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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맥락 무시하기
    맥락의 이름으로 선유도공원, 청계천, 감천문화마을, 한양도성 길, 하늘공원, 서서울호수공원, 북한산 둘레길, 광화문광장, 북서울꿈의 숲, 이화동 벽화마을. 요 근래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다양한 조경 공간들이다. 프로젝트의 성격도 다르고 규모도 다르고 디자인 방식도 전혀 다른 이 공간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얼핏 보면 서로 닮은 구석을 찾기 힘든 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맥락context이다. 요즈음 좋은 디자인이란 곧 맥락을 잘 고려하고 반영한 디자인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화제가 되는 새로운 조경 작품이나 공모전 당선안의 설명을 보면 대상지에 남아있는 지형이 되었든, 인근 마을의 설화가 되었든, 그곳에 찾아오는 철새들이 되었든, 항상 맥락에서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영화를 중간부터 보면 전후 맥락을 모르기 때문에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주변의 맥락과 소통할 수 없는 설계는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좋은 설계는 맥락을 존중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명제가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가 않다. 오랫동안 맥락을 무시하는 태도가 좋은 설계의 당연한 전제였다면 믿겠는가? 그리고 이는 여전히 지금도 유효한 설계의 가치이기도 하다. 맥락이라는 새로운 바람 잠시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 판단은 유보하고 언제부터 맥락을 중심으로 설계의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보자. 맥락이 설계의 중요한 가치로 대두하게 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우리는 설계에서 맥락이 지니는 의미를 편견 없는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날 조짐은 이미 1960년대부터 건축계를 중심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몇몇 선구적인 건축가들의 개별적인 실험에서 시작된 모더니즘은 곧 유럽 전역으로 확장되어 서구의 근대 문명을 대표하는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1930년대 이후에 모더니즘은 국제주의의 이름으로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로 전파되어 건축과 도시는 물론, 인간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편한다. 1960년대는 성기 모더니즘이 건축의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시기였다.1 국제주의, 더 넓게는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적인 건축 운동인 모더니즘이 내세운 가치는 새로움과 보편성이었다. 새로움과 보편성이라는 기치 아래에서 거의 모든 과거의 가치가 부정되고 지역의 특수성은 배격당했다. 이렇게 모더니즘은 거의 반세기 동안 인간의 정주 구조에서 맥락을 철저히 지워왔다. 모더니즘 거장들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1960년대 들어서 새로운 세대의 건축가들은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왔던 모더니즘의 가치관이 만들어낸 결과는 거장들이 꿈꾸어오던 이상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전의 마을과 도시를 구성하던 골목들은 그리드 형태의 차도로 정리되었고 자연스럽게 거리에서 사람들의 소리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지붕의 모양을 보면 어느 동네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특색 있던 건물 대신 지루하게 반복되는 콘크리트 박스형 건축물들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공간이 되었다. 모더니즘이 유일한 건축적 양식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이를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비서구권 건축가들의 괴리감은 더욱 컸다. 유럽과 미국의 젊은 건축가들 역시 모더니즘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지만 모더니즘은 최소한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양식이었다. 그러나 제3세계의 건축가들에게 모더니즘은 서구에서 수입된, 어쩌면 강요되었을 지도 모르는 이질적인 양식이었다. 1960년대 정치적으로 과거의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하고 있을 무렵 오히려 그들의 도시와 삶은 다시 근대화와 국제화라는 명분으로 종속되기 시작했다. 모더니즘은 그들의 맥락을 파괴하는 데 가장 선두에 서있었다.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겨울의 왕국인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왜 지중해의 이상을 담은 수평창과 평지붕을 사용해야 하는가? 누구보다 강렬한 태양과 색채를 가진 멕시코에서 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회색과 백색의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가? 그동안 목조로 건물을 지어오던 일본에서 콘크리트와 철골의 건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새로운 그들의 건축을 시도한다.2 맥락이 다시 중요해진다. 그리고 완전한 제국을 완성했다고 자부했던 성기 모더니즘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새로움과 보편성보다 정체성의 기반이 되는 맥락을 중요시한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들은 이후 이론가들에 의해 맥락주의contextualism, 혹은 지역주의regionalism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된다.3 그리고 이 새로운 흐름은 모더니즘에 대한 전면적인 전쟁이 선포되었을 때 선봉에 서게 된다. 1970년대에 들어서게 되면 모더니즘이 끝났다는 선언은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이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제 거장들이 떠난 모더니즘의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연합 전선을 구성했던 후계자들은 모더니즘의 가치를 대체할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해야했다. 이때 역사, 의미, 상황, 장소성, 지역성, 정체성 같이 모더니즘이 부정했던 가치들을 포괄하는 맥락의 개념이 전면에 등장한다. 맥락의 대두와 함께 조경의 가치가 새삼스럽게 주목받기 시작한다.4 솔직히 말하자면 20세기 전반부에서 조경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근대 도시와 함께 나타난 새로운 공원이 근대적 의미의 조경이 형성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는 했지만, 인간의 정주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급진적인 변화의 과정에서 조경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조경은 도시와 괴리된 낙원의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그 모든 형태의 변화에 대한 변명거리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뿐이었다. 공원은 극도로 열악해져만 가는 산업도시에 대한 구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면죄부를 주기도 했으며, 모더니즘이 과거의 맥락을 모조리 파괴해가는 과정에서도 이를 정당화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다가 맥락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는 과정에서 경관은 모더니즘이 장악했던 반세기 동안 잃어버린 가치를 복원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가 된다. 왜냐하면 맥락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경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관을 만드는 조경의 역할 역시 재조명받게 된다.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어바니즘』이 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 [조경가의 서재] 기억 속 서가의 풍경 ‘정조의 상림십경’에 대한 글을 쓰게 된
    이즘은 책은 읽지 않고 음악이나 듣고, 드라마만 보며 산다. 그래서 ‘네 놈이 읽은 책을 뱉어내라’는 죽비를 맞았을 때 궁한 마음에 이십여 년 전에 읽었던, 기억에도 가물거리는 그들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먼저 이해를 구한다. 내 낡은 기억의 통로를 따라가다 혹여 길을 잃더라도 당신은 명주실 되잡고 무사히 빠져나가시길 바란다. 세상에는 무수한 길이 있듯이 책 속에도 수많은 길이 있다. 그리고 어느 길로 접어드는가는 우연과 인연이 만들어낸 운명 같은 일이다. 스치고 지나갔던 옷자락이 나중에 다시 만나 환하게 밝아지는 일은, 책의 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십여 년 전쯤, 짧은 글을 하나 쓴 적이 있다. 사실 그 글은 연속으로 쓸 계획이었는데 한 편만 쓰고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지금 와서 그 글을 어떻게 쓰게 되었을까 되짚어보니 꽤나 오랜시간 적잖은 만남이 거기에 얽혀 있었다. 1984년과 1985년 사이의 어느 날이었을 게다. 자주 가던 다방에서 사람들 틈에 있던 그녀는 ‘그’의 시를 내게 알려주었다. “갈 봄 여름 없이, 처형 받은 세월이었지 / 축제도 화환도 없는 세월이었지…”1로 시작되는 시,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2는 이 숨 막히는 시까지. 폭력과 저항이, 절망만큼이나 희망을 길어 올리던 그 시절을 실험적 언어와 도저한 슬픔으로 그려내던 황지우의 시집을 읽으며 나는 조금씩 성장했고, 그의 네 번째 시집 『게눈 속의 연꽃』에서 ‘산경山經’을 노래했을 때 기꺼이 그를 따라 『산해경山海經』3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와는 그즘에서 헤어지게 됐지만 말이다. 기원전 3~4세기에 쓰여졌다고 추정되는 『산해경』은 크게 ‘산경’과 ‘해경’으로 나뉘는 중국과 그 주변에 대한 상상의 지리서다. 여기에는 상대적으로만 측정 가능한 위치와 상상의 동물, 불가해한 일이 끝없이 펼쳐진다. 지은이도 없이, 오랜 세월 주석만 첨삭되면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동아시아 정신 세계의 한 부분을 그려 낸 책, 그저 이야기로만 듣던 해태며 봉황, 주작이 전부였던 내게 오백 리씩 가면 나타나는 그 많은 동물들이 멸종된 고대 생물로 느껴지는 떨림이었다. 글을 옮긴 정재서는 역자 서문과 그의 책 『동양적인 것의 슬픔』에서 고전이 담고 있는 다의적 함의와 여러 층위의 중첩을 풀어헤치며 “구조의 금간 틈, 차이에 대한 눈뜸은 항상 모든 지배적 언술 체계 내에 존재하는 이항 대립을 의식하는 시각으로부터 발생된다”4고 일깨웠다. 그리고 서구에 의해 타자화 되고, 다시 중국에 의해 타자화 되었던 중국 중심의 세계주의에 대한 독해를 위해 서쪽으로 2,765리 가면 만날 수 있는 사이드Edward W. Said를 불러들였을 때 ‘고조선에서 중화문화권에 속했다고 하는 조선까지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품으며, 예전에 스치며 지나듯 읽었던 먼지 덮인 문학잡지5를 다셔 펼쳐보게 되었다. 이수학은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이원조경에서 4년 동안 일했다. 프랑스 라빌레뜨 건축학교와 고등사회과학대학원이 공동 개설한 ‘정원·경관·지역’ 데으아(D.E.A.) 학위를 했고, 현재 아뜰리에나무를 꾸리고 있다.
  • [그들이 설계하는 법] 태도, 접촉면 경관
    1 사실 기고를 마음먹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조경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설계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기획 의도와 조금 더 먼저 이 길을 가고 있는 선배로서 조경을 시작하는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들려 줄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편집진의 말을 수차례 들었음에도 맘이 내키지 않는 다. 학교를 벗어나 업으로서 조경을 시작한 지 이제 고작 10년 남짓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여전히 헤매고 있는 풋내기 조경가가 지면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부끄럽고 무모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2 “왜 요새 블로그1에 글 안 올리세요? 예전엔 종종 들어갔었는데.” 오랜만에 방치해 두었던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한동안 꽤나 정성들여 글이며 자료를 올렸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뜸해졌다. “요샌 바빠서. 정신이 없네.” 사실 바쁜 일상에 쫓겨서가 아니다. 조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아직 여물지 않은 생각들을, 여전히 진행 중인 실험들을 글로 적는다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 아닌가 싶어진 것이다. 나는 신입사원 면접을 할 때마다 좋아하는 조경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한다. 지원자의 설계적 성향을 파악해 보기 위함인데, 언젠가 한 친구가 “OOO이라는 우리 학교 선배요. 그 선배만큼 열정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라고 답했다. 그때는 ‘이 친구는 아는 조경가도 한 사람 없나’ 그렇게 생각했다. 한참을 지나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태도’를 이야기 한 것이었다. 유명 작가의 작품집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멋진 디자인이나 철학보다도, 가까이서 직접 보고 느낀 친한 선배의 ‘열정’이 더 큰 힘이 되었으리라. 그리고 그것이 지금 조경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우리들 자신에게도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열정’은 언제나 과정을 의미하며, 태도를 지배한다.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애쓰고 있는지가 오히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 용기를 내본다.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들은 나의 조경에 대한 태도, 아직은 어설픈 과정의 이야기들이다. 3 “형, 형이 하는 설계는 잘 모르겠어요. 다이어그램도 이해가 잘 안 되고요. 꼭 그렇게 어렵게 조경해야 되나요” 몇 해 전이다. 한 후배 녀석이 우리 회사에서 제출한 설계공모 도판을 보았는지 술자리에서 묻는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설계공모 작업들은 잘된 설계안이 아닐뿐더러,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다. 다이어그램은 복잡하고, 디자인은 매우 거칠고 개념적이며,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충분치 않으니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운 좋게 여러 작업들이 당선은 되었지만, 대상지에 대한 합리적인 해법과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명쾌하게 제시해야 하는 설계공모의 결과물로서는 사실 낙제다. 4 기술사사무소 렛의 장종수 소장님과의 개인적인연으로 시작하게 된 설계공모 작업들2은 나로서는 참 행운이었다. “우린 목표가 2등이야. 그냥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하자고.” 진심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당선이 목표가 아니라고 하시니 맘은 편하다. 사실 당시 진행된 국내 설계공모 작품들을 보면서 항상 아쉽다고 느끼는 점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배우고 공부해 온 해외의 많은 설계공모가 그러했듯, 설계공모는 작품을 통해 설계자만의 디자인 사고와 새로운 설계 기법, 여러 가지 도시적·사회적·철학적 때론 정치적 담론까지도 공론화할 수 있는 ‘설계안 이상의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 시절 지겹게 보아왔던 라빌레뜨 공원이나 다운스뷰파크, 프레시킬스 뿐만 아니라 근대적 공원의 시작이자 최초의 공원 설계공모격인 센트럴파크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잘 뽑아진 결과물로서의 공간적·경관적 형태와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것은 좋은 설계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좋은 설계공모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5 또 다른 한 가지는 대상지(site)를 대하는 설계자의 태도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대지와 설계안의 괴리감이다. 흔히들 우리가 설계해야 할 대상지는 백지가 아니라고 쉽게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설계는 직접적인 설계 대상인 대지, 그 장소에 담긴 경관(landscape)이라는 실체(substance)를 ‘탐구’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외부와의 물리적·비물리적 관계성 및 맥락성(context)을 통해 그 땅의 개념적 의미를 ‘해석’하고 ‘부여’하려는 경향이 지나치게 강하다. 게다가 하이브리드라는 시대적 흐름은 개념이나 이론, 디자인 철학이나 방법론까지도 조경이 아닌 외부로부터 차용되어야 더 ‘쿨‘한 것으로 몰아간다. 경관이라는 실체에 대한 탐구와 내부로부터의 고민 없이 밖으로의 팽창만을 꿈꾸는 조경은 걱정스럽다. 우리가 의무감처럼 행해왔던 많은 분석 리스트 중에 순수하게 조경만의 언어로 대상지를 들여다보는 분석 방법은 몇 가지나 있는가? 그것만으로 우리만의 디자인을 이끌어 내기에 여전히 충분한가? 그리고 그것들은 디자인으로 잘 발전되어 왔나? 6매번 설계공모 작업 때마다 고민하고 전달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우리가 항상 다루어야 하는 땅에 관한 이야기,‘그 장소만의 경관 체계(landscape system)를 어떻게 읽고 해석해 나갈 것인가’와 해석된 경관 정체성을 바탕으로 새롭게 들어오는 이종(異種)의 조직 속에서 작동 가능한 새로운 경관,즉 변이적 경관(landscape cultivar)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파주운정지구 도시기반시설 조경설계공모(2007)에서는 대상지의 경관을 형성해 온 기작과 새롭게 형성되는 도시의 기작을 중첩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 대지에 순응하며 도시 조직의 일부로서 작동하는 경관을 제안하고자 하였고,강북생태문화공원 설계공모(2008)에서는 대상지 내부의 자연 조직과 도시 조직이 만나는 추이대 형성 과정을 통해 대상지의 경관을 조직화하는 가장 기본적인 체계인 메타스케이프(metascape)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충북혁신도시 설계공모(2008)에서는 대상지에 존재하는 일상적 경관 중 가장 마이크로한 경관 요소들을 찾아 이들의 재조합을 통해 경관 중합체(landscape polymer)라는 대상지만의 경관이 내재된 변이적 경관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자 하였고,하남미사지구 설계공모(2009)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대상지의 경관을 지배해 온 농지의 미세 지형과 시스템,조각 숲의 구조와 기능을 새로운 공원의 기반적 시스템(infrastructural system)으로 적용해 보고자 하였다. 내곡 보금자리지구 조경설계공모(2010)에서는 지형 구조가 도시의 공간감과 스케일,생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서울의 팽창 과정을 되짚어 봄으로써 알아보고자 하였고,송산그린시티 철새서식지 설계공모(2011)에서는 대상지를 여러 유형의 비오톱 조합체로 인식하고,대체 서식처로서의 작동을 위한 필수적인 비오톱을 선정하고 이들의 이식(grafting)과 복제(cloning),재조합(re-organization)을 통한 단계적 서식처의 복원을 제안하였다. 7물론 지금까지 해온 나의 작업들이 깊이 있는 논쟁을 끌어낼 만한 것들이 못 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경관을 바라보는 일관된 가치관’을 가지고 설계에 접근하려고 애써 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록 불완전한 모습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내어 놓는 사람들이,설계자의 가치관들을 각자의 설계 언어로 꾸준히 발전시키려는 노력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또 그러한 노력들이 현장에서 설계 작업을 실제로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더욱 가치 있을 것이다. 우리 설계가들은 매일 생각하고,시도하고,시행착오를 거친다. 조경이라는 실용적 학문에 있어서 이러한 피드백의 과정은 더 할 수 없이 중요한 가치이며,설계자 개개인이 자기만의 경관을 더 많이 이야기할수록 우리나라 조경의 스펙트럼이 더 다양해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8경관은 하나의 장소가 작동하기 위한 공감각적 시스템이다. 사실 경관은 마치 수백만 개의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작은 톱니바퀴들처럼 그곳만의 조직으로 오랫동안 서로 맞물려 작동하며 만들어진 커다란 아날로그시계와도 같다. 경관은 시간을 거슬러 하나의 장소가 작동되어 오던 그 장소만의 역사적·사회적·생태적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담아낸다. 씨앗이 토양과 소통하며 뿌리를 내리고 환경―비,바람,기온,습도 등에 반응하며 그 장소만의 식생을 이루는 것처럼, 인간이 대지와 소통하며 경작을 하고 길을 내고 공간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관은 그 속에 담겨있는 요소들 모두가 서로 반응하며 지금껏 만들어온 ‘장소와 요소, 요소와 요소들 간의 소통’에 의한 결과물인 것이다. 또한 경관은 이러한 장소의 시스템으로부터 파생된 2차적 무형의 산물, 즉 공간에 대한 감흥을담는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그때의 분위기나 느낌이 전해지지 않아 아쉬워했던 경험처럼,경관은 한 장소의 소리,향기,촉감,공간감,문화,역사 그리고 이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장소만의 고유의 공기를 담는 공감각의 매체(synaesthetic media)다. 9변이적 경관(landscape cultivar). 우리가 설계를 해야 하는 대상지는 오랜 시간 땅과 소통하며 그 장소만의 공감각적 경관을 담고 있는 물리적 바탕이기도 하지만,동시에 앞으로 이 땅을 이용하게 될 새로운 이용자들과도 지속적으로 소통하여야 할 시간적 매체(temporal media)이기도 하다. 이때 대상지의 표면(surface)은 단순히 경관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실재하는 지형적 베이스(topographic base)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대상지의 역사,문화,생태계를 포함하는 이 땅의 ‘과거의 기억’을 유일하게 담아내며 현재와 관계를 맺어주는 오래된 사진 앨범과 같다. 우리들 스스로 항상 되뇌는 말처럼,‘조경’이라는 작업이 단순히 대지를 ‘화장’하는 일이 아니기 위해서는 우리의 설계가 단순히 미학적 가치를 넘어 이 땅의 경관이 가지고 있는 내재된 경관,그 기억을 드러내고,그것이 이 땅에 들어올 새로운 조직과 유연히 작동할 수 있도록,두 조직 간의 상충(contradiction)을 경관적으로 중재(arbitration)하는 작업이 되어야함을 이야기한다. 변이적 경관이란 ‘변이’라는 말 자체가 담고 있는 것처럼 ‘본질’,이 땅의 ‘경관적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대지의 기억이 말끔히 지워진 새로운 ‘B’라는 제3의 경관이 아니라 ‘조건과 입장이 다른 여러 켜들이 얽혀서 생성적 배역을 해나가는 조경의 역할3’,즉 ‘A-1’의 경관인 것이다. 10접촉면 경관(interface landscape). 벌써 10년 전이다. 나의 블로그 타이틀이기도 한 이 용어는 대학원에서 MVRDV의 책을 읽다가 우연히 내 가슴에 박혀 버렸다.“세계는 세계와 우리의 접촉면의 관계 안에서 변화한다. 세계의 한계는 우리 접촉면의 한계다. 우리는 세계의 실체와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의 접촉면 과 상호작용한다.”4 그들이 꺼내 놓은 이 단어는 내가 그동안 고민하고 있었던 여러 가지 의문들에 대한 해법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왜 대상지의 경관에 더욱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게해 주었다. 사실 ‘접촉면’이라는 우리말보다 ‘인터페이스’라는 외래어가 더 익숙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핸드폰,인터넷,각종 프로그램,게임 등 우리는 하루에 수십 가지의 인터페이스를 만난다. 우리가 매일 쓰는 포토샵의 바탕화면은 버전 업이 될 때마다,새롭게 바뀐 디자인에 놀라워하기도 하지만,바뀐 아이콘 위치에 곧 당황스러워 하기도 한다. 인터넷의 포털사이트 역시 어떤 사이트의 홈 화면은 잘 정리되어 쉽고 정확하게 그날의 정보를 전달하는 반면,어떤 곳은 쓸데없거나 잘못된 기사들을 제공해 오히려 시간만 허비시키거나 사건에 대한 오해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조경 설계라는 작업은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컴퓨터 프로그램 또는 웹을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할 때,사용자는 ‘인터페이스 화면’이라는 유일한 매개면 만을 통해서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능과 정보와 소통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상지’ 역시 이용자가 한 장소에 담긴 다양한 경관적 정보들과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적 매개면(environmental agency)이며,설계자가 어떠한 경관적 잠재력을 읽어내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땅에 대한 의미와 이용자들의 이해는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우리가 하고 있는 ‘조경’이라는 작업은 대상지와 이용자 사이의 역사, 문화, 생태 그리고 공감각적 감흥을 포괄하는 접촉면 경관을 형성하는 작업이며, 그것을 통해 이 땅의 가치를 이해하고, 경관과 소통하고, 장소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의미 깊은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11‘또 대상지?’ 사실 진부한 것은 대상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만의 눈으로, 보다 창의적으로 대상지를 깊게 들여다보고, 각자가 읽은 것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하면 좋겠다.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밖으로부터의 언어들과는 차별되는 우리만의 디자인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고 의미 있어지지 않을까. 각주 1 “인터페이스 랜드스케이프(www.cyworld.com/interface_landscape)”란 이름의 개인 블로그를 2004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조경 설계에 관심 있는 동료나 후배들과 나의 고민과 자료를 공유하고 싶단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사실은 늘 나의 조경 사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수학 소장(아뜰리에나무)의 열정을 좇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각주 2 이번호에 소개하는 설계공모 작업들은 SWA Los Angeles재직 당시 기술사사무소 렛과 개인 자격으로 협업하였거나, 이후 기술사사무소 렛의 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작업한 것들이다. 그중 파주운정지구 도시기반시설 조경설계공모(나군, 2007), 강북생태문화공원 설계공모(2008), 충북진천·음성 혁신도시 조경설계공모(A구역, 2008)는 당시 SWA 동료였던 서울시립대학교 김영민 교수와 함께 작업하였다. 각주3 정욱주,“상충의 도시, 생성의 층위”,『LAnD: 조경·미학·디자인』,도서출판 조경, 2006. 각주 4 Peter Weibel, “Architecture as Interface”, MVRDV, MVRDV at VPRO, Actar, 1998. 재인용 김현민은 1975년생으로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조경가협회(ASLA)에서 수여하는 우수졸업자상을 받았으며, 미국의 SWA Group에서 Shanghai Gubei Gold Street Plan, Symphony Park Competition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기술사사무소 렛, 비오이엔씨에서 계획, 설계 및 정원 시공에 이르는 폭 넓은 실무를 경험하였고, 국내 여러 대학에서 조경 설계를 강의하였다.
  •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래리 기키 & 채드 기키 올드 컨트리 마켓
    연중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원시 자연으로 널리 알려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대표적 관광지, 밴쿠버아일랜드Vancouver Island에는 쿰스Coombs라는 조그만 마을이 있다. 인구 천여 명에 불과한 소읍이지만, 평범한 시골 마을은 아닌 것이, 연간 1백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올드 컨트리 마켓Old Country Market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겐 비단 물건을 사거나 간식을 먹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다. 지난 40여 년간 수많은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낸, ‘풀이 무성한 지붕sod roof과 그곳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염소들을 구경하는 일’이다. 처음엔 그저 대책 없이 자라는 풀을 일일이 자르기가 귀찮아 올려놓은 염소들은 어느덧 “Goats on the Roof지붕 위의 염소”라는 브랜드로 정착될 만큼 유명해졌고, 지역 경제를 살리고, 고용을 창출하며, 변방의 작은 마을 쿰스를 세계에 알리는 아일랜드 스타일의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 별 생각 없이 운전을 하던 사람들도, 지붕 위에서 어슬렁거리는 염소들을 보면 일단 차를 세우고 잠시 쉬어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어린이들에겐 너무나 신기하고 즐거운 광경일 것이다. 현재 활동 중인 네 마리의 염소들은, 피치스Peaches, 포피Poppy, 캐러멜Caramel, 엉클 베니Uncle Benny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이미 은퇴(?)한 놀Knoll과 토트Tott가 있다. 염소가 보이지 않으면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할 만큼, 아이들에게 네 마리의 염소는 꼭 만나봐야 할 슈퍼스타에 가깝다. 1950년대에 노르웨이에서 캐나다로 이민 간 크리스티안 그라틴Kristian Graaten과 그의 아내 솔베이그Solveig는 1973년, 과수원에서 직접 수확한 과일들을 한적한 도로변에 놓고 팔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 허기진 관광객들을 위해 햄버거를 메뉴에 추가하면서, 그들은 작은 마켓 건물을 지으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고향 릴레함메르Lillehammer에서 일상 풍경이었던 녹색 지붕을 떠올렸다. 노르웨이의 시골에서는 경사진 언덕에 기대 헛간을 짓고, 지붕이 대지와 연결되도록 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흙과 풀로 덮인 지붕은 겨울이면 단열재가 되고, 여름엔 증산 작용으로 인해 냉각 효과를 볼 수 있다. 연로한 부부는 아들인 스베인Svein과 앤디Andy 그리고 사위인 래리 기키Larry Geekie의 도움을 받아 소박한 건물을 지었다. 당시에는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염소지붕이 되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은 가판대에서 시작한 올드 컨트리 마켓은, 이제 슈퍼마켓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 가게, 125석 규모의 카페테리아,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채소 가게, 서핑보드숍, 훈제연어 델리, 베이커리, 수입 식품점,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기프트 숍, 모종과 원예 식물을 판매하는 화원, 중국 골동품 가게, 패션 부티크 등 다양한 업종들이 성업 중이다. 여름 휴가철이면,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도로변 갓길 수백 미터 뒤까지 차를 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의 유일한 불만은 이곳이 언제나 지나치게 붐빈다는 것이다. 올드컨트리 마켓 덕분에 주변의 소매점들 또한 덩달아 혜택을 보고 있다. 비즈니스의 성공을 짐작할 수 있는 일면으로, 사장 래리 기키의 가족들은 동절기 동안 가게 문을 닫고 세계 곳곳으로 긴 휴가를 떠난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얻은 새로운 정보와 좋은 제품들을 다시 올드 컨트리 마켓으로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종종 많은 사람들이 염소를 보지 못한 채 돌아가야 한다. 날씨가 춥거나 혹은 염소가 집에 들어가 버리거나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염소는 조각품이나 벽화가 아닌 살아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붕 위의 염소들은 사람들의 바람이 무엇이든 간에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한다. 물론 염소를 볼 수 없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사실 마켓 운영의 입장에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염소를 보겠다며 다시 찾는 손님들도 많고, 얼굴만 빼꼼히 내밀던 염소가 풀을 뜯으러 등장이라도 하면 그 자체가 이벤트가 되기 때문이다. 염소를 여러 번 보았다 해도 무생명의 물체와 달리 하나의 작은 생명의 면모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다시 보아도 여전히 지루하지 않다. 사실 ‘지붕 위의 염소’에서 실제 염소의 출현은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 콘셉트 자체가 귀엽고, 그들이 지붕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직접 눈으로 염소를 확인하는 과정은 그 중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 사소하고 일상적인 광경으로부터 우리는 잊고 있던 시골에 대한 향수와 지역성 그리고 편안하고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는다. 지붕 위에서 염소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슈퍼마켓이라면, 그 내부 또한 한 번쯤 들여다봐야 할 만큼 재밌는 곳이 아니겠는가. 이건 어떨까하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지붕 위 염소의 성공은, 창의성이란 지역과 자본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음을 선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래리 기키의 아들이자 삼대 째 가업을 잇고 있는 채드기키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생으로, 그룹한 뉴욕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 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해왔다.
  • [공간 공감] 세 번째 공간 탐색, 성곡미술관
    대로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성곡미술관은 주변에 보이는 고층 아파트만 아니라면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 한때 신정아와 함께 사회면을 요란하게 장식했던 미술관이지만, 이제는 시간이 흘러 예전의 여유와 정취를 되찾은 듯하다. 미술관처럼 보이지 않는 미술관, 조각 전시 공간이라기보다는 뒷산자락에 가까운 풍모는 “공간 공감”의 의도에 걸맞은 대상지라는 확신을 첫눈에 주지는 않았다. 넉넉히 천 평 정도 되어 보이는 완만한 사면에는 산책로, 조각작품, 오래된 나무, 그리고 두 동의 카페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썰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잠깐의 검색과 조사를 통해, 이곳이 쌍용그룹 창업자인 성곡 김성곤 선생의 자택이 있던 자리였고, 외국인전용 임대 빌라로 신축되어 사용되다가 1995년 성곡 미술문화재단에 의해 미술관으로 개조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술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이 사실을 통해 과거의 주택 후원이 조각 정원으로 변모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느린 산보를 마친 후, 세 가지 관점에서 성곡미술관 외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번째는 조각 정원으로서의 가치다. 외부 공간의 크기와 조각의 밀도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지만, 조각의 배치와 구성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스케일 측면에서 주변의 경관과 어울리는 조각이 아니거나, 개별 조각이 각각의 전시 영역을 구축하지 못하고 다른 조각의 이미지와 혼재되어 보이는 서투름이 쉽게 감지되었다. 심지어는 관람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조각품이 엉뚱하게 자리를 잡은 경우도 있었다. 지피류와 관목류가 다소 산만하게 식재되어 있어서 조각으로 집중되어야 할 시선이 방해 받기도 하였다. 처음부터 정교하게 조각 정원을 기획한 것이 아닌 듯하였고, 조각 정원으로서의 공간 디자인적 가치도 높지 않아 보였다. 두 번째 관점은 오래된 정원으로서의 가치다. 정확한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지만, 전술한 대로 이곳은 성곡 선생 자택의 후원이었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하였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랜드스케이프 디자인 스튜디오 knl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였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 그 정원(가)은 젊다
    가보지 않은 정원에 대해 말하기 “개인 소유여서 현장에 가서 직접 보기는 힘들 것 같아요.” 한 젊은 조경가의 정원에 대해 글을 써야 했지만 정작 정원에 가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보지 않은 정원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입이 있으니 물론 말할 수는 있다. 이어지는 질문이자 답하기 힘든 문제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이다. 변명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학자의 입을 핑계 삼아, 소위 ‘극장의 우상’에 기대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뒤졌고 다행히 적합한 우상 하나를 발견했다. 정원 산책을 인생 여정의 작은 한 지점이라 한다면, 피에르 바야르Pierre Bayard의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의 몇 구절을 빌려와 먼저 변명하는 것도 좋겠다. “사실 작가는 장소―지리학적 담론의 지시 대상으로서의―가 아니라 어떤 다른 차원의 것, ‘장소의 영혼’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그것은 오직 문학적 글쓰기만이 언어를 통해 펼치는 점진적인 변화들을 통해 포착하여 그 정확한 형상화를 희구할 수 있을 것이다. … 장소의 영혼은 이상화 작업을 전제한다. … 장소의 주된 특징들이 단순화되고 일반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이상화 작업이다. 그래야 그 장소는 글쓰기의 창조력에 의해, 현재에는 물론 미래에도 모든 사람들의 상상적 소유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이상화는 마치 장소의 진실이 장소 속에 있지 않기라도 하듯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빚는다.” - 피에르 바야르, 김병욱 역,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여름언덕, 2012, p.215.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서라면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그 장소의 영혼마저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 바야르의 생각이다. 이러한 문학적 창조력은 이상화 작업이 전제되어 있고 그러므로 현실로부터 유리되는 결과를 낳을 위험성도 도사린다. 변명은 이만하면 된 것 같다. 이 글은 그가 보내온 정원 사진들, 한 시간 동안의 대화 기록, 대화 중 끼적인 메모, 그가 작성한 원고로부터 시작하여 가보지 못한 어떤 정원과 그 정원을 만든 한 청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젊은 조경가를 만나다 그를 만나는 날, 이른 봄비가 내렸다. 남기준 편집장, 이형주 기자, 그리고 나(이하 우리)는 먼저 도착해 식당 입구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십 분 후에 그가 도착했다. 인상착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베이지색의 두터운 오리털 점퍼와 유사한 색상의 편한 면바지 차림에 등산화를 신고 한 손에는 기다란 검정 우산을 쥐고 있다. 아직 비에 젖지 않은 흙먼지가 등산화 윗등을 덮고 있다. 나중에 확인했지만 우리와의 만남은 이날 그의 두 번째 일정이었다. 새로 시작한 정원 일로 고객과 함께 산에서 나무를 보고 오는 중이었다. 희끗희끗 흰 머리가 섞여있고 웃음에서는 선비 같은 인상이 배어난다. 검고 동그란 안경테가 깊은 눈동자를 도드라지게 한다. “얼마 안 된 회사고 실력도 아직 부족해서 잡지에 실린다는 게 부담스러워요.” 겸손하게 말문을 연다. 하나의 나무를 뜻하는 에이트리는 설계 회사를 다니던 김상윤(이하 그)과 시공 회사를 다니던 그의 학창시절 지인 박지호가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로, 말하자면 젊은 시절 꿈의 실현체다. “젊으면 어떠냐 부딪혀 보자고 했어요.” 젊은이의 패기를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다지만 그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해냈다. 유년 시절을 경남 산청의 ‘산골짜기’에서 지낸 진귀한 기억을 간직한 그는 전부터 정원 공부를 틈틈이 해오고 농장을 다니면서 식물 보는 일을 즐겨온 준비된 조경가이자 정원 설계가다. “정원 일은 바로바로 피드백 받으면서 설계를 진행하게 돼요. 설계보다 시공이 중요하고, 둘 사이 구분이 없죠. 도면으로 표현 안되는 게 많아요. 도면으로는 큰 얼개만 잡습니다. 현장에서의 판단이 중요해서 최초의 설계안과 변경될 때가 많은데, 저는 이런 과정이 재미있어요.” 고객의 취향을 신뢰한다 정원은 여느 조경 설계보다 사적이다. 사적인 공간을 다뤄야 하고 그 공간의 주인인 개인 고객을 상대해야 한다. 젊은 나이에 설계 회사를 꾸려가는 이에게 가장 궁금한 건 설계 일을 어떻게 맡게 되는가이다. 일이 과연 들어올까. 그도 가장 우려한 점이었다. “가만히 있는데 건축주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건축가 문훈이 설계한 롤리팝 하우스 정원을 맡게 된 경위에 대해 물으니 그렇게 답한다. 예전에 그와 함께 작업한 적 있던 시공사가 롤리팝 하우스 시공사였고 건축주는 시공사를 통해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건축 시공이 끝난 후 설계가 시작되었다. 건축물이 먼저 들어선 뒤 지정된 자리에 정원을 만들면 되었다. 건축가와의 협의는 없었다. “우연찮게도 지금까지 제가 일한 건축주들은 대부분 젊은 분들이었어요.” 그도 젊지만 그의 고객도 젊다. 정원 설계에서 진정한 설계가는 사실 전문 설계가가 아닌 고객이고, 또 그래야 한다. “고객에게 최대한 맞춰주는 편이예요. 요구 사항을 엄청나게 늘어놓으세요. 가족 모두. 장모님도 가세하실 때가 있죠. 하하하.” 그는 고객의 취향을 존중하고 고객과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고객은 “부유층이 아닌 중산층”이다. 한 시간 동안 이를 세 번 강조하여 말했다. “제 고객은 재정적으로 그리 여유가 있는 분들은 아닌데 인테리어와 조경 비용에서 인테리어 비용에 많이 투자하는 편이세요.” 보통 개인 주택을 지어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은 스스로 인테리어도 하고 정원도 꾸미고 싶어하지만 조경보다는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다고 한다. 그는 정원 설계 시 재정의 열악함을 아쉬워한다. 돌파구는 있다. 목공이나 용접은 전문업체에 따로 맡기지만 젊은 그들은 인부를 자청한다. 불필요하게 값비싼 재료는 지양하고 가격대비 미적 효과를 중요하게 여긴다. “소나무나 배롱나무는 너무 비싸요. 대신 청단풍이나 다른 낙엽수를 추천해요.” 낙엽수를 좋아한다는 그의 취향이 궁금해진다. 이명준은 전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거쳐 어느새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의 이론과 역사를 공부하면서 자연의 재현 양상을 탐구하고 있다. 『환경과조경』에서 주최한 ‘2011 대한민국 조경비평대상’에 “지금 여기, 아름답고 신비하고 신묘하다 -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의 희망적 시간”을 출품하여 가작을 수상했으며, 조경비평 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이명준[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 박사과정 수료
  • 물과 놀이에 대한 탐색 앤드류 그랜트 인터뷰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싱가포르에 조성된 대형 공원으로, 개장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름이다. 베이 사우스 가든Bay South Garden이 가장 먼저 개장하고 나머지 구간이 차례로 윤곽을 드러내는 가운데, 올해 초 파 이스트 오가니제이션 어린이정원이 새로 문을 열어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베이 사우스 가든과 어린이정원을 설계한 그랜트 어소시에이츠Grant Associates의 앤드류 그랜트Andrew Grant 대표는 놀이 공간의 개념설정과 기술 구현을 위해 다양한 협업체계를 구축했다고 한다. Q.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에 위치한 어린이 정원의 설계 주안점은 무엇이었는가? A. 어린이들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본능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위치한 파 이스트 오가니제이션 어린이 정원에 많은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뛰어놀고, 숨고, 기어오르고, 탐험하고, 색칠하고, 요리하고, 그리고 땅을 팔 수 있는 혁신적인 시설물을 만드는 것과 이를 통해 아이들의 성장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데 기여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맞춤형 놀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명감이 필요하다.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놀이 패키지, 놀이기구, 그리고 위험 관리가 상존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비록 모든 아이디어가 최종안에 포함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놀이시설물을 상상하고 프로젝트를 위한 아이디어를 구상하면서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놀이공원에 대한 아이디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초기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비전은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유쾌한 환경을 마련하여 열대 우림이 지닌 마력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그랜트 어소시에이츠는 전문적으로 놀이 공간을 설계하는 회사는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작 단계부터 보스턴에서 온 하울러Howeler와 윤Yoon에게 물놀이 시설을 위한 개념 설정에 도움을 청했다. 이후 우리는 현지 놀이시설 업체인 플레이포인트Playpoint 및 CT-ART와 함께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들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플레이포인트는 네덜란드 업체 카브Carve를 소개해주었는데, 카브는 트리하우스Treehouses에 대한 우리의 초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독특한 놀이 경험을 창조해냈다.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맞춤형 조형물들 또한 우리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 전반에 걸쳐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원예팀은 굉장히 공감각적이고 유쾌한 식재 콘셉트를 밀어붙였는데, 덕분에 놀이 공간에 적절한 그늘과 계층 구조가 마련되었다. Q. 설계에 있어 제한 사항이나 조건 등이 있지는 않았는가? 예를 들면 비용, 장소, 설계, 혹은 건축상의 한계 같은 것 말이다. A. 새로운 디자인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지지해줄 뿐만 아니라, 창조적 과정에 동참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의 응원과 신뢰가 필요하다. 건축과 다른 분야를 적절히 조화시키기위해서는, 특히 비슷한 전례가 없거나 앞선 기술적 실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라면,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협업과 인내 그리고 끈기가 요구된다. 제한된 시간 안에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둬야한다는 것 역시 우리에겐 커다란 도전 과제였는데, 실험해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고, 설계상의 몇몇 아이템들은 현장에서 직접 실험해봐야 했기 때문이다.
    • 박경의, 이윤주
  • [칼럼] 정원 시대의 조경
    봄이 모퉁이를 돌았다. 지난 겨울 기세등등했던 추위는 긴 꼬리를 감추기 시작했다. 아직도 간간이 눈 소식이 들리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머지않아 대지와 우리들의 정원에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다가오는 봄과 함께 귀촌을 준비하는 나에게 계절은 이미 기대와 설렘으로 화사하다. 마음속 정원에는 일찌감치 갖가지 꽃과 채소가 심어졌다. 위대한 작가이자 정원사였던 헤르만 헤세는 땅과 식물을 상대로 일하는 것은 명상과 마찬가지로 영혼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쉬게 해 준다고 했다. 새봄과 함께 조경에 새로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몇 해 전부터 불기 시작한 정원에 대한 관심과 실천의 비약적 증가는 바야흐로 정원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정원을 직접 만들고 가꾸려는 관심은 실내 정원과 주말농장을 넘어 생활 속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원은 다방면에 걸쳐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생산, 소비되고 있으며 도시 농업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 정원과 관련된 책과 잡지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손꼽힐 정도였던 이 분야의 책들이 이제는 이론과 역사, 설계와 시공, 소재와 기능 등 전 방위적으로 봇물 터지듯 출간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원 서적이 등장함은 그 시대에 정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폭발하였음을 시사하는 바 이 시대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작년에 성공적으로 마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정점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인구 28만 명의 작은 지방 도시가 주도 한 이 행사는 개장 기간 동안 44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가고 순수입으로만 164억 원의 흑자를 올린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와 함께 직접적인 고용창출 8천 명, 1조 원에 달하는 거대한 생산 유발효과를 함께 올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소나타 같은 중형차 4만 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것이라 한다. 정원과 생태를 주제로 이룩한 이러한 성적표는 그동안 지역에서 열린 박람회나 축제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보다 한 해 전 개최되었던 여수엑스포가 행사 후 시설의 활용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에 비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뚜렷이 자리매김하면서 비슷한 행사를 모색하고 있는 여러 지자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원 열풍은 마흔 살 장년이 된 한국 조경이 한 단계 더 도약할 기회가 되고 있다. 그동안 양적 성장에 치중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중요한 모멘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 다. 정원 바람은 분명히 조경에게 기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회는 조경 분야를 위기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그동안 도시의 공원을 도시숲이라 주장하며 불안 불안한 정책적 행보를 보이던 산림청이 이번에는 정원을 수목원과 한데 묶어 국가정원-지방정원 등의 포맷으로 자신들이 담당하겠다고 들고 나왔다. 지난번 도시숲 정책과 금번의 국가정원-지방정원 정책의 출발은 아마도 산림청의 예산이 풍부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예산을 가지고 있는 산림청이 남는 예산을 도시 공간으로 가지고 내려와 혼란스럽고도 당황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풍족한 예산을 정원의 발전에 사용하겠다는 데 굳이 이견을 달고 싶지는 않다. 정책의 이면에 부처 이기주의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공직 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숨어 있음을 애써 외면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책이 조경의 근본을 왜곡하는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는 점에서는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수천 년 조경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를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 않고 정원이란 단어를 선택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굳이 정원의 본질과 조경의 역사를 논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원이 조경의 근본이고 출발이라는 사실만은 재차 환기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무리한 정책으로 조경을 산림의 영역으로 치환해 버리는, 정부의 예산으로 한 학문의 정체성을 흔드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역 이기주의를 넘어 합리적 상식이 통용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민행복시대의 정책이라면, 이번 일은 시정되어야 한다. 정원을 통해 촉발된 기회이자 위기의 상황에 대한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대응은 무엇인가. 이럴수록 원리원칙과 근본에 충실함이 정답일 것 같다. 답답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원을 통해 조경의 현주소를 다시 점검해 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대 우리 조경은 과연 어디쯤 위치하고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어떤 가치와 방법을 구사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다. 정원은 전통적으로 개인의 의지와 욕망이 투영된 사적 공간이었지만 우리 시대의 정원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적, 사회적, 실천적 매체로 그 역할과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여 조경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불붙은 정원 논의는 새봄과 함께 더욱 타오를 전망이다. 정원을 통해 참여와 노동, 가꿈과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흐려진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고, 단절되었던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복원시키며, 부족했던 삶의 질을 채워주도록, 조경은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정원에서 비롯된 사회적 에너지를 일상 속의 조경 문화로 발전시키는 것, 올 한 해 조경에 부여된 큰 숙제다. 이유직은 현재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부산의 미군기지인 하야리아의 부지를 공원화하는 작업의 코디네이터로, 거창군 창조 도시 총괄계획가로 활동하고 있다. 마을만들기와 농촌 조경에 관심을 두고 현장에서 지역재생과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조경학적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 [에디토리얼] 정원의 부활?
    10년 전에 낸 책을 오랜만에 들춰본다. “부활하는 정원”이라는 제목을 단 챕터의 첫 부분. “대부분의 조경가들은 조경과 정원이라는 두 글자를 연관시키는 일에 관대하지 않다. 정원의 이미지가 자신과오버랩되는 것을 가능한 한 피한다. 교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도시의 골격을 짜고 경관의 구조를 만지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미래의 조경가들 앞에서 정원에 담긴 문화와 신화와 역사, 정원이 전해주는 상상력과 감성 따위를 염두에 두고 정원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그들의 얼굴은 실망과 불만을 전달하는 근육 운동으로 바빠진다. 정원 만들기나 가꾸기 정도를 비싼 등록금 내고 배워야겠느냐는 표정이다.” 얼마 전, 학교에 어렵게 모신 어느저명 조경가의 특강,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재벌가 정원들의 스펙터클을 대하는 학생들의 불편한 표정. 부러움, 냉소, 무기력, 의기소침이 절묘하게 혼합된 그들의 표정은 현대 조경과 정원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생생한 단면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20세기 이전의 조경사는 곧 정원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조경이 도시 환경의 개선과 혁신을 지향하는 새로운 전문 분야로 출범함과 동시에, 정원은 조경 이론의 주변부로, 조경 실천의 변방으로 물러나게 된다. 우리가 쓰고 있는 조경이라는 말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번역어라면, 조경은 정원술과 엄격히 구별되는 행위다. 정원에 대한 최근의 대중적 열풍과 이에 힘입은 조경계 안팎의 들썩임은 도시인의 영원한 로망인 정원의 존재감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물론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연과 건강을 소비하는 대중의 트렌드, 유한 계층의 배타적 토지관과 장식적 공간관, 토건 경제에 복무해온 조경의 한계와 새로운 시장의 모색, 거기에 자연과 인간의 ‘사이’지대에 주목하는 문화 변동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현상과 이념이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이번 호 『환경과조경』은 정원 열풍의 이면을 짚어보는 특집을 마련한다. 특집의 서론격인 황주영 박사의 글에서 지적되고 있듯, “뜨거운 열기를 좀 더 찬찬히 살펴보면 이는 정원 열풍이라기보다는 가드닝, 즉 원예적인 정원 가꾸기의 세련된 형태의 유행에 더 가깝게 보인다. … 가드닝의 유행과 조경의 중심 영역으로 정원의 귀환을 동일시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 정원의 귀환이라고 하지만, 정원이 없던 적은 없었다. 다만 한 시기의 문화적 지형도에서 소외되었던 것이 자리바꿈하고 있을 뿐이다. … 정원에 대한 관심이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고 흩어지는 물결이 아니라, 정원이 담고 있는 … 근원적 흐름과 연결되는 …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만일, 지금, 조경가에게 정원이 중요하다면, 그것은 ‘잃어버린 정원의 가치’가 이 시대의 사람살이와 어떤 교점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정원을 두고 법, 제도, 시장, 산업을 고민하기보다는 정원과 동시대 조경 사이의 관계를 다시 검토하고 조율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한 축으로는, 정원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그 생명과 생동과 생산의 기쁨을 재발견해야 한다. 다른 한 축으로는, 정원을 통해 현대 조경 설계의 태도와 접근 방식을 교정해야 한다. 공공성의 깃발을 들고 가드닝landscape gardening과 결별했던 현대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 놓치고 잃어버린 것들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동시대 조경에서 정원이 갖는 위상과 의미를 다음의 인용문처럼 적절하게 담아낸 글을 찾기란 쉽지않다.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가 ‘순천만정원박람회 마스터플랜 설계공모’ 당선작의 디자인 노트로 남긴 글의 일부분이다(『환경과조경』 2010년 2월호). “근대의 조경이 사적인 공간을 의미했던 ‘정원’으로부터 그 탯줄을 끊고 공공 영역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 이래, 현대의 조경은 정원에 대한 양면적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도시적·토목적 스케일의 조경의 개념은 정원에 대한 자기 부정을 내포하고 있다. 소규모, 여성적, 공예적, 원예적, 장인적인 성격의 뉘앙스는 근대 이후 공원에 대한 묘한 반대말로 규정되기 시작하였다. 최근 ‘부활하는 정원’이 ‘작품’이라는 지위와 ‘경제력과 권위’라는 배경으로 다시 부각되게 된 것은 단지 개인 주택 정원의 고급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 보다 사적인 스케일의 공간을 통해 자연과 예술의 미적인 체험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슴 벅찬 일이 아닌가. 공공 영역에서의 정원은 새로운 오픈 스페이스의 유형이며 지금까지 쉽게 경험하지 못한 차원의 자연에 대한 문화적 체험을 제공한다. 시민들이 내 땅이 아니어도 나의 공간을 즐길 수 있고, 자연과 나를 매개해 주는, 시민사회와 나만의 영역이 교차하는, 시간과 장소가 예술적으로 혼재되어 있는, 한두 마디로 규정될 수 없는 이상적 공간에 대한 로망…. 정원은 본질적으로 이상과 현실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작품과 특집 주제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매 호 애써보지만, 게재 작품의 발굴과 선정은 늘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번 호 역시 “다시, 정원을 말하다”와 긴밀하게 연관되는 작품을 싣지 못한 점, 아쉬움으로 남는다. 유럽산 근작의 게재를 헌신적으로 진행해 주고 있는 런던의 해외리포터 박경의·이윤주 씨에게, 해외의 최신 작품, 공모, 전시정보를 발굴·취재해 주고 있는 미주지사장 최이규 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3월호를 인쇄소로 넘긴 지난 2월 말, 갑작스레 날아든 한예종 이종호 교수의 안타까운 소식은 우리 모두를 망연자실하게 했다. 1월호에 실었던 그의 마로니에공원 원고 끝 부분을 다시 옮겨 적는다. “오늘날 도시 공공 영역이란 사유와 공유를 떠나공적으로 쓰이는 영역 모두를 말한다. 이러한 영역이 연결망을 이룬다면 그 하나하나의 힘을 합친 것이상의 힘을 발휘할 것이며, 이는 함께 사는 사회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부디 평화로운 세상에서 영면하시길.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기록과 기억
    그녀가 속삭였다. “조경 잡지라고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조경 이야기만 해대면 재미없어. 읽는 사람들이 현기증 나지 않겠어. 좀 다른 이야기를 해봐. 머리는 쥐어뜯으라고 있는 게 아니야.” 그래서 아예 다른 방향으로 궁리를 시작하다가, 문득 그를 떠올렸다. 어느 해, 아버지가 한 단체의 장을 맡게 되었다. 돈이 되는 감투가 아니었고, 도리어 돈과 시간과 노력을 봉사의 마음으로 쏟아 부어야 하는 자리였다. 대학에 다니던 아들은 휴학을 하고 막 공익근무를 시작한 때였고, 딸은 그 해 갓 대학에 입학했다. 아버지는 자신도 결과적으로 공익근무를 하게 된 셈이라며, 잠시 다른 일을 하더라도 원래의 본분을 잊지 말자며 한 가지 제안을 한다. 800쪽에 달하는 앤디 워홀의 일기를 나누어 번역하자는 것. 아들이 400쪽을, 딸이 250쪽을, 아버지가 150쪽을 맡기로 공평하게(?) 분량 분담도 마쳤다. 그리고 아들은 약속대로 1년 만에 자신 몫의 번역을 마쳤다. 하지만 딸은 다른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반수를 하느라, 아버지는 단체의 회장 일에 치여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 아들이 1년의 시간을 더 투자해 800쪽의 번역을 혼자 마무리해냈다. 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1년 동안 앤디 워홀처럼 일기를 쓰겠노라, ‘다시’ 약속을 했다. 그리곤 약속을 지켰다. 꼬박 1년 동안 200자 원고지 5,000매에 달하는 일기를 써내려갔고, 한 권의 두툼한 일기장이 완성된 지 4년 만에 그 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가로 165mm, 세로 210mm인 그 책의 두께는 무려 45mm에 달한다. 거의 『환경과조경』 4권의 두께와 맞먹는다. 편집된 분량은 총 845쪽, 그러나 책값은 놀랍게도 19,500원. 2004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365일 중에서 꼭 3일이 빠지는 362일의 기록을 담고 있는 그 책은 2009년 3월 10일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란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일간지에도 블로그에도 꽤 많은 리뷰 글이 실려 있어, 아마 직접 읽어 본 분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이 책이 출간된 지 4년 후, 일기가 쓰인 시점으로부터는 꼭 10년 만인 2013년에 읽기 시작했다. “읽기 시작했다”고 표현한 것은 약간 색다른 읽기 방식을 취했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점심식사 후 1시부터 해당 날짜의 일기를 읽어나갔다. 즉 2013년 3월 2일에 2004년 3월 2일 대목을 읽었다. 3월 3일의 내용이 궁금해도 참았고, 어떤 날은 내용이 너무 짧아 아쉬움에 입맛만 다셨다. 월요일에는 이전 주의 토요일과 일요일 치를 한꺼번에 읽었다. 하지만 이 경건한(?) 책 읽기 의식은 열두 달 내내 지속되지 못했다. 일단 출발이 1월이 아닌 3월이었고, 11월 중순경 사무실을 옮기면서 그 책을 집으로 옮겨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11월 하순과 12월의 일기는 아주 빠르게 눈으로 훑고 말았다. 물론 중간에 빼먹은 날도 부지기수다. 책의 지은이는 홍지웅, ‘열린책들’이란 출판사의 대표다. 출판인의 일기이니, 당연히 예상되는 책의 기획 과정과 한 권의 책이 독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의 세세한 편집 및 마케팅 과정에 대한 언급도 빼곡히 담겨 있지만,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고, 심지어 점심값을 얼마나 지불했고, 부조금을 얼마 냈는지까지, 2004년을 살아낸 한 사람의 시시콜콜하고 내밀한 일상이 담백하게 담겨 있다. 게다가 미술은 물론 건축에 대한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이 상당한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2004년에 파주출판도시의 열린책들 사옥과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한 서울북인스티튜트의 건축 과정에 그가 관여한 덕분이다. 특히나 서울북인스티튜트는 부지 선정 단계부터 일기에 담겨 있어, 때론 흥미로운 건설지처럼 읽히기도 한다. 참고로, 앤디 워홀의 일기는 아들의 단독 번역으로 『앤디 워홀 일기』(홍예빈 역, 미메시스, 2009)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여기까지 써놓고 교정을 보느라 마무리를 미루어 놓았는데,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다. 멍하니 뉴스 속보를 클릭하는 횟수만 잦아질 뿐…. 2014년 4월 16일의 일기엔 무엇을 써야 할까? 아니 무엇인가를 쓸 수 있을까? 막막하고 먹먹하다. 처음엔 어느 출판인의 1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기억을 돕는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아무리 정보의 홍수 시대라고 해도, 또 개인의 사소한(?) 기록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유의미하고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려 했다. 조경가들의 (프로젝트) 기록도 공유되기를 희망한다는 바람도 쓰려 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과 같은 디자인 노트뿐만 아니라, 중요 프로젝트의 일지도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되고 공유된 다면 유용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기록이 넘쳐나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기록도 기억도 아닌 ‘기적’뿐이다. “그럴수록 더 꼼꼼히 기록하고 기억해야 해. 잊지 말아야해”라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