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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젖은 광장, 마른광장
지난 해 12월 9일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핑계 삼아 다음날 새벽까지 통음했다. 오후에야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찾아간 미용실. 머리를 다듬던 원장이 말했다. “오늘은 우리 꼬맹이들 데리고 가려고요.” 지난 6주 동안 그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토요일마다 촛불을 들었다. 8시가 넘어서야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서둘러 광장으로 달려가 자정 넘어서까지 거리를 지켰다. “하도 구호를 외쳐서 목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내 직업이 정치 뉴스를 다루는 것임을 알면서도, 원장은 나를 단골로 대한 지난 8년 동안 한 번도 정치 얘기를 건넨 적이 없었다. 그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232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숫자가 탄생했는지 알게 되었다. 내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내가 경험했던 광장은 잠깐 타오르다 달콤한 케이크 위로 녹아버리는 막대 촛불 같은 것이었다. 2008년 봄 광화문광장. 그 전해 말 531만의 큰 표 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금세 촛불의 성난 함성에 부닥쳤다. 그러나 거세게 타올랐던 촛불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시작 일인 6월 10일을 기점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청와대 뒷산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 이내 잦아들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이 다소 까다로워졌고 ‘한반도 대운하’가 ‘4대강’으로 바뀌었지만, 근본적으론 변한 건 없었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사찰·검거가 이어졌고, 검찰의 가혹한 망신 주기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4년 뒤인 2012년엔 이번 겨울 수백만 명을 거리로 내몬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뿐만인가. 2014년의 광장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가슴깊이 아파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왔다 간 광화문광장에선 유가족을 능멸하는 행위가 자행됐다. 단식 농성을 하는 가족들 곁에서 ‘자장면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슬픔과 공감이 있던 자리엔 진영 논리가 횡행했다. 광장에서 튄 분노의 불꽃은 이내 마른 장작처럼 화다닥 탄 뒤 한줌 재로 스러졌다. 마른 광장은 희망을 잠시 조우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광장은 달랐다. 마음에 차오른 물기. 그건 나만이 느낀 게 아니었을 게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느낀 따뜻함 밑바닥엔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소리친 광장엔 울분과 통한이 서려 있었다. 광장은 축축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던 2014년 당시, 나는 매일 국회로 출근해 하루 종일 정치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취재하는 일을 했다. 흔히들, 갈등은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갈등을 표출하고 사회화 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샤츠 슈나이더)라는 관점이다.
이 경우 정치는 밀실의 개인들을 불러내 자신의 목소리를 분출하도록 하는 광장이다. 그러나 유족들에게 한국의 정치는 광장이 아니었다. 같은 해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주도권을 쥔 여권은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한 ‘지배적 사회 갈등’이었던 세월호 문제의 본질을, 자신들의 존립에 유리한 갈등, 즉 ‘색깔론’으로 대체했다. 야당은 당내 분열과 실력 부족으로 여권의 이런 행태를 제어할 수 없었다. 도무지 좌우를 따질 일이 아닌 사회적 대참사가 정쟁으로 전락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족들은 보상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탐욕스런 집단으로, 좌파와 결합한 불온한 세력으로 몰렸다. 유족들은 밀실에 갇혔다. 지난 해 4·13 총선 때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출마하자 유족들은 도라에몽 인형 탈을 쓰고 선거 운동을 했다. ‘세월호 유족’이 공공연히 나섰다가 표 떨어질 것을 우려했던 까닭이다. 유족들은 ‘투표로 아이들의 미래를 바꿉시다’라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주장을 펼칠 때조차 인형 탈 뒤로 숨어야 했다.
올 겨울 광장. 시민들은 진실의 외침을 다시 응시했다. 밀실에 유폐됐던 진상 규명의 호소를 응원했다. 촛불이 밝혀지기 시작하던 11월 초까지만 해도 광장 한편에서 쭈뼛거렸던 유족들은 날로 탄핵의 열기가 고조되자 전면에 나섰다. 11월 28일엔 노란 종이배 304개를 태운 ‘세월호 고래’ 풍선과 함께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2014년 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며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앞에서 무릎 꿇고 빌기까지 했던 창현이 아빠 이남석 씨는 시위대 맨 앞에 서서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갔던 날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달라’며 1000일 가까이 바쳤던 간절한 기도가 드디어 응답 받았다고 생각했다.”
올 겨울 광장. 수백만 명이 모였는데도 질서와 평화가 유지된 것은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이 쓰는 ‘시민의식의 성숙’이란 ‘중립적’ 표현은 이 광장의 경이로움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인내와 절제, 그 밑에 자리한 것은 304명을 떠나 보낸 우리들의 눈물이었다. 광장은 젖어 있었다.
이유주현은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19년을 살았다. 1997년 「한겨레」 신문에 입사해 문화부, 사회부, 정치부 등을 거쳐 왔다. 한때 조경가를 꿈꾸기도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일과 일 아닌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보려고 하면서도 늘 휘청거리며 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주름이 멋지게 잡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공저로 『소울 플레이스』, 『공원을 읽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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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계절은 반복된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면 새해의 시작이 언제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1월 1일은 당연히 새해 첫날이고, 음력 설날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한 해에 시작이 두 번이라 새해 결심하기 더 좋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작심삼일이 한참 지난 뒤에 음력설이 돌아오니까 뭐 그리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3월이 또 다른 시작입니다. 겨울방학 동안 한참 못 보던 학생들이 새 학년을 맞아 학교로 돌아옵니다. 게다가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신입생들을 보면 또 다른 의미에서, 어쩌면 선생 입장에서는 더 절실하게 새해의 시작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행정적으로도 3월부터 새로운 ‘학년도’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3월이 학교에서는 새해의 시작입니다.
계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봄의 출발이라 할 3월이 진정한 새해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왜 하필 봄이 아니라 한창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새해가 시작된다고 정했을까. 자연스럽게 모든 생명이 싹트기 시작하는 봄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계절을 이야기할 때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말하기 훨씬 편할 텐데. 첫눈도 마찬가지인데, 1월 1일에 눈이 온다고 첫눈이라고 하진 않잖아요.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또 있었던 모양입니다. 춘분을 새해의 기점으로 삼는 문화권도 있었다고 하니까요. 한 겨울에 시작하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을 기준으로 했을 것 같습니다. 낮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가 양력 12월 22일 근처니까 그때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그래도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삼은 게 천문학적으로 딱 맞는 것도 아닙니다. 열흘쯤 차이가 있으니까요. 세상에는 별 이유 없이 정해진 원칙이 꽤 많으니 이 정도로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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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도주
도주의 출발점으로 한 잔의 커피를 지목한 것은 안데스 산맥의 아라비카종 커피나무Coffea Arabica 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가
자유로를 달린다. 커피에서 무오년戊午年 동짓날 마셨던 사약死藥 냄새가 날 때면 일을 멈춰야 한다. 임계점에 다다른 일상의 압력이 만들어낸 무중력의 기억 저편에서 더께 두꺼운 편린을 붙잡고 호명되지 않은 들풀 지천의 벌판을 헤적이는 것 외에 다른 방편은 없다.
1990년 1월 1일자 「한겨레」 신문 21면에 새해 특집으로 초록색 바탕에 ‘비무장지대를 녹색평화마당으로’라는 흰색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복학하고 대학 사학년에 올라가던 겨울, 신문을 보면서 이걸로 졸업 설계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대상지로 발표했을 때 담당 교수님은 무척 난감해 하시며 다시 잡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랬다. 천지 분간을 못하던 시절이었다.
2000년 ‘조경공방나무’ 누리집을 만들고 작업했던 ‘열린 프로젝트(www.ateliernamoo.xyz/openprojects/intro.htm)’에서 난지도와 함께 비무장지대를 하겠다고 호언했지만 난지도만 팔 개월 정도 진행하고 끝을 냈었다. 2002년에서 2003년 사이 청계천을 두고 열린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마무리에 대한 결론도 없이 잘려 나간 고가처럼 예리한 단면을 드러내며 멈췄다. 한계에 대한 인식과 결말조차 열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특별한 아쉬움은 없지만, 그렇게 마음의 심연으로 가라앉은 설계 기제機制는 푸른곰팡이가 피어 의식 속에서 멀어져 갔고 일상에 묻혀버렸다. 그 사이에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이 도륙屠戮되는 것을 목도해야 했고, 2011년 그 몹쓸 정권이 ‘비무장지대 개발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는 풍문이 역병처럼 돌았다. 덜덜거리는 자동차에 시동을 거니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에서 라디오머리 톰이 물었다. ‘당신, 유령 말을 탄 채, 누구의 군대인가?’
이수학은 2003년부터 아뜰리에나무를 꾸리고 있다. www.ateliernamoo.xyz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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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까다로운 부지와 조금 '다른' 재료
멋들어진 고가 철교 아래로 녹음이 우거진 수변 목재 데크 산책로boardwalk가 보인다. 지난 호에 소개한 피어 C 파크Pier C Park의 사례에서도 등장했던 수변 목재 데크 산책로는 수변 공원에서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바닥면은 목재 데크로 마감했고, 단정한 수형의 교목이 드리우는 그늘 아래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나무 벤치가 더해져 물과 나무와 녹음이 어우러진 친근한 공간을 마련했다. 사진으로 읽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목재 데크 산책로는 약간의 경사로 오르막을 형성하는 한편, 멀어질수록 그 폭이 좁아져 원근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짐작하건데 오르막의 끝에는 활짝 열린 강 건너의 조망이 펼쳐지리라. 목재 데크의 패턴은 소실점을 따라 종방향 또는 횡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고 비스듬한 사선으로 처리되어 산책로의 방향성에 색다른 결을 더하고 있다.
사실 앞의 사진에서 보이는 목재 데크는 천연 재료가 아니다. 인공적으로 실제 목재와 흡사하게 만든 제품이다. 이는 재생 목재의 분말과 재생 플라스틱을 혼합해 만든 인공 목재 데크로 별도의 벌목을 하지 않고 재생 재료만으로 만들어진 환경 친화적인 재료다. 잘 만들어진 인공 목재의 경우, 그 색상과 무늬가 천연 목재의 널과 간단히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고, 천연 목재와 같이 널마다 미묘하고 자연스러운 색상의 차이가 있다. 인공 목재 데크는 천연 목재보다 강도가 강해 쉽게 파손되거나 휘어지지 않고, 때가 타거나 벌레 먹지 않아 유지 관리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천연 목재와 마찬가지로 외부 온도에 따른 재료의 온도 변화가 크지 않아, 덥거나 추운 환경에서도 재료가 인체에 닿았을 때 친밀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연 목재가 주는 특유의 촉감과 질감을 인공물로 100% 재현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사례의 장소에서도 안전 난간의 손잡이와 벤치의 상판과 같이 인체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부위의 재료는 천연 목재를 사용했다. 바닥면의 인공 목재 데크는 이들 천연 목재의 색상과 근사한 제품을 선택하여 시각적으로 공간의 통일성을 추구한 것이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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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전유성 코미디시장 CEO
코미디의 메카, 청도
잠깐 개인적인 회상을 언급하자면, 캐나다 유학 초기에 그곳 친구들로부터 흔히 들었던 말이 “너 너무 진지해 보여!You look so serious. Relax!”였다. 물론 사람에 따라 편차가 크겠지만, 돌이켜보면 비단 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한국 유학생이나 교민들의 인상은 유럽이나 남미 출신들에 비해 대체로 긴장돼 있었다. 나는 그런 인상이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전쟁의 여운이 남긴 오랜 대결 구도 속에서 우리 편이 아니면 적으로 몰아붙이는 상황, 0.1점 차로 갈리는 승자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분위기에서 눈치 보며 살다보니 상대적으로 우리 얼굴에는 여유의 자연스런 주름이 새겨질 틈이 없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다. ‘전투적’이라는 말이 칭송받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피부도 보톡스 해서 전투적으로 빵빵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도시와 공간에 대한 계획도 어딘지 모르게 아래아 한글로 작성된 공문서의 표 마냥 줄과 열을 맞춰 착착 번호 매겨진 어색한 느낌이다.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고 이식된 듯한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청도에서 전유성이 해오고 있는 활동은 도시재생, 농촌 재생의 희한한 대안적 옆길 같은 깨달음을 주었다.
지금 30~40대는 예전 인사동의 명물 찻집 겸 주점, ‘학교종이 땡땡땡(이하 학교종)’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시절 교실을 옮겨 놓은 듯한 특이한 공간. 거리를 걷는 여느 연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전유성은 그저 코미디만 하는 코미디언이 아니라는 인상을 깊이 심어주었다. 짝궁과 금 그어놓고 함께 쓰던 진초록의 2인용 책상과 삐걱거리는 코딱지만 한 나무 걸상에 앉아 추억과 차를 곁들이는 곳, 당시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할 데이트 코스였다. 떠드는 사람이 적혀 있는 칠판 위에 걸린 교훈은 ‘공부해서 남 주자’였고, 급훈은 ‘음주운전하면 진짜 학교 간다’였다. 개그맨 지망생들의 공연도 있었고 전유성이 직접 마술쇼를 보이기도 했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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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탐독] 노자와 플라톤으로 읽는 정원
요즘 우리는 ‘인문(학)’과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듣는다. 특정 단어를 많이 쓴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화제라는 뜻이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만큼 결핍됐다는 의미기도 하다. 어느 철학자는 “인문이란 인간이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풀어나간 무늬”라고 했고, 또 다른 철학자는 21세기가 왜 간절히 노자를 읽게 하는지 역설하기도 했다. 왜 지금 우리는 다시 인문학을 외치고 있을까. 그 답을 찾다 보면 만나게 되는 단어가 바로 힐링이나 치유다. 우리가 보낸 20세기는 지난 수천 년의 인류 문명 역사를 다 합친 것보다도 더 급격한 삶의 변화를 만들어낸 시기였다. 그 변화의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과학과 기술의 힘이었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꿈꿔보지 못한 편리하게 향상된 물질적 삶을 얻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정신의 결핍으로 인류 자체가 가야 할 방향성을 잃고 아픈 상황이기도 하다.
노자의 도덕경과 정원
기원전 8세기에서 3세기에 이르는 시기를 중국 역사에서는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른다. 봉건제의 틀을 갖췄던 주周나라가 멸망하자 충성을 맹세했던 지역의 수많은 가신들은 세력을 모아 나라를 세웠고, 이 틈에 하루에 한 번씩 새로운 나라가 나타나고 무너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적 대혼란의 시기가 찾아온다. 그러나 달리 보면 이 시기는 가신마다 뛰어난 인재를 필요로 한 덕에 그야말로 문화, 인문, 철학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이때를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시대라고도 한다. 제자란 학자를 말하고 백가란 백 개의 가문을 이뤘다는 뜻인데, 그중에 노자와 공자도 있다.
생과 사의 흔적이 뚜렷한 공자에 비해 노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게다가 노자의 말씀을 담았다는 도경과 덕경을 합친 ‘도덕경道德經’ 역시도 발굴된 자료에 따라 첨삭이 지속적으로 일어난 흔적이 있어 한 사람의 작업이기보다는 인쇄가 없던 시절, 비단과 대나무에 글을 베껴 쓰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은 혹은 어떤 집단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도 본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서든 이 도덕경이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일본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문화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철학이 된 게 분명하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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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너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는, 어디에나 있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도시의 풍경을 사람들이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영화의 후반부,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타키가 입사 면접 때 두서없이 더듬거리던 내용을 정리하면 아마 이런 내용일 게다. ‘사라지다’, ‘풍경’, ‘기억’, 영화의 주제를 요약하는 대사다.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였다. 자습 시간에 국어 선생님이 칠판에 크게 ‘조경’이라는 한자를 쓰셨다. 만들 조造, 경치 경景, 유망한 분야라고 소개한 이 두 글자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될지 그 분은 몰랐겠지. 그 순간, 수학과 미술을 좋아하던 한 여학생은 주저 없이 ‘풍경 만드는 일’을 평생 하리라 마음먹었다.
풍경을 만드는 근사한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손으로 그리던 일을 기계가 대신 해주게 되었지만 시간은 늘 부족하다. 얼버무리듯 하나씩 마무리해 갈 뿐이다. 다음엔 잘해야지 다짐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풍경을 만드는 일 따윈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매번 다른 사람과 만나고, 다른 조건으로 새로 시작해야 한다. 매일 공부해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따뜻한 풍경은 대체 언제 만들 수 있을까. 영화 ‘너의 이름은’은 근사한 풍경이 이미 우리 일상에 있다고 말해주는 영화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길 건너 가로등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쯤 자세히 보라고 말해주는 영화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 본 두 한국 영화, ‘죽여주는 여자’와 ‘미씽:사라진 여자’는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노인 빈곤, 소외 계층, 이주 여성 인권, 모성애와 워킹맘 등 쉽지 않은현실의 민낯을 대하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영화는 때론 판타지로, 때론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통해, 서로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깨어있도록 만든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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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도시와 이주 ― 믹스라이스
동료 작가들과 회의를 마치고 차 한 잔을 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크고 단호하게 변하던 그 목소리는 알고 보니 조금 전까지 우리와 함께 이야기 나누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어느 작가의 목소리였다. 좀처럼 격앙된 모습을 보인 적 없던 분이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고, 걱정되는 마음에 조심스레 무슨 일인지 묻자 그는 프로젝트 과정 중에 알게 된 어느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수단에서 온 지인이 최근 불법 체류 문제로 한국에서 강제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내전이 진행 중인 수단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보석을 위해서는 2천만 원이 필요하고, 난민 신청을 하기도 어렵다는 내용의 통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일은 몇 해가 지나도 결과를 알 수 없는 길고 지난한 과정으로 익히 알고 있는 바. 하지만 2천만원쯤이야 호기롭게 내어놓을 수 있는 여유, 아니 그 2천만 원 자체도 없는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주민을 위한 봉사 활동도 다니는 그는 답답함 한편에 냉정하게 말해야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건축이나 도시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듯, 오스만 남작이 방사형으로 계획한 파리는 구역마다 뚜렷한 성격을 갖는 동시에 중심부와 외곽 지역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계층화되어 있다. 방리외banlieue, 즉 외곽 지역에는 주로 이민자인 빈민층이 살고 있다. 과거 노동자를 위해 지어진 획일적인 공영 주택이 이민자들의 터가 된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방리외에도 부촌이 있다. 도식적으로 생각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지만 도시 공간의 사회적 계층화를 짚을 때 종종 언급되고는 하는 것이 프랑스어로 교외suburb를 뜻하는 이 방리외다. 도시 공간이 형성되는 방식은 각 도시, 공간마다 고유한 특수성을 갖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 되었든 이처럼 도시 공간은 각 지역,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 신scene을 가지며 많은 경우 사회적으로 계층화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주체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도시계획이 이를 조장하고 주변화된 이들을 더욱 주변화하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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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1월 어느 날의 편집실 풍경
4호선 이수역과 7호선 내방역 사이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환경과조경』 편집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맞은편 벽에 최근 삼사년 치 잡지와 근간 단행본들을 정면 표지 방향으로 진열해 놓은 책장이 있다. 잡지사 편집 공간다운 첫인상을 주는 이 장면을 클로즈업한 사진이 한동안 페이스북 커버에 쓰이기도 했는데, 반응이 제법 괜찮았다. 이 벽면 앞에는 꽤 넓은 중앙 공간이 있다. 편집실을 도시에 비유하자면 광장에 해당할 이곳에는 여덟 명 정도가, 끼어 앉으면 열두 명까지도 둘러앉을 수 있는 넓고 긴 회의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 왼쪽에는 에디터들이 쓰는 책상 일곱 개가, 오른쪽에는 디자이너들의 작업 공간과 마케팅팀의 책상 두 개가 있다.
이 테이블은 멀티 플레이어다. 수시로 벌어지는 브레인스토밍과 아이디어 회의, 주간과 월간 편집 회의가 이 자리에서 열린다. 디자이너가 초벌 디자인을 끝낸 1교 원고를 이 테이블 위에 놓으면 에디터가 가져가 수차례 교정을 본 후 다시 테이블에 올려 둔다. 에디터와 디자이너가 의견을 조율하는 곳도 이 테이블. 인쇄소나 출력소 직원이 방문해도 이 테이블에서 응대한다. 연재 필자나 단행본 저자와 대화하고 기획하는 곳도 이 테이블의 한 구석이다. 이 다목적 광장은 매달 열 개 넘는 표지 후보작을 펼쳐놓고 토론하고 투표하는 민주주의(!)의 현장이기도 하다.
다른 층에 사무실을 둔 발행인이 편집실에 들러 격려와 응원을 하는 공간도 이곳. 야근 때는 배달 음식을 차리는 식탁이 되고, 철야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짧은 치맥 파티의 장이 되기도 한다. 다행히 사무실 구석구석에 숨겨진 방들이 많아 이 테이블이 침대 역할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마감이 다가올수록 광장의 풍경은 복잡해진다. 교정지, 디자인 시안, 표지 대안, 먹다 남은 간식 부스러기, 종이컵, 페트병, 중국집 메뉴판이 뒤섞여 뒹군다. 테이블 위의 상태는 마감이 며칠 남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척도다.
오늘은 새 편집위원이 모여 첫 편집위원 회의를 여는 날. 마감이 코앞이라 광화문광장 못지않게 역동적이었던 밀도 높은 테이블이 불과 십분 만에 깔끔한 회의장으로 변신했다. 턱없이 해가 짧은 한겨울, 여섯시지만 창밖은 칠흑이다. 리뉴얼 2기 편집위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우리엔디자인펌의 강연주 소장, 수원대학교 도시부동산개발학과의 민성훈 교수,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loci)의 박승진 소장, HLD의 이호영 소장, 제대로lab.의 정귀원 대표,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의 최이규 교수, 이 여섯 분이 앞으로 2년간 『환경과조경』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편집의 방향, 내용, 형식을 자문하고 모니터링해 줄 새 편집위원이다. 김세훈, 김영민, 김진오, 박성태, 박승진, 서영애, 1기 편집위원진과 같으면서도 다른,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절친’이 되어주실 것이다.
회의장으로 변신한 테이블에서는 2017년의 구성, 편집,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뜨겁게 오고갔다. 『환경과조경』 편집진이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내용들이다. 보다 선명한 지향점과 중심성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다수. 이는 곧 2014년 리뉴얼 이후 3년간 점차 편집 방향이,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유연하게,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절충적으로 바뀌어 왔음을 뜻한다. 특히 지난 1월호부터 대폭 늘어난 행사 뉴스 지면과 단체 사진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텍스트 분량을 조금 줄이고 시각 이미지의 양과 크기를 늘리고 키운 점에 대해서는 호평이 많았지만, 한 권 전체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과 디자인을 더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도시설계, 도시재생, 도시 문화 등 도시 관련 담론과 기사의 비중을 더 늘려 ‘조경과 도시설계’를 포괄하고자 했던 3년 전 리뉴얼의 방향성을 한층 가시화해야 한다는 토론이 이어졌다. 오늘 테이블의 주 메뉴 중 하나는 연간 특집 주제. 지난 1월호의 ‘용산공원, 함께 이야기하자’, 이번 2월호의 ‘차기 정부 조경 정책 어젠다’, 오는 3월호 특집으로 준비하고 있는 ‘광장의 재발견.’ 나머지 아홉 달의 주제에 관해 편집위원과 편집진은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아시아의 주거 단지, 올봄에 완공될 서울역고가와 마포석유비축기지, 정원박람회 진단, 설계공모 그 이후, 빅데이터와 도시, 구상과 계획 후 10년의 시간이 빚어낸 세종시의 도시 구조와 쟁점, 라이노(rhino)·루미온(lumion)·사물인터넷(IoT) 등의 디자인 테크놀로지가 가져올 조경 설계의 변화 등이 테이블에 올랐다. 리뉴얼 호(2014년 1월호)의 에디토리얼 한 구석에 ‘학생에겐 지적 자극을, 실무 조경가에겐 질투심을, 우연한 독자에겐 꿈을!’이라는 편집 방향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러한 편집의 필요충분조건은 ‘함께 만드는 잡지’라는 게 오늘 편집 테이블의 결론. 더 많은 독자 여러분의 피드백과 참여, 조언과 제안을 부탁드린다.
가지런히 놓여있던 회의 자료, 과월호, 문구류, 다과, 커피 잔이 흐트러지고 뒤섞여 마감 전날 밤의 편집실 풍경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편집실 밖에도 테이블은 많다. 이곳만 광장인 건 아니다. 칼바람 부는 1월의 어느 날, 편집회의는 방배동의 여러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계속됐다. 테이블 위에는 맥주병이 수북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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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공원법 제정 50주년,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공원 정책
답답하고 우울했던 병신년이 가고 정유년이 밝았다. 대선이 있는 2017년은 새롭고, 힘차고, 국민이 행복하고, 아름답고 건강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시발점이기를 기대해 본다. 2017년은 1967년 3월 3일에 ‘공원법’이 제정된 이후 반세기가 지나 만 50주년이 되는 해로 조경계가 꼭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행복과 건강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 중에는 무엇보다도 공원의 푸르름과 여유로운 공간이 있다. 공원은 휴식과 건강을 제공해 주며 지구 온난화와 같은 기후 변화의 해결 방안이기도 하다. 녹색 복지, 안전, 지역 균형 발전의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수명 연장뿐만 아니라 고지혈증 치료에도 효과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로 공원은 안전과 행복에 필수적 요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 공원은 단순히 도시계획 시설로서의 토지 공간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과 건강한 미래를 담보하는 중요한 녹색 인프라로서 도로, 철도, 항만과 동급의 필수적인 사회 기반 시설이며 새로운 국토 정책의 대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지금 공원의 예방적 녹색 복지에 관한 대비책을 미리 확보하지 않는다면, 녹색 인프라 확보의 실패로 인해 향후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것이다. 공원이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도 보지 못할 것이다. 센트럴 파크의 경우 자산적 가치가 62조 원, 연간 경제적 효과가 1.2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울산대공원은 연간 713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유발한다고 한다.
2011년 국토부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 16개 광역시도의 전체 공원수는 17,311개에 1,103km2로 국토 면적의 11.1%에 달한다. 지역마다 편차가 크지만 1인당 공원 면적은 전국 평균 22m2(실제 생활권에서 체감되는 면적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로, 연간 109회 이용하고 있을 정도로 도시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특히 공원은 저소득층 환경 약자에게는 더욱 필요한 시설이며, 불평등한 환경 복지와 녹색 복지 해소에 필수적인 시설로 인식되고 있다. 일몰제 대상이 되는 미집행 공원은 352km2로 매입비가 60조 원에 달하는데, 실효될 경우 일시에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어 국토의 난개발이 우려되고 있는데도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 않다.
공원 관련 국가 조직으로는 국토부 산하 국토도시실 내의 녹색도시과가 개발제한구역 업무와 함께 도시공원 및 녹지 관련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개발제한구역 업무 다음의 부수적 업무로 ‘공원 및 녹지에 관한 법률’의 개정과 해석이 주요 업무다. 공원법 제정 이래 50년이 경과했음에도 도시공원에 대한 제대로 된 국가 차원의 비전, 중장기계획, 통계도 없다. 국가 차원의 도시공원 예산은 미미할 뿐 공원 용지의 보상이나 공원 조성은 거의 개점 휴업 상태다. 현재 도시공원에 관한 예산은 지자체 부담의 원칙하에 국비 보조를 할 수 있다고는 되어있지만, 국비 지원은 거의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 국토의 11%가 넘는 공원을 관할하는 부서가 모든 공원 업무를 지방에 위임한 채 국가적 정책을 제대로 펴지 못해 왔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공원 분야에 대한 국가적 정책, 관심, 대응 능력,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기재부 등과 같은 조직도 공원 정책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2년 대선에서는 후보들이 조경계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도 했다. 박근혜 후보는 공원녹지 부분에 대해 ‘2020년까지의 공원 일몰제에 따른 도시공원의 조속한 조성’이라는 공약을 걸고 국비 지원을 통한 공원 조성, 생활권 마을림 조성 등 도시공원과 녹색 인프라 확충을 약속했다. 문재인 후보는 토건형 국책 사업의 폐해를 지양하고 지속가능한 생태계 보전을 우선하겠다고 했으며, 국가도시공원에 대해서는 관련 시민 단체에게 공식적으로 적극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당선된 박 후보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낙선한 문 후보는 지킬 수 없었다. 당선자의 공원 관련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음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한 조경계에도 반성의 여지가 있다.
이제 우리는 공원 역사 50년을 거울로 삼아 2017년 대선 후보들이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대한민국 공원 정책의 한 획을 긋는 정책을 약속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전 국민의 공원에 대한 요구가 대단히 높고 공원이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가능하게 하며 회색 인프라에서 녹색 인프라로 패러다임이 바뀜에 따라 공원을 복지와 투자의 개념으로 보아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 다음 사항이 포함될 것을 제안한다.
첫째, 국토부 내에 공원 정책을 전담할 도시공원 담당 부서(예: 공원과) 설치와 부서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조경 전문직의 확보. 둘째, 단·중·장기적 공원 비전 정책의 제시. 여기에는 연차별 공원 정비 계획, 공원 일몰제에 대비한 종합 대책 마련, 공원 지표의 합리화, 지자체의 공원 조성 지원 계획 마련 등이 포함된다. 셋째, 16개 광역시도별 국가도시 공원 조성을 위한 실천 계획 마련. 임기 내 1개 이상의 국가도시공원 조성. 넷째, 각 구상을 실행할 수 있는 법령의 제·개정 및 조경진흥법에 의한 ‘조경진흥센터’의 활성화. 다섯째, 각 사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연차별 공원 예산 확보 가이드라인 설정 및 실천 방안 마련.
대선 후보들에게 공약을 제안할 것만이 아니라 이 공약이 국민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 것이란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당선 후 공약 실행과 이행 정도에 대해 조경계의 의견을 반영시킬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내야 한다.
공원 문제를 행정에만 의존하는 시스템은 한계를 갖는다. 공원에 대해 긴 안목으로 접근해 전문가와 지역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지역의 변화와 함께 만들어가는 공원 미래상을 중요시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공원을 만들어가기 위해 국가, 지방 행정, 시민, 기업이 참여해 함께 만들어간다는 의식이 중요하다. ‘공원문화운동’에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조경계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고 노력해야 한다.
김승환은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명예교수로, 수영강변공원 고속도로 지하차도화 운동, 온천천의 자연형 하천화 운동, 낙동강하구 보전 활동 등 지역 하천과 공원 분야에서 실천적 시민운동을 주도해왔다. 1999년도에 100만평문화공원운동을 제창했고 그 실현을 위해 국가도시공원법 제정, 100만 명 서명운동에 앞장서 왔다. 100만평 공원 구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