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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 사람과 땅이 어울린 이야기 (15)- 8월, 이 땅의 큰 나무
지난달에 금속재와 강화플라스틱을 다뤘다. 다양한 표현력을 요구하고 뭔가 얘깃거리를 전달하고 싶은 소위 포스트모던의 영향에 따라 현대시대의 외부공간은 과거 어느 때보다 금속재와 강화플라스틱의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언제까지 지속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아니면 상당히 오랜 기간 금속재와 플라스틱재는 외부공간에서 그 영향력을 강화시켜 나갈 것으로 짐작된다. 나중에는 터미네이터에서 나온 기계 쪽의 전사, 즉 T-1000이나 T-X처럼 원할 때마다 모양과 색 그리고 질감을 바꾸는 재료가 외부공간에 등장해 사람들을 더욱 즐겁게 하게 될 지도 모른다. 또 그런 재료는 필요에 따라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과 서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거나 정보를 검색하게 하는 네트워크의 단말기 기능도 겸하게 될지도 모른다.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의 시대에 뭐가 불가능하겠는가. 메탈과 플라스틱은 현시대의 재료적 코드다. 먼지가 미끄러질 듯한 매끄러움에서 녹이 슨 거칠음까지, 눈부실 것 같은 광택에서 어두운 이끼가 덮인 것 같은 청색 녹까지, 날아갈 것 같은 날렵함에서 온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것 같은 둔중함까지 금속재의 표현력은 무궁무진하고 변화무쌍하다. 가능성이 정말 무한한 재료다.
이번 달에는 약속대로 나무를 다루기로 한다. 전에 다룬 것은 죽은 나무에서 만들어지는 목재였지만 이번에 다룰 것은 살아있는 나무, 성장하는 나무에 대한 것이다. 이번 달의 글 제목은 과거 중앙일보 기자생활을 했던 고규용 씨가 쓴 책이름을 그대로 빌렸다. 고규용씨의 책은 제목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책 겉표지의 나무사진이 - 넓은 들판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저녁햇살을 역광의 실루엣으로 받고 있는 나무 사진의 모습이 - 좋아 집어 들게 됐다. 나무가 우리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감흥을 마치 한 곳에 집약시킨 모습으로 서있는 나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무는 다른 재료와 달리 살아있는 재료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더 새로워지는 재료이다. 나무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하면서 나무가 왜 조경하는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재료이면서도 또 왜 조경하는 이들이 가장 쓰기 어려워하는 재료인지도 함께 들여다보기로 하자.
미래를 보며 오늘을 심는다
나무는 태어나서 죽는 과정을 거친다. 나무에 수명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생명을 유지하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그 수명이 유달리 길다. ‘나무와 숲이 있었네’의 저자 전영우에 따르면 무려 5천년을 사는 나무도 있다. 미국 모하비(Mojave)사막 인근의 화이트마운틴에 산다는 브리스틀 콘 소나무(Bristle cone Pine)라는 나무인데 고산지대의 건조기후에 적응하느라 천천히 살았던 모양이다. 그 정도면 나무 한 그루가 인류의 시작을 처음부터 지켜보면서 지금껏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나이도 나이지만 끔찍하게 큰 나무들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시에라네바다산맥에 살고 있는 미국 삼나무인 레드우드(redwood)는 줄기의 구멍으로 자동차가 지나갈 정도로 크기 때문에 종종 관광책자에 실려 유명세를 유지한다. 27층의 건물높이라니까 층높이를 3미터만 잡아도 대략 80미터의 키를 갖고 있다는 얘기고 줄기의 직경이 무려 10미터가 넘는다고 하니 정말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큰 나무도 작은 씨앗으로부터 생명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라기 시작한다. 나무의 긴 수명은 사실 따지고 보면 천천히 살기 때문이랄 수 있다. 어린나무인 묘목의 단계를 거치면서 성목(成木)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요하기는 하지만 쉬지 않고 자란다. 나무에 따라서 다소 빨리 크는 나무가 있고 천천히 크는 나무가 있다. 다른 재료는 설계에 따라 완성된 형태로 시공이 된다. 하지만 나무의 경우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외부공간을 설계하는 이가 머리에 그리고 있는 나무모습은 나무가 어느 정도 자라 제 모습을 갖춘 성목, 즉 나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 40년을 자란 나무들이다.
하지만 시공 당시에 설계가가 의도한 크기의 나무를 그대로 구해다 심는 예는 거의 없다. 그 정도로 자란 성목을 농장에서 찾는 것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나이가 그 정도 되면 나무를 옮기는 이식작업이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통상 조경가가 시공 당시에 심겨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대략 10여년 정도 자란 다소 어린 나무들이다. 그 정도 연륜의 나무들이 구하기도 좋고 농장에서 떠나와 옮겨 심겼을 때 무사히 적응해 삶을 지속하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무의 성장 가능성과 이식의 어려운 점 때문에 조경가는 쉽게 얘기해 10년 나이의 나무로 30년 후의 성목을 예상할 수 있어야한다. 그런데 그 예측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아무리 나무를 잘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떤 나무가 몇 십 년 뒤에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누군들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또 어려운 점은 나무라는 재료가 생육조건을 따질 수밖에 없는 생명체라는 것이다. 돌이나 벽돌처럼 어디에 놓이건 놓인 대로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는 자신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조건들을 까다롭게 따져낸다. 추위에 약한 나무가 있고 공해에 약한 나무가 있다. 모든 나무가 햇빛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강한 직사광선을 싫어하는 나무도 적지 않다. 물을 좋아하는 나무가 있는 한편 오히려 마른 땅을 좋아하는 나무도 있다. 이러한 소위 생육조건은 나무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경기이북의 외부공간에 추위에 약한 동백이나 매화를 쓸 수 없는 것처럼 나무를 잘 쓰려는 이들은 이들 생육조건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나무는 오죽 그 종류가 많은가. 그래서 나무는 외부공간을 다루는 이들이 가장 흔히 쓰며 그들만이 쓰는 유일한 재료이기도 하지만 종종 애를 먹이는 재료이기도 한 것이다.
진 양 교 Chin, Yang Kyo·(주) 토문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무소 부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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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마법의 왕국 디즈니랜드
황홀한 꿈과 기상천외한 마법의 나라 디즈니랜드(Disneyland)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동심의 세계에 빠지고 만다. 동심의 세계에는 순수한 마음과 함께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고 있다. 만화영화 제작자로 유명한 월트 디즈니(Walt Disney)가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인근의 애너하임(Anaheim)에다 그의 이름을 딴 디즈니랜드의 문을 연 것은 1955년 7월 17일이었다. 1954년 7월 21일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니 공사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히 짧았으나,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놀이동산을 만들겠다”는 최초의 구상이 개장에 이르기까지는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매주 토요일을 아빠와 함께 노는 날로 정할 만큼 가정적이었던 디즈니는 두 딸을 데리고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딸들은 공원에서 아주 재미있게 놀았지만, 그는 벤치에 앉아 애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는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애들과 함께 있어 즐겁지만 한편으로 무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공원에는 어른들을 위한 시설이 없었던 것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완벽한 놀이동산을 만들자”는 생각이 바로 위락공원(慰樂公園, Amusement Park)으로 유명한 오늘날의 디즈니랜드를 있게 한 계기가 된다. 디즈니랜드를 만들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디즈니랜드에 있는 동안에는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를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이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처럼 느끼기를 바란다.” 그의 생각에 따라 디즈니랜드는 「일상에서의 도피」와 「환상세계로의 몰입」이라는 뚜렷한 목적의 주제를 갖게 되었고, 이러한 주제를 설정한 것이 디즈니랜드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동안이라도 환상세계에 머물게 되면, 삭막하고 따분하기만 했던 일상은 의욕이 가득 찬 새로운 삶으로 바뀌게 된다. 공원의 분류에 있어 이용객이나 유치거리에 따르는 어린이공원이나 근린공원 등과는 별개로, 어떤 주제를 갖는 공원 즉 주제공원(主題公園, Theme Park)은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전체 공간을 구성하는 공원을 일컫는다. 기존의 공원들과는 달리 몇 개의 주제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 전체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흥미와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대규모 위락공원인 디즈니랜드는 이러한 주제공원의 효시이자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디즈니랜드가 자리잡은 곳은 원래 오렌지농장이었던 곳으로, 위락공원의 건설을 위해 당시 180에이커(약 22만평)에 이르는 땅이 개간되었다. 디즈니랜드는 현재 5개의 큰 주제공간으로 구획되어 있다.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 U.S.A.)」, 「모험의 나라(Adventure Land)」, 「개척의 나라(Frontier Land)」, 「환상의 나라(Fantasy Land)」, 「미래의 나라(Tomorrow Land)」가 바로 그것이다. 모험의 나라와 개척의 나라 사이에 위치한 ‘뉴 올리언즈 스퀘어(New Orleans Square)’와 ‘크리터 컨트리(Critter Country)’를 별도로 구획하여 7개의 주제공간으로 보기도 하는데, 5개의 주제공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창의적인 성격을 갖는 각각의 주제공간들은 서로 독립적인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한편, 서로를 보완함으로써 전체로는 하나의 완벽한 위락공원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중략 … 아름다운 자연경승지는 신이 빚은 천혜의 자연공간이다. 이에 반해 디즈니랜드는 인간문명이 만든 인위적 공간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위적 공간이 자연경승지와는 달리 관심을 끄는 측면이 있다. 오늘날 관광지로 유명한 곳들은 행락철에 한꺼번에 몰리는 이용객들과 그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산이나 계곡처럼 지속적인 관리가 어려운 자연경승지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특히 심각한 편이다. 앞으로 여가활동의 폭발적인 증가에 비추어 자연경승지가 감당할 수 있는 이러한 수용능력과 관리문제를 감안하면, 디즈니랜드와 같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위락공원이 이러한 관점에서는 더욱 주목을 받게 된다. “디즈니랜드는 결코 완성되지 않았다. 꿈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발전되어야 한다”는 디즈니의 말처럼, 디즈니랜드는 1955년 개장 이후 끊임없는 시설확장과 투자로 이용객들의 구미를 계속 돋구어 왔다. 매년 천만 명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입장함으로써 폭발적인 호황을 누렸다. 이러한 디즈니랜드의 성공에 힘입어 1971년에는 플로리다(Florida)주 올랜도(Orlando)에 디즈니랜드 면적의 150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디즈니월드(Disneyworld)’가 세워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인들의 꿈과 역사가 깊게 배어 있는 디즈니랜드가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게 되었다. 1983년에는 동경(東京) 인근에 ‘도쿄 디즈니랜드(Tokyo Disneyland)’가, 1992년에는 파리(Paris) 인근의 마른 라 발레(Marne la Vallee)에 “싸구려 미국문화의 수입을 반대한다”는 거센 반발과 콧대 높은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을 꺾고 ‘유로 디즈니랜드(Euro Disneyland)’가 개장되었다. 디즈니랜드와 함께 미국문화를 대표하는 맥도널드(McDonald)는 세계 어디에서나 그 맛이 거의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디즈니 프로덕션(Disney Production)에 의해 운영되는 올랜도의 디즈니월드와 도쿄 디즈니랜드, 그리고 유로 디즈니랜드도 처음 만들어진 애너하임의 디즈니랜드와 거의 흡사한 공간구성과 동선체계를 보이고 있다. 금년에 이르러 홍콩(Hong Kong)에서는 세계에서 5번째로 디즈니왕국의 건설을 알리는 기공식이 열렸다. 강 철 기 Kang, Cheol-Gi 경상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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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 사람과 땅이 어울린 이야기 (14) - 7월, 외부공간의 별난 재료들
목재 - 바깥으로 나온 우물마루
나무는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다. 과학적인 용어로 얘기하자면 열전도율이 낮은 재료다. 반면 콘크리트와 금속재는 여름에 뜨겁고 겨울에 차다. 돌은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겨울에 너무 차다. 사람 몸이 직접 닿을 때 느껴지는 촉감이 그렇다는 얘기다. 예로부터 사람 몸이 직접 닿는 곳의 재료는 천이거나 목재였다. 온돌바닥처럼 온기가 일부러 주어지는 경우가 아니면 말이다. 현 시대에도 외부공간의 의자, 벤치에서 사람의 몸과 맞닿은 부위에 가장 많이 쓰이는 재료가 그래서 목재다. 통나무를 흉내 낸 콘크리트 벤치가 한때 유행한 적이 있지만 그 조악한 형태와 겨울의 차가움 때문에 일찌감치 사라졌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옛날에는 지붕이 있는 정자(亭子)나 루(樓)를 제외하곤 외부공간의 바닥에 나무를 깔지 않았다. 나무는 쉽게 망가지고 또 쉽게 썩는 바람에 비바람에 씻기고 발에 밟히는 외부공간에 두지 않았다. 대신에 신을 벗고 올라서는 집안의 바닥, 즉 신체가 직접 접촉하는 바닥인 마루에는 나무를 깔았다. 마루는 땅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냉기와 열기를 차단하는 기능을 했다. 대청마루에서 여름에 웬만한 더위가 아니면 마루의 나무면에 등을 대고 눕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나무를 지붕이 없는 외부공간에 쓰는 방식은 물 건너 저쪽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북유럽이나 캐나다 쪽의 목재들은 외부공간에 견딜 정도로 단단하기도 했고 우리처럼 따뜻한 지방에서 자란 나무와는 달리 쉽게 무르지도 않는다. 물 건너 저쪽에서 집의 거실에 붙여 나무바닥면을 외부에 깔 때 그네들은 실내의 공간을 외부로 확장시킨다는 개념을 담았다. 실제로 나무바닥면은 우리가 실내에 있거나 아니면 실내로 들어가기 직전의 중간공간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 일종의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인데 - 전해준다. 우리의 벗은 몸과 친했던 목재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외부공간의 나무바닥을 밟을 때 들리는 소리, 즉 나무가 끌리는 소리라든지 나무에 힘이 전달되면서 생겨나는 뻐근한 소리들도 과거 실내에서 우리가 마루를 밟을 때 들었던 익숙하고 친근한 소리들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나무바닥면을 볼 때 여차하면 앉아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변공간주변으로 나무바닥면을 - 조경하는 이들은 이걸 목재데크 또는 목재테라스라고 부른다 - 많이 두는 것도 물 쪽으로 발을 내리고 걸터앉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 쪽이 아니라도 나무바닥면은 언제든지 퍼질러 앉아도 좋을 거라는 느낌을 전해준다.
우리는 예부터 우물마루라는 아주 예쁘면서도 쓰임새도 좋은 마루가 있었다. 우물마루는 먼저 세로로 길게 이어지는 장귀틀을 두고 가로에 일정간격으로 동귀틀을 배치한다. 동귀틀과 동귀틀의 사이에 마룻널(널빤지)을 끼우면 우물마루가 완성된다. 장귀틀과 동귀틀의 만남의 모양이 우물 정(井)자를 닮았다하여 우물마루라고 불린다. 못을 사용치 않는 우리의 전통마루이고 그 형태가 친근하면서도 빼어나다. 아쉽게도 외부공간에서 우물마루와 같은 정교한 목재바닥면을 주기는 쉽지 않아서 통상 좁고 긴 판자를 길이로 못으로 이어가는 방식을 사용한다. 우물마루의 모티브를 부산국악원의 마당에 시도했는데 아직 준공전이라 실제 어떤 모습이 될지 모르겠다. 시공후의 모습을 나중에 다시 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금속재 - 간결함과 둔중함의 이중성
금속은 재료 중 아마 가장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재료가 아닐까 싶다. 아주 무겁고 둔중한 느낌을 주고 싶거나 또는 정반대로 아주 간결하고 날렵한 느낌을 주고 싶을 때 외부공간을 만드는 이들은 금속재를 고려한다. 금속재를 외부공간의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정말 최근의 일이다. 금속재를 외부공간에 쓰기 시작하는 경향은 다음에 얘기할 플라스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외부공간에 요구되는 표현력의 정도가 점차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고 또 우리가 늘 새로운 것, 즉 특이성을 추구한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
목재나 금속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는 비바람과 세균에 의한 부식에 약하다는 것이다. 목재나 금속재가 외부에 쓰이기 위한 첫 조건은 부식에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재는 벌레나 세균에 취약하고 금속재는 산화에 의한 부식에 취약하다. 외부공간에 목재를 사용하기위해 여러 가지의 목재방부방법이 개발되어 쓰이고 있다. 간혹 독자여러분들이 외부공간에서 약간 청색 끼가 도는 나무 바닥이나 목재시설물들을 만난다면 이는 크롬과 구리 그리고 비소 등의 화합물로 방부처리 (CCA방부)를 한 것으로 보면 된다. 금속재의 경우에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아예 녹이 슬지 않는 금속을 쓰거나 녹이 슬더라도 녹이 내부까지 침투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금속표면에 페인트칠 등의 도장(塗裝)을 하여 금속표면이 공기와 접촉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도장의 경우 어차피 금속재의 표면에 색을 준다든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금속표면에 칠함과 동시에 금속표면의 부식을 방지하는 이중의 효과를 노리게 된다. 목재의 방부처리도 겉만 도포하는 방식과 압력을 주어 방부제를 목재내부까지 스며들게 하는 방식이 있듯이, 금속재의 도장도 겉만 칠하는 방식과 열처리를 하여 표면과 도료의 접착력을 높이는 방식이 있다.
도장을 하지 않고 금속자체의 표면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 경우에는 붉은 녹이 쉽게 스는 일반 철재를 사용해서는 곤란하다. 붉은 녹 자체가 고르지 않고 불규칙하게 앉아 보기에 좋질 않고 녹이 내부까지 들어가 결국 철 자체를 무르게 한다. 산화과정에 의해 부스러지는 철의 본질적인 약점은 철과 다른 금속을 합금형태로 섞음으로서 해소된다. 합금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스테인리스강(剛)이다. 스테인리스강은 이름그대로 녹(stain)이 없는(less) 철재를 말한다. 스테인레스강은 철에 크롬을 섞은 합금인데 크롬은 대기 중에 노출되면 산화 막을 형성하여 내부의 원판을 보호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강도도 일반강보다 높고 가공성과 용접성도 우수하다. 무엇보다 표면이 미려하고 밝아 금속재의 깔끔함을 대표하는 재료다. 가격이 높은 것이 흠이고 때에 따라서 표면의 지나친 밝음과 깔끔함이 오히려 다른 공간요소들과 이질감을 초래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 중략 …
공간을 만드는 이에게 재료의 선택은 공간의 나눔이나 짜임새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자신이 사용할 그림 재료가 목탄인지 수채화물감인지 아니면 유화물감인지를 모르고 있다면 그 그림이 잘 그려질 턱이 없다. 예를 들어, 수채화물감이 갖고 있는 여러 성질, 즉 물의 양으로 색의 농도나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다든지 또는 다른 색과 같이 섞일 수 있다든지 등의 성질은 그것을 사용할 화가에게 기본적인 지식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경주 힐튼호텔의 외부공간을 설계한 이원조경의 작품들이나 도곡동의 아크로빌 외부공간을 설계한 오이코스의 작품들처럼 설계가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재료에 대해 탁월한 안목과 철저한 이해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이원조경의 작품은 다른 재료보다 특히 돌과 수목에 대해 설계가가 탁월한 안목을 갖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이원조경의 설계가가 다른 설계가들과 교류를 갖지 않고 있는 것은 양쪽을 위해 참 아쉬운 일이다. 다음달에는 재료의 마지막 항목으로 수목, 그중에서도 주로 키 큰나무만 중점적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수목은 조경가들만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재료이자 무기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조경가들이 가장 다루기 어려워하는 재료이기도 하다. 수목으로 여러분들을 뵙는 다음달까지 건강하시기를.
진 양 교 Chin, Yang Kyo·(주) 토문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무소 부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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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북촌
대학로 이런 길 저런 길을 걷고, 생각하고, 느끼고 하는 것이 도시민들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걸어서 도시를 음미하는 사람에게 대학로처럼 다양한 삶의 무대가 펼쳐지는 길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대학로는 서울의 삶의 결을 더욱 더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 대학로의 역사는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이 때 동숭동과 연건동에 경성제국대학을 짓고, 이화동, 동숭동, 연건동에 일본인 교수들의 사택 촌을 만든다. 서울에 최초로 조그만 대학마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던 것이 해방이후 서울대의 문리대, 법대, 의대, 미대 캠퍼스가 동숭동 주변으로 포진하면서 현대식 대학가로서의 외관을 갖추어 나간다. 지금 말하는 캠퍼스 타운인 셈이다. 서울대가 관악으로 이전하기 전 까지 문리대 캠퍼스는 토론, 비판, 항거, 낭만이 숨쉬는 공간이었다. 서울 문리대라는 문화적 요소가 동숭동이란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대학로는 동숭동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태생된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대학로와 같은 거리에 대한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 1980년대에 들어와 대학로는 커다란 탈바꿈을 강요받는다. 계획적인 설계에 의해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시정부의 노력이라고나 할까. 대학로는 도시설계가인 양윤재 교수의 도시설계 철학과 의지가 농축된 작품이다. 튀는 젊음과 일반시민들의 문화적 욕구에 대한 공간적 수용, 그리고 전통건물과의 조화 등의 설계요소를 적절히 반영시킨 설계이다. 도시와 건축학도들이 성지순례 하듯이 반듯이 들리는 곳이 되었다. 대학로가 어색하지 않고 친근히 다가오는 것은 아마 설계자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까운 안목일 것이다. 오늘의 대학로가 애당초에 도시설계자가 구상했던 대학로의 모습인가? 많은 거리감이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까지 천박한 자본이 밀려들어올지는 아마 설계자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길을 걸으며 내 스스로 말한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도시의 정신”,“아 안타깝다”, “전통은 죽어 가는데 이 곳에는 천한 상업주의만 홀로 살아남았나?”. 그러면서도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는 대학로의 넓이와 폭에 푹 빠져 버렸다”. 북촌 잿빛 기와지붕 위에 시커먼 먹구름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서울 600년 역사의 고유한 정취가 북촌을 껴안으면서 한옥보존 동네와 맞닥뜨리는데, 아! 하는 탄성이 나오기 마련이다. 개화사상의 산실인 박규수의 집터, 근대산업의 터전인 풍년상회, 김옥균, 손병희의 집터, 그리고 윤보선의 옛집 등을 만나면서 파란만장한 근대사와 그 속의 인물들과 조우한다. 여기서는 실제 사람의 체취가 밴 고택들과 숨결을 같이 할 수 있다. 근세가 남기고 간 힘으로 버티는 동네, 북촌. 북촌은 예로부터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있는 전통 주거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경복궁과 창경궁은 도선성리학 사상에 의해 설계된 궁궐로서 도선왕조의 자연관과 세계관이 설계에 녹아들어가 있다. 이 두 궁궐 사이에 끼어있는 공간에 귀족들의 주거를 위한 주거지역이 형성된 것이다. 한옥은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이 한옥마을을 가꾸기 위한 시민적 공감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다. 1977년 이 지구를 최고 고도지구로 정하여 한옥보다 높은 건축물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였으며, 1983년에는 집단 4종미관지구로 지정하여 관리를 해왔다. 개보수 금지와 건축규제 일변도의 한옥보존정책은 거주민들의 생활환경을 악화시키기에 이르렀다. 90년대에 들어서자 일부 한옥거주자들의 반발이 있었다. 지원과 혜택이 없이 규제위주의 시 행정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1991년 서울시의 규제완화를 계기로 한옥이 헐리고 다세대와 다가구 주택이 들어서면서 한옥의 숫자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동안 눌려왔던 개발에 대한 욕구가 봇물 터지듯 솟아 난 것이다. 2003년 현재 19만 5천 평의 북촌지구에 약 2천2백 여동의 건축물 중 40%인 860 여동의 한옥이 남아있다. 도시에서의 전통주거지는 이방인에게는 등대이기도 하다. 그 도시의 전통을 보면 현재의 도시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서울시의 끈질긴 설득과 대화로 한옥마을을 보존하기 위한 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한옥마을이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지난 2000년부터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주도로 북촌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주민 스스로 북촌마을 보존에 앞장서도록 유도하고 있다. 북촌프로젝트의 핵심은 전통주거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시 정부의 지원책들이다. 예컨데, 한옥 등록제, 소공원조성에 대한 보조금지원, 주차장 건설, 등록된 한옥의 개보수 비용에 대한 부분 보조, 한옥 신축 시 비용의 일부 지원 등 다양하다. 북촌사업을 추진하면서 문제가 여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원 제 무 Won, Jaimu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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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수화의 경전
- 계림의 리강, 곤명의 석림, 장가계의 무릉원 -
중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자기중심적 사고, 또는 과시적 기대표현을 즐겨 사용하여 왔다. 흔히 이야기되는 중화사상(中華思想)으로 "세계적", "중국의 몇 대(大)…"라는 비유로 설명하거나 희망적 목적지향을 추구한다.
그래서 역사문화나 인물 혹은 자연경관까지도 과대한 수사력(修辭力)에 놀랄 때가 많다. 각 지역의 유명 산들을 방위에 따른 오악(五岳)등으로 구분, 예찬하고 있는데 즉 명산의 위치에 따라 산동성의 태산(泰山)을 동악, 섬서성의 화산(華山)을 서악, 호남성의 형산(衡山)을 남악, 산서성의 항산(恒山)을 북악, 하남성의 숭산(崇山)을 중악으로 불리워 왔다.
그중 동쪽의 태산은 계절상 봄이라 하여 가장 친근하게 생각하여 왔고, "오악지장(五岳之長)", "오악독존(五岳獨尊)"이라며 천하제일의 명산으로 믿어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9대명산중의 하나인 황산(黃山)의 아름다움을 으뜸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명나라때 저명한 지리학자이며 여행가였던 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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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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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자연생태공원의 운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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