융합된 장소였다. 말하자면 정치를 제외한 모든 사회 생활이 이루어지던 장소였다. 그 시작은 ‘성림sacred groves’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대개 도시 바로 외곽에 있는 숲 속, 샘물이 흘러나오는 장소에 성소를 마련했다. 지역에 따라 커다랗고 신비스러운 플라타너스나 올리브나무 군락을 성림으로 삼기도 했다. 숲 속이나 큰 나무에 신들이 내려온다고 여겼으므로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정기적으로 제를 올렸는데 이런 점은 어느 문명권에서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리스인의 경우 신에 대한 정기적인 기도와 제사 외에도 영웅 숭배가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다. 대개는 각 도시 국가를 최초에 세운 전설적인 영웅들을 위해 성림을 따로 마련하고 제사를 지냈다. 이 때 제물을 바치고 조용히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제사와 함께 운동 경기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신체적·정신적 훈련, 의식과 제례, 영웅 숭배가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되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것이 나중에 올림픽 경기로 발전하게 된다. 처음에는 제단 옆에 자리를 마련하고 씨름이나 복싱 경기를 했겠지만 차츰 제대로 된 경기장이 들어섰다. 가장 먼저 들어선 것이 레슬링장이었다. 정방형의 모래밭을 가운데 두고 사방을 주랑으로 둘렀으며 주랑 바깥에 탈의실, 욕실, 휴게실, 대기실 등의 방을 배치했다. 이런 시설을 ‘팔라이스트라palaestra’라고 불렀다. 그 다음에 세워진 것이 기다란 달리기 코스였다. 우천 시 혹은 겨울에도 연습을 할 수 있게 여기에 지붕을 덮어실내 체육관을 만들고 이를 ‘키스토스xystos’ 라고 했다. 지붕을 덮지 않은 경기장은 ‘스타디온’이라고 했으며 이것이 모든 운동 경기장의 기원이 된다. 팔라이스트라와 키스토스 혹은 스타디온 사이의 공간에 산책과 휴식을 할 수 있는 정원이 조성되었고 이들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전체를 담으로 둘렀는데 이 복합 시설이 바로 김나지온이었다. 김나지온은 또한 선수들을 전문적으로 훈련시키고 청소년을 교육하는 학교의 기능도 겸했다.5 올림픽 경기가 활성화되 면서 시설이 점점 확대되어 관람석, 야영장, 숙박 시설은 물론 야외극장도 들어서는 등 거대한 콤플렉스로 성장했는 데, 특이한 것은 본래 있던 성림 주변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올림피아 유적지의 배치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신전과 김나지온이 한 장소에 조성되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이런 구조는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김나지온에서 교육을 받았던 헤라클레스가 나중에 영웅이 되어 모험을 다니다가 우연히 올림피아에 들르게 된다. 마침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뙤약볕에서 전차 경주하는 모습을 보고 북쪽에 있다는 파라다이스에 후딱 가서 올리브 나뭇가지들을 가져와 경기장 주변에 심었다는 것이다. 영웅이 심은 것이니 아마도 바로 숲이 되었나 보다. 그 잎을 따서 화관을 만들어 승자에게 씌워주었다.6 이것이 김나지온 주변에 나무를 열 지어 심어 그늘을 만들고 산책로를 조성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므로 그에 잇대어 수림을 조성하거나 아니면 주변에 남아있던 숲을 공원처럼 개조하여 산책과 휴식의 장소로도 제공했다. 이렇게 김나지온은 운동과 교육의 장소였을 뿐 아니라 성림, 가로수 산책길, 공원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 조경 시설로도 성장해 갔다. 대개 정원의 역사는 지배자들의 거대한 궁전이나 영지에서 시작되지만, 왕의 궁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었던 고대 그리스는 시민들의 복합 문화 공간 김나지온이라는 독특한 장소를 탄생시켰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조경의 경제학] 정원이라는 상품, 그 생산과 소비 의 메커니즘 [조경의 경제학] 정원이라는 상품, 그 생산과 소비 의 메커니즘
    연재를 시작하며 욕망은 무한한데 그것을 충족시킬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 상태. 경제학자가 주목하는 우리 삶의 현실이다. 자원의 희소성은 필연적으로 선택의 문제를 야기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무엇을 만들고, 그것을 누가 사용할 것인가? 경제학자는 이를 ‘자원의 배분allocation’과 ‘소득의 분배distribution’라는 말로 표현한다. 효율성과 형평성을 고려하여 이러한 경제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경제학자의 중요한 임무다. 흔히 경제학을 ‘돈’, 특히 ‘돈 버는 방법’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는 경제학을 너무 편협하게 바라보는 시각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경제학은 정치학이나 윤리학과 유사한 문제의식과 해결 과제를 가진 사회과학의 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1723~1790)가 그 유명한 『국부론』(1776)을 저술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가 윤리학 서적인 『도덕감정론』(1759)의 저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의 본성,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대중 또는 다중의 의사결정 등의 철학적인 문제로부터 경제학자 역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라는 단어는 다른 숭고한 가치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름다움, 생태, 환경 등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근대 이후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도시경관을 무미건조하게 만든 행태가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들 가치를 중시하는 조경가가 ‘경제’라는 단어에 대해 일종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연재에서는 돈의 논리 혹은 자본의 논리로서의 경제 개념이 아니라 경제학이 가진 본래의 문제의식으로 조경을 다루고자 한다. 조경은 문화 현상이자 산업 분야이자 학문 분과이므로 그 전체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일은 매우 광범위한 작업이다. 이 연재에서는 그렇게 깊고 넓은 분석을 진행하기보다는 경제학에서 흔히 이용되는 방법, 즉 경제 모형을 통해 조경이 다루는 대표적인 대상인 정원, 공원, 경관을 그저 한번 읽어보는 정도로 다룰 것이다1. 경제 모형은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복잡다기한 현상을 고도로 추상화 또는 단순화해서 다룬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특정 현상을 이루는 섬세한 부분을 무시하는 단점이 있지만, 반대로 전체적인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는 유용할 때가 많다. 눈을 가늘게 떴을 때 앞에 선 사람의 이목구비는 흐릿해지지만 전체적인 실루엣은 더 잘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러한 눈으로 조경을 바라보는 작업은 오늘의 조경이 어떤 모습인지 파악하는 데 한 갈래의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창한 서론에 비해 연재의 내용은 매우 가벼울 것이다. 이는 보다 큰 목적 혹은 독자에 대한 배려 때문이 아니라, 조경과 경제학의 관계에 대한 필자의 공부와 고민이 얕기 때문임을 밝힌다. 보이지 않는 손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욕망을 좇아 경제 활동을 하다보면 세상은 저절로 적절하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 말대로라면 우리는 적절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굳이 남을 배려할 필요가 없다.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과 빵집 주인의 욕망 추구 행위가 나의 식탁을 균형 있게 채워주는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은혜를 베풀어 그(녀)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이와 같은 시장 기구의 신통한 작동을 보다 강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다. “사실 그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며, 자신이 공공의 이익을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 그는 …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 [그들이 설계하는 법] 문제 제기
    나의 ‘설계하는 법’은 없다고 우선 고백한다. 과학자나 엔지니어 개인에게 딱히 규정할 수 있는 ‘연구하는 법’, ‘기술 개발하는 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있어 방법은 내용과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들은 가설을 실험하고 증명하기 위해 방법을 매번 조금씩 조정한다. 이는 설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매 프로젝트마다 특수한 이슈가 있고 이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설계 방법은 시시각각 변모하고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특정한 설계 방법보다는 문제의식과 목적에 대한 고민이 설계의 방법을 정하게 한다. 과학 실험과 같이 매번 이전의 설계 방법을 실험, 도전, 진화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설명이 더 길어지기 전에 우선 설계의 의미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제한된 의미의 설계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정의된다. 첫 번째로는 문제 해결로서의 설계가 있다. 이는 실무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예산, 일정, 사이트 여건, 법규 등 여러규제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행위로서의 설계다. 이때 설계란 기술적 전문성, 효율성, 경쟁력을 제공하는 서비스 개념의 설계다. 두 번째로는 작품으로서의 설계가 있다. 이 경우 설계는 작가, 즉 조경가나 건축가의 누적된 ‘철학’과 ‘노하우’의 창의적 발현 과정으로 이해된다. 주요 인물과 이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주류 역사서들, 그리고 대중 매체를 통해 유포되는 유명 설계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설계를 예술가의 창조적 행위로 규정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개념의 설계는 너무나도 제한된 의미의 설계이며 설계의 확장적 가능성을 구속한다. 설계란 공간을 매개로 하는 창의적 사고이자 생산 과정이다. 과학, 기술, 예술,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지식 분야와 체계를 넘나들며 통괄적이면서도 세부적인 관점을 고려할 수 있는 창의적·공간적 가능성을 실험, 제안, 생산하는 방법인 것이다. 도시, 건축, 조경, 환경 분야에 있어 설계는 건물, 공원, 시설물 등 오브젝트 디자인의 개념에서 벗어나 시스템 디자인 차원에서 이해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도시와 환경은 랜드마크로서의 건물, 공원, 시설물의 축적이 아닌, 복잡다단한 경제, 정치, 사회, 문화, 환경 시스템의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체로서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전반적인 시스템의 디자인을 구상하고 다룰 수 있는 행위로 설계를 정의해야 할 것이다. 설계가가 관여하는 부분이 프로젝트의 일부라 하더라도 설계란 구상과 기획에서부터 디자인, 생산, 관리, 유지, 폐기, 재활용에까지 이르는 사이클의 순환적 시스템을 고려해야 한다. 설계 과정에서는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보다는 많은 분야에 대한 얕은 지식이 필요하며, 이러한 총괄적 시각은 창의적 사고와 실험적·협동적 연구·작업을 가능하게 한다. 설계는 기존의 문제 해결이나 작품을 위한 디자인 작업이라는 제한된 정의에서 벗어나 연구, 개발, 사업, 홍보, 관리, 정책 등 공간에 대한 시스템적 차원의 사고 과정이 필요한 다방면의 분야로 확산될 수 있는 개념이다. 최근에 학생들이 설계를 기피하는 현상은 설계에 대한 제도권의 좁은 해석에 따라 형성된 설계 실무 직종이 극도로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문제 해결로서의 설계, 작품으로서의 설계라는 정의를 넘어서는 일이 시급하다. 따라서 나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까탈스러운 나만의 ‘설계하는 법’을 설명하기보다는,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 나의 문제의식과 작업 방향을 이끌어갈 테제(These)와 레퍼런스를 나열하기로 한다. 이 테제들은 나의 작업 방법을 크고 작게 변화시키고 형성시켜 왔으며 이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설계에 대한 개인적 단상을 공유함으로써 설계를 통한 문제의식, 문제 제기, 관점의 형성과 논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한다.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단상을 구분해서 세 편의 글로 연재한다. 첫 번째는 문제 제기, 두 번째는 과정, 세 번째는 생산이다. 이 카테고리에 딱히 위계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장-앙텔므 브리야-사바랭(Jean-Anthelme Brillat-Savarin)의 『미각의 생리학The Physiology of Taste』을 참고로 한다.1 1825년 이 책으로 미식이라는 것을 처음 개념화시킨 그는 미식에 대한 다양한 단상을 열거한다. ‘감각에 대하여,’ ‘목마름에 대하여,’ ‘식탁에서의 즐거움,’ ‘튀김의 이론’ 등 미각의 정략적 이론화보다는 파편적 주제를 나열함으로써 개념들의 상호보완적 이해를 시도한다. 논의 주제의 논리적 정의나 체계화를 지향하는 수직적 지식 구조보다는 다각적 해석 가능성을 수반하는 수평적 지식 구조를 통해 창의적 연관성을 도모할 수 있다. 이 글 또한 수평적 구조 안에 나의 단상을 열거하는 방식을 취하고자 한다. 각 테제의 개별적 유효성과 적합성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바보야, 문제는 시스템이야! 빌바오 구겐하임(Bilbao Guggenheim)을 얘기할 때 우리는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화려한 건물을 연상한다. ‘빌바오 효과’라는 표현이 생길 정도로 1997년 개관 이후 이 건물은 건축을 통해 도시재생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히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 후 프랭크 게리는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로 부상하였으며, 세계의 여러 후기 산업 도시들 또한 자기만의 빌바오 구겐하임을 추구하게 되었다. 미국 위스콘신의 밀워키 미술관(Milwaukee Art Museum), 몽골의 오르도스 미술관(Ordos Art Museum), 그리고 서울의 DDP 등이 단적인 사례다. 앞으로 10여 년간 20~25개의 총 250조 달러에 달하는 새로운 문화·예술 시설이 전 세계에 세워질 계획이다. 하지만 빌바오의 성공은 양면적이다. 단순한 랜드마크로 설명될 수 없다. 1986년 스페인이 EU 멤버가 되면서 바스크(Basque) 정부는 25%의 실업율과 낙후된 공업 시설과 공해로 찌들어 있던 빌바오를 문화·관광 도시로 변모시키기 위한 계획을 추진한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공항, 지하철역, 다리 등 도시 인프라 디자인을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유치했다. 정부의 전격적인 자금 지원으로 구겐하임 미술관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또한 게리 건축의 복잡한 형태 제작과 가공은 당시 항공업계에서 사용되던 CATIA(Computer Aided Three dimensional Interactive Application)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가능했다. 구겐하임의 유명한 티타늄 외장재는 입찰 당시 티타늄의 가장 큰 생산국이었던 러시아가 대규모 물량을 시장에 우연히 내놓아 가격대가 잠시 낮아져 대량 구매가 가능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하지만 빌바오의 화려한 변신 이면에는 디즈니랜드와 같이 위생화되고 철저히 통제되는 도시 문제가 존재한다. 관광객 유치에만 중점을 둔 엘리트적 상의하달식 문화·예술 정책과 개발 계획으로 인해 빌바오는 고급 주거지와 기술 센터로 점유되었다. 바스크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도시민에 대한 지원과 다양성이 사라진 획일적 도시가 되어버렸다.2 빌바오 효과는 건축물 하나, 건축가 한 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공의 뒷면에는 실패의 모습도 존재한다. 우리는 더 이상 랜드마크 설계가 아닌 시스템 설계를 생각해야 한다. 개별적 랜드마크가 조형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프로그램, 인프라, 사회·경제적 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체계가 존재한다.” 메리 더글라스Mary Douglas의 『순수와 위험Purity and Danger』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오염과 위생의 개념 및 체계를 풀어내면서 도시와 환경에 대한 고정 관념에 문제를 제기한다. 더글라스는 “절대적 오물이란 것은 없다. 오물은 보는 이의 눈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오물을 배제하는 것은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환경을 조직하는 적극적인 노력”3이라고 말한다. 잡초로 정의되는 식물은 이를 정의하는 사람, 장소,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이는 좋고 나쁜 식물 재료의 정의가 의도나 견해에 따라 사회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영국 예술가 무스(Moose)의 “깨끗한 그래피티(clean graffiti)”다.4 공해와 먼지로 뒤덮인 가로변 콘크리트 벽을 청소하며 그래피티 작업을 함으로써 도시적으로 나쁘다고 생각되는 그래피티의 개념을 뒤집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도시 위생화의 도구로 활용되어 온 건축, 조경, 도시 설계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우리는 항상 위생의 정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덕학천도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의 서문에서 “사유의 친숙성을 깡그리 뒤흔드는 웃음”을 야기시켰다고 평한 보르헤스(Borges)의 글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El idioma analitico de John Wilkins)”5에 따르면, “『덕학천도(德學天都, Celestial Emporium of Benevolent Knowledge)』라 불리는 중국의 어떤 백과사전에서는 동물이 a)황제에게 속하는 것, b)향기로운 것, c)길들여진 것, d)식용 젖먹이 돼지, e)인어, f)신화에 나오는 것, g)풀려나 싸대는 개, h)지금의 분류에 포함된 것, i)미친 듯이 나부대는 것, j)수없이 많은 것, k)아주 가느다란 낙타털 붓으로 그린 것, l)기타, m)방금 항아리를 깨뜨린 것, n)멀리 파리처럼 보이는 것으로 분류된다.”6 사유를 초월하는 이 분류 방법은 단순히 불가능한 혹은 이상한 나라 동물들의 나열이 아니라 백과사전과 나열이라는 문화적·사회적 코드 속에 형성된 관념을 타파하는 메타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설계의 덕학천도는 무엇일 수 있을까 항상 고민이다. 기질 모든 개체에는 형태, 재료, 공간적 특성으로 인해 내재된 기질(disposition)이 존재한다. 따라서 설계는 공간의 능동적 형태(active form)의 생산과 제작을 통해 기질을 조정하고 제안하는 행위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켈러 이스터링(Keller Easterling)은 경사면 위에 놓여 있는 공과 같이 각기 특정한 상황 속에서 특정한 성향을 암묵적 으로 지니게 되는 공간적 행위성을 주장한다.7 모든 공간적 개체와 현상이 기질을 지니고 있다면 설계는 이를 발견하여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자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능동적 행위력과 연관될 수 있는 기질의 이해와 조작은 설계가의 필수적인 테크닉, 도구가 되어야 한다. 트릭스터 설계는 트릭스터(trickster)여야 한다. 트릭스터를 직역하면 사기꾼이나 협잡꾼이 되어버리지만, 여러 지역의 민속 신앙에 있어서 트릭스터는 다변적이고 모호한 개체이며 인간을 위해 신으로부터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문화 영웅과 합치되어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설계는 트릭스터와 같아야 한다. 한 가지 명분만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여러 얼굴을 보여야 하며 숨은 전략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기술자, 제작자, 후원자, 시민, 세무사, 연구자, 과학자, 예술가, 마케터, 홍보대사, 발표자, 리더, 컨설턴트, 사용자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각양각색의 역할을 담당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적 디자인 학부시절, 나는 몇몇 동료 학생들과 함께 한국적 디자인에 대한 고민에 깊이 빠져들었던 적이 있다. 한국적미, 조형성, 공간감을 습득하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오는 장소들을 열심히 찾아 다녔고, 야네기 무네요시와 고유섭을 읽고 ‘비애의 미’나 ‘무기교의 기교’의 현대적 해석 가능성을 토론했다. 하지만 역시 믿음이 부족했던지 한국적 디자인의 실체는 결국 나에게 드러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한국적 디자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정치, 사회, 문화적 역사 고찰을 통해 규정되는 지역적 특수성이 존재한다. 한국적 디자인이란 정부 차원의 국가주의적 이미지 브랜딩에 불과한 것이다. 일본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디자인은 1960~70년대 정부 주도의 의도적 브랜딩과 마케팅을 통해 지역적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XXX적 디자인이란 만들어지는 것이지 내재된 기질이 아니다. 조류 5남매 10여 년 전의 일이다. 친구와 저녁을 먹던 중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만화 영화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면서 ‘독수리 5형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기억을 되짚어가던 우리는 마침내 독수리 5형제라는 제목의 거대한 거짓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5형제가 아니라 혈연이 없는 소년 4명과 소녀 1명으로 이루어진 5남매라는 사실. 그리고 독수리는 리더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콘돌, 백조, 제비, 부엉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따라서 독수리 5형제가 아닌 ‘조류 5남매’라고 명명하는 게 더 적합하며, 근 20년 동안 이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는데 우리는 매우 분노했다. 이후 항상 주어진 개념에 대한 문제 제기부터 시작한다. 시작부터 주관 기관의 목적과 의도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주어진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근원적인 접근을 적극적으로 타진한다. 사후 합리화 나의 첫 건축 스튜디오 튜터는 프레스턴 스캇 코흔(Preston Scott Cohen)이었다. 형태주의자(formalist)인 그는 건축적 형태의 생성 과정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스튜디오 프로젝트는 사이트와 프로그램에서 시작하기보다는 자기 합리화가 가능한 형태 논리와 이의 공간적 적용 가능성에 대한 실험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학기 후반기에서야 형태 논리를 적용할 특정 사이트와 프로그램이 주어졌다. 이러한 귀납적 설계 방법은 창의적 실험과 사고를 가능하게 했고 나는 설계라는 형식의 자율적 구조와 해석 가능성을 터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이 다가오면서 형태와 프로그램의 합리화가 연역적이지 않은 데에 다시 고민하기 시작한 나에게 스캇 코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설계 과정은 원래 지저분한 거야. 하지만 사후 합리화를 통해 정당성을 주면 돼.” 그때 나는 설계를 억압하는 논리의 규제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배웠다. 호쿠사이 파도 포린 오피스 아키텍츠(Foreign Office Architects)의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Alejandro Zaera-Polo)는 ‘호쿠사이 파도(The Hokusai Wave)’8라는 글에서 건축가의 전략적 설득력과 도상학(iconography)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요코하마 터미널 설계공모에서 우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95년, 프로젝트의 첫 주민 설명회에서 그는 디자인의 동선, 형태 논리, 시공 기술 등을 열심히 준비한 도판을 통해 상세히 설명했으나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무표정이었다. 참여 주민의 동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설계공모 과정에서 참고했던 요코하마 지역의 유명한 목판 화가인 호쿠사이의 유명한 ‘가나가와오키나미우라(神奈川沖浪裏)’의 파도를 언급하자 주민의 표정이 180도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도판의 상징적 도상학과 이의 재현(representation)이 프로젝트의 형태 논리와 작업 논리를 정당화시키는 강력한 전략이 된 셈이다. 디자인의 기호학적 해석은 설계가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권력과 통제를 협상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직설적 해석을 파생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호학은 사인 대신 형태와 재료를 통해 매개되어야 하고 이는 물질적 조직과 함께 도상학적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양면성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방향(one-liner)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표면적 획일성을 통해 이면의 다각성을 설득시킬 수 있는 전략적 설득력을 항상 목적으로 해야 한다 서예례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의 도시설계와 조경 담당 교수이며, 어반 터레인즈 랩(Urban Terrains Lab)의 디렉터다. 코넬대학교, 바나드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뉴욕 시립대학교,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도시설계와 건축을 가르쳤다. 미국 공인 건축사이자 친환경건축 인증제 공인 전문가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웨이스/만프레디(Weiss /Manfredi: Architecture/Landscape/Urbanism)에서 프로젝트 건축가로 일하며 시애틀 올림픽 조각공원, 뉴욕 바나드 디에나 센터 등의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2009년부터는 오피스 오브 어반 터레인즈(Office of Urban Terrains)의 디렉터로 다양한 건축, 조경, 도시설계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서 건축학 전공으로석사 학위를 받았다. 각주 1. Jean-Anthelme Brillat-Savarin, The Physiology of Taste: Or Meditations on Transcendental Gastronomy , 1825. 2. Chris Michael, “The Bilbao Effect: is ‘starchitecture’ all it’s cracked up to be? A history of cities in 50 buildings, day 27”, The Guardian , April 30, 2015. 3. 메리 더글라스, 유제분 역, 『순수와 위험: 오염과 금기 개념의 분석』, 현대미학사, 1997, p.23. 4. Matt Chapman, “Reverse Graffiti: Street Artists Tag Walls by Scrubbing Them Clean”, Inhabitat , August 1, 2014. 5. Jorge Luis Borges, Ruth L. C. Simms, trans., Other Inquisitions: 1937-1952 , University of Texas Press, 1993, pp.101~105. 6. 미셀 푸코, 이규현 역, 『말과 사물』, 민음사, 2012, p.7. 7. Keller Easterling, Extrastatecraft: The Power of Infrastructural Space, New York: Verso, 2014, p.72. 8. Alejandro Zaera-Polo, The Hokusai Wave, Perspecta , Vol.37, 2005, pp.78~85.
    • 서예례[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오피스 오브 어반 터레인즈 디렉터
  • [비평] 계획가가 외면한 것 What Were Ignored by Designers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은 땅은 서울 테헤란로의 끝자락인 삼성역 주변일 것이다. 국제 수준의 복합단지인 무역센터(한국종합무역센터)는 쇼핑몰 리노베이션과 호텔 및 오피스 증축을 거듭하고 있고, 지하철 2호선과 9호선이 연결된 영동대로에는 KTX, GTX 등 광역 교통까지 추가될 예정이다. 게다가 한전 부지(구 한국전력본사)는 현대차와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의 매입 경쟁 끝에 과거 본 적이 없는 매매가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세는 탄천 건너 잠실까지 뻗어가고 있다. 서울시가 무역센터, 한전 부지, 잠실종합운동장 및 주변 지역을 국제 업무와 MICE 산업1의 중심으로 키우는 국제교류복합지구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5년 5월 무역센터와 한전 부지만 포함하던 지구단위계획구역을 잠실종합운동장까지 확장함으로써 그 의지를 보다 구체화하였다. 국제교류복합지구는 지가 총액으로 따지면 아마도 우리나라 최대의 지구단위계획구역일 것이다. 무역센터와 한전 부지는 과거 봉은사에 속한 땅이었다. 포화 상태인 서울 도심의 문제를 강남 개발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 정부의 정책에 조계종이 화답함으로써 1970년대 초 이들 땅은 절 문을 나서게 되었다. 영동대로를 사이에 둔 두 땅은 이후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대로의 서편은 1979년 한국종합전시관으로 모습을 갖춘 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컨벤션센터가 된다. ASEM 정상회의, G20 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등 그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국제회의들은 모두 여기서 개최되었다. 대로의 동편은 1986년 한국전력공사가 자리를 잡은 이후 2014년 나주로 이전할 때까지 우리나라 전력 공급의 중심지가 된다. 지금은 발전 기능이 여러 자회사로 분산되었지만 과거에는 전력의 생산에서 판매까지 모든 기능이 한국전력공사에 집중되어 있었다. 두 땅은 그러나 다시 비슷한 길을 가게 될 것 같다. 한전 부지를 매입한 현대차가 이곳을 단순한 통합 사옥이 아닌 회의장, 전시장, 공연장, 호텔 및 쇼핑몰로 구성된 복합 단지로 개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독일 자동차 회사들의 본사와 같이 테마 단지로 조성하는 것은 서울시의 국제교류복합지구 계획에도 잘 부합한다. 비록 운영 주체가 단일하고 자동차라는 주제를 가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시설의 구색만 보면 대로 건너 무역센터와 매우 흡사하다. 한편 탄천 건너 잠실종합운동장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원래 강이고 섬이던 잠실은 1970년대 초 한강공유수면매립사업에 의해 육지가 된다. 같이 매립된 반포나 압구정과 같이 잠실의 땅도 대부분 택지로 매각되어 정부의 빈약한 재정을 도왔는데,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자리만은 운동장으로 남았다. 이에 대해서는 1960년대 말 국제 수준의 체육 시설이 없어 아시안게임을 반납한 아픈 기억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이 반납한 1970년 아시안게임은 방콕에서 열렸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잠실종합운동장은 국제적인 체육 시설이 된다. 사실 두 행사는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했지만 우리 스스로 달라진 국가 위상을 만끽한 잔치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탄천 건너 두땅이 경제 성장을 견인한 곳이라면, 잠실종합운동장은 그 성과를 자랑한 곳이다. 하지만 잠실종합운동장도 앞으로 무역센터나 한전 부지와 비슷한 길을 가게 될 것 같다. 서울시의 국제교류복합지구 계획은 이곳에도 MICE 기능을 추가하고 있기때문이다. 구체적인 시설은 회의장, 전시장, 공연장, 호텔 및 쇼핑몰이 될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이 생긴다. 서울에 국제 업무와 MICE 기능이 필요하다고 해서 비슷한 시설을 세 땅에서 세 번 반복해야만 하는지? 그래야 한다면 각 땅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 그리고 도시 전략 측면에서 이 땅이 담당해야 하는 다른기능은 없는지? 이 외에도 서울시를 괴롭혔을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가 기획되었을 것이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 [칼럼] 녹색 강박증 Column: Obsession with the Green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베스트셀러 『피로사회』에서 성과주의에 매몰된 현대 사회를 비판하면서,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대표적인 질병으로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등을 꼽았다. 이러한 질병들은 과거 시대의 질병처럼 박테리아적이거나 바이러스적이지 않고 신경증적인 질병이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과잉 생산, 과잉 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이 긍정성의 폭력을 낳았고, 이러한 유형의 폭력은 적대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용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에서 내밀하게 확산되기 때문에 바이러스성 폭력처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고 한다. 짧은 에세이의 내용이 다소 무거워서 그 뜻을 잘 헤아렸는지 자신이 없지만, 무엇인가를 잘 해보려는 요즘 긍정적인 행동들이 오히려 과장되고 과잉의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그것이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을 간간히 목격하면서, ‘피로사회’라는 개념으로 성과 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견해에 공감하게 된다. “강박장애는 불안장애의 하나로서, 반복적이고 원하지 않는 강박적 사고와 강박적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 질환이다. 잦은 손 씻기, 숫자 세기, 확인하기, 청소하기 등과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강박적 사고를 막거나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려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일시적인 편안함을 제공할 뿐 결과적으로 불안을증가시킨다.” 강박증이라는 병리적인 현상이 과거 농경 사회에서부터 존재했던 질병인지 혹은 근대 산업 사회를 거치면서 새롭게 등장한 것인지 잘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강박증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이 증세를 앓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과잉 행동을 일삼는 경우다. 어쩌면 한병철의 지적대로 강박증도 현대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 시절이 생각난다. 이명박시장의 ‘청계천’이 대중의 히트를 친직후라서 그런지 모든 행정에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강박처럼 들어갔다. 조직이 만들어졌고, 대단한 ‘용역’이 발주되었다. 디자인을 문화적으로 차근차근 성숙시키기 이전에 홍보를 위한 전략으로 삼았다. 디자인이라는 말이 빠지면 마치 갑자기 구닥다리 꼰대가 되는 것 마냥 모든 종류의 미디어는 디자인이라는 화두를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한강의 세빛둥둥섬과 동대문의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그러한 ‘디자인 행정’의 대표적인 결과물들이다. 당시 모 교수는 ‘디자인’이라는 말 자체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현상을 ‘디자인 피로증’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그것이 과잉이 되면 사회구성원들은 피곤해지는 것이다. 하물며 진정성 없이 성과 위주로 추진되는 사업에어떤 행복과 가치가 담겨질 수 있을까. 요즘 서울시를 비롯하여 수도권, 지방의 많은 지자체에서 ‘조경’ 혹은 ‘정원’이라는 화두가 대세다. 수 많은 조경 관련 공모전이 성행하고, 박람회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불과 몇 년 만에 분위기가 반전된 듯하다. 설계사무소나 일선 현장의 작업 여건과 경영 환경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는데, 외형적인 분위기만 봐서는 이미 조경 선진국의 대열에 오른 느낌이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어느 조경전문가는 설익은 ‘조경대세론’을 펼치기까지 한다. 모든 도시 행정을 조경(혹은 정원)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도시 안에서 조경 공간을 극대화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식이다. 조경가 출신의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는 기대 섞인 주장도 덧붙인다. 그래야 ‘업계’와 ‘분야’가 살아나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행복지수도 수직상승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십년 넘게 조경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런 식의 강박이 정당한 것일까. 며칠 전 서울 외곽의 도시공원으로 산행을 가게 되었다.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인지라 최근에 계단을 보수하고 안전 펜스까지 정비한 모양이다. 그런데 등산로를 따라 나무 그늘에 야생초화를 잔뜩 심어놓았다. 공원의 양지바른 산책로도 아니고 숲이 우거진 등산로에까지 가로수를 심고 야생화를 줄지어 심어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냥 놔두어야 더 좋은 자연을 왜 자꾸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덧칠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조경 사업은 성과주의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를 저렴한 예산으로 치장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다. 녹색의 치장과 품격 있는 조경 행위는 당연히 구분되어야 할 것인데, 표피적인 것들만 난무한다. 자칫 ‘조경 피로증’이라는 말도 생겨날지 걱정이다. 조경은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행위다. 과잉 진료와 과잉 처방은 환자에게 독이 된다. 진료와 처방 이전에 정말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연대감과 존중감이라고 한다. 녹색에 대한 강박은 자연에 대한 존중이라는 조경의 본질을 간과하고 현상에만 집착하는, 그래서 과잉 처방전만남발하고 있는 의료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모든 것을 자기가 속한 전문 분야의 틀을 통해서만 해석하려는 강박증은 현대 사회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분야는 늘 대결하고 있으며, 이 살벌한 경쟁 구도를 곧바로 자신들의 이익과 연결시킨다. 여유와 관용, 깊이 있는 성찰과 소통은 사라지고 가장 익숙한 세계 속으로 스스로를 유배시킨다. 그리고 그 깊은 유배지에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군림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조경이 최고의 선이고, 어떤 것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다 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화려한 녹색에 가려진 삶의 이면을 살펴야 한다. 비록 한그루의 나무를 포기하더라도 우리 주변에 더 이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멋진 공원 몇 개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힘없는 서민들의 소중한 주거 공간을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멋진 조경가이기 이전에 누군가와 마음을 나눠야 하는 평범한 시민이고 이웃이기 때문이다.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1965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의 설계 실무를 거쳐,2007년에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 [에디토리얼] 설계공모의 맥도날드화 배정한 Editorial: The McDonadization of Design Competition
    10월호 마감이 한창이던 9월 중하순, 유럽조경학교협의회ECLAS가 주최한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목적지는 머릿속 지도에 위치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 에스토니아의 타르투였지만, 내심 이 미지의 중세도시보다 더 궁금했던 곳은 경유지로 삼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도시다.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야망에 불탄 표트르 대제의 계획 도시, 발트 해를 향한 연안의 늪지대와 네바 강 하구의 100개 섬을 365개의 다리로 이어 건설한 북쪽의 베니스다. 러시아의 심장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작곡가 차이콥스키, 극작가 안톤 체호프, 시인 푸슈킨,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레닌그라드가 아닌가. 굴절 많은 이 역사 도시의 2015년 풍경과 만나기 위해 목적지가 아니었음에도 닷새라는 넉넉한 일정을 잡았다. 낭만과 환상에 부푼 초행길 이방인의 기대와 달리, 표트르의 도시는 피로감과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우중충한 잿빛 하늘 탓일까, 여느 유럽과는 다른 대규모 계획 도시의 웅장한 스케일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주의 도시 경관의 생경한 질서 탓일까. 일행은 여러 가지 진단을 내려 보았지만, 이틀째 여정이 끝나갈 무렵 시각적 당혹감의 가장 큰 원인은 아마 거리를 뒤덮고 있는 러시아어 알파벳에 있을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영어 알파벳을 마차에 싣고 가다가 떨어뜨려 뒤죽박죽이 된 문자라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키릴 문자(러시아어 알파벳)는 형태뿐 아니라 발음에서도 상식을 초월했다. 낯선 글자의 정체를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대조하며 시내를 답사하던 중 우리는 뜻밖의 계기를 통해 긴장감을 풀게 되었다. MaKДoHaлдc라는 해독하기 힘든 간판을 단 매장, 그러나 누가 봐도 맥도날드였다. 늘어나는 뱃살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맥도날드이지만,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 M자의 익숙한 간판만 보고서도 무장 해제됐다. 눈앞의 경관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양식이 섞인 건물들의 1층에 서울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CTAPБAKC KOФE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커피, 평소처럼 그란데 사이즈의 핫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해서 들이켰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명소라는 다른 어떤 카페보다 만족스러웠다. 도시를 뒤덮고 있던 먹구름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독자 여러분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을 것 같다. 낯선 외국 도시에서 낯익은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마주하면 심지어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느낀다. 고민과 두려움이 한 번에 해결된다. 뉴욕의 빅맥은 서울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빅맥과 똑같다. 맛도 의외일리 없고 가격도 당황스러울 가능성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낀다. 맥도날드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대도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확실성을 보장해 주는 예측 가능한 장소인 셈이다. 우리는 맛도 뻔하고 건강에는 오히려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선택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굳게 믿으며 맥도날드를 주저함 없이 선택한다.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시유시, 2003)의 저자인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는 현대 사회가 종교처럼 신봉하는 합리성의 이면을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프랜차이즈체인망에서 발견한다. 리처가 통찰하는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 사회와 그 밖의 세계의 더욱 더 많은 부문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맥도날드 모델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건 합리성이라는 신화의 네 가지 매혹적 특성 때문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효율성, 계산 가능성, 예측 가능성, 통제라는 특성이 신뢰를 준다는 것이다.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업뿐만 아니라 교육, 노동, 의료, 여행, 여가, 다이어트, 정치, 가정, 그리고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효율과 표준을 앞세운 합리성의 신화는 획일과 몰개성을 낳는다. 도시도, 경관도 마찬가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만의 개성과 매력에 불안해하고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의 표준화된 예측 가능성에 안도한 앞의 사례는 합리성의 추구가 비합리성을 연출하는 모순을 예증해 준다. 도시의 다양성, 지역성, 장소성은 발붙일 곳이 없다. 11월호에는 서로 다른 성격의 주목할 만한 공모전세 편을 싣는다. 이번 기획과 편집 과정에서 금년에 실었던 다른 설계공모들을 새삼 들춰보았다. 지난 호까지 잡지에 다룬 열개의 국내 공모, 두 개의 국외 공모를 다시 넘기다보니 엉뚱하게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맥도날드가 떠올랐다. 아마다수의 독자들은 (서울역 고가처럼 정치적·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경우는 예외였겠지만) 설계공모를 다룬 페이지를 빠른 속도로 넘겨버렸을 것 같다. 낯익고 익숙한 이미지, 텍스트, 다이어그램으로 표준화된 작품들에서 적절하게 구운 패티, 얇은 토마토 한 장, 슬라이스 치즈, 약간의 오이 피클로 구성된 맥도날드 햄버거의 예측 가능한 맛을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제출작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최자의 의도를 대변하는 설계 지침서는 언제나 예외 없이 공모의 목적을 “ㅇㅇ를 ㅇㅇ할 수 있는 ‘독창적’인아이디어와 디자인을 구한다”고 밝히지만, 말 그대로 독창적인 작업은 당선되기 쉽지 않다. 최근의 설계공모 대부분은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안을 뽑는 합리성의 경쟁 과정이기 때문이다. 표준화와 효율성의 상징 맥도날드를 선택하곤 하는 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 없다. 맥도날드화에 비판적 거리를 두며 이번 호의 세 공모전을 꼼꼼히 살펴보시면 어떨까 한다. 기회와 쟁점이 교차하는 땅 잠실종합운동장에 던진 비전과 상상력에서, 근대 서울의 시간과 사건들이 묻힌 옛국세청 자리 작은 공간에 펼친 조경가와 건축가의 협력에서, 막막한 빈 땅에 무언가를 상징해야만 한 세종시의 백지 광장 프로젝트에서 ‘탈맥도날드화’의 일면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올해의 광장
    지난 9월, 그러니까 거리를 점령한 야외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내기 안성맞춤인 계절이었다. 그날도 회사 근처 단골 곱창집 간이 테이블에서 여름 내내 지겹게 쐰에어컨 바람 대신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만끽하던 중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광주에 함께 가자는 한 건축 잡지 편집장의 전화였다. 저녁 공기(?)에 취해있던 나는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본래 취재 예정일보다 빨리 광주행 새벽 기차에 몸을 실었다. 10년 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 국제공모가 치러졌을 때가 가물가물했다. 10년은 긴 세월이다(요즘 나의 기억력은 믿을 수가 없다). ‘빛의 숲’이라는 작품의 제목 정도가 기억 저 아래 남아 있었고, 대부분의 공간을 지하로 넣는 바람에 높고 멋들어진 건물을 원했던 광주 시민들과 갈등을 빚었다는 소식을 풍편에 들었던 듯 했다. 그만큼 광주가 나의(우리의) 관심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탓도 있다. 과연 당선안대로 만들어졌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처음 계획안이 좋았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도면이라도 파악하고 답사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쏟아지는 졸음에 눈꺼풀은 이미 감기고 있었다. 광주역에서 잡아 탄 택시에서 내리니 길 건너편으로 몇 블록을 차지한 ACC가 눈앞에 펼쳐졌다. 만약 지하철을 타고 건물 내부의 아시아문화정보원 지붕에서 ACC를 처음 보았다면, 아니면 충장로 쪽에서 5.18민주광장을 바라보면서 들어 갔다면 동선이나 첫인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어린이문화원 쪽을 둘러싸고 있는 가림막이었다. 9월 개관인 줄 알았는데, 공식 개관은 11월이었고 일부 공사가 남았던 것이다. 사진작가까지 동행했는데 촬영은 할 수 있을까 더럭 겁이 났다. 메인 출입구 앞 광장은 보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아시아문화광장으로 향하는 계단에 내려섰다. 들어가는 길에 광장 중앙의 1980년대 스타일의 파란색 분수대를 흘깃 보면서 아마 이곳은 대상지가 아닌가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 깨달았다. 이곳이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이며, 건축가와 조경가 모두 이 공간의 목격자들을 세심하게 선별해 남겼다는 것 등. 90년대 학번인 나에게 1980년 광주는 가슴을 채우는 기억은 아니어서 무심결에 넘겼노라고 잠시 변명해보지만 무언가 부채감이 남는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1980년 광장의 모습은 분수대를 중심으로 2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여는 장면이었다. 그 사진을 보니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이 떠올랐다. 지난 11월 13일 충격적인 파리 테러 이후 뉴스에서는 연일 테러의 참상과 추모 물결, 그리고 그 가운데 빛나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다. 그 배경은 모두 ‘공화국 광장’, 그러니까 내가 지난 여름 답사했고 『환경과조경』 10월호에 소개되었던 그 광장 말이다. 머플러로 눈을 가린 한 청년이 “나는 무슬림이지만 테러리스트는 아니”라고 시민들과 프리 허그를 하며 연대와 포용의 메시지를 전한 눈물의 현장도 레퓌블리크 광장이었다. 이런 광장의 모습이 프랑스인들의 충격과 긴장, 그리고 이슬람 세계와의 구조적 문제를 모두 덮을 수는 없겠지만 광장을 가득메운 시민들의 모습에 가슴이 뛰기도 하고 콧등이 시큰거리기도 한다. 평화로운 오후 스케이트 보더들이 활보하는 광장과 추모와 집회의 현장 모두 레퓌블리크 광장의 일면이리라. 5월의 광장에서 레퓌블리크 광장을 떠올린 것은 그런 광장의 역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남대학교의 천득염 교수는 이제 광주 사람들은 ACC를 굳이 5월과 연결시키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과거의 유산만큼 미래도 중요할 테니. 5.18민주광장이 누군가에게는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킨다면, 누군가에게는 새로 만들어진 아시아문화광장과 함께 일상과 축제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조동범 교수가 특집 원고에서 “2015년 가을은 이제 막 시민 광장의 역사가 열리는 시점”이라고 썼듯이 상처를 간직한 광장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시아문화광장은 ACC의 모든 시설로 연결되는 중심의 빈 공간이다. 5.18민주광장에서 시작해서 아시아문화광장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건물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걷다보니 예술극장이었다. 마침 개관 페스티벌 기간이었는데 공연을 준비 중인극장 앞에서는 그루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막 저물기 시작한 해는 흰색 노출콘크리트 벽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 이미 난 무장 해제되었다. 극장 앞 계단에 걸터앉아 고개를 돌리니, 그 풍경 또한 마음을 흔드는 것이었다. 마치 7가지 다른 사랑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처럼, 눈앞에서 수많은 프레임이 교차하면서 각기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조금씩 틀어서 앉혀진 건물 사이사이에는 정원이 그리고 저 멀리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들과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설계자는 이곳에서 5.18민주광장에서 아시아문화광장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의 클라이맥스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오래 전에 읽었던 건축가 피터 줌토르의 글이 생각난다. 그는 좋은 건축적 체험은 ‘분위기atmospheres’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예를 들어 휴일 오전 11시의 햇빛, 그 빛을 받은 건물의 그림자 색깔, 따뜻한 공기,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이 모든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평소보다 좀 더 천천히 걷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 공간의 분위기와 나의 감각이 화학작용을 하며 지극히 주관적인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분위기 없이, 즉 그 장소를 떠나면 동일한 느낌은 다시 받을 수 없다. 피터 줌토르는 이를 ‘실제의 마법Magic of the Real’이라고 부른다. 12월이다. 한해를 돌아보고 그 공을 평가하는 각종 시상식이 열리는 시기다. 그래서 나도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올해의 광장’을 뽑아보았다. 두둥! 영예의 수상자는 바로 ‘아시아문화광장’이다. 천득염 교수의 특집 원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ACC 앞에는 난제들이 많다. 그럼에도 아시아문화광장이 새로운 역사를 쓰기를 기대한다. 아마 그 역사는 시민 개개인의 마법 같은 기억으로 채워지리라. 아시아문화광장의 미래를 응원한다.
  • [편집자의 서재] 빌딩블로그
    언제나처럼 역시 표지가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성격이 좀 달랐다. 전반적인 디자인은 이미 오케이가 난 상태였다. 원서의 표지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기에, 작업하는 데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최종 오케이를 눈앞에 둔 표지 시안은 두 가지 버전이었다. 모든 점이 동일했지만, 오직 한 가지가 달랐다. 바로 앞표지 상단에 깨알 같은 크기로 실려 있었던 “경고문: 이 책에는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다”라는 문구였다. 담당 편집자였던 나는 ‘삘딩’이라는 비표준어를 과감히(?) 앞표지에 내세움으로써,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빌딩(건물)’과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빌딩build+ing’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물론 띠지를 했더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띠지 문구로 활용했을 테지만, 이 책의 경우 처음부터 띠지는 계획에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고문‘의 앞표지 삽입을 전격 취소하는 대신, 친절한 ‘역자의 글’을 앞쪽에 배치하고,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 ‘빌딩build+ing’ 이야기!”라는 문구를 보도 자료와 출판사 서평에서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럼, 도대체 ‘삘딩’과 ‘빌딩’의 차이점이 무엇이었을까 번역자가 ‘역자 서문’을 통해 잘 소개해주고 있듯이, 『빌딩블로그』에서 ‘빌딩’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로 그 ‘빌딩’이다. “건축architecture에는 건물building 이상의 것이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빌딩’은 건축보다 하위 개념인 즉물적인 구조체일 뿐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삘딩’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경고문이 허언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건축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인공 환경에 둘러싸여 살아가기 때문”1이라고 답한다. 바로 ‘빌딩’의 두 번째 의미이자 진정한 의미인 ‘build+ing’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만들고 환경을 변화시킨다. 똑같은 단위 평면을 가지고도 각각의 집들이 사는 사람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느낌으로 바뀌는 우리의 아파트 문화만 봐도 우리는 언제나 ‘빌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빌딩’이란 삶의 방식이자 결과다. 또한 사람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것이 빌딩의 범주에 포함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의미하는 빌딩의 진정한 의미다. 이 ‘빌딩’이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과 관련된 수많은 이슈들과 접점을 갖게 되면서, 『빌딩블로그』의 관심사는 단순한 건물(삘딩)에 그치지 않고 지구 깊숙한 지질 단층, 도시의 지상과 지하 세계, 바다, 하천과 각종 인공 수 체계, 폐허, 미생물, 소리, 대기 등 지구의 곳곳을 입체적 스케일로 해부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 ‘빌딩 < 건축 < 빌딩’이라는 새로운 부등식이 성립한다. 이 부등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인류의 ‘빌딩’ 과정의 매체이자 결과물들이 어떻게, 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떤 파급 효과가 있는지를 흥미롭게 파헤쳐나간다. 추천사를 써준 저스틴 맥거크가 지적했듯이 “생전 가본 적 없는 여러 방들을 탐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주면서 말이다, 은밀하게 때로는 기발하게. 편집자의 작업은 대개 보도 자료용 ‘출판사 서평’ 쓰기로 마무리된다. 몇 달 동안 붙들고 있던 책이니, 그 핵심 내용을 간추리는 출판사 서평쯤이야 뚝딱 만들어질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인쇄소에 최종 편집본을 송고할 때쯤이면 진이 빠질 대로 빠져서 원고를 거들떠보기 싫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책의 구절구절이 모두 마음에 들어서 어느 부분을 덜어내고 어떤 대목을 강조해야 할지 애매할 때다. 또 출판사 서평 작성이 책 편집못지않게 부담스러워서 진도를 빨리 빼지 못할 때도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출판사 서평을 별도의 편집 없이 그대로 올려주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책을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만큼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온라인 서점의 출판사 서평을 보고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앞에 소개한 내용은 2013년 봄에 『빌딩블로그』의 출판사 서평을 작성하며 끼적였던 글이다. 출판사 서평에 그대로 살린 부분도 있고, 날린 대목도 있다. 도서출판 한숲에서 곧 출간(2016년 1월 1일 출간 예정)될 김영민 교수의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의 보도 자료를 준비하다가, 문득 이 책의 출판사 서평이 떠올랐다. 뭐라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한 내용에 맞춰, 나름 색다른 시도를 했던 기억이 나서다. 『빌딩블로그』 출간 즈음에는 번역자들을 꼬셔 책에 실리지 않은 ‘역자 소회’라는 것도 쓰게 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또 표지 날개에 수록된 역자 소개글에도 잔뜩 힘을 줬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고등학교 때도 사지 않았던 독서대를, 이 책을 번역하며 두 개나 샀다. 하나는 사무실에, 하나는 집에 두고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제프 마노와 그 독서대 위에서 만났다. 그러다 간혹 악몽을 꾸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고원에서 기나긴 도피 생활에 지친 오사마 빈 라덴을 상대로, 모래 바람을 이용해 폭풍 전쟁을 벌이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제프 마노를 너무 오랫동안 만난 탓이다.” 당시에는 책 내용과 묘하게 어울려 보여 신통했는데, 독자분들이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이제 잡지 마감도 끝나가니 본격적으로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의 보도 자료를 써야 한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이 정도면 괜찮을까? “왜 스튜디오 101이 아니고, 스튜디오 201인가?”
  • [시네마 스케이프] 더 랍스터 기묘하거나 현실적이거나
    “더 랍스터 한 장 주세요.” “네? 더 셰프 아닌가요” “아뇨, 랍스터요, 랍스터!” “다시 확인해주세요.” 셰프와 랍스터, 연관 단어이긴 하다. 어제 퇴근길, 며칠째 유난히 지치고 힘든 이유를 가을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언가 다른 처방이 필요할 것 같아 극장으로 향했다. ‘보고 싶은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내 뜻대로 안 되는구나’하고 좌절하는 순간 주변의 다른 극장과 헷갈린 것을 깨달았다. 나라 구하는 심정으로 서둘러 달려가 보니 관객석에는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이 너덧 명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고백건대 ‘더 랍스터’를 선택한 건 순전히 포스터 때문이다. 어떤 영화인지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접한 포스터는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다웠다. 황량한 갈대밭 사이로 다급하게 어디론가 달려가는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두손으로 꼭 붙잡고 있다. ‘사랑에 관한 가장 기묘한 상상’이라니, 대체 어떤 영화일까. 극장에서 그다지 오래 상영할 것 같지 않고 이 원고가 실린 후에도 일부러 영화를 찾아보는 이가 열 명이 채 안 될 것을 확신하므로 그 내용을 낱낱이 소개할까 한다. 혹시 나처럼 포스터에 순간적으로 영혼을 뺏겨 영화를 보게 될지 모를 아홉 명은 여기서 멈추시기 바란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신화 속으로
    #66 고고학자들에게 갈채를 1980년대, 독일고고학연구소에서 ‘그리스 폴리스의 주거 문화’라는 주제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베를린 자유대학 고고학과 연구원들이 주동이 되어 진행한 국제 프로젝트였다. 그중 베를린에 살았던 팀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별도로 모여 그리스 고전 읽기 모임을 했다. 어느 날 팀을 이끌던 교수가 퓌클러 정원문화재단1의 초청을 받아 고대 그리스의 ‘정원’에 대해 특강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강연을 들으러 팀원 모두 몰려갔는데 거기서 뜻 밖에도 ‘고대 폴리스의 주택에는 꽃밭이 없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뭣이라고”, “그럴 리가”, “그리스에 가보라고.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고대 문헌에 정원이 얼마나 많이 언급되는데” 등의 반응을 보이며 흥분한 팀원들은 토론 끝에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화제의 특강 후 지도 교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므로 자초지종을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했다. 수소문해보니 마침 “부조에 나타난 고대 그리스의 풍경”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여류 고고학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연구재단의 도움을 받아 연구비를 확보하고 그 여류 고고학자를 프로젝트 팀원으로 초대하는 데 성공했다.2 현재 영국 셰필드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는 모린 캐롤Maureen Carroll 교수다. 이때부터 모린 캐롤은 고전 읽기 팀에 합류하여 옛 기록을 분석하는 한편 발굴 현장을 탐색하고 발굴 보고서를 샅샅이 조사하여 정원의 증거들을 수색해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폴리스 주택에 꽃을 심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3 아무리 열심히 찾아도 없는 것이 발견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고전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케포스Κήος’, 즉 정원이라는 개념은 무엇을 뜻한단 말인가. 고대에 꽃을 가꾼 정원이 정말로 없었단 말인가.4 이런 질문이 팀원들을 괴롭혔다.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바로 ‘정원’에 대한 개념이다. 1980년대 중반, 베를린에서 살았던 고고학자들에게 정원이란 ‘꽃이 가득 심겨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즉 꽃이 가득한 정원은 ‘20세기적현상’이라는 것5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원하던 답은 찾지 못했으나 그 대신 다른 수확은 많았다. 우선 케포스라는 말이 언급된 모든 고대 문서를 샅샅이 찾아내어 목록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다. 그리고 케포스를 아무리 털어 봐도 꽃밭 대신 과일과 채소만 나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케포스가 정원이라고 번역되기는 하지만20세기에 생각하는 정원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부엌과 주방의 차이와도 같다. 부엌에는 부뚜막이 있지만, 주방에는 싱크대가 있다. 케포스에서 꽃밭을 찾는 것은 마치 조선 시대 부엌에 가서 싱크대를 찾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왜 폴리스 주택에 꽃이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아마도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우선 폴리스라는 고대 그리스 특유의 도시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꽃에 대한 고대인의 관점도 규명해야 한다. 다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폴리스의 주택들은 너무 협소하여 정원을 만들 자리가 없었다. 꽃은 일상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며 신성한 것이라 신들에게 바치기 위해서 존재했다. 개인이 보고 즐거워할 대상이 아니었다. 폴리스는 대략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라고 널리 이해되고 있으나 정확히 말하자면 성채를 두르고 사람들이 모여살았던 공동 생활 구간을 말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확립되기 이전에도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했으므로 성안에서 살아야 참정권 행사가 기술적으로 가능했다. 전쟁이 잦았으므로 안전을 위해서도 성안에 모여 사는 것이 유리했다.6 도시라고 해도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던 아테네의 인구가 한창 때에 약 4만 정도였으니 이 역시 지금과 달랐다. 특이했던 점은 도시가 팽창하면 도시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분가’시켜 아주 먼 곳에 가서 신도시를 개척하게 했다는 점이다. 오십 명의 미혼 남성으로 구성된 신도시 개발팀을 내보냈다. 무력으로 정복한 것이 아니라 현지 여인들과 혼인하여 문화적 융합을 꾀했다.7 사실 인구가 너무 많으면 공동의 의사결정도 불가능하지만 ‘어떻게다 먹여 살릴 것인가’하는 문제가 더욱 시급했다. 기원전 8~6세기에 신도시 건설이 가장 활발했으며 6세기 말 소위 고전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미 서쪽으로 스페인 해안, 남으로 북아프리카, 동으로 지금의 터키, 사이프러스는 물론 흑해 연안까지 그리스인들의 폴리스가 분포되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 규모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거의 집착했던 것 같다. 폴리스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열 명으로는 도시를 형성할 수 없지만, 인구가 십만 명이 넘으면 이미 도시라 할 수 없다.”8 플라톤은 5,040명을 적정 인구수로 보았다.9 이런 폴리스들은 격자형 계획도시였다. 똑같은 면적의 블록으로 도시를 나누었으며 이를 다시 균일한 크기의 필지로 나누었다. 한 필지의 규모는 도시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평균적으로 250m2였다.10 세대 당 두 개의 필지를 배당받았는데,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도심에 주택지 하나, 외곽에 같은 평수의 텃밭을 하나씩 나눠받았다. 외곽의 텃밭이 바로 케포스, 즉 그들이 정원이라고 일컬었던 것이었다. 도시 내에는 지금의 연립주택과 다름없는 집이 밀집하여 지어졌고 디자인도 두세 개의 모델로 국한되어 있었다. 주택 구조를 보면 정원이 비집고 들어갈틈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당이 있었으나 협소했고 이곳에 우물과 제단이 있었으며 바닥은 흙다짐되었거나 돌, 모자이크 등으로 포장되었다. 폴리스의 모습만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참으로 기계적이고 합리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공동체적 삶을 위해 개인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굳이 주택가에서 꽃을 찾으려는 20세기적 발상 자체가 그들에게는 그릇될 것이다. 신화와 문학이 그들의 ‘꽃’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그리스로 가서 아무나 붙잡고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평등도 좋고 민주주의도 좋지만 집 좀 크게 짓고 정원도 좀 꾸미지 그랬소” 그러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데” 그리고 길을 가리킬 것이다. “저리로 한번 가보시게.” 그 길은 아마도 신화 속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