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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조경비평상 심사평
조경비평 봄 심사
생각을 말이나 글로 잘 표현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머릿속 생각은 도서관의 서가처럼 항상 잘 정리된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성급한 말로 튀어나오거나 다듬어지지 않은 글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자신의 머릿속에만 머물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의 문제이며 통제가 가능하지만 말이나 글의 형식으로 표출되는 순간, 듣고 읽는 이와의 ‘관계’가 성립된다. 사람의 말과 글은 소통을 전제로 하기에 태생적으로 고도의 사회적 행위에 속한다.
때때로 말이나 글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갖는 고민이다. 요즘같이 IT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삶 속 깊이 침투한 상황에서는, 말과 글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져 당황하기도 한다. 글이 말보다 앞서는 시대, 말이 문장으로 정제되지 않고 즉흥적으로 문자화되는 시대를 살면서, 좋은 글과 좋은 문장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
올해의 조경비평상 공모에는 세 명이 응모했고, 예년과 마찬가지로 조경비평 봄의 회원들이 심사를 맡았다. ‘비평’은 일상의 글쓰기와 다르고, 더욱이 ‘조경’이라는 복잡하고 모호한 대상을 비평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라서, ‘조경비평’은 어려운 글쓰기임이 분명해 보인다. 하나의 대상을 보더라도 설계 작업과 설계자, 그것이 구현되는 장소, 장소와 관련된 사회적 맥락,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각, 이 모든 과정에 개입하는 행정 행위 등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로 인해 어떤 측면을 겨냥해 가치 판단을 논해야 할지 글을 쓰는 입장에서 난감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글의 완성도나 공모의 수상 여부를 논하기 전에,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조경비평상에 응모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0호(2019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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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질문]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한 독서 모임에서 ‘번역’의 문제를 다룬 책에 대해 토론을 했다. 이 질문 역시 어쩌면 번역의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경(造景)’이라는 한자어는 언제부터 이렇게 번역되어 쓰였을까. 요즘 ‘정원’, ‘가드닝’이 뜨면서 조경이라는 말과 뒤섞여 사용되다보니 그 뜻이 더욱 모호해진 것이 사실이다. 덩달아 ‘조경가’, ‘조경 설계’ 같은 말들로도 의미 전달이 잘 안된다. 제법 긴 설명이 필요하다. 명함이나 프로필에 ‘조경건축가’라고 쓴 적이 있다. 딱히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라도 무슨 일을 하시냐는 질문은 좀 뜸해졌다. 번역의 문제인지 용례의 문제인지, 아무튼 이 질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영국의 사례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한국조경협회와 상응하는 영국의 단체 이름은 ‘Landscape Institute’다. 영국에서 학과 단위로 독립된 조경학과는 유일하게 셰필드 대학(University of Sheffield)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학과 이름은 ‘Department of Landscape’다. 이 같은 전문가 단체와 대표 교육 기관 모두 우리의 조경협회, 조경학과와 동일한 의미와범위를 갖는다. 물론 이들이 “우리 업역을 명확하게”, “학과를 지원하는 수험생들이 쉽게 인지하도록” 등의 이유로 ‘Architecture’를 더한 ‘Landscape Architecture Institute’, ‘Department of Landscape Architecture’로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결과는 협회 회원과 학과 교우회의 압도적 반대로 무산. 왜일까? “결국 우리 업역을 제한하게 될 것이다”, “학제 간 교육이 필요한 우리 학생들에게 ‘조경’만을 가르치라는 말인가?” 등이 다수 의견이었다. ‘조경’이 ‘조경가’의 사고와 신념의 범위를 담기에는 적어도 그들 생각에는 충분하지 못했던 듯하다.
정해준 계명대학교 교수
조경의 이름이 부끄럽다면 그것은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일들이 비루했기 때문일 것이며, 조경의 이름이 자랑스럽다면 그것 역시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일들이 찬란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경의 이름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고 자랑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조경이 스스로의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돌이켜보면 그 이름은 내가 조경의 이름으로 행한 부끄러운 일들과 자랑스러운 일들을 담기에는 충분했다.
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조경의 의미를 담는 이름이 부족하기보다 그 의미를 전달하는 우리가 부족한 게 아닐까?
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조경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니 누군가 그런 것도 박사가 있냐고 되묻길래 당황한 기억이 있다. 1970년대 ‘Landscape Architecture’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래 있던 ‘조경’이라는 말을 가져다 썼고, 이 용어가 더 넓은 범위의 토지, 도시, 경관 디자인을 포함하지는 않으니 완벽한 번역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름이 잘못 지어졌다고 푸념하기엔 한국 조경이 태동한 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간 우리 분야의 전문성을 제대로 대중에게 인식시키지 못한 건 아닐까. 조경이란 말이 현재 근사하게 통용되고 있다면, 과연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명준 기술사사무소 이수 연구소장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꾸밀 수 있다면 충분해지지 않을까. 조경으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면 말이다.
남수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팀장
유물의 형태를 가리키는 말 중에 ‘완(盌)’이란 단어가 있다. 그릇이나 대접, 주발이라는 용어가 있지만 가장 많이 통용된다. ‘조경(造景)’은 그 의미를 담기에 모자란 느낌이지만 너무 많이 사용되는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김충식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우리가 아는 ‘조경’은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이다. 그런데 그 의미 있는 이름을 쓰지 않는 조경 분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원 디자이너’,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 ‘랜드스케이프 건축가’, ‘경관 건축가’, ‘경관 계획가’, ‘농촌 계획가’, ‘가로 시설 디자이너’, ‘어린이 놀이 전문가’ 등이다. ‘공원 전문가’와 ‘공원 디자이너’는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 ‘조경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름은 자신을 나타내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그 이름 ‘조경’이, 그가 하는일을 한정하고 제한하는 상황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조경’과 우리가 아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아는 ‘조경’이 같아지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우리가 ‘공책’을 ‘연필’로 부르자고 설득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아닐까?
최정민 순천대학교 교수
조경이란 단어가 쓰인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그 의미는 건설의 조경, 훼손된 경관을 꾸미는 분야로 특정 지어졌다. 조경이란 이름으로 생태 복원에 참여하려 하면 생물, 생태, 환경 공학 분야로부터 배척당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조경은 생태계 기본 원리에 따르기보다 공간을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기에, 환경 복원 분야에 조경이란 이름으로 참여하면 전문성을 내세우기 곤란하다. 근래 조경이라는 이름에서는 과잉성도 엿보인다. 아파트 조경을 비롯한 대규모 조경 공사에서 시공 초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과도한 식재를 한다는 비판이 들린다. 과잉 섭취로 인한 병으로도 사람이 죽는 시대다. 지나치게 높은 밀도로 오히려 경관을 해치고 식물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홍태식 한국생태복원협회 회장
명명이란 행위는 단순하지 않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저 있기만 할 뿐 인지되지 않았던 대상을 수많은 대상으로부터 선택하고 분리하여 특정한 존재로 불러내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대상에 이름을 붙일 때는 그의 정체성을 온전히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며, 파악한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적확한 개념어를 찾는 일이 이어져야만 한다. ‘조경’이라는 명칭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는 것은 아마도 이 용어가 지칭하는 행위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 인식은 본래부터 ‘조경’이란 용어가 실재하는 행위를 온전히 포괄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난 40여 년간 조경이란 분야가 다루는 영역이 확장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건 ‘조경’이란 이름이 적확한 명칭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이름은 무엇일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적절한 이름이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경’이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기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인식은 변화의 시작이다. 몇 년 후면 한국 조경도 50돌을 맞는다.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한국 조경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조경’이란 명칭의 적절성에 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진환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과장
유튜브를 실행한다. ‘조경’을 검색하고, 조회순 정렬을 클릭한다. 가장 위에 위치한 영상의 제목은 “최상의 조경! 강원도 횡성군 별장 전원주택 연수원 매매”. 조회수는 무려 33만이다. 영상은 약 6분 정도 진행되며, 말없이 5,000평 고급 별장의 외부 공간을 살핀다. 뒤로 돌아가 스크롤을 내린다. “래미안의 클래스를 경험하라”는 제목으로 아파트 조경을 홍보하는 여섯 번째 영상과 미국의 건축 평론가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Sarah Williams Goldhagen)의 책『공간 혁명』을 소개하는 여덟 번째 영상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상 제목에 ‘주택’과 ‘조경’이 함께 놓인다. 전공자가 기대하는 영상은 스크롤을 한참 내려도 찾기 어려운 걸 보니, 유튜브 세계와 전공자의 머릿속 간극은 꽤 넓어 보인다. 이제 질문에 대답해보자. ‘조경’은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하지 않은 이름이다. 유튜브 안에서도.
이형관 서울시 동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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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82년생 김지영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2010년대에 때아닌 금서라도 나타난 것일까?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 소녀시대의 수영, 배우 서지혜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개인 SNS 계정이 악성 댓글로 도배되며 갖은 모욕적 언사에 시달렸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출연한 배우 정유미도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들의 ‘죄목’은 공인으로서 페미니즘 성향을 드러낸 것이지만, 같은 책에 대한 감상을 공식적으로 밝힌 남자 국회의원과 대통령, 보이그룹 멤버를향해서는 이 같은 비난적 여론이 가시화되지 않았다. 책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공감’과 ‘혐오’ 양극단을 달리며 갈수록 합의점에서 멀어졌다. ‘내 이야기다’, ‘엄마 생각이 난다’는 의견이 속속들이 나오는 가운데 ‘여친이 ‘82년생 김지영’ 보자는데 헤어져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웹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청와대 게시판에는 소설의 영화화를 반대하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백만 명이 넘게 봤다고 해도 좀처럼 책을 읽을 의욕은 나지 않았다. 유행에 편승하고 싶지 않은 심보도 한몫 했지만, 극성 페미니스트라고 낙인찍히는 것도 골치 아프고, 피해주의에 매몰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혼의 1992년생에게 경력 단절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책은 뻔한 불행을 예고하는 점괘나 다름없었다. 출간부터 계속된 논란이 영화 개봉으로 정점을 찍으며 누그러질 즈음, 안 봐도 본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을 뒤로하고 뒤늦게 책을 펼쳤다. 책장을 넘기며 곳곳에 놓인 차별의 지점에 멈춰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고 때론 의구심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복잡해진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논란이 이해되면서도 책에 대한 공감 자체가 공격당하는 점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소설 도입부의 시점은 2015년 가을, 두 살짜리 아이를 둔 서른 네 살의 김지영이 다른 영혼이 빙의된 듯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할 때다. 이후의 이야기는 그 원인을 찾으려는 듯 지영이 태어난 시점으로 돌아가 시간순으로 전개된다. 지영의 문제는 비가시적이고 과소평가되기 쉬운 마음의 질병이다. 작가는 한 사람의 고통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기엔 효용성이 떨어지는 노선을 택한다. 중간중간 남아 선호 사상,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 등이 등장하나 지영에게 ‘결정적으로 위협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물 설정도 극적이지 않다. 주인공은 크게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자라나 원하는 대학에 가고 (회사의 장기 프로젝트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되기 전까지는) 직장에서도 인정받는다. 막장 드라마에 나올 법한 못된 시어머니도 없고, 남편은 자상하다. 여성이라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치명적인 사건’을 배제한 채 일상의 흐릿한 위기를 다룬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 소설이 더 많은 이에게 공감 혹은 외면 받는 원인이기도 하다. 조남주 작가는 10년 동안 방송 작가로 일하다 육아로 일을 그만둔 시기에 이 소설을 썼다. 그가 그린 미세한 차별과 폭력은 여성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상황인데,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니라 여겨온 것들이다. 어린 지영을 괴롭히는 남자애를 두고 “널 좋아해서 그렇다”며 다독이는 선생님,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그만한 직장 없다”며 지영의 언니에게 교대 진학을 권하는 부모님, 집안일이든 육아든 “열심히 도와주겠다”며 지영의 퇴사를 자연스러운 일로 인식하는 남편의 모습이 그 예다. 특정 성별에 대한 비난이 담겼다는 지적은 소설의 본질을 흐릴 뿐이다.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지영이 임신이 잘 되도록 약 한 재 지어주라는 고모, 지하철에서 임신한 지영을 보고 불쾌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젊은 여자처럼 지영의 고충에 가담하는 인물은 남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책 속 인물과 상황은 고착화된 관습이나 혐오적 시선, 근본적인 구조 문제를 인격화한 문학적 장치에 가깝다.
공공연히 알려졌다시피 소설의 결말은 무력하다. 마지막 장에 서는 앞선 이야기가 지영과 그의 남편이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한 내용임이 드러난다. 의사는 지영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안과 전문의였지만 일을 그만둔 채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자신의 아내를 돌아보고, 지영을 이해하며 응원한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쉽다. 곧바로 그는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라며,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대한 작가의 자포자기한 심정일까? 그보다는 우회적 화법을 통해 ‘(무엇이 차별인지) 알지만 실은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읽힌다. 작가는 어쩌면 이것을 말하기 위해 김지영의 삶을 지나 먼 길을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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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쉽게 미워하지 않기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면 많은 이들을 미워하며 산다.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스치는 사람들이 애꿎은 표적이다. 내 어깨를 핸드폰 거치대처럼 쓰는 사람, 더 이상 여유 공간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지하철에 몸을 밀어 넣는 사람. 평소라면 이해할 법한 일에도 화가 치민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미워할 이유를 찾다 보면 금세 밤이다. 잠들기 직전에야 내 모습이 부끄러워 귓가가 홧홧해진다. 지친 몸은 자꾸 마음을 쪼그라트린다. 보기 싫게 찌그러진 마음의 날은 엉뚱하게도 지하철이나 길거리의 사람들을 향하곤 한다. 갖가지 까닭을 붙여 내가 쉽게 미워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린 딸을 둔 친구가 내게 건넨 고백이 떠올랐다. 작은 동물이 면 사족을 못 쓰던 친구는 한동한 강아지를 미워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와 공원에서 쉬다 마주친 행인이 마음을 온통 들쑤셔 놓은 탓이었다. 낯선 행인은 아직 걷지도 못하는 친구의 딸을 가리키며 신발을 신고 벤치에 오른 몰상식함을 지적했다. 대꾸할 틈도 없이 저만치 멀어진 그를 공원 입구 부근에서 다시 만났다. 함께 산책하던 강아지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웃고 있었다. 땅 한 번 디딘 적 없어 깨끗한 딸의 신발과 벤치와 흙바닥을 신나게 오가는 강아지의 발을 번갈아 보고 있자니, 강아지가 그렇게 미워졌다고 했다. 작은 동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미움이 커졌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힘없는 무언가를 미워하는 건 참 쉬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어린이나 강아지처럼 제 의견을 낼 수 없고 대항할 능력도 없는 경우, 미움은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운다. 최근 SNS를 소란스럽게 만든 ‘노키즈관’ 논란 역시 이러한 미움의 연장선으로 느껴진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를 본 관객 중 일부가 아이들의 함성이나 떠드는 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싶다며 노키즈관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어린이를 주요 타깃으로 한 영화가 상영되는 곳에서 어린이를 쫓아내려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더 이상하다. 우리는 꽤나 자주 영화 상영 중 전화를 받거나, 옆 사람과 떠들거나, 의자를 발로 차며 스크린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불쾌하지만 참고 넘어가 거나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게 일반적이다. 핸드폰을 끄지 않은 사람을 상영관에 들이지 않거나, 특정 행동으로 세 번 이상 경고를 받을 시 퇴장시키는 방법 등 극단적인 타개책이 쉽게 대세로 떠오르지는 않는다.카페나 음식점 역시 ‘진상 고객 입장 불가’ 안내문보다는 ‘노키즈존’ 표식을 더 쉽게 내건다.
노키즈존은 흡연 금지, 주차 금지처럼 구체적 행위를 제재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라는 특정 집단을 배제한다. 키즈카페, 키즈관 등 어린이 전용 공간이 생겼지만, 이는 아이와 양육자가 더욱더 따가운 눈총을 받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왜 키즈카페나 키즈관에 가지 않고 이곳에 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느냐고 눈치 주기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셈이다. 이렇듯 공간의 분리는 어렵지 않게 단절로 이어진다. 단절은 무언가를 체험하고 느끼고 배울 기회를 손 쉽게 앗아간다. 아이는 공공장소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배울 기회를 몰수당한다. 수많은 조경 프로젝트가 섬처럼 놓인 공간을 주변과 연결하려 애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고립된 공간은 오래지 않아 낙후한다. 공간도 그러한데 사람은 당연하다. 아이는 혼자 다닐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노키즈존은 자연스럽게 아이와 양육자를 함께 사회 밖으로 격리한다. 물론 미성숙한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뛰어다니는 건 잘못된 일이지만, 무조건 공간 밖으로 밀어내는 건 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이 한때 논쟁거리였던 벤치의 모양으로 이어졌다. 노숙자가 누워 자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좌판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팔걸이를 설치한 벤치 말이다. 자연스럽게 아이가 앉을 수 없는 높이의 의자가 공원에 줄지어 선 모습을 상상했다. 터무니 없는 상상이라 생각했다가 왠지 실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닌 것 같아 무서워졌다. 쉽게 미워할 수 있는 사람 대신 진짜 미워해야 할 대상을 찾다보니 눈에 거슬리는 게 한둘이 아니다. 기저귀 갈 곳 없는
화장실, 외진 곳에 숨겨 놓은 것처럼 배치한 수유실, 유모차를 끌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보행로. 미워해야 할 대상을 찾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도 쉽게 미워하기보다 불편하게 미워하는 일에 지치지 않고 익숙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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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디자인파크개발
가치 있는 공간과 생활을 디자인하는 라이프 파트너
디자인파크개발은 2001년 창립된 조경 시설 전문 기업으로, 국내에 야외 운동 기구를 처음 선보인 곳이다. 웰빙이 트렌드로 떠오르던 시기 전국 공원에 야외 운동 기구를 보급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새로운 길을 모색해 온 디자인파크개발이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며 코스닥 상장을 추진한다. 2022년을 목표로 한화투자금융과 대표 주관사 계약을 체결하고, 예비 실사를 진행해 상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예비 실사 권고 사항에 따라 기업을 개선하면 2~3년 내 충분히 상장 요건을 갖출 것으로 판단됐다.
김요섭 회장(디자인파크개발)은 “일반적 중소기업은 창업자에 의해 좌우된다. 하지만 상장을 하게 되면 개인이 아닌 주주들이 회사의 주인이 된다. 기업 공개는 도덕적으로 투명한 회사로 나아가는 기반이 되어주고, 유능한 인재들이 유입되어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보다 높일 수 있다”며 상장 추진의 배경을 설명했다.
호황과 불황을 모두 겪으며 성장한 디자인파크개발은 어려운 시기를 새로운 아이템 발굴의 기회로 삼아왔다. 꾸준한 기술 개발과 신성장 동력 찾기에 매진해 조경 시설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입지를 공고히 다졌고, 디자인파크개발만의 브랜드를 선보이며 공간과 생활을 디자인하는 라이프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물놀이 시설과 놀이터를 결합한 놀이 공간 ‘원더풀(1thePool)’, 어린이용 놀이 공간 ‘유플레이(Uplay)’, 건강 증진 운동 기구 ‘웰핏(WellFit)', 여가·레저 시설 ‘캠포레스트(Camp4rest)’, 테마 놀이 시설 ‘판타키즈(Fantakids)’ 등 5개 브랜드의 다채로운 제품을 통해 사람들의 건강, 즐거움, 행복을 추구하는 기업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디자인파크개발의 시설은 기구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신체 활동을 극대화하고, 특별한 체험의 기회를 확장한다. 감각의 변화를 통해 일상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다. 또한 GPS 기반의 모바일 웹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어느 지역에 기구 몇 개소가 설치되어 있는지 시시때때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빠른 현황 조사와 유지·관리를 가능케 하는 기틀이 되어 주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수상의 영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김 회장은 지난 10월 국민 여가 생활 확산에 기여하고, 65개 특허권을 바탕으로 수출 시장을 개척하는 등 국가 산업 발전에 이바지해 ‘2019 중소기업융합대전’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10년 ‘제6회 대한민국 스포츠산업대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이후 두 번째 수상이다. 김 회장은 경영자는 항상 “변신에 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맞는 전략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아닐 수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이 우선 추구해야 하는 일은 잘 생존하는 것이다. 그다음 생존을 넘어 고객과 같이 호흡하고 업계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야 한다”며 생존, 고객, 변화라는 세 키워드를 강조했다.
최근에는 변화와 혁신의 일환으로 필라테스에 최적화된 복합 기구와 휴게 시설 브랜드를 론칭했다. 기존 소재의 틀을 뛰어넘는 차세대 휴게 시설을 실험해보려는 의도다. 철재, 석재, 목재, 스테인리스뿐 아니라 새로운 소재를 과감하게 도입해 현대적 감각의 시설을 선보이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도시와 더불어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휴게 시설의 소재와 디자인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 착안한 역발상이다.
디자인파크개발이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는 여가·레저 시설이다. 2015년 출시한 ‘모던이글루’가 꾸준히 판매되며 자연스럽게 관심이 집중됐다. 피크닉테이블, 매시벤치, 스윙벤치 등을 꾸준히 론칭하기도 했다. 김요섭 회장은 “국민 여가 생활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여가·레저 시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웰빙 라이프를 추구하는 디자인파크개발의 기업 가치와 워라밸을 중시하는 시대 흐름이 맞아떨어져 차별화된 기술과전략으로 다양한 여가·레저 시설을 선보이고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품 생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간 운영에도 나섰다. 디자인파크개발은 2020년 상반기 강화도에 글램핑장 조성 인허가를 받아 2021년 봄 개장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카라반, 글램핑하우스, 수영장, 스파 시설을 갖추고 디자인파크개발이 생산한 모든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타운을 만들 계획이다. 디자인파크개발 직영 글램핑장의 차별점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직접 운영에 참여한다는 데 있다. 시설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대처할 수 있고, 파손이나 노후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 이용객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체험이 구매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김 회장은 마지막으로 산업계는 시대 흐름과 고객의 요구사항을 읽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스스로 생존 모델을 창출하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언제나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업역을넘나드는 공간 창출 능력도 필요하다. 조경은 유연성을 갖춘 학문이자 산업이다. 마음가짐에 따라 길은 어디로든 열린다.”
WEB. designpark.or.kr TEL. 02-2665-6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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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리비오에코디자인연구소
기능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디자인 기업
녹화율은 잔디블록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다. 도시개발 및 정비사업에서 생태면적률 가중치가 녹화율 50%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가 녹화율 50%의 잔디블록을 생산하고 있다. 리비오에코디자인연구소(이하 리비오연구소)는 작년 12월 녹화율 67%의 잔디블록 ‘리비오그린Liviogreen’을 출시했다. 녹화율 50% 규격에 집중했던 블록 업계가 술렁였다. 일각에서는 ‘어떻게 67%가 가능한지’에 관심을 가졌고, 블록 강도에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한성필 소장(리비오연구소)은 “잔디블록 기술을 연구해본 사람에게도 녹화율 67%은 놀라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블록의 강도는 국내 품질 기준을 상회한다”고 말했다. 리비오그린에 대한 시장 반응은 고무적이었으며, 특히 단독 주택의 주차장과 정원에 대한 설치 문의가 많았다. 시공 사례가 늘며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자 건축물 주변, 캠퍼스 광장, 공동 주택, 보행로 등 다양한 오픈스페이스에 리비오그린을 설치하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리비오연구소는 34년간 조경 시공 현장을 누벼온 김창회 대표와 보도블록 업체를 운영하며 다양한 블록 아이템을 개발해온 한성필 소장이 설립한 기업이다. 김 대표는 제조와 운영을, 한 소장은 제품 개발과 홍보를 담당한다. 김 대표의 풍부한 시공 경험과 한 소장의 기술 개발 노하우가 합쳐져 설립 1년 만에 잔디블록 분야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두 사람은 보여주기식이 아닌 생태 시스템에 적합한 친환경 제품의 국내 보급을 목표로 삼았다. “지금까지의 잔디블록 기능이 ‘블록’에 방점을 찍었다면, 리비오그린은 ‘잔디 생육’까지 아우른다”는 김 대표의 설명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상당수의 잔디블록은 ‘인증’에 품질 기준을 맞춘다.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잔디 없이 형체만 남은, 무늬만 잔디블록인 제품도 적지 않다. “근본적으로 블록 구멍에 잔디를 심는 포트형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잔디 생육을 보장하기 힘들다”는 것이 김 대표의 분석이다. 반면 리비오그린은 일자형 띠녹지 구조로 뿌리가 깊고 안정적으로 뻗을 수 있다. 한 소장은 “넓은 식재 면적을 확보하면서도 블록의 강도와 내구성을 유지하는 것이 리비오그린의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많은 설계사무소가 선호하는 모던한 선형 디자인도 리비오그린의 장점으로 꼽힌다. 토양과 잔디 대신에 자갈, 데크, 판석 등을 설치할 수 있어 공간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자갈의 경우 빗물을 정화해 비점오염원을 저감하는 효과를 낸다.
리비오연구소는 현재 많은 개인과 민간 공사를 상대하고 있다. 기업과 개인이 연결되는 B2C 시장에서 다각화된 마케팅 전략을 통해 활로를 열어가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사업 초기부터 SNS와 블로그, 배너 및 지면 광고에 집중했다. 특히 SNS는 제품을 알리고 소비자의 반응을 즉시 확인할 수 있어 효과가 좋았다. 또한 대리점 등의 중간 단계를 거치는 판매 방식을 지양하고, 일반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소비자의 세부적인 요구 사항에 일일이 대응하기가 쉽지 않지만 품질과 서비스 향상을 위해 직영 체계를 택했다. 김 대표는 “소비자와의 접촉면을 넓히는 것은 제품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품질과 서비스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홍보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블록이 설치될 공간도 특별히 신경쓰고 있다. 한 소장은 “작은 공간에 블록을 설치할 때도 신중히 검토하는 소비자를 보면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구매자의 특성을 주의 깊게 살폈기에 민간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리비오연구소는 민간에서 받은 검증을 토대로 공공 부문까지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리비오그린의 성능을 높이고, 옥상 녹화 제품과 벽면 및 담장 블록 출시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새로운 제품을 도입하고 이를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발주처가 시공 단계에서 품질 관리에 앞장서야” 함을 강조하며 “녹화율 67%의 잔디블록이 50%의 제품과 동등한 기준으로 경쟁하는 구조적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라고 전했다.
WEB. www.livioblock.co.kr TEL. 02-6928-5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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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복층형 퍼걸러 '플로팅 스테이션'
전통 누각의 재해석
공동 주택에서 외부 환경이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 요소로 떠오르면서 휴게 시설물의 디자인과 기능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다. 오늘날 퍼걸러는 단순히 비를 피하거나 그늘을 제공하는 시설물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와 기능으로 이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플로팅 스테이션Floating Station’은 토인디자인이 설계한 복층형 퍼걸러로, 안락한 휴게 공간이자 주변 공간을 조망하는 전망대로 기능한다.
플로팅 스테이션의 디자인은 전통 누각에서 영감을 얻었다. 선조들이 자연과 소통하고 좋은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만든 누각을 재해석해, 공동 주택 단지와 어우러지는 현대적 느낌의 퍼걸러로 재탄생시켰다. 1층 테이블에서 이웃, 가족과 함께 앉아 담소를 나누고, 2층에 올라 너른 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수납장과 콘센트, 안내 게시판 등의 편의 시설물도 마련했다.
TEL. 02-533-3720 WEB. www.toinp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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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큰 발의 미학
만추의 절정, 이번 달에는 중국을 넘어 글로벌 조경 무대의 최전선을 이끌고 있는 유쿵졘(Yu Kongjian)과 그의 설계사무소 투런스케이프(Turenscape)의 근작들로 특집을 꾸렸다. 1998년 문을 연 투런스케이프는 설계 인력만 600명에 달하는 초대형 조경설계사무소로 성장했고, 좁은 의미의 조경설계는 물론 옴스테드의 비전을 연상시키는 도시와 지역계획, 맥하그의 맥을 잇는 광역 생태계획을 조경의 범주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전 세계 조경계의 조명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도시 공간과 생태계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고유한 설계 문법과 기술을 통해 구현하는 데 주력하면서 조경 이론과 실천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하버드 GSD에서 서구의 첨단 설계와 계획 지식을 익히고 귀국한 유쿵졘은 중국의 국가 지도자, 정치 엘리트, 시장들에게 조경 계획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베이징 대학교에 조경대학원을 신설한 그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에 걸쳐 중국건설성·시장연석회의에서 조경 강의를 이어갔다. 2008년 중국 국가생태보안계획 프로젝트를수행함으로써 그는 국가 규모의 생태적 어바니즘(ecological urbanism)의제를 세우기에 이른다.
유쿵졘과 투런스케이프의 혁신적 사고와 실천이 성공한 배경에 하향식 정치 구조, 중앙집권적 의사 결정 체계, 급속한 도시화 진행, 서구 과학과 기술의 수용 등 현대 중국의 독특한 상황이 있음은 분명하지만, 이 때문에 그의 성과를 저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유쿵젠은 서구에서 수입한 계획 지식과 설계 기법을 전대미문의 속도로 진행된 중국 도시화의 문제 해결에 접속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국 고유의 토지관과 농업적 지혜를 재발굴하여 지속 가능한 회복탄력적인 도시 환경을 설계하는 데 적용했다. 투런스케이프의 작업들은 일찍이 케니스 프램턴(Kenneth Frampton)이 주장한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가 조경을 통해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된 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쿵졘과 투런스케이프의 성과가 생태학 기반의 광역 스케일 계획 작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쿵졘은 10년 전에 발표한 글 “아름다운 큰 발: 새로운 조경미학을 향하여”(Harvard Design Magazine 31, Fall/Winter 2009/10)에서 중국의 전통 원림을 관통하는 장식과 허위와 사치를 비판하고, 생산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존의 예술art of survival로서 조경설계의 미학적 지향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서 ‘큰 발’은 중국의 전통문화인 전족(작은 발을 만들기 위한 발 묶기)의 상대 개념이며, 전족은 화려하고 세련된 전통 원림 미학을 비유한다. 즉 그가 주장하는 ‘큰 발의 미학’은 도시 최상류층의 장식적 원림 미학을 극복할 수 있는 농부의 경관 미학이다. 동시대의 의제로 표현하자면, 표피적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 미학을 대체할 수 있는 생존과 생산의 환경 미학인 셈이다. 전 세계 조경계의 주목을 끌어냈던 초기 작업들, 즉 융닝 강 수상 공원, 중산 조선소 공원, 선양 건축대학 캠퍼스, 탕허 강변 레드 리본 파크 등을 통해 유쿵졘은 ‘큰 발의 미학’을 실험했고, 이번 호에 소개하는 프로젝트들 역시 이러한 미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참, ‘유쿵졘’이라는 표기에 의문을 던질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환경과조경』은 신중한 논의와 토론 끝에 이번 특집을 계기로 ‘콩지안 유’로 쓰던 관례를 버리고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기로 했다. 동양의 인명과 지명 표기에 관해 외래어 표기법 4장 2절은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蘇東坡는 소동파이고, 毛澤東은 모택동이 아니라 마오쩌둥이다. 한국 조경계에서 그동안 兪孔堅을 콩지안 유라고 부른 것은 Kongjian Yu라는 영어권의 표기를 그대로 음차했기 때문일 텐데, 習近平을 우리말로 습근평이 아니라 시진핑으로 적고 영어권에서도 Jinping Xi가 아니라 Xi Jinping으로 적는 것과 비교한다면 콩지안 유라는 표기는 옳지 않다. 兪孔堅은 동시대 중국인이므로 유공견, 콩지안 유, 유 콩지안, 쿵졘유가 아니라 유쿵졘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환경과조경』 편집부의 판단이다.
특집 지면의 인터뷰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랩디에이치(Lab D+H)의 최영준 소장과 리중웨이 소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면이 넘쳐 ‘이미지 스케이프’와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를 다음 달로 넘기는 점,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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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enscape
투런스케이프Turenscape(土人設計)는 1998년 유쿵졘Yu Kongjian(兪孔堅)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다. 3명의 설계팀으로 출발해 급속한 성장을 거듭한 투런스케이프는 현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600여 명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조경설계사무소로 성장했다. 경관설계, 건축설계, 도시설계, 환경설계, 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스케일과 범주의 프로젝트에서 최신 기술과 친환경적 설계를 결합하는 혁신적이고 회복탄력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호는 독특한 정원 감상법을 통해 중국적 색채를 드러내는 ‘메이 정원’, 유적지 주변으로 펼쳐진 농경지를 야외 쌀 박물관처럼 활용한 ‘청터우산 문화유산 공원’, 지형 조작을 통해 도시재생과 생태계 회복을 동시에 꾀한 ‘싼야 맹그로브 공원’ 등 투런스케이프의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주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이번 특집을 통해 조경과 도시계획을 통합하는 조경가일 뿐 아니라 시대를 읽는 날카로운 분석가이자 뛰어난 리더십으로 조경의 지평을 넓혀 온 유쿵졘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유쿵졘과 같은 문화권에서 자라고 일해 온 리중웨이(Lab D+H 공동대표)가 진행한 인터뷰는 투런스케이프의 철학이 형성된 배경과 현재 중국 조경계의 상황을 소개하며 낯선 대륙의 작업을 보다 더 깊이 읽어낼 수 있도록 돕는다. 땅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땅과 사람의 관계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엮어 온 투런스케이프의 작품 세계를 탐험하는 여정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진행 김모아, 윤정훈 협력 최영준, 리중웨이 디자인 팽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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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enscape] 프로필
투런스케이프(Turenscape)는 하버드 GSD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 재직 중이던 유쿵졘(Yu Kongjian)이 1998년에 설립한 설계사무소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600여 명으로 구성된 설계팀을 꾸려 포괄적이고 수준 높은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경관설계, 건축설계, 도시설계, 환경설계, 엔지니어링 등이 주요 분야다.
투런스케이프는 지난 20여 년간 중국에 300여 개의 생태 도시를 설계하고 1,0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0여 개의 도시를 대상으로 작업했고, 600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실제로 조성됐다. 혁신적이고 친환경적인 설계로 주목받고 있으며, 미국조경가협회ASLA(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에서 열세 차례 수상했고, 세계건축대전(World Architecture Festival)에서 조경 대상(World’s Best Landscape Awards)을 다섯 번 받았다.
자연, 인간, 영혼의 일체화는 투런스케이프 디자인 철학의 기반이다. 투런Tu-Ren은 두 단어의 조합인데, 투土는 흙, 대지, 토지를 의미하고, 런人은 사람, 인간, 인류를 뜻한다. 즉 투런은 땅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 투런스케이프는 땅과 사람 사이의 조화와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환경을 창출하는 데 힘쓰고 있다.
땅은 우주의 중심이자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와 영혼을 상징한다.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축적된 에너지는 많은 생명과 영혼이 성장하고 움직이게 만든다. 과거 선조들은 너른 수평의 땅을 수직으로 자라는 신성한 나무, 태양이 뜨고 지는 모습, 영혼이 오르내리는 사다리로 시각화했다. 중국의 전설에 등장하는 유배된 제왕이 고향에서 가져 온 한 줌의 흙을 숭배하며 번영의 상징으로 삼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이 주는 혜택에 만족하지 못하고 신령한 나무를 자르고 자연을 파괴했다. ‘투런’은 대지와 자연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함으로써 자연의 섭리로 고통을 치유하고 정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적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투런스케이프는 첨단 기술로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땅 위의 패턴을 감지한다. 자연과 사회의 경로를 추적하면서 인간, 자연, 영혼을 하나로 인식하고 이를 한데 어우러지게 만드는 설계 방법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