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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랑이가 출몰하던 황석산 기슭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대리
    내고장 황대리는 황석산을 세세히 훑어 내려온 빛을 제일 먼저 받는 곳. 새해를 제일 먼저 밝히는 황대마을이다. 이곳을‘佛心何助創生先助切人’하고‘日月何照他山先照高山’이라 했다. 즉 부처님의 자비는 어느 사람이라도 다 구해주지만 먼저 공들인 사람을 구하고, 해와 달은 어느 곳이라도 다 비추건만 높은 산부터 비춘다고 하는 자랑스런 곳이다. ‘황대’란 이름은 황씨가 제일 먼저 이 명당자리에 터를 잡았다 하여 붙여졌다. 이 곳에는 세가지의 기이함을 가졌다는 몽천(蒙泉)이란 샘이 있는데 그 특징은 여름에 차고 겨울에 따뜻하고 물맛이 매우 좋으며 물의 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고향 함양군 안의면은 서부 경남의 북쪽에 위치하고 김천, 대구, 진주, 남원 등지와 80㎞이내에 위치한 교통의 요로이다. 이곳에는 황석산(1190m), 기백산 (1330m), 금원산(1353m), 백운산(1279m) 등이 솟아 있고 팔정(八亭: 弄月亭, 東湖亭, 居然亭, 尋源亭, 永思亭, 凌虛亭, 樂水亭, 道溪亭)과 팔담(八潭: 栗林潭, 鐘潭, 月淵潭, 遮日潭, 尋源潭, 鶴潭,龜淵潭, 噴雪潭)으로 유명하다.이 외에 선현들의 명시(名詩)에 나타나는 명소는 광풍루(光風樓), 향교(鄕校), 용문서원(龍門書院), 월연암(月淵巖), 점풍태(點風台), 황석산성(黃石山城), 심진동(尋眞洞), 장수사(長水寺), 용추폭포(龍湫瀑布) 등이 있다. 고향의 명소에 대한 소개는 끝도 없이 많다. 심진학원 안의중학교(필자 1회 졸업생, 모교 1호 박사학위 취득)는 고향의 선각자들이 해방과 더불어 면단위에서는 전국 최초로 설립한 사립중학교(1946년 10월 5일 개교, 1947년 2월 15일 군정청 문교부장 명의)이다. 이와 같은 유지를 받아 모교 출신 유명인들은 박사, 의사, 교수, 국회의원, 변호사,판사, 검사, 육군대장, 대학총장, 경무관등을 배출하였고 지금도 모국의 장래를 위하여 헌신하고 있다. ※ 키워드:황대리, 화림동 농월정 ※ 페이지:64~65
  • 건축적 수경 디자인에 주력 (하워드 필즈 앤드 어소시에이츠)
    생 명의 발생과 소멸이 물과의 근접성에 의한 직접적인 결과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잘 증명해 주고 있다. Howard Field & Associates는 지난 15년간 자연에 가장 근접한 4백 50여개가 넘는 수경시설들을 창조해 왔다. Howard Field & Associates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까지 많은 수상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회사이다. 우리회사는 건축과 조경에 물을 활용하는 수경분야에 전문적인 기술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디자인·엔지니어링 회사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사막형 리조트에서부터 하와이의 우거진 열대 리조트까지 또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도시에서부터 아주 광범위하고 다양한 장소에 이르기까지 아주 특별하고 특출난 환경으로 탈바꿈 시켜왔다. 우리의 목표는 고객업체와 주변 환경의 요구에만 부합하는 설계가 아니라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곳에 있는 것만이라도 활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장소를 계획할 때 그곳의 전통과 문화를 중시하고 과거와 현재의 기술을 조화롭게 접목시켜 각각의 장소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잃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우리가 수행했던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타이완의‘The Waikloa Lodge Resort’ 사이판의‘Pacific Island Club’일본의 ‘Marugame Station’을 꼽을 수 있다. ‘The Waikloa Lodge Resort’는 독특한 산악형 리조트로서 워터파크, 헬스클럽스파, 해변 그리고 식물탐방로를 갖추고 있다. ‘Pacific IslandClub’ 설계시에는 파도타기, 모래풀, 회전풀, 폭포와 계곡 등을 포함시켰으며, ‘Nansay’사이판 리조트에서는 스노클 트레일, , 파도풀, 모래사장 해변 그리고 해양 포유동물 서식지를 만들기도 했다. 중국에서 프로젝트 수행시에는 타워의 네모서리로 연결되는 반사 풀과 입구에 아주 정열적인 분수대를 설계하였다. Howard Field & Associates는 지금까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많은 고객들과 함께 일할 기회를 가졌으며 우리가 수행한 프로젝트는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처럼 아름다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갈망하고 있다. ※ 키워드:하얏트 리젠시 세로마, 밀워키 힐튼 호텔, 블랙호크 플라자, 선셋 비치 리조트 ※ 페이지:48~53
  • 이화원 ; 서태후의 허영을 드러내는 중국황제의 여름 이궁
    소주(蘇州)의 ‘졸정원( 政園)’과 ‘유원(留園)’, 그리고 승덕(承德)의 ‘피서산장(避署山莊)’과 함께 중국의 4대 명원(名園)으로 일컬어지는 북경(北京)의 ‘이화원’은, 수렴청정(垂簾聽政)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태후(西太后, 1835∼1908)의 사치와 욕심을 드러내고 있는 중국 황제의 대표적인 여름 이궁(離宮)이다. 황제가 여름철에 주로 사용하는 이궁이기때문에‘The Summer Palace’로 번안되는 이화원은 북쪽의‘만수산(萬壽山)’과 남쪽의‘곤명호(昆明湖)’로 이루어져 있다. 높이 약 60m에 이르는 만수산의 면적 70㏊와 곤명호의 면적 220㏊를 합쳐 이화원은 약 290㏊의 면적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황궁인 자금성(紫禁城)의 대략 4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곤명호는 일반적으로 이화원 내의 호수 전체를 통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엄밀하게는 호수를 가르는 ‘서제(西堤)’와 ‘17공교(17孔橋)’에 의해 ‘곤명호(昆明湖)’, ‘남호(南湖)’, ‘서호(西湖)’로 구분된다. 각 호수에는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州山)을 상징하는 섬이 1개씩 있어 전체적으로는 3개의 섬을 갖춘 형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형상으로 조성한 이유는 영원하다는 상상의 신선세계를 표출코자 한 것이다. 한편 곤명호, 남호, 서호가 만수산 앞쪽에 위치하는 ‘전호(前湖)’임에 비추어, 만수산 뒤쪽에 동서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소주하(蘇州河)’가 있는 부분은 ‘후호(後湖)’로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호, 즉 곤명호, 남호, 서호가 위치하는 구역을 ‘호경구(湖景區)’라 하고, 만수산을 ‘궁정구(宮廷區)’와 ‘전산구(前山區)’, 그리고 ‘후호구(後湖區)’로 구분함으로써 이화원 전체를 호경구, 궁정구, 전산구, 후호구의 4개 구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 키워드:서태후, 중국황제의 여름이궁 ※ 페이지:68~73
  • 18세기 실경화와 조경
    궁궐. 관아 창덕궁(주합루, 부용정 연못 부근) 창덕궁에 후원이 조성된 시기는 태종 때 이궁(離宮)으로 창덕궁이 창건된 때와 거의 비슷하다. 이후로 창덕궁 후원은 점차 넓혀지고 원내에 여러 건물이 들어섰는데 특히 세조 때 왕이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면서부터 크게 궁장(宮墻)을 넓히고 새로운 연못을 만들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후원은 황폐해졌고 광해조에 들어와 다시 옛모습을 찾게 되었는데 인조 때 옥류천을 새로이 파고 주변에 정자를 만들게 되어 조선왕조의 가장 규모가 크고 풍치 좋은 궁원이 된 것이다. 창덕궁 후원은 옛 기록에 후원 외에 북원(北苑, 北園), 금원(禁苑), 일제 때에는 비원이라고 불려졌으나 조선왕조실록에 가장 보편적으로 불리어진 명칭은 후원(後苑)이었다. 창덕궁에 후원을 건립하게 된 최초의 기록은 태종실록 권11 태종6년 4월 기사조(己巳條)이며 여기에‘창덕궁 동북우(東北隅)에 해 온정(解亭)을 지었다’라고 적혀 있다. 이때는 창덕궁이 창건되고 약 반년이 지난 때인데 창덕궁의 동북우는 바로 지금의 후원의 위치가 된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이 정자에는 전지(前池)가 있어서 이곳에서 연회, 관등(觀燈) 등의 유연(遊宴)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세조 때 왕이 창덕궁으로 이어하고 나자 후원엔 연못이 새로 만들어지고 주위에 정자가 세워지게 되었다. 우선 세조 5년 9월에는 ‘후원에 어(御)하여 좌우로 나누어서 착지(鑿池)하였다’고 하였고 7년 11월에는‘열무정(閱武亭)에 어(御)하였다’고 하여 새로이 연못을 파고 정자가 세워졌음을 알려준다. 열무정 외에도 세조조에는 신아정(新芽亭)이란 정자가 있었고 세조 14년 8월에는 무일전(無逸殿)이란 건물이 지어졌다 ※ 키워드:창덕궁, 부용정, 규장각 ※ 페이지:74~75
  • 생태조경시공기술의 한계와 과제
    작금의 상황은 우리에게 오로지‘생존’만을 강요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체 건설업계의 불경기 속에서 우리는 그래도 버텨 왔고 일반건설업의 조경공사업 면허는 유지할 수 있었으며 업체 의 수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작년같은 상황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예측밖의 현상이다. T.K, P.Q, C.M 등 뜻 모르는 단어의 공사발주방법 때문에 업체간의 수주 경쟁의 차원에서 조경공사업의 수가 늘어났다고 한다면, 전문공사업체의 수적 증가는 과연 어떻게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을까? 이 시기가 지나면 환경에 대한 일반인의 욕구가 팽배해지고 특히 국가적 차원에서의 환경분야 발전이 기대되기 때문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위기의 시대에는 투자를 한다는 일반적 경제논리 속에서, 생태라는 분야에 막대한(?)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으며, G-7 국가선도기술개발사업에 뛰어든 업체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생태는 무엇일까? ‘국내 여건에 맞는 자연형 하천공법의 개발’, 그리고‘도시지역에서의 효율적인 생물서식공간 조성기술의 개발’, ‘길동 생태공원조성’, 혹은‘여의도광장 공원화사업’,‘파이롯트 공장 이적지 공원화사업’, ‘OB맥주 공장 이적지 공원화사업’등에서 볼수 있는‘생태’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한번 재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 불현듯 생각난다. ‘오픈스페이스와 녹지의 차이점은, 영속성 그리고 공공성 등등....... 그리고 도심내의 학교, 공장의 이적지에 대한 공원 조성이 도심지에서 조경의 공간으로 재창출됨으로 인해 도시민이 활용할 수 있는 녹지제공이 가능하게 되어 도시민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으며 때문에 녹지는 도시의 심장(허파)와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또 바라던 그 시대에 살고 있다. 단지 용어가 너무 포괄적이고 생소하여서 문제이지만, ‘친환경적 설계’, ‘생태단지조성’,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공간복원’, ‘생태적조경’등이 이제는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 키워드: T.K , P.Q , C.M , 한병권 ※ 페이지:58~59
  • 생태적 조경과 풍수 ; 전통조경에 나타난 풍수적 한국성은 무엇인가?
    자연을 감상하는 감칠 맛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비가 개인 뒤의 인왕산을 그린 진경산수화로 정선(鄭敾,1676∼1759)만의 독특한 필법과 화풍이 상큼하게 드러났다. 한 번은 이 그림이 일본에 전시되었는데, 몇 시간을 미동도 않고 감상하던 한 일본인이 그림을 향해 넙죽 절을 올리더니 눈물까지 흘렸다는 실화가 신문에 실렸다. 왜 그랬을까? 인왕제색도는 실경을 그린 그림은 확실하나 그렇다고 사진을 찍듯이 모습 그대로를 그린 것은 아니다. 현재 의 인왕산과 대조해 보면, 실경 중에서 작가의 마음속에 함축된 이미지만 취사 선택하였고, 또 작가의 위치도 자연의 정수(精髓)를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가상적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아비뇽의 아가씨들’에서 보듯이 사물을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파괴한 피카소의 안목과도 비교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에 놀라 절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다른 명화에선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천재의 뛰어난 독창성이 무르녹았을 것이다. 그 점은 용인대의 이희중 교수의 시각과도 일치한다. 산수화는 예술 장르 특성상 2차원의 평면으로 표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마음속의 정취(情趣)를 나타내고자 했던 바 삼원법이란 시간적인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구도법을 통해 우리는 2차원의 평면에서 3차원의 공간을 4차원으로 인식할 수 있다. 즉 이동 시점에 의한 운동감과 시간성이 결합된 4차원의 공간인 정원 공간을 체험할 수있다.( 「환경과조경」, 1997년 9월호 즉, 이 그림에서 작가는 화면의 무게중심을 중간의 나무숲에 둔 채, 의연한 양감(量感)이 강조된 주봉은 밑에서 올려다보고, 은자가 머물 듯한 가옥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삼원적 구도로 그렸다. 그 결과 가옥과 중앙의 산능선 그리고 주봉 사이를 비록 공백으로 처리했으나 보기에 따라서는 마치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한 착각을 싱그럽게 선사한다. 하지만 내려다 본 가옥 부분을 가린 채 감상한다면, 이제는 공간이 연무가 아니라 산 중턱을 흘러가는 운무(雲霧)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화면에 나타난 변화와 활력은 사정없이 약해져 버린다. 이처럼 화면에 자연의 생명력과 변화무쌍함을 가득히 불어넣은 탁월한 시각적 구도에 일본인은 탄복했을 것이다. 이와같이 한국 전통 정원의 계획 원리는 삼원적 구도로 설명할 수 있고, 이는 조경에 대한 한국적 풍수관이라 볼 수도 있다. ※ 키워드:전통조경, 풍수적 한국성, 조경의 중심 ※ 페이지:76~79
  • 유네스코가 지정한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우리의 선조들은 아름다운 자연과의 접촉을 위해 도전하거나 변형시키기 보다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애착을 갖고 생활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였다. 즉 자연과의 일체, 조화, 융합원칙에 근거하여 자연을 생활공간으로 승화시켜 자연지세에 순응하고 자연을 이해하는 관념하에서 좋은 자리를 찾고, 그 지역 특유의 자연 정취를 추구하여 왔던 것이다. 이러한 자연주의 사상은 그 속에 축조되는 조형물 역시 물리적인 시설물이 아닌 생명체로 파악했다. 이러한 일관성있는 자연관을 견지하면서 조영된 수많은 역사경관문화재(歷史景觀文化財) 중 1997년 12월 3일 나폴리에서 개최된 21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우리나라의 창덕궁(사적 122호)과 수원성(화성 : 사적 3호)이「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1995년 12월 19차 총회(베를린)에서 등록된 불국사·석굴암, 해인사대장경판·판고, 종묘에 이어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전세계적으로 다시한번 인정받게 된 계기이다. 또한 1997년 9월 타슈켄트에서 열린 유네스코 실무위원회는 우리의 훈민정음과 조선왕족실록 등 20여점의 세계기록문화재를「세계기록문화유산 리스트」에 등재시키는등 부동산 문화재는 물론 민속 또는 기록문화재에 이르기까지 범세계적으로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체계를 강구하고 있다. ‘세계유산(World Heritage)’이란 유네스코(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유산위 원회가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자연 및 문화유산 가운데 현저하게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여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것을 말한다. 1960년 초 이집트는 농토를 늘리고 수력발전을 통해 공업입국을 표방하며 나일강 상류에 아스완댐 건설에 착수했다. 댐이 건설된 후 강 주위에 산재했던 아부심벨과 필레신전 등 귀중한 고대 누비아유적이 수장될 위기를 맞게 되었으며 이집트 정부는 유네스코에 도움을 요청했고, 유네스코는 누비아유적 보호를 위한 국제적인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 당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파키스탄의 모헨조다로 등도 긴급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유네스코는 국제협력을 통해 문화유산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키로 하고 1972년 11월 17차 유네스코 총회에서「세계유산협약안」을 상정·제정하게 되었다. 이 협약에는 모든 문화 및 자연유산의 손괴와 멸실은 세계 유산을 빈곤화시키며 이귀중한 유산을 보호하는 것이 세계 국민을 위해서 특별한 가치를 갖고 있으므로 전 인류를 위한 세계유산의 일부로서 보존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유산보호가 국제사회 전체의 임무라 판단되어 협약을 제정케 되었음을 밝혔다. ※ 키워드: 불국사, 석굴암, 해인사, 수원서 ※ 페이지:80~86
  • 도심의 틈새공간 포켓공원 ; 도시인의 랑데부 플레이스
    세계 제일의 도시이자 미국의 관광 1번지인 뉴욕. 이 도시에 일반적인 관광으로는 만나기 힘든 아주 아름다운 공간들이 있다. 바로 뉴욕의 포켓공원(Pocket Park)들이다. 포켓공원은 빌딩 숲의 모퉁이에 감추어진 자그마한 휴식공간이다. 센트럴 파크와 같은 대규모 공원이 아니면서도, 시민들의 일상생활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오아시스와 같은곳이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이야기하며 독서를 즐기는 포켓공원은 아주 작은 규모로 만들어지며 시내 중심가의 빌딩틈새 곳곳에 숨겨져 있다. 일반적으로는 자연과 함께 숨쉬는 장소로 계획하여 길, 물,나무, 조각, 벤치와 같은 요소를 도입하고 있는데 정보를 교환하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장소, 각종 이벤트가 일어나는 문화의 장소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포켓공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기 다르다. 이른 아침 비즈니스를 위한 미팅을 하기도 하고 밤에는 파티를 연다. 연인들은 이곳에서 만나고 사랑을 한다. 도시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 키워드: 팔리 파크, 엑슨빌딩의 배런 플라자, 선큰 가든 ※ 페이지:66~67
  • 나의 길 나의 직업 ; 설계 익히기와 가르치기
    형(形) 만들기의 영원한 화두 -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나의 대학 시절, 설계란 무엇이고 형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건축학도에게 있어 대학에서의 설계교육이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적을 두고 있던 서울공대 건축과에는 이광노·김희춘 두 분의 교수가 스튜디오를 담당하였는데 설계시간은 거의 방임하는 상태였고 우리끼리 알아서 혹은 선배의 도움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대학 4년에 두 개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하나는 경주시 도시와 건축의 설계였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 건축대전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국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나는 4명이 한 조가 되어 소위 ‘마가팀’ (마스터플랜팀을 이렇게 불렀고 이와 라이벌로 건축가 김원이 중심이 되어 불국사 쪽을 담당한‘불가팀’이 있었다)을 만들어 작품전시회를 했고 그 팀 그대로 ‘학생촌 계획’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국전에 출품하여 당시 건축과 5팀중에서 유일하게 특선을 차지하였다. 그 프로젝트는 미술공예스튜디오, 교육관, 기숙사등이 포함된 일종의 디자인 공방인데, 며칠이고 밤을 새워 모델로 연못을 만들고 산책길을 포장하던 기억이 난다. 아마 이때부터 조경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만든 졸업설계는 내 개인 작품인데 역시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소박한 단층의 클럽 하우스로서 단지설계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리 팀의 조장 격인 손학식은 도미하여 세계적인 포스트모던 건축가인 게리(Frank O. Gehry)설계사무소에서 십수년을 일한 뒤 LA에 자기 사무소를 열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생활을 하고 있다. 김무현은 오랫동안 건설회사에 근무하다가 몇 년전 역시 설계사무소를 개설하였고 김원일은 보수적인 워싱톤 DC에서 20여년간 일하다가 최근에는 미8군내의 암코(America-Korea)회사에서 설계 일을 하고 있다. 4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수시로 만나 처음 건축을 시작할 때의 정열을 가지고 건축관, 건축세계, 건축작품에 대하여 격론을 벌인다. 언젠가 우리 다시 모여 이 시대를 대표하는 멋있는 건축을 만들자고 다짐하면서. ※ 키워드: 형만들기, 아폴로적인 것, 디오니소스적인 것 ※ 페이지:30~35
  • 육지로부터 오염되는 제주시 남국의 정취 간직한 서귀포시
    90년간의 몽골의 침략으로 대륙문화의 흔적이나 육지에서와 같은 교육·종교시설도 없지 않지만, 주로 자연환경에 저항하고 순응하기 위한 현실적 삶의 표현이 지역의 정체성으로 남아 섬 문화의 특성을 보여주게 되었을 뿐이었다. 오늘날에 와서야 지난날의 처절했던 삶의 지혜가 지역의 독특한 관광요소로 변하였는데, 신산(新山)공원에서와 같은 올림픽 채화 기념공간의 조형물이나 민속 자연사 박물관과 같은 건축물의 재료와 외관표현은 수 천년 내려온 이곳 서민들의 생활지혜보다도 못한 미숙한 표현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난날의 흔적이나 환경과도 타협적이지 못한 표현은 해안도로변의 공원 시설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오히려 주변의 원시적 풍경을 해치지 않고 안전과 편익만 보완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이 편안할 정도로,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은 주변을 지배하고 있었다.흐트러진 돌담가에는 갈대가 휘날리고 현란할 정도로 짙푸른 바닷가의 바위에는 흰 포말이 뿌려지고 있는데 오염된 서구형의 시설은 그림만 망칠 뿐, 지역 특유의 강인한 의사표현으로서의 조형물이 아쉽기만 하였다. 비교적 작게 대지에 엎드려 있으며, 반투명으로 서로 의지하면서 가늘게 세워진 이곳의 조형적 특징을 신(神)이 선물한 환경의 특성과 절묘하게 조화시키기보다는 아직까지도 천박한 육지의 조형물에 미련을 갖고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하였다. ※ 키워드 : 장태현, 공원따라발길따라, 제주, 서귀포, 아내 ※ 페이지 : 7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