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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태관광
    생태관광은 환경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관광개발과 생태계수용능력을 초과하는 과도한 관광활동으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여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생태계의 조화를 추구할 수 있는 보전적 “대안관광”의 형태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생태관광의 개념은 1980년대에 와서 흔히 쓰이게 되었으며, 넓은 의미에서는 관광의 맥락에서의, 생태학적 맥락에서 생태학적 사고로서 무엇보다도 집단관광에서의 최소한의 환경적 영향을 강조한다. 따라서 생태관광은 환경의 영향이 적은 수준에서 여행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개발을 실천하고 자연자원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여행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최초로 1965년 Hetzer가 문화, 교육 그리고 관광을 제고하여 ‘생태적 관광’이라고 언급하였고 이후 Jacobson과 Robels는 생태관광을 자연에 근거된 관광으로서 여행동기를 자연의 역사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좀더 엄격하게 정의한다면 어떤 특정 자연지역인 매력이 있는 평온하고 오염되지 않은 지역에서 자연을 경험하는 행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생태관광의 본질적인 특징은 야외휴양지역, 국립공원, 야생지역 등의 자연환경을 방문하는 것이며 기본자원으로서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도로 사람들을 고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태관광의 특성 및 기대효과 1990년대에 들어 전통적인 관광지의 지속적 성장으로 혼잡이 증가되면서 대안적 관광지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었는데, 이와 더불어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의 증가. 관광 기간중 교육적 경험에 대한 요구 증대, 생태적 여행기회의 수적 증가, 매체를 통한 생태관광 개념의 확산 등의 이유로 생태관광에 대한 수요는 크게 증가되었다. 생태관광 부문의 성장으로 말미암아 관광은 자연환경보전과 공생하는 관계로 성정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경제적 효과 하나는 생태관광으로 말미암아 자연보전지역은 생태계 보전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는 점이다. 보전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고자 실시한 최근 연구를 보면,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생태관광’으로 인한 수입이 보호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생태관광을 자연보전지역에서 이전에 이루어지던 개바 양식에 비해 지속가능한 형태의 수입원이 된다는 점이다. 코스타리카의 국립공원에서 lfndj지는 생태관광은 이전의 생태계 파괴적인 경제활동에 비해 지속가능한 형태의 개발 방식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 키워드: 생태관광, 생태 ※ 페이지 150 ~ 155
  • 미국국립공원의 이용개발과 보전관리
    자연환경보전의 대표적인 대상지라 볼 수 있는 국립공원은 1872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지정 설치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립공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19세기 후반 이후 점차 자연보호 사상으로 발전, 세계 각국에서 받아들여졌고, 이후 많은 나라에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관리하는 곳으로서의 국립공원의 숭고한 이념 때문에 미국의 51개 국립공원을 위시하여, 1백40여개국에서 국립공원 제도를 채택하고, 1천4백여 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30년 금강산, 지리산, 설악산에 대해 국립공원 지정을 검토하다가 중단된 후 1967년 ‘지리산지역 개발조사 연구위원회 국립공원분과’의 건의로 지리산 일대가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20개 지역의 산과 바다가 국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다. ※ 키워드:미국의 자연환경, 미국의 삼림자원, 미국의 국립공원 ※ 페이지:90~95
  • 배낭하나 달랑매고 즐거운 도시를 찾아서
    누군가의 말처럼 ‘미끈하게 잘생긴 도시’란 어떤 도시일까? 쭉쭉 도로가 나서 반듯한 두부모처럼 생긴 도시일까?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옛 도시의 모습을 담은 도시일까? 내가 봤던 수많은 도시들. 파리, 그라나다, 프라하, 니스....그러다 어느덧 내가 선호하는 도시형이 생기게 되었다. 과거가 존재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으며 따뜻한 사람들의 표정이 있은 도시. 물리적인 덩어리로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정답게 부디끼며 살아가는 도시가 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코 길지않은 시간속에 유럽을 다 봤다는건 유명한 곳에서 깃발꽂고 정복자의 모습처럼 찍은 사진수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터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좀 더 애정어린 눈길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34일간의 즐거웠던 여행은 내 기억속에서 잊어지지 않으리라 생각되며 많은 도움을 주었던 파리에 있는 친구들과 여행자들에게 감사하며 또 어디론가 떠나 것을 꿈꾸고 있다. ※ 키워드: 파라,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로마 ※ 페이지:132~135
  • 우리조경역사를 세계에 알리는 노력 기울여야
    한국의 조경학과가 설립된 것이 약20여년이 넘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곳에서 느꼈지만 서양인에게 소개된 동양의 조경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과 일본의 것들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며 우리 나라도 하루빨리 아름답고 모범이 될만한 조경작품과 우리의 조경역사를 세계에널리 알리는데 더욱 노력을 기울였으며 한다. ‘우물안 개구리’라는 옛말처럼 조경이라는 하나의 나무만을 볼 것이 아니라 숲을 볼 수 있는 우리 조경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키워드:유학준비,포트폴리오 ※ 페이지:136~139
  • 광화문 ; 육조거리
    아!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웅대하도다. 그대의 모습이여! 지금으로부터 약50년전 옛날 그대가 왕국의 강대한 섭정 대원군의 물러섬 없는 강한 의지에 의해 왕궁을 지키라고 해서 남향의 좋은 장소에 그대의 터전을 닦았던 것이다. 이곳에 조선이 있다고 말할 듯이 수많은 건출물이 전면 좌우에 줄지어 서 있고 넓은 대로가 직선으로 뻗어있고, 한성을 지키는 숭례문과 멀리 서로 호응하며 북으로는 백악이 있고, 남으로는 남산을 바라보며 황문은 그 위엄있는 자리를 태연히 차지하고 있다. 이리하여 세 개의 궐문을 가운데서 뚫어 거대하고 견고한 화강석을 높이 구축하고 그 위에 전통을 잘 지키고 있는 광대한 중층의 건물이 솟아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문은 좌우로 균등하게 높은 벽을 쌓고 그 끝에 각루가 아름다운 자세를 갖추고 있다. 쳐다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연한 그 위엄있는 아름다움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한 나라의 최대의 왕궁을 지키기에 족한 정문의 모습이다. 「사라져 가려는 한 조선건축을 위하여」중에서 야나기 무네요시 1922년 9월 게재 ※ 키워드: 광화문, 육조거리 ※ 페이지:96~97
  • 버스표 하나로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승방이 있는 동네 ; 성북구 보문동(탑골)
    내고향은 성북구 보문동 3가에 있는 탑골이라는 곳인데 탑골승방이라고도 불리우는 보문사가 있는 동네이다. 탑골이라는 지명은 탑이 있는 동네라는 뜻인데 고려 예종때(1115년) 보문사 창건과 더블어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탑은 아직도 사찰경내에 보존되고 있다. 탑골은 원래 행정구역상 이조말엽에는 한성부 숭인방에 속해 있었으나 한일합방 이후에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신설동으로 개명되었고 그후 인구증가게 따른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성북구 보문동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동대문으로부터 약 2㎞정도에 위치한 이곳 탑골도 6.25동란 이전까지는 다른 시골마음처럼 산과 계곡, 개울이 어우러진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네였다. 마을뒤로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따라 산등성이로 이어진 오솔길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노송과 잡목이 우거진 그 오솔길을 따라 고개 너머 있는 초등학교로 통학하고 있었다. ※ 키워드: 서울시 성북구 보문동(탑골) ※ 페이지:176~177
  • 작살나무, 종려
    작살나무는 우리나라에 전국의 산록 및 계곡에 많이 자라고 있으며, 수직적으로는 표고 100-1,200m에 분포되어 있고 지리적으로는 일본, 대만, 중국에 분포되어 있다. 이 나무는 가을에 자수정 알처럼 빛나는 자주색 열매가 대단히 보기 좋아 인가 근처에 자주 식재하였고, 또한 양산대, 젓가락 등 여러 가지 생활용구에 많이 이용되어 왔다. 종려는 중국에서 들어온 나무로 우리나라에는 남부지방과 제주도 및 남해 도서 지방에 많이 식재되어 있고 중부 및 기타 지역에서는 주로 분식하여 온실이나 살내에서 재배하고 있다. 이 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및 일본이라고 하나 일본에서는 원산지라고 하는 구주 남부지방에서 야생성인 것을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 키워드: 작살나무, 종려 ※ 페이지 : 174-179
  • 침묵의 내고향, 절영도 앞바다/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농가에서는 닭이 알을 낳았지만 병아리가 생기지 않고, 돼지는 덜 된 새끼만 낳는데 그나마도 2-3일만에 죽어버린다. 농부들은 시름시름 앓아누웠는데 의사들은 무슨병인지 몰라 손을 못 쓴다. 냇물에는 고기가 죽어 배를 보이고 꽃에는 벌이 날아들지 않으며 숲에선 새소리를 들을 수 없다. 저주받은 이 땅엔 봄이 와도 침묵의 봄일 따름이다. ※ 키워드: 장원, 부산 ※ 페이지 : 188-189
  • 한국전통의 도시공원 ; 읍수
    첫째로 읍수가 주로 위치한 곳은 대체로 읍의 중심이 되는 각종 건물과 시설주변이거나 읍경계를 이루는 성곽, 종교시설 등으로 결국 읍수는 읍의 중심과 경계를 강화함으로써 읍의 장소성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과거의 읍은 통치시설을 중심으로 읍이 형성됨으로써 관아중심적이고 관 주도적인 경향을 갖고 있으며 수직상의 배치에서도 중심건물외에는 고도제한을 하는 권위주위적 배치가 이루어져 왔다. ※ 키워드: 읍수 ※ 페이지 : 140-147
  • 국내 리조트개발의 성립과 전개 ; 워커힐을 사례로
    한국의 전후에 있어서 리조트의 최초 발생지인 워커힐의 발전과정의 고찰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963년 개관한 국책 호텔로서 한국정부는 국가자본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외화 획득을 목표로 하였다. 특히 주한 미군을 겨냥한 보양 레크리에이션 시설의 종합 휴양지인 리조트 호텔을 조성한 것이다. 워커힐은 1960년대부터 1970년에 걸쳐 한국관광발전의 선국적 역할과 1980년대의 한국호텔산업의 단계적 상승과 국제화에의 발전적 변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워커힐은 외화획득이라는 경제적 효과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리조트나 호텔 문화를 서울 시민들의 눈앞에 보여준 효과가 대단히 컸다고 볼 수 있다. ※ 키워드: 리조트, 워커힐 ※ 페이지 : 154-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