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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전문서적 부실, 이대로는 안된다 ; 13년전 대학교재 아직도 여전, 출판업계마저 외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조경전문 서적은 많아야 1백10여종. 물론 그동안 절판되거나 비영리 목적으로 출간된 책 등 다른 이유로 누락된 책은 차치하고라도 일반인들이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대형서점에서 볼 수 있는 책들이 이 정도라는 사실은 26년의 역사를 가진 조경분야로선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기자가 서점에서 조경 관련서적을 뒤적이다 꺼낸「조경계획론」(문운당, 1986)은 양적인 빈곤을 넘어 우리 조경분야의 정체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어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 키워드 : 조경서적
※ 페이지 : 78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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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실경화와 조경
창경궁(昌慶宮)이 창건된 것은 조선조 제9대 성종 때로 고려시대의 수강궁(壽康宮)이 있던 터에 새로이 궁궐을 세웠다. 그러나 창경궁은 임진왜란때 전소되어 광해군 때에 다시 재건되었고, 이후로도 여러 차례의 화재를 당하는 등 재건 및 수리가 끊이지 않았다. 창경궁의 궁터는 고려시대에 남경(南京)의 궁실에 지은 수강궁이 있던 곳으로 전하고 있는데 수강궁은 고려 공민왕 5년(1356)에 승(僧) 보우(普愚)의 진언에 따라 남경으로의 천도를 계획하여 다음해 2월에 신축한 궁이며, 그 위치가 창경궁이 세워진 자리라고 하는 것이다.
※ 키워드 : 이론, 설계언어, 해외
※ 페이지 : 74 -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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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설계의 언어 ; 기호학적 경관 분석 로제 브뤼네
이번호부터 약 12회에 걸쳐 프랑스 현대 조경가들의 설계이론을 소개한다. 프랑스 조경의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경관(paysage, landscape)은 두 가지 개념을 동시에 의미한다. 풍경, 풍경의 구조와 공간 구조의 원소(element). 지리학자가 관측하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경관은 풍경이라고 하기보다는 공간 구조들의 원소이다. 공간 구조의 원소들은 풍경에 부분적으로만 드러난다. 장소의 인식이나 공간 구조의 인식을 위해 이런 원소들로부터 시작하는 지리학적 인식은 필요하지만 그 자체로 충분하지는 않다. 경관 인식은 그 이상을 필요로 한다. 경관은 동시에 여러 층의 기호들로 해석될 수 있는데 학자들을 위한 기호- 경관에 가치를 부여하는 기호-들로 해석될 수도 있고, 이용자들을 위한 기호- 경관에 사회적 맥락을 부여하는 기호-들로 해석될 수도 있으며, 마지막으로 여러 체계들의 동인(動因)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데 마지막의 경우는 기호학의 분야에서 취급되는 사항은 아니다. 다시 말해 제3단계의 경관, 시각화된 표면으로서의 경관은 기호학의 분야가 아니며 그 이전 제1단계, 제2단계의 분석과 여기에 작용하는 제4단계와 제5단계의 분석이 기호학의 분야이다. ※ 키워드 : 이론, 설계언어, 해외 ※ 페이지 : 56 -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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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원 ; 서태후의 하명을 드러내는 중국 황제의 여름 이궁
북경(北京)의 ‘이화원’은 수렴첨정(垂簾聽政)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하의 여걸 서태후(西太后, 1835~1908)에 의해 호화롭게 꾸며졌던 중국황제의 대표적인 여름 이궁(離宮)이다. 역사상 정원문화의 최고 절정기를 구가했던 건륭(乾隆, 재위 1736~1795)황제에 의해 이궁으로서의 규모와 틀이 이미 갖춰졌던 이화원은 북쪽의 만수산(萬壽山)과 남쪽의 곤명호(昆明湖)로 이루어져 있는데, 높이 약 60m에 이르는 만수산이 약 70㏊ 그리고 곤명호가 약 220㏊의 면적을 보이고 있다.
※ 키워드 : 해외, 중국, 궁궐 ※ 페이지 : 64 -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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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조경과 풍수 ; 전통조경에서 정자 담장 부속물을 어떻게 조성하나
전통 정원 내에서 정자는 어떻게 조성되었는가? 터는 주로 연못이나 계류가인데, 이는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 나아가 자연과 조화를 먼저 생각한 풍수적 산물이었다. 풍수는 정자를 산봉우리로 보니, 주변의 자연 형상과 상생의 조화를 중요시했다. 방형의 못이나 호수 가라면 뾰족한 팔모 혹은 다각 지붕을 얹어 자연스럽게 목산(木山)이 되도록 배려하였다. 뒷산은 불꽃같은 화산(火山)이고, 정자는 목산, 못은 토산(土山)이니, 즉 목→화→토가 서로 상생의 생기를 북돋아 주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러나 강이나 계류 가에는 팔모 지붕이 아닌 마루가 편편한 팔작지붕을 얹어 토산의 형태를 취하였다. 왜냐하면 풍수적으로 강과 계류는 뾰족한 문필봉(文筆峰)으로 첨예한 기상을 가졌으니, 이를 토산인 후덕한 기운으로 다스려 선비에게 자중하는 마음을 가지게 함이다. 문필봉은 급제하여 벼슬이 높아짐을 뜻하고, 토산은 덕망 있고 부귀함을 뜻하니, 우리 조상은 정자와 주변 산천만을 이용해서도 왕후장상 부럽지 않은 영화를 누렸던 것이다.
※ 키워드 : 이론, 설계언어, 해외
※ 페이지 : 70 -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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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익히기와 가르치기
나는 우선 건축이든 조경이든 설계의 실마리와 주제는 대지(site) 자체의 장소적 성격에서 나와야 한다고 본다. 이는 대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대지가 속해 있는 지역의 모든 것이 포함된다. 자연적인 것은 물론 사회문화적인 것, 역사, 생활양식, 대지정신(spirit of place), 기(氣) 등 모든 것이 고려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싶은 바람직한 환경 창조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미미하다. 나는 단지설계(site design)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만 독자적인 작품도 없다. 어느 대가가‘설계는 60세부터’라고 하지만 능력도 달리고 벌써 현실에 안주하려는 조로(早老)현상이 오고 있지 않은가 하는 두려움도 있다. 그러나 나는 설계에 관심이 있는 교육자로서 후학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 키워드 : 조경가
※ 페이지 : 30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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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의 테마경관 탐색(2) _ 역사도시의 고도
역사 경관이란 시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경관의 변모과정을 파악하여 지구의 생성으로부터 인간이 지구상에서 존재하기 시작한 과거사를 통해서 경관을 어떻게 이용했는가하는 측면, 과거 어떤 시대, 어떤 지역의 기술, 문화, 사건 등 인간의 자취와 사연이 깃들인 장소들에 대한 인식 등 넓은 의미로는 인간이 오락이나 기타 목적으로 보전해온 자연지역들까지도 이에 포함한다. 이는 지금까지 주로 먼 역사유적지에 치중했던 것에서 이제는 현재와 가까운 시간대의 경관까지도 역사경관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으며, 종전의 관이나 상류계급의 문화 유산에만 치중하던 기준에서 탈피하여 우리의 일상적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시민들의 삶의 현장이나 장소 그 자체의 보전이나 활성화가 요구되며 보다 총체적이고 진실한 역사의 연속성을 도시 내재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볼 때 본고에서는 오랜 도시역사의 나이테만큼이나 지워지지 않고 어떤 강한 환경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자존심과 같은 대상이며 교훈으로써 존재하는 역사도시의 옛길들 중 로마의 비아 사크라(Via Sacra)와 파리 몽마르뜨(Montmartre) 언덕의 거리, 영국 요크(York)의 샴블즈(Shambles)거리 그리고 일본 나라(奈良)의 나라마찌(奈良町)를 탐색하여 시사점을 찾아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역사도시인 경주 쪽샘거리와 비교해 보았다.
※ 키워드 _ 테마경관, 도시경관, 고도, 역사도시
※ 페이지 _ 8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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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쥐어 주시던 단감이 그리운 곳 _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군
고향.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고향에서 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그렇게 인생을 살아간다. 모두에게 고향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가슴 따뜻한 곳이기에 삭막하기만 한 도시생활을 벗어나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만 간다. 나도 충분히 공감한다. 내 자신이 매우 힘들고 고달플때, 그리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낄때, 고향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는 예전의 그 풋풋한 공기와 바람을 만나면서 삶의 활력을 찾고 어머니의 된장국과 보리밥을 먹으면서 도시에서 생겼던 온갖 병을 깨끗이 치유하곤 했다. 그리고 다시 도시로 가서 치열한 삶을 살아갔다. 지금 나는 하루하루가 바쁜 도시생활의 일정속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며 나름대로 충실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고향으로 꼭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있다.
김원일의 소설‘노을’을 보면 봉화산이라는, 말이 달리는 모양처럼 생긴 바위산이 하나 나온다. 봉화산에는 오래된 절터가 있고 옆으로 드러누운 부처님 와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가야시대의 것이라고 하여 자왕골이라고도 한다. 1946년 8월, 나는 봉화산과 자왕골을 등지고 있는 김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어릴적 나는 그곳에서 칡을 캐고 진달래를 따고 꼴을 먹이러 소를 몰고 다니기도 했다. 친구들과 나는 소를 골짜기에 몰아넣고 개울가에서 목욕도 하고 물장구도 치며 놀았다.
※ 키워드 _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군, 고향, 노무현
※ 페이지 _ 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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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도시 부천, 회춘(回春)의 도시 의정부
그동안 몇 회에 걸쳐 여러 중소도시들을 답사하면서 느낀 것 중의 한가지는 그 도시의 위치조건과 제반 여건을 감안한다면 도시의 살림살이가 들여다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공원을 거닐다 보면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그 도시의 배경이 담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울 수도권 인접도시들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고 내일에 대한 모습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그중 서울의 서쪽인 한강하류에서 새롭게 커가고 있는 경기도 부천富川시와 서울 북부 도봉산 너머의 의정부議政府시는, 한강의 의미와 수도로서의 위상 조건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가를 비교하기로 하였다. 마침 필자가 태어난 곳의 주변이기도 하고 성장기 때의 정서가 남아 있는 곳이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우선 경인(京仁) 전철에 올라탔다. 1960년대 말(1967년)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을 때,“ 도로가 달린다”라고 신기해하기도 하였고 스튜어디스(초창기의 안내양)들도 멋쟁이였기에 서울을 벗어나는 나들이로는 인기가 있었던 코스였다. 특히「소사」의 복숭아는“수밀도”라 하여 수원의 딸기, 안양의 포도와 함께 소문난 맛으로 유명했었고, 요즈음과 같이 4, 5월 복사꽃이 필 때에는 들판의 아지랭이와 함께 서울의 젊은이들을 유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과 붙어버려 그나마의 한적한 경치는 볼 수도 없게 변모되어 버렸다. 부천시는 1973년 시로 승격되기 전까지만 하여도 일명 “복사골”이라는 마을이었는데 경인 철도가 전철이 되면서 ’98년말 현재 78만의 대도시로서 25년 동안 무려 12배 이상의 인구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 키워드 _ 부천, 의정부, 공원탐방, 도시탐방, 도시이야기
※ 페이지 _ 7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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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실경화와 조경(10)
옥류천 주변 _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창덕궁은 광해조에 복구되기 시작, 후원(後苑)의 경우 인조대에 들어와서 수많은 정자가 새로 건립되고 물을 끌어들여 조경을 하여 현재와 같은 큰 규모로 만들어졌다. 우선 인조14년에는 후원의 가장 북방에 옥류천(玉流川)을 개착(開鑿)하고 옥류천 주변에 환서정(歡逝亭), 운영정(雲影亭), 청의정 등을 세웠다. 환서정은 후에 이름을 소요정(逍遙亭)으로 고치고 운영정도 태극정(太極亭)으로 바꾸었다. 옥류천 주변의 제일 윗쪽에 청의정, 그 아래에 태극정, 그 아래에 소요정과 농산정(籠山亭), 그리고 제일 밑에 취한정(翠寒亭)을 지었다. 소요정 바로 위에는 어정(御井)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그 아래 바위를 다듬어 샘물이 돌아 흘러 아래로 떨어지도록 하였다. 바위에는 인조 어필(御筆)로 옥류천이라는 글씨를 새기고 그 아래로 작은 폭포를 조성했다. 숙종이 지은「逍遙觀泉詩」(소요관천시)에는 이 작은 폭포의 경관이 잘 묘사되어 있다.
궁궐지(宮闕志)에는“청의정은 태극정 서쪽에 있는데 이는 물을 모아 연못을 만들고 못 가운데에 섬을 만든 것으로 인조 14년 병자년(丙子年)에 세웠다”라고 기록하였다. 청의정이 있는 연못은 장방형으로 동궐도(東闕圖)에 나타나 있는데 지금도 장방형의 벼농사를 짓는 곳이다. 청의정은 초가지붕으로 연못을 이룬 곳에 벼를 심어 왕이 농부의 벼농사를 실제로 체험해보고 그 볏집으로 해마다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 키워드 _ 옥류천, 창덕궁, 실경화, 전통조경
※ 페이지 _ 8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