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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메디치가의 정원들
#90
피에솔레 정원이 과연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 정원의원형이었을까?
니콜로 니콜리NiccolòNiccoli(1364~1437)라는 사람이 있었다. 본래 피렌체 대상의 자손으로 태어나 가업을 물려받았으나 고대 문학에 심취하여 전 재산을 고서적 수집하는 데 탕진했다. 고서적 수집에 방해된다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니 마니아 수준도 훨씬 넘어섰던 것 같다.1 물론 고서적을 수집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이를 번역하고 정성스레 필사하여 복사본을 뜨고 주석을 달았다. 고서적 수집은 14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의 ‘인문주의자humanist’라면 누구나 앓았던 열병이었다. 인문주의자, 즉 휴머니스트라는 용어 자체가 고서적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는데 르네상스의 휴머니스트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휴머니스트와는 뜻이 좀 다르다. 일찍이 키케로 등 고대 사상가들이 설명한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2 ‘후마니타스’의 요점은 ‘인간됨’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다.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의 창조물이므로 인간됨이란 곧 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기독교 교리와는 전혀 다른 관점, 즉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됨을 정의했던 키케로 등의 고대 사상은 충격이었으며 교리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뜻했다. 기원전 1세기를 살았던 키케로의 명성은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지만 시인 페트라르카가 그를 다시 유명하게 만들었다. 1345년 베로나의 대성당 도서관에서 키케로의 친필 서신 수백 점을 발견하면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온 듯하다.
너도나도 혈안이 되어 고대 시인들과 사상가들의 책을 찾아다녔다.3 대학에 그전에 없었던 언어학, 수사학, 문학, 윤리학 등의 과목을 새로 개설하고 이를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이라고 칭했으며 이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들을 일컬어 ‘후마니스타humanista(humanist)’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휴머니스트는 곧 인문학 교수라는 뜻이었는데, 나중에는 꼭 교수가 아니더라도 인문학에 심취한 사람들을 모두 휴머니스트라고 했으므로 피렌체는 휴머니스트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자유로워진 정신으로 바라보니 사람과 세상이 아름다웠고 새로운 자유는 엄청난 창의력의 원천이 되었다. “천년간 갇혀있던 아름다운 정신이 이렇게 활짝 피어나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한다”4고 말하며 사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러나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듀런트는 “문화의 뿌리는 경제력이다. 상인, 금융인과 교회가 돈을 벌어 그것으고서적들을 수집해 고대를 되살아나게 할 수 있었다”라고 시원하게 지적한 바 있다.5 아닌 게 아니라 니콜로 니콜리가 재산을 다 쓰고 빈털터리가 되자 그의 친구였던 코시모 메디치가 자신의 은행에 무한도의 계좌를 만들어 주었다. 옛날 알렉산드리아와 같은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던 니콜리가 평생 수집하여 남긴 필사본은 모두 800점이었고 남긴 빚 또한 산더미였다. 그는 제발 이 서적들이 사방으로 팔려나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그러자 시에서 니콜리 채무 위원회를 조직했고 다시 코시모가 나섰다.그의 빚을 다 갚아줄 테니 그 대신 고서적을 모두 자기한테 넘기라는 조건을 걸었다. 그중 200점은 자신이 소장하고 나머지는 산마르코 수도원 도서관에 보관하여 대중에게 공개했다. 이것이 현재 피렌체 메디치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의 시작이 되었다.인문주의자들은 고서적 수집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고대 조각상도 수집하기 시작했다. 니콜리에게 포조 브라촐리니Poggio Bracchiolini라는 절친한 후배가 있었다.
그 역시 고서적 수집가이자 인문주의자였다. 말년을 시골에서 조용히 보내려고 근교에 빌라를 하나 샀다. 그런데 정원을 만들려고 땅을 파니 고대 대리석 조각상들이 나왔다. 문득 키케로가 묘사한 고대 빌라의 조각 정원이 생각나 정원에 세워두었더니 그 소문을 듣고 인근의 농부들이 조각상들을 주섬주섬 들고 나타났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는 땅만 파면 대리석 조각상들이 나타났다는데, 그때까지는 이를 구워서 석회로 만들어 쓰거나 깨서 건축 소재로 쓰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잖은 학자가 정원에 세워놓는 것을 보고 혹시 돈이 될까 하여 팔러 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브라촐리니의 조각 수집이 시작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친구들도 따라 했고 코시모는 이때도 편리한 방법을 썼다. 니콜리와 브라촐리니의 조각 수집품도 모두 사들인 것이다. 이것이 메디치 가문의 유명한 고대 조각 컬렉션의 시작이 되었다.
이 시기에 코시모는 피렌체 근교에 네 개의 빌라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중 세 개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넓은 포도밭, 올리브 밭, 경작지와 숲이 딸려있어 가족들의 먹거리, 마실 거리를 직접 생산했다. 나머지 하나는 그의 말년, 1451년경에 둘째 아들 조반니에게 주기 위해 산 것이다. 피에솔레Fiesole라는 도시의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중세의 작은 성을 하나 사서 주고 마음에 맞게 고쳐 지으라고 했다. 여기엔 농장이 딸려있지 않았다. 구세대의 코시모에게 시골 별장은 ‘농사도 짓는 곳’이라는 인식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으나 그의 아들 세대에서는 이미 개념이 달라진 듯했다. 인문학에 심취한 아들은 오로지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고 곡을 연주하며 소일했다. 아버지와는 달리 포도나무 접붙이기 등의 농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아름다운 레몬 나무와 붉은 꽃을 보고자 했다. 공기 좋은 피에 솔레는 이런 허약한 책벌레 아들이 지내기에 맞춤한 곳이었다. 미켈레초Michelezzo 8라는 건축가에게 의뢰하여 구식의 성을 철거하고 신개념의 빌라를 지어달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정사각형의 단정한 건축에 삼단의 테라스 정원이 나왔다. 바로 이 빌라와 정원으로 인해 ‘초기 르네상스 빌라 건축과 정원의 원형’이 탄생했다고들 한다.9 그러나 여기 문제가 좀 있다. 건축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므로 신개념의 디자인이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정원은 20세기 초에 신르네상스 개념으로 복원한 것이어서 조반니 시대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 길이 없다. 삼단 테라스 외에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므로 ‘르네상스 정원의 원형’이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그러나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기는 하다. 제일 상층 테라스에 보면 낮은 장식벽 일부가 남아있다. 이 장식벽 양쪽에 기둥이 서 있고 그 위에 로마의 흉상들이 올라앉아 있다. 벽의 모자이크 문양도 옛 로마의 것을 그대로 닮았다. 공사가 한창이던 1453년 조반니가 로마에 있는 친구로부터 옛 황제들의 흉상 열두 점을 구해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이 흉상들을 담장이나 옹벽에 배치해 두면 멋질 것 같지 않느냐고 묻는 편지도 전해진다.10 이런 정황으로 보아 조반니는 아마도 그가 흠모해 마지않았던 키케로나 플리니우스 등 먼 선조들의 빌라 정원을 재현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 정원의 주인공은 레몬 나무도, 붉은 꽃도 아닌 선조들의 흉상이었다. 이는 우리가 전통 정원을 짓고 꽃담을 세우고 문인석과 무인석을 구해 세워놓는 것과 같은 욕구였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정원은 이렇게 책에서만 접한 선조들의 정원을 재구성하면서 시작되었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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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질리언스 읽기 3] 새로운 사고의 틀, 리질리언스 사고
리질리언스 사고에서 해답을 찾다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은 3.5m의 거대한 크기와 20톤의 엄청난 무게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석상에 숨어있는 기이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몰려들었다. AD 800년경 이스터 섬에 정착한 원주민은 비옥한 토양, 다양한 포유류와 조류가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 야자나무로 이루어진 넓은 숲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숲을 태워 화전 농업을 하고 야자나무를 베어 카누를 제작했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넓은 정원과 석상을 만들었다. 15세기에 이르자 이스터 섬의 모든 생물체가 멸종했고, 살아남은 인간은 생존을 위해 식육을 자행할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섬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이스터 섬 같은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보르네오 섬은 야자나무의 한 종류인 팜나무가 풍부한 지역이다. 탄소배출권거래제와 산림탄소상쇄제도의 시행으로 바이오디젤의 원료인 팜나무의 열매가 각광받고 있다. 또한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팜유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말레이시아 정부와 플랜테이션 기업은 늘어난 팜유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탄 습지림1을 불태워 팜나무 농장을 조성 중이며, 열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다량의 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하고 있다. 이같은 과도한 팜나무 플랜테이션은 주변 생태계와 지역 사회를 붕괴시킬 뿐만 아니라, 팜유 1톤을 생산하기 위해 석유 1톤을 사용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의 10배를 배출하는 모순적인 상황까지 연출하고 있다.
두 사례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생태적 문제가 모두 그 지역의 사회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자연은 인간이 없는 아름다운 미지의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은 인간과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사회생태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생태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관계자actor라 한다. 이스터 섬의 경우 원주민, 보르네오 섬의 경우 말레이시아 정부, 플랜테이션 기업 그리고지역 주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단선적 안목으로 자연 자원을 착취하여 생산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으나, 그들이 속한 사회생태시스템의 특성인 문턱threshold, 체제regime, 적응 주기adaptive cycle를 알지 못했다. 사회생태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관계자의 자연 자원 관리는 이스터 섬의 열대 우림을 초지와 모래밭으로, 보르네오 섬의 이탄 습지림을 팜나무 농장으로 변하게 하는 체제 변환regime shift을 야기했다. 특히 보르네오 섬의 경우 지역 스케일의 생태적 문제인 이산화탄소 대량 발생과 더 큰 스케일의 생태적 문제인 기후 변화가 파나키panarchy라는 개념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생태적 문제의 다변화 및 대형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두 시스템의 관계자는 어떻게 사회생태시스템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사고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리질리언스 사고의 틀, 사회생태시스템
리질리언스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사회생태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회생태시스템이란 사회 시스템과 생태 시스템으로 구성된 하나의 통합 시스템을 말한다. 이는 경제학자와 사회학자 그리고 과학자가 문제를 세분화하여 각자의 대안을 찾는 환원주의와 정반대의 개념이다. 사회생태시스템은 문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모여 전체 시스템의 해결책을 도출하는 전일주의 개념이다. 다양한 문제를 사회생태시스템에 대입하여 이해하면 그 문제들의 특별한 의미와 새로운 대안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사회에 큰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사회생태시스템의 구성 요소인 사회 시스템과 생태 시스템은 다양한 스케일로 구분된다. 생태 시스템은 생태계 서비스를 사회 시스템에게 제공한다. 반면 사회 시스템은 생태 시스템의 자원을 이용하거나 토지 이용을 변경시키지만, 동시에 생태 시스템을 보전하기도 한다. 두 시스템의 연결 고리가 얼마나 긴밀한지, 연결 고리를 통해 자원들이 얼마나 원활하게 순환하는지에 따라 외부 교란에 대한 사회생태시스템의 리질리언스가 결정된다.
사회생태시스템은 스케일-도메인 매트릭스로 표현할 수 있다. 스케일은 ‘소규모-중규모-대규모’로 구성된다. ‘주요 스케일’을 중규모로 설정하여 사회생태시스템의 경계가 규정된다. 도메인은 ‘사회적-경제적-생태적’으로 구성되며, 각 도메인은 스케일을 넘나들며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대규모 스케일의 변화와 각 도메인의 연결 고리를 감지하기 어려운 동물이기에 장기간의 안목이 필요한 정책이나 대안을 세우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생태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리질리언스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개념이 필요하며, 이 개념들이 머릿속에서 구체화되어야 한다.
첫째, 인간은 사회생태시스템 속에 존재한다. 과거의 이스터 섬이든, 현재의 보르네오 섬 혹은 서울 한복판이든 간에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곳의 생태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 시스템 혹은 생태 시스템이 변한다면 다른 시스템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일부 시스템을 따로 떼어놓고 해석한다면 사회생태시스템의 전체적인 행태와 구조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둘째, 사회생태시스템은 복잡계다. 사회 시스템과 생태 시스템을 잇는 연결 고리는 매우 복잡해서 어떤 교란이 일어났을 때, 전체 시스템이 언제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또한 최적의 평형 상태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개 이상 존재한다. 따라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억측에 불과하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로렌츠Edward Norton Lorenz의 주장은 이와 일맥상통한다. 기상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생태학 등 모든 분야에서 불확실성을 복잡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활용하고 있다.
셋째, 사회생태시스템의 속성인 리질리언스는 지속가능성의 핵심 개념이다. 리질리언스란 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시스템의 능력이다. 리질리언스가 높은 사회생태시스템은 외부 교란과 직면했을 때 바람직하지 않은 시스템으로 변환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교란을 회피할 수 있는 사회생태시스템의 능력과 재화 및 서비스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리질리언스가 꼭 사회생태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태풍, 쓰나미, 부동산침체 등과 같은 위기를 잘 관리해 인간 사회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면 리질리언스가 필요하다.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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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제학] 공원 공급의 효율성과 형평성
경제학자가 좇는 두 마리 토끼, 효율과 형평
철학자가 진리를 추구하듯 경제학자도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 바로 효율efficiency과 형평equity이다. 경제학은 세상의 자원이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하여 탄생한 학문이다. 따라서 경제학자의 관심사는 부족한 자원으로 무엇을 생산하고,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누가 사용할 것인가에 쏠려있다. 그들은 전자를 자원 배분allocation of resources의 문제, 후자를 소득 분배distribution of income의 문제라고 부른다. 물론 효율성은 자원 배분과, 형평성은 소득 분배와 관련이 깊다.1 문제는 효율적인 상태가 항상 형평성 또한 달성된 상태인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아니 그보다는 이 두 가지 가치가 동시에 달성된 상태를 우리가 본 적이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효율과 형평은 제각기 날뛰는 두 마리의 토끼와 같다.
주류 경제학은 시장기구가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장을 둘러싼 조건이 이를 허용하지 않거나, 재화나 서비스의 특성이 이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공원과 같은 공공재가 그렇다. 정부는 시장실패를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공원의 공급에 나선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원의 적정량을 찾아내는 것부터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지난 두 차례의 연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전문가에 의한 비용편익분석이나 시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는 시장기구를 대신하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력한 접근방법이지만, 공원의 적정량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효율성에 더하여 형평성까지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형평성은 애초부터 시장기구에 의해 달성되기 어려운 가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효율성과 형평성을 모두 고려한 공원의 적정량을 찾아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한정된 땅에 공원을 얼마나 만들고 주차장을 얼마나 만들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하자. 경제학에서는 효율성에 대해서 생산의 효율성과 교환의 효율성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한다. 생산의 효율성이란 우리 사회가 보유한 자원으로 공원과 주차장을 각각 얼마나 생산할지 따지는 것이다. 효율성의 달성 여부는 동일한 자원을 투입하여 지금보다 공원이나 주차장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지 여부를 통해 판단한다. 반면 교환의 효율성이란 공원과 주차장으로부터 사람들이느끼는 효용의 크기를 따지는 것이다. 효율성의 달성 여부는 어떤 사람의 효용을 희생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의 효용을 증가시킬 수 있는지 여부를 통해 판단한다.3 이 두 가지 측면의 효율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야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물론 실제로는 이렇게 조화를 이룬 상태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이렇게 조화를 이룬 상태가 매우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많은 효율적인 상태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 하나를 골라야 한다.4 여기서 가치, 또는 선호 체계의 문제가 개입한다. 각 개인이 느끼는 효용의 크기를 조합하여 사회 전체적인 후생의 크기를 도출하기 위해 경제학에서는 ‘사회후생함수’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이 사회후생함수의 모양이 그 사회가 가진 가치 또는 선호 체계를 반영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끌어낸 계몽사상은 공리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식에서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리주의의 사회후생함수를 수식으로 나타내면 <식 1>과 같다. 사회 전체적인 후생의 크기 SWSocial Welfare는 각 개인(A, B, …)이 느끼는 효용utility의 크기를 단순히 합한 것이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어떤 선택에 의해서 SW가 커진다면 우리는 옳은 판단을 한 것이다. 여기서 각 개인 간 형평성은 고려될 여지가 없다. 이에 반해 공리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공정으로서의 정의 justice as fairness를 주장한 롤스John Rawls는 그의 저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서 <식 2>와 같은 사회후생함수를 제시하였다. 여기서 SW는 각 개인이 느끼는 효용 중 가장 작은 값minimum이다. 효용의 수준이 가장 낮은 개인이 관심의 대상인 롤스의 모형에서는 사회적 최약자의 효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사회 전체적인 후생 또한 증가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실제로 어느 사회의 가치 또는 선호 체계는 이 두 함수 사이 어디엔가 존재할 것이다. 문제는 이를 파악하는 것이 효율적인 상태를 찾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 했으면 사적 재화와 같이 시장기구가 작동하지 않는 공공재에 대해서 그 적정량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더 이상 말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의 목적이 단지 그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공원을 계획하는 관행을 한번 되돌아보는 데 있다. 현실적으로 도시계획상 공원의 면적은 원단위를 통해 결정된다. 원단위는 아마도 사람이 살기에 좋다고 평가되는 여러 도시들의 사례를 통해 도출된 것이라 생각된다.5 그런데 공공재에 대한 앞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적정량은 일률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공공재의 적정량은 생산의 효율성, 교환의 효율성뿐 아니라 그 사회의 가치 또는 선호 체계와도 연관되기 때문에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원단위라는 접근 방법은 그 출발에서부터 공원의 적정량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있다. 이러한 원단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정교한 원단위가 아니다. 그보다는 시장기구의 부재를 보완할 수 있는 의사소통 또는 정보 교환의 수단이 필요하다.
한편 다른 공공재와 구별되는 공원만의 특징은 무엇일까? 공원이 국방이나 치안과 같은 다른 공공재와 가장 다른 점은 자연을 활용하고 위치가 고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특징은 공원 공급의 효율성과 형평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서 공원의 경제학을 마친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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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9 좋지 않은 예감은 늘 맞는다면서
서울역 고가의 설계는 우리에게 좋은 경험이었을까. 아직도 간혹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을 하곤 한다. 작년 초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의 최종 엔트리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작년 1월부터 설계를 시작해서 4월 말에 제출을 하고 심사위원들을 앞에 두고 작품 발표도 했다. 처음 초청 작가 선정위원회에서 몇 차례의 선정 심의를 거쳐 초청 작가의한 사람으로 결정되었으니 참가하겠냐고 의향을 물어왔을 때, 바로 그러겠다고 답을 했다. 나 개인으로서도 영광이었고, 우리 설계사무소의 참여 경력이나 경험을 보아서라도 참여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정작 설계공모 지침을 받아 들었을 때 뭔가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초청 작가의 구성을 외국 설계사 넷, 한국 설계사 셋으로 균형을 맞춘 건 괜찮았는데, 초청 작가의 분야별 분배가 이상했다. 건축 분야 다섯 팀, 조경 분야 두 팀이었다. 원래 건축 네 팀, 조경 세 팀으로 추진했지만 건축의 반대로 지금처럼 구성되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초청된 조경 설계사가 두 팀밖에 안되고 그나마 두 팀 중 한 팀은 외국 설계사였다. 간단히 말해서 한국의 조경설계사로서는 우리만 초청된 거였다. 그래서 좋다기보다 뭔가 이거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 아니야 하는 찜찜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건 심사위원의 구성을 알았을 때였다. 총 5인의 심사위원 중 조경 한 명, 도시 한 명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이 건축 분야였다. 짐작이 되는 바가 있었다.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어떤 결과든 건축의 의지로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터득한 감으로 볼 때, 안 될 확률이 90%가 넘을 것 같은데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게다가 서울시의 디자인 분야를 총괄하는 부 시장 급 고위 공무원 한 사람이 초청 작가 중 한 사람과 매우 친하다는 루머도 있었다. 어쨌든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장밋빛 결과를 그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하기로 했다. 참여 비용도 준다는데, 그리고 참여 팀의 하나라는 자체가 이미 설계사무실로는 자랑할 만한 커리어가 되는 건데, 안할 이유가 없었다. 결과가 뻔할지라도 좋은 안을 한번 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비록 불리하기는 하지만 한번 안을 내서 비교해 보고 싶다는 경쟁심도 불끈 솟기 시작했다. 그래도 건축보다는 조경 쪽에서 푸는 안이 맞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혹 또 누가 알랴. 넓디넓은 하해와 같은 마음이 갑자기 물밀듯이 서울시와 건축계를 강타해, 분야에 상관없이 가장 좋은 안으로 우리 안을 뽑아줄지, 우리의 손을 들어줄지 모르는 일이었다.
10 뭐 고백하자면
우리의 서울역 고가 안은 지금 보아도 마음에 든다. 우리가 해서겠지만 이걸 뽑았으면 서울시민을 위해서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하지만 하나 고백하자면, 서울역 고가 설계공모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나는 서울역 고가의 보행 활용 반대론자였다. 특히 나는 서울역 고가를 뉴욕의 하이라인과 같은 선상에서 접근하는 게 그리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다. 뉴욕의 하이라인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서울역 고가가 하이라인과 얼마나 다른 지를 금방 알 것이다. 하이라인에 비해 서울역 고가는 보행 접근성이 좋지 않고, 차도 한가운데에 놓여 있어 공간적 여건도 전혀 다르다. 높이도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다른 이유에서라면 몰라도 하이라인처럼 만들겠다는 것이 서울역 고가 보행화의 의도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공식적으로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초청 작가로 지명을 받고 나서 바로 견해를 바꿨다. 찬성으로. 서울역 고가 보행화가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말이다. 꼼꼼히 들여다보니 제법 필요한 사업이기도 했다. 소신과 지조, 우리 시대에 정말 필요한 덕목이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걸 지키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는 소신보다 우리 설계사무소를 지키고 사무소 직원들의 월급을 밀리지 않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제 집 아이들이 다 컸고, 그런대로 사무실도 굴러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이 지면이 ‘설계하는 법’에 대해 작가로서의 철학과 소신을 내세우는 자리라면, 내가 하는 이런 얘기는 도통 걸맞지 않을 것이니 안타깝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설계를 하는 것이 때론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사랑이 변하듯 소신도 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신 없는 설계’라기보다 변화에 즉각 대응하는 ‘융통성 있는 설계’라고 이해해주면 고마울 일이다.
11 누군들 지고 싶겠어
나는 지는 것이 싫다. 이기면 기쁘고 지면 우울하다. 그렇다고 졌을 때의 좌절과 우울함을 오래 간직하는 건 아니다. 곧 털어 버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거나 아예 잊기도 한다. 일을 하면서 그동안 셀 수도 없이 졌고 셀 수도 없이 이겼다. 괜찮은 건 그래도 그동안 진 것보다는 이긴 게 더 많았다는 것이다. 지지 않으려고 애쓴 덕분에, 경쟁이 삶인 곳에서 많이 이긴 탓에 지금의 설계사무실을 지탱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싸우지 않고 설계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일할기회는 적고 할 사람은 많다. 단순한 논리다. 좋은 일일수록 하려는 사람은 더 많고 더 많이 싸워야 한다. 공식적인 공모전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을 따기 위해서는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일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다. 우리도 상처를 준 사람들이 많고 우리도 상처를 받았다. 경쟁에서 이긴다는 건 누구에게든 상처를 주었다는 얘기다. 프로젝트의 소개를 받아 건축주를 만난 자리에서 한참 얘기를 하다가 원 설계사가 있다는 걸 알고 후퇴한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여건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 기회에 우리에게 상처를 받은 분들에게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오해가 원인이 되어 사무실 간에 감정이 쌓이는 경우도 있다. 청계천 복원 당시, 사업의 중책을 맡고 있는 분의 선거 캠프에 우리가 도움을 준 적이 있다. 그 일이 고마웠는지 일을 딸 수 있을지도 모르니 가보라고 추천한 건설사가 몇 군데 있었다. 그중 한 곳은 이미 원설계사가 있어서 같이 작업 중이었다. 외국 사례 출장도 이미 함께 다녀왔고 일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턴키 설계 방식 때문에 비밀리에 진행되어 누가 참여하는 지 알려지지 않는 탓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로 서는 ‘아, 그랬군요’하고 물러나야 하는 시점이었다. 해당 주관 엔지니어링 임원이 미안해서인지 우리를 붙잡고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볼 테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어떤 얘기가 그 회사 임원을 통해 원 설계사에게 전달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바로 포기했고 다른 건설사의 팀에 참여했다. 설계사가 이미 정해진 줄 알았다. 면 이 작은 동네에서, 이 좁은 업계에서 누가 일을 달라고 조를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짜증이 날 정도로 여기저기서 소리를 듣고 구체적인 대응도 받았다. 아무리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지만 이쯤 되면 피곤해진다.
서울역 고가 설계공모의 결과는 당연히 예상대로였다. 당선작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의아하기는 하지만 나도 좋아하는 작가라 당선 작가에 대해서는 아무 불만이 없다. 하지만 심사 과정은 좀 이상했다. 본래 당선작가의 프레젠테이션 시간은 오후였지만, 발표 후 오후 비행기로 한국을 떠나야하기 때문에 오전에 발표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싶었다. 심사 결과를 그날 저녁에 발표하고 다음날 당선 작가의 기자 회견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작품 발표가 끝나고 아무리 기다려도 심사 결과가 공지되지 않았다. 저녁 9시가 넘어서 결과 발표가 며칠 미루어졌다는 연락이 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선 작가가 오후에 출국을 하고 며칠 뒤에 돌아오기 때문에 그 사람이 기자 회견을 할 수 있는 시기에 맞추어 심사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거였다. 기다리고 있었던 우리는 뭐지 그때서야 ‘들러리도 이런 들러리가 없네’하고 허허 웃음이 났다. 그런 훌륭한 작가가 참여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서 그랬는지, 지침을 바꾸어 가면서까지 그 사람의 일정에 맞추는 서울시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울함이 다른 프로젝트보다 좀 더 오래간 이유가 그랬다.
12 건축, 애증의 관계
떨어진 작가로서 당선작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건 조심스럽다.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왜 그러나 싶을 것이고, 그렇다고 비판을 하기에는 감정이 섞여 있다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나는 당선 작가인 비니 마스의 작품을 몇 개 접한 적 있고 작품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비니 마스는 한마디로 멋진 현대 건축가 중 한 명이다. 델프트 공과대학교에서 그 사람이 주관한다는 더 와이 팩토리(The Why Factory)는 ‘질문 공장’이라는 의미답게 건축에 관련된 모든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강의의 장으로 유명하다. 주황색 아니면 노란색이라고 기억되는데, 로비 중앙의 스탠드 겸 계단 구조물은 정말 멋지다! 하지만 나는 그가 던지는 화두, ‘More with More’ 같은 말장난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렘 콜하스의 ‘More is More?’ 아이고, 무엇을 어떻게 주장하든 모두 미스 반 데어 로에의 ‘Less is More’의 값싼 아류들이다. 어찌되었던 비니 마스는 실험적인 건축을 추구하며, 네덜란드 건축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대단한 건축가임에 틀림없다.
고가도로는 일종의 외부 공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고가도로는 바닥만을 갖고 있으며 벽과 천장이 없는 열린 공간이다. 열린 외부 공간을 누가 설계하는 것이 가장 옳을까. ‘외부 공간이니까 조경이 해야해’라는 말은 그리 논리적이지 않다.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옳다. 그럼 누가 더 잘할 수 있느냐다. 물론 건축하는 사람들도 천차만별이고 조경하는 사람 중에는 뛰어난 건축적인 감각과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아서 어느 분야가 해야 한다고 꼬집어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벽과 천장이 없는 열린 공간이라는 공간의 속성상 서울역 고가는 조경하는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다는 게 내 견해다. 서울역 고가는 독특한 여건 하에 있지만 어찌됐든 외부 공간의 한 부류다. 건축 분야가 건축 공간 없이 외부 공간 만을 주 대상으로 다루게 되면 자신의 전문성을 잃기 쉽다. 베르나르 츄미의 라빌레트는 독특한 경우다. 건축적인 매스를 해체시켜 공원에 뿌려놓았다. 건축적인 해법으로 외부 공간을 다룬 셈이다. 만약, 외부 공간을 건축가가 건축적인 방법으로 풀지 않고 더 나아가서 조경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나 소재—예를 들면, 수목 자체나 수목의 배치—로 설계를 풀려한다면 재앙이 시작된다. 이 견해의 타당성은 역설적으로 당선작의 내용에서 드러난다. 차라리 조성룡의 설계안이 건축가에 의한, 건축가의 안답다.
비니 마스에게 서울역 고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매스를 다루는 천재적인 창의성 그리고 다른 사람이 따라오기 어려운 미적 균형, 상상을 초월하는 실험성 등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멋진 소양은 서울역 고가에서 발휘되기 쉽지 않다. 새로운 교량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교량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행이란 다소 단순한 옥외 공간의 기능을 담아내야 하는 게 서울역 고가에 주어진 과제이다. 쉽게 말해, 서울역 고가는 탁월한 건축적 감각을 선보이기엔 걸맞지 않은 대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비니 마스는 참여를 했고 또 서울시는 비니 마스의 작품을 뽑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의 이름을 걸고 싶었던 게지’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그래도 건축가 중에는 일부러 전화를 해서 우리 안의 장점을 언급해주고, 당선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 안의 장점을 읽을 수 있는 건축가가 있다는 건 그나마 고맙고 꽤 위안이 되는 일이다.
13 서울애벌레
누구는 전체 서울역 고가의 형태를 나무로 보았지만, 나는 서울역 고가를 한 마리의 애벌레로 보고 싶었다. 서울역 고가를 차도에서 보도로 바꾼다는 의미는 단지 보행 환경의 강조라기보다 달리기만 했던 서울이 ‘느림’과 ‘느림의 도시’를 지향하는 선언이라고 보았다. 작품의 슬로건도 원래는 서울라바(Seoul Larva)라고 하려 했었다. ‘라바’라는 우리나라의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도 있어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제목이라고 보았다. ‘애벌레’라는 어휘가 지칭하는 대상이 표현하는 건 느림,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생태적이며 자연적이다 등으로, 애벌레는 그 모든 의미를 잘 함축하는 메타포고 멋진 알레고리라고 봤다.
우리 팀원들은 그 제목을 좋아했는지 모르지만, 건축 파트너들로부터는 격한 비판을 받았다. 너무 장난스럽다는 것이다. 결국 ‘느림, 영혼, 서울(Slow, Soul, Seoul)’이라는 애매하고 평범한 제목이 달리게 됐다. 나중에 서울수목원 같은 제목을 보게 되면서 그냥 강하게 밀어 붙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노란색—차도 중앙선의 노란색은 차도를 다른 공간과 구별하는 가장 강한 지표다. 또한 보행을 유도하는 점자 블록의 노란색은 차도와 보도의 분리 또는 보행 유도선으로 쓰이므로 여러모로 우리의 설계와 잘 맞는 듯 보였다—은 우리가 통상 애벌레라는 대상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색이기도 했다. 우리가 만든 개념 다이어그램 중에 노란선들이 서울역 고가 밖으로부터 서울역 고가로 밝게 모여드는 다이어그램이 있다. 우리가 노란색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느림, 애벌레, 노란색, 걷기, 쉬기, 머무르기, 3.5m, 살아있는 유기체, 17m, 13톤, 거더(girder), 슬래브, 아스콘, 복층 패스(path) 또는 복층 데크, 멋지게 보이기, 바람, 초지, 모듈, 우물 마루, 그늘 등이 우리가 염두에 두었던 설계 어휘였다.
14 좁아서 어떡할 건데
서울역 고가의 슬래브는 두께가 25cm밖에 되지 않고 난간과 거더 높이를 더해도 120cm에 불과하다. 폭원 100m에 달하는 한강로에서 볼 때 그리 인상적인 시각 대상물이 될 수 없다. 아마 얇은 종이판 같은 것으로 읽힐 것이다. 고가 상부 슬래브 위에 키 큰 나무를 심는 것도 우스울 것으로 판단했다. 비례가 안 맞을 게 뻔했다. 그럼 나무는 안 심는다 치고 저 얇아 빠진 구조물은 어떻게 하지. 빈약한 슬래브와 더불어 서울역 고가의 폭도 걱정이 됐다. 옛날 서울역 광장으로 내려가던 램프 도로가 있던 부위처럼 넓은 곳도 있긴 하지만, 10m의 폭이 대부분의 구간이다. 800m의 길을 걷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또 걷기만 하려고 17m를 오를 사람은 없을 테니 걷고 쉬고 머무르는 모든 공간 수요를 다 담으려면 충분한 폭원이 필요했다. 걷기엔 폭원 10m에 녹지를 일부 두어도 나쁘지 않다. 잠시 쉬는 공간으로도 아주 좁지는 않다. 하이라인이나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도 폭이 10m 내외인 구간이 꽤 있다. 하지만 머무르는 공간까지 포함하려면 폭 10m로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최소 현재 폭의 두 배 정도는 필요하다고 보았다.
접근 동선과 보행 밀도를 시뮬레이션 해보면 서울역 고가는 대체적으로 모든 구간이 좁다. 특히 한강로 구간에서 보행 적체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강로 구간은 숭례문을 바라보기에 최고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한강 쪽의 한강로가 꽤 그럴듯한 개방감을 준다. 때문에 조망을 하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필히 머무르고 쉬는 장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그 구간이 10m의 여유밖에 없는 한정된 고가 상부라는 점이다.
하이라인과 프롬나드 플랑테를 잠시 되돌아보자. 하이라인이나 프롬나드 플랑테의 폭은 평균 12~15m가 넘는 구간이 많다. 운이 좋은 경우다. 10m 내외의 구간도 인접한 진출입 동선이 많아서 보행 적체 없이 무난히 보행의 흐름을 소화한다. 폭원에 여유가 있으니까 충분한 녹지와 쉬는 공간을 만들어주고도 오가는 보행자를 위한 보행로는 넉넉한 폭원을 유지한다. 우리의 서울역 고가가 하이라인과 다른 맥락에 있다는 것을 간명히 보여주는 내용이다.
15복층의 라바 데크(Larva Deck)
우리는 복층의 보행로인 더블 데크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더블 데크의 설치 여부는 의외로 초기 개념 회의 때부터 등장했다. 건축 파트너들도 전폭적으로 찬성했다. 좁은 폭원의 문제를 더블 데크가 해결할 수 있는데다가, 빈약한 서울역 고가의 몸체를 키울 수 있는 방안이라 보았다. 우리가 취하려는 라바의 개념과 형태적 유사성도 잘 맞았다. 복층의 보행 패스는 두툼한 노란색 피부를 두르고 시각적 랜드마크가 되어, 한강로에서 바라보면 마치 느린 애벌레 한 마리가 꿈틀꿈틀 기어가는 모습으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블 데크의 구조 문제는 지게 모양의 보강 기둥으로 해결했다. 복층 데크의 또 하나의 장점은 그늘을 줄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키 큰 나무를 심지 못한다고 보았을 때 서울역 고가의 상부는 뙤약볕에 노출되게 된다. 건물이 바로 인접해있는 프롬나드 플랑테나 하이라인은 주변 건물이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에 상부에 키 큰 나무를 많이 심지 않아도 좋다. 키 큰 나무를 심은 곳도 있지만 그런 경우 고가 철도 하부의 아치 두께가 충분해 키 큰 나무를 심더라도 비례가 생뚱맞지는 않다. 우리가 제안한 더블 데크는 아래층 데크에 그늘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을 마련해준다.
우리의 의욕에 비해 더블 데크의 의도와 의미는 심사위원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CG 상의 실수였을수도 있는데, 더블 데크가 건물처럼 읽히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 전체 조감도가 실수였다. 서울역 고가가 전체적으로 읽히고 더블 데크가 복층 보행 패스로서 부분적으로 강조되는 방식이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의 조감도는 고가에 건축물을 얹어 놓은 것처럼 읽히는데다가 더블 데크가 너무 강조된 느낌이었다. 문제를 알았을 때는 이미 조감도가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 형태를 꼼꼼히 뜯어보면 알겠지만, 더블 데크는 복층의 멋진 보행로일 뿐 아니라 숭례문을 바라보는 최고의 조망 스탠드 겸 소규모 문화 공연이 가능한 행잉 스튜디오다. 이렇듯 우리에게 더블 데크는 꼭 필요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의도가 잘 읽히지 않았을 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 같은 것이기도 했다. 더블 데크의 유려한 매스와 디테일은 같은 팀원이었던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서예례 교수가 완성했다.
16 하이라인과 비슷하다고?
심사위원들 앞에서 작품 발표를 할 때 하이라인에 대한 얘기를 듣거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발표 순서가 오후로 바뀐 탓에 한참을 기다렸다 발표를 시작했다. 발표장에는 발표자인 나와 서예례 교수가 함께 들어갔다. 열심히 발표를 했다. 연습도 많이 했고 발표문을 몇 번이나 고쳐 썼는지 모른다. 동시통역을 한다기에 미리 한글 원고도 준비해 통역사에게 전달했다. 발표가 끝나고 질문이 시작됐다. 도시 분야의 한국 심사위원의 질문이 있었고 답변을 했다. 두 번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공공 건축가라는 심사위원이었는데 그 양반 질문이 묘했다. 질문을 의역하지 않고 직역해보면, ‘하이라인과 유사하게 보이는데 왜 하이라인처럼 디자인했느냐’는 것이었다. 하이라인과 유사하게 본 것도 의아한데 왜 그렇게 했느냐 하니 참 황당했다. 같잖은 질문이었지만 그래도 성의껏 답변을 했다. 내 답변은 대충 이랬다. “하이라인과 유사하게 보인다는 건 우리에게 그리 나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하이라인의 성공으로 볼 때 칭찬으로 들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어쨌든 우리 안은 하이라인과 많이 다릅니다. 같을 수가 없지요. 주변 공간의 맥락이 다르고 바탕이 되는 구조체의 제원도 많이 다릅니다. 아마도 우리가 고가 상부에서 표현한 초지로만 구성된 CG의 뷰들이 다소 하이라인의 이미지들과 유사한 까닭에 그리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안은 다릅니다.”
스페인 심사위원의 질문은 질문이라기보다 지적 같았다. 성의껏 답변하면 예의상이라도 고개를 끄덕인다든지 알았다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반응이 썩 마뜩찮았다. 그때 하이라인에 대한 건축계의 부정적 인식이 서울역 고가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하이라인 공모전 때 자하 하디드 같은 건축가의 안이 아닌, 조경가 제임스 코너의 안이 선정된 것에 대한 건축계의 불만이 대단하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게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십 년 가까이 지난 이 시점에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면 안 되는 건데, 그 얘기를 내가 듣고 있었다. 절대 다시 하이라인이어서는 안 돼, 조경가가 풀어서는 안 돼 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들은 느낌이랄까. 지나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때 분위기는 확실히 그랬다.
이유를 정말 이해할 수 없지만, 서울역 고가가 하이라인의 재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건축계에서 있었던 건 확실하다. 처음 서울역 고가의 보행화가 하이라인의 벤치마킹에서 시작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추진하고 마무리하는 건축계의 입장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서울역 고가 설계에서 건축과 조경의 대결 구도는 피해야 했다. 누가 되었든 순리대로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좋았다. 나야 물론 조경쪽에서 하는 게 순리라고 보지만, 더 잘하는 사람이 건축가라면 상관없다. 미리 건축가가 해야 한다고 정해놓고 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좋았다.
17 개념과 슬로건의 차이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위안을 해본다. 건축 파트너들과 함께 개념에 대해 토의했던 오랜 논의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 매끄럽기보다 싸우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덕분에 개념과 설계에 대한 생각을 팀원들과 함께 리뷰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설계 개념, 이리 많이 쓰면서도 정의되지 않은 어휘가 또 있을까 싶다. 개념이란 설계를 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 설계를 시작하고 발전시키며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아니면 그 자체가 설계 내용의 몸체를 이루는 어떤 것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설계 개념과 슬로건 또는 캐치프레이즈를 쉽게 혼동한다. 우리가 서울역 고가에 내세웠던 ‘Slow, Soul, Seoul’은 개념일까 아니면 슬로건일까. 슬로건이다. 슬로건은 그냥 작품 제목 같은 것이다.
개념이 슬로건과 다른 점은 개념은 설계를 직접적으로 관장하는 도구이고 수단이라는 것이다. 설계를 직접적으로 관장하거나 돕는다는 말은 설계의 선을 내고 형태를 잡는 데 개념이 활용된다는 것이다. 설계에 사용되는 선과 형태를 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은 잘못 끌려왔거나 아예 처음부터 있지 않았던 것이다. 슬로건은 설계의 선을 내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가 없고 관심도 없다. 슬로건은 밖으로 내놓기 위한 것이고, 개념은 안에서 쓰는 것이다. 개념은 밖으로 나올때도 있고 그냥 사라질 때도 있다. 개념은 나타나는 게 목적이 아니고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다. 슬로건은 나타나야 하고 개념은 쓰여야 한다. 서울역 고가에서 우리가 사용한 설계 개념은 ‘애벌레’다. 애벌레가 갖는 특성, 보드랍고 유연하며 느린 움직임들은 실제 서울역 고가의 선을 내는데 사용됐다. 더블 데크의 형상이 한강로에서 볼 때 두툼한 부드러움의 노란색 애벌레로 읽혔으면 했으니, 애벌레는 개념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
개념과 슬로건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둘 다 필요하다. 비록 설계를 직접 도울 수는 없어도 슬로건은 사람들을 작품에 주목하게 하는 가장 효율적 수단이다. 슬로건은 홍보다. 우리는 ‘비창(Pathetique)’이란 제목을 통해서 베토벤의 작품을 접한다. 비창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을 지칭하는 제목이자 슬로건이다. 쉽게 얘기해 설계가 끝나고 모여서 작품을 무엇으로 부를까 생각하고 있다면 슬로건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념은 나무, 달, 지렁이, 땅벌레 등과 같이 구체적이어야 하고 눈에 쉽게 그리거나 상상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 꼭 살아있는 대상물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동산 또는 오름, 계곡, 폭포, 강, 바다 등과 같이 지형일 수도 있고 다리, 탑, 계단 같은 인공 구조물일수도 있다. 바다 보다 아틀란틱(Atlantic)이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한 개념이 될 수 있다. 파리의 아틀랑티크 정원(Le Jardin Atlantique)은 ‘대서양으로 향하는 TGV 역의 지고지순한 소망’을 슬로건으로 하고, 개념으로 대서양의 파도와 해안의 바람을 담아냈다. 정원의 공간 곳곳에 대서양을 향한 꿈과 소망이 오롯이 담겨있다.
18 청심 홍심
우리 조경의 경우, 슬로건을 개념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건 경계해야 할 일이다. 화합, 지속가능한 생태, 그린 코리더 등과 같은 건 아무래도 슬로건이지 개념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늘 슬로건과 개념의 구분이 명확한 것은 아니어서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구분이 어려울 때도 있다는 걸 덧붙여 둔다. 우리 설계 중에 독특한 사례가 하나 있는데, 2014년 여름에 한 조각 공원 설계다. ‘청심’이라는 재단에서 추진한 조각 공원 청심아트파크(Chung-Sim Art Park)다. 청심은 아마도 우리 회사의 프로젝트 중에 가장 화려한 그리고 가장 다양한 설계 개념과 슬로건으로 무장한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이미 몇몇 유명 조각가의 작품이 선정된상태였기 때문에, 거꾸로 선정된 조각 작품들을 설명할 수 있는 세부적인 설계 개념과 그것들을 하나 또는 여럿으로 묶는 슬로건이 필요했다. 조각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약 1.2km의 순환 동선에서, 가는 길은 예술가의 삶과 죽음을 대상으로 예술가의 한정된 삶, 즉 사랑과 짧은 삶에 대한 아쉬움과 죽음을, 오는 길은 예술가가 죽고 난 이후 영원으로 승화된 예술의 세계, 즉 균형, 대칭, 조화 등을 다뤘다. ‘예술가는 죽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게 청심아트파크가 지향하는 통通 슬로건이었다.
가는 길에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 뮤즈, 자연, 뱀 그리고 죽음을 의미하는 것들, 어둠, 갇힘, 또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 거울, 빛, 비침 등이 개념으로 사용됐다. 오는 길에는 영원한 예술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들 즉, 예술의 요소, 균형, 대칭, 절제, 조화 등의 개념—물론 균형, 대칭 등은 아직 추상적인 어휘들이어서 개념이 될 수 있을까 싶지만, 이 프로젝트의 경우는 무조건 개념으로 사용해야만 했다—을 물, 돌, 나무들을 소재로 사용했다. 청심 프로젝트는 넘치는 슬로건과 무지막지한 개념을 무차별로 제한 없이 마음껏 전개해도 좋았다. 오히려 개념과 슬로건의 ‘지나침’이 요구되는 프로젝트였다. 우리 안이 채택이 되지 않아서 결국 청심은 홍심이 돼버렸지만, 결과 여부에 상관없이 설계 과정을 가장 즐겼던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개념은 평범한 설계에 번득임이 깃들게 하고, 슬로건은 이름 없는 설계에 족보를 만들어준다. 어떻게든 어깨를 견주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의 우리 설계 분야에서,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에서, 그나마 개념과 슬로건 만들기는 큰 위안이다.
진양교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조경학과 및 도시지역계획학과에서 공부했으며, 강원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1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2년부터 CA조경기술사사무소를 열고 실무의 최전방을 절절하게 체험하고 있다. 2010년 봄부터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의 전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주요 설계 작품으로 하늘공원, 한강 반포공원 등이있으며, 저서로 『기억과 상징으로의 여행』, 『건축의 바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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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그림자
그림자는 빛이 지닌 속성인 직진성에서 연유한다. 절대적이며 원초적인 속성을 지닌 빛이 가던 길을 마저 가지 못하고 부딪쳐 그림자라는 감각적인 현상학적 물체를 만들어낸다. 무릇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존재의 이유를 막론하고 세상에 태어나면생명의 상징을 갖게 되는데, 그림자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림자에 대한 여러 이야기는 신화에서 과학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종교적 상징, 심리학, 문화, 예술 등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각기 다르지만, 그림자의 생명성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살아있지 않지만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 참으로 기이하면서 신비롭다.
설계 도면을 그리다 마지막에 수목과 시설물의 그림자를 넣고 나면 무언가 꽉 채웠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일상 속에서 그림자가 가장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이때다. 설계가 조금 덜 됐다고 생각되지만, 그림자를 넣고 나면 도면이 꽉 차 보이니 눈속임을 할 수 있다.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뿌듯하게 집으로 향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막상 협의를 하러 가서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이라도 마주하게 되면 여지없이 처참하게 당하고 만다. 그림자가 장식으로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같은 삼복더위에 바깥에서 마주하는 나무 그림자는 에어컨의 시원함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그늘의 방향이 변하니, 그 위치를 예측해 설계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우리를 위해 뜨거운 태양과 격렬하게 마주하고 있는 나무란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림자에게 약간의 고마움을 느낄 뿐.
시설물을 설계할 때면 형태를 만들고 색을 입히고 재료를 덮고 난 후, 그 모양에 혹해 빠져들 때가 있다. 나름대로 비례도 좋고 깔도 좋아서 명품이 될 것 같은 예감에 설레기도 한다. 그렇지만 막상 바깥에 나가면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게 된다. 빛이다. 빛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빛은 태양 고도에 따라 변하기에 하루 또는 일년 내내 같은 모습으로 있을 수 없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www.studio8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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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정독도서관의 여름 뜰
‘정독’이라는 어감은 어쩐지 좀 무겁다. 강한 받침이 연속될 뿐 아니라 혀뿌리가 목구멍을 탁 막으면서 나오는 소리로 끝나는지라, 여운도 없이 냉정하기만 하다. 더욱이 ‘도서관’이라는 좀 지루한 느낌의 단어가 이어지다보니, 이 공간에는 참 무거운 공기가 흐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답사를 위해 찾은 일행의 발걸음도, 잡지에 실을 만한 장면을 찾아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도 좀 크게 느껴져 고요히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살며시 미안함이 느껴졌다. 그러니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이 공간에 그대로 스며 있다는 생각도 틀리지는 않아 보인다.
스스로를 수형자로 여기고 마치 감옥에 갇힌 듯 공부에 열중하는 이들에게 바깥의 뜰은 어떤 의미일까? 삼십 년도 더 지난 고교 시절, 새벽잠을 설치고 도달한 도서관 앞 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던 열여섯 소년은 그 뜰을 기억하지 못한다.
바르게 읽는다는 뜻의 정독正讀도서관에서 중첩된 시간을 읽어내는 일은 즐겁다. 1976년에 경기고등학교가 지금의 강남 삼성동으로 이전하면서 그 터에 지어진 것이 오늘의 정독도서관이다. 벌써 40년이나 되었다. 당시 교사校舍로 쓰이던 건물들이 보수되어 도서관이 되었고, 학교 운동장으로 사용되던 곳을 정원으로 만든것이 이 뜰의 역사다. 도서관으로 1977년 1월에 개관했으니, 1년 미만의 공사를 마치고 만들어진 뜰이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개관 당시 도서관보의 표지에 건물과 뜰의 조감도가 그려져 있는데,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위성 사진에서 보면 마치 한자 ‘서울 경景’을 본뜬 것 같은 정형적인 평면 구조가 선명히 드러난다. 대부분의 녹지는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비워져 있고, 그 둘레를 따라 향나무며 몇몇의 낙엽수들이 나이 든 모습으로 서 있어 공간에 위엄을 드러낸다. 나무 기둥의둘레가 오십 센티미터쯤 되는 벚나무에서 그간 뜰을 스치고 간 시간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오로지 걷는 것과 앉아서 머무는 것만 허용되는 이 뜰은 어쩌면 북촌에 남겨진 고성과 같은 곳이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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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 공모 과정을 실험하다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 3차 설계공모
최근 유럽에서 파격적인 방식으로 도시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인 사례가 있다. 바로 2014년 11월에 시작된 ‘파리 재창조Réinventer Paris’다. 파리 최초의 여성 시장인 안 이달고Anne Hidalgo와 장루이미시카Jean-Louis Missika 부시장의 주도 하에 파리 시는 시 소유의 크고 작은 유휴 부지에 대한 프로젝트 안을 공개 모집했다.
언뜻 보면 여느 공공 개발 사업과 비슷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독특한 게임의 법칙이 있다. 시 소유 토지를 민간에 매각하거나 공공이 직접 사업 주체가 되지 않을 것. 파리 시에 가장 필요한 용도, 혁신적인 건축, 효과적인 운영 방식, 실현 가능한 파이낸싱 전략을 제안하는 팀을 선정할 것. 단, 시의 재원에 의존하지 않을 것. 시는 민간의 주도로 개발 수행이 가능하게끔 여건을 조성하고 커뮤니티를 동참시킬 것. 이러한 룰에 따라 23개의 대상지를 선정했고, 2015년 말까지 개발 안을 접수했다.1 가장 높은 공공 용지 입찰가를 제시한 디벨로퍼에게 땅을 매각하고 개발을 규제하는 소극적인 도시 관리 기법이 아니라, 가장 혁신적인 설계·운영·파이낸싱·커뮤니티 참여 패키지를 고안한 팀에게 개발권을 주고 파리 시는 이 팀을 위한 러닝메이트가 되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공모 방식의 연장선에 ‘노들꿈섬 공모’(이하 노들섬 공모)가 있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2005년 서울시가 노들섬을 매입한 후, ‘노들섬 예술센터 국제 아이디어공모’(2005)부터 ‘노들섬 예술센터 1차 지명초청 설계공모’(2006), 이후 ‘노들섬 공연예술센터 2차 지명초청 설계공모’(2008), ‘한강예술섬 조성공사 설계용역’(2009), 또 ‘한강예술섬 설립·운영에 관한 조례 제정 및 폐지’(2010), 그리고 조성 사업 보류 결정(2012)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에 걸쳐 릴레이식 논의가 진행되었다. 노들섬 총괄계획가 서현 교수에 따르면 3차에 걸친 노들섬 공모는 시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관행에 대한 반성과 공모 과정 자체를 혁신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엘리트가 나서서 어떤 종류의 건축물을 집어넣고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한 후, 이를 통해 결과물을 결정하는 것은 구시대적 방식”이다. 그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노들섬을 위한 새로운 공모 방식을 고안하는 데 1년 정도의 시간을 투자했다. 그 신호탄으로 2015년 8월에 마무리된 ‘1차 운영구상 공모’에서 “합리적인 상상력을 통해 노들섬에서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았고, 같은 해 11월 ‘2차 운영계획ㆍ시설구상 공모’에서는 이런 상상력을 어떻게 노들섬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에 적용하느냐는 고민 끝에 어반트랜스포머(대표 김정빈 교수) 팀의 ‘밴드 오브 노들’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6월, ‘3차 공간ㆍ시설조성 공모’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를 통해 선정된 공간 조성 팀은 2차 공모 당선 팀과의 협의를 통해 “어떻게 바둑의 룰을 바둑판 위에 올려놓을까”를 결정하게 된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 대학교 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을 가르치고 스튜디오 수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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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장소, 헤테로토피아, 파빌리온 - 중中의 공간
산업이 발전하고, 물류와 사람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도시가 성장하고 사람들의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우리 주변에는 이상한 공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공간들이 생겨났다는 것은 전에 없는 공간이라는 말이고, 당연히 그것은 변화하는 생활환경을 뒷받침하거나 이끌기 위해 우리가 만든 공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비장소non-place라고 부른다. 비장소는 장소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장소가 근대 이전의 삶을 공간적으로 정의한다면, 비장소는 근대 이후의 삶을 공간적으로 규정한다. 물리학적으로 우리는 4차원 시공간에 살고 있다. 가로, 세로, 높이의 세 축을 가진 3차원 공간과 시간이라는 차원이 섞이면서 4차원 시공간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공간과 시간을 따로 떨어뜨릴 수 없다. 우리의 기억이나 추억, 생각, 앞으로의 예측, 과거에 대한 설명 등은 모두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상태의 이야기다. 더군다나 공간과 달리 장소는 공간에 섞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근대 이전의 공간은 이러한 장소와 거주의 문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장소는 곧 거주로 인식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정착민이든 유목민이든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집, 마당, 골목, 도시, 뒷산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나그네들이 쉬어 가는 주막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이야기가 생겨났다’는 것은 그것이 거주의 문제였다는 걸 증명한다. 그것이 이야기를 낳은 거주의 문제라는 것은 거기에 분명한 장소성이 있다는 말이다. 인류의 언어, 전설, 신화는 그들이 살았던 언덕, 고개, 초원 등과 무관하지 않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허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와의 하룻밤은 물레방앗간이라는 장소와 메밀꽃밭으로 연상되는 계절의 시간이 이어지면서 우연히 만난 동이와 허생원이 부자간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암시를 준다. 이 소설은 장돌뱅이들을 등장시킨 만큼 집이라는 거주의 장소보다는 계속 임시적인 공간, 즉 그 공간은 지속적으로 존재하지만 이용자들은 그저거쳐 가는 공간들이 나온다. 주막, 물레방앗간, 그리고 계절을 알려주는 메밀꽃밭 등이 그런 공간이다. 그러나 허생원은 물레방앗간에서의 하룻밤 정분을 잊지 못해 그 처녀를 만날까 하는 마음에 계속 봉평장을 찾는다. 물레방앗간이라는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공간에서 생긴 이야기로부터 이 소설의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이와 같이 근대 이전의 공간은 거기서 생긴 이야기를 공동체 모두가 공유하며 장소로 인식된다.
그러나 근대 이후 기계론적 합리주의와 시스템 속에 갇히면서 자아 상실과 의미 상실을 경험하며 우리는 장소를 상실한다. 우리는 거대한 쇼핑몰에서 우리가 뭘 사야 할지를 잊어버리고 자본의 스펙터클에 압도되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산다. 이미 밖에서는 자동차에게 길의 풍경을 내주었지만 쇼핑몰에서는 카트에게, 상품에게 우리의 길을 줘버린다.
그리고 계산대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내 뒤로 줄 서 있는 사람들을 헤치며 다시 물건을 취소할 엄두가 나지 않는 다. 거기서 부딪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허생원이나 동이와 같이 서로를 간섭하면서 친해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심지어 계산대 직원은 물건값도 모른다. 바코드 인식기가 모든 걸 해주고 거기에 맞춰 카드를 내면 된다. 공항 역시 마찬가지다. 검색대를 몇 차례 통과하면서 우리는 계속 신분증을 직원에게 건네지만 나는 계속 익명으로 존재한다. 그 익명 속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 익명성 덕택에 그곳은 늘 새롭다. 우리가 도시를 즐기는 이유는 거기에서는 우리가 어딜 가든, 영화관을 가든, 마트에 가든, 식당에 가든,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비장소라고 부른다. 집이라고 비장소의 예외일 수는 없다. 거기서는 모두 잠만 잔다. 집에서 익명성을 거두어주는 사람은 주부지만 그렇게 모두들 집을 나가고 나면 그 공간에 의해서 주부마저 소외된다. 푸코는 이러한 현대 도시의 특징에 주목해서 개인적으로 한시적인 유토피아를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시적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비장소에 해당한다.
파빌리온pavilion 역시 이러한 비장소다. 파빌리온은 특별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건축이지만 건축의 역할이 없는 건축이다. 연극에서 역할이 없는 배우를 상상해 보라. 그러나 파빌리온은 건축에서, 혹은 조경에서 역할이 없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역할은 연극이 이루어지기 전의 무대와 같다. 무대에서 어떤 연극이 공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무대는 늘 어떤 연극을 기다린다.
파빌리온도 그렇다. 파빌리온은 어떤 성격도 가지지 않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는 헤테로토피아일 수도 있고, 비장소일 수도 있다. 또한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 이런 모호한 개념을 서양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차라리 동아시아 철학의 ‘중中’이라는 개념이 훨씬 유용하다. ‘중’은 유학에서는 ‘정확하다’는 의미다. 또한 불가에서는 ‘공空’의 의미를 ‘무자성無自性(non self-identity)’으로 해석한다. ‘무자성’이란 스스로 그렇다라고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말이다. 즉, 아무 성격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그래서 공은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어 있기 때문에 가능성으로 꽉 찬 상태고, 가능성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상태다. 유가와 불가는 각각 다른 철학이지만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같이 ‘중’으로 표현하는데, 파빌리온 같은 모호한 공간을 규정하기에는 더 없이 정확하다. 파빌리온은 아무런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무자성의 공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역할도 정확하게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중의 공간’이기도 하다. 연금술에는 “모호는 모호한 것을 통해서, 미지는 미지의 것을 통해서”라는 격언이 있다. 모호한 것을 정확하게 규정하기 보다는 그 모호함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말로 모호를 설명하는 것이 때로는 가장 정확하다.
함성호는 1990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91년 『공간』에서 건축평론신인상을 받으며 건축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56억 7천만년의 고독』, 『성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키르티무카』가 있으며, 티베트 기행산문집 『허무의 기록』, 만화비평집 『만화당 인생』, 건축평론집 『건축의 스트레스』,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철학으로 읽는 옛집』, 『텃밭정원 도시미학』(공저), 『반하는 건축』,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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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마감에디토리얼을 쓰다가
“비행기 의자 하나 사드릴게요!” 얼마 전 남기준 편집장이 던진 진심어린 농담이다. 사연은 이렇다. 봄과 여름이 때 이른 줄다리기를 하던 어느 날, 마감전쟁을 치르는 동료들을 나 몰라라 뒤로 한 채 학회 참석을 구실로 이탈리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안한 마음에 에디토리얼이라도 빨리 넘겨야겠다고 작심했다. 굳은 결심의 효과였을까. 어깨를 펼틈도 없이 좁은 이코노미 좌석은 집중을 넘어 몰입의 경지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구상, 검색, 커피, 흡연, 산책 등 글쓰기의 필수 과정이라고 여겼던 일련의 습관을 강제로 생략당하니 글이 단숨에 풀렸다.
육필로 휘갈겨 쓴 원고를 옆 자리 승객에게 빌린 노트북으로 타이핑한 후 모니터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착륙 후 와이파이 터지는 곳에서 ‘원고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원시와 첨단이 뒤섞인 이 이상한 프로세스에 아마 독자들은 물음표를 던지실 것 같다. 몸은 바다 건너 멀리 있었지만 그 어느 달보다 빨리 끝낸 원고를 칭찬하며 편집장은 한 달에 한번 마감 때마다 국내선이라도 꼭 탈 것을 권했고, 마침내 비행기 의자 선물이라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까지 떠올린 것이다.
이제 2년 반이 넘었으니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매달 잡지의 첫 지면에 무언가를 쓴다는 게 영 어색하다. 한두 시간이면 충분한 A4 두 장의 짧은 글, 하지만 한 달 내내 어깨를 내리누른다. 사례는 나의 힘! 서점과 온라인을 두루 헤매며 국내외 저명 전문지는 물론 잘 나간다는 상업 잡지의 에디토리얼을 사례 연구하기도 수차례. 그러나 답은 없다. 근사한 스타일로 간명하게 독자들을 사로잡는 멋진 글들을 흉내 내보지만 결국 아류의 티를 보정할 수 없다. 그달에 실리는 내용을 두루 안내하면 모범생이 쓴 교과서 서문처럼 재미가 없어진다. 공들여 기획한 특집에 한 명의 독자라도 더 끌어들일 요량으로 특집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면 중언부언이 되기 십상이다. 약간의 메시지를 담거나 주장을 넣으면 진부한 계몽이나 어설픈 설교의 곁길로 샌다. 최근에 마음 꽂힌 책이나 작품에 초점을 두면 먹물 버릇이 발동해 당장 고루한 논문이라도 쓸 태세다. 이른바 조경계의 현안(?)이란 걸 다루자니 수영복 입고 지하철 타는 기분이고, 그 현안을 다른 프레임으로 진단하자니 매국노 취급당할 게 뻔하다.
재치를 발휘한답시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프로 편집장과 편집팀장, 그리고 아마추어 편집주간이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거나 아이디어를 메모하거나 수다를 떠는 용도로 쓰는 ‘단톡방’의 대화내용을 버무려 집단 창작이라는 미명 하에 이 지면에 적은 적도 있다. 잡지 리뉴얼 때부터 지금까지 어려울 때마다 고견을 들려주고 있는 몇몇 선배들로부터 얻어내는 아이디어나 정보를 가공해 싣기도 한다. 연구실 대학원생들과 함께 한 세미나의 줄거리를 옮긴 적도 몇 차례. 심지어 어느 제자와 나눈 대화를 조금 살을 붙이고 가다듬어 기록하기도. 고백하자면 어느 학기의 종강 때 수강생들에게 나눠주었던 편지를 에디토리얼에 재탕으로 우려 싣기도 했다.
참으로 놀랍고 곤혹스러운 사실은 의외로 이 지면을 읽는 독자가 많다는 점이다. 정확한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편집부에 들려오는 여러 소문을 종합해 보면, 비교적 열독률이 높은 지면은 에디토리얼과 잡지 제일 뒤쪽의 코다CODA, 본문 중간중간의 텍스트 양이 많지 않은 짧은 연재 글들이라고 한다.
특히 잡지의 첫 쪽이다 보니 이 지면을 펼치고 잠시 시간을 투자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지만, 에디토리얼보다는 열심히 만든 특집, 그달에 힘준 작품, 필자의 많은 공이 들어가는 연재 글들에 시선을 던져 주십사 이 자리를 빌려 독자들께 부탁드린다. 앞에서 구구절절 징징거리며 늘어놓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 에디토리얼 지면은 매달 잡지의 마감일을 지연시키는 주범이 된다. 디지털 출력본의 교정까지 끝내고 인쇄소로 넘어갈 준비가 완료된 상황, 모두가 목을 빼고 내 원고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 대략 난감이다. 또 한 달이 흐르고 어김없이 만난 막다른 길, 머릿속을 산만하게 떠다닌 글감 세 조각을 소개한다. 원래는 다음의 세 가지 주제가 강력한 후보로 경쟁했는데 마감에 몰려 쓰다 보니 어디론가 휘발된 모양이다.
첫 번째 후보는 조경에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 최정민 교수(순천대학교 조경학과)가 “조경, 다른 이름을 가지는 것은 어떤가”(라펜트, 2016년 7월 10일)라는 칼럼을 통해 6월호 에디토리얼 “조경이라는 이름”의 문제의식을 확장해 주었다. 공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는데, 이 지면보다는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깊이 있게 다루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가 명쾌하게 진단하고 있듯이 “조경이라는 이름이 조경이 하는 일이나 결과물을 대변하지 못하고 … 조경이 하는(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하고 있다”면, 40년 넘게 정든 이름이라 아쉬움 가득하지만 개명을 심각하게 고려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조경은 조경에 갇혀 있다.
경합을 벌인 두 번째 후보는 용산공원. 수면 아래에서 잠잠하던 용산공원이 지난 4월 이후 심심찮게 언론을 타고 있다. 공원에 들어갈 ‘콘텐츠’를 선정하는 공청회 이후의 일이다. 2012년의 국제 설계공모 이후 당선작을 바탕으로 기본설계가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실종되었던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쟁점의생산 과정이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그 핵심 이슈가 시간을 역행하는 양상이라 우려된다. 특히 일부 정치인들의 비논리적인 주장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의 책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긴 호흡으로 천천히 추진하는 것과 예산의 전액 삭감에 따른 계획 중단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슈다. 심도 있게 기획해 본문에서 다시 다룰 것을 약속드린다.
마지막 후보는 이번 특집인 파빌리온이었다. 짐작하시겠지만 8월의 특집 ‘파빌리온’은 무더위에 지친독자들을 의식한 계절형 기획이다. 폭염으로 가득한 한여름의 도시, 어딘가에 숨겨진 나만의 자유의파빌리온을 찾아보시길.
참고로, 비행기 의자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갔다.
중고로 나온 물건도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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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취향의 탄생과 유행
요즘 홍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혹독한 감기에 시달린 후 나는 자극적인 커피 대신 평소 밍밍하게 느끼던 차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당시 누군가 건넨 홍차 한 잔에는 은은한 달콤함이 있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둔했던 나의 혀끝과 코는 차의 맛과 향을 분간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최근 다양해진 커피의 세계만큼, 홍차 역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그 종류가 다양해서 무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처음에는 조금 막막하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인터넷에서 최근 홍차의 유행 바람을 타고 각종 티살롱이나 브런치 카페를 섭렵한 파워 블로거들이 펼쳐내는 수많은 정보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는 지인들과의 정보 교류가 활발해졌다. 모여 앉으면 각 차 맛에 대한 품평(까지는 아니고 추천)이 이어졌고, 블랜딩 방법, 차 도구, 티푸드, 패키지 디자인 등등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했다.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때 각자의 성향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차를 만드는 시간에 가벼운 차 이야기를 통해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버리며 본격적인 대화를 이끄는 사람도 있고, 차를 우리는 시간을 조급하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차를 마시기 좋은 소위 ‘핫’한 카페를 소개하는 사람도 있고, 찻잎의 색깔을 논하는 사람도 있다.
차에 관한 해외의 최신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도 있고, 차라면 모르는 일이라고 마뜩찮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다. 아무튼 차를 마시는 시간은 바쁜 일과 중 모두들 짬을 내어 여유를 부리는 시간이다. 또 차를 둘러싼 다양한 화제를 보면 차는 맛뿐만 아니라 멋이 중요한 문화인 듯하다.
이런 차 문화는 비단 지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홍차를 마시는 문화가 처음 시작된 18세기 영국에서도 비슷했다. 최근 한국18세기학회의 회원들이 엮어낸 『18세기의 맛: 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은 ‘미각’이란 키워드를 통해 18세기의 여러 문화적 현상을 살펴본 책이다. 18세기는 동서양 모두 고급스런 음식이 대중화되고, 이국적 음식이 세계화되는 변화가 크게 일어난 시대이다. 또한 18세기는 저급한 감각으로 치부되어온 맛에 관한 담론이 본격적으로 문화의 전면에 등장한 시대이기도 하다. 민은경 교수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는 영국에 상륙한 홍차에 담긴 문화적 의미와 정치경제학적 배경을 설명한다. 영국의 국민 음료라고 할 수 있는 홍차가 영국에 보급된 시기 역시 18세기이다. 당시 중국에서 수입했던 차나 자기는 고가의 사치품이었는데, 귀족들은 차를 마시기 위해 찻상과 장식장을 별도로 제작하고 화가를 고용해 찻상을 둘러싼 가족의 화목한 모습을 담은 풍속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풍속화에는 ‘담화도Conversation Piece’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서 ’컨버세이션conversation’은 대화를 나눈다는 좁은 의미보다, 여러 사람과 관계하며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렇듯 가정에서 차를 마시는 공간은 손님을 접대하고 만나는 사교의 공간이었고, 차는 새로운 사교 문화를 형성했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집에서 마시던 차를 점점 정원과 공원과 같은 야외에서 즐겨 마시게 되었고, 귀족들에 한정되었던 차 문화는 누구나 향유하는 보편적 문화가 되었다. 즉 ‘그들만의 호사’가 ‘모두의 취향’이 된 것이다. 19세기 중국과 영국의 아편전쟁이 사실 차 전쟁이었고, 미국 독립전쟁 역시 식민지 미국에서의 차 수입과 유통을 통제하려 했던 영국의 정책에 반발했던 사건인 보스턴차사건이 도화선이 되었음을 떠올린다면, 미각과 음식은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주경철 교수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는 유럽에서 버터가 어떻게 확산되었는지 밝히며, “사람이 향유하는 맛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생물학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특정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기까지는 분명 사회적으로 배워서 습득하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현재 서양 요리는 대부분 베이스로 버터를 사용해 부드럽고 섬세한(느끼한) 맛을 내는데 반해 중세의 음식은 고급 요리일수록 후추를 많이 첨가해 매웠다. 중세 유럽에서 매운맛이 고귀한 지위를 누린 것은 아시아에서 수입해야 했던 후추가 워낙 고가의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맛을 평가하고 새로운 요리법을 퍼뜨리는 주역은 대개 상층사회 인사들이다.
귀족이나 부르주아가 어떤 음식을 즐기는 것은 그들만이 그 음식을 독점한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맛의 유행에서 희소성은 지극히 중요한 요소다.” 17세기에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직항로가 개척되면서 후추가 대량으로 수입되어 모든 사람이 후추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상류층은 후추 대신 다른 향료를 찾았고, 최대한 섬세한 맛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러한 맛의 이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18세기 프랑스 요리였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프랑스 요리는 지배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니까 맛의 역사라는 것이 쉽게 말해 ‘허세’가 좀 섞인 ‘멋’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생각해보면 내가 커피 대신 홍차에 관심을 돌리게 된 계기가 지인이 건넨 차 한 잔에서 비롯된 것이니, 차를 마시겠다는 선택은 내가 한 것이지만 지인들의 차 문화 혹은 지금의 홍차 유행에 자연스럽게 동화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현대 사회에서 기호품의 선택은 개인의 취향이라고 하지만, 그 역시 사회·경제적 흐름 속에 놓여 있다. 기호 음료를 둘러싼 산업 구조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한 때 ‘세련된 취향’으로 자리매김했던 커피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웰빙과 힐링 바람을 타고 온 녹차 문화가 시들해지면서 그 대체품으로 홍차가 떠올랐을 수도 있다. 바우만 Zygmunt Bauman은 그의 저서 『유행의 시대Culture in a Liquid Modern World』에서 오늘날 “문화의 역할은 기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욕구를 창조하는 동시에, 이미 확립되었거나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욕구들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유행이 ‘되어감’이란 서로 모순되는 욕망과 갈망, 즉 “어떤 집단이나 집합체에 속하고자 하는 열망과, 군중과 구별되어 개성과 독창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충돌하며 멈추지 않는 진자운동을 한다. 그렇다면 내가 편승한 곳은 취향의 공동체이리라. 그리고 나의 홍차 사랑은 언제 또 다른 기호의 소비로 옮겨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