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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불완전함과 시간이 빚은 자연스러움
알록달록한 색상의 포장석을 켜켜이 쌓아 만든 독특한 디테일의 포장이다. 검은색, 흰색 그리고 붉은색과 노란색까지 다양한 색상의 화강석 판석을 세워 쌓듯이 바닥에 깔아놓았다. 각각의 판석은 대략 230mm 너비에 30mm 폭의 좁고 긴 모양으로, 100mm 깊이로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포장의 레이아웃에는 길이쌓기running bond 같은 정형적인 포장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포장 줄눈의 배열에 어느 정도 규칙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철저하게 따르고 있지는 않다. 포장 숙련공의 손재주와 판단에 따라, 하나하나 다른 색상의 돌을 고르고, 전체와 조화를 이루도록 쌓아나간 것으로 보인다. 포장석의 이음매는 오픈 조인트open joint였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흙이 그 틈을 메우고 군데군데 잡풀이 자라고 있다. 조인트에 흙이 채워지면서 불규칙한 폭의 이음매가 드러난다. 그렇지만 이것이 불완전한 디테일이나 시공상의 실수로 보이기보다는, 마치 손 스케치처럼 자연스럽고 따듯하게 느껴진다. 포장석을 재단한 모양 또한 반듯하고 정확한 형태의 직사각형이 아닌, 모서리가 닳고 이지러진 모양으로 자연스러움을 더한다. 색상의 다양함과 석재를 재단한 모양의 불규칙함, 그리고 줄눈의 불완전함으로 연출되는 자연스러움은 설계가가 하나하나 완벽하게 도면에 명시하여 컨트롤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솜씨 좋은 시공과 함께, 시간에 따른 자연의 레이어가 추가되어 완성된 디테일이다. 이 포장석 길은 2004년 완공 당시에는 원래 흙다짐 포장이었지만, 이는 5년도 지나지 않아 풍화 작용으로 인하여 휠체어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울퉁불퉁하게 망가져버렸다. 견고한 새 포장 방법의 모색 끝에, 부엌의 조리대countertop를 시공하고 남은 화강석 조각을 모아 포장 재료로 재생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포장 재료의 알록달록한 색상은 자투리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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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차명호 섬이정원 대표
섬이 곧 정원이다
남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안온한 계곡은 바람도 잠잠했다. 태양을 받아안듯 팔을 벌린 초겨울의 남해, 정원 산책은 한마디로 행복감이었다. 다랑이논이라는 지형 위에 다양한 형식의 컨템퍼러리 가든을 제시한 섬이정원. 수백 년 전에 조성된 둠벙과 농업용 수로라는 문화재급 경관을 그대로 살리면서 우리식으로 귀화한 유럽 스타일과 노하우를 접목시켰다. 외래종과 토종이 서로 어울려 자라고 반딧불과 논의 생물이 번성하는 곳. 우리 국토는 하나의 큰 정원이라는 깨우침을 주는 곳이다. 발아래 펼쳐진 남해 바다와 다도해 섬들의 풍광은 ‘섬이 곧 정원이다’라는 뚜렷한 철학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오르락내리락 높낮이가 다른 다랑이논은 누군가 오래 전에 쌓은 돌담으로 지탱된다. 그렇다, 오래됐다는 것이 핵심이다. 거기에 열한 개의 작은 정원이 각각의 방처럼 다른 주제를 선보이며, 때로는 이태리처럼, 때로는 캘리포니아스럽게 펼쳐진다. 다랑이논은 산 위의 바다 같다. 정원이 물 위에 섬처럼 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초겨울이라 모든 것이 말라 있을 법한 계절이었지만, 섬이정원의 곳곳은 물길과 연못으로 가득했다. 한겨울에도 풍성함과 생동감을 주는 물소리는 반도의 남쪽 끝을 실감케 한다.
정원이란 해 보기 전엔 결코 모르는 것이다. 엄청난 노동이다. 불확실성과 비예측성이 지배하는 정원을 혼자의 힘으로 가꾼다는 것은 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섬이정원은 빼어나다. 무엇보다 정원 자체에 집중하는 사람, 차명호 대표 개인의 취향과 안목이 차분하고 짙게 반영된 곳이라 더욱 값지다. 철저하게 나만의 정원인데, 역설적이게도 그 어느 곳보다 공감되는 정원이기 때문이다. 50톤의 자갈을 수레로 깔았다. 나무 한 그루, 바닥 한 뼘에도 큐레이터로서 그의 판단과 손길이 속속들이 채워져 있다. 어쩌면 채우는 것은 돈으로 가능하지만, 비우는 것은 안목일 수밖에 없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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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탐독] 폭력의 상징이 된 식물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독을 품은 숲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1982년 만화로 발표되었다. 이후 1984년 애니메이션 영화로 상영된 후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꼽힌다. 나우시카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에 등장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나우시카를 구상할 때 SF 소설의 대가 어슐러 르 귄Ursula Le Guin의 『어스시의 마법사The Wizard of Earthsea』를 비롯해 톨킨의 『반지의 제왕』 등 많은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가장 크게 영향 받은 것은 조국 일본 미나마타 해안의 급격한 오염이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오염이 곧 인류에게 가장 큰 위험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나우시카는 환경 오염과 인간이 일으키는 전쟁에 대한 반대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어느 시점인지 알 수 없는 미래로부터 천 년 전, 인간은 대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인류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개발해서는 안 되는 살인 무기, 거인병까지 만들어낸다. 이 거인병은 결국 7일간 지구를 잿더미로 태우며 전쟁을 끝낸다. 전쟁의 결과 그 어떤 자의 승리도 없었다. 인류의 반 이상이 죽었다. 나머지도 황폐화된 환경 속에 독을 뿜는 균과 거대 갑각류 곤충의 등장으로 방독면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천 년이 흘렀지만 인류는 여전히 전쟁을 멈추지 않는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전쟁을 막고 오염된 지구를 살리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거대 곤충과 함께 인간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는 소녀의 이야기다. 나우시카는 인간이 오염시킨 흙에 의해 균이 독을 뿜어내게 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를 통해 소녀는 오염되지 않은 흙과 공기만 있다면 균이 더 이상 독을 뿜어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빠진 모래 무덤 밑 지하에 맑은 공기와 물이 있음을 발견한다. 결국 답은 나무에 있었다. 나무가 뿌리로 흙의 오염 물질을 빨아들인 뒤 정화하고 죽어서 지구의 환경을 돌려놓고 있는 중이었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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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코코
이토록 황홀한 죽은 자의 공간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미지의 사건, 외로움, 기약 없는 이별 등이라고 한다. 만약 죽은 후에 먼저 죽은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어울리며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멕시코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이가 1년에 한 번씩 가족을 만나러 온다고 믿는다.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Coco’는 멕시코 전통 명절인 ‘죽은 자의 날’을 모티브로 삼아 삶과 죽음의 연속성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유쾌한 방식으로 그린다.
‘죽은 자의 날’은 3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으로, 멕시코에서는 해마다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공원과 가정에 제단을 차리고 죽은 이들을 기린다. 금잔화와 촛불로 무덤을 환하게 장식하고, 죽은 이들이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먹으며, 즐겨 듣던 음악을 듣는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돌아올 때 무덤에서 집으로 온다고 믿기에 잘 찾아 올 수 있도록 꽃길을 꾸민다. 이 전통은 멕시코 토착 공동체의 일상에 미치는 사회적 기능과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12세 소년 미구엘의 5대에 걸친 가족사를 소개하며 영화가 시작한다. 축제의 날, 거리에 매달린 형형색색의 색종이 공예를 활용하여 픽사의 전작인 ‘업Up’(2009)처럼 긴 시간의 서사를 압축해 전달한다. 미구엘의 고조할아버지는 음악의 꿈을 펼치기 위해 고조할머니와 딸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고조할머니는 구두 만드는 법을 배워서 고난을 극복하며 딸을 키웠다. 구두 만들기는 그녀의 딸의 딸의 딸로 이어져 5대째 내려오는 가족 사업이 되었다. 미구엘은 치매에 걸린 증조할머니와 씩씩한 할머니와 부모와 친척들과 함께 산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본 영화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새롭기도 하고, 못보고 지나쳤던 것도 보인다. ‘패터슨’ 덕에 다시 본 짐 자무쉬 감독의 ‘천국보다 낯선’은 처음 보는 영화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나이 드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환경과조경359호(2018년 3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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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옥상달빛
평범한 도시 남성의 옥상 경험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공통분모가 가장 큰 옥상의 추억은 흡연이다. 추억보다는 현재진행형의 용도라고 표현해야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제아무리 리처드 클라인을 인용해가며 “담배는 숭고하다” 외친들 이미 담배는 천덕꾸러기를 넘어 공공의 적이다.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여전히 40%를 넘나드는데 도시의 거의 모든 공간에는 빨간색 금연 딱지가 선명하다. 옥상은 그나마 융통과 변칙이 묵인되는 일천만 흡연인의 해방구다.
옥상의 두 번째 추억에는 으레 주먹이 등장한다. “옥상으로 올라와.” 이 짧은 명령문 하나면 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옥상은 군기 잡는 선배 앞에 무릎 꿇는 복종의 공간이(었)고, 학교 폭력의 전시장이(었으)며, 갖가지 명분의 싸움과 결투가 벌어지는 전장이(었)다. 청소년기에 옥상에서 겪은 사건들을 망각할 능력이나 추억이라 포장할 배포가 없다면, 옥상은 긴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의 공간이다.
세 번째 추억은 현실과 로망의 경계선상에 있다. 많은 이에게 옥상은 아련한 기억 저편의 사랑을 소환하는 가슴 먹먹한 장소다. 뭇 남성이 다 자기 이야기라고 여겼다는 공전의 히트작 ‘건축학개론’. 대학 새내기 서연(수지 분)과 승민(이제훈 분)의 어설픈 두 번째 데이트 장소는 개포동의 어느 아파트 옥상이다. CD 플레이어의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고 듣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신체의 모든 감각을 무장 해제시킨다. 옥상은 이렇게 이성은 물론 감성마저 마비시키는, 아름다운 기억의 장소다.
이 셋 중 한둘은 우리 모두가 겪어 온 도시 삶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요즘 옥상 풍경은 이 정도 수준이 아니다. 옥상이 우리 사회와, 동시대 문화와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정말 다채로워지고 있다. 옥상에서 화분을 가꾸거나 상추를 기르며 짧게나마 노동의 희열을 맛보는 건 이미 고전이다. 더 진취적인 사람들은 블루베리 농사도 짓는다. 옥상을 이용해 빗물을 모으거나 옥상을 녹화해 기후 변화에 대처한다는 거룩한 명분의 사업도 활발하다. 옥상에서 하늘과 별과 바람이 주는 해방감을 느끼며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건 이미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쿨한 곳, 핫한 곳 가리지 않고 도처의 옥상을 카페와 바가 접수하고 있다. 나의 한 페이스북 친구는 주중의 격무를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주말용 옥탑방을 얻은 후 혼자 밥 먹고 술 마시며 빔 프로젝터로 영화 본다는 자랑질 포스팅을 매주 한다. 자본주의 도시 공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랄까, 여럿이 옥상을 함께 쓰는 움직임도 고개를 들고 있다. 어정쩡하게 버려져 있던 옥상이 도시의 그 어느 공간보다도 다양한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하며 우리의 라이프스타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옥상을 마음껏 즐기고 살면서 동시에 옥상에서 작품까지 생산하는, 부러운 도시인이 있다. 기자 출신의 화가 김미경은 서촌에 거주하면서 인왕산이 보이는 동네 풍경과 골목길, 서촌의 꽃과 사람들을 화폭에 옮긴다. 동네 친구들 옥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려서 “서촌 옥상 화가”라 불린다. 그는 옥상의 매력을 이렇게 전한다. “옥상에서 보는 서촌은 어마어마한 바닷속 풍경인 듯도, 축소된 세계 지도인 듯도 하다. … 옥상에서는 전체 구도가 확연하게 보여 좋다. 동네가 산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어디서부터 길이 시작되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동서남북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내가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내가 자리한 곳이 어디인지를 객관화해 볼 수 있어 좋다. 그 새로운 면들이 겹치고 풀리고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예측할 수 없는 선과 면, 그리고 새로운 구도를 찾아낼 때마다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는 기분이다.” 펜 터치가 정다운 그의 ‘옥상화’ 엽서를 보노라면 서울의 또 다른 세계로 한 걸음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
운 좋게도, 나에게는 일상을 풍요롭게 해 주는 옥상이 있다. 연구실에서 다섯 걸음만 내디디면 검박하면서도 화려한 옥상 테라스다. 여느 옥상처럼 어수선하게 방치되던 곳을 동료 정욱주 교수가 정갈하게 디자인해 고쳤다. 꼼꼼한 디테일의 데크, 장방형의 내후성 강판 플랜터, 그 속에 날아와 스스로 자란 이름 모를 야생의 꽃과 풀, 단정한 철제 의자와 여유로운 목제 평상이 전부지만 그 조합의 시너지가 만만치 않다. 압권은 옥상을 향해 달려오는 관악산 풍광과 기운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산 풍경도 아니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아니다. 산허리를 바로 눈앞에서 뚫고 대면할 수 있는 도시의 이 비경을 김미경 작가라면 어떻게 담아낼지 궁금하다. 그이처럼 재주가 없고 성실하지도 못한 나는 내가 정해 놓은 한 지점에서 같은 장면의 사진을 이따금 찍을 뿐이다.
옥상에 가만히 앉으면 날이 밝아 오고 해가 저물 때의 기온 변화를 스마트폰이 아닌 피부로 알 수 있다. 땅거미, 오래 잊고 지낸 이런 단어가 다시 생각난다. 도시의 초록이 봄과 여름과 가을에 어떻게 다른지 실물로 배운다. 감각의 연합, 즉 공감각synaesthesia이 책 속에만 존재하는 개념이 아님을 온몸의 감각으로 직접 느낀다. 어느 가을밤, 나를 삼킬 듯한 달빛을 옥상에서 만나고야 말았다. 옥상의 여러 얼굴을 포착하고자 기획한 특집 ‘옥상다반사茶飯事’를 싣는 이번 호 에디토리얼에는 그 달빛의 감동을 전해야겠다 싶어 제목을 ‘옥상달빛’으로 일찌감치 고정했다. 도무지 전할 방도가 없는 글쓰기 재주, 지면이 춤을 춘다.
애꿎은 네이버에 옥상과 달빛을 쳐 넣으니 가수 ‘옥상달빛’이 제일 먼저 뜬다. 아, 이런 듀엣이 있구나! 뭔가 글감을 포착한 직감이 들어 그들의 음악을 재생한다.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노래를 듣다가 방에서 공부하는 아이를 불러내 “너, 옥상달빛 아니? 이 노래 완전 좋은데?” 물으니,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짓는 아이에게서 이런 답이 돌아온다. “아빠, 아니 교수님, 공부 좀 하셔야겠어요. 벌써 7, 8년 된 노랜데요? 드라마 ‘미생’에도 OST로 나오잖아요.” (얼마 안 됐네. 다 지우고 다시 써볼까? ‘미생’의 명장면들에도 옥상이 많이 나오는데, 어떻게든 엮어볼 수 있지 않을까….)
올해는 연재물을 점차 줄여나가면서 특집 중심의 구성, 즉 독립된주제의 단행본 성격을 띤 구성을 실험해 볼 계획이다. 가까운 예로는 자전거를 주제로 특집 원고와 작품을 엮었던 2015년 4월호를 들 수 있겠다. 실험의 첫 걸음으로 이번 호에서는 옥상을 주인공으로 발탁해 보았다. 많은 관심과 피드백 부탁드린다. 참, 이달에는본문 편집 디자인에도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알아차리신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역시, 많은 의견 부탁드린다.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을 연재하고 있는 최이규 교수(계명대학교도시학부)가 『와이드 AR』과 『건축평단』이 공동 주최한 ‘2017 올해의 발견, 매체기고부문’에서 수상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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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옥상, 공간이 되다
현대 도시는 ‘옥상의 숲’이자 ‘옥상의 바다’라 할 만하다.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면 옥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 옥상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지표 혹은 지상의 눈높이에서는 그 모습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동선 상에서도 대면할 일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네 눈에서 가깝지 않아 마음에서도 멀어진 것일까. 세상 만물의 의미와 용도를 해석하는 사전에서는 옥상屋上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사전은 옥상을 “지붕의 위, 특히 현대식 양옥 건물로서 마당처럼 편평하게 만든 지붕 위”(표준국어대사전)로 정의한다. 영어로는 루프탑rooftop인데, 이는 “the outer surface of a building’s roof”(Oxford English Dictionary)이다. 결국 옥상은 “건물 지붕의 외부 표면” 정도로서 태생부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운명 지어진 곳일지도 모른다.
지붕에 종속되어 덤으로 생겼기 때문에 그것이 담아내는 혹은 담아내야 할 기능에 애초부터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대부분 옥상은 건축물 혹은 건물주主의 사정이나 형편에 따라 유동적이고 가변적으로 이용되는 편이다. 건물의 주 기능을 보조하거나 건물을 이용하는 인간의 활동을 거드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다. 가끔은 실내 금연 구역을 피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야외 흡연 구역이 되고, 때로는 가스통, 에어컨 실외기, 물탱크 등 실내에 두면 너무 크거나 위험한 것들을 올려두는 지상의 지하실이 되며, 이따금 꽃과 화단, 평상이나 장독대를 놓아두는 공중의 마당이 되는 것이 그런 경우다.
오늘날 옥상은 더 이상 도시의 주변적 존재가 아니다. 이제 옥상은 건물의 일부로서 버려지고 방치되는 공간이 아니라 웰빙, 힐링, 생태 등 사회 문화적 코드와 맞물려 그 자체가 독자적 기능을 지닌 하나의 건축 요소이자 실재하는 공간으로 무한 변신 중이다. 일부러 찾아가는 일이 드물었던 옥상을 언제부턴가 기꺼이 제 발로 찾아 오르고 있다. 지금 옥상은 또 하나의 완전히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재탄생 중이다.
엄격히 옥상은 ‘허공虛空’이나 다를 바 없다. 적극적인 건축 행위를 통해 구축된 공간이 아니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일 것이다. 의도하고 건축된 것이 아닌 까닭에 통상 공간이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옥상에는 벽도, 천장도 없이 오직 바닥만 주어진다. 말하자면 옥상은 공간이 아니라 ‘텅 빈 공중’으로, 건축물로서 제대로 된 권리를 부여받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허공이기 때문에 옥상은 어떠한 변신도 포용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옥상은 공중에 직접 노출되어 있어 기온, 바람, 습도 등 외부 환경에 상대적으로 민감하고 방수, 환기, 채광 등에서도 치명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내부에 위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옥상은 빛이나 공기, 온도 등과 원초적으로 교감을 이루는 장소로 거듭날 여지가 있다. 옥상의 비존재성 혹은 비물질성은 역설적으로 가꿔지고 채워질 수 있는 옥상의 잠재력을 웅변한다.
‘자연과의 열린 만남’이라는 내재적 유용성이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강화된 형태는 정원庭園이 된 옥상이다. 도시의 일반 옥상이 ‘녹화’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모방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면서 ‘공중의 녹지’로 변모하고 있다. 옥상을 정원으로 가꾸고 꾸미는 것은 개인적 차원의 기쁨과 희열 이상이다. 옥상 정원은 도시의 미기후를 조절하거나 녹색의 집합 경관을 창출하는 생태적·환경적 가치뿐만 아니라 도시민에게 새롭고 즐거운 시각적 자극과 생태적 삶의 회복을 주는 사회적 가치도 창출한다. 이러한 이유로 옥상 정원을 통한 도시 녹화가 공공 사업의 대상으로 부상 중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옥상은 ‘농사’라는 전통적 행위가 발생하는 농지農地가 되기도 한다. 버려졌던 옥상이 인간의 원초적 노동이 행해지는 ‘생산의 공간’이 된다는 것은 비단 농촌 문화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옥상의 도농 결합은 도시민이 수확의 즐거움을 맛보고 화학 비료와 농약으로부터 안전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색다른 체험이다. 이웃과 함께 농촌의 삶을 체험하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면서 도시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경작지로서 옥상은 자연스럽게 애그리테인먼트agritainment가 실천되는 지역 사회의 공공 자산이 된다.
자연을 직접 만나고 체험하는 것을 넘어 옥상은 근래 여가, 오락, 소비 등의 가치가 더해진 새로운 도시 문화 인프라로 급부상하는 중이기도 하다. 옥상에 들어선 극장,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를 찾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공과 자연, 내부와 외부가 혼재되는 옥상은 그것이 담아내는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게다가 옥상은 콘크리트 벽에서 벗어난 탈일상적 해방감,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각적 쾌락, 날씨나 시간에 따라 새롭게 창출되는 심미적 분위기 등을 제공하면서 현대인의 감성적 소비 욕구를 충족시킨다.
분명 옥상은 처음부터 자신의 고유한 가치나 용도를 가진 채 태어나지 않았다. 옥상의 기능이나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되거나 확실하게 제기된 적도 없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옥상은 단순한 ‘지붕 표면’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공간’으로서 권리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공간으로서 옥상은 공공성을 담지한다. 새롭게 발견된 도시 면적이면서 도시 형태나 도시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이자 다양한 도시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는 기폭제다. 이는 우리가 이제야 갖게 된 옥상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이유이기도 하다.
김미영은 현재 서울연구원 초빙부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홍익대학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관심 분야는 도시의 문화 예술 공간, 공간의 문화사, 공간의 사회학 등이며, 공간의 문화 사회적 기능과 의미를 발견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주요 논문과 저서로는 『서울 사회학』(공저, 2017), 『옥상의 공간사회학』(공저, 2012), “현대 공공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 고찰”, “호텔과 ‘강남의 탄생’”, “‘오감(五感) 도시’를 위한 연구 방법론으로서 걷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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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세븐 마일 브리지
호수 같은 바다, 끝없이 이어지는 다리들. 플로리다의 키웨스트Key West로 인도하는 교량이 이번 사진의 주인공입니다. 저는 지금 미국 남부를 여행하는 중입니다. 따뜻한 남쪽 나라 날씨를 기대하고 왔는데, 이상 한파의 여파로 미국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네요. 30년만에 내렸다는 플로리다의 눈을 직접 목격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습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미국의 최남단 키웨스트입니다. 미국 본토에서 무려 170km나 떨어져 있는 곳이지요. 흔히 키웨스트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플로리다 남단부터 쿠바 방향으로 연결된 수많은 섬으로 구성된 곳입니다. 지도에서 보면 섬들이 길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특이한 형태입니다. 쿠바와 국교를 단절하기 전에는 쿠바와 교역하기 위한 철도를 연결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던 모양입니다. 거의 300km의 바다를 연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8호(2018년 2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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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축조경관
엽서자연1
언제부턴가 지하철 역사에는 지방 자치 단체 홍보 포스터가 여기저기 걸려 있다. 저마다 지역색을 진하게 드러내는 관광 아이템을 앞세우고, 정감 있는 캘리그래피로 쓴 흥겨운 문구도 빠지지 않는다. 거의 모든 포스터의 배경은 그 지역에서 연중 가장 멋진 날에 극적인 조망점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채도를 한껏 높여 촌스러워 보이는 사진도 있지만, 몇몇 사진은 우리나라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지명이 생소하더라도 당장 열차표를 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그곳에 가면 과연 사진 속 그 경관을 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선명한 사진 속 아름다움은 머릿속에 분명한 하나의 자연 경관으로 각인된다. ...(중략)...
1.영국의 비평가 레이몬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가 『Problems in Materialism and Culture』(Verso, London, 1980)에서 “자연이란 언어 중 가장 복잡한 단어다(Nature is one of the most complex words in language)”라고 했듯이 자연을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humanity, culture) 이외의 것(otherness)”을 공간 환경을 다루는 이 글에서의 의미로 줄여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 환경의 반대 성격의 대상’이 될 것이다. 도시와 이격되어 물리적, 심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자연환경이 주가 되는 장소 또한 이 글에서 의도한 자연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최영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설계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그룹(SWA Group)에서 다양한 성격의 설계 및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미국조경가협회상(ALSA Honer Award), 아키프리 인터내셔널(Archiprix International) 본상, 뉴욕 신진건축가공모 대상, 제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에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설계사무소 Laboratory D+H를 공동 설립하고 L.A., 센젠, 상하이에 이어 서울 오피스를 꾸려 나가는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8호(2018년 2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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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콘크리트의 가능성 4 - 인프라스트럭처
사진의 공간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콘크리트를 마감 재료로 사용했다. 뒤쪽 고가 도로 구조물과 왼편의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계단벽 사이를 가로지르는 보행로에 초점을 맞춰보자. 차도와 인접한 약 3m 남짓한 폭의 보도는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인도에 사용하는 현장 타설 콘크리트cast-in-place concrete로 마감했다. 현장 타설 콘크리트 보도는 약 2.4m마다 균열 조절 줄눈을 배치해 온도 변화에 따른 재료의 갈라짐을 예방했다. 보도와 인접해 약 4m 폭의 산책로가 있는데, 인도의 균열 줄눈과 동일한 이음매를 가지고 있어 언뜻 보면 같은 현장 타설 콘크리트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산책로는 일정한 크기의 모듈로 제작된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판이다. 이 판은 캔틸레버 구조로 바다 위에 떠 있으며, 오른편의 도시와 왼편의 부두pier 시설을 연결한다. 각각의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모듈에는 일반 벽돌보다 조금 큰 크기의 유리블록이 끼워져 있다. 유리블록은 모듈의 수평 방향과 32도 기울어진 사선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기울어진 레이아웃에 따라 이음매와 만나는 부분의 유리블록들은 크기를 짧게 변형하거나 생략했다. 유리블록의 모서리가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스테인리스 스틸로 프레임을 짜 맞추었고, 유리블록의 아래를 뚫어 콘크리트 판 밑으로 빛이 투과되도록 설계했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8호(2018년 2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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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엄석만 전 비산 2, 3동장
백만 원의 도시재생
지난해 대구 비산동 골목 정원을 자주 찾았다. 학생들과 답사를 갔고, 몇몇 지인과 시간을 내 구경을 가기도 했다. 타지에서 도시와 조경에 관심 있는 분이 오시면 꼭 보여드리는 장소다. 전주나 부산으로 치자면 한옥마을이나 감천마을 같은 단골 메뉴인 셈이다. 버나드 루도프스키Bernard Rudofsky의 『건축가 없는 건축Architecture without Architects』에 한 번쯤 공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동을 받는 눈치였다. 오래된 콘크리트 골목의 지역성과 서민적인 재료, 때로는 펑키하고 키치한 미적 감각, 하지만 매우 기능적이고 문화적으로 풍부한 뉘앙스를 가진 곳. 감천마을만큼 크지 않고, 그만큼의 관광객도 없지만 이곳의 골목 정원은 훨씬 더 훌륭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외부로부터 시작된 혹은 주입된 사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일상적 감각이 외부로 표현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와서 후다닥 벽화를 그려 놓고 사라져버리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같은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8호(2018년 2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