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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서울판 하이라인, 서두르지 말자
10월호 마감이 한창이던 9월 중순, 미안하게도 편집부 식구들을 나 몰라라 한 채 포르투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포르투Porto라는 역사 도시에서 열린 유럽조경학교협의회ECLAS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이곳에서 바다가 시작된다”는 말로 유명한 이 항구 도시는 15, 16세기 대항해시대의 화려한 전진 기지였다. 대항해시대가 저물고 유럽의 경제 중심지가 이동하며 포르투의 발전은 정체되기 시작했고, 근대기에는 개발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못하면서 도시의 구조와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도시의 역사 지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최근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관광지로 각광받으며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세월의 먼지가 켜켜이 쌓인 이 오래된 도시에서 일주일 가까이 머물며 ‘유산’이라는 것의 현재적 가치에 대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관광객의 셀카봉 배경으로 전락한 문화 유산과 그곳 시민의 곤궁한 삶이 지금까지도 오버랩된다.
포르투의 콘퍼런스 일정 중,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경 이론가 마크 트라이브Marc Treib와 긴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누렸다. 마침 9월 21일에 뉴욕 하이라인의 3구역이 공식 개장한 터라 산업 유산으로서 하이라인의 공공적 가치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는 하이라인의 대중적 성공은 도시적 콘텍스트와 역사적 스토리에 힘입은 바 크지만 하이라인의 “귀여운” 변신으로 인한 주변 부동산 가치의 상승이 하이라인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은 판단할 수 없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또한 『론리 플래닛』 같은 관광 책자를 장식하는 관광지가 된 하이라인의 명소적 가치가 “머니 스펀지”라고 비판받는 고비용의 문제를 상쇄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몸은 대서양의 일몰 앞에 있지만 마음은 파주 편집실에 있는 법. 그런 내용을 담아 『환경과조경』 11월호의 하이라인 특집원고 중 한 편을 써달라고 몇 차례 졸랐다. 그는 하이라인 만드는 데 10년이 걸렸듯 그것에 대한 평가에도 적어도 10년은 필요하다며 애타는 이 에디터의 청을 피해갔다.
비슷한 시간,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욕의 하이라인을 시찰하며 기자들을 모아놓고 서울역 고가를 서울판 하이라인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공식화했다.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는 도시 인프라이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갖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므로 “원형을 보전하면서 … 하이라인 파크를 뛰어넘는 녹색 공간으로 재생시켜 시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서울역 고가가 관광 명소가 되면 침체에 빠진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나온 서울시의 보도 자료는 서울역 고가는 “4층 높이에서 한 눈에 서울 도심이 조망 가능한 장소이자 KTX를 통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므로 “도심 속 쉼터이자 대표적 관광 명소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서울시의 구상은 도시 공간에 대한 뉴스로는 유례없이 다양한 쟁점을 생산하며 대중 매체를 달구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서울역 고가는 산업 유산이므로 원형을 보전하고 하이라인을 모델로 한 녹색 공간으로 재생시켜 관광 명소가 되게 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단순 논리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역 고가가 과연 원형을 그대로 보전해야 하는 산업 유산인가. 교통 수요에 대한 임기응변식 대처의 산물인 이 고가도로를 유산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재생하는 것인가. 도시의 재생은 쇠퇴를 전제로 한다. 수명을 다하고 황폐화된 하이라인으로 인해 그 주변은 오랫동안 쇠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서울역 고가는 무엇을 어떻게 쇠퇴시켰는지 냉철한 점검이 있어야 재생의 향방이 잡힐 것이다. 의도적인 계획만으로는 관광 명소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많은 선례를 통해 경험해 왔다. 물론 현재의 구상이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중국 관광객이 1km에 달하는 고가에 가득 찰 것이다. 청계천처럼 한번은 가봐야 할 촌로들의 방문지가 될 것이다. 한번쯤은 유모차를 끌고 걸어야 할 것 같은 부모로서의 의무감도 불러일으킬 것이다. 모처럼 도심을 어슬렁거리며 서울의 낯선 경관을 즐길 수 있는 데이트 코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우려하는 교통 문제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경제를 고사시킬 것이라는 남대문 상인들의 반대도 무마될 것이다. 노숙자 대책, 추락 사고나 투신 자살 문제, 여름의 혹서나 겨울의 혹한 같은 어려움도 기술적으로 극복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왜 지금, 이렇게 서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10월 중에 국제설계공모를 시작하고 연말까지 당선작을 선정하며 내년 8월까지 설계를 완성하여 2016년 내에 완공하겠다는 계획은 누가 보더라도 속전속결식의 전형적인 시장표 전시 사업이다.
빛의 속도로 완성될 서울판 하이라인의 수혜자는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도시 정치’의 과정과 결과를 수차례 경험해왔다. 이번 일도 예정된 일정대로 직진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진행 중인 아이디어 공모나 지난 10월 12일의 시민 개방 행사 ‘서울역 고가 첫 만남: 꽃길, 거닐다’처럼 시민을 앞세운 형식치레가 몇 번 더 추가되겠지만, 큰 틀에서는 그대로 강행할 것 같다. 하기로 했으니까. 『환경과조경』은 적어도 국제설계공모만은 따질 것 따져가며 천천히, 제대로 하자고 제안한다. 지명 공모가 아니라 공개 공모로 하자고 제안한다. 고가 구조를 그대로 보전하는 것 만을 설계 원칙으로 못 박지 말자고 제안한다. 그 자리의 지면에 선을 그어 기억할 수도 있고, 구조와 재료의 일부를 살려 전망대로 쓸 수도 있고, 완전히 철거하여 서울의 하늘을 다시 온전히 만나게 할 수도 있다. 다양한 해법에 문을 열어놓자. 서울도 이제 벤치마킹의 짝퉁 도시를 벗어날 때가 되었다. 여러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듯, 지금, 여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드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드는가”다.
이번 호는 특집뿐만 아니라 여러 지면이 하이라인 일색이다. 쉽게 짐작하시겠지만, 하이라인을 촘촘히 살펴서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의 가쁜 숨을 가다듬어 보자는 의도다. 독자 여러분뿐만 아니라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의 담당 공무원들이 제임스 코너James Corner와 조슈아 데이비드Joshua David의 인터뷰를, 윤희연 교수와 황주영 박사의 원고를 정독해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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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
“간결하면서도 화려하고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하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단순하지만 있어 보이는 그런 느낌으로 가주세요.” 흔히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막연하고, 그러다 보면 모순되는 소위 갑의 요구를 희화화한 우스갯소리다. 매달 새로운 콘텐츠를 편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런 주문을 디자이너에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혹은 매달 반복되는 꼭지의 틀 안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게도 된다. 잡지의 지면은 크게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된다. 혹은 콘텐츠와 이를 지면화하는 편집 디자인으로 구성된다. 내용(텍스트)도 중요하지만 독자의 눈을 먼저 사로잡는 디자인은 잡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다.
지난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에는 『환경과조경』 리뉴얼 준비가 한창이었다. 리뉴얼을 위한 T/F팀이 꾸려지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회의가 이어졌다. ‘새로운 시작’을 천명한 만큼 콘텐츠뿐만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당시 편집 디자인 리뉴얼을 위해 영입했던 아트디렉터 노희영 실장(반하나 프로젝트)은 새로운 잡지에서 “중성적이고 묵직한 느낌으로 전문지라는 점을 부각”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말 매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막연한 이 목표를 퍼즐을 맞추듯이 만들어가며 1월호를 기다리는 설렘도 커져갔다.
좀 더 손쉽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판형이 작아졌고, 지질은 가볍고 광택이 나지 않는 종류가 선택되었다. 판형, 지질, 표지 콘셉트, 제호 디자인 등 모든 요소를 결정하는 데 많은 시안이 필요했고(때로는 지나치게 많은 시안이 결정을 어렵게도 했고), 결정을 위한 난상토론이 이어졌지만, 지질을 바꾸는 데는 좀더 복잡한 고려와 결단이 필요했다. 종이는 크게 매끈하고 반짝이는 종류와 종이 본연의 느낌이 살아있는 질감을 가진 계열이 있다. 아트디렉터는 후자를 택했고, 그 자연스러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표지에 코팅을 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 반면 마케팅 부서에서는 코팅을 하지 않을 경우 책이 쉽게 훼손되고, 뒤표지 광고의 색감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우려를 보였다. 편집부 내부에서도 의견이 나누어졌다. 잡지란 본래 손때가 묻고 닳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지질의 은은함이 조경 잡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었다. 여전히 지질에 관해서는 독자들의 선호가 다르겠지만, 무사히 12번째 책을 만들고 있는 지금, 특히 책의 개성을 수용해준 광고주의 아량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매달 반복되는 필수 과정은 바로 표지 디자인을 결정하는 일이다. 마감 기간에 출근하면 회의 테이블 위에 새로운 표지 시안들이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해장국을 먹으러 간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표지를 정할 때면 편집실 한가운데 있는 회의 테이블에 시안을 늘어놓고, 편집주간부터 막내 기자까지 모두들 수평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며, 주장과 회유와 설득의 장이 펼쳐진다. 특히 1월호 표지는 『환경과조경』의 변화를 가장 먼저 드러낼 상징성이 컸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과 토론이 이어졌다. 당시 여러 이미지를 활용한 수많은 안이 제시되었고, 여러 차례의 투표와 공방이 오고갔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때 극적으로 ‘백지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사진 없이 단색면에 제호와 로고만 들어가는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2월호에 실린 공간지 심영규 기자의 리뷰처럼 “가장 큰 변화는 표지다. 단색과 변경된 영문 제호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줬다.” 가끔 고개를 들어보면, 여전히 편집실 게시판 한 가득 붙어있는 1월호의 시안들이 보인다. 그 가운데 어떤 것도 선택되지 않았지만, 당시 나왔던 많은 아이디어들은 그 뒤로 이어진 호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실현되었다.
그밖에도 표지를 확정하는 과정은 매달 에피소드를 남겼다. 2월호에서는 파크 킬레스베르크 ‘잔디 쿠션’ 사이에 앉아있는 여성의 아름다운 목선이 드러나는 사진을 쓸 것인가, 아니면 아이가 걷고 있는 사진을 쓸 것인가를 두고 남녀가 나뉘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매달 표지색을 고르고 책이 나온 후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일도 흥미로웠다. 핫핑크를 염두에 두고 만든 7월호는 고무장갑 핑크라는 품평을 듣기도 했다(개인적으로는 고무장갑의 핑크색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그마한 팬톤 컬러칩을 늘어 놓고 로고에 올라갈 박을 고르며 인쇄를 마친 결과물을 상상하는 일은 기대와 걱정 모두를 불러일으킨다.
리뉴얼 이후 내지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편집 레이아웃도 바뀌었지만, 유청오 사진작가의 영입은 좀더 자신감 있는 편집을 가능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의 순간에는 수많은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진 한 컷을 배열하더라도 정보가 많이 담긴 사진을 고를 것인지, 아니면 보기에 좋은 사진을 전진 배치할 것인지, 혹은 어떤 사진이 메인을 차지할 만큼 대상을 잘 표현하는지 그 선택을 두고 디자이너와 함께 고민을 거듭한다. 예를 들어 ‘ 름모루’(5월호)처럼 선형의 시퀀스를 이루는 공원의 경우, 한정된 지면 안에서 대부분의 영역을 보여주며 정보를 전달하는 데 충실할 것인지, 인상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조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했다. 돌아보면 너무 많은 정보를 담으려다 가독성이 부족해진 것은 아닌지, 소화불량에 걸린 독자가 많지는 않았을지 염려도 된다. ‘부산시민공원’(6월호)의 경우는 인물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사진이 실려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시설물이나 각 공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할 수도 있다는 편집부 자체 리뷰 결과도 있었다. 결국 에디터와 디자이너 사이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적정선을 찾아내는 것이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중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각종 기호·구호 식품을 나누며 동지애를 다지는 것 또한 좋은 지면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12월호 마감을 앞둔 지금도 어느 기자는 자신의 인터뷰이를 좀 더 돋보이게 할 방도를 찾느라 디자이너의 모니터 앞을 서성이고 있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환경과조경』을 보면 순식간에 1년이 흘렀음을 느낀다. 책등으로 보이는 다양한 색깔만큼이나 매호 느꼈던 기대감과 아쉬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올 한해 겪었던 시행착오만큼 성장했기를 바라며 2015년을 기다린다. 남들보다 한 달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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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인터스텔라
이상한 나라의 체험
스포일러가 지뢰밭이다. 글을 쓰는 현재 시점은 영화가 개봉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잡지가 출간될 때쯤에는 아마도 관심 있는 이들의 상당수가 영화를 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처 보지 못한 독자는 꼭 영화를 본 후에 읽기를 권한다. PC나 스마트폰으로 보려면 차라리 이 글을 읽고 상상으로만 그치는 편이 낫다. 반드시 극장에서 감상해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위기에 빠진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기 위해 웜홀worm hole을 통해 시공간을 여행하는 탐험담이다. ‘웜홀’, 낯선 용어지만 어디선가 본듯하다. ‘이상한 나라의 폴’의 주인공 폴이 딱부리, 삐삐, 찌찌와 함께 힘을 모아 대마왕으로부터 니나를 구하기 위해 통과했던 시간의 문이 웜홀 아니었을까? 찌찌가 요상한 봉을 휘두르면 현실의 시간이 정지되고 시간의 문을 통해서 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의 세계로 간다. 제한된 시간 동안 모험을 펼치다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곤 하던 ‘이상한 나라의 폴’은 오래전에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다. 폴 일행은 4차원 마법 세계에서 한참을 헤매다 돌아오지만 현실의 시간은 그대로 멈추어 있다. 알지 못하는 사이 이미 상대성 이론을 예습했다니 놀랍다.
SF영화에서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는’ 경우는 흔히 보았기에 ‘버리는’ 구상이 일단 신선하다. 과학의 발달과 지구 환경의 변화로 볼 때 미래의 시간대로 보이지만, 주인공 가족이 사는 집, 시내, 야구장의 풍경은 니나를 구하러 다니던 폴이 활약했던 20세기 중후반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웜홀을 통과해 새로운 땅을 찾으러 다닐 정도로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바람이 좀 많이 불고 산소가 부족하다고 지구를 버릴 구상을 하다니, 대마왕의 손아귀에서 니나를 구하는 일보다 더 무모한 일이 아닐까 싶다. 행성 집단 이주 계획이라는 어마무시한 계획을 세우면서 변변한 엔지니어 한 명 찾지 않고 남자 주인공이 제 발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니, 차라리 찌찌의 요술봉을 찾으러 다니는 편이 빠르지 않았을까.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인터스텔라는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이의 세계를 체험하게 해주는 볼만한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은 ‘메멘토Memento’에서는 기억을, ‘인셉션Inception’에서는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다루었다. 특히 인셉션에서는 무의식의 세계를시각적인 상상력으로 빚어내 일찍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인셉션의 복잡한 이야기 전개는 잊어버릴 수 있어도 도시의 풍경이 그대로 접혀 하늘로 이어지던 그 아찔한 장면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인터스텔라는 상상력에 과학을 접목해 감독의 전작을 뛰어넘는 그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먼지로 뒤덮인 지구, 입체적인 웜홀, 파도가 산처럼 보이는 물로 뒤덮인 행성, 구름까지 꽁꽁 얼어붙어 하늘과 땅이 이어진 것 같은 얼음 행성, 그리고 그 문제적 장면인 블랙홀까지. 지구의 환경오염 때문에 다른 행성을 찾아다니지만, 그들에게 닥치는 시련이란 외계인과의 조우도 대마왕의 공격도 아닌 또 다른 이름의 환경 재앙이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한겨레 영화평론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전공으로 삼아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극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그것이 주는 감동과 함께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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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사라와지 찾기
#30
사라와지를 찾아야 하는 이유
영국에서 풍경화식 정원이 태동하던 시절에 떠올랐던 개념이 하나 있었다. ‘사라와지sharawadgi’라는 단어인데 대략 ‘무질서한 아름다움’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이 개념을 1685년에 처음으로 제시한 인물은 윌리엄 템플 경Sir William Temple(1628-1699)이었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에세이스트였던 템플 경은 아일랜드 의원의 자격으로 유럽 대륙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많은 정치적 업적을 남겼다. 그러다 명예혁명 후 은퇴하여 서리 지방 모어파크에서 여생을 보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영향을 받아 전원에서 은둔 생활을 만끽하며 많은 에세이를 썼다. 1685년, ‘에피쿠로스의 정원’이라는 에세이에서 그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필치로 동시대의 정원들을 묘사했다. 그중 언뜻 중국의 진기한 정원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그의 사후에 어떤 파문을 일으켰는지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말하기를 “지금까지 내가 묘사한 정원들은 모두 규칙적이고 질서정연한 것들이다. 그러나 질서가 없는 정원이 오히려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중국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중국인은 지리적으로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 체계 역시 우리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우리의 경우 비율이나 좌우대칭, 통일성 등에 큰 비중을 두고 산책로를 만들 때나 나무를 심을 때 일정한 원칙을 따른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우리를 비웃는다고 한다. 몇 걸음 간격으로 나무를 심었는지 아이들이라도 금방 알아챌 만한 뻔한 방식을 쓰다니. 그들의 목표는 아무 규칙이 없어 보이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 때 그들은 ‘사라와지가 좋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한다고 한다. 중국에서 온 비단 옷이나 병풍, 도자기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규칙이 없음에도 아름답다.”1 템플 경은 중국에 가본 적이 없고 중국 정원을 본 적도 없었다. 중국 정원을 표현한 그림도 아직 없던 시절이라 전해 들은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오죽했으면 병풍 그림을 관찰하며 중국의 미학이 어떤 것인지를 해독하려 했을까. 템플 경은 사라와지, 즉 무질서 속의 아름다움을 동경했지만 동료들에게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공연히 그대로 흉내내려고 하다가는 큰 실수를 할 확률이 높다며 늘 하던 대로 정형적 양식의 범위 내에 머물면 크게 실수할 일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이야기는 여러 측면에서 흥미롭다. 우선 당시 유럽의 정원은 ‘정형식’이라는 하나의 원칙밖에 몰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고대 이래로 정원은 정형적이라는 것이 불변의 원칙이었다. 그렇다고 템플 경이 거기서 벗어나자고 주장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조심스럽게 ‘세상에는 다른 것도 있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템플 경은 풍경화식 정원의 창시자 반열에 끼지 못한다. 다만 그가 던진 한 마디, ‘사라와지’가 저 혼자 날개를 달고 멀리 날아갔을 뿐이다. 사라와지가 중국어라고는 하는데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2008년도에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사라와지에 대한 책을 출간한 유 리우Yu Liu도 사라와지는 아무 뜻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페르시아 어원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일본어가 아닐까 짐작하는 사람도 있다.2 아마도 발음이 와전되어 이제는 원어를 찾기 힘든 듯하다. 사라와지는 결국 영국 사람들이 창조한 중국 단어인 셈이다.
그 후 사라와지는 샤프츠베리 백작Earl of Shaftesbury(1671~1713)에게, 그에게서 다시 조지프 애디슨Joseph Addison (1672~1719)과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1688~1744)에게 전해졌다. 이 세 사람은 저술가, 철학자, 시인이었으며 정형식 정원을 혐오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이 형성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도 같다. 풍경화식 정원의 긴 역사를 놓고 볼 때 1700년대 초반, 풍경화식 정원의 태동을 책임진 초기의 영웅들인 셈이다.
당시 영국의 지식인들은 마치 정형식 정원을 빈정거리기 위해 살았던 것처럼 보인다. 특이한 것은 그들이 정형식 정원을 비판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고민을 할 무렵 프랑스에서는 베르사유 정원이 완성되면서 오히려 정형식 정원이 절정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그 후로도 반세기가 넘도록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대륙 쪽에서는 바로크 정원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말하자면 정형식 정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영국에서는 이미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조지프 애디슨이 설명해 준다. “우리 영국의 ‘바로크’ 정원들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정원만큼 재미가 없다. 그들의 바로크 정원은 정형적인 양식의 정원과 이어지는 넓은 숲이 펼쳐지므로 변화가 많고 예술과 자연이 공존한다. 그에 반해 우리 영국 것은 우아하긴 하지만 아담한 것이 특징이다. 사실 농경지나 목초지로 쓸 수 있는 면적에 숲을 만들자면 그만큼 소득이 줄어드니 난감한 것은 사실이다.”3 이는 프랑스와 영국의 사회정치적 차이에 기인했다. 프랑스 귀족들은 루이 14세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에 굴복하여 모두 왕실에서 살았다. 볼모로 잡혀있었던 것이다.4 당시 베르사유는 곧 국가였다. 그 반면 명예혁명에 성공해 왕권에 족쇄를 채울 수 있었던 영국 귀족들은 시골에 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그곳에서 살면서 자신들의 영토와 소득을 직접 관리했다는 차이가 있다. “군주가 기분 내키는 대로 만든 바로크 정원을 왕실의 노예들(귀족들)이 죽자고 지키고 있다”5 라는 샤프츠베리의 발언이 아마도 가장 비중 있고 ‘지속가능한’ 비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비아냥거리는 것만으로는 새것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독한 인위성에 대해 ‘자연스러움’으로, 억압에 대해 ‘자유’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다만 그 자유를 어떻게 삼차원의 공간으로 표현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자유가 어떻게 생겼을까. 이에 힌트를 준것이 템플 경의 사라와지였다. 사라와지를 찾아야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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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남에게 미루기
도대체 누가 한 거야?
영민이네 작품 봤어? 정말 모델은 전문 회사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믿길 정도로 훌륭하더라. 그런데 그 모델, 전부 후배들이 만들었대. 방학 때부터 애들 매일 밥 사주고 술 사줘서 돈으로 도우미 섭외한 거나 마찬가지지. 정작 자기는 모델에 손 하나도 대지 않고 지시만 내렸다고 하더라고. 그래픽도 완전 멋있지. 그런데 그 팀 애들 중에 복수 전공하는 미대생 있잖아. 걔가 아는 대학원생 오빠들이 다 해준 거래. 3D 프로그램으로 동영상 만드는 사람들이 해주는 그래픽을 어떻게 당해내겠냐? 솔직히 나는 그 작품이 걔네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봐. 모델도 그렇고, 그래픽도 그렇고, 직접 한 게 거의 없잖아. 솔직히 그 디자인도 본인의 아이디어인지 의심스러워. 비슷한 디자인을 무슨 공모전에서 본 것 같기도 하거든. 아니면 말고.
작가의 죽음
68혁명이 일어나기 한 해 전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작가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을 선언한다.1 바르트는 작가란 근대에 들어와서야 나타난 개념이라고 말한다. 중세가 끝날 무렵, 근대 철학과 종교 혁명을 통해 ‘개인’이라는 관념이 탄생한다. 여기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까지 더해지면서 개인적 주체인 작가는 모든 텍스트의 주인이 된다. 문자의 제국에 군림하는 작가는 작품에 대해 아버지의 권위를 넘어 종교적인 신성마저 갖는다. 하지만 실상 그어떠한 작품도 작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창조물이 될 수 없다. 알고 보면 모든 텍스트는 이전에 존재했던 수많은 원문의 인용의 재인용이며 무한한 모방일 뿐이다. 작가가 부여한 작품의 원본성은 실제로는 완벽한 허상이다. 오늘날 작가의 자리는 서술자scriptor가 물려받는다. 서술자는 거대한 텍스트의 사전에서 단어들을 끌어내 다른 누군가의 언어로 부연하는 자다. 작품에 선행하는 작가와 달리 서술자는 텍스트와 동시에 태어난다. 글쓰기는 더 이상 특정한 기록, 표현, 묘사가 아니다. 이제 언어 그 자체 이외에 텍스트는 그 어떠한 기원도 갖지 않는다. 텍스트에는 작가의 인생도, 열정도, 고뇌도 없다. 작가의 죽음과 함께 텍스트에 내포된 신화도, 작가의 존재에 기대어오던 문학의 비평도 전복된다.
작가의 죽음은 비단 문학에서만 나타난 사건이 아니었다. 20세기 들어서 예술의 전 분야에서 작가라는 개념은 무의미해진다. 1940년대 중반, 셰페르Pierre Schaeffer는 연주자를 위한 음악이 아닌 소리 그 자체를 위한 음악을 시도한다. 그는 이미 연주된 악기나 음악, 심지어는 사람들의 대화나 자연의 소음에서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집트에서 할림엘-답Halim El-Dabh은 고대 종교 의식을 테이프에 녹음하고 그 소리를 조작하여 만든 음악을 선보인다. 이들이 개발한 샘플링sampling이라는 기법은 작곡가의 악보나 음악가의 연주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에서 음악이 만들어진다. 그들에게 음악은 창작이 아니라 발견과 조합이었다. 작가의 죽음이 없었다면 이들의 실험에 영향을 받은 오늘날의 일렉트로닉이나 힙합과 같은 대중음악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술계에서 작가의 죽음은 이미 20세기 초에 예견되었다. 1917년 뒤샹Marcel Duchamp은 상점에서 사온 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하면서 화장실 용품 제조업자의 이름 ‘R. Mutt’를 새겼다.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의 변기는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작품이 된다. 1919년 뒤샹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의 복제품을 사와 콧수염을 그리고 ‘L.H.O.O.Q’라는 제목을 붙인다(그림1, 2).2 뒤샹 이후로 미술계에서 작가는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한다.
뒤샹의 개념을 이어받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전성기를 연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업 이후 작가의 권위에 기대는 ‘숭고sublime 미학’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대신 허상과 복제가 지배하는 ‘시뮬라크르simulacre 미학’의 시대가 도래한다. 더 이상 예술을 만드는 주체는 없다.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창작의 역할을 타자에게 전가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제 바르트가 선언한 작가의 죽음은 충격적인 도발이 아니라 진부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작가 없는 정원
졸업 후 일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된 마사 슈왈츠Martha Schwartz는 1979년 어느 날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깜짝 파티를 해주기 위해 자신이 살던 아파트 앞마당에 작은 정원을 만든다.3 정작 조경가였던 남편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이 정원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젊은 슈왈츠는 조경계의 화려한 주목을 받게 된다. 몇 평 되지도 않는 정원이 그토록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슈왈츠가 선택한 ‘재료’에서 찾을 수 있다. ‘베이글 가든’이라는 이름처럼 정원 가장자리의 보라색 자갈 위에 80여 개의 베이글이 깔려있다. 이 베이글들은 작가가 방수처리를 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가게에서 파는 베이글 그대로다. 슈왈츠는 60년 전 뒤샹이 그랬던 것처럼 대량 생산되어 판매되는 베이글로 정원을 만듦으로써 설계가의 권위를 파괴한다(그림3).
1988년, 슈왈츠는 ‘베이글 가든’에서 선보인 팝아트적인 시도를 확장한다. 슈왈츠는 한 쇼핑센터의 조경 설계를 맡게 된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제안한 설계의 초점은 공간적 구성이나 이용보다도 350마리의 황금 개구리에 맞추어져 있다.4 모든 맥락을 무시하고 그리드 형태로 균일하게 배치되어 공간을 지배하는 개구리들은 슈왈츠가 직접 만들지도 형태를 고안하지도 않았다. 공장에서 생산되어 쇼핑센터로 운반된 뒤 배치되었을 뿐이다. 10년 전의 작은 정원의 베이글의 역할을 쇼핑몰의 개구리가 수행한다(그림4).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 슈왈츠는 베이글 가든과 리오 쇼핑센터에서 보여주었던 레디메이드의 전략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녀는 개념 미술conceptual art의 아이디어를 빌어 그때까지 설계가가 맡아오던 역할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뒤샹이 예술의 고전적인 가치를 파괴한 이후로 예술은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만 했다. 그 고민 끝에 제시된 한 가지 해답이 개념 미술이다. 1960년대에 등장한 미니멀리스트들은 레디메이드의 개념을 극단적으로 추구하여 실제 사물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작품을 선보인다. 미니멀리스트였던 버긴Victor Burgin은 작품이 다른 요소들과 다를 바가 없다면 왜 굳이 작품을 쓰는지 반문한다.5 예술의 본질은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작품에 대한 생각이 아닐까? 1963년 키엔홀츠Edward Kienholz는 ‘개념 타블로Concept Tableaux’ 라는 작품을 통해 예술이 개념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1966년 보크너Mel Bochner는 작품이 아니라 여러 작가들의 드로잉과 구상을 복사한 노트를 전시했다. 전시된 대상은 완성된 예술이 아니라 예술의 개념들이었다. 1968년 솔 르윗Sol LeWitt은 월 드로잉Wall Drawing 연작을 구상한다. 솔 르윗은 월 드로잉을 그리기 위한 개념적 가이드라인과 다이어그램을 제시하였을 뿐 작품을 직접 그리지 않았다. 작품은 인부들이 완성한다. 월 드로잉에서 작가는 더 이상 작품의 유일한 창작자가 아니다. 작품에 대한 개념과 구상의 주인일 뿐이다(그림5, 6).
슈왈츠는 2009년 벨기에에서 열린 정원 축제에서 ‘가든 게임Garden Game’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6 그녀는 정원을 구상하면서 그 어떤 도면도, 스케치도 그리지 않았다. 단지 정원을 만드는 규칙을 이메일에 써서 벨기에로 보냈을 뿐이다. 슈왈츠가 보내준 규칙대로 주사위를 던져 만든 생울타리 미로가 완성된다. 그리고 무용수들이 주사위, 돌림판, 끈, 말뚝으로 또 다른 게임을 진행하며 35개의 화단의 위치를 결정한다. 그 후에 시공 인부들이 다시 주사위와돌림판을 사용하여 무용수들이 정한 위치에 놓인 화단을 채워나간다. 슈왈츠는 개념 예술가들이 사용했던 방식을 통해 정원을 완성한다. 이 때 슈왈츠는 고전적 의미의 설계를 하지 않았다. 규칙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작품의 주체는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규칙을 제시한 슈왈츠에서, 화단의 위치를 정한 무용수로, 그리고 정원을 마무리한 인부들로(그림7).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어바니즘』이 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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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가의 서재] 책과 헤어지지 않기3
번역과 세계와 당신
처음 당신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
도저한 사랑에 관한 절절한 중단편을 하나 꼽으라면 거의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작품이 있지요. 김연수의 소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입니다.1 늦가을에는 꼭 이 소설을 읽어야 합니다. 이제 한 달이 지나면 이 세계도 온통 하얗게 뒤덮일 테니. “처음 당신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 이젠 기억조차 까마득하군요.”2 내 기억이 옳다면 찬바람에 낙엽들이 포도鋪道 위로 산산이 흩어지던 이 무렵이었을 겁니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김연수의 소설에서는 번역을 하고 주석을 다는 이야기가 첫머리부터 등장합니다. 화자인 ‘나’는 총 227행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풀어 쓴 번역가입니다. “다시 121행의 포蒱자로 돌아가면 이다음에 올 글자는 도桃자나 도陶자가 거의 확실하다. 포도라는 단어는 라틴어‘botrus’를 음사해서 만들었다.”3 ‘포도葡萄’의 유래입니다. 서아시아가 원산지인 포도는 페르시아에서 로마로 가기도 하고, 저 멀리 설산을 넘어 중국으로 왔다가 고려 때 우리 땅에도 들어옵니다. 음차音借도 번역입니다. 족히 천 년은 걸렸을 긴 여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군요.
한편 주인공인 ‘그’는 아무 연락도 없이 갑자기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여자 친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후회는 없어’로 끝나는 짧은 유서만 남겼지요. 여러 연애 소설을 탐독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둘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만 여전히 알 수 없지요. 찾은 건단 한 가지. 여자 친구가 죽기 전에 ‘나’가 번역한 『왕오천축국전』을 도서관에서 빌렸다는 사실이지요. 안타깝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뿐”4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즐겨 적던 릴케Rainer Maria Rilke의 글귀를 따릅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5 『왕오천축국전』의 ‘소발률’, 동서양 모두 ‘세계의 끝’이라 불렀던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라는대설산으로 향하지요. 이젠 목숨까지 걸고 해석해보려 합니다. 작중 화자인 ‘나’가 글로 번역을 했다면, 설산을 오르는 ‘그’는 온몸으로 번역을 한 셈이지요. 글쎄요, 끝내 뭔가를 봤을 겁니다. 현실과 환각이 만나는 ‘세계의 끝’의 미혹 또는 매혹. 목숨을 건 번역 이야기는 고혹적입니다.
철저한 독서의 오래된 역사
간만에 사사키 아타루입니다. “번역이란 철저한 독서입니다. 한 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벌거벗은 ‘읽기’의 노정입니다.”6 도서관에 관한 책을 읽다가 이 철저한 독서의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된 것임을 깨달았어요. 현재 확인된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인들이 점토판에 새긴 것이지요. 그런데 이후 수메르인을 정복한 아카드인 등 여러 민족이 모두 수메르인의 설형 문자를 그대로 씁니다. 훗날 로마가 멸망한 후에도 유럽인들이 굳이 라틴어를 사용한 이유와 흡사하지요. “결과적으로 그 지역 필경사들은 자신들의 언어뿐만 아니라 수메르인이 사용하던 다양한 설형 문자의 가치를 알아야 했다.”7 그래요. 최초의 번역가는 필경사이며, 번역은 문자처럼 역사가 유장합니다.
1980년 시리아에서 고대 도서관의 원형을 발굴했지요. 점토판이 가득한 이 문서 보관실을 기원전 2300년경에 지었답니다. “60여개의 점토판에는 수메르어로…(중략)… 새겨져 있었고, 28개의 점토판에는 수메르어가 에블라어로 번역되어 있었다”8고 합니다. 번역 자체가 수천 년 문명의 오랜 흔적이지요. 철저한 독서가 켜켜이 쌓여 있어요.
허대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받았다. 졸업 후 1999년부터 16년째 조경설계사무소를 다니고 있다. 4년 전부터는 개인 주택 정원, 어린이집과 학교의 외부 공간, 농장 조경계획, 공장 외부환경 개선사업, 아파트 조경 가이드라인 등 하나하나 성격이 다른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중에 그 공간에서 머무는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일하는 조경설계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현재 스튜디오테라(STUDIOS terra)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공저로 『철새협동鳥합』이 있고, 제프 마노가 쓴 『빌딩 블로그』를 번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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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로이 이마무라
SWA 그룹 소장
로이 이마무라는 일본계 미국인 디자이너로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더니즘 조경의 반세기 역사를 현장에서 일궈 온 대표적인 실무 조경가다. 대규모 주거단지 및 공원 계획에서부터 오피스, 호텔, 리조트, 캠퍼스, 골프장, 마리나, 테마파크, 도시 광장, 환경 보전 계획 등 그의 프로젝트 목록은 조경가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스펙트럼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아닐 정도다. 또한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그가 주로작업해 온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 대만, 동남아시아 각국 및 한국과 중동 등에서 다양한 차원의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지휘해왔을 정도로 세계화 시대의 조경가로서 광활한 지리적 범위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시작한 조경 실무를 올해로 50년째 하고 있다. 특히 SWA 그룹이라는 한 직장에서 40년 넘게 근속한 꽤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누구나 열정만 있다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활발한 창조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 조경 분야라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다. 그의 디자인은 낡아지기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과감해지고 젊어지고 새로워졌다. 오히려 오랜 경험과 경륜은 디자이너가 성숙하고 완성된 결과물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로이 이마무라는 단지 회사 내 연장자로서 조언이나 자문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제도판 위를 넘나들며 순식간에 뽑아내는 콘셉트 드로잉, 평면과 단면, 식재와 디테일 도면은 시공을 위한 청사진의 수준을 넘어 하나의 예술품이라 부를 만하다. 30년 넘게 소장principal으로서 팀과 회사를 이끌고 관리자로서 경력을 쌓았지만, 그는 오늘도 여전히 놀라운 생산력을 지닌 실무자다. 젊은 설계가의 이직률이 높고 다양한 여러 현장 경험을 갖춘 실무형 마스터 디자이너가 드물며 종종 관리자와 설계 담당자와 자문가의 역할이 분리되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한다면, 로이 이마무라의 경우는 먼 나라의 꿈 같이 들리기도 한다. 전반적인 프로젝트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가장 세심한 부분까지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설계가는 이상적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우리에겐 한쪽에만 치우친 불구와 같은 디자인 프로세스가 어느덧 상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머리만, 눈만, 입만 갖춘 디자이너. 반면에 손발로서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밝히는 디자이너 등 우리는 스스로 그러한 편중된 역할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때로는 자처하기도 한다. 과정이 결과물을 좌우하는 것이 상식이라면 온전한 지성과 단련된 표현력을 겸비하고 그에 더해 따뜻한 가슴의 연륜까지 갖춘 조경가를 찾아보기 힘든 설계 산업의 미래는 상당히 불안하다. 이제 그와 같은 조경가를 길러내고 유지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난 것인지 사뭇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수많은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로이 이마무라의 디자인은 매우 경제적이면서도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스스로 현장의 자연적 조건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설계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해안 습지에 맞닿은 플로리다의 호텔에서는 여유로운 정적과 수평적 평화로움이 있고, 일본 나가노의 계곡부에 위치한 리조트에서는 급격한 사면이 지극히 아름다운 인공미를 돋보이게 하는 팔레트가 되기도 한다. 상하이 외곽의 고급 주택 단지에서는 수로변에 화초가 자연스럽게 자라난 듯한 여유로운 풍경이, 대만의 전자회사 본사 사옥에서는 예리한 칼로 자른 듯한 선형의 디자인과 한 치도 어긋날 것 같지 않은 치밀한 디테일이 공중으로 떠오를 듯 경쾌하게 새겨져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통신회사 사옥의 전면부 정원에서는 명확한 기하학과 절제된 미니멀리즘이, 이전에 군 기지였던 대학 캠퍼스에서는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그는 특정한 설계 언어나 스타일 또는 자기만의 질서를 추구하기보다는 현실에서 영감을 얻고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 상황주의자situationist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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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웅진씽크빅 옥상정원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던 어느 평일 오후, 호젓한 파주출판단지를 찾았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관광객 한 명없는 한적한 단지 내 길을 걸으니, 마치 빈 영화 세트장을 방문한 느낌이 들었다. 세심한 협의와 조율을 거쳐 결정된 듯한 건축과 외부 공간의 조성 방식은 서울의 복닥거리는 경관에 비교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개별적으로는 시선을 잡아끌면서도 절묘하게 자제하는 모습을 취하며 세련된 단지 경관을 만들어냈다. 관심과 투자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공공 공간의 경관마저도 이곳 파주출판단지에서는 주요한 고려 대상이 되고 있었으며, 적정 수준 이상으로 조성되고 유지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파주출판단지에서 볼 수 없었던 단 하나 아쉬운 이미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활동의 경관이다. 자유로를 한참달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입지적 여건은 사람들에 의해 잘 쓰이면서 두터워지는 도시의 매력을 갖추기에꽤나 불리한 상황인 듯하다.
이번 달 ‘공간 공감’의 대상은 파주출판단지에 위치한 웅진씽크빅이다. 갈대가 풍성한 샛강에 연접한 이 건축물은 2007년에 준공되었으며 다수의 건축상을 받은 수작이다. 파주출판단지 계획 당시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곳에 지어질 건축물의 콘셉트는 바위 혹은 암석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갈대밭에 놓인 바위 덩어리가 건축의 모티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건축의 첫인상이 바위를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건축물 자체에서 매스감이 느껴지기보다는 파사드를 이루는 커튼월 글라스의 특성이 주변 경관을 받아들이고 다시 우리에게 되비쳐 보여준다. 둥그런 건축의 형태는 입면만을 부각시키는 대신 둘러싸인 산책로를 따라 모든 면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 샛강과 인접한 건축 입면은 갈대, 버드나무, 그리고 가을 하늘을 그린 캔버스가 되고 있었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였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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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메시지다
부산 북항 재개발사업 친수공원 국제현상설계공모
“미디어는 메시지다Medium is the message.” 미디어 전문가이자 문화 비평가인 마샬 맥루한의 잘 알려진 명제다. 그는 매체를 확장된 형태의 감각기관이라고 정의 하고 매체의 특성이 메시지 전달 방식일 뿐 아니라 메시지 그 자체로도 기능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매체를 수동적 도구가 아닌 능동적 주체로 본 것이다.
맥루한의 언설을 통해 나는 도시 공간에서 매체이자 메시지로 작동하는 공원에 대해 생각했다.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매체들―건물, 도로, 오픈스페이스 등― 중, 공원은 면의 형태로 일정 공간을 점유하는 규모의 매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매체에 비해 규모가 커 도시 공간에서 쉽게 읽히고 도시 표면과 맞닿아 있는 경계부가 많기 때문에 감각의 확장과 교란 가능성 또한 높다. 공원은 도시적 삶을 서비스하는 하나의 매개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비평하는 메시지로 작동할 수 있다.
공원이 도시를 비평하는 매체이자 메시지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계기중 하나는 설계공모다. 도시 공간에 공원의 대상지가 정해지면 다양한 사회적 요구 가운데 문제와 목표가 설정되고, 설계공모는 문제 설정과 해법의 논리를 경합하는 비평의 장이 된다. 라빌레트 파크 설계공모와 다운스뷰 파크 설계공모는 예측할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포스트모던 도시의 공간상을 인식시켰다. 뒤스부르크 노르트 파크 설계공모와 프레시킬스 파크 설계공모는 쇠퇴기로 접어든 무수한 산업 도시들, 생애주기가 다한 쇠퇴기의 도시들이 곧 대규모의 노후·유휴지를 발생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했다. 폐허가 된 기존 산업 시설과 생태적·문화적으로 취약한 토양을 지닌 도시 공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설정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0년대 이후 대규모 설계공모가 붐을 이루면서 능동적 주체로서의 공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도시 정책과 제도를 기반으로 오랜 기간 준비된 경우가 그러했다. 이를테면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설계공모의 경우 대상지가 신도시 면적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위치 또한 비위계적 환상형 도시의 중앙부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 개발에 있어서 공원이 도시를 조직하는 능동적 주체로서 기능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는 특수한 형태의 교란된 부지인 군부대 이적지의 다양한 쟁점과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부산 북항 재개발사업 친수공원 국제현상설계공모는 앞의 두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토 개발과 도시 (재)개발이라는 판 위에 놓여있다. 일찍이 정부는 항만물류산업 환경의 변화와 관련 시설의 노후화 등으로 항만의 생애주기가 단축될 것을 예측해, 2007년 ‘항만과 그 주변지역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시행했다. 쇠퇴기 항만 도시의 재활성화를 지원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을 토대로 부산시는 쇠퇴기의 항만물류산업 부지인 북항을 국제해양문화관광의 거점으로 변화시키는 재개발 사업을 계획했다. 그리고 도시의 공적 자원인 항만 부지를 지역사회와 시민들에게 환원하는 방안으로 친수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설계공모는 국내 대규모 유휴 항만의 재개발과 부산 구도심 활성화, 산업부지의 환원을 통한 공공 공간 확충으로 수렴되는 친수공원의 구체적인 형태와 기능을 마련하기 위한 장이 되었다.
박선희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형 공원에 나타나는 현대 공원 설계의 쟁점’으로 2011년 조경비평대상에서 가작을 수상했으며, 현재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와 조경에 관한 복잡하고 중요한 논의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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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망의 조경, 네 가지 과제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며 새 옷을 입은 『환경과조경』, 이제 2014년의 마지막 호를 선보입니다. 지난 1년간의 잡지, 즐겁게 보셨는지요.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 그리고 따끔한 비판모두 잘 소화하여 더 유익하고 품격 있는 『환경과조경』을 만드는 데 자양분으로 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외적 위기와 내적 혼란을 동시에 겪은 한국 조경의 2014년, 참 힘든 해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고도 성장기의 급속한 개발로 인해 훼손된 국토의 상처를 치유하고 도시 환경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온 조경의 저력이 있기에, 다른 어느 분야보다 앞서 지구 환경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실천해 온 조경의 지혜가 있기에, 지금 잠시의 위기는 새로운 희망의 토대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작년에 제정된 ‘한국조경헌장’의 몇 구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조경은 생태적 위기에 대처하는 실천적 해법을 제시하고, 공동체 형성을 위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며,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경관을 구현해야” 합니다. “조경은 건강한 사회의 척도이고 행복한 삶의 기반이며, 지속가능한 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조경의 책임이자 과제”입니다.
희망의 조경을 실천하기 위해 몇 가지 당면 과제를 생각해 봅니다. 우선 첫째는 인재의 양성입니다.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우리 조경 분야는 우리 손으로 제대로 된 조경법 하나 발의할 국회의원 한 명 배출하지 못했고, 정책을 이끌어갈 정부고위 공무원 한 명조차도 없는 실정입니다. 올해 열린 대한민국 조경문화박람회의 초청 특강 스타는 조경을 전공한 우리의 선배도, 후배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왜 원예나 정원을 넘어 도시 규모의 그린 인프라를 이야기하고 미래의 패러다임을 제시해 줄 제임스 코너나 조지 하그리브스 같은 세계적인 조경가를 배출하지 못했을까요? 더 늦기 전에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산학 연대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학교는 예전처럼 천편일률적인 커리큘럼으로 이미 과포화 상태인 인기 분야의 교육에만 치중하지 말고 다양한 실무 분야가 원하는 전문 인력을 골고루 배출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교육 과정을 점검하고 개편해야 할 것입니다. 업계 또한 학교와의공동 연구나 R&D 투자를 활성화하여 미래의 산업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데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과제는 여러 관련 단체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일입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조경계가 우왕좌왕한 이유는 큰 그림으로 조경의 미래를 챙기지 못하고 각 단체의 입장에 따라 당장의 작은 이해관계에 따라 사분오열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3월 3일로 변경된 ‘조경의 날’은 충분한 검토와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고, 관련 단체의 차기 회장 선거는 개운치 않은 뒷말을 무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같은 단체 내에서도 학연과 출신에 따라 계파를 형성하고 각종 이권에서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하곤 합니다. 학연으로 뭉친 몇몇 동문들은 공공연한 동문업체 밀어주기로 손바닥만한 조경 분야의 시장 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운영비도 마련하지 못하는 유사 단체들이 또 다시 양산되고 있습니다. 한때 호황을 누렸던 선배 세대는 불황이 닥치자 후배를 보살피지 않고,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자신만 다른 비즈니스 세계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조경’ 이라는 이름으로 힘을 모으고 보태야 합니다. 졸업장, 계급장 다 내려놓고 먼저 팔 걷어붙이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실속 없는 자리 만들기에 연연하지 말고 여러 이름의 조경 관련 단체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세 번째 과제는 우리 조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반성과 대책 마련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각종 언론을 통한 홍보는 물론 시민사회에 폭 넓게 조경의 소중한 가치를 널리 알리는 이미지 회복 전략image restoration strategy을 실천해야 합니다. 미국조경가협회ASLA는 지난 2011년부터 ‘Landscape Architecture –YourEnvironment. Designed.’란 테마 아래 올바른 조경 역할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ASLA는“조경은 당신의 환경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대학캠퍼스, 도시 공원이기도 하며, 병원 마당, 지역계획, 정원의 전부이자 그 이상의 것이기도 합니다.
조경가는 하늘 아래 거의 대부분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조경의 정체성 확립과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도 한국조경신문, 라펜트, 환경과조경 같은 전문 매체는 물론이고 일간지나 방송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경의 중요성을 알려 나가고 조경문화박람회 등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지속해야 합니다.소외된 계층에 대한 배려로 우리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고 봉사하는 사회적 지원 또한 활발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네 번째 과제는 새로운 시장의 발굴과 개척입니다. 근래에 조경은 건축, 도시설계, 엔지니어링과 협력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IT, 패션, 의료, 역사 등 전통적인 협업 분야를 벗어난 다양한 분야와도 상호보완적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터넷, 통신,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네트워크 경제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비즈니스의 융복합화 추세가 강하게 대두되고 있고, 우리 조경도 컨버전스를 통해 영역을 넓히고 타 분야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나가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ASLA도 최근 “협업이 강조되는 분야 역시 조경”이라고 말하며 지속가능한 도시, 건강하면서 경제적인 도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주역으로서 조경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도시교통의 효율을 높이는 보행 중심의 네트워크 설계, 지역 사회의 공동체 문화를 발전시키는 커뮤니티 디자인, 식물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녹색의료 디자인, 버려진 토지를 이용해 지역 내 생산성을 높이는 도시 농업 디자인, 자연 에너지와 빗물을 활용하여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그린 인프라디자인 등,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야 합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국내 경기의 침체 속에서 우리 조경 분야는 안팎으로 끊임없는 위기에 직면해있습니다. 타 분야의 도전에 좀 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당장 우리 내부에 산적해 있는 문제를 이제부터라도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합니다. 지난 40년간 양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 우리가 챙기지 못하고 자만했던 부분이 있었음을 되새겨봐야 합니다. 이제 전통적인 조경의 영역을 넘어 ‘탈영역의 시대, 통섭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조경이 가진 장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토를 설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