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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공원을 경영하는 시대, “공원을 부탁해”
공원경영자임포럼 심포지엄, ‘Who makes parks? :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찾습니다’
철거 예정이었던 폐선부지를 공원으로 만든 ‘하이라인 친구들Friends of the Highline’, 시민의 힘으로 로테르담에 공중 고가 도로를 세운 ‘아이 메이크 로테르담I make Rotterdam’ 등 시민이 경영하는 공원과 공공 공간의 사례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그린트러스트를 비롯해 공원을 활동 무대로 삼고 공원 경영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모임과 단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와 비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9월 10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공원경영자임포럼심포지엄 ‘Who makes parks?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찾습니다’가 열렸다. ‘공원경영자임포럼’은 공원 경영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스스로 맡은 사람들이 모여 공원과 도시를 이야기하며 현장에서의 경험을 연결 짓는 오프라인 포럼이다. 이강오 어린이대공원 민간 원장, 이호진 방울단 대표, 이민옥 서울그린트러스트 서울숲사랑모임 국장, 조경민 고가산책단 대표, 오성화 서울프린지 네트워크 대표 등 공원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펼치고 있는 다섯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포지엄에서 소개됐다.
“아이들이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시간은 하루에 평균 7시간이나 되지만 야외에서 여가를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7분에 불과하다.” 흙과 자연이 좋아 ‘흙형’이라는 닉네임으로 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강오 원장의 말에는 빈약한 어린이 놀이 문화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어.대.공.(어린이대공원)의 파트너를 찾습니다’란 제목으로 심포지엄의 첫 발표를 맡은 이강오 원장은 그 원인을 매력적인 야외 놀이 공간의 부족에서 찾았다. 그는 외주 업체에 일을 맡기는 오래된 일 방식 때문에 공원 경영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린이대공원이 아이들이 야외에서 노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이 꿈을 위해 어린이대공원에 다양하고 매력적인 야외 놀이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고 실행할 파트너를 찾고 있다. 공원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와 재미있는 상상을 공유해준다면 주어진 예산 내에서 지원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방울단은 선유도 전신마취 음악 행사, 서울숲 DIY 트리 페스티벌, 서울역고가 꽃길 거리 등 공원과 공공 공간을 무대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방울단의 이호진 대표는 “공간에 대한 시대적 필요에 반응하고 앞으로의 수요에 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며 방울단을 꾸려나가게 된 계기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공간에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이 공간은 용도는 뭐지’, ‘누가 만든 거지’, ‘누가 이용하지’ 등 공간과 사람이 연결되는 맥락을 먼저 찾는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라며 공원은 이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생길 수요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에게 숲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공원을 찾았다가 서울그린트러스트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이민옥 서울숲사랑모임 국장은 ‘서울숲에서 제(멋)대로 들이댈 사람 찾습니다’라는 주제로 세 번째 발표를 맡았다. 그는 공원이 처음 개장한 2005년에만 해도 공원 문화가 성숙하지 않아 “공원에서 ~하지 마라”를 강조하는 일명 ‘하지 마라 캠페인’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자유로운 활동을 지원하는 ‘해라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공원에서 다양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펼침으로써 그 영향이 지역 사회에 확대되기를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숲의 프로그램이 단순히 공원 내에서의 활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그렇기 때문에 서울숲에서 ‘제(멋)대로’ 들이댈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반장’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조경민 대표는 “여러분과 서울역 고가의 분양 상의를 하러 나왔다”며 “낮 동안에는 레스토랑, 밤에는 클럽으로 변신하는 공간이 서울역 고가에 생긴다고 생각해보라”고 서울역고가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이야기했다. 그는 보행 친화적인 도시 계획이 활기찬 거리, 생명력 있는 도시를 만든다는 다큐멘터리 ‘얀 겔의 위대한 실험’의 메시지가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포석유비축기지를 생각하면 심장이 뛴다.” 마포구주민으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사무실을 두고 일하고 있는 오성화 대표는 시민이 만들어 갈 마포석유비축기지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는 단순히 낭만적인 생각이나 공상으로는 시민이 경영하는 공원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수혜 받는 시민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복잡하고 지난한 합의 과정을 거친다는 각오로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원의 잠재된 사회·문화·경제·생태적 가치를 발굴하고 새로운 미래를 찾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지난한 합의 과정을 기꺼이 맡아줄 공원 경영의 자임자가 필요하다. 이날 포럼에서 다섯 명의 활동가가 발표를 마친 후에도 늦은 시각까지 청년들의 질문과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Who makes parks? :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찾습니다’란 주제로 시작한 심포지엄의 끝에 시민이 공원을 경영하는 시대를 이끌어갈 예비 활동가 들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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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각축장, 남산의 역사
‘남산의 힘’, 2015.8.7~11.1
우리에게 남산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데이트코스로 한번쯤 가봤음직한 남산타워와 케이블카의 기억으로, 누군가에게는 한 시절 안기부가 자리한 어두운 공간으로 기억되기도 할 것이다. 한편 2009년부터 서울시는 한양 도성 복원의 일환에서 남산 회현자락 정비를 추진하면서 문화재와 공원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광복 70주년 특별 기획전으로 2015년 8월 7일부터 11월 1일까지 ‘남산의 힘’ 전을 1층 기획 전시실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와 근현대 시기를 거치면서 권력 등의 힘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남산의 변화에 대하여 250여 점의 관련 역사 자료들을 망라하여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시는 ‘목멱, 한양의 안산’, ‘식민통치의 현장’, ‘국민교육장 남산’, ‘돌아온 남산’ 이렇게 4부로 구성되었다.
겸재 정선, 김홍도의 그림으로 만나는 남산
1부 ‘목멱, 한양의 안산’에서는 남산이 한양의 내사산 중 하나로 한양의 수호 산이자 친근한 앞산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 전시된다. 남산은 국가 제사의 공인된 공간이자 민간신앙의 성지로서 조선 초기부터 국사당과 와룡묘, 남관왕묘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관리들의 계회 등 풍류의 장소로도 각광 받았다. 사도세자가 쓴 ‘남관왕묘비명’을 비롯하여, 겸재 정선의 ‘목멱산도’(백납병풍), 김홍도의 ‘남소영도’, 김윤겸의 ‘천우각 금오계첩’ 등 쟁쟁한 조선 화가들의 필치로 남겨져 있는 남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한일합병조약 체결의 현장이자 황국신민의 언덕
2부 ‘식민통치의 현장’에서는 일제의 강점으로 남산이 겪게 되는 훼손의 역사가 펼쳐진다. 1880년대부터 일제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 주둔지 ‘왜성대(남산 북쪽 일대)’ 지역에 일본공사관, 통감부, 통감관저 등을 설치하였고, 1910년 8월 22일에는 데라우치 통감과 이완용이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면서 남산은 국권상실의 현장이 되고 만다.
일제에 의해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지역은 전망이 좋은 남산 회현자락이었다. 일제는 이곳에 여의도의 두배에 가까운 43만m2의 대지를 조성하여 조선신궁을 세우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 밖에도 남산에는 일본인 거류지였던 왜성대에 경성신사, 경성호국신사, 노기신사 등이 있었다.
조선의 정신을 훼손하려는 시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충신을 기려 만든 장충단을 장충단공원으로 개조하고 그 안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당 박문사를 짓기도 했다. 한편 남산을 일본식 대공원으로 개조하기 위해 우리 전통 소나무 대신 벚나무와 아까시나무를 계획적으로 이식시켰다.
식민통치의 현장 코너에서는 ‘한국합병조약 및 양국황제조칙의 공포에 관한 각서’(1910), ‘경성부남산공원설계안’(1917), ‘조선신궁전경도’, ‘노기신사 수조’ 등 일제의 남산 개조를 통한 황국신민화 정책의 실체를 보여 주는 자료들이 대거 전시되었다. 특히 ‘노기신사 수조’는 남산 내에서 완형을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식민 유산으로 노기신사 터에 자리 잡은 남산원 측의 배려로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되었다.
한국현대사의 압축 공간
3부 ‘국민교육장 남산’에서는 1945년 8.15 광복 이후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서 남산을 이야기한다. 해방 이후, 다시 남산은 냉전으로 분단된 나라의 상징 공간이 되어 좌익 집회가 주로 열리는 이념의 무대가 되기도 했고, 조선신궁 자리에는 건국 대통령의 초대형 동상이 세워지고, 국회의사당 부지 조성공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거대 도시가 된 서울 속의 남산은 콘크리트 바다 가운데 푸른 섬이 되어갔다. 또한 남산은 국민교육장이 되어 반공을 주창하는 자유센터가 장충동에 들어서고, ‘애국애족’의 동상들이 산 중턱에 무수하게 세워졌다.
또 산 아래에는 국가와 정권 수호의 방패 역할을 했던 중앙정보부와 수도방위사령부가 자리를 잡았다. 특히 41개동 건물의 무소불위 ‘중정’은 ‘남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정부의 경제발전 드라이브 속에서 남산은 공원용지 해제를 통해 급속히 개발되었다. 거대한 외인아파트와 각급 호텔이 다수 들어섰고 도로와 터널이 남산을 관통했다. 야외음악당, 도서관, 국립극장 등 시민위락 시설과 함께 남산 케이블카와 전파송신탑(서울타워)도 이때 세워지게 된다. 지나친 개발 정책은 향후 남산에 대한 보호 의식을 점차 싹트게 하였다.
권위주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4부는 1990년대 탈권위주의 시대에 들면서 남산이 ‘자연’, ‘사람’, ‘역사’의 공간으로, ‘우리들의 남산’이 되는 과정과 함께 남산의 아름다운 모습과 남산 관련 최근의 주요 이슈들을 소개했다.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은 권위주의 청산과 자연환경문제가 제기되면서 시작되었다. 안기부와 수도방위사령부가 남산에서 떠나갔고, 경관을 훼손했던 외인아파트가 폭파·철거되었다.
최근에는 자연환경 복원과 시민 휴식 공간 조성을 위한 시설 철거 사업이 오히려 역사의 기억을 지운다는 문제제기가 있기도 하다. 안기부 터를 인권기념관 등 평화의 공원으로 조성하자는 목소리 같은 남산을 되살리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오늘도 활발하다.
전시 마지막 부분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남산을 시민들의 눈을 통해 보는 코너로 마련되었다. ‘추억 속의 남산’이라는 제목으로 시민 공모를 통해 모은 사진 중 30점을 전시했다. 남산의 다양한 역사와 기억은, 남산이 ‘산’이라는 자연에만 그치지 않고 문화,그리고 사회 구성원과 소통하며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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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외지인, 이주와 정주의 수상한 혼탕
‘수상한 목욕탕’, 2015.8.1~10.11
1930년대 디자인을 그대로 복원한 가로등과 곳곳의 오래된 집들을 지나며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이곳, 일본식 가옥과 이성당 빵으로 유명한 군산 영화동에 버려진 목욕탕을 개조한 미술관이 들어섰다. 오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원도심, 그곳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들, 그리고 새로이 이사해 둥지를 튼 미술관이 쭈뼛하게 만나게 되었다.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 첫 번째 기획전 ‘수상한 목욕탕’은 지역에 문을 두드리고자 이당미술관(관장 정태균)이 마련한 전시다. 이에 레지던시 참여 작가 6인과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초대 작가 5인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 그 첫 번째 걸음
군산은 여러 시대의 물결이 퇴적된 곳으로 다양한 층위의 맥락을 지닌다. 고려 및 조선 시대에는 세곡을 운반하는 항구이자 수군의 요지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제 수탈의 주요 현장이 되었다. 군산을 중심 무대로 하는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를 통해 이 시기 사회상을 엿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전쟁 이후에는 군사적 요충지인 이곳에 미군이 주둔하여 미군을 위한 위락 시설인 ‘아메리카 타운’이 조성되는 등 지역사 자체가 전쟁과 점령으로 점철된 한국사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느 개항장이나 비슷한 모습을 가지기도 하겠지만 영화동을 포함한 군산 원도심 지역은 근대의 흔적을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지역사 발굴과 관광 코스 조성을 포함하는 지역 개발, 또는 도시재생의 정책적 요구와 맞물려 ‘시간여행거리’로 지정되기도 하였다.이렇게 드러나는 지역사는 상대적 미시사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여전히 관광 코스와 더불어 팻말에 새겨진 역사는 한 곳에서 온전히 긴 생을 살아낸 몇몇 토박이 어르신들 외에 대다수 방문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지역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의 층위를 다각도로 반영하지도 못하게 마련이다. 아마도 그 간극을 비출 수 있는 것이 다양한 시선과 표현을 존중하는 문화와 예술인지도 모른다.
이에 이당미술관은 영화동 일대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 넣고자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를 연례 기획으로 하여 지역을 경험하는 다양한 시선과 걸음을 해마다 새로이 조명하고자 한다. 그 첫걸음으로 레지던시 작가와 지역 작가들이 함께 하는 전시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첫 만남은 언제나 쭈뼛하기 마련이다. 미술관 역시 이곳에 올해 막 둥지를 튼 시점이었고 짧게는 고작 한달, 길게는 세 달 동안 머문 레지던시 작가들도 지역민과의 친화성 여부를 떠나 외지인 신분으로 잠시 머무는 방문자의 입장일 수밖에는 없었다. 이렇듯 전시 ‘수상한 목욕탕’은 지역과 외지인, 이주와 정주의 틈새 사이에서 만들어진 수상한 만남인 것이다.
수상한 목욕탕
참여 작가 강제욱이 담은 군산의 기록에서는 지금처럼 개조되기 이전에 폐허와도 같은 영화장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2008년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비둘기들의 휴식처가 되기 전까지 동네 목욕탕 ‘영화장’은 40년 넘게 영화동 주민들의 몸과 마음을 씻겨주었다. 그 목욕탕 위의 2, 3층 객실에서는 각지로부터 온 손님들 역시 여독을 풀었음직하다. 토박이 어르신들, 각기 다른 이유로 기류하는 사람들, 지인을 찾아온 방문객 또는 새로움을 찾는 여행자 등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만남이 겹겹이 쌓인 곳이 곧 지역이자 장소, ‘곳’이라면, ‘영화장’은 이렇게 무수한 개개인의 역사와 이야기가 교차하고 만나는 곳이었다.
전시 기간 중 연계 상영되는 영상창작단 큐오브이의 ‘영화동 쇼트다큐멘터리’는 이렇게 지자체의 지역사 스토리텔링에 채 담기지 못한 지역 주민 개개인의 생생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주민의 구술사는 곳곳에 전시된 이곳 영화장의 원 설계도와 함께 작가나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이 전시를 관람하며 보다 다층적인 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 재료가 되어 전시장에 투영되었다. 이 짧은 다큐멘터리가 영화동의 생생한 삶과 역사를 풀어냈다면 참여 작가들의 작업은 추상적인 풍경에서부터 군산을 산보하며 얻은 풍경, 사물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자연을 담는 작업까지, 영화동을 방문한 가지각색의 시선과 이야기를 드러낸다.
한국화가 정태균은 모필을 사용해 소박한 필치로 영화동의 정겨운 모습을 그려냈고, 정경화는 모필 대신 죽 필을 직접 만들어 금박이 있는 종이 본연의 성질을 매개로 ‘별이 빛나는 밤’을 화폭에 담았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밤의 빛나는 별들은 한없이 그림 앞에 멈추어 있게 한다. 실재와 가상 사이에서 우리의 시각과 인식에 의문을 제기해왔던 박종호 작가는 영화 동어느 식당 안에 걸려있던 액자 속의 군산 풍경을 캔버스 안으로 들이고, 회화작가 주랑은 일련의 이미지, 여행 루트와도 같은 그림을 통해 낡음과 새것 사이 영화동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권혁상 작가의 그림에는 고향을 버리지 않고 모정이 뛰어난 참새의 모습에 자신의 삶을 투영한 그의 따뜻한 마음과 애정이 담겨 있다.
조각을 전공한 강제욱과 진나래는 미술관 안팎에서 찾을 수 있는 사물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였다. 다큐멘터리 사진과 설치를 중심으로 사회 참여적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강제욱 작가는 최근작 ‘사물들의 우주Thinguniverse’를 통해 사물을 소유자의 모습을 투영하는 거울로 드러낸다. 주변의 사물이 형성하는 관계와 대화가 그의 손을 통해 미술관의 전면 유리에 드로잉되었다. 진나래는 미술관에서 수거한 의자들을 배열하여 사회적 관계의 기표로서 의자를 다루었는데, 이는 그가 ‘사회 조각social sculpture’이라고 부르는 작업 형식의 하나다.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밀도가 높았다. 유기종 작가는 사진과 설치 작업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삶의 여정을 기록하고자하였고, 이주원 작가는 어딘가를 걷는 동작을 낮은 시점으로 화면에 담아 작가가 바라본 주관적인 사회 정체성을 드러낸다. 회화와 설치를 주요 매체로 하는 고나영은 영화동의 특정 순간을 피라미드 안에 담았으며 고보연 작가는 버려지는 폐지와 자연물을 미술 작품의 재료로 하여 폐지 등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의 작업은 대지가 되고 그 대지 위에 새싹을 피우는 작품은 많은 삶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인간의 형상을 담았다.
길이 화하는 동네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업들 외에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 오프닝에 마련된 영화동 맛집 뷔페 잔칫상, ‘영화장 셀렉션’이다. ‘길이 화하는 동네’라는 뜻을 가진 영화동에는 이렇게 퍼주고도 남는 것이 있는지 걱정하게 될 정도로 인심 후한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들의 대표 메뉴를 모은 지역 맛집 뷔페가 참여 작가와 지역 상인들의 따뜻한 성원과 노력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레지던시 작가들과 미술관, 그리고 지역의 사람들이 첫인사를 나누는 데에 본 전시의 목적이 있다고 볼 때 자연스레 지역 주민들과 미술관을 서로 소개하고 이을 수 있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했다. 일종의 소셜, 또는 네트워크 다이닝이 되었던 셈이다. 첫걸음인지라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와 같은 주민들의 인심과 작가들의 도움 덕에 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지역’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수많은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행정 구역상 나누어지는 땅일 수도 있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일 수도, 또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어느 불확실한 경계를 가지는 지점일 수도 있다. ‘수상한 목욕탕’은 지역을 곧 어느 지점과 그 지점 언저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보고 이제 막 선착장에 내려 지역에 둥지를 튼 이당미술관, 유목민과도 같은 레지던시 작가들과 군산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작가들, 그리고 영화동 주민들의 아직은 서먹한 만남을 주선하여 그 수상한 혼탕 속에서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의 후속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개어귀에서처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물이 만나는 곳에는 새로운 흐름이 일어난다. 군산 영화동에 가득한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앞으로 보다 탄탄한 준비와 함께 엮여진다면 이는 해를 거듭하며 더욱 값지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및 미술관과 더불어 예술과 문화의 주체인 작가들 역시 상생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군산의 지역민, 그리고 군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특성이 만나 영화동에 어떤 새로운 흐름이 일어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문화 예술계 언저리에서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20대 이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서투른 종합 곡예를 해오고 있으나 결론적으로 반드시 뜻대로만 구르지는 못했다. 작업에 있어서는 주로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주체와 객체, 존재와 (비)존재, 이해와 오해 사이를 흐리는 일에 관심을 두어왔으며 2012년부터는 아트콜렉티브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당미술관의 레지던시 작가로 ‘수상한 목욕탕’의 기획 협력자로도 참여했다. www.jinnarae.com,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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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의 도시를 위한 고민
더 나은 도시디자인 포럼 2015
지난 2013년 6월 쇠퇴하는 도시의 자생적 성장 기반을 확충하고 경쟁력을 제고하며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기위해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우리나라도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법이 제정된 지 2년이 넘은 지금, 한국의 도시는 다음 세대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을까?
지난 10월 2일, 서울경제신문과 한국FM학회 더 나은 도시디자인 위원회(회장 김용수)가 주최하고 더 나은 도시디자인 연구소, 중앙대학교 예술문화연구원(원장 김영호), 한국공공디자인학회(회장 서혜옥), 수목건축(대표 서용식)이주관하는 ‘더 나은 도시디자인 포럼 2015’가 개최되었다. 지난 2014년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미래’를 주제로 처음 개최된 ‘더 나은 도시디자인 포럼’은 우리의 도시를 인간 중심의 도시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고민하는포럼이다. 올해에는 ‘From Europe-역사·문화에 기반한 도시재생의 교훈’을 주제로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유럽 도시재생의 교훈
포럼은 총 2부로 나뉘어 1부에서는 유럽의 도시재생역사와 사례를 살펴보고 2부에서는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도시재생 정책과 한국형 도시재생의 방향에 대해 고찰했다.1부 첫 발표를 맡은 폰타나 조경설계사무소Fontana Landschaftsarchitekten의 마시모 폰타나Massimo Fontana 대표는 ‘도시의 문맥에서 문맥까지 From Context to Context’라는 주제로 최근 바젤, 취리히, 루체른 등지에서 작업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사례를 소개했다. 폰타나 조경설계사무소는 스위스 바젤에 기반을 두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유형의 공간을 설계하는 설계사무소다. 그는 도시설계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세가지 요소로 환경, 시간, 인간을 꼽았다. 즉, 대상지의 생태, 역사, 문화를 분석해 도시적 맥락과 연속성 있는 설계를 해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설계자는 시간을 들여 장소의 혼을 존중하는 설계를 해야 한다. 하지만 대상지와 관계된 요소를 너무 많이 남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민현식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명예교수, 건축사사무소 기오헌 대표)는 유럽의 도시설계 역사를 되짚어봤다. 그는 과거 르 코르뷔지에를 비롯한 건축가들이 ‘창조적 파괴’에 골몰하고 획기적인 것에만 가치를 두었다면 최근에는 기억의 축적 위에 새롭게 합의된 아이덴티티를 더하는 도시재생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세운상가 활성화 프로젝트를 사례로 들며 1960년대 폭력적인 방식으로 지어졌던 세운상가 일대의 역사를 인정하면서도 주변의 도시 조직과 연계해 상처를 치유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도시재생
고주석 교수(바허닝엔 대학교 명예교수, 오이코스 디자인 대표)는 유럽의 어바니즘이 한국의 경관에 미친 영향과 한국형도시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는 도시의 일부이기 때문에 마치 항공사진을 찍듯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도시를 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브라질리아를 방문했던 경험을 예로 들며 “브라질리아를 사진으로 보았을 땐 거대하고 시원시원한 도시의 풍경이 멋있어 보였는데 실제로 잔디만 깔린 뜨겁고 광활한 대로를 걸어 건물 사이를 이동하려니 무척 고통스러웠다. 우리의 도시를 ‘건축 박람회장’이 아니라 ‘집’이라고 생각하고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과 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구자훈 교수(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는 한국의 도시재생 정책의 현황을 소개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특히 최대 35개소를 선정해 지원할 예정인 2016년 도시재생 일반지역 사업의 유형 중 최대 10개소에 100억 원 이내로 국비를 지원할 예정인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사업에 주목했다. 그 대상지는 중심 상가, 공공 청사등의 기능이 밀집했던 원도심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상권 활성화, 집객 시설 유치, 교통 체계 개편 등의 도시계획적 처방이 필요한 곳이다. 그는 사업 효과를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며 전문성 있는 민간 조직을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도시가 가진 역사성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개발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오랜 시간 천천히 쌓아 올린 유럽의 경험을 우리나라의 도시에 바로 대입할 수 있을까? 발표가 끝난 후 토론 시간에 한 참가자가 유럽의 경험이 한국형 도시재생을 논의하는 데 유의미한지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구자훈 교수는 “한국의 도시재생사업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도시정책 사업을 통해 한국형 도시재생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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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을 잃은, 그대에게’ 최우수작 선정
제7회 대한민국 도시숲 설계공모대전
지난 10월 1일 산림청(청장 신원섭)은 ‘제7회 대한민국 도시숲 설계공모대전’ 수상작 11편을 선정ㆍ발표했다. 도시숲 설계공모는 ‘주변과 조화되고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는 자연 생태적 역할을 수행하는 도시숲 표현’을 주제로, 산림·조경·건축·도시계획·디자인 등 관련 대학(원)생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 설계 대상지는 산림청에서 선정한 도시숲 설계 대상지 중 선택해 정할 수 있다.
올해 최우수작은 김수정·신혜인(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과 윤다운(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이 함께 출품한 ‘곶자왈을 잃은, 그대에게’로 정부 포상과 함께 상금 500만 원이 수여된다. 최우수작은 쓰레기 매립 등으로 훼손된 곶자왈 지대를 주변 식생의 단계별 천이를 통해 복원한 작품으로, 국민 건강 증진 등 ‘도시 숲과 건강’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우수작은 충남대학교 건축학과의 ‘이.끌림’, 가천대학교 조경학과의 ‘송우리에 숲을 태그하다’가 수상했으며 그 외 장려상 3점, 입선 5점이 각각 선정됐다. 이용석 과장(산림청 도시숲경관과)은 “기존 공원과는 차별화된 참신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도시숲 조성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며 “참가자들의 높은 관심이 도시숲과 산림 정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곶자왈을 잃은, 그대에게 최우수작의 대상지는 용암이 만든 제주도의 대표적 자연 경관인 곶자왈 지대다. 곶자왈이란, 곶(숲)과 자왈(암석과 자갈)이 합쳐진 암석과 가시덤불이 뒤엉킨 숲을 말한다.
이곳은 과거 제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기도 하였으며 제주의 허파, 생태계의 보고라고 불린다. 또한 높은 지하수 함량과 보온·보습 효과로 남방 한계 식물과 북방 한계 식물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가 조명되기 전에는 골프장이나 리조트 건설 등으로 파괴되는 일이 많았다.
이번 대상지 역시 쓰레기 매립, 초지를 위한 불 놓기 사업, 인위적인 해송 식재 등 사람의 손길로 인해 건강하지 못한 채로 남겨져 있다.
수상작은 곶자왈을 제주민들에게 다시 돌려주되, 지금의 곶자왈과는 다른 곶자왈을 제안한다. 기존의 곶자왈이 대부분 극상림 단계에 있다면, 수상작이 제안하는 곶자왈은 극상림으로 변화해 가는 천이 과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헥타르 안에서 곶자왈을 체험하고, 제주의 다른 파괴된 곶자왈 복원을 위한 시험림의 성격도 부여한다.
훼손된 식생 본래의 건강을 되찾아 주기 위해 첫째, 사람의 간섭에 의해 교란된 식생을 제거한다. 다음은 같은 해발의 선흘곶자왈 식생을 목표종으로 도입하고, 자연 스스로 천이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기반을 다져줌으로써 사람들은 공간별로 각기 다른 천이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또한 대상지 현황에 따라 3가지 종류의 곶자왈 공간을 만든다. 먼저 자갈과 암석이 드러나 요철 지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는 암석원을 계획했다. 이곳은 천이의 초기 형태를 띠는 곳으로서 보호 공간이기도 하며, 데크 길을 이용해 천이를 관찰할 수 있다. 또한 다져진 지반에 우수가 집수될 수 있도록 계획한 아아aa 못이 있다. 이곳도 암석원과 같은 용도의 데크 길이 사용되며 비보호시에는 억새 속을 걷는 동선으로도 사용된다. 그리고 덤불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지형인 함몰지가 드러나도록 했다. 햇빛에 노출되어 융기된 곳에는건조에 강한 식물이, 습도가 높은 아랫부분은 이끼류들이 살아 곶자왈의 다양한 생물종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대상지에는 기존의 근린공원과 연결되는 순환형 동선을 계획했으며, 보조 입구와 연결되는 보조 동선, 학술용으로 사용되는 세부 동선이 있다. 이렇게 열리고 닫히는 공간을 통해 오름 등 다양한 경관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이 길은 1.5~2.5m의 좁은 폭으로 만들어져 천이를 통해 자연이 만들어내는 식생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천이 중인 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구름다리, 팻말, 데크 길은 곶자왈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곶자왈을 잃은, 그대에게’는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속에서 힐링하며 곶자왈이 뿜어내는 가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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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10년의 의미와 과제
서울숲이 10주년을 맞았다. 2005년 6월 18일, 뉴욕의 센트럴파크 혹은 런던의 하이드파크와 같이 서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도시숲’을 꿈꾸며 서울숲이 개장했다. 공원녹지를 통해 도시 공간 재편을 꾀했던 민선 3기 이명박 서울시장은 ‘생활권 녹지 100만평 늘리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주거·업무 지역으로 개발할 경우 4조원에 달하는 개발 이익이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관광 타운 등으로 구상했던 서울숲 부지를 공원화했다. 서울숲 뿐만 아니라 서울광장, 청계천 복원 등 같은 시기 조성된 공원녹지는 환경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도시 마케팅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당시 서울숲은 앞으로 (용산 미군 기지를 제외하고) 확보하기 어려운 대규모 녹지를 서울 동북부 지역에 마련함으로써 균형 발전의 토대를 만들고, 도시의 생태적 네트워크 구축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특히 공원을 만들고 관리하는 측면에서 볼 때, 서울그린트러스트와 같은 민간단체를 통해 시민이 직접 조성부터 관리까지 참여한다는 민관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여러모로 서울숲은 새로운 공원 문화의 테스트베드이자 다른 공원들의 벤치마킹 사례가되어왔다.
2015년 10월 16일 서울시와 서울그린트러스트(이사장 양병이)는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에서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고 향후 10년을 고민하기 위한 ‘서울숲 10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현재 서울숲을 관할하고 있는 서울시 동부공원녹지사업소의 이춘희 소장은 ‘서울숲의 조성과 운영이야기’를 주제로 첫 번째 주제발표를 했다. 그간 서울숲의 변화를 살펴보면, 수목은 22종 2만주가 늘었고(2015년 현재 109종 64만주), 초화류는 99종 3만본(2015년 현재 183종 49만본), 온실 식물은 23종 3천본(2015년 현재 254종 8천본)이 늘어나는 등 식물의 다양성이 증가했다. 반면 서울숲 개장 당시 서울시장의 요청으로 꽃사슴 104수와 고라니 7수가 사육되었는데 현재는 각각 59수와 5수로 줄어들었다. 과도한 수의 꽃사슴을 방사하면서 생태숲이 파괴된 결과 조정된 것이다. 그밖에 나비정원이 신설되었고, 어린이 시설이 확충되는 등 시설도 보완되었다. 서울숲 주변으로는 2011년 ‘갤러리아 포레’가 완공되었고 2012년에는 분당선 ‘서울숲역’ 개통, 성수동 뒷골목 상권 활성화 등의 변화가 있었다. 시민참여 현황을 보면 공원안내 30여 명, 청소년 자원봉사 연간 3천 여명, 대학생ㆍ기업자원봉사 8천4백여 명 등이 활동하고 있으며, 27개의 직영 프로그램과 30개의 위탁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서울숲의 미래를 위한 설계자의 제안
서울숲의 설계자인 안계동 대표(동심원 조경)는 ‘도시공원의 새로운 모델’을 지향했던 서울숲의 변화 10년을 되짚었다. 2003년 조경계의 큰 잔치였던 ‘뚝섬 숲(안) 조성 설계공모’(설계공모가 마감된 2003년 4월 4일 ‘뚝섬숲’의 명칭이 ‘서울숲’으로 공식 결정되었다)에서 ‘진화, 네트워크, 재생’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 동심원의 ‘서울숲’이 당선되었다.
안계동 대표는 시공과 개원 이후 아쉬운 부분으로 숲의 기반인 토양 개량 미흡, 생태숲의 동물 방사, 이전 예정 시설의 존치 등을 꼽았다. 그 가운데 설계 당시 승마장, 정수장, 삼표 레미콘 공장 등의 이전을 전제로 문화예술 및 생태 프로그램을 계획하였으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정수장(뚝도아리수정수센터)은 오히려 시설을 고도화 했으며, 삼표레미콘 공장은 소음과 분진 때문에 지역 주민과 갈등 중이지만 언론 매체를 통해 이전 의사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승마장 부지는 본래 사설 승마훈련원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경영 악화로 작년 말 폐쇄된 상태다.
그간 승마가 귀족 스포츠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더불어 악취나 먼지, 그리고 인접한 학교의 학습권 침해를 이유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진 상태다. 현재 이 부지를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 체육정책과는 앞으로 공공 승마장을 운영할 계획으로 현재 주민 의견 수렴 및 기본설계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간 주민들이 제기한 승마장에 대한 불만 사항을 리모델링을 통해 개선해 지역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시설화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안 대표는 승마장 부지를 서울숲에서 직접관리하고, 당초 계획대로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을 도입하자는 제안을 했다. 정원이나 가드닝 스쿨을 넣기 좋은 위치라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정수장에 관해서는 이전 대신 서울숲과의 통합 운영을 제안했다.
10만 평 가까운 면적의 거대한 정수장은 현재 보안 시설로 두 겹의 철조망이 쳐져 서울숲과 격리되어 있다. 보안 구역을 조정해 견학 프로그램 등을 서울숲과 통합하고, 정수장의 전망대를 개방하면 서울숲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숲의 또 다른 문제는 공원 전면부 상업 용지와 주진입로 일대의 활용 계획에 관해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서울숲 진입로 양편 부지는 공원 조성 당시부터 개발되지 않고 비어 있던 땅으로 장벽 같은 가림막이 서 있어 공원 입구를 답답하게 만들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부지들의 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있는데, 대림산업은 주상복합단지 ‘서울숲 e편한세상(가칭)’을 내년 상반기 분양할 예정이며, 부영은 49층짜리 관광호텔 3동 개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1 개발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서울숲은 주상복합 아파트인 ‘갤러리아포레’와 현재 건설 중인 아파트‘트리마제’ 등을 포함해 40층 이상 고층 건물 최소 7개 이상에 둘러싸이게 된다. 이러한 개발은 서울숲과 인접한 점을 이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서울숲 운영자들과는 소통할 창구가 마련되지 않았다.
안 대표는 서울숲의 입구, 즉 대림산업과 부영의 토지사이의 도로를 공원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현재 도로로 지정되어 있는 이 토지는 서울 숲의 입장에서 보면 주 진입로인 셈인데 좁은 통로 외에는 막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토지를 성동구 관할에서 서울숲 관리 대상으로 변경해 공공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 토지 역시 최근 성동구(구청장 정원오)가 롯데면세점,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와 함께 사회공헌 프로젝트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 사업을 추진 중이다. 100여 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해 창조 공간으로 만든다는 구상인데 지난 8월 착공식을 거쳐 10월 말 완공 예정이다. 서울숲 안팎에서 공원에 영향을 미치는 부지의 활용 계획이 공원과 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안계동 대표의 바람은 공원 개장 후 10년이 지난 지금도각 부지의 관할 기관이나 부서가 다르거나 민간 소유의 토지인 상황으로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숲 주변의 상업화 또는 공적 활용은 유동 인구를 늘려 이 지역을 활성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주변 도시의 구조적 변화를 고려한 진화를 전략으로 삼는다는 서울숲의 설계의도가 온전히 구현되기는 어려운 셈이다.
시민참여의 새로운 패러다임
사실 그러한 통합적 계획에 국내 민관 파트너십의 선구적 모델인 서울숲사랑모임이 참여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적극적인 시민 참여를 유도할 수도 있다. 서울숲 운영을 위해 서울그린트러스트의 파견 부서 형태의 서울숲 운영팀이 서울숲사랑모임이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서울의 도시환경 개선 방안으로 상업개발 예정지였던 뚝섬을 도시숲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던 사단법인 생명의 숲국민운동이 서울시와 ‘서울그린트러스트’ 협약을 체결하며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서울그린트러스트를 통해 2005년까지 약 50억 원의 기금 조성 및 나무심기에 70개의 기업과 5,000명의 시민이 참여했으며, 지난 10년 동안 서울숲사랑모임은 각종 공익 캠페인과 생태·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이러한 서울숲사랑모임은 공원 운영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보니 그 참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숲사랑모임의 이민옥 국장은 서울숲 조성 초기에는 서울시와 파트너로 함께 운영하다가 어느 순간 갑을 관계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2009년부터는 공개경쟁에 의한 입찰을 통해 3년 단위 계약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으로, 이러한 상황은 서울숲사랑모임의 활동을 위축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장은 예전에는 손님 같던 시민들이 점점 주인의식을 가져가고 있다며, 작년부터는 ‘공원의 주인은 바로 우리다. 우리가 공원과 함께 커 가자. 공원을 함께 고민하자’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전한다. 서울숲사랑모임은 공원에서 생태 프로그램이 생소했던 2005년부터 유아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생태·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이제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은 지양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을 고민중이다. 더불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 공간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향후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어진 토론 시간, 이성환 서울숲관리사무소 초대 소장은 서울숲은 개원 당시 하루에 10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찾을 정도로 국민 공원으로 사랑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지방의 관광객들은 같은 해 10월 개장한 청계천과 서울숲을 코스로 묶어 방문하곤 했다고.
그런데 최근에는 이용자가 지역에 한정되었다며, 이용객이 줄어든 이유를 파악해 전 같은 인기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이근향 전 서울숲사랑모임 국장(중부공원녹지사업소 공원여가과장)은 공원이 조성된 지 10년이 되니 새로운 사회의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 재원이 필요한 곳이 많이 생기는데,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공원녹지 관련 행정력으로만은 역부족이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얼마 전 참석한 세계 공원 컨퍼런스에서 미국의 내무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아나운서나 의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토론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공원의 모습을 쇄신하기 위해서 단순히 예산을 늘려달라는 요청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원녹지 분야를 넘어서는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그래야 풍부한 재원이 마련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사회의 각 분야에서 그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공원의 경제적 가치를 계량화하는 다양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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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청춘은 안녕하십니까?
‘신림동 청춘-고시촌의 일상’, 2015.9.11.~11.8
공간마다 특유의 감수성이 있다면 서울특별시 신림 9동(현 대학동)의 감성은 묘한 애상감이라 할 수 있다. 머물기보다 떠남이 익숙한 장소. 어느 노랫말처럼 꼭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청춘과 같은 신림 9동 특유의 감수성에 주목한 전시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에게 적응하며 자신의 옷을 바꿔 입었던 신림동의모습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안녕, 신림동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기도 전에 신림동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소가 관람자보다 더 먼저 인사를 건넨다. 우뚝서 있는 표지판과 정류소 한쪽 벽면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전단지가 이목을 끌고,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벤치는 여느 정류장과 다를 바 없다. 정류소 이름은 ‘신림동고시촌입구’. 이 표지판 하나로 전시 공간은 자연스레 신림동 고시촌이 된다. 그러고 보니 ‘빈방 있습니다’, ‘투룸’, ‘잠방(잠만 자는 방) 있습니다’, ‘민법 진도별 모의고사’ 등 벽면에 붙은 전단지들도 전부 고시생들을 겨냥한 것이다. 고시촌은 어떤 모습일까.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은 ‘안녕, 신림동’하고 인사를 건네며 관람자를 맞이한다.
‘신림新林’이라는 지명은 관악산 아래 기슭에 위치한 탓에 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관악산이 입신을 용이하게 하는 ‘벼슬산’이라고도 불렸다는 설명을 보며 그 이름 덕에 고시생들이 신림동에 모이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곧 그런고루한 이유가 아니라 도심과 멀어 조용하고, 도시에 팽배한 환락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스스로 고립된 삶을 택한 청춘들은 대거 신림동으로 이주했고, 1990년부터 시작된 변화에 발맞춰 신림동은 고시생들의 생활에 적합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1인분씩 잘라 파는 과일가게가 생겼고, 여러 개월 치의 식권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뷔페식 식당, 일명 ‘고시식당’이 생겼다. 닭장과 같은 독서실에서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 학생들이 하도 보아 너절해진 책에 열정을 쏟아 붓고, 독서실을 나가면 유일한 오락거리인 인형 뽑기 기계에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고시생들이 가득하다. 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유난히 많은 것도 신림동 고시촌의 일면이다. “빨리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고 싶다”란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답답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청춘을 지새우는 이들의 초상이 곳곳에 묻어있다. 오랜 시간 힘든 공부에 찌든 이들의 바람은 오직 한가지다. 서둘러 이 신림동 고시촌과 안녕을 고하는 것. ‘안녕 신림동’이라는 다소 명랑한 인사와 달리, 전시장에 펼쳐진 신림 9동의 모습은 헤어짐을 종용하는 기운으로 가득했다.
항상 손을 들고 서있다
고시촌이 들어서기 전부터 신림동은 작별의 기운이 맴돌던 곳이었다. ‘고시촌 너머 신림동’ 섹션은 고시촌이 형성되기 전 신림동에 머물렀던 사람들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시대별로 조명해 보여준다. 이 섹션을 천천히 둘러보며 신림동이란 공간에서 느껴지는 묘한 애상감이 비단 고시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본래 의성 김 씨의 집성촌이었던 신림동은 1960년대 중후반 서울시가 진행한 도심 불량주택 철거 정책과 개발에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의 집결지가 되었다. 용산 해방촌, 청계천, 한강 주변, 이촌동, 공덕동 등 각지에서 떠나온 철거민들은 황량한 신림동 일대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러나 구호 대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주가 진행되었기에 당시 신림동은 주거와 교통 등 생활 환경이 매우 열악했고, 마을 곳곳에선 삶의 몸부림같은 생계형 범죄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철거민들이 신림동에 자리 잡기 위해 애쓰는 마음과 별개로 그들의 삶은 녹록치 못했다. 주민들이 서울시장에게 대책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낼만큼 어려웠던 그 때를 좋은 시절로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게 신림동은 철거민들에게 가난과 상실의 아픔이 떠오르는 장소가 되었고, 본의 아니게 서둘러 작별을 고하고 싶은 공간, 혹은 그곳에 머문 이들의 안녕을 바라며 항상 손을 들고 서 있어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마주보고 서있다
신림동은 어떤 형태로든 청춘의 이면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다. 전시 서문에 적힌 헤르만 헤세의 책 제목처럼 청춘은 아름답다. 그러나 미래를 준비해야 하기에 고달프고 불안한 시기이다. 좋을 때니 청춘을 즐기라는 말을 수시로 듣지만, 사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지금 그럴 땐가요”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온다.
이 경험을 어떤 청춘이든 해보았을 것이다. ‘신림동 청춘’을 보며 들었던 애상감은 청춘이라는 시기가 주는 동질감이 만들어낸 자기 연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신림동 청춘’ 전에는 열정적이고 건강한 청춘의 모습도 소개되고 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신림동으로 완전히 이전되며 거리를 장악했던 당시 대학생들의 일상을 담은 것이다. 대학이 자리를 잡아가던 1980년, 학생들은 당시 독재 정권에 반기를 들고 민주화를 노래하며 신군부 집권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 지식인으로서 분노를 참지 않고 발산했던 때, 서로의 연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순수함이 존재했던 그 때, 신림동은 뜨거운 아우성을끊임없이 토로하는 청춘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청춘들은 고함을 치는 것보다 침묵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고, 연대보다 혼자가 되는 것에 더욱 익숙해져 있다. 삼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지나 오포 세대(삼포에 더하여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세대)라고까지 일컬어지는 현대의 청춘들에게 이제 신림동 고시원은 고시생만의 거주지가 아닌 가난하고 몸둘 데 없는 1인 가구들의 안식처다. 2008년 로스쿨이 도입된 후, 2017년에는 사법고시를 폐지한다는 법안이통과되며 고시생들이 신림동 고시촌을 떠난 자리를 혈혈단신의 다양한 청춘들이 채우게 된 것이다. 신림동 뿐만이 아니다. 고시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건물중 정말 사법고시 준비생들이 머무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이제 곳곳의 고시원들은 거리로 내몰린 외로운 청춘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새로운 ‘신림동 청춘’들은 어디에나 있고, 신림동 고시촌의 일상은 다름 아닌 당신의 혹은 당신 다음 세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신림동 청춘’ 전에서 당신이 마주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전시는 11월 8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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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스파
치와와 건축 대학교 ‘불모지를 위한 워크숍’
2주 동안 ‘지역의 미래와 희망을 담은 임시 설치물’을 만들어야 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주 만에 해결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럽고 거창한 과제를 스페인의 건축설계사무소 PKMN은 지역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단순하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고장이 나서 오랫동안 쓰지 않고 버려져 있던 분수가 모두를 위한 야외 풀장으로 재탄생했다.
불모지를 위한 워크숍
매년 여름, 멕시코 치와와 건축 대학교Instituto Superior de Arquitectura de Chihuahua는 ‘불모지를 위한 워크숍Taller del Desierto’을 조직한다. 국내외 디자이너를 초청해 이 지역의 낙후된 공간을 활성화시키는 임시 설치물을 짧은 시간 동안 조성하는 워크숍이다. 올해 워크숍의 과제는 치와와 시 중심에 있는 우루에타 공원Parque Urueta에 작은 시설물을 짓는 것이었다. PKMN을 주축으로 멕시코 디자이너 듀오 메멜라Memela, 지역 건축가 후안 카스틸로Juan Castillo, 미구엘 헤레디아Miguel Heredia, 디자이너 미구엘 가르시아Miguel García가 함께 설계팀을 이뤄 워크숍을 진행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여러 대학과 치와와 시 노동자 밀집 구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임풀산도 카파시다데Impulsando Capacidades, 지역 구호 단체 에이 플러스 비엔A+bien 등의 지역 시민 단체가 파트너십을 맺어 조성될 수 있었다. 임풀산도 카파시다데와 에이 플러스 비엔을 통해 비계飛階 40개와 팔레트 수십여 개, 그늘막을 만들기 위한 자투리 천을 빌리고 페인트 몇 통을 조달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번 워크숍에는 설계부터 시공까지 공원 근처 주민들을 포함한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해 도움을 주었다.
공동의 희망을 위한 설계 과정
치와와 시 중심에 있는 우루에타 공원은 농구장, 축구장, 테니스장 등이 모여 있는 스포츠 구역과 큰 나무가 우거진 작은 숲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중앙 통로가 두 구역을 잇고 있다. 프로젝트의 대상지는 공원의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이 중앙 통로에 위치한다. 워크숍의 목적은 지역의 미래를 위한 공동의 희망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설계팀은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학교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잠깐 쉴 수 있는 그늘진 공간, 스포츠 구역 및 휴식 공간의 계단과 점수판, 새로 디자인한 공공 벤치 등 공원에 부족한 편의시설을 고안하고 일련의 스케치를 그려 보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 주민들은 이러한 새로운 편의 시설보다는 공원 중심부에 있지만 고장이 나서 몇 년간 사용하지 못하고 있던 기존의 수경 시설을 고쳐서 다시 활용하기를 원했다.
워크숍 설계팀은 지역 주민의 바람에 따라 중앙의 수경 시설을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실행하기로 결정하고 공원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희망과 기대를 어떻게 하면 건축적 제안으로 충족시킬 수 있을지 궁리했다. 확정된 아이디어를 설계로 완성시키는 데 1주일, 설계안을 토대로 주민 및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시공하는 데 1주일이 주어졌다. 워크숍은 대학과 시 정부 간의 소통 창구 역할을 담당했다. 시 의회는 워크숍에서 나온 시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원 중앙 수경 시설의 펌프를 고치고 분수에 다시 물을 채우는 데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어반 스파
어반 스파Urban Spa는 레크리에이션의 용도로 물을 활용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목표로 삼은 임시 편의 시설이다. 설계팀은 나무 팔레트, 비계, 자투리 천 등의 재료를 재활용해서 최소의 비용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나무 팔레트를 이용하여 분수 시설을 야외 목욕시설로 탈바꿈시켰으며 그 외에 계단, 선 배드, 작은 화단, 경사로 등의 부속 시설물도 만들었다. 비계 유닛은 나무 팔레트와 천막을 지지하는 기초 구조물로 이용되었고 휴식 공간과 작은 전망대를 제공한다. 임시 풀장으로 이용되는 분수는 주변의 큰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로 인해서 주변지역보다 시원한 미기후를 조성해 주변 유동 인구를 풀장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어반 스파는 이전부터 이 구역에서 주민들을 위해 진행되고 있던 줌바zumba 및 요가 수업의 장소로도 이용되며 우루에타 공원을 활성화시킨다.
어반 스파는 임시 가변 설치물로 곧 철거될 예정이지만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설계팀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힘을 모으고 아이디어를 짜냈던 경험은 지역을 위한 새로운 희망을 움틔울 것이다. ‘불모지를 위한 워크숍’에 참여한 지역 시민 단체 임풀산도 카파시다데의 감독 가브리엘라 데라 크루즈 아르멘다리즈Gabriela de la Cruz Armendáriz는 “지역 주민들의 우려와 고민을 존중하고 공감의 디자인을 제안한 설계팀과 뜨거운 태양 아래 작업했던 학생 및 주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앞으로 우리도 공공 공간을 개선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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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시딩’ 플라자 파빌리온
‘이스라엘의 도시 그늘’ 전, 홀론 디자인 박물관
이스라엘의 국립 디자인 박물관인 홀론 디자인 박물관Design Museum Holon의 ‘클라우드 시딩Cloud Seeding’플라자 파빌리온은 디자인이 공공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공공의 경험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클라우드 시딩’은 2015년 7월 4일부터 10월 31일까지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스라엘의 도시 그늘Urban Shade in Israel’ 전시의 일부다. 한여름, 이스라엘 도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공 공간에 그늘이 없다는 점이다. 열섬 현상 때문에 점점 뜨거워지는 도시의 더위를 거리, 광장, 혹은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에서도 피할 수 없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인 마틴 바일Martin Weyl은 적절한 기술을 활용해 공공 공간에 그늘을 만들어 좀더 나은 도시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최근의 트렌드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계획가,생태학자, 건축가, 조경가, 경제학자 등에게 도시 내 그늘을 만들 것을 촉구하는 선언과 다름없다.
‘클라우드 시딩’은 태양과 그늘 사이의 경계를 창조한다. 이 경계는 역동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파편화되어 있다. 이러한 경계는 메시 생지mesh fabric 천장 위에서 움직이는 수천 개의 가벼운 공 혹은 ‘씨앗들’이 만들어 낸다. 이 ‘씨앗들’은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들어졌다. 천장의 표면에 놓인 3만 개의 공들은 바람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인다. 이러한 머리 위의 움직임은 파빌리온의 각기 다른 영역에서 공공 이벤트가 일어나도록 유도한다. 문화적이고 레저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는 날씨의 힘과 연계되는 것이다.
박물관 플라자 주변에 부는 바람과 같은 미기후는 움직이는 천장이라는 물질적인 형태를 부여받고, 이는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매혹한다. 매일 매일 산들바람이 지중해로 부터 불어와 오후에는 네게브 사막Negev Desert으로 불어 가면서 대중들에게 핵심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 구조물은 박물관의 어반 플라자에 위치하며, 박물관과 시가 주최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위해 이용된다. 대중들은 공연에 초대받고, 옥외 댄스 강습에 참여하고, 무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혹은 그늘을 단순한 라운지로 이용하기도 한다. 해변 의자는 방문객들이 머리 위로 움직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 다목적 플라자 파빌리온은 박물관 방문객과 일반적인 대중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공 공간이다.
‘클라우드 시딩’은 온실과 같은 이스라엘의 농업 경관을 유비쿼터스 건물 유형으로 변환시킨다. 이때 온실이라는 구조적인 틀은 (벽과 지붕 패널 없이) 단순하게 유지된다. 농업 용도의 온실은 문화, 레저 그리고 공공 이벤트를 위한 플라자 파빌리온으로 재-전용되는 것이다.
‘클라우드 시딩’의 디자인은 모두MODU가 지오텍투라Geotectura와 함께 했다. 뉴욕에 기반을 두고 건축 실무를 하고 있는 모두는 사람을 환경과 연결해주는 스마트 디자인을 추구하며 대개 여러 분야와 함께 협업하며 작업한다. 건축가인 코리 박사Dr. Cory가 설립한 지오텍투라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지속가능성에 특화된 실무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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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시상식
‘솜씨 창고’와 ‘징게맹갱외에밋들’ 국토부장관상 수상
‘근대문화유산의 공간에 대한 조경적 접근’이란 주제로 개최된 제1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이하 ‘환경조경대전’)의 시상식이 지난 11월 23일 푸르지오 밸리에서 열렸다. ‘작은 규모의 대상지, 큰 생각’ 부문과 ‘대규모 대상지, 미시적 접근’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된 이번 공모전에는 총 63점의 작품이 접수되었고, 그중 28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김성균 회장(한국조경학회)은 인사말을 통해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조경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번 환경조경대전의 주제에 대한 의의를 밝혔다. 제1회 환경조경대전부터 10여 년 넘게 공모전 개최를 지원하고 있는 늘푸른의 노연상 이사장은 “수상작들을 통해 공간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조경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었다”며 참신한 아이디어를 펼친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올해부터 환경조경대전을 공동 주최하게 된 본지의 박명권 발행인은 응원과 격려의 인사를 전한 후인상 깊었던 수상 소감을 소개했는데, “15년 후,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심사위원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재기발랄한 소감에 장내에 웃음꽃이 번지기도 했다.10명의 심사위원을 대표해 심사 과정과 총평을 소개한 최원만 심사위원장(신화컨설팅 대표)은 “장소성의 가치와 선택한 대상지의 장소적 기억을 조경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풀었는가에 심사의 주안점을 두었다”고 밝힌 후, “디자인 위주로 대상지에 접근한 응모작들이 상대적으로 소외 받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며 디자인 부문이 별도로 기획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내비쳤다.
본격적인 시상식에서 영예의 국토교통부장관상은 송아라·홍진아(가천대학교 조경학과)의 ‘솜씨창고, 틈에서 피어나다’와 이수현·박래림·김의솔(순천대학교 조경학과)의 ‘징게맹갱외에밋들’이 차지했고, 한국조경학회장상 2팀, 늘푸른재단상 4팀, 환경과조경상 6팀, 입선 14팀 등 총 28개 팀이 수상하였다(수상작은 이번호 12~45쪽에 수록).
시상식 직후 전시장의 테이프 커팅식과 함께 전시회가 개막되었고, 국토부장관상과 한국조경학회장상을 받은 ‘솜씨 창고, 틈에서 피어나다’, ‘징게맹갱외에밋들’, ‘Park Greaves’, ‘주인 없는 대지 알뜨르’의 작품 설명이 이어졌다. 이번 수상작 전시회는 ‘제1회 아시아태평양 환경조경포럼’과 동일한 장소에서 개최하자는 한국조경학회의 의견에 따라, 푸르지오 밸리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