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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가의 서재] 그 욕망에 대하여
    ‘욕망’이라는 말은 부끄럽다. 내뱉는 순간 괜히 멋쩍고 쑥스럽다. 그저 단어일 뿐인데 이 친구가 품고 있는 뉘앙스가 그러하다. 처음부터 ‘욕망’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아파트로 이사한 후 출처를 알 수 없는 ‘갑갑함’에 어슬렁거리던 중 20층짜리 아파트 각 층의 거실에서 새어 나오는 텔레비전 불빛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순간 헬리캠helicam이 1층부터 20층까지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서 거실을 찍은 영상이 떠올랐다. 소파에 앉거나 혹은 바닥에 앉아 리모컨을 옆에 두고 같은 방향의 벽 쪽에 놓인 텔레비전을 보는 광경…. 이 공간에선 소파나 텔레비전이 크다-작다, 비싸다-싸다 등의 양적·질적 차이밖엔 볼 수 없다. 비슷한 공간에서 차이 없는 행위를 하며 일상을 소비하는 것이다. 헬리캠이 클로즈업을 하니 공간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몸을 감싸고 있는 것,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 그 모든 것이 복제된 것이다. 산업혁명 이래 기계적 대량 생산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 중 ‘하나only one’로만 존재하는 것은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인 독일에서는 전 후 복구를 위해 그리고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빠르게, 값싸게’를 모토로 국제주의 양식international style의 건물이 등장했다. 대량 생산된 값싼 철과 유리를 이용한 이 양식은 시대적 소명에 최선을 다했다. 우리의 아파트 도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 소명이 묘하게 변형되어 가장 비싼 주거 양식으로 둔갑했다. 이 유산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나’란 존재는 그 공간이 허용하는 것 외엔 무엇도 할 수가 없고, 내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것은 복제품이다. 이런 현실에서 ‘오롯한 나’를 세우는 일은 무형의 ‘정신’ 밖에선 불가능하다. 그 일이 어찌 쉬운 일이랴. 그럴 수 없으면 거세된 채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욕망’이란 단어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 시대를 ‘욕망의 시대’란다. 개인의 욕망이 긍정되는 사회란다. 복제품과 비슷한 공간에서 별로 다를 것 없이 사는 사람들이 욕망의 시대를 살고 있단다. 대체 무엇을 욕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마저 대량 생산되고복제된 욕망인가? 욕망이란 단어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이 용어가 적정한 것인지를 확인한다면 갑갑함이 다소 해소될 것 같았다. 많은 책에서 언급하고 있었지만 욕망에 대한 선입관 이상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러다 어렵게 찾은 책이 2006년에 설립된 ‘밝은사람들연구소’에서 기획한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였다. 초기 불교, 유식 불교, 선불교, 서양 철학, 심리학, 생물학 등에서 바라보는 욕망을 분석한 책이다. 그 분량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대함, 그리고 불교를 학문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다. 섣부르지만 짧게 요약해 본다. 김용규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대학교 설계대학원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생태 기술 개발과 관련한 각종 연구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로참여했으며, 현재는 생태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하는 분야에 관심을 쏟고 있다. 현재 일송환경복원과 Ecoid Corporation, USA 대표이사를맡고 있다.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세 번째 이야기
    당신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입니까 두 번째 자연과 관련된 오랜 질문은 과연 우리 시대에 자연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이다. 루이스 칸이 벽돌에게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라고 묻고 벽돌은 ‘아치가 되고 싶다’라고 대답하듯, 재료 자체가 가진 물성을 최대한 발현시켜 주는 게 건축가의 소명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조경에 있어서 자연은 다중적이다. 재료이기도 하고, 이상향이기도 하고, 이념이기도 하며, 가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에게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라고 묻기 전에 설계가 스스로에게, 또한 클라이언트나 이용자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당신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냐고. 봄이 오는 소리 최일도 목사님이 세운 다일재단의 ‘밥퍼’와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삼 년째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서울그린트러스트의 ‘우리동네숲’ 사업으로 시작된 밥퍼 프로젝트는 거절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진행되었다. 밥퍼는 노숙자와 독거노인 등 사회의 약자에게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는 무료 급식소다. 청량리역 근처 야채 시장과 굴다리 밑에서 시작된 밥상 공동체는 결국 서울시 동대문구의 배려 덕에 현재의 위치에 정착해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꾸릴 수 있었다. 지하에 대규모 하수관이 지나는 공공 용지이기 때문에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땅이었지만 특별히 조립식 건물과 주차장을 위한 용도로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편안하게 한 끼의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축복이었다. 이것이 2002년의 일이라고 한다. 2012년 처음 만난 목사님은 이곳에 자연을 원하셨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도로에서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배식을 기다리는 분들의 초상권을 보호해주고 싶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삶에 지쳐 희망조차 잃어버린 사람들에게자연이 삶의 기쁨과 희망을 선사할 수 있을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가혹했던 겨울을 이겨내고 피는 복수초와 매화꽃을 보며 삶의 희망을 찾았던 옛 사람들처럼, 한 포기의 풀, 한 떨기의 꽃이 누군가에게 겨울이 아무리 매서워도 봄은 다시 돌아온다는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은가. 식물도감을 뒤적이며 하는 습관적인 식재 설계는 설계가의 상상력에서 이토록 처연한 자연의 의미를 잊게 만든다. 내가 감동받아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주는 감동을 디자인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설계 재료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을 알려주는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다니. 조경이 사회적으로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고민하다 무기력해지던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건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밥퍼와 어울리는 ‘밥숲’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대로 쌀 알갱이 모양의 꽃이 만개하면 그 해는 풍년이 든다고 믿어 심어왔다는 이팝나무와 밖에서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측백과 황금측백을 섞어 수벽을 치고 열매가 달리는 과일나무를 섞어 심어 밥숲을 설계했다. 뜻에 공감하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학부와 대학원 학생 여러 명이 기쁜 마음으로 그동안 배워서 생긴 ‘재능’을 선뜻 기부해주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풍요로운 ‘숲’을 만들고 싶은데, 실제로 우리가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공간은 펜스가 쳐진 경계지역 일부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아스팔트 주차장은 하수관거 때문에 식재를 할 수 없었고, 위에서는 주차장과 행사장으로도 써야하니 아스팔트 포장을 유지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지’ 않고 숲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럼 나무를 ‘그리자!’ 조경학과 문턱을 넘으면서 이십 년이 넘도록 그린 수목 심볼이 도대체 몇 개나 될까. 수백만 개를 넘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손을 의미 없이 거쳐 간 수많은 나무 심볼이여, 미안하다. 이번에는 한 땀 한 땀 제대로 그려주마. 신입사원 때 정성스레 만든 수목 심볼을 소환하여 뻥튀기해서 적절하게 배치하고, 그 이후의 실행은 봉사를 자원한 학생들에게 위임했다. 그들은 교실에서 볼 수 없는 놀라울 정도의 자기 주도성을 보였다. 스스로 작업진행 과정을 가늠한 후 해당 작업에 따라 몇 개의 팀으로 구분했고 크기별로 쓸 템플릿을 현수막 업체에 부탁해 자체 제작까지 했다. 첫 팀이 템플릿을 아스팔트에 펼쳐서 주요 꼭짓점을 표시하고 뜨면, 그다음 팀이 점과 점을 이어 폐곡선으로 완성했다. 그다음 팀이 철 테이프로 마스킹, 그다음 팀이 페인트 작업으로 마무리.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의미 있는 나무를 그려 넣는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후원 기업인 시티뱅크와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한 식목 행사를 통해 살아있는 나무와 꽃을 심을 수 있었고 비로소 밥숲이 완성되었다. 누군가가 바닥에 페인팅을 하는 것이 너무 저차원적인 접근 아니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다지 화나지 않았다. 저차원의 단순한 작업이었던 덕에 많은 사람이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는 나름의 깨달음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래픽 작업 과정에서 나눈 행복한 순간순간을 기억하기에 그 누군가가 외부자의 시선으로 던진 피상적인 비평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단지 가끔은 비평이 결과와 현상의 표면만 평가하는 건 아닌가하고 스치듯이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작고 놀라운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관리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 걱정이었는데, 어느 날 보니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전정을 하고 계셔서 다가가 물어보았다. “밥퍼에서 관리를 부탁했나요” “아니, 내가 여기서 받은 게 많으니 기쁜 마음으로 그냥 하는 거지.” 이 할아버지는 그렇게 삼 년이 지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밥숲의 정원사가 되어 있었다. 밥숲은 처음 설계가의 상상 속에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정원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도, 또 우리에게도 봄은 소중하다.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 건축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미국Stephen Stimson Landscape Architects와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디자인 로직에서 실장으로 일했으며, 국내외 다양한 스케일의 조경 설계를 진행해왔다.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과 커뮤니티의 변화가 가지는 시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느슨한 설계 집단 스튜디오 테라의 대표로서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 김아연[email protected]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스튜디오 테라 대표
  •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마크 풀러 WET 대표
    세계 수경 시설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 WETWater Entertainment Technologies. 라스베이거스의 벨라지오 분수Bellagio Fountain를 두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공공 엔터테인먼트 작품the greatest single piece of public entertainment on planet Earth”이라고 극찬했다. 솔트레이크의 작업들, 소치 올림픽의 성화 점화 시설,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의 분수, 그리고 여수세계박람회에 이르기까지 최근 화제가 된 인상적인 물의 풍경들은 알고 보면 모두 WET의 작품이다. 회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뉴욕에서도 현대미술관MoMA 조각 정원의 분수에서부터 콜럼버스서클Columbus Circle, 링컨 센터의 렙슨 파운틴Revson Fountain, 심지어 록펠러 센터 선큰 플라자의 프로메테우스상 분수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WET의 작업을 확인할 수 있다. 조경인의 뇌리에 각인된 댄 카일리 Dan Kiley의 역작, 텍사스주 댈러스의 파운틴 플레이스Fountain Place는 WET의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WET은 ‘가장 혁신적인 50대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60개가 넘는 특허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WET은 하나의 수경 전문 회사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진보적이며 선구적인 디자인·연구집단이다. WET은 포장 면에 삽입된 분수를 발명했으며, 벨라지오 분수를 위한 발명품인 물대포-shooters, 압축 공기를 이용해 일시에 물을 쏘는 방식으로서 스타카토 부분에서 등 장-와 새로운 형태의 분사 노즐인 오어스맨-oarsmen,레가토 부분에서 물방울을 분사해 무희들의 움직임과 같이 우아하고 점진적인 효과를 준다-은 WET의 간판 기술이다. 라미나 플로우laminar flow라는 유체역학적 원리를 이용한 에프콧센터Epcot Center의 청개구리 분수Leapfrog fountain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팬을 거느린 고전 작품이다. 안무가 케니 오르테가Kenny Ortega와 협업해 사람의 실제 움직임과 동일한 템포와 동선을 재현하는 가 하면,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에서는 불과 얼음을 이용한 분수를 선보이는 등 WET의 작업에는 항상 세계최초,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83년, 이 놀라운 기술혁신 집단을 설립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마크 풀러. 자신의 직함, CEO를 Chief Excellence Officer라 재정의하는 그는 단순히 디자인 업체의 대표가 아니라 WET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산업을 개척한 인물이며 ‘수경’ 분야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도시 환경에서 물을 보는 시각 자체를 바꾼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품을 묘사하는데 ‘분수’라는 어휘는 옹졸하고 버겁다. WET이 만드는 수 공간의 규모와 비전은 ‘하나의 장소’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고 개발 사업과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정의하는 경관적 스케일로 훌쩍 도약했다. 마크 풀러는 월트 디즈니사의 이매지니어imagineer로 잠시 근무한 후, 두 명의 디즈니 동료와 함께 WET을 창립했다. 지금까지의 분수가 대개 조각이나 조형물이 중심이 되고 물의 흐름은 하나의 배경 역할에 그쳤던 점을 뒤집어, 그는 물 자체가 조각이 되는 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물에 대한 마크 풀러의 관찰과 철학은 독특하고 재미있다. 그는 물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물을 사랑한다. 하지만 물은 동시에 두려운 것이다. 우리 마음의 이면에는 물이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잠재의식이 있다. 고전 문학의 서사 구조와 마찬가지다. 내 인생의 유일한 사랑이, 곧 나를 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물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있음에 고마움을 느끼도록 만들고 싶다. 아무리 험한 날을 겪었다 해도 하나의 분수 앞에서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도록…”이라고 말한다. WET에는 아웃소싱을 위한 해외 공장이 없다. 긴밀한 대화, 민첩한 움직임, 품질에 대한 전적인 통제가 곧 그들이 말하는 경쟁력이다. 마크 풀러는 이제 가장 중 대한 발명은 수많은 분야가 한데 모여 함께 고민해야만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디자이너들에게 “주어진 역할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 세상의 많은 일은 당신이 배운 것과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 볼 때에만 비로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던지는 메시지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 [공간 공감] 책 테마파크
    설계나 공간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공간 공감’답사 대상지를 매월 선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토론이 벌어질 만한 장소를 많이 알지 못하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꽤나 디테일한 공간 담론이 펼쳐질 만큼 디자인의 수준이 높은 공공 공간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지난 일곱 번의 연재를 살펴보아도 대상지의 절반 이상이 공공의 접근이 가능한 민간 필지다. 대학로, 서울시립대학교 캠퍼스, 연남교 교차로는 적극적으로 디자인된 공간이라기보다는 개성 있는 도시 공간이라는 이유로 선택된 장소였다. 공공에서 발주하는 오픈스페이스가 양질의 이미지를 구현하기 힘든 데는 다양한 이유가 얽혀있을 것이다. 적정 예산, 설계 감각, 시공 능력, 갑의 안목 등이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데, 이중 하나라도 빠지면 공간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하향하게 된다. 아무래도 일사불란한 기획이 가능한 민간 프로젝트에 비해 네 항목 간의 균형을 갖추기 힘든 공공 프로젝트는 항상 풀기 어려운 숙제로 인지된다. 같은 수준으로 구현되었다면 공공 프로젝트가 더 많은 칭찬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공 프로젝트의 질적 향상을 염원하면서 이번 글에서 다룰 대상지는 분당에 위치한 ‘책 테마파크’다. 굳이 말하자면 본 연재에서 디자인을 중심에 놓고 논의를 펼치는 ‘첫 번째’ 공공 발주 프로젝트인 셈이다. 율동공원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책 테마파크는 경기문화재단이 기획한 공모전을 거쳐 2005년에 준공되었으며, 현재는 성남문화재단이 관리하고 있는 문화 시설이다. 당선안 선정 당시 유명 화가가 공모전의 설계를 주도했다고 해서 이슈가 되었던 프로젝트다. 완공 이후 10년 가까이 지났으니 나무도 많이 자랐고, 주변의 경관과 자연스럽게 동화될 정도로 안정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우리 중 개장 초기에 와 보았던 멤버도 있었지만 절반은 첫 방문이었다. 사선을 첫 인상으로 드러내는 건축의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면 철판과 화강석 판석을 활용한 부조를 감상하면서 건물의 옥상부에 다다를 수 있다. 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지형적 건축에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야외 공연장이 입지하고 있는데, 도서관이 나선 스타일로 돌출되어 있다면 야외 공연장은 반대로 함몰되어 대비를 이룬다. 이 두 시설은 지하 레벨에서는 통로로, 지상부에서는 잔디 마운딩으로 연결되어 있다. 넓고 완만한 계곡 지형에 입지하고 있는 책 테마파크는 도서관과 야외 공연장, 책형상의 수경 시설에 이를 때까지 천천히 상승하다가 상부에서는 성남 저수지 방향을 내려다보는 풍광을 제공한다. 이 뷰를 보면서 도서관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도서관의 전면 입구와 지형을 활용한 선큰 광장을 만나게 된다. 지형, 파사드, 야외 스탠드 등으로 위요된 적절한 규모의 광장은 건물 내의 프로그램과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유적지를 연상시키는 입지와 선명한 기하학적 특징을 지니는 책 테마파크는 특징이 뚜렷한 공공 공간임에 틀림없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 일상의 비일상화
    공모전 2007년 여름,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실무를 시작했을 때다. 뉴욕 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두는 단연 거버너스 아일랜드 공원 및 오픈스페이스 공모전이었다. 29개 팀 중 자격을 심사해 선발된 최정예 5개 팀은 그 이름만으로도 큰 기대를 갖게 했다. 이들의 설계안이 일반에게 공개되었을 때 사실 많은 사람들은 JCFO의 ‘Mollusk’가 선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콘셉트 자체도 자연과 생태를 강조해 감성적이었지만, JCFO 특유의 뛰어난 그래픽과 표현기법은 많은 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프레시킬스, 하이라인에 이어, 센트럴파크 이래로 뉴욕의 대표적인 공원 공모전을 모두 휩쓸겠다는 제임스 코너James Corner의 야심(!)이 대단하다는 소문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러나 결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사실 늘 그렇듯이- 저 멀리서 나무자전거를 타고 등장한 네덜란드인에게 우승의 영광이 돌아갔다. 마치 17세기 초반, 거버너스 아일랜드에 네덜란드인이 들어와 원주민을 몰아냈던 그때처럼. 이 네덜란드인 아드리안 구즈Adriaan Geuze와 West 8 컨소시엄의 공모전 설계안을 보면 상당히 과격하다. 지금은 네 개의 언덕으로 줄어들었지만 공모전에서는 아일랜드 전체에 걸쳐 크고 작은 언덕을 제안했다. 건물과 연계한 언덕도 있고 자유의 여신상처럼 그 내부 공간을 통해 올라가는 언덕도 있다. 가장 높은 언덕의 높이는 약 55m에 달하고 어떤 언덕은 꼭대기에서 낚시를 하는 등 공모전 콘셉트로 재미는 있지만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의문이 들게 하는 그런 설계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est 8의 안이 당선된 이유는 콘셉트 자체가 상당히 단순하고 도시 맥락에 맞는 디자인으로 워터프런트의 활성화라는 발주처의 기대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2007년 12월 뉴욕시장실의 보도 자료를 보면 당선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뉴욕 항에 위치한 섬이라는 측면에서의 거버너스 아일랜드를 잘 반영했고, 건물 잔해를 재활용해 뉴욕 항의 드라마틱한 경관을 360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언덕을 제안한 것이 환경친화적이다. 무료 자전거 프로그램을 도입해 시민들이 섬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사실 대단한 것은 없다. 과격하게 제안한 부분에 손을 좀 대어도 전체 콘셉트를 유지하는 데 무리 없는 안을 발주처에서 현명하게 선정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의 요구 파악 거버너스 아일랜드는 올해 5월 공식적으로 일반에 개방되었다. 2013년 가을, 블룸버그 시장이 퇴임 전 리본을 커팅한 것을 공식 개장이라고 보더라도 공모전에서 당선작을 선정하고서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전체 공원이 아니라 1단계 공원(약 30에이커)을 마무리 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물론 기본설계의 대상지는 공원 전체였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워낙 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곳이었고, 또 사람들이 사용하던 당시에도 군사 목적으로 이용되던 곳이기 때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오픈스페이스로의 변형이 쉽지만은 않았다. 공원의 상수도를 다시 연결해야 했고 낙후된 호안을 개선하는 등 아일랜드 내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이런 하드웨어적인 부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간을 투자한 일은 잠재 이용자들에게 공원을 홍보하고 이들의 요구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공모전이 시행된 2007년 여름부터 매해 거버너스 아일랜드자체를 일반 시민에게 개방했다. 사람들에게 잊힌 공간 그 자체를 각인시키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고, 아일랜드에 산재한 공개 공지에 다양한 예술 및 스포츠 프로그램을 유치해 사람들이 공원에서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 또 다른 이유였다. 시민들은 무료 페리를 타고 아일랜드에 들어와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즐기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공원에 노출되면서 공원 디자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시민과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은 시민 공청회, 워크숍, 디자인 샤렛, 전시 등 오프라인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블로그, 홈페이지 등 온라인을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경험을 통해 발주처는 공원의 홍보 및 운영, 관리방안에 관한 아이디어를 축적할 수 있었고 설계자는 시민이 원하는 진정한 설계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방문객은 매해 늘어났다. 2008년 여름 아일랜드를 방문한 방문객은 12만6천 명이었지만 2010년에 방문객은 44만 3천 명으로 늘었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사전 준비없이 완성된 공원을 개장했을 때 섬이라는 약점이 있는 이 공간에 이 만큼의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올 여름, 새로운 공원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던 수많은 시민들이 이질감 없이 아일랜드에 녹아들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다년간에 걸친 공원 운영의 노하우와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공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최혜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AECOM(전 EDAW)을 거쳐 West 8 뉴욕 오피스에서 거버너스 아일랜드 프로젝트를 담당해왔다.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에서 West 8 + 이로재 팀의 당선을 이끌면서 현재 프로젝트 리더로 일하고 있으며,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 친환경건축물 인증제 공인 전문가(LEED AP)이다.
  • [칼럼] 피할 수 없는 인문학과 종이책의 쇠퇴
    출판업은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고들 한다. 아마 올해보다 내년이, 내년보다 그 후년이 더 나빠질 게 분명하니 당분간은 더 들어야 할 이야기다. 우리의 희망과 무관하게, 종이와 활자라는 매체를 통한 지식의 유통과 습득은 거대하면서도 급속한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다만 우리가 어느 위치에서서 이 변화를 바라보고 있느냐가 관건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애도(또는 환영)는 잠시 접어두고 인쇄매체의 쇠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물어보아야 할 때다. 하이데거는 1946년에 쓴 ‘휴머니즘에 관한 편지’라는 글에서 휴머니즘이 처음 출현한 때를 로마공화정이라고 했다. 그리스인으로부터 전해 받은 교양(paideia, 독일어로는 Bildung)을 로마의 덕으로 고양시킨 시기를 시작으로 보는 것이다. 15세기 르네상스의 인문학(휴머니즘)이 고대 그리스 로마인이 남긴 글과 유산에 대한 화답이라는 것이 하이데거의 설명이다. 르네상스를 고전의 부활로 아는 우리의 상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은 인문학과한 운명이었다. 사실 르네상스 이래 인문학은 휴머니즘, 달리 말해 고전을 통해 인간성을 고취하고 더 나은 인간을 만들고자 한 거대한 기획이나 다름없었다. 책은 이를 실현하는 최고의 도구였다. 보다 나은 정치 체제를 만들어 인류 일반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열망이 아니라면 우리가 무엇하러 플라톤과 루소, 홉스, 그리고 마르크스를 읽겠는가? 같은 언어를 쓰고 비슷한 감성과 정서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꿈꾸게 하는 데 소설과 책 이상으로 효율적인 것이 무엇이 있었던가? 인간의 삶과 관계하기에 역시 인문학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건축과 조경 쪽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알베르티부터 르 코르뷔지에에 이르기까지 보다 나은 공간과 환경을 향한 욕망이 아니었다면 저 책들이 쓰이기나 했겠는가? 그런데 하이데거는 고대인과의 우정 어린 대화로 미래를 꿈꿔온 인문학이 이제 한계에 달했다고 진단한다. 이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인 독일 철학자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인문학(책)으로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계획이 실패했음이 명백해진 지금 우생학이 그 역할을 하면 왜 안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기실, 인문학의 프로젝트가 끝난 자리를 기술과 생리학이 대신하는 게 현재 상황이다. MIT 미디어랩을 만들고 디지털 문명을 선도해온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는 최근 강의에서 옛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십 년 전 등장한 최초의 터치스크린, 태블릿 등을 보여주며 지금의 디지털 혁신은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회고담만 늘어놓고 강연을 끝내자 조바심이 난 사회자가 무대로 올라가 질문을 던진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 까요” 네그로폰테는 지식 습득 방식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머뭇거리면서도 확신에 차서 이야기한다. 셰익스피어를 힘들게 읽어서 아는 게 아니라 먹거나 몸에 주입해서 단박에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한국의 사정도 이와 유사하다. 많은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 출판 시장을 지탱하는 세대는 40대 이상이다(남성의 비율이 더 높다). 실용서나 특화된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책의 성패는 40대 이상의 구매에 달려 있다. 이는 단순히 한국 사회가 노령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지금 40대 이상은 80년대 학번과 90년대 초반 학번들이다. 한때 책을 믿었던 이들이다. 출판사 문 앞으로 대형 서점 트럭이 달려와 줄을 서서 책을 실어가던 사회과학 서적의 전성기를 경험했던 이들이다. 책을 통한 계몽과 사회 변혁을 꿈꾸었던 경험은 이후에도 꾸준히 책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관심사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가장 책을 열성적으로 사주는 세대다. 유아 시장의 급속한 확대와 축소, 청소년 시장의 탄생 등은 386세대 자녀의 성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나 이 열정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 이후 세대에게 책은 절대적 권위와 정보의 유일한 원천이 아니라 수많은 매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세대는 또한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체득했다. 한국에서 출판 동향은 세대론과 나란히 간다. 전자책이냐 종이책이냐를 떠나 책을 읽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외부적 환경의 변화를 논하기 이전에― 저수많은 인문사회과학 책이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고담준론과 사회과학의 치밀한 분석으로 우리는 사회의 교양을 높이기는커녕 도처에서 생겨나는 괴물조차 막지 못했다. 지금 국내에서 책의 위기는 87년 체제를 이끌어낸 열망이 소진되고 냉소와 허무만이 남았음을 알리는 징표다. 플라톤과 루소는 우리의 정치를 조금도 나아지게 하지 못하고, 마르크스는 우리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무기력하며, 100만 부나 팔린 샌델Michael J.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 사회를 정의롭게 하는 데 아무런 힘이 없다. 책이 말하는 이상과 발을 딛고선 현실이 도무지 만나지 않을 것 같은데 책을 읽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실제 삶을 바꾸는 데 아무런 힘도 없는 인문학이 자기계발과 과시용 지식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위기를 일찌감치 감지한 이들이 인문학의 실패를 말했을 때부터 책의 쇠퇴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인쇄 매체는 영상 매체에 자리를 넘겨주었다고 레지스 드브레Régis Debray가 일찌감치 진단하지 않았던가. 이제 누구도 인문학-종이책-자국어-계몽이라는 패러다임이 쇠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종이책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음원의 시대를 맞아 LP가 역설적으로 부활한 것처럼, 물성의 힘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사할 때마다 책이 제일 무겁고 부피가 크다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책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읽고 쓰고 고뇌하고 떠들며 책을 ‘만드는’ 일을 사랑한다. 이 사랑이 골방에 파묻힌 아날로그 애호가의 페티시가 아니라 광장에 나가 다른 이들과 지식을 나누는 것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이 물음에 답하기란 지극히 어려울 것이고, 모두에게 유용한 하나의 답도 없을 것이다. 다만 출판, 잡지, 신문 등에 관여하는 모든 이들이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될 것은 분명하다. 책을 사랑하는 업보를 지닌 모든 이의 건투를 빈다. 박정현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2012년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수상했다. 『에스콰이어』, 「한국일보」 등에 칼럼을 기고하며 도서출판 마티의 편집장으로 일하고있다. ‘1980년대 한국 건축의 담론 구성’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 [에디토리얼]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리빌드 바이 디자인’을 필두로 한 지난 호의 콘텐츠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피드백을 주셨다. 편집자에게는 독자의 반응 자체가 그 어떤 영양제나 피로회복제보다 힘이 된다. 이번 호에는 피터 워커, 조지 하그리브스, 아드리안 구즈 등 스타 조경가들의 근작이 한꺼번에 실리지만, 편집부가 두 달 넘게 준비해 온 특집은 정작 ‘책’ 이야기다. 초여름의 어느 평화로운 편집회의에서 책으로 가을을 열자는 의견을 누군가가 던졌고, 기왕이면 편집부 모두가 참여하는 책 기획으로 엮어보자는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매주 아이디어가 백출했다. 제목 후보로 활자로 지어진 경관, 활자와 경관 사이, 이미지의 숲에서 활자 산책을 떠나다, 조경-책으로 말하다, 여기 129권의 책이 있다, 텍스트의 숲 속으로 등 갖가지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용기백배하여, 그래도 책을 읽고 펴내는 이유, 그들이 책을 쓰는 까닭, 나는 이런 독자를 원한다, 나는 이런 책을 원한다, 책의 101가지 활용법, 서점에서 조경 서적을 들추고 있는 당신에게, 읽어야 사는 여자(남자), 이런 책은 왜 없을까 등 정말 다양한 기획 꼭지를 수차례 구상하고 검토했다. 그러나, 김현의 책 제목처럼 ‘행복한 책읽기’를 꿈꾸며 출발했지만, 역시 책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그렇듯 스트레스의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었다. 기획안이 표류를 거듭했고, 어느 한여름 오후의 편집회의에서는 마침내 책 특집이 백지화되기도 했다. 마감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금, 한 기자가 허공에 대고 이렇게 독백하는 게 들린다. “당분간은 책을 읽지 못할 것 같아요.” 사실 책 읽기는 일상적인 것 같지만 가장 비일상적인 행위 중 하나다. 이미지, 디지털, SNS와 같은 이 시대의 문화 풍경 때문에 책 읽기가 종말을 맞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책은 힘든 업보와도 같은 숙제였다. 시대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우리 대부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항상 책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의무는 모두 싫기 마련인데 독서도 의무처럼 어깨를 누른다. 권장 도서 리스트를 보면 숨이 멎을 것 같다. 남들이 읽은 책들을 나만 읽지 않은 것 같아 늘 마음이 무겁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보면 두통이 생긴다. 이런 맥락에서 피에르 바야르Pierre Bayard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의무나 강요가 아닌 자유로운 읽기를 통해 책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주는 통쾌한 책이다. 언뜻 보면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러나 위트 있는 이 책의 저자는 그런 값싼 테크닉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 과연 책을 읽었다는 것은 무엇이며 읽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든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그러면서도 책과 지식과 진실을 숭상해온 전통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지켜나갈 수 있는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는 바야르의 논지는 곧 “불완전한 독서와 비非독서를 포함한 온갖 읽기 방식의 창조적 국면”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읽었다고 생각하는 책은 사실은 다른 사람들의 책들과는 무관한, 우리의 상상에 의해 다시 손질된 텍스트 조각들의 잡다한 축적인 것이다.”(p.122) 그렇다면 김현과 같은 ‘행복한 책 읽기’도 남의 일만은 아니지 않을까? 이번 호를 통해 독자들이 책의 중압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행복한 책 읽기’를 꿈꿀 수 있다면 우리 편집부 모두의 두 달간의 스트레스도 날아갈 것 같다. ‘읽다’ 외에 책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동사는 무엇일까. 물론 ‘쓰다’이겠지만, 책 쓰는 일은 책 읽는 일 이상으로 하고 싶지만 하기 어려운 일이다. 책과 관련된 더 즐거운 행위는 없을까. ‘만들다’가 있다. 책 만드는 일은 읽고 쓰는 것 이상으로 복합적인 과정과 창조적인 상상을 동반하는, 아주 어렵지만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편집과 인쇄와 제책으로 대별되는 책 만들기는 근대 이후 하나의 전문 영역이 되었지만, 아직도 직접 그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가며 자신만의 책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8월 초, 우리 잡지 편집위원이기도 한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이 서류봉투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가 손수 만든 달력 책이 들어있었다. 7월호의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 비평 글의 주석 귀퉁이에 “그는 대학원 시절 피터 워커의 작품 사진으로 수제 달력을 만들어 지인 100명에게 돌리기까지 했다”고 쓴 것을 보고, 바로 그 문제의 1993년 달력 책을 선물해준 것이다. 한정판 책의 마지막 남은 한 권, 매월 피터 워커의 대표작들이 하나씩 박승진의 수제 책 디자인 모티브가 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책을 만드는 일도 의미 있지만, 아름다운 책을 보관하고 소장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빌리다’도 있음을 깨닫는다. 7월 말에는 10월호부터 시작될 새로운 ‘조경가의 서재’ 필자와의 협의를 위해 남기준 편집장과 함께 허대영 소장(스튜디오 테라)을 만났다. 영원한 문학청년인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책 이야기로 불꽃을 튀긴다. 나와 허대영 소장 사이에는 단골 메뉴가 하나 있다. 대학원 시절, 내가 그의 책을 빌려가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스토리다. 첫 장에 사인만 하고 채 펼쳐보지도 않은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을 포스트잇에 ‘빌려간다’고 써놓고 집어간 지 어언 20년이란다. 다음엔 꼭 반납하겠다고 미루고 미루어왔지만 사실 나는 또 약속을 어길 것 같다. 책의 첫 문장 “그해 겨울 런던의 히스로우 공항에 도착해 피웠던 첫 담배의 맛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허 소장과 만난 다음날 아침, 한통의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내가 9월호 에디토리얼을 이렇게 끝맺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이십대였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달콤한 나의 도시
    퇴근길, 『환경과조경』 사옥이 자리 잡고 있는 파주출판도시에서 버스를 타고 자유로를 달려 합정역에 내린다. 그리곤 서너 정거장 남짓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향한다. 날씨 좋은 요즘 그 길가는 각양각색의 가게에서 내놓은 테이블로 가득하다. 나는 폴딩도어를 열어젖히고 고기를 굽고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쳐가며 꿋꿋하게 길을 걷는다. ‘이번 마감이 끝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전통 시장이 있는 길을 누비기도 하고, 구석구석에 있는 서점이나 카페를 눈여겨보며 나름의 품평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두건을 쓰고 연탄불에 황태를 굽고 있는 젊은 가게 주인을 발견하면 집에 거의 다다른 것이다. 간혹 ‘저 주인은 나를 기억할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른 후 집으로 들어간다. 생활의 터전을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동네로 옮기고 보니, 나의 일상적 즐거움이 ‘동네 생활’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부쩍 강렬해졌다. 이는 과거의 골목길과 그에 얽혀있는 끈끈한 공동체에 대한 향수와는 또 다른 정서다. 이런(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아닌) 동네의 매력은 걸으며 구경하는 재미와 곳곳에서 소비하는 소소한 즐거움에 있다. 나의 자잘한 일상의 팔 할은 집 밖의 여러 상점과 카페, 세탁소와 공원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들은 모두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도시 생활의 매력은 상업 공간과 공공 영역이 맞물리는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란 생각이 체감으로 더욱 공고해지는 요즘이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7. 29~9. 28)을 개최했다. ‘이상향理想鄕’을 주제로 한 동아시아 산수화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였다. 중국 호남성 동정호 일대의 절경을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와 주자의 은거처를 이상화하여 그린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파생된 ‘도원도桃源圖’ 등이 전시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이 실경이든 상상 속의 경관이든 자연(산수)의 모습이 이상향으로 제시된다. 이런 회화 작품 가운데 개인적인 하이라이트는 단연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였다. 마치 추억의 그림인 ‘윌리를 찾아라’를 보는 듯 8폭의 병풍 가득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태평성시도’에는 무려 2,12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18세기에 조선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에는 성안 도시의 번창한 상점과 화려한 건물, 각종 행렬과 놀이, 작업 활동이 묘사되어 있다. 연못과 화분이 들어찬 주택 정원이 있는가하면, 각종 꽃이나 포목 등을 파는 상점이 있고,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천 준설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마디로 도시 생활의 활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이러한 건물과 사람들의 복식이 조선의 것은 아니다. ‘태평성시도’가 최초로 공개된 것은 2002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시대 풍속화’전에서였는데, 당시에도 작품명을 어떻게 붙일지, 과연 조선의 화가가 그린 것은 맞는지 등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이수미의 연구2에 따르면 이 ‘태평성시도’는 중국 도성 내 번화한 정경을 묘사한 그림인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명대본明代本과 중국의 풍속화인 ‘패문재경직도佩文齋耕織圖’의 도상을 조선의 상황과 생활양식에 맞게 변형하고, 중국에 다녀온 사신들이 전해온 첨단 문물에 대한 정보가 반영되어 이상적인 사회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그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형식과 주제를 가진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비록 중국의 도시이기는 하지만 “현실과 차원을 달리하는 별도의 세상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목표로서의 이상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태평성시도’에는 상업이 발달하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심이 넘실대는 등 변화로 꿈틀대는 18세기 조선의 도시적 삶에 대한 기대가 드러난다. 은거隱居나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아니라 소비와 문화의 측면이 강조된, 즉 도시성(도시적 삶)이 극대화된 공간으로서 도시가 이상향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경훈 교수(국민대학교 건축대학)는 저서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3에서 ‘걷기’야말로 도시성의 총체이며, 인도와 거리를 메우고 있는 상점이야말로 가장 도시적이며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고 역설한다. 신사동 가로수길을 보자. 이 거리에는 독특하고 세련된 상품을 진열한 상점과 소위 핫한 카페들이 즐비하다. “상점의 쇼윈도는 교류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데다, 무엇보다 ‘걷게 하는’ 도시의 장치로서 의미가 크다.”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한 깊은 애정과 찬사를 보내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도 “도시에서만 가능한 전형적인 삶을 포착하고 스타일을 찾아냈다. 주인공들은 걸어서 출근하고, 걸으며 사랑하고, 거리에서 이별하거나 옛 애인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리고 거의 매회 주말 아침에 모여서 브런치를 즐기며 서로의 지난 한 주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한국의 도시, 특히 서울이 도시성을 갖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는 까닭은 상업적 건축을 배격하는 근엄하고 엉뚱한 체면과 현실적이지 않은 청렴 의식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영국의 문화이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시골과 도시The country and the city』4에서 베르길리우스에서 현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목가시에서 과학소설까지를 망라하는 다양한 시대의 방대한 텍스트들이 대체로 시골을 진정한 공동체의 모델로 설정하고 있으며, 또 그 공동체가 ‘이제 막’ 사라졌음을 한탄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렇지만 이 방대한 텍스트들이 소멸을 아쉬워하는 공동체는 언제 어디서도 실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자연으로’를 외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공동체의 미덕을 모르는 덜 된 인간쯤으로 취급받는 것도 불편하다. 아마도 그래서 이상향을 주제로 한 전시회에서 만난 ‘태평성시도’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그림은 도시의 삶이 결코 저열하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의 이상향은 도시다.
  • [시네마 스케이프]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정원, 인간의 조건에 대하여
    이제는 빛바랜 추억이 된 어린 시절, 어머니는 공들여 정원을 가꾸셨고 아버지와 동생은 집안을 휘젓고 다니던 강아지에게 애정을 듬뿍 쏟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정원에 제대로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강아지를 안아준 기억도 없다. 아파트로 이사한 후,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못다 한 정원의 꿈을 펼치셨지만 나는 여전히 물 줄 생각도 않는 무심한 딸이었다. 조경학과를 꽃을 가꾸는 과로 아시던 어머니는 대학 때 꽃꽂이를 배우게 하셨다. 지나친 자녀 걱정이 취미였던 그녀는 정원에 관심 없던 딸이 학업에 뒤처질까 봐 일종의 과외 공부를 시키셨던 것이다. 하지만 화병에 꽃을 보기 좋게 담아내는 것과 생명이 있는 식물이 잘 자라도록 심고 돌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오랫동안 화분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서 “저런 애가 어떻게 조경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네”라는 어머니의 염려를 달고 사는 딸이었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 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라는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글을 인용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요 모티브를 가져와 한 남자가 기억을 소환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 살 때 부모를 한꺼번에 잃은 폴은 그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피아노를 치며 두 이모와 살아간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 4층 언저리(4층 약간 안 되는 계단 중간에 출입문이 있음)에 사는 프루스트 부인을 알게 되고, 그녀가 주는 차를 마시면서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찾아가게 된다. 삶이 매번 아름답지 않은 것처럼 기억은 독약이 되기도 하고 진정제가 되기도 한다. 영화의 원제는 ‘Attila Marcel’로 폴의 아버지 이름이다. 해외 포스터는 아버지의 이름이 크게 적힌 광고를 쳐다보는 장면을 담고 있다. 기억의 퍼즐이 맞춰지면서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던 아버지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되고, 첫 장면에서 아버지가 하던 대사를 마지막 장면에서 폴이 반복하며 영화가 끝난다.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민낯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것이다. 영화는 무의식과 현실을 넘나드는 다소 철학적인 메시지를 무겁게 다루기보다는 환상적인 색감과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 문학적인 대사와 함께 한편의 동화처럼 따뜻하게 그린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한겨레 영화평론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전공으로 삼아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극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그것이 주는 감동과 함께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풍경의 귀환
    #27 산업 자연의 낭만 - 엠셔 지방의 풍경 ‘반지의 제왕’ 삼부작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이 후속편으로 연작 ‘호빗’을 만들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호빗족의 빌보배긴스는 키 작은 종족 드베르그들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 무시무시한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긴 보물을 찾기 위해 지하 왕국에 잠입한다는 이야기다. 드베르그족이 건설한 지하 왕국의 엄청난 부는 그들이 캐내는 지하자원에서 유래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연작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반지와 라인 강의 보물을 만든 장인 알베리히 역시 몸집은 작지만 힘세며 재주가 뛰어난 종족, ‘니벨룽겐’에 속한다. 백설공주 동화에 등장하는 난쟁이들 역시 광산에서 일했다. 이렇듯 유럽 신화에서 키 작은 종족 혹은 난쟁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 이들은 인류의 광산자원 이용의 역사를 미화한 것에서 유래한다. 땅을 파고 들어가 어두운 곳에서 살며 금과 은, 구리, 철, 석탄을 캐내어 인류 문명을 번성케 한 무리들. 힘들게 캐낸 시커먼 흙더미와 돌덩어리에서 빛나는 금관을 만들어 왕의 머리를 장식하고, 철을 연마해 무기를 만들어 무사의 손에 쥐여준 장본인들. 이들은 국가 체제를 확립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다만 오랜 지하의 삶으로 어느새 모습이 바뀌고 허리가 굽어 난쟁이가 되었고, 그로 인해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라인 강과도 관련이 깊다. 전설 속에서는 라인 강바닥에 깊이 묻혀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보물을 만들었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소위 ‘라인 강의 기적’을 일으킨 주역으로서 루르 지방의 도시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라인강이 모든 공적을 혼자 차지하긴 했지만 사실 라인 강과 라인 강의 지류인 엠셔Emscher 강 사이에 있는 철광과 탄광지대가 독일 경제 부흥의 기반이 되어 주었다. 이 지역이 바로 루르Ruhr 지방이다. 엠셔 강가에서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어 연명하던 작은 마을들이 산업혁명 이후 시작된 철강 산업과 철도 사업의 붐을 타고 수십 년 사이에 산업 도시로 급성장했다. 뒤스부르크, 에센, 보쿰, 도르트문트 등 널리 알려진 산업 도시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성장이 빨랐던 만큼 하강세도 빨랐다. 1950년대 말에 시작된 석탄 위기로 탄광들이 하나 둘 폐쇄되기 시작했다. 철강 산업은 1980년대까지 유지되었으나 그 역시 산업 구조의 변화로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철광과 탄광은 1980년대에 거의 폐쇄되었고 철강 산업 역시 해외로 옮겨가면서 수십 개의 산업체가 문을 닫고 환경 잔해로 남게 되었다. 약 백 년간에 걸친 집중적인 산업 이용으로 루르 지방의 자연 경관은 문자 그대로 안팎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대지진이 지나간 자리처럼 모든 것이 달라져 버린 것이다. 한때 농경문화 경관이 지배하던 곳에 하늘을 찌르는 높은 굴뚝의 스카이라인이 들어섰고, 수십 미터 높이의 산업 건축물과 함께 수백 개의 구덩이와 산이 새로 생겼다. 하천은 더 이상 경관을 적시는 생명줄이 아니었다. 오히려 썩은 물을 흘려보내 자연을 병들게 했다. 루르 지방은 이제 총800km2의 면적, 즉 서울, 수원, 안양을 합친 것보다 조금 더 큰 면적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의 죽어가는 경관을 재생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루르 지방에 존재하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도시들이 모이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정부의 후원을 받아 1989년 4월 1일 엠셔 지방 재생 사업이 발족되었다. 엠셔 지방 재생 사업은 다른 이름으로 ‘세계 건설 박람회 엠셔 파크IBA Emscher Park’라고 불린다. 엠셔 지방 전체가 곧 박람회장이다. 17개의 크고 작은 도시가 참여해 총 120개의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이와 병행하여 기형이 되어 버린 엠셔의 풍경을 서로 연결해 거대한 엠셔 랜드스케이프 파크Emscher Landschaftspark를 조성했다. 엠셔 랜드스케이프 파크는 하나의 공원이 아니라 이십여 개의 지역 공원과 정원을 서로 연결한 공원 네트워크다. 엠셔 재생 사업은 1999년까지 십 년에 걸쳐 재생 사업의 과정과 절차를 세상에 공개하고 많은 토론을 유도해 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중 가장 먼저 완성되었고 널리 알려진 공원이 ‘뒤스부르크-노르트Duisburg-Nord’다. 뒤스부르크-노르트는 피터 라츠Peter Latz라는 조경가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는 말이 있듯 루르 지방의 시급한 과제는 피터 라츠라는 훌륭한 조경가를 낳았다. 그는 지나간 흔적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시간을 두고 상처가 아물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인간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라츠는 마스터플랜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되었다. 그는 “마스터플랜은 자연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1 라츠가 한 일은 우선 폐허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이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의 경관적 잠재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마치 고고학자가 켜켜이 쌓인 유적을 하나씩 들어내듯 그는 산업 폐허의 성격을 분류해냈고 이름을 붙였다.2 썩은 물이 흐르는 배수로와 하수 처리 시설을 합하니 미래의 수 경관이 보였다. 사내 철도 시설이 레일 공원이 되었으며 각종 산업 도로망과 교량을 연결하니 하염없이 긴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되었다. 건물을 그대로 두고 이를 전시장, 공연장으로 명명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 자연’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산업 자연은 단순히 산업 시설의 잔재나 지형 변화로 만들어진 환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 이용으로 인해 더 심각한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지표면의 화학적 성질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 결과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자연’이 형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실제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동식물이 서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앞으로도 인류는 자연을 화학적으로 변형시켜 더 많은 산업 자연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2009년 뮌헨 공과대학 조경학과에 ‘산업 경관과 조경’이라는 학과가 신설되었다.3 엠셔의 풍경처럼 시간이 만들어 놓은 마스터플랜으로 되돌아올 산업 자연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일까.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