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재료와 디테일] 갈라지고 썩어야 나무
    나무는 흔하다. 조금만 나서면 숲이 있고 가로수가 있다. 우리가 거주하는 집에서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소재가 나무다. 또한 나무는 시간을 거슬러 석기 시대 이전부터 인류에게 중요한 생활의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그만큼 잠재의식과 유전적 기질에서부터 친근한관계에 있는 소재다. 이러한 목재로 만든 시설물은 내가 일하는 설계사무실의 모니터 화면 속에서도 늘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아마도 우리가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라는 점에 그 이유가 있는 듯하다. 물가를 따라 흐르는 수변 데크, 산길을 따라 설치되는 산책 데크와 산 정상의 전망 데크, 그리고 그 옆에 자리한 목재로 만든 방갈로 등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조합된다. 결국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어 쉽게 설득할 수 있다는 장점에 계획안 이곳저곳에 그려 넣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다분히 감성적인 면을 강조한 결과인 듯하다. 그러나 실시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렇게 열심히 예쁜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고 설득한 뒤 가장 먼저 ‘검열’되는 소재가 바로 이 목재다.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는 곳도 있고 필요한 곳에 최소한으로만 사용토록 압박하고 다른 고강도의 재료로 바꾸기 일쑤다. 고가의 재료라는 점에서 초기 투자비에 부담을 주기도 하거니와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필요한 소재라는 점이 이러한 상황을 낳는 경우를 자주 경험했다. 감성적으로 친환경 소재임을 강조하며 클라이언트를 설득하지만 결국 시공할 땐 목재보다 덜 친환경적이고 강도 높은 재료를 사용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친환경에 대한 계량화된 데이터 구축, 목재의 부패를 지연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찰, 경비 절감 방안의 정량적 설득이 필요하다. 잠시 목재가 친환경적이지 않은 소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친환경이라는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 텐데, 목재는 숲의 나무를 베어야 만들 수 있는 자재이므로 결국 숲의 파괴를 가져오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 [공간 공감] 양재동 꽃시장
    3월 말 양재동 꽃시장을 찾았다. 초본이나 원예 용품을 사러 종종 들르는 곳이니 새로울 것은 없지만, 오늘은 보고자 하는 각이 좀 틀리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양재동 꽃시장은 시장 본연의 기능 외에도 공공 공간으로서 매력이 넘치는 장소이니, 멀티태스킹을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이 고안되면 좋겠다는 의견이 중점적으로 제시되었다. 사실 양재동 꽃시장은 설계 스튜디오에서도 단골손님으로 다뤄질 정도로 이슈와 설계거리가 푸짐한 곳이다. 조경의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인 초화가 팔리는 시장이니, 전문가들의 재료 공급처이자 동시에 대중의 조경 인식이 반영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공간에 대한 디자인을 논하기에 최적의 소재는 아니지만 시장이라는 인프라가 어떻게 다층적으로 활용되어 장소 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는 맞춤한 장소다. 시장, 공원 그리고 정원 문화란 관점에서 양재동 꽃시장을 재조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싱거운 언급이지만 이곳에는 볼만한 초화가 가득하다. 색색의 갖가지 초화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뿐만 아니라 계절 변화의 바로미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때문에 초화 구입이 아니라 견학이나 아이쇼핑을 위해서 이곳을 찾는 이들도 꽤 된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부대시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의 도매시장이 판매 시설 이외에 다른 편의 시설을 갖추는 데 인색하듯이 양재동 꽃시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도매 유통이 주로 이루어지고 전문가가 주 고객인 시장이니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보다 대중적이고 흥미로운 시장이 되기 위해서는 판매나 편의 시설의 보완이 필요하다. 참고할 만한 사례로는 유럽에서 일반화된 가든 센터가 있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 [비평] 9회 말 구원 투수의 딜레마
    여느 수도권의 교외와 마찬가지였다. 길 양옆으로 즐비한 짝퉁 르네상스 양식의 모텔, 빅토리아풍의 펜션, 촌스러운 대형 폰트로 붕어찜과 매운탕을 광고하는 원색의 요란한 간판들…. 그 어지러운 풍경에 눈이 쉬이 피로해지지만 그럼에도 양평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푸르렀다. 차창 밖으로는 굽이굽이 산과 강이 근경, 중경, 원경으로 계속 펼쳐졌다. 양평은 분명히 녹시율이 높다. 국내 최초의 ‘치유의 숲’이 들어설 만큼 산림 자원이 풍부하다. 한마디로 양평은 일상 탈출을 꿈꾸는 자의 안식처다. 서울 시민에게는 한 시간 안팎을 투자하면 고밀도 회색 도시에서 벗어나 풀과 흙 내음이 가득한 전원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시간과 비용의 투자에 비해 꽤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입지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양평에는 전원주택, 레저 시설뿐만 아니라 기업의 연수원도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산 좋고 물 맑은 서울 교외에서 업무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리프레시와 함께 각종 세미나와 워크숍을 진행하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Healing in Natur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 현대 블룸비스타 또한 그런 목적으로 계획된 기업 연수 전문 리조트(시공 중에 호텔로 변경)다. 마무리 투수와 조경가의 상관관계 흥미롭게도 블룸비스타의 건물은 여타의 리조트 같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남영동 대공분실의 외관을 설계 모티브로 삼은 듯한 무채색의 차갑고 각진 도심 속 오피스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십 몇 층의 날카로운 매스가 남한강을 향해 쌍둥이처럼 서 있는 모습은 전원 풍경을 기대하며 도시를 떠났던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정경일 것이다. 게다가 가파른 기울기의 경사로 이루어진 땅에 지하 주차장을 끼워 넣고 그 자락에 건물과 시설을 앉히다 보니 수직의 높은 콘크리트 벽과 지하 주차장의 입구가 무엇보다 도드라지는데, 이 또한 사람들이 양평에서 기대하는 ‘양평’의 모습은 아님이 틀림없다. 왠지 첨단화된 신도시에서 볼 수 있는 오피스 건물 같기도 하고 최신식 아파트 단지의 입구 같기도 하다.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반가울 만한 얼굴은 아니다. 탈도시 아니 탈서울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도회지풍의 분위기를 내뿜기 때문이다. 즉, 건축적 측면에서 블룸비스타는 ‘양평’하면 으레 연상되는 탈서울적 체험을 충분히 만족시키지도 못하고, 또 강렬하게 전달하지도 않는다. 외부 환경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전체 경관의 완성도를 높여야만 하는 조경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만큼 어려운 과제도 없을 게다. 건축가로부터 구체적인 작업을 위해 캔버스를 넘겨받을 때 왠지 억울한 심정까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젠장, 또 9회 말 구원 투수구나… 어떤 구속과 구질로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내야 하나 고민스러울 만한 상황이다. 고심 끝에 찾은 해법이 바로 외부 공간의 ‘대비’와 ‘중재’다. 양평의 자연성을 극대화시켜 경험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건물의 인공미를 순화시키는 전략이었다. 전략과 전술에 관하여 먼저 대비를 위해서 크게 두 가지 다른 이미지의 공간을 엮었다. 이 두 가지는 다름 아닌 건물과 직접 맞닿아 있는 모던한 공간과 산과 이어진 자연적인 공간이다. 특별한 전이의 장치 없이 병치되어 연결된 이들 공간은 각 개별 공간의 체험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 원래는 수영장으로 조성될 예정이 었던 건물에 접한 남서측 인공 지반의 공간은 도시적인 형태와 소재의 데크와 수경 시설로 이루어진 다목적 이벤트 공간이다. 반듯하게 잘 짜인 건축적인 벽으로 구획된 중정의 모습을 지닌 이 공간은 사실 서울 시내 고급 레스토랑의 앞마당과 같은 느낌이다. 특히, 야외 강연 등의 행사를 수용하기 위해 조성된 계단식 스탠드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조형미와 깔끔하게 다듬어진 재료의 물성은 - 비록 시점의 끝에는 자연스러운 배경으로 연출된 소나무 군식이 있을지라도 - 이곳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양평’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끔 한다. 그런데 그 현대적인 스타일의 벽과 계단을 넘어가면 바로 산자락의 지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소담한 수목원 형태의 후원을 만나게 되는데, 이러한 대비가 전해주는 느낌은 사뭇 강렬하다. 특히 그 ‘낭만의 공간’과도 같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사시사철 변하는 숲의 자연성이 이전의 정형성과 대비가 되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뭐니 뭐니 해도 이런 이분법적인 이미지를 중재하는 가장 지배적인 조경 요소는 물이다. 조경 소재로서 물은 특별한 힘을 지녔다. 정靜과 동動, 규칙과 불규칙, 빛과 그림자 등 상반되는 특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는 물은 아무리 정형적인 형태의 수반에 갇혀 있어도 잔잔한 움직임과 소리를 만들어내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자연을 만나게 한다. 민병욱은 1975년생으로, 경희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과 네덜란드 바허닝헨 대학교(Wageningen University)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ArizonaState University)에서 환경설계 및 계획에 관련된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받으면서 학제간 교육과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동심원과 오이코스등에서 다양한 조경 및 도시 관련 실무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얼마전까지 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과에서 교수로 지냈고, 현재는 경희대학교환경조경디자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 [칼럼] 잡지를 만드는 어떤 방식
    아는 사람은 아는,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는 책이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만화가이면서 연필 깎기의 장인을 자처하는 데이비드 리스가 쓴 책이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어떻게 연필을 ‘날카롭게’잘 깎을 것인가! 주머니 칼, 외날 휴대용 연필깎이, 다구형 휴대용 연필깎이, 이중날 회전식 연필깎이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연필 깎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완독은 달랑 2시간이면 충분하다. 작가는 “닳아서 뭉툭해진 연필 촉을 깎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쉽게 비유하자면 보석을 닦아서 더 반질반질 윤이 나고 원래의 완벽한 형태가더 잘 드러나도록 하는 일과 비슷하다”며 연필 깎는 행위에 콧기름을 바른다. “인간이 만든 이 단순한 물건(연필)은 개인의 권능을 배가시킨다”고 어느 공학 칼럼니스트가 말했다지만, 그래봤자 하찮은 연필 깎기 따위가 뭐라고. 하지만 천성이 ‘호갱’과라 책을 읽은 뒤 한동안 연필 깎는 재미에 빠졌다. 솔직히 말하면 다양한 형태의 연필깎이 모으는 재미를 누린 거지만. 얼마 전 우연히 인사를 나눈 한 건축가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으세요” 우물쭈물하다 던진 엉성하고 짧은 답이 이랬다. “혹시 『연필 깎기의 정석』이란 책 보셨나요?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다기보다, 그런 방법으로 잡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 덜 떨어진 이상주의. 절지류 더듬이만큼 감각을 가동해도 생존할까 말까인 게 흔히 말하는 상업 잡지의 숙명인데, 한가롭게 연필심이나 다듬는 스탠스를 입에 올리다니. 맞다. 한 달단위의 상업 매거진을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꾸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엔터테인먼트 소식을 부모님 안부 묻듯 챙겨야 하고, 유명 해외 도시 통신원을 써서라도 인구 서베이하듯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확인해야 하고, 브랜드들의 제품 프레젠테이션 행사에 쉼 없이 출석 도장을 찍어야 하고, 시즌마다 열리는 패션 컬렉션에 기자를 보내 두 계절 앞선 스타일 동향을 곳간에 쌓아둬야 안심이 될까 말까다. 노출 빈도가 빈번해진 배우 차승원과 최지우가 같은 소속사에 몸담고 있다는 디테일은 기본, 요즘 트렌드의 최고봉인 ‘먹방’ 프로그램에 등장한 셰프 몇몇과 안면 정도는 트고 있어야 기자들과의 기획회의에서 말발이 선다. 직접 라임을 타진 못해도, ‘언프리티 랩스타’ 파이널 라운드에 치타와 제시와 육지담이 올랐고 최종 우승은 치타의 차지였다는 걸 줄줄 꿰고 있으면 반 발자국 앞선 안도를 누릴 수 있다. 정리하면, 상업 잡지의 최전선에서 승리하려면 링 위에 오른 복서처럼 전신의 감각이 팽팽하게 살아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도 당대의 복서 매니 파퀴아오처럼. 흥미로운 건 이 ‘어마무시’한 각축장에도 역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전문지가 아닌 종합지의 독자는 말 그대로 이동 타깃이다. 연령대와 성별 정도만 거칠게 가를 뿐 나머진 복불복이다. 전문지가 해당 분야의 선도적 담론 앵글에 전력 투구를 한다면, 종합지는 다양한 길 앞에서 서성거리는 운명을 타고 난 셈이다. 매 호마다 빠지지 않는 고명 같은 기사 소스가 연예인인 건 그 때문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만한 만인의 관심사는 없으니까. 상업지의 꽃이라 불리는 여성 패션지 발행일 직전의 포털사이트에는 각각의 매체가 진행한 연예인 화보가 경쟁하든 디지털 가판에 늘어선다. 아쉬운 건, 한때 ‘기사의 꽃’이라 불렸던 스타 화보의 감도를 좀체 찾을 길 없다는 점이다. 사진에 찍힌 워터 마크를 지우면 이게 어느 매체의 결과물인지 알 방법도 없다. 상업적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전방 공격수로 연예인을 내세웠지만, 골 결정력은 계량되지 않는다. 다른 어느 장르보다 트렌드에 민감해야하는 상업지의 요즘은, (주관을 잔뜩 묻혀 전하면) 그래서 더 재미없다. 회고조로 읊자면,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매체 각각의 개성이 묻어나던 시절이었다. 필드 위에서 기사 소스를 묻고 찾던 시절이었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기사 소스의 베이스 캠프는 포털과 케이블 TV와 SNS인 게 현실이다. 트렌드를 좇는다고 천지 사방을 누볐지만 그게 사실은 모니터 속 포털 화면이거나 리모컨으로 핸들링한 케이블 TV이거나 엄지로 재단한 SNS 세계인것. 역설은 여기서 생겨난다. 누굴 찍어도 흔하고 뻔한 화보로 귀결되듯, 차별적 경쟁을 위해 진행한 기사의 결과 역시 도긴개긴인 것. 그 와중에 세 개의 베이스 캠프에서 조성된 트렌드에선 인공 감미료 맛이 풍긴다. 복기하면 그 획일적 맛을 매체가 각자 취향을 앞세워 따로 느낀다고 생각할 뿐, 아예 트렌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물론 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연예인과 트렌드라는 두 축을 다루지 않을 도리는 없다. 월간 『인터스텔라』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행성에 발붙이고 종이 잡지와 운명을 같이 하는 중이니까. 단지 바람이 있다면 잡지 볼륨의 한 귀퉁이에라도, 연필을 어떻게 깎아야 잘 깎는 것인지 말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두툼한 트렌드 기사와 셀레브리티 화보를 앞세워 많이 팔리는 잡지도 필요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생각을 전하는 한 페이지짜리 기사가 ‘앙꼬’처럼 곳곳에 숨어있는 잡지도 필요한 거 아닐까. 오로지 흥미본위뿐인, 팔리기 위해서라면 도핑도 불사할 것 같은 요즘 상업지 시장에서 딱 낙오될 소리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잽을 잘 치는 복서가 훅 한 방에 승부를 거는 복서보다 유능하고 매력적이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문일완은 남성지로 입문해 여성 패션지, 종합지, 현재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 이르기까지 20년 넘게 잡지를 만들고 있다. 경력의 대부분을 남성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일로 채웠지만, 정작 남자들의 본능적 로망으로 불리는 시계, 자동차, 패션 등엔 별 관심이 없다. 김성근 야구와 혼자 영화보기, 그래픽 노블과 르포물을 사들이는 게 최근의 낙이다.
  • [에디토리얼] 조경비평 봄
    ‘조경비평 봄’이 열 번째 봄을 맞았다. 유난히도 추웠던 2005년 이른 봄에 첫 모임을 가졌고, “아, 어서 봄이 왔으면!”이라는 누군가의 탄성에서 모임이름을 땄다. 초창기 문서에 활자로 남아 있는 ‘조경비평 봄’의 지향점은 “조경 비평의 실천 환경 구축, 조경 담론의 생산 기지 조성, 조경 이론과 실천의 연결, 조경과 사회의 상호 개입을 위한 네트워크 조직, 조경 비평의 유통과 저장을 위한 매체 실험”이다. 네 명으로 단출하게 출발했지만, 열 번의 봄을 거치며 이십대 후반부터 오십대 중반에 이르는 여러 세대 스물두 명의 모임으로 성장했다. 고민과 토론의 성과를 모아 『봄, 조경 사회 디자인』(도서출판 조경, 2006),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도서출판 조경, 2008), 『공원을 읽다: 도시 공원을 바라보는 열두 가지 시선들』(나무도시, 2010), 『용산공원: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출품작 비평』(나무도시, 2013), 네 권의 책을 펴냈다. 우리 조경계에서 비평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은 비평의 역할을 다룬 몇 편의 글과 논문이 발표된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됐다. 그러나 공론장을 통해 초보적이나마 비평이 실험된 것은 1998년의 『Locus』 창간호가 처음이다. “작품의 빈곤, 이론과 비평의 부재 속에서 허덕여 온 한국 조경의 문제를 비평의 장을 통해 해소하며, 현실과 대화하는 조경 비평의 실천 환경을 구축한다”는 선언과 함께 “조경의 대안적 담론 공간”을 자임하며 출간된 『Locus』는 “조경과 비평”이라는 부제를 단 2호(2000년) 이후 아쉽게도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Locus』가 마주했던 가장 큰 난관은 비평 전문 독립 저널로 자립하기 힘든 여건과 구조였다.『Locus』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조경비평 봄’은 지속가능한 비평 환경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첫 번째 전략은 저널이 아닌 단행본 출판이었다. 비평의 생산을 위한 독립 지면을 확보하여 보다 안정적으로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 결과 ‘조경비평 봄’의 이름을 단 네 권의 단행본을 대략 2년 간격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두 번째 전략은 잠재 인력의 발굴과 신진 인재의 양성을 통해 비평가 풀을 넓히는 것이었다. 초창기 구성원의 추천으로 몇몇 조경 이론·역사학자, 조경가, 언론인이 모임에 동참했고, (때로는 『환경과조경』의 주최와 후원으로, 몇 차례는 자체적으로) 매년 ‘조경비평상’을 열어 젊은 필진을 키우고자 했다. 이 상을 통해 ‘조경비평 봄’에 동승한 신진 비평가가 아홉 명에 이른다. 얼어붙은 출판 시장에 도전하며 네 권의 책을 내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2015년 봄의 ‘조경비평 봄’은 소강 상태를 겪고 있다. 지속가능한 비평활동의 가장 큰 동력이라 할 수 있는 피드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상 작가와 독자의 반응은 비평을 성립하게 하는 토대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비평은 ‘창작→작업·작품→경험·감상→비평→창작’이 순환되는 소통의 구조 안에서 작동할 때 의미를 보장받는다. 이 순환 고리의 각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비평은 외마디 외침처럼 공허할 뿐이다. 한국 조경의 현실이 아직 비평을 요청하지 않는 수준에 머물고 있거나 비평을 잉여의 사치 정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일까. “작가도 없고 작품도 없고 사회적 인정도 없는데 도대체 비평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비평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한국 조경 비평의 역사가 20년을 훌쩍 넘어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무반응의 원인을 조경계와 독자의 무관심에서만 찾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10년간 ‘조경비평 봄’이 주력했던 단행본 중심의 활동이 도리어 비평가와 작가, 비평가와 독자, 비평가와 대중 사이의 활발한 쌍방향 소통을 어렵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공모전과 프로젝트를 해내기에 급급하던 물량주의 조경에 반성을 촉구하고자 했던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 보다 대중적인 시선으로 조경과 사회적 가치의 접촉면을 넓히고자 했던 『공원을 읽다』, 다층적 역사와 의미가 복잡하게 뒤엉킨 한 프로젝트를 심층 조명함으로써 조경의 사회적·정치적 개입을 꾀했던 『용산공원』은 완전히 다른 의도로 기획된 책이었다. 그러나 피드백의 공백, 반응의 진공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조경비평 봄’의 매체 전략에 교정이 필요함을 반증한다. 지난 4월 초에 열린 본지 편집위원 회의에서는 저널리즘과 비평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이 오고갔다(이번 호 뒷부분에 짧게 줄여 싣는다). 편집위원들은 비평 대상의 다층화와 비평 형식의 다각화라는 이슈를 놓고 차수를 바꿔가며 새벽까지 논의를 이어갔다. 한 달 내내 『환경과조경』과 ‘비평(가)의 자리’라는 숙제가 머릿속을 떠다닌다. 2014년의 리뉴얼 이후 『환경과조경』은 게재 작품이나 공모전에 대해 적어도 한 달에 한 편 이상의 비평을 싣는 편집 원칙을 지키고 있다. 되도록 외부(의 신진) 필자에게 비평을 청탁하고 있지만 본지 기자가 작품을 읽거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동료 조경가가 평문을 쓰거나 대담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고 있다. 그러나 ‘조경비평 봄’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이 『환경과조경』의 비평에도 작가나 독자의 후속 반응이나 토론이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드물다. 비평의 생산뿐만 아니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이 쉽지 않은 숙제를 함께 풀어갈 신인을 초대한다. 이번 봄에도 『환경과조경』은 ‘조경비평상’을 연다. ‘조경’을 주어로 고민 중인 예비 비평가들에게 조경을 묻고자 한다.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갈 ‘조경비평 여름’을 기다리며 ‘조경비평 봄’이 심사를 맡는다. 마감은 7월 1일이다.
  • [CODA]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
    낙원paradise은 ‘여기here’가 아닌 ‘또 다른 세계another world’를 의미한다. 지금 내가 발붙인 곳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을 의미하는 낙원이란 말에는 이미 상실의 정서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 잃어버린 낙원이란, 우리의 상실감을 자극해 ‘낙원’에 대한 그리움을 한층 애틋하게 만든다. 원명원은 중국의 원림 예술이 이미 무르익었던 명·청 원림의 성과를 집대성한 제왕의 궁원이다. 강희제가 ‘최초 원명원’을 옹정제에게 내려준 이래로, 청나라의 전성기인 소위 ‘강건성세’(강희, 옹정, 건륭 134년에 걸친 시기)를 지나 중국이 서구 열강과 충돌하는 도광제, 함풍제 재위기에 이르기까지 원명원은 끊임없이 조영되었다. 청조의 다섯 황제는 500에이커(약 61만 평)가 넘는 땅 위에 100여 개의 전당과 정자가 이루는 ‘낙원’의 풍경을 창조했다. 그러나 원명원은 1860년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약탈당하고 불살라졌으며, 동치제가 그 일부를 복구했으나 다시 8개국 연합군에 의해 훼손되었다. 중화민국 이래로는 도시화와 현대화에 따른 파괴가 이어졌다. 원명원 약탈은 1970년대 원명원 복원의 움직임이 시작되고서야 비로소 멈추게 된다.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도서출판 한숲, 2015)은 지금은 폐허로 남은 원명원을 중국의 원림사와 문화사, 근현대 정치사를 넘나들며 글로 복원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인 왕롱주는 중국에서 태어나 타이완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역사학자다. 이 책의 초판은 미국에서 영어로 먼저 출간되었고, 이후 타이페이와 중국에서 중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애초에 저자가 영어로 책을 썼다는 것은 다분히 서구의 독자들을 겨냥한 저술 의도가 있었다고 추측하게 한다. 이 책에는 서구 제국주의에 휘말린 원명원의 운명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물론 역사적 사실의 선택과 배치에서 우리는 저자의 메시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를들어 화친이 맺어진 날에도 방화가 여전히 계속되었음을 논증한다거나,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약탈한 것을 정의의 이름으로 비판했던 빅토르 위고가 원명원의 ‘약탈품’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술하는 장면에서는 서구의 패권주의와 이중적 태도에 대한 냉소를 느낄 수 있다. 서태후(자희 태후)에 대한 기술도 흥미롭다. 함풍제와 서태후의 유명한 로맨스도 원명원에서 시작된다. 청나라를 40년간 지배했던 그녀는 아편전쟁 이후 파괴된 원명원을 재건하려는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서태후는 군함을 구매하기 위한 자금을 가로채 청의원 보수를 위한 경비로 충당했다. 물론 그녀가 세계사의 거대한 조류 속에서 중국의 운명을 홀로 바꾸기는 어려웠겠지만, 자신의 향락과 원명원에 대한 애정으로 중국을 더 큰 위험에 빠뜨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현재 중국의 대표적인 정원으로 이화원을 남겼다. “크게 보면 이화원은 청의원을 보수한 것이지만, 청의원 본래의 설계를 개선하여 모든 건물과 풍경을 극도로 세밀하게 일치시켜 전체적인 공간의 완전성을 추구했다. 정원의 바위는 예술적으로 쌓아올렸고, 그림 같이 자연스런 배경과 시적 상상력을 자아내는 인공 건축은 정교하게 안배했다. 그것이 지금의 이화원이다.” 원명원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욕망과 일상에 대한 묘사는 지금은 없는 이 낙원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원명원이란 문화 유적을 둘러싼 중국 학계의 논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0년대 한껏 고양된 애국심은 원명원의 대대적인 복원에 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과연 복원을 해야 하는지부터 복원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고 합의를 끌어내기 어려웠다. 그때 왕즈리란 인물이 “원명원의 건축 역사에서 설계의 변동은 늘 있었던 일”이라고 일깨우며, 전체 포국은 유지하면서 “낡은 건축을 현재의 필요에 알맞게 리모델링하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시대와 생활에 맞게 설계 변동이 있었던 역사 유적이 비단 원명원뿐은 아니리라. 우리도 파괴되고 훼손된 전통 건축을 복원하는 것이 좋은지, 복원한다면 어떤 시점을 원형으로 삼아 복원하는 것이 좋은지, 또 한 시점의 복원을 위해서라면 이후의 역사적 흔적은 없애는 것이 옳은지 늘 논쟁거리다. 원명원의 복원뿐만 아니라 재현의 문제도 떠올랐다. 중국 저장성에 이번 달 실물크기의 복제 원명원, ‘원명신원圓明新園’이 문을 열 예정이라고 한다. 이 원명신원이 처음 계획될 당시부터 반대했다는 실제 원명원 측은 “원명원은 문화유산 자원으로 유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복제가 불가능하다”면서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한다.1 원명원을 재현(복제)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홍콩부근의 도시 주하이는 서양루, 구주청안, 방호승경을 모방하여 원명신원을 지었다. 그리고 이 원명신원의 첫해 수입은 1.6억 위안이 넘었다. 이러한 상업적 성공은 새로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 제왕 궁원을 완전하게 복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불가능한가” 복원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역사가나 건축가 할 것 없이 모두현대화 속에서 어떻게 본래 유적을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했다.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의 저자 왕롱주는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통 건축과 원림 공예의 최고 수준의 기술은 이미 알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자금이 충분하면 언제라도 잃어버린 궁원을 다시 세울 수 있지만, 잃어버린 기예는 다시 되찾을 수 없다.” 저자는 원명원 유적 공원이든 복제 원명원이든 상업주의의 위협에 맞서 완전하게 예술적 품위를 재현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지금 상태를 온전히 보존할 것을 주장한다. 그것이 역사가인 저자가 제시하는 역사와 대면하는 진정한 방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도서출판 한숲에서 직접 편집한 첫 번째 단행본이란 의미가 있다. 편집자는 책의 첫 번째 독자다. 지난 몇 달간 원명원이라는 커다란 세계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반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건축물과 사람들의 이름에 편집의 속도를 내지 못하기도 하다가, 원명원이 중국의 근현대사와 맞물리는 부분에서는 원명원의 운명 속으로 빠져들면서 서구의 침탈에 함께 분노하기도 했다. 때로는 중국식 한자의 벽 앞에서 좌절(!)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리에게도 익숙한 문화의 원형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책 한 권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는 느린 편집자를 진득하게 기다려준 디자이너와 편집장님, 번역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지금은 한동안 함께 했던 원고를 인쇄소에 보내놓고, 새로운 독자 품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치 잠시 맡아 기르며 정붙인 아이를 입양 보내는 심정이랄까. 부디 두루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편집자의 서재] 경관의 미래 도구, 디바이스, 그리고 건축적 발명들
    여기 이상한 도구를 뒤집어쓰고 있는 우리의 꼬맹이가 있다. 꼬맹이는 지금 굉장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오른손에 설치된 카메라는 개미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촬영하고 있으며, 왼손의 카메라는 지면의 풀과 나뭇잎, 작은 모래알 등을 촬영한다. 이 모든 이미지가 한 화면으로 조합되고 꼬맹이의 머리를 덮고 있는 빨간 헬멧으로 전송된다. 조금 전 꼬맹이의 손은 1cm 남짓 움직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10m를 이동한 것 같다. 굉장히 느린 걸까, 굉장히 빠른 걸까(그림1). 눈속임에 불과할지 모르는 이러한 ‘인지력 확장 기술’이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랜드스케이프…, 그게 도대체 뭐야”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1년 남짓 조경 잡지사에서 근무했다는 놈이 질문 수준하고는….’ 근데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해보자. “이거야!”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답은 많은 사람의 동의를 구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이 랜드스케이프란 단어, 참 여기저기 잘 붙어 다닌다. 어떤 미드를 보니, (물론 맥락이 참 많이 다르다) 살인 현장을 설명할 때도 이 단어를 쓰더라. 『환경과조경』에서도 이 단어가 등장할 때, 나를 포함한 몇몇이 긴장하기도 한다. 과연 이 단어를 ‘경관’이라고 번역해도 되냐는 문제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지금 이 책의 제목을 저렇게 번역해 놓아도 될까 싶다. 랜드스케이프든 경관이든 참… 애매~하다.조금 다른 얘기가 될 수 있겠지만, 조경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뭐하고 먹고 살지”라는 고민을 내뱉는 이유의 하나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4년 (본인 역시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지만) 이 경관이란 것에 뚜렷한 실체가 없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해당 분야에 대한 접근 자체를 망설이게 된다고나 할까 그러던 중, 제프 마노Geoff Manaugh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다빈 씨, 혹시 아주 미묘하고 오묘한 방식으로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도와주는 렌즈나 필터, 디바이스, 혹은 중간 다리 격의 도구가 기존의 공간설계(경관 디자인 혹은 조경)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적 있어요?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지 않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말이죠.” 책 속의 여섯 가지 인터뷰에 공원이나 정원 같은 조경의 주요 대상지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우리가 흔히 경관(조경)이라 부르는 눈앞의 공간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떤 ‘물리적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느냐가 미래의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이자 경관의 미래 자체가 될 수 있다. 인지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경이의 디바이스devices of wonder’ 자체가 ‘랜드스케이프’의 범위가 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가 그런 시각적 능력의 변화를 최소 한두 번은 겪게 된다. 갓난아이는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사실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면 처음으로 색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안경 속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훨씬 넒은 화각으로 같은 세상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이젠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새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 여기저기서 드론을 통해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영화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2008)’에 나온 건물이나 도시 구조를 스캔하는 3D 소나sonar 기술은 ―사실 많이 과장되었지만― 도시 복원과 관련된 몇몇 설계 및 리서치 분야에서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조금 더 과장을 해보면, 오실로스코프, 굴절 매체, 지진계, 광학 간섭계 등의 디바이스로 분석된 도시의 모습이 네트워크화 되어 시각적 정보로 재구성되는 가상의 도시 또한 가능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기에 앞서, 이러한 도시에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을 볼 수 있는가에 앞서 ‘얼마나 볼 수 있느냐’에 그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네덜란드의 텐케이트TenCate 사에서 개발한 지오디텍트GeoDetect 기술은 공간 설계가의 눈이 아닌 ‘경관의 눈’으로 작동하는 ‘생각하는 경관’을 꿈꾸게 한다. 환경에 대한 자발적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이 인텔리전트-지오텍스타일intelligent-geotextile 기술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따라 최적의 공간 및 지형 구조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는 AI 그라운드 플로어의 개발을 예측하게 한다. 내 집 앞 공원이 자체적으로 수북이 쌓인 눈을 털어내고, 폭우에 대처해 최적의 배수로를 구성했다가 다시 당신의 아이가 뛰어 놀 수 있는 잔디 광장으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언젠가 아키텍트를 대신해 AI 경관의 보수를 담당하는 공간 땜장이spatial tinkerer라는 직업이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을 보느냐, 얼마나 볼 수 있느냐를 넘어 최적의 공간만을 보게 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내용이 실제 연구되고 있는 분야이고, 여기 소개된 내용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경관에 대한 이해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를 가져오는 기술과 도구, 디바이스, 건축적 발명들이 가득한 세상. 당신의 눈이 경관의 미래, 나아가 미래의 경관 그 자체인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 [시네마 스케이프] 버드맨 기대되는 과정의 미덕
    서울역 고가 현상설계 프레젠테이션 당일 새벽, 최종 발표 자료와 함께 제출할 모델을 마무리 중이다. 한편에서는 모델 사진 촬영을 위해 조명 세팅이 한창이다. 새로 만들 건물과 기존 건물을 어떻게 구분하여 표현할지, 나무는 철사로 만들지 아니면 이쑤시개로 만들지 시험하고 있다. 메이플로 제작된 베이스는 무게도 엄청날 뿐더러 크기도 3m가 넘어서 어떻게 운반할지도 걱정거리였다. 24시간 영업하는 분식집에서 사온 떡볶이를 안주 삼아 맥주를 한 잔 걸치니 지난 몇 달간의 작업이 몇 시간 후면 끝난다는 설렘에 곧 다가올 긴장도 잠시 잊게 되었다. “설마 비 오는 건 아니겠지”라고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한 것 같은데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비가 왔다. 부랴부랴 덮개가 있는 용달차로 변경하고 계획보다 한 시간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고정해서 이동시키기 힘든 고가와 건축물 모델을 미리 포장해서 시청에 먼저 도착했다. 심사장 주변에 화물용 엘리베이터로 올라올 모델 운반 동선을 파악하고 마무리 작업할 공간을 확보해 두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모델이 도착했고 막내 스태프는 칼과 본드가 든주사기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찰나에 오래전 잠원동에서 족구하던 막내 시절이 생각났다. 담배 연기로 자욱한 사무실에서 밤새도록 연필 가루와 본드 냄새에 빠져 지내면서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각혈하며 장렬하게 전사할 것 같아 불안하던 시절이었다. 동기들은 ‘조경’하고 있는데 나는 왜 여기서 칼과 본드를 들고 스티로폼을 자르고 창문틀이나 붙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후로 징그럽게 오랜 시간동안 ‘조경’하며 살게 될지 그 짧았던 시절에는 몰랐다. 이제 심사장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여러명이 힘을 모아 육중한 모델을 옮긴다. 드디어 그동안 들인 노력에 대해 평가 받는 시간이 되었다.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과정이 중요하다는 판에 박힌 표현이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 과연 적합할까? 누구나 인정받기 원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지 않은가.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한국조경사회, 다수공급자계약제도 세미나 상생의 길은 무엇일까
    지난 5월 14일 한국조경사회(회장 황용득)는 ‘조경시설물 디자인 침해 및 다수공급자계약 세미나’를 푸르지오밸리에서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디자인권 보호와 침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만들고, ‘다수공급자계약제도’의 탄력적 운영에 관해 조경계 각 부문의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조달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다수공급자계약제도’에 관해서는 설계·시공·자재 등 각 부문의 입장과 개별 기업의 상황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건강한 조경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세 부문이 고르게 생존·성장해야하며, 이를 위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이번 세미나 참여자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종합토론 시간 플로어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토론회로 끝내지 말고 향후 위원회를 구성해서 실행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견도 개진되었다. 본지는 문제의식을 폭넓게 공유하기 위해 이번 세미나에서 다뤄진 ‘다수공급자계약제도’와관련된 내용을 지면에 옮긴다. MAS의 이해 발표 김성환 조달청 쇼핑몰기획과 사무관 다수공급자계약제도MAS란? 다수공급자계약제도Multiple Award Schedule(이하 MAS)란“공공기관의 다양한 수요 충족을 위해 품질ㆍ성능ㆍ효율 등이 같거나 유사한 물품을 2인 이상의 공급자와 계약하는 제도”를 말한다. 쉽게 말해 공공기관을 위한 온라인 쇼핑몰이다. 수요기관은 민간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나라장터 쇼핑몰을 통해 직접 물품을 선택해 구매한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TV, 냉장고, 컴퓨터 등 민간에서도 흔히 거래되는 상용 제품 위주로 계약이 체결되어 있었는 데, 최근에는 조경시설물 등으로 그 대상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계약 대상의 기본 요건은 ‘상용화’ 및 ‘경쟁성’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품질 요건을 충족하는 물품이어야 한다. 일례로 조경시설물 중 퍼걸러는 계약 업체가 100여 개로 상당히 많은 업체의 제품이 등재되어 있다. 어떤 품목을 새롭게 MAS에 등재하려면 신규 계약 공고를 내는데, 연간 거래 실적이 3천만 원 이상인 기업이 3개사 이상이 있고, 공통 상용 규격 및 시험 기준이 존재하는 물품을 대상으로 한다. 상용 규격은 대개 단체표준을 따르는데, 만약 없다면 조달청에서 정한 규격이 있는 품목을 그 대상으로 한다. 표준 규격이 없는 경우는, 경쟁이 어렵기 때문에 수의계약과 비슷한 형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달청에서는 납품실적이나 경영 상태 등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자를 대상으로 가격 협상을 통해 연중 단가 계약을 체결한다. MAS의 특징은 공급자 중심의 단일 기업이 조달하는 방식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다수 업체에서 조달받는 방식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조달물자의 다양화로 수요기관의 선택권이 확대된다는 장점이 있다. 일정 금액미만의 경우 수요기관이 바로 납품을 요구하게 되지만, 일정 금액 이상이면 7개사가 경쟁해 평가한 뒤 납품을 요구하게 된다. 조달 업체에는 일정한 요건(신용평가등급 B- 이상, 납품실적 3건 이상)을 충족하는 경우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일정한 요건이란 가격, 품질, 기술인증 등 기본적인 수준의 조건이며, 그 수준을 완화하는 중이므로 좀더 많은 업체의 참여가 가능해질 것이다. 조달 업체에 진입한 후에도 계약 이행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가격인하, 할인행사, 2단계 경쟁 등)으로 경쟁이 실시된다. 조달청은 MAS를 확대하기 위해 작년 신규 물품을 크게 확대했으며, 앞으로 품목을 계속 늘려갈 예정이다. 2014년 기준 5,568개의 업체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가운데 중소기업이 98%를 차지한다. 2단계 경쟁 제도 MAS 2단계 경쟁은 중소기업의 물품의 경우 1억 원 이상은 의무적으로, 5천만 원 이상 1억 원 미만은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대기업 물품의 경우 5천만 원 이상부터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수요기관이 5개 대상 업체를 선정하면 종합쇼핑몰시스템이 추가 2인을 제안요청 대상자로 자동선정하게 된다. 대상 업체의 제안서 평가 기준은 가격, 적기납품, 품질검사 등이다(종합평가 또는 표준평가를 활용). 조달 업체가 제안서를 제출할 때 제안가격은 제안요청 시점의 쇼핑몰 계약단가 이하로 가능하다. 단 중소기업간 경쟁물품은 계약가격의 90%까지만 허용하는 가격 하한선이 있다(즉, 현재 계약단가의 10% 초과 인하 불가).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은 때는 쇼핑몰 계약가격을 제안한 것으로 간주된다. 조달청과 계약을 하는 순간, 납품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제안요청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다. 만약 납품업체로 선정되었는데 납품을 하지못하면 계약불이행이 되어 제약이 가해진다. 따라서 2년간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계약관리 측면에서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2015년 주요 제도 개선 내용 MAS와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적격성평가 신청 시 납품실적, 원산지 표시 등의 서류를 잘 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종종 단체 표준이 없는 경우 규격서가 세밀하게 작성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주의해야 한다. 2015년 제도를 개선하면서 그간 많은 민원이 제기되었던 납품실적 제출 요건이 완화되었다. 사회적 약자 기업에 대한 납품실적이 3건에서 2건으로 완화되었고, 재계약에 대한 납품실적 인정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확대되었다. 더불어 공공기관 납품실적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MAS 업무처리규정을 개정하면서(2015년 3월 1일 시행) 계약가격 비교시스템을 구축해 우대가격(민간 거래 가격과 동일하거나 낮은 가격) 위반을 시스템으로 자동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거래정지나 환수를 진행하게 된다.
    • 김정은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파리, 혁명 전야
    #48 오 샹젤리제 - 앙투안 와토 바다 물거품에서 솟아오른 비너스가 육지에 첫 발을 디딘 곳은 펠로폰네소스의 키테라Cythera 섬이었다. 프랑스 로코코 화가 앙투안 와토Antoine Watteau (1684~1721)는 ‘키테라 섬으로 가는 길’ 혹은 ‘키테라 섬의 순례’ 등의 제목으로 비슷한 그림을 세 번 그렸다. 포구에 정박한 배와 배를 타고 순례를 떠나려는 듯 여행복을 입고 지팡이를 든 남녀를 그린 것이다. 첫 번째 그림은 초기작이었던 까닭에 인물들의 동작이 다소 경직되어 있다. 미술사적으로 보면 나중에 그린 원숙한 그림들이 훨씬 흥미롭겠지만 조경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바로 이 첫 번째 그림에 관심이 간다. 그림의 배경에 희미하게 보이는 구조물 때문이다. 이 구조물은 실존하는 것으로 파리 센 강변에 있는 생 클루Saint Cloud 정원의 캐스케이드 난간이다.1 문제는 그림의 해석이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그림 속 인물들이 배를 타고 멀리 그리스의 키테라 섬으로 순례를 가려나 보다’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센 강을 건너서 맞은편의 생 클루 정원으로 가려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비너스의 섬 키테라는 ‘사랑의 섬’이라고도 불린다. 파리 역시 사랑의 도시인데 파리를 키테라 섬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굳이 그리스까지 갈 필요가 있나. 강 건너 아름다운 생 클루 정원으로 가면 되는 것을. 그림 속 인물들이 실제로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소위 사랑의 정원으로 일컬어지는 곳이 목적지이니 여행자체가 사랑을 찾아가는 길에 대한 비유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현실도 아니고 상상의 세계도 아닌, 단순하게 연극 무대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키테라 섬의 순례’라는 연극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일 수도 있다. 인물들의 화려한 여행 의상이 그런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오히려 무대 의상에 더 어울린다. 이렇게 모호한 그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당시 사회를 들뜨게 했던 연극과 연회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17세기는 유럽 연극의 중심지가 이탈리아에서 파리로 옮겨간 시대이기도 했다. 과시욕이 무척 강했던 무대 체질의 루이 14세에 의해 연극이 크게 번성 했다. 그는 대단한 연출가이기도 했다. 궁정 생활 자체가 연극이 되어 갔다. 아침에 기침하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거수일투족, 대화 하나 하나가 각본에 의해 움직였다. 베르사유 궁과 정원은 궁정 생활이라는 연극을 종일 공연하는 거대한 무대였다. 앙투안 와토는 바로 이런 루이 14세 시대를 살았던 화가였다. 와토의 삶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작품처럼 신비한 인물이었다. 그는 네덜란드 국경 지방의 발랑시엔 출신이었다.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으로 사람들 속에 섞여 살지 못했으므로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고 그 덕에 현실과 연극, 가면과 얼굴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음을 간파했다. 18세에 활동을 시작하여 만 35세에 결핵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불과 15년 남짓 작품 활동을 했으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새로운 장르를 창출해냈다. 1717년, 와토는 파리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등록하기 위해 그림을 한 점 제출했다. 그것이 ‘키테라 섬의 순례’ 시리즈 중 두 번째 그림이었다. 첫 번째 그림이 너무 연극 무대 같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왕립 아카데미에서 요구하는 형식에 맞추어 다시 그렸다. 그럼에도 심사위원들은 이 출중한 그림을 어느 분과에 소속시켜야 할지 판단을 하지 못했다. 역사화도 아니고 전쟁화도 아니며 신화를 소재로 한 것도 아닌데 다가 초상화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다고 풍경화로 분류하기에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다. 논의 끝에 ‘품격 있는 야외 연회를 그린 그림fête galante’이라고 정의내렸고 이것이 새로운 장르로 확립되어 갔다. 이 그림을 연회 장면으로 해석한 것은 그림 속 등장인물 대부분이 제목과는 달리 배 타러 온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선착장에서 떨어져 남녀 한 쌍씩 짝을 지어 풀밭에 눕거나 앉아 있는데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포즈가 아니다. 오히려 야외에서 벌어지는 연회 장면을 연상시킨다. 물론 그림 왼쪽에서 배에 올라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어딘가 행선지를 향해 떠난다기보다는 물놀이를 하려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돛대 주변을 분주히 날아다니는 큐피드와 어린 천사들, 그리고 오른쪽에 서 있는 비너스 동상은 굳이 사랑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곳이 바로 사랑의 섬인 것이다. 사랑의 연회는 이미 시작되었다. 앙투안 와토의 ‘품격 있는 야유회’ 작품 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그림이 또 한 점 있다. 1719년경에 그린 샹젤리제Champs-Élysées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샹젤리제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명품 상점이 즐비한 파리의 대로를 떠올리게되지만 실은 그 길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 샹젤리제 정원을 말하는 것이다. 샹젤리제는 엘리시안의 들Elysian Field, 즉 그리스 사람들이 사후에 가는 극락이다. 그러니 샹젤리제 정원은 파리 사람들의 지상 낙원일 것이다. 이 샹젤리제 정원 역시 루이 14세의 조경가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1613~1700)가 1667년에 디자인한 것이다. 원래 농경지였던 곳인데 튈르리 정원의 축을 연장하여 넓은 가로수 길을 내고 길 양쪽에 숲을 만들었다. 가로수 길에는 느릅나무를 두 줄로 심고 길이 끝나는 곳을 원형 광장으로 마무리했다. 이 광장이 지금은 열두 개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모이는 원형 교차로가 되었으며 가로수 길 역시 폭도 넓어지고 길이도 연장되어 지금의 샹젤리제 거리가 되었다. 샹젤리제의 숲은 바로크의 원칙에 따라 질서 정연한 격자형으로 조림되었고 숲 한가운데에 긴 육각형의 공터를 만들어이를 샹젤리제라 불렀다. 비록 격자형으로 나무를 심었다고는 하지만 나무 사이의 공간이 넉넉하므로 세월이 흐르면서 숲 속에 수많은 사각형의 공간이 형성되었다. 여기에 파리지엔들이 모여들어 품격 있게 야외 연회를 즐겼다. 앙투안 와토의 그림은 바로 이런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여인들의 비단옷, 등을 보이고 있는 신사의 한 쪽 어깨에 걸친망토와 실크 스타킹, 이들의 우아한 포즈와 토실하게 살이 오른 아이들로 미루어 보아 상류층의 야유회임에 틀림이 없다. 높은 대 위에 잠들어 있는 여신상이 장면의 한가로움을 더욱 강조해 준다. 그런데 나무가 자라고 있는 양상을 보면 격자형의 질서가 많이 흐트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물론 사실과 다르다. 앙투안 와토가 화가적 재량을 발휘하여 르 노트르의 디자인을 ‘수정’한 것이다. 그것이 우아한 야유회의 분위기에 더 적합하다 여겼을 것이다. 그로부터 약 오십 여년 후, 이 그림을 보고 지금의 우리처럼 “어, 여기가 샹젤리제야”했던 인물이 있었다. 클로드앙리 와틀레Claude-Henri Watelet(1718~1786)라는 재력가 겸 미술 수집가였다. 그는 와토의 그림을 보며 이런 식으로 르 노트르의 질서를 약간 흩트리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라 여겼다. 그의 책상 위에는 루소의 저서, 영국의 훼이틀리와 챔버스 등이 발간한 정원 책이 쌓여 있었다. 센 강변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그는 수년 전부터 그곳에 정원을 조성하면서 계속 아이디어를 모으는 중이었다. 챔버스의 중국풍 영국 정원이라는 것에 관심을 두고 중국식 목교도 만들어 세웠으며 훼이틀리가 제안한 방식대로 장식 농장을 만들기 위해 물레방아, 낙농장, 양봉장 등 농업과 관계된 스타파주를 넣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고자 하니, 바로크의 후예로서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데 거부감이 느껴졌다. 이 때 앙투안 와토의 그림이 해답을 주는 듯했다. 정형적 원칙을 그대로 둔 채 조금만 어지럽힌다면 적절한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파리의 풍경화식 정원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시작되었으며,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사랑과 놀이와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