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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절제하면서도 다양하게
    프로젝트 또는 공간의 성격에 따라 최대한 절제되고 미니멀한 디자인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 절제된 틀이나 표현 안에서 최소한의 변이를 통해 어떻게 단조로움을 탈피할 것인가가 이러한 경우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사진의 공간은 이러한 고민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사례다. 어두운 색상의 화강석 포장재를 간결하게 배치했는데, 두 가지 규격(30 × 150cm, 7.5 × 37.5cm)의 화강석을 활용해 미묘한 띠를 형성했다. 포장석은 틈새를 접합하지 않은 오픈 조인트open joint로, 포장석끼리 최대한 밀착하도록 손으로 배치한hand tight 디테일이다. 30cm 너비 모듈의 화강석 띠 중 중앙의 한 개 열은 줄무늬 패턴의 스테인리스 스틸 그레이팅을 배수로의 덮개로 설치했다. 7.5cm 너비 모듈의 화강석 띠 중심을따라서 교목을 일정한 간격으로 식재했는데, 수목 보호대tree grating에는 배수 그레이팅에 사용한 것과 동일한 재료와 디자인을 적용했다. 재료와 디자인 언어를 최소한으로 제한해 의도적으로 간결하고 조용한 공간을 조성했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9호(2017년 5월호) 수록본 일부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조덕순 풀꽃갤러리 아소 관장 풀꽃의 문화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날 아소갤러리를 찾았다. 대구의 강남인 수성구 한복판. 풀꽃과 야생화를 위한 전용 갤러리, 아소는 전혀 전원적이지 않은 도심 한가운데 있다. 그날 갤러리 내부에는 일곱 점의 풀꽃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크지 않은 건물임에도 각자에게 주어진 공간이 상당히 넉넉하다. 야생화라니, 우리 산야 어디선가 피어나고 있을 너무도 흔한 미물이건만. 여느 수목원의 꽉 찬 온실을 짐작하던 나에게 아소는 반전이었다. 철과 금, 콘크리트와 같이 변치 않는 것들을 경외하던 때가 있었다. 아니, 그리 먼 예전도 아니다. 아무리 조경에 연을 둔 젊은이라 할지라도 이삼십대에 풀과 나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느끼는 건 사실 무리다. 변명이지만,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글쎄, 인생의 반이라는 불혹을 넘겨서인지 혹은 그다지 매혹될 대상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언젠가부터 이제껏 아무 감흥 없이 지나치던 당연한 것들이 눈물 나게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길거리 전봇대 밑에 오밀조밀 돋아난 풀이라든가 깜박하는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노을빛이라든가…. 아끼는 사람에게, 그리고 초대를 받았을 때 꽃을 선물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인 것 같다. 불과 얼마 후면 사라져버릴 그 꽃의 아무 것도 아니게 찬란한 순간을, 그 덧없음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9호(2017년 5월호) 수록본 일부
  • [정원 탐독] 정신과 육체를 치유한 안달루시아의 정원
    안달루시아에서 정원을 묻다 한 시간 넘게 차창으로 낯선 풍경이 흐른다. 여행자의 낯선 시각이 더해진 탓이겠지만, 덮어주는 나무도 없이 맨흙이 드러난 채 눈앞에서 벌떡 일어선 산맥이 심장을 쿵 소리 날 정도로 떨어뜨린다. 이 마음의 서늘함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척박함으로 인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무서움이 공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 돌산에 줄 맞춰 심어 놓은 올리브나무가 끝도 없다. 가까이 할 수 없게 막아서는 자연을 향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때론 달래며 공존을 지속해 오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자연만큼이나 경이롭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49호(2017년 5월호) 수록본 일부
  • [시네마 스케이프] 라이언 집으로 가는 길
    구글 어스로 고향 집을 찾은 실화를 그린 ‘라이언’을 보고나면 새삼 어릴 적 동네가 궁금해진다. 로드뷰로 찾아보니 초등학교 때 살던 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변해 있다. 작은 마당이 있던 우리 집은 큰 대문 집 옆으로 난 골목의 네 번째 집이었다. 눈이 오면 눈싸움을 하거나 연탄재를 눈에 굴려 이글루를 만들며 놀았다. 술래잡기, 배드민턴, 고무공으로 하는 미니 야구, 골목에서 놀 거리는 늘 풍성했다. 셔틀콕이나 고무공이 큰 대문 집 담장을 넘어가면 가슴 졸이며 벨을 눌렀다. 커다란 개가 컹컹 짖어댔다. 중학생이던 어느 날, 나와 남동생은 늘 함께 놀던 두 번째, 세 번째 집 남매들과 술래잡기를 했다. 캄캄할 때까지 놀다가 우리 집 남매가 서로 충돌해 동생 이마가 찢어지고 내 앞니 두 개가 부러진 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옆집 오빠는 훗날 공군 사관생도가 되었는데, 어른이 된 한참 후까지 내 가짜 앞니를 놀렸다. 그 모든 추억이 ‘래미안’이라는 새 이름표를 달고 봉인되어 있었다. 영화 ‘라이언’의 주인공은 들판과 골목과 집이 25년 후에도 예전 그대로 남아있어서 고향을 찾을 수 있었다. 구글어스로 주인공이 예전 기억을 확인하는 장면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나의 작은 골목을 떠오르게 만든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또 다른 실화 ‘스노든’은 미 국가안보국의 불법 개인 정보 수집을 폭로한 내부 고발자의 이야기다. 이메일이나 문자뿐 아니라 SNS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고 노출되는 사생활이 정보 수집의 유용한 소스가 된다는 사실, 공포 영화보다 더 오싹하다. 스노든을 보고나면 당신은 반드 시 노트북 카메라에 테이프를 붙이게 될 것이다. * 환경과조경 349호(2017년 5월호) 수록본 일부
  •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시화: 시가되다' 인류학적 현장 연구와 예술
    ‘작가’ 또는 ‘예술가’를 모집하거나 초대하는 일은 주로 전시나 예술 프로젝트를 위한 경우가 많았지만, 주지하다시피 ‘도시재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프로젝트를 위해 작가 또는 예술가를 모으는 사례가 최근 몇 년 들어 늘어났다. 주로 지역 미화와 활성화, 또는 지역 커뮤니티를 위해 예술가를 동원하는 경우다. 여기서 작가/예술가는 일종의 사회복지사/사회적 노동자social worker로서 활동하게 된다. 그런데 스스로의 정체성을 예술가‑사회적 노동자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이들이 ‘예술가’로 초대받아 ‘사회복지사’의 일을 하게 되는 경우 예술가는 심각한 정체성의 갈등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런 갈등이 예술가를 ‘예술가’로서 초대해 ‘사회복지사’로서 일해주기 바라는 주체와 만날 경우, 예술가와 초대 주체 간에 불편한 관계가 생겨나기도 한다. 이러한 긴장 관계가 일어나는 또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종종 ‘도시재생’ 또는 ‘문화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때로는 실질적인 ‘재생’을 위해, 때로는 가시적인 재생은 포기했으나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기 위한 전국 방방곡곡의 지역 리서치 사업에서 예술가들이 일종의 예술가‑연구자로 활동하게 되는 경우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49호(2017년 5월호)수록본 일부
    • 진나래 [email protected] / ‘일시합의기업 ETC’, ‘잠복자들’ 공동대표
  • [공간 공감] 경의 풍경, 서석지
    영양에 있는 서석지瑞石池는 조선의 3대 민가 정원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겨울 스튜디오 직원들과 서석지를 답사하고 나서 같이 보고 싶은 마음에 멤버들을 설득해 두 번째 길에 올랐다. 여름 정원을 보고 싶어서다. 아쉽게도 정원이 보수 중이라 고즈넉함은 느끼기 어려웠지만, 겨울 정원을 상상하며 정원에 담긴 의미들을 되새기고 정원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보았다. 서석지는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1577~1650)이 광해군의 실정에 벼슬을 포기하고 낙향하여 만든 정원이다. 마음을 달래고 학문을 익히며 그가 생각한 이상향을 만들었을 터다. 그래서 정원 곳곳에 그의 사상과 철학이 배어있다. 사소한 바위 하나에도 이름을 지어 의미를 두었다. 작은 마당에 있던 서석군瑞石群을 살려 연못을 만들고 전면에는 강당인 경정敬亭을, 측면에는 서재인 주일재主一齋를 두었다. 작은 마당엔 연못 이외의 다른 요소가 없다. 담장과 연못 사이에 통행을 위한 좁은 통로만 있을 뿐이다. 경정은 연못에 떠 있듯 놓여있고, 주일재의 연못 기단은 기단의 일부를 앞으로 내밀어 사우단四友壇이라는 화단을 두었다. 경정이 다소 불안하게 마당을 채우고 있는데, 이를 주일재가 낮고 편안하게 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사람들과 모여 토론하는 자리는 웅장하게, 자신이 공부하는 공간은 편안하게 만든 것이다. 경정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씩씩하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1호(2016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김용택
  • [리질리언스 읽기]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전략, 적응과 전환
    숲의 리질리언스 향상 전략, 나무들의 대화 ‘생명의 상자The Life Box’는 숲 보전을 위한 프로젝트로, 상자 속에는 토양만 포장되어 들어있다. ‘아무것도 없는’ 상자에 수분을 공급하고 며칠만 기다리면 하얀 실이 토양에 퍼져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하얀 실 뭉치가 바로 곰팡이의 균사다. 이같이 곰팡이가 퍼진 토양은 숲이나 공원의 토양으로 보충된다. 토양 속의 곰팡이는 나무의 뿌리와 공생 관계를 형성하여 나무가 영양소와 수분을 잘 흡수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숲 혹은 공원의 나무가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전화선을 설치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6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에서 생태학자 수잔 시마드Suzanne Simard는 ‘나무들은 어떻게 대화하는가How trees talk to each other’라는 강의를 통해 곰팡이 균사로 구성된 전화선이 숲과 공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므로, 기후 변화와 여러 교란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인 리질리언스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녀는 숲에서 가장 오래된 ‘어미 나무Mother Trees’가 곰팡이 균사를 통해 다음 세대의 나무와 연락을 주고받고, 다음 세대의 나무들도 균사를 통해 다른 나무와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이러한 나무들 간의 활발한 네트워크는 하나의 거대하고 체계적인 숲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커뮤니티가 성장할수록 나무들 간의 연결성이 증대될 뿐만 아니라 영양소와 정보가 자원으로 축적되어 잠재력이 향상된다. 커뮤니티에서 증가된 연결성과 잠재력은 예상치 못한 교란에 적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이는 숲 커뮤니티의 리질리언스를 향상시킨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1호(2016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 [시네마 스케이프] 걸어도 걸어도 일상의 가치, 풍경의 깊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수필집 『걷는 듯 천천히』에서 풍경과 영화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어떤 풍경을 마주한 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내 쪽에 있는가, 아니면 풍경 쪽에 있는가? 나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세계를 생각하는가, 세계를 중심에 두고 나를 그 일부로 여기는가에 따라 다르다. 전자를 서양적, 후자를 동양적이라고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후자에 속한다.” “작품도 감정도 일단은 세계에 내재해 있고, 나는 그것을 주워 모아 손바닥에 올린 뒤 보여줄 뿐이다.” ‘걸어도 걸어도’(2009년 개봉작, 2016년 8월 재개봉)는 감독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의 소회를 반영하고 있다. 삶의 어떤 순간, 한 가족의 기억을 담고 있다. 영화를 위한 구성이라기보다 생의 어느 한 부분을 툭 잘라서 보여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부모가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다른 세상으로 부모를 떠나보낸 자식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이건 다 내 이야기’다. 마지못해 억지로 한 일, 듣기 싫은 잔소리, 끝내 못 들어드린 부탁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오래 생각난다. ...(중략)... *환경과조경341호(2016년9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위기의 시대,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도모하다 2016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국가관 리뷰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열 이상으로 제15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열기가 뜨겁다. 올해의 총감독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제시한 주제 ‘전선에서 알리다’ 때문이다. 이 주제에 응답한 다수의 국가관들은 미학적 견해를 내려놓고, 전 지구적인 위기와 분쟁에 대응하는 건축의 사회 참여를 고민한다. 이번 글에서는 국가관의 화두를 통해 건축의 사회적 제안과 시대적 논의에 접근하고자 한다. 총감독이 기획한 본 전시는 다음 호에 이어서 살펴볼 예정이다. 세계는 이주, 난민, 전쟁, 재난, 주거난, 경제 위기, 분쟁, 테러 등 여러 심각한 문제들이 끊이지 않는다. 점점 더 극심해지는 사회적 위기를 의식한 것일까? 올해 건축 비엔날레는 이 위기의 현실 속으로 뛰어 들어가 건축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도모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렇게 전면으로 나선 적은 거의 없었다. 고고한 건축 미학을 유보한 데에는 올해 건축전의 총감독으로 선정된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의 사회적 의식이 바탕이 된다. 그는 올해의 주제를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로 두어, 지구적인 위기 속에서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고자 한다. 전장에서 건축의 적은 삶의 공간을 위태롭게 하는 세상의 온갖 위기들이다. 건축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제공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65개의 국가관들 다수가 자국의 사회적 위기, 도시 문제, 건축적 위기 등의 문제를 내걸어, 이를 해결하려는 건축적 시도가 여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이번 글에서는 여러 국가관의 이슈 중 난민 문제, 로컬의 건축 쟁점, 폐허로부터 재생, 위기의 환경이라는 네 카테고리에 주목해 오늘날 건축이 모색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과 제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41호(2016년9월호)수록본 일부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도시 관련 비평을 쓰고 있다.‘신지도제작자’(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2014) 등 현대 미술과 도시 연구를 매개한전시 기획을 해왔으며, 도시 개입 프로젝트 ‘마이크로시티랩’(2016)을 선보일 예정이다.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 [에디토리얼] 프레임
    지면이 모자랄 지경인 최근의 정치면 기사에 유행어처럼 자주 등장하는 단어, 프레임frame. 사전을 펼쳐 보면 참 많은 뜻이 있다. 자동차ㆍ자전거 따위의 뼈대, 사람ㆍ동물의 골격, 창문이나 액자의 틀, 안경테, 영화나 TV 방송의 장면 한 컷, 신문과 잡지의 박스 기사 테두리 등 그 쓰임새가 다양한데, 요즘은 ‘생각의 틀’ 정도의 뜻으로도 통용된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곧 권력이다”, “언론이 프레임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그녀에 대한 허상을 키웠다”, “‘장미 대선’에서 프레임 전쟁은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등 요즘 언론 매체가 흔히 쓰는 프레임의 용례를 이해하기 위해선 미디어 비평가 토드 기틀린의 정의가 유용하다. 프레임은 “현실에 대한 인식, 해석, 제시, 선택, 강조, 배제와 관련된 지속적인 패턴”(『무한 미디어』, 휴먼앤북스, 2006)이며, 프레임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는다. 언어학을 현실 정치에 적용한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정의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사람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와이즈베리, 2015). 어떤 사고의 틀을 주면 사람들은 다른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이 벌어져도 주어진 틀에서만 인지하고 판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레이코프는 “상대방의 프레임을 부정할수록 오히려 그 프레임은 강화된다”고 프레임의 효과를 설명한다. 한번 자리 잡은 프레임, 웬만해서는 내쫓기 힘들다는 것이다. 프레임이 정치와 언론에만 관련된 딱딱한 개념인 것만은 아니다. 사회 심리학자 최인철의 스테디셀러 『프레임』(개정증보판, 21세기북스, 2016)이 웅변하듯,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다. 같은 풍경이더라도 둥근 창, 네모 창으로 볼 때 완전히 다른 경관이 되듯, 어떤 마음의 창으로 세계를 보는가에 따라 우리의 일상과 인생이 달라진다. 프레임은 애매함으로 가득 찬 세상에 질서를 부여해 준다. 그것은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끄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제한하는 검열관의 역할도 한다”. 그래서 중요하고, 어렵다. 프레임은 독하게 마음먹는다고, 굳게 결심한다고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인철은 자신의 틀을 지혜롭게 깨는 것, 즉 프레임을 리프레이밍하는 과정의 끊임없는 반복을 강조한다. 조경계에도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프레임들이 있다. 조경 공부를 하거나 조경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연은 선이고 인공은 악이라는 ‘자연 프레임’에 익숙하다. 이 전형적 이원론의 우산 밑에 여러 갈래의 지류가 공존하는데, 그중 하나가 조경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구원자(이다 또는 이어야 한다)라는 식의 프레임이다. 조경과 건축을 대립항으로 놓(아야 한다)는 신념도 자연 프레임의 연장선상에 있다. 1970년대에 제도권 조경을 개척한 60대 조경가도, 구체제의 혁신을 갈망하는 30대 조경가도, 희망과 설렘을 가득 품은 대학 신입생도 대부분 이런 공허한 창을 통해 조경을 본다. 이 프레임의 물리적 산물은 곡선 신봉이나 녹색 맹신 정도로 귀결되곤 한다. 지극히 추상적인 데다 논리적이지도 않은 이런 고정 관념의 실익은 무엇일까. 물론 조경계를 지배하는 프레임이 늘 추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매우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프레임도 적지 않은데, 지난 수년간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것은 단연 ‘위기 프레임’이다. ‘조경이 위기를 맞았다’로 간명하게 요약할 수 있는 이 프레임은 위기의 원인을 대개 두 가지로 본다. 짧게 줄여 말하자면, 첫 번째 원인은 경제 전반의 불황으로 건설 시장이 침체했고 그 결과 조경 일거리가 고갈되어 간다는 것.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진단은 너무나 당연해서 공허하다. 문제의 원인을 조경계 외부의 조건에서만 찾는 환경결정론은 조경 자체에 대한 성찰적 반성과 대안적 지향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두 번째 원인은 조경 고유의 업역을 건축이나 산림 등 사촌 분야가 빼앗고 있다는 것. 현실 상황을 이렇게 진단하며 조경계의 일부 리더나 언론은 잠식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때로는 침탈이라는 무시무시한 말까지 동원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공유하는 것은 좋지만, 분노와 적의를 동반한 이런 프레임은 냉철한 상황 인식과 진단에 토대를 둔 대안으로 연결되지 못할 때가 많다. 과거 회귀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도 간혹 다시 고개를 드는 1970년대식 국토 담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풍 단합 담론을 면밀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반복적으로 강화되는 위기 프레임은 이 프레임에 노출된 사람들로 하여금 조경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게 하지 않고, 오히려 위기를 회피하거나 조경을 포기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학생들에게 조경 뉴스를 가급적 읽지 말라고 권한다. 그러나 레이코프가 말하듯 “프레임을 부정할수록 오히려 그 프레임은 강화된다”. 여러 심리학과 미디어 이론이 말하듯, 어떤 프레임으로 보는가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어떤 프레임으로 조경과 그 주위의 조건을 읽는가에 따라 조경의 목적, 대상, 교육, 문화적 가치, 사회적 역할이 적지 않게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만들고 의존해 온 기성의 프레임을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일한 단수의 프레임을 의심하고 다양한 복수의 프레임을 열어 놓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기성 프레임의 해체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작지만 참신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과조경』에 던져진 숙제 중 하나다. 이수학 소장(아뜰리에나무)에 이어 앞으로 세 달간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맡아줄 백종현 대표(세계수프로젝트)에게 감사드린다. 이번 4월호 지면에는 특집 기획물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달에 실은 여러 프로젝트와 공모전의 공통분모가 주거 단지라는 점을 쉽게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미국, 싱가포르, 한국의 최근 사례를 통해 ‘아파트 조경’ 설계의 현재를 점검해 볼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