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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유감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종로의 성격을 보존하는 일은 단지 몇몇 사람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종로를 진정 우리의 역사·문화공간으로 가꾸기 위해서는 행정가의 용단이 필요하고 자본가의 문화적 안목과 배려도 요구된다. 얼마 전 잃어가고 있는 종로의 모습을 살리고자 지역상인과 시민단체가 모여‘종로연대’를 결성하였다. 이러한 시민운동이 제대로 운영될 때 지역성을 보존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자본의 힘에 대항하는 문화의 힘은 무엇보다도 일반 시민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기울이는 관심과 애정에서 나올 것이다.
※ 키워드 _ 종로, 역사, 문화공간, 종로연대
※ 페이지 _ 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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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영향평가제도 현황과 문제점
일련의 국제·국내적인 동향과 상황의 전개는 환경영향평가제도가 ESSD를 기본이념으로 하여 새로운 차원에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도구로서 재정립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메시지라 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환경영향평가제도의 본질과 한계점, 국내외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시행현황을 통해본 우리나라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주요 문제점과 개선을 위한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 키워드 _ 환경영향평가제도, 환경영향평가의 시행현황과 문제점, ESSD
※ 페이지 _ 14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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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정보화시대를 맞는 조경인에게
조경인들이 새 천년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중의 하나가 한국의 전통성을 오늘의 조경과 미래의 조경에서 어떻게 계승할 것이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평범한 진리에 비추어 볼 때 가장 한국성을 잘 나타낸 조경작품이 가장 세계적인 조경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키워드 _ 양병이, 신년메시지, 환경? 정보화시대를 맞는 조경인
※ 페이지 _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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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설계언어:프랑스 ; 경관에서 탈 경관으로
오귀스탱 베르크는 일본 문화에 정통한 학자로서 일본의 경관 인식을 오랫 동안 연구해왔다. 특히 인간과 우주를 결합하는 매체인 기(氣)와 유사한 개념인 메디앙스(Medianc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서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시아의 독특한 경관 개념을 서구의 사고 체계에 결합시키고자 했다. 그의 조경 이론을 보면 일본의 도시계획 뿐만 아니라 중국의 화론에 나타나는 기(氣)에 대해서도 서구식 관점으로 해석하며 폭넓은 이해를 시도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수 있다. 서구의 조경학에 대해 여전히 거리감을 두고 있는 아시아권의 조경학계와 비교해 볼 때 서구와 아시아의 경관 인식 양쪽을 동시에 수용하며 새로운 지평을 탐색하는 그의 력은 시사해주는 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시대, 세계의 경계가 점점사라지고 분석보다 종합적 태도가 더 많은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시대, 과학 위주의 사고 방식 보다 과학과 예술을 접목하는 신사고를 요구하는 현 시대에 맞는 조경학의 방법론을 한번 점검해 볼 때인 듯하다. ※ 키워드: 오귀스탱 베르크, 설계언어, 설계이론가 ※ 페이지: 6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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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c.c.전경(경기도포천)
e-매거진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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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관련 자격제도 개관
본지는 이번호부터 조경기사와 기술사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위해 시험 정보를 매달 게재한다. 이 연재는 조경기사 실기시험 출제경향과 기술사 기출문제 및 출제경향 등이 소개될 예정이며, 이번달은 그 첫회로 올해 시험일정과 전반적인 조경 관련 자격증 제도에 대해 소개한다.
※ 키워드 _ 조경관련 자격제, 조경기사, 조경기술사, 조경관련 자격증
※ 페이지 _ 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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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도시 베네치아
이탈리아의 진주’ 또는 ‘아드리아(Adria)해의 여왕’으로 불리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 영어로는 베니스(Venice). 한번 방문한 사람은 몇 번이라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아직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은 일생에 한번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 베네치아. 우리에게 흉노족(匈奴族)으로 알려진 훈(Hun)족의 침공을 피해 이탈리아반도의 주민들이 아드리아해의 개펄로 이루어진 섬으로 이주해 온 425년이 베네치아 탄생의 기원이다. ‘세계에서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 유일한 도시’인 베네치아에서는 다리품을 팔거나 배를 탈 수 밖에 없는데, 이곳에서는 간선도로나 국지도로의 분류와 같은 도로의 위계보다는 수로 의 위계에 따라야 한다. 큰 운하로는 ‘바포레토(Vaporetto)’라 불리는 수상버스나 ‘모토스카피(Motoscafi)’라 불리는 수상택시가 주로 운항하고, 작은 수로로는 베네치아의 상징인 ‘곤돌라(Gondola)’가 다니고 있다. 무더웠던 여름의 끝을 마무리 짓는 것은 매년 9월의 첫째 일요일에 벌어지는 배의축제인 ‘레가타’ 이다. 대운하에서 펼쳐지는 이 화려하고 웅장한 야외축제에서, 그 옛날 찬란했던 베네치아의 영광과 물의 도시만이 갖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다. 화려하게 치장된 수많은 배들의 물결을 이룬 운하 주변은 상기된 얼굴의 활기찬 사람들로 넘치고 거리에는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갖가지 배들이 대규모로 퍼레이드를 펼친 후에 행해지는 곤돌라 경주가 레가타의 정점인데, 경주의 기원은 “옛날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슬라브(Slav)족에게 빼앗긴 젊은이들이 신부를 다시 빼앗아 곤돌라에 태워 데리고 왔다”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배가 주요 생활수단인 베네치아에서 배가 축제로 승화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3백50여 개에 이르는 다리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는 대운하의 중간 지점에 있는 ‘리알토(Rialto)’다리인데, 원래는 목조였으나 1592년 석조로 개축된 아치형의 아름다운 다리이다. 영화 스크린에도 자주 등장하는 리알토다리에서 물안개 피어오르는 정취를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방문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감어린 흥취를 영원히 향유할 수는 없다. 지반이 약해 도시 전체가 계속 가라앉고 있어, 언젠가는 물속에 잠겨 우리 눈에서 사라질 슬픈 운명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 키워드 : 베네치아, 물의도시 베네치아, 베니스 ※ 페이지 : p138~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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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공주의 역사경관
우리나라 고도(古都)의 옛 성이나 왕릉주변에는 지형적 문화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단지 즉흥적 편의주의에 따라 생겨난 국적 없는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이러한 반문화적·반역사적 상황은 백제웅진시기(475~538)의 도성이었던 공산성 주변에서도 예외 없이 펼쳐지고 있다. 공산성은 비록 64년이라는 짧은 기간의 도성이었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개로왕이 전사한 후 남쪽으로 천도하여 비로소 안정을 되찾고 사비시기를 열기 위해 백제 왕실이 힘을 키웠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산성의 역사성이 무질서한 주변 환경 때문에 크게 훼손되고 있다. 현재 성의 북문지를 복원해 놓았으나, 선진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 성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산성에 인접해 있는 무질서한 상점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쾌감마저 들게 한다. 외지에서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런 거리 풍경에 누구나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즈막한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공주만의 포근한 주변 환경과 오래된 고도로서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걸맞지 않는 거대한 석조물도 최근 축조되고 있다. 조형물 자체의 예술성을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이 거대한 (물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조형물은 도시 전체의 조화를 단번에 깨뜨린다. 갑자기 시야가 답답해 지고 가슴이 막혀온다. 공주의 역사와 자연 환경을 염두에 두고 제작이 이루어진 것인지 의심스럽다.
오늘날 지역개발사업체는 흔히‘문화재 보존’이나‘환경 보호’등을 일종의 장애물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다. 문화재 보존이나 환경 보호는 사유재산권 행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건축이나 지역 편의주의적인 개발과 서로 대립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기관 내의 건축부서와 문화재부서의 정책이 간혹 상충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경우 한결같이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문화유산을 다양한 관광자원으로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의 예를 보면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할지 그 방향이 감지된다. 그들이 여러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해결책을 참고하는 것이 우리에겐 보다 지혜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여러 전문가를 참여시켜 전통과 현대의 기능이 조화된 바람직한 도시설계와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민간인들은 사유재산만 고집하기 보다는 무엇보다 도시 속에서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겸허함을 마음깊이 새겨야 한다. 사람들간의 조화 못지않게 건물간의 조화와 아름다움 역시 후손들에게 남겨주어야 할 소중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 키워드 : 공산성 북문지, 공주, 백제
※ 페이지 : p132~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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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실경화와 조경
경희궁(慶熙宮)은 임진왜란으로 말미암아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궁궐들이 소실되자 경운궁(慶雲宮), 즉 지금의 덕수궁과 더불어 새로이 창건한 궁궐이다.
1592년에 일어났던 임진왜란이 끝난 후 피난지에서 환도한 선조(宣祖)는 거처할 곳이 없어 궁터를 물색하다 월산대군저(月山大君邸)에 지금의 덕수궁인 경운궁을 세우고 창덕궁과 창경궁을 중건하였다. 그러나 경복궁은 불길한 궁이라 하여 중건하지 않았다.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창덕궁과 창경궁의 중건을 마치고도 창덕궁 역시 불길한 궁이라 하여 입어(入御)하지 않고 경운궁에 장기간 머물었다. 이때 광해군은 신궁조영(新宮造營)에 강한 의욕을갖고 있었고 때마침 지상가(地相家)인 괴승(怪僧) 성지(性智)와 풍수지리에 정통한 명나라 사람 시문용(施文用)이 인왕산하에 신궁을 조영할 것을 건의함으로써 광해군 9년
(1617) 1월 인왕산하 사직(社稷)의 동쪽 담을 골라 민가 수천 채를 철거, 팔도의 목재를 징벌하였으며 1천의 승군(僧軍)을 동원해서 자수(慈壽), 인경(仁慶) 양궁의 창건을 시작하였다. 동년 6월에는 왕기(王氣)가 새문동(塞門洞)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승려 성지(性智)의 말을 믿고 광해군의 아우인 정원대군(定遠大君)의 저택을 철거, 궁궐을 짓기 시작하니 이것이 바로 경덕궁(영조때 경희궁으로 개칭)의 창건이다. 광해군 9년 6월12일 궁궐명칭을 서별궁(西別宮)으로 칭했고 동왕 동년 7월 29일 서별궁의 궁호(宮號)를 정하여 경덕궁(慶德宮)이라 했는데 이후에 인경(仁慶), 자수(慈壽), 경덕(慶德)의 삼궁(三宮)을 기공하였다.
광해군 14년(1622) 6월에 주로 전문(殿門)은 낙성된 듯 하나 동왕15년 3월 인조반정으로 인해 광해군 자신은 신궁에 입어(入御)해 보지도 못하고 말았다. 16대 인조는 반정직후 광해군이 백성들의 원한을 사면서까지 건립한 인경궁(仁慶宮)과 자수궁(慈壽宮)은 폐궁하였으나 경덕궁은 그 자리가 인조의 사친(私親)인 정원대군의 잠저(潛邸)였기 때문에 이궁(離宮)으로서 그대로 유지하였다. 인조 2년 이괄의 난을 당한 후 그해(1624) 2월 20일 피난지에서 돌아오면서 경덕궁에 들어오니 이것이 경덕궁이 왕궁으로서 국왕을 맞은 시초이다.
이리하여 경덕궁은 인조 2년 이래로 역대의 왕궁이 되었으며 영조 36년 경희궁으로 개칭되었고 1910년 일본인의 손에 의해 완전 해체될 때까지 파란곡절의 역사를 보냈던 것이다.
경희궁은 순조 29년 회상전(會祥殿)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융복전(隆福殿), 흥정당(興政堂), 정시각(政始閣), 집경당(集慶堂), 사현각(思賢閣)까지 태우고 궁궐의 태반이 훼손되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이에 순조는 곧 중수에 착수, 31년 그 완성을 보았지만 고종 26년에 숭정문(崇政門)에서 또 발화하여 행각사십간(行閣四十間)이 타버려 황폐화되고 말았다. 이후 일제는 조선의 여러 궁궐중에 유독 경희궁만 완전히 해체시키고 사료를 모두 없애버렸다. 그후 1910년 11월 1일 경희궁 자리에 경성중학교가 조선총독부중학교로 개칭되어 교사를 옮겼고 1978년 5월 서울 중·고등학교가 이전하면서 현대에서 매입, 1980년 9월 국가지정 사
적 제271호로 지정되었다. 경희궁의 지금 정문인 흥화문(興化門)은 일제시대 장충동 이등박문의 사당 정문으로 사용되었다가 해방 후‘영빈관’이라 하여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던 것을 뜯어 이전 복원한 것이다. 또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正殿)으로 원래의 건물은 동국대학교에서 법당으로 사용하는 정각원이며 이것을 실측 복원한 것이다. 그림「서궐도안 모사도」는「서궐도안」을본으로 삼아 이강근, 정병화, 김일훈, 홍성천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 키워드 : 18세기 실경화, 18세기의 조경, 경희궁
※ 페이지 : p144~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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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또는 애니메이션
나는‘생태’라는 말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을 전부터 품고 있었다. 왜냐하면 말이라는 것은 한참 지나면 그 뜻이 복잡해지거나 헝클어지지만, 생겨난 초기 단계에는바탕이 되고 뿌리가 되는 뜻을 간명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그 정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중국그림 이론서를 보다가 이 말을 찾아내고, 그 뜻을 새겨 보면서 어원은 아닐지 몰라도 무척 그럴 듯한 생각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고 중국 청나라 시절의 유명한 화가인 석도(石濤)가 쓴 다음 글에 나오는 말이다.
如空山杳冥無物生態借此疎柳嫩竹
橋梁草閣此借景也
지금과 같은 초겨울, 또는 이른 봄, 온 천지만물이 다 자는 것 같고 다 죽은 것 같은 경관이 어디를 가나 펼쳐져 있는데, 살아있는 꼴, 생태를 알려 주는 어떤 작은 사물이 있다면 그 경관이 살아 있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석도는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하여 버드나무나 어린 대나무 등이나, 사람이 있음을 암시하는 다리나 초가집 등을 그려 넣음으로써, 즉 어둡고 막막한 가운데 어떤 생태가 있음을 표현함으로써 그림 전체를 살아 있게 하는 기법을‘借景’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것은 주마등이나 만화영화보다 훨씬 더 높고 깊은 차원의 애니메이션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것은 생태학의 무정한생태보다 훨씬 더 생태의 진수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조경을 함에 있어 생태를 ‘살아 있는 꼴’로, 그리고 그 생태를 만드는 일을‘애니메이션’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사실 이 생각의 단초는 꽤 오래 전에 생겼는데, 아마도 나 스스로 자각한 것은 1983년 문화재관리국의 정재훈 선생이 의뢰하여 작업했던『소쇄원 복원 및 정비 기본설계』에 참여할 때인 것으로 생각된다. 소쇄원 원주인 양씨 댁에 전해오는 문집을 읽어 가며 소쇄원의 원래 상황을 재현하느라고 한 겨울 시름하는 중에 애니메이션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양산보 선생이 어릴 적 계곡에서 놀았던 정경, 낙향하여 조원을 하는 정경, 광풍각 아래 너럭바위에서 시를 읊고 차를 드는 정경 등을 상상해 보면서 소쇄원을 살펴보니, 훨씬 더 실감날 뿐 아니라 정감나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후 대우재단의 연구비를 받아『조선조정원의 원형 연구』를 하면서 전국의 여러
이름난 정원을 찾아가서 비슷한 체험을 하고, 그 연구 성과를 가상현실 속의 정원인 ‘離世園’으로 표현해 보면서 좀 더 구체적인 체험을 나타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과거에 사람이 살아가던 집과 정원, 그래서 그때는 살아 있던 집이나 정원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고 삶의 흔적만 어슴푸레 남아 있는 집과 정원, 알맹이가 없이 껍질만 남아 있는 집이나 정원, 그래서 속절없이 퇴락하면서 자연 속으로 사라지는 집과 정원에 숨을 불어넣어 되살려 보는 작업이었다.
그 후 학생들과 함께 수원성, 양동 마을 등을 소재로 하여 일종의 픽션을 만들어 보는 작업을 해보면서 그 가능성을 점점 더 확인할 수 있었다.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묵은 집과 정원을 되살리는 작업뿐아니라, 새로 집과 정원을 만드는 작업에서도 이러한 작업이 가능함
을 실험해 보기로 하였고, 그래서 나온 성과가 바로『원주 토지문학공원』이다.
※ 키워드 : 황기원, 생태, 애니메이션, 토지문학공원
※ 페이지 : p30~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