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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설계하는 법] 다섯 가지 시선
    숨겨진 풍경 찾기_우면동 H 주택 정원 2011년 7월 어느 날, 갑자기 불어난 빗물이 우면산 아래 조용하고 아늑한 형촌마을을 덮쳤다. 건축주의 회고에 따르면, 검붉은 흙물이 집 주변을 온통 휘감으며 대문과 담장을 무너뜨리고 길과 마당을 뒤덮어 집들만 물 위에 동동 뜬,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서운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는 수마의 흔적을 치우다 지쳐 결국 우리 사무실에 정원 공사를 의뢰했다. 아담하고 오래된 2층 주택의 작은 정원. 산림청이 수해 대책 차원에서 정원의 규모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무지막지한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아놓은 상태였고, 곳곳에 수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안전이 우선이었던 건축주는 처음에는 물로 인한 피해만 없으면 된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점차 쌓여있는 자연석 덩어리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편 우면산 자락과 맞닿은 이 주택은 창을 열면 산의 녹음과 공기가 집안으로 들고 새들의 울음이 바로 방 안까지 전해지는 곳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주변 산의 경치는 아주 훌륭하지만 자연석 석축이 오히려 산의 흐름을 정면으로 막고 서 있다. 산의 흐름을 가만히 살펴본다. 암반의 흐름을 살핀다. 산림청이 마구 쌓아놓은 석축에 눌린 정면의 작은 둔덕이 계속 눈에 거슬린다. 꼼꼼히 살펴보니 그 작은 둔덕이 암반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주변에 일부 노출된 암반을 보니 둔덕은 같은 암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드러나 있는 모습이 훌륭하다. 과연 이 아래 멋진 암반이 자리하고 있을까? 모 아니면 도다. ...(중략)... 이재연은 특별할 것 없는 학벌과 스펙에 그저 풍류를 좀 즐길 줄 아는 이 시대의 평범한 조경쟁이다.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17년을 근무한 후 2006년 조경디자인 린(주)을 설립해 현재에 이르렀다. 서안에서 국내외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정원 공사의 디테일에 매료돼 린을 창립한 후 설계와 ‘정원 공사’를 병행하고 있다. 직접 설계하지 않은 것은 공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5호(2017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콘크리트의 가능성 1 - 포장
    해외 옥외 공간의 포장에서 콘크리트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재료다. 특히 미국의 공원이나 광장 등 공공 공간의 포장에는 경제적인 측면, 생산과 시공의 용이성을 이유로 콘크리트 포장석이나 현장 타설 콘크리트를 쓰는 것이 보편적이다. 사진의 공원에서도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포장석을 사용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콘크리트 포장석과는 재료 자체의 물성, 유닛 하나의 크기, 형태와 놓인 방식 등이 상당히 다르다. 우선 포장석 하나의 크기가 약 30 × 360cm, 두께가 12.5cm에 달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포장석보다 훨씬 크다. 이 정도 크기라면 포장석이라기보다는 널plank이라고 칭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일반적인 포장석은 긴 구간을 따라 이음매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맞추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보통 번갈아 어긋난 이음매로 레이아웃을 짜는데, 이 공원의 경우는 오히려 재료의 긴 방향을 따라 이음매를 정렬했다. 널의 가로 방향으로는 이음매가 번갈아가면서 위치하는 길이쌓기running bond 패턴으로 재료를 배열했다. 유별나게 크고 무거운 콘크리트 널을 완벽하게 정렬하기 위해 콘크리트 침목sleeper과 받침대pedestal로 격자형 구조를 짜고, 그 위에 스페이서spacer를 이용해 콘크리트 널을 일정한 간격으로 올려놓았다. 플랜터에 인접한 널은 약간 위로 높아졌다가 다시 낮아지며 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형태인데, 폭이 좁아지면서 생겨난 틈 사이로 식물이 비집고 들어와 자라고 있다. 식물뿐만 아니라 녹슨 철로 또한 이 틈 사이로 끼어들어 마치 식물이 철로와 콘크리트 구조물을 뚫고 나와 자라는 듯한 모습이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5호(2017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박동훈 총괄디렉터, 필동문화예술공간 예술통 작은 공간의 아름다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이런 언급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선 그 장소에서 해가 뜨고 움직이며 지는 것에 대해 무척 잘 알아야 한다.” 북한산 인수봉이 만져질 듯이 맑은 늦여름 날, 충무로역에 내려 남산 자락의 필동으로 걸어 올라갔다. 거리에서 박동훈 총괄디렉터를 만났다. 도시에 대해 묻자 그는 재생 이전에 ‘재발견’을 말했다. 오랫동안 열심히 바라본 경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크게 대단할 것도 없는 세상을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 나고 자라는 대로의 자연, 여기 내가 자라온 도시가 가장 큰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다는 단순한 긍정이 그 밑바탕이었다. 잠시 기운 빠지는 얘기를 하자면, 우리 사회의 도시재생은 아직 기술적 사안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다. ‘시민의 합의’,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라는 당위적 선언은 50조라는 숫자 앞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허무하게 사그라져 버렸다. 다들 4대강 사업의 두 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수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미 수표의 액수는 정해졌으니 그럴듯해 보이는 영수증 처리만 남았다. 그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지역과 동네에 대한 애정과 애착, 그 눅진한 감정이 빠져 있는 수많은 ‘사업 시나리오’에서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진정성을 그리워한다. 정작 주연은 없이 연출만 가득한 공연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느라 두꺼운 페이지와 긴 표와 맥 빠진 수사를 낭비하고 있는 투자 유치 보고서들을 보고 있자니, 피곤에 절은 누군가의 단견과 매몰된 시야에 의존하는 작금의 도시재생 촬영장이 불안하고, 또 불행하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5호(2017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정원 탐독] 문학 속의 정원과 사람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정원 서양 문학사의 큰 기둥 중 하나로 14세기 이탈리아의 대문호 보카치오Giovanni Boccacio의 『데카메론』을 꼽는다. 『데카메론』은 하나의 서사가 아니라 백 편의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액자 소설이다. 『데카메론』이 발표된 1350년은 유럽 인구의 5분의 1을 앗아간 대참사 흑사병이 돈 지 2년이 지났을 때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심은 일곱 명의 젊은 여인과 세 명의 남자로, 이들은 흑사병이 번진 도시 피렌체를 떠나 한적한 시골 저택에 함께 기거한다. 이들은 모두 사랑하는 가족, 이웃, 친구를 죽음의 도시에 버려두고 도망친 마음의 빚을 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거운 빚을 거두기 위해 춤추고 노래하고 게임을 즐기며 원초적인 기쁨에 매달린다. 가장 중요한 일과는 매일 밤 여자 중에서 한 명의 여왕과 남자 중에서 한 명의 왕을 정해 이들이 정하는 주제에 따라 열 명이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체류 기간은 14일이었지만 일주일에 이틀은 이야기를 멈췄기 때문에 열흘에 걸친 열 명의 이야기가 곱해져 총 백 개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보카치오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저택과 정원을 『데카메론』에 매우 상세하게 묘사했다. 또 이야기의 좌장이 되는 왕과 여왕이 정하는 주제도 식물, 정원, 인간의 예술, 자연으로 흘러갔다. 보카치오가 설정한 시골의 저택과 정원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의 모습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당시 이탈리아 정원은 직선과 기하학적 형태, 완벽한 균형과 축으로 구성되고, 그 안에는 건축물, 조각물, 다리 등 인간의 예술이 가득한 곳이었다. 사실 이것만 본다면 정원을 지극히 인위적인 인간의 공간으로 봐야 할 테지만, 이 장소가 들어선 정원의 자리가 산중턱의 자연 환경을 그대로 끌어안고 그 안에 심어진 식물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둘러싸여 있다. 보카치오가 말하듯, 자연과 인간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완벽한 작품이 바로 정원인 것이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5호(2017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이미지 스케이프] 오로라타프
    서울정원박람회 다녀오셨나요? 그럼 꽃으로 둘러싸인 ‘여의지’도 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오로라타프Aurora Tarp’도 보셨겠군요. 작년 서울정원박람회에 등장했던 오로라타프가 올해도 다시 중앙 무대 앞에 자리를 해서 이젠 제법 박람회의 안주인 같은 느낌입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화려한 색감도 일품이지만 바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와 움직임도 아주 멋집니다. 마치 대나무 숲에 들어와 있는 느낌도 들고. 오로라타프? 앞의 ‘오로라’는 쉽게 이해가 가는데, 뒤쪽의 ‘타프’는 좀 생소합니다. 오로라는 하늘을 배경으로 다양한 형태와 색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타프는 무슨 뜻일까요? 구글신에게 물어봤습니다. 역시 이미지들이 쭉 올라오는군요. 텐트하고 비슷한데 천장 부분만 있어서 야외에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장비라고 합니다. 캠핑을 좀 해 보신 분이라면 이미 친숙한 용어겠네요. 그러고 보니 공원이나 둔치에서 많이 본 것 같습니다. 타프tarp는 타폴린tarpaulin의 줄임말로 사전적 의미로는 타르 칠을 한 방수천, 방수외투, 방수모인데, 실제로는 햇볕과 비를 막는 천막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로라를 닮은 그늘막이라는 말이군요.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5호(2017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시네마 스케이프] 아이 캔 스피크 파인 땡큐, 앤 유?
    외국 영화를 보다 보면 그렇게 완벽하지 않을 때도 “퍼펙트”라고 표현하거나, 누가 봐도 곧 죽을 상황인데도 “잇 윌 비 오케이”라고 답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뭐, 나쁘지 않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 정도가 솔직한 표현일 텐데 말이다. 실제로 “하우 아 유?”라는 인사에 진짜 “파인 땡큐, 앤 유?”라고 답하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영화에선 한 번도 못 봤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는 이 대사가 자주 나온다. 씩씩한 나옥분(나문희 분)은 자신 있게 “파인”을 외친다. 누구보다 괜찮지 않은 그녀가 괜찮다고 외칠 때마다 관객의 눈 주변은 뜨거워진다. 민족 최대의 명절(대체 이 표현은 누가 먼저 쓰기 시작했을까. 명절이라니, 게다가 민족 최대라니, 오 노!) 연휴 기간에 본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괴짜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는 가벼운 터치의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무슨 이야기를 영어로 하고 싶은지 그 이유가 밝혀지는 중반 이후부터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영화다. 이 원고가 실릴 때는 할머니의 비밀(?)이 이미 비밀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뒤늦게 영화를 볼 관객을 위해 가슴까지 뜨거워지는 중요한 사연은 아끼기로 한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9월 2일~11월 5일). 서울시는 돈의문 뉴타운 지구에 포함되었던 돈의문 옆 새문안 마을을 철거하지 않고, 한옥과 일본식 주택과 옛 골목길을 그대로 살려 마을 전체를 재조성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며 진짜 마을을 만들어낼지 천천히 지켜볼 일이다. *환경과조경355호(2017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가까운, 또는 먼 이웃
    대규모 단지의 재개발이 이루어지려면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영구적이든 한시적이든 이주를 해야만 한다. 새로 지어진 건물에 원래 살던 이들이 항상 입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입주할 수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임시로 거주할 만한 공간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재개발을 늦추지 못해 강제 철거를 하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폭력적인 과정에서 삶을 파괴당하는 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그곳에 터를 잡고 살던 고양이를 포함한 동물들이 철거 과정에서 압사당하기 일쑤고 드넓은 배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등, 그 땅을 기반으로 지속해 온 생태계 전체가 거대한 삽 앞에서 무력하게 스러지곤 하는 것이다. 때문에 둔촌주공아파트 단지의 대규모 재건축이 예정되면서 동네 고양이들을 돌보던 이들은 고양이들의 안전한 이주를 고민하게 되었다. ‘둔촌냥이’는 봉우곰스튜디오의 김포도 작가, 마을에숨어의 이인규 작가, 개인 활동가 정미진 씨가 함께 둔촌주공아파트 단지 내에 살던 고양이들의 이주를 위해 만든 일시적 모임이다. 이들은 고양이를 도시 공동체의 한 일원이라 여기고, 생태적 이주를 모토로 고양이가 최대한 자발적으로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 프로젝트로 (재)건축의 논리가 자연과 공존으로 좀 더 폭넓은 관점을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는 이들의 활동은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될 예정이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5호(2017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에디토리얼] 근대적 공간의 탄생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삶의 패턴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 불과 100여 년 전 일이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과 생활을 새롭게 재편한 이른바 근대적 공간은 개항기와 일제 식민지기를 거치며 도입, 이식, 강제 등 다양한 경로로 생산된다. 도시의 건축과 공간, 생활과 문화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번 10월호 특집 ‘모던 타임즈’는 근대적 시간과 공간 개념이 우리 삶에 배치되던 시기에 도시 공간과 문화가 어떤 풍경을 그리며 전개되었는지 탐사한다. 탐사의 대상은 공원, 식물원, 유원지, 풍경 사진이다.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는 “왜곡된 근대와 공원의 탄생”에서 당시의 공원을 타자의 입장에서 재구성된 공간, 동도서기를 실천하는 정치 도구, 식민지 도시 시설이라는 세 측면으로 해석한다. 김정화 박사의 글 “근대인의 자격, 식물원 소사이어티”는 식물원의 탄생과 확산의 배경이 되었던 인물, 단체, 학회, 모임 등을 조명하고, 근대의 콘텍스트 속에서 취미, 교양, 식물원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한다. 김정은 박사는 “기차를 타고 도착한 또 다른 세계”에서 유원지의 수용과 여가 문화의 조직을 다룬다. 철도의 부설과 도시의 변화, 이에 따른 행락 공간의 재편을 월미도유원지와 뚝섬유원지를 중심으로 엮은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일상을 떠나 환상의 공간을 찾아 나선 도시민의 삶을, 철도 노선을 따라 재구성된 도시 교외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명준 박사의 글 “일제 식민지기 풍경 사진의 속내”는 풍경 사진이 국내에 수용되던 당시의 시각 문화를 검토한다. 특히 풍경 사진에 내재된 자연을 감상하고 인식하는 방식, 이른바 ‘시각 체제’에 주목한다. 이번 특집의 의도가 공원, 식물원, 유원지, 풍경 사진이라는 네 가지 렌즈를 통해 근대적 공간 문화의 양상을 조감하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또 다른 목적은 최근 들어 부쩍 증가하고 있는 근대기 조경 역사·이론 연구를 대중적인 톤으로 소개하고, 나아가 연구의 경향성과 지향점을 설계하는 디딤돌을 놓는 데 있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네 명의 필자 외에, 최근 김해경 박사, 서영애 박사, 우연주 박사 등 다수의 연구자가 근대기의 도시 공원과 공간을 주제로 한 다각적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모처럼 풍성하게 생산되고 있는 역사·이론 연구들의 대상과 시간 스케일에 큰 교집합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별도의 해설보다 연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소중할 것 같다. 특집에 참여해 준 네 명의 필자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졌고, 그들의 응답 중 일부를 간추려 전한다. 왜 ‘근대기(또는 일제 식민지기)’에 관심을 두고 논문을 써 왔는가? “지금 현재 도시 공간과 시설의 핵심, 그리고 우리가 공원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기원, 특히 문화, 공공성, 행정이 탄생한 시기이기 때문이다”(이명준). “우연히 만났다가 이 시기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정말 이랬어? 이런 놀라움이 컸다. 생각보다 지금과 비슷했다. 물론 지금은 기술이 더 발달했고 디자인은 훨씬 세련됐지만, 그 원형은, 근본은 그대로다”(김정은). “그 이전 시대에 비해 개개인의 사람이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연구 대상이 주로 저명한 문인이나 정치가의 문집과 정원인 데 비해, 근대기에는 수면 아래에 있던 더 많은 사람들, 다양한 직업 의 사람들, 여성, 소설가, 화가, 정치가, 학자들의 생각과 생활이 드러나기 때문에 흥미롭다”(김정화). “그동안의 역사 연구가 사고思考에 집중했다면(또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근대기의 연구는 실증적 접근이 가능하고 연구 방법이 매력적이어서 끌린다. 도시 공간과 문화에서 나타나는 전근대와 오늘날의 간극을 이 시기의 공부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연성 있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한다”(박희성). 당시의 도시 공간, 환경, 시설, 문화, 생활을 ‘지금’ 연구해야 할 이유는? “도시 개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재생에 주목하고 있는 현재, 공원이나 광장과 같은 도시 시설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진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재검토는 생성의 지점에서 출발해야 하므로 근대기 연구의 성과는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박희성). “근대기와 현재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기 때문에 ‘지금’ 연구해야 한다. 현재가 근대기와 너무 가깝다면, 예컨대 해방 직후라면, 근대기를 떨어뜨려 놓고 보기 힘들 것이다. 한편 너무 멀지 않기 때문에 그 시대에 시작된 여러 공간의 형태와 시설이 지금도 유효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이 흥미를 유발하고 ‘지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김정화).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명준). 최근 ‘조경학’ 분야의 적지 않은 학자와 연구자가 이 시기와 주제를 다룬 논문을 생산하고 있는 배경이나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른 시기에 비해 신문, 잡지, 보고서, 사진 등 자료가 다양하고 풍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가 상대적으로 쉬운 이유도 있다. 일본어와 근대기 한국어 자료는 비교적 해석하기 쉽다. 이런 조건에 연구자 나름의 흥미가 더해져 연구의 양이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김정화). “우선 아카이브와 데이터베이스가 잘 구축되어 자료 접근이 용이해진 환경을 들 수 있다. 일찌감치 근대기에 주목해 연구 성과를 낸 건축학, 도시학, 역사학(도시사)의 영향도 있고, 그리고 대한제국기와 일제 식민지기에 대한 객관적·비판적 시각이 등장하는 학계의 분위기도 작용하고 있다. 근대 관련 전시, 학술 심포지엄, 시민 강좌 등 이 시기를 관심 있게 주목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박희성). 이번 호부터 세 달간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이어갈 조경가는 이재연 소장(조경디자인 린)입니다. 긴 추석 연휴로 이번 10월호의 배송이 열흘 이상 늦어질 전망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칼럼] 모던 타임‘즈’, 모더니티‘들’
    파리 뤽상부르 정원 근처를 산책하다 보면 하원 맞은편 아케이드 벽에 붙은 특이한 석판을 볼 수 있다. 직선의 띠에 일정한 간격으로 눈금을 새겨 두고, 그 위에는 ‘MÈTRE’라는 글자를 박아 넣었다. 옆에는 이 석판이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규정한 ‘1미터’의 기준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별스럽다 여길 수 있지만 한때 왕의 발足 크기가 길이의 표준이었고 그마저도 파리와 지방에서 달리 쓰였음을 알게 되면, 이 ‘기준’이 가진 의미가 달리 보인다. 길이뿐 아니라 무게와 부피, 도시 간의 거리를 측정하는 도로 원표point zéro, 시간 등 ‘표준’의 대부분이 18~19세기에 정해졌다. 누구의 기준이 표준이 되는가는 국가적 위신이 달린 중요한 문제였고, 이 표준에 따라 통제된 시공간이 서구 근대의 배경이 되었다. 그런데 이 근대의 표준은 언제, 어디일까. ‘일반’적으로는 사유의 중심축이 신학에서 인간 이성 중심으로 이동한 르네상스 이후, 특히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기를 근대의 기원으로 본다. 기존 질서(도그마)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정신이 서구 근대를 추동한 힘이었고, 이를 근대성 혹은 모더니티라고 부른다. 이성, 보편, 상식, 합리성, 진보, 계몽, 합목적성 등이 모더니티의 가치를 담는 키워드이고, 이 기준을 좇는 일이 중대했던 때를 근대라 한다. 근대/모던 타임즈는 언제이고 어떤 근대성/모더니티를 어떻게 추구했는가는 흥미로우면서도 민감한 주제다. 우선 명칭부터 보자. 조경학뿐 아니라 서구에서 들여온 학문의 연구에서 가장 정교하게 다루(었)어야 할 부분으로 용어의 번역을 꼽는다. 일상적 의미와 학문적 용례가 다른 경우도 조심스러우나, (일본의 번역어를 다시 옮긴 경우가 많은) 번역어와 외래어/외국어의 의미의 결이 다른 경우는 해당 맥락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부터 정해야 한다. 근대와 모던 타임즈, 근대성과 모더니티는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서구화와 근대화가 동일시되는 것은 제3세계 국가들의 발전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를 ‘ctrl+c, ctrl+v’의 등가적 복제로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참여한 루브르 학교의 박물관학 여름 국제 세미나에서도 이 질문은 반복되었다. 올해의 주제인 ‘정원의 박물관학’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강연은 풍요로웠으나, 프랑스에 위치한 역사적 정원으로 대상이 한정되었고, 이를 정원 예술의 ‘기준’으로 삼는 점은 어쩔 수 없었다. 역사적 정원의 복원과 복구, 재창조의 문제에 대해서도 피렌체 헌장의 가치만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참여자들의 비평과 토론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음을 상기시켰다. 케브랑리 박물관 컬렉션에 대한 비판과 이어진 토론은 근대성과 종속성, 주체성의 관계를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비서구 미술 = 원시 미술’이라는 오래된 양분법적 도식과 이를 둘러싼 담론조차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흡수해버리는 동화주의의 힘은 강력했고, 수많은 중국풍 혹은 일본풍 정원의 정통성에 대한 필자의 질문은 특정 양식의 양상으로 치환되기 일쑤였다. 세미나 마지막 날의 공동 연구 발표를 알제리 출신의 건축학도와 함께 준비했다.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 위치한 함마 정원과 서울의 용산공원을 미술관과 공원의 관계 측면에서 간단히 비교, 소개하기로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민지화와 근대화가 동시에 진행된 나라 출신이라는 공통점에서 출발했으나, 식민지 시기를 보는 온도는 사뭇 달랐다. 알제리는 격렬한 저항과 내전을 겪은 후 백여 년 만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오늘날의 프랑스 이민자 문제는 이에 기원을 둔다고 배웠으나, 프랑스에 대한 그의 태도는 예상과 달리 적대적이지 않았다. 프랑스 건축가가 프랑스식으로 설계한 국립미술관과 외래 식물의 현지 적응을 위한 온실이 딸린 정원, 동물원이 여전히 탈식민지 수도의 중요한 공공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반일 교육을 받고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목격하며 자란 필자에게는 이 점이 놀라웠는데, 역으로 그는 내가 놀라워하는 것을 신기한 듯 보았다. 해방을 기준으로 하면 한두 세대 정도 차이가 나지만, 근대화를 이룬 식민지기에 대한 태도는 그가 더 ‘쿨’했다. 우리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뒤풀이에서 나온 이야기 또한 오늘 이 장소에 모인 우리가 사실은 각기 다른 지점에 있음을 상기시켰다. 서유럽 출신의 누군가에게 모더니티는 과거의 유산이지만, 근대화(새마을운동!)를 이룬 한국을 동경하는 부르키나파소 인에게는 지향점이 된다. 근대(성)의 기준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바뀌고 동시대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근대의 시간들과 근대성들이 복잡하게 얽혀 공존한 이 상황이 탈근대적이라고 웃어넘겼으나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같은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술과 조경의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관련 도서 몇 권을 함께 쓰고 옮겼다. 최근 옮긴책으로는 자이미 레르네르의 『도시침술』(푸른숲, 2017)이 있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의 ‘건축, 환경, 경관’ 연구실에서 박사후연수를 막 마쳤다.
  • [이미지 스케이프] 공유, 땅 그리고 우주
    “자연은 시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쉽게 경험될 수 있으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공유도시의 또 다른 질서가 만들어진다.” 올 가을은 유례없이 긴 연휴로 왠지 풍성한 느낌입니다. 휴일이 많아서만 풍성한 게 아니라 볼거리도 정말 많습니다. 정원박람회만 해도 서울정원박람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순천시의 대한민국 한평정원 페스티벌, 거기에 동탄2신도시 공공정원까지. 조경과 정원에 대해 늘어난 관심이 다양한 행사와 전시로 이어지고 있는 점은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한순간 지나치는 유행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4호(2017년 10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