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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과 삶, 그 사이에서의 정원 일 ‘초록엄지.일의 즐거움’ 전, 블루메미술관, 2019. 4. 13. ~ 9. 1.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시대다. 하지만 균형을 맞추는 것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많은 사람이 일과 삶을 분리한 채 주로 여가와 소비에서 만족을 얻고 있다. 반면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은 일 또한 가정이나 건강 같은 삶의 일부이며, 통합된 일과 삶에서 행복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블루메미술관이 개최한 ‘초록엄지-일의 즐거움’ 전은 미래 사회가 워라밸을 넘어 워라인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그렇다면 워라인 시대 행복하게 일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일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초록엄지-일의 즐거움’ 전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정원 일에서 찾는다. 블루메미술관은 그동안 정원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을 담은 전시를 열어왔다. 정원의 느릿한 시간성을 사유한 ‘정원사의 시간’ 전(2017), 정원 일의 가치를 놀이와 접목한 ‘정원, 놀이’ 전(2017)에 이은 이번 전시는 정원 일에서 행복한 일의 원형을 탐구한다. 김도희, 박혜린, 아리송, 슬로우 파마씨(Slow Pharmacy), 베케 더가든(Veke The Garden)다섯 팀이 전시 작가로 참여해 일과 정원에 관련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정원 일은 고된 노동이다. 잡초 뽑기, 물 주기 등의 반복 노동뿐만 아니라 날씨, 병충해같이 예측할 수 없는 각종 변수가 도사린다. 이 가운데 식물이 자랄 때까지 기다리기도 해야 한다. 정원 일은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효율성, 생산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땅의 시간에 따라 멈추기도 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기다릴 줄 아는 정원사의 모습은 효율을 바탕으로 한 기계에는 없는 능력이다. 전시는 “정원 일의 더딤과 고요함, 한가로움은 미래 사회가 품을 일의 속성에 가 닿아 있다”고 말한다. 박혜린의 ‘봄여름가을겨울’은 정원에서 머뭇거리고 기다리는 행위를 통해 만나는 계절의 변화와 그로 인해 얻는 삶의 풍성함을 이야기한다. 싹이 움트듯 좁은 통로를 통과해 마주하는 봄, 소리가 많고 움직임이 많은 여름, 무언가를 조용히 바라보게 되는 가을, 고요하게 어딘가 숨어들고 싶은 겨울을 네 가지의 조형물로 표현했다....(중략)... *환경과조경374호(2019년 6월호)수록본 일부
  • 마곡 커뮤니티 팜 농업공화국 조성사업 설계제안공모 당선작
    지난 5월 10일 ‘농업공화국 조성사업 설계제안공모’의 당선작이 발표됐다. 서울시가 개최한 이번 공모는 도시 농업 활동을 총괄적으로 지원하는 거점 공간의 조성을 목표로 한다. 참가자들은 도시농업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건축물 및 외부 공간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했다. 또한 건축가와 조경가의 공동 응모가 참가 필수 조건이었다. 시는 2015년부터 도시농업을 육성하는 ‘서울도시농업2.0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도시농업 공간 확보, 관련 기술 보급, 네트워크 형성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산발적으로 흩어진 프로그램을 아우르는 베이스캠프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마을 개념의 도시농업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공모가 지난 3월 29일 개최됐다. 대상지는 서울시 마곡동 일대 11,817㎡크기의 부지이며, 마곡 지역은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농경지다. 대상지 인근에 위치한 서울식물원과의 연계성 확보가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중략)... *환경과조경374호(2019년 6월호)수록본 일부
  • [이달의 질문] 『환경과조경』에 제안하고 싶은 특집 주제가 있다면?
    20대 젊은 조경가에 대해 알고 싶다. 최근 설계사무소를 이끄는 30~40대의 젊은 조경가가 주목받고 있는데, 아직 내공은 부족하지만 설계에 애정이 많은 20대나 다른 분야와 조경을 연계해 색다른 활동을 펼치는 20대도 있다. 조경이 설계, 시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학문이라고 배우는 만큼 실제로 조경이 다른 분야와 어떻게 융합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젊은 조경가들의 활동과 생각을 다뤄주었으면 한다. 백규리 동심원 조경 가까운 미래 조경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최근 4차 산업 혁명, 스마트 기술 등 미래를 연상케 하는 단어가 조경 설계에 사용되고 있지만 정작 조경과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 실질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조경의 미래에 대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특집을 진행했으면 한다. 김진아 경기도 과천시 유럽 여행 중에 꼭 가봐야 하는 공원과 그 공원을 즐기는 방법을 소개하는 특집을 제안한다. 전 세계에 좋은 공원은 많지만, 그 공원의 역사와 프로그램 등을 소개한 여행 안내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조경에 친숙하지 않은 비전공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특집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지애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사무국장 조경 사무소의 구체적인 업무를 다루는 특집을 제안한다. 조경 업무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현실적인 정보를 얻고 싶다. 많은 학생이 막연한 상상에 기대어 기계적으로 전공을 공부한다. 자신이 하게 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된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학업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원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조경 경기 위축에 대응하는 방법을 다루면 좋겠다. 개인 정원, 주택 단지 내 조경, 공원 등으로 인해 일반인들도 조경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지만, 실질적인 조경의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대처 방안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특집이 필요하다. 박진하 미담 과장 20세기부터 지금까지 현대 조경 디자인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특집을 보고 싶다. 특히 가까운 과거, 예를 들어 지난 50여 년간 조경 디자인에도 유행이 있었는지, 그 유행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유진 서울시 동작구 조경을 공부하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그래서 조경이 정확히 뭐 하는 거야?”다. 설계, 수목, 시공 등 조경이 포괄하는 것들을 헤아려 볼수록 점점 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진다. 『환경과조경』에서 현대 조경의 다원적 면모를 망라하는 특집을 기획해보면 어떨까. 학생은 진로를 고민하는 데 참고할 수 있고, 전문가는 사고의 폭을 넓히고, 비전공자는 조경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획이 될 것이다. 신명진 서울대학교 통합설계·미학연구실 조경인의 삶에 대한 특집을 기획하면 어떨까. 설계 및 시공 사무소, 엔지니어링 회사, 공사 및 공무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조경인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됐으면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느끼는 조경인의 삶에 대한 깊이 있고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면 후배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조경 분야에서 심화되고 있는 인력난 문제도 함께 살펴보면 좋겠다. 설문 조사 등을 통한 보다 현실적인 기사를 담은 특집을 제안한다. 송동근 부영주택 조경부 일본 출장을 가서 부러운 광경을 목격했다. 도심 빌딩 근무자들의 점심시간의 모습이었다. 빌딩 숲 사이 조성된 숲과 같은 공간에서 그들은 피크닉을 즐기는 것처럼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귀국 후 점심시간 서울 도심에서 비슷한 규모의 빌딩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대부분의 회사원은 커피숍을 오가거나 빌딩 로비 안팎을 서성이는 정도였다. 『환경과조경』에 녹지가 잘 조성된 도심 휴게 공간을 소개하는 특집 ‘다양한 도심 속 숲 들여다보기’를 제안한다. 더불어 휴게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공간을 소개한다면 보다 흥미롭고 풍성한 특집이 될 것이다. 이지영 롯데건설 조경팀장
  • [편집자의 서재] 피프티 피플
    하나의 이름에는 그 사람을 향한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누군가의 이름은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더 알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내 이름만큼 익숙한 가족의 이름도 몇 번 곱씹다보면 금방 새삼스러워진다. 엄마가 동네 아줌마와 통화하면서 열정적으로 다른 아줌마 흉을 볼 때, 할머니가 시골에서 보내준 쑥개떡을 먹을 때, 나는 종종 호칭을 생략한 순수한 이름을 떠올렸다. 그러다보면 서울 사는 최지연 씨의 스펙터클한 동네 인간 관계를 파헤치고 충남 사는 김보물 씨의 떡 짓는 소소한 하루를 엿보고 싶어졌다. 엄마와 할머니가 아닌 지연 씨와 보물 씨를 떠올리면 머릿속에서 단편적으로 인식됐던 두 사람이 입체적으로 그려지곤 했다.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은 많은 이름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각 장의 제목은 송수정, 이기윤, 권혜정, 조양선, 김성진, 최애선, 임대열, 장유라, 이환의, 유채원, 브리타 훈겐 등으로, 평범한 이름을 가진 50명의 이야기가 약 400쪽의 지면에 촘촘하게 전개된다. 소설의 주요 배경은 온갖 사연이 우글대는 종합병원. 병원을 찾은 환자부터 시작해 의사, 간호사, 보안 요원, 또 다른 환자의 가족, 그 환자의 가족의 가족, 그 가족의 가족의 친구의 사연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14쪽부터 18쪽까지는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이기윤의 하루이고, 24쪽부터 27쪽까지는 데이트 폭력에 희생된 승희라는 여자의 엄마 조양선의 이야기이며, 152쪽부터 157쪽까지는 승희와 종종 말을 섞었던 친구 권나은이 나오고, 77쪽부터 84쪽까지는 이기윤 몸에 있던 타투를 그린 타투이스트 한승조가 등장한다. 애잔한, 섬뜩한, 발랄한, 훈훈한, 처량한, 찌질한, 통쾌한 등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 편을 읽고 나면 우여곡절 많은 하루를 보낸 것 같고, 다음 편엔 누가 나올까 기대하게 된다. 익숙한 이름이 다른 이야기에서 불쑥 나타나면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난 듯 반갑다.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 틈에서 나와 닮은 구석이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소소한 쾌감은 덤이다. 하나의 서사는 보통 한두 명의 주인공을 구심점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곁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주변인들의 사연은 통편집되거나 많은 생략이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조연이고 엑스트라다. 분명한 이름과 생생한 에피소드를 입은 인물들은 복잡한 관계망에 놓여 다른 사람과 이쪽저쪽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납작하지 않고 두툼하게 묘사되며, 작가는 소소한 이야기들로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낸다.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낮고 넓은 테이블에, 조각 수가 많은 퍼즐을 쏟아두고 오래오래 맞추고 싶습니다. … 그렇게 맞추다보면 거의 백색에 가까운 하늘색 조각들만 끝에 남을 때가 잦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들어 있거나, 물체의 명확한 윤곽선이 모이거나, 강렬한 색이 있는 조각은 제자리를 찾기 쉬운데 희미한 하늘색 조각들은 어렵습니다. 그런 조각들을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 한 사람 한 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요."2 마지막 장에서는 책 속 모든 인물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작가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각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독자 손에 쥐여 준 이유를 알 수 있다. 나는 많은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납득하며 책을 덮고 목차의 이름들을 찬찬히 복기했다. 다시 떠올린 이름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이름에 관해 덧붙이자면, 다음 달 『환경과조경』에도 많은 이름이 등장할 예정이다. 7월호 특집으로 ‘2019 대한민국 조경설계사무소 리포트’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무소를 하나하나 자세히 다루진 못하겠지만 각 사무소의 이름들,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한데 모아 더 많은 이에게 불리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그러다 보면 이름 속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도 누군가의 마음에 심기지 않을까. 각주 정리 1. 정세랑, 『피프티 피플』, 창비, 2016. 2. 같은 책, p.392.
  • [CODA] 공간은 어떻게 장소가 되는가
    새 학기가 다가오면 시험만큼이나 긴장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한 학기의 운명을 좌우하는 수강 신청 기간. 학점이 후한 수업이나 팀플이 없다는 교양도 좋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1교시 수업을 탐내곤 했다. 당시만 해도 아침형 인간에 가까웠던 나는 기왕이면 일찍 하루를 시작해 단 일 분이라도 빨리 학교에서 벗어나겠다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운 좋게 수강 신청의 전쟁에서 썩 괜찮은 승리를 거둔 난 오후 세 시면 캠퍼스를 탈출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됐다(그래봤자 설계 스튜디오 과제 때문에 다시 학교로 돌아와야 했다). 시간만 많고 돈은 없는 대학생의 발걸음은 뻔한 루트를 따라 돌았다. 경비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낯선 동네를 탐색하거나 티켓값이 만만한 전시회에 들락거렸다. 주머니 사정이 괜찮은 날에는 영화관에 갔다. 한 잔에 오천 원가량 하던 아메리카노와 비교하면 영화 감상은 가성비가 좋은 취미 활동이었다. 더울 땐 시원하고 추울 땐 따뜻하고, 무엇보다 설계 스튜디오 하나를 마무리할 때마다 바닥을 드러내는 머릿속을 영화의 무언가가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서랍 한구석에 쌓인 영화표가 설계에 도움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이 보다 보니 영화가 좋아졌다. 전공 때문일까 유독 영화의 배경에 눈이 갔고, 한때는 그런 풍경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도 싶었다. 갑자기 영화 이야기를 꺼내든 첫 번째 이유는 최근 그 꿈을 어설프게나마 이루게 됐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영화 공부를 시작한 친구가 20분가량의 단편 영화를 찍는다며 도움을 요청해왔다. 기껏해야 짐을 옮기거나 심부름을 하는 허드렛일인 줄 알았는데, 그는 내가 설계를 배웠다는 이유 하나로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미술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주었다. 덕분에 뜻하지 않은 책임감에 허덕이며 주말과 저녁 시간을 자진해서 내어놓아야 했다. 가구와 소품 배치 위주의 실내 공간을 꾸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야간 야외 촬영이 문제였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말싸움을 한 두 주인공이 갈등을 해소할 겸 맥주 한 캔을 나눌 장소가 필요했는데, 벤치와 테이블이 있으며(주인공의 키, 앉은키 모두에 어우러지는 적당한 높이어야 한다) 뒤로는 녹지가 적당히 풍부하고(주인공은 낡은 아파트에 살기에 잘 관리된 느낌을 풍기면 곤란하다)많은 조명을 설치할 필요가 없이 밝기가 적절하며(테이블 근처에 가로등이 있으면 역광이 진다)인적이 드물어야 했다. 분위기가 그럴듯한 어느 골목은 녹지가 지나치게 잘 관리되어 있어 좋은 동네라는 느낌이 물씬 났고, 가로등이 많은 놀이터에는 저녁 산책을 즐기러 온 사람도 많았다. 편의점 앞 테이블을 찍자니 촬영 감독이 차도 한가운데서 서 있어야 할 판이였다. 결국 찾아간 곳이 아파트 내 녹지였다. 심심하게 심긴 수목과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조명, 그 아래 어디에나 있을 법한 테이블과 벤치, 뒤를 스쳐 지나는 몇몇 주민과 고양이까지. 틀에 박힌 지겨운 풍경이 프레임에 담기자 새삼 정겹게 느껴졌다. 줄곧 다세대 주택에 살아온 내겐 조금 부러운 모습으로 다가오기까지 했다. 더불어 이 정도의 녹지와 벤치와 테이블과 조명이면 밤에도 즐길 수 있는 휴게 공간으로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로케이션 헌팅 중 화려한 조명으로 치장한 수경 시설이나 독특한 모양의 퍼걸러가 보이는 곳은 번번이 후보에서 제외됐는데, 일상적 이야기를 담던 뷰파인더에 그러한 공간이 잡히는 순간 극의 흐름이 틀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유독 그런 공간에 오가는 사람이 적었던 걸 보면, 그 일상적 흐름이 뷰파인더 안에서 깨지는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짐작을 하게 된다. 영화 이야기를 시작한 두 번째 이유는 이번 호로 막을 내리는 ‘시네마 스케이프’에 대한 아쉬움과 고마움 때문이다. 영화 속 경관을 풀어낸 서영애 소장의 글은 여러 번 보아 익숙해진 영화를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어주었다. 내겐 공간이 누군가의 경험과 기억으로 새로운 정서와 의미를 갖게 되며 비로소 장소로 탈바꿈한다는 사실1을 가장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준 글이기도 하다. 영화와 조경의 경계를 리드미컬한 걸음으로 오가던 연재를 떠나보내며, 언젠가 조경과 또 다른 무언가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연재 필자를 발굴해 오겠다는 약속을 드리며 글을 닫는다.
  • 자연 속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아이붐 동물 가족 시리즈’ 아까시나무로 만든 동물 테마의 놀이 시설
    아이붐I-BOOM은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 새로운 붐을 일으키겠다는 목표로 개발된 예건YEKUN의 복합 놀이 시설 브랜드다. 아이붐은 다양한 감각 체험과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놀이 시설의 개발에 힘써 왔으며, 국내 최초로 놀이 시설에 1등급 목재를 사용하기도 했다. 좋은 자재로 만든 아이붐의 놀이 시설은 목재 고유의 따뜻한 색감과 촉감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오감을 발달시키고 자연에 대한 무한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아이붐 동물 가족 시리즈’는 아까시나무 목재로 제작한 동물 테마의 놀이 시설이다. 새로 출시된 ‘두더지 가족’은 귀여운 두더지 가족과 함께 숨바꼭질을 한다는 테마로 만들어졌다. 친근한 두더지 얼굴, 직선형 및 나선형 미끄럼틀, 다양한 높이의 계단, 네트 등이 입체적으로 조합되어 아이들은 두더지들 틈에 숨어 흥미로운 모험을 즐길 수 있다. 이밖에도 호랑이와 보물찾기를 하는 ‘숲속 호랑이’, 고래와 함께 바닷속을 여행하는 ‘고래 가족’ 등 다양한 동물 테마의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TEL. 02-324-0070 WEB.www.iboom.co.kr
  • [에디토리얼] 북한 도시 읽기
    작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고, 실시간 영상을 통해 전파된 평양의 도시 경관도 큰 화제를 낳았다. 우리의 상상과 달리 카메라에 잡힌 동시대 평양의 거리는 활기찼다. 고층 건물의 형태와 아파트의 색채가 화려하게 변모했다. 미래과학자거리와 려명거리에는 첨단 도시의 분위기가 감돌았고, 대동강과 풍성한 녹지를 품은 도시 풍경은 여유로웠다. 한반도에 불어온 봄바람은 북한의 도시, 경관, 건축에 대한 다양한 학술회의로 이어졌고 관련 서적이 연이어 출간되기도 했다. 지난 연말,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는 ‘영화로 보는 북한 도시와 경관’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사흘에 걸쳐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북한 도시의 역사와 문화, 구조와 형태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환경과조경』은 5월호 특집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에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의 도시, 건축, 조경을 탐사해 온 전문가들을 초대했다. 이번 기획이 평양과 북한 도시들에 대한 편견이나 환상을 바로 잡고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조경학 연구자들에게는 북한의 조경 문화와 도시 경관에 대한 탐색의 실마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이번 특집을 통해, 북한을 침체된 국내 건설 시장의 돌파구로만 여기는 ‘대박론’에 대한 교정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소망한다. 북한의 도시계획과 도시 주거에 대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해 온 정인하(한양대학교 교수)는 특집 원고에서 한국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 수립된 평양복구계획, 모스크바에서 유학한 건축가 김정희가 펼친 사회주의 도시 마스터플랜의 이상, 1950년대의 평양 도시계획안, 1960년의 평양 도시총계획 등을 촘촘히 개괄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도시 평양의 구조, 직주근접의 토지 이용, 녹지 체계가 자본주의 도시의 그것과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을 논의한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북한 도시 읽기』,『 도시화 이후의 도시』 등의 저작을 통해 북한 도시의 구성 환경을 생산, 녹지, 상징의 측면에서 탐구해 온 임동우(홍익대학교 교수, PRAUD 대표)는, 이번 원고에서 북한 도시의 핵심적 상징 공간인 광장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평양에 비해 그간 많이 연구되지 않은 청진, 함흥, 신의주, 원산의 특징을 직접 작성한 액소노메트릭axonometric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시장 경제 체제의 도입을 목전에 둔 사회주의 도시의 미래를 전망한다.1 최근 출간된『풍류의 류경, 공원의 평양』의 저자인 이선(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은 평양의 여러 공원의 모태가 된 명승고적을 살펴보고, 공원과 유원지의 형성 과정과 변천사를 개관한다. “편협한 시각을 거두고 북한을 입체적으로 조명할 때”라는 그의 시각에 눈길이 멈춘다. 『서울 평양 메가시티』와『 서울 평양 스마트시티』를 통해 한반도 광역경제권 네트워크를 구상한 바 있는 민경태(여시재 한반도미래팀장)는 사회주의 도시 평양의 미래 리모델링을 제안한다. 기존의 도시적 맥락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사회주의 도시 시스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도시 박물관’을 기획하면서 그는, 공간의 연결성을 향상시켜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상징적 공간을 재활용하여 관광 명소를 발굴하는 구상을 펼친다. 낙후된 시설을 재발견하는 평양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평양의 명소를 따라 걷는 올레길 코스를 제안하기도 한다. 북한 도시 특집 외에, 이번 5월호에는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스튜디오 테라 대표)의 근작 ‘서울시립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맘껏광장’, ‘숲 갤러리’를 싣는다. 최근의 ‘제주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국제공모’ 당선작과 함께 이번 달의 근작들에서 그의 설계의 중심이 형태와 구성에서 관계와 구조로 옮겨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녹사평역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설치된 ‘숲 갤러리’를 함께 둘러보고 그와 나눈 긴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싣는다. 그가 강조하는 “생태학적 상상력과 풍경의 디자인”이 한국 조경의 오늘을 점검하고 내일을 기획하는 키워드가 되기를 기대한다. 각주 1.최근 임동우는 1945년 이전 평양의 근대화 시기의 건축을 지도와 함께 자료화한 작업‘모던평양’(http://modernpyongyang.org)을 공개했다. 사회주의 도시로 재편되기 이전 평양의 근대 공간·건축 정보를 구글 API 기반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시각화한 ‘모던평양’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눈으로 평양을 재발견할 수 있다.
  •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Pyongyang, An Unknown City
    멀지 않지만 다가갈 수 없던 곳, 북한이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 이후 이어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며 들뜬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머지않아 남북한이 경제, 문화,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교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된 남과 북의 단절은 상대에 대한 몰이해를 초래했고, 우리는 줄곧 왜곡된 상상에 기반해 북한의 모습을 그려왔다. 이번 기획은 북한의 수도 평양을 살펴봄으로써 북한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사회주의 체제와 이념이 고스란히 반영된 도시의 형성 과정과 변천사를 살피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넌지시 헤아려 보고자 한다. 나아가 평양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 넘치는 기획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해 본다. 북한의 도시 공간에 대한 탐사 없이 그들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양한 필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북한 도시에 대한 시각을 확장하고 평양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흥미로운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진행 김모아, 윤정훈 디자인 팽선민
    • 편집부
  •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사회주의 도시, 평양
    평양은 만주로부터 한반도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기 때문에,고구려 시대부터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손꼽히던 곳이다.특히 조선 시대에는 대동강과 보통강을 끼고서 네 겹의 성벽이 건설되었는데,석축으로 된 내성 내부에는 평안도 감영과 객사를 비롯한 주요 행정 및 군사 시설이 모여 있었다.내성의 규모도 다른 읍성에 비해 큰 편이어서6,000여 세대의 주민이 내성 안팎에서 상업과 군역에 종사하며 삶을 영위했다.그렇지만 개항 이후 성곽 도시로서의 평양은 급격하게 변모해 나갔다.경의선 철도가 외성을 관통하고,그 한가운데 평양역이 건설되었다.또한 내성의 일부가 허물리고 그 주위로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 거점이 들어섰다.숭실학교와 광성학교 등이 바로 이곳에 설립되어 학생들을 교육했다.평양은 해방 이전까지 한반도에서 기독교 세력이 가장 왕성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일제 식민지기 평양은 다른 한국의 도시들처럼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경의선 철도가 부설된 이후 조금씩 몰려오던 일본인들의 수는 1910년 강제 병합 이후로 일본 군대가 주둔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 그들은 평양역 주변에 정착하여 일본인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평양은 내성 지역의 한국인 구역과 평양역을 중심으로 한 일본인 구역으로 이분되었다. 1920년대 평양부는 시구 개정을 실시하여 이 두 구역을 연결하고자 했으나, 분리된 도시 구조는 해방 전까지 해소되지 못한 채 유지되었다. 그렇지만 이같은 식민지기의 도시 구조는 한국전쟁 동안 도시가 완전히 초토화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오늘날 대동문과 모란봉 부근의 일부 성벽이 복원되어 과거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평양은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는 고도이지만,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역사적 유적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고유한 도시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렸다. 하지만 전쟁이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고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면서, 전후에 북한 정권은 평양을 철저한 사회주의 도시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전후 복구와 도시계획 김일성은 전쟁 중이던 1951년 1일 평양복구계획을 수립할 것을 지시했고, 그해 5월 평양에 대한 최초의 도시계획안을 완성했다. 이 계획안은 건축가 김정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김일성의 배려로 북한의 첫 번째 해외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모스크바에 있는 소련 건축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고, 한국 전쟁이 치열했던 1951년 1월에 귀국해 평양시 복구계획을 맡았다.11951년의 계획안에는 검게 칠해진 도시 블록과 도로망이 간단하게 그려져 있다. 이 계획안에 등장하는 가장 큰 특징은 김일성이 제시한 것으로, 첫째 일제 식민지기에 형성된 평양의 기형적인 시정하고, 둘째 광범한 근로 인민을 위한 문화 시설과 편의 봉사 시설을 갖춘 현대적인 도시로 복구 건설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2 이렇게 작성된 평양복구계획안으로 김일성은 1952년 5월 모란봉지하극장에서 전람회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대동강 유보도 계획안, 도심 중심부 형성안, 고층 살림집과 대상 공공건물 설계도가 함께 전시되었다.3 이 전람회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1953년에 내각 결정 제125호 ‘평양시 복구재건에 관하여’를 발표했다. 이는 전후 평양복구계획의 기본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도시의 기본을 보존하면서 주택, 산업 및 교통의 옳은 배치와 도시 주민 생활의 정상적 건강 조건을 보장하는 주택 구역을 옳게 조직하는 것이다. 대동강을 도시의 축으로 설정하며, 대동강을 따라 구릉 기복 조건에 어울리게 건축물을 배치하며, 김일성광장을 남산 동쪽 기슭에 건설하며, 대동강과 평행되면서 하류에 공장, 기업소를 배치하며, 주택 지구를 녹화하고 도시 주변에 녹지대를 형성할 것 등이다.”4이는 1953년에 작성된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에 반영되어 있다. 1950년대 중반에 등장한 평양 도시계획안은 기존의 방향을 충족시키면서 몇 가지 새로운 제안을 담고 있다. 우선 김일성광장에서 시작된 도시 축을 대동강 좌안까지 확장해 더욱 강조되도록 했다. 대동강을 평양 도시계획의 중심 요소로 포함하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이를 통해 도시 축을 명료하게 구성한 것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이왕기, 『북한 건축 또 하나의 우리 모습』, 서울: 서울포럼, 2000, p.130. 2. 김일성, 『김일성 저작집』 제6권, 평양: 조선로동당, 1980, p.280. 3. 평양건설전사 편찬위원회 편, 『평양건설전사 2』,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7, p.144. 4. 리화선, 『조선건축사 2』,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9, p.104. 정인하는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의 건축 역사 및 이론 담당 교수다. 1987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프랑스 파리 제1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한국에 귀국한 이후 동아시아 건축 및 도시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이와 관련된 다수의 논문과 저작물을 발표했다.
  •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북한 도시의 축, 광장과 상징 공간
    포스트 평창올림픽 2018년은 한반도에 새로운 물결이 휘몰아친 해다. 베트남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조금 상황이 달라졌지만,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시작되어 올 초까지 이어져 온 남북 화해의 흐름은 한반도 혹은 적어도 한국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성과로 북을 방문해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던 2000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당시의 분위기는 조금 더 통일에 대한 염원이 가득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하더라도 통일은 한국인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대전제였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떠나, 국민들은 북한을 이해하기보다는 북한과 통일된 한민족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정치적 논의를 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 20년이 흐르고 북한에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논의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두 나라가 정치적 통합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닌 북한 사회의 변화와 자본화, 이러한 변화에 따른 한국과의 교류 가능성, 한국의 경제 성장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즉 한국인들이 진정으로 북한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북한 도시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여 년간 북한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외부 강연을 다녔지만, 작년 한 해처럼 청중들이 북한의 도시, 더 나아가서는 북한의 부동산투자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한 적은 없었다. 이전에는 대부분의 질문이 “평양은 전기가 잘 안 들 어온다던데 엘리베이터는 작동하나요?” 혹은 “어떠한 방식으로 통일이 돼야 할까요?” 하는 식이었다. 강연 내용과는 별개로 북한에 대한 피상적 호기심에 근거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최근 강연에서는 많은 변화를 느낀다. 북한에 새로운 도시 모델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평양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과연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일까, 북한에 돈주(북한의 신흥 자본가)가 많아졌다는데 그들을 통해 북한 부동산에 투자하는 중국인이나 외국인은 없는가 등 북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깊어진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덕분인지 더 많은 사람이 북한의 도시와 도시 공간에 대해 알고자 하기도 한다.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도시를 알아야 하고, 또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 사회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도시의 핵심 공간, 광장 우리가 북한의 도시 혹은 평양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밟아야 하는 과정은 김일성광장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이 도시 공간을 충분히 이해해야만 그들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사회를 이해해야만 건설적인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자는 “우리가 김일성광장을 객관화해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곤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건축과 도시를 다루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객관화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믿고 있다. 흔히 그리스의 아고라(agora)나 로마의 포럼(forum)에서 광장의 원형을 찾곤 한다. 이는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도시 공간이었다. 실제로 아고라는 그리스어로 ‘모이는 곳’이라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시장을 형성하는 곳이었으며 지도자의 연설을 듣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스어 agorázō는 “I shop나는 구매한다”을 의미하고, agoreúō는 “I speak in public나는 공개 석상에서 이야기한다”을 뜻하는데, 두 단어 모두 아고라가 그 어원이다.1 즉 광장이라는 도시 공간에는 두 가지의 매우 중요한 성격이 함축되어 있는데, 시장과 공공이 그것이 다. 특히 시장은 도시의 근본적 기능이기도 하다. 많은 전문가는 생산한 물품을 거래할 공간의 필요성이 도시 발생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만큼 시장은 도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기능이며 도시의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아고라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로마의 포럼처럼 아고라는 대중이 집결해 연설을 듣고 논쟁하고 토론하는 도시 공간이었다. 그리스의 정치를 발전시킨 물리적 공간 중 하나인 것이다. 렘 콜하스는 프랑스 혁명 등의 시민 혁명은 18세기 건축에서 나타난 발코니 덕분에 가능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혁명가 혹은 지도자가 3~4층 높이의 발코니에 올라 많은 대중을 상대로 연설할 수 없었다면, SNS는 물론 TV나 라디오도 없던 시절에 시민 혁명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과연 광화문광장이 없었다면 정치 민주화를 위한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광장의 근원과 기능은 유럽 도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아시아와는 달리 유럽의 광장은 교황이나 주교가 회중을 모으기 위한 공간, 왕이 군대를 집결시키거나 퍼레이드를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유럽에서 기원한 사회주의 도시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은 사회주의 도시 건설을 위한 ‘도시 디자인의 16가지 원칙(The Sixteen Principles of Urban Design)’을 발표했는데, 그중 여섯 번째 원칙은 다음과 같다. “도시의 중심지는 도시의 핵심 공간을 형성한다. 도심은 도시의 정치적 중심지다. 도심에는 중요한 정치적, 행정적, 문화적 장소가 자리한다. 도심의 광장에서는 정치 데모, 행진, 축제 등이 일어난다. 도심은 가장 중요하고 기념비적 건물로 구성되어야 하며, 도시 계획의 건축적 구성을 지배하고 도시의 건축적 실루엣을 결정해야 한다.”2이처럼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도시의 중심성에 주목하고 광장의 기능을 강조했다. 상징적 건축물 등으로 구성되는 이 공간에서 정치적 집회나 행진, 축제를 위한 행사가 벌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회주의 도시가 유럽의 도시 문화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광장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이를 ‘사회주의화’했을까.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Sharon Boda, Trudy Ring, and Robert Salkin, eds., International Dictionary of Historic Places: Southern Europe, Routledge, 1996, p.66. 2.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center forms the veritable core of the city. The center of the city is the political center for its population. In the city center are the most important political, administrative and cultural sites. On the squares in the city center one might find political demonstrations, marches and popular celebrations held on festival days. The center of the city shall be composed of the most important and monumental buildings, dominating the architectural composition of the city plan and determining the architectural silhouette of the city.” Lothar Bolz, Von deutschem Bauen: Reden und Aufsatze, Berlin(Ost): Verlag der Nation, 1951, pp.32~52. 3. 김정희, 『도시건설』,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학원, 1953. 임동우는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도시설계전공 전임교수이며, 프라우드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2013년 뉴욕건축가 연맹의 젊은건축가상을 받았으며,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한국관의 참여 작가다.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평양전-평양살림의 총감독이었으며,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평양전의 총괄큐레이터를 맡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리닝 하우스(Leaning House), 이그레스 하우스(EEgress House), 투란단다사나 하우스(Tuladandasana House) 등이 있으며,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2011), 『북한도시 읽기』(2014), 『도시화 이후의 도시』(2018)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