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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가의 서재] 책과 헤어지지 않기3
번역과 세계와 당신
처음 당신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
도저한 사랑에 관한 절절한 중단편을 하나 꼽으라면 거의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작품이 있지요. 김연수의 소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입니다.1 늦가을에는 꼭 이 소설을 읽어야 합니다. 이제 한 달이 지나면 이 세계도 온통 하얗게 뒤덮일 테니. “처음 당신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 이젠 기억조차 까마득하군요.”2 내 기억이 옳다면 찬바람에 낙엽들이 포도鋪道 위로 산산이 흩어지던 이 무렵이었을 겁니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김연수의 소설에서는 번역을 하고 주석을 다는 이야기가 첫머리부터 등장합니다. 화자인 ‘나’는 총 227행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풀어 쓴 번역가입니다. “다시 121행의 포蒱자로 돌아가면 이다음에 올 글자는 도桃자나 도陶자가 거의 확실하다. 포도라는 단어는 라틴어‘botrus’를 음사해서 만들었다.”3 ‘포도葡萄’의 유래입니다. 서아시아가 원산지인 포도는 페르시아에서 로마로 가기도 하고, 저 멀리 설산을 넘어 중국으로 왔다가 고려 때 우리 땅에도 들어옵니다. 음차音借도 번역입니다. 족히 천 년은 걸렸을 긴 여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군요.
한편 주인공인 ‘그’는 아무 연락도 없이 갑자기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여자 친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후회는 없어’로 끝나는 짧은 유서만 남겼지요. 여러 연애 소설을 탐독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둘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만 여전히 알 수 없지요. 찾은 건단 한 가지. 여자 친구가 죽기 전에 ‘나’가 번역한 『왕오천축국전』을 도서관에서 빌렸다는 사실이지요. 안타깝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뿐”4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즐겨 적던 릴케Rainer Maria Rilke의 글귀를 따릅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5 『왕오천축국전』의 ‘소발률’, 동서양 모두 ‘세계의 끝’이라 불렀던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라는대설산으로 향하지요. 이젠 목숨까지 걸고 해석해보려 합니다. 작중 화자인 ‘나’가 글로 번역을 했다면, 설산을 오르는 ‘그’는 온몸으로 번역을 한 셈이지요. 글쎄요, 끝내 뭔가를 봤을 겁니다. 현실과 환각이 만나는 ‘세계의 끝’의 미혹 또는 매혹. 목숨을 건 번역 이야기는 고혹적입니다.
철저한 독서의 오래된 역사
간만에 사사키 아타루입니다. “번역이란 철저한 독서입니다. 한 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벌거벗은 ‘읽기’의 노정입니다.”6 도서관에 관한 책을 읽다가 이 철저한 독서의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된 것임을 깨달았어요. 현재 확인된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인들이 점토판에 새긴 것이지요. 그런데 이후 수메르인을 정복한 아카드인 등 여러 민족이 모두 수메르인의 설형 문자를 그대로 씁니다. 훗날 로마가 멸망한 후에도 유럽인들이 굳이 라틴어를 사용한 이유와 흡사하지요. “결과적으로 그 지역 필경사들은 자신들의 언어뿐만 아니라 수메르인이 사용하던 다양한 설형 문자의 가치를 알아야 했다.”7 그래요. 최초의 번역가는 필경사이며, 번역은 문자처럼 역사가 유장합니다.
1980년 시리아에서 고대 도서관의 원형을 발굴했지요. 점토판이 가득한 이 문서 보관실을 기원전 2300년경에 지었답니다. “60여개의 점토판에는 수메르어로…(중략)… 새겨져 있었고, 28개의 점토판에는 수메르어가 에블라어로 번역되어 있었다”8고 합니다. 번역 자체가 수천 년 문명의 오랜 흔적이지요. 철저한 독서가 켜켜이 쌓여 있어요.
허대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받았다. 졸업 후 1999년부터 16년째 조경설계사무소를 다니고 있다. 4년 전부터는 개인 주택 정원, 어린이집과 학교의 외부 공간, 농장 조경계획, 공장 외부환경 개선사업, 아파트 조경 가이드라인 등 하나하나 성격이 다른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중에 그 공간에서 머무는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일하는 조경설계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현재 스튜디오테라(STUDIOS terra)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공저로 『철새협동鳥합』이 있고, 제프 마노가 쓴 『빌딩 블로그』를 번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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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로이 이마무라
SWA 그룹 소장
로이 이마무라는 일본계 미국인 디자이너로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더니즘 조경의 반세기 역사를 현장에서 일궈 온 대표적인 실무 조경가다. 대규모 주거단지 및 공원 계획에서부터 오피스, 호텔, 리조트, 캠퍼스, 골프장, 마리나, 테마파크, 도시 광장, 환경 보전 계획 등 그의 프로젝트 목록은 조경가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스펙트럼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아닐 정도다. 또한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그가 주로작업해 온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 대만, 동남아시아 각국 및 한국과 중동 등에서 다양한 차원의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지휘해왔을 정도로 세계화 시대의 조경가로서 광활한 지리적 범위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시작한 조경 실무를 올해로 50년째 하고 있다. 특히 SWA 그룹이라는 한 직장에서 40년 넘게 근속한 꽤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누구나 열정만 있다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활발한 창조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 조경 분야라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다. 그의 디자인은 낡아지기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과감해지고 젊어지고 새로워졌다. 오히려 오랜 경험과 경륜은 디자이너가 성숙하고 완성된 결과물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로이 이마무라는 단지 회사 내 연장자로서 조언이나 자문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제도판 위를 넘나들며 순식간에 뽑아내는 콘셉트 드로잉, 평면과 단면, 식재와 디테일 도면은 시공을 위한 청사진의 수준을 넘어 하나의 예술품이라 부를 만하다. 30년 넘게 소장principal으로서 팀과 회사를 이끌고 관리자로서 경력을 쌓았지만, 그는 오늘도 여전히 놀라운 생산력을 지닌 실무자다. 젊은 설계가의 이직률이 높고 다양한 여러 현장 경험을 갖춘 실무형 마스터 디자이너가 드물며 종종 관리자와 설계 담당자와 자문가의 역할이 분리되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한다면, 로이 이마무라의 경우는 먼 나라의 꿈 같이 들리기도 한다. 전반적인 프로젝트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가장 세심한 부분까지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설계가는 이상적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우리에겐 한쪽에만 치우친 불구와 같은 디자인 프로세스가 어느덧 상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머리만, 눈만, 입만 갖춘 디자이너. 반면에 손발로서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밝히는 디자이너 등 우리는 스스로 그러한 편중된 역할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때로는 자처하기도 한다. 과정이 결과물을 좌우하는 것이 상식이라면 온전한 지성과 단련된 표현력을 겸비하고 그에 더해 따뜻한 가슴의 연륜까지 갖춘 조경가를 찾아보기 힘든 설계 산업의 미래는 상당히 불안하다. 이제 그와 같은 조경가를 길러내고 유지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난 것인지 사뭇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수많은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로이 이마무라의 디자인은 매우 경제적이면서도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스스로 현장의 자연적 조건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설계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해안 습지에 맞닿은 플로리다의 호텔에서는 여유로운 정적과 수평적 평화로움이 있고, 일본 나가노의 계곡부에 위치한 리조트에서는 급격한 사면이 지극히 아름다운 인공미를 돋보이게 하는 팔레트가 되기도 한다. 상하이 외곽의 고급 주택 단지에서는 수로변에 화초가 자연스럽게 자라난 듯한 여유로운 풍경이, 대만의 전자회사 본사 사옥에서는 예리한 칼로 자른 듯한 선형의 디자인과 한 치도 어긋날 것 같지 않은 치밀한 디테일이 공중으로 떠오를 듯 경쾌하게 새겨져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통신회사 사옥의 전면부 정원에서는 명확한 기하학과 절제된 미니멀리즘이, 이전에 군 기지였던 대학 캠퍼스에서는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그는 특정한 설계 언어나 스타일 또는 자기만의 질서를 추구하기보다는 현실에서 영감을 얻고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 상황주의자situationist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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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웅진씽크빅 옥상정원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던 어느 평일 오후, 호젓한 파주출판단지를 찾았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관광객 한 명없는 한적한 단지 내 길을 걸으니, 마치 빈 영화 세트장을 방문한 느낌이 들었다. 세심한 협의와 조율을 거쳐 결정된 듯한 건축과 외부 공간의 조성 방식은 서울의 복닥거리는 경관에 비교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개별적으로는 시선을 잡아끌면서도 절묘하게 자제하는 모습을 취하며 세련된 단지 경관을 만들어냈다. 관심과 투자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공공 공간의 경관마저도 이곳 파주출판단지에서는 주요한 고려 대상이 되고 있었으며, 적정 수준 이상으로 조성되고 유지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파주출판단지에서 볼 수 없었던 단 하나 아쉬운 이미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활동의 경관이다. 자유로를 한참달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입지적 여건은 사람들에 의해 잘 쓰이면서 두터워지는 도시의 매력을 갖추기에꽤나 불리한 상황인 듯하다.
이번 달 ‘공간 공감’의 대상은 파주출판단지에 위치한 웅진씽크빅이다. 갈대가 풍성한 샛강에 연접한 이 건축물은 2007년에 준공되었으며 다수의 건축상을 받은 수작이다. 파주출판단지 계획 당시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곳에 지어질 건축물의 콘셉트는 바위 혹은 암석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갈대밭에 놓인 바위 덩어리가 건축의 모티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건축의 첫인상이 바위를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건축물 자체에서 매스감이 느껴지기보다는 파사드를 이루는 커튼월 글라스의 특성이 주변 경관을 받아들이고 다시 우리에게 되비쳐 보여준다. 둥그런 건축의 형태는 입면만을 부각시키는 대신 둘러싸인 산책로를 따라 모든 면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 샛강과 인접한 건축 입면은 갈대, 버드나무, 그리고 가을 하늘을 그린 캔버스가 되고 있었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였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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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메시지다
부산 북항 재개발사업 친수공원 국제현상설계공모
“미디어는 메시지다Medium is the message.” 미디어 전문가이자 문화 비평가인 마샬 맥루한의 잘 알려진 명제다. 그는 매체를 확장된 형태의 감각기관이라고 정의 하고 매체의 특성이 메시지 전달 방식일 뿐 아니라 메시지 그 자체로도 기능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매체를 수동적 도구가 아닌 능동적 주체로 본 것이다.
맥루한의 언설을 통해 나는 도시 공간에서 매체이자 메시지로 작동하는 공원에 대해 생각했다.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매체들―건물, 도로, 오픈스페이스 등― 중, 공원은 면의 형태로 일정 공간을 점유하는 규모의 매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매체에 비해 규모가 커 도시 공간에서 쉽게 읽히고 도시 표면과 맞닿아 있는 경계부가 많기 때문에 감각의 확장과 교란 가능성 또한 높다. 공원은 도시적 삶을 서비스하는 하나의 매개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비평하는 메시지로 작동할 수 있다.
공원이 도시를 비평하는 매체이자 메시지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계기중 하나는 설계공모다. 도시 공간에 공원의 대상지가 정해지면 다양한 사회적 요구 가운데 문제와 목표가 설정되고, 설계공모는 문제 설정과 해법의 논리를 경합하는 비평의 장이 된다. 라빌레트 파크 설계공모와 다운스뷰 파크 설계공모는 예측할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포스트모던 도시의 공간상을 인식시켰다. 뒤스부르크 노르트 파크 설계공모와 프레시킬스 파크 설계공모는 쇠퇴기로 접어든 무수한 산업 도시들, 생애주기가 다한 쇠퇴기의 도시들이 곧 대규모의 노후·유휴지를 발생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했다. 폐허가 된 기존 산업 시설과 생태적·문화적으로 취약한 토양을 지닌 도시 공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설정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0년대 이후 대규모 설계공모가 붐을 이루면서 능동적 주체로서의 공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도시 정책과 제도를 기반으로 오랜 기간 준비된 경우가 그러했다. 이를테면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설계공모의 경우 대상지가 신도시 면적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위치 또한 비위계적 환상형 도시의 중앙부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 개발에 있어서 공원이 도시를 조직하는 능동적 주체로서 기능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는 특수한 형태의 교란된 부지인 군부대 이적지의 다양한 쟁점과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부산 북항 재개발사업 친수공원 국제현상설계공모는 앞의 두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토 개발과 도시 (재)개발이라는 판 위에 놓여있다. 일찍이 정부는 항만물류산업 환경의 변화와 관련 시설의 노후화 등으로 항만의 생애주기가 단축될 것을 예측해, 2007년 ‘항만과 그 주변지역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시행했다. 쇠퇴기 항만 도시의 재활성화를 지원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을 토대로 부산시는 쇠퇴기의 항만물류산업 부지인 북항을 국제해양문화관광의 거점으로 변화시키는 재개발 사업을 계획했다. 그리고 도시의 공적 자원인 항만 부지를 지역사회와 시민들에게 환원하는 방안으로 친수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설계공모는 국내 대규모 유휴 항만의 재개발과 부산 구도심 활성화, 산업부지의 환원을 통한 공공 공간 확충으로 수렴되는 친수공원의 구체적인 형태와 기능을 마련하기 위한 장이 되었다.
박선희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형 공원에 나타나는 현대 공원 설계의 쟁점’으로 2011년 조경비평대상에서 가작을 수상했으며, 현재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와 조경에 관한 복잡하고 중요한 논의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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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망의 조경, 네 가지 과제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며 새 옷을 입은 『환경과조경』, 이제 2014년의 마지막 호를 선보입니다. 지난 1년간의 잡지, 즐겁게 보셨는지요.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 그리고 따끔한 비판모두 잘 소화하여 더 유익하고 품격 있는 『환경과조경』을 만드는 데 자양분으로 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외적 위기와 내적 혼란을 동시에 겪은 한국 조경의 2014년, 참 힘든 해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고도 성장기의 급속한 개발로 인해 훼손된 국토의 상처를 치유하고 도시 환경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온 조경의 저력이 있기에, 다른 어느 분야보다 앞서 지구 환경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실천해 온 조경의 지혜가 있기에, 지금 잠시의 위기는 새로운 희망의 토대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작년에 제정된 ‘한국조경헌장’의 몇 구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조경은 생태적 위기에 대처하는 실천적 해법을 제시하고, 공동체 형성을 위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며,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경관을 구현해야” 합니다. “조경은 건강한 사회의 척도이고 행복한 삶의 기반이며, 지속가능한 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조경의 책임이자 과제”입니다.
희망의 조경을 실천하기 위해 몇 가지 당면 과제를 생각해 봅니다. 우선 첫째는 인재의 양성입니다.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우리 조경 분야는 우리 손으로 제대로 된 조경법 하나 발의할 국회의원 한 명 배출하지 못했고, 정책을 이끌어갈 정부고위 공무원 한 명조차도 없는 실정입니다. 올해 열린 대한민국 조경문화박람회의 초청 특강 스타는 조경을 전공한 우리의 선배도, 후배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왜 원예나 정원을 넘어 도시 규모의 그린 인프라를 이야기하고 미래의 패러다임을 제시해 줄 제임스 코너나 조지 하그리브스 같은 세계적인 조경가를 배출하지 못했을까요? 더 늦기 전에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산학 연대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학교는 예전처럼 천편일률적인 커리큘럼으로 이미 과포화 상태인 인기 분야의 교육에만 치중하지 말고 다양한 실무 분야가 원하는 전문 인력을 골고루 배출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교육 과정을 점검하고 개편해야 할 것입니다. 업계 또한 학교와의공동 연구나 R&D 투자를 활성화하여 미래의 산업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데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과제는 여러 관련 단체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일입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조경계가 우왕좌왕한 이유는 큰 그림으로 조경의 미래를 챙기지 못하고 각 단체의 입장에 따라 당장의 작은 이해관계에 따라 사분오열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3월 3일로 변경된 ‘조경의 날’은 충분한 검토와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고, 관련 단체의 차기 회장 선거는 개운치 않은 뒷말을 무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같은 단체 내에서도 학연과 출신에 따라 계파를 형성하고 각종 이권에서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하곤 합니다. 학연으로 뭉친 몇몇 동문들은 공공연한 동문업체 밀어주기로 손바닥만한 조경 분야의 시장 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운영비도 마련하지 못하는 유사 단체들이 또 다시 양산되고 있습니다. 한때 호황을 누렸던 선배 세대는 불황이 닥치자 후배를 보살피지 않고,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자신만 다른 비즈니스 세계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조경’ 이라는 이름으로 힘을 모으고 보태야 합니다. 졸업장, 계급장 다 내려놓고 먼저 팔 걷어붙이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실속 없는 자리 만들기에 연연하지 말고 여러 이름의 조경 관련 단체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세 번째 과제는 우리 조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반성과 대책 마련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각종 언론을 통한 홍보는 물론 시민사회에 폭 넓게 조경의 소중한 가치를 널리 알리는 이미지 회복 전략image restoration strategy을 실천해야 합니다. 미국조경가협회ASLA는 지난 2011년부터 ‘Landscape Architecture –YourEnvironment. Designed.’란 테마 아래 올바른 조경 역할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ASLA는“조경은 당신의 환경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대학캠퍼스, 도시 공원이기도 하며, 병원 마당, 지역계획, 정원의 전부이자 그 이상의 것이기도 합니다.
조경가는 하늘 아래 거의 대부분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조경의 정체성 확립과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도 한국조경신문, 라펜트, 환경과조경 같은 전문 매체는 물론이고 일간지나 방송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경의 중요성을 알려 나가고 조경문화박람회 등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지속해야 합니다.소외된 계층에 대한 배려로 우리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고 봉사하는 사회적 지원 또한 활발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네 번째 과제는 새로운 시장의 발굴과 개척입니다. 근래에 조경은 건축, 도시설계, 엔지니어링과 협력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IT, 패션, 의료, 역사 등 전통적인 협업 분야를 벗어난 다양한 분야와도 상호보완적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터넷, 통신,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네트워크 경제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비즈니스의 융복합화 추세가 강하게 대두되고 있고, 우리 조경도 컨버전스를 통해 영역을 넓히고 타 분야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나가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ASLA도 최근 “협업이 강조되는 분야 역시 조경”이라고 말하며 지속가능한 도시, 건강하면서 경제적인 도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주역으로서 조경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도시교통의 효율을 높이는 보행 중심의 네트워크 설계, 지역 사회의 공동체 문화를 발전시키는 커뮤니티 디자인, 식물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녹색의료 디자인, 버려진 토지를 이용해 지역 내 생산성을 높이는 도시 농업 디자인, 자연 에너지와 빗물을 활용하여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그린 인프라디자인 등,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야 합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국내 경기의 침체 속에서 우리 조경 분야는 안팎으로 끊임없는 위기에 직면해있습니다. 타 분야의 도전에 좀 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당장 우리 내부에 산적해 있는 문제를 이제부터라도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합니다. 지난 40년간 양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 우리가 챙기지 못하고 자만했던 부분이 있었음을 되새겨봐야 합니다. 이제 전통적인 조경의 영역을 넘어 ‘탈영역의 시대, 통섭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조경이 가진 장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토를 설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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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마감
매달, 이번 호만큼은 여유 있게 인쇄소로 넘기고 편집부 식구들과 근사한 와인 파티를 즐겨야지 마음먹지만, 꿈은 역시 꿈일 뿐입니다. 마감을 몇 시간 앞둔 편집실의 새벽은 출품 전날 밤의 설계실못지않은 전쟁터 풍경입니다. 사흘째 이어지는 철야로 수염이 덥수룩해진 양다빈 기자,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담당 필자의 연재 원고로 애를 태우다 드디어 국제전화를 겁니다. 담당 섹션의 완성도를 위해 방대한 사례를 연구하곤 하는 조한결 기자, 분초를 다투는 상황임에도 디자이너와 의견을 조율하는 침착함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벌써 나흘째 예비군 훈련과 철야 편집을 병행하고 있는 이형주 기자, 책상 위에 높이 쌓인 교정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3차 교정지인데도 다시 레이아웃을 바꿔달라는 데스크의 뒤늦은 요청에 팽선민 디자이너는 빛의 속도로 모니터 두 대를 오가며 최종 버전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윤주열 수석디자이너의 눈과 손은 마지막 순간까지 책 전체의 미려한 리듬과 세련된 디테일을 한층 더 끌어올리기 위해 쉴 새가 없습니다. 드디어 뒷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앞머리에 실핀을 꽂은 김정은 편집팀장, 기자들 원고 다시 손질하랴 자기 원고 마무리하랴 이 와중에 1월호 필자 섭외하랴 멀티태스킹에 여념이 없습니다.
부드럽지만 예리한 눈으로 3교에 ‘오케이’를 놓고 있는 남기준 편집장의 손에서 베테랑다운 마지막신의 한 수가 곧 생산될 것입니다. 일 년 만에 겨우 도비라, 세네카, 하시라 같은 일본식 편집 용어가 낯설지 않게 된 아마추어 편집주간은 폭풍 전야의 긴장을 풀어보려고 실없는 우스개를 던져보지만 연신 테라스를 들락거리며 연기를 뿜어대는 걸 보면 속이 꽤 타들어가나 봅니다.
리뉴얼을 준비하던 작년 이맘때의 열정과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찬바람 부는 겨울이 다시 왔습니다.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던, 강렬한 노란색 표지의 1월호 에디토리얼을 다시 펼쳐봅니다.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세계적 동시대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라는 세 가지 편집 방향이 호기롭게 적혀 있습니다. 지난 열두 권에서 이 세 가지 비전을 한결같이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2월호 에디토리얼에서 약속드렸던 “학생에겐 지적 자극을, 실무조경가에겐 질투심을, 우연한 독자에겐 꿈을” 줄 수 있는 ‘재미있는 잡지’를 위해, 『환경과조경』은 실험 정신, 문제 의식, 비판 정신을 한층 더 다듬어가겠습니다.
어느 달이, 무슨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으셨는지요. 편집부가 체감하기로는 11월호에 대한 반응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서울역 고가가 사회적 이슈가 된 참에 때마침 하이라인 3구역이 개장해서 두 프로젝트를 엮은 특집 ‘하이라인의 교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실은 다른 특집보다 기획과 진행에 든 시간은 오히려 짧았지만, 작품 섭외, 제임스 코너와 조슈아 데이비드의 인터뷰, 관련 외고, 11번가 브리지 파크 설계공모까지 모든 콘텐츠가 유기적으로 들어맞은 달이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리빌드 바이 디자인’ 설계공모를 회복탄력성의 관점에서 조명한 8월호에도 독자들의 호응이 컸고, 30대 조경가 30인의 성장사를 다룬 7월호의 ‘조경가로 자라기’에도 피드백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조경가를 꿈꾸면서도 늘 갈증과 허기를 느끼는 미래 세대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었기를 기대합니다. 조경과 도시설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적시선을 담고자 공들였던 기획물로는 5월호의 ‘서울의 오늘을 읽다’와 10월호의 ‘도시재생의 새로운 국면’이 있었습니다. 외고 없이 내부 원고만으로 구성했던 9월호의 책 특집 ‘활자 산책’은 그 이면의 갖가지 에피소드 덕에 지금까지도 편집부의 단골 안줏감입니다.
알찬 원고로 지면을 빛내준 필자들과 작품 게재를 허락해준 조경가들께 감사드립니다. 연재의 고통을 감내해준 필자들께는 어떤 감사의 말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매달 실시간으로 조언과 격려와 비평을 아끼지 않은 편집위원들의 수고에도 감사드립니다. 해외 작품 섭외에 애써준 해외리포터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독자 리뷰단의 피드백은 다음 호를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러 독자들의 격려와 비판은 편집진에게 에너지를 주는 가장 큰 동력이었습니다. 꼭 기억하고, 더 노력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잡지”를 2015년 편집계획서의 제목으로 달까 합니다. 물론 화려한 스타일의 장식적인 편집 디자인을 말함이 아닙니다. 내용과 형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텍스트의 메시지와 이미지의 효과가 하나로 움직이는, 스타일이 정보를 지배하지 않고 정보의 본질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잡지를 만들기 위해 늘 연구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잡지 『환경과조경』이 조경 저널리즘의 오래된 미래를 열 수 있도록 매달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12월호의 마감과 함께 『환경과조경』은 ‘파주시대’를 마감합니다. 마감은 늘 아쉬움을 남기지만 새로운 출발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방배동시대’를 열며 2015년 1월호로 찾아뵙겠습니다. 1년간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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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이사
단독 주택에 산 지 만 5년이 되어간다. 주변엔 논과 도라지 밭, 조경수 농장, 미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던 공터와 나지막한 산, 그리고 고만고만한 주택 몇십 채만이 자리하고 있다. 매달 관리비 고지서를 보내주는 관리사무소도 없고, 놀이터도 어린이집도 없다. 슈퍼, 세탁소, 부동산, 학원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상가 건물도 없다. 걸어 다닐 수 있는 반경 내에 무엇인가를 살 수 있는 곳이래야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시는 구멍가게뿐이다. 앵글로 만들어진 진열대 안쪽에 있던 물건을 꺼낼라치면, 수건으로 먼지를 털어주신다. 물건을 들여 놓기 무섭게 팔려나가는 마트와는 달라도 한참 다른 곳이다. 그렇다고 그 먼지의 두께가 덕지덕지 들러붙은 정도는 아니다. 가볍게 후후 불면 날아갈 정도이니, 아주 시골은 아니란 이야기다. 아,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는 치킨 집이 하나 오픈했다.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여전히 늦은 귀가 시간에도 불을 밝히고 있다. 왠지 모르게 다행이다 싶다.
주말 아침이면 동네 이장님의 방송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주로 경로당에서 무슨 모임이 있으니 참석하라는 멘트다. 아파트 거실 벽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관리사무소의 안내 방송만 듣다가, 단독 주택으로 이사한 후 처음으로 허공을 가르며 들려오는 “아~ 아~ ○○○ 4리에서 알려드립니다”란 메아리를 들었을 때의 생경함은 지금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역시 ‘읍’은 뭔가 달라!”라고 중얼거렸던 것도 같다.
그렇다. 행정구역상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읍’이다. 하지만 아주 시골은 아니다.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아내와 내가 농담 삼아 ‘읍내’라고 부르는 곳에 제법 규모 있는 마트를 비롯해서 웬만한 것들은 모두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있으니, 구체적으로 그곳에 있는 것들을 묘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약간 망설여지는 거리다. 한 15분 정도 걸리려나? 그보다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자가용으로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그 풍경은 사뭇 다르다.
5분을 경계로,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없는 것투성이다. 하지만, 이곳에만 있는 것들도 있다. 겨울이면 20분 가까이 눈을 치워야 하는 마당과 집 앞 도로(이걸 도로라고 표현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교행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차 한 대만 지나다닐 수 있는 시멘트 포장길이다)가 있고,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허리를 굽히게 만드는 잔디밭(사실 잔디‘밭’이라고 하기에는 옹색한 면적이다)도 있다. 이 잔디란 녀석은 제 때 깎아주지 않아 늘 아내의 핀잔을달고 살게 만드는 원흉이다. 정원 책을 만들며 부르짖던(?) ‘정원 일의 즐거움’을 직접 만끽할 때가 되었다며, 아내는 내 손에 기어이 제초가위를 들려 등을 떼민다.
물론 나의 극렬한 저항이 성공할 때가 많아, 그 횟수는 일 년에 채 몇 번 되지 않는다. “정글을 가꾸는 게 취미인가 봐요” 지나가는 말로 그녀가 툭 내뱉으면, 나는 “굉장히 생태적이지 않아요”라고 딴청을 핀다. 그래도 여름과 늦가을 사이, 두세 번 혹은 서너 번 잔디와 사투를 벌이고 나면 기분은 썩 괜찮다. 다음에 다시 단독 주택에 살게 되면 잔디밭이 아니라 클로버 밭을 꼭 만들겠다고 농담 아닌 진담처럼 말하곤 하지만 말이다.
참, 잔디밭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집과 세트로 딸려 있던 녀석이다. 제대로 정원을 가꾸게 되면 반드시 배제시키리라 다짐했던 3종 세트(잔디밭, 철쭉, 회양목) 중에 무려 두 가지가, 이사 왔을 당시에 (정원이 아닌) 마당의 기본 옵션으로 제공되었다. 엄살을 피웠지만, 단독 주택에서의 삶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층간 소음에서 해방된 점도 그렇고, 2층 집이어서 구조가 입체적인 것도 마음에 든다. 여전히 불편한 점은 존재하지만….
원래는 회사의 사무실 이전 소식을 다루려고 했는데, 딴소리만 잔뜩 늘어놓았다. 방배동으로 이사와 며칠을 다녀보니, 문득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온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치우던 눈을 파주 사옥에서도 치워야 했고, 잔디밭은 없었지만 해마다 가을이 되면 적지 않은 양의 낙엽을 치워야 했다. 게다가 낙엽이란 녀석은 해마다 그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파주 사옥이 막 지어졌을 때, ‘이게 언제 자라서 벽면을 가득 채울까’하며 안쓰럽게 쳐다봤던 담쟁이덩굴은 이제 두려울 정도로 낙엽을 생산해내는 낙엽자판기가 되었다. 한 마디로 파주 사옥은 직장 판 단독 주택인 셈이었다.
창문만 열면 8차선 대로가 펼쳐지는 ‘따뜻한’ 방배동 사무실에서, 파주 시대를 개인적으로 정리해보다가 ‘지금 살고 있는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과는 그만큼 차원이 다른 이사일 테니까.
마지막으로 사과 말씀을 드려야겠다. 단순하지만 시선을 끄는 절제된 구도와 여백이 적절히 어우러진 담백함이 제 맛이었던 ‘유청오의 이 한 컷’이 이번 호에는 전혀 다른 성격과 소재의 사진으로 채워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2006년 2월부터 시작된 짧지 않았던 ‘파주 시대’를 마감하는 소회로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독자 여러분께는 송구스러울 뿐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사진 촬영에 공들인 유청오 작가에 대한 고마움은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그와의 촬영은 유쾌했다. 앵글 속에 포함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근육 경련을 일으키는 초보 모델들의 긴장감을 무장 해제시키는 그의 능수능란한 조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추억할만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새빨간 넥타이를 매고 왔건만 지나치게 우측으로 몸을 튼탓에 전혀 빨간색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 사실을 일러주지 않은 점은 무척 서운하지만 말이다. 참, 김정은 편집팀장도 붉디붉은 치마를 차려 입고 왔는데, 외투에 가려 사진에서는 전혀 레드 컬러가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왜 시뻘건 넥타이를, 김정은 팀장은 왜 곱디고운 붉은 치마를 입고 왔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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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기대보다는 후회가,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특히 이제는 20대 중반이라고 우길 수 없는 명백한 20대 후반이 되는 나는 할 수만 있다면 2015년 1월이 다가오는 것을 온 몸으로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창 일거리에 파묻혀 있던 1월호 마감 기간의 주말 저녁, 친한 친구들과 모여 송년회를 가졌다. 우리는 대학교 교내 방송부 활동을 같이 하며 친해졌는데 동기들 중에 유난히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가 많아 자칭 ‘낭만 20기’라 부르곤 했다. 이날도 우리의 공식 건배사인 ‘낭만을 위하여’를 외치고 공식 주제가 ‘낭만에 대하여’를 틀었는데, 이날은 장난같이 외치곤 하던 우리의 건배사가 특별한 느낌이었다. 친구 한 명이 “야, 우리도 나이 드는 것 같어”라고 했다. 남자 이야기, 연애 이야기로 대화의 반을 채웠던 20대 초반과는 달리 이제는 회사 생활이 우리의 주 관심사가 되었고, 온갖 술게임을 섭렵하며 떠들썩하게 밤을 새웠던 옛날처럼은 못하겠다며 우리는 맥주 몇 잔에 순순히 잠자리를 찾아 방구석을 파고들었다.
지금도 좋아하는 작가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은 20대 초반에 열광적으로 좋아하던 작가 중 한 명이었다. 줄곧 모범생(?)으로 말썽 없이 자라온 나는 이 시기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나 한강의 『채식주의자』 같은 유난히 과격한 소설을 좋아했다. 대학에 갓 입학했던 시절, 나는 사실 잔뜩 주눅들어 있었다. 시골에서 나름 ‘글 좀 쓴다’고 생각하며 국문과에 입학했는데 우리 과에는 주옥같은 문장을 쓰는 글쟁이들이 수두룩했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개성 강한 친구도 많았다. 이 시절 나는 ‘평범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과격하고 강렬한 내용의 소설을 좋아했던 것 같다. 특히 사강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녀가 묘사하는 주인공의 냉소적이면서도 변덕스러운 성격이나 아슬아슬하고 불안정한 청춘에 대한 예찬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또 사강의 실제 삶이 소설처럼 극적이었기에 인생과 사랑에 대한 그녀의 과장된 묘사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시몽이 폴에게 고독 형을 선고하는 부분과 폴이 시몽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자신의 삶에 대해 환기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 합니다.” 다소 연극조의, 손발이 구운 오징어마냥 오그라들게 하는 시몽의 이 대사를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적어 놓기도 했다.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에 대해 ‘고독 형’을 내리는 “무시무시한 선고”는 폴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내리는 선고 같아 지금도 가슴이 뜨끔하다. 폴이 시몽의 질문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로제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점점 자아를 잃어버리는 폴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시몽의 편지에 문득 자신의 삶에 눈을 뜬다. 하지만 프랑스 문단에서 ‘매력적인 작은 괴물’로 불릴 만큼 변덕스러운 악동이었던 사강은 폴에게 또다시 영원한 고독형을 선고한다. 작가는 결국 폴이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라고 고백하며 이전 삶에 굴복하게 만든다. 작가는 폴을 비롯해 그의 소설에서 매번 등장하는 성숙하고 진지한 여성 캐릭터에 대해 유독 매정하고 차가운 태도를 취한다. 그녀의 처녀작 『슬픔이여 안녕』에서 주인공 세실의 의붓어머니 안느는 총명하고 세련된 취향을 가진 성숙한 여자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세실에게 어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알코올, 코카인, 도박 중독자이자 스피드광이었던 사강은 평생을 청춘과 젊음의 아이콘으로 살았다. 그녀는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젊음이 소진되고 재기발랄함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대학교 1학년, 교양 국어 시간에 담당 교수님은 우리에게 이태준의 수필 ‘조숙早熟’을 필사하고 요약하는 숙제를 내주셨다. 한창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에 하필 이태준의 ‘조숙’을 과제로 낸 교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오래 살고 싶다. 좋은 글을 써보려면 공부도 공부려니와 오래 살아야 될 것 같다. 적어도 천명天命을 안다는 50에서부터 60, 70, 100에 이르기까지 그 총명, 그 고담古談의 노경老境 속에서 오래 살아보고 싶다. 그래서 인생의 깊은 가을을 지나 농익은 능금처럼 인생으로 한번 흠뻑 익어보고 싶은 것이다.” 젊음과 재기발랄함이 재능의 전부인 줄 알았던 21살의 나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던 구절이다. 이제 나와 친구들은 억지로 취하지 않아도 즐겁기 시작했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로도 울고 웃게 되었다. 인생으로 흠뻑 익어갈 나를 기대하며 두렵고 또 설레는 마음으로 2015년을 맞이한다.
(P.S. 아직 어린 녀석이 청승 떤다고 분노하신 편집장님께 심심한 사과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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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보이후드
시간의 이중주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1995), ‘비포 선셋(Before Sunset)’(2004),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2013)은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 감독이 같은 배우들과 9년에 한 번씩 만든 세 편의 영화다. 주인공 제시와 셀린느는 기차에서 처음 만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하루를 보내고 9년 만에 프랑스 파리에서 재회하며, 다시 9년후엔 부부가 되어 그리스 카르다밀리(Kardamili)의 해변마을을 여행한다. 20대의 풋풋한 주인공들은 빈의 프라터(Prater) 공원의 대회전차에서 첫 키스와 함께 사랑을 확인한다. 정해진 여정을 깨고 그들이 찾는 놀이 공원은 어른도 아이가 되는 판타지의 장소다. 30대가 되어 다시 만난 그들은 파리의 오래된 골목과, 철로를 공원으로 조성한 프롬나드 플랑테를 걷는다. 그들이 걷는 긴 선형의 동선만큼 지나온 삶과 미래의 여정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다시 9년 후, 그들은 두 딸과 함께 그리스 해변 마을을 여행하며 폐허가 된 유적지인 메소니(Methoni) 성을 걷는다. 한때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빛나던 장소는 이제 수많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시간의 흔적만으로도 가치를 지닌다. 그들은 20대처럼 풋풋한 사랑을 속삭이지 않고 30대처럼 꿈과 야망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들의 긴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서 젊음보다 더 빛나는 40대의 삶을 이야기한다. 비포 시리즈의 시간은 관객이 실제 체험하는 시간과 같다. 영화를 세 편 보는 동안 관객도 열여덟 살의 나이를 먹는다.
2014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시간을 모티브로 새로운 영화적 실험을 선보였다. 그의 신작 ‘보이후드Boyhood’는 12년 동안 같은 배우들과 매해 늦여름에 일주일씩 만나서 완성한 영화다. 관객이 영화를 보는 세 시간 동안 영화에서는 12년의 세월이 흐른다. 주인공 메이슨은 잔디밭에 드러누운 앳된 여섯 살 꼬마에서(첫 장면이자 포스터에 담긴 장면) 영화가 끝날 때는 열여덟살 청년이 되어 있다. 다음 해로 넘어갈 때는 특별한 메시지 없이 바로 그 다음 날처럼 부드럽게 연결된다. 2014년에서 하루 잤을 뿐인데 일어나보니 2015년이되는 것처럼 말이다. 배우들이 분장하지 않아도 되니 1년 후라는 메시지가 어쩌면 필요 없을지 모른다. 어느 해에는 여드름이 늘어난, 또 어느 해에는 중저음의 변성기가 온 메이슨이 등장한다. 감독의 실제 딸인 깍쟁이 누나는 통통한 귀염둥이에서 치아 교정기를 낀 사춘기 소녀로, 시니컬한 대학생으로 성장한다.
영화는 주인공 메이슨의 일상과 시선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일주일에 한 번 들리는 아버지와 엄마가 다투는 모습을 메이슨은 누나와 함께 2층 방에서 내려다본다. 두 아이를 맡아 키우는 엄마는 생계를 위해 공부하고 일하며, 두 번 더 결혼하지만 결국 혼자 남는다. 철없어 보이는 아버지는 매주 아이들과 캠핑을 가거나 볼링을 치러 간다. 아이들은 엄마의 생계형 돌봄과 아버지와의 위락 활동과 조언으로 성장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릴 때 동생과 토닥거리며 지내던 영화 속 누나이기도 했다가 아이들 걱정에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가 되기도 하면서 그들과 함께 12년을 산 것처럼 느껴진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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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이탈리안 잡An Italian Job
#33
알렉산더 포프 - 고대 시에서 영감을 얻다
영국에서 마침내 ‘사라와지’를 찾았다고 해서 그 말이 곧 중국의 조원 양식을 본뜨는 데 성공했다는 뜻은 아니다. 사라와지는 본래 중국풍의 정원을 표현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지만 중국의 양식을 본뜨겠다는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들은 ‘무질서한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에 흥미를 느끼고 일종의 암호처럼 사라와지라는 개념을 차용했을 뿐이다. 실제로는 지난 9월호에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베르길리우스의 목가 등 고대 문학에서 해법을 구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1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1688~1744)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 사실이 입증된다. 포프의 행적을 따라가 봐야 하는 이유는 그가 1718년경부터 자신의 트위큰햄(Twickenham) 저택에 조성한 정원이 영국 풍경화식 정원의 출발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2 그렇다면 포프야말로 사라와지를 발견한 사람이 아닐까. 그러니 그의 행적을 추적해야 우리도 사라와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알렉산더 포프는 18세기 영국 최고의 고전주의 시인이었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는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아 고대 문화에 깊이 심취해서 살았다. 비단 포프뿐 아니라 그 시대의 엘리트들은 모두 고대 문화에 심취해 있었다. 문학도 고전주의, 건축도 고전주의 양식, 음악의 주제 역시 고대 신화나 역사에서 빌려 왔다. 당시는 헨델이 런던의 음악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메시아’는 후기 작품이다. 초기에 그는 오페라만 작곡했는데 모두 고대 이야기였다. 당시의 분위기가 그랬다.
포프는 수많은 창작시를 남겼지만 그 외에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영어로 번역하여 큰 성공을 거뒀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 보면 포프는 고전 작품들을 분석하며 그 안에서 정원에 대한 묘사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베르길리우스의 ‘아르카디아’에 대한 묘사를 바탕으로 정원을 만들려고 보니 너무 막연했다. 좀 더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베르길리우스는 그 외에도 올림포스에 사는 한 노인의 정원을 노래한 적이 있다.3 호메로스 역시 오디세이아에서 알키노오스(Alchinoos) 왕의 정원을 묘사했다. 포프는 1713년 『가디언』에 정원 칼럼을 쓰면서 정원이란 모름지기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가 노래한 것과 같아야 한다고 주장했다.4 올림포스 어느 노인의 정원이나 알키노오스 왕의 정원은 분위기가 비슷하다. 온갖 과실수가 자라고 허브원에는 화초가 흐드러지며 나무는 자유롭게 자라고그 사이로 계류가 자유롭게 흐른다. 분명 사람이 만든 정원이지만 자연과 같은 곳. 그런 정원이 알렉산더 포프를 매료시켰다. 그러나 이 정원들도 역시 막연했다. 과실나무, 계류, 꽃, 이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베르길리우스도 호메로스도 말해주지 않았다. 방황 끝에 찾은 것이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BC 65~8)의 별장 정원이었다.
베르길리우스와 쌍벽을 이루었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글 속에서 자신의 정원을 여러 번 상세히 묘사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별장은 사비나의 산 속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별장에 사비눔(Sabinum)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기원전 30년 경에 지어진 별장이었다. 16세기에 호라티우스의 작품이 재발견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많은 독자들이 사비눔을 직접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천오백 년 전에 지은 빌라가 남아있을 리 없었다. 마치 오늘날 연개소문의 저택을 찾겠다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1761년, 사비눔이 있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고 건물의 기초도 발견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초 위에 중세의 수도원이 떡하니 지어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발굴 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수차례에 걸친 작업 끝에 현재는 집터 관람이 가능하다.
알렉산더 포프의 시대에는 아직 사비눔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오로지 호라티우스의 글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글에 따르면 사비눔은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지어졌으며 소작인과 노예의 숫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순수한 주거형의 별장이 아니라 농장을 겸하고 있던 곳이었다. 대략 81헥타르 정도의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로마의 농장 중에서는 중상급에 해당했다.5 집 뒤에는 숲이 있어 그늘지고 집 앞으로는 샘이 솟아 여름이면 서늘하고 겨울에는 온화했다. 집 근처에는 바쿠나 여신의 신전이 있었다. 베르길리우스나 호메로스의 묘사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포프의 시대에 또 하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연극과 오페라였다. TV도 영화도 없던 세상이었으니 사람들은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오페라 극장을 찾았다. 1705년 런던 헤이마켓 거리에 ‘여왕 폐하의 극장(Her Majesty’s Theatre)’이 세워졌고,6 1732년에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개장했다. 모두 포프 시대의 일이었다. 더욱이 헨델이 런던에 나타난 이후로 오페라 계에 활기가 넘쳤고 헨델은 포프가 속했던 엘리트 계층이었으므로 그들은 극장에 거의 출근하다시피 했다.
오페라에서는 물론 음악이 중요하지만 포프의 경우 무대 장치를 유심히 관찰하며 자신의 풀리지 않는 숙제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정원 전체를 저렇게 연극 무대처럼 꾸밀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 같다.
포프의 저택은 템스 강가에 근사하게 자리 잡고 있었지만 햄프턴 궁전으로 가는 길이 집 바로 뒤로 지나갔다. 그 길을 건너 포프의 땅이 계속되었다. 그곳에 그는 베르길리우스가 노래한 것처럼 포도밭을 가꾸고 정원을 조성하고자했다. 그러자면 정원과 집 사이를 연결해야 했으므로 터널을 뚫었다. 집 앞마당 정원에서 지하로 내려가 한참을 걷다보면 지상으로 다시 나오게 된다(세를의 도면 3번). 이때 터널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문틀에 의해 템스 강변의 정경이 마치 액자 속의 그림처럼 담겨져 보였다. 그가 만든 첫 번째 무대 장치였다.
도로 우측에 있는 긴 형상의 정원은 제대로 된 풍경화식 정원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단은 무질서해 보인다. 우선 기존 정원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중앙축이 사라졌다. 여기저기 언덕을 쌓았다거나 길의 흐름이 제멋대로라는 점등에서 나름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그럼에도 이후 풍경화식 정원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수목 배치를 통한 장면 연출과 공간 조성 기법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 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마도 원형의 ‘조개껍질신전(Shell Temple)’일 것이다(세를의 도면 5번). 현재 포프의 정원은 그로토의 일부를 제외하곤 남아있는 것이 없어 확인할 수 없지만 아마도 조개껍질을 붙여 만든신전 모양의 소건축이었을 것이다. 비록 신전이라고 불리기는 하나 특별한 용도가 없는 건축물로서 종교적인 용도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연극 무대 위의 장치처럼 배경을 연출하기 위해 세워졌을 뿐이다. 기존 바로크식 정원에도 물론 건축물과 조형물이 있지만 그들은 막중한 의미를 부여받았다. 뜻과 상징성이 강했다. 반면 포프의 정원에 세워진 신전은 뜻이 아니라 느낌을 담았다. 이런 건축물이나 조형물을 ‘스타파주(staffage)’라고 한다. 본래 스타파주는 미술에서 쓰는 용어였다. 클로드 로랭이나 카날레토 등의 풍경화가들이 쓰던 기법으로서 그림에 인물이나 동물, 건축물 등을 자그맣게 그려 넣어 장면에 생기를 불어넣고 그림에 깊이를 더했다. 그야말로 첨가물일 뿐 그 자체로 의미는 없다.
이로서 포프는 풍경화 기법과 무대 장치의 원칙을 정원에 적용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별 것 아닌 듯 보여도 큰 차이가 있다. 정원에 무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정원 그 자체가 무대가 된 것이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