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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옥상, 공간이 되다
    현대 도시는 ‘옥상의 숲’이자 ‘옥상의 바다’라 할 만하다.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면 옥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 옥상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지표 혹은 지상의 눈높이에서는 그 모습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동선 상에서도 대면할 일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네 눈에서 가깝지 않아 마음에서도 멀어진 것일까. 세상 만물의 의미와 용도를 해석하는 사전에서는 옥상屋上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사전은 옥상을 “지붕의 위, 특히 현대식 양옥 건물로서 마당처럼 편평하게 만든 지붕 위”(표준국어대사전)로 정의한다. 영어로는 루프탑rooftop인데, 이는 “the outer surface of a building’s roof”(Oxford English Dictionary)이다. 결국 옥상은 “건물 지붕의 외부 표면” 정도로서 태생부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운명 지어진 곳일지도 모른다. 지붕에 종속되어 덤으로 생겼기 때문에 그것이 담아내는 혹은 담아내야 할 기능에 애초부터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대부분 옥상은 건축물 혹은 건물주主의 사정이나 형편에 따라 유동적이고 가변적으로 이용되는 편이다. 건물의 주 기능을 보조하거나 건물을 이용하는 인간의 활동을 거드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다. 가끔은 실내 금연 구역을 피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야외 흡연 구역이 되고, 때로는 가스통, 에어컨 실외기, 물탱크 등 실내에 두면 너무 크거나 위험한 것들을 올려두는 지상의 지하실이 되며, 이따금 꽃과 화단, 평상이나 장독대를 놓아두는 공중의 마당이 되는 것이 그런 경우다. 오늘날 옥상은 더 이상 도시의 주변적 존재가 아니다. 이제 옥상은 건물의 일부로서 버려지고 방치되는 공간이 아니라 웰빙, 힐링, 생태 등 사회 문화적 코드와 맞물려 그 자체가 독자적 기능을 지닌 하나의 건축 요소이자 실재하는 공간으로 무한 변신 중이다. 일부러 찾아가는 일이 드물었던 옥상을 언제부턴가 기꺼이 제 발로 찾아 오르고 있다. 지금 옥상은 또 하나의 완전히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재탄생 중이다. 엄격히 옥상은 ‘허공虛空’이나 다를 바 없다. 적극적인 건축 행위를 통해 구축된 공간이 아니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일 것이다. 의도하고 건축된 것이 아닌 까닭에 통상 공간이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옥상에는 벽도, 천장도 없이 오직 바닥만 주어진다. 말하자면 옥상은 공간이 아니라 ‘텅 빈 공중’으로, 건축물로서 제대로 된 권리를 부여받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허공이기 때문에 옥상은 어떠한 변신도 포용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옥상은 공중에 직접 노출되어 있어 기온, 바람, 습도 등 외부 환경에 상대적으로 민감하고 방수, 환기, 채광 등에서도 치명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내부에 위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옥상은 빛이나 공기, 온도 등과 원초적으로 교감을 이루는 장소로 거듭날 여지가 있다. 옥상의 비존재성 혹은 비물질성은 역설적으로 가꿔지고 채워질 수 있는 옥상의 잠재력을 웅변한다. ‘자연과의 열린 만남’이라는 내재적 유용성이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강화된 형태는 정원庭園이 된 옥상이다. 도시의 일반 옥상이 ‘녹화’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모방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면서 ‘공중의 녹지’로 변모하고 있다. 옥상을 정원으로 가꾸고 꾸미는 것은 개인적 차원의 기쁨과 희열 이상이다. 옥상 정원은 도시의 미기후를 조절하거나 녹색의 집합 경관을 창출하는 생태적·환경적 가치뿐만 아니라 도시민에게 새롭고 즐거운 시각적 자극과 생태적 삶의 회복을 주는 사회적 가치도 창출한다. 이러한 이유로 옥상 정원을 통한 도시 녹화가 공공 사업의 대상으로 부상 중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옥상은 ‘농사’라는 전통적 행위가 발생하는 농지農地가 되기도 한다. 버려졌던 옥상이 인간의 원초적 노동이 행해지는 ‘생산의 공간’이 된다는 것은 비단 농촌 문화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옥상의 도농 결합은 도시민이 수확의 즐거움을 맛보고 화학 비료와 농약으로부터 안전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색다른 체험이다. 이웃과 함께 농촌의 삶을 체험하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면서 도시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경작지로서 옥상은 자연스럽게 애그리테인먼트agritainment가 실천되는 지역 사회의 공공 자산이 된다. 자연을 직접 만나고 체험하는 것을 넘어 옥상은 근래 여가, 오락, 소비 등의 가치가 더해진 새로운 도시 문화 인프라로 급부상하는 중이기도 하다. 옥상에 들어선 극장,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를 찾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공과 자연, 내부와 외부가 혼재되는 옥상은 그것이 담아내는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게다가 옥상은 콘크리트 벽에서 벗어난 탈일상적 해방감,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각적 쾌락, 날씨나 시간에 따라 새롭게 창출되는 심미적 분위기 등을 제공하면서 현대인의 감성적 소비 욕구를 충족시킨다. 분명 옥상은 처음부터 자신의 고유한 가치나 용도를 가진 채 태어나지 않았다. 옥상의 기능이나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되거나 확실하게 제기된 적도 없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옥상은 단순한 ‘지붕 표면’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공간’으로서 권리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공간으로서 옥상은 공공성을 담지한다. 새롭게 발견된 도시 면적이면서 도시 형태나 도시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이자 다양한 도시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는 기폭제다. 이는 우리가 이제야 갖게 된 옥상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이유이기도 하다. 김미영은 현재 서울연구원 초빙부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홍익대학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관심 분야는 도시의 문화 예술 공간, 공간의 문화사, 공간의 사회학 등이며, 공간의 문화 사회적 기능과 의미를 발견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주요 논문과 저서로는 『서울 사회학』(공저, 2017), 『옥상의 공간사회학』(공저, 2012), “현대 공공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 고찰”, “호텔과 ‘강남의 탄생’”, “‘오감(五感) 도시’를 위한 연구 방법론으로서 걷기” 등이 있다.
  • [이미지 스케이프] 세븐 마일 브리지
    호수 같은 바다, 끝없이 이어지는 다리들. 플로리다의 키웨스트Key West로 인도하는 교량이 이번 사진의 주인공입니다. 저는 지금 미국 남부를 여행하는 중입니다. 따뜻한 남쪽 나라 날씨를 기대하고 왔는데, 이상 한파의 여파로 미국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네요. 30년만에 내렸다는 플로리다의 눈을 직접 목격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습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미국의 최남단 키웨스트입니다. 미국 본토에서 무려 170km나 떨어져 있는 곳이지요. 흔히 키웨스트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플로리다 남단부터 쿠바 방향으로 연결된 수많은 섬으로 구성된 곳입니다. 지도에서 보면 섬들이 길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특이한 형태입니다. 쿠바와 국교를 단절하기 전에는 쿠바와 교역하기 위한 철도를 연결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던 모양입니다. 거의 300km의 바다를 연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8호(2018년 2월호) 수록본 일부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축조경관
    엽서자연1 언제부턴가 지하철 역사에는 지방 자치 단체 홍보 포스터가 여기저기 걸려 있다. 저마다 지역색을 진하게 드러내는 관광 아이템을 앞세우고, 정감 있는 캘리그래피로 쓴 흥겨운 문구도 빠지지 않는다. 거의 모든 포스터의 배경은 그 지역에서 연중 가장 멋진 날에 극적인 조망점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채도를 한껏 높여 촌스러워 보이는 사진도 있지만, 몇몇 사진은 우리나라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지명이 생소하더라도 당장 열차표를 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그곳에 가면 과연 사진 속 그 경관을 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선명한 사진 속 아름다움은 머릿속에 분명한 하나의 자연 경관으로 각인된다. ...(중략)... 1.영국의 비평가 레이몬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가 『Problems in Materialism and Culture』(Verso, London, 1980)에서 “자연이란 언어 중 가장 복잡한 단어다(Nature is one of the most complex words in language)”라고 했듯이 자연을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humanity, culture) 이외의 것(otherness)”을 공간 환경을 다루는 이 글에서의 의미로 줄여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 환경의 반대 성격의 대상’이 될 것이다. 도시와 이격되어 물리적, 심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자연환경이 주가 되는 장소 또한 이 글에서 의도한 자연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최영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설계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그룹(SWA Group)에서 다양한 성격의 설계 및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미국조경가협회상(ALSA Honer Award), 아키프리 인터내셔널(Archiprix International) 본상, 뉴욕 신진건축가공모 대상, 제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에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설계사무소 Laboratory D+H를 공동 설립하고 L.A., 센젠, 상하이에 이어 서울 오피스를 꾸려 나가는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8호(2018년 2월호) 수록본 일부
  •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콘크리트의 가능성 4 - 인프라스트럭처
    사진의 공간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콘크리트를 마감 재료로 사용했다. 뒤쪽 고가 도로 구조물과 왼편의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계단벽 사이를 가로지르는 보행로에 초점을 맞춰보자. 차도와 인접한 약 3m 남짓한 폭의 보도는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인도에 사용하는 현장 타설 콘크리트cast-in-place concrete로 마감했다. 현장 타설 콘크리트 보도는 약 2.4m마다 균열 조절 줄눈을 배치해 온도 변화에 따른 재료의 갈라짐을 예방했다. 보도와 인접해 약 4m 폭의 산책로가 있는데, 인도의 균열 줄눈과 동일한 이음매를 가지고 있어 언뜻 보면 같은 현장 타설 콘크리트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산책로는 일정한 크기의 모듈로 제작된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판이다. 이 판은 캔틸레버 구조로 바다 위에 떠 있으며, 오른편의 도시와 왼편의 부두pier 시설을 연결한다. 각각의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모듈에는 일반 벽돌보다 조금 큰 크기의 유리블록이 끼워져 있다. 유리블록은 모듈의 수평 방향과 32도 기울어진 사선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기울어진 레이아웃에 따라 이음매와 만나는 부분의 유리블록들은 크기를 짧게 변형하거나 생략했다. 유리블록의 모서리가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스테인리스 스틸로 프레임을 짜 맞추었고, 유리블록의 아래를 뚫어 콘크리트 판 밑으로 빛이 투과되도록 설계했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8호(2018년 2월호) 수록본 일부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엄석만 전 비산 2, 3동장 백만 원의 도시재생
    지난해 대구 비산동 골목 정원을 자주 찾았다. 학생들과 답사를 갔고, 몇몇 지인과 시간을 내 구경을 가기도 했다. 타지에서 도시와 조경에 관심 있는 분이 오시면 꼭 보여드리는 장소다. 전주나 부산으로 치자면 한옥마을이나 감천마을 같은 단골 메뉴인 셈이다. 버나드 루도프스키Bernard Rudofsky의 『건축가 없는 건축Architecture without Architects』에 한 번쯤 공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동을 받는 눈치였다. 오래된 콘크리트 골목의 지역성과 서민적인 재료, 때로는 펑키하고 키치한 미적 감각, 하지만 매우 기능적이고 문화적으로 풍부한 뉘앙스를 가진 곳. 감천마을만큼 크지 않고, 그만큼의 관광객도 없지만 이곳의 골목 정원은 훨씬 더 훌륭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외부로부터 시작된 혹은 주입된 사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일상적 감각이 외부로 표현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와서 후다닥 벽화를 그려 놓고 사라져버리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같은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8호(2018년 2월호) 수록본 일부
  • [명사의 정원 생활] 헤르만 헤세의 정원, 방랑과 안주를 되풀이하는 자를 위한 영혼의 안식처
    헤세, 독일 지성인의 양심이자 정신적 스승 독일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1877~1962)는 흔히 구도자, 양심의 수호자로 불린다. 자전적 소설이라 평가되는 그의 작품들에는 자연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함께 청춘에 대한 그리움, 사랑·평화·자유와 같은 인간적 가치의 회복이 기저에 깔려 있다. 히틀러와 나치주의자의 편협한 민족 이데올로기와 전쟁의 광풍 속에서도 헤세는 인간성의 가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자연에 대해 경건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스스로 “내 삶과 문학의 최종 목표”이며 “폭력의 시대 한가운데서 정신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라고 평한 역작 『유리알 유희』에서, 그는 이성과 양식이 고갈된 시대에 지식인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문명사적 해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경제적·기술적 진보의 시대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인간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삶에 관심 가질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나치주의가 붕괴된 이후 독일은 물론 전 세계에 그가 인간 정신과 문화의 상징 인물로, 혹은 정신적 스승으로까지 부각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중략)...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대학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선유도공원 계획 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환경과조경358호(2018년 2월호)수록본 일부
  • [시네마 스케이프] 패터슨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 씨의 일상
    뉴저지 주 패터슨 시에 패터슨(애덤 드라이버 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산다. 인천에 사는 백인천 씨, 수원에 사는 김수원 씨와 마찬가지다(전자는 그 유명한 야구인, 후자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영화는 어느 월요일부터 그 다음 주 월요일까지 펼쳐지는 그의 반복적인 일상을 보여준다. 매일 거의 같은 일상이지만 조금씩 다르다. 몇 가지 크고 작은 소동이 일어나긴 하지만 인생의 궤도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패터슨은 매일 새벽 6시에서 6시 반 사이에 일어난다.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우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 준비해 놓은 옷을 챙긴다. 시리얼로 아침을 해결한 후 도시락을 들고 걸어서 일터로 간다. 같은 길을 다시 걸어서 퇴근한 후에는 저녁을 먹고 반려견 마틴을 산책시킨다. 마틴을 묶어두고 바에 들러 맥주 한잔을 마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된다. 그의 일주일을 졸졸 따라다니다 보면 패터슨이라는 도시가 오래 전부터 알던 곳 같고,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쓴 연작시 ‘패터슨’에 대해서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어제, 한 은사님으로부터 하루 두 줄씩 일기를 쓰려고 노력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다. 일주일에 두 줄씩이라도 일기를 써야지 마음먹었다. 새해 다짐이란 걸 올해는 한번 해보기로 했다.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노력은 하게 되겠지. *환경과조경358호(2018년 2월호)수록본 일부
  • [에디토리얼] 조경가로 산다는 것
    새해 첫 호부터 큰일이다. 복 받자, 꿈꾸자, 힘내자는 새해용 다짐과 계몽을 피해보려 했더니, 그만 글감이 없다. 이런 위기 상황에 처하면 은근히 편집자끼리 격려를 빙자한 모종의 눈치 보기를 하곤 한다. 무려 크리스마스가 겹친 마감 전야, 김정은 편집팀장에게 슬쩍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엔 ‘코다CODA’에 뭐 써요?”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특집은 아니지만 이번 호에 작품이 두 개나 나가고 비평도 있으니, HLD와의 인연을 더듬어 볼까 해요.” 바로 돌아온 이 답글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다. 이번 호 지면에는 젊은 조경가 이호영, 이해인, 최영준 소장이 등장한다. 공모전과 피플 꼭지의 박경탁 소장, 이남진 실장도 젊다. 비평을 보내 준 허대영 소장을 젊다고 말하는 건 무리지만, 칼럼을 쓴 김영민 교수는 대표적인 젊은 교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새해 첫 호, 젊음으로 가득하다. “아, 나도 그럼 인연을 더듬어 볼게요. 나는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새로 시작하는 최영준 소장.” 한국, 미국, 중국을 가로지르며 활동하고 있는 Laboratory D+H의 최영준 소장과 관련해서는 정말 더듬을 인연이 많다. 이걸로 쓰면 아마 역대급 에디토리얼이 될 게 확실하다. 그런데 나도 이제야 눈치라는 걸 보기 시작했나 보다. 최 소장은 내가 가르친 제자다 보니 누군가 뒷말을 할 게 분명하고 제자에 대해 쓰면 꼰대식 추억팔이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걱정을 핑계 삼아, 김정은 팀장이 쓰기로 찜한 HLD의 이호영 소장으로 나도 모르게 앵글을 돌린다. 그렇다. 최 소장 이야기는 앞으로 써먹을 날이 무궁무진하다. 아마 김 팀장은 뒷머리 질끈 묶고 다른 원고들 치며 투쟁하느라 아직 ‘코다’는 한 줄도 못썼을 거다. 이럴 때를 위해 ‘선점’이란 단어가 존재한다. 이호영 소장을 처음 만난 건 어느 설계공모에 한 팀으로 참여했던 때지만, 더 깊은 인상을 받은 건 추억의 토론회 ‘조경가로 산다는 것’에서다. 한 7~8년 전일 거라 짐작하며 검색해보니 무려 12년 전이다. 아마 기억하시는 독자가 꽤 있을 것 같다. 한국조경학회 조경설계연구회와 환경과조경이 공동 기획한 100분 토론 ‘조경가로 산다는 것.’ 2005년 12월 6일에 열렸고,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년 전인 『환경과조경』 2006년 1월호에 실렸다. 기획에 참여한 원죄로 내가 사회를 맡았고, 패널로는 황용득 소장(동인조경 마당), 오형석 소장(LOSYK),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 그리고 ‘젊은’ 이호영 ‘대리’(당시 조경설계 서안)가 참여했다. 다시 잡지를 펼쳐보니 플로어를 가득 메운 청중들의 뜨거운 열기, 후끈 달아오른 토론 분위기가 바로 어제 일처럼 재생된다. 그랬다. 이런 주제를, 저런 문제를 꼭 다뤄달라는 이메일은 물론 전화까지 많이 받았었다. 어쩌면 한국 조경의 전성기, 조경 설계가 변화의 몸부림을 치며 꿈틀대던 시대의 풍경이다. 풍요로워 보이는 현실과 위태로운 기반 사이에서, 앎―곧 지향―과 삶의 불일치 속에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던 한국 조경의 단면이다. 조경을 한다는 것과 조경을 하며 산다는 것,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혀보자는 게 12년 전 ‘조경가로 산다는 것’의 문제의식이었다. ‘조경설계사무소에는 왜 40대가 없을까’를 시작으로 ‘작가로서의 조경가, 직업으로서의 조경 설계’와 ‘조경가로 성장하기’로 이어진 토론에는 패널뿐 아니라 청중도 함께 참여했다. 잡지에 남은 기록을 보면, 허대영, 김경윤, 김정윤, 문현주, 고정희, 호현기, 안계동, 김성균, 최원만, 성종상, 유병림, 여러 세대에 걸친 청중들이 자발적 토론자로 등장한다. 그들의 기세에 눌려 차마 입을 떼지 못한 젊은 조경가들, 희망을 재확인하러 모인 학생들도 무언의 토론자들이었다. 모두가 지금보다 열두 살 젊다. 지금도 젊은 이호영 소장, 옛 잡지 속 그는 정말 젊다. 그날의 열정적 토론 전부를 이 지면에 옮길 필요는 없겠지만, 12년 전의 이 ‘대리’가 선배들에게 던진 질문만큼은 복원하고 싶다. “조경설계사무소가 신입사원들을 조경가로 키우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신입사원의 재능을 어떻게 끌어주고 있는지 말씀을 듣고 싶다.”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우회하며 수련한 그가 이해인 소장과 꾸린 사무소가 이제 3년 차로 접어든다고 한다. 눈은 HLD의 근작 두 편에 가 있는데, 12년 전 그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토론이 벽에 부딪혀 공전하자 그는 선배들 대신 스스로 답했다. “이곳에서 배우면 설계를 잘 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아마 이 질문과 자답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애써 왔을 테고, 그런 노력의 한 단면이 이번 호의 두 작품일 것이다. 그런데 이호영 소장은 아마 이 글을 읽으며 속이 편치 않을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이해인 소장,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새 주자 최영준 소장, 이사부 독도 공모전의 박경탁 소장과 이남진 실장, 칼럼 필자 김영민 교수 등 이번 1월호의 젊은 조경가 모두가 같은 이유로 속이 부글거릴 것 같다. “우리 젊지 않은데요?” 똑같은 경험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했던가. 벌써 15년이 넘은 이야기 한 장면. 영광스럽게도, 1년 차 신참 교수에게 한국 조경 서른 살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의 기조 발제자 역할이 맡겨졌다. “양적 비대 성장의 이면에 넓게 퍼진 비만한 고독, 그리고 문제의식과 실험 정신이 부재한 자리에 골 깊게 패인 몰개성과 무비판의 우울한 반복.” 한국 조경의 “고독한 지형과 우울한 풍경”을 따지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마치고 나자 한 전임 학회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젊긴 젊다.” 나는 이런 답을 속으로 삼켰다. “저 안 젊은데요?” 이 달의 젊은 조경가들, 젊지 않다. 그들의 훈련과 경험, 작업과 글은 결코 치기, 결기, 패기 같은 단어로 형용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조금만 더 오래 젊어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어느새 낡아버린 한국 조경을 혁신할 동력은 진부함을 거부하는 참신함, 곧 젊음 아니겠는가. 다음 12년 후엔 ‘조경가로 산다는 것’이 가열찬 토론 거리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기를.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칼럼] 조경이상
    2017년 12월 8일, 열아홉 명이 다시 논현동에서 모였다. 미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후배가 뒤늦게 합류했다. 그는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뭐하는 모임이에요?” 처음 우리가 모인 것은 2016년 12월 7일이었고, 그때 우리는 열세 명이었다. 여름조경디자인캠프 튜터들의 뒤늦은 뒤풀이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번 이렇게 술자리에서 감정과 생각을 소비하지 말고 제대로 모여 생산적인 일을 함께 하자고 말했다.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모두 상기된 목소리로 꼭 모여서 무엇인가를 하자고 다짐했으나, 그 다짐은 잠시 잊혀졌다. 눈이 왔을 때 우리는 다시 모였다. 우리 대부분은 오롯이 자기 이름을 내세울 순 없어도 분명 자기의 설계를 한다고 할 수 있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조경가들이다. 우리는 기성세대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기성세대를 비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고, 스스로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졌던 듯하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만난 우리는 무척 달랐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서로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다음번에는 꼭 모두의 공통된 지향을 찾아내자고 격려를 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음에 모였을 때도 우리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이상적이었고 동시에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생각보다 더 피상적이었고 생각보다 더 순진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실망했고 누군가는 냉소했다.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인원이 함께 모이지는 않았다. 남은 이들은 공통의 목표가 없어도 최소한 일 년만 매달 모여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자고 했다. 모임의 존속이 모임의 새 목표가 되었다. 그런 보잘것없는 목표를 세우고 나니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각자 그동안 혼자 마음에 담아 두었던 주제에 대해 발표를 했다. 그 다음에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각자 소개했다. 조경의 정체성에 대한 강의도 있었다. 통의동에서 의미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가 보았다. 한번은 도시재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날은 날씨가 좋아 밖에서 그냥 맥주를 함께 마셨다. 서울시에서 공공조경가를 뽑기에 우리가 지원해서 활동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중 꽤 많은 사람이 공공조경가에 선정되었다. 푸른도시국의 정책이 궁금해서 어느 사무관을 초청해 설명을 들었다. 각자의 작품과 설계에 대한 생각을 돌아가면서 심도 있게 말하고 들어보았다. 우리는 여덟 번째 모임에서야 모임의 이름을 ‘조경이상’이라 지어 주었다. 우리 중 한 명이 사무실 개소 2주년 파티에 초대했다. 할로윈 파티를 겸한다고 해서 다 함께 참석했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기로 했을 때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일 년 동안 이룬 가시적 성과는 없었다. 그렇게 날을 세우며 비판했던 현실의 문제도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모이는 인원이 조금씩 늘어났다. 주변 지인들을 초대하다보니 설계의 경계를 넘어 활동가도, 팟캐스트 운영자도 모였다. 자연히 여기서 만난 사람들끼리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연결시켜 주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무실 구조를 만들었다. 함께 전시회에 초청을 받아 작품을 전시했고 함께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서로를 비평했고 서로를 상찬했다.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고 서로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처음에 우리가 찾고자 한 공통의 지향은 일종의 ‘운동’과 같은 성격의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조경에는 운동이 있었던 적이 없다. 68혁명의 열기에 동참하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었고, 1987년에 찾아온 민주화의 폭풍 속에서도 조경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최소한 건축이라는 옆 동네에 나타났던 청건협의 뜨거운 사회적 외침이나 4.3그룹의 세련된 문화적 담론과 비슷한 것을 흉내 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고작 목소리를 높일 때라고는 기득권이 침해될 때나 더 많은 몫을 달라고 요구할 때뿐이었던 비루한 조경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우리에게 과거를 비판할 권리가 있다면 그 정당성은 과거의 성공과 과오에 있어 우리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데 있을 뿐이다. 그런 자각 때문에 우리는 일종의 강박처럼 일 년간 모였던 것일 수도 있다. 방황에 가까웠던 지난 일 년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그토록 찾고자 했지만 찾지 못했던 지향이 희미한 형태로 드러났다. 그것은 극렬한 문제의식도, 변화를 위한 공동의 전선도,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자각도 아니었다. 조경을 하고 있지만 조경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것.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지 않으며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지난 일 년 동안 모이며 깨달은 우리의 지향이었다. 이번 모임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다음에 함께 하고 싶은 일 몇 가지를 찾았다. 첫째, 조경하는 사람들의 전시를 기획하기로 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2022년 광주에서 세계조경가협회 컨퍼런스가 열릴 때 베니스 비엔날레만큼 멋진 콘텐츠를 미리 준비해 놓자고 다짐했다. 둘째, 곧 만들어질 용산공원을 시민이 제대로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가꿀 수 있도록 조직을 만들고 활동해나가기로 했다. 셋째, 우리 다음의 세대를 위해 지방의 조경학과를 돌며 특강을 개최하는 계획을 세웠다. 모두가 이 일의 주체일 필요는 없다. 주체가 될 권리만큼 주체가 되지 않을 권리도 있다. 그래야 나의 꿈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꿈을 꿀 수 있다. 펠릭스 가타리가 말했다. “연대할수록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그말 그대로다. 우리는 연대할수록 서로 달라지고 그 다름이 우리를 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자 힘이다. 나는 기대와 의심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후배에게 대답했다. “만일 조경을 하다가 네가 무엇인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아이디어가 생기고 그 일을 하고 싶은데 같이 할 사람도, 마땅히 이야기할 데도 없으면, 여기서 같이 하면 돼.”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고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했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으며, 『용산공원』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최근에는 설계 방법론을 다룬 저서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를 펴냈다.
  • [이미지 스케이프] 해가 지다
    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7년이 되었다고 사진을 올린 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다음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사진으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얼마 전에 찍은 일몰 사진을 골랐습니다. 작년에 이어 다시 해넘이 사진으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사진을 찍은 날도 바쁜 하루였습니다. 오전에 세 시간 강의하고 오후에는 자리를 옮겨 동영상 강의 촬영 일정이 꽉 잡혀 있었거든요. 학생들 반응을 보면서 강의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그런지 강의 녹화는 굉장히 어색합니다. 그래서 출발할 때부터 부담을 갖고 촬영 장소로 향했습니다. 어색한 두어 시간의 녹화. 다행히도 촬영하는 일이 생각보다 조금 일찍 끝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꼭 학교에서 조퇴하는 기분이랄까요. 가끔 이럴 때도 있어야지! 살짝 가벼운 기분으로 동호대교를 건너고 있는데, 붉게 물들어가는 서쪽 하늘이 보였습니다. 그날따라 날씨도 정말 좋았고, 서쪽 하늘에 아주 멋진 노을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갔다 차를 놓고 다시 나올까 고민하고 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해가 막 넘어가려는 찰나였습니다. 집에 들렀다 나오면 이미 해가 다 넘어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순간 잠깐 망설였지요. 차를 세워? 아님, 그냥 슬쩍 보기만 할까?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7호(2018년 1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