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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광교의 호수공원에서
원주민도 아니고 현재의 신도시 주민도 아니고 자주 가볼 기회도 없지만 나는 광교라는 두 글자에 이상하리만치 친근감을 느낀다. 누군가 광교신도시가 참 살기 좋다는 평을 하면 이유 없이 뿌듯하다. 호수공원에서 주말 오후를 보내기 위해 일부러 광교를 자주 찾는다는 지인의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설계한 곳도 아닌데 괜히 우쭐한 마음이 든다. 다른 곳의 아파트 값은 계속 추락하지만 그래도 광교만은 오른다는 부동산 기사를 읽으면 마치 내 재산이 늘어나는 양 즐겁다. 사실 그럴 만한 특별한 인연은 없다. 근 삼십 년 전쯤에 광교호수공원의 전신인 원 천유원지로 몇 차례 MT를 가서 칠흑 같은 밤하늘, 그 침묵의 밤하늘보다 더 짙은 저수지 수면의 고요함을 깨며 부어라 마셔라 디오니소스를 친구 삼았던 게 전부일 뿐.
2008년, 까마득히 잊고 있던 원천저수지의 추억이 되살아난 적이 있다. 경기도시공사의 의뢰로 같은 과의 원로 교수님을 도와 ‘광교신도시 호수공원 국제설계공모’를 진행할 때였다. 이십 년 만에 다시 찾은 그곳의 풍경을 묘사하기엔 상전벽해(桑田碧海)만한 말이 없었다. 신도시의 바탕이 될 부지 토목 공사가 이미 끝나 어디가 어디인지 알아볼 길은 없었지만, 그래도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 무상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저수지만은 그대로였기 때문일까. 공모전의 전문위원을 맡은 그 교수님과 여러 차례 현장을 드나들다보니 대화의 소재가 떨어졌다. 멋쩍은 정적을 깰 겸 치기어린 MT 무용담 몇 가지를 들려드렸더니 교수님은 갑자기 짧은 한마디 추억담을 꺼내놓으셨다. “와이프랑 처음 데이트한 곳이 여긴데.” 왜 하필 이 시골 저수지를 산책하셨는지 그 사연은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의 표정과 달리 교수님의 입가엔 로맨틱한 미소가 살며시 번지고 있었다. 그 후로는 원천유원지나 광교호수공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한 쌍의 남녀가 수변을 행복하게 걷는 영상이 떠오른다. 내가 데이트를 한 것도 아닌데, 매번 남자 주인공은 나다.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생기는 게 아닌가 보다. 아주 짧은 시간이더라도, 아무리 이방인이더라도, 사람과 어느 장소 사이에는 인연이 싹튼다.
이번 달의 광교신도시 특집은 꽤 오래 전에 기획한 아이템이다. 몇 달 전 편집회의 때는 이번에야말로 발로 뛰며 생생하고 입체적인 취재를 바탕으로 지면을 꾸려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플랜 B’ 카드를 뽑는다. 계획은 변화에 적응할 때 그 가치를 발휘하는 법, 유연한 계획이 좋은 계획이다. 초여름부터 지금까지 환경과조경은 유례없는 비상이다. 발행인과 편집장부터 편집부, 디자인팀, 마케팅팀 모두가 ‘2016 서울정원박람회’ 기획과 준비에 총력을 쏟아 붓고 있다. 광교 기획을 조금은 축소할 수밖에 없는 형편.
박람회 프로젝트로부터 ‘스스로’ 면제된 나는 그래도 한번은 현장을 가야겠다는 의무감에 침대만을 친구 삼는 일요일 오후의 소중한 루틴을 깨고 잠시 광교신도시를 걷기로 했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는 새 도시의 낯선 풍경이지만, 원천저수지는 그대로다. 세련된 겉옷으로 갈아입긴 했지만, 깊고 짙은 수면의 고요함과 넉넉함은, 그곳을 거니는 연인들의 웃음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여느 신도시와 달리 광교에는 생동과 활력이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 데에는 원천저수지의 잠재력을 잘 살린 호수공원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치열했던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원천저수지에 새 옷을 입힌 신화컨설팅의 최원만소장과 동료 조경가들은 늘 자랑스러울 것 같다.
짧지만 즐거웠던 광교 산책에서 돌아와 책장 한구석에 처박아놓았던 8년 전 공모전의 설계 설명서들을 다시 펼쳐봤다. 신화컨설팅의 당선작뿐만 아니라 쟁쟁한 여러 국내외 조경가들의 다양한 디자인 해법을 꼼꼼히 다시 살펴봤다. 그때는 동시대 조경의 압축 파일이라 할 만한 그들의 설계 태도나 접근 방식에만 눈이 갔는데 이제야 원천저수지라는 조건 자체가, 장소의 힘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공모전에 대한 비평문에 나는 어깨에 힘 잔뜩 주고 이런 결론을 적은 적이 있다. “공원에 대한 도시인의 욕망과 수동적…인 공원 사이에 존재하는 등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것은 빠져나오기 힘든 공원의 굴레일지도 모른다. 라빌레트 공원을 기점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새로운 방식으로 공원을 설계하는 접근이 여러 프로젝트에서 실험되어 왔다. 그것은 설계 자체의 변신을 위한 기획이었다기보다는 ‘다른 공원’을 향한 대안적 시도와 노력이었다. 달라지기 위해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첫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지만, 광교에서 볼 수 있듯, … 다른 공원의 가치를 실천적으로 제시하는 두 번째 발걸음은 아직 힘들기만 하다.” 취소다. 다시 출판할 기회가 있다면 꼭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광교호수공원에는 ‘다른 공원’이 있었다.
중요한 광고 하나 덧붙인다. “정원을 만나면 일상이 자연입니다!” 10월 3일부터 9일까지 월드컵공원 안에 있는 평화의공원에서 ‘2016 서울정원박람회’가 열린다. 월간 환경과조경이 서울시, 환경조경나눔연구원과 함께 정성껏 준비한 이번 박람회에는 작가정원과 주제정원뿐만 아니라 팝업가든 콘테스트, 해설이 있는 정원 투어, 당신의 정원을 디자인해드립니다, 정원에 차린 식탁 등 다채롭고 알찬 프로그램이 풍성하게 마련된다. 많이 오셔서 ‘다른 정원’들을 경험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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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식물의 르네상스
#93
식물원, 식물 수집, 식물 사냥
조각, 조형물, 분수가 아무리 근사하고 알레고리적 의미가 흥미롭다고 하더라도 식물과의 조화 속에서 비로소 빛이 난다. 르네상스 정원들을 보면 녹색 기하학이 지배하여 회양목, 주목, 사이프러스 외에는 별다른 식물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녹색 기하학의 정원’이라고 정의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르네상스 정원들은 조성 당시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두 후세에 복원된 것이며 고증을 통해 ‘이러했을 것이다’라고 유추하여 최대한 실제와 근접하게 재구성한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구조적 기본 틀과 개념을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실제로 자라고 있었을 식물을 재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높은 유지·관리비 때문에 포기하고 녹색 테두리를 두른 반듯한 기하학 속에 모래를 깔고 만다. 그러나 당시 정원을 직접 목격한 여러 증인에 따르면 수천 가지의 식물이 자라 풍성하고 화려한 것이 마치 낙원과 같았다고 한다. 물론 과장은 있겠으나 수많은 식물이 심겼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르네상스 정원이 완성될 즈음에는 휴머니스트들이 고문서 수집과 조각상 수집에 이어 식물 수집에 열을 올렸다. 그 많은 식물을 수집하여 정원이 아니면 어디에 심었겠는가. 다만 심는 방법이 지금과 많이 달랐다. 식물을 서로 자연스럽게 섞어 심은 것이 아니라 유형별로 나누어 따로따로 심는 것이 불변의 원칙이었다. 마치 오케스트라 구성과 같았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악기 종류에 따라 음악가들을 배치했듯, 르네상스 정원에는 교목, 관목, 수벽, 유실수, 초본 식물들의 위치가 따로 지정되어 있었다. 엄격해 보이지만 이들이 철따라 서로 어우러져 내는 수많은 화음은 풍성하고 화려했고, 때로는 웅장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1호(2016년 9월호) 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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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랜드스케이프, 더 비기닝
올해 어느 때인가부터 일 때문에 속이 쓰리면 인류사 책을 짬짬이 읽었다.저마다 두꺼운 책 중 앞부분,정원과 조경의 시작이 궁금해서 시간을 거슬러갔다.복잡다단한 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대략1만 년 전 농업 혁명이 일어나던 때다.여기서 실용적 가치와 심미적 가치를 따져서 농업과 정원을 엄밀히 구별한다는 것은 꽤 난감한 주제다.그보다는 우리 인류가 나름의 목적과 의도를 지니고 자연을 가꾸는 행위를 시작했다는 데 초점이 있다.
사들인 여러 권의 책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은 것은 올해 인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순위에 상당 기간 올라 있던『사피엔스』.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인 저자 유발 하라리는1만 년 전 지구에서 벌어진 혁명에 대해 다소 도발적인 견해를 내놓는다.알고 보면 농업 혁명은‘역사상 최대의 사기’라는 것이다.몇몇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밝혀졌듯이 초기 농업인의 영양 섭취와 건강 상태는 이전 시기 수렵 채집인에 비해 상당히 열악했다.농경을 시작한 결과 정착 생활을 하고 발아 단계의 도시와 문명을 창조했지만,어찌되었든 농지를 돌보기 위해서 전에 없던
가혹한 노동이 줄기차게 필요했다.인류라는 종의 관점에서는 개체수가 급격하게 늘었으니 진화의 법칙에서는 성공한 셈이지만,인간 개체의 입장에서는 처절하게 실패한 혁명이었다.인류가 거대한 진화의 법칙에 속은 것이다.더 매몰차게는 밀이나 쌀을 비롯한 일부 곡물의 성공적인 생존 전략에 인류가 선택 당했을 따름이다(고정희의 책 제목『식물,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는 이런 의미에서 더욱 절묘하다).
150억 년 전 물질과 에너지가 모인 아주 작은 점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대폭발하면서 생겨나 지금도 끊임없이 팽창하는 우주.언젠가는 다시 수축하면서 원래 블랙홀로 돌아가기까지 우주론과 물리학으로 설명하는 시간과 공간.그 망망한 흐름 속에서 잠깐 미미하게 살다가 다시 먼지로 돌아가는 셈이니 인간의 비루한 삶이란 애초부터 그랬던 것이다.또 지구에 터를 잡은 생명체라면 어쩔 도리 없이 도도한 진화의 법칙에 매일 수밖에 없다.법칙으로 환원되는 세계는 치밀하고 지루하며 끔찍하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작은 출구 하나를 열어 두었다.터키에 있는 괴베클리 테페는 약1만2천 년 전의 유적이다. 20여 곳에 달하는 기념물을 이루는 돌기둥은 총200개 이상이고,가장 큰 것은 무려 높이5.5m,무게7톤이었다.또 미처 완성하지 못한50톤의 돌기둥이 근처 채석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놀라운 점은 이 유적의 건설 시기가 농경의 시작보다 앞선다는 사실이다.또 이 유적에서30km떨어진 카라사다그 언덕은 밀의 변종이 최초로 생겨난 발상지로 밝혀졌다.그렇다면 수렵과 채집을 겸하던 모종의 집단이 어쩌다가 먼저 공동체를 이루고,종교를 비롯한 자신의 문화와 신념 체계를 만들었으며,이를 배경으로 아직까지 목적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기념물을 지었을 가능성이 있다.이렇게 예상 밖으로 농업 혁명은 실용적 목적보다는 이런 사회 문화적 동력에 의해서 생겨난 것일 수 있다.이렇게 본다면 오로지 과학의 법칙으로만 인간 환경을 설명할 수 없다.초기 인류사를 통해서 짐작하는 정원과 조경의 탄생은 대략 이런 풍경이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41호(2016년9월호)수록본 일부
허대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졸업 후1999년부터18년째 조경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으며,느슨한 설계연대를 지향하는 스튜디오 테라(STUDIOS terra)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7년 전부터는 개인 주택정원,어린이 집과 학교의 외부 공간,놀이터,가로 공원,호텔 조경설계 및 감리 등 하나하나 성격이 다른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수행하고 있다.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나중에 그 곳에 머무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땅에 뿌리를 박고 실천하는 조경 설계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철새협동鳥합』을 여럿이 함께 쓰고,제프 마노의『빌딩블로그』를 함께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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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제학] 경관, 경제 활동의 배경에서 대상으로
경관의 경제학은 가능한가?경관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이 낳은 수많은 것들로 이루어진 경관은 신이, 또는 대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무상 공여물이다. 문화 경관, 나아가 도시 경관조차 그러하다. 사람의 손이 닿아 형성된 도시도 그것을 조망하는 입장에서 보면 마치 산이나 바다와 같이 누가 보여주려고 일부러 만든 적이 없는(만들 수도 없는) 광활한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도시는 사람이 만들었지만, 도시 경관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이러한 경관이 경제 활동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경관을 경제 활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정당할까? 애덤 스미스(1723~1790)를 출발점으로 본다면 경제학의 역사는 참으로 짧다. 그러니 그것이 다루어본 대상도 매우 한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 충만한 경제학자라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경관에 대해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여기서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이란 경관이 거래되어 가격이 형성되고, 가격에 의해 적정한 수요량과 공급량이 결정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경제학적 관점에서 경관을 고찰하기 전에 경제학자나 조경학자가 경관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면 그 작업의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자는 자연환경이 인간의 경제 활동에 세 가지 측면에서 유용하다고 본다. 자연환경은 경제 활동을 위한 자원을 제공하고(resource supplier), 경제 활동의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처리하고(waste assimilator), 자연 또는 경관 그 자체로 쾌감을 준다(direct source of utility). 그런데 이 중 첫 번째 유용성을 다루는 분야는 자원경제학, 두 번째 유용성을 다루는 분야는 환경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상당한 연구가 진행되어 있으나, 세 번째 유용성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경제학의 분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이 아닌 도시의 경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에 비해 조경학자는 경관 분석에 대한 접근 방법으로서 생태학적 접근 방법, 미학적 접근 방법, 철학적 접근 방법과 나란히 경제학적 접근 방법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자연환경의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어 경관 시장의 메커니즘과 같은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경관의 경제학이 이렇게 전문가들에게 홀대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경관의 가치가 낮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경관이라는 대상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다루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 환경과조경 341호(2016년 9월호) 수록본 일부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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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필을 놓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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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의 멋진 점은 제목과는 다르게 역설적으로 소설 속에서 불멸이 배제된다는 것이다. 소설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첫 번째 주인공의 얘기가 한참 전개되고 있을 때 주인공의 주변을 스쳐 지나간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배경 인물이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며, 소설은 그 사람의 관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세 개의 연작 중편은 여러모로 쿤데라를 연상시킨다. 한강이 인정하건 아니건 ‘몽고반점’과 ‘나무불꽃’으로 이어지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쿤데라에게 바치는 일종의 오마주처럼 보인다. 물론 쿤데라조차도 에리히 레마르크의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한 수 배운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그들은 하나 같이 인생의 본질은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며, 또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불멸』에서 우리로 하여금 무한한 애정을 갖게 만든 여자 주인공은 소설 중간에 (자살을 시도하는 어떤 멍청이 때문에) 뜬금없이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쿤데라의 다른 소설에 붙여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제목은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에 붙였어야 했다. 또 다른 주인공이며 여자 주인공의 아버지이기도 한 남자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과 관련된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자신의 물건, 자신에 대한 기록을 포함하여 자신을 기억하게 할 만한 모든 것들을 모조리 없애기 시작한다. 자신이 죽었을 때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다. 쿤데라는 이 주인공을 통해 어차피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니 그럴 바엔 아예 기억되지 않는 것도 가치가 있다는 점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건 우리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지독하고 잔인한 페이소스기도 하다. 하지만 이 터무니없는 페이소스가 이렇게 마음에 와 닿으니 참 터무니없는 일이다.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몇천 년을 버텨왔으니 앞으로도 영원할까. 앞으로 잘하면 몇백 년, 더 잘하면 몇천 년 갈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
* 환경과조경 341호(2016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진양교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조경학과 및 도시지역계획학과에서 공부했으며, 강원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1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2년부터 CA조경기술사사무소를 열고 실무의 최전방을 절절하게 체험하고 있다. 2010년 봄부터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의 전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주요 설계 작품으로 하늘공원, 한강 반포공원 등이 있으며, 저서로 『기억과 상징으로의 여행』, 『건축의 바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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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출판기피증
짐작하건대 『환경과조경』에서 독자 여러분의 시간을 가장 덜 빼앗는 꼭지는 ‘워크 & 크리티시즘work & criticism’, 특히 외국 작품이 실린 지면일 것 같다.
“그냥 사진발 아닐까?”
“페이스북 링크에서 두 달 전에 이미 본 건데?”
“설계비 제대로 받을 수 있고 공사비 넉넉해서 좋은 재료 쓸 수 있으면, 설계자가 합리적인 조건으로 감리까지 할 수 있으면, 우리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뭔가 다르고, 근사하네! 다음에 시간 날 때 제대로 읽어보자.”
적지 않은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작품 지면을 빛의 속도로 넘기실 것이다. 작품을 설명하는 텍스트를 정독하는 독자는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환경과조경』 리뉴얼을 기획하던 3년 전 가을, 가장 큰 혁신이 필요한 지면은 작품 꼭지라고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았다. 사진의 질을 높인다, 해외와 국내 작품의 비율을 잘 조율하는 건 물론이고 국내 작품을 적극적으로 발굴한다, 사진만 나열하는 화보식 구성을 극복하고 가급적이면 비평을, 아니면 설계 노트나 인터뷰라도 함께 싣는다는 큰 편집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해외 작품의 비율을 낮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조경 전문지가 국외의 최신 경향이나 디자인 쟁점에 지면을 할애하는 게 잘못된 방향은 아니다. 다양한 경로의 취재와 조사, 여러 단계의 검토 회의를 통해 양질의 외국 작품을 선정하려고 애쓰고 있다. 실은 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잘 알려진 유수의 세계적 사무소든 가진 거라곤 의욕밖에 없는 동구권의 신생 사무소든 대체로 해외의 조경설계사무소에서는 반응이 아주 빨리 오기 때문이다. 게재 의사를 타진하면 대부분의 경우 잘 정리된 텍스트, 저작권이 해결된 사진, 출판에 최적화된 도면과 그래픽 등이 한 묶음으로 며칠 안에 바로 날아온다. 작은 사무실이더라도 홍보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를 따로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디자인이 크게 바뀌었어요. 초기 콘셉트와 완전히 달라져서 우리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재하도 업체가 시공을 한 터라 완성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감리 계약을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니 설계 이후의 과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실정이에요. 우리가 설계한 거라고 도저히 보기 어렵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점점 터무니없어져서 결국 산으로 갔어요. 말도 하기 싫어요.”
“이제 겨우 완공해서 식재가 아직 볼품없을 텐데요.”
“준공 직후라 지주목이 나무보다 더 주인공이에요.”
“관리가 안 되어서 엉망이에요.”
홍길동도 아니고 자기 작품을 자기 작품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 근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국내설계사무소에 연락을 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하소연이다. 섭외 단계부터 녹록지 않다. 어렵게 섭외가 되더라도 게재까지 걸리는 시간이 해외 작품보다 서너 배는 더 길다. 작품 구하기부터 지난하다 보니 비평 의뢰는 말할 것도 없다. 조경설계사무소가 넘쳐나는 이 땅에 작업의 양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예전처럼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대부분의 조경가가 작품 게재를 꺼려하거나 기피하는 현상. 우선 시스템 상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설계와 감리, 설계와 시공이 호흡을 함께 할 수 없는 제도적 여건 속에서 설계자의 의도대로 작품이 완성되기 어렵다. 잦은 설계 변경과 클라이언트의 비합리적 요구를 겪고 어렵게 실현해낸 작업이지만 만족스럽기 쉽지 않다. 적어도 수천 명의 손에 들릴 잡지를 통해 공개하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물론 겸양의 미덕이라는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잡지 편집자로서의 편향된 시각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조경가들에게 출판에 대한 마인드가 조금 부족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매체를 통해 작품을 출판한다는 것은 현재의 산물과 그 수준을 기록하고 공론의 영역에 소통시키는 과정의 첫걸음이다. 이런 거창한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출판은 홍보와 마케팅을 위한 아주 현실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출판에 신경 쓰고 정성 들이는 게 오히려 경제적이다. 열악한 설계 환경, 미비한 제도, 침체된 경기에 대처하기도 벅찬데 작품은 대체 뭐고 출판이 무슨 소용이냐는 반론이 벌써부터 들려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신세 한탄, 소모적이다. 불안감과 피로감을 확대 재생산할 뿐이다. SNS에 작품 이미지를 올리는 것처럼 즐겁게 『환경과조경』의 문을 두드려주시면 좋겠다. 『환경과조경』의 작품 지면은 일생일대의 역작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동시대의 실험과 성과를 함께 나누고 이야기하는 생산적 공간을 지향한다.
모처럼 이번 달에는 오피스박김과 이화원의 근작 여섯 개를 담는다. 지난 10년간 자신만의 설계 문법을 실험하고 구축해 온 그들의 작품에 독자 여러분의 시선이 오래 머무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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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술과 공원
K의 남편 L에게 감사한다. 그가 밤낮으로 도면을 그리며 저녁 없는 삶을 보내는 바람에, 나는 L 대신 창경궁의 밤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고궁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싶던 내 예상과 달리 창경궁 야간특별관람은 인기가 좋아서 난 번번이 예매에 실패했다. 예매에 성공한 부지런한 K는 어느 초여름, 나를 데리고 홍화문에 들어섰다. 제한된 인원만 예약을 받아 운영하니 붐비지는 않았다. 저녁 바람은 시원했고 길을 따라 세워진 미색 조명은 땅거미가 지는 고궁에 은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연인들은 명정전을 배경으로 서로를 찍어주기 바빴고, 녹색과 푸른색 조명으로 빛나는 통명전에서는 고궁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여자 둘이서, 명정전을 지나 한창 공연 중인 통명전을 흘깃 보고 춘당지를 따라 걷다가 불 꺼진 대온실을 보고 돌아오니 산책은 금방 끝이 났다. 생각보다 심심한, 그런 풍경이었다. 무얼 기대했던 걸까. 다시 홍화문을 빠져나온 K와 나는 맥주나 한잔 하자며 원서동까지 걸었지만, 9시면 문 닫을 준비를 하는 조용한 북촌 동네에서 그날의 음주는 불발되었다.
사실 창경궁의 야간 개방 역사는 짧지 않다. 그렇다고 왕조 시대에 지엄한 궁궐을 개방했을 리 만무하니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조선이 망국의 길로 들어서고, 일제가 창경궁을 유원지 창경원으로 만들면서, 원내에 ‘사쿠라’를 대량으로 심었다. 매년 늘려 심은 벚나무가 자리를 잡아가자, 1924년부터 창경원에서 밤벚꽃놀이, 야앵夜櫻이 시작되었다. 봄이 되면 흰 꽃이 구름처럼 피고 지며 밤을 밝히는 풍경을 보기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창경원 야앵은 1945년 광복 때까지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매년 열렸다.
1920~30년대 창경원의 밤벚꽃놀이는 기자들의 단골 취재거리였다. 이번 휴일에는 얼마나 많은 입장자들이 몰렸는지,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어떤 새로운 조명 시설을 갖추었는지, 연예장에서는 또 어떤 공연이 펼쳐지는지, 그리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일들에 대한 개탄까지. 당시 창경원의 봄밤은 무질서와 향락, 일탈의 도가니였다.
야앵의 첫날밤. 20일 밤 7시 반 대경성의 지붕 밑에는 춘흥에 취한 무리들이 수백수천으로 떼를 지어 창경원으로 창경원으로! 꽃구경하러 밀려든다. 창경원 쪽 하늘을 바라보면 큰 불이 난 듯이 환한 화광이 하늘을 뻗찌르고 그 속에는 검은 하늘 산허리에 안개가 끼인 듯 밤 벚꽃은 흰데 찬란한 오색등이 열을 지어 꽃 속에 꽃을 피우고 흥에 겨워 미친 듯한 사람 떼는 물결을 이루고 있다. … 이 나무 밑에 춘흥에 취한 떼의 젊은이들이 잔디 위에 둘러 앉아 잔을 돌리는데 삐루는 거품을 내며 넘쳐흐른다. 요란스럽게 울려오는 축음기 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손뼉 치는 사람 엉덩춤추는 사람, 가고 오는 사람보고 웃는 사람까지 모다 취하여 버렸다.1
신문과 잡지 기자들은 난장판이 되어가는 창경원의 밤벚꽃놀이에 혀를 끌끌 차면서도 꾸역꾸역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대중잡지인 『별건곤』의 한 여기자는 퇴근 무렵 ‘야앵 첫날밤에 창경원에 가보라’는 편집국장의 명령을 받았다. “그저 구경을 하러 가라는 말은 아니겠고 무슨 기사를 얻어 오라는 말이겠는데 창경원 야앵 기사야 그동안 신문에서 잡지에서 신물이 나도록 우려먹지 아니했나? 그러니 그대로 평범한 꽃 이야기만 늘어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다지 신기한 것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2 80여 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퇴근 무렵 잡지사 풍경은 별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광복 이후에도 그런 창경궁의 밤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창경원의 밤벚꽃놀이는 1958년 재개되었고, 창경원이 다시 창경궁으로 복원되는 198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다.
해마다 벚꽃이 망울질 무렵인 4월 15일쯤부터 시작해서 약 한 달간 계속되는 창경원의 밤벚꽃놀이는 이제 40여년의 역사를 가진 시민축제라기보다는 온 백성의 축제인지도 모른다. 매년 높아가는 인기 속에 맞는 밤벚꽃놀이지만 “오색등에 조명된 벚꽃 아래서 조용한 봄밤의 정서에 젖어 본다”는 낭만은 요란한 고고 리듬이나 니나노 가락에 흥청대는 소란 속에 밀려나고 있고 놀랍게 번창하는 갖가지 바가지 상혼과 폭력 풍기 사범 등으로 한때나마 서민의 휴식처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마음 아픈 일. … 요새는 10대 20대의 청소년들이 포터블 전축을 간편히 들고 들어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고고춤의 일대 향연을 벌이고 있으니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3
광복 이후에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서울 시민들에게 창경원은 대중적인 공원과 다름없었다. 벚나무 아래서 니나노 가락을 흥얼거리는 어르신들에게나, 음악을 틀고 고고춤을 추는 청소년들에게나.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난 지 30여 년이 넘었는 데도 일제가 만들어 놓은 유원지에서 식민지 시대와 똑 닮은 모습으로 봄밤을 즐기는 모습을 떠올리면 서글프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그 창경원의 봄밤이 세파에 시달리는 서울 시민들에게 해방구 역할을 하지 않았나도 싶다.
사람들의 관성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안’이 입법 예고되었다고 한다. 도시공원이나 어린이 놀이터, 그 밖의 서울시장이 지정한 장소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는 일명 ‘음주청정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한강공원이나 얼마 전 개장해 인기를 누리는 경의선숲길도 역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버린 쓰레기나 밤이 되도 멈추지 않는 소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니 공원에서의 음주가무의 역사는 길고도 끈질기다.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공원이 우리의 해방구가 되고 있다는 의미인지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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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L의 운동화
『L의 운동화』의 주인공은 실력을 인정받은 예술 작품 복원 전문가다. 이야기는 어느 날 그에게 운동화 복원 의뢰가 들어오며 시작된다. 복원함의 유리창 너머로 마주한 운동화의 고무 밑창은 거의 다 떨어져 나갔고, 손끝으로 건드리면 당장에라도 내려앉아 먼지가 되어버릴 것처럼 낡았다. 심지어 왼쪽 한 짝은 어디로 갔는지, 보관함에는 오른쪽 운동화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런 낡은 운동화가 소중히 보관되고 있는 이유는, 운동화의 주인이 ‘L’이기 때문이다. 소설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L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청년 이한열이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여했던 그는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았고, 현장에는 최루탄 냄새가 밴 오른쪽 운동화만이 남았다. 작년은 이한열의 28주기였고, 미술품 복원 전문가인 김겸 박사가 3개월에 걸쳐 운동화의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책의 저자인 김숨은 김겸 박사의 연구소에서 복원 작업을 지켜보았고, 그 과정을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해외 작품을 소개할 때면, 번역에 애를 먹을 때가 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1를 영어로 완벽하게 옮길 수 없듯이, 다른 나라의 언어에도 한국어로 대체할 수 없는 단어나 문장들이 있다. 결국 문장의 맥락이나 작품의 사진을 보고 유추해 적절한 단어를 고르게 된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했던 일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과연 내가 고른 단어가 맞는 것일까.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가치관이 정보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간에 쫓겨 섣부르게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L의 운동화』가 느릿하게 그려내는 운동화 복원 과정이 내겐 그다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공의 끈기와 깊이가 부러웠다.
소설은 총 271페이지인데, 그중 본격적인 복원 작업이 담긴 지면은 118페이지뿐이다. 전체 분량의 채 반도 되지 않는다. 그 나머지 페이지는 복원 작업에 들어가기 전 끊임없이 계속된 주인공의 고민과 생각들이 차지했다. 주인공은 자신이 운동화복원 작업의 적임자임을 알지만 의뢰를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한다. 한참 후에야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한 뒤에는, L에 의해 운동화가 어떻게 변형되었을까 생각하기 시작한다. “L에게 척추 측만증이 있었다면 어깨가 평형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었을 것이고, 기운 쪽 발 운동화 밑창이 그렇지 않은 쪽 운동화 밑창보다 빠르게 닳았을 것이다”2 이어 그는 L이 걸을 때 왼발에 더 힘을 주었을지, 오른발에 힘을 더 주었을지 또 보폭은 어땠을지 생각한다. 그 이유는 “습관뿐 아니라 성격과 기질이 그
사람의 옷과 신발과 가방 같은 물건에 고스란히 기록된다는 것”3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L의 운동화는 단순한 신발 하나가 아니다. 과거 L의 친구였던 이는 편지로 “제 친구 M도, J도, L도, K도 R도 운동화를 신고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L의 운동화는 저의 L의 운동화는 … ‘우리 모두’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4라고 말한다. 운동화에는 L의 모습이 담겨있으
며,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 당시 일어났던 사건을 넘어 L과 함께했던 모든 이들을 대표한다. 주인공이 L의 운동화를 소중하게 다루는 만큼, 김숨 역시 L을 조심스럽게 그려나간다. L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서 어렴풋이 서술되며, 담담한 서체는 독자에게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복원 작업을 상세하고 느리게 묘사하며 그 사이사이 주인공의 고민을 숨이 막히도록 빽빽하게 늘어놓는다. 그 과정과 고민들을 통해 L의 운동화가 지닌 무거움
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최소한의 복원을 할지, 레플리카 방식의 복원은 어떨지, 운동화 끈을 풀지 말지 고민하는 주인공을 보니 자연스럽게 잡지 편집 작업이 연상됐다. 작품에는 작가의 가치관이 담기기 마련이고, 작품을 설명하는 사진은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해 의도를 드러낸다. 활기찬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노출 시간을 늘려 사람들이 움직이며 남기는 궤적을 찍기고 하고, 밑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를 사용해 수목이나 구조물의 웅장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긴 수평선이 주는 안정감은 바닷가의 평화로운 풍경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이런 의도를 잘 파악해야 작품을 잘 소개할 수 있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주인공은 운동화의 고무 밑창을 복원하기 위해 에폭시수지를 주입한 후, 이틀 내내 L의 운동화를 바라보기만 한다. 밑창이 딱딱하게 변하기를 기다리며 그저 운동화가 담긴 플라스틱 상자의 온도와 습도를 확인할 뿐이다. 잡지의 마감 기간, 교정부호 하나 없이 깨끗한 교정지를 눈앞에 둔 내 모습이 떠오른다. 꼼꼼히 살폈는데도 오타나 비문을 찾을 수 없을 때, 불안함에 원고를 더 샅샅이 뒤지게 된다. 한참을 들여다보면 모든 문장이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타는 꼭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툭 튀어나와 나를 민망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뭔가를 할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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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로테르담 건축 비엔날레, 대안 경제를 논하다
2016 로테르담 건축 비엔날레 ‘넥스트 이코노미’
세계적인 현대 건축물로 유명한 도시 로테르담에서는 2003년부터 로테르담 건축 비엔날레IABR(International Architecture Biennale Rotterdam)가 개최되고 있다. 올해의 주제는 ‘넥스트 이코노미Next Economy’로, 로테르담 항구 산업 지구인 카텐드레흐트Katendrecht에서 4월 23일부터 7월 10일까지 열렸다. 전 지구적으로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각 도시마다 분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건축 비엔날레가 제안하는 ‘다음번 경제’는 무엇인가? 다가올 미래 경제에 대한 건축적 비전과 가능성을 로테르담 건축비엔날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로테르담, 폐허에서 대안적 도시 모델로
세계적인 현대 건축물과 도시 환경의 혁신적 모델로 손꼽히는 도시 로테르담. 이 도시는 어떻게 현대 건축의 실험적 무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네덜란드의 대표적 항구도시로 유서 깊은 건축물이 가득했던 로테르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도시전체가 파괴된 비극적 역사가 있다. 전후 폐허가 된 도시에서 시작된 로테르담의 건축적 실험은 ‘살 수 있는 도시’로 재건해야만 했던 도시계획적 관점에 의한다. 2003년부터 개최된 로테르담 건축 비엔날레는 건축의 역할을 건축 미학에서 벗어나 도시 공간과 도시 환경 안에서 모색해 왔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건축 행사다 보니 IABR의 건축적 제안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IABR가 6회에 걸쳐 탐색해온 주제는 2003년 모빌리티Mobility, 2005년 홍수The Flood, 2007년 권력Power, 2009년 오픈 시티Open City, 2012년 도시 만들기Making City, 2014년 자연에 의한 도시Urban by Nature 등으로 심상치 않다. 매해 정치, 사회, 경제적 관계에서 도시 공간, 도시 환경, 도시계획을 분석하고, 이로부터 모색 가능한 건축의 역할을 현실 사회에 끊임없이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을 통해 도시적 삶을 재건한 지극히 로테르담적인 도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IABR이 접근하는 도시 경제란?
특히 지난 2014년 ‘자연에 의한 도시’에서 IABR은 오늘날 도시 개발의 환경 파괴를 염려하며 환경, 자원, 에너지에 주목한 건축적 방안을 논의했다. 이는 마치 올해의 주제 ‘넥스트 이코노미’와 상반된 주제처럼 보일 수 있다. 도시 경제란 최근 전 세계 도시마다 내세우는 ‘창조도시론’이 추구하는 경제적 효과와 관련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IABR에서 이러한 개발 지향적 도시 제안을 구상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다음번 경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건축 비엔날레의 목적은 자본화된 도시 발전을 비판하고, 도시에서 지속가능한 다른 경제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접근은 지난 회 ‘자연에 의한 도시’의 연장선상에서 심화된 것이다. 올해 IABR은 지난 비엔날레에서 탐색했던 자연과 공생하는 도시적 삶, 전 지구적으로 개선해야 할 대안 에너지 등에 대한 논제로부터 대안 경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건축은 발생부터 자본에 민감한 분야다. 도시 발전, 경제 성장과 뗄 수 없는 분야이기에 건축이 ‘경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자기비판적인 모순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IABR의 대안 경제적 관점은 과감하고 대담하다. 올해의 비엔날레는 오늘날 무차별적인 도시 성장이 초래한 도시 문제와 불균형에 대한 비판적 자기성찰부터 시작한다. 글로벌 도시들이 직면한 도시 성장의 폐해로부터 벗어날 어떠한 대안적 경제를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전시의 시작, ‘첨단도시론’에 대한 비판
“테크놀로지는 답이다. 그런데 질문이 무엇이었나”(Cedric Price, 1966) 본격적으로 전시장에 진입하기 전 벽면에 쓰인 이 글귀는 오늘날 첨단 기술 사회에 대한 비평적 견해를 전한다. 글귀가 적힌 벽면 앞에서 관객들은 3D 안경을 쓰고 미래 도시를 탐험하게 되는데, 가상현실은 놀라운 기술적 재현으로 현재를 투영할 뿐이다. 첨단 기술에 갇힌 사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신체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스마트 폰마냥 첨단 기술은 현재의 시간 속에 있다. 테크놀로지가 선도할 줄 알았던 미래 도시에 대한 전망은 기술을 사용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불투명해진 모습이다. 첨단 기술을 몸에 착용한 우리는 여전히 어떠한 미래가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다. 점점 더 확실해지는 것은 도시 성장이 초래한 불평등 문제와 전 지구적인 기후 변화, 이민자와 난민 문제, 슬럼 등 도시 문제의 증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비엔날레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도시 성장에서 소외된 지역과 도시 개발에서 추방된 로컬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건축 디자인을 통해 지지하고 경제적으로도 지속가능한 모델을 제안하는 것이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도시 관련 비평을 쓰고 있다.‘신지도제작자’(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2014) 등 현대 미술과 도시 연구를 매개한전시 기획을 해왔으며, 도시 개입 프로젝트 ‘마이크로시티랩’(2016)을 선보일 예정이다.2016년 난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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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트립 투 잉글랜드
여행의 일기
6월 20일
영국 여행을 며칠 앞두고 작년에 개봉했던 ‘트립 투 잉글랜드’를 다시 봤다. 두 남자가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여행하는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같은 감독의 이전 개봉작인 ‘트립 투 이탈리아’에 비해 덜 재미있다고 느꼈다. 영화는 고층 아파트의 통유리로 보이는 런던 시내를 스케치하며 시작한다. 배우인 스티브(스티브 쿠건 분)가 창가에서 친구 롭(롭 브라이든 분)에게 전화한다. 잡지사 청탁으로 가게 된 유명 레스토랑 탐방 여행에 함께 갈 수 있냐고 묻는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단순한 형식의 영화다. 사륜 자동차로 이동하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잔다. 그리고 수다를 떤다. 유명 셰프의 음식이 등장하지만 정작 그들은 음식에 대해서는 별로 대화하지 않는다. 누가 더 성대모사를 실감나게 하는지 티격태격하면서 가족, 죽음, 미래와 같은 무거운 주제를 농담처럼 주고받는다. 스티브는 워즈워드의 고향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폭풍의 언덕』의 배경인 거친 들판에서도 풍경을 감상하기보다는 아들이나 여자친구, 에이전트와 통화하는 데 더 주력한다. 전처와 아들이 잘 지내는지, 당분간 시간을 갖자는 여자 친구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그가 원하는 예술 영화에 출연하게 될 건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 절실하다. 다시 보니 처음 볼 때 보이지 않던 영국 북부의 겨울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들의 시시한 대화 속에 숨겨진 속마음이 들린다. 긴 여행에 대한 우려가 조금씩 기대로 바뀐다.
6월 26일
1866년에 지은 브라이튼 해변의 웨스트 피어는 2003년에 화재로 손실되어 앙상한 철골만 남아 있다. 10년 넘도록 뼈다귀만 남은 잔재를 그대로 둔 것과 138m 높이의 얇은 기둥과 원형 전망대를 새로운 랜드마크로 건설 중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쥬빌리 공원의 모티브가 된 순백의 절벽, 세븐 시스터즈. 과연 영화 ‘나우 이즈 굿’에서 남자 친구가 시한부 여자 친구를 위해 선사할 만한 풍경이다. 더 놀라운 건 70m의 백악질 수직 벽이 파도에 계속 부서지고 수많은 관광객이 절벽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는데도 안전 난간 하나 없다는 점이다. 그 흔한 안내판도, 말끔하게 포장된 보도도 없다. 이 나라 공무원은 게으른 걸까. 간이 큰 걸까.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