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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조형물
    미술 장식품과 같은 조형물은 조경 공간의 분위기를 크게 좌우하지만 선정 과정에 조경가의 의지를 반영하기는 어렵다. 미술 장식품이 시공 이후에나 공간 설계와 어울리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설계하는 시점에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광명역 자이타워에 설치한 조형물은 설계자의 의도에 부합하게 배치해 예측 불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조형물을 조경 설계의 중요 요소로 받아들인 결과물이다. 현상설계 당시에는 미술 장식품을 제안하는 정도의 계획안을 작성했지만, 미술 장식품의 선정 과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조경 시설물을 직접 설계하기로 했다. 커다란 수전 형태의 장식품을 수경 시설과 결합한다는 기존의 의도를 충족하고자 했다. 먼저 현장에서 제작하기 어려운 장식적 요소를 최소화했다. 매끄러운 표면과 내구성을 고려해 배관용 스테인리스 강관에 분체 도장을 하는 안을 채택했으며, 강관의 곡선 가공 시 주름이 잡히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소 곡면 가공 반경을 설정했다. 작은 수전을 크게 확대한 형태로 구현하는 조형물인 만큼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해야 했다. 핸들의 움푹 팬 부분을 묘사하기 위해 스테인리스 강관을 이중으로 설치하는 등 진짜로 작동하는 수전은 아니지만 실제와 근접한 형태로 제작했는데, 이를 위한 디테일을 도면에 충분히 표현해 현장에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했다. 강관의 특성상 마감 면이 없는 양측 면에 스테인리스 강판을 추가해 마감 처리를 했다. 이를 도면에 지시선을 이용해 표현함으로써 현장에서 시공이 누락되지 않도록 했다. 이 조형물의 또 다른 용도는 물을 담는 수경 시설로, 그릇 형태의 수반이 필요했다. 수전과 어울리는 개수대 형태의 수반을 만들기로 했다. 조형물과의 일관성을 위해 스테인리스 강판으로 수반을 제작했다. 크게 제작된 수전과의 비례를 고려해 두께 1cm의 강판을 사용했으며, 두께감을 표현하기 위해 강판 측면부에 평면과는 다른 색상의 도장을 적용했다. 조형물과의 완결성을 위해 자칫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수경 설비들을 별도의 피트pit(일종의 구덩이) 공간으로 분리했다. 시설물의 파손 위험을 줄이고 녹지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형물 후면의 보도 포장 구간을 펌프 피트 위치로 활용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김창한은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했다. 기술사사무소 렛(LET)을거쳐 조경그룹 이작에서 실시설계 내역실을 이끌고 있다. 작은 교량하부 공간부터 도시 기반 시설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현재는 실시설계 디테일 제작과 내역 실무에 집중하고 있다. 주요작업으로는 신한은행 진천연수원, 제비어울림공원, 충북혁신도시,의정부고산지구, 진주 영천강 천변 특화설계 등이 있다.
  •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빅 브라더와 오토데스크의 미래
    조경의 자기 정의 그래서 도대체 2020년의 우리는 1858년의 센트럴 파크에서 얼마나 멀리 왔지? 조지 오웰이 1948년에 빅 브라더의 미래를 예측한 1984년도 벌써 한참이나 지났는데. 아니면 이제는 2009년의 하이라인이 픽처레스크를 우월하게 대체하는 새로운 도시 자연의 몽타주가 되었나? 아이러니하지만 대중 매체에서 자본주의의 위험을 가장 많이 경고했던 때는 그야말로 돈이 넘쳐흐르던 거품 경제 시대였다. 조경학과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왠지 ‘조경은 나무 심는 것이 아니다’라는 자기 정의를 반복한다. 1990년대의 많은 작가 역시 조경의 인문학적 가치를 대변하기 위해 ‘조경은 도시의 무엇이다’라는 철학적 정의들을 반복하고 소모했다.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시 자연 플랫폼의 구축 하물며 내게도 조경에 대한 자기 정의가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다.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을 다루는 연재 전반에 걸친 사상적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위키피디아에 디자인 프로그램들에 관한 서술을 나열하는 것 같은 지루한 연재가 될 것이다. 참으로 주관적이고 단순한 정의일 테지만 왠지 충분히 따분할 정도로 길게 서술해야만 할 것 같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대개 7만 년 전의 인지혁명, 1만2천 년 전의 농업혁명, 그리고 5백 년 전의 과학 혁명을 인류의 근대 문명을 만든 3대 혁명이라고 말한다. 요약하면, 인류가 곡물을 먹는 정주 생활을 시작한 뒤 코페르니쿠스나 뉴턴 같은 사람들이 역사의 스타로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도시다운 도시가 완성됐다는 의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그 때문에 도시 자연(urban landscape)이 다시 필요하게 됐다. 자연 선택과 먹이 사슬의 순리를 거부하고 많은 종에게 고통과 멸종을 선사한 뒤 인공적 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을 너무나 배제했기 때문에. 하지만 아무리 도시가 더 나은 안락과 안전을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오랜 유전자는 여전히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원하고 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인위적 자연(fake nature)을 다시 만들 수밖에 없는 거다. 하지만 어떻게? 처음에는 별 요량이 없으니 그저 있는 그대로를 모방한 픽처레스크 스타일로 만들었겠지. 그렇게 영웅 센트럴 파크가 탄생했다. 여기서 멈췄다면 조금 시시해도 모두에게 행복한 결론으로 끝났을지도 모르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학문이나 예술로 포장해서 상품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현대 조경은 바로 이 가짜 자연(fake nature)을 도시에 만들기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주관적이지만 간단하지 않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라는 복합 명사를 그럭저럭 잘 해석하고 있지 않나? 그리고 그 플랫폼을 다양한 방식으로 디자인하며 새로운 스타가 될 기회를 남몰래 노리고 있는 거다(그림 1, 2). 하이라인이 조경의 플랫폼을 흙에서 산업 유산으로 옮겨왔던 것처럼. 하버드 GSD가 학생들에게 해수면 상승을 막는 탄력적인 플랫폼(그림 3)을 만들라며 그래스호퍼(Grasshopper)로 괴롭히는 것처럼 말이지. 결론적으로 그래서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하고 싶냐면, 배치도(layout)가 아니라 건축(architecture)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거다. ...(중략)...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 한국의 디자인 엘, 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 한국, 미국, 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 [이미지 스케이프] 빛 자국
    299,792,458m/sec(=299,792.458km/sec)어떻게 측정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저 복잡해 보이는 숫자는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빛의 속도입니다.과학자들이 말하는 숫자는 너무 크거나 반대로 너무 작아서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지요.지구의 적도 둘레가 약4만km라고 하니까 저 속도면1초 동안에 빛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는 셈입니다.이것도 실감이 안 나죠?서울부터 부산까지 직선거리가 약325km이니까1초에460번쯤 왕복할 수 있는 속도입니다.이렇게 해도 실감이 나지 않긴 마찬가지군요.그래도 사진에서 보이는 쭉 뻗은 붉은 빛은 정말 서울과 부산을1초에 한460번쯤 왔다갔다 할 기세죠?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군사분계선과 불과 4~5km 남짓, 그리고 DMZ와는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접경 지역의 밤은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습니다. 이번 사진은 이런 짙게 드리운 어둠을 뚫고 지나가는 자동차 후미등의 궤적입니다. ‘물경’ 2초 동안 열린 셔터 막 사이로 들어온 빛을 한 화면에 담은 결과지요. 사진은 움직이는 대상을 한 장면으로 포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셔터 막이 열리는 순간 들어온 빛을 화면으로 기록하니까요. ...(중략)...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토문엔지니어링,가원조경,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북 스케이프] 교과서의 교과서, 마리 루이제 고트하인의 『정원 예술사』
    방학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다음 학기 서양조경사 강의계획서를 올리라는 연락이 왔다. 작년 파일을 열어 날짜를 수정하고, 교재와 참고 문헌에 업데이트할 사항을 확인한다. 매번 하는 일이지만 주 교재를 고르는 일이 항상 고민이다. ‘교과서’ 한 권으로 게으른 수업을 하면 편하련만, 성에 차는 한국어 책이 없기 때문이다.1 영문 교재를 쓰자니 학생들 반응이 신경 쓰인다. 강의 평가 점수에 다음 학기 강의 개설 여부가 달린 시간 강사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가뜩이나 학습량 많다는 원망을 듣는 마당에. 영미권에서 출판되고 주요 도서관에 소장된 책들을 출판 연도순으로 참고 문헌 목록에 넣는다. 제프리 젤리코(Geoffrey Jellicoe)와 수잔 젤리코(Susan Jellicoe)의 『경관 변천사(The Landscape of Man)』(1964)2와 노먼 뉴턴(Norman Newton)의 『디자인 온 더 랜드(Design on the Land)』(1971)가 상단에 있다. 이 두 책 사이에 이안 맥하그(Ian McHarg)의 『디자인 위드 네이처(Design with Nature)』(1969)가 있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이어 몇십 년의 공백기가 있고 1990년 즈음부터 조경사, 엄밀하게는 정원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연이어 나온다. 1980년대 말의 이른바 ‘정원의 부활’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조경 이론서의 계보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체계적인 논의와 방법론을 기준으로 보면 정원 이론서는 17세기~18세기 초 프랑스에서 등장했다. 이어 정원의 역사를 비중 있게 다루거나 정원의 역사만을 다룬 이론서가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유럽에서 나왔고, 오늘날 대부분의 서양조경사 책의 구성과 내용은 이를 바탕으로 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한국어로 된 대표적인 서양조경사 교재로는 다음이 있다. 정영선, 『서양조경사』, 누리에,1979(절판); 한국조경학회, 『서양조경사』, 문운당, 2005. 40년이 넘는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두책의 구성과 (1950년대까지 다룬) 시간적 범위는 유사하다. 후자의 경우 여러 번 개정했음에도20세기 후반 조경의 다양한 양상 및 동시대 현상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복수의 저자가 다루는내용의 양과 깊이가 천차만별이라는 점, 외래어 표기 오류가 다수 있다는 게 아쉽다. 2. 번역서로는 나상기의 번역본(기문당, 1982)과 누리에 편집부의 번역본(누리에, 1996)이 있으나모두 절판됐다.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광장의, 광장에서, 광장으로 나온 예술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전, 국립현대미술관
    지난 120년간 한국 사회는 격동의 장이었다는 데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일제 식민지기부터 한국전쟁, 격변의 1970~1980년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은 결코 우리 사회의 움직임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는 한국 근현대 미술통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살펴보는 전시로, 광장이라는 은유를 통해 미술이 사회 전면에서, 혹은 이면에서 소통의 장으로 꾸준히 존재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덕수궁에 재현된 근대 대한민국의 상흔 전시는 시대별로 1, 2, 3부로 나뉘어 각각 덕수궁관, 과천관, 서울관에서 진행된다.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1부는 1900년부터 1950년, 즉 20세기 전반부의 작품을 다루고 있으며 크게 사회적 변이의 기록과 그에 대한 미적 대응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제1전시실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채용신의 ‘전우 초상’(1920)은 낙향한 우국지사의 초상을 빌려 조선을 지키고자 했던, 서글프지만 강직한 사회를 드러낸다. 제2전시실에는 분위기를 전환하여 조선의 개혁파들이 예술을 통해 계몽을 실천하고자 했던 다양한 기록을 담았다. 우리가 이 지점에서 목도하는 것은 예술에 교육이 접목되어 각종 매체를 통해 다양화되는 현상이다. 예술적 사회 개혁의 씨앗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추진력을 업고 판화, 연극, 영화 등 대중 예술로 분화하기도 한다. 결국 1부 전시는 20세기 초중반 강제적 세계화의 현실 속에서 사회의 변화와 삶의 전환을 머금은 예술적 태동이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전시 후반 주목할 부분은 한국전쟁 이후 월북하여 한국 미술사에서 쉽게 언급되지 않는 이쾌대의 작품, 국내보다 외국에서 알려졌던 김환기의 작품 등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 근대 회화 중 하나로 주목받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김환기의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한국 근대 예술과 근대 사회의 맥락의 작동이 가시화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신명진은 뉴욕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후 서울대학교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근현대 조경을 연구하며 이와 관련된 번역과 집필 활동을 겸하고 있다.
  • 붓으로 기록한 도시의 시간 ‘아카이브 오브 더 선’ 전, 제이슨함
    오래되어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외피가 떨어져 나간 건물, 녹슨 철문과 낙서로 가득한 벽, 가벼운 티셔츠 차림으로 노점상 앞을 활보하는 사람들. 셰이크 은디아예(Cheikh Ndiaye)가 붓으로 포착한 세네갈의 풍경은 이방인들이 막연하게 떠올리는 아프리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도시와 건물을 사회적 기록으로 간주해 그 속에 담긴 사람과 문화를 예술로 기록, 보존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세네갈 출신 작가 셰이크 은디아예의 개인전 ‘아카이브 오브 더 선(Archives of the Sun)’이 성북동 갤러리 제이슨함(Jason Haam)에서 지난 1월 28일까지 열렸다. 함윤철 대표(제이슨함)는 2018년 폰다지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그룹전을 통해 그의 작품을 만나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작가가 제안한 전시 제목은 세네갈의 일간지인 「르 소레유(Le Soleil)」(영어로 The Sun)에서 모티브를 얻었는데, 프랑스로부터의 독립 후 경제 성장과 도시화로 급격한 변화를 맞은 세네갈의 일상을 기록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세네갈은 19세기부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다 1960년에 독립했다. 독립 직후의 다카르Dakar(세네갈의 수도)에서 태어난 은디아예는 불안한 사회·정치적 기류와 급속한 현대화의 여파를 몸소 경험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1960~1970년대는 다카르에 다양한 근현대식 건물과 공공 공간이 들어섰던 시기였다. 하지만 경제 악화와 정부 결정으로 인해 영화관이나 공원 등의 공간이 폐쇄되거나 본래 목적과 다른 개인 사업 용도로 전환됐다. 오늘날의 다카르에는 이 같은 독립 직후 세네갈의 열정, 이후 찾아온 변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은디아예는 그중 오래된 건물에 주목하는데, 건물의 낡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그 공간의 옛 쓰임과 오늘날의 새로운 쓰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중략)...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 예술이 된 텍스트 ‘당신을 위하여: 제니 홀저’ 전, 국립현대미술관, 7월 5일까지
    현대인은 수많은 텍스트에 둘러싸여 산다. 거리에만 나가도 건물 벽을 빼곡하게 채운 간판, 눈길을 빼앗는 화려한 광고 등 도처에 널린 문자들이 무방비 상태인 우리에게 마구잡이로 쏟아진다. 현대예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는 이처럼 텍스트로 가득한 일상의 풍경을 사회와 개인,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의 작업은 급격한 사회·문화적 변화가 시작되던 1970년대 후반, 뉴욕의 한 골목에서 출발했다. 짧지만 강렬한 사회 비판 메시지가 적힌 홀저의 포스터는 길을 지나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포스터 일부가 찢기기도 하고, 누군가 자신의 의견을 새롭게 적어 넣기도 했다. 작은 종이 한 장은 금세 대중의 논쟁의 장이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며 홀저의 문장은 대형 전광판, 메시지가 적힌 영상을 투사한 건물 외벽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변 맥락과 상관없이 도시 한복판에 등장한 메시지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낯선 경험을 선사하며, 텍스트에 무감각해진 현대인의 각성을 유도했다. 나아가 티셔츠, 엽서 등 일상 사물에까지 침투한 홀저의 문장들은 사회적 문제를 공론화하고,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며 공공 담론의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2019년 11월 23일부터 2020년 7월 5일까지 열리는 ‘당신을 위하여: 제니 홀저’ 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매년 국제적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낼 작품을 선보이는 ‘MMCA 커미션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이번 전시는 40여 년간 홀저가 텍스트를 매개로 펼쳐온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신작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서울박스와 로비, 과천관의 야외 공간에서 선보인다....(중략)...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 ASLA Best Books 2019 ‘2019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10권의 조경 서적
    혹시 좋아하는 조경가에게 줄 완벽한 선물을 고르고 있거나 몰입해 읽을 책 한 권을 찾고 있는가. 그렇다면 미국조경가협회(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ASLA)가 발표한 ‘올해의 책ASLA Best Book’을 참고하자. 미국조경가협회는 매년 그해 출간된 환경, 도시, 조경 분야의 도서 중 주목할 만한 도서 10권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2019 올해의 책’을 소개한다. 1 & 2. 나무의 건축 & 트리 북: 조경, 가로 경관, 정원을 위한 나무 셀렉션 Cesare Leonardi, Franca Stagi, The Architecture of Trees , Princeton ArchitecturalPress, 2019. Michael A. Dirr, Keith S. Warren, The Tree Book: Superior Selections for Landscapes, Streetscapes, and Gardens , Timber Press, 2019. 『나무의 건축』과 『트리 북』은 수목을 이용해 디자인하는 방법을 다룬 아름답고 유용한 책이다. 『나무의 건축』은 가구, 조경, 건축 분야를 넘나드는 두 명의 다재다능한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체사레 레오나르디(Cesare Leonardi)와 프란카 스타기(Franca Stagi)의 저서로, 1982년 출간되어 지난해 재판되었다. 212종의 나무를 550개의 삽화에 깃펜으로 묘사했으며, 모두 1:100의 축적으로 그렸다. 『트리 북』은 ‘나무 스승’으로 알려진 마이클 더(Michael A. Dirr)와 나무 농장 프랭크 슈미트 앤드손 J. Frank Schmidt and Son의 제품 개발 책임자인 키이스워런(Keith S. Warren)이 함께 집필했다. 2,400종에 달하는 식물종과 재배종의 사진과 더불어 학명, 보통명, 생육 분포, 기후 적응 능력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2호(2020년 2월호) 수록본 일부 박소영은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식물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식물을 매개로 한 공간 경험에 관심을 두고 있다. 천리포에 머물며 다양한 플랜팅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제5회 대한민국 한평정원 페스티벌 대상, 2018 서울정원박람회 팝업가든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식물원 전시온실에서 가드닝과 함께 식물 관련 전시 및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 [편집자의 서재] 비밀기지 만들기
    여덟 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개중 또렷한 몇 가지는 조금 어둡고 비밀스러운 장소에 관한 기억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박스로 만든 집. 아빠가 어디서 커다란 냉장고 박스를 주워와 거실 한가운데 집을 만들어주었는데, 남다른 손재주로 꽤 그럴듯한 집을 만들었다. 문은 물론 커튼 달린 창도 있었다. 일곱 살의 나와 네 살배기 동생은 그 안에 쭈그려 앉아 소꿉놀이를 하거나 그림책을 만들었다. 또 다른 기억은 의자 밑에서다. 사촌 언니로부터 업라이트 피아노를 물려받았는데, 피아노를 치는 시간보다 피아노 아래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피아노 의자는 다른 의자에 비해 높고 널찍해서 엎드려 인형 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피아노에 대한 흥미가 시들해질 즈음 의자 딸린 식탁이 생겼다. 엄마는 식탁 의자 두 개를 적당히 떨어뜨려 그 위에 젖은 이불을 널어놓곤 했는데, 이불을 걷고 들어가니 또 다른 아늑한 공간이 펼쳐졌다. 환한 형광등 빛이 두툼한 이불로 필터링돼서 무섭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어두워 좋았다. 그 후로 한동안 식탁 의자 위에 이불 지붕을 만들고 그 속으로 기어들어가 놀곤 했다. 이외에도 숨바꼭질 할 때 장롱 안이나 긴 커튼 뒤에 몸을 숨기며 숨죽였던 순간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멀쩡한 집과 놀이터를 두고 왜 그렇게 좁고 어두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을까. 장소가 주는 특별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설레고, 뭔가 비밀한 일을 벌이는 것 같아 신이 났다. 이제는 옷장 안이나 미끄럼틀 아래로 숨어들지 않지만 카페의 구석진 자리를 찾거나 다락을 선호하는 습성이 그때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이런 사소한 기억을 소환한 것은『비밀기지 만들기』다. 제목은 비장해 보이지만 실은 무진장 귀여운 책이다. 토관과 드럼통 사이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 남자애가 그려진 표지를 보자마자 훔치듯 집어들었다. (이 책의 진짜 귀여움은 비밀기지처럼 숨겨져 있다. 책을 구하면 커버를 잘 살펴보시라.) 책의 저자인 건축가 오가타 다카히로는 ‘일본기지학회’라는 단체를 운영하는데, 군사 요새가 아닌 유년 시절의 비밀스러운 놀이 공간을 연구하며 워크숍 등을 진행한다. 이에 관한 책『 비밀기지 만들기』는 비밀기지를 짓기 적합한 장소(주로 데드 스페이스)부터 재료, 위장하는 법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할 만한 (만화책 보기, 숙제 베끼기, 흙장난, 불장난 등 집에서 했다가는 큰 화를 면치 못할) 활동까지 알려준다. 설문 조사를 토대로 누군가 어린 시절 실제로 만들었던 비밀기지를 소개하는데, 소소한 추억을 상기시키는 것부터 진짜인지 믿기 어려운 것도 있다. 아파트 1층 베란다 아래, 우산 세 개를 겹쳐 만든 공간, 나무 위의 집을 보며 피식피식 웃다가 쓰레기봉투를 떨어뜨리는 긴 통로, 영화 ‘괴물’(2006)에서나 봤던 대형 배수로 안을 보고는 설문 응답자의 진실성을 살짝 의심했다. 이런 데서 놀았는데 살아남았다고?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비밀기지에 대한 다카히로의 철학은 분명하다. 비밀기지를 만들며 친구와 힘을 합치는 법, 갖가지 실패를 경험하기에 유년 시절에 꼭 필요한 활동이라는 것. 특히 위험에 둔감한 아이들이 크고 작은 위험을 경험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어른들이 이러한 아이들의 놀이를 (적당히 모른 척하며) 기꺼이 도와주기를 독려한다. 어른에게도 나름 유용한 측면이 있다. 자신만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이니까. 구본준 건축칼럼니스트의 추천사처럼, 어린이로 되돌아가 꿈꾸던 비밀기지를 짓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책이다. “비밀기지 만들기는 전혀 재미없어 보이는 풍경 속에서 적당한 틈새를 찾아내고 그 속에 들어가, 그곳에서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조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말하면 주변 세상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재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힘이 아닐까.”2돌아보면 언제부턴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너무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여 왔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상상 속에서 나만의 비밀기지를 건설했다. 일상으로부터 도망치거나 딴짓거리를 하고 싶을 때 몸을 숨길 수 있는 나만의 은신처! 엉성해 보이지만 꽤 그럴듯하다(부모님도 편집장님도 몰라야 하므로 구체적 장소는 밝힐 수 없다).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머리를 집어넣는 순간, 앗. 그새 몸이 너무 커져 버린 걸 잊고 있었다. *각주 정리 1. 오가타 다카히로, 임윤정·한누리 역, 『비밀기지 만들기』, 프로파간다, 2014. 2. 같은 책, p.236.
  • [CODA] 한강 풍경
    새해 첫머리부터 굵직굵직한 공모 소식이 날아들었다. 먼저 코엑스에서 잠실 종합운동장까지 이어지는 영동권역을 국제 업무, MICE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서울 국제교류복합지구 수변 생태·여가문화 공간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코엑스~잠실운동장 일대 종합발전계획의 일환으로 개최된 공모는 ‘한강과 탄천’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수변 공간을 대상지로 설정하고, 물줄기로 끊어진 두 지역을 ‘탄천보행교’를 놓아 연결할 것을 강조했다.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2015, 본지 2015년 11월호 참조)의 평가 요소였던1. 부지 안에 담아낸 기능과 디자인의 완결성 2. 주변 도시 조직과의 연계성 3. 한강 및 탄천 수변 지역의 처리 방식 중 2번과 3번 요소가 묘하게 얽혀 새롭게 태어난 공모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상지와 목표가 뚜렷해진 만큼 “호쾌한 구조물 위를 걸어서, 운치 있는 녹지를 지나서, 편리한 모노레일을 타고서 당도한 한강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가벼운 산책과 시원한 사이클링과 한강을 바라보며 식사와 차를 즐기는 것”, “수영이나 보트를 타는 정도”1에서 수상 레저 스포츠는 물론 자연과 한데 어우러진 각종 문화·예술·일상 활동으로 확장됐다. 조감도에서 어떤 패턴을 완성하는 산책로와 녹지로만 채워졌던 수변이 명확한 목적과 형태를 가진 공간으로 바뀐 것도 당연하다. 공교롭게도 2월호 지면을 채운 또 다른 공모 역시 한강변을 다뤘다. ‘한강변 보행네트워크 조성 공모’의 대상지는 좁고 어둡고 낙후된 한강대교 남단 여의나루역에서 시작되어 동작역까지 이어지는 한강 수변길, 한강변의 접근성과 활용성을 증대하고 다양한 여가·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걷기 편한 환경을 구축해야 했다. 물가의 특성을 충분히 수용한 디자인 물과 수직으로 만나는 조경의 전략이 우수한 안을 선정했다는 심사평은 공모의 초점이 ‘한강’에 맞추어져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뿐만 아니라 노들섬 특화공간 조성사업, 샛강 생태 거점 조성사업, 한강대교 백년다리 조성사업 등 한강변 일대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적당한 크기로 마름질된 프로젝트 조각들을 어떻게 이어 붙일지는 의문이지만, 한강을 바라보는 일에만 익숙한 내게 물을 적극적으로 즐기게 하는 각종 전략들은 묘한 설렘에 휩싸이게 만든다. 지면 가득 채운 공모를 살피며 한강에 담긴 막연한 낭만에 대해 생각했다. 한밤의 한강은 사람을 쉽게 감상에 빠트린다. 늦은 밤 에도 불을 꺼뜨릴 줄 모르는 빌딩숲이 저 너머로 멀어지고, 대신 일렁이는 강을 배경으로 가벼운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시야를 채운다. 한없이 여유로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때만큼은 바쁘고 정신없는 도시의 일상이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야근러들이 밝힌 도시의 불빛들이 로맨틱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자연과 도시가 뒤엉킨 독특한 서울의 구조도 한눈에 들어온다. 경쟁이라도 하듯 높게 선 건물 뒤편으로 펼쳐진 야트막한 산, 산등성이를 타고 오른 조막만 한 집들이 이룬 마을, 천변을 따라 차곡차곡 들어선 아파트 덩어리들. 아파트에까지 눈길이 닿으면 시각이 조금 달라진다. 어떠한 낭만에서 꾸준히 쌓아온 선망으로. 자기 관리라는 명목으로 출근 전 강변을 따라 즐기는 가벼운 조깅, 커피 한잔을 마시며 통창으로 내려다보는 한강의 모습은 성공한 서울 사람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한강이 몇몇 사람들의 소유물처럼 느껴졌다. 꽁무니를 붉게 물들인 자동차들이 스멀스멀 한강 다리 위를 기어가는 광경 역시 기묘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줄곧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인데도, 저 자동차 행렬에 끼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정한 서울 사람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한강은 좀처럼 내 공간 같지가 않다. 콘크리트 제방 옆으로 옹색하게 펼쳐진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으면, 꼭 진짜 서울 사람에게 잠시 자리를 빌린 듯한 기분이 든다. 이따금 찾는 특별한 장소는 될 수 있지만, 결코 내 일상에 녹아들 수는 없는 공간. 한강을 바라보는 대상에서 직접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바꾸겠다는 설계안에 들뜨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날이 따뜻해지면 한 번쯤은 한강을 따라 긴 산책을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왕이면 선명한 강변 풍경과 함께하면 좋으니, 올봄에는 미세 먼지 소식이 드물었으면! 각주 1. 민성훈, “계획가가 외면한 것”, 『환경과조경』 2015년 11월호, p.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