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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산역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을 잇는 공원길 조성 계획 용산4구역 MP 박인수, 조경가 이진형 인터뷰
    2009년 용산참사 이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던 용산4구역 사업 추진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2016년 4월 6일 용산4구역 정비계획 변경(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2009년 1월 철거세입자 5명과 경찰 1명이 숨지고 2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용산참사 이후 8년여를 정체했던 용산4구역(용산구 한강로3가 63-70번지 일대 국제빌딩 주변, 5만3,066m2) 일대에 도시공원과 주거ㆍ상업ㆍ문화 복합 지구가 조성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정비계획 변경(안)은 용산4구역을 넘어 이 일대 도시 공간과 오픈스페이스의 통합적 계획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2006년 용산의 국제빌딩 주변이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후 용산4구역은 시공자(삼성물산, 대림산업, 포스코건설)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2009년 용산참사가 발생(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이 이 대상지에 있다)한 뒤 재개발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사업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1년 8월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공사도급계약 해지), 이후 사업을 맡겠다는 시공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2천억 원에 달하는 이자비를 조합(국제빌딩 주변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이 떠안게 되었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이자비 부담에 파산 위기에 몰렸던 용산4구역 조원들은 2014년 8월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사업정상화를 요청했다. 이에 서울시는 도시행정 전문가인 김용호 정비사업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용산구, 조합,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했다. 작년 6월에는 승효상 총괄건축가의 지휘 하에 공공건축가인 박인수(파크이즈건축 대표)와 김창균(유타건축 대표)을 MP로 투입해 기존 계획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기본구상안을 만들었다. 서울시는 용산4구역 내 공원(가칭 ‘용산파크웨이’, 1만7,615m2)을 미디어광장(8,740m2, 내년 조성 예정), 용산프롬나드(1만4,104m2) 등 주변 공원 및 획지와 연계하는 광역적 계획을 통해 이 일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 구상안이 실현될 경우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을 합친 것(3만2천m2)보다 약 1.3배 큰 규모(약 4만m2)다. 용산4구역은 오는 10월 착공해 2020년 6월준공이 목표다. 본지는 용산4구역의 MP인 박인수 공공건축가와 공원계획에 참여한 조경설계 서안(주)의 이진형 부소장을 만나 그간의 과정과 공원의 콘셉트, 이번 계획의 의의에 대해 들어보았다. 공공 공간과 사유지의 관계 서울시는 뉴욕의 배터리 파크나 베를린의 포츠다머 플라츠와 같이 대규모 공원과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복합 지구가 기본 콘셉트이며, 용산4구역 구상안이 기존계획의 한계였던 공공성을 확보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존의 정비 계획이나 일반적인 재개발 방식과 비교해어떤 방식으로 공공성을 확보한 것인가? 박인수(이하 박): 용산공원(현 용산미군기지)과 중대부속 용산병원(근대건축 문화유산) 사이에 위치한 사업 부지(연면적 36만 1,298.09m2)에는 주상복합 아파트와 업무 시설 등이 들어서고, 기부채납으로 만들어지는 도시공원(용산파크웨이)이 조성될 계획이다. 기존 계획안대로라면 대형 민간건물이 공원에 바로 면하게 되어 마치 공원을 앞마당처럼 사유화 할 우려가 컸다. 따라서 건물 전면부의 방향을 틀거나 건물의 위치를 변경해 공공성이 침해될 가능성을 차단하고, 공원에 면한 주상복합 아파트의 저층부에는 로드숍과 같은 상업 시설이 들어오도록 해 공공 공간으로서 공원과 가로가 활성화되도록 계획했다. 기존 계획안은 (설계의) 좋고 나쁨을 떠나 공공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부지 경계를 중심으로 내부지향적인 계획은 그간 많은 개발에서 사용되는 방식이었으나, 이번에는 외부 공간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도록 했다. 특히 조합원 중 지분이 큰 교회와 사무소 등과 협의가 잘 이뤄진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는 대상지 내 주상복합 아파트 1층 전체 면적의 21%가 넘는 공간을 공공 보행 통로로 설치해 단지 내부를 전면 개방하는 새로운 모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박: 주상복합 아파트의 1~2층에는 상가, 그리고 3층에는 아파트의 부대복리 시설이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계획을 통해 저층부는 최대한의 공공성을 확보했다. 이진형(이하 이): 저층부를 공공 공간으로 열어 둠으로써 공원과 함께 대규모 오픈스페이스를 확보하고 3층 이상은 주민들이 쓰도록 하는 것이 큰 개념이다. 이로써 공원에 바로 면해 상업가로가 만들어지면 공원과 가로가 함께 활기를 얻을 수 있고 공원의 프로그램은 자생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될 것이다. 박: 처음에는 불만을 제기하던 조합원들도 수익성이 올라가니 상업 시설의 비율을 높이고 싶어 했다. 뿐만 아니라 서빙고로와 용산파크웨이를 남북으로 잇는 길들이 활성화되면 용산병원에서 용산공원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낙후된 용산병원 블록까지도 살아날 것이다.
    • 김정은
  • 버려진 목욕탕에서 예술로 목욕하기 5월 15일, ‘행화탕프로젝트’ 개관식 개최
    버려진 목욕탕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 5월 15일,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행화탕에서 ‘행화탕프로젝트’ 개관식이 열렸다. 축제행성이 주최하고 61311 기획단이 주관한 이 행사는 아현동 일대와 더불어 행화탕이 재개발될 때까지, 2년간 진행될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기획단의 명칭인 ‘61311’은 행화탕의 지번 주소에서 따왔으며 ‘행화탕’이라는 건물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 지역의 기억과 문화를 유지하고자 했다. 61311 기획단은 문화, 예술, 공간, 건축, 대중음악, 커뮤니티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 기획가인 권효진(문화·공연 기획가), 김반야(대중음악 평론가, 방송 작가), 김보경(독립 문화 기획가), 박경린(독립 큐레이터), 서상혁(축제 기획가), 양은혜(마실와이드 문화부 에디터), 이아림(매거진 및 사보 에디터), 이원형(건축가, 워니스튜디오(wonystudio) 대표), 임경민(전시 기획·운영가), 주왕택(테크니컬 슈퍼바이저, 제이투커뮤니케이션 대표)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들은 공연, 시각 예술 분야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예술 기금에 의존해 신작을 발표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대안을 모색해 나가고 있다. 또한 ‘행화탕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행화탕을 지역 커뮤니티 활동과 예술프로그램이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낡은 목욕탕의 재발견 1976년에 지어진 행화탕은 아현동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오던 목욕탕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찜질방과 고급 스파 시설이 증가해 행화탕을 찾던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1년 아현동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5년여간 비어 있던 공간에 올해 초부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축제·공연 기획사인 축제행성이 행화탕을 임차해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한 것이다. 축제행성은 다양한 예술 작품과 프로그램을 선보일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낡고 어둑한 분위기의 행화탕은 예술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기에 적합한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2월부터 본격적인 공간 보수 작업이 기획 단원인 이원형 건축가의 지휘 아래 진행됐다. 61311의 다른 단원들도 틈틈이 행화탕에 방문해 공사와 청소에 참여했다. 폐관될 때, 욕조와 목욕 시설이 모두 정리되어서 행화탕이 과거에 목욕탕이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았다. 벽과 바닥에 남은 공간 분할의 흔적을 이용해 기존 목욕탕의 구조를 최대한 되살리고 천장을 제거하여 서까래를 노출시켰다. 이어 물청소, 전기 배선 설치, 지붕 방수, 화장실 보수, 화단 정리 등 대대적인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탈의실, 목욕탕, 사우나실 등 10개의 다채로운 공간이 조성되었다. 행화탕은 문이 많아 전시되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입구를 변경할 수 있으며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한다. 이같이 새로 태어난 행화탕은 다양한 전시와 공연, 워크숍, 교육 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대관료가 저렴해 창작자들에게 열린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목욕탕을 가득 채운 문화·예술 프로그램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약 200여 명이 행화탕의 개관식에 참여했다. 특히 과거 행화탕을 이용했던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아와 그 의미가 컸다. 개관식에는 행화탕프로젝트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공연프로그램인 상상 발전소의 ‘수중인간’,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의 ‘도시소리동굴프로젝트’, 모다트의 ‘전봉준’, 서울괴담의 ‘마술극장’이 진행됐다. 또한, 개관 초청 전시 작품으로 이원형의 ‘몸의 정원’, 구수현의 ‘The Ferris Wheel페리스 휠’, 신용구의 ‘꿈의 조각들을 모으다’가 설치되었다.상상발전소의 공연 ‘수중인간’은 뱃사람을 유혹하던 사이렌의 모습을 현대 융복합 콘텐츠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탈의실에 길쭉한 원통형 수조를 설치하여 수중 퍼포먼스를 펼쳤다. 목욕탕에 설치된 전시 작품 이원형의 ‘몸의 정원’은 공간의 용도와 동선의 재구성을 통해 버려진 행화탕을 ‘예술로 목욕하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했다. 바닥을 채운 검은 물과 한쪽 벽면에서 잔잔히 쏟아져 내리는 물, 하얀 징검다리, 전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통해 공간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작품을 감상하기위해서는 행화탕의 뒷문인 보일러실의 작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어둡고 좁은 보일러실은 넓고 밝은 목욕탕을 돋보이게 한다. 또한 목욕탕 바닥의 물과 물이 빚어내는 소리는 잠들어 있던 몸의 감각을 깨우고, 하얀 징검다리 위를 건너는 관객들의 움직임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작가는 목욕탕에서 몸을 씻겨 주었던 물이 이제 마음을 씻어 주고, 물소리와 말이 뒤섞여 울리는 소리는 음악이 되어 관객이 행화탕을 ‘몸의 정원’으로 느끼기를 바랐다. 창고에 설치된 신용구의 전시 작품 ‘꿈의 조각들을 모으다’는 한지로 만든 꽃을 통해 밝음과 어둠, 삶의 순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하늘색 계단, 슬레이트 지붕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꽃이 가진 상징성을 이용해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중 ‘몸의 정원’, ‘The Ferris Wheel’과 공간투어, 기획단 소개 및 행화탕 옛모습 소개 상영 프로그램은 5월 28일까지 전시 및 진행되었다. 이후 ‘몸의 정원’은 공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수중인간’, 수중 사진작가의 사진 전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물의 풍경(가제)’이라는 융복합 작품으로 재탄생될 예정이다. ‘물의 풍경’ 전시는 6월 1일부터 12일까지로 계획되어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추후 행화탕 페이스북(www.facebook.com/haenghwatang)에서 확인할 수 있다.
  • DDP에 누워 백두대간을 노닐다 ‘백두대간 와유’ 전, 2016. 4. 2. ~ 2016. 5. 29.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문을 연 지 만 2년이 지났다. 개관 이후 매번 흥미로운 전시를 올리고 있지만, DDP 특유의 비정형 공간을 ‘활용’하여 작품의 의미를 더하는 전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축은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말이 무색하게도 전시를 통해 DDP의 흥미로운 공간성과 소통하며 의미를 끌어내는 노력이 열매 맺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처럼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DDP 공간과 소통하는 전시’가 비로소 무대에 올랐다. 바로 지난 4월 2일부터 5월 29일까지 진행된 ‘백두대간 와유臥遊’ 전이 그 주인공이다. 이번 전시는 작품, 내러티브, 그리고 건축의 힘이 한데 맞물려 시각, 촉각, 체험, 그리고 공간성이 시너지 효과를 자아내며 관람객을 백두대간 안으로 이끌고 있다. 와유, 누워 노닐다 ‘백두대간 와유’ 전은 문봉선 작가의 수묵 산수화 ‘강산여화’(2014),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의 ‘자리’(2014), 산악사진가 10명의 백두대간 실경 사진, 그리고 동선의 곳곳을 꾸미고 있는 백두대간 자생 동식물 일러스트와 문학, 역사, 철학 자료 30점 등이 상호 작용을 통해 풍부한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의 메인 작품인 문봉선의 ‘강산여화’는 산과 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우리 강산의 담담한 모습에장대한 서사시와 같은 격格을 부여한다. 하지훈의 작품‘자리’에 누워 이 강산여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가 꾸며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와유臥遊(누워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다. 와유란 중국 송나라 화가인 종병이 산천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다 나이가 들어 나가지 못하자 집 안에 그림을 걸어놓은 채로 누워 감상했다는 데에서 유래한 감상법이다. 사실 이 감상법의 진면목은 직접 체험을 통해 확실하게 드러난다. ‘자리’에 기대 누워 ‘강산여화’를 올려보면 고고한 높은 산봉우리를 마주하는 듯하고, 귓가에 시원한 계곡 바람이 느껴지는 듯하다. 디자인 둘레길을 따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백두대간은 발걸음을 멈추고 편안하게 누워 감상할 때 그 속내를 조금씩 풀어낸다. 수묵 수풀 사이로 점차 사람이 보이고, 그늘을 내어주는 짙은 녹음이 보이고, 드문드문 자동차와 비닐하우스, 철도 길처럼 화폭에 현재성을 부여하는 작은 요소들도 시야에 들어온다. ‘강산여화’와 ‘자리’가 표현하는 공간은 오래된 과거가 아닌, 느긋한 완행열차를 타고 갈 때 창밖으로 보일 법한 실제의 공간이다. 푸른 녹음에 둘러싸인 폭포수 앞에 술잔을 놓고 바위언덕에 걸터앉아 강산을 사유하는 신선의 모습은 우리가 잘 아는 동양 산수화의 한 모습이다. 신선을 바라보는 이는 그 모습에 자신을 대입시키며 화폭의 산수를 ‘체험’한다. 이처럼 화폭이라는 매개를 통해 재현되는 것은 강산이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다. 따라서 동양 산수화의 산수는 화폭 안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차원에 실재한다. 어릴 적 읽던 무협지에 나오는, 산수화를 통해 이 산 저 산으로 노니는 고승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비록 높은 도력이 없더라도 시원한 ‘자리’에 의지해 ‘강산여화’ 속 두타산 너머 해돋이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환유 공간과 수묵화의 만남 ‘강산여화’의 백미는 무엇보다 작품의 스케일 그 자체다. 폭 1m, 길이 150m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수묵 산수화가 한눈에 관람객의 시선을 앗아간다. 둥그렇게 꺾어지는 벽을 따라 전시된 작품은 나선형 비탈을 걸어 올라갈수록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마치 산길을 걸어 오를수록 지평선으로부터 새로운 경관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비록 실내라도 꾸준히 비탈을 오르며 산수를 감상하니 그 기분만은 덕유산, 지리산을 오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강산여화’의 힘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데는 공간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서로 주고받으며 동선을 따라 오가는 DDP 안팎의 공간을 거닐고 있으면 거대한 클라인의 병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 열린공간들이 상생하는 것을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환유의풍경metonymic landscape이라 표현한 바 있다. DDP내부 전시 공간도 외부의 비정형 곡선에서 생겨난 경관 요소를 그대로 이어받아 둥근 원기둥, 경사면, 타원형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전시 공간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비정형 공간이 미술 작품의 전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근대 미술에 있어 하얀색 직사각형 공간, 또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가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뉴욕에서 ‘발명’된 근대 공간의 일환으로서 현재까지도 ‘갤러리’ 공간은 보편적으로 하얀 벽, 높은 천장, 그리고 무채색의 바닥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유행처럼 전 세계로 번졌던 이 양식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와서 많은 비판을 받는다. 공간의 단조로운 형태가 미술 작품의 한계로 작용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거슬러 올라가자면,미국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설계로 건축되어 1959년 문을 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역시 이 화이트 큐브 현상의 문제에 부딪혔다. 작은 추상 작품을 걸 목적으로 원기둥 형태의 곡면을 가지게 된 이 미술관은 이후 여러 근대 작품―크고, 무겁고, 입체적이며, 벽에 거는 형태의―의 전시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이트 큐브를 전시 공간으로 상정하여 제작된 작품이 화이트 큐브가 아닌 공간에 전시될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술계에서 화이트 큐브의 영향은 아직도 가시지 않아 비정형 공간 내 회화 전시는 아직도 여러 문제를 동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DDP와 같이 현대적, 또는 미래적 공간에 흔히 ‘오랜 전통’과 함께 연상되는 수묵 산수화를 전시하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점은 선입견을 깨부수는 놀라운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낮은 비탈을 오를수록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의 추상 지형역시 공간 내러티브의 깊이를 더해준다. 흑백의 강조가 공간을 순간적으로 단순하게 보이게 할지 몰라도, 그안에서 벌어지는 내러티브는 무한히 확장하고 있다. 산수 안 공간 초월transcendence “산과 산, 골과 골의 연결은 높고, 낮고, 깊고, 얇고, 가깝고, 멀고, 비우고, 채우고, 모이고, 흩어지고, 이어지고, 끊어지기를 반복한다… 시점이나 원근은 ‘삼원법’을 버무려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안되면 처음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수없이 떠올리며 이 시대의 참된 ‘전통회화의 가치는 무엇’이고 그 방법은 없는가? 나는 수없이 되새기며 풀 한 포기, 소나무 한 그루, 계곡 그대로 그 답을 찾고자 이 산 저 산을 헤매었다.” _ 문봉선, ‘백두대간에 부는 바람’ 중 ‘강산여화’의 산수는 여러 방향, 위치, 시각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작가의 시선은 화폭 안에서 여러 켜가 겹쳐 있는 형태로 나타나며, 이들을 따라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장소로 빨려 들어가 있는 듯하다. 예로부터 동양의 산수화는 서양의 소실점과 다른 삼원법三遠法을 사용한다. 중국 북송 시대 화가이자 동양 산수화론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화론가인 곽희는 화폭을 통해 산을 바라보는 시점에는 산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고원高遠, 산 앞에서 산의 뒷면을 넘겨보는 심원深遠, 그리고 먼 산을 바라보는 평원平遠이 있다고 했다. 문봉선은 이 세 시점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관람객을 숲 안에 데려다 놓기도 하고, 구불구불한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로 옮겨 놓기도 하고, 또는 넓은 평원에서 날아가는 새와 구름을 보여주기도 한다. 화폭을 통해 모든 공간이 열리며 겹침과 확장을 반복한다. ‘강산여화’에 화답하듯 소설가 김훈이 쓴 글‘강산여율’은 삼원법을 통해 나타나는 산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본다는 것은 활로 표적을 겨누는 자의 시선이 아니다. 대상이 위치한 환경 전체를 자신의 시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 전체 속에서 가파른 봉우리들이 나무와 바위의 개별성을 포용하고, 아무 발길도 닿지 않는 산비탈에서 구부러진 생애를 보내고 있는 나무 한 그루도고유한 존재감으로 당당하다. 이 겹눈의 시선이 산과 산 사이의 보이지 않는 구도를 연결해가면서 화폭을 강물로 흐르게 한다.” 필자가 전시장에 방문한 날은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하지훈 작가의 ‘자리’에 누워 ‘강산여화’에 펼쳐진 산수를 지켜보니 짙은 안개를 지나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지리산의 산기슭, 법적 ‘어른’이 되어 처음 가본 겨울의 속리산 자락, 말로만 듣던거창의 고송 모습이 떠올랐다. 문봉선의 거친 초묵법이 흐릿하게 떠오르는 기억의 윤곽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자리’에 앉아 와유하던 중에는 내가 산수의 장소로 옮겨졌고, 또 일어나 걷다 보면 산수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고요한 새벽 숲 속의 명상과 같은 행위에서 내 신체는 정신과 산수가 오고 가는 매개가 되어 굳은 땅 위에 자릴 지키는 고목과도 같다 느껴졌다. 시공간 여행이 이런 기분일까? ‘백두대간 와유’에서 일어나는 시공간의 겹침은 전시를 풍부하게 만들고 경험과 체험을 압축하며 우리의 공감각을 불러일으킨다.백두대간은 부분적으로나, 전체로나 우리나라 정서와 가장 맞닿아 있는 기억의 공간이자 살아가는 장소다. 백두대간의 실경 사진과 글, ‘강산여화’의 끊어질 듯 끊이지 않는 산자락과 높이 뻗은 산봉우리, 이 모든 것을 감상하기 위한 ‘자리’, 그리고 미소를 자아내는 동식물 일러스트레이션. 전시장과 산수를 오가다 보면 어느새 북한에 위치한 두류산 산맥의 빈자리에 닿는다. 텅 빈화폭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이 땅의 경관이 너무나도 많음을 한탄하게 한다. 푸른 천지의 모습과 문봉선 작가의 마지막 글귀가 진하게 울리며, 대지의 경관이 정치,사회적 경계와 별개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백두대간의 감성이 깃든 다양한 작품들과 건축물의 독특함이 만들어낸 ‘백두대간 와유’는 공간과 예술의 독특한 만남을 통해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들었다.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기분 좋은 궁금증을 남겨주고 있다. 앞으로도 DDP의 독특한 공간성이 전시의 내용에 유의미하게 활용되는 신선한 전시 기획이 계속해서 나올 수있을 것인가? 이번 전시를 통해 체감한 전시 공간으로서의 DDP의 가능성과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하고 있는 예술계에 기대를 걸어본다. 신명진은 뉴욕 대학교(NYU)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을 쓰던 중 공간과 경관에 마음을 빼앗겨 조경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현재는 석사 졸업 후 몸담았던 회사 생활을 뒤로 하고 학업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생태조경학과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바쁜 학기 중에도 좋은 전시 소식이 들릴 때면 종종학교 캠퍼스를 탈출하고 있다.
    • 신명진[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 석사 과정
  • 아시아 도시로부터 배우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의 근현대 건축’ 국제 심포지엄
    지난 5월 6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은 ‘라이브러리 스터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아시아의 근현대 건축’이라는 타이틀을 단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또한, ACC ‘라이브러리파크 프 로그램’으로 아시아의 주요도시 및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 성과물과 수집 자료를 ‘아시아의 근현대 건축’ 주제관에서 전시하고 있다.이는 국제 심포지엄과 더불어 아시아 특유의 도시 공간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창조적 생산: 아시아의 형식적, 비형식적 도시 조직 사이의 생산적 가능성’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서울, 뭄바이, 싱가포르, 상하이, 하노이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다섯 개 도시를 사례로 삼아 아시아 근현대 도시 건축의 형태와 각 도시의 특수성에 대한 논의가 펼쳐졌다. 형식적, 비형식적 도시 조직 사이의 창조적 생산 가능성 심포지엄을 총괄한 서예례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는 “이번 심포지엄은 아시아 근현대 건축 담론에 대한 결론이라기보다는 실험적 질문을 생산하는 시간”이라며 서막을 열었다. 심포지엄의 큰 주제인 ‘형식적-비형식적’이라는 개념은 반反 도시 대 도시 찬양, 계획 대 무계획, 일시적 개발 대 단계적 개발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서 교수는 “도시의 형식과 비형식에 대한 담론들이 서구에서는 계속 존재했지만, 아시아 도시에서는 이런 담론들에 대한 교류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형식과 비형식에 대한 담론의 부재 속에서 아시아 도시들은 거대하고 획일적인 ‘형식적’ 도시계획을 빠르게 경험했고, 그 이면에는 ‘비형식적 공간’이 계속 존재했다. 그는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급속하게 개발된 ‘형식적 도시’ 공간 속에서 ‘비형식적 삶’을 살아가는 아시아 도시민들의 삶을 “잡종 메커니즘”이라 칭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 교수는 “형식-비형식의 문맥에서 아시아의 도시들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고 이제는 유연한 방식의 도시계획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아시아의 도시들은 서구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활동력, 자생성, 생산성을 보여주는 독특한공간”이라고 주장했다. 싱가포르, 고층 주거와 새로운 버내큘러의 영역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1000개의 싱가포르’의 기획과 디자인을 맡았던 플로리안 셰츠Florian Schätz 교수(국립 싱가포르 대학교 건축학과)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작지만 영향력 있는 도시 국가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압축도시 모델을 돌아보고 이에 관한 통찰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인구수에 비해 국가 면적이 좁기 때문에 건물이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압축 도시모델’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이 싱가포르 모델은 효과적인 어반 테크닉urban technique과 적절한 테스트를 마친 전략의 혼합체로 타 도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가 주도의 도시계획을 통해 고층 빌딩이 지속적으로 지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는 도시만의 버내큘러vernacular 공간을 유지한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수직적 녹지 시스템vertical greening system은 “싱가포르의 기후 및 자연 환경과 많은 부분 맞닿아 있는, 싱가포르의 버내큘러를 재해석한 건축 방식이다.” 끝으로 셰츠 교수는 “인구는 점점 증가한다.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가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많은 도시들에게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뭄바이, 교환적 공간과 삶의 도시 교류 용적transactional capacity은 몸, 상품, 생각, 금전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의 용적을 의미한다. 이 흐름이 강할수록 용적도 커진다. 루팔리 굽테Rupali Gupte 교수(뭄바이 환경·건축대학교)는 교류 공간transactional space과 교류 사물transactional object은 “살아있는 도시의 본질을 만드는 데 중요한 몫을 한다”고 주장했다.뭄바이의 주거 유형 중 하나인 차울chawl은 그가 제시한 전형적인 뭄바이의 교류 공간이다. 긴 복도를 따라 방 하나 또는 두 개짜리의 작은 집들이 늘어선 아파트형태의 공간으로 지상층과 그 위의 두 개 층으로 이루어진 주택에는 약 70~100세대가 거주할 수 있다. 차울의 형태는 개개인의 경계를 흐리고, 주택이나 상점으로 사용되는 밀집된 포켓으로 이루어져 있어 연속적인 도시 공간을 창출한다. 이를 통해 주민들의 교류가 확장되고 독특한 도시성을 만들어내는 힘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 뭄바이의 부동산 공급 가격 상승과 함께 개발 회사들은 새로운 부동산 개발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였다. 당시 대다수의 차울은 낡은 상태였고 이는 공격적인 개발 회사가 새로운 부동산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정부는 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슬럼 없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개혁 정책이 마련되었다. 뭄바이의 차울과 슬럼가가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삶도 변하기 시작했다. 굽테교수는 “아파트 단지 경계 지역의 보안이 강화되었고 경계 흐리기는 더 이상 불가능해졌으며, 생활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던 공동 복도의 부재는 공동체의 소멸을 야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아시아 도시들에서실행될 도시재생의 방식들이 뭄바이의 경우를 교훈으로 삼기를 바란다.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인 개발 방식을 택하기를 권한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서울, 전통 도시 조직과 귀금속 산업의 공간적 적응 유형 1970년대의 도시 재건으로 인해 남아 있던 도시의 조직들은 삭제되거나 파괴됐고 근대적인 대형 사무용 건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대지의 용도가 주거에서 산업으로 변경되면서 기존의 도시 조직이 유지되는 지역도 있는데, 종로3가가 그러하다. 양승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는 종로3가의 귀금속 세공 작업장을 사례로 기존의 도시 조직에 구축된 주거 지역이 어떻게 그 조직에 적응하는지 설명했다. 귀금속 세공 작업장은 기존의 조직에 적응하면서 순환적 유형, 손가락 유형, 집합 유형으로 유형화됐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이 형태는 대지 사용, 건물, 구획, 거리 등 도시의 형태 요소가 지니는 견고함의 차이로 구분되는데, 이전 시대에 자리 잡은 대다수의 지역에서는기존의 도시망을 대체하는 것보다 기존 토대에 새롭게 적응하는 방식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종로3가 귀금속 세공 작업장의 적응 방식을 통해 “서울중심업무지구 도시계획의 혁신적 프로세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고, 이를 통해 도시설계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하노이, 프엉坊 조직의 지속과 변동-식민지적 경험과 근대의 도시 건축 우동선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학과)는 식민지 시대에 하노이의 건축과 도시가 어떻게 변모했는지 살폈다. 이 발표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식민성’과 ‘근대성’으로 서구 근대 문명의 이식과 식민지 경험이 하노이의 건축과 도시 변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가 핵심이다. 우리나라처럼 베트남 또한 서구의 식민지가 되면서 근대 건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는데, 식민지 지배층은 ‘치환’과 ‘매립’을 통해 하노이에 자신들의 시설을 확보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하노이의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도시의 중요한 터라는 상징성만큼은 계속해서 유지했다. 상하이, 창조 산업의 새로운 도시 모듈로서 로프트 상하이는 현재 중국에서 창조도시 담론이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도시 중 하나다. 한지은 교수(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창조도시 상하이’ 건설의 핵심은 “상하이 창의산업구의 3분의 2 이상이 옛 공장이나 창고 등 유휴 산업 시설을 개조해 형성됐다”는 점이다. 즉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발생한 로프트loft의 활용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로프트는 뉴욕의 소호SoHo와 같은 패션과 유행의 상징이며, 자원을 절약하고 도시의 역사를 보존하는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 개념으로 환영받는다. 상하이의 창의산업구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임대료 상승, 높은 공실률, 불필요한 개발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하지만 “도시의 창조적 환경 조성과 유휴 산업 시설의 활용, 산업 구조의 고도화 등의 측면에서 볼 때 상하이의 창조도시 정책은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다섯 개의 아시아 도시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여러 도시들의 형식적, 비형식적 도시 조직 내부와 그 사이에 존재하는 미시적이고 창조적인 생산의 가능성이 논의됐다. 논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맥은 ‘아시아의 도시로부터 배우기’일 것 이다. 아시아의 도시들에서는 도시 개발에 대한 담론이 전무한 상태에서 급속도로 근현대화가 일어났고, 우리는 잡종 메커니즘이라는 도시 체계 속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오래된 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낭만적인 관점에서 벗어날 때다. 형식적, 비형식적 도시 조직의 공간 유형을 유연하게 넘나들 수 있는 아시아의 도시를 위한 새로운 이해와 시각이 필요하다.서예례 교수의 말처럼, 그 단계를 넘어설 때 “기존에 존재하는 것으로부터의 배움은 혁명적”일 것이다.
    • 권영란[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 석사 과정
  • 용산공원, 연대와 논의를 위한 첫걸음 6월 2일, ‘용산공원 시민포럼 발족식 및 토론회’ 개최
    공원을 만드는 일은 백년지대계다. 하나, 용산공원은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하여야 하고, 둘, 시민과 함께 계획하고, 만들고, 운영해야 하며, 셋, 긴 호흡으로 천천히 추진해야 한다. _ 용산공원 시민포럼 선언문 지난 6월 2일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용산공원 시민포럼(이하 시민포럼)’이 발족했다. ‘용산공원 시민포럼 준비위원회’가 조직된 지 1년만의 일이다. 이들은 시민이 주체가 되는 용산공원을 만들기 위해 열린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사회적 관심 조성, 공원 민간 파트너십 체결, 공원 거버넌스 구성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날 열린 ‘용산공원 시민포럼 발족식 및 토론회’는 용산공원의 계획 과정과 활용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위한 첫걸음으로 마련되었다. 행사의 1부는 시민포럼 공동대표인 김성훈 국장(천주교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이영범 교수(경기대학교),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명래 교수(단국대학교)의 용산공원 시민포럼 선언문 발표로 마무리됐다. 2부에서는 최혜영 팀장(West 8)의 ‘용산공원 조성계획 추진현황 및 향후계획’, 조명래 교수의 ‘용산공원계획의 바람직한 방향’, 조경진 교수의 ‘용산공원계획, 시민참여의 필요성’에 대한 주제 발표가 진행된 후 토론회가 이어졌다. 토론회의 좌장은 이영범 교수가 맡았으며 김성홍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김제리 의원(서울특별시), 박은실 교수(추계예술대학교),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 이강오 원장(어린이대공원), 이세걸 사무처장(서울환경운동연합), 이승민 부국장(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이원재 소장(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우미경 의원(서울특별시), 최정한 대표(공간문화센터), 홍서희 대표(Gate 22)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에서 시민포럼 운영위원과 토론자로 새롭게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승민 부국장은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을 조성할 때, 청소년의 의견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성인들이 생각하는 청소년에 대한 접근이 아닌,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명래 교수도 앞선 주제 발표에서 “우리 세대에서 용산공원에 대한 모든 것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가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남겨 두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진행된 토론에서는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시민사이의 소통 단절 문제와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의 타당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국토부는 2015년 6월 용산공원에 적합한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소위원회를 구성했고, 10월 한 달간 공원 내 선호 콘텐츠에 대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와 관계기관 수요조사를 수행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말, 9개의 기관에서 제시한 18개의 콘텐츠 중 설문 조사 결과와 10차례의 소위원회 심의를 통해 선정된 8개의 콘텐츠를 발표했다. 선정된 콘텐츠는 국립어린이 아트센터(문화체육관광부), 국립여성사박물관(여성가족부), 아리랑무형유산센터(문화재청), 국립경찰박물관(경찰청), 용산공원 스포테인먼트센터(문화체육관광부), 아지타트나무상상놀이터(산림청), 국립과학문화관(미래창조과학부), 호국보훈 상징 조형광장(국가보훈처)인데, 공원 조성 목적과의 부합성, 콘텐츠 선정 과정의 불투명성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최정한 대표는 “현재 대상지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내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설계를 진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땅을 제대로 이해하고 긴 호흡으로 용산공원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민을 배제한 국가 공원 조성은 불가능하다. 라운드테이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토부에게 시민 사회와의 소통을 부탁했다. 이원재 소장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시민뿐만 아니라 용산공원과 관련된 전문위원들도 정보를 공유받지 못하고 있다”며 국토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공원에 들어설 수 있는 콘텐츠는 무궁무진하지만 규칙과 원칙은 있어야 한다. 용산공원에 국립 시설을 조성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 우미경 의원도 이에 대해 “용산공원의 역사성과 문화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에 대한 비판의 방향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박은실 교수는 “현재 발표된 콘텐츠는 용산공원의 극히 작은 부분이며, 보존하기로 정해진 건물을 활용하는 방식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배정한 교수는 “센트럴 파크 역시 수많은 건물과 프로그램으로 작동되는 곳이다. 공원에 콘텐츠가 없다면 공원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무엇이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어가느냐다. 그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긴 호흡으로 천천히 추진하는 것과 계획의 중단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슈다. 국회가 용산공원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매우 비합리적 일이다”라는 의견을 펼쳤다. 조경진 대표는 “앞으로도 당면한 문제를 피하지 않고 이 같은 토론의 장을 열어가야 한다”며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토론을 정리했다. 또한 “앞으로 시민포럼은 다양한 시민 사회와 연대해 논의의 장을 열어가고, 용산공원에 대한 욕망을 키워가는 자리로 만들어나갈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 향으로 탐구하는 공원의 ‘마이크로코스모스' 프라미스 파크, 미래 공원의 제안
    건축가, 바이오 전문가, 도시공학도, 큐레이터,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도시 공원의 풀숲을 뒤지고 흙을 파헤쳤다. 그들이 찾아 나선 것은 고대 유물도, 잊혀진 궁터도 아닌 공원의 ‘향’, 냄새다. 미래의 공원, ‘프라미스 파크’를 주제로 뉴미디어 작품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문경원 작가가 지난 5월 25일부터 27일까지 도시, 예술, 역사, 건축, 디자인,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및 학생들과 함께 문화역서울284에서 프라미스 파크 워크숍, ‘미래 공원의 제안’을 진행했다. 워크숍은 ‘향’을 테마로 감각적 매개체를 통해 공원이라는 상징적 개념에 새롭게 접근하는 데 목표를 두었으며 현장 답사와 발표·토론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프라미스 파크’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함께해 온 일본 야마구치 미디어 아트센터Yamaguchi Center for Arts and Media(YCAM)의 바이오랩 연구원과 큐레이터도 한국을 방문해 이번 워크숍에 함께했다. ‘향’이 말해주는 공원의 정보현장 답사는 선유도 공원과 청계천에서 진행됐다. 문경원 작가는 “한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과거를 지닌 도심 속 공간의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한지, 이들의 향에서 어떤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25일에 선유도 공원에서 풀, 열매, 흙, 곤충 등 효모가 서식할 만한 것을 채집하고 문화역서울284에 꾸려진 간이 실험실에서 채집물의 효모를 배양했다. 이튿날은 전날 채집한 효모와 YCAM 팀이 따로 청계천에서 채집한 효모가 어떤 유형이며 어떤 변화가 있는지, 배양된 효모가 어떤 향을 풍기는지 관찰했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평소 공원에서 맡는 향이 어떤 물질에서 비롯되는지 확인했다. YCAM 바이오랩 카즈토시 츄타 연구원은 “효모는 대개 곤충들에 의해 운반되기 때문에 효모를 분석하면 그 지역에 어떤 벌레가 많이 서식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동하는지와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워크숍 일정이 짧아 결과를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효모가 많이배양되지는 않았지만 청계천은 과거에 매립되었던 곳이라 초파리와 같은 곤충이 많이 서식했고 효모를 분석하니 아직도 뚜껑으로 덮여 있는 매립된 공간에서 나올 법한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홍렬 씨는 “처음에는 ‘향과 공원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공원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공원을 이야기할 때 눈에 보이는 디자인에만 접근했는데 앞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활용해 공원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워크숍에 참가한 소감을 전했다. ‘향’이 이끄는 또 다른 세계 언뜻 보기에는 마이너한 방법으로 ‘공원’에 접근하는 것 같지만, 문경원 작가는 공원의 역사와 미래, 현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 결과를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영상과 설치 작품으로 선보여 왔다(본지 2016년 4월호 ‘폐허에서 그리는 약속의 공원: 문경원 인터뷰’ 참고). 문경원 작가는 “냄새는 각자 다양하게 경험하는 감각이지만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향의 기억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경험하는 향을 가시화해서 빅데이터로 만들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찾고 있다.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공통으로 내재된 향의 기억을 공감하고 연대 의식을 나눔으로써 공원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이번 워크숍에 참여한 YCAM의 카즈오 아베 부관장은 “냄새는 아직 표현의 수단으로 쓰기에는 어려운 소재지만 다른 감각들과는 달리 후각은 대뇌에 직접 전달되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감각이다. 이번 워크숍은 ‘냄새는 예술적인 소재가 될 수 있는가’, ‘냄새로 공간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워크숍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을 맡으며 유소년기를 떠올리는 장면을 인용하며 냄새를 통해 기억을 환기하는 ‘프루스트 효과’를 이용해 시각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구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미래의 공원에서는 어떤 향이 날까? 향으로 공원을 구현하려는 아이디어는 엉뚱하고 무모한 도전일까? 향은 시각이 환기할 수 없는 무의식 속 과거의 경험과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를 열어준다. 각자가 갖고 있는 개별적인 향의 기억과 체험을 통해 거대한 공원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문경원 작가의 시도는 시각이 주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현대인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 ‘형태 없는 형태’ 전 아트클럽 삼덕, 6. 6. ~ 6. 12
    지난 6월 6일부터 12일까지, 대구에 위치한 아트클럽 삼덕에서 ‘Formless Forms형태 없는 형태’라는 타이틀의 최이규 개인전이 열렸다. 최이규는 계명대학교의 도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오브제를 선보이며, PLAPoly Lactic Acid 소재의 기하학적 형태와 액체, 빛, 그림자 등 형태가 없는 각종 물질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효과와 의미를 다뤘다. 최이규는 “이 전시는 뚜렷한 형태가 없는 인공 건조물, 즉 도시를 이루고 있는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물리적 환경에 대한 스터디”라고 밝혔다. 그는 평소 눈에 띄지 않지만, 품위 있고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해내는 공간에 감동을 느껴왔다.또한 “알맞은 비례와 크기를 가지며, 머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촉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창작의 산물들은 마치 수십억 년을 단련해 온 자연에 필적할 만큼 자연스럽고 군더더기가 없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형태의 오브제에는 정적이지만 가볍고 날렵함을 갈구하는 인공물에 대한 기하학적 추론이 담겨있다. 그는 “본질적으로 동적이며 수학적으로 정제되고 응축되어 장광설로 힘겹게 해명할 필요가 없는 기하학은 매력적인 학문이었다”며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기하학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30여 점의 작품이 설치됐다. ‘돈탑’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50원짜리 동전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타워에 삽입한 오브제다. 작가가 태어난 1976년 이후 제작된 동전들은 반짝임, 긁힌 자국, 변색, 뒤틀림, 그을림 등을 통해 다양한 개인사를 은유한다. 또한 동전이 모여서 이루는 낡았지만 찬란한 탑은 우리 사회에 대한 은유로 비춰진다. ‘물, 소금, 빛, 재, 피, 암석, 파동’은 우리 생명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 요소를 담는 그릇들로 구성된다. 거친 콘크리트 블록 제단祭壇에 놓인 고대 토기를 연상시키는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그릇은 복잡한 형태form 위주의 디자인 시류에 대한 냉소주의cynicism를 내포한다. 이 외에도 로댕의 글귀를 볼 수 있는 정육면체의 조명 ‘텍스트 라이팅‘, 세제가 마르면서 나타나는 패턴과 투명함의 우연성을 관찰한 ‘세제회화’ 등 다양한 소품들이 전시됐다. 최이규는 이 같은 작품들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정지된 물체에도 움직임이 존재할 수 있는가? 중력을 잊은 듯한 자갈의 물수제비처럼, 소년의 경쾌한 발걸음처럼, 문지방을 타고 넘는 바람처럼.”
  •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 전 디뮤지엄, 6. 16. ~ 10. 23.
    지난 6월 16일, 세계적인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과 그의 스튜디오를 다룬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New British Inventors: Inside Heatherwick Studio’ 전이 막을 열었다. 디뮤지엄D museum이 주최하고 영국문화원이 함께 주관한 이번 행사는 영국의 국가 홍보 사업인 ‘그레이트 브리튼 캠페인the GREAT Britain campaign’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가구와 제품 디자인부터 도시설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융합적인 접근 방식으로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구현해 왔다. 영국 디자인계의 거장인 테런스 콘란Terence Conran은 토마스 헤더윅에게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업 중 26개의 핵심프로젝트를 다뤘다. 작품과 더불어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드로잉, 프로토타입, 테스트 모형, 1:1 사이즈의 구조물, 사진과 영상물 등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관객은 끊임없는 질문과 실험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헤더윅 스튜디오만의 디자인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세 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첫 번째 주제인 ‘사고’에서는 디자인의 핵심 개념을 도출해 내는 과정을 소개한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디자인 과정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공유해 그들의 비평을 수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 전반에 걸친 질문과 재분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왔다. 런던 시의 의뢰로 50년 만에 새롭게 디자인 된 ‘런던 버스New Bus for London’가 그 대표적인 예다. 사고’ 과정을 통해 승객들의 편의성과 에너지 효율성 등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미적인 부분도 향상시켜 런던 시민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런던 패딩턴 유역Paddington Basin에 설치된 ‘롤링 브리지Rolling Bridge’도 같은 과정을 통해 부드럽고 세련된 메커니즘을 도출해냈다. 다리의 양 끝이 올라가며 열리는 일반적인 방식을 사용하지않고, 한쪽으로 둥글게 말리도록 설계해 런던 브리지를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이게 했다. ‘제작’에는 소재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이를 창조적인 형태로 구현하는 과정을 담았다. 웰컴 트러스트Welcome Trust 본사의 아트리움에 설치된 ‘블라이기센Bleigiessen’은 이질적인 소재인 물과 금속을 결합한 작품이다. 물이 떨어지며 변화하는 형태를 형상화하기 위해 차가운 물에 액체상태의 금속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수백 번 반복했다. ‘소통storytelling’에서는 작품에 고유의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에게 놀라움, 즐거움, 기쁨 등 다양한 감정을 선사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엑스포 2010 상하이’에서 선보인 영국관은 단순히 한 국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넘어 독특한 구조로 사람들에게 놀라운 경험을 제공했다. 건축물을 관통하는 6만 개의 투명 막대 끝에는 25만 개의 씨앗이 담겨 있어 ‘씨앗 대성당seed cathedral’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막대는 낮에는 햇빛을 건축물 내부로 끌어들이고 밤에는 내부의 빛을 외부로 발산해 관객에게 신비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또한 전시를 위해 헤더윅 스튜디오가 특별히 제작한 ‘스펀-훌라!Spun-Hula!’가 최초로 공개된다. 이 작품은 2008년에 제작된 ‘스펀 체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의자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스로 회전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지는 못했다. 2016년 디뮤지엄과의 협업으로 현실화된 ‘스펀-훌라!’는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과 빛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반응하고 회전한다. 주변 환경의 미묘한 변화에도 반응해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설치 작품이다. 이 외에도 토마스 헤더윅의 대학 재학 시절의 작품과 초기 작업들이 장르를 넘나들며 발전해 온 스튜디오 철학을 보여준다. 작은 디테일과 큰 구조를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방식과 실험적인 도전들은 사고의 틀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2013 금강자연미술프레비엔날레 - 자연미술초대작가전
    ‘ “백년의소리”-가야금 展’ & 비디오 페르시아트 展2013 금강자연미술프레비엔날레의 국제자연미술초대작가전이 8월 3일부터 9월 3일까지 약 한 달 동안 금강국제자연미술센터에서 열렸다. 이 프로그램은 장기적인 작업시간을 가지고 한국의 자연미술과 문화를 이해하고 자신들의 관점에서 자연미술을 새롭게 실험하고자 하는 작가들을 초대하여, 보다 심도 있는 작업과 교류의 기회를 갖기 위해 개최되었다. 내용은 이란 자연미술가 27명의 비디오작품을 전시한 ‘비디오 페르시아트 展’과 자연미술가 고승현의 ‘“백년의 소리”-가야금 展’으로 구성되었다. 최근 이란은 비디오 아트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해당 작가들과 작품들을 선보이기 위한 많은 행사들을 개최해 왔다. ‘비디오 페르시아트’에서는 환경문제와 경향을 다룬 이란 작가들의 비디오 작품과 사진작품이 전시되었으며, ‘“백년의 소리”-가야금 展’은 최근 10년간 고승현 작가가 국제무대에서 선보인 가야금 연작을 설치하고, 사진영상작품을 선보였다.
  • 류지훈 한국수자원공사 사업지원처장
    “친수공간 창출과 문화콘텐츠 개발, 조경분야의 한 축이다”물이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와 새로운 패러다임, 조경영역 확장 가능성 시사역대 최장 장마였다. 심지어 장마 중 비가 내리는 주기가 불규칙해 각종 혼란을 야기하고 사고도 잇따랐다.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야속한 날씨가 이어졌다. 치수는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특히 한국은 강우가 한 계절에 집중되어 물이용에 더욱 민감했다. 근래 들어 물이용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는데, 기상이변으로 날씨를 예측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물의 저장과 이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다. 더불어 물이용에 대한 패러다임도 전환기를 맞고 있다. 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만큼 친수공간의 활용 또한 주요 이슈로 떠오른 것. 이와 함께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올해 초 류지훈 전 부항댐건설단장을 조경직 최초로 본사 처장으로 임명하고, 그를 필두로 사업지원처를 구성해 친수공간 조성 및 활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물이용의 다양화, 조경의 역할 대두한국수자원공사(이하 K-water)는 홍수조절, 용수공급, 친수공간 조성 및 개발 등 물이 영향을 미치는 전 분야에 걸쳐 다목적 기능을 수행한다. 사실 몇 년 전만해도 K-water와 조경의 연관성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K-water 조경업무는 공원이나 친수공간의 조성보다는 댐이나 하천개발, 그리고 이후의 생태복원을 위한 연구에 주력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수공간 이용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다변화하면서, K-water 조경업무도 이를 반영하여 다각도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K-water를 식수 공급과 수질 관련 일만 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러한 인식이 깔린 상황에서 K-water 최초의 조경직 처장이라는 타이틀은 부담이 더욱 컸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인 류지훈 처장은 담담한 모습을 내비쳤다.“우리 공사 최초의 조경직 처장이라는 타이틀에 상징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크게 부담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부항댐건설단장도 조경직 최초로 부임했었는데,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업지원처장 자리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제가 가지고 있는 강점을 이용해 우리 공사와 국민에게 일조할 수 있는 길이 더 많이 열렸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습니다.”류지훈 처장은 앞으로의 사회는 어떤 한 분야가 주축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공간을 다루는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조경도 알아야 하고, 건축과 토목, IT와 문학까지 융합해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류 처장은 조경분야가 이러한 종합적인 접근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