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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탄생, 1968~2018]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 계획 제도와 일상적 소품
인위적인,하지만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도시화
인간은 온전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가?영국의 초기 낭만주의 시인이자 찬송가 작사가로 유명한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1731~1800)는“신은 농촌을 만들고,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God made the country and man made the town)”라는 유명한 시구를 통해,농촌(country)과 도시(town)의 창조 주체를 신과 인간으로 대비하며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를 표현했다.1흥미롭게도 한국의 도시화50년은 소도시(town)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많은 도시city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거주하는 초거대 도시(megalopolis)를 만들어냈다.그간의 연재에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도시화50년의 현황과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이번 글에서는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살펴본다.
나는 공교롭게도2000년대 초반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기와2000년대 중후반 행정중심복합도시 및 지방혁신도시가 건설되던 시기에 실무 건축가로 일했다.게다가 대한민국의 대표적 대규모 설계사무소에서 주로 현상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팀에 소속되어 일했다.인구 수천 또는 수만을 위한 아파트 단지,인구 수십만을 위한 도시가 삽시간에 계획되고 곧바로 건설되어,그곳에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변화의 현장에 있게 됐다.그때의 짜릿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던 경험이 없었다면,때늦은 미국 유학도 지금의 연재도 없었을 것이다.한국의 도시화50년이 초래한 물리적 세계의 변화는 인위적인,너무나 인위적인 변화였다.하지만 이는 마치 우리 주변의 물이나 공기처럼 이제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미국에서6년여의 박사 과정과 강사 생활을 마치고,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제1년 반이 조금 넘었다.미국에서 동아시아의 급속한 도시화와 대규모 물리적 개발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이미 공고한 문화가 돼버린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낯설게 실감할 때가 있다.지난 반년 동안 서울시 모 자치구의 거리 재생을 위한 기본 구상 연구에 참여했다.경쟁 입찰에 당선된 후 주민과 담당 공무원을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담당 공무원은 놀랍게도 나를 자신의 상사에게“과장님,용역 업체입니다”라고 소개했다.한 번도 내가 용역 업체에서 일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용역,용역 업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용역用役(service),물질적 재화의 형태를 취하지 아니하고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2용역 업체用役 業體(service company),경비,청소,운송 등과 같이 주로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육체적 노동을 제공하는 기업체.3
지금 한국에서 하고 있는 일과 유사한 일을 미국,중국,심지어 남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에서도 수행했지만,한국처럼 정부 중심의 수직적 관계가 문화로 내재되어 있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없다.대학교수의 연구 과제조차 용역 업체의 업무로 인식되고 있으니,일반 설계사무소나 엔지니어링 회사의 업무는 어떻게 간주되고 실행될 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이같이 마치 개인의 습관이나 조직의 관행 또는 사회의 문화처럼 우리 일상 속에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는 한국 도시화의 메커니즘을 계획 제도,정부 사업,행정 소품 등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도시화 메커니즘의 계획 제도:법,제도,정책,국정 과제,슬로건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작동하는 첫 번째 단계로 계획 제도가 있다.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과 제도를 통한 통치를 원칙으로 한다.대한민국의 최상위 법 규범으로서 헌법은 공공복리와 공공 필요에 따라,4그리고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 개발과 보전을 위해5국민의 사유 재산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근거를 제시한다.이에 따라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헌법의 하위에 법률,대통령령,총리령·부령,자치법규 등의 법령이 위계에 따라 구성되며,상위법 우선,신법 우선,그리고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적용된다.
대한민국의 도시화 관련 주요 법령의 종류 및 특징은 표2에서 보는 바와 같다.흥미롭게도 대한민국의 도시화 관련 주요 법령의 종류와 제정 시점은 해당 정부의 성격 및 임기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를테면 박정희 정부는‘건축법’, ‘도시계획법’, ‘국토이용관리법’, ‘주택건설촉진법’등 도시화 관련 주요 법령을 최초로 제정했으며,이에 대한 시대적인 법적 정비로서 김대중 정부는‘주택법’, ‘국토계획법’등의 법령을 제·개정했다.한편 노무현 정부에서는 주목할 만하게도‘행복도시법’, ‘혁신도시법’, ‘도시재생법’등 여러 특별법을 제정했으며,문재인 정부는 오늘날 이에 대한 법적,제도적 계승을 시도하고 있다.여기서 특별법은 일반법에 비해 지역·사람·사항에 관한 법의 효력이 좁은 범위에서 적용되는 법률을 말하며,일반법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도시화 관련주요 법령에도 보수와 진보의 정권 성향이 중요하게 반영돼 있으며,나아가 대한민국의 실제 물리적 세계에도 여러 단절적 전환이 법적,제도적으로 시도됐음을 알 수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73호(2019년5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William Cowper, The Task: A Poem in Six Books , London: Printed for J. Johnson, 1785.
2. “용역”,표준국어대사전, 2019년4월10일 접속(https://ko.dict.naver.com/#/entry/koko/fa27753328404c4ca29c7861983be780).
3. “용역 업체”,고려대한국어대사전, 2019년4월10일 접속(https://ko.dict.naver.com/#/entry/koko/eb4afa670562415a93b87fa066093b0f).
4.대한민국 헌법 제23조.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②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③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5.대한민국 헌법 제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중국의 쓰촨 대학교,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인간,사회,자연에 대한 건축,도시,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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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 조경] 정원 신세계의 정복자들
모더니즘과 개인 정원
20세기의 모더니즘 정원은 유럽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됐다는 점이 과거와 확연히 달랐다.우선 미국으로 수출됐고 남미,캐나다 등 미 대륙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아시아에도 상륙했다.지금 돌아보면 한국의1950년대, 1960년대의 정원에도 영향을 미쳤던 듯하다.나는 소위 말하는‘미국식 정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산 증인이다.흔히 말하는 신흥 주택이었던 것 같다.거실 유리문을 열면 바로 넓은 잔디밭이었고,연못과 온실이 있었으며,잔디밭 가장자리에 화단이 있었다.그 미국식 화단에서 한국 호미로 장미와 백합을 정성스레 가꾸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서울 도심에 아직 한옥이 즐비하던 시절이었다.친척과 친구들의 집이 죄다 한옥이었던 기억이 난다.더러는 마당 한가운데 높이 단을 쌓고 화단을 가꿨던 집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시멘트로 도배한 신식 마당이었다.
서울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한옥이 사라지고 외곽의 신흥 주택이 고층 아파트 단지로 뻥튀기되며 한국의 근대 조경이 시작됐다. 1970년대 중반,지구의 다른 곳에서 모더니즘이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 중간 과정 없이 역사 속으로 불쑥 뛰어든 것이다.그 까닭에 한국의 조경은 개인 정원보다는 공공 정원,고속 도로변의 조경이나 단지 조경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개인 정원의 비율이 아직은 극히 낮고 조경가의 설계 범위에 거의 속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이 자리에서 모더니즘과 개인 정원을 고찰하는 것이 좀 어설퍼 보인다.그럼에도 모더니즘의 첫 라운드가 개인 주택의 좁은 마당에서 치러졌던 까닭에 한 번 개괄해 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베를린만 보더라도 현재 정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개인 정원이 무려160개소에 달한다.여러 번 전쟁을 치르고도 살아남은 주택과 빌라 정원들이다. 1860년대에 조성된 것도 많지만 대부분은 모더니즘 시대에 탄생했다.모더니즘 정원사에서 개인 정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된다.
정원의 신세계?
대개 미술이 가장 앞서가고 그다음 건축이,그리고 제일 뒷전에서 정원이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조경가가 남달리 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원의 속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시멘트나 철근,벽돌 또는 물감은 그 자체로19세기 중엽 루돌프 지베크(Rudolph Siebeck)가 설계한 빌라 정원(1857).풍경화식 정원의 설계 기법을 여과 없이 반복했던 시대의 산물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이런 설계 방식을1920년까지 고수한 인물들도 적지 않았다.별 감동을 주지 않는다.다만 이들을 쌓고 세우고 화폭에 붓질을 하면 감동적 작품으로 변신이 가능하다.그에 비해 정원을 이루는 나무와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문제다.구식으로 심건,신식으로 심건 나무 몇 그루만으로도 정원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게다가 절기에 따라 모습을 바꿔가면서 늘 스스로 새로워지고 변화하는 것이 정원이다.그러므로20세기 새 시대가 도래하여 모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어도 정원 전문가들 사이에선 새로운 정원에 대한 요구가 그리 절실하지 않았다.정원 혁신을 원한 것은 오히려 타인들,건축가와 예술가들이었다.건축가들은 자신이 고안한 새로운 건축과 조화되는 정원을 원했고 예술가들은 아방가르드 개념을 정원에 적용하여 제멋대로의 정원을 만들었다.이들이 이렇게 남의 영역을 침범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73호(2019년5월호)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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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어떤 나라
북한 영화를 본다는 것
작년 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에서 주최한‘영화로 보는 북한 도시와 경관’심포지엄을 기획하며 북한 영화를 두루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북한이 해외 영화사와 공동 제작한‘김동무는 하늘을 난다’(2012)가2018년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대중적 관심도 높아진 터였다.유튜브 검색만 하더라도 북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고,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이 올린 영상을 통해 변모한 평양의 최근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는 북한 콘텐츠도 예상보다 많았다.보유 리스트를 검색해서 사전에 신청하면 자료를 볼 수 있었다.하지만 그중 심포지엄에 적합한 영화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매끈한 상업 영화에 길들여진 눈높이로는 전형적 인물 유형,작위적 서사,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옥희의 대사 같은 톤을 인내하기 쉽지 않았다.무엇보다 모든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체제 선전 메시지가 깔리고“위대한..님”투의 표현이 빈번히 등장했다.여성 건축가가 재취업하며 자아를 찾는 과정을 담은‘행복의 수레바퀴’(2000),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일상을 그린‘우리집 이야기’(2016),평양의 도시계획을 수립한 김정희에 대한‘한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1987)모두 공공장소에서 풀 버전으로 상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판단했다.결국 북한의 문화 유적과 도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와 해외에서 제작한 북한 영화를 대안으로 선정했다.
선택한 영화 중 하나인‘어떤 나라’(2004)는2003년 평양에 사는 두 소녀가 매스 게임(mass game)(집단 체조)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모란봉 제1중학교에 다니는 열세 살 현순과 열한 살 송연이 주인공이다.현순은 노동 계급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전업 주부인 할머니와 어머니와 함께 사는 외동딸이다.송연은 김일성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지식 계급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사이의 세 자매 중 막내딸로 반려견과 함께 산다.승연의 집 베란다에서 대동강이 좀 더 가깝게 보이고 아파트 평수가 조금 더 넓다는 점을 제외하면 두 집의 계급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순이네 가족은 소파와 텔레비전이 있는 방에서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보낸다.이 방에 상을 펴고 밥을 먹는다.조부모가 지내는 방인데 일종의 가족실 기능도 한다.등교와 식사 준비로 분주한 아침,일과를 마치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저녁,강변에서 여가를 보내는 휴일 풍경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다.끄고 켤 수 없고 볼륨 조절만 가능한 라디오를 통해 매일 아침7시에 기상 사이렌이 울린다거나,단 하나의 국영 채널을 통해 하루 다섯 시간 동안 선전 뉴스와 드라마를 방영하는 방송 시스템이나,정전이 될 때마다 익숙하게 초를 켜는 모습이 이곳이 평양임을 상기시킨다. ...(중략)...
*환경과조경373호(2019년5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북한의 조경가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다. 어떤 개념과 이론을 바탕으로 설계를 할까. 시공하는 데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고, 권한과 지위는 어느 정도일까. 영화의 배경에 등장하는 강변의 풍경과 광장 디자인,녹지 패턴과 식재 수종이 눈에 들어오는 직업병을 어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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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정원을 감각하는 방식
한국의 정원 展: 소쇄원, 낯설게 산책하기, 2019. 4. 18. ~ 5. 19.
담양의 소쇄원이 서울 도심에 이색적인 모습으로 재현됐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4월 18일부터 5월 19일까지 개최되는 ‘한국의 정원 展: 소쇄원, 낯설게 산책하기’에서 소쇄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낯설게 만나볼 수 있다. 총 17개의 설치 미술, 영상, 사진, 동양화, 공예, 페이퍼 아트, 북 아트, 그래픽 디자인, 인터랙티브 디자인 작품은 아날로그 예술부터 현대 디지털 미디어를 폭넓게 아우르며, 소쇄원을 다채롭게 감각하는 법을 보여준다.
조경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소쇄원은 가장 친숙하고 대표적인 전통 정원이다. 하지만 소쇄원을 비롯한 한국의 정원은 아직 일반인에게 낯선 공간이다. 서양의 정원과 달리 한국 정원은 시각적으로 형태가 분명하지도 않고, 자연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며, 찾아가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상당수다. 방송 미술·영상 콘텐츠 제작 전문 기업 SBS A&T가 주최하고 크리에이티브 팀 올댓가든(All That Garden)이 주관한 이번 전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국 정원이 가진 독자적 아름다움과 철학적 의미를 쉽고 감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참여 작가 대다수는 전시 준비를 계기로 소쇄원을 처음 알게 된 이들이다. 작품 세계가 뚜렷한 전문 작가보다 다양한 현장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활동가들을 참여 작가로 초청했는데, 이를 통해 작품 자체보다는 전시의 주제인 소쇄원과 정원을 경험하는 다양한 방식을 부각하고자 했다.
전시는 네 개 섹션으로 나뉜다. ‘일상으로부터 달아나기’(섹션 1), ‘따뜻한 기억에 더 가까워지는 순간’(섹션 2), ‘조금 특별한 상상을 허락한다면’(섹션 3), ‘같이 산책할까요?’(섹션 4)는 대숲, 애양단, 제월당, 광풍각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풀어낸 권혜원 작가의 글을 토대로 구성됐다. 전시장 구성은 소쇄원의 공간 구조를 모티브로 한다. 대숲, 애양단, 대봉대, 제월당, 광풍각을 통과해 퇴로로 나가는 구조를 큰 관람 방향으로 설정하고, 작품간 여백의 변화를 통해 ‘열림과 닫힘’, ‘중첩의 반복’이라는 소쇄원의 공간적 특성을 드러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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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현실의 교차점에서 설계를 묻다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귀국전: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2019. 3. 27. ~ 5. 26.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귀국전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Spectres of the State Avant-garde)’1이 지난 3월 27일부터 5월 26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귀국전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선보인 기본 전시 구성에 참여 작가의 신작을 더하고, 미술관의 공간 구조를 반영해 재구성한 연출을 통해 보다 풍부한 내용과 관점을 담고자 했다.
서울은 수차례에 걸쳐 다시 만들어진 도시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한강의 기적’이라 불렸던 모습조차 재건축, 재개발에 덮여 이제 낡은 영상과 사진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보존형 도시재생의 아이콘이된 세운상가도 처음에는 국가의 현대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아방가르드적 도상이자 문화적 혁신을 추구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1960년대에 막 문화를 논하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서 도시의 아방가르드를 실현하고자 했던 집단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이하 기공)는 세운상가, 구로 한국무역박람회장, 여의도 마스터플랜(1969)등을 통해 국가 중심의 도시 개발에서 설계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현대성 구성에서 기공의 역할을 되짚고 미래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데 대한 설계의 역할을 묻는다.
1960년대 한국의 국가관과 기공
국가로 대변되는 권력과 설계 분야의 대립과 타협을 다루는 만큼, 전시 소개문은 서두부터 기획 의도와 전시 관점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1960년대 말은 국가의 계획 이데올로기와 건축가의 비전이 뒤엉켜 있던 시대”였다. 역설적으로 “억압적인 발전 국가”는 “건축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냉전 시대 특유의 국가적 이미지 고취에 대한 필요성과 아방가르드에 대한 건축적 이상이 조우한 시대적 상황, 이로 인한 아방가르드 건축의 비상은 비단 국내의 유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분단 상황과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건축적 경쟁 구도, 그 결과물인 한스 샤로운(Hans Scharoun)의 샛노란색 베를린 필하모니(Philharmonie)건물이나 1987년 베를린 국제건축전IBA을 떠올려보자. 1960년대 한국에 존재한 국가적 아방가르드라는 모순은 세계적 상황이 압축된 형태였다. 기공은 한국적 상황 또는 “한국 근대성의 조건”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하나의 틀이다. 전시는 기공의 2대 사장이었던 김수근의 지휘 아래 진행된 네 개의 프로젝트―세운상가, 구로 한국무역박람회장, 여의도 마스터플랜, 엑스포70 한국관―를 중심으로 1960년대 한국의 설계의 환상과 현실을 엮으며 오늘과 미래에 대한 고찰을 이끌어 낸다. 1층의 서현석의 ‘환상도시’, 김경태(EH)의 ‘참조점’,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1960년대 기공 프로젝트에 내재한 모순과 역설을 다룬다. 2층에 위치한 김성우의 ‘급진적 변화의 도시’, 설계회사의 ‘빌딩 스테이트’, 바래BARE의 ‘꿈세포’, 최춘웅의 ‘미래의 부검’, 로랑 페레이라(Laurent Pereira)의 ‘밤섬, 변화의 씨앗’은 한국의 근대 아방가르드가 외면한 공간 또는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공간을 조명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1.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는 근대 한국의 도시계획을 주도했으나 그 실체가 남아 있지 않고, 아카이브도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다. 이에 착안해 전시는 국가적 목표와 개인의 이상향 사이에서 표류한 당대의 건축가와 그들의 유산을 ‘유령’으로 설정했다.
신명진은 뉴욕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경관에 이끌려 조경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서울대학교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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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땅을 상상하다
‘DMZ’ 전, 3. 21. ~ 5. 6.
남과 북이 휴전 협정을 맺으며 한반도 허리를 길게 가로지르는 철책이 놓였다. 두 개의 철책이 만든 너비 4km의 선형 공간은 비무장 지대DMZ(demilitarized zone)다. 말 그대로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군사 시설이나 군대를 주둔할 수 없는 구역이지만, 이름과 달리 DMZ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도는 모순적 공간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간 남북이 경쟁하듯 DMZ 내에 감시 초소 GP를 세워 왔기 때문이다. GP당 40~80여 명의 병력이 주둔한다고 하니, DMZ를 한반도에서 가장 무장된 지역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지난해 DMZ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9 · 19 군사 합의’의 일환으로 남북 GP 20여 개가 철수된 것. 강원도 고성 DMZ 평화 둘레길의 민간인 통행이 승인되고, DMZ국제다큐영화제 수상작 앵콜 상영회가 열리는 등 DMZ와 관련된 여러 소식도 들려온다. 이러한 변화를 시작으로 DMZ는 진정한 평화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앞으로 DMZ는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가게 될까? 3월 21일부터 5월 6일까지 문화역서울 284에서 선보이는 ‘DMZ’ 전은 DMZ와 접경 지역을 정치·사회 적, 문화·예술적, 일상적 측면에서 살피며 이러한 궁금증에 답한다.
전시의 틀은 민간인 통제선에서 시작해 DMZ와 GP로 이어지는 공간의 축, DMZ가 형성된 시점부터 GP가 사라지는 미래까지의 시간의 축에 의해 형성됐다. 전시장 곳곳으로 뻗어 나가는 두 개의 축은 서로 교차하고 헤어지며 다섯 개 섹션을 만들어냈다.
3등 대합실에 마련된 ‘DMZ, 미래에 대한 제안들’(섹션 A)은 예술가와 건축가, 디자이너, 철학자 등이 제안한 DMZ의 미래를 보여준다. 최재은은 대합실 입구에 ‘증오는 눈처럼 사라진다’를 발판처럼 설치해 관람객들이 무의식적으로 밟고 지나게 했다. 이 작품은 DMZ의 철조망을 녹여 만들어졌는데, 철조망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게 된 두 진영 사이의 증오”를 상징한다. 즉 남북을 갈라놓았던 구조물이 분리된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새들의 수도원’은 새와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승효상의 고찰이 담긴 작품이다. 그는 DMZ가 인공 시설이 들어서기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는 점을 고려해, 자연스럽게소멸되는 대나무와 마 끈을 재료로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허물어질 수 있는 느슨한 구조물을 제안했다. 너른 자연 위에 고요히 서서 주변을 지나는 새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모습은 승효상의 건축 철학 ‘빈자의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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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질문] 이럴 때 조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조경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때가 딱 요즈음이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묻는다. 마당에 뭘 심는 게 좋아요?, 우리집과 옆집 사이에는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할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원에 대한 빅 픽처(big picture)가 무궁무진하다. 나름 전문가로서 몇 가지 조언을 해드리곤 한다. 이웃들의 정원은 소박하지만 이야기가 담겨 있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가끔 내게 도움을 받은 이웃들이 정원을 어느 정도 만들고 나를 집으로 초대한다. 함께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마시며 정원에 대한 평론을 한마디씩 주고받을 때 조경하길 잘했다고 느낀다.
정재혁 롯데건설
학생 때부터 일을 하는 지금까지, 답사를 명목으로 잘 조성된 조경 공간에 놀러 갈 때 조경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같이 날 좋은 봄에는 특히 더!
안주연 팩토리엘
공간의 본질을 깊게 알아가는 시간을 보낼 때 조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아내는 것은 조경의 업이자 그 자체로 좋은 경험이다. 그렇기에 조경가의 역할은 넓고 중요하다. 같지만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생활 주체에게 풍부한 영감을 주는 다양한 공간들이 확장되길 바란다.
이병우 조경하다 열음
내가 만든 공간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산보를 즐기는 노부부의 담소, 한적한 벤치에서 담배 한 대 즐기는 아저씨, 삼삼오오 모여 오손도손 수다를 나누는 어머니들…. 내가 만든 공간이 사람들의 행복의 기반이 된다고 깨달을 때 보람차고, 조경하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최용 조경설계시공관리 올인원
글쎄, 며칠 생각해봤는데 사실 조경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딱히 없다. 하지만 괜찮다. 조경하길 후회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니까. 분명한 건 고르고 골라서 이 직업을 택했다는 점이다. 나는 타인의 조언을 참고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다, 스스로 확신이 들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애초에 만족도 후회도 없다. 쓰고 보니 나르시스트의 자기 고백이다.
나성진 얼라이브어스 소장
심리학자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Emily Esfahani Smith)는 테드 강연에서 삶에는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창조적인 일을 할 때 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성과 삶의 목적을 느낀다는 것이다. 조경을 통해 이 두 가지를 경험할 때마다 조경의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환경과조경』에 수록된 여러 작품을 보면서 감동을 받으며, 내가 설계할 공간을 상상하며 예술가가 된 기분을 만끽하고, 그 공간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
박지원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유년 시절 주로 뒷산에서 놀던 내가 처음 아파트 단지로 이사하고 놀랐던 경험이 있다. 한없이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 동네 뒷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풍부한 화단으로 멋을 낸 이 공원은 여러모로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고등학교 수험 기간이 끝나갈 즈음 공원에서 쌓은 추억은 나의 꿈이자 전공 선택의 이유가 되어 있었다. 졸업 후 이제 막 현장에 발을 내딛은 새내기인 내가 조경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특별한 사건이나 순간은 아직 없다. 하지만 그 순간을 마주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김병호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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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유빙의 숲
‘맘껏광장’ 지면의 레이아웃을 구상하면서 마지막 페이지에 넣으려던 사진이 있었다. 광장 중심부의 메타세쿼이아에 매달린 노란 리본들, 바람에 날리는 리본에 한 아이가 손을 뻗는 사진이었다. 어린애는 그것이 마냥 예뻐 보였거나 그저 호기심이 많았던 것이라 해도 어쩐지 절묘한 순간 같았다. 잠시 사심이 발동해 사진을 넣을 명분을 떠올렸다. 리본은 추모 행사 때 달렸고 행사는 맘껏광장의 청소년운영위원회가 주도한, 그러니까 아이들이 나선 일이다, 이곳이 아동권리광장임을 다른 방식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으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전체적인 공간 구조와 특성을 잘 보여주는 이미지를 넣는 것이 먼저였다. 한정된 지면에 광장의 다양한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그 사진은 빼기로 했다. 조심스러운 면도 있었다. 어쩌면 이 공간보다 특정 사건을 부각할 수도 있으므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무척 지겨워하거나 때론 정치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하므로.
아직 4월인 탓인지 아니면 그 사진이 자꾸만 떠올라서인지, 기자의 사심이 용인되는 이 지면에는『유빙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이 책을 담백하게 소개하자면 여덟 개의 짧은 이야기가 모여 있는 소설집이다. 사사로운 마음을 품고 소개하자면 2014년 침몰하는 배를 목격한 이후 써내려간 이야기다. 모든 이야기가 그날의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진 않지만 작가는 그날 이후 죽음 이후의 일들에 시선을 두곤 했다. 소설 속 다양한 이야기를 곰곰이 읽다 보면 그날과 같은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나 말 같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첫 번째 단편 ‘유리주의’에는 전면이 통유리로 된 호텔과 그곳에 묵는 관광객들이 등장한다. 호텔 청소부들이 아침마다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들을 치우고 끊임없이 창을 닦는가 하면 사소한 갈등에 사로잡힌 투숙객들은 호텔 앞 호수의 괴물을 보고도 못 본 척 침묵한다. ‘유빙의 숲’은 어미를 잃고 심해를 헤매는 삼백 살 된 상어, 가라앉는 배에서 조카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형사, 몸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병에 걸린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비극으로 방황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귤목’에는 손자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보낸 할아버지가 나온다. 아들은 갑자기 손자가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전하는데, 말도 없이 떠난 것에 이상함을 느낀 할아버지는 직접 제주도로 향한다. ‘뼈바늘’은 살해당한 여자와 그것을 방관한 남자가 영혼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는 이야기로, 절망에 빠진 누군가에게 더 큰 절망을 안겨주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뒤이은 세 단편 ‘귤橘, 화花―도주 1’, ‘쇳물의 온도―도주 2’, ‘파도의 온도―도주 3’의 주인공 이화는 남편에 이어 자식마저 잃어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은 상황에 놓였지만 죽지 못하고 아득바득 살아간다. 소설은 현실과 환상을 한데 섞고 서로 관련 없는 이야기를 동시에 늘어놓는다. 난해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특징은 “비현실적인 계기를 통해 현실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가를 관찰하는 것”2이며, 에둘러 말하는 작가의 조심스러움이기도 하다.
“그 사람을 잃고 남은 사람들이 시간을 견디는 이야기, 어떻게든 도망가 봤지만 결국 파도 위에서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채로 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3로 이루어진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은 ‘커피 다비드’다. 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다비드는 다양한 원두를 선별해 사람들에게 맛 좋은 커피를 내주고, 저마다의 이야기도 들어준다. 다비드가 하루를 마치고 카페 문을 닫으려는 때 섬으로 구급대 헬기가 날아오고 누군가 실려 간다. 그간 헬기를 탔던 사람 중 젊은 산모를 빼고는 모두 유골로 돌아 왔다. 그는 헬기가 떠난 후 아무도 없는 카페의 모든 불을 켠다. “어두운 하늘로 날아간 누군가가 이 빛을 보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기 때문이다. 결국『 유빙의 숲』을 잡지의 말미에 두기로 한 것은 다비드 때문이다. 맘껏광장에 노란 리본이 매달려서가 아니고, 글을 쓰는 때가 아직 4월이어서도 아니며, 소설에 애정이 있어서도 아닌, 작가가 모든 이야기의 끝에 어떤 시작처럼 다비드를 놓은 것처럼 4월이 끝나고 5월 시작되는 지점에 이 책을 놓아두고 싶었다.
각주 정리
1. 이은선, 『유빙의 숲』, 문학동네, 2018.
2. 같은 책, p.279.
3. “ 이은선 ‘꼭 잊지 말아야 하며 사랑해야 한다’”, 「채널예스」 2018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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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나란히 앉아 인터뷰하기
후드 티나 맨투맨이 익숙하지만 이날만큼은 블라우스와 재킷을 집어 든다.조금 허전해 보이는 손목에는 팔찌보다는 시계가 제격,노트북과 태블릿PC,공들여 작성한 질문지까지 챙겨 넣으면 인터뷰가 있는 날 출근 준비가 그제야 끝난다. 2015년 말에 입사했으니 이제4년 차 편집자,여전히 기획과 취재,편집,기사 쓰기 등 어려운 것투성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긴장되는 일을 뽑으라면 역시 인터뷰만 한 게 없다.썩 외향적이지 않고 말주변이 좋은 편도 아니기에,낯선 상대와 대화하는 일은 상상만으로 허리를 꼿꼿히 세우게 만들고 입안을 바싹 마르게 한다.
잡지 만드는 게 꿈이기만 했던 시절, 인터뷰는 뭔가 멀고도 신기한 전문적인 영역의 일이었다. 멋들어진 단어가 가득하지만, 결코 오글거리진 않은 문장으로 정리된 인터뷰는 잘 정돈된 공간에 앉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인텔리를 떠올리게 했다. “다들 어쩜 그렇게 멋있게 말할까? 굉장히 멋진 말로 이루어진 질문이 10줄쯤 나오면 그것보다 더 멋있는 말로 이루어진 대답이 20줄쯤 나왔다”1는 누군가의 글이 딱 내 마음 같았다. 긴장감 넘치는 랠리처럼 이어지는 문답을 읽고 있으면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똑똑해진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나는 그 멋진 말들에 압도됐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멋있고 날카롭고 사색적인 질문을 할 수가 있지?”2
그러니 난생처음 인터뷰 자리에 동행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건 당연한 일일 테다. 정식 인터뷰어가 아닌 경험을 쌓기 위한 신입 기자로서 함께하는 것이었지만, 내게도 인터뷰 질문지가 쥐어졌다. 얼마나 시적이고 함축적인 문장이 가득할까, 그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질문지는 시적이기보단 체계적이었고, 함축적이기보단 치밀했다. 완고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틀을 잡아줄 줄기 질문들 밑에 여러 가능성과 이야기의 확장성을 염두에 둔 가지 질문들이 담뿍했다. 그 모양이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이야기를 끌어내겠다는 포부로 가득한 전략서 같았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루는 모든 일이 그렇듯, 잘 짜인 질문지도 현장에서 완벽한 마스터플랜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대화는 질문지를 탈출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잘도 뻗어 나갔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를 몇 번 반복하고서야 간신히 본래의 주제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저쪽으로 삐죽, 또다시 이야기가 샌다. 신입 기자의 초조함이 불안함으로 바뀔 즈음 인터뷰이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 잠깐 사이에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질문지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주제와 잘 어울렸고,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어 신선했다. 질문과 답변 사이 침묵의 길이가 짧아지고 대화에 발랄한 리듬이 얹어질 때, 글자로 빼곡한 인터뷰지가 사실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 찰나를 맞이하는 게 이렇게 즐겁다면 주제에서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대화에 마음을 졸이는 일도 꽤 견딜만한 기다림의 시간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했다.
약 18년간 전문 인터뷰어로 활동하며 50여 권의 인터뷰집을 펴낸 지승호는 “인터뷰는 기술이 아니고 태도”3라 말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존중이 느껴진다면 누구나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철저한 사전 조사는 상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동시에 상대에게 신뢰감을 주어 인터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인물에 대해서는 인터뷰이의 작품이나 글,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탐구하면 된다지만, “20년 된 친구에게도 못한 얘기”를 하게 만드는 편안함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문득 2019년 1월호에 실린 조경가 김호윤과 배정한 편집주간의 인터뷰 서문이 떠올랐다. “서로 긴장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마주 보지 않고 같은 방향을 보며 소장 방의 사이드 테이블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때로는 서로를 보는 것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라포르rapport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다음번 인터뷰 장소로는 창밖 풍경이 예쁜 카페를 물색해봐야겠다.
각주 정리
1. 박찬용, 『잡지의 사생활』, 세이지, 2019, p.93.
2. 같은 책, p.93.
3. 엄지혜, “인터뷰어 지승호 ‘내레이션이 너무 많으면, 다큐도 재미없잖아요’”,「채널예스」 2015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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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녹화율 67%를 자랑하는 ‘리비오그린’
블록 내 넓은 식재 공간으로 잔디 활착률을 높인 제품
리비오 에코디자인연구소Livio Eco Design Institute가 신제품 ‘리비오그린Liviogreen’ 잔디 블록을 출시했다. 리비오그린은 잔디 생육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해 인공 지반의 녹화율과 배수 기능을 효율적으로 높이는 제품이다. 기존의 소형 잔디 블록은 내부 식재 공간이 협소해 잔디 활착률이 낮았다. 하지만 리비오그린은 블록 상부에 폭 100mm, 깊이 40mm의 U자형 식재 공간을 두어 좀 더 많은 토양을 보유할 수 있다.
또한 뿌리가 좌우로 넓게 뻗어 나갈 수 있어 잔디 분포를 균일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67%의 높은 녹화율을 자랑하는 리비오그린은 큰 하중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되어, 많은 사람이 지나는 보행로나 광장, 주차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리비오그린은 게릴라성 집중 호우에 대응하거나 여름철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공간을 조성하기에도 적합하다. 배수 기능이 필요한 공간에는 블록의 식재 공간에 식물 대신 자갈을 넣어 투수성을 높일 수 있으며, 잔디의 증산 작용으로 노면 온도 상승 억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공간 미화가 주된 목적이고 유지 관리의 편의성을 중시한다면, 토양 대신 인조 잔디를 채워 세련된 선형 녹지를 연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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