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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홍수가 바꿔 놓은 디테일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호수 공원이다. 하지만 ―어느 공사 현장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공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보이는 것처럼 늘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이번 호에서는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맞춰 디테일을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2016년 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이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당시 토목 공사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고 있던 호수 일대가 완전히 물에 잠겨 버렸다. 한꺼번에 많은 빗물이 호수로 유입되면서 아직 안정되지 않았던 호수 주위의 경사면들이 무너졌다. 호수의 수위가 상승하자 호수의 물결이 더 활발해져 2차 침식이 일어났고, 물과 함께 떠내려 온 진흙이 배수로와 배수 입ㆍ출구를 막아 복구가 더뎌졌다. 완공을 불과 수개월 앞두고 일어난 예기치 못한 큰 사건이었다. 곧바로 사태 파악에 나섰고, 수변 사면의 피해 상황과 원인에 따라 침식이 일어나지 않은 구간, 호수 밖에서 유입된 우수로 침식이 일어난 구간, 호수 내부의 파도로 침식이 일어난 구간 등으로 피해를 유형화했다. 지형 작업이 끝난 호수는 동서 방향으로 길게자리 잡고 있는데, 관련 시설과 프로그램의 배치에 따라 북쪽의 수변은 활동적인 프로그램 중심의 공원을, 남쪽의 수변은 자연 서식지 중심의 공원을 제안했다. 홍수의 피해는 시설물이나 포장을 위해 단단하게 기초를 다진 구간보다 서식지 조성을 준비 중이던 흙 사면에 집중되었다. 그 결과 북쪽 수변의 일부 구간과 남쪽 수변의 전 범위에 걸친 넓은 구간에서 피해를 입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0호(2017년 6월호) 수록본 일부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강만생 사려니숲길위원회 위원장 모두를 위한 숲길
    제주는 곧 한라산이다. 우선 느낄 수 있는 것은 도와 시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제주에서의 삶의 영역은 어디에 살던지 간에 섬 전체에 걸쳐 있다. 그러한 사실은 모종린 교수의 지적처럼 제주를 우리나라의 유일한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만든다. 일과 휴식이 지근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이곳에서, 경관과 자연은 생활의 일부이자 제주인의 굳건한 토대,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 결과 제주도에는 개발 자본뿐만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창조 계층이 몰려들고 있다. 다수의 연예인도 그중 일부다. 욕구의 변화는 지금까지의 소극적 행복 추구를 거부한다. 육지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삶에 대한 적극적 개척이 이루어 낸 제주 문화는 대한민국의 진보적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으며,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도시적 이노베이션을 제시한다. 한편으로는 급격한 도시화에 대한 우려도 점증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도로 공사, 신축 건물,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풍경은 멀미를 일으킬 정도다. 빠르게 소비하고 떠나버리는 제주에 대한 안타까움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의 물결 속에서 천천히 음미하는 제주 본래의 모습, 가려져 있던 한라산 문화를 찾으려는 노력 또한 함께 진행되어 왔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0호(2017년 6월호) 수록본 일부
  • [명사들의 정원 생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기보다 정원사이기를 바란 실천적 이상주의자
    미국 조경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국가 이상과 민주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다진 정치가로 평가된다. 건국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그는 정치뿐만 아니라 예술, 과학, 교육, 원예, 건축, 조경 등 실로 광범위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화려한 정치가의 길보다는 농부 혹은 정원사로서의 삶을 더 선호한 듯하다. 부친과 장인으로부터 광대한 농장을 물려받은 그는 평소 신념이기도 한 ‘자영농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 실현을 꿈꾸며 농부이자 정원사로 살기를 바랐다. 스스로를 조경가라고 한 적은 없지만 제퍼슨은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란 용어가 생기기 전부터 조경가로 활동한 이로 평가된다. 당시 신생국 미국에서는 대농장 등에서 이탈리아나 프랑스식 기하학적 정원이 유행하고 있었을 뿐 조경에 대한 별다른 인식이나 시도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전적 미와 낭만주의 전원 이상에 매료된 제퍼슨이 특별히 심취했던 것은 팔라디오식 건축과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이었다. 제퍼슨의 자연관과 정원관 자연에 대한 제퍼슨의 생각은 크게 기독교, 정치 철학, 과학이라는 세 가지 다른 출발 지점을 갖는다. 자연은 인간의 이성적 관찰로 가치를 탐구하고 지적으로 체계화하는 대상으로서 인간 사회와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합목적적 자원이라는 것이 제퍼슨을 비롯한 당시 엘리트들의 기독교적 자연관이었다. ...(중략)...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있다. 연구소와 설계사무소에서 기획부터 설계, 감리에 이르는 실무를두루 익힌 후 지금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93 대전세계엑스포 조경계획 및 설계, 인사동길 재설계, 용산국립중앙박물관 조경설계, 신라호텔 전정 설계 및 감리, 선유도공원 계획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환경과조경350호(2017년 6월호)수록본 일부
  • [이미지 스케이프] 하늘을 걷다
    오늘 하늘 보셨나요?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잠깐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것도 못하고 삽니다. 늘 우리 위에 있지만 평소에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게 하늘인가 봅니다. 그나마 조경을 전공한다는 핑계로 공식적으로 공원에서 가끔 하늘을 보는 호사를 누립니다. 주변의 다른 전공 교수님들이 꽤 부러워하십니다. 이번 사진은 ‘북서울꿈의숲’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드림랜드’라는 놀이동산이 대형 공원으로 탈바꿈한 곳입니다. 설계공모 때 명칭은 아마 강북대형공원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서울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공원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곳입니다. 개장 초기엔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전망대에는 이병헌과 김태희 브로마이드가 있습니다. 이젠 뭐 둘 다 유부남, 유부녀. 이 공원에는 멋진 곳이 많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글래스 파빌리온 앞에 있는 창포원과 그 주변 공간입니다. 선큰sunken된 창포원에서 잔디 쪽을 보면 산책로 너머로 바로 하늘이 보입니다. 마치 산책로 뒤로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도시를 멀리 떠나와 있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거기 앉아 있으면 정말 기분이 좋아집니다.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0호(2017년 6월호) 수록본 일부
  • [시네마 스케이프] 카페 소사이어티 공원, 발명과 진화
    어릴 적만 해도 공원에 가는 일이 특별한 행사였다. 양장점에서 맞춘 옷을 입고 동생과 브라보콘을 들고 어린이대공원 분수 앞에서 찍은 초등학교 시절 사진이 여러 장 있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남산 팔각정 앞에서 찍은 사진과 덕수궁에서 찍은 가족사진도 남아 있다. 공원이 일상과 가까워진 것은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다. 집 근처 보라매공원에서 첫 아이가 걸음마 연습을 했다. 아이들이 자전거나 롤러 블레이드를 처음 배운 곳도 공원이다. 아이가 밥 먹기 싫어하면 밥에 김을 묻혀 만든 간단한 주먹밥을 싸들고 공원에 가곤 했다. 뛰어노는 아이 입에 밥을 물려주며 시간을 보내다 빈 도시락을 들고 돌아오는 길이 뿌듯했다. 아이들은 청소년이 되자 나와 공원에 가는 대신 친구들과 어울려 테마파크나 극장에 갔다. 나는 동네 친구와 가끔 운동하러 공원에 들르지만 요즘은 미세 먼지 때문에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가까운 들과 산으로 소풍 다니던 우리 경우와 달리 서구에서는 일찍이 공원이 기획되었다. 도시 공원은 19세기 영국에서 왕실 정원이 개방되며 처음 생겼지만, 공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표 선수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다. 한 번도 뉴욕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센트럴 파크 이미지에 친숙하다. 마천루를 배경으로 키 큰 나무와 드넓은 잔디밭, 뛰노는 아이들과 조깅하는 세련된 뉴요커들. 이 전형적인 공원 풍경이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거대한 센트럴 파크 전체가 조작된 자연이라는 점. 원래 자연이 풍성했던 곳을 공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황폐한 진흙땅에 동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바위를 옮기고 연못을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에 가고 싶은 공원, 한 도시를 상징하는 공원, 도시와 함께 진화하는 공원, 그런 공원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이번 글은 2017년 5월 27일 선유도공원에서 열린 ‘공원학개론’ 중 필자가 강의한 ‘공원은 발명되었다’의 내용을 짧게 줄인 셈이다. * 환경과조경 350호(2017년 6월호) 수록본 일부
  •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혼종적 내러티브의 집합체
    어린 시절 가지각색의 와펜이 촘촘히 박힌 친구의 걸 스카우트 띠가 부러워, 수행 활동에 따라 학교에서 지급하는 와펜을 ‘반칙’으로 구하려 했던 적이 있다. 친구와 함께 수소문한 결과, 동네와 조금 거리가 있는 일명 ‘배다리’란 곳에 가면 수십 가지 종류의 걸 스카우트 와펜을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신이 나서 원정을 가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배다리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가려 했지만, 어른들은 한결같이 그저 이 근방이다, 심지어 같은 자리에서도 여가 배다리다, 저가 배다리다, 하는 것이었다. 결국 가게를 찾지 못하고 나중에 부모님 차를 타고 가서야 와펜을 구할 수 있었다. 부모 없이 동네를 떠나본 적이 별로 없던 시절 겪었던 혼란이었지만, 성인이 되어 지역 기반 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다시 배다리를 찾았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행정 구역 상에 존재하는 이름이 아니었기에 당시 프로젝트를 같이 하던 작가들과 함께 ‘배다리’가 어디인지 지역 주민에게 지도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주민들이 그린 배다리의 영역은 제각기 달랐다. 이로 인해 우리는 ‘지역’이란 무엇인지 각자가 생각하고 있던 정형적인 무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비단 배다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모네 가게가 있던 ‘석바위’ 역시, 정확히 석바위가 어디냐 하면 도통 명확한 경계를 그려낼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어떤 위치 감각은 있지만, 어디까지가 그 동네이고 그렇지 않은가는 결국 개개인의 기억과 인식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있어 석바위는 이모네 가게가 있던 곳 근방이지만, 누군가에게 석바위는 그곳이 아니라 그 근방 다른 곳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내가 자란 이 동네만이 아니라, 행정 구역보다는 마을이나 동네 이름이 더 친근했던 시절 전국 어느 곳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구’, ‘◯◯동’과 같은 행정 구역이 좌표의 영역이라면 ‘◯◯마을’이나 ‘◯◯동네’는 인식의 지도인 셈이다. 그리고 그 인식의 지도는 사람들 개개인과 그들 사이에 형성되는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정보이자 기억, 내러티브의 집합체인 것이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0호(2017년 6월호)수록본 일부
    • 진나래 [email protected] / ‘일시합의기업 ETC’, ‘잠복자들’ 공동대표
  • [에디토리얼] 새로운 발견, 쉬운 전달
    빅토리아 시대의 의사 존 스노우John Snow가 만든 ‘런던 콜레라 지도’, 지금도 설계 스튜디오에서 꼭 소개되곤 하는 맵핑mapping의 고전이다. 빅데이터와 각종 첨단 기법으로 무장한 현대 역학epidemiology의 토대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세기 런던의 상하수도 시스템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정화되지 않은 생활 하수가 상수도로 유입되기 일쑤였고, 콜레라를 비롯한 여러 수인성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창궐했다. 1854년, 소호를 중심으로 콜레라가 다시 유행한다. 스노우는 발병자와 사망자가 나온 집, 인근의 수도 펌프를 면밀히 조사해 지도에 일일이 표시했다. 이 단순한 맵핑을 통해 놀라운 규칙성이 발견됐다. 브로드 가의 특정한 펌프를 중심으로 콜레라가 돌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떨어진 곳의 발병자는 브로드 가의 펌프에서 물을 공수해 먹은 사람이라는 사실도 밝혀내게 된다. 데이터 공간 맵핑을 통한 새로운 발견을 바탕으로 그는 지역 이사회를 설득해 문제의 펌프를 폐쇄하는 성과를 거둔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16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2013년, 데이터 시각화 전문가 앤디 커크Andy Kirk는 스노우의 맵핑 작업에서 다시 새로운 발견을 한다. 이 지도를 보면 유독 맥주 공장 인근에만 사망자가 없는데, 그는 아무런 데이터가 없는 이곳의 의문을 푼다. 물 대신 직접 만든 맥주를 마셨기 때문에 콜레라에 감염되지 않은 것이다. 스노우가 자신이 수집하고 구축한 데이터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면, 커크는 오히려 지도 위의 데이터 공백 지대에서 새로운 발견을 한 셈이다. 이번 호 특집 ‘빅데이터와 도시’를 편집하며 데이터 맵핑의 고전격인 이 런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빅’데이터이든 ‘스몰’데이터이든, 빅데이터의 시각화visualization이든 빅데이터를 이용한 도시 리서치와 디자인이든, 가장 중요한 잠재력은 결국 ‘새로운 발견’이다. 데이터 시각화나 맵핑의 또 다른 가능성은 복잡한 정보를 쉽게 이해하게 해 주는 데 있다. ‘복잡한 정보의 쉬운 전달’을 대표하는 고전적 사례는 이번 호 본문(38쪽)에도 실린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지도’다. 역사상 최고의 인포그래픽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이 맵핑은 프랑스 도시공학자 샤를 미나르Charles Joseph Minard의 1869년 작업이다.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로 진격했다 퇴각한 과정을 재현한 이 지도를 보면, 42만 명 넘는 규모로 출발한 병력이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 이미 25% 이하인 10만 명으로 줄어들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후퇴는 더 어두운 색으로 나타냈고, 퇴각에 영향을 준 기온과 주요 날짜가 하단에 추가로 맵핑됐다. 나폴레옹 군대는 결국 만 명 정도만 귀환했다. 만 명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완전히 망했다는 느낌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지도는 원정군의 경로, 규모, 위치, 이동 방향, 기온, 날짜, 전투명 등 다층적 정보와 그 양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이 복잡한 정보를 글로 쓰고 표로 정리했다면 아마 대부분은 읽고 이해하기를 포기할 것이다. 미나르 맵핑의 강점은 직관적 표현 방식에 있다. 선의 굵기와 방향으로 복합적 데이터를 전환해 아주 쉽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5월호의 ‘빅데이터와 도시’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최근의 다양한 시도가 도시의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어떤 통찰을 줄 수 있는가, 또 더 나은 도시 환경을 설계하는 데 어떤 방법과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비롯됐다. 필자 김승범 박사가 말하듯, “도시 빅데이터의 매력은 바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남긴 흔적이라는 점”이며 그것의 “시각화는…직관적 탐색의 훌륭한 도구”다. 복잡하게 얽힌 데이터를 ‘아름답게’ 변환해 전달하는 그의 최근 작업들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황용하 박사는 딥러닝과 환경 계획의 연계 지점에서 펼쳐지고 있는 다양한 시도를 소개하며, 앞날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활용보다 기본에 초점을 둔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디자이너 소원영은 도시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도시 데이터를 이용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방법을 다루고, 또 디자이너가 경계해야 할 데이터 시각화의 왜곡, 누락, 편향성 등의 문제를 짚는다. 김충호 박사는 환경 설계 분야에서 빅데이터가 지니는 가능성과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빅데이터에 대한 시대적 강요가 아니라, 빅데이터에 대한 비판적이고 자발적인 탐색”이며 “빅데이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각과 창의성”이라는 그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네 필자가 전하고 있는 빅데이터 기반 도시 리서치와 시각화의 현재와 그 의미를 가늠하는 데 있어서 고전의 교훈, 즉 새로운 발견과 쉬운 전달은 여전히 유효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연하게도, 서영애 소장은 호주로 입양된 인도의 미아가 구글 어스로 25년 만에 고향 집을 찾은 실화 ‘라이언’을 이달의 ‘시네마 스케이프’에서 다룬다. “집을 찾은 건 다행이지만, 가만히 앉아서 세상 어디든 볼 수 있게 된 우리가 얼마나 더 행복해졌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는 마지막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떠다닌다. 5월 19일 ‘공원의 재발견’부터 11월 18일 ‘용산공원이라 쓰고, 서울이라 읽는다’까지 총 여덟 차례의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이 열린다. 국토교통부가 주최하고 한국조경학회와 플레이스온이 주관하는 이번 행사에 본지는 후원 역할을 맡았다. 열린 소통과 공론화에방점을 두고 있는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도시학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김세훈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책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 좋은 도시를 바라보는 아홉 개의렌즈』가 본지의 자매 출판사 ‘도서출판 한숲’에서 출간됐다. 2015년 1월호부터 12월호까지 『환경과조경』에 연재한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를 대폭 수정하고 보완한 책이다. 영광스럽게도 이 책의 추천사를 부탁받아, 뒤표지에 짧은 글을 보탰다. “도시는 복잡한 곳, 도시의 삶은 고단한 과업, 도시의 설계와 경영은 난제. 그래서 우리는 역으로 좋은 도시를 꿈꾸고 찾는다. 『도시에서도시를 찾다』는 많은 도시설계가와 도시학자들이 답을 구하는 데실패한 질문에 다시 도전한다.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그러나 해법을 구하는 방법이 새롭고 다르다. 이상이나 규범에 매달리지 않는다. 도시라는 변화무쌍한 세계를 읽는 아홉 개의 열린 프레임을 제시한다. 어느 창으로 세계를 볼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칼럼] 인구통계 생산과 빅데이터
    우리나라는 5년에 한 번씩 인구주택총조사라고 불리는 센서스 조사를 실시한다. 가장 최근에 실시한 센서스는 2015년에 있었는데, 이때 조사된 인구의 크기와 특징은 우리나라 통계의 기본이 되는 기준통계를 만들어내는 데 사용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우리나라의 총인구수 혹은 가구원 수 그리고 각 시도와 시군구의 모든 인구 관련 통계들이 바로 이 센서스를 통해 조사된 인구를 기반으로 추정된 것들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 지역 인구의 수를 측정할 수 있는 두 가지의 통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이 센서스 인구이고, 다른 하나는 주민등록 인구다. 센서스는 실제로 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를 나타내는 통계이고, 주민등록은 말 그대로 그 지역에 주민등록을 둔 사람들의 수를 나타내는 통계다. 농촌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두 가지 통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젊은 인구의 이주가 많고 분가하여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은 도시 지역에서는 두 통계의 차이가 작지 않다. 그런데 최근 센서스를 조사하는 환경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한 집에 실제로 몇 명의 사람이 사는지, 나이는 어떤지, 성별은 무엇인지 등 다양한 특성을 함께 조사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가가호호 방문 조사가 필요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가가호호 방문 조사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난 2015년부터 통계청은 ‘등록센서스’라는 방법을 도입하여 센서스를 실시했다(사실 이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가가호호 방문을 통한 사회 조사 방법 대신 사용한 등록센서스는 가구대장, 주민등록, 출생신고, 사망신고, 혼인신고, 이주신고 등 다양한 신고와 등록 통계들을 조합해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수와 특성을 추정해낸 통계다. 우리가 현재 통계청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2015년의 우리나라 전체 인구뿐만 아니라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의 인구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은 실제 조사된 통계가 아니라 등록센서스를 통해 추정된 통계인 것이다. 실측치가 아니라는 점에서 등록센서스 결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가가호호 방문 조사의 어려움이 실존하는 상황에서 등록센서스는 최선의 대안임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등록센서스는 기본적으로 우리 국민 모두가 지니고 있는 주민등록 자료에 그야말로 링크가 가능한 모든 자료를 통합하여 생성된 통계로서 우리나라 정부가 만들어낸 가장 대표적인 빅데이터다. 빅데이터로서 등록센서스는 정부가 분절적이고 독립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통계와 정보들이 함께 엮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단순하게 서로 다른 통계들을 기계적으로 연계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생성되고 있던 대규모 국가 통계를 대체할 수 있는 정보도 함께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빅데이터의 활용도를 보여준 좋은 사례다. 아직까지는 기존 센서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들만 산출하여 공개하고 있지만, 앞으로 다양한 빅데이터 분석법이 적용되어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무궁무진한 정보를 제공하는 명실상부한 빅데이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구를 측정해낼 수 있는 또 다른 빅데이터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통신사의 통신망 정보다. 통신사의 기지국에 접속된 통신망의 수를 활용하여 소규모 지역의 인구 수를 추정할 수 있다. 특히 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수보다는 한 시점에 그 지역에 실제로 머물고 있는 사람의 수를 헤아릴 때 이 데이터가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등록센서스는 그 지역에 실제 살고 있는 사람의 수를 나타낸다. 하지만 이는 정주 인구일 뿐 실제로 어떤 시점에 경제 활동을 위해 혹은 그냥 지나가기 위해 그곳에 있는 사람의 수가 아니다. 비즈니스에 활용 가치가 더 큰 것은 아마도 정주 인구의 크기보다 낮에 그 지역을 오가는 사람의 크기일 것이다. 빅데이터로서 통신사의 통신망 정보는 이 유동 인구를 파악하는 매우 유용한 빅데이터다. 아직까지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2016년 『한국인구학회지』에 발표된 연구 “스마트센서스의 가능성 모색”은 모든 사람이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의 각종 센서를 활용하여 센서스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가가호호 방문하여 사람들을 조사하는 대신에 사람들이 스마트센서스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깔기만 하면 애플리케이션이 알아서 스마트폰의 센서를 통해 얻은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사용자의 거주지와 직장 등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인구수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한 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 그들은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혹은 낮에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일은 도시를 설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정보다.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빅데이터가 인구를 ‘측정’하는 데 활용될 것이다. 이 측정은 단순한 ‘카운트’를 넘어서 인구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도 포함할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빅데이터가 인구통계 생산에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조영태는 2004년부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인구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수이며, ‘BK21 플러스 모바일 및 빅데이터를 활용한 융합형 보건인재양성사업단장’을 맡고 있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에서 인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유타 주립대학교에서 2년간 조교수 생활을 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인구학적 관점에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측하는 것과, 빅데이터 혹은 모바일 환경이인구 및 보건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최근인구학적 관점에서 미래 사회를 조망한 책 『정해진 미래』(북스톤,2016)를 출간했다.
  • [이미지 스케이프] 자작나무와 이야기하기
    자작나무 좋아하시나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흰색 수피를 가져서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던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 숲, 정말 멋있었습니다. 드라마나 광고 배경으로 종종 등장하는 강원도 원대리의 아름다운 숲도 바로 자작나무 숲입니다. 최근에는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인기가 많아서 아기자기한 카페 한쪽 구석을 차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작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새하얀 수피입니다. 얇게 벗겨지는 껍질에 연애편지를 썼다는 전설(?)로도 유명합니다. 실제 신라의 천마도도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이고 팔만대장경의 일부 재료도 자작나무라고 하니 전설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벌레도 잘 먹지 않고 단단하고 결이 고와 가구나 조각용으로도 사용한다고 하니 쓸모가 참 많은 나무네요.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9호(2017년 5월호) 수록본 일부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 2
    상상하기 ‘상상想像’,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봄. 상상imagination은 디자인 또는 설계의 핵심 요소다. 상상이 디자인이나 설계 프로세스에 필연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현 시점에 존재하지 않는 유무형의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그리는 상상은 현재의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관여하는 매우 중요한 기작mechanism이 된다. 비단 디자인뿐 아니라 인간의 상상은 인류가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기까지 삶의 형태에 알게 모르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마치 실재하는 사실처럼 믿어지고 따르게 된 사회적 가치 기준과 체계”를 ‘상상의 질서’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기독교와 같은 종교,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 사상, 자본주의와 같은 경제 체제가 대표적인 예다. 하라리는 상상의 질서는 인류 초기에 유연하며 효과적인 협동을 가능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됐고, 그로 인해 인류는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지배자가 되어 현재의 모습에이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에 말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다양하게 변화하고 진화해 온 상상의 질서는 현재 더욱 강력하게 우리의 삶을 조작하고 욕망의 형태를 결정하고 있다. ...(중략)... 백종현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미국 하버드 대학교 GSD에서 조경 설계와 도시설계를 공부했다. 다목적 조경 모듈 셀라(CELLA)를 개발하여 2014년 레드닷 디자인에 선정됐고,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 국제정원박람회(The International Garden Festival, 2013)에 초청됐다. 2016년 조경 스타트업 세계수프로젝트를 창업하여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9호(2017년 5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