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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설계하는 법] 그려도 그려벌레는 정말 그립기만 해
    그려벌레, 다른 말로 설계충(設計蟲). 종이에 감광(感光)된 그려벌레의 궤적은 생각의 수레바퀴가 지나간 흔적이자 시간의 단면이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끝나기까지 이 단속적(斷續的) 반투명 막을 통과하면서 생각은 우회하거나 비틀어졌고, 궤적 또한 수레바퀴가 굴러간 대로 남지 않았다. 자신의 몸으로 기어왔던 벌레가 생각도 바퀴도 궤적도 모두 부정해버리는 굴절된 상을 거울 보드키 들여다보고 있을 때 “설마 그러랴? 어디 촉진(觸診)……하고 손이 갈 때 지문(指紋)이 지문을 가로막으며 선뜩하는 차단뿐이다”라 했던 시인의 전언(傳言)은 말 그대로 선뜩하다. 2014 0327 함께 있는 건축가 윤이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설계공모’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사무실에서 일하는 정과 사무실 팀장이 붙기로 하고, 인터커드의 윤 소장에게 함께 설계공모를 하지 못하게 됐다고 전화를 넣었다. 섭섭함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순간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2014 0405 사월 초하루, 서소문공원. 현양탑, 윤관장군동상, 분수, 지압 보도와 운동 시설, 재활용 처리장과 지하 주차장, 꽃시장 그리고 노숙자와 왼갖 나무들. 서울역, 경의선 철로, 건널목, 서소문 고가도로, 주상 복합 건물, 약현성당, 염천교, 제화점, 남대문, 호암아트홀이 주변에 있었다. 그러나 서소문은 없었다. 소덕문이라 불렸 고, 시체가 나가던 시구문이기도 했다. 문밖은 조선시대 때 형장이면서 성 밖 시장이었다. 천주교에 대한 네 번의 박해로 형장은 성지가 됐다. 지금의 서울은 오백 년 도읍의 구조 안에서 내재적인 필요에 의해 점진적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요인에 의한 폭력적 계획으로 변형되었고, 이 폭력적 계획을 내면화하면서 ‘서소문밖’의 무질서한 풍경과 같은 도시를 만들어냈다. 이곳에선 시각적 혼란과 역사적 혼란이 동시에 일어난다. 형장이 과거 한양의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순교성지는 전복된, 도시의 구조와 아무런 상관없이 들어온 사건이다. 이 관계. 그러니까 성지가 도시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사건 속에서 생겨났다면, 도시 맥락 속에서 그것을 놓아야 하나, 사건 속에 놓아야 하나. 장소 자체는 어쨌든 도시의 맥락과 구조 속에 놓이게 되는데. 이곳이 다른 곳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어지럽다. ...(중략)... 이수학은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이원조경에서 4년 동안일했다. 프랑스 라빌레뜨 건축학교와 고등사회과학대학원이 공동 개설한 ‘정원·경관·지역’ 데으아(D.E.A.) 학위를 했고, 2003년부터 아뜰리에나무를 꾸리고 있다. www.ateliernamoo.xyz *환경과조경346호(2017년 2월호)수록본 일부
  •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목재 데크를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목재 데크를 사용한 벤치의 클로즈업 사진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높은 등받이가 있는 목재 널빤지(wood plank) 마감의 벤치다. 등받이의 널빤지는 일반적으로 설계와 시공에서 사용하는 종방향 또는 횡방향의 레이아웃이 아닌 사선 방향으로 배열했다. 더 나아가 재료의 이음매에서 사선 방향의 배열을 90도로 틀어 V자 형태(chevron)의 패턴을 만들어냈다. 시공과 유지 관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설계를 하는 데도 손이 많이 가는 디테일이다. 번거롭게도 좌우 등받이는 평평하게 연결된 것이 아니라 둔각으로 미세하게 꺾여서 만나고 있다. 이 경우 입면에서 목재 널빤지 끝을 모두 동일한 예각으로 재단해야 함은 물론, 평면과 단면에서도 좌우 등받이가 만나는 둔각과 동일하게 모서리를 다듬어야 이음매가 뜨지 않고 깨끗하게 마무리된다. 목재 널 한장 한장을 현장에서 일일이 대 보고 맞추어 가며 재단, 배열, 세부 조정 및 고정이라는 많은 품을 팔지 않으면, 이와 같이 정교하고 날카로운 디테일이 완성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 걸음 물러나서 관찰해 보자. 이 높은 등받이의 벤치는 약 1m 남짓 높이에 위치 한 잔디밭과 아래 단의 목재 데크 산책로(boardwalk)를 중재하는 옹벽의 일부다. 잔디밭에 눕거나 앉아 사람들 너머로 경치를 감상하고 일광욕을 즐길 수 있도록 높은 단에 잔디밭을 제안했고, 높이 차이를 처리하기 위한 콘크리트 옹벽을 목재 널빤지로 마감하여 등받이를 세웠다. 벽을 따라 연속적인 벤치를 제안했는데, 마치 얇은 목재 널빤지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간결한 스테인리스 스틸 지지대를 최소한으로 사용했다. 아래 단의 목재 데크는 벤치 등받이와 동일한 패턴의 사선으로 배열했는데, V자 패턴을 만드는 이음매를 정확히 일치시켜 수직면과 바닥면이 연속되는 듯한 효과를 주었다.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환경과조경346호(2017년 2월호)수록본 일부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홍정완 상화원 원장 서해의 비원, 보령 상화원
    여기 어떤 이가 만든 비밀의 정원이 있다. 처음엔 그저 홀로 즐기기 위해 시작됐지만, 어느덧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누구나 찾아가 쉬며 누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정원의 둘레를 휘감는 1km 넘는 지붕 회랑을 만든 수고로움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섬을 찾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보다 근사하고 편안하게 정원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고된 시간과 예사롭지 않은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게다가 급히 완성할 목적으로 효율성만 추구하지도 않았다. 원래 살던 죽도 주민의 발자국이 겹쳐져 생긴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틀어지면 틀어지는 대로, 땅의 흐름과 박자를 맞추며 천천히 조급하지 않게 지었기에 3년 넘게 걸렸다고 한다. 도중에 만나는 나무는 하나라도 베는 일없이 곁을 돌아가거나, 아예 회랑 바닥과 천정에 구멍을 내는 식으로 품어버렸다. 조화를 숭상한다는 이름에 걸맞은 회랑이다. 그러기에 상화원은 비단 아름다운 풍광뿐만 아니라 시간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고 뜻과 의지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경치를 가진 이곳을 많은 사람들이 찾고 감정적으로 진한 무언가를 느끼며 또 존경스런 마음으로 거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급조된 것만 성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뭔가 다른 내면의 성숙과 정직한 부지런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상화원에는 복원된 아홉 채의 한옥이 있는데, 특히 행랑채들이 두드러진다. 『한옥의 섬』이란 책에도 표현되었듯, 행랑이란 여러 사람이 드나들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사랑채보다 훨씬 자유롭게 열린 공간이다. 상화원 자체가 하나의 푸근한 행랑채와 무척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상화원의 시설은 과하지 않고 약간 부족하게 비어있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필요한 것을 간소하게 갖추어 놓았다. 카페나 식당이 없고, 식사는 외부에 있는 음식점을 이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비지터 센터에 해당하는 의곡당에서 간단한 커피와 차를 제공하고 있으며, 한옥 복원 지역 내의 한옥은 모두 개방되어 있어 들어가면 셀프서비스로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회랑길에는 무인 생수 판매대가 있어 물을 사먹을 수 있는 정도다. 산과 계곡에서 시끌벅적 배불리 먹고 마시고 취하는 우리네 풍조에 대한 주인장의 사뭇 정갈한 대안인 듯하다. 대신 해변독서실, 해변연못, 조각정원, 해송의 숲, 하늘정원 등 책과 예술, 물과 생명, 하늘과 바다처럼 보다 비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 섬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뚜렷이 읽을 수 있다. 상화원의 또 하나 우수한 점은 한국적 미를 표방한 정원임을 강조하면서도 한옥과 전통 정원의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을 바탕으로 부지 상황에 맞는 배치를 융통성 있게 전개한 점, 그리고 실제 이용 측면에서 실용성을 중시한 점이다. 전국 각지에서 값비싼 세금으로 조성된 진정성(authenticity) 없는 재현 한옥 시설이 문을 걸어 잠근 채 비바람을 맞으며 낡아가는 가운데, 상화원은 한옥의 보존과 재사용에 대한 탁월한 선례를 제시하고 있다. 유물로서의 한옥이 아니라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하는 한옥의 복원. 오래된 원 재료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이건과 복원이라는 힘들고 의미 있고 비싼 길을 택해 세워진 소중한 한옥이라 더욱 더 철저한 보존과 갖가지 금지 목록이 나열될 법하지만, 상화원을 만든 분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과감하게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이 마음 가는 대로 드나들도록 한옥을 열어두었다. 그만큼 관람객들을 믿는다는 뜻이겠다. 관람객 또한 그런 의중을 알기에 경우 있는 사람이라면 사뭇 몸가짐을 살피며 고맙게 이용할 것이다. 그런 한옥에는 그저 얼마간 앉아만 있어도 좋다. 수백 년 세월의 때가 묻은 대청마루에서 옥빛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 한 잔의 감동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캐나다산 소나무로 새로 지은 한옥이나 콘크리트 건물로는 대체할 수 없는 감동이다. 섬의 원주민들이 일구던 계단식 밭에 심겨진 한옥들이라 흡사 지중해의 해안 마을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현대 주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바다를 바라보는 워터프런트 조망과 고전적 한옥이 합쳐진 느낌이 묘하다. 먼 길을 이사 온 한옥들이지만, 여기 상화원에서 제대로 된 고향을 찾은 듯하다. 전국의 많은 한옥이 거주자의 노령화와 관리 비용 및 수리의 난항으로 인해 사라져 가고 있다. 목재와 기와처럼 쉽게 구하기 힘든 재료, 기술자의 부족 등 한옥을 고쳐가며 사는 일에는 상당한 고충이 따른다. 교통이 불편한 산간벽지일수록 사정은 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옥을 적절히 관리하고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에 집결시켜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대책이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또는 한국 정원의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상화원은 현실에서 명쾌히 해결하고 있다. 김치와 된장 맛을 아는 사람이 만든 정원은 한국 정원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을 상화원에서 느낄 수 있다. 이건 중국식이네, 저건 일본풍이네 하는 분류는 더 이상 논쟁의 가치가 없다. 아무리 다양한 문화적 힌트를 섞어놓았다 할지라도 한국 정원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손상된 느낌이 전혀 없다. 오히려 상화원이라는 한국 정원은 우리가 그동안 해외에서 보고 배운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고 소화해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는 인상을 준다. 어떤 이가 편협한 순수주의에 갇혀 그러한 절충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만이 한국 정원의 진수라 주장한다면 그것은 자가당착에 불과할 것이다. 늦가을임에도 상화원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에 약 천여 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대천과 무창포 해수욕장으로 제법 알려진 보령이라 해도 먼 길을 달려 웬만한 미술관이나 박물관보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이곳 정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꽤나 인상적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는 정원이란 분명한데, 조경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상념이 들기도 한다. 이른바 창조적 자본주의의 시대. 국가가 주도하는 거대한 몇몇 제조업의 전국적 파급 효과를 주장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 각 지자체가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다. 상화원은 분명 훌륭한 자원이다. 보령과 충청남도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려 한 흔적이 있다. 하지만 상화원을 이해하고 상화원의 창조자 홍상화 선생의 뜻을 과연 깊이 이해했을지는 의문스럽다. 개인이 사비를 들여 정성껏 가꾸어 온 섬이 이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면, 공적 영역은 그러한 노력에 맞는 화답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입구에 상화원의 콘셉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보물섬이라는 이름의 게이트 구조물을 설치한 것이나, 관에서 조성한 티가 역력한 주차장과 안내도, 화장실 등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상화원 외부의 난잡한 상업 시설과 경관, 도로, 공적 공간은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상화원을 조성한 분의 안목에 걸맞은 장기적이고 통합적이며 섬세한 계획과 설계가 뒷받침되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큰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앞서 지난 달에 밝힌 대로, 이번 인터뷰 시리즈의 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장소, 다른 하나는 인물. 빼어난 장소는 결코 쉽게 생겨나지 않는 법이다. 한 인물의 착상과 고통이 동반된 실천이 시간에 녹아들어 농축된 산물이다. 따라서 장소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무엇보다 그것을 만든 사람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피상적 이해를 넘어설 수 있다.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가 실제 공간보다 더 흥미로울 가능성도 많다. 설계자의 입장에서 상화원을 둘러보면서 아무도 모르게 서해의 비원을 가꾸어온 홍상화 선생에 대해 사뭇 궁금한 감정이 생겼다. 가우디의 구엘 공원이 연상되기도 했는데, 일견 그로테스크하고 절충적(eclectic)인 스타일 때문일 수도 있고 가우디의 정열이 공명되어서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 환상적인 섬을 만든 분은 가우디와 같은 기인의 범주에 포함됨이 분명해 보였다. 사정상 이번 인터뷰에서는 홍상화 선생을 대신해 현재 상화원 원장이자 모 회사인 ㈜한국컴퓨터지주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는 홍정완 씨를 만났다. 바쁜 일정 가운데 시간을 내준 홍정완 대표에게 감사드린다. Q. 상화원 조성의 시작이 궁금하다. A. 부친이 죽도의 상화원 부지를 구입하신 건 1973년 무렵이다. 그 후 1974년 한국컴퓨터지주를 설립하고 사업에 매진하시면서 섬에 큰 관심을 가지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다 1988년에 회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시면서 소설가로서 활동하시게 되었는데, 1993~1994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장편 ‘거품시대’ 집필을 위해 섬에 머무르신 것이 죽도를 정원으로 가꾸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인 듯하다.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섬이 상화원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라 하겠다. Q. 초기에는 집필 장소로 쓰려는 소박한 뜻이었던 것 같다. A. 보령에 연고는 없다. 무창포에 가족의 작은 별장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피서를 오곤 했고, 부친이 섬을 구입하게 된 건 누군가의 부탁에 의해서라고 들었다. Q.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현지인 소유였다면 죽도는 간척지의 일부가 되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방파제 후면 도로 덕분에 섬이 육지에서 매우 가깝다. 접근성 측면에서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A. 현재 죽도와 육지를 잇는 남포방파제는 간척 사업의 일부로 1980년대에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다행히 죽도를 바다 쪽으로 보존한 채 진행되었다. 방파제 후면 도로가 완료되면서 원래는 뭍에서 한 4.5km 떨어져 있던 섬이 육지와 이어지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정원 조성을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그런데 1997년 IMF 사태로 모든 것이 중단되게 된다. 한때 경제적 이유로 호텔과 대규모 콘도 건설 계획이 추진되었으나 착공 직전 부친이 “이곳은 후손에게 정원의 형태로, 자연 그대로 남겨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셔서 애초의 정원 계획으로 돌아가 현재 한국식 전통 정원인 ‘상화원’에 이르렀다. Q. 한국 정원으로서 상화원의 주요 요소는 무엇인가? A. 상화원 한국 정원 조성의 축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섬의 남쪽 사면, 기존 주민 10여 가구가 거주하던 훼손된 임야에 전국 각지의 전통 한옥을 옮겨와 복원했다. 고려 말기 건축물로 추정되는 경기도 화성 관아였던 ‘의곡당’, 전북 고창군 아산면 구암리 ‘홍씨 가옥’을 비롯해 충남 홍성군 행정리 ‘오흥천씨 가옥’, 충남 청양군 남양면 대봉리 ‘이대청씨 가옥’, 충남 보령시 주산면 야룡리 ‘상씨 가옥’ 등 일부 붕괴됐거나 폐가 직전까지 내몰렸지만 집주인이 사실상 보수·유지를 포기한 한옥들을 사들여 이건 후 복원했다. 의곡당은 발견 당시 화성 시내 재래시장 내의 다방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훼손이 너무 심했지만 기둥과 대들보가 남아있었기에 300만 원에 매입한 후 옮겨서 복원했다. 손상된 부분의 복원에 쓸 자재를 찾기 위해 강원도 삼척부터 전국 각지를 조사하기도 했다. 둘째, 섬의 북측 지역에는 수목 사이로 방갈로를 앉히고 건물 위를 이어 송림을 즐길 수 있는 옥상 정원을 마련했다. 원래 숲이었던 지역이라 나무를 베지 않고 숙박 시설을 만드는 게 매우 힘들었다. 숙박 시설은 상화원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지켜야 할 의무 사항이다. 나무 사이로 건물을 앉히고 지붕 층을 모두 목재 데크로 이어 하늘정원이 되도록 했다. 현재 방갈로는 25인 이상의 단체에게만 예약을 받고 있지만, 상화원의 모든 관람객이 하늘정원을 통해 전망과 솔숲의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셋째, 해안가를 따라 돌담을 쌓고 서로 이어진 33개의 연못을 조성했다. 2만 평 남짓한 작은 섬이다 보니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많지 않다. 산 중심에서 흘러온 계류가 차례차례 연못들을 채우고 캐스케이드 형식으로 아래로 흘러가는 구상이었지만, 갈수기에는 인공적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다. 이 세 곳을 연결하는 것이 회랑이다. 1km가 넘는 지붕 회랑은 세계에서 가장 긴 것이다. 약간의 높낮이 변화가 있어 유모차를 끌 수는 없지만, 섬의 대표적인 풍광과 장소를 하나로 이어주는 대표적 요소로서 상화원의 상징이 되었다. Q. 특별한 외부 전문가의 개입 없이 홍상화 선생이 거의 독자적으로 상화원을 조성해 오신 까닭에 상당히 강한 개성이 곳곳에 배게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언뜻 이해하기 힘든 모습들도 있다. 가령 섬 둘레를 따라 해변연못을 조성한 점이 그렇다. 보통 바다를 낀 곳은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에 집중하게 되지 않나? A. 해변연못에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든 게 사실이다. 보령은 예로부터 벼루를 만드는 오석으로 유명한데, 여기서 채석된 돌을 섬으로 옮긴 후 사람이 일일이 맞춰 쌓아가며 연못을 만들었다.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부친은 정원 내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연못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각 연못에 서로 다른 수생 생물의 고유한 특성을 담아내기 위한 의도도 있다. 약간의 종교적 의미도 있다. 천주교 신자인 부친은 예수가 살았던 33년을 상징해 서른세 곳의 연못을 조성한 것이다. 실용적인 의도는 없다고 본다. 순전히 미학적인 이유다. Q. 인력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서인지 연못 돌담의 손맛이 참 좋다. 바다를 향한 큰 경치와 동시에 갖가지 작은 풀과 햇빛이 어우러지는 아기자기한 연못이 있어 자칫 삭막해질 수 있는 해안가에 생명의 풍부함이 더해진 듯하다. 섬이란 원래 물이 부족한 곳이기 마련인데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어 풍성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지 않나 짐작된다. 그 연못을 따라 회랑이 이어진다. 섬을 둘러서 조성된 회랑은 편하게 한 바퀴 일주를 할 수 있게 하는 멋진 설계다. A. 원래 섬 주민들이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난 길을 따라 만든 것이다. 날씨가 궂은 날 하이힐을 신고도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회랑은 섬 둘레를 포괄하는 동시에 주요 시설인 한옥 지구와 빌라 단지를 연결해주는 네트워크 역할을 한다. 회랑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해변연못과 개울을 만날 수 있으며, 바닷가 쪽으로 이어지는 해변 테라스로 내려가면 암반과 파도를 마주할 수 있다. 회랑에 설치된 벤치와 앉음벽은 낙조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부분적으로 만들어졌던 걸 모두 이은 것은 2013년 3월이다. 조성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유지도 쉽지 않다. 상화원의 회랑은 근본적으로 설계도에 따른 공사가 힘들다. 다양하고 미세하게 변화하는 현장 여건 때문이다. 길이 오르락내리락 함에 따라 적당한 구배와 적절한 폭의 계단이 필요하며, 기존 수목을 옮기지 않고 피하거나 회랑 바닥과 천장에 구멍을 내어 나무를 품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반응해서 부친이 고집스럽게 직접 나서 공사를 돌보셨다. 장소에 따라 그 자리에서 결정할 일이 많다. 혹시 한옥 지구 사이로 배치된 회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변 한옥과 이질적이지는 않나? Q. 일단 회랑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각기 다른 지방에서 모인 다른 시기의 한옥들이 한 곳에 밀집하면서, 금방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규모나 스타일이 사뭇 달라서 전체적으로 절충적 성격을 띠는 게 사실이다. 그러기에 섬을 둘러싸는 회랑이 한옥촌을 따라 이어지면서 통일감을 주는 것도 좋다고 본다. 아스팔트 싱글은 사실 가장 미국적인 재료 중 하나인데, 패턴과 색의 사용에 따라 시각적 효과에 큰 차이가 난다. 회랑의 느낌이 무겁지 않고 흐르는 느낌을 주는 점은 큰 장점이다. A. 아스팔트 싱글을 사용한 건 물론 비용 측면 때문이다. 또 염분이 많은 해안 지역이기 때문에 내구성도 좋고 설치 면에서 상당히 간단하다는 장점도 있다. 계획했던 회랑의 길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기와나 초가를 썼다면 공사 기간도 연장 됐을 것이고, 정기적인 수리에 많은 비용과 에너지가 소요됐을 것이다. 지적하신 대로 부분적으로 회랑의 지붕 색상이 밝은 갈색 톤이라 한옥 지붕에 비해 튀는 면이 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톤다운 되면서 나아지리라 예상한다. Q. 자연스럽게 이끼라도 끼게 되면 멋질 것 같다. 섬 북서쪽의 빌라(방갈로)에는 모던한 스타일을 택했는데? A. 빌라의 건축적 스타일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고 본다. 모양이 비행선 같다는 사람도 있다(웃음). 하지만 1990년대 당시 빌라 계획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그곳 솔숲에 있던 나무들을 해치지 않고 건물을 배치한다는 생각이었다. 1층 평면이 2층에 비해 작은 것도 최대한 지면에 대한 훼손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숙박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효율적인 평면이 나와야 했기에 쉽지는 않았다. 각각의 유닛은 실내 계단으로 이어진 복층 구조이며, 숲과 해변연못, 바다를 향한 전망을 위해 통창을 채용했다. 기본적인 숙식 시설 외에 옥상으로 통하는 원형 계단이 특징이고, 낮에는 선탠을 즐기고 밤에는 별을 감상할 수 있는 유리방과 노천탕을 갖추고 있다. 부친은 빌라 또한 숙박객만을 위한 배타적 공간으로 두지 않고, 20여 동의 옥상을 데크로 이음으로써 일반 방문객도 경치와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하늘정원을 배려했다. 옥상에 큰 면적의 데크를 설치하는 건 습기 배출 등 여러 면에서 어려운 작업이고 건물에 무리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빌라 지구 또한 개방하고 나눈다는 취지가 더 중요했다. 관광특구로 지정 받고 나서 호텔과 리조트를 짓겠다는 투자자가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대규모 호텔이 들어설 경우 건물뿐만 아니라 소방도로, 수로 등 부대시설로 인해 숲의 훼손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어느 정도 추진을 하다가 비전문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공사를 하자는 쪽으로 수정하게 되었다. 부친이 스스로 계획했던 대로 나무를 최대한 해치지 않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땅에 닿는 면적을 최대한 줄이도록 설계했고, 건물도 2층으로 제한해 숲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상이다. 외부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나무가 건물의 가운데를 관통하며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Q. 대기업이 관행적인 평면에 따라 만들었다면 현재와 같은 소박한 맛은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섬과 한옥,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과정 자체도 매우 까다로웠을 것이다. 차량 접근도 쉽지 않았을 것이며, 경사지이고, 한정된 부지에 상당한 수의 한옥을 복원하는 것도. A. 한옥 이건이 가장 힘들었다. 입구의 정자 의곡당을 포함해 총 9채. 2002년에서 2004년 사이에 전국의 쓰러져가는 한옥들을 구입해 섬에 보관했다. 하나하나 분리하고 번호를 매겨 보관하던 한옥 자재를 이용해 2009에서 2012년 사이에 복원 작업을 했다. 대목부터 시작해 전문가들의 정성이 상당했다. 상당 부분 소실되고 허물어진 가옥들이었기에 매입 비용은 300만~1,000만 원 정도였지만, 이건 비용은 2~4억 원대에 달했다.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구입 당시 한옥은 훼손이 매우 심한 상태였다. Q. 그런 수고로운 복원의 과정을 거친 한옥을 박제처럼 보존하려 하지 않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차를 마시고 누구나 이용하는 공간으로 개방한 점이 인상적이다. A. 관광특구로 지정되고 나서 한동안은 회사와 자회사, 주요 고객들의 연수 장소로만 활용되었다. 기업 고객만을 위한 휴양지였다가 상화원을 대대적으로 개방하게 된 건, 지자체의 요청도 있었지만 결국 부친의 뚜렷한 뜻이었다. 우리만 즐기는 곳이 아니라,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보다 여러 사람이 출입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부족한 예산은 모 기업인 한국컴퓨터지주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일반인 대상의 개방에 처음에는 우려도 많았다. 그러나 부친이 워낙 의지를 갖고 실행하셨고, 2016년 4월부터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상화원은 지키는 사람이 없다. 방문하는 이가 스스로 돌아보고 차를 만들어 마시고 뒷정리도 알아서 하는 방식이다. 한옥을 복원할 때 일화도 많다. 한옥 배치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셨다. 한 번은 거의 다 지은 한옥을, 옆 건물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허물고 위치를 옮겨 다시 지으라고 지시하셔서 내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부친은 책 몇 권을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애정을 기울인 작품이라고 말씀하신다. 상화원이라는 소설이다. Q. 바닷가 비탈 곳곳에 해변독서실이라는 이름으로 책상과 오두막을 설치한 게 이채롭다. 단순히 바다를 바라보는 곳이 아니라서 좋다. 블로그를 보면, 여기서 오래 머물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서실이라는 콘셉트가 상당히 친근감을 주는 것 같다. A. 네 곳의 해변독서실은 상화원에서 해변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파도와 바람 소리를 벗 삼아 조용히 책을 읽는 초가지붕 정자들이다. 세월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이 해변연못과 회랑 근처에 각자의 돌을 쌓는 것을 볼 수 있다. 원래 만들었던 사람과의 교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기자기하고 사람들 마음이 어려 있는 모습이다. Q. 기분 좋은 장소에 가면 거기에 무언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의 성향일 것이다. 상화원은 다섯 곳의 노천 해수탕이나 동굴 와인 카페 등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힐링 장소도 갖추고 있다. 관리에 상당한 비용이 들 것 같다. A. 현재 죽도상역개발이 관리하고 있다. 현재나 앞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입장료는 유지관리를 하기에도 부족하다. 일반 관람객을 받고 나서부터 필요한 인력이 더 늘었다. 어차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유지만 가능하게끔 하는 게 목표다. 정원은 시간이 드는 만큼 좋아지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보셨다시피 상화원은 지금도 계속 공사 중이다. 빌라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몇 채만 옥상이 서로 이어져 있었는데, 최근에 모두 이어지게 되었다. 빌라 이용객만 소나무숲 경관을 즐기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기에도 적당한 장소가 되게 하고 관람객들도 옥상 정원을 통해 함께 즐기게 하자는 의미다. Q. 정원에 대한 관심, 한옥, 자연 보존, 수집한 조각, 와인 등 다방면에 걸친 홍상화 선생의 관심을 알 수 있다. A. 워낙 여행을 많이 다니셔서 해외에서 구입하신 것들이 곳곳에 있다. 와인 저장고에서는 지역 특산물인 복분자로 만든 와인을 숙성하는데, 맛이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Q. 식재에 관한 전체적 콘셉트가 있다면? A. 기본적으로 상화원의 모든 수목은 원래 있던 것을 보존한 거다. 한옥을 이건하다가 어느 때인가 향나무를 같이 가져가라 해서 입구 근처에 심었는데, 부친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인위적인 일본 정원 풍의 향나무는 상화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셨다. 그만큼 자생하는 식물을 정성껏 돌보는 게 식재 콘셉트다. 너무 귀한 해송이라 하나라도 베지 않으려 노력하셨다. 따로 식재한 것은 없고 모두 원래 있던 것을 보존한 것이다. 다만 한옥지구의 경우에는 한옥을 이건하면서 근처에 있던 나무들도 함께 옮겨와 심었다. 회랑을 걷다 보면 곳곳에 콘크리트 펜스가 보일 것이다. 낡고 허물어지기도 해서 실제 쓰임새는 없고 보기에 싫을 수도 있지만, 부친이 섬에 처음 만드신 작업이라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보잘 것 없는 콘크리트 펜스라도 시간이 켜켜이 쌓인, 역사를 볼 수 있는 것들은 그대로 놔두었다. Q. 개방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호응이 높다. 11월까지 개방하는데, 실제로 설경이 매우 아름다울 것 같다. A. 안타깝지만 겨울에는 안전을 고려해서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고 있다. 부지가 넓기 때문에 제한된 인력으로 겨울철 준비와 방문객이 편히 돌아볼 수 있도록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Q. 아너 시스템, 양심과 자율에 따른 이용은 우리네 관광 문화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가치다. 또 제한된 인원으로 큰 정원의 영역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안일 수도 있다. 보령시나 충청남도의 지원은 없나? A. 그렇게 이해해 주신다면 고마운 일이다. 보령시가 상하수도, 하수처리장 등 기반 시설에 많은 지원을 해 주었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 시설이 없이 자체적으로 처리하려 했다면 많은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Q. 상화원 주변으로 상가들이 정비되지 못한 점이 좀 아쉽다. 상화원의 분위기와 어울릴 수 있는 전체적 계획이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A. 상화원이 세계 100대 정원에 오를 수 있도록 발전,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며, 수준 높은 예술품을 확보해 회랑을 따라 비치해 나갈 것이다. 또 복원된 한옥을 본격적인 정주를 위한 공간으로 개조하기 위해 화장실과 욕실 등 필요한 시설을 어떻게 갖추느냐는 앞으로 현명하게 해결해 가야 할 숙제다.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환경과조경346호(2017년 2월호)수록본 일부
  • [명사들의 정원 생활] 삶의 두께와 정원
    1. “… 석문(石門) 안 넓게 펼쳐진 곳, 산을 낀 물가 요지에 초가 서너 채를 짓는다. 앞마당엔 가림벽을 치고 온갖 화분을 놓되 국화는 적어도 48종을 구비하도록 한다. 그 옆으로는 뒷산에서 대나무 홈통으로 끌어 온 물을 모아 작은 못을 파고서 연과 붕어를 기른다. 연못물은 인접한 남새밭으로 흐르게 하는데, 잘 구획된 그곳엔 여러 가지 채소 원예들이 물결치듯 무늬를 이룬 채 심겨져 있다. 텃밭 주위는 찔레꽃으로 둘러서 오뉴월 뜨거운 햇볕 아래 밭일하려는 이의 코를 즐겁게 해준다. 사립문 밖 산기슭 바위에 작은 초정을 두어 무성한 숲과 맑은 계류가 이루는 빼어난 경치를 즐긴다. 초정은 대나무로 난간을 둘러 소박한 운치를 더한다. 시내 옆에는 넓은 전답을 두어 굳이 세상에 나가지 않아도 먹고 살만한 터전을 확보한다. 그 너머로는 넓은 호수가 있어 연, 토란, 마름, 가시연 등이 가득한데, 달 밝은 밤이면 작은 배를 타면서 친구들과 시와 음악, 그리고 술로 흥취를 즐긴다. …”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이상적인 집의 면모를 설명한 글이다. 선비로서 본분을 지키며 살아갈 거처가 어떠해야 하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답한 편지에 실린 내용이다. 이상적인 주거지의 면모를 상상으로 그려본 것이니 평소 마음속에 품고 있던 바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람직한 집을 설명하면서 건물보다 정원과 주변 환경 설명에 훨씬 더 많이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물은 초가 서너 채와 초정만 등장할 뿐이다. 산과 계류, 바위와 숲 등 자연 환경 요소가 더 중시되고 있다. 집안 가구로도 책장, 책상, 탁자 정도만 언급될 뿐이고 1,400여 권의 책과 향로가 오히려 더 강조된다. 너른 호수의 뱃놀이와 음악, 술을 함께할 친구, 참선과 설법, 시와 술로 가슴속 생각을 기꺼이 나눌 스님, 차와 누에를 함께 치며 미소를 주고받는 부인도 등장한다. 결국 다산이 그린 이상적인 주거는 크고 화려한 집이 아니라 산과 물이 잘 어울린 경승지에서 연못과 꽃이 있는 정원과 텃밭, 너른 호수 등을 잘 갖추고서 친구, 승려, 부인 등 마음 맞는 이들과 시와 음악, 술, 뱃놀이 등으로 운치 있는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러한 정경이 근사한 곳 중 하나가 ‘다산초당’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비록 귀양처이긴 했지만 자신이 그린 이상적 거처에 가까웠다 하니 다산초당에서의 삶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중략)...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있다. 연구소와 설계사무소에서 기획부터 설계, 감리에 이르는 실무를두루 익힌 후 지금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93 대전세계엑스포 조경계획 및 설계, 인사동길 재설계, 용산국립중앙박물관 조경설계, 신라호텔 전정 설계 및 감리, 선유도공원 계획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환경과조경346호(2017년 2월호)수록본 일부
    • 성종상[email protected] / 조경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 [시네마 스케이프] 시티 오브 하이웨이 라라랜드
    만약에 말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LA가 아니라 뉴욕이었다면 어땠을까.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그리피스 공원은 센트럴 파크로 바뀔 테다. 늘 막히는 도로 사정과 자동차 때문에 생기는 우연과 사건은 걷는 도시 뉴욕이라면 어떻게 변주될까. 무명의 재즈 피아니스트와 배우 지망생 이야기라면 뉴욕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라라랜드’는 LA를 배경으로 한 달콤하고 아름다운 뮤지컬 영화다. 춤과 노래, 환상과 시공간의 압축으로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마법을 펼쳐 보인다. 전통 재즈를 추구하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과 배우가 되기 위해 꿈의 도시로 온 미아(엠마 스톤 분)가 운명처럼 만나 사랑하고, 꿈으로 인해 좌절하며 방황하는 이야기다. 빵빵, 요란한 자동차 경적 소리로 영화가 시작한다. 자동차들이 끝이 보이지 않게 꼬리를 물고 정체된 채 하이웨이를 채우고 있다. 겨울임에도 28도까지 오른다는 라디오 방송이 흐르고, 형형색색 갖가지 자동차에서는 서로 다른 음악이 터져 나온다. 한 여자가 자동차 밖으로 나오며 노래를 시작하자 수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와 도로와 자동차를 무대로 한바탕 신나는 군무를 펼친다. 실제 도로에서 촬영한 이 경이로운 오프닝 시퀀스가 끝날 즈음 하이웨이 뒤로 광활하게 펼쳐진 LA 시가지가 보인다. 일반적인 화면보다 가로가 더 넓은 시네마스코프 방식(2.35:1)은 수평적인 도시 LA를 효과적으로 전시한다. 온화한 기후 조건, 다양성, 가변성, 수평성, 열정, 자동차 그리고 하이웨이. 첫 시퀀스에서 LA의 도시 성격을 요약하는 셈이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도시 이론가 에드워드 소자의 책들은 LA에 어떤 특별함이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앙리 르페브르의 계보를 잇는 포스트모더니즘 도시 담론에 빠져보실 독자는 번역서 『공간과 비판사회이론』, 그리고 『Postmetropolis: Critical Studies of Cities and Regions』와『My Los Angeles: From Urban Restructuring to Regional Urbanization』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환경과조경346호(2017년 2월호)수록본 일부
  •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리슨투더시티
    언어를 가지는 일, 언어를 부여하는 일, ‘명명’하는 일, ‘명명’되는 일은 그 자체로 희미하던 어떤 것이 드러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동시에 임의적 구분과 분절이란 언어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그 자체로 폭력이 되기도 하고, 실상 단 한 번도 합의되거나 그 의미가 완연하게 공유된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암묵적 합의를 상정한다는 특성으로 인해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한 단어, 한 항목을 그 자체로서 논하고 규정하고자 하는 일에는 무수한 반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것은 ‘예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무엇이다’라고 언명하기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19세기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역시 어쩌면 자기 참조적 표현 때문에 ‘그럼 예술이란 대체 무엇이냐’ 하는 끝나지 않는 질문, 니체의 표현대로라면 ‘자기의 꼬리를 물고 있는 어떤 벌레’가 되는 문제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다만 후대의 우리는 이 명제가 도덕이라는 이름의 해당 시공간의 일상적 사회 가치를 기반으로 한 판단과 검열, 수단적 가치의 강요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한 것임을 고려하여, 시공간의 맥락을 상상하고 그려보며 왜 그런 표현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예술을 예술로만 말할 수 없음을 증명할 뿐이다. 어떤 단어도 자기 참조만으로 정의될 수 없듯 삶도, 예술도, 예술가도, 어떤 존재도, 온전히 자기 스스로 설 수는 없다. 이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 같은 논제를 시작으로 글을 여는 이유는 본 연재에 앞서 최근 몇 년간 맞닥뜨리게 되었던 몇몇 예술이란 이름 아래에 행해진 치명적인 독가스와 그에 대한 작가주의식 변명에 정신이 혼미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마치 예술이 사회와 분리된 어떤 것이라는 믿음, 거기에서 비롯한 예술의 성역화 내지는 주변화, 그 변두리를 대충 묶어 퉁치듯 우리 사회가 ‘예체능’을 다루고 그마저도 ‘문화체육관광’으로 묶어버린 와중에 일부 세력이 호구 주머니 털듯 휘두르려 했던 것에 대한 분노, 블랙리스트로 대변되는 검열과 통제,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이미 예술계에 포지셔닝(positioning: 위치 짓기)하고 있는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미학적 잣대로 모든 예술을 재단할 수 있는 듯이 사회 참여적 색이 있는 활동에 ‘그런 건 예술이 아니지’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던 일부 지인에 대한 반감 때문이기도 하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경우, 예술과 사회가 분리되지 않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분노 한편에 일정 부분 도리어 반가운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건축 그리고 여느 장소-‘곳’이 맥락을 가지듯 우리의 모든 발화, 행위 그리고 그 행위의 산물은 시공간적 맥락과 위치에 따라 의미를 생성한다. 수신 대상자 혹은 관계되는 수많은 이들 그리고 발화-행위자 스스로의 시간적·공간적 맥락 및 위치, 즉 사회와 연계되어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예술 역시 예외가 아니며 그렇기에 예술을 그것이 이루어지는 사회와 장소, 맥락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에 더해 예술은 사회를 소재로 하거나 보다 직접적으로 사회에 개입하기도 하고, 그 자체가 사회이자 삶의 실천일 수 있다. 곧 예술은 사회의 반영이자 사회를 보는 렌즈이기도 하며, 개입과 변화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11개월 동안 계속될 본 연재에서는 시각 예술 및 소위 다원 예술계를 중심으로 특히 예술의 정치적-비정치적 사회 개입 또는 반영을 보다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술인의 활동을 조망한다. 우리 사회가 이루어지는 장으로서 도시와 지역에서 예술인이 어떻게 새로운 얼개를 엮어 내는지를 통해 도시와 지역, 장소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해보고자 한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46호(2017년 2월호)수록본 일부
    • 진나래[email protected] / ‘일시 합의 기업 ETC’, ‘잠복자들’ 공동대표
  • [에디토리얼] 용산공원, 담론에서 디자인으로
    아드리안 회저, 낯설게 혹은 어색하게 느끼실 이름. 신년호의 교정지를 놓고 편집부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 조경가 Adriaan Geuze의 성을 한글로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 아드리안 구즈로 계속 쓰는 게 적절한가. 단골 토론 메뉴지만 매번 격론을 부르는 소재다. 『환경과조경』은 모든 외래어와 외국 인명이나 지명을 한글로 표기할 때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다. 세계적 스타 조경가일 뿐만 아니라 용산공원의 설계자라는 이유로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 문제의 인물은 네덜란드 사람이다. 네덜란드어의 한글 표기법을 지켜 g는 ‘ㅎ’으로, eu는 ‘외’로, z는 ‘ㅈ’으로, e는 ‘어’나 ‘에’로 표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드리안 회저 또는 회제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다. ‘조경비평 봄’의 네 번째 책 『용산공원: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출품작 비평』(나무도시, 2013)을 남기준 편집장과 함께 만들 때도 이 문제로 토론을 거듭했다. 남 편집장은 그 사연을 ‘나무도시’ 블로그에 남긴 적이 있는데, 요약하자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영어식 발음대로 ‘구즈’라고 쓴다. 용산공원 공모의 주최자인 국토부의 보도 자료도 구즈다. 거의 모든 언론 매체도 보도 자료를 준용해 공모 당선자를 구즈로 소개했다. 그런데 구즈의 West 8에서 용산공원 공모전을 전담해 온 최혜영 팀장은 늘 ‘훼즈’라고 표기한 원고를 보내온다. West 8 출신인 오피스박김의 박윤진·김정윤 소장은 항상 ‘허즈’를 고집한다. 아마도 실제 발음은 ‘훼즈’와 ‘허즈’ 사이의 어디쯤에 있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거다. 이 책을 계기로 아드리안 구즈를 아드리안 회저 또는 회제로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마침 ‘회저’로 표기한 동아일보의 사례도 있다.” 그러나 구즈를 회저로 개명시키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통용이라는 미명 하에 영어식 표기를 유지하고 말았다.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다는 편집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차원에서 2017년 신년호 특집 ‘용산공원, 이제 함께 이야기하자’에서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아드리안 구즈는 지금부터 아드리안 회저다. 그는 지난해 11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진 아드리안 회저-승효상 특별 대담회와 전시회 후 로테르담으로 돌아가 격정적인 어투의 긴 에세이를 보내왔다. 회저는 아마도 용산공원이 정치 논리에 발 묶여 있다고 보고 이 난맥을 디자인 자체로 돌파하고자 마음먹은 듯하다. 이 글을 당시 전시회에 선보인 용산공원 마스터플랜의 서정적 이미지들과 함께 특집에 싣는다. 설계공모 이후 지난 4년간 이해하기 힘든 여러 정치 논리가 용산공원의 발목을 잡은 게 사실이다. 용산공원 설계 예산이 전액 삭감되기까지 했다. 작년에 여러 지면을 탔던 국토부와 서울시 간의 갈등에도 실은 알맹이가 없다. 지역 이기주의와 정파 논리에 갇힌 정치 담론, 포퓰리즘에 불과한 의사(pseudo)-생태 담론, 시대착오적 민족주의 담론의 프레임에 갇힌 용산공원. 길고 힘든 용산공원의 귀환 과정을 담론의 영역에서 디자인의 차원으로 옮길 과제가 던져졌다. 2016년 신년호에서도 용산공원을 다룬 바 있다. ‘용산공원의 현재를 묻다’라는 제목을 단 1년 전 특집이 실종된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구상이었다면, 이번 기획은 모처럼 수면 위로 올라온 용산공원에 대한 시민과 사회의 열망을 공원 디자인에 대한 공론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용산공원, 담론에서 디자인으로. 문제는 결국 ‘어떻게’다. 아드리안 회저의 글과 함께 싣는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배성호 과장과 용산공원 시민포럼 조경진 공동대표의 글에 작은 단초가 있다. 배 과장이 강조하는 소통과 공론화가 실천되고 조 교수가 역설하는 시민 참여의 거버넌스가 전제될 때, 용산공원은 비로소 디자인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새해를 여는 이번 345호에는 예고 드린 대로 여러 편의 새 연재가 시작된다. 최이규 교수(계명대학교 도시학부)의 인터뷰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은 기성과 다른 시각에서 실천해 온 지방 도시의 새로운 개척자들을 탐사한다. 재미 조경가 안동혁(JCFO)은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에서 디테일을 통해 디자인 전체를 독해하는 즐거움을 선사할 계획이다. 『시골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등을 통해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해 온 정원디자이너 오경아의 ‘정원 탐독’이 홀수 달에 여러분을 초대하며, 켤레를 이룰 성종상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정원 생활’은 짝수 달에 배치된다. 심소미의 ‘큐레이터 뷰’는 이번 호로 13회의 막을 내리고, 다음 달부터는 아티스트 겸 예술기획자 진나래의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이 문을 연다. 『에코스케이프』에 연재되던 주신하 교수(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부)의 ‘이미지로 만나는 조경’은 이번 달부터 지면을 옮겨 새 제목 ‘이미지 스케이프’를 달고 계속된다. 4년째를 맞는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열세 번째 주자는 『태도』와 『초벌 그림을 그리다』의 저자 이수학 소장(아뜰리에나무)이다. 이번 호부터 전체 구성에 작은 변화가 있음을 쉽게 알아차리실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work & criticism’을 ‘project’와 ‘competition’으로 분리한다. 그렇다고 비평의 비중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feature’ 꼭지의 이름에는 변화가 없다. ‘landscape architect’와 ‘theory & history’는 ‘perspective’라는 새 이름으로 한데 묶는다. ‘view’에는 뉴스 지면을 보강하고 화제의 인물을 다루는 지면도 추가한다. 눈 밝은 독자라면 편집 디자인의 미세한 변경도 감지하실 수 있을 것이다. 송박영신(送朴迎新). 리뉴얼 1기 편집위원회의 활동이 지난 12월호로 마무리됐다. 김세훈, 김영민, 김진오, 박성태, 박승진, 서영애, 2013년 1월호부터 3년간 본지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 애써주신 여섯 분 편집위원께 깊이감사드린다. 2기 편집위원은 다음 호에 소개하기로 한다.
  • [칼럼] 서른다섯 살 『환경과조경』, 젊은 그대에게
    『환경과조경』이 2014년 1월호로 리뉴얼한 후 만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리뉴얼판 첫 호에 칼럼으로 응원했는데, 다시 그 자리에서 이 잡지를 생각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잡지를 통해 만나는 이 잡지 편집진의 한결같은 자세는 반갑고 부럽다. 편집주간의 에디토리얼로 열리는 이 잡지의 숨소리는 지면마다 펼쳐지는 필자와 기자들의 생각과 동선을 함축하고 있어서 늘 생동감 있게 읽힌다. 그리고 매 호 담아내는 국내외 소식과 이슈, 시리얼, 피처 기사 등은 파이팅이 넘친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팀플레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다. 반갑고 부러운 이유다. 손에 감기는 판형과 지질, 독자의 생각을 전면에 세우고 소통하려는 태도, 짜임새 있는 편집 디자인, 광고 지면을 별도의 콘텐츠로 묶어온 전통, 편집진 전체 구성원이 동참하여 만들어내는 특집 지면, 무엇보다도 건축 전문 잡지들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조경과 도시, 건축 분야를 아우르는 역대급 국내외 공모전을 상세하게 다루는 취재력과 편집술. 이 모든 것은 현재의 『환경과조경』을 만드는 발행인과 편집진에게 보내야 할 찬사에 다름 아니다. 『환경과조경』의 지령은 매호 이 분야 저널리즘의 새 역사로 기록된다. 그만큼 오래 전에 창간된 잡지 발행의 전통이 든든한 배경이 된다. 이는 창간 발행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유다. 더욱이 이 잡지가 조경과 환경, 도시, 건축, 디자인 문화의 시대를 견인해옴에 있어서 발행의 주체, 곧 발행인의 존재감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바, 발행의 주체가 바뀌는 과정에서조차 매체를 사고파는 당략적 차원이 아니라 세대교체 차원에서 잡지 발행의 정신이 이어져 끊임없는 투자를 해오고 있음은 그 자체로 대단한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이는 현재의 발행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유다. 어제의 신입기자는 어엿한 중견기자 겸 편집자로 성장했으며, 조경학계의 존경받는 학자들과 이 분야 비평가들이 편집실 내외부에 진용을 갖추고 이 잡지가 던지는 시선의 무게감을 더하고 있음은 예사스럽지 않다. 그러나 이 땅에서 잡지를 발행하는 이들 대부분이 존경받는 위치에 있거나 두 발 쭉 뻗고 사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라는 점에서 작금의 출판과 잡지 시장의 추이는 민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종이 매체 시장은 위기의 시대 한 가운데 있다. 출판과 잡지 시장 모두 과거와 다른 판매 영업 실적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되어온 바지만 전문 잡지의 경우 오래된 전통만 가지고는 살벌한 시대를 헤쳐 나아갈 수 없다. 이 분야의 전문 지식이 없는 이들도 이제는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는 눈치다. 지하철 동차 내부의 풍경은 압축적이다. 너나없이 스마트폰에 눈을 뺏긴 사람들. 반면 종이책을 펼쳐들고 있는 사람을 한둘 이상 만나보기가 쉽지 않은시대가 된 지 오래다. 신문이 사라진 자리에 잡지 독자를 만나기란 언감생심이다. 그나마 단행본은 실낱같은 생명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단행본을 읽고 있는 저들 손안의 책 상단에는 예외 없이 ‘◯◯도서관 소장도서’란 직인이 찍혀 있다. 저들을 힐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제 돈 주고 책을 사서 읽는 이들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망과 디지털 기기의 수혜를 받는 초특급 IoT 산업 국가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1인 미디어 시대로의 급속한 전개로 이전까지 종이 매체가 보유해왔던 독자층이 상당 부분 무너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우리 사회가 초고속 인터넷망 이전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는 이 땅에서 출판과 잡지가 누렸던 시장의 뜨거운 반응은 과거지사일 뿐이다. 그런 까닭에 종이 매체들마다 온라인 매체로 선회하며 자구책을 찾는다. 그것이 또한 작금의 대세다. 다만 국내에서는 (국외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성공적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온라인 콘텐츠의 무료 이용자가 다수인 까닭이다. 이 같은 상황은 쉬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오프라인과 온라인 매체를 병행하여 발행한다. 그것이 그나마 잔존해 있는 판매 영업망 내의 독자와 협력사들을 유지 관리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이해되는 바지만, 잡지 발행에 따른 경영의 위태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보장 장치가 될 수는 없다. 『환경과조경』도 넓은 의미에서 작금의 시대적 변동성을 매체 운용에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종이 매체로서 잡지의 수익성 저하에 시선을 두기보다 종이 매체―나아가 편집진용―의 역할과 정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의 발굴과 이슈 파이팅은 언제나 환영받는 아이템이다. 독자의 눈높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눈을 뗄 수 없는 잡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편집진의 구성원 저마다가 담당한 특정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 전문성이 적당한 무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독자와 만날 수 있는 장(場)이 필요하다. 발행의 주체는 이들의 전문성에서 비롯된 콘텐츠의 강점을 전략 사업화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환경과조경』은 유관 분야 그 어떤 매체보다도 가능성이 큰 잡지다. 전진삼은1960년 인천 생이다.월간『공간』편집장 역임 후,월간『건축인POAR』를 창간하여 건축 저널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현재 격월간『와이드AR』을 펴내고 있으며,간향 미디어랩&커뮤니티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건축 언론의 사명에 대해 늘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으며,그 연장선에서‘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저널리즘스쿨’, ‘건축비평상’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 전진삼[email protected] / 『와이드AR』 발행인, 간향저널리즘스쿨 GSJ 학교장
  • [이미지 스케이프] 태양의 퇴근
    새해가 밝았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늘 느끼지만, 세월 참 빠릅니다. 2016 병신(丙申)년. 발음하기 난처하다면서 새해를 맞은 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2017정유(丁酉)년이라는 새로운 해에 익숙해져야 하니 말이지요. 2016년에는 어떤 일들이 있으셨나요? 그야말로 다사다난. 온 나라가 혼돈과 충격에 빠져 지낸 가을과 겨울을 생각하면, 올해에는 정말이지 제발 정상적인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기만 합니다. 일출처럼 보이는 이번 사진은 사실 몇 년 전에 강화도에서 찍은 일몰의 풍경입니다. 동해 일출을 보러 가는 수고 대신 새해가 되면 가끔 강화도로 낙조를 보러 가곤 합니다. 솟아오르는 해를 보는 것만큼 새해 기분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바다로 천천히 떨어지는 태양을 보는 것도 굉장히 멋집니다. 도시에서 만나는 일몰과는 스케일이 다른 감동을 줍니다. ...(중략)... *환경과조경345호(2017년1월호)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주신하 /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일상
    이천십육년 가을 어느 저녁답 저녁 여섯 시, 지구가 서서히 기울고 있고, 멀리서 나는 자판 두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새벽 세 시 반에 겨우 잠이 들었지만 악몽에 시달리다 몇 번씩 현실이 아님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잠이 들었던 밤이었다. 미몽에 책상이 뿌레카 소리를 내며 떨었다. 전화기에 뜬 하얀 글자 ‘김정은 팀장’이 눈에 들어왔지만 머릿속은 희뿌옇게 몽롱했다. 그녀의 약간 무거우면서 꽉 찬 허스키한 목소리가 몇 개의 단어 속에 다른 운율을 포개는 순간에야 그녀와 관련된 기억을 소환할 수 있었다. 그녀는 먼저 지난 토요일 환경조경대전 심사의 부재를 확인했다. 아팠다고 간단하게 말했다. 금요일 저녁 어릿광대의 노래에 맞춰 무대 위의 기울어진 식탁에 매달린 배우들의 곡예가 속을 뒤집은 것은 아니지만, 1막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고, 이후 위 아래로 몸속의 모든 내용물이 용암 흐르드키 쏟아져 나왔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틀에 걸친 분출과 실신, 그 낡은 기계의 자각 증상 앞에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녀는 에두르지 않았다. 내년 일월에 실을 ‘그들이 설계하는 법’ 꼭지에 글을 부탁한다고. 얘기 중에 언젠가 전화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냐고, 의문 부호가 아니라 마침표가 찍힌 말을 했다.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될 만한 문장까지 생각이 나아가지 못했다. 사실 이유는 있었는데 그게 거절할 수 있는 답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답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가진 까닭에 그는 ‘그들’이 바라보게 될 ‘그의 설계’에 대한 진술을 얼버무리듯 약속했다. 전화를 끊기 전 그녀는 십일월 초에 김모아 기자가 전화를 할 것이라고 뒤를 닫았다. 그리고 열아흐레 뒤에 김모아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금 기둥이 되고 싶지 않으면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그것도 아직 몸 안에 소금기가 남아있을 때 얘기겠지만. 연료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커피를 올린다. 모카주전자의 물그릇 안전밸브 중간까지 물을 붓고, 깔대기처럼 생긴 커피바구니에 곱게 간 커피가루를 채운 뒤 주전자 윗부분인 커피그릇을 연결해 불 위에 올려놓는다. 물이 끓는 사이 넋을 놓고 간밤 꿈에 나왔던 까마귀를 따라 날갯짓 두어 번 하고 들어오면 불에 탄 까마귀 날개 빛의 커피가 올라왔던 관을 타고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물그릇의 높아진 압력이 뜨거운 물을 밀어 올리면 중간의 커피바구니에 담겨 있던 커피가루를 통과해 커피가 만들어진다. 커피가 올라오는 그 짧은 시간에 검은 빛은 짙은 갈색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옅은 갈색이 올라오면서 마지막 물을 뿜어내느라 소리가 요란해진다. 일순 조용해지면 불을 꺼야 한다. 가끔 물그릇의 압력이 높은 날에는 안전밸브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기도 하고, 불 끄는 것을 잊어버려 커피그릇의 커피가 끓어 넘치기도 한다. 두어 해 전에는 플라스틱 손잡이가 모두 녹아내렸다. 커피가 준비됐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호이고 어떤 면에서 일반화된 것이지만, 카페인은 니코틴을 부른다. 똑같이 몸 안으로 들어온 니코틴은 늘 카페인에 굶주려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둘이 기계화된 몸을 태우는 연료가 아닐까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기계 속에서 신경계와 소화계를 유린하는 동안 북한산 자락의 먼 능선이 다가왔다 물러나고, 한양도성 성곽 위의 나무들은 단풍을 거둬 잎을 떨구기 시작한다. 날이 맑은 날에는 잔별들이 남아서 설렁이는 바람을 뚫고 마지막 미약한 빛을 떨구고 나면 동녘에 붉은 기운이 서린다. 송진 가루를 슬쩍 묻힌 바람이 부는가 싶으면, 북태평양 미드웨이 섬에서 보낸 습기를 머금기도 하고, 고비 사막의 모래가 박혀 있는 대기로 주변이 아득해진다. 담배 한 개피가 타는 동안의 자연은 늘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그렇다, 설계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할 말을 굳이 찾자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있는 것도 아닌, 아홉 시 정각이면 움직이기 시작하는 컨베이어 벨트의 베어링이 된 지 오래인데. ...(중략)... 도구 책상 위에는 초벌그림을 그리기 위한 몇 개의 도구가 있다. 1,800×900mm 크 기의 책 상 위에 달려 있는 길이 900mm짜리 아이자, 두 개의 플라스틱 판을 붙이고, 자의 양쪽 끝에 두 개씩 네 개의 바퀴에 꼰 철사줄을 8자로 걸어 책상에 고정시켜 놓도록 되어 있어 좌우가 놀지 않고 평행으로 움직인다. 밑판에는 여섯 개의 구슬이 달려 있어 위아래로 움직임을 돕고, 위판의 왼쪽에 아이자를 고정시킬 수 있는 돌림 단추가 있다. 아이자를 이용하면 곧은 직선을 일정한 간격으로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설계를 하면서 쓰는 아이자는 단순히 직선을 그리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접점을 확인시켜주는 먼 지평선을 내포한 도구다. 계획지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은 긴 직선 하나, 중력의 무게를 드러낸 가로선은 하늘의 끝이거나 땅의 표면, 여기에 길을 내고, 나무를 심고, 데크를 깔고, 의자를 놓아 사람들을 부른다. 그도 아니면 지평선 속으로 뚜걱뚜걱 걸어 들어가 풍경이 되어버리거나. 이 수평선 위에 각도삼각자를 놓고 수직선을 세우면 중력을 거스른 인간의 의지가 곧추서게 된다. 사실 ‘곧추서다’는 조경의 어휘는 아닌 것 같다. 수직 길이 300mm에 45°각을 가진 자는 중심점에서 45°까지 눈금과 치수가 있고 다시 반대로 90°까지 치수가 매겨있다. 다 벌리면 ㅂ자 모양이 되고, 삼각자의 밑면을 어디로 잡는가에 따라 이 치수들이 유용해진다. 각도삼각자는 삼각자에 분도기의 기능을 합친 진화된 도구다. 어떠한 선을 긋든 선에는 시작점이 있고, 각을 내포한 방향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계속 달려가면 방향성이 생기고 자꾸 내달리려는 운동성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 운동은 광활한 대지를 달려가는, 무질서한 욕망을 다스리는 더 없는 고삐인 각도삼각자에 의해 규정되고, 도면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허면 도면은 그것들을 통제하는 억압 기제인가, 규범으로 세운 아름다운 정원인가 모형자(templates) 혹은 ‘빵빵이’라 부르는 도구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나무를 상징한다. ‘빵빵이를 돌리다’는 ‘나무를 심다, 식재 계획을 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물론 거기에 무의식적인 자기 비하와 냉소의 뉘앙스를 내포한다 해도. 그런데 이 모형자는 도형의 형태에 따라 타원형, 삼각형, 사각형 그리고 각종 도면용 기호에서 새와 사람이 있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래도 역시 모형자의 꽃은 둥근 빵빵이다. 빵빵이로 그려진 원은 광장이 되고, 둥근 긴 의자가 되고, 못이 되고, 가로등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경에서 쓰는 그 수많은 나무를 품고 있다. 하나의 원을 그리고 거기에 ‘계수나무_R15, H7.0’ 이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빛깔과 형태를 갖고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이 나무들이 자라면서 시간성을 갖는다. 무아지경에서 빵빵이를 돌리다보면 어느새 거대한 숲을 마주하게 된다. 아니 숲을 꿈꾸게 한다. 비록 우리가 그린 원이 우주의 섭리와 형태적 완결성에 다다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모형자의 원을 따라 한 바퀴 원을 그리고 나면 거기서 한 세상은 조용히 문을 닫고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컴퍼스는 우리말로는 걸음쇠, 양각규(兩脚規) 또는 양각기(兩脚器)라 불리는데, 두 개의 다리가 톱니로 맞물려 있거나, 철판의 탄성을 이용해 두 개의 다리에 축쇠를 연결해서 돌림쇠를 걸어 놓은 것이 있고, 간단하게 나사로 조인 세 종류가 있다. 멀리 고구려 환문총 벽화나 파르테논 신전에서도 쓰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오래된 도구로, 기하학과 건축, 미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지적 여정과 함께 해 왔다. 너무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컴퍼스는 도면이 갖고 있는 축척의 의미를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도구다. 하나의 중심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중심은 사라지고 거대한 원의 일부인 호만을 우리는 식별하거나 빌려 쓴다. 그러니까 도면이라는 한정된 영역 안에서 늘 그 존재의 일부만을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의 제한된 범위를 인지시키면서 동시에 그것이 가지고 있는 온전한 모습에 대한 상상 속에 우리를 놓아둔다. 또한 치수 없는 순수한 작도를 통해서 드러나는 황금비나 루트 비례는 컴퍼스가 만든 궤적을 따라가야만 그 전모를 알 수 있다.그래서 컴퍼스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과 두 다리가 걸어갔던 궤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비례척(比例尺) 또는 비례자, 영어로 스케일(scale)은 미터법에 따른 거리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서 눈금 매겨 놓은 자다. 설계에서 주로 쓰는 삼각비례자, 일반적으로 삼각스케일이라 부르는데, 세 개의 면에 모두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축척이 표시되어 있다. 이 여섯 조합은 1/25, 1/50, 1/75, 1/100, 1/125, 1/150, 1/200, 1/250, 1/300, 1/400, 1/500, 1/600 중에서 만든 회사와 나라 또는 전문 분야에 맞게 선별 조합된다. 삼각비례자가 보여주는 축척은 실제 거리와 도상의 거리 간 비율을 나타낸 것으로, 1인용 의자에서 10헥타르가 넘는 공원까지 A1 도면에 구겨 넣을 수 있는 노동력이 집약된 마술을 펼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땅에 대한 공감각적 인식을 도상에서 직조하고 도상에서 했던 구축적 사고를 땅에서 풀어내는데, 이 눈금과 눈금 사이에 보이지 않는 틈이 있다. 만약 그녀 또는 그가 운이 좋아 이 신비한 축척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 이이명의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1가 만들어낸 광대한 공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트레이싱지가 잉크를 먹어 우굴해지는 선을 따라 주변으로 낙서를 하는 것은 마치 길을 걸으면서 주변의 간판을 쳐다보고 가게를 기웃거리는 것과 같다. 비 온 뒤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 생각이 고여 만년필의 촉이 한 곳에 오래 머물거나 자주 지나가면 구멍이 난다. 촉 굵기 1.1의 만년필은 굵은 각인을 남긴다. 뭉둥그려지고 모호한 생각들이 지나간 흔적 그대로다. 여기서 조금 더 생각이 정제되면 그 반 굵기의 족적을 남기는 만년필이 따라간다. 만년필은 자(尺)하고 상극이다. 만년필은 오구(烏口)가 아니다. 로트링펜은 더더욱 아니다. 볼펜은 빠른 생각에 반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을 무화시키고 저 혼자 형태를 잡아 길을 간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차바퀴 구르는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엔진 소리 이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풍경도 보이지 않는다. 볼펜에는 구슬이 달려 있다. 껄끄러운 트레이싱지 위를 빠르게 질주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유화의 미티에르(la matière) 기법과 같은 양감을 가지면서 잉크가 덧칠된 곳이 반들반들하게 빛이 난다. 이때 조심해야 한다. 볼펜의 잉크가 마르는 데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데, 잘못하면 손도장을 찍어 놓은 것처럼 온 계획지에 발자국이 남는다. 홀더(leadholder)는 심(心)을 갈아 끼워서 사용할 수 있는 기계식(器械式) 필기도구(mechanical pencil)의 하나다. 우리말로 하면 심잡이연필 쯤 되려나. 유럽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6세기 중반에 홀더의 원형이 되는 기구들이 있었다고 한다. 홀더는 샤프와 달리 아주 간단하고 원초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몸체가 있고 그 안에 심을 넣는 대롱과 대롱에 감싸인 스프링, 그 끝에 심을 잡아주는 심잡이(clutch), 선단(tip) 그리고 반대쪽 끝에 누름단추(knob)로 구성되어 있다. 상세도를 그릴 때 굳기 에이치H의 심을 심갈이로 끝이 뾰족하게 갈아서 쓰면 볼펜으로 그릴 때와 다른 세밀한 부분까지 다가갈 수 있다. 설계충設計蟲2 책상을 깨끗이 비운 뒤, 플로터로 출력한 밑도면을 깔고 종이테이프로 고정한다. 그 위에 계획지를 얹어 똑같이 위아래의 가운데에 종이테이프를 붙인다. 계획지 위로 밑도면의 검은 선이 스며 나오면서 노오란 반투명의 계획지에 벌써 누군가 휘갈겨 놓고 간 느낌을 받는다. 자세히 보고 있으면 선과 선 사이에 공극이 커지면서 어떤 물컹거리는 유체(流體)를 대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보이지 않는 유체는 머릿속이 만들어낸 환영일지 모른다. 멀리 환영의 뒤로 지난 주에 보고 온 대상지의 모습이 보인다. 길, 만들어지지 않은 길, 나무, 칡넝쿨이 타고 올라간 참나무숲, 흙더미, 철근이 삐져나와 있는 옹벽, 쌓다 멈춘 석축, 햇빛, 무차별로 쏟아지는 햇살. 말 소리도 들린다. 대상지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인다. 첫 문장을 쓰기 위해 휘적휘적 낙서 하드키 생각의 실타래를 찾기 위해 한참을 더 공극을 들여다 본다. 소리 없이 오전이 간다. 점심은 면을 먹기로 한다. 우선 중국집인지 국수집인지 정해야 한다. 국수라고 정했다면 칼국수인지, 잔치국수인지, 제주국수인지 묻는다. 칼국수는 사골의 농도에 따라 정해야 하고, 잔치국수는 멸치국물 맛에 따라 다르고, 제주국수는 돼지고기 육수에 편육이 올라온다. 잔치국수는 부산 구포에서 만든 소면, 제주국수는 중면을 쓴다. 수제비집에도 국수가 있다. 이 겨울에 막국수는 이인분을 주문해야 한다. 혜화칼국수, 국시집, 우리밀국시, 엄마손국수, 구포국수, 올레국수, 소문난국수집, 성북동수제비집, 명문막국수, 설계는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의 기준은 상황에 따라 늘 다르다. Bon Appétit. 둘러앉아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듣는다. 대상지와 주변의 관계, 지층의 역사, 지침 사항 혹은 의뢰인 주문 사항, 물리적 상황, 거기다 인상 비평까지. 자리를 빠져나와 다시 공극을 마주하고 앉는다. 몇 개의 선과 낙서, 이미지, 낱말이 파편처럼 흩어졌다 쌓이기를 반복하고, 생각이 대지 경계 안에서 둥실 떠다니며 부유한다. 이 모호한 유체 속을 얼마나 떠다녀야 할지 정해진 것은 없지만 늘 시간의 압박을 받는다. 그러다 낱말이 이미지를 만나거나 이미지가 물리적 형태를 붙잡으면서 자그마한 개념 평면이 하나 그려진다. 이 개념이 계획안으로 발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생각의 수레바퀴를 굴려야 한다. 이쯤 되면 도면 작업할 축척에 맞는 평면을 한 번 더 출력하고 그 위에 계획지를 덮는다. 이번에는 가야 할 길이 어렴풋하지만 정해져 있으니까 망설임은 덜하다. 그래도 ‘어렴풋’이 계속 발목을 잡아 손놀림이 둔하다.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때는 만년필이 제격이다. 정확히 말하면 잉크가 만들어내는 뭉개지는 듯한 선이 생각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전체로 보면 여러 과정의 하나이겠지만, 한 번 계획지를 펼쳐 그리면 그것은 그것 자체로 완결되어야 한다. 자 없이 그린 초벌이 한판 완성되면 첫 번째 계획지 위에 다시 계획지를 얹고 그린다. 첫 번째 계획지를 빼내고 두 번째 계획지 위에 새 계획지를 얹어 필기도구를 바꾸어서 개략적인 치수를 따져가며 그린다. 볼펜은 의외로 까다로운 필기구다. 힘 조절을 잘 해야 원하는 선을 그릴 수 있다. 이 개략적인 치수 속에서 조금씩 형태의 미묘한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평면 속에 머물 때는 방법이 없다. 더 묻고 더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더 그려야 한다.두 번째 계획지를빼내고 새 계획지를 얹어 그린다. 세 번째 계획지를 빼 내고 다시 계획지를 얹어 그린 뒤 보라색 색연필로 녹지를 칠한다. 네 번째 계획지를 빼내고 새 계획지를 얹어 나무를 심는다. 이 나무는 그냥 덩어리로서 나무다. 한 판의 초벌그림이 완성되면, 스캔을 받고, 캐드 프로그램에서 불러들여 캐드로 그리는 도면 작업이 진행된다. 이렇게 나온 기본 평면을 가지고 부분별 계획에 들어간다. 혹 소장이 의기 충만해지면 모형을 만들어 보자는 얼척 없는 주문이 들어오고, 한켠에서는 우드락을 사온다, 칼질을 한다, 칙칙이풀을 뿌린다 요란해지면서 사무실은 도떼기시장으로 바뀐다. 그 사이 기본 평면 위에 덩어리로만 잡아 두었던 나무가 이름과 형상을 갖게 된다. 바닥의 마감 재료가 정해지고, 돌이라면 문양과 크기를 디자인한다. 시설물은 부분 부분 더 확대된 평면을 바탕으로 하나씩 디자인 해나간다. 점점 확대된 축척의 그림들이 그려지고, 한 쪽에서 나무와 여러해살이풀에 대한 상세 설계가 진행된다. 시설물 상세 계획과 디자인까지 나오면 모두들 바빠진다. 긴 캐드 작업 속에 한 벌의 도면이 꾸려지면 검토하고 수정하고 다시 검토하는 사이에 내역 작업으로 넘어가고, 소장은 다시 수정하려 들고, 실장은 수정은 없다고 못을 박는다. 납품 날짜가 임박한 것이다. 검토본을 보내고서 확인을 받으면, 최종본 제본을 한다. 그러나 이건 아주 행복한 일정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일 때 그러하고, 대개는 이런저런 이유로 연장되고 검토와 수정이 반복되면서 기약 없이 납품을 한다. 설계 기계 도면은 환하게 빛나지만 선은 보이지 않는, 도구를 내려놓은 채 비로소 먼 산을 보며 담배 한 대 피울 수 있는, 산 그림자가 마을에 길게 드리우고 파란 빛깔의 하늘과 선명한 경계를 이루는 시간을 그림책 작가 안 에르보(Anne Herbauts)는 ‘파란 시간’3이라 이름했다. 지금은 파란 시간이다. 가끔, 사실은 자주 설계가 힘들다는 말을 내뱉지만 엄밀히 말하면 설계 자체가 힘든 것인지, 설계를 하고 있는 이 상황이 힘든 것인지 모호해질 때가 많다. 이 모호함은 규명되지 않은 채 삶이 ‘원래 힘든 걸로’ 귀결되기 일쑤여서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게 되곤 하지만 그래도 파란 시간인 까닭에 무언가 생각이라는 것을 아니면 꿈이라도 꾸어야 하지 않나 싶어진다. “사람이 진정 사랑하면서 섹스를 할 때에는 언제나 자기 혼자서, 그리고 한 명의 타인 또는 타인들과 함께 기관 없는 몸체를 이루게 된다. 기관 없는 몸체는 기관들이 제거된 텅 빈 몸체가 아니다. … 따라서 기관 없는 몸체는 기관들에 대립한다기보다는 유기체를 이루는 기관들의 조직화에 대립한다. 기관 없는 몸체는 죽은 몸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몸체이며, 유기체와 조직화를 제거했다는 점에서 더욱더 생동하고 북적댄다.”4 중간중간 건너뛰면서 읽다가 말기를 십여 년 째 하는 책, 그 책의 중간에 가면 ‘유목론 또는 전쟁 기계’라는 항목이 나온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생각을 쫓아 설계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는 것이 가능할까. 못 할 것도 없겠다. 날 어두워 이미 도구는 내려놓았고, 밤은 길고, 술은 넉넉하니 말이다. ‘한 명의 타인 또는 타인들과 함께 기관 없는 몸체’를 이룬 설계 기계. 사무소라는 장소를 바탕으로 한 것도, 회사라는 경제 활동 조직의 단위도 아닌, 설계라는 행위만을 중심으로 규정할 수 있는 움직이는 몸체.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으면서, 그 모든 것에 속한 채 설계라는 행위 속에서만 존재하는 불운의 현재성과 찰나(刹那)의 현존성을 가진 유체(流體). 비록 그들이 엔지니어링사업자 또는 기술사사무소, 법인 또는 개인사업자라는 국가 체제體制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유일하고 완전한 현존은 계약 속에서만 가능하고 유지되는 객체. 그러나 이 계약이 설계 기계를 작동시키는 동력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만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설계 기계의 처음 작동과 멈춤이 계약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설계 기계를 지속적으로 작동시키는 동력은 설계라는 일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속성에 기인한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얘기한 ‘창조적 도주선’이란 속성은 기계 스스로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을 동력 삼아 움직인다. 그래서 계약은 설계 기계와 체제가 맺고 있는 최소한의 관계이지 절대적인 관계일 수는 없다. 이것은 설계 기계의 현존성에 배치되는데, 설계 기계가 체제와 관계 속에 모습을 가질 때 그러한 이름으로 불릴 따름이다. 이것이 체제를 벗어나 그 고유한 속성을 유지한 채 나아간다면 우리는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명명해야 할지 모른다. 언젠가 설계 기계는 국가/체제와 계약에 의하지 않고도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불가능을 욕망한다. ‘창조적 도주선’은 체제가 가져보지 못한 새로운 해법/계획안을 뜻한다. 그렇게 읽는다. 그래서 창조적 계획안은 낯설고 전복적이다. 설계 기계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이 창조적 계획안은 설계 기계가 체제 안에서 그 작업을 수행함에도 그 체제의 바깥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르게 말하면 설계 기계는 체제에 편입되는 대신에 체제를 가로질러 간다. 설계 기계는 조직을 수직으로 관통하며 의견을 내고, 대안을 제시하며, 새로운 해결책을 통해 조직의 기반을 흔든다. 그러나 설계 기계의 목적은 체제의 해체나 전복이 아니다. 그 많은 창조적 계획안을 체제가 선별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하나다. 체제를 존속하기 위한, 체제 속으로 편입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체제의 입장에서 늘 예외적이고 설계 기계는 예외를 일반화하려 하지만 체제는 단지 예외적으로만 창조적 계획안을 받아들인다. 설계 기계가 수행한 작업은 그 체제를 더욱 굳건히 만드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고, 체제에 수렴된 일부 설계 기계는 익숙하고 동일한 설계안을 만들어 낸다. 설계를 할 때, 조경은 늘 이중의 탈주를 시도한다. 하나는 평면으로 치환된 대지에 대해 또 하나는 시간에 대해. 동구 밖에서시작된 길은 대문을 지나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을 거쳐 뒷뜰을 지나 뒷산까지 올라가고, 마당의 감나무는 옆집의 배나무와 어깨동무를 하고, 뒷산의 참나무숲과 어우러져 앞 강까지 내닫는다. 모든 작업은 대지 경계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의식의 지평은 대지 밖으로 뻗어나가고 지평선은 대지 안으로 들어온다. 이것이 첫 번째 질주다. 두 번째 질주는, 하나의 계획안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 계획안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계획안이라고 불리는 평면은 어느 시간의 한 순간일 뿐이다. 잎이나고, 나무가 자라고, 어디선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운다. 오늘의 바람은 어제의 바람과 달라 어제 흔들리던 잎이 오늘은 꽃잎 뒤로 숨고, 개미들은 저만치 흙더미를 쌓아 놓는다. 장식담은 담쟁이가 타고 오르고, 경계면은 흐트러진다. 내일 떨어지는 햇볕의 모습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과거의 평면을 그리는 현재의 조경가는 현재에 미래를 가져다 놓기 위해 시간 속으로 광란의 질주를 한다. 그래서 설계 기계의 작업은 도면 안에 머물지만 시선은 늘 도면 밖, 경계선 밖, 시간의 너머를 주시하는 까닭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지 안의 정원은 만들어지면서 동시에 사라진다. 이것은 구축하면서 동시에 허무는 작업이다. 늘 주변의 경관과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가 되기를 원하고, 원하지 않을 때조차 그것은 하나의 관계 방식의 차이일 뿐이고, 차이 자체가 전체 경관의 맥락 속에서 그 존재성을 인정받을 뿐이다. 이러한 조경의 이중 탈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조경은 보이는 시선 너머로 질주한다. 정원은 상상의 공간이 되고, 공원은 고원이나 사막을 꿈꾸고, 광장은 큰개자리은하를 품는다. 조경이 언제고 ‘여기’, ‘지금’을 꿈꾼 적은 없다. 조경은 언제나 ‘저기’, ‘어느 날’을 응시한다. 그래서 이 조경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는 결국 유기체를 이룬 기관들, 체제, 국가와 대립한다. “전쟁 기계가 국가에게 정복당해 이미 실존하지 않는 바로 그 순간에 국가로 환원되지 않는 이 기계가 최고도의 환원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승승장구하는 국가에 도전할 수 있는 활력 또는 혁명력을 갖춘 사유 기계, 사랑 기계, 죽음 기계, 창조 기계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는 것이 과연가능할까?” * 각주 1. “1706년 이이명이 제작한 10폭의 병풍에 실린 지도, 북경 서쪽의 구릉 지역부터 동해까지중국과 만주의 국경 지역을 한 폭의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개리 레드야드(Gari Keith Ledyard), 『한국의 고지도의 역사』,소나무, 2011, pp.332~333. 2. 그려벌레. 권윤덕이 쓰고 그린 다음 책들에서 따온 말이다. 『씹지 않고 꿀꺽벌레는 정말 안 씹어』, 2000,『생각만 해도 깜짝벌레는 정말 잘 놀라』, 2001, 『혼자서도 신나벌레는 정말 신났어』, 2002(모두 ‘재미마주’에서 출간). 3. 안 에르보(Anne Herbauts) 글·그림, 이경혜 옮김,『파란 시간을 아세요?』, 베틀·북, 2003. 4.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팰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김재인 옮김, 『천 개의 고원』, 새물결, 2001, p.67. 이수학은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이원조경에서 4년 동안일했다. 프랑스 라빌레뜨 건축학교와 고등사회과학대학원이 공동 개설한 ‘정원·경관·지역’ 데으아(D.E.A.) 학위를 했고, 현재 아뜰리에나무를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